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11
(남자) [한숨 쉬며] 아…
아니
아, 호텔 창밖으로 지금 드론이 날아다니는 게
말이 되냐고요, 지금!
아, 정말 죄송합니다
(다정) 그 드론은 저희가 확인한 결과
드라마 촬영 건으로 방송국 쪽에서 띄운 것으로 확인이 됐고요
곧바로 철수 조치를 요청해서 현재는…
(남자) 철수 조치만 하면 다냐고
뭐가 찍혔는지 확인을 해야지!
물론입니다 저희가 영상을 다 확인을 해서
문제가 되는 영상이 있으면 곧바로…
(남자) 아니, 아니, 아니
나는 내가 직접 확인을 해야겠는데?
아니, 호텔에서 한다고 해 놓고서
뭐, 이상한 거 없는 척 막 빼돌린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드론 띄운 방송국 놈들한테 말해
나한테 직접 전화를 하고!
그 원본 갖고 와서
(유경) 아, 어제는 카펫에다가 그
케첩, 고추장 가짜 피 그거 다 묻혀 놓고
오늘은 몰래 드론까지 띄우고
아, 이래도 보고서에 '방송국 놈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어요'
- (유경)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 응, 안 돼
매니저님은 이럴 때 어떻게 풀어요?
(유경) 아침부터 욕먹고 또 욕먹고 또 욕먹고 그러면? [다정의 한숨]
이따가 매운 거 먹고 쌈닭처럼 힘내야지
(다정) 그런 생각도 하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거 떠올리기도 하고
아, 이래서 연애를 해야 돼
[애교스럽게] '나 너무 힘든데 두붕두붕 해 주면 안 돼?'
[피식 웃는다]
부둥부둥이겠지, 두붕두붕이 아니라
[유경이 종이컵을 탁 내려놓는다]
[커피 머신 조작음] [밝은 음악]
[커피 머신 작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나 왔어
(하늘) 어, 왔어?
(다정) 바빠요?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
어, 갈게
(하늘) 야, 뭐야…
야, 그냥 가는 거야? [통화 연결음]
너 급한 일이라며
주영도
(영도) 네, 다정 씨
전혀 안 바빠요
(하늘) 영도야
주영도
(영도) 부르긴요, 아무도 안 불러요
예, 기분 탓일 거예요
나요?
심심해하고 있었죠
'누가 전화 안 해 주나' 그러면서
아니요, 전혀요
나쁜 일 있을 게 뭐가 있어요
그냥 생각…
그냥 [웃음]
그냥요
아니요, 오늘은 퇴근이 좀 늦어요
그리고
은하랑 안가영 씨가 저녁 먹으러 온다고 해서
아, 그래요, 다정 씨
그럼 이따가 통화해요
그…
보…
보…
보…
아, 예, 예, 들어가요
[답답한 숨소리]
[영도의 놀란 탄성] [익살스러운 음악]
[당황한 숨소리]
다 들으신 거는 아니죠?
뭘 들었다는 건지, 도통
아, 못 들으셨다면 다행인데
(미경) '오늘은 볼 수 없겠구먼'
'아'
'그들은 왜 자꾸 여기에', 응?
'네가 사는 그 집이 내 집'
'아, 아, 내일은 꼭'
보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튀어나온
'보, 보'
[익살스럽게]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영도의 당황한 웃음]
그, 저,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을 좀…
불륜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고
예, 그렇긴 한데…
(미경) 여차하면 전속력으로 후진하겠다는 작전이신가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미경) 저런
끼익 [기어 조작음을 흉내 낸다]
부릉
부릉부릉, 부릉부릉, 부릉부릉… [영도의 당황한 숨소리]
(영도) 아, 저 다정 씨 입장도 있고요
-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좀 있어서 - (미경) 부릉
[미경이 후진음 흉내를 낸다]
(영도) 아, 이쪽이에요, 이쪽, 네
예, 예, 바쁘시죠?
- (영도) 나가서 일 보세요 - '보, 보, 보, 보, 보'
(미경) [흥얼거리며]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보'
[무전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두운 음악]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예, 현장 도착했습니다
[강조되는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진복) 변호사가 아직 안 왔는데
진짜 괜찮은 거죠?
(체이스) 네
(진복) 오자마자 약물 검사를 요청하셨는데
왜 그러셨어요?
몸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검사를 받아야 해서입니다
(진복) 어떤 약물인지 어떻게 아시고?
(체이스) 집에 온 후 마신 것은 그 술밖에 없었는데
색깔, 냄새가 없었고
깨어날 때까지 세 시간쯤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GHB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숨을 들이켠다]
집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술에 약을 탔다
뭐,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틀린 답을 제외시키면
남는 가능성이 그거밖에 없으니까요
이안 체이스 씨가 노현주 씨를 죽였다
이게 틀린 답이라고 말하는 거죠?
네
그건 틀린 답입니다
오늘 새벽 1시 40분 이안 체이스 씨 그리고 노현주 씨
두 분이서
레지던스 들어갔죠?
