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16
(유경) 매니저님 연수까지 이제 한 달 남았네요?
아, 나도 비행기 잘 탈 수 있는데
(다정) 그렇겠지
갈 때 나 커다란 캐리어에
응, 안 넣어 갈 거야
그럼 냉장고 박스 안에
(다정) 응, 거기도 안 넣어 갈 거야
나를 버리고 가시는 매니저님 10m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했는데
10m가 아니라 10리겠지
근데 매니저님 왜 안 신나요? 샌프란시스코 가는데?
생각보다 기간이 너무 길어서
아, 설마 남자 친구 때문에 그래요?
(유경) 맙소사, 그게 뭐가 길어요
아, 누가 보면 막 5년, 10년 막 그렇게 가는 줄 알겠네
[한숨]
[질색하는 신음]
[멀어지는 발걸음]
(다정) 모든 이별이 슬픈 건 아니다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마음이 식어 헤어지는 건
반신욕을 하다
다 식어 버린 물에서 빠져나오는 것만큼이나 홀가분한 일 [한숨]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연인에게 헤어짐이란
3년 같은 3분을 버틴 뒤 [알람이 울린다]
마침내 내 것이 된 컵라면을
(패트릭) 3분 됐다
[패트릭이 말한다] (다정) 그대로 바닥에 쏟아 버린 듯
청천벽력 같은 것
(가영) 너 군대 간다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딜 간다고?
[통화 연결음]
형, 나 다음 주에 입대해?
(매니저) 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셨어?
(패트릭) 그럼 이 기사가 진짜 공식 기사라는 거야?
(매니저) 응, 공식 기사야
[하늘이 하품한다]
(하늘) 아, 진짜 푹 잤네
(승원) 야, 꼭 가서 평점에 별 다섯 개 줘라
(하늘) 그럼, 우리만 당할 수 없지
(승원) 하, 영도가 같이 왔어야 되는데
(하늘) 야 꼭 다정 씨랑 같이 보라고 하자
그러니까!
[함께 웃는다] [흥미진진한 음악]
(여자1) 안녕하세요 마진화장품에서 나왔습니다
설문 조사 하시고 커플 두 분 마사지받으시겠어요?
(은하) 이 정도면 해피 엔딩이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거니까
[잔잔한 음악] (태정) 마음이 여기 있는데 몸만 다시 돌아간다고
무슨 해피 엔딩이야
내가 본 영화 중에 제일 찜찜한 엔딩이구먼
(은하) 각자 애인이 있는 사람들끼리 좋아진 건데
그럼 헤어지는 게 맞지
바람은 멈추는 거고
멈춰야 되는 거고
이런 게 그나마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거야
이별 앞에 아름다운 게 어디 있어
그럼 새로 만난 사람한테 흔들릴 때마다 헤어져야 돼?
그런 게 아니라
순서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거지
(태정) 꼭 먼저 온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법 있어?
10년 동안 한 사람만 만났어도
그게 끝나고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
더 진짜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가자
(다정) 아름다운 이별이란 건
화장실 냄새가 나는 방향제나
네모난 동그라미
투명한 무지개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마사지받으면 되지!
너 이러려고 나 만나?
이럴 거면 그냥 헤어져
- 쯧 - (승원) 어?
[한숨]
(다정) 그조차도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의 특권이다
한쪽으로만 흘렀던 마음은
그저 남겨져 바라볼 수밖에 없고
내 발끝에 매달린 것이 너였는지
내가 너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
그조차도 말할 수 없어
헤어짐조차 가능하지 않은 두 사람도 있다
[풀벌레 울음]
(영도) 장거리 연애에서 남자가 더 힘들어한다는 건
논문으로 나와 있어요
다정 씨는 새로운 풍경 보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겠죠
나는 여기 고여 있으면서
'아, 여기서 다정 씨가 나 이상한 사람 만들어 놓고 갔었지'
'아, 여기서 다정 씨랑 컵라면을 먹었었지'
주영도 씨는 얘기할 사람이라도 있잖아요
(다정) 친구들도 있고 은하, 철도, 아리도 있고
근데 나는 친한 사람도 없고
혼자서 쓸쓸히 햄버거나 먹겠죠
'한국에서 온 저 여자 되게 과묵하다'
그런 말이나 들으면서
치
밤늦게 호텔에 들어가면 엄청 외롭고
누구랑 말하고 싶어서 전화하려고 보면 한국은 새벽일 거고
주영도 씨는 피곤해서 자고 있을 거니까
난 전화도 못 하겠죠
전화를 왜 못 해요?
