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3
(정민) 난 순전히
내 자유 의지로 이것을 쓰고 있다
[어두운 음악] 2003년 3월 13일 21시
난 김명자를 죽였다
[푹푹 찌르는 소리가 난다]
오래된 과도를 사용해서인지 [명자의 비명]
생각만큼 한 번에 출혈이 터지지 않아서
몇 번을 더 찔러야 했다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그러는 바람에 내 옷에 피가 너무 많이 튀어 짜증이 났고
2018년 6월 3일 14시
풍지 8동 고시촌 뒷골목에서
난 이정범을 찔렀다
[정범의 신음] 왜냐하면
그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숨소리]
난 풍지슈퍼에서 2만 원짜리 식칼을 샀는데
[정범의 신음]
의심받지 않기 위해 도마와 쟁반도 같이 구입했고 [정범이 칼에 푹푹 찔린다]
그리고 2020년 12월 18일 02시 [광훈의 힘겨운 숨소리]
난 조광훈을 죽였다
난 그 건물이 비어 있었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누구라도 나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내가 해야 했던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유서이자 자백이다
난 이제 모든 것을
끝내려 한다
[쿵 소리가 들린다]
[사이렌이 울린다] [자동차 경보음]
[긴장되는 음악]
[어두운 효과음]
(호) 지문으로 신원 확인 됐고요
이름이 최정민이라고 합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진복) 다쳤어?
(영도) 아, 내가 아니라…
(진복) 어떻게 아는 사람이야?
어떻게 거기 있었고?
사진 속에 있던 여자분이 4층 살아요
그분이랑 아는 거고
내 병원에도 한 번 왔었고요
(호) 팀장님 지금 들어가 보셔야 될 거 같은데요?
어떤 여자분이 최정민 자백서를 들고 왔답니다
[어두운 음악]
(성준) 혹시 이 사진 기억나세요?
(다정) 아니요
(성준) 그럼 이 교회는…
저는 여기 갔던 게
이날 딱 하루였어요
저 책을 받으러
이 사진을 어디서 구한 걸까
[성준이 숨을 들이켠다]
(성준) 어린 시절 이야기 들으신 적은 없으시고요?
아니요
(성준) 한 번도요?
자기 얘기를
거의 안 했던 거 같아요
[한숨]
(성준) 최정민이라는 본명은 지금 처음 아신 겁니까?
네
(성준) 혹시 신분증을 보신 적은…
아니요
(성준) 그쪽 친구나 가족을 만났다거나
그럼
채준은 누구예요?
그런 사람이 있긴 있어요?
[성준의 한숨]
(성준) 그거는 알아봐야겠죠
지금으로선
진짜 이름이 최정민이다
거기까지 확인된 상태고 [문이 철컥 열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무전기 작동음]
아이고, 응급 처치를 하다가…
(다정) 아…
(영도) 미국 국적인 건 맞아요?
병원에도 한 번 왔었거든요
굳이 본색을 드러내려고 작정한 것처럼
(진복) 영도야, 일단 네 상황부터 정리를 좀 하자
지금으로선 네가 유일한 목격자고
현장에 너 혼자 있었기 때문에 [한숨]
확인을 좀 해야 되는 부분이 있을 거야
네 차 블랙박스도 제출해야 되고
예
(진복) 너는 일단 오늘 들어가는 걸로 하고
(성준) 아, 화장실은 저쪽입니다
[발소리가 들린다]
(진복) 진술 끝나면 네가 집까지 잘 좀 모셔다드려
감당될 상황이 아닌데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하시다
예
[떨리는 숨소리]
[멀리서 사이렌이 울린다]
[차분한 음악]
[발걸음이 울린다]
(영도)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엄마
(영도) 슬픔도 분노도 주인이 될 수 없는
텅 빈 진공관 같은
숨 쉴 공기도 없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발소리가 울린다]
(영도) 많이 걱정했다
네가 괜찮아서 다행이다
슬퍼해도 되고 화를 내도 된다
이 모든 일에
너의 잘못은 없다
조금만 버티면
모든 건 지나간다
내가 곁에 있어 주겠다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새가 지저귄다]
(영도) 내가 가진 말 중에는
이 얼굴을 위로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시동이 툭 꺼진다]
(영도) 식사 안 하셨죠?
저희 밥 먹고 들어가요
[시끌벅적하다]
(TV 속 기자) 숨진 최 씨는 공사장 10층 높이에서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 건의 자백 유서를 남긴 최 씨는
자신이 작년 12월에 발생한
풍지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밝혔는데요
2018년 순직한 이 형사도 자신이 살해했으며
2003년 미성년자였을 당시 첫 살해를 저질렀다고 시인했습니다
그 외에도 유서에는 [TV 전원음]
[호로록 마시는 소리가 난다]
(영도) 화요일엔 내가 외래를 나가야 돼서
상황이 좀 그렇게 됐어
좋지, 내일 와
아니, 비어 있는 건 2층이고 내가 있는 게 3층
어
어, 그래
내일 아침에 보자
응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가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은하) 뭐 해, 빨리 죽 사 오라니까
너 같으면 지금 뭐가 넘어가겠냐?