- (진복) 맞습니까? - 네
(체이스) 하던 대로 해
그거면 돼
[어두운 효과음]
[컵이 쟁그랑 깨진다]
[알람이 울린다]
[옅은 숨소리]
[힘주는 숨소리]
[어두운 효과음]
[무거운 음악]
(영도) 딱 한 번만 검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목마르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놀란 숨소리]
[어두운 효과음]
(소년 체이스) 그림자는
빛을 욕심내면 안 돼
사라지니까
[명함을 탁 집어 든다]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두운 음악]
고진복 형사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진복) 그 손의 상처는 어떻게…
(체이스) 이번 일과는 상관없습니다
(진복) 확인해 줄 사람 있습니까?
네
[휴대전화를 탁 들며] 이름이?
[진복이 펜을 달그락거린다]
그때 호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면 다 확인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진복) 호야
너 이 호텔 가서 확인 좀 하고 와
그, 손 상처 어떻게 생긴 건지 영상도 좀 따오고
여기
최정민 유서 가져오신 그분 계신 데네요?
아, 그렇지
거기 강다정 씨가 또 있지
저 연락처 있어요 전화해서 미리 요청해 놓고 갈게요
아, 야, 야, 그, 그러지 마
그, 가서 따로 알아봐
왜…
(진복) 우리가 하는 짓이 나쁜 놈을 잡는 일이기도 한데
그 나쁜 놈이 한 짓 때문에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잖냐
근데 강다정 씨가 그걸 한 번 했어요
그것도 최근에
그것도 똑같이 생긴 놈 때문에
아…
(진복) 확인할 게 더 생겨서 진술 필요한 상황이면 몰라도
지금은 다른 쪽으로 가서 사실만 확인하자
(호) 네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 그때 그럼 직접 보셨다는 거죠?
(유경) 네, 근데 왜 그러세요?
(호) 혹시 지금 남아 있는 기록이라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업무 일지도 있고 로비 쪽 카메라도 있는데
근데 왜 그러는지 알아야 보여 드릴 수 있는데요?
(호) 아…
살인 사건 수사 중이라서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살인 사건?
지금 사람 죽었다 말하는 거 맞아요?
그렇죠
[영어] 설마 닥터 체이스가 범인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에요?
(유경) 그 사람이 누명을 썼을 가능성은요?
[익살스러운 음악] 잠깐만, 그럼 지금 구치소에 있는 거예요?
현재 그 사람의 가까운 사람들은 알아요?
예를 들어 여자 친구까진 아니라도 데이트 상대라든가
그런 사람한테는 이거 알려 줄 의무 있는 거 아닌가?
대답을 좀 해 줘 봐요! [데스크를 쾅 친다]
[카메라 셔터음]
[한국어] 팀장님, 현장에서 카메라가 하나 나왔는데요 [어두운 음악]
내장 메모리는 없고 실시간 송출되는 거예요
카메라면 몰카 말하는 거야?
그거 찍는 방향이 어디야?
뭘 어쩌긴 어째
일단 서버 회사에 협조 요청해 보고 안 되면 영장 쳐야지
그, 현장은 철수했니?
응, 정리하고 들어와 나도 정리하고 들어간다
(진복) 이 술은
평소에 노현주 씨는 전혀 안 마시는 거였다는 거죠?
(체이스) 네
그러면 술에 약을 탄 건 이안 체이스 씨를 노린 건데
(진복) 2시 28분부터 약 세 시간 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범인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던 거고
근데 계획에 없던 노현주 씨만 살해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노현주 씨가 얼마나 자주 그곳에 왔습니까?
(체이스) 거의 매일 왔습니다
(진복) 사건 전날에도 왔습니까?
- (체이스) 네 - (진복) 무슨 일로?
내가 부탁한 물건이 있어서 그걸 두고 갔습니다
부탁한 물건이 어떤 겁니까?
논문이었습니다
논문이요?
(진복) 혹시 제목이…
'가학성을 유도하는 트라우마'
그거였습니다
(현주) 말씀하신 거 외에도
저자가 주영도로 된 다른 논문 두 편도 카피했어요
[어두운 효과음]
(영도)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혹은 술에 취해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은
분노와 술에서 깨어나면 깨닫는다
사실 내가 때리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게 현재의 자신이든
과거 어떤 잘못을 저지른 그때의 자신이든
제어되지 않는 공격성은 자기모멸의 표현인 것이다
왜 범죄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가
왜 공감의 여지를 주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이웃일 수밖에 없으므로
교정과 교화, 용서와 공존을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아주 사소한 구원의 손길조차 닿지 못했던
이 사회의 가장 어둡고 약한 존재가
범죄자로 발화하는 순간을 찾아내야 한다
딱 한 번만 검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목마르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깊은 물속
벗어나려 할수록 엉겨드는 질긴 수초에
끝내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진복) 굳이 최정민의 레지던스로 이사를 간 이유가 있습니까?
이안 체이스 씨
왜 그 레지던스로 들어간 겁니까?
주영도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 뭐 물어봐도 돼요? - (다정) 그럼
(유경) 닥터 체이스하고 익스클루시브 그런 거 아니죠?
그냥 데이트죠? 막 지나가는 거 슝 바람 같은 거
[당황한 웃음]
나 그 사람하고 만나는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유경) 다 봤어요 그때 차 타고 가는 거
남자 옷 산 거
메시지 받고 '흐흐' 눈으로 꿀 나오고
데이트 아니었고 그 옷도 그 사람 거 아니었어
- 진짜예요? - (다정) 응
그런데
유경 씨는
그 사람이 괜찮아?
진짜 매니저님 데이트 아니면 나 솔직히 말해도 돼요?
