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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6


 (주민1)  아저씨


 여기 골프 백 좀 꺼내 주세요


 예, 예, 예, 예, 예, 사장님


 [골프 백을 덜그럭 든다]


 [힘주는 신음]


 - 빨리 좀 와요, 빨리 좀  - (인수) 예, 예, 예


 (주민1)  답답하다, 답답해


 [인수의 놀란 신음]  [타이어 마찰음]


 [차분한 음악]


 [힘겨운 신음]


 [주민2가 말한다]


 [힘겨운 신음]


 (간호사)  김인수 님


 어, 환자분은  지금 퇴원하시면 안 되고요


 저희 과장님 뵙고 가셔야 돼요


 이쪽으로 오세요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심전도계 비프음]


 (인수)  저…


 사장님, 죄송합니다만


 여긴 병원이라


 전 지역이 금연 구역입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인수)  저, 어, 사, 사, 사장님


 [봉지를 부스럭 열며]  꽁초는 이리 주십시오


 (상구)  아이, 아닙니다, 괘, 괜찮은데…


 아이, 괜찮습니다


 아, 예  [인수의 웃음]


 [꽁초를 부스럭 넣는다]  (인수)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상구)  아, 예  [인수의 웃음]


 [인수가 브레이크를 달칵 푼다]  [미선과 인수의 웃음]


 [잔잔한 음악]


 [픽 웃는다]


 '사장님'?


 [한숨]


 [우아한 음악]


 아저씨  [현창의 놀란 신음]


 (나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확인을  좀 해야 될 거 같아서 왔는데요


 그루 삼촌이  살인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설마 아니죠?


 그건 어디서 들었어?


 대박, 정말이었어요?


 (나무)  와, 진짜 말도 안 돼


 아, 지금 어디서가 중요해요?


 아, 대체 무슨 생각이지?


 무슨 생각이면 살인자를  그루 옆에 둘 수가 있어요?


 사람 죽인 전과자가 후견인?  그거 뭐, 법에 안 걸려요?


 아니, 아저씨는 다 알면서  왜 정우 아저씨 안 말렸어요?


 아, 무슨 변호사가 이래요


 변호사는 의뢰인을 보호하고  지켜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잔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한숨]


 다 했어요


 (현창)  조상구 씨는 정확히 말하면  살인자는 아니야


 경기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일 뻔했지만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건 아니라서


 살인자가 되는 건 면했어


 지금으로서는 그 사람이


 그루에게 위험하다는 근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생긴 거야?


 그런 건 아닌데요


 (현창)  조상구 씨가  그루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위협한 적 있니?


 [상구의 힘주는 신음]  [그루의 힘겨운 신음]


 그랬던 거 같기도 하지만…


 - 아니요  - (현창) 그루가 생활하는 데


 불편을 끼치거나  손해를 입힌 적이 있니?


 [나무의 놀란 숨소리]


 (나무)  왠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있지만…


 - 아니요  - (현창) 무브 투 헤븐 직원으로서


 적합지 않은 행동으로  피해를 야기한 적은?


 항상 그런 거 같지만


 딱히 없네요


 나무야, 조상구 씨가  살인자란 소리를 안 들었다면


 어땠을 거 같니?


 마음엔 안 들지만 뭐


 무섭다고 생각은  안 했을 거 같아요


 [현창이 차를 호로록 마신다]


 (나무)  그래도 한 가지 이해가 안 돼요


 아저씨는 그걸 다 알면서  걱정도 안 되세요?


 (현창)  응, 안 돼


 왜요?


 그루 옆에는  듬직한 나무 하나가 있거든


 안녕히 계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잔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문이 탁 닫힌다]


 [미란이 그릇을 달그락거린다]


 (상구)  [신발을 탁탁 신으며]  웬일이냐? 오늘 일도 없는데


 (나무)  그거야 있으나 마나 한  신입 사원분 생각이고


 뭐?


 (나무)  [가방을 툭 내려놓으며]  저처럼 유능한 인재는


 일이 없어도 출근해서 뭐  현장 나갈 준비도 하고


 기계 점검도 하고  홍보 전략도 짜고


 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는 거예요


 회사를 사랑해서인지는 모르겠고


 (상구)  내가 보기엔 그냥 하루 종일  그루 옆에 붙어 있으려는


 속 보이는 수작으로 보이는데


 하루 종일?