괜히 울다가 뭐 먹으면 체해
다정이가 울긴 왜 울어
사귈 뻔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럼 안 슬프냐?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사귀긴 뭘 사귀어 미친놈이 쫓아다닌 건데
그렇게 우기면
뭐가 달라지냐?
(은하) 아, 암튼!
하지 말라고, 그런 소리
[은하가 흐느낀다] 야
왜 네가 울어
등 떠밀었잖아, 내가
안 그래도 쓰레기만 줄줄이 만난 애한테 내가
개쓰레기를 만나라고
[한숨]
그렇게 안 보였는데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
아, 그런 말도 하지 말라고!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철도의 한숨]
(철도) 왔다
[시동이 툭 꺼진다]
(영도) 내가 전화했어요
혼자 있고 싶어 할 거 같은데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서
[콘솔 박스가 탁 닫힌다] 집에 소화제 있어요?
[영도가 부스럭거린다] 원래 약 잘 안 먹어요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무거운 음악] (다정) 잘 먹을게요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멀어지는 발걸음]
- 뭐 하는 거야? - (철도) 다정이가
형 혼자 두지 말래서
(영도) 아휴
나는 괜찮으니까 내려
(철도) 다정이가 형이 그렇게 말할 건데
그래도 같이 가래
[철도가 손잡이를 달칵거린다] (영도) 씁!
일단 내려
(철도) 안 돼 괜찮다고 해도 혼자 두지 말랬어
(영도) 내가 불편해서 그래
내가 그 말도 했거든?
형 연애한 지 100년 돼서
누가 자기하고 같이 자는 거 되게 불편해한다고
[한숨]
[잔잔한 음악]
[물을 졸졸 따른다]
[물병을 탁 내려놓는다]
[컵을 탁 내려놓는다]
[다정의 한숨] [약상자를 부스럭거린다]
[다정이 컵을 탁 내려놓는다]
[냉장고 알림음]
[드르릉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구구빌딩"
[다가오는 발걸음]
- (영도) 왔어? - (하늘) 깜짝이야
(하늘) 야, 장난하냐? 왜 늦어, 무섭게, 귀신 나온다며
(철도) 어? 누구…
하늘이
(영도) 2층 보러 온 내 친구
남잔데…
여자라고 한 적 없는데
아…
(하늘) 건물주 아드님이구나? 네가 과외 했던
안녕하세요, 서하늘입니다
아, 예
(철도) 박철도예요
이름이 참
하늘하늘하시네요
철도 씨는 이름이 참 칙칙폭폭 하세요
[하늘의 웃음] (철도) 아, 네
(하늘) 승원이 연락 받았어?
- (영도) 씹었어 - 잘했어, 얘는 좀 씹어 줘야 돼, 어?
- 참 나 - (영도) 밥은? [문이 철컥 열린다]
(다정) 아니야,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엄마도 너 못 가는 거 알아 신경 쓰지 마
응, 끊어
[휴대전화 조작음]
[어색한 웃음]
- 누구? - (영도) 아, 깜짝이야
(영도) 아이, 야…
얼굴의 상처는 또 뭐야?
(하늘) 아, 이거?
어제 고릴라한테 할퀴여 가지고
너 동물 병원에서 고릴라도 봐?
고양이 환자야
고씨고 이름이 릴라인데
(하늘) 야, 사진 보여 줄까?
봐 봐, 올 블랙 캣 초딩인데 완전 귀엽게 생겼다?
발바닥 젤리도 까만색이야
[애교스럽게] 흠, 그랬어?
(영도) 아유, 맙소사, 맙소사
(하늘) [애교스럽게] 나도 보고 싶었어
야, 봐 봐, 귀엽잖아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영도) 잠은 좀 잤어요?
고마워요
따뜻한 거 마시고 싶었는데
아, 차가워
[멋쩍은 숨소리]
싸늘히 식은 커피 별로 안 좋아하시는구나
미리미리 준비했더니
(다정) 다시 갖다줄게요
다시 주고
저번처럼 또 뭐 시키려고 그래요?
(영도) 이번엔 옥상에 텐트를 친다거나
약속 없으면 강릉 갈래요?
네
왜냐고 안 물어요?
알 것 같아서요
지금 바로 갈 건데
그래요
[웃음]
아, 혹시 알 거 같다는 이유가
내가 혼자 있기 무섭다거나
(다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고요
원래 엄마하고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안 간다고 하면
뭔 일 있는 거 들킬 거 같고 [다가오는 발걸음]
그렇다고…
음, 혼자 운전해서 간다고 하면
(영도) 누가 엄청 걱정하면서 못 가게 할 거고
근데 둘은 가게를 못 비우고
다른 누굴 데리고 가려면 이 상황을 다 설명해야 되는데
나한텐 안 그래도 되고
갈게
그리고 강다정 씨는
내가 혼자 있는 것도 걱정이 되겠죠?
[다정이 가방을 툭 든다] (다정) 간다
(철도) 올 때 반건조 오징어! 많이!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 아! - (은하) 쉿
[문이 달칵 닫힌다] 쟤가 어디 신나서 놀러 가니?
형이 평소처럼 대해 주라 그랬어
아, 오징어같이 생긴 게 오징어 타령은, 진짜
(철도) 하, 그럼 뭐라 그래?
죽어도 싼 놈이 죽었으니까
똥 밟았다 생각하고 바다 가서 펑펑 울고 오라 그래?
