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1
(다정) 내가 달려갔을 때
그 사람은 거기 없었다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자동차 경보음]
[고양이 울음]
[어두운 음악]
[피가 뚝뚝 떨어진다]
[어두운 효과음]
(다정) 그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밤새 울음]
[고양이 울음]
(영도) 아주 오래전
이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
(영도) 아이는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선물을 받지 못했지만
그건 하품을 하다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다정) 됐다 [함께 웃는다]
(영도) 아이는 산타를 믿었다
[대문이 탁 여닫힌다]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문이 덜겅거린다]
[윤찬의 술 취한 숨소리] (영도) 아이의 아빠
그 남자를 우습게 생각하는 이는 자기 자신밖에 없었지만
남자는 그것을 알지 못해 매일 술을 마셨다
[가래를 컥 모은다] [가래를 퉤 뱉는다]
[코를 훌쩍인다]
[무거운 효과음]
(주인) 800원
그건 2천 원
(미란) 물렁해서 맛도 없겠네
간장만 가져가요
[주인이 달그락거린다]
(영도) 아이의 엄마
그 여자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여자에겐
자존심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어린 다정) 저는 강다정인데요
먹을 거 준다 그러던데
빵 같은 거
(권사) 책이 빵보다 훨씬 더 좋은 거란다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 주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람들의 웃음]
(어린 다정) 헐
누나, 빵은?
(어린 다정) 뻥이래
(어린 태정) 산타는? 왜 우리 집에 안 왔대?
[어린 태정이 철퍼덕 넘어진다]
(어린 다정) 왔어, 왔는데 가래침…
왔는데 갑자기 똥 마려워서 똥 싸러 갔대
너 똥 참을 수 있어?
(어린 태정) 아…
[차분한 음악]
(어린 다정) 빨리 가자
(어린 태정) 누나 근데 왜 얼굴이 빨개?
(어린 다정) 시끄러워, 조용히 해
(어린 태정) 누나 얼굴에서 피 나
(어린 다정) 넌 코에서 피 나고 싶어?
(어린 다정) 엄마
인어 공주가 거품이 됐다는 게 무슨 말이야?
[미란의 한숨]
(미란) 공주로 호강스럽게 살던 년이
잘 알지도 못하는 놈한테 미쳐서
형제, 부모 다 버리고 딴 세상 가서는 몸 버리고 마음 버리고
고생만 더럽게 하다가
고생만 더럽게 하다가 인생 종 쳤다는 얘기잖아요
(어린 다정) 바꿔 주세요
[탁탁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음악]
(미란) 그랬다고 새가 진짜 왕자 왼쪽 눈알을 파내서
거지 같은 사람한테 갖다줘
다음 날은 또 오른쪽 눈알을 후벼 파서 또 다른 거지한테 갖다줘
그리고 새는 찬 바닥에 배를 까뒤집고
죽어
(미란) [마늘을 쓱쓱 까며] 주니까 또 좋다고
사과를 냉큼 받아 처먹어
[힘주는 신음] 그래서 죽어
난쟁이들은 죽지 말라고 울고불고
(미란) [빨래를 탁탁 하며] 정신없는 선녀가
남의 동네에서 옷을 막 벗어 놓고 때를 밀어
그렇다고 도둑놈 새끼는 또 그 옷을 훔쳐 가지고
딜을 해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미란) 술독에 빠진 썩을 놈이 자기 부인을 죽여
[미란이 계란을 쓱쓱 깐다]
근데 벽 속에 파묻고 시멘트 칠을 하는 바람에
그걸 아무도 몰라
근데 새카만 고양이가 벽 속에 같이 묻혀 있다가 [미란이 계란을 쓱쓱 깐다]
경찰이 오니까 야옹야옹 울어
그래서 그 썩을 놈이 잡혀가
(어린 다정) 오…
(영도) 아이는 '검은 고양이'를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이 아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안심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미란) [울먹이며] 제발 그만해!
(윤찬) 내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어?
너 때문에
[스위치가 달칵 꺼진다] 너한테 붙잡혀서
내 인생이! [우당탕 소리가 들린다]
(미란) 누가 붙잡아
제발 그만 나가라고, 제발!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미란의 비명]
(윤찬) 뭐? 나가? 나가? [잔잔한 음악]
[윤찬이 계속 소리친다] (남자1) 아빠 귤 사 왔다
(아이) 아빠!
[미란이 흐느낀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윤찬이 연신 소리친다]
[바람이 휭 분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윤찬) 애새끼들이 내가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씨… [미란이 흐느낀다]
나와! 야! [문이 쿵쿵거린다]
[미란의 떨리는 숨소리]
애들 털끝만 건드려
죽여 버릴 거니까
(윤찬) 그래
어차피 네가 발목 잡은 인생
죽여!
차라리 죽여! [우당탕 소리가 들린다]
(어린 태정) 누나
(어린 다정) 쉿
[문이 쓱 열린다]
(영도) 동생은 글을 읽을 줄 몰랐고
[달칵 소리가 들린다] 아이에게는 이야기를 각색하는 재주가 있었기에
그 방에서 '검은 고양이'는 밤마다 다르게 읽혔다
(어린 다정) 옛날에 어떤 애가 살았는데
알고 보니까 걔 아빠는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진짜 아빠였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책을 탁 덮는다]
끝
[어린 다정의 한숨]
옛날에 어떤 애가 살았는데
알고 보니 옆집이 진짜 자기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끝
다른 거 읽어 줘
왕자 나오는 그런 거
(어린 다정) 너 공주, 왕자
그런 거 좋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거품 돼
바늘에 찔려
독 먹고 죽어
눈알 다 파 가고 옷도 훔쳐 가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어린 태정) 거짓말
(어린 다정) 엄마가 그랬거든?
