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4
(시우) 기상청에 입사했을 때
나의 첫 업무는 시정 관측이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이곳에 올라와
저 멀리 보이는 목표물을 관측하여
가시거리를 산출하게 된다
시정 관측을 하면서 내가 가장 놀란 사실은
평균 정도의 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은
지금도 여전히 관측 자료로 활용될 만큼
가시거리를 정확히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토록 정확하지만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의 눈은 외부의 요인에 따라 너무나 쉽게
가려지고
[무거운 음악] 좁아지고
왜곡된다는 사실이다
[또각또각 소리]
[또각또각 소리가 울린다]
[새가 지저귄다]
[한숨]
[옅은 한숨]
[잔잔한 음악]
(시우) 잘 들어갔어요?
[휴대전화를 툭 내려놓는다]
(라디오 속 캐스터) 아침부터 시야가 좋지 않습니다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면서 내륙 곳곳으로 안개가 짙은데요
여기에 미세 먼지 농도까지 높게 나타나면서
가시거리가 짧습니다
출근길 안전 운전 하셔야겠습니다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좋으면 사귀는 거고, 아니면
(시우) 마는 거예요
어느 쪽이에요?
어느 쪽이에요, 우리?
총괄과 특보
[차분한 음악]
기상청 내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딱 거기까지
좋아해도요?
그냥 잠깐 지나가는 감정이야
그냥 지나가면 돼
(시우) 그랬다가 후회하면요?
차라리 후회하는 게 나아
(하경) 그건 아쉬움이라도 남지
나더러 사내 연애 그걸 또 하라고?
아니
난 못 해
안 해
흔들렸잖아요, 나한테
들켜서 미안하다
사과할게
(시우) 나는 사과 안 할래요
과장님한테 들킨 거
안 미안할 거라고요, 나는
[타이어 마찰음]
[쾅 부딪는 소리]
[사이렌이 울린다] [긴장되는 음악]
[사고 현장이 소란스럽다]
(TV 속 앵커) 오늘 새벽 짙은 안개로 인해
횡성 부근 중앙 고속 도로에서 14중 연쇄 추돌 사고가 났습니다
(직원1) 어제 오후에 안개 상세 정보를 발표했고
밤 10시부터 안개 관련 속보 창도 운영 중에 있습니다
사고 당시 시정 거리는
100m 안팎에 불과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봉찬) 우리 쪽 예보는 어떻게 나갔어?
(하경) 적절했다고 판단됩니다
오늘 새벽 2시부터 횡성 부근에 발생한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50m 이내로 떨어질 수 있으니
안전 운전에 각별히 주의해 달라는 문자도 계속해서 내보냈습니다
(봉찬) 음, 문제는 없는데…
저 지역 최근 누적 사례가 몇 건이나 돼?
최근 3년간 평균을 살펴보면
대관령은 326회, 춘천이 115회
철원이 109회로 집계됩니다
(봉찬) 아니, 안개 상습 구간이면 속도를 줄여야지, 아이고, 참
그래도 우리 기상청 차원에서
좀 구체적인 예보 대책을 세워야 되는 거 아닐까?
(하경) 그 점 전체 총괄 팀 과장들과 함께
협의해 보겠습니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하자고
(하경) 5월 11일 아침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위성 센터 나와 주시죠
[시스템 작동음] (직원2) 현재 내륙을 중심으로 밤사이 복사 냉각이 강해…
[직원2가 계속 말한다] (직원3) 야, 똑소리 나는구먼
아직 미혼이지?
까딱하면 저기 오 주임 꼴 날 뻔했지
(직원3) 누구?
(직원4) 오명주 주무관 말이야
다들 차기 과장감이라고 했는데
아유, 사내 결혼 하고 육아 휴직 두 번 다녀오면서 그냥
만년 주임으로 주저앉았잖아
(직원3) 아니, 근데 그게 진하경 과장하고 무슨 상관이야?
(직원4) 대변인실의 한기준 사무관 알지?
(직원3) 어, 그 눈썹 진한?
(직원4) 응 [흥미로운 음악]
그 친구랑 결혼 한 달 남겨 놓고 파혼했다지, 아마
- (직원3)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 (직원4) 응?
진 과장이 아깝지
(직원4) 하기야
여자가 똑똑할수록
능력 있는 남자 만나는 게 좋긴 하지
(직원3) 돈은 얼마나 모았어?