(은하) 아, 자꾸 운다고 좀 하지 말라고
다정이가 없던 일로 하고 살 거랬어
그러니까 그냥
우리도 그렇게 해 주면 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철도의 어이없는 숨소리]
(철도) 그게 되겠냐?
[은하의 한숨]
[자동차 리모컨 조작음]
(영도) 타요
(다정) 타세요
잠 못 잤잖아요
난 아까 너구리 한 마리 들어오는 줄
어유, 다크서클이
강다정 씨는 지금 되게 말 잘하는 토끼 같아요
(영도) 눈 시뻘게서
그래서 너구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라고요?
토끼보단 낫죠
그 친구는 거북이하고 경주하다가도 자는데
그때 한 번 실수한 걸로 아직까지 토끼 무시하면 안 되죠
(영도) 너구리한텐 생긴 걸로 그러면 안 되죠
가위바위보
[자동차 리모컨 조작음]
[무전기 작동음]
팀장님 정말 괜찮은 거예요?
(호) 식사도 계속 안 하시고
(성준) 복잡하시겠지
잡아서 갈가리 찢어 놓고 싶은 놈이었는데 [마우스 조작음]
너무 편하게 죽어 버렸으니까
(호) 병원 기록 보니까
영도 형님은 이때부터 파악하고 있었더라고요, 여기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의심된다고
(성준) 언제부터 알았다고 형님은, 씨
가족 관계는? 다 알아봤어?
진짜 아무도 없던데요?
(호) 부는 기록도 없고 모는 사망했고
형제고 뭐고
이런 거 보면 또
쯧, 아휴
(진복) 이런 거 보면 뭐
동정하게?
정범이도 고아였어
부모 형제 없고 입양되고 파양되고 그랬어도
착하게 잘만 살았어
나쁜 새끼들한테 함부로 핑계 만들어 주지 마, 알았어?
(호) 네
(진복) 유서에 조각 지문 나온 건?
(성준) 그걸로 조회는 안 되고요
얼룩덜룩한 건 도시 먼지래요 매연 같은 거
사진하고 블랙박스 분석은?
맡긴 지 만 하루도 안 됐는데요
보채서 빨리 받아 내
(호) 네
(성준) 어디 가세요?
[전철 경적] [진복의 한숨]
[건널목 경보기가 땡땡 울린다]
[차분한 음악]
[전철 소리가 들린다]
(진복) 증거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데
이거 맞는 거냐?
내가 하도 범인 못 잡으니까
네가 나한테 다 모아서 갖다준 거야?
근데 왜 난 이게 찐이 아닌 것 같냐?
내가 이상한 건가?
내 손으로 못 잡으니까
이 새끼가 그 새끼가 아니었으면 싶은 건가?
정범아
진짜 범인 맞으면 꿈에 한 번만 나와라
딱 한 번 나와서
'형, 맞으니까 이제 그만해'
그래 주고 가면…
[창문이 탁 닫힌다]
(다정)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그렇지, 그런 것들이 있지
'휴게소'
기름 넣어야 되지 않아요?
아니요, 아직
뭐 먹을래요?
버터감자
맥반석 오징어, 소떡소떡
감자 덕지덕지 콘도그
아니면 뭐, 싸늘히 식은 핫바?
(영도) 배고파요?
아니요
스무고개 할래요?
말 안 해도 돼요
닥치라는 건가?
강다정 씨는 남들 위해서 말하잖아요
(영도) 분위기 어색할까 봐
내가 기분이 안 좋다고 상대가 오해할까 봐
지금은 옆에서 운전하는데 혼자 편하게 있는 거 같아서
우아, 방금 표지판 봤어요?
휴게소까지 2km 남았다는 거요?
(다정) 아니요, 분석질할 거면 닥치라는 거요
[영도가 피식 웃는다]
침묵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강다정 씨가 그걸 책임져야 되는 건 아니에요
어쩌나, 나는 옹알이 때부터 말이 많았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전기세 나가게 왜 계속 라디오 켜 놨냐고
엄마한테 뭐라 그랬대요
그랬겠죠
[영도가 옹알이 흉내를 낸다]
그럼 엄마가 웃으니까
(영도) 영유아도 본능적으로 엄마가 행복한 걸 느끼거든요
진짜 편한 친구랑 있을 때는 말 잘 안 하죠?
아기였던 적이 있긴 해요?
(영도) 그럼요, 얼마나 귀여웠는데
(다정) 애가 좀 이상했을 거야
엄마가 기저귀 갈아 주려고 하면
'어머니, 매번 젖은 기저귀 갈아 주시느라'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엉덩이가 불편한 건 어머니 책임이 아니에요'
근데 엄마가 못 알아듣고 기저귀를 확 벗기면 애가 그랬겠지
'저런, 응애'
[영도의 웃음]
[다정의 헛웃음]
뭘 봐요, 운전 중엔 앞을 봐야지
[휴대전화 벨 소리]
얼씨구? 전화도 왔네
(영도) 잠깐만요
[화면 조작음]
또 왜
(승원) 어, 야, 나 지금 너희 집 간다
(영도) 그래, 조심히 와 근데 난 없어 [남자가 말한다]
(승원) 아, 예
아, 오케이, 집이 아니면 병원이겠군
(영도) 강릉 가는 길이야, 운전 중이고 나중에 통화해
(승원) 아, 안 돼 오늘은 꼭 답 들어야 돼
너 라디오 할 거지?
