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7
(추 비서) [영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 (베일) 이봐, 이럴 시간 없어 - 네, 알고 있습니다
(베일) 지금 당장 이 상황을 처리해
-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 (베일) 그럴래?
(추 비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베일) 서둘러
[다가오는 발걸음]
(추 비서) [한국어] 저, 닥터 체이스하고
연락이 안 돼서 그러는데요 혹시…
아, 잠시만요
[수화기를 달그락 든다] [전화기 버튼음]
[어두운 음악]
[카드 인식음]
(다정) 창비동에 있었던 [종소리가 울린다]
나눔제일교회라고 들어 보셨어요?
[발소리가 울린다]
(명자) 얘가 걔야?
[떨리는 숨소리] 이름도 없다는?
(어린 다정) 근데 너
아까 왜 내 머리 만졌어? [어두운 효과음]
왜 내 머리 만졌냐고
네 머리 만진 거
나 아니야
뭐래
[멀어지는 발걸음]
(다정) 닥터 체이스
제 말 들리세요, 닥터 체이스?
괜찮으세요? 눈 좀 떠 보세요
닥터 체이스 [체이스의 놀란 신음]
[다정의 신음] [긴장되는 음악]
[다정의 신음]
[체이스의 힘주는 신음]
[다정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뛰어오는 발걸음]
(베일) [영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기절했다는 거야?
- (베일) 술을 마셨어? - (유경)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정이 콜록거린다]
(유경) 믿을 수 없어요
[한국어] 이거는, 이거는 폭력이고 이거는 고소해야 되는 거예요
(다정) 어디다 전화하려고
(유경) 보고해야죠 쫓아내라고 해야죠
드러그 테스팅 해야죠
그 사람 매니저님
실직시킬 수도 있었어요
실직 아니고 질식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정) 중요하지
유경 씨 그렇게 계속 우리말 공부 안 하면 실직할 수도 있어
[유경의 한숨] 손님이 돈가스 달라는데 독가스 줄 수도 있고
(유경) 공식적으로 말하는데
나 이거 이대로 넘어가는 거 완전 반대예요
공식 입장 잘 들었고요
(다정) 그만 진정하고 나가서 일 보세요
[유경의 답답한 숨소리]
[어두운 음악]
[문이 달칵 닫힌다]
[영상 소리가 흘러나온다]
[하늘의 웃음]
아, 되게 웃기네
야, 너 왜 이런 프로 못 만드냐?
넌 왜 새처럼 못 나냐?
네 앞에서만 안 나는 거야
나도 너한테만 안 보여 주는 거야
아, 네 똥이 참으로 굵구나
(영도) 어 [문이 달칵 열린다]
[하늘의 웃음] [문이 탁 닫힌다]
(영도) 어, 어
[하늘의 신음]
- (영도) [작은 소리로] 가 - (하늘) 뭐
(영도) 그래서 강릉 가는 중이야?
(철도) 어, 형 시간 돼?
내가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
다른 사람은 없어? 강다정 씨나
(승원) 강다정?
- 강다정 - (승원) 정
(하늘과 승원) 우유 빛깔 강다정
(철도) 다정인 오전에 근무 있어서 점심 지나야 올 수 있대 [하늘과 승원이 계속 놀린다]
(영도) 그래, 그럼
일단 내가 뭐라도 하고 있을게
[파도가 철썩인다] [뚜껑을 달칵 딴다]
(미란) 속은 어때?
(은하) 괜찮아요
(미란) 기분은 여전히 별로지?
(은하) 많이 나아졌어요
(미란) 그래
원래 오전에는 행복하기 힘들대
준호랑 헤어지고
아무도 안 만났어?
(은하) 네
연애하는 거 겁내지 마
세상 이별이 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미란) 그랬으면 사람들 다
서른도 되기 전에 폭삭 늙어서 쭈글쭈글할걸?
[한숨]
[잔잔한 음악]
나만 힘든 거예요?
(미란) 신나는 소식 말해 줄까?
너
두 번 다시 그런 연애 못 해
신나는 소식이라면서요
똑같은 거 두 번 하면 뭐 하니?
가슴에다 투명 창 내고 바닥까지 다 보여 주고 물불 안 가리고
(미란) 그런 연애만 멋있는 거 아니야
물구덩이도 피하고 화재도 예방하고
둘이 붙어 있어도 공기가 솔솔 통하고
그런 연애가
곧 올 거야
(여자1) 아바라에 샷 하나 추가해 주시고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두는 예가체프로 생크림 가득 올려 주시고 시럽은 반만
얼음 양은 너무 많지 않게요
결제는 모바일 쿠폰으로 해 주시고 도장은 여기 찍어 주세요
뭐 드신다고요? [익살스러운 음악]
[여자1이 살짝 웃는다] 아바라요
아바라
(여자1) 아바라요
[다가오는 발걸음] (영도) 아바라, 아바…
아바라…
죄송합니다 주문 한 번만 다시 확인해 드릴게요
(다정) 아이스바닐라라테 원두는 예가체프로 선택하셨고
샷 추가, 생크림 가득 시럽은 반만, 얼음 양은 많지 않게
- 맞으세요? - (여자1) 네, 맞아요
- (영도) 아니요, 아바라, 아바라 - (다정) 네, 주세요
- (아리) 설거지 - (영도) 음, 네 [바코드 인식음]
- 네, 감사합니다 - (여자1) 감사합니다
네, 다음 분요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리) 언니, 가시는 거예요?
옷만 갈아입고 올게, 이것도 주고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가영) 왔어요?
(다정) 아니, 커튼을 쳤으면 불을 좀 켜지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놀란 숨소리]
머리는 왜 그러고 있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가영) 내 머릿결의 비결 뜨거운 바람 꺼져
찬 바람으로 말리거든요
근데 불을 꼭 이렇게 환하게 켜야 되나?
내가 민낯일 땐 형광등하고 좀 서먹해서
형광등은 뭐랄까
'너 피부 푸석해'
'너 오늘 늙어 보여!'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 같달까?
예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다정) 밥 안 먹었죠?