(직원4) 아이…
(직원3) 인생이 먹구름이다, 아유
(기자1) 야, 이렇게까지 아이템이 없니?
다 모여 봐
자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
아이, 야, 항상 그 지역에서만 추돌 사고가 나는 이유가 뭐겠어?
[사이렌 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사고 당시 앞 차와의 가시거리가 10m면
바로 저 앞도 제대로 안 보인다는 거잖아
근데
어제 안개 특보 어떻게 나왔어?
우리나라는 원래 안개 특보 따로 안 내는데요?
- 모르셨어요? - (기자1) 그렇지
왜 우리나라만 안개 특보가 없대? 응?
외국도 그렇대?
(유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기자1) [손가락을 튀기며] 딱이지
포인트는 '왜'에 있는 거야
왜, 어째서 우리나라만 안개 특보가 없을까
뭔가 욕 얻어먹을 거리를 없애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예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기 초점 맞춰서 기획 기사 좀 써 봐, 응?
오늘 이 사고랑 과거 사례까지
적당하게 이렇게 버무려 가지고, 오케이?
씁, 좀 억지 같지 않을까요?
너 남편이 기상청에 있어서 쓰기 껄끄럽냐?
[펜을 탁 놓으며] 아이 아, 그런 게 아니고요
어, 그런 거 아니면 그냥 써 와
(기자1) 너 공과 사 구분할 줄 모르면 기자 아니다?
다 나왔지? 자, 일해, 일해, 됐어
(동한) 아니야, 이거 내가 갈게
(명주) 아, 예
어? 운동 갔다 바로 오셨나 봐요?
(하경) 아, 사고 소식 듣고 급하게 오느라고요
(명주) 아, 네
[수진이 책상을 탁탁 두드린다]
(수진) 어제 잘 들어갔어요?
예
근데 어제 먼저 나간 여자분은 누구예요?
(명주) 여자? 여자랑 있었어?
아,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
(수진) 아, 내가 다 봤거든요?
시우 특보랑 같은 테이블에 있던 여자분
우리 들어올 때 살짝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거
(명주) 어?
(석호) 너 여자 생겼냐? [흥미로운 음악]
아니요, 아직이요
맞네, 생겼네
(석호) 너 포커페이스 안 되잖아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얼굴에 표 딱 나, 그렇게
아, 아직 거기까진 아니거든요
아, 여친이랑 얼마 전에 헤어졌다더니
또 새로 만난 거예요?
(수진) 어떻게요? 소개팅?
아니면 클럽 같은 데서?
아니요, 그냥 이, 일로 만났다가요 [수진의 놀란 숨소리]
(수진) 아 기상청 사람이에요, 혹시?
그럼 우리도 아는 사람?
(명주) 그런 거야, 시우 특보?
[수진의 옅은 탄성] (석호) 진짜야?
(하경) 이시우 특보!
오늘 사고 난 횡성 쪽 안개 분포도
사고 시점 앞뒤로 1시간 안팎
10분씩 간격 끊어서 나한테 제출해요
못 알아들었어요? 내…
아니요, 들었습니다
(시우) 그, 사고 시점 앞뒤로 1시간 안팎 상황
10분씩 간격 끊어서
지금 당장이요
예, 지금 당, 당장
[흥미로운 음악] (명주) 뭐야, 지금?
시우 특보 갈구는 분위기야?
그런 거 같은데요?
뭐 찍힌 걸까요?
[마우스를 딸깍거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네
(중개인) 아, 어쩌죠?
지난번 가계약하신 매수자께서
갑자기 집을 못 사시겠다네요?
왜요?
대출에 문제가 생겼다나 봐요
그래요?
(중개인) 씁, 어떻게
급하시면 시세보다 싸게 내놓을까요?
꼭 그래야 할까요?
(중개인) 씁, 그럼 좀 빨리 나가긴 하죠
사장님, 그러면 제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무거운 음악]
[고민하는 숨소리]
(직원4) 대변인실의 한기준 사무관 알지?
그 친구랑 결혼 한 달 남겨 놓고 파혼했다지, 아마
- (직원3)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 (직원4) 응?
진 과장이 아깝지
(직원4) 하기야
여자가 똑똑할수록
능력 있는 남자 만나는 게 좋긴 하지
[직원들의 웃음]
[다가오는 발걸음]
[탁 내려놓는 소리]
(업무과장) 너 요즘 글발 왜 이래?
(기준) 왜 그러세요?
(업무과장) 아무리 기상청 내에서 돌려 보는
정기 간행물이라도 그렇지
이거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냐?