(영도) 시간이 안 된다니까
(승원) 아, 생방 안 되면 녹음도 해 드린다니까요
파업 때문에 외래 시간 더 많아졌어
- 그거 말고도… - (승원) 아, 야
아, 그냥 좀 해!
야, 이렇게 조르는데 나 같으면 그냥 좀 해 주겠다, 진짜
(영도) 누가 보면 뭐 아무것도 안 한 줄 알겠네?
(승원) 아, 근데 이번엔 왜 안 하냐고
너 거기 DJ 남자라서 그래?
참고로 거기 PD 여자고 싱글이야
근데 걘 안 돼, 내가 찍었어, 내가
아, 잠깐만, 근데 걔 또 주영도 좋아하는 거 아니야?
[발랄한 음악] (영도) 얘 왜 이래?
야, 왜 헛소리를 하고 그래
(승원) 헛소리? 야
시사 프로 인터뷰 시켰더니 거기 조연출이 반해 가지고
방송국 복도에서 울며불며 고백을 하지 않나
드라마 자문 시켰더니 여주랑 반해서 냅다 결혼을 하지 않나
주영도 네가 얼마나 끼를 부리고 다녔으면
- 야, 야, 야 - (승원) 왜, 뭐
라디오 한다고?
(영도) 알았으니까 일단 좀 끊어
[작은 소리로] 핸들은 두 손으로
(승원) 너 근데 강릉은 왜 가냐?
오, 우리 끼영도
지금도 혹시 어떤 여자 옆에서 끼 부리고 있는 거 아니야?
[화면 조작음]
미친놈이에요, 예
고등학교 같이 다녔는데
얘는 문과고 나는 이과
상당히 거리가 있죠
그, 삼총사지만 실제로는 2 더하기 1 같은, 뭔지 알죠?
(영도) 하늘이는 진짜 친한 거 맞아요 동물 병원, 2층
아, 이거 내가 말 안 했었나?
암튼 이 새…
아, 이거는 저, 방송…
바, 방송국 다니는 새… 방송국 다니는 애인데
친구들 다 막
방송 막 여기저기 다 갖다 쓰고
(다정) 말 안 해도 돼요
침묵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매번 주영도 씨가 책임져야 되는 건 아니고
아유, 저런
(다정) 물론 이 경우에는
끼를 어떻게 부리고 다녔는지
좀 설명이 필요할 거 같기는 한데… [부드러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알았어요, 안 할게요 [음악 소리가 줄어든다]
[다정이 당황한 숨을 내뱉는다]
대신
어떻게 끼 부렸는지 한 번만 보여 줘 봐요
그런 적 없고
또 끼가 뭔지도 모르고
(다정) 아,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여자들이 막 알아서 그랬다?
[숨을 들이켠다]
어, 저, 방금 표지판 봤어요? 닥치라고 돼 있는 거?
어? 아닌데?
(다정) 통행료로 끼를 준비하라고 돼 있던데?
안 자요? 좀 자지
(다정) 어쩌나 토끼가 잠이 다 깨서, 응?
어머나, 아저씨 낚시하시네 미끼는 뭘 쓰시나?
어유, 저 차 끼어든다
새끼 갈매기가 끼룩끼룩
끼이
끼이
[부드러운 음악]
[영도가 피식 웃는다] [다정이 살짝 웃는다]
[영도가 숨을 후 내뱉는다]
[갈매기 울음]
(다정) 갈 만한 곳 알려 드릴까요?
(영도) 천천히 검색해 보죠, 뭐
출발해야겠다 싶을 때 전화해요
(다정) 아, 혹시라도 피자 먹고 싶으면
아, 괜찮아요
(다정) 예, 다른 집 가서 사 드세요
우리 엄마한테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하는 거보다는
[다가오는 오토바이 엔진음] 그게 훨씬 나을 거예요
[함께 당황한다]
[타이어 마찰음]
[시동이 툭 꺼진다]
[흥미로운 음악]
몇 살?
나이는
별로 안 많대
엄마
[갈매기 울음]
[다가오는 발걸음]
(미란) 귤을 깠네?
내가 먹은 거야, 내 귤, 나 혼자
[미란이 부스럭거린다]
(미란) 귤쟁이 아니야?
음, 이리 줘요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봐도 되잖아
세상에 미친놈이 너무 많아
주위에 없으리란 법도 없고
마셔요
(영도) 아유, 저런
왜, 하는 일이 없나?
아니요, 저…
병원에 있습니다
많이 아파?
아니요, 환자 아니고 의사입니다
아, 그럼 의사라고 딱 말하면 되지
(미란) 뭘 대단히 비밀스러운 일을 한다고
물러 터진 귤같이 대답을 굴려?
요즘 의사들 막 파업하고 난리라서 내가 욕할까 봐 그래요?
의사인 게 창피해?
아, 그건 아니고요, 제가 버릇이…
아닙니다
(다정) 엄마, 주영도 씨 빨리 가야 돼 볼일 있대
(미란) 무슨 일인데?
아, 예
제가 여기 아는 분이 있는데요
(미란) 아는 사람 누구? 이름이 뭐야?