[다정이 봉투를 탁 내려놓는다] [놀란 숨소리]
(가영) 만두? 만두, 만두?
나 만두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다정) 그러게요, 만두 사진을 겨우 네 번밖에 안 보내셨는데
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정이 물을 졸졸 따른다] 여기 괜찮네
주인이 특급 호텔 출신이라 그런가?
(가영) 장기 투숙 할까 봐
[만족스러운 신음]
못 들은 척하네?
좋다는 건가? 암묵적인 동의? [다정이 컵을 탁 내려놓는다]
응?
드세요
아하, 개무시?
[만족스러운 신음]
[한숨]
[다정이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가영이 재채기한다]
누구냐, 넌
응? 불렀어요?
하나 먹어 볼래요? 나 먹기도 약간 모자라긴 한데
[당황한 웃음]
[가영의 만족스러운 신음]
[조작음]
뭐야?
냉수로 배 채우라는 거?
따뜻한 거예요
젖은 머리로 찬 바람 맞고 재채기했잖아요
(가영) 어디 가요? 더 안 사 와도 돼요
내가 워낙 식탐이 없어서
아, 1층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도와주러 가요
나 또 혼자 있으라고요?
(가영) 여태까지 계속 혼자 있었는데?
[당황한 신음]
[흥미로운 음악]
음…
뭐, 난 괜찮으니까 천천히 갔다 와요
음, 심심하면
콘센트 구멍에 손가락 집어넣고 찌르르 부르르 놀면 돼요
거울 있으세요?
(다정) 좀 보셔야 될 거 같은데
[의아한 신음]
왜요, 이쁜데?
[당황한 웃음]
- 드세요 - (가영) 다녀와요
저러고 15년 동안 이 방에서 군만두만 먹고 있는 거 아니겠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가오는 발걸음]
아리야, 뭐 더 할 거 없어?
(아리) 아, 널널할 때 두 분은 오늘 들어온 물류
선입 선출 해 주세요
오실 때 종이컵, 빨대, 시럽 가져와서 다 채워 주시고요
- 아… - (다정) 빨대, 종이컵, 시럽, 응
- 가시죠 - (영도) 예
- (영도) 이거 - (아리) 아, 네
(다정) 시럽이, 시럽이…
- (영도) 종이컵 - 아, 이거구나
[다정이 커터 칼을 드르륵거린다]
(영도) 조심해요
박스 대신 손가락 자르면 안 되는 거 알죠?
[영도가 박스를 툭 내려놓는다] [다정의 헛웃음]
여기에 적혀 있는 거 안 보여요?
'아바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은 닥치시오'
[다정이 커터 칼을 드르륵거린다]
[영도가 박스를 툭 내려놓는다]
- 빨대가… - (영도) 내가 할게요
(영도) 어? 이거 왜 이래요?
(다정) 아, 아…
아니에요
이상하네, 아깐 없었는데
멍은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요
좀 볼게요
[무거운 음악]
(다정) 아…
손님을 깨우는데
내가 공격한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밀쳐서…
이렇게 멍이 생기려면 손목을 잡고 꺾은 건데
다른 덴 안 다쳤어요?
호텔이잖아요 바닥에 카펫도 깔려 있고
바닥으로 넘어진 거예요?
(영도) 어떻게 했길래
[다정의 당황한 신음]
신고는 했어요?
회사에선 이런 거 알아요?
(다정) 별거 아니라서 말 안 했어요
내가 마음이 급해서 혼자 가느라고 이렇게 됐고
- 진짜 별일 아니에요 - (영도) 아니, 그게
(영도) 그게 어떻게 별게 아니에요
혈관이 터질 만큼 손목을 잡혔고
바닥에 밀쳐졌고 목 졸린 상처가 생겼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놀랐고 다쳤으면 병원을 가든가 집에서 쉬든가
아, 나한테 말이라도…
그 손목으로 이러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당황한 숨소리]
누가 보면 주영도 씨한테 내가 뭘 잘못한 줄 알겠어요
(다정) 설마
이 손목 주영도 씨 거라고 이러는 거예요?
자기 손목 내가 다치게 했다고?
지금 그런 농담 할 때가 아니잖아요
그럼 왜 이렇게 화를 내요 내가 괜찮다는데
강다정 씨가 다쳤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손님한테 너무 화가 나는데
나는 그냥 아래층 사람이라 화낼 권리도 없고
화내는 것도 웃기고
(영도)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미친 짓도 못 하는 내가
너무 답답하고 등신 같아서 그래요
됐어요?
[무거운 음악]
[문이 탁 열린다]
[문이 쾅 닫힌다]
[다가오는 발걸음]
[문이 탁 열린다]
(영도) 방금 문 일부러 그렇게 닫은 거 아니에요
바람 불어서
(다정) 알아요
약 가지고 올게요, 기다려요
괜찮… [문이 탁 닫힌다]
[멀어지는 발걸음]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철도) 어떻게 되고 있어?
피크 타임 무사히 넘겼어요
(철도) 영도 형하고 다정이는?
시럽 찾으러 보냈더니
둘이 사탕수수 뽑으러 브라질에 간 건지
(아리) 아직도 깜깜무소식…
저 오늘 그만둘게요, 지금 당장이요
[다가오는 발걸음] (철도) 왜, 왜, 무슨 일인데
[작은 소리로] 그들이 왔어요 브즈즈즈즈즈
[통화 종료음] 어서 오세요
[흥미진진한 음악] 봐, 오늘은 그 무서운 언니 없잖아 폭탄 맞은 오빠도 없고
(남자1) 그러네 오늘은 예쁜 동생만 있네
안녕하세요, 혼자 계시네요?
- 네 - (남자1) 아…
(여자2) 놔
- (남자1) 왜 그래? - 이쁜 동생하고 놀아, 난 갈게
- (남자1) 아, 그게 아니라… - (여자2) 혼자인진 왜 물은 거야?