[무거운 음악]
"시론"
(미란) 거품이 된다는 거는
"문학, 상징의 변증법"
어떻게든 잘해 보겠다고 용쓰다가
결국 자기 혼자 세상에서 알아서 꺼진다는 거지
세상에 공짜 선물은 없어
다리를 주면 혀를 잘라 가
근데 살다 보면
[미란이 사진을 툭 집어 든다]
(윤찬) 자, 찍는다
(윤찬)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윤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카메라 셔터음]
오늘 밤은 푹 눈이 나린다
(미란) 살다 보면
'아닌데' 싶으면서도 정신을 홀라당 홀리는 게 있어
눈부시고 반짝반짝하고 너무 좋아서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
[윤찬의 술 취한 신음] [잘그락 소리가 들린다]
[윤찬이 콜록거린다]
[미란이 그릇 파편을 정리한다]
[미란의 아파하는 신음]
[미란의 아파하는 숨소리]
[코를 훌쩍인다]
(미란) 그런 거에 홀려서
제 손으로 제 목을 거기다 매달고 나면
나중에 손에다 칼을 쥐여 줘도
찌를 수 있는 게 제 발등밖에 없어
[코를 드르릉 곤다]
[시계가 째깍거린다]
[시계 종이 울린다]
(영도) 다른 어리고 여린 생명들처럼
아이도 꿈을 꿨고
기댈 곳을 찾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이의 꿈은 공주가 아니라 옆집 딸이 되는 것이었고
아이가 기다리는 구원자는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일이 생긴 순간
자기를 위해 울어 줄
검은 고양이였다는 것
[바람이 휭 분다]
[톡톡 치는 소리가 들린다]
(미란) [작은 소리로] 다정아
다정아, 빨리 일어나 옷 입어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어린 다정) 엄마
근데
- (어린 다정) 옆집 아저씨 - (미란) 쉿
[발소리가 들린다] [덜그럭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음악]
(영도) 아이는 그렇게
불행했던 일곱 살로부터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 문이 쉭 닫힌다]
[비가 쏴 내린다] [멀어지는 버스 엔진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다정) 어, 나 가고 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오른쪽이지?
왔던 방향?
아…
오케이
버스가 가는 방향?
알아, 확인한 거야
뭔 소리야, 나 강내비야
"구구빌딩"
(은하) 너 강길치야
어떻게 거기서 여기를 헤매? 회사는 어떻게 가냐?
(다정) 헤맨 거 아니야 [문이 탁 닫힌다]
오면서 새 동네 구경도 하고 그런 거지
(은하) 진짜 여기서 살게?
오늘 계약한다니까?
왜, 싫어?
[헛웃음]
[웃음]
(다정) 새 건물이라서 좋아
완전 새 출발 할 거니까
내가 그동안 이상한 사람들을 좀 만났잖아
좀?
너 올림픽 나가야 돼
쓰레기 모으기 금메달
뭘 그렇게까지
(은하) 어?
알코올 중독, 양다리 입만 열면 거짓말
여자 친구한테 돈 달라는 거지 [입소리를 쩝 낸다]
정말 오래전의 일이지
해도 안 바뀌었어
여기서는 진짜 좋은 일만 있을 거 같아
나 촉 좋은 거 알지?
(은하) 너
강똥촉이야
[발을 탁 구른다]
(다정) 음, 좋다
(은하) 야, 우산 써, 오늘 비 더러워
(다정) 우아
새 출발의 냄새!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어두운 음악]
[어두운 효과음]
[천둥이 콰르릉 친다]
[푹 찌르는 소리가 울린다]
[사이렌이 울린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기자) 저는 지금 살인 사건이 발생한 풍지동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리모델링을 최근에 끝낸 건물로
오늘부터 일부 층에 입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요
범행 추정 시각에 건물 전체가 비어 있었던 관계로
경찰은 주변 CCTV와 블랙박스를 수거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영도) 아…
일반적으로 시신을 방치했다면 범인이 당황한 것으로 보죠
그런데 이 경우는 방치가 오히려 과잉 살인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음, 목을 졸라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낸 뒤
풀어 주는 척하고
가는 피해자를 뒤에서 찔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시신을 그곳에 두었다
어, 그 부분은 굉장히 조심스러운데요
(영상 속 영도) 정신 질환이 있다고 해서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MAO 유전자가 없거나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정신 질환 또는 성장 환경과 범죄의 관련성은
극소수에게만 발현되는 거고
굉장히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우스 조작음]
[무전기 작동음]
[성준의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진복이 입바람을 후 분다] (영도) 아유, 깜짝이야, 아유
왜 귀에다 바람을…
뭘 그렇게 봐요?