아, 그런 간단한 거짓말도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쯧
합격
- 네? - (미란) 휴게소에서 뭐 좀 먹었나?
- (다정) 어 - (영도) 아니요
(영도) 예
(미란) 기다려
(다정) 난 뭐 할 거 없어?
[옅은 신음]
[전화벨이 울린다]
(영도) 전화 왔는데요
(미란) 받고 싶으면 받든가
예, 여보세요?
여기는 저, 피자 가게입니다만
(가영) 여기 해강 해수욕장 앞이고요 피자 서른 판 주문할 건데요
서른 판이요?
(가영) 광고 촬영 하느라 사람들 많이 모여 있으니까
거기로 갖다주시면 되고요
제가 차에서 내리기가 좀 그런데
가게 앞으로 나와서 카드 긁어 줄 수 있죠?
여보세요?
(가영) 여보세요?
[흥미로운 음악]
여보세요?
여보세요, 헬로? 안 들려요?
(영도) 저, 혹시 성함이…
피자 시키는 데 이름이 필요해요?
(가영) 거기 폰 번호 안 떠요?
- 아, 예, 서른 판이요? - (가영) 네
아, 그리고 누가 시켰냐고 물어보면
패트릭 팬이 조공하는 거라고 하시면 되고요
잠시만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뭐야?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 웬일이래? - (영도) 너 맞지? 피자 서른 판
(가영) 여보세요?
나라고
뭐야, 너 거기서 뭐 해!
주문 전화야? 장난 전화야?
예, 서른 판요
- (미란) 장난이네 - 광고 촬영 하고 있대요
- (미란) 그래? 결제는? - (가영) 여보세요, 여보세요
(가영) 여보세요, 주영도? [통화 종료음]
(영도) 아, 아, 예
저기, 그럼 그쪽으로 지금 가겠습니다, 예
[영도가 수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아, 저, 결제는 제가 지금 가서 받아 오겠습니다
(다정) 내가 갈게요, 어디로 온대요?
(영도) 아니요, 아니요 저, 내가, 내가 갈게요
(다정) 아…
(미란) 응
[의미심장한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영도) 어떻게 된 거야?
(가영) 헬로?
난 너무 설명이 가능한 상황이지
광고 찍는 남친 쫓아와서 음흉하게 숨어서 지켜보는 여친
(영도) 사귀기로 했구나? 잘됐네
나 방금 그 여자 어디서 본 적 있거든?
- 그때 옥상에서 봤지 - (가영) 아!
사귀는 거야?
(가영) 그래서 내 화분 거기다 준 거고?
같이 살아? 이미 저 집 사위니? 너 결혼하는구나?
아니고, 아니고, 그냥…
다 아니야, 그럴 만한 상황이 있어
저 여자도 불쌍한 사람이야? 죽고 싶대?
(가영) 아니면 너 좋아 죽겠대?
다 아니야, 일단 카드 줘 봐
빨리 가서 계산해야 돼
(영도) 저기 사장님 되게 무서워
싫어, 네가 계산해
나 기분 더러워졌어
갑자기 왜 또
너 지금 피자 서른 판
그걸 내, 내가 왜?
몰라
기분이 더러울 이유가 없는데 기분이 더러운 게 기분 더러워
내려, 나 갈 거야
[영도의 한숨]
일단 알았어, 운전 조심하고
[멀어지는 발걸음]
[밝은 음악]
[시원한 숨소리]
(감독) 컷, 오케이!
(미란) 피자 왔어요, 피자! 맛있는 피자 알…
- (다정) 엄마, 엄마 - (미란) 에이, 식기 전에 먹어야 돼
(미란) 피자 왔습니다!
자, 맛있는 피자 드세요
- (미란) 어, 여기요 - (스태프1) 피자 받아, 가서
[미란이 말한다]
[숨을 후 내뱉는다]
[주변이 분주하다]
(패트릭과 스태프2) - 뭐야? - 어? 오빠 이름으로 왔던데요?
- 내 이름으로? - (스태프2) 네
(스태프3) 패트릭이 쏘는 거래!
(스태프4) 와, 박수! 와! [스태프들의 환호와 박수]
잘 먹겠습니다!
(스태프들) 잘 먹겠습니다!
(다정) 엄마, 엄마, 엄마 엄마가 사는 거 아니야
우린 배달만 왔어
(미란) 음, 좋다
어, 아까 저기 가운데 있는 사람이 유명한 거지?
(다정) 엄청 유명한 아이돌
티켓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미란) 등짝에 사인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다정) 엄마, 제발
(미란) 그렇지?
아이돌 사인 받기엔 너무 오래 살았지?
(영도) 아니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
(미란) 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쁜 말만 골라서 하고 있어! [밝은 음악]
[다정의 놀란 탄성]
[다정의 비명]
[다정의 힘겨운 탄성]
[영도와 다정의 힘겨운 신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미란의 한숨]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어, 왜?
(다정) 너 강릉 집에 있는 옷
내가 누구 좀 빌려줘도 되지?
(태정) 어
누구한테?
엄마가 웃다가 밀어서 바다에 빠진 사람
(태정) 아이고, 힘 조절 좀 하지
일해, 서울 가서 전화할게
(태정) 응
[휴대전화 조작음]
[문이 탁 닫힌다] [다가오는 발걸음]
아, 어서 오세요
[컵을 달그락거린다]
(다정) 잠깐 있다 가도 되죠?