아니, 나는 그 미친 사람들 진짜 없나 확인한 거지
흥, 내 귀엔 그렇게 안 들렸어
(남자1) [발을 탁탁 구르며] 아, 왜 그래, 또
여기 자기 말고 이쁜 사람이 어디 있어
봐 봐, 다 못생겼잖아
쟤 봐 봐
응? 자기야
(다정) 10분 지난 거 같은데
(영도) 모레까지는 냉찜질을 해 주는 게 좋아요
(다정) 원래 멍이 잘 들어요 헌혈만 해도
(영도) 모세 혈관이 약한 사람이 있어요
강다정 씨는 피부도 얇은 편이고
(다정) 아, 내가 할게요
(영도) 의사 아니잖아요
(다정) 뭐, 의사 아니면 연고도 못 발라요?
(영도) 네
(다정) 몰랐네
[부드러운 음악]
이상하네?
(영도) 끝까지 뺏어서 직접 바른다고 할 줄 알았는데
연고의 힘이죠
영화에서 보면
아무리 무서운 사람도
(다정) 누가 연고를 발라 주면
얌전히 상처 내놓고 앉아 있잖아요
'범죄도시' 마동석도 그랬고 헬보이도 그랬고
닥터 할로우도 그랬고
다스 베이더
터미네이터
(영도) 다스 베이더하고 터미네이터는 사이보그인데
기계에다가 연고를 발랐다고요?
그럼 녹슬 건데
(다정) 꼭 연고라는 게 아니라…
친구 중에 문과 없죠?
왜요, 승원이
없는 걸로 할게요, 예
[영도가 숨을 들이켠다]
나는
이과라서 그런가?
그런 거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영도) 오래된 건데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정의 놀란 숨소리]
(다정) 아유, 저런
지금 정도 양으로 하루 두 번 바르면 돼요
(다정) 이 연고는 별로인데요
잘 안 발라지는데
- 줘요, 그럼 - (다정) 내 거예요
다치고 그러지 마요
강다정 씨 거지잖아요
내기해서 전 재산 다 잃었는데
몸이라도 건강해야지
(다정) 저런
자꾸 따라 하지 마요
'자꾸 따라 하지 마요'
- 유치하게 - (다정) '유치하게'
(영도) 강다정 바보
그건 반칙이죠
'그건 반칙이죠'
- 주영도 바보 - (영도) '주영도 바보'
뭐예요, 김빠지게?
사실이니까
- (다정) 음, 재미없다 - '음, 재미없다'
아유, 진짜
'아유, 진짜'
(다정) 치 [아리의 헛웃음]
72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친 숫자죠
[익살스러운 음악] (아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렇게 배웁니다
제 동심이 말라비틀어졌다 느낄 때면 두 분을 찾을게요
(영도) 아, 그럴래요?
(아리) 아, 혹시 거기서 뭐 더 하실 거면
문은 좀 잠가 주세요
무방비 상태에서 두 사람이 합체된 걸 라이브로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아니다
나 그거 보고 싶나?
(영도) 아니, 무슨 생각 하는…
(다정) 눈 굴리지 마
떠올리지 마, 상상하지 마
짐승
[멀어지는 발걸음] 저런
지금 나를…
[다가오는 발걸음]
(아리) [웃으며] 언니도…
엉큼해
[멀어지는 발걸음]
(다정) 쟤 뭘 상상하는 거야
쟤 왜 저래요?
헐
[다정이 씩씩거린다]
저것 봐, 또 나 이상한 사람 만들어 놓고 혼자 갔어
[잔잔한 음악]
- 가게는? - (철도) 영도 형하고 다정이
[이어폰을 달그락거린다]
(패트릭) 나 안 보고 싶어요?
나는 너무 보고 싶…
(영도) 마음에 안전지대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차분한 음악]
그런 사람들은
누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겁을 먹고
둘 중의 한 가지 행동을 해요
그 사람을 피해서 자기 스스로 감옥에 갇히거나
그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찔러 버리거나
감옥에
갇힌 거네요, 가영이는
안전지대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안심할 수 있게 해 줘야겠죠
(영도) '너 없으면 죽을 거 같다' 대신에
'나는 잘 지내고 있다'
(패트릭) 공항 가는 길이에요 [휴대전화 조작음]
태국 팬 미팅
무대 열심히 하고 올게요
(영도) 이거 놓고 갔어요
(다정) 그러게요
아까 아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문이 철컥 열린다] [가영의 찌뿌둥한 신음]
(가영) 우리 맥주는 시원하게 밖에서 때릴까 봐요
여행 온 기분도 내고
어제 친해진 비둘기들하고 안부 인사도 하고
[가영의 웃음]
[익살스러운 음악] [멀리서 개가 짖는다]
[놀란 숨소리]
저 사람이 나 가둬 놓고 만두만 먹였어
너한테 나 왔다는 말도 안 했지?
주영도 씨한테 말하지 말라면서요
(가영) 진짜 말 안 할 줄은 몰랐죠
어떻게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안 해?
아니, 이게…
비둘기, 갑작, 와…
[다정의 어이없는 숨소리]
가영…
(영도) 다…
왜…
(가영) 뭐야
나만 빼고 둘이 삐리삐리 교신하는 거야?
(영도) 아, 왜 둘…
뭐, 여, 아…
(가영) 별거 아니네
[경쾌한 효과음] 우리가 물리쳤어요
에이! 오!
[익살스러운 음악]
[툭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가영이 숨을 깊게 내뱉는다]
왜 서 있어요? 와서 편하게 앉아요
[어이없는 숨소리] [가영이 캔 맥주를 쉭 딴다]
[가영의 만족스러운 신음]
[시원한 숨소리]
[가영이 캔 맥주를 쉭 딴다]
마셔요
감금을 했다고요? 내가?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주영도 내 말 안 믿으니까
(가영) 근데
궁금한 게 없는 편이에요?
묻고 싶은 거 없어요?
(다정)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가영) 내가 비밀 얘기해 주면 빚 얼마나 까 줄 거예요?
비밀이면 굳이 이야기를 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영) 으음
나 주영도한테 가면 맨날 구박만 받아요
'수면제는 얼마나 먹어?' '상담 잘 받고 있어?'