다정 씨가 전화할 때까지 깨어 있을 건데
- 진짜 깨어 있을 거예요? - (영도) 당연하죠
몰랐네요
[밝은 음악]
[영도의 한숨]
(영도) 그 연수 안 가면…
(다정) [한숨 쉬며] 안 되죠
4박 5일은 진짜 너무 길다
그러니까요
아, 우리 회사 미쳤나 봐
(다정) 그리고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한다
무려
4박 5일을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다정의 한숨]
[다정의 헛기침]
사랑이 뭘까?
그 썩을 것이 뭐길래
멀쩡하던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라부아지에가 뭔 헛소리를 했나 싶었는데
진짜 질량은 보존되는 거였구나
라부지랄, 뭐, 뭐?
라부아지에
질량 보존의 법칙
(철도) 아!
그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야?
(아리) 여기선 닭살 질량 보존의 법칙이겠죠
브즈즈즈가 사라진 곳에 72즈즈즈가 나타났잖아요
- '아' - (영도) 아
그렇게 하면 이거 입가에 다 묻을 건데?
- '아' - (영도) 아
[함께 웃는다]
(다정) '아'
- 맛있어요? - (영도) 달콤해요
[함께 웃는다]
(영도) 더 주세요
(철도) 야, 너 왜 그래 [아리의 한숨]
저 진짜 그만둘 때가 된 거 같아요
저 둘은 여기가 서식지라서
쫓아낼 수도 없잖아요
아, 아리야
[새가 지저귄다] [차분한 음악]
(진복) 정범아
그동안 나 미안할까 봐
꿈에 한 번도 못 나온 거였으면
이젠 한번 나와 줘라
'그놈을 겨우 이제 잡았냐'
나 구박도 하고
'책상 정리하고 살아라'
잔소리도 하고
우리
소주 한잔하자
보고 싶다
(진복) 가시죠
[진복이 고기를 굽는다] [호의 한숨]
(호) 따지고 보면 시작은 다 이안 체이스인 건데
처벌을 못 받는다는 건 진짜…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아씨
(성준) [테이블을 탁탁 치며] 이래서, 어?
정신 바짝 차리고 투표를 해야 돼
제대로 법도 만들고 바꾸기도 하고
그런 인간들한테 표를 줘야지, 아휴
(진복) 18년째 그 생각을 한다, 내가
근데 내가 믿는 게 하나 있는데
범죄를 저지른 놈이 처벌을 안 받을 순 있어도
죄를 지은 놈이 벌을 안 받을 순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아, 정신 분석 그런 쪽으론 어떻게 생각해?
너무 맞는 말이죠
(손님) 저기요 저희 불판 좀 갈아 주세요
(진복) 야, 그 말 알지? 남의 나라 분인데, 니체라고
'네가 어둠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둠도 너를 들여다본다'
난 이안 체이스가 딱 그런 케이스 같거든
(손님) 저기요, 아저씨
(다정) 저, 손님이 부르시는데
(진복) 아, 아, 예 잠깐, 잠깐, 잠깐만
예, 갑니다 [진복의 헛기침]
(다정) 저러다 만다고 하시는데 이번엔 진짜 그만두시는 거 아니에요?
(호) 그러니까요
이번엔 진짜인 것 같은데
(성준) 먹어, 먹어
(진복) 아유, 내가 자꾸 까먹어 아저씨인 걸
[웃으며] 참
그때 엄청 감사했어요
(다정) 무턱대고 경찰서에 찾아갔을 때도 잘 왔다고 해 주시고
그리고 호텔에 잠복 형사분들 배치했을 때도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주시고
아유, 아, 아닙니다 뭐, 당연한 거죠
제가 오히려 감사드리죠, 예?
(진복) 우리 영도 이렇게 딱, 예? 챙겨 주셔서
[진복이 영도를 탁 친다]
[진복의 웃음]
형사 그만둔다고 하시니까 제가 다 아쉬워서
(진복) 아유, 할 만큼 했죠
뭐, 이제 미련도 없고
자, 이거 드세요, 드세요, 예?
저희 집이 이, 고기가 꽤 유명합니다 [휴대전화 진동음]
(호) 예, 반장님
아닙니다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아니요
여기 고 팀장님이랑 최 형사님 다 같이 있습니다
저, 홍주 4동 발바리 지금 제보 들어왔다는데요
- (호) 지금 가면 바로… - [집게를 탁 내려놓으며] 진짜야?