(영도) 좋죠
[영도가 숨을 깊게 내뱉는다]
마음이 제자리로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다정) 아니요
난 이제 그 사람한테
내 시간 1분도 안 쓸 거예요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잖아요
진짜 이름도 몰랐는데
난 그냥
어디에서
뭐가 잘못됐을까
강다정 씨 잘못은 없어요
[차분한 음악]
어디에 뭔가는 있었겠죠
그게 주영도 씨 말처럼
내가 아직 끌고 다니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든
점쟁이가 말한 사주팔자 때문이든
아니면
진짜 내가 무슨…
집에 차 키를 놓고 와서
불도 안 켜고 다시 들어갈 때 있잖아요
캄캄한 데서 뭐에 걸려 넘어지고 나서 불을 켜면
내가 뭘 다 잘못한 거 같아요
'책도 안 읽으면서 책상은 왜 산 거야'
'차 키는 저기 걸어 놨어야지'
'센서 등 고장 난 건 왜 안 고쳤어'
그냥 넘어진 거예요
누가 기다릴까 봐 서두르다가
더 안 다쳐서 다행인 거고
다음부턴 불 켜고 움직이면 되는 거고
너무 나쁘지는 말지
슬플 수라도 있게
그렇게 나쁜 짓은 하지 말지
[훌쩍인다]
좀 울 수라도 있게
울지도 못하게, 진짜…
[다정이 흐느낀다]
(라디오 속 DJ)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절 배신했다는 것보다'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드네요'
(DJ) '저한테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아프고 힘든데'
'사람들은 잊으라고만 하네요'
'더 이상 일어날 힘도'
'누군가를 만날 힘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매일 웹툰만 보고 누워만 있어요'
'가족들도 언제까지 입 다물고 피할 거냐고 그러고'
'저도 이런 제가 너무 답답한데'
'아직은 입 벌리는 것도 너무 힘드네요'
네
(영도) 예
보통은 그렇게 말하죠?
음, '상처가 생기면 다 열어서 제대로 봐야 한다'
'그래야 덧나지 않는다'
맞는 말이지만
모든 사람한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잔잔한 음악] (다정) 기본 업무 외에 호텔에서 차출해야 하는 인원이 따로 있나요?
(비서) 어, 버틀러 서비스에 대해서 따로 요청하진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겠죠
일단 시간대별로 강다정, 허유경 컨시어지 팀 두 분
[비서가 말한다]
(영도) 마음을 다쳤다는 건 비유가 아닙니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진짜 외상을 입은 거예요
문제는
환자 본인도 그걸 잘 모른다는 거죠
피가 안 나니까
[가방을 직 연다]
'그 일에 대해선 생각도 하기 싫어 없었던 일처럼 살 거야'
지금은 그래도 됩니다
이분은 교통사고로 치자면 팔다리, 갈비뼈 다 부러진 건데
'너 당장 일어나 걸어야지 왜 누워 있어'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신 거예요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다정) 나 왔어
(은하) 아, 왜 이렇게 늦어? 밥은?
(다정) 호텔에 일이 좀 있어서
밥은 먹었지
올라간다
(철도) 야, 내 오징어는?
야, 깡다, 내 오징어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은하의 한숨] 아, 내 오징어!
뭐
(은하) 골라 봐
(철도) 뭔데
(은하) 너한테 필요한 거
(철도) 이거
[은하가 달그락거린다]
[헛웃음]
[철도의 아파하는 신음] [성준이 하품한다]
[의미심장한 음악]
(성준) 오케이, 스톱
[어두운 효과음]
(성준) 최초에 최정민이 넣어 놓고 간 게
24일 22시 10분이고요
이게 25일 00시 35분인데
보시면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라커를 다시 열고 있고요
유서, 흰 봉투를 넣고 있는 게 보입니다
얼굴 최대한 보이는 걸로 잡은 게 이 사진이고요
[전철 알림음] (호) 여기요
(노숙자) 감사합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거는
어떤 남자가 5만 원을 주면서
저기다 넣어 놓으라고 해서…
(진복) 아, 그러셨구나
그, 뭐라고 하면서 시켰어요?
자기가 빨리 어딜 가야 된다고
(노숙자) 안에 들어갈 시간이 없다고
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노숙자) 적어 줬습니다 그, 명함에다가
혹시 그 명함 가지고 계신가요?
[동전이 잘그락 떨어진다] [진복이 당황한다]
(진복) 그때 받은 명함이 이거 맞아요?
(노숙자) 예, 예
(호) 혹시
이 사람 알아보시겠어요?
(노숙자) 아, 예, 마, 맞아요, 이 사람
저…
손바닥 좀 볼 수 있을까요?
(진복) 아이고
그때 그 편지 봉투
그 안에 든 종이도 만지셨어요?
현금이 들어 있나 싶어 가지고
만지고 다시 넣었는데
(영도) 이제 나하고 사건 얘기 해도 되는 거예요?
(진복) 그럼
(영도)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답답해
뭐가 징그럽게 너무 다 맞아떨어져
(진복) 이상하다 싶은 게 생겨도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나타나서 다 풀어 줘
아무리 바빠도
자기 유서를 노숙자한테 시켜서 넣어 놓는다?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한테 줄 선물에다?