(다정) 응
나는 무서워요
(유경) 손으로 칼 이렇게 했잖아요 그리고 좀…
깜깜해요, 느낌이
그래서 나는
'어, 매니저님이 왜 이 사람 만나지?'
'아마 내가 못 본 거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한숨] 유경 씨가 못 본 거 나도 못 봤나 봐
안 그러고 싶었는데
나도 이젠 무서워졌어
그럼 진짜 아니라는 거죠?
(다정) 응
(유경) 그럼 눈의 꿀 이거 뭐예요?
(다정) 그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
(유경) 확실해요? 그 사람 아닌 거?
확실해
근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휴, 노놉, 없어요, 노, 노, 노
[다정이 유경을 톡 친다]
(다정) 혹시라도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야 돼
유경 씨는 내 팀이고 내 사람이니까
내가 받는 월급에는
유경 씨한테 생긴 나쁜 일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된 거거든
오, 역시 강스위트
[웃으며] 어, 이거는 아니야
(유경) 근데 좋아하는 사람 그거 누구예요?
- 좋은 사람 - (유경) 잘생겼어요?
- 그럼 - (유경) 사진 있어요?
- 아니 - (유경) 동영상은요?
[흥미진진한 음악]
[리모컨 조작음] (승원) 음, 이거 봐
너만 빼고 다 접었잖아
(하늘) 그게 뭐? 너도 안 했는데 접었잖아
난 했다니까
(승원) 내 손가락은 진실해
못 믿겠으면 내가 영도 전 재산 걸게
누구 마음대로 그걸 걸어
진짜 했다고?
(하늘) 며칠, 몇 시, 몇 분 누구랑, 왜, 어디서, 어떻게?
[헛웃음]
신사가 그런 얘기를 하면 쓰나
(하늘) 하이고
(영도) 네 사생활 전혀 안 궁금한데 내가 이거는 알아야겠어
네가 했다는 그거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없는 거지? [하늘의 웃음]
암요, 암요
[성우 흉내를 내며] 세상에 저런 일이
무려 38년간 키스를 못 해 본 남자가 진짜로 있다! [휴대전화 진동음]
(승원) 제보가 사실인가요?
[웃음]
[휴대전화 조작음] (하늘) 먹어
네, 고 형사님
내일 저녁이요?
예, 제가 경찰서로 갈게요
무슨 일이신데요?
[승원의 웃음] (하늘) 아니라고
아, 그리고 은하 씨도 남자 친구 없다고 했다니까
[리모컨 조작음] [영상 속 승원이 말한다]
손가락 접으시는데? 야무지게?
야, 나하고 얘기했다니까 돌려서 확인해 보든가
오케이
(영상 속 승원)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비디오 판독
[리모컨 조작음] [흥미진진한 음악]
[하늘의 한숨]
[하늘이 피식 웃는다]
(은하) 이게 제 거 맞죠?
(하늘) 네, 맞아요
[하늘의 시원한 숨소리]
(은하) 근데 [은하가 캔 맥주를 탁 내려놓는다]
아까 물리셨다고…
아…
[캔 맥주를 탁 내려놓으며] 예, 그 작은 사고가 좀
[은하가 살짝 웃는다]
남자 친구 있으시다고…
그런 거 없는데
그럼 아까 이건…
아, 어…
[웃으며] 뭐, 다들 접길래
(하늘) 그렇죠?
아, 그럼 나도 그냥 접는 건데
아예 없었던 거도 아니고
물린 거라면서요
남자 친구 없다면서요
아, 그거랑 그거랑…
(하늘) 아유, 괜찮아요
그, 키스라는 거 그거 [하늘이 피식 웃는다]
사실 그거 뭐, 별거 아니에요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해 드릴까요?
그, 키스라는 게 원래
동물들이 입에서 입으로 먹이 주는 데서 유래한 거거든요
어미 새가 새끼 새 입에 벌레 넣어 주는 거 아시죠?
- 재밌는 얘기라면서요 - (하늘) 네
근데 인간들은 아직도 다 큰 성체들끼리
그, 남의 입에 벌레 넣어 주던 습성을 되풀이하고 있는 거예요
[피식 웃으며] 웃기죠?
[하늘의 웃음]
[은하의 어이없는 웃음]
(가영) 아니, 그건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헛기침]
키스했다고 무조건 다 사귀는 건 아니죠
[가영이 음료수를 탁 내려놓는다] (가영) 아니
네 거, 내 거, 땅땅땅
그거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어?
(은하) 좋아서 키스했고
키스가 좋았으면 그냥 계속 좋아하면 되지
남자 친구, 여자 친구 꼭 그렇게 명함을 파야 돼요?
(가영) 당연하지, 명함을 안 파면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저 사람이 내 애인이다'
그 말을 못 하는데?
그 말을 누구한테 하게요?
(가영) '동네 사람들!'
'저 멋진 남자가 내 남자랍니다!'
진짜 좋아하면 자랑을 하지
'우리 사이가 뭐게, 뭐게, 뭐게?'
맞혀 보라고 퀴즈를 내진 않지
[흥미로운 음악] (은하) 내 남자, 내 여자 이름 붙이는 순간부터
관계는 늙는 거예요 의무가 생기니까
지겨워도 지겹단 말도 못 하고
헤어지고 싶은 순간이 있어도 헤어지잔 말도 못 하고
그러다 권태기라도 오면 속으로만 생각하죠
'음, 넌 왜 숨을 쉬고 지랄이야?'