 [놀란 숨소리]


 엄마


 [흥미로운 음악]


 말해 봐, 하루 종일?  이게 무슨 소리야?


 (미란)  너 학원 다니는 거 아니었어?


 너 거짓말이야, 그거?


 그, 그, 그게  그, 그, 그게 아니라


 그, 어…


 (상구)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 그루 삼촌입니다


 나무 어머니 되시죠?


 네, 저도 인사가 늦었네요


 제가 농담했는데  오해한 거처럼 들으셨네요


 (상구)  제가 아직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회사도 그루도 잘 못 챙길까 봐


 나무가


 하루 종일 걱정한단 말이었습니다


 (미란)  어, 그런 거예요?


 (상구)  나무가 어려도 야무지고 똘똘해서


 누굴 닮았나 했더니 이제 보니


 어머니를 쏙 빼닮았네요


 (미란)  우리 나무가


 어릴 적 저  붕어빵이란 소리 들어요


 어려운 공부 하는데  이제 덜 귀찮게 하겠습니다


 (상구)  죄송합니다


 (미란)  죄송할 거까지야…


 [나무의 어색한 웃음]


 - 나무야  - (나무) 에?


 (상구)  뭐 해? 학원 가야지


 (나무)  아, 가야죠, 어


 어, 그럼 이제  저 좀 작작 귀찮게 굴고


 제가 걱정 안 하게  그루한테 잘하세요, 아셨죠?


 아유, 늦었다, 어? 엄마, 나 가


 치,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더니, 쯧


 [자전거를 덜그럭 끌며]  하는 짓 보면  완전 나쁜 놈 같진 않네


 (상구)  그럼 살펴 가십시오


 (미란)  예


 [상구의 웃음]


 [문이 달칵 닫힌다]  (그루)  삼촌, 삼촌, 삼촌


 (상구)  왜, 왜?


 예약자 입금이 되어 있습니다


 (그루)  예약받은 일이 없는데 이상합니다


 [종이를 사락 받으며]  무슨 소리야?


 아, 맞는다  이거 내가 받은 거다, 3일 전에


 그러니까 날짜가


 1일, 어?


 오, 오늘이네, 하, 씨


 - 오늘입니까?  - (상구) 어, 오늘 와 달라고 했어


 (상구)  너 딴 일도 없는데 가능하지?  [슬리퍼를 툭툭 정리한다]


 [신발을 탁탁 신는다]


 아, 뭐, 어째  내가 들어온 다음부터


 주문이 끊이질 않냐? 쯧


 주문이 아니고 의뢰입니다


 [그루가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그루)  주문은 나무네 치킨 시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빠 계실 땐 지금보다  의뢰가 세 배 정도 더 많았습니다


 이상합니다  나무가 아직 안 왔습니다


 나무한테 알려야 합니다


 [휴대전화를 탁 들며]  또 두고 가면 야단맞습니다


 [휴대전화 조작음]  그럴 필요 없어


 (상구)  나무는 당분간  무브 투 헤븐 휴직이야


 개인 사정


 [흥미로운 음악]


 [손뼉을 짝 치며]  렛츠 고!


 [힘주는 신음]


 [나무가 가방을 탁 내려놓는다]


 [상구의 옅은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차 문이 탁 닫힌다]


 [상구가 숨을 후 내뱉는다]


 [안내 음성]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상구)  야, 일단 올라가 보자  [상구가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전철이 덜컹거린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어, 무브 투 헤븐에서 나왔습니다


 아무도 안 계시나?


 [차분한 음악]


 이씨


 [상구의 놀란 숨소리]


 (상구)  빨리 경찰에 신고해


 [시끌시끌하다]


 그루, 안녕


 - (준영) 안녕하십니까  - (상구) 예, 안녕하세요


 많이 놀라셨죠?


 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의뢰를 언제쯤 받으셨다고 했죠?


 (상구)  3일 전에  어떤 남자분이 전화 주셨는데


 성함이…


 김 인 자 수 자 님입니다


 (준영)  분명히 김인수 씨라고 하셨습니까?


