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9
(영도) 집에 채소가 아무것도 없어서
[휴대전화 조작음]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닥터 할로우가 드르륵거린다]
[닥터 할로우가 드르륵거린다]
[웃음]
[스탠드 조작음]
[숨을 깊게 내뱉는다]
[휴대전화 조작음]
(가영) 왜 그리 두리멍청 웃고 있느냐
(남희) 누가 언제 웃었다 그래요!
(가영) 지금 네가 그러고 있지 않느냐
참아 보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마음이 입가로 줄줄
마치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품은 듯
세상 다디단 열매를 삼킨 듯 말이다
(TV 속 남희) 아유…
[TV 속 남희가 식기를 달그락거린다]
하, 귀여운 토끼 좋아하시네
자기가 밀감국의 공주라고 우기는 이상한 여자겠지
삼시 세끼 짜장면만 처묵처묵
아, 그 시대엔 짜장면도 없어요?
없다
[영상 속 닥터 할로우가 드르륵거린다] (TV 속 남희) 아, 됐고 그, 입이나 좀 닦아요
공주고 뭐고 아주 더러워서 못 보겠네
(TV 속 가영)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내가 그리도 이쁘냐
[TV 속 남희의 어이없는 웃음]
(TV 속 남희) 이야
아, 이래서 공주병이라는 말이 생긴 거구나
내가 아주 공주병의 실사판을 보고 있었네 [영상 속 닥터 할로우가 드르륵거린다]
자, 이게 휴지라는 거예요, 휴지, 어?
이렇게 지지 한 거 닦는 거, 어?
(TV 속 가영) 병에 걸린 것은 내가 아니라 네가 아니겠느냐
상사병에는 약도 없다 하였거늘
참으로 큰일이로구나
귀여워
[휴대전화 조작음] [영상 속 닥터 할로우가 드르륵거린다]
(가영) 잠깐
내 얼굴은 왜 가리는 거예요?
(제작진) 타임 슬립 한 옛날 공주가
21세기 연예인하고 얼굴이 똑같으면 이상하잖아요
(가영) 아, 공주가 환생해서 연예인이 됐나 보다 그러겠죠
[가영의 당황한 신음]
어차피 우리 드라마에선 다들 이거만 마셔서, 어?
시청자들은 PPL인 거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나?
(제작진) 설정까지 뽀개면서 과하게 하면
거부감 생겨서 안 돼요
치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다정) 네
[어두운 음악]
[어두운 효과음]
[다정의 놀란 신음]
[강조되는 효과음]
[무거운 효과음]
괜찮아요?
잠시만요
(다정) 그거
제가 좀 볼 수 있나요?
혹시 이거 직접 만드신 거예요?
아니요
누가 두고 간 거 같은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은…
보자고 하신 게 급한 일이 아니면…
급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죠
[다가오는 발걸음]
[풀벌레 울음]
(영도)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주영도 선생님은 제가 가는 곳마다 계시네요
강다정 씨하고는 무슨 일입니까?
오늘도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에 대해 물어보시고
그 종이꽃
누가 두고 간 건지 못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체이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영도) 네
(체이스) 주영도 선생님은
본인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무슨 뜻이죠?
[어두운 음악] 앞으로 조심해 달라는 뜻입니다
항상 선 넘는 질문을 하시니까
[피식 웃는다]
내가 그랬나요?
(체이스) 내가 실수한 적 있습니까?
주영도 선생님의 사생활에 대해서
어린 시절에 대해서
좋아하는 여자에 대해서
물어본 적 있습니까?
방금 좋아하는 여자라고 했습니까?
말꼬리를 잡으시네요?
(영도)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죠 그런데
제가 한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을 한 적이 없는 건 아십니까?
대답할 이유가 없으니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를 탁 집어 든다]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오늘 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병원에 있을 거예요
[손잡이를 탁 잡는다]
[긴장되는 음악]
[체이스가 종이꽃을 부스럭거린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바빠요?
들어와요
(영도) 아까 퇴근하는 길이었으면 아직 저녁 안 먹었을 건데
배 안 고파요?
이, 과자가 있기는 한데
(다정) 괜찮아요
그건 못 주겠다
과자에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내가 그런 거 아니라고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옷 뜯지 마요
(영도) 셔츠도 몇 개 없는데
누가 하나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 놔 가지고
[다정의 한숨]
새걸로 사 줄 거라고요
오늘도 호텔 아케이드 다 돌았는데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가지고
주영도 씨 눈동자 색에 딱 맞는 셔츠 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내 눈동자요?
자연광에서는 호박색이고
(다정) 실내에선 헤이즐넛 색이고
캄캄한 데서는 도토리 색이잖아요
(영도) 오
나 막 변신하는구나
처음 알았네
[영도의 웃음]
(다정) 왜 웃어요? 변신해서 신났어요?