그러고 나면 주영도가 나한테 하는 말은 딱 네 개인데
'그럼 됐네', '나 바빠' '빨리 가', '이제 오지 마'
그런데도 난 꾸역꾸역 가요
왜냐하면
내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건 또 왜냐하면
내가 안 괜찮았을 때 주영도는 그거 알고
나 살려 줬거든요
[비가 쏴 내린다]
[쓸쓸한 음악]
(가영) 드라마 쫑파티에 불렀는데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갔어요
(영도) 내가 쫑파티를 왜 가
(승원) 안가영이 오라고 했다며
네가 가야 내가 갈 거 아니야
이때 아니면 내가 안가영을 언제 코앞에서 봐
[휴대전화 진동음]
(가영) 받아요
(영도) 원래 안 받는 전화예요
[가영의 한숨]
(가영) 좋은 날씨군, 무덥지도 않고
이런 날씨에 목매달면 좋지
'바냐 아저씨'라고 학교 다닐 때 했던 연극
거기 대사예요
(영도) 아…
갑자기 생각나서
비도 오고
난 다시 태어나면 배우는 안 하려고요
(영도) 왜 그런 생각을 해요?
어차피 매일이 연극인데
카메라 앞에서 뭘 더 하는 게 웃겨서
[진동 벨이 울린다]
(가영) 내 커피도 받아 올 거죠?
- (영도) 그럼요 - 고마워요
이것저것 다
잠시만요
[휴대전화 진동음] [쟁반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매니저) 아, 누나 오늘 왜 그러지?
아니, 밴에다가 지갑, 시계 아파트 카드 키까지
다 놓고 가셨더라고요
이거 없으면 집에도 못 들어갈 텐데
(가영) 이런 날씨에 목매달면 좋지
고마워요
이것저것 다
(영도) 내려 봐요
헬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영도) 내리라고요
(가영) 그냥 거기서 얘기하면 안 돼요?
(영도) 안 돼요
빨리 내려요 [가영을 탁 잡는다]
(가영) 아, 왜 이래요
[가영의 당황한 숨소리]
[영도가 탁 앉는다]
뭐 해요 [영도가 달그락 뒤적인다]
왜 내 차에 타지?
[거친 숨소리]
이거 뭡니까?
다 처방받은 거예요
(영도) 모은 거잖아요
졸피뎀을 이렇게 처방해 주는 의사가 어디 있어요
줘요
그쪽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왜 상관이 없어요
살려 달라고 온 거잖아요
[차분한 음악]
누가 그래요?
내가 그래서 왔다고?
[울먹이며] 뭐 하는 거야
미쳤어요?
이걸 쏟으면 어떡해요!
[가영의 거친 신음]
[흐느낀다]
(가영) 놔
(영도) 왜 죽어요
죽지 마요, 살 수 있어요
(가영) 이거 놔요
(영도) 나을 수 있어요
안 믿기겠지만 괜찮아질 수 있어요
(가영) 놔!
놔요, 좀!
[가영이 연신 흐느낀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잖아
내일도 이럴 건데
모레도 이럴 건데
왜 나한테 그걸 계속하라고 해, 왜!
제, 제발 나 좀 죽게 놔둬요
나 좀 죽게
나 좀 제발!
[오열한다]
[차분한 음악]
나 좀 살려 줘요
나 좀…
나 좀 살려 줘요
나 좀 어떻게…
나 좀 살려 줘요
[가영이 연신 흐느낀다] (영도) 살 수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가영) 나는 살고 싶어서
주영도는 살리고 싶어서 결혼했고
남들은 결혼에 실패해서 이혼하는데
우린 결혼에 성공해서 이혼했어요
내가 꽤 괜찮아졌거든요 딱 1년 만에
그러니 나한테 얼마나 고마울까?
헬로?
내가 정말 열심히 치료받고 살아나서 주영도 곱게 싱글로 돌려놨잖아요?
유어 웰컴
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예를 들면
그럼 주영도는 나를 좋아했냐
나는 주영도를 좋아했냐
뭐, 그런 거?
대답하자면 나는 주영도가 좋아졌는데
주영도가 그건 좋아진 게 아니라
의존성 어쩌고 신드롬 어쩌고
착각이라고 손도 못 대게 했어요
더 궁금한 거?
재산 분할? 위자료?
뭐
다 물어봐요
(다정) 지금은
좀 괜찮아요?
[잔잔한 음악] 아팠던 거
진짜 힘들었겠다
이젠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고
[훌쩍인다]
(영도) 얼마나 힘들었냐는 말
이제는 그렇게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
[흐느낀다]
떨고 있던 그날의 당신을 안아 주진 못했지만
그 시간을 이겨 낸 지금의 당신을 안아 주고 싶다는
아마도 가장 따뜻한 위로
[작동음]
[휴대전화 진동음] [믹서기 작동음이 뚝 멈춘다]
[휴대전화 조작음]
- 네 - (작가) 안녕하세요
(작가) 천승원 PD님 통해서 연락드립니다
저희가 이번에 론칭하는 프로그램에…
그거 안 한다고 했는데요?
(작가) 그래요?
그럼 혹시 서하늘 씨도 안 나오시나요?
- 누구요? - (작가) 그 수의사분
(작가) 한진호 씨하고 안다고 하시던데
(진호) 아…
그 사람이 거기 나온다고요?
(남자2) 야, 하늘아, 서하늘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 어, 오랜만이다, 야 - (남자2) 너 맞지?
[하늘과 남자2가 탁 악수한다] (남자2) 이야, 영도 덕분에 얼굴을 다 보네
- (하늘) 그러게 - (남자2) 어떻게 지냈어?
(하늘) 난 뭐, 똑같지, 뭐
- (남자2) 멋있어졌는데? - (하늘) 나야 뭐, 늘 하늘하늘하지
[하늘과 남자2의 웃음]
[여자3이 반가워한다] (여자4) 잘 지냈어?
[여자들이 대화한다] (남자3) 안가영이도 시집을 가는구나?