 (상구)  예, 왜요?


 (준영)  사망자분 중의 남편 되시는 분이  김인수 씨입니다


 그렇다는 건 살아 계실 때


 본인이 직접 의뢰하신 거예요


 예?


 (유림)  떠나실 결심을 하시고  직접 전화하신 거예요


 (준영)  여기는 구청에서 나오신  사회복지과 직원분이세요


 (유림)  안녕하세요  사회 복지사 손유림이라고 하고요


 [상구의 옅은 헛기침]


 두 분이 제 담당이셨거든요


 이미선 님은 요양 병원에  좀 오래 입원 중이셨고


 김인수 님은  아파트 경비 일을 하셨는데


 제가 소식 듣고 알아보니깐


 한 달 전에  해고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게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신 거 같아요


 [헛웃음 치며]  씨


 뭐 잘못됐나요?


 결심이요? 무슨 결심?


 (상구)  아픈 부인 요양원에서 끌고 나와서


 한날한시에  약 먹고 죽게 하는 결심이요?


 아니,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든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유림의 한숨]


 부인은 또 무슨 죄입니까?


 그 연세의 어르신들이  죽음을 결심하신다는 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 줄 아세요?


 간단치 않을 건 또 뭡니까?


 (상구)  어설픈 책임감이랍시고  남의 생사까지 자기가 결정하는 거


 그거 살인자랑 뭐가 다릅니까?


 동반 자살이요?


 아, 동반인지 아닌지  누가 아는데, 그거?


 씨


 담배 있냐?


 아, 차에 있지


 담배 좀 피우고 올게


 (그루)  그런데 유품을 전달받으실  연고자 연락처가 없습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


 두 분 따로 연고자가 없으세요


 (준영)  아쉽지만


 이번엔 유품 받을 사람이  없을 거 같다, 그루야


 그래도 유품 정리는 하겠습니다


 (상구)  야, 저런 인간을 위해서


 묵념이고 나발이고  해 줄 필요 없어


 뭐, 살뜰히 잘해 줄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대충해, 대충


 저런 인간은 천국 못 가니까


 [그루가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명복 같은 거  빌어 줘 봤자야, 씨, 쯧


 (그루)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그래  [그루가 가방을 덜그럭거린다]


 또 너희 잘난 아빠가  그렇게 말했겠지


 (상구)  여튼 난 저기 들어가서  먼지 한 톨도 안 치울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씨


 (그루)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현장 작업 수당이 해당하는  액수만큼


 월급에서 차감하겠습니다


 야, 너 그렇다고 바로 그렇게…


 저도 좀 돕고 싶은데


 - (유림) 괜찮을까요?  - (그루) 네


 하, 씨


 [차분한 음악]


 김인수 님, 이미선 님


 (그루)  2020년 5월 31일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드리러 온


 무브 투 헤븐의 한그루입니다


 이제부터 김인수 님, 이미선 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잔잔한 음악]


 "1989년"


 (그루)  어?


 삼촌은 아까…


 (상구)  아이, 트럭 아저씨 오기 전에  끝내야 할 거 아니야


 아, 내가 맘 바뀌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그 양반 잔소리 듣기 싫어서  하는 거야, 알았어?


 (그루)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당은 33%만 지급됩니다


 와, 야, 이제 보니까  네가 바로 그, 응?  [그루가 봉지를 부스럭 든다]


 (상구)  피도 눈물도 없는  짠돌이 악덕 사장이구나?


 (그루)  그루는 눈물은 없지만  피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있습니다


 제 혈액형이 A형입니다


 그리고 짠돌이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숨]


 됐다, 쯧


 뭐, 이거만  대충 다 나가면 되는 거지?


 [옅은 헛기침]


 어유, 숨 막혀


 야, 환기 좀 시키자


 (상구)  여기 뭐, 옥탑이라  아파트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창문 열어 놔도 되잖아


 아으, 답답해


 뭐야?


 문인가?


 그루야, 한그루


 여기 좀 와 봐


 [봉지를 툭 내려놓는다]


 [봉지를 부스럭거린다]


 [차분한 음악]


 [놀란 숨소리]


 이게 다 뭐야?