왜?
근데 또 증거는 맞아
노숙자 주머니에 증거품 다 들어 있어
[진복이 잔을 탁 내려놓는다]
저는 최정민이 진범이 아닌 거 같아요
(영도) 신문에 난 것만 봐도 그렇고
내가 최정민을 본 것만 해도 그렇고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일단 지금 시점에 죽을 이유가 없고
네가 네 눈으로 봤다며
자기가 뛰어내리는 거
타살성 자살도 있죠
유서가 있잖아
자기가 한 짓 줄줄이 자백한 거
자필도 아니잖아요
지문은 있어요?
노숙자가 만져서 뭉개졌어
그 집 프린터에서 인쇄된 건 확인됐고
유서도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쓰는 문장이 아니었어요
(영도) 사건을 말하는 시점도 이상하고
(진복) 정신병 약은?
집에도 있고 몸에도 남아 있고
정신 오락가락했고 순간적으로 결심했으면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약도 아니고
누군가 음료수에 녹였으면 자기도 모르게 먹었을 수도…
(진복) 사람 죽인 놈이 처방전 없다고 약 못 구하겠냐?
(영도) 만들어 놓은 증거를 따라가면 반박할 수가 없죠
(진복) 자백했고 증거 있고 정범이 찌른 칼도 나왔잖아!
정범이 찔러 놓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
아직 숨 쉬고 있는데
핸드폰, 수첩만 챙겨서 길가에 버려두고 갔다고
자기가 자기 유서에 줄줄이 써 놨잖아
근데 왜 아니야
어떻게 아니야, 네가 뭘 안다고!
[한숨]
만약에
만약에 진범이 아니면요?
(영도) 타살성 자살이면요?
[무거운 음악]
[발소리가 울린다]
[진복의 거친 숨소리]
(진복) 정범, 정범이는?
정범이는?
말을 해! 어떻게 됐냐고, 씨
[떨리는 숨소리]
사, 살아 있지? 어?
뇌사래요
(성준) 씨…
못 깨어난대요
[성준이 흐느낀다]
[영도와 친구들이 대화한다]
(주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야, 영도야
(영도) 예, 선배
너 심장 받게 됐다
[차분한 음악] - (승원) 시, 심장? - (하늘) 아, 됐다
[하늘이 흐느낀다] (승원) 시, 심장?
아, 심장, 심장!
아유,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늘) [흐느끼며] 아, 영도야
아, 진짜
[밖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진복) 정범이 심장을 받았다고요?
(영도) 예
무슨 마음으로 여기 온진 알겠는데
난 아직 보기가 좀 그러네요
(진복) 그쪽이 잘못한 건 없지만서도
[진복이 술을 졸졸 따른다]
이해합니다
[술병을 툭 내려놓는다]
[잔을 탁 내려놓는다]
(진복) 의사면 좋은 일 많이 해 줘요
정범이 대신에
(영도) 예
"경찰 이정범"
[다가오는 발걸음]
[차분한 음악]
(진복) 혹시 꿈에서 누가 범인인지 말해 줄까 봐
내가 이걸 입고 자는데
한 번도 내 꿈엔 안 나와요
딴것도 아니고 심장이라니까
혹시 꿈에서 뭐라고 하면
개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꼭 좀…
[영도가 진복의 손목을 탁 잡는다]
(진복) 왜 기다리고 그래
[진복의 힘주는 숨소리]
(영도) 담배 좀 끊어요
잔소리 좀 끊어요
[진복이 라이터를 달그락거린다]
(진복) 제보는 누가 했을까?
피해자 유족인가?
이 사건들
이렇게 묻어 버리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죠
제보자는
최정민의 집 주소도 알고
그 빌딩에 자주 가는 것도 알고
그럼 너하고 그 4층 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진복) 네 말대로라면
자백한 사건들의 진범이 따로 있고
그 진범이 제보자일 가능성이 있다면
두 사람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고
그래서
나 이번 일
처음부터 다시 파 볼 생각이다
[진복이 라이터를 달그락거린다]
[댕그랑 소리가 들린다]
[뽑기 통이 댕그랑 나온다]
[동전을 잘그락 내려놓는다]
아, 또야
(다정) 아씨… [뽑기 통을 탁 내려놓는다]
아줌마, 여기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것만 나와요
(주인) 뽑기가 다 그렇지
뭘 뽑길 원하는데?
(다정) 여기 닥터 할로우
(영도) 잘 입었다고 전해 주세요
(다정) 네
[봉투를 툭 내려놓으며] 아
쟤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영도) 그러네요
이제 물은 안 새요?
(영도) 다행히
(다정) 아, 맞는다
[차분한 음악]
닥터 할로우는 자기 심장을 나눠 주잖아요
그거 한 조각이면 벌벌 떨던 사람도 따뜻해지고
죽고 싶었던 사람도 살고 싶어지고
나는 스파이더맨 좋아하는데
[다정이 피식 웃는다]
(다정) 그 심장만큼
국밥도 따뜻했으니까
소화제도 그렇고
사탕도
강릉 갔던 것도
다 고마워요
말 안 해도 다 알아내는 사람인 거 알지만
나도 미안하다는 말 하고 싶었는데
내가
미리 제대로 얘기를 해 줬으면
환자였잖아요
(다정) 호텔 손님 개인 정보였다면 나도 말 못 했어요
주영도 씨는 충분히
다 해 준 거예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다정이 숨을 들이켠다]
(다정) 혹시
'모르는 사람하고 술 마시고 싶다' 그런 마음 아세요?