(영도) 아까 표정이 그래서 걱정했는데
괜찮은 거 같아서요
혹시 나 때문에 늦게까지 병원에 있는 거면
(영도) 그런 거 아닌데
(다정) 혹시라도 그런 거면
나 괜찮으니까
그냥 가도 된다고
그 말 하려고 내려온 거예요
내가 아까
도망치듯이 그랬던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이 싫었어요
무서워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요
(영도) 약해 보이는 게 싫은 거예요?
아니요
겁먹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싫은 거예요
왜 그런지 물어봐도 돼요?
[잔잔한 음악]
주영도 씨도 힘든 얘기 나한테 다 해 줬으니까
나도 말해 주고 싶은데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올 거예요
아무한테도 한 번도 안 해 본 이야기라서
내가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어요
그건 알죠?
만약에
어떤 환자가
너무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 있다고 하면
뭐라고 말해 줘요?
(영도) 일단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하겠죠
여기선 무슨 말을 해도 괜찮고
비밀도 지켜 준다고
다 말하기 어려우면
첫마디만 한번 꺼내 보라고
(다정) 음…
어…
내가
일곱 살 때였는데
[슬픈 음악]
(영도) 네
나는
아직도
[흐느끼며] 기억이 나요
엄마가
[흐느끼는 숨소리]
(다정) [연신 흐느끼며]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맞는 걸 봤는데
엄마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는데
난 너무…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방문을 잠그고
[다정이 오열한다]
[다정의 울음이 잦아든다]
(영도) 다정 씨가 내 환자였으면
나는 그렇게 물었을 거예요
만약에 그 일곱 살짜리가 여기 있으면
그 꼬마한테 뭐라고 말할 거냐고
'너 왜 가만히 있었어'
'네가 엄마를 구했어야지'
그렇게 혼낼 거 아니잖아요
[거친 숨을 내뱉는다]
다정 씨도 그 꼬마를 안아 줬을 거예요
[다정의 등을 토닥인다]
'이다음에 커서도'
'그런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라'
'너는 잘못한 게 없고'
'그 무서운 상황 견디고 잘 커 줘서'
'엄마는 너한테 많이 고마울 거다'
[흐느낀다]
그렇게 말해 줬을 거고
[거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다정이 훌쩍인다]
(다정) [웅얼거리며] 티슈
네?
(영도) 티, 티스, 티…
아, 아, 티슈, 티슈
여기요, 여기
(다정) 물티슈 말고
(영도) 물티슈, 아!
물티슈 말고, 물티슈 말고
(다정) [떨리는 목소리로] 많이
많이? 아, 예, 그렇죠
(영도) 많이, 많이 필요하죠
[달려오는 발걸음]
여기요, 많이
(다정) [작은 소리로] 떡볶이
네?
떡볶, 떡볶…
떡볶이?
[발랄한 음악] (영도) 아, 떡볶이
아, 예, 그렇죠 울면 배고프지, 떡볶이
알았어요, 내가 떡볶이 시킬게요
핸, 핸드폰
어, 어디 가요?
(다정) 세수하러요
(영도) 갑자기 세수는 왜…
(다정) 울면 못생겨져서 세수하고 분칠하려고요
(영도) 지금도 예쁜데…
아, 예, 예, 갔다 와요
(다정) 옥상에서 먹어요
병원에서 음식 냄새 나면 안 되니까
(영도) 그래요
[문이 탁 닫힌다]
[풀벌레 울음]
[다정이 코를 훌쩍인다]
어유, 다…
아, 다 번졌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영도) 떡볶이 배달이요
(다정) 어, 나가, 나가요, 잠시만요!
[부드러운 음악]
(다정) 왜요?
향수도 뿌린 거예요?
떡볶이 냄새겠죠
[호응하는 신음]
요즘 떡볶이에서는 꽃향기도 나는구나
장미
작약
[영도가 포장 박스를 부스럭거린다]
왜요?
(영도) 또 옷 뜯게요?
[영도의 웃음]
'이터널 선샤인' 봤어요?
그거 재개봉했을 때 질문 많이 받았죠
(영도) 실제로도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한 기억만 골라서 지울 수 있냐
(다정) 있어요?
없죠
그럼 '맨 인 블랙'에서 번쩍하면 기억 지워 주는 뉴럴라이저는?
(영도) 없죠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뇌에 넣어서
특정한 기억 조작에 성공한 적은 있어요
사람은 아니고 쥐한테
쯧, 안 되는구나
(영도)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을 수는 있어요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잔잔한 음악]
어릴 때
채혈하고 마취하고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 사탕을 줬거든요?
주사가 달콤하게 느껴지라고
근데 그게 반복되니까
나중엔 사탕이 아파졌어요
그랬다가
되게 힘들었던 날
누가 사탕을 주고 갔는데
그때부턴 사탕이 또 달콤해졌고요
사탕을 누가 줬는데요?