 [픽 웃는다]


 [상구의 감탄]


 [웃음]


 그쪽 눈엔 이게 정말


 (유림)  뭐, 죄 없는 아내 죽인  나쁜 남편이 맞는 거 같아 보여요?


 뭐, 알게 뭡니까


 (유림)  쩝, 씁


 둘이 똑같은 걸 보는데


 누구는 사랑을 보고  누구는 미움을 보네요


 두고 볼래요?


 적어도 여긴  제가 아는 그런 세상이라는 거  [휴대전화 진동음]


 그거 제가 확인시켜 드릴게요


 네


 두고 보면 뭐?


 (상구)  아이, 그나저나  이걸 다 언제 치우냐?


 보기는 멀쩡한 거 같은데  어디 갖다 팔면 안 되나?


 (그루)  안 됩니다, 돌려줘야 합니다


 (상구)  뭐, 어디 있던 건 줄 알고 돌려줘?


 105동에 가야 합니다


 1, 105동?


 야, 105동이 뭐, 한둘이냐? 쯧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기 빨리 치우고 그냥 가자


 (상구)  아, 뭐가 이렇게 많아?  [흥미로운 음악]


 [상구가 혀를 쯧 찬다]


 [밝은 효과음]


 (그루)  저기


 우형아파트 105동에 가야 합니다


 (상구)  야, 너 진짜  그거 아파트에 가지고 갈 거야?


 나 먼저 간다?


 진짜 간다?


 (유림)  자성요양병원이죠?


 예, 저, 오전에 연락드렸던…


 예, 지금 바로 찾아뵈려고요


 네


 저기요


 타요


 네?


 싫으면 말고


 [그루가 수레들 덜덜 끈다]


 [초인종이 울린다]


 (주민3)  누구세요?


 화분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주민3)  어? 이거 우리가 버린 건데


 - (주민3) 아이, 쯧  - 감사합니다


 [초인종이 울린다]


 2020년 5월 31일 돌아가셨습니다


 (주민4)  죽은 사람 키우던 걸  왜 갖고 와요?


 재수 없게, 씨


 [초인종이 울린다]


 (그루)  화분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주민5)  필요 없어요


 [초인종이 울린다]


 (그루)  김 인 자 수 자 님


 2020년 5월 31일 돌아가셨습니다


 [울먹인다]


 할아버지가…


 정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요?


 네  [민지의 떨리는 숨소리]


 (민지)  할아버지 어떡해


 [민지가 흐느낀다]  [차분한 음악]


 [매미 울음]


 "온도"


 (민지)  할아버지, 좀 나와 보세요


 (인수)  응?


 왜?


 짠, 경비실에 에어컨 왔어요


 아이, 민지야


 이게 뭐, 뭐, 무슨 일이야?


 (민지)  제가 친구들이랑 모금했어요


 그래도 좀 모자랐는데


 부모님이 생일날 받은 용돈  미리 보태 주셨어요


 좋죠, 이제 시원하겠죠?  [인수의 웃음]


 [상자를 탁탁 만지며]  아이, 네가 이걸


 정말 여기 달아 준다고?


 (주민1)  거기 잠깐


 아이, 학생  누구 맘대로 이런 거 하래?


 (민지)  네?


 이거 제 돈으로 산 건데요


 [헛웃음 치며]  그, 에어컨만 달면  그게 뭐, 저절로 돌아가나?


 (주민1)  그, 에어컨 설치하면  전기료는 누가 낼 건데?


 학생이?


 참


 그게 얼마나 나온다고…


 (주민1)  얼마가 나올지  학생이 그걸 어떻게 알아?


 사장님, 진정하시고요


 (인수)  돌리더라도 아주 더운 날만 잠깐…


 (주민1)  그 말을 누가 믿어요?


 인간이란 게  있으면 쓰고 싶고 편하고 싶지


 그, 아저씨도 그래요, 예?


 정 그렇게 더우면  아저씨들 사비로 달고


 전기료도 내고  갈 때 떼 가시면 되잖아


 아니, 에어컨도 주민 돈으로 사 줘


 전기료도 주민 돈으로 내


 이게 무슨 거지 근성인가?