(진복) 씨, 고기 먹을 때야? 일어나
야, 먹고 가, 계산하지 말고
엄마! 여기 영도 테이블에 맛있는 것 좀 많이 줘!
- (다정) 헐 - (영도) 내가 말했잖아요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어요
[쓱쓱 비질한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다정) 나 왔어
뭐 도와줄 거 없어?
(은하) 없고
나 아까 옥상 갔다가 핸드폰을 거기에 두고 왔거든?
내려올 일 있으면 좀 갖다줘라
응, 금방 갖다줄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 (다정) 응 - (태정) 전화 온 거 이제 봤어
(태정) 몸은 좀 괜찮아?
어제 잠 잘 못 잤잖아
(다정) 아니야, 나 잘 잤…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태정) 여보세요?
밤새도록 뒤척거리던데
잘 못 잔 거 아니야?
[극적인 음악]
밤새?
이따 가게 끝나면 집으로 올 거지?
여보세요?
일부러 내려온 거야?
(은하) 왜?
왜?
(태정) 여보세요?
여보세요?
(은하) [놀라며] 어머! [익살스러운 음악]
다…
다, 다정아, 다정아, 그게, 저…
(다정) 아니, 난 그냥 전화가 와서
근데 태정이라고 뜨길래
내가 알기로는
그게 내 혈육의 이름이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받았는데
근데 얘가 갑자기 밤새도록 같이 있었다고 하고
끝나고 집에 오라고 하는데
뭐지?
이거 몰래카메라인가?
아니면 태정이가 또 있나?
근데 목소리가 내 혈육이랑 똑같아서
[절망하는 숨소리]
[한숨]
(은하) 아니, 내가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지금 요새 상황이 좀 그래서
그럼
캠핑 때 이것도…
(은하) 응 [다정의 어이없는 웃음]
[어색한 웃음]
(은하) 어떡해 [다정의 실성한 웃음]
다정아, 다정아
잠깐만,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 어떡해
악!
[은하의 한숨]
언제부터…
아니야, 말하지 마
(다정) 아니야, 해 봐
어쩌다가
아니야, 말하지 마
아, 일단 조금만 해 봐
아니야, 잠깐만, 말하지 말아 봐
오, 이거 어떡하지?
[한숨]
다정 씨
[떨리는 숨을 후 내뱉는다]
(태정) 그게
저번에 왜, 그…
말하지 마
[다정의 심호흡]
아니야, 빨리 말해
(다정) 아니야, 하지 마
하면 죽어
저번에
- (태정) 누나가 한번 - (다정) 넌 조용히 해
말하라며
내가 할게
저번에 준호 왔던 날
[잔잔한 음악]
(은하) 너무 심란했고
기분 더러웠는데
다정이 넌 마침 회의 중이었고
그래서 영도 쌤한테 가서
소리 냅다 질렀는데
근데
그러고 나서도 기분이 안 풀리더라고
[풀벌레 울음]
(은하) 그래서
그냥 막 걷다가
(태정) 나 누나 이 얼굴 뭔지 아는데
- (은하) 뭐? - 울기 직전 얼굴이잖아
(태정) 무슨 일 있구나?
있다고 해도
[힘없는 웃음]
울기엔 너무 오래된 일이고
울기엔
내가 너무 늙어서
울기 오래된 일이 어디 있어
그리고 누나가 어디가 늙어
(태정) 아버지?
아니면
예전 남자 친구?
넌 내 문제를 어떻게 다 알아?
알고 지낸 게 20년이야
생일 파티만 스무 번 같이 했고
(태정)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식, 입학식
꽃돌이만 네 번 했어
언제 서러운지
언제 진짜 좋아하는지
내가 모를 수가 없지
마음 말랑거리게 하지 마
처치 곤란 진상 손님처럼
진짜 여기 엎어져서 우는 수가 있어
[숨을 들이켠다]
그런 손님들을 위한 조치가 있지
[태정이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은하) 뭐야?
엎어져서 울라고
(태정) 어차피 곧 문 닫을 시간이야
진짜
그래도 돼?
[울음 섞인 숨소리]
[한숨]
(다정) 아니, 나는
왜 이거 그리스 비극 같지?
뭔 소리야, 우리가 무슨 친남매야?
'우리'라는 말도 난 지금 너무 이상하거든?