(남자4) 남자가 미친놈이지 뭔 꼴을 볼 줄 알고
(남자3) 정신과 의사라며
(남자5) 안가영이 얼굴이랑 몸매는 되잖아
(남자4) 이제 남편 병원 다니면 되겠네
한 번씩 돈다며 [남자들이 웃는다]
(남자3) 둘이 잘 만났네
[남자들이 웃는다]
(하늘) 그렇게 부러워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 짜증 나요?
그럼 울어요
우는 건 창피한 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남 깎아내리면서 정신 승리 하는 게 창피한 거죠
하하, 그 꼴로 생겨서 속상하죠?
저 둘은 너무 예쁜데
쓰읍, 음… [흥미진진한 음악]
사람들이 다 싫어해서 외롭죠?
저 둘은 사랑받는데
아, 할 일이 악플밖에 없어서 심심하시구나
그래도 입으로 똥을 싸면 어떡해요
배변 훈련 못 받았어요?
(남자3) 아, 그쪽은 뭔데?
(하늘) 나는
영도 증조할머니예요
(남자4) 할머, 하, 할머니요?
여자는 얼굴, 남자는 능력
그런 편견에 찌든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랍니다
[웃음]
- (남자3) 가자 - (남자5) 여기 음식 좋아
(남자3) 식권, 식권, 식권
[통화 연결음]
보풀 제거하는 거 있어요, 집에?
아니요, 가위는 있어요
(가영) 음…
가위…
됐어요, 일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가영) 커피 머신 어디 있어요?
[발랄한 음악]
1층 카페에 있죠
- 이 방엔 없어요? - (다정) 네
(가영) 아…
(가영) 알았어요 일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이번엔 영상 통화네요?
(가영) 이거 먹어도 되죠?
(다정) 뭐든지 드셔도…
아니요, 그건 안 돼요
(가영) 놀라라
다른 거 드세요, 그건 안 돼요 그거는 제가…
'제가' 뭐?
물 주고 밥 줘 가며 키우는 자식 같은 과자예요?
(가영) 이게 뭐라고?
이거 주영도 병원에서 막 공짜로 다 나눠 주는…
(가영) 아하
저, 냉동실에 초콜릿 있어요
어, 그거 우리 호텔에서 파는 건데 엄청 맛있는 거거든요?
아니면 거기 날계란도 있고 컵라면도 있고
(가영) 두 개니까 그럼 하나만 먹을게요
- 그건 되죠? - (다정) 아니요
(다정) [놀라며] 아유,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가영의 장난 섞인 신음] 여보세요?
짜잔!
[웃음]
(가영) 앞으로 커피 사러 갈 때 달달구리도 이것저것 사 와야겠네
나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안녕
[통화 종료음]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이런, 씨…
(가영) 너희들이 왕대가리 같은 거구나?
나 또 좋은 인질 생겼네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작가) 두 분은 서로 아시죠?
네, 안녕하셨어요?
(진호) 예
아, 근데
저는 기억이 잘 안 나서요
뭐, 이름이 동해 바다 뭐, 그런 거였는데
[작가의 웃음] [하늘이 살짝 웃는다]
(하늘) 그렇죠, 뭐
동해 바다나 서쪽 하늘이나 [하늘의 웃음]
아, 저, 웨스트 스카이 서하늘입니다
아, 네
[휴대전화 진동음] [헛기침]
(작가) 잠시만요
[진호의 헛기침]
잘 지내셨어요?
(진호) 네
그때 그, 체육관 하신다고…
- 네 - (하늘) 아, 저도
(하늘) 진짜 운동 좀 하긴 해야 되는데
언제 한번 오세요
(하늘) 예?
아, 예, 뭐, 언제 한번 가겠습니다
- 언제요? - (하늘) 네? [익살스러운 음악]
언제 오실 거냐고요
운동해야죠 사람이 운동 안 하면 죽어요
아, 그렇죠
[웃음]
아유, 죽으면 안 되죠
어, 언제 한번…
언제 되시는데요?
다음 주에 오실래요?
[한숨]
(진호) 쓰읍
밤에 뭐 드셨는데요?
그게 보여?
턱 밑에 만두가 붙어 있잖아요 두 개나 떡떡
(진호) 운동은 나흘간 빠지고 이틀간 실종
근육도 같이 실종
그 정도야?
정신머리도 같이 실종됐어요?
(진호) 어떻게 남친하고 문제 있다고 전남편한테 이렇게 쪼르르 달려오나?
헬로?
나 3층 아니고 4층에 있었거든?
[헛웃음]
4층에 뭐가 있는데요?
내 친구 집
[진호의 헛웃음] 아, 왜, 어?
차라리 봉황 서식지나 그, 뭐, 유니콘
이런 게 있었다고 하지
(가영) 하, 진짜야
이름은 강다정 주영도랑 서로 좋아해
이젠 나랑 친구고
우리 셋이 삼총사 하면 되겠다
[웃음]
(진호)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쪽도 알아요? 자기가 안가영 친구 된 거?
[숨을 들이켠다]
뭐…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지 않나?
[한숨] [혀를 찬다]
(진호) 5분 줄 테니까 빨리 짐 싸서 내려와요
(가영) 어
(진호) 빨리빨리 뛰어간다, 실시!
무브, 무브!
[진호가 손뼉을 짝짝 친다]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강다정 매니저 지금 어디 있나요?
(유경) 잠깐 자리 비우셨는데
무슨 일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메시지 남겨 주시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무거운 음악]
[문이 탁 열린다]
(유경) 읽어 봐요 빠, 빠, 빠, 빠, 빨리빨리, 빨리빨리 [문이 탁 닫힌다]
(다정) [웃으며] 뭐야
(유경) 나도 봐도 돼요?
(다정) '연락 부탁합니다 이안 체이스'?
(유경) 그 오랫동안 이거 한 줄 쓴 거예요?
- 오랫동안? - (유경) 15분?
20분?
뒷면에 뭐 없어요?