 아이, 이, 말씀이


 (인수)  좀 지, 지, 지나치십니다


 지나칠 거 하나도 없어요


 (주민1)  매사에 그렇게 남 덕만 바라시니깐


 그렇게 경비만 하시면서  사시는 거예요


 어린 학생들한테  부끄러운 줄 아시고


 거절을 하셔야지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에어컨 안 틀겠습니다


 할아버지


 (주민1)  그, 선풍기 틀어요  한 두 대 틀면 시원하겠네


 [주민1의 헛기침]


 [차분한 음악]


 괜찮아, 민지 마음만 받을게, 응?


 (인수)  고마워  [인수의 웃음]


 그래


 [기어 조작음]


 [시동이 탁 꺼진다]


 (상구)  왜요?


 - 여기 아세요?  - (상구) 예?


 (유림)  내비게이션도 안 찍고  바로 왔잖아요


 [탄성]


 안 내려요?  [유림이 안전벨트를 달칵 푼다]


 씁, 잠깐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건 아니죠?


 아, 그냥 안 가면?


 기다렸다 듣고 가셔야죠


 김인수 할아버지에 대해서  오해한 거


 아, 그래요, 뭐  내가 뭐, 오해했다고 칩시다


 내가 뭐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그쪽한테 사과라도 해야 돼요?


 당연히 사과하셔야죠


 저한테 말고 김인수 할아버지한테


 (유림)  사자 명예 훼손이라는 말  들어는 봤어요?


 사, 사자 뭐요?


 여기서 딱 기다려요, 아셨죠?


 (상구)  아니…


 아, 뭐야?


 [잔잔한 음악]  [한숨]


 [심전도계 비프음]


 상구 오빠


 (수진)  나왔다는 얘기 들었어요


 (상구)  미안하다


 넌 괜찮아?


 어때 보이는데요?


 [수진의 한숨]


 오빠가 애쓴 덕분에


 수철이 오빠  죽은 목숨 부지하고 있으니까


 (수진)  고맙다고 말해야 되는 건데


 차마 그 말이 안 나오네


 미안하다


 (수진)  오빠가 여기 있어 보면 알 거예요


 살아도


 [대야를 달그락 들며]  사는 게 아닌 게 뭔지


 [수진의 한숨]


 [무거운 음악]


 (상구)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됐어?


 (마담)  죽진 않았어


 [상구의 한숨]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니야


 뇌 손상이 심해서  깨어날 가망 없대


 [상구의 놀란 숨소리]


 (상구)  사, 살아 있다며


 숨도 쉬고 맥박도 있는 거잖아


 의식은 없지


 이런, 씨


 [상구의 떨리는 숨소리]


 (상구)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응?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웃고 떠들던 놈이야


 당신이, 당신이  이런 짓만 안 벌였어도, 이씨


 그렇게 말하면 나도 억울하지


 (마담)  경기를 하라고 했지  죽이라곤 안 했잖아


 [상구가 씩씩거린다]


 [심호흡]


 수철이 죽으면


 당신도 곱게 못 죽어


 감당할 수 있겠어?


 무조건 살려 내


 [유림이 훌쩍인다]


 [멋쩍은 신음]


 (유림)  두 분이 드신 수면제는


 여기서 할머니가 드시던 거래요


 아마 오래전부터 모으셨겠죠


 늘 입버릇처럼 남편보다  하루 먼저 가는 게 소원이라고…


 그리고 김인수 할아버지


 췌장암 말기셨대요


 [차분한 음악]  [유림이 훌쩍인다]


 [한숨]


 (간호사)  김인수 님


 어, 환자분은  지금 퇴원하시면 안 되고요


 저희 과장님 뵙고 가셔야 돼요


 이쪽으로 오세요


 [인수가 의자에 털썩 앉는다]


 어쩐 일이에요, 이 시간에?


 그냥


 당신 보고 싶어서


 무슨 일 있어요?


 있지, 좋은 일


 당신 소원 풀어 주려고


 이제 우리


 집에 갑시다


 [웃음]


 정말이요?


 [인수가 흥얼거린다]


 [웃음]


 [흐느낀다]


 (유림)  아유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얼른 두 분 영정 사진부터  준비해야 되는데


 잠깐만요


 (상구)  돌아가신 두 분이 이분들이세요?