지난번 칼럼만 해도 그래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란 말 누가 못 하냐?
지나가는 초딩 애들도 하는 얘기 굳이 우리가 거기다 보태야겠냐?
아, 지난번에 별말씀 없으셔 가지고…
거야 자네가 뭐, 결혼이다 뭐다
공사가 워낙 다망하시니까 그냥 넘어가 준 거고
[업무과장이 숨을 씁 들이켠다]
결혼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만 이게 뭐냐, 이게
(업무과장) 아이고
계속 이러시면 곤란해 대충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 저 대충 하지 않았…
죄송합니다
(업무과장) 너 카메라 앞에서 말 잘하잖아
그 반의반만 따라가도 이런 글 나오겠냐, 응?
다시 쓰겠습니다
긴장 좀 하자, 어?
예
- (업무과장) 어? - (기준) 예
(업무과장) 다시 써
에이
[한숨]
[서류를 탁 내려놓는다]
[한숨]
(유진) 자기 깨졌어?
아이, 그런 거 아니야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아, 그런 거 아니라고
(기준) 왜? 여긴 무슨 일로 왔는데?
아, 횡성 고속 도로에서 일어난 14중 추돌 사고 말이야
그거 안개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게 왜?
예보 제대로 나갔는데?
그러니까
(유진) 그거 관련해서 인터뷰 좀 쓸까 하는데
자기가 총괄 팀 예보관 좀 섭외해 주면 안 될까?
지금 바쁘다, 나중에
(유진) 아, 내가 지금 좀 급하게 필요해서 그래
나도 오후까지 기사 써야 되거든
(기준) 아니, 총괄 팀이 얼마나 바쁜 데인데
너 필요하다고 당장 섭외되고 그런 데가 아니잖아!
아, 뭐 그렇다고 짜증을 내고 그래
(유진) 오빠 대변인이잖아
대변인한테 관계 부서 사람 인터뷰 좀 부탁한 게
그렇게 내가 못 할 소리야?
- 그러니까… - (유진) 나도 기자야
아,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어?
내가 급한 일 좀 끝내 놓고…
됐어, 내가 알아서 해
[한숨 쉬며] 아, 진짜…
[차분한 음악]
아니,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발을 탁 구르며] 진짜 너까지 왜 이러니, 진짜
(기준) [울먹이며] 에이, 씨
아이…
[유진의 한숨]
[한숨]
[노트북을 탁 덮는다]
(시우) 아까 말씀하셨던 자료입니다
이게 왜, 어느 용도로 필요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잡담은 자제해 주세요 이시우 특보
[흥미로운 음악]
(하경) 고생했어요 가서 일 보세요
[마우스 조작음]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아니요, 아닙니다
[키보드 조작음]
(명주) 뭔가 단단히 찍힌 거 같은데?
(수진) 그러게요
[마우스 조작음]
(시우) 여기요
[석호의 헛기침]
(석호) 무슨 일이냐?
- (시우) 뭐가요? - 뭔 일로 그렇게 단단히 찍혔냐고
그냥 뭐, 일하다가 잡담해서?
진하경 과장이 그런 걸로 갈구는 사람이 아닌 걸
내가 아는데?
(석호) 뭐야?
[무거운 음악]
어느 쪽이에요, 우리?
총괄과 특보
딱 거기까지
나하고 선 긋는 중
너랑 진 과장이랑 뭔 선을 그을 게 있어?
최연소 과장이라고 만만히 보지 마라
저 같은 신입 특보가 까불 상대가 아니다
그런 거 아닐까요?
너 또 까불었냐?
[석호의 탄식]
(석호) 그러게 본청은
네 스타일이랑 안 맞는다 그랬지, 어?
수도권청에 있을 때랑 많이 다를 거라고
아유, 정말
더군다나 진하경 과장이야
완벽주의에 틈새 하나 없이 빡빡한 사람이라고
그러게요
생각보다 보수적이긴 하더라고요
자유로운 네 영혼과는 절대로 안 맞지
너 앞으로도 계속 부딪칠 거다
뭐, 어쩔 수 없죠
방은 구해졌고?
아니요
마음에 들면 너무 비싸고
(시우) 가격이 맞으면 방이 형편없고…
왜요? 방 하나 내주시게요?