첫사랑
첫사랑이 되게 예뻤나 보네
사탕 한 알에 넘어갈 정도면
(영도) 음…
뭐
그만 치울게요
아, 누가 봐도 아직 먹는 중인데
음, 다 먹은 줄 알았죠
배고프면 사탕이나 더 드시든가
어릴 적이었어요, 열한 살 때
[발랄한 음악]
(다정) 안 물어봤는데
그래서 구급함에 사탕 넣어 놓은 거였구나
처음 봤을 때
귀여운 척하는 건 줄
내가 멋있는 척도 아니고 귀여운 척을 왜 해요
귀여운 건 다정 씨가 하잖아요
(영도) 울다가 떡볶이 찾고
떡볶이 먹는데 향수 뿌리고
뭐든 다 아시는 분이 모르는 척하는 법은 모르시나 보네
(다정) 중학교 때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이 뭐 틀리면 바로바로 지적하는 그런 애였을 거 같아
'선생님, 저기에 마이너스 표시 빠졌는데요?'
(영도) 난 안 그랬는데 씁, 강다정 씨가 그랬나 보네?
(다정) 어? 아닌데?
내가 중학교 때 얼마나 참하고
겸손하고 순둥순둥 예쁘고
[호응하는 신음]
[영도의 웃음]
왜 웃어요?
(다정) 안 믿어요?
믿어요
[영도의 웃음] (다정) 안 믿는 눈치인데
(영도) 믿어요, 먹어요
(은하) 지금 이 두 사람 뭐라는 거니?
(아리) 누가 잘생겼는지 골라 달라는 거 같아요
[익살스러운 음악] (은하) 하, 자꾸 2층 가더니
이분한테 오징어 바이러스 옮겼니?
아, 어쩌다 이렇게 되신 거예요?
혈연관계는 접어 두고 객관적으로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인 원한도 접어 두고 공정하게
[은하의 한숨]
(아리) 전 철도 사장님이요
진짜? 진짜?
- 너 지금 나 뽑은 거야? - (은하) [아리를 툭 치며] 너 왜 그래
(은하) 혹시 얘가 나 없을 때 협박했니?
얘가 너 자른대?
갑질하니?
그런 거면 말해 내가 얘를 자를 테니까
진심이니? 둘이 뭐 있니?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 (영도) 여기 있었어? - (하늘) 응
(하늘) 안녕하세요, 형사님
- 오랜만에 뵙네요 - (진복) 아유, 오랜만이에요
씁, 작년 정범이 기일 때 보고 처음이네
네, 영도 통해서 이야기는 자주 듣고 있습니다
- (진복) 예, 별일 없으시죠? - (하늘) 네
(진복) 아이고, 이거 어쩌다가…
뭐에 물리신 거 같은데?
아, 사고가 좀 있었어요
많이 다친 건 아니고요
(진복) 아…
(하늘) 아, 영도야 이따 잠깐 나한테 들렀다 갈래?
뭐 물어볼 거 있는데
그래
- (하늘) 다음에 또 뵐게요 - (진복) 예, 또 봐요
(영도) 앉으세요
왜 또 그렇게 봐요?
(진복) 몰라
갑자기 아래위층으로 알콩달콩하니까 부럽네
질투인가?
그러시는 분은 최 형사, 박 형사랑 맨날 같이 계시면서
쩝, 그러네
근데 넌 왜 한 번도 질투 안 했어?
뭐 드실 거예요?
(진복) 난 컵 빙수
쿠키 크럼블로, 옆에 크로플도 꽂아서
[영도의 헛웃음]
(영도) 미숫가루 타 드실 것처럼 생기셔 가지고
혹시 아바라가 뭔지 아세요?
아이스바닐라라테
(진복) 그거 누가 몰라?
(영도) 저런
[숨을 들이켠다]
아, 근데
(진복) 수의사가 어쩌다가 개한테 물렸을까?
[흥미진진한 음악]
(하늘) 되게 이쁘게 생겼네
너 되게 이쁘게 생겼다
지금 뭐라 그랬어요?
(하늘) 이름이 뭐야? 응?
말해 주기 싫어요?
지금 뭐라 그랬냐고요
(하늘) 예? 얘 이뻐 가지고
[진호의 거친 신음] [하늘의 아파하는 탄성]
아, 아, 왜 이러세요, 왜, 왜 물어요
[하늘의 신음]
살려 주세요! 악!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심호흡]
[익살스러운 음악]
[한숨]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진동음]
- 네 - (다정) 아, 안녕하세요
(다정) 저 강다정이에요
아까도 전화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다정) 어…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얘기하시려던 것도 못 들었고
왜 그랬는지 제 상황도
설명드려야 될 것 같고
(체이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제가 바빠서
아, 예, 알… [통화 종료음]
[어두운 음악]
[전철 소리가 들린다]
(남자1) 하나가 죽었는데
똑같은 게 다시 나타났단 말이지
내가 속은 거면
날 죽이겠다고 사람을 보낸 놈이
아직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데
만약에 내가 속은 거면
[어두운 효과음] 내가
[탁 소리가 울린다]
(남자1) 열여덟 살짜리한테 속은 건데
열여덟 살이요?