뭘 보긴
경찰도 아닌 게 뻑하면 경찰서 와 가지고
그것도 남의 자리에 앉아서 똑같은 사건 파일만
(진복) 3천 번째 보고 있는 언뜻 미친놈 같지만
실제론 미친놈을 치료하는
의사 놈을 보고 있지
정신과는 미친 사람 아니고 아픈 사람들 오는 데라니까요
진짜 미친놈들은 경찰서에 오지
(진복) 박 형사, 인사해
[호의 힘주는 신음] 우리 신입이야
(호) 안녕하세요, 박호입니다
(영도) 아, 예, 반가워요, 주영도예요
우리 자문인데
뭐, 딱히 크게 도움이 안 되진 않아
(진복) 뭘 또 보냐
뭐가 나왔으면 내가 연락을 했겠지
너야 심장 받은 은혜 갚고 싶어서 이런다지만
난 사수가 돼 가지고
범인도 못 잡아 주고 있는데
[진복이 사진을 툭 내려놓는다]
아, 왜 또 그래
잘 뛰네
우리 정범이 심장
살아 있네
(배달원) 식사 왔습니다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영도) 갈게요
(진복) 뭘 가 쌈이나 몇 개 싸 먹고 가
- (영도) 짐이나 몇 개 싸야 돼요 - (진복) 뭐, 어디 가?
병원 이사해요, 3층
살인 사건 건물 있잖아요, 구구빌딩
그거 우리 관할이지, 그 근처야?
그 건물이야
(다정) 오늘 도착인 거지?
(영도) 예?
아, 예, 그런데요?
(다정) 이름이 어떻게 돼?
(영도) 주영도
(다정) 나이가 많으셔?
(영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아니, 저기
근데 누군데 자꾸 반말을…
(다정) 부산 호텔에 말해 볼게
근데 어르신들
온돌방 원하는 경우 많아서 객실 변경 안 될 수도 있어
난 짬뽕
[잔잔한 음악] - 올라와 - (영도) 어딜?
[통화 종료음]
[영도의 당황한 숨소리]
[문을 달칵 연다]
(영도) 너 여기서 뭐 해? [문이 탁 닫힌다]
(철도) 형은 짜장? 짬뽕?
(영도) 너였어?
(철도) 나 아니거든?
근데 뭐가?
아, 몰라, 몰라, 혼자 있고 싶어
(철도) 안 그래도 올라갈 거야
짜장, 짬뽕 뭐?
나도
[철도의 한숨]
(철도) 나도 뭐?
(영도) 나도 짬뽕
[문이 철컥 닫힌다]
(철도) 얼굴 처음 보지?
형은 나 과외 쌤이었고 얘는 내 친구
(은하) 얘가 왜 네 친구야, 내 친구지
(다정) 강다정이에요
(영도) 아, 예, 주영도입니다 [철도가 비닐을 쓱쓱 벗긴다]
예, 아, 알죠
나이는 그렇게 안 많으시잖아요
예
[철도의 짜증 섞인 신음]
[철도가 소스를 탁 턴다]
(은하) 아침엔 원두 엎고 점심땐 짜장 엎고
저녁엔 네 정신 상태만 갈아엎으면 딱 좋을 텐데
[다정과 영도가 비닐을 쓱쓱 벗긴다]
[은하의 한숨]
같은 날 같은 자궁에 착상됐다는 원한 적 없는 이유 때문에
내가 엄마 배 속에서부터 평생을 너하고 반띵 하고 살았어
꿈도 꾸지 마
[철도가 비닐을 탁 내려놓는다]
(철도) 그래
탄수화물, 나트륨 폭탄 너나 많이 처드시고요
(다정) 아이고, 즉석 짜장 있어 기다려
[다정이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다]
야, 치워
(철도) 알았어
[영도가 비닐을 직 뜯는다]
[도어 록 작동음]
(영도) 저, 티슈가 더 필요한데요
(다정) 아, 네
어?
- (다정) 저, 잠깐만요 - (영도) 예
[문이 달칵 열린다]
[전자레인지 종료음]
(영도) 컨시어지 매니저?
(다정) 네
(철도) 신기하지?
이 형 이런 거 잘해
보고 다 맞히는 거
(다정) 뭐
아까 통화하는 거 들었으니까
호텔에서 일하는 거 알 수 있지
(철도) 에이, 그런 거 말고도
[손가락을 탁 튀기며] 어, 형 그거 해 봐, 스누피
(영도) 스누핑
(철도) 토마토나 도마도나
(다정) 뭐 어떤 걸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아니에요
뭐가요?
(영도) 그냥 못 본 걸로 할게요
(다정) 뭘요?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있을 수 있어요
(영도) 사실이라도 듣기 싫은 게 있고
그래서 팩트 폭력이란 말도 있는 거고요
[다정의 어이없는 웃음]
내가 뭘 숨기고 싶은데요?
(영도)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예
[영도가 잔을 달그락 든다]
아니, 말을 해 봐요 궁금해서 그래요 [영도가 잔을 달그락 놓는다]
(은하) 그래
네가 왜 쓰레기 같은 남자만 만나는지
그러는 네가 지금은 왜 괜찮은 사람이 따라다녀도
도망만 다니는지 우리도 좀 알자
(다정) 그런 걸 맞힌다고?
(철도) 완전
(영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진짜 이야기 듣게 되는 거
불편할 수 있어
특히 강다정 씨 같은 경우는
(다정) 어리바리하게 네가 알아서 정보 다 줘 놓고
맞혔다고 신기해한 거 아니야?
'어릴 때 동네에 감나무 있었지?'
'어릴 때 친척 어르신 돌아가신 적 있지?'
그런 말에 말려 가지고
나 그런 거 완전 사기라고 생각하거든?