아니야, 아니, 아니, 아니
(석호) 너 더 열심히 구해 보라고
그리고 너 진 과장한테도 그만 까불고
너, 그리고 이 와중에 연애는 무슨
적당히 해
[피식 웃는다]
(하경) 내일 새벽에도 복사 냉각으로 인해서
지표면 온도가 내려간다고 보는 게 맞겠죠?
예, 뭐, 워낙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지역이라서
[동한이 숨을 씁 들이켠다]
어쨌든 안개 정보를
어제랑 비슷한 수준으로 내면 될 거 같은데
범위를 좀 확대해 보면 어떨까요?
(시우) 아, 그렇게 되면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요?
단위를 세분화해서 여기 계곡이 밀집된 지역이랑
하천 부근, 터널 입구 쪽으로 강조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요?
[흥미진진한 음악]
(하경) 하루 중에 안개가 가장 심한 시간은
3시부터 7시까지고
그 시간대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고속 도로거든?
(하경) 좀 떨어지지?
(시우) 그렇다고 그 지역 일대를 전부 다 아우르는 건
실효성이 떨어지죠
더군다나 여기 3번 도로는 일사가 강해서
해가 뜨면 가장 먼저 안개가 걷힐 텐데요
(시우) 왜요? 불편해요?
(하경) 어제 관측 자료를 보니까
방금 이시우 특보가 말한 저 지역은 상대 습도가 높던데?
(시우) 제가 저 지역을 좀 잘 아는데요
이맘때 한번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요
엄청납니다
[헛웃음]
이시우 특보는 뭐 그렇게 아는 게 많아?
저번에는 관측선을 타서 서해 정보가 빠삭하다더니
오늘은 강원 산간 지역의 안개까지 다 꿰뚫고 있어?
관측선은 서해 군 복무지는 강원도
(시우) 양쪽 지역의 지형을
머릿속에 쫙 꿰고 있을 정도로 빠삭하고요
양쪽 지역의 기후 변화 역시
제가 직접 경험한 살아 있는 데이터들로 가득하고요
모니터로만 보는 과장님하고는 게임이 안 되죠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특보로서 총괄과장한테 어필하는 중인데요?
됐고
포괄적 경고로 가시죠
(시우) 아니요 그, 지역을 세분화해서
주의 정보를 줘야 됩니다
터널 입출구와 교량은 특히 더요
이시우 특보
(시우) 우박이 내렸을 때도 비가 내렸을 때도
제가 맞았습니다
어, 이거 횡성 고속 도로의 추돌 사고가
(동한) 5월, 6월에 집중된 점을 고려해 보자면
과장님의 의견이 일리가 있어
들었지? [흥미로운 음악]
(동한) 근데 강원도의 지형적 특징을 고려해 보자면
특보 말도 일리가 있어요
들으셨죠?
(동한) 어쨌든 내일 새벽에
강원도 일대에 안개가 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니까
일단 두 사람이 합의된 부분 먼저 정리를 해서
안개 정보를 먼저 낼게요
(하경과 시우) - 아, 그럼 나머지 지역은, 아… - 상세 정보는요?
(동한) 그거를 우리가 계속 토의를 해야지
결론이 안 나면은
야간 근무조한테 커버하라고 해야지
지금 통보 내릴 시간 다 됐어
예?
어? [시우의 한숨]
(시우) 예, 본청입니다
그, 조금 전에 안개 정보 나갔는데요
확인하셨나요?
아, 네, 네
일단 그 지역에 내일 아침에 안개가 낄 거라는
시그널 주시고요
그리고 안개 상세 정보는…
정리되는 대로 제가 책임지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키보드 조작음]
[컵을 탁 내려놓는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매니저) 따님이 기상청을 5급으로 들어가셨네요?
(수자) 아, 네
아유, 그냥 붙기만 했게요?
내로라하는 인재들 사이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는 거 아닙니까
[수자의 웃음] (매니저) 네
(태경) 엄마, 아직 안 늦었어 그만 갑시다
가만히 좀 있어
하경이 알면 난리 날 거라니까
아, 쫄리면 너나 가든가
(매니저) 다 됐네요 [수자의 웃음]
어떻게 나왔나요?
잠시만요, 따님 예상 등급이…
우리 하경이야 보나 마나 최상급이지
(수자) 한우로 치면 투뿔
[수자의 웃음] 엄마는 딸내미한테 투뿔이 뭐야, 투뿔이
하경이가 무슨 꽃등심이야?
뭐 어때서 그래, 쯧
[수자의 헛기침]
8등급이네요
네?