선생님 때린 사람이 고등학생이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소, 손의 꺼, 껍데기가
(노숙자1) 버, 버, 벗겨져서…
(성준) 뭐래?
(호) 횡설수설이죠 아직 상태가 안 좋아서요
일단 들리는 대로 다 적어 오긴 했는데
- (호) 지문이 안 나왔다고요? - (성준) 장갑을 낀 거겠지?
(성준) 조각마다 지문을 일일이 지우지는 못했을 거니까
아니요, 장갑 안 꼈을 거예요
손의 껍질이 벗겨진 거 같다 그랬거든요
[성준의 한숨]
(성준) 박호, 밥 먹고 들어가자
[성준의 피곤한 신음]
[어두운 효과음] (노숙자2) 어떤 남자가 5만 원을 주면서
(호) 아휴
(진복) 손바닥 좀 볼 수 있을까요?
선배님
미친 소리 같은데 [차 문이 달칵 열린다]
(호) 저 이거 누군지 알 거 같아요
최정민 사건 때
용산역 라커에다가 유서 넣어 놓은 사람이에요
(진복) 응, 응 이 사람이 놓고 간 거네
그럼 일단 닥터 체이스가 저걸 들고 온 건 아니고
(영도) 물어봤을 때도
종이꽃에 대해서는 진짜 모르는 거 같았어요
이건 카페 밖 화면인데요
여기 잘 보세요
그리고 이게
박 형사 찌른 범인이 찍힌 건데
난 이거 같은 사람 같거든요
그러니까 박 형사 찌른 놈하고
종이꽃 놓고 간 놈이 동일인이라 이거지?
천우경찰서에 이거 보내서
법보행 확인해 달라고 할 수 있어요?
(진복) 해야지
최정민 건 종결됐지만
박 형사 건은 살아 있으니까 지금 한번 해 보자
[휴대전화 조작음]
(승원) 애가 너무 바빠서 안 된대, 어
어? 나 잠깐, 뭐 놓고 왔다 일단 끊어 봐
[휴대전화 조작음]
(태정) 난 왔지, 많이 늦어?
(다정) 아니야, 장 다 봤어
냉장고에 상추, 깻잎 있으니까 놀지 말고 그거 씻어 놔라
대충 하지 말고
물에 5분 담가 놨다가 한 장씩 딱 잡고 흐르는 물에 앞뒤로
(태정) 알겠어, 알겠어
깨끗하게 씻고 있을게
(다정) 내가 산 고기 보면 너 기절할 거다
마블링이 설악산 눈꽃만큼 절경이야
(태정) 아유, 아, 빨리 보고 싶네
얼른 와, 기다리기 힘들어
[승원의 당황한 숨소리] [익살스러운 음악]
(승원) 저기, 호, 혹시 4, 4, 4층 가시는…
예, 왜…
아, 저기, 혹시 우리 강다정 씨를 잘 아시는…
'우리 강다정'…
(태정) 아
아, 안녕하세요
아, 안녕 못 해요
(승원) 아이씨…
[문이 탁 닫힌다] 뭐야?
[다급한 숨소리]
[당황한 신음]
그걸 놓치냐?
난 옷을 놓쳤지 넌 지금 뭘 놓친 거냐고
(영도) 너 오늘 치 헛소리는 아까 다 했어
- 옷 갖고 나가 - (승원) 아이씨…
야, 강다정이 아니었어, 강냉정이었어
(승원) 강무정, 강비정, 강몰인정
이젠 그냥 4층 강 씨라고 해야 되냐?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영도) 미친 척해도 소용없어
자문이고 출연이고 이제 더는 안 해
이게 다 그때 네가 죽 키스를 안 해서 그래
(승원) 아니, 그렇다고 해도 아래위층 살면서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하늘이한테 가서 놀아 달라 그래
아니면 1층 가서 놀든가
(승원) 아니…
방금 웬 남자가 4층으로 갔다니까
- (영도) 친구인가 보지 - 친구가 왜 거기서 씻어
손 씻나 보지
[한숨]
네가 그렇게 제정신이고 건전하면
내가 너하고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하냐
(영도) 나가
- (승원) 4층 - 나가
- 야! - (영도) 나가
(승원) 씨…
[문이 탁 닫힌다]
[키보드 조작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숨을 들이켠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발랄한 음악]
(태정) 응, 만났어
만났는데 진짜 너무 이상하던데?
주영구야, 주영도가 아니야
아니, 그런 사람이 의사 해도 돼?
응
씁, 이상해
누나 왜 만나?
그러니까
[오토바이 엔진음]
- 수고하세요, 네 - (배달원) 맛있게 드세요
[멀어지는 오토바이 엔진음]
(영도) 안녕하세요
주영도라고 합니다
- 예? - (영도) 예
제가 주영도인데요
(태정) 아니…
(태정) 그럼 그 승원이라는 분은 환자…
(영도) 아…
아니요, 그거는 제 친…
예, 뭐
그거는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친구구나
(태정)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초면에 많이 실례가 될 거 같긴 한데
예, 괜찮습니다
대신 저한테도 막 물어보셔도 돼요
예, 그럴게요
(태정) 몇 년생…
[휴대전화 조작음] (영도) 84년
[익살스러운 음악] - (태정) 생일은? - 5월 10일
(태정) 태어난 시간은?