[은하의 한숨]
잠깐만
그럼 그때
그거 떡볶이집
[휴대전화 조작음]
이것도 진짜 두 사람이었던 거야?
(은하) 어?
(태정) 어?
두 사람도 여기 갔었어요?
(영도) 아, 신기하다
그럼 사귀기 시작한 날도 똑같은 거네
두 사람도 그날부터 사귀었다고?
내가 바에 갔던 그날?
우리가 그날부터 사귀었어요?
그날 첫 키스 하고 사귀기로 했으니까요
[익살스러운 음악]
[영도를 툭 친다] [작은 소리로] 그런 말을 왜 해요!
(태정) 아, 내 귀
내 귀, 아…
- 나, 나 가도 되지? - (태정) 나, 나 갈게
- (은하) 가도 되지? - (영도) 네, 가세요, 예 [태정이 인사한다]
(다정) 왜 말을 해 가지고
지금 혼내고 있는데
[다정의 한숨]
[잔잔한 음악]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새가 지저귄다]
- (영도) 들어와요 - (다정) 네
(영도) 와…
[영도의 옅은 탄성]
"정신 의학"
(다정) 헐
[웃음] [휴대전화 진동음]
[영도의 한숨]
- 승원이예요, 잠깐만요 - (다정) 아, 예
(영도) 또 왜
(승원) 어, 영도야, 어디야?
(영도) 어, 여기 되게 먼 데
(승원) 아, 나 기획안 새로 짜야 되는데 우리 같이 회의할래?
그걸 왜 나하고 해
(승원) 아니, 우리 CP가 나한테
'한대줍쇼' 그런 거 하라는데
뭐, 마동석, 김종국
그런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한 대씩 맞고 다니는 거
쓰읍, 근데 이런 게 정신 의학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일까?
(영도) 끊어
(승원) 여, 여, 여보세요?
야, 너 다정 씨하고 같이 있어? [통화 종료음]
왜…
아, 왜 끊어!
아, 이 배신자, 진짜, 이씨 [휴대전화 조작음]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영도가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어, 엄마예요, 영상 통화인데?
받아 봐요
아, 그래도…
여기 둘이 있는 건 좀 당일치기도 아니고
(영도) 그래요? 여, 여기 있을게요
[휴대전화 조작음]
어, 엄마
어디야?
집이 아닌데?
(다정) 어, 그냥 놀러 왔어
우리 건물 보수 공사 하느라 다 문 닫아서
근데 영도랑 둘이만 갔어? 다 같이 간 것도 아니고?
(다정) 응?
왜 그렇게 생각해?
우리 오늘 하루만 전화기 꺼 둘까요?
정말요?
주영도 씨 그래도 돼요?
한번 해 보죠, 뭐
- (다정) 하나, 둘, 셋 - 셋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종료음]
[영도가 입소리를 쩝쩝 낸다]
- 불안하죠? - (영도) 아닌데
불안할 거 같은데
누가 주영도 씨 급하게 도와 달라고 할까 봐
꼭 안 꺼도 돼요
한번 해 볼게요
정 불안하면 그때 켜면 되죠, 뭐
좋네요
우리 이제 뭐 할까요?
(다정) 음…
우리 마실 나갈까요?
- 마실? - (다정) 응
[부드러운 음악]
(영도)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다정의 웃음]
(다정) 좋아요
(주인) 어서 오세요
- (다정) 여기요 - (주인) 네
- (주인) 네, 여기 있습니다 - (다정) 네, 감사합니다
(다정) 요즘도 귤이 나와요?
(주인) 아, 이거
아까 어떤 손님이 기차에서 샀다고 주고 갔는데
[주인의 웃음]
이거
하나씩 가져가서 드세요, 자
[함께 웃는다]
- (영도와 다정) 감사합니다 - (주인) 네
- (영도) 뭐? 이거? - (다정) 나 이거, 이거
[뽑기 통이 댕그랑 나온다] (영도) 나왔어요
[다정의 환호] 블랙필즈!
[영도의 신난 웃음]
(다정) 오, 오, 오 나왔어, 나왔어, 나왔어 [영도의 탄성]
(영도) 위에다가 이렇게 해요
[함께 웃는다]
(다정) 귀여워
[매미 울음]
[다정의 웃음]
[두런거린다]
[다정의 웃음]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정의 웃음]
[TV 소리가 작아진다]
(영도) 나 안 자는데 [TV 전원음]
(다정) 주영도 씨도
'아빠 안 잔다'
그거 하는 거예요?