[익살스러운 음악] (태경) 8등급이요?
8등급이면 꽤 괜찮은 편입니다만…
[수자가 콜록거린다]
(수자) 아니, 우리 하경이가 어디가 8등급이라는 거예요?
중고등학교 다 합쳐서 1등급을 놓친 적이 없는 앤데?
(매니저) 말씀드렸다시피
결혼이라는 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
직업 외에도 참고되는 사항이 많아서요
본인의 인적도 중요하지만
부모나 형제의 정보가
등급에 아주 많이 반영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지금
편모슬하라고 차별하는 겁니까?
(매니저) 아 꼭 편부모 가정이라서라기보다는
어머님의 재력이 기준에 많이 못 미치세요
여자 혼자서 자식 둘 이만큼 키워 낸 것도 어딘데
재력까지 갖출 정신이 어디 있어요, 내가!
(수자) 나 원
거봐 내가 그냥 가자고 했지, 엄마
(매니저) 1등급은 부모 재산이
200억 이상인 분들만 해당되시거든요
[흥미로운 음악]
의사, 변호사 같은 분들 중에 7등급인 분들도 많으시고요
의, 의사랑 변호사가 7등급밖에 안 된다고요?
(매니저)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머니, 8등급이면
대기업 직원 행정 고시 합격자가 해당되니까
그렇게 나쁜 등급 아닙니다
따님 수준의 스펙 좋은 분으로
충분히 연결 가능하답니다, 어머니
[매니저의 웃음]
[태경의 황당한 숨소리]
[수자의 헛기침]
[숨을 후 내뱉는다]
그럼 지금부터
따님의 성혼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세워 볼까요?
[새가 지저귄다]
[세면대 물소리]
[물소리가 멈춘다] (기자2) 종일 바쁜 거 같더라?
(유진) 어, 기획 기사 하나 준비하는 게 있어서
[세면대 물소리] 인터뷰 준비 좀 하느라
[물소리가 멈춘다]
[피식 웃으며] 왜? 뭐 나한테 할 말 있어?
그, 지난번의 그 예보관 이름 이시우 맞지? [세면대 물소리]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대?
아, 얼마 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던데?
[물소리가 멈춘다]
(유진) 그래서?
나 좀 소개해 줘라
[피식 웃는다]
(유진)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거든?
왜 굳이 좁디좁은 기상청에서 사람을 찾아?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연애인데, 뭘
(기자2) 그리고 기상청에
기사만 쓰러 들어오는 거 너무 지겹잖아
나도 썸 좀 타 보자, 어?
글쎄
나도 뭐, 누굴 소개시켜 줄 만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기자2) 채 기자, 야!
아, 잠깐만!
[변기 물이 쏴 내려간다] [문이 달칵 열린다]
[변기 물이 쏴 내려간다]
[세면대 물소리]
[발랄한 음악]
(수진) 시우 특보 생각보다 인기가 많네요, 그렇죠?
글쎄요
(수진) 그나저나 누굴까요?
우리 시우 특보랑 사귀는 여자분
수진 씨는 그게 왜 궁금해요?
[물소리가 멈춘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기상청 직원 같아요
어째서요?
뭐, 시우 특보도 일하다 만났다 그러고…
일하다가 만났다고 해서 꼭 기상청 사람이란 법은 없잖아요
제가 어제 호프집에서 봤다니까요
우리 팀이 나타나자마자
(수진) 꼬리 말고 뒷문으로 도망치더라니까요
이유가 뭐겠어요? 딱 봐도 사내 연애지
아직은 아니라잖아요
뭐, 난 아까 그렇게 들은 거 같은데
흠,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계셨구나
아, 굳이 들은 건 아니고 그냥 들리니까
(수진) 시우 특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한창 자라나는 새싹인데
미워한 적 없어요
아무튼
새로운 정보 들어오면 또 소식 전해 드릴게요
(수진) 누군지 되게 궁금하네요
[수진이 티슈를 쓱 뽑는다]
(하경) 아 이 죽일 놈의 사내 연애
(동한) 내일 봅시다
(시우) 들어가세요 [저마다 인사한다]
(명주) 하, 아유
야간조에 업무 인계했으면 됐지
뭘 굳이 시우 특보가 상세 안개 정보 내겠다고
이 고생이야?
[키보드 조작음] 제가 책임지고 강원청에 자정 전에 전달한다고 했거든요
(석호) 야, 까불지 말랬더니 왜 오버까지 하고 그래
저도 이번 기회에 과장님한테 점수 좀 따 보려고요
(석호) 아유 적당히 하고 들어가라, 응?