씁, 새, 새벽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건 왜…
(태정) 아, 새벽
아, 그, 미션이 있어 가지고
(영도) 아, 예
MBTI는요?
- ENFJ - (태정) 술은?
- (영도) 아니요 - 담배는?
- (영도) 아니요 - 워라밸은?
- 불가능 - (태정) 좋아하는 색깔은?
- 검정 - (태정) 좋아하는 계절은?
- (영도) 겨울 - 축구는?
- (영도) 좋아하죠 - 어? 어디?
(영도) 바르셀로나
아…
(태정) 야구는?
(영도) 좋아하죠
- (태정) 어디? - 쌍둥이
- 아! - (영도) 아…
(태정) 그…
- 음악은? - (영도) 좋아하죠
- 영화는? - (영도) 좋아하죠
- (태정) 여행은? - 좋아하죠
- (태정) 우리 누나는? - 좋아하죠
- 왜죠? - (영도) 예?
- (태정) 왜 때문에? - 예?
맷집은 좋은 편이세요?
[문이 탁 열린다] 예?
[다가오는 발걸음] [문이 탁 닫힌다]
- (태정) 왔어? - (영도) 예?
(영도) 아, 예, 다정 씨
(태정) 상추, 깻잎 빡빡 씻어 놨어
둘이 어떻게…
(영도) 이 앞에서 만나 가지고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 (태정) 술은 못 드시니까 - (영도) 아, 예
(태정) 여기
[태정이 캔 맥주를 쉭 딴다]
[시원한 숨소리]
내가 신기한 얘기 해 줄까?
'거울 봤는데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 또 그런 소리 하면
네가 고기 대신 불판에 올라갈 줄…
[익살스러운 음악]
[이를 악물며] 이상한 소리면 하지 마라
우리 가게에
(태정) 가끔 오는 남자, 여자 손님이 있는데
한 달에 두세 번?
둘이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해
- (다정) 근데? - 둘이 남매야
말도 안 돼
남매가 술 마시는 게 왜…
한 달에 두세 번이면 알코올 의존증도 아닌데
(태정) 술 취해서 넘어지면
누나가 동생을 막 일으켜 주는데요?
동생이 넘어져 있는데 그걸 안 밟았다고?
- 부축도 해 준다니까? - (다정) 미쳤나 봐
동생이 누나한테 막 물도 떠다 줘
그거 친남매 아니야
[작은 소리로] 근데 친남매래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친남매겠지
(영도) 아, 그럼 보통 친남매는 어떻게 해야…
아, 일단 밖에서 만나면 무조건 못 본 척이죠
(다정) 그게 아니면 최대한 상황을 짧게 끝내든가
'꺼져, 저리 안 가? 네가 갈래, 내가 갈까?'
와, 씨, 아, 잠깐만
(태정) 아, 누나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 (다정) 내가 뭐 - 아, 누구는 고기 먹고 살고
(태정) 누구는 공기 먹고 살아?
(영도) 아이, 저런
[영도의 당황한 웃음]
난 네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지
(태정) 나 별명이 강고기야
누나가 지었잖아
(영도) 나 어릴 때 누나 있는 친구들 되게 부러웠는데
제 어릴 때 꿈은
- 외동이었어요 - (다정) 내 꿈은 막내였거든?
넌 내가 세 살 때 이미 내 꿈을 박살 낸 거야
난 태어나 보니 이미 꿈이 박살 나 있었다고
- (영도) 드세요 - (태정) 드세요
(태정) 먹어야지, 아유, 마블링
(다정) 내려놔라
[종소리가 들린다] [새가 지저귄다]
(여자) 문미란은 누구야?
나잖아
자기 이름이 문미란이었어?
내 이름이 문피자인 줄 알았냐, 그럼?
(여자) 그럼, 난 전집 하니까 내 이름은 김파전이고
[미란의 헛웃음] [여자의 웃음]
(미란) 자기 이름은 왜 안 써?
(여자) 애들 이름 적었으면 됐어
(미란) 그게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야
왜 자식들만 챙겨, 나부터 챙겨야지
내가 안 행복한데 애들이 어떻게 행복해
나와 봐
자기 이름 뭐야
(여자) 아유, 됐다니까
- 김치전? - (여자) 에?
- 김육전? - (여자) 잉?
- 김호박전? - (여자) 아이…
(여자) 김
- (미란) 김 - 연아
(미란) 연…
[익살스러운 음악]
아, 진짜
진짜 안 어울린다
(여자) 본명이야
트리플 악셀
(여자) 근데 자기
지난주엔 성당인가 교회인가 간다 그러지 않았어?