'넌 왜 웃어?'
'넌 왜 눈이 두 개나 달렸어?'
헬로, 갤럭시?
그런 생각을 누가 네 머릿속에 쑤셔 넣은 거야?
뭐, 전에 만났던 사람이나 뭐
그런 거겠죠?
그건 지금 어디 있을까?
내가 좀 만나고 싶네?
만나서 뭐 하려고요
분홍색 리본 달린 예쁜 포크를 들고 가서
눈알을 포근포근 쑤셔 줘야지
내 친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제 내가 보여?
[피식 웃으며] 참전해, 같이 싸우자
아, 그러니까 갤럭시 말은 그런 거잖아
한 개 남은 사이다를 털어 마시고 결국 개털로 남을 것이냐
(가영) 아니면 목구멍에 고구마를 처넣고 살 것이냐
어떻게 생각해?
고구마? 개털?
쓰읍, 글쎄요?
나는 고구마 먹고 목 막혀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사이다 너무 차갑게 마시면
딸꾹질이 나기도 하고 [휴대전화 진동음]
[발랄한 음악]
아유, 중요한 전화네?
아, 호텔에서
일 때문에
아, 잠시만요
[휴대전화 조작음]
네, 지배인님
(다정) 아, 지금 아, 조용한 곳으로 이동 중입니다
잠시만요
[은하의 한숨]
(은하) 쟨 그냥 행복한 고구마 같은데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하긴 뭐
개털이라도 행복할 순 있지 [도어 록 작동음]
[한숨]
배우는 못 할 거 같다
발 연기 어떡하니?
못 본 척해 줘요, 애쓰는데
[혀를 찬다]
- 아직 다들 있어요? - (다정) 네
밥은 다 먹었고 맥주 마시고 그러고 있어요
법으로 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8시쯤 되면 각자 자기 집으로 가야 되는 걸로
그러니까
근데 그러면 주영도 씨하고 나도
8시 넘으면 각자 자기 집에 가야 되는 건데
아, 저런
아, 맞다
나 집 없지?
여기 주영도 씨 집이잖아요
아, 그러네요
거지라서 다행이다
내일은 몇 시에 끝나요?
정시 퇴근이요
- 맛있는 거 먹을까요? - (다정) 좋죠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갈래요?
(영도) 너무 좋죠
[새가 지저귄다]
[비장한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진호) '저는 술에 취해서'
'특정한 단어를 들으면'
'사람을 물기도 한다는 저의 개같은 버릇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책임하게 또 술에 취했고'
'서하늘 씨를 물었습니다'
'만일 한 번만 더 제가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때는 제가 서하늘 씨를'
'평생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종이를 툭 내려놓는다]
[문이 탁 열린다]
(승원)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출연자님 아니세요?
(진호) 예
저기요
제가 물어볼 게 좀 있는데요
예
(진호) 어, 사실
제가 저 위에 계신 분한테
관심이 좀 있는데요
(승원) 하느님이요?
저는 절에 다니는데
아, 그게 아니고
(진호) 바로 위층이요
[익살스러운 음악]
- 2층이요? - (진호) 네
- (승원) 3층 말고 2층이요? - (진호) 네
(승원) 2층엔 하늘이가 있는데요? 주영도는 3층이고
(진호) 주영도는 관심 없는데요?
(승원) 오케이
그러니까 진짜 하늘이에 대해 알고 싶다?
하, 뭐부터 말씀을 드려야 하나?
자…
♪ I believe ♪
♪ 그댄 곁에 없지만 ♪
[익살스러운 음악]
우리 하늘이는요
생긴 건 저렇지만 코스모스 같은 아이예요
그래서 병원 이름도 '하늘하늘'이죠
우리 하늘이는요
가끔 얼굴에 칼자국 하나씩 달고 올 건데
카, 칼자국…
무서워하지 마세요
(승원) 고양이랑 놀다 생긴 거니까
또 우리 하늘이는요
♪ 오, I believe ♪
(하늘) 어?
- 주세요, 주세요, 제가 할게요 - (은하) 어, 아니요
(은하) 아니요, 괜찮아요 앞이나 막지 마시지
(하늘) 아이, 제가 들게요, 주세요
(은하) 진짜 괜찮은데 [하늘의 힘주는 신음]
(하늘) 은하 씨 개미 닮았어요
뭐라고요?
(하늘)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20배까지 거뜬하게 들거든요
개미가 강아지만큼만 컸으면 아마 지구를 지배했을걸요?
(은하) 아, 좋은 의미였구나
그래도 개미는 좀… 너무 까맣지 않나?
아니에요, 개미 색깔 다른 것도 많아요
[하늘이 살짝 웃는다]
(하늘) 근데 흰개미는 좀 못생겼어요
털왕개미라고
그중엔 빨간 줄무늬 옷 입은 것처럼 생긴 애들이 있는데
걔들은 좀 예쁘고요
(은하) 아…
근데 그건 이름이 좀 징그러워서
어, 여왕개미는 금테도 둘렀어요
(은하) 아, 괜찮다
[함께 웃는다] (하늘) [장난스럽게] 괜찮죠?