(유경) 뭔가 수상한데
왜 닥터 체이스가 아니라 이안 체이스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는 사이 아니잖아요
일단 거기서부터 추리를 시작해야겠어요
(다정) 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안녕하세요 컨시어지 매니저 강다정입니다
(체이스) 그때 다친 덴 없었습니까?
(다정)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말이 굉장히 신경 쓰이네요
(체이스) 많이 다쳤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약한 타박상 정도였고
좋은 의사한테 치료 잘 받았습니다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은데요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안 좋은 꿈을 꾸셨던 거죠?
예
(다정) 그런 거라면 저도 잘 알아요
깨어났을 때 엄청 혼란스럽고
강다정 씨도
악몽을 꿉니까?
어렸을 땐 많이 꿨죠
[차분한 음악]
[당황한 웃음]
뭐, 별건 아니고
(다정) 난 분명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보면 우리 집이고
그래서 문을 열고 나오면 또 우리 집이고
꿈에서 깨면 또 우리 집이고
뭐, 그런 거였죠
그게 왜 악몽입니까?
(다정) 어…
그땐 제가
옆집 딸이 되고 싶었거든요
[다정의 멋쩍은 웃음]
아, 너무 개인적인 얘길 했네요
제가 침묵에 좀 약해 가지고
어,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체이스) 제일 보이기 싫은 모습을
강다정 씨한테 보인 게 많이 불편했는데
그런 얘길 해 줘서 좋네요
고맙습니다
나만 부끄럽지 않게 해 줘서
괜찮다면
언제 저녁을 사고 싶은데
먹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많이 불편했다는 건 아니고요
[살짝 웃는다]
그럼, 바쁘실 텐데
오늘은 꼭 좋은 꿈 꾸십시오
[째깍거리는 효과음]
(여자5) 일어나
일어나 [피곤한 숨소리]
입 벌려
딸기 맛 나는 거야 너 이거 좋아하잖아
(아이1) 감기 걸릴 때 먹는 거잖아
나 아니고 쟤가 좋아하는 건데
(여자5) 그냥 먹어
한 번 더
[아이1의 힘주는 숨소리]
[째깍거리는 효과음] [어두운 음악]
[강조되는 효과음] [놀란 숨소리]
(세근) 야, 너 일로 와 봐
일로 와 봐
아, 빨리 와! 씨
뭘 봐, 부지런히 밥이나 먹어
(아이1) 여기가 어디예요?
내 동생은 어디 있어요?
엄마는요? [명자의 탄성]
(명자) 얘가 걔야?
이름도 없다는?
내 이름 최정민인데요?
(세근) 그거는 네 동생 이름이고
우린 둘 다 최정민인데요?
(명자) 요놈아, 세상천지에
이름을 같이 쓰는 게 어디 있냐?
밥숟가락도 아니고 칫솔도 아니고
우리는 그렇게 했는데요?
그리고 칫솔은 같이 쓰는 거 아니에요
[함께 웃는다]
아유, 둘 중의 한 놈을 아예 출생 신고를 안 한 거네
(세근) [명자를 툭 치며] 아유, 좀 일이나 해, 뭔 관심이야
(명자) 아유, 왜 이래
그래도 요놈은
쓰읍…
눈빛이 똘똘해서
야, 너 잘 팔리겠다
쌍으로 팔면 훨씬 더 잘 팔릴 건데, 쯧
오늘 또 한 놈 나간다며?
[어두운 음악]
[칫솔을 탁 잡는다]
[아이1의 떨리는 숨소리]
[아이1이 칫솔질을 한다]
(세근) 원래 이름은 사람마다 한 개씩 있는 거고
최정민은 네 형제 이름이야 너는 이름이 없어
(아이1) 그렇지만 내 동생하고 나는 둘 다 최정민이에요 [울음 섞인 숨소리]
(세근) 그리고 이제 걔는 네 동생도 아니야
(아이1)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어요
(세근)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은 네 엄마도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근) 내 말 잘 듣고
여기 얌전히 잘 있고
그리고 손님들한테 예쁘게 보이잖아?
너도 새엄마가 생길 수 있다 그 말이야
[흐느낀다]
(명자) 일로 와
(아이2) 더 주세요
(명자) 쥐톨만 한 놈이 무슨 밥을 더 먹어!
가
높이 들어
[탁 소리가 들린다] 다음
이리 와, 더 가까이 와
[어두운 효과음]
[사이렌이 울린다]
(영도) 여기선 시선이 박 형사 쪽이에요
근데 밖으로 나갔을 땐
그 반대쪽에 서서 자기가 있던 자리를 보죠
또 여기선 박 형사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러니까 네 말은
자기를 미행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거를
체이스가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진복) 근데 우리한테는 전혀 얘기가 없었단 말이지
(성준) 팀장님, 이거 그때
김명자 씨 남편이 보내 준다고 했던 그거 같은데요?
[진복이 서류를 탁 받는다]
(진복) 이야…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네?
아니, 내가 최정민 유서 파다가
김명자 씨 쪽에다 전화를 해 봤는데
전에도 어떤 형사가 와서 물어보고 갔다고 그러더라고
그, 생긴 거나 나이대를 들어 보니까 정범이인 거 같아서 만나 본 건데
이거 나예요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진복) 아, 뭔 소리야?
(세근) 자, 다 웃어야지, 웃어!
- (세근) 웃어 - (사진사) 자, 찍어 볼게
- (사진사) 어, 옆에 붙어 - (명자) 똑바로 들어
(세근) 웃으라고, 좀, 야, 웃으라고 야, 웃어, 좀
아, 눈을 어디, 확, 씨
(사진사) 옆에 똑바로 붙고 어, 똑바로 붙고, 그래
거기!
- (사진사) 넌 안 찍냐? - (세근) 아, 쟨 아니야
(명자) 왜, 머리 하나라도 더 많아 보이는 게 좋지
야, 너도 일로 와
뛰어와
(사진사) 자, 찍어 볼게
[카메라 셔터음]
[물소리가 들린다]
[수도꼭지를 삐거덕 잠근다]
[한숨]
너희 아빠 안 와
- (아이1) 너도 버려진 거야 - 아닌데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거짓말하면 알 수 있거든
(어린 영도) 우리 아빤 올 거야 온다고 했어
나는 주영도야
넌 이름이 뭐야?