(미란) 여기저기 두루두루 훌륭하신 분들 만나 보고 그러는 거지
[여자의 헛웃음]
나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 게
무슨 꿈?
씁, 내가 해몽 좀 하는데
별건 아니고
몇십 년 안 보이던 얼굴이 꿈에 비치는 게
내가 요즘 너무 편하게 살았나 싶기도 하고
조만간 볼 일이 생기나 보네
- 그런 거야? - (여자) 그럼
(여자) 아이고 등들도 많이도 달아 놨네
아, 뭔 소원들이 그렇게나 많을까
나도 저거 하나 달면 개꿈으로 퉁칠 수 있는 건가?
(미란) 여기다 아무거나 써도 돼요?
(직원) 주소랑 이름 쓰시면 돼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사람 이름 써도 되나?
(직원) 그냥 하고 싶은 말 쓰시면 돼요
[무거운 음악]
[쓱쓱 적는다]
[쓸쓸한 음악]
(미란) 강윤찬
약속 지켜 줘
[코를 드르릉 곤다]
[어두운 효과음]
[미란의 떨리는 숨소리]
[칼이 툭 떨어진다]
여기서 끝내
나는 너 못 죽이겠으니까
(미란) 이걸로 네가 나 죽여
그것도 못 하겠으면
(미란) 지금 약속해
[울먹이며] 애들하고 나 다시는 찾지 마, 죽을 때까지 찾지 마
약속해
(태정) 아, 맞다
[반찬 통을 정리하며] 아까 그 형한테 누나 중학교 때 사진 보여 줬거든?
(다정) 무슨 사진?
(태정) 왜, 누나 그, 빙빙 도는 꼴뚜기 안경 쓰고 다녔을 때 있잖아
근데 그 반응이
[프라이팬을 쓱 든다]
[흥미로운 음악]
(태정) 이때 누나 별명이 안경원숭이였어요
진짜 라식 하고 인간 됐지
웃기죠?
예, 예쁘네요
(태정) 네?
- 예? - (태정) 예?
예?
(미란) 영도가 그걸 보고도 예쁘대?
(태정) 내가 밥 먹기 전에
(태정) 그 형한테 쓸데없는 거 엄청 물어봤거든?
뭐, 그다지 예의 바르지 않은 말투로
근데 그걸 다 참고 꼬박꼬박 대답을 해 주더라고
거기서 이미 검증은 끝난 거지
(미란) 그 사진도 보여 줬다니까 누나가 뭐래? 그게 중요한 건데
그게 진짜 소름 끼치는 부분인데
누나 반응이
(태정) 예쁘대
나도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진짜 그랬어, 예쁘다고
(미란) 부끄러워했다고? 다정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러니까 소름이 끼친다는 거지
(미란) 아무튼 네가 봤을 때
누나한테 나쁜 일은 없다는 거지?
- 그렇다니까 - (미란) 아참
영도 생일하고 태어난 시 물어봤어?
(태정) 응 근데 시간은 정확하게 모른대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정) 안녕하십니까?
[유경의 어이없는 숨소리]
(유경) [영어] 정말 무례해
[한국어] 아, 난 저 팀 다 싫어요
어제 닥터 베일은 메이드가 자기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뒤에서 이거 했대요
우리 직원한테 그랬다는 거야?
(유경) 놉, 닥터 체이스한테요
둘이 얘기하고 돌아섰는데 뒤에서 딱
한 명은 왕따시키는 인종주의자
그리고 한 명은
왕따당하는 조금 불쌍하지만 조금 기분 나쁜 나무 작대기 같아
[영어] 차갑고, 무례하고 인간미 없고, 재미없고
흠, 잘생기긴 했지만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체이스) [한국어] 호텔 앞입니다 잠깐 뵙죠
[유경이 하품한다]
(유경) 누구예요? 퇴근 시간 딱 알고 메시지 보낸 사람?
데스크 비워 놓고 여기 있어도 돼?
(유경) 어? 이거 남자 옷 브랜드인데?
안에 뭐예요? 나 봐도 돼요?
(다정) 음, 안 돼요, 일해요
수고해, 내일 봐
(유경) 아, 나도 퇴근하고 싶다
나도 퇴근 잘할 수 있는데
[문이 탁 닫힌다]
[흥미진진한 음악] [차 문이 탁 닫힌다]
[영어] 이게 무슨…
대체…
뭐지?
(체이스) [한국어] 괜찮으면
저걸 시켜 보고 싶은데
(다정) 오늘의 정식이요?
다른 사람하고는 한식 먹을 일이 잘 없어서
아…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체이스) 없습니다
저한테 서울은 그냥 뭐 외국 도시니까요
(다정) 아…
그렇겠네요
저도 뉴욕 갔을 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맨날
햄버거 먹고 그랬는데
[잔잔한 음악]
(주인) 생선 가시 발라 먹다가 목구멍에 낄 놈을 봤나, 어?