(승원) 정말 이거는 저만 보려고 했던 건데
이걸 또 이렇게 공개해 드립니다
제가 이걸로 약점을 잡아서 하늘이도 출연을 시킬 건데
[익살스러운 음악] 저기요?
계세요?
저기요?
- (은하) 무겁진 않으세요? - (하늘) 아, 이 정도는 거뜬하죠
(하늘) 아닙니다
- (하늘) 이쪽이죠? - (은하) 네, 안쪽으로
(승원) 저기요?
(체이스) 주영도 씨가 나한테 병원에서 했던 질문
[어두운 음악]
(영도) 제가 어릴 때
창비동에 있는 보육 시설에 잠깐 있었는데
최근에 거기서 찍힌 제 사진을 봤습니다
그 사진이
최정민 사건과 관련된 증거품이었어요
그 사진이나 시설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나한테 그렇게 물어봤다는 건
날 기억 못 했다는 거겠죠
거기 있었다는 거네요?
(체이스) 있었죠
나도
주영도 씨도
나는 주영도야
넌 이름이 뭐야?
그딴 거 없어도 돼
나를 왜 보겠다고 했습니까?
나도 묻고 싶어서
그곳에 남겨진 게 당신이었어도
당신이 나였어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었을까?
(어린 영도) 자, 여기, 너 먹어
(영도)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혹은 술에 취해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은
분노와 술에서 깨어나면 깨닫는다
(영도와 체이스) 제어되지 않는 공격성은
자기모멸의 표현인 것이다
(체이스) '우린 아주 사소한 구원의 손길조차 닿지 못했던'
'이 사회의 가장 어둡고 약한 존재가'
'범죄자로 발화하는 순간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
당신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냐
물어보는 걸로 들리는데요?
(영도) 날 싫어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나한테 이해를 바라게 될 만큼
이번 일이 충격적이고 지금이 절박한 상황
(체이스) 싫어합니다
오래전부터
그 싫은 기억 속에
18년 전의 일도 있습니까?
[무거운 음악]
네
(체이스) 당신이 이제 와 구원이라는 말을 떠들고 싶었다면 [어두운 효과음]
그때 그런 눈으로 거울 속을 보면 안 되는 거였고
그런 모습을 보고도 그냥 나가 버리면 안 되는 거였고
그 심장
(체이스) 받으면 안 되는 거였지
아까 질문에 대답해 드리자면
그곳에 남겨진 게 나였어도
나는 똑같이 말할 겁니다
(영도) 과거에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내칠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지금 당신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도울 겁니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전 약속이 있어서
강다정 씨
강다정 씨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누구의 심장을 받았는지
내가 당신하고 강다정 씨 이야기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풀벌레 울음] [부드러운 음악]
[향수를 칙 뿌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15분쯤 늦을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다정) 괜찮아요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 여보세요? - (영도) 어디예요?
나 그냥 집에 왔어요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서
아, 그렇구나
(영도) 예, 알았어요
여보세요?
(영도) 예, 그럼 집에서 푹 쉬어요
지금…
지금 어딘데요?
(영도) 많이 기다렸죠? [다정의 놀란 신음]
[영도의 웃음]
[다정의 당황한 신음]
왜 사람을 놀라게 해요 늦게 와서 이게 뭐예요
아, 미안해요, 난 장난친다고
장난을 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죠
아…
그렇죠
근데 지금은 장난을 칠 때죠
저런
[다정의 웃음]
(다정) 어떻게 금방 찾았어요?
(영도) 다정 씨 향수 냄새요
이거 떡볶이 냄새라니까요
[다정이 가방을 툭 든다] 오
냄새 좋다
[영도의 웃음]
(다정) 따라오기나 해요
지금부터 대기하시면
(종업원)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
이름 넣어 드릴까요?
[다정과 영도의 당황한 숨소리]
이 집이 언제 이렇게 유명해졌지?
(다정) 원래 나만 아는 집이었는데
다른 데 가죠
맛있는 데 많으니까
(다정) 네 [밝은 음악]
[다정의 어색한 웃음]
(영도) 제가 진짜 맛있는 집 알아요
(다정) 네
(영도) 여기가 알고 보면 맛집인…
아, 왜 다들
밥을 집에서 안 먹고…
[다정의 어색한 웃음]
(다정) 그러면
제가
(영도) 네
(다정) 이쪽이에요 여긴 진짜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곳인데
문을 닫았네?
[영도의 한숨]
(다정) 그냥
가다가 제일 먼저 나오는 식당에서 밥 먹을까요?
맛있는 거 사 주고 싶었는데
지금 먹으면 다 맛있죠
그럼 그냥 우리 집으로 갈래요?
(다정) 네?
아, 구구빌딩엔 은하, 철도가 있으니까
저번처럼 가영이가 올 수도 있고
(영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요
아니, 와도 상관은 없는데, 와서
와서 같이 먹어도 돼요
원래 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고
다 부를까요?
- 근데 - (영도) 예, 근데?
(다정) 그렇게 치면
주영도 씨 친구들도 자주 집에 온다고…
(영도) 아
그건 괜찮아요
승원이 오늘 밤새 편집한대요 내가 확인했어요
확인?