(시우) 예
- (수진) 고생하세요 - (명주) 수고해요
(하경) 뭐 좀 도와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래, 수고해, 그럼
(시우) 네
[발랄한 음악] 돌아본다, 돌아본다
돌아본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안 돌아본다
[탄식]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버튼 조작음]
문이 닫힙니다
[차분한 음악]
[엘리베이터 도착음]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린다]
(유진) 저기요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무슨 일인데요?
(유진) 기사 때문에 그러는데
총괄과장의 의견이 좀 필요해서요
불편하시면 다른 분 알아봐도 되고요
(하경) 왜, 뭐가 잘 안 풀려?
[잔잔한 음악]
(기준) 응
뭔데?
- (하경) '5월', 5월이 테마야? - (기준) 응
(하경) 어…
5월…
일단 5월은 날씨가 좋고
사람들이 야외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 하잖아
(기준) 응
일기 예보를 좀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 어때?
- 그럴까? - (하경) 응
(기준) 씁, 그러면 제목을… [키보드 조작음]
제목 '올봄 일기 예보 활용 백서'?
- 그럴까? - (하경) 좀 유치한가?
- 괜찮은데? 어 - (하경) 괜찮아? 해 봐
[키보드 조작음] - (기준) '올봄' - (하경) '봄'
(기준과 하경) '일기 예보 활용 백서'
(하경) 진짜 일기 예보를 활용할 수 있는
너만의 노하우를 갖다 좀 녹여 주는 거지
[한숨]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진) 어, 최근에 안개로 인한 추돌 사고가 잦은데요
최근만의 문제라고 보기엔 어렵고요
(하경) 일교차가 큰 2월 말, 4월 초, 5월 중순
8월 말, 10월 초에는
특히나 안개가 잦은 관계로 그로 인한 추돌 사고의 빈도 역시
상대적으로 증가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어쨌든 최근 강원도 지역에서
안개로 인한 추돌 사고가 잦은 건 사실이잖아요
서해 대교 부근도 빈도 면에선 비슷할 겁니다
근데요
우리나라는 왜 안개 특보를 안 하는 거죠?
어…
이게 워낙 초국지적 현상이라 실효성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하경) 특보 수준의 예보를 하려면
전국에 2km 단위로
그 지역의 수분 입자를 관측할 만한 장비가 필요한데
현재 우리 기상청에서 확보한 예산으로는
조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산 부족 장비 부족으로 못 하는 거다?
안 하는 게 아니고요?
[어두운 음악] 무슨 대답을 듣고 싶으신 거예요?
그냥 팩트가 필요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최근 발생한 횡성 고속 도로의 추돌 사고는
안개로 인해 운전자의 가시거리가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하경) 기상청에서 발표한 안개 정보가 잘못된 게 아니고요
그게 팩트입니다
그거야 수요자 입장에서 판단할 문제겠죠?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동한의 시원한 숨소리]
너 요즘 집에서 좀 어때?
아, 뭐…
그냥 그렇죠, 뭐
그래?
그래, 한동안 좀 서먹할 거다
아니, 뭐, 형님도 그러셨어요?
[봉찬의 시원한 숨소리]
야, 너 나 알잖아
너 내가 이 홀아비 생활이라면 아주 질색하는 사람이어 가지고
지방 돌 때마다 그냥 어떻게든지 가족들 다 데리고 다녔잖니
(동한) 예
근데 한 2년 정도?
(봉찬) 우리 큰아이 입시 때문에
잠깐 한 2년 정도 떨어져 있었거든?
(동한) 아
근데 살림 다시 합치니까
이게 편해지기까지 이게 한참 걸리더라고
그렇죠? 그, 뭐, 다 그런 거죠?
아,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냥…
(봉찬) 그러니까 그럴수록 자꾸 치대고 들이대라 이 말이야, 어?
너 괜히 서먹하다고 이렇게 밖으로 빙빙 돌다가는
너 집사람하고 애한테 평생 왕따당하기 십상이야, 알아?
아, 내가 그렇다는 거 아니야
아무튼 명심해
[한숨 쉬며] 예, 뭐…
(동한) 아이, 그러면 이렇게 좀 다시 편안해지려면은
그게 뭐, 얼마나 걸리려나?
한두 달? 반년?
너 하기 나름이고, 그건
(동한) 그렇겠죠
뭐 해?