 (유림)  네, 그런데요


 (인수)  저…


 사장님


 (인수)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인수의 힘주는 신음]


 [인수가 브레이크를 달칵 푼다]  [미선과 인수의 웃음]


 [인수의 힘주는 신음]


 이제 이분들은 어떡합니까?


 뭐, 장례나 그런 거


 두 분 다  호적상 연고자가 없으셔서


 무연고 처리 되실 거예요


 (유림)  다행히 저희는 시에서


 무연고자 장례 지원 사업을  하고 있어서


 조촐하게나마  두 분 장례를 치러 드릴 거예요  [상구의 호응하는 신음]


 다행이네요


 [사진을 사락 건넨다]


 [사진을 탁 받는다]


 (나무)  그루야, 이번엔 포기해


 이 상자 전해 드릴 분이  아무도 안 계신다잖아


 [한숨 쉬며]  쯧, 이런 경우엔 이걸 뭐  어떻게 했었던 거냐?


 정우 아저씨가  따로 태워 드린다고 들었어요


 쯧, 뭐,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겠네


 (상구)  한그루, 이제 그만 처리하자, 쯧


 [상구의 한숨]  (그루)  안 됩니다


 아직 안 됩니다  [상구의 당황한 신음]


 아이씨  [그루의 다급한 숨소리]


 (상구)  네가 언제  한 번이라도 된다고 한 적 있었냐?


 좋은 말 할 때 놔라, 아이


 연고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루)  김인수 님, 이미선 님 아시는 분


 장례식에 와 주실 분  찾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그럼 너무 좋겠지


 근데 아무도 안 계시다고 하는 거  못 들었어?


 (상구)  아, 변변히 남은  연락처 하나 없는데


 뭐, 어떡하라고, 쯧


 야, 너 일로 안 와?


 (나무)  아이, 삼촌


 [문이 탁 닫힌다]


 알겠어, 그루야  장례식 마치고 하자, 그럼 됐지?


 (나무)  얼른 준비하고 출발해야지  너 장례식 간다며


 네 말대로 아무도 안 오면  쓸쓸해하실 텐데


 너까지 늦으면 안 되잖아


 어?


 (그루)  전부 김인수 님이


 이미선 님을 위해 키우셨던  꽃들입니다


 과꽃, 소중한 추억


 스파티필룸, 세심한 사랑


 [그루가 화분을 툭 내려놓는다]


 드라세나, 약속을 지키다


 홍콩야자, 행운과 사랑


 백합, 순수한 사랑


 천일홍, 변치 않는 사랑


 붓꽃, 기쁜 소식


 동백꽃


 (민지)  그대를 사랑합니다


 동백꽃의 꽃말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어요


 민지 학생


 김인수 님, 민지 학생 왔습니다


 [그루가 화분을 툭 내려놓는다]


 [상구가 라이터를 탁탁 켠다]


 (남자1)  야, 누군지  방귀깨나 뀌는 집안인가 보네


 (남자2)  그, 재화건설 이사 모친상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 (남자1) 응?  - (남자2) 저 특실


 [남자1의 호응하는 신음]


 [남자1의 한숨]


 [상구가 꽁초를 툭 던진다]


 [흥미로운 음악]


 [당황한 신음]


 어, 도, 도, 도, 도…  [상구의 당황한 신음]


 - 도득, 도둑이야, 도둑이야  - (상구) 야


 도둑이야, 도둑이야


 [그루의 아파하는 신음]  (상구)  이 새끼야


 이 자식


 타인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행위는


 절도입니다


 (그루)  범법 행위입니다


 아이, 훔치는 게 아니라  잠깐 빌리는 거야


 내일 아침에 다시 갖다주려고 했어


 그래도 나쁜 짓입니다


 [한숨]


 야, 너도 눈 있으면 좀 봐라


 (상구)  아, 우리는 하나도 없는데


 저기는, 어?  차고 넘쳐서 놓을 자리가 없잖아


 아유, 하나쯤 없어져도  아무도 모른다니까?


 안 그러면 그냥 다 버려요, 씨, 쯧


 화환이 꼭 필요한 겁니까?


 아이, 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하나도 없으면 섭섭하지


 왜 섭섭한 겁니까?