발 없는 새, 쓰레기 자석, 검은 고양이 붉은여우꼬리
[차분한 음악]
(다정) 뭐지? 암호인가?
(영도) 발 없는 새 [의미심장한 효과음]
(영도) 정착하는 걸 두려워해요
영혼을 갈아 넣는 관계에 두려움이 있죠
왜? 그러다 여러 번 피를 봤으니까
(영도) 추리 소설도 끝부터 읽고
드라마도 스포일러를 확인하고
해피 엔딩이 아니면 시작도 안 하겠죠
나 여기 완전 정착하려고 이사한 건데?
(영도) 늘 결심은 그렇게 해요
'이번엔 진짜, 새롭게, 예전과는 달라'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쓰레기 자석
계속 나쁜 남자들만 들러붙어요
사실은 본인이 그런 사람들만 끌어당기고 있는 거죠
지금 내가 맞는 거 즐기는 그런 사람이라는 거예요?
(영도) 자기가 겪었던 불행을 거의 똑같이 재현한 다음에
이번엔 그걸 잘 극복한 걸로
불행했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는 거죠
알코올 중독인 사람 때문에 불행했다면
이번에도 주정뱅이를 만난 다음에 술을 끊게 해 주고 싶은 겁니다
근데 잘 안돼요, 왜?
불행을 재현할 순 있지만 어떻게 극복할지는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반복 강박을 갖게 될 만큼 벗어나고 싶은 기억은 뭘까
검은 고양이 [의미심장한 효과음]
(영도) 자신보다 남들 눈에 더 잘 보이는 위치에 붙여 놨다는 건 [어두운 음악]
원하는 혹은 찾고 있는 대상이
검은 고양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포의 소설에서 저 고양이는 죽여도 다시 살아나고
벽에 가둬도 끝까지 울어서 범인을 고발해요
대부분 섬뜩해하는 저 고양이를 붙여 놨다는 건
아주 높은 순도로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는 건데
아마도 어린 시절에 가족 중에
- (철도) 어? - (은하) 야, 야, 야, 야
[영도의 당황한 신음]
아유, 아, 미, 미안해요
저, 저, 기분 나빴다면 사과, 사, 사과할게요, 예
(은하) 야
[안도하는 한숨]
그래서 내가 안 한다고…
(철도) 근데 나 빨간 여우꼬리 그거 너무 궁금한데
- (다정) 야 - (은하) 너 여우과 아니잖아
(은하) 그건 틀릴 수도 있으니까 한번 들어 보자
다른 건 다 맞았지만
야!
[영도가 숨을 후 내뱉는다]
가족은 건들지 맙시다
(영도) 어…
[입소리를 쩝 낸다]
붉은여우꼬리의 꽃은
꽃인데 꽃이 아닌 척
[의미심장한 효과음] (영도) 꽃 같지 않아서 더 매력이 있지
대놓고 블링블링 꽃처럼
(영도) 예쁜 것들에 대해서 불편함이 있을 거야
아마도 어린 시절 가…
가족은 빼고
결론만 말하면
음…
강다정 씨는 자기도 자기가 예쁜 걸 알아요
[잔잔한 음악]
[은하의 옅은 웃음] (철도) 뭐야, 뭐야?
결론이
고백이야, 뭐야?
(준) 와, 강다정이다
(다정) 와, 스토커다
내가 왜 두 사람을…
이쪽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고 두 달 넘게 따라다니는 사람
이쪽은 오늘 처음 봤는데 나 때린 사람
- (영도) 내가요? - 팩트 폭력도 폭력이고
뼈 때린 것도 때린 거예요
[헛웃음]
(다정) 뭐, 어떻게
세 명이 모였는데 고스톱이라도 칠까요?
아니, 뭐, 그건 다음에 하고
오늘은 제가 다정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영도) 말씀 나누시죠
(준) 저기 3층?
정신과 의사?
의사면 사람을 낫게 해야지
[문이 달칵 열린다] 아픈 델 쿡쿡 쑤시기나 하고
[문이 탁 닫힌다]
[부드러운 음악]
(준) 진짜 어디 가는 거예요?
아니면
나랑 같이 걷고 싶은 거예요?
뭐, 아니면
(다정) 그쪽 따돌리는 거예요
(준) [살짝 웃으며] 걷기 되게 좋은 날이죠? 그렇죠?
[준이 숨을 들이켠다]
먼지도 없고
(다정) 네, 콧구멍으로 가글하는 거 같고 아주 좋아 보이네요
(준) 이거 진짜 안 받아요?
(다정) 그걸 왜 나한테 버리냐고요
(준) 이거 꽃말이 뭐냐면
(다정) '나는 일주일에 후에 죽는다'겠죠
(준) 아이고, 그럴 리가
(다정) 진짜 왜 이래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나 계속
(준) 하루 이틀 하고 말았다면 장난이고 찔러 보는 거였겠죠?
혹시 뭐, 승부욕 생긴 거예요?
(다정) 아니면 누가 나
사실은 어마어마한 상속녀인데 재미로 옥탑방 산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쫓아다녀요?
(준) 다정 씨는 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거절해요?