나랑 저승길 동무 할 거 아니면
음식을 잘근잘근 씹어서 삼켜야 될 거 아니여
[주인의 호탕한 웃음]
자, 이거나 더 처먹어, 이놈아
아이고, 이것들아, 맛있지?
- (손님1) 맛있어요 - (주인) 맛있게 먹어, 어
- (손님2) 네, 잘 먹겠습니다 - (주인) 또 오고
(손님2) 네
(다정) 습관에는
그 사람만의 역사가 있대요
그 할머니도 그만큼 거칠게 살아오신 거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무례한 표현에 대해서
다들 이해를 한다는 거네요?
말의 표현보다는
의도를 생각해 주는 거겠죠
(다정) 아까 그 말도
좋게 생각하면 그런 뜻이잖아요
'왜 그렇게 급하게 먹는 식습관을 가지게 됐냐'
'체할까 걱정된다'
'모자라면 더 먹어라'
[한숨]
(명자) 빨리빨리 안 먹어?
누가 지금 밥 안 먹고 장난치냐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합니까?
늘은 아니겠죠
(다정) 그러고 싶긴 한데
세 번째였습니다
(체이스) 강다정 씨가 그런 얼굴로 날 봤던 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펍에서
그리고 그때
편해졌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고
강다정 씨는 여전히 내가 불편한 거죠
죄송해요
제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
이유라도 바로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나와 버려서
(체이스) 사과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고
강다정 씨가
내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걸 물어보려는 겁니다
[차분한 음악]
내가
또 같이 밥을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강다정 씨가 궁금해졌다고 하면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아니면 이런 말도 강다정 씨에겐
무서운 일입니까?
[세수한다]
[문이 달칵 열린다]
[라이터 뚜껑이 딸각 열린다] [라이터가 쉭 켜진다]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칼에 푹 찔린다]
[남자들이 다급해한다]
(남자2) 어, 아유, 아유, 죄송합니다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음악]
[숨을 깊게 내뱉는다]
(진복) 손바닥 좀 볼 수 있을까요?
[칼로 푹 찌른다]
[어두운 효과음]
[어두운 효과음]
(아리) 아까부터 이상한 사람이 얼쩡거려요
(은하) 씁, 혹시
다정이 그 사람 아니야? 얼굴 똑같은?
아니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숨을 들이켠다]
혹시 그, 꽃 놓고 간 사람 아니야?
에이, 설마
내가 보고 올게
- (아리) 혼자 가시게요? - 응, 괜찮아
(은하) 저기요
잠시만요
(준호) 오, 오랜만이다
[준호의 어색한 웃음]
여긴 왜 왔어?
(준호) 아, 여기
여기에 일이 좀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래영이한테 이야기 들었거든
선보러 갔다가 너 만났다고
- 머리 잘랐네? - (준호) 어? 어
이제 [잔잔한 음악]
연극은 안 하는 거야?
먹고살아야지, 나이가 있는데
나 취직했어
(은하) 커피 마실 거니?
(준호) 어, 은하야, 우리 이야기 좀 할래?
(은하) 커피 마시러 온 거 아니면
가 줄래?
나도 먹고살아야 해서
[한숨]
연극
결국 포기할 거였으면
그렇게 징그럽게 평범한 양복 입고
(은하) 취직해서 살 수 있는 거였으면
그때는 왜 죽어도 포기 못 한다고 했어?
왜?
왜 네가 제일 먼저 놓은 게 나였어?
(은하) 기다리라고 하지
그럼 내가 기다릴 수도 있었잖아
왜 그냥 그만하자고 했어?
왜 내가 기다린다는 말도 못 하게
바닥까지 지친 얼굴을 하고 나한테 와서
먼저 놔주면 안 되냐고 사정했어?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뭐?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날 위해서 그런 거였다고?
[어이없는 숨소리]
웃기지 말라고 해
넌 그냥
그만큼만 나를 믿었던 거야
나는
네가 주는 사랑을 받아 처먹을 줄이나 아는 사람이고
너는
너만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한 거야
말해 봐
내 말 틀렸어?
(미경) 틀린 말은 아니네요
[영도의 어색한 웃음]
(은하)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냥 안 했어요
의미 없는 거 같아서
잘하셨어요
[살짝 웃는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은하) 아, 아니에요, 끝났어요
다정이가 회의 중이라 소리 지를 데가 없어서
실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
하…
갈게요
어, 그래, 그럴래?
(은하) 네
[멀어지는 발걸음]
(미경) 아
아침에 문에 걸려 있었는데 전한다는 걸 깜빡해서
(영도) 아, 예
[흥미로운 음악] (다정) 종이꽃 보고 놀라지 마세요
이건 내가 접은 거니까
(영상 속 남자3) 우리 뿅뿅아리들 다들 준비되셨죠?