그딴 거 없어도 돼
(어린 영도) 아!
[어두운 음악]
(어린 영도) 아빤 잘 지냈어?
(영도 부) 응, 잘 지냈어
[발소리가 울린다]
[어두운 효과음]
(웨이터) 식사 나왔습니다
(영도) 최정민 유서에는 김명자 씨에 대한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진복)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묻지 마라고 생각한 건데
(영도) 만약
이 친구가 최정민이라면
범행 동기가 설명이 돼요
(성준) 아, 학대
뭐, 그런 거요?
(진복) 돈을 받고 애들을 팔아먹은 시설인데
잘해 줬을 리가 없지
영도 기억에도 싸했다며
내 기억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너무 오래되고 너무 흐려서요
(영도) 그리고 여기가
불법 입양을 했던 곳이 확실하다면
이 친구는 최정민이 아니라
이안 체이스일 가능성이 더 높은 거고
(진복) 그렇게 되면
최정민 자백부터가 다 꼬이는 거지
(호) 형을 위해서 죽였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진복) 아니, 그럴 거면
최정민하고 이안 체이스가
계속 연락을 했던 사이라야 말이 되는데
최정민 전화 기록에는 미국 번호가 전혀 없었거든
근데 저 아이가 둘 중 누군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진복) 아, 넌 좀 쉬어 [문이 쓱 열린다]
- (직원) 식사 끝나셨죠? - (호) 아, 네
- (직원) 치워 드릴게요 - (영도) 아…
(영도) 나 가야겠는데요?
(진복)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점심 못 먹어서 어떡해
알아서 먹을게요
- 쉬어요 - (호) 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경) 아, 이게 얼마 만의 외식이야
[영어] 불떡볶이 먹고 싶어 죽겠어요
(다정) [한국어] 어제 점심도 밖에서 먹었거든요?
(유경) 뭘 먹고 살아야 피부가 저렇게 되는 걸까요?
(다정) 만두?
(유경) 진짜 물만 먹고 사나?
(다정) 물 먹을 때마다 만두도 먹을걸?
(유경) 우리 빨리 가야 돼요 늦으면 줄 서야 돼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다정) 오,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가는 발걸음]
[다정과 유경의 웃음]
- (다정) 자, 너의 사랑 불떡볶이 - (유경) 감사합니다
[문이 탁 닫힌다]
(다정) 저희 지옥 레벨 2인분이요
(사장) 네, 여기 불지옥 두 개요!
[유경의 매워하는 신음]
(유경) 혹시 혀가 없어요?
그, 맛을 못 느끼는 그런 건가?
[유경의 매워하는 숨소리] (다정) 음, 그럴 리가
내가 인생의 쓴맛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다정의 웃음]
갈까?
(다정) 저희 계산이요
(사장) 계산했는데?
(다정) 저희 걸요? 누가요?
(사장) 여기 혼자 있던 남자
매운 거 먹지도 못하면서 괜히 주문해 가지고는
아휴, 그냥 아깝게 홀랑 다 남기고 갔네
(현주) 여기요
(체이스) 가죠
[차 문이 탁 열린다]
[자동차 시동음]
(정빈) 안녕히 가십시오
어? 식사하셨어요?
(다정) 방금 닥터 체이스 아니에요?
(정빈) 예, 체크아웃하셨어요
왓? 갑자기?
유경 씨도 미리 들은 얘기 없는 거지?
(유경) 전혀
매니저님한테 한 짓이 있어서 좀 그랬나?
약간 쪽팔림?
(다정) 손님한테 그런 말은 좀
(유경) 쏘리
그래도 다시 목 졸릴 일은 없겠네요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선우) 선생님 덕분에 저번에 눈 오는 것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예뻤고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 너무 힘들어요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병원 다시 간다고 했던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안내 음성]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차분한 음악]
[초인종이 울린다]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초인종이 울린다]
[안내 음성]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집에 있는 거 알아요
앞에 있을 테니까
나올 수 있겠다 싶을 때 나와요
[문이 철컥 열린다]
[문이 철컥 닫힌다]
(승원) 몇 신데 이제 들어와
[한숨]
(영도) 넌 또 왜 왔어
[영도가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승원) 편집하다 토할 거 같아서 좀 쉬려고
우리 집은 너무 멀어
(영도) 이사를 하라니까
[승원이 휘파람을 분다]
(승원) 야, 영, 영도야
너, 너 얼굴이 왜 이래?
(영도) 네 얼굴은 왜 그런데
(승원) 어?
[영도의 짜증 섞인 신음]
너 열나는 거 같은데?
[승원의 다급한 숨소리]
가만있어 봐
[작동음]
[놀라며] 39도
병원 가자
영도야
[심전도계 비프음]
(주원) 체스트 엑스레이상 인필트레이션 있어서
3세대 세파하고 퀴놀론 사용했고
크레아티닌 수치가 높아진 건 사이클로스포린 조절했으니까
경과 지켜보자
- 예 - (승원) 아…
(승원) 한국말로 좀 해 주시면…
크게 걱정할 거 없고
그냥 항생제로 피 한번 씻어 냈다는 거야
[안도하는 웃음]
(주원) 너 어차피 여기 들어올 생각 없다며
외래도 확 줄이고 몸부터 챙겨
예, 그럴게요
(승원) 들어가세요
[승원의 안도하는 웃음]
[문이 쓱 열린다] 이제 너도 가
- (승원) 싫어 - 좀 가 [문이 쓱 닫힌다]
(승원) 야, 내가 가면 하늘이가 와서 네 옆에서
[우는 시늉을 하며] '영도야, 영도야'
이러고 울고 있을 텐데 괜찮겠어?
아휴, 그냥 있어라
(다정) 아, 안녕하세요
(미경) 그리 안녕하신 상태는 아닙니다만, 보시다시피
아…
혹시 주영도 씨 무슨 일 있나요?
술은 좀 하시나?