호텔에서 본 여자 얼굴만 보고 따라다니는 사람이고
(다정) 좋아한다면서 발목 잘린 식물 시체나 갖다주는 사람이잖아요
아, 강다정 씨
남들은 이걸 꽃이라고 부르거든요
(준) 받으면 기분 좋은 거
(다정) 음…
얼음 넣고 물 갈아 주고 난리 쳐 봤자
며칠 지나면 다 꼬부라질 거고
물에서 썩은 냄새 날 거고
음, 결국 분리수거도 안 돼서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되는데
그 와중에 가시 때문에 비닐은 다 찢어져서
쓰레기는 다 쏟아지고 손에서는 피가 나겠죠
아나, 쓰레기 진짜…
(준) 이래서 다정 씨가 좋아요
너무 재밌어
어유, 축하드립니다 좋은 구경 하셨다니
(준) 아니, 다정 씨는요
되게 보이스 피싱에 적극적으로 걸려드는 사람 같아요
'여보세요, 여기 경찰청인데요'
이렇게 딱 한 마디 했는데
'어머나, 제 통장 번호는 12345678이고 비밀번호는 4885인데'
'제 통장이 매우 나쁜 일에 사용됐군요?'
[웃으며] '그렇다면 제 전 재산을 어디로 송금하면 되죠?'
(다정) 오늘 무슨 날이야?
[준의 헛기침] 왜 다들 나를 분석하지?
[입소리를 쩝 낸다]
뭐, 꽃은 버리면 되고
어, 그거 그렇게 하면…
(준) 중요한 건
그러니까 다정 씨는 내가 싫은 건 아닌 거네요
그렇죠?
(다정) 내가
보이스 피싱 잘 당하는 똥멍청이 같아서요?
다정 씨는 그냥 연애가 무서운 사람인 것 같아서요
(준) 근데 그런 거면
저 만나도 돼요, 저 만나세요 [잔잔한 음악]
나 만나요
내일 또 올게요
어디 가는 길에 보고 싶어 가지고 잠깐 들른 거라
[놀라며] 아이고, 늦었다
[준의 웃음]
(다정) 오늘 도착하는 VVIP 한 팀 있습니다
가습기, 공기 청정기 추가 요청 하셨고요
어, 다들 드라마 촬영 공지 보셨죠?
(직원들) 네
협조는 잘해 주시되 스태프들 흡연 문제 있거나 하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경고도 하고 보고도 해 주세요
그렇다고 누구처럼
(다정) 보고서에 욕 쓰면 안 되고
방송국 놈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써도 안 되고
[유경의 헛기침] 응?
저, 정빈 씨는 처음일 텐데
경보음 안 난다고 방심하면 안 돼요
저번 팀은 담배 피우겠다고 경보기를 뜯었으니까
와, 스케일 쩌네요?
(정빈) 아, 아, 네
- 민 대리님 - (민 대리) 네
저, 혹시 촬영 관련해서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경) 와, 안가영 실물 보게 되다니
근데 저거 다 메이크업해서 그런 거잖아요
메이크업 다 벗으면 그…
깨알? 프레클?
그런 다크 스폿 보이고 그렇겠죠?
나 만나면 물어볼까요?
농담이에요
안가영 옛날에 우리 호텔에서 결혼했었잖아요
근데 여기서 또 결혼식 장면 찍으면 이상하겠다, 그렇죠?
[차분한 음악] (다정) 어, 그거 그렇게 하면…
(준) 중요한 건
그러니까 다정 씨는 내가 싫은 건 아닌 거네요
그렇죠?
- (유경) 뭐 하세요? - (다정) 어?
(다정) 아…
아니야
[다가오는 발걸음]
(다정) 아, 네, 안쪽으로 놔주세요
(다정) 몇 번이나
[쓰레기를 잘그락 집어 든다] 나는 나를
[다정의 아파하는 탄성]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걸까 [통화 연결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 홍대 왔어
전화 좀 받아, 걱정되잖아
[도어 록 작동음]
(다정) [힘겨운 목소리로] 아, 잠깐만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앉아 [남자2의 힘겨운 신음]
[한숨]
[남자2의 한숨]
(남자2) 나 왜 만나냐?
너 솔직히 나 지긋지긋하잖아
그거 다 보이는데
[다정이 달그락거린다]
[다정이 물을 졸졸 따른다]
[다정이 물통을 탁 내려놓는다]
[컵을 탁 내려놓는다]
물 마셔
아침에 전화할게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음악] (윤찬) 애새끼들이 내가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씨… [미란이 흐느낀다]
나와!
야! [미란의 떨리는 숨소리]
[의미심장한 효과음]
(미란) 애들 털끝만 건드려
죽여 버릴 거니까
(윤찬) 그래
어차피 네가 발목 잡은 인생
죽여!
차라리 죽여!
[우당탕 소리가 들린다]
일로 와, 일로 와!
[의미심장한 효과음]
(다정) 그만 잠들고 싶었을
일곱 살의 나를
나는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운 걸까
[달그락거린다]
[어두운 효과음]
(다정) 오래된 상처를 긁어내려고
나는 새로 돋은 살까지
다치게 하고 있었구나
(다정) 저, 그럼 전 이만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와, 강다정이다
와…
스토커가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다가오는 발걸음]
(준) 다쳤네?
피 많이 났어요?
어지럽진 않고?
어휴, 이 정도면
당장 나랑 밥 먹어야 되겠다
쓰레기라는 소리 들은 적 있어요?
아, 밥 먹자는 말이 그렇게 싫어요?
술, 마약, 거짓말, 바람
변태, 잠수, 폭력
그런 문제 있냐고요
[준이 피식 웃는다]
드디어 나한테 궁금한 게 생긴 거예요?