 야, 당연히 섭섭하지


 (상구)  '돌아가신 분이  천국에 잘 도착하시길'


 '기원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적힌  카드 같은 거니까


 그래도 타인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상구)  아유, 알았어, 안 해


 됐냐?


 아씨, 뭐, 하나쯤 뭐, 없어지면  뭐, 아무도 모르는데


 뭐, 그거 가지고 그래?


 "1998년"


 "1989년"


 [통을 달그락거린다]


 "1981년  대리 김인수"


 있습니다


 또 뭐가 있어?


 (그루)  김인수 님 아시는 분  장례식에 오실 분


 여기 있습니다


 야, 야


 "대리 김인수"


 (그루)  81년 대리 김인수입니다


 지금 5호실에 있습니다


 - (사원1) 아세요?  - (사원2) 모르지, 당연히


 (사원3)  야, 이거 언제 적 명함이냐, 이거?


 (사원4)  회사 로고 옛날엔 되게 촌스러웠다


 (사원5)  81년이면 김 대리는  태어나지도 않지 않았나?


 (그루)  98년 부장 김…


 (경비원)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돌아가세요


 아, 저, 죄송합니다


 야, 이제 그만해  여기가 어디라고…


 (노 회장)  잠깐


 누구라고?


 98년 부장 김인수입니다


 지금 5호실에 있습니다


 김인수 부장이라고 했나?


 네


 [노 회장의 한숨]


 [잔잔한 음악]


 (노 회장)  [한숨 쉬며]  내가


 현장을 나가던 그 시절에


 김 부장이 늘 있었지


 [한숨]


 [옅은 한숨]


 이 명함은


 내가 오래 간직함세


 또 만나세


 (인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인수)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울먹이며]  '꽃답게 죽는다'


 (유림)  너무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 두 분 다


 편히 쉬셔요


 이젠 정말 그러셔도 돼요


 [상구의 하품]


 (유림)  저기요


 고마웠어요


 네?


 (유림)  무연고 장례식 치르면서


 오늘처럼 뿌듯했던 적  처음이었거든요


 다 무브 투 헤븐 덕분이에요


 [부드러운 음악]  [유림의 웃음]


 (상구)  아, 아, 예


 고생하셨습니다


 [상구가 픽 웃는다]


 (그루)  분홍색입니다


 (상구)  뭐?


 삼촌 귀가 분홍색으로 변했습니다


 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인마, 이씨


 아이씨


 모세 혈관이 갑자기 팽창하면  그렇게 됩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그렇습니다


 아이, 저, 야, 그런 거 아니거든?


 (직원)  화환 배달 왔습니다


 화환이요?


 잘못 오신 거 같은데요  여기는 보내실 분이 없는데


 (직원)  맞는데요, 여기


 [잔잔한 음악]


 (상구)  화환 같은 거 필요 없다며


 (그루)  삼촌 말대로


 '천국에 잘 도착하시길  기원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카드를 하나도 못 받는 건  서운할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루)  김인수 님이랑 이미선 님이


 잘 도착하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는 사람들


 많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로  카드 한 장 보냈습니다


 [픽 웃는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뭐냐, 이거?


 김인수 님께서 키우셨던 화분 중  남은 겁니다


 나보고 뭐 어쩌라고?


 손유림 복지사님께서  삼촌한테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루)  이제 삼촌이 키우셔야 합니다


 (상구)  야, 키우는 거 딱 질색이야


 아, 너 하나 감당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구먼, 무슨, 씨


 이 꽃의 이름은 달리아입니다


 (그루)  당신의 마음을 알아서 기쁩니다


 - 뭐, 뭐?  - (그루) 달리아의 꽃말입니다


 (그루)  당신의 마음을 알아서 기쁩니다


 아이…


 [픽 웃는다]


 [입소리를 쩝 낸다]


 [한숨]


 [픽 웃는다]


 [멋쩍은 신음]


 [헛기침]


 아씨  [휴대전화 진동음]


 [옅은 웃음]


 [무거운 음악]


 [휴대전화 조작음]


 어, 어, 어, 수진아


 (수진)  [흐느끼며]  오빠가…


 수철 오빠가 위험하대요  [놀란 숨소리]


 아, 아, 아, 알았어  그, 그,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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