네, 네, 선생님
(영상 속 남자3) 자, 그럼 이제 색종이를
먼저 이렇게 반으로 접어 주세요
자, 그다음
아래 양쪽 꼭짓점을 위쪽 끝에 맞춰서
접어 주시면 됩니다
가운데 맞춰서 반
위쪽도 맞춰서 반
이렇게 네 번 접어 주시면 돼요
자, 다 됐죠?
아니요, 아니요 잠깐, 잠깐만요, 잠깐만요
(영상 속 남자3) 짠!
선생님은 이렇게 미리 만들어 왔어요
참 쉽죠?
우리 뿅뽕아리들, 다들…
장난하나
다시
뿅뿅 어린이 준비가 다 안 됐어요, 선생님, 다시, 다시 [키보드를 탁 누른다]
(영상 속 남자3) 우리 뿅뿅아리들 [밝은 음악]
(다정) 왜, 어릴 때
뜨거운 거 만졌다가 놀라고 나면
'아, 뜨' 소리만 들어도 겁먹잖아요
그 경고는
우리 뇌에 있는 편도체가 하는 거래요
근데 편도체 뒤에는 해마라는 게 있어서
새로운 기억을 등록해요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해마가 열심히 일을 하면
무서웠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 있다는 건데
아참
주영도 씨 정신과 의사였지?
아무튼 내 해마는
이제 종이꽃을 이렇게 저장할 거예요
'그거 무서운 거 아니었어'
'알고 보니까'
'그거 사탕 같은 거였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탁 열린다]
(영도) 예
[문이 탁 닫힌다]
(다정) 내일부터 2박 3일 출장이라서
그리고 오늘 퇴근도 늦을 거 같아서
미리 두고 가요
셔츠
잘 어울렸으면 좋겠는데
만약 안 어울리면
또 갈기갈기 찢어 줄게요
근데 이거 마무리 어떻게 하지?
암튼 끝
강다정
[영도가 편지를 툭 내려놓는다]
[종이꽃을 툭 내려놓는다]
[문이 탁 닫힌다] (영도) 다치지 말라고 지구 끝까지 밀어내면
지구를 반으로 접어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왜 멀어지지 않을까?
당신은 왜 참아지지가 않을까?
도망가라
도망가지 마라
제발 가까이 오지 마라
제발 멀어지지 마라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엉터리 주문을 외면서
결국
내가 지구를 반으로 접어
달려가게 하는 사람이 있다
(다정) 어?
(영도) 들어가도 돼요?
(다정) 어, 네 [다정의 당황한 웃음]
무슨 일 있어요?
(영도) 할 얘기가 있어서요
- (영도) 어디 가요? - 아니요
(다정) 네
[다정의 어색한 웃음]
가는 건 아니고 철도가 잠깐 보자고 해서
(영도) 음…
- 오래 걸려요? - (다정) 아니요
(다정) 금방 올 거예요
혹시
잠깐만 여기서…
예
기다릴게요
[달려가는 발걸음]
(철도) 왔어?
(다정) 어, 근데 철도야 급한 거 아니면 우리 지금 말고…
(철도) 난 왜 이럴까?
(다정) 어?
아버지가 오신다는데
아, 한국 오신대?
(철도) 이 나이 먹도록 아버지를 이렇게 겁내는 아들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을까
[헛웃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야
왜 그런 생각을 해
하지 마, 그런 생각
근데 철도야, 진짜 미안한데
내가 엄청 중요한 일이 있어서
(철도) 그렇지?
넌 항상 바쁘게 열심히 살지
나한텐 왜 그런 게 없을까?
악바리 근성, 헝그리 정신
[어색한 웃음]
여유가 있다는 거는 나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나중에…
(철도) 왜 신은
오직 나한테 외모만 주셨을까?
(다정) 응,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가도 되겠다
(철도) 나 겁나나 봐
진짜 열심히 하는데도 잘 안될까 봐
그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니까
[철도가 컵을 탁 내려놓는다]
[철도의 한숨]
(영도) 화분 잘 있네요?
(다정) 아, 예
제가 맛있는 거 많이 주거든요
콜라도 주고 커피도 주고
(영도) 진짜 콜라하고 커피를 줬네?
(다정) 해마야, 힘을 내
해마 파이팅
[힘주는 숨소리]
[차분한 음악]
(다정) 주영도 씨는
그만큼만 나를 믿는 거 아니에요?
나는 사랑을 받을 줄이나 아는 사람이고
주영도 씨만
사랑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무거운 음악]
다정 씨
[멀어지는 발걸음]
(영도) 다정 씨…
[어두운 효과음]
다정 씨,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아련한 음악]
(어린 다정) 서울 살다가 밤에 갑자기 강릉 갔을 때도
'아, 내가 코뿔소한테 쿵 받혀서 여기 떨어졌구나'
근데 막 피 나고 그러진 않았으니까
일어나서 또 막 걸었어요
(영도) 요즘도 그런 생각 해요?
(어린 다정) 아니요
왜냐하면
발이 생겼으니까
(영도) 그러네요
강다정 씨 발이 생겼네요
.너는 나의 봄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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