(준) 아…
여기선 말 못 해요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태정) 늘 마시던 거
그리고 같은 걸로
(준) 음…
호텔에서 처음 봤을 때
'이 사람이다'
그게 보였어요
귓가에 종소리 들리고 그런 거면…
(준) 가끔 꿈에
어릴 때 기억이 나오거든요?
함박눈이 왔었고
집에 귤이 있어서
난 그거 까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봤고
[잔잔한 음악]
진짜 별거 없었는데
그날이 나한테
제일 행복했었나 봐요
다정 씨 처음 봤을 때 그 장면이 스쳐 갔는데
거기
그 방 안에
내 옆에
다정 씨가 있더라고요
막 웃으면서
천천히
오세요
[영화 소리가 흘러나온다]
(미란) 네가 홍 사장 코치했냐?
네가 귤 좋아하잖아
뭔 소리야? 아저씨가 왜?
(미란) 귤을 사 왔어
귤, 시
난 한 글자짜리 선물이 그렇게 싫어
엄마 백 좋아하잖아
그럼 귤을 백 안에 넣어 왔어야지
어디서 까만 봉지에다가
달면 뭐 해, 귤인데
[다정이 피식 웃는다] 이쁘면 뭐 해, 귤인데, 쯧
귤 보는데 왜 내 생각이 나고 지랄이래
요즘 귤로 고백하는 게 유행인가?
너도 누가 귤 사 주디?
(미란) 뭐 하는 사람인데?
혹시 못생긴 건 아니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했어
(다정) 눈 오는 날
따뜻한 방에서
귤 까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는 거
[새가 지저귄다]
[멀어지는 발걸음]
[흥미로운 음악]
오 간호사님은 아직도 여기 계시네요?
(가영) 와, 엄청 잘 지내셨나 보다
뽈똑, 뽈똑
여기도 뽈똑, 저기도 뽈똑
- 뽈… - (미경) 몇 년간
눈에 걸리는 게 없어 잘 지냈죠
딱 방금 전까지
(가영) 어머, 이 스카프 예쁘죠?
나도 받아서 한 번 맸는데
작년? 재작년?
하, 까마득하여라
찾아서 아무나 줘야 되는데 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지
[문이 달칵 열린다]
(영도) 예, 계시면 안내해 드릴 거예요
(가영) 나 왔는데
싫구나?
밑에서 기다릴게
우린 또 봐요
(민재) [웃으며] 예, 예, 네
아, 예
[흥미로운 음악]
저…
들어가세요, 예
[문이 탁 열린다] (미경) 콱!
(영도) 정신과 의사는 개인사가 알려지면 안 돼
환자들에겐 전이가 필요한 상황이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될수록…
(가영) 그래, 뭐, 블라, 블라, 블라
치료가 어렵겠지
내가 병원에 결혼사진 갖다 놨다고
네가 나한테 성질낼 때 다 들은 말이잖아
그거 알면서 또 왜
(가영) [큰 소리로] 사람들은 이혼해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걸 안 믿더라고
우리가 이상한 건가?
(영도) 어, 너 지금 되게 이상해
(가영) 누가 잘못해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뭐, 진짜 미친년…
또라이라서 헤어진 것도 아니잖아
[차 문이 탁 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어떻게 내가 한 톨도 안 반가울까?
상담은 잘 받고 있고?
(가영) 내가 미친 건지 아닌 건지 궁금해하는 것도 이제 지겹지 않아?
너 나한테 딱 그것만 궁금하지?
아니
(영도) 수면제 얼마나 먹어?
두 알?
세 알?
- 네 알? - (가영) 네…
두 배나 늘렸어?
(영도) 네가 늘려 달라고 한 거야? 아니면…
(가영) 아, 네가 잔소리를 두 배로 해서 그런가 보지
무슨 일인데
왜 물어 어차피 상담도 안 해 줄 거면서
(가영) 지인은 환자로 안 받아 준다며
말하러 온 거고 어차피 할 거잖아
(가영) 그냥 갈 거야
그래야 네가 나 신경 쓰지
나
되게 아파
[발랄한 음악]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 차 빼서 큰길로
[통화 종료음]
[멀어지는 발걸음]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정) 야, 야, 나 안가영 봤어
다음 주부터 우리 호텔에서 드라마 찍거든
(은하와 다정) - 쉿, 쉿! - 결혼도 우리 호텔에서 했었는데
(다정) 왜?
- (다정) 왜! - (은하) 아, 가만히 좀 있어 봐
(다정) 뭐
그래, 여기 우리 호텔이잖아
(은하) [다정을 툭 치며] 그러니까
그림만 보지 말고 글씨도 좀 읽어라
(다정) '배우 안가영'
'범죄 의학 드라마 닥터 크리미널 자문으로 만난'
'정신과 전문의 주 모 씨와 1년 만에 협의 이혼'…
(영도) 수고해
(은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문이 탁 열린다]
[은하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작은 소리로] 으이그, 진짜
(다정) 아, 어쩐지
목 밑으로 낯이 익다 했어
(미경) 잠깐
(민재) 아니…
(영도) 아유, 아유 또 이러신다, 또, 아유
[문이 탁 닫힌다] (민재) 오 선생님이 이거 버리라고 하는데요?
(영도) 아, 그래도 살아 있는 건데
(미경) 과연 그럴까요?
(민재) 아, 그 저주 걸린 화분이라고…
(영도) 그래도 선물인데?