아니, 왜 그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도 그러거든요
보통 TV 소리가 들리는 상태라면
귀만 열어 두고 잠드는 렘수면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채널을 돌려서
더 두드러지는 청각 자극이 생겼다
그러면 그 변화를 캐치하는 거죠
그럴 때는 점점 소리를 낮춘 다음에
조용히 다른 채널로 돌리면 돼요
(다정) 음, 그렇군
다정 씨 때문에 잠 다 깬 것 같아요
내가 다시 재워 줄게요
(다정) 옛날 옛날에
주영도와 강다정이 살았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두 사람은 펜션에 놀러 와서
귤을 까먹으면서 텔레비전도 보고
쎄쎄쎄도 하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끝
쓰읍, 내용이 살짝 아쉬운데?
(다정) 옛날 옛날에 주영도와 강다정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펜션에 놀러 와서
귤을 까먹으면서 텔레비전도 보고
또
[작은 소리로] 뽀뽀뽀도 하고
매우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건 재밌는 거 같아요 [웃음]
(다정) 그렇죠?
[함께 웃는다]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승원) 영도야, 나 왔어! 아직 자?
영도야!
영도야
[영도의 당황한 탄성]
(영도) 너 비번 어떻게 알고 들어왔어?
- (승원) 아니… - 나가
(승원) 아, 왜 너무 일찍 와서 그래?
아, 일단 좀 나가라
(승원) 아, 잠깐만 자다가 갈게
숙직실에서 짐승이 코를 골아 가지고
내 병원 가서 자
(영도) 내 병원 의자가 훨씬 편해, 어? [승원의 당황한 신음]
일단 오늘은 가 오늘은 가고 나중에 다시 와, 어?
[문이 철컥 여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깊은 한숨]
놀랐죠?
[발랄한 음악]
[작은 소리로] 갔어요?
(영도) 예, 미안해요
비밀번호 안 바꾼 거예요?
아, 저, 바꿨는데
아…
설마
내 생일로 바꾸고 그런 거 아니죠?
[멋쩍은 웃음]
생일이 음력이라서 모를 거 같아 가지고
[차분한 음악]
(체이스) 만약
내가 분노의 감정으로
다시 최정민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첫 번째 죽음을 목격하던 날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면
만약 내가
황재식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체이스) 만약에 최정민이 버려졌고
방치됐고
폭력에 시달렸고
벗어나려고 애쓰다 죽었다면
그래도 울어 줄 수 있습니까?
(다정) 애를 썼다는 게
나쁜 짓을 한 거라면, 아니요
(체이스) 지나간 일에는
만약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거니까
"방송 중"
(DJ) 네
이쯤에서 정말 아쉬운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어, 오늘이 주영도 선생님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끝으로 우리 '까만라디오' 청취자분들에게
아, 특히
마음이 힘드신 분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영도) 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DJ) 혹시 여자 친구분?
예
[잔잔한 음악] 그 사람이
'체리 향기'라는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요
한 남자가
죽고 싶은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가다가
한 할아버지를 태워요
근데 그 할아버지가 자기 얘기를 해 줘요
자기도 예전에 죽을 마음으로 나무에 올라갔었다고
근데 거기에 체리가 달려 있었고
무심코 그 체리를 먹었는데
그게 너무 달고 맛있었다고
햇살도 환하고 아이들도 너무 예쁘고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대요
(DJ) 그 할아버지 얘기를 들은 남자는 그러면…
아마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겠죠
아, 체리가 사람을 살린 거네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가
대화가 사람을 살린 거죠
(영도) 사실
'세상은 아름답다'
'살아야 한다'
뻔한 이야기잖아요
어, 죄송합니다
[바코드 인식음]
[다정이 카드를 탁 꽂는다]
네, 되셨어요
(알바생) 봉투 필요하세요?
(다정) 아니요, 그냥 가져갈게요
그리고
드세요
저도 밤에 알바 많이 해 봐서
파이팅
감사합니다
[멀어지는 발걸음]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남자1의 한숨]
(알바생) 어서 오세요
(알바생) 저기, 손님! 거스름돈…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알바생) 저기, 손님!