[익살스러운 음악] 아니
내가 일부러 확인을 했다기보다는
승원이가 원래 자주 연락을 해요, 어
(영도) 아니, 자기가 뭘 먹었는지 음식 사진을 왜 나한테 보내는 거야
아, 나는 내가 이거를, 쓰읍
관계 중독의 증상으로 봐야 되나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보통 관계 중독은
상대가 끊임없이 무관심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이 새…
이거는 그러지도 않거든요?
음, 그렇다면 사회적 관심을 얻는 전략을 쓰는 거라고 봐야 되는데
쓰읍, 되게 얕은 관심을
양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는 그런 케이스고
그렇게 치면 직업을 잘 고른 건데
(다정) 그래서 주영도 씨가 뭐라고 확인을 했는데요?
(영도)
(승원) 아씨…
[메시지 알림음]
[메시지 알림음]
아,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지
[메시지 알림음] 누구야?
있어
[휴대전화를 탁 집어 든다]
(승원)
(영도)
- (승원) 갈게 - (영도) 오지 마, 진짜 올 거야?
(승원) 못 가, 밤새워야 돼
재미없는 거 다 잘라 냈더니 6분만 남아 가지고
아참, 내가 택배 하나 보냈으니까 열어 봐
반은 네 거야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영도의 힘주는 신음]
[버튼 조작음]
(영도) 아, 들어와요
[영도가 숨을 후 내뱉는다] (다정) 이 집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영도) 쓰읍, 저번하고 바뀐 건 없는데
(다정) 아, 그땐 집을 볼 여유가 없어서
(영도) 왜…
아…
아, 아, 미안해요, 앉아요
(다정) 아, 네
(영도) 마실 거 뭐 드릴까요?
- 아, 물이요 - (영도) 아, 물
(다정) 이건 뭐 시킨 거예요?
(영도) 쓰읍, 안 그래도 뭔지 열어 보려고요
여기
(다정) 감사합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영도) 이게 뭐지?
(다정) '동의보감에 대력왕이라 기록된 야관문'…
'은'
'밤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히는 약초다'
'그대, 뜨거운 밤의 제왕을 꿈꾸는 자여'
(영도) 이, 이게 그런 거라고요?
시킨 분이 더 잘 알겠죠
[당황한 웃음]
아니…
이거 내 거 아닌데
난 술도 안 마시는데 내가 이걸 왜…
'차로 끓여 먹어도 효과는 강력합니다'
아, 아, 이거 보여 주면 되겠다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아, 여기 봐 봐요
내가 시킨 거 아니죠?
(승원) 내가 택배 하나 보냈으니까 열어 봐, 반은 네 거야
(영도) 오늘 집에 안 올 거지
오늘은 안 올 거지?
오늘 안 올 거지?
확인을
되게 열심히 하셨네
(영도) 어유, 저런
[어색한 웃음]
[초인종이 울린다]
(영도) 밥 왔어요 [함께 어색하게 웃는다]
오면서 미리 시키길 잘했다
[인터폰 조작음] 네, 올라오세요
[영도의 어색한 웃음] [다가오는 발걸음]
[다정이 종이를 탁 내려놓는다]
[반가운 신음]
(태정) 그래서 오긴 왔는데
누나가 집에 없네
(은하) 전화를 하고 오지
전화하면 왜 했냐고 물을 거고
그러다 보면 다 이야기하게 될 건데
(태정) 이게 전화로 할 말은 아닌 거 같아서
하긴
그냥
누나한테는 말하지 말까?
무슨 소리야
다정이도 알아야지
(은하) 전화로라도 말해 줘
[커피 머신 조작음] [커피 머신 작동음]
(영도) 아, 심심하죠?
집에 왔는데 뭐 할 게 없어 가지고
텔레비전 볼래요?
(다정) 아니요
(영도) 아…
잠깐만요
[영도가 살짝 웃는다]
- 마셔요 - (다정) 고맙습니다
[영도가 살짝 웃는다]
음, 맛있다
(영도) 아, 보통은 이럴 때 뭘 하나 모르겠네
집에 뭐가 없어 가지고
[영도가 숨을 들이켠다]
의자는 편해요?
아니면 어디 좀 편하게 눕든가…
[당황한 웃음] 내가 누우라 그랬죠?
[함께 어색하게 웃는다]
그,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
거실에 소파가 없어 가지고
내일 가서 소파를 좀 살까 봐요
그, 소파가 있으면 애들이 더 자주 와 가지고
거기서 잘까 봐 안 산 건데
다정 씨가 올 줄 알았으면 샀을 거예요
그럼 거기서 좀 편하게 눕고…
뭘 자꾸 누우라…
누우라는 게 아니라
[익살스러운 음악] [영도의 당황한 웃음]
아, 왜 이러지?
[부드러운 음악] (다정) 이 의자도 편해요
(영도) 아… [다정의 웃음]
지금 제일 불편한 건 주영도 씨 같은데
(다정) 오늘 계속 허둥지둥하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요
제가 원래는 잘 안 이러거든요
그, 당황도 잘 안 하는데
(영도) 아니, 오늘 이상하게 자꾸
뭔 생각을 하…
무슨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영도의 어색한 웃음]
[숨을 들이켠다]
여기 좀 앉아야 되겠다
아…
[영도가 살짝 웃는다]
[부드러운 음악]
[웃음]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발랄한 음악]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승원) 영도야
오, 커피
[냄새를 씁 맡는다]
오, 스멜
[시원한 숨소리]
영도야, 화장실 갔어?