[동한의 웃음]
뭐 재밌는 거 보나 보네
(동한) 뭔데? 어?
(보미) 아, 왜 남의 핸드폰을 보고 그래요!
아, 뭐, 못 봤어
야, 그리고 우리가 남은 아니지
[문이 쾅 닫힌다]
아휴
[달그락거리는 소리]
(동한) 그, 뭐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향래) 없어
(동한) 뭐, 뭐, 이거? 내가 꺼낼게
(향래) 아…
(동한) 어, 어! 어휴 [향래의 놀란 숨소리]
아휴, 이거…
아유, 내가 못 살아, 진짜!
[파편을 잘그락 집는다] (향래) 당신은 그냥 앉아나 있을 것이지
뭘 거들겠다고 설치니, 설치길!
아니, 뭐 도와주겠다고 그런 거잖아
도와주는 것도 뭘 알아야 돕는 거지
당신이 살림을 알아, 뭘 알아?
아니, 근데 이거 좀 너무하지 않냐 너희, 나한테?
(동한) 그래, 14년 동안 우리가 떨어져 살아서 내가 미안하다 [동한이 파편을 툭 던진다]
근데 그게 어쩔 수 없었잖아 [무거운 음악]
뭐, 내가 따로 떨어져 살자 그랬어? 어?
우리가 막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고, 막
그럴 수가 없었던 거 아니야
무슨 딴짓한다고 밖으로 나돈 것도 아니고
보미랑 당신 굶긴 적도 없고
그랬으면은 좀 한 번쯤은
'수고했다', 뭐, '어서 와라'
이렇게 말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개가 집을 나갔다가 들어와도 반가운데
뭐, 내가 뭐,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고 살아야 되나?
[떨리는 숨소리]
- 다 했어? - (동한) 어!
당신은 다달이 돈 벌어다 주고 밖에서 딴 여자 안 만나면
가장 노릇 다 한 거니?
아니, 그러면 뭐?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당신 우리 보미 태어났을 때 어디 있었니?
태어났을 때…
태어났을 때가 저…
(향래) 남해에서 관측선 타느라고
보미 태어나고 백일도 더 넘어서야 우리 애 얼굴 처음 봤지
그래, 어쩔 수 없었잖아, 그때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어디 있었어?
초등학교 때가 저, 저기 뭐야…
백령도에서 문자 한 통 보낸 게 전부야
그러니까 그때도 내가 얘기를 했잖아
우리, 내가 그때 상황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때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래
근데 당신 그거 알아?
(향래) 한동안 이 동네 사람들
다 내가 미혼모인 줄 알았어
뭐라고?
아니, 누가, 누가 그랬어, 그거?
다
이 동네 사람들 다!
(향래) 애가 아프면
이 병원, 저 병원 나 혼자 애 들쳐 업고 뛰어다녔고
어쩌다 보미 데리고 슈퍼라도 가면
혼자서 애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다고
이것저것 챙겨 주는데
정말 뭐라고 말도 못 하겠더라
날씨에 미쳐서
남해고 동해고 산이고 바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고
집에는 어쩌다가 한 번
그것도 와서 잠만 자고 가는 애 아빠를
있다고 해야 돼, 없다고 해야 돼?
어?
지난 14년 동안
보미랑 나는 그렇게 살았다고
알겠니, 엄동한?
[동한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차분한 음악]
[책장을 사락 넘긴다]
아아…
[기준의 한숨]
(기준) '날씨와 싸우는…'
[웃으며] '채유진'
아, 귀여워
[사진을 부스럭 넘긴다]
[무거운 음악]
(유진) 왜, 무슨 일이야?
(기준) 아니, 저 사람 그날 그 미친놈 맞지?
아닌데? 자기가 잘못 본 거 같은데?
아닌 거 확실해?
전혀 아니야
[한숨]
[한숨]
[키보드 조작음]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수자의 한숨]
(수자) [놀라며] 아유, 깜짝이야
[태경의 한숨]
잡아먹으려고 들겠지?
(태경) 어
[한숨]
미리 물어보고 등록을 할 걸 그랬나?
(태경) 하, 참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졸졸 엄마 쫓아다니면서
내가 계속했던 말이 그 말이거든요?
제발 하경이한테 물어보자고
이게 뭐 나 좋자고 그런 거야?