5만 원짜리 내셨어요
여기 잔돈
그리고
이거 어떤 분이 주신 건데
[따뜻한 음악]
너무 취해 보이셔서요
조심하세요
[달려가는 발걸음]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동전들이 쟁그랑 떨어진다]
(여자2) 아이고
못 쓰는 돈이 있으면 나를 주시지
이렇게 돈을 막 버려요
[여자2가 돈을 탁탁 줍는다] [여자2의 힘주는 신음]
나는 먹고 죽으려도 없는 돈을
(남자1) 가지세요
전 이제 필요가 없거든요
아니, 그래도 이걸…
아, 그러면 안 되지, 가지고 가요
(남자1) 부탁드립니다
가지세요
(여자2) 아니, 이걸…
(남자2) 아씨,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금방 비키겠지
(라디오 속 영도) 그런데
(여자3) 뭐, 바빠?
(라디오 속 영도) 또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그런 거예요
(남자2) 아니
[웃음] (라디오 속 영도) '내가 네 이야기를 들어 줄게'
[함께 웃는다] '내가 네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 줄게'
'네가 혼자 있게 두지 않을게'
'내가 널 지켜보고 있을게'
[자동차들 경적]
[한숨]
[함께 웃는다] (라디오 속 영도) 세상이 너무 깜깜해서
다 놓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남자3) 자기야, 저기 봐
(라디오 속 영도) 깜빡거리는 불빛 하나만 보여도
(여자4) 뭐야, 왜 저래?
(라디오 속 영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손끝만 살짝 닿아도
(남자3) 괜찮은 거야? 빨리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라디오 속 영도)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방금 라디오에서 그랬어
지켜보기만 해도 안 죽는다고
(여자4) 일단 전화기 켜 놓고 기다려 봐 봐
[자동차 경적]
[차창이 쓱 열린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라디오 속 영도) 저는 정신과 병원을 냉면집에 자주 비유를 하는데요
어떤 분은 비빔냉면
또 어떤 분은 물냉면 어떤 분은 함흥냉면
다 선호하는 게 다르잖아요
정신과 의사도 그렇거든요
(라디오 속 영도) 진단만 잘하는 분도 있고
처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상담을 잘하시기도 하고
처음 간 병원이 나하고 잘 맞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몇 군데 꼭 다녀 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시계가 째깍거린다]
(의사) [영어] 여전히 환청과 환시가 지속됩니까?
(체이스) 네
(의사) 여전히 발자국 소리와
문 아래로 번지는 검은 피인가요?
(체이스) 네
(의사) 환상과 악몽의 빈도는 어떻습니까?
조금 줄었습니까?
어쩌면요
아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일터로 복귀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까?
죄책감과 불편함의 차이가 뭡니까?
거기에 대해선 다음 시간에 계속 이야기를 해 보죠
[의사가 펜을 달칵거린다]
(의사) 목요일 같은 시간으로 예약을 잡아 놓겠습니다
그때 뵐 수 있겠죠?
- 아마도 - (의사) 좋아요
아, 지난 시간에
먼저 떠난 형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오라고 했었는데
그건 생각났습니까?
[무거운 음악]
(체이스) 네, 생각했습니다
[한국어] 네가 아니라
내가 그림자였다고
네가 아니라
내가 발목을 잡은 거였다고
[째깍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털썩 앉는 소리가 들린다]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어두운 효과음]
[떨리는 숨소리]
[어두운 효과음]
[거친 숨소리]
[잔잔한 음악]
(영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밤에는 잠이 드는 것이
[새가 지저귄다]
어느 사이 선선해진 바람이 푸른 하늘이
모르는 순간에도 뛰고 있는 내 심장과
바쁘게 걷는 두 다리가
그 모든 것이 당연할 때가 있었다
[풀벌레 울음]
[종소리가 들린다]
(영도) 버거운 인연에 힘겨워했던 시절조차도
스치는 인연에 아쉬워하던 순간도
(에이든) [영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다정) [한국어] 난 여기 오래오래 있을 거야
언제든지 오면 돼
[영어] 보고 싶을 거예요, 당신도요
[한국어] 잘 가, 꼭 다시 와
[웃음]
[코를 훌쩍인다]
(에이든 부) [영어] 갈까?
정말 고맙습니다
가자, 즐거웠니?
(영도) [한국어] 그 모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때가 있었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영상 속 리포터) 공개 열애 중인 패트릭 씨가 얼마 전 입대를 했는데 [다가오는 버스 엔진음]
이번에 선택하신 영화 속 역할이 군인이에요
혹시 의도하신 건가요?