(승원) 영도야
주영도, 어디 있어?
[작은 소리로] 그런데 우리 왜 숨은 거예요?
(승원) 커피에 얼음도 동동인데
- (영도) 아, 그게… - (승원) 영도야
[영도의 난처한 숨소리]
(승원) 영도야! 어디 있어!
뭐야, 불도 다 켜 놓고
얘 어디 아픈가?
[휴대전화 진동음]
[영도의 놀란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지금이라도 나가요
(영도) 아, 저…
지금 나가면 이상할 거 같은데
(승원) 어, 하늘아 너 지금 영도랑 같이 있어?
아니, 얘 어제 약간 열 있다 그래 가지고 또 아픈가 싶어서
지금 집에 왔는데
어디 급하게 나간 거 같거든?
아니, 불도 다 켜져 있고
커피에 얼음도 동동인데
아…
저런
[장난스럽게] 영도야 [익살스러운 음악]
너 어디 있어?
우리 지금 술래잡기하는 거야?
영도야, 그 방에 있는 거 아니지?
내가 간다
[잠금장치가 탁 잠긴다]
문을 왜 잠가요?
아, 들어올까 봐
점점 더 이상해지잖아요!
(승원) 영도야 [문고리가 달칵거린다]
나 좀 심심한데
영도야
에이, 진짜 집에 없나 보다
[멀어지는 발걸음]
맥주나 사러 가야겠다
뭔 집에 맥주가 없냐
이게 집이냐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 (승원) 승원이 없다! - (영도) 아유! [익살스러운 음악]
[다정의 거친 숨소리]
(다정) 어떡해
[문고리가 달칵거린다]
(승원) 영도야
어? 왜 문을 닫고 그래
영도야, 나 무서워서 그래
왜 현관 앞에 여자 신발이 있어?
[문고리가 달칵거린다]
영도야 [다정의 거친 숨소리]
[문고리가 계속 달칵거린다]
(영도) 아…
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영도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다정) 얘가 웬일이지?
문자도 아니고 전화를
아…
동생이에요
(영도) 아, 태정 씨?
- 받아 봐요 - (다정) 네
[휴대전화 조작음]
(다정) 어
(태정) 누나 주소 강릉으로 돼 있지?
(다정) 응, 왜?
(태정) 우리 아빠…
라는 사람 있잖아
[무거운 음악]
(다정) 어
(태정) 돌아가셨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아?
(태정) 승계 집행문이라는 게 왔는데
돌아가신 분이 빚을 남겼으니까
우리보고 갚으라는 거래
누나 건 강릉으로 갔으면
엄마도 알겠네
여보세요?
(다정) 어, 듣고 있어
나 내일 일찍 일 끝나니까
내가 강릉 가 볼게
(태정) 같이 가, 나도 가야지
몇 시에 출발할 거야?
(미란) 애들은 모르게 내가 처리하고 싶은데
(법무사) 따님한테 나왔으면 아드님한테도 갔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상속 포기하시면서 승계 집행문도 같이 이의 신청 하시면 됩니다
(은하) 자, 여기
이게 다정이 거고 이게 네 거
(태정) 고마워 [은하의 한숨]
운전 조심하고
엄마도 잘 챙겨 드리고
너도 마음 잘 챙기고
난 뭐, 괜찮아
엄마하고 누나 걱정돼서 가는 거지, 뭐
그래도
(영도) 나도 병원 끝나고 바로 가 볼까 하는데
(다정)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전혀
내일도 일하잖아요
밤에 왔다 갔다 너무 피곤해요
(영도) 그건 문제가 아닌데
그냥
엄마 얼굴 보러 가는 거예요
[잔잔한 음악]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에서
그런 말 나오거든요
유년 시절은 목구멍의 칼 같아서
쉽게 꺼낼 수가 없다고
올해가
그 칼을 꺼내는 해인가 봐요
근데
저번에 주영도 씨랑 거의 다 꺼내 놔서
이제 그냥 뽑기만 하면 되는 거 같아요
서커스 하는 사람들처럼
(다정) 이렇게 슉
그렇게 신나게 꺼내면 다칠 건데
(철도) 장례식은 그럼
그 시설에서 다 치러 준 거야?
(은하) 그런가 봐
(철도) 빚 갚으라는 통지서만 아니었으면
돌아가신 것도 몰랐겠네
(은하) 그런가 봐
우리도 가 봐야 되는 거 아니야?
다정이 아까 막 웃으면서 갔어
모른 척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거잖아
마지막에 너무 쓸쓸하게 가신 게 그러네
나도 마음이 이런데
다정이 얘는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계속 이런 일만 있는 거야?
[철도의 한숨]
[안전띠가 철컥거린다]
운전하느라 고생했다
(태정) 뭘
(다정) 들어가자
(태정) 응
[다정의 한숨]
엄마 얼굴 보고 넌 바로 서울 가
일해야 되잖아
(다정) 오늘 왜 쉬어야 되는지 설명하기도 애매했을 건데
(태정) 응
사실
난 한 번 만났어
언제?
중 1 때
내가 누나 학교 앞에서 기다린 거 기억나?
(태정) 발목 접질려서
[무거운 음악]
쩔뚝거리면서 찾아왔을 때 말하는 거야? 겨울에?
(태정) 응
그날 우리 학교 앞으로 찾아왔더라고
어떻게 알아봤어?