[빗자루를 탁탁 친다]
얘 여기 있으면 난 여기 없어요
얘기 끝
[흥겨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드라이기 작동음]
[흥겨운 음악이 들린다]
아이, 저런
[리모컨 조작음] [음악이 뚝 멈춘다]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잔잔한 음악]
[물이 뚝뚝 떨어진다]
[영도의 당황한 신음] [물이 뚝뚝 떨어진다]
저런
[민재의 힘주는 숨소리]
(민재) 일단은 이걸로 해 놓고
더 큰 거 찾아 볼게요
- (영도) 그래요 - (민재) 네
이래도 저주가 아니라고?
[철도가 손을 탁탁 턴다] (영도) 철도야
4층에 좀 올라가 볼 수 있나? 물이 새는 거 같은데
아, 다정이 편의점 갔어
(철도) 아까 단체 때문에 여기 자리 없어 가지고
(영도) 아, 그래?
(준) 머리를 감았네요?
(다정) 나 원래 저녁에 머리 잘 감아요
(준) 나 보러 온 건가, 혹시?
(다정) 뭐래
나 원래
여기 잘 앉아 있어요
(준) 아…
아, 아니
차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데 앉아 있길래 혹시나
(다정) 나 지금 바쁘거든요?
[다정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준) 주말에 뭐 해요?
(다정) 주말에도 바쁘거든요?
(준) 에이
(다정) 왜요?
내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가지고
또 '도깨비' 재탕 삼탕 하면서 은탁이 대사나 따라 할 거 같아요?
아, 보통 주말에 그런 거 해요?
아니거든요?
(다정) 아나, 집중 다 깨졌네?
(준) 뭐, 연예 기사 보고 있던데
[준이 코를 훌쩍인다]
(다정) 우리 호텔에서 찍을 드라마 서치한 거예요
(준) 아, 그렇구나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준이 글자를 따라 읽는다]
러시아 드라마 찍는 거예요?
[다정이 태블릿 피시를 탁 집어 든다]
왜 남의 걸 봐요
(준) 아, 뭐 또 나 먹으라고 이렇게 또 두고 가요, 커피를
나 마셔요?
- (영도) 물이 새는데요 - (준) 우리 주말에…
(영도) 아…
말씀 다 끝난 줄 알고
(다정) 아…
끝났어요
물이 새는데 뭐요?
(영도) 올라가서 확인 좀 해 보자고요
- (다정) 지금요? - (영도) 너무 늦었나?
[새가 지저귄다]
(다정) 그냥 사람 부르죠?
(영도) 아…
물이 고이는 데가 있어서 그럴 수 있으니까
저, 물 좀 한번 틀게요
(다정) 살살 트세요 그거 수압 엄청 높여 놔서
[영도의 당황한 신음]
[함께 당황한다]
[다정의 비명]
- (다정) 아유 - (영도) 어유
(다정) 잠깐만요
(영도) 어유
[거친 숨소리]
[휴대전화 벨 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의 당황한 신음] (다정) 어, 엄마
내가 이따 전화할게 지금 누가 코브라 쇼를 해 가지고
어, 아니야, 괜찮아
그 코브라 지금은…
[따뜻한 음악]
[거친 숨소리]
죽었네?
[통화 종료음] (영도) 아…
이거 제가 똑같은 걸로 사 드릴게요
아, 물은 안 고이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그냥 사람을 부를걸
아, 혹시 모르니까 세탁기 쪽 한번…
[영도의 난감한 숨소리]
[영도가 중얼거린다]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닫힌다] [한숨]
(민재) 아, 여권도 없으시면
그러면 보험 급여 적용이 안 되는데
괜찮으세요?
[문이 달칵 여닫힌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안녕하세요
(준) 야간 진료도 하시는구나?
대학 병원 외래도 나가시고
앉으시죠
(준) 꼭 그래야 되나요?
아니요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미국 국적이네요?
정신과 진료 받아 본 적 있으시죠?
거기선 워낙 슈링크를 많이…
(준) 없어요
오늘 갑자기 불편해서
무슨 일 때문에요?
(준) 주영도 씨가 저를 감시하는 것 같아서요
[어두운 음악] [물소리가 탁탁 울린다]
예전에도 감시당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준의 헛웃음]
(준) 내가 정말 환자로 왔다고 생각하나 보네?
[펜을 탁 내려놓는다]
[한숨]
환자로 오신 게 아니면
아니면?
반대 같은데요?
내가 아니라 채준 씨가 내 반경 안으로 들어온 거
지금처럼
왜 내 발밑에 네 발 넣었어?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
[준이 피식 웃는다]
(준) 저 환자로 왔어요
그래야 내가 뭔 소리를 해도 어디 가서 말 못 하잖아
[라이터 닫는 소리가 탁 울린다]
면허 지켜야지
좋습니다
(영도) 그럼 오늘 병원에 오신 건
(준) 강다정 씨 좋아해요?
난 좋아하거든
"눈 깜빡임 없음, 멀쩡함의 가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 일명 소시오패스"
[무전기 작동음]
(진복) 강간범 얼굴 덮어 주려고 내가 꼬까옷을 샀겠냐고, 어?
나쁜 놈들 때려잡으려고 경찰 된 건데
그놈들 면상까지 가려 주는 돌보미가 됐어요
아유, 정말
아, 이런 건 왜 꼭 밥때 해? 어?