(영상 속 가영) 그럴 리가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드라마에서는 공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일단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 될 거 같아서
선택을 하게 됐어요
[남자4가 소리친다] [사람들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음악]
[당황한 탄성] [자동차 경적]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자동차 경적]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씨…
[씩씩거린다]
[긴장되는 음악] 진정하세요
(호) 선생님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일단 그 칼 내려놓으시고요
[남자4의 신음] [성준의 힘주는 신음]
[거친 숨소리]
[남자4가 콜록거린다] - (성준) 괜찮아? - 네?
네
[수갑이 잘그락거린다] [남자4의 아파하는 신음]
[차분한 음악]
(호) 네, 괜찮습니다
팀장님한텐 제가 전화할게요
- 어? - (남자5) 놔, 놔, 놔!
[남자5가 계속 소리친다] 어, 어, 어, 아, 수고했다
얼른 들어와, 맛있는 거 먹자, 어
[휴대전화 조작음] (남자5) 이거 놔, 이거 안 놔?
[남자5가 소리친다]
내가 너 기억할 거야
내가 법을 아는데 끽해야 6개월이야!
내, 내가 네 이름 기억한다 두고 봐!
아이고
감방 노래자랑 대회에서 1등 하면
수상 소감으로 내 이름 불러 주겠네
그러니까 왜 나한테 두 번씩이나 잡힐 짓을 하냐고요
[파일을 탁 내려놓는다] 내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그만두질 못하잖아요
[파일을 탁 내려놓는다]
- 아리야, 아리야 - (아리) 어, 네
(철도) 혹시
- 친언니 있어? - (아리) 네
- 왜요? - (철도) 아니
너 그때 다정이 소개팅시켜 주려고 했었잖아
혹시 남는 여자 지인분 없나 싶어서
[철도의 웃음]
지금
(아리) 우리 언니랑 소개팅해 달라는 거예요?
(철도) 어
아, 생각해 보니까 저 언니 없는 거 같아요
(아리) 저 외동이에요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오셨어요?
(다정) 응
- (다정) 은하는? - (아리) 아
아까 원두 가지러 간댔는데
에티오피아까지 가신 건지 아직 소식이 없네요
[살짝 웃는다]
[아리가 테이블을 쓱쓱 닦는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다정) 은하야, 나 왔어
이따 밥 먹고 잠깐 내려…
(은하) 다정아, 다정아, 그게 아니라
(태정) 누, 누나
아, 누나, 누나
(은하) 너…
너 지금 무슨 생각 해?
(은하와 태정) 그거 아니야
[은하와 태정이 중얼거린다]
내 눈
내 눈 어떡해
[밝은 음악]
(은하) 어떡해
아, 진짜
내가 여기서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태정) 아니, 여기밖에 없는데 어떡해
[은하의 한숨]
[은하의 답답한 신음]
마저 할까?
[은하가 짜증 낸다] 알았어, 알았어
[은하의 한숨]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아저씨는 어쩌다가 연애 바보가 됐어요?
누가
누가 그런 소릴 해요?
(아이) 여기 3층 아저씨가 자긴 여자 친구 있다고
연애 바보는 아저씨라고 하던데요?
아이, 나는
나 사실 막 완전 막 그…
[하늘이 살짝 웃는다]
암튼 내가 아니고 진짜 바보는 따로 있어요
(하늘) 여기서 얼굴에 막
생크림 묻히고 다니는 사람 본 적 있죠?
네, 그 이상한 아저씨요?
딩동댕
(하늘) 그렇지? [하늘이 개를 어른다]
아, 영도야, 영도야 [통화 연결음]
[통화 불가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얘 또 비밀번호 바꾼 거야?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종료음]
[통화 연결음] 영도야
[문고리를 달그락거린다]
(승원) 영도야, 전화 좀 받아!
영도야
아, 전화 좀 받아, 영도야
없나? [문고리를 달그락거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영도) 우울증에서 제일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병적인 무기력증이거든요?
그걸 남들에게나 나한테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는 것처럼
그냥 아프니까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지금 숨을 잘 쉬고 있나?'
'아, 그럼 나 잘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셔도 돼요
대신
약을 잘 먹는 건 굉장히 중요한데
[통화 불가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민재) 아, 김정옥 님 이거 통화가 안 돼요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데요?