그냥 보니까 알겠던데
얘기도 했어?
아니
(태정) 보자마자 누나한테 뛰어갔지
왜?
(태정) 무서워서
혹시 누나한테 갈까 봐
아니면 나 따라와서
엄마한테 또 그럴까 봐
[흐느낀다]
(다정) 난 너 모르는 줄 알았어 너무 어릴 때라서
[태정이 휴지를 부스럭거린다]
(태정) 그러게
나 왜 그런 게 기억이 나지?
(다정) 왜 말 안 했어?
(태정) 누나도 말 안 했잖아
미안
(태정) 무슨 소리야
누나가 왜 미안해
난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어
그때 인사라도 할 걸 그랬나
[목멘 소리로] 엄마한테는 말 안 해야 되겠지?
[다정의 떨리는 숨소리]
[청소기 작동음]
(태정) 엄마
(미란) 밥은?
(태정) 먹었지
(다정) 엄마는?
올 거 없다니까 뭐 하러 와
보고 싶다고 오랄 땐 안 오더니
[버튼 조작음]
[청소기 작동음이 뚝 멈춘다] (미란)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아, 이쁘게 낳아 줬더니 둘 다 왜 이렇게 칙칙하게 입고 다녀?
(미란) 갚으라는 그 돈은
(다정) 어, 내가 알아서 할게
뭘 알아서 해?
- 내가 할 수 있어 - (미란) 미쳤어?
(미란) 이게 시작인지 끝인지 네가 어떻게 알고
갚아 줄 사람 있다는 소리 들리면
어디서 뭐가 얼마나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너희들 지갑에선 한 푼도 꺼내 쓸 생각 하지 마
여기 서류 있으니까 도장 찍어 놓고 가
그러곤 신경 끄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태정) 응
(미란) 너는 왜 대답 안 해?
(다정) 응
[미란의 한숨]
어쩐지 꿈에서 들락날락하더니
[어이없는 숨소리]
참외 먹을 거지?
- (태정) 내가 갖고 올게 - (미란) 앉아 있어
[미란이 피식 웃는다]
그래도 약속은 지켰다, 야
내가 죽기 전엔 찾지 말라 그랬거든
그랬더니
진짜 죽고 나서 찾아왔네
[쓸쓸한 음악]
(다정) 그 말을 할 때 알았다
엄마는 그 사람이 찾아올까 평생 무서웠던 거였다 [달그락거린다]
[반찬 통을 탁 내려놓는다] 엄마도
태정이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였다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내가 보려 하지 않아 지워진 것처럼 보였을 뿐
잘 좀 살지
(다정)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않고 살기 위해서
엄마는
어떤 시간을 견뎠던 걸까
(미란) 태정아, 네가 좀 깎아 칼 조심하고
[스위치 조작음] [문이 달칵 열린다]
(다정) 엄마가 했던 사랑이 [문이 탁 닫힌다]
[물소리가 들린다]
우리에겐 목구멍의 칼이 되어 버려
한 번 마음껏 울지도 못했을까
엄마는
혼자 있을 때도
물을 틀었을까
[힘겨운 숨소리]
[미란이 흐느낀다]
(다정) 엄마
울어도 돼
[풀벌레 울음]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일 끝나서 지금 출발할까 하는데
괜찮아요?
[휴대전화 조작음]
[훌쩍인다]
(다정) 앗, 너무 늦게 봤다
나 오랜만에 엄마랑 맛있는 거 먹고 배 두드리고 있는 중
[울음 섞인 한숨]
[잔잔한 음악]
[훌쩍인다]
[파도가 철썩인다]
[기어 조작음] [시동이 뚝 꺼진다]
(다정) 오지 말아 줄래요?
간만에 엄마랑 많이 놀고 싶어서
(영도) 그래요, 그럼 내일 봐요
(다정) 다음엔 꼭 같이 와요 바다도 보고
(영도) 그래요, 다음엔 같이 바다 봐요
[체온계 조작음]
[체온계 작동음]
[한숨]
(주원) 아침에 쟀을 때가 몇 도였어?
37.2도였고
나오기 직전에 쟀을 땐 37도까지 떨어지긴 했어요
(주원) 음, 괜찮을 거 같기는 한데
그, 벌써 출발한 거지?
[콜록거리며] 예 신호만 지나면 도착해요
(주원) 그래, 그럼 와서 일단 엑스레이 찍어 보자
[콜록거린다]
예, 그럴게요 [콜록거린다]
(주원) 여보세요?
방금 네가 기침한 거야?
너 열만 있는 거 아니었어?
영도야
대답해 봐, 주영도 [어두운 음악]
[영도가 계속 콜록거린다]
[영도의 당황한 신음]
[타이어 마찰음] [신호등 알림음]
[거친 숨소리]
[콜록거린다]
[거친 숨소리]
[힘겨운 숨소리]
[아련한 음악]
[거친 숨소리]
[무거운 효과음]
[자동차 경적이 연신 울린다]
[발걸음이 울린다]
(다정) 아비가
수리진한테
1분간 시계를 보여 줘요
그 1분은 이제 영원히 기억될 거라고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거든요
'어차피 난 떠나겠지만'
'이 1분은 고스란히 너에게 줄게'
'누구한테 뺏길 일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을'
'1분짜리 영원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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