아유, 정말, 씨
[탈취제를 칙칙 뿌리며] 내가 진짜 내가 그놈 딱 잡으면
내가 바로 그만둘 거야, 바로
왜, 뭐, 뭐, 진심 아닌 거 같아?
(영도) 예 [진복이 탈취제를 칙 뿌린다]
(진복) 넌 왜 또
(영도) 맛있는 거 사 왔는데
[영도가 봉지를 툭 놓는다]
아, 왜 이제 왔어, 아까 오지
(진복)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얼마나 그리웠는데, 응?
(영도) 풍지동 3층 사건이요
내가 볼 수 있는 자료가 좀 있어요?
(진복) 거기 있는 자료는 다 볼 수 있지, 우리 자문인데
어차피 비공 자료는 거기서 안 열려
(영도) 아, 그래요?
왜?
막상 범인 안 잡힌 사건 현장에서 살려니까 좀 그래?
(진복) 오구오구 우리 주영도 무서웠어요?
방어적 노출 행동을 기대해도 될까 해서요
(진복) 으음, 으음
한국말로
'범인은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어두운 음악]
[어두운 효과음]
(준) 커피 많이 마셨으면 옥상에서 물이나 마시죠
- (준) 올라갈까요? - (다정) 아니요
(준) 그럼 옥상에서 공기나 마시죠
올라갈까요?
(다정) 아니요
(준) 아이고야
외부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 좀 불안한데
옥상까지 바래다줄까요?
(다정) 아니요
(준) [웃으며] 아, 안 되네
아, 그럼 어떡하지?
일단 올라가서 생각해 볼까요?
(다정) 아니요
(준) 그렇죠 아무리 옥상이라고 해도
다정 씨 사적인 공간인데
씁,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쑥 올라갈까요?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조작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영도) 이건 선물
이라고 하기에는
복도에 너무 오래 있었나
(다정) '축 이전, 안가영'
(영도) 아, 저런
[당황한 웃음]
근데
이혼하신 줄 몰랐어요
(다정) 이혼이 장난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데
막말해서 미안해요
예?
짬뽕 먹다 팩폭 맞고 내가 화나서 막 그랬잖아요
(다정) 그렇게 남을 분석질이나 하니까
연애도 못 하고 맨날 병원에만 있고
딱 보니 쌍가마라서 결혼해도 1년도 못 살고 깨질 거라고
근데 저 사실 쌍가마가 뭔지 잘 몰라요
뭐, 쌍두마차 같은 건가? 뭐, 쌍라이트 같은 건가?
뭐, 쌍화차 같은 건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다정) 아…
은하한테 말했구나
오…
(다정) 어쨌든
죄송해요
(영도) 아니, 난 뭐 초면에 쓰레기 자석이라고…
뭐, 어쨌든
죄송하면
얘 좀 키워 줄래요?
(다정) 아니요
미안하다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싫어요
- (영도) 왜 싫어요? - 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아서요
누굴 죽였는데요?
쟤 빼고 다
(다정) 허브부터 선인장까지
나한테 걸린 것들은 모두 다 죽어 나갔죠
가끔 물만 주면 되는데
(다정) 열심히 물 줘도 죽던데
강다정 씨 식이면 과도하게 줬겠죠 뿌리가 썩을 만큼
(영도) 연애든 식물이든
무조건 다 주고 퍼 주고 자기를 갈아 넣고는
(다정) 그만하시죠
(영도) 방어 기제라는 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멋대로 흘러가는 메커니즘이라
이런 말 듣는 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하지 마요, 분석이든 추리든 때려 맞히는 거든 뭐든
- 딱 하나만 더 얘기해도 돼요? - (다정) 아니요
- 어차피 욕먹은 거 할게요 - (다정) 하지 말라니까?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잔잔한 음악]
원래
안 만나려고 했는데
그럼 다행이고요
(영도) 그럼
(다정) 이건 갖고 가야죠
- (영도) 고맙긴요 - (다정) 미쳤나 봐
(영도) 가끔 보러 올게요
(다정) 어딜 와요? 누구 마음대로?
(영도) 네, 고마워요
(다정) 이거 진짜 내가 죽일 수도 있어요
(영도) 네, 강다정 씨도 잘 자요
[문이 탁 닫힌다]
[어이없는 숨소리]
[어두운 음악]
[어두운 효과음]
[물소리가 탁 울린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종이를 쓱 넘긴다]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물소리가 탁 울린다]
[의미심장한 음악]
[의미심장한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문이 탁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안녕하세요
(준) 내가 정말 환자로 왔다고 생각하나 보네?
(준) 왜 내 발밑에 네 발 넣었어?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
(영도) 범인은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어두운 효과음]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어두운 효과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의미심장한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당신
그 여자 만나지 마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음악]
(준) 와, 강다정이다
와, 그 여자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멀어지는 발걸음]
소시오패스
[비밀스러운 음악]
(다정) 왜 나한테 채준 씨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혹시 나 좋아해요?
(다정) 날 좋아한다니까 뭘 어떻게 해 줘야 될 거 같고
(준) 다정 씨 보면서 바보같이 웃고 있겠지
(다정) 그 꿈에 나오는 방에
고양이도 있어요?
(진복) 2003년 안암동
(영도) 18년 전에 뭘 좀 본 게 있는데
[타이어 마찰음] 그게 걸려서요
(다정) 그때
[의미심장한 효과음]
답을 찾고 있다고 했었잖아요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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