[삐 소리가 흘러나온다]
[미경의 헛기침]
안녕하세요, 김정옥 님
아, 저는 주영도정신의학과의 간호사 오미경이라고 합니다
오늘 예약하셨는데 오지 않으셔서 연락드렸고요
혹시 오시기 힘들면
저희가 유선상으로라도 도움드릴 수 있으니까
언제든 편하게 전화 한 통 때려 주시면
저희가 거기 있을 겁니다
[휴대전화 진동음] 깜짝이야
[휴대전화 조작음]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뚝 멈춘다]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출입문
(다정) 책상
올라와!
[웃음]
여보세요!
올라오세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영도) 저런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잔잔한 음악]
(영도) 바다에 살며 평생 바다를 찾아 헤맨 물고기처럼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고
언젠가는 편해질 거라고
나 마중 나온 거예요?
(다정) 오다가 길 잃어버릴까 봐
(영도) 그저 오늘을 숨 쉬고 있다는 것 [영도가 말한다]
매 순간 반짝이지 않아도 [함께 웃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었음을
당신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영도) 오늘은 뭐 했어요?
(다정) 음…
그때
그림 상담 해 줬던 꼬마 있잖아요
(영도) 응
(다정) 캐나다로 돌아갔어요
[영도가 호응한다]
나는 정들어서 엄청 섭섭한데
엄마 만나러 간다고
조금 신나서 가더라고요
서운했겠다
그래서 위로가 좀 필요해요
(다정) 여기도
[함께 웃는다]
주영도 씨는 오늘 별일 없었어요?
(영도) 음…
쓰읍,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확실한 건
너무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좀 모자란 거 같은데, 위로가
(다정) 음
[함께 웃는다]
(영도) 최선을 다해
최대한 오래 살아 보겠다고
많이도 아팠던 계절의 끝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 준
당신은 나의 봄이라고
(다정) 어쩌면
다시 아픈 계절이 온다 해도
의심 없이
끈질기게
또다시 손을 내밀어 줄
나는
당신의 봄이라고
[함께 웃는다]
[아련한 음악]
(다정) 누군가를 마음에 들인다는 건
그 마음에 상처받기 좋은 구석이 생긴다는 것
그걸 다 알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겠다는 것
상처받고 싶지 않다
(다정) 달라지고 싶고 달라질 건데
아직은 이게 나예요
(다정) 그런데
행복하고 싶다
(영도)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필요하면
언제든지요
(영도) 마음을 다쳤다는 건 비유가 아닙니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진짜 외상을 입은 거예요
이분은 교통사고로 치자면 팔다리, 갈비뼈 다 부러진 건데
'너 당장 일어나 걸어야지 왜 누워 있어'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신 거예요
그냥 넘어진 거예요
누가 기다릴까 봐 서두르다가
(다정) 늦은 봄밤
미친 봄눈이 쏟아지던 밤
그 미친 날씨를 핑계 삼아
누군가는 다친 날개를 다시 펴고
누군가는
아주 오래 접어 놓았던 날개를 팔락여
나비가
날았습니다
(미란) 물구덩이도 피하고 화재도 예방하고
둘이 붙어 있어도 공기가 솔솔 통하고
(미란) 그런 연애가
곧 올 거야
(영도) 떨고 있던 그날의 당신을 안아 주진 못했지만 [흐느낀다]
그 시간을 이겨 낸 지금의 당신을 안아 주고 싶다는
아마도 가장 따뜻한 위로
(다정) 지금은
좀 괜찮아요?
아팠던 거
[신호등 알림음]
(영도) 나는 당신의 눈물이 하는 말을
당신의 체온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
'나는 네가 미치게 가여워서'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어'
그 밤 당신이 안아 준 사람은
더는 세상에 빚을 질 수 없어
당신조차 잃으려 하는
바보 같은 지금의 나였다
(다정) 두 시간짜리 영화에선 두 시간이 영원이잖아요
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영도) '그런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라'
'너는 잘못한 게 없고'
'그 무서운 상황 견디고 잘 커 줘서'
'엄마는 너한테 많이 고마울 거다'
(미란) '아무리 거지 같은 사랑도'
'이렇게 이쁜 거 하나는 남겨 준다'
넌 그걸 보여 주는 유일한 증거인데
(다정) 나도 다시 할 수 있어요
코뿔소에 또 받히고 떨어지고
그거 다 할 수 있어요
(영도) 세상이 너무 깜깜해서 다 놓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깜빡거리는 불빛 하나만 보여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손끝만 살짝 닿아도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다정) 사람들의 발아래에 떨고 있던 들꽃 하나가
울타리를 만나고
작고 동그란 위로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영도) 당신은
나의 봄이라고
.너는 나의 봄 ↲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