(영도) 부끄러울 것도 없고
다시 만날 일도 없으니까
다음 날
'야, 너 언제 화장실 변기하고 그런 사이로 발전했냐'
그런 놀림 받을 일도 없고
[감성적인 음악]
(다정)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 갑자기 같이
[살짝 웃으며] 너무 많이 뭐를 해서…
네, 그렇게 합시다
말하기도 전에 또 뭘 어떻게 안 거야
그냥 아래층 사는 사람처럼 할게요
'괜찮냐, 잠은 좀 잤냐'
'어머님은 누굴 또 바다에 패대기치셨냐'
그런 거 안 물어보고
어쩌다 택배 잘못 오면 갖다주고
샤워기 박살 내고
처치 곤란한 화분 떠맡기고
그런 것도 괜찮아요
씁, 사실
치우고 싶은 화분이 하나 더 있긴 한데
그럼 이제 우리 안 불편한 거죠?
[통화 연결음]
(가영) 피자값 주려고 했더니 전화 안 받네
주영도 돈 많이 벌었나 보네
[휴대전화 조작음] (매니저) 예, 누나, 뭐라고 하셨어요?
(가영) 어, 아니야
나 라디오 좀 틀어 줄래? TVC
(매니저) 예
[화면 조작음]
[잔잔한 음악]
(라디오 속 영도) 누가 다가오면 갑자기 그 사람이 불편해진다는 말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까 봐
너무 무섭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라디오 속 영도) '이 사람이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문이 탁 닫힌다]
'진짜 나를 다 알게 되면'
'실망해서 떠나가겠지'
아니면
[문이 달칵 닫힌다] '그렇게 힘들어 놓고'
'또 내가 누굴 좋아하려고 그러는구나'
(라디오 속 DJ) 와, 저 그거 너무 뭔지 잘 알아요
[피곤한 숨소리] 이제는 누가 좋아지려고 하면
'와, 두근두근, 너무 좋다' 이게 아니라
'아, 망했네'
'아, 나 큰일 났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주영도 선생님도 그런 편이세요?
(라디오 속 영도) 글쎄요
전 뭐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피식 웃는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소리가 울린다]
[한숨]
[헛웃음]
큰일이군
(유경) 체크인 저녁 8시쯤 하셨고요
아주 순조롭게
이후에 병원 측 분들과 함께 한식당에서 디너 진행됐고
(다정) 식사 관련해서는 별문제 없었어?
앨리슨 켄트 씨 비건 메뉴 요청하셨던 건?
비건, 베저테리언, 땅콩 알레르기
(유경) 유랑 불량증?
유당 불내증
[혀를 딱 튕긴다] 그거
(유경) 락토스 인톨러런스까지 모두 문제없었고 다들 잘 드셨고
왜, 닥터 중에 한국계 미국인 있잖아요 닥터 체이스
오히려 그분이 매운 걸 못 드시더라고요
김치는 아예, 으음
그리고
아, 맞는다
비서 중의 한 명이
겁나 잘생겼어요
[웃으며] 역시 비서실 쪽이 와꾸가, 와…
[다정이 손가락을 딱 튀긴다]
(다정) 와꾸는 우리말 아니고요 쓰지 마시고
[발랄한 음악] (유경) 미스터 추
나 이거 명함도 받았는데 이거 시그널 맞죠?
아, 농담이에요
내가 아무리 굶주렸어도 직장에서 막 그렇게
그래도 되지 않나?
법법 아니잖아요
범법
공적으로 받은 번호인데 사적으로 전화하면 안 돼
농담이에요, 어떻게 전화를 해요
문자해야지, '자니? 나의 태양'
오, 가야겠다, 나 퇴근
[휴대전화 진동음] (다정) 가
[유경과 다정의 웃음]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네, 강다정입니다
11층 8호 객실이요?
아, 네, 지금 제가 먼저 확인하고 하우스 팀에 연락할게요
네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닫힌다] 안녕하십니까?
[어두운 음악]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어린 다정) 근데 너
아까 왜 내 머리 만졌어?
왜 내 머리 만졌냐고
(권사) 얘들아, 사진 찍자
어서 모이세요
어서, 어서!
(아이들) 네!
(아이) 네 머리 만진 거 나 아니야
바보
(어린 다정) 뭐래
내가 자기 장난감이야?
[비밀스러운 음악]
(다정) 도플갱어
그런 게 실제로도 있을까요?
(진복) 말도 안 되게 죽은 놈이 있고
[의미심장한 효과음] 그거하고 똑같은 얼굴이 나타났는데
확인을 해 봐야 될 거 아니야 [거친 숨소리]
(가영) 주영도 마음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영도) 방탄유리 아니고 그냥 유리면 어때요
깨지면 병원 오면 되지
(체이스) 당신도 나 궁금해하지 마
두 번 다신
(영도) 우리
시간 얼마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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