아니요, 맥주 한두 캔 정도?
응급 상황 대처 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1번 상, 2번 중, 3번 하
1번이죠, 정기적으로 호텔에서 교육도 받고요
(미경) 주위의 평가는?
1번 또라이, 2번 똑순이
3번 주위에 사람 없음
(다정) 굳이 고르자면 2번에 가까울 거 같긴 한데
그건 주위의 의견을 물어봐야 해서
(미경) 마지막
주영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1번 좋아 죽겠다
2번 때리고 싶다
3번 내가 알 게 뭐야
[발랄한 음악]
보기가 너무 극단적인데요
굳이 고르자면
(다정) 1번이겠죠
아래위층 살고
도움도 많이 받았고 또
아, 저희 엄마가 엄청 좋아하세요
[다정의 웃음]
주영도 씨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어, 제가 좋아 죽겠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간적으로 좋은
(미경) 아파서 입원했었고
항생제 샤워 하고 퇴원했고
지금쯤 집에서 자다 깨다 하고 있을 겁니다
안부 물어보기 딱 좋은 시간이랄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예, 다정 씨
(다정)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무슨 일 있어요?
(다정) 주영도 씨는 나에 대해서 다 알잖아요
우리 집에도 와 봤고
우리 엄마하고도 친하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말해 준 거, 안 해 준 거 다 알고
국밥도 사 주고 강릉도 같이 가고 [잔잔한 음악]
(다정) 눈 온다고 미친 짓도 같이 하고
하…
내가 쿵쿵거리면
'집에 들어왔구나' 알고
내가 비누를 밟거나 해서 우당탕 넘어지면
무슨 일이 생겼나 제일 먼저 옥상으로 뛰어오겠죠
(다정) 근데 왜 난 주영도 씨한테 아무것도 못 해 줘요?
누군 손목에 멍 좀 들었다고 그렇게 혼이 났는데
주영도 씨는 왜 몰래 아프고
그것도 입원까지 할 정도면서
(다정) 나는
주영도 씨가 지금 혼자 있는지
누가 옆에 있는지
하, 누가 죽은 끓여 줬는지
약은 먹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듣고 있어요?
아직 많이 아프냐고 묻잖아요
(영도) 다정 씨
그러면
지금 여기로 와 줄래요?
[초인종이 울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도어 록 작동음]
(다정) 죽
'죽' 뭐요
죽인다고요?
들어와요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다정) 어디가 아픈 거예요?
(영도) 그냥 열이 좀 났어요
(다정) 열 좀 난다고 입원하는 어른이 어디 있어요
(영도) 여기 있잖아요
화 많이 났구나
공평해지려면 나도 내 이야기를 해야 될 거 같은데
뭐부터 하지?
가족 얘기부터 해야 되나?
오늘 안 해도 돼요
몸 안 좋은데 말 많이 하는 것도 안 좋잖아요
아니요
해야 될 거 같아요
어, 내 가족은
아버지
아버지예요
주말마다 통화를 하는데
전화를 끊고 보면 통화 시간이 47초 그래요
(영도) '별일 없으시죠?'
'없다, 너는?'
'저도요'
'응'
난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잘 알았어요
왜냐하면 주위 사람들이 다 거짓말을 해서
[차분한 음악] [심전도계 비프음]
(영도) 간호사는
형한테 주사를 놓으면서 안 아프다고 했고
의사는 형한테
밥만 잘 먹으면 나을 거라고 했고
아버지는
내가 형한테 신장을 안 줘도
형이 살 수 있다고 했고
내가 정신과를 하게 된 건
인턴 때
아기가 기침을 좀 해서 엄마가 응급실에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숨을 안 쉬고 있었고
(영도) 그게 내가 처음으로 한
사망 선고였는데
그때는 내가 우느라고
그 보호자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심전도계 경고음]
(영도) 며칠 있다가
음독 환자가 실려 왔는데 [탁 소리가 울린다]
그 아기 엄마였어요
그때 내가 말 한마디만 더 해 줬으면
'어머님'
'어머님 잘못이 아닙니다'
[숨을 들이켠다]
나는 우리 형도 못 살리고 그 아기 엄마도 못 살렸는데
내가 아프니까 누가 나를 살려 줬어요
다른 사람 심장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안 뛰는 거였구나
술도 안 마시고
(다정)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오래 살아야 된다고
심장 이식 환자는
10년 후 생존율이…
한 50%쯤 돼요
(영도) 나처럼 운이 좋아 가지고
좋은 심장을 받고 좋은 의사한테 수술을 받았다면
확률은 그보다 높겠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강다정 씨를 좋아하게 됐어요
보통은 누굴 좋아하게 되면
못 지킬 거라도 약속 같은 걸 하잖아요
'영원히 같이 있자'
'언제까지 옆에 있어 줄게'
씁, 그런데
나, 나는…
[입소리를 쯧 낸다]
그래서 말인데
[헛기침]
[한숨]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친구 할래요?
[애잔한 음악]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다정) 모든 연애는 언젠가 끝난다
운이 좋다면 결혼을 해서
그렇지 않다면 이별을 해서 [전철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어떤 연애는
고백과 동시에 끝이 난다
모아 놓은 마음은
이젠 줄 수도 버릴 수도 없고
친구라는 좋은 말은
세상 제일 서러운 말로 바뀌고
어떤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난다
[한숨]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소리가 울린다]
[애잔한 음악]
[신호등 알림음]
[신호등 알림음이 울린다]
[쓸쓸한 음악]
[다정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미란) 그것이 내 딸 남자 친구일까 남자인 친구일까
(다정) 아니, 왜 다들 나한테 친구를 하자 그래요?
내가 무슨 친구 전용 인간도 아니고
(체이스) 바꾸면 안 되죠
찾아오라고 내가 여기로 온 건데
(영도) 진짜 자기 마음을 본인도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정) 주영도 씨가 좋아졌어요
그렇게는 말 안 할 거예요
(영도) 그렇게라도
[휴대전화 진동음] 옆에 있고 싶다
(다정)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면
누굴 좋아하는 건 미친 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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