엄마 좋자고 그러는 거지
(태경) 엄마가 하경이 파혼한 거 어디 말하기 쪽팔리니까
보란 듯이 수준 맞는 놈이랑 결혼시키려고 안달 중이잖아, 지금
이게 진짜, 쯧
[태경의 기가 찬 숨소리]
[태경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시우)
[발랄한 음악]
[휴대전화 조작음] (하경)
아니야, 아니야 어디까지나 이건 공적인 문자니까
(하경)
(하경)
[피식 웃으며] 아니다
아니다
순 미친놈이구먼
[통화 연결음]
[익살스러운 음악]
(하경) 어, 어, 뭐야 이거 어떻게 꺼?
(시우) 과장님?
어, 이시우 특보 이, 일은 잘돼 가고 있나?
예, 뭐, 거의 다 마무리되고 있는데요?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어, 일이 잘돼 가고 있나 어쩌나 궁금해서
에이, 제가 뭐, 안개 상세 정보 낸다고 해 놓고 내뺐을까 봐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니면
제가 보고 싶어서?
까분다, 또, 쯧
그럼 뭔데요? 이 야심한 밤에
어, 그러니까…
내일 오전까지
(하경) 우리나라처럼 안개가 빈번한 모든 사례들 뽑아서
- (하경) 내 책상 위에 올려놔 - (시우) 예?
(하경) 안개 특보를 내리는 모든 나라들
다 추려서 요약해 놓고
어, 그 나라에서 쓰는 장비들, 방식들
그리고 예산들까지 쭉 뽑아 주고
지, 진심이신 거죠?
(하경) 농담 같니?
(시우) 아, 아닙니다
그래, 그럼 내일 출근 전까지다?
(하경) 이상
(시우) 예, 예 [통화 종료음]
오케이, 자연스러웠다
뭐지?
선을 왜 이렇게 심하게 긋지?
[새가 지저귄다]
(석호) 아이고
야
아, 왔어요?
[시우의 피곤한 숨소리]
(석호) 이게 다 뭐냐?
(시우) 아, 과장님께서
우리나라처럼 안개가 빈번한 외국이랑
현재 안개 특보 내리는 나라들 좀 찾아보라고 하셔서요
[명주의 놀란 숨소리]
그래서 안 들어가고 밤새운 거야?
아, 뭐, 연수원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똑같습니다, 저한텐
(명주) 어유, 야 그렇게 웃지 마, 사람 짠하게
자기 지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어, 시우 특보
아, 뭐, 괜찮습니다
그래도 과장님께서 필요하신 거라니까
[수진의 한숨]
(수진) 정말로 필요하셨을까요?
이런 쓸데없는 논문들이?
예?
[수진의 한숨]
이거 아무래도 그건 거 같죠?
어
[흥미로운 음악] 뭔데요?
있어, 그…
(석호) 상급자가 가끔
기어오르는 하급자 기합 줄 때 하는 거
전문 용어로 '삽질'
(시우) 에, 에이, 설마요!
에이!
- (하경) 좋은 아침이에요 - (명주) 오셨어요?
왜들 그래요? 무슨 일 났어요?
(석호) 아니요, 뭐 무슨 일이 있다기보단…
뭐가 이렇게 많아?
과장님, 이거 어제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근데요, 진짜 필요한 거 맞죠?
아, 삽질 아니죠?
삽질은 무슨요, 이게…
(박 주무관) 진 과장님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하경) 뭔데요?
[긴장되는 음악]
[성난 숨소리]
(업무과장) 이거 뭐야, 한기준 씨
당신 정말 일 이따위로 할 거야?
당신 이거 정말 몰랐어?
[한숨]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이런 게 나가는 줄도 모르고
대체 집안 관리를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쯧
뭡니까, 이거?
(유진) 기사네요?
내가 어제 인터뷰했던 건 이런 내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경) 기자가 이렇게 사실을 왜곡해서 써도 되는 겁니까?
어떤 지점이 왜곡됐다는 거죠?
말했죠?
(하경) 안개 특보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썼잖아요 뭐가 잘못됐나요?
[긴장되는 음악] 내 말을 이해를 잘 못했나 본데
(하경) 우리나라는 태백산맥과 함경산맥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동쪽은 경사가 급한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경동 지괴에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직선상의 거리는 길고 좁은
추가령 구조곡의 형태를 띤 그런 지형이라고요
그래서요? 그게 뭐요?
[헛웃음]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요?
(하경) 세계 기상학자들이
기상을 관측하기에 가장 어려운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가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라고요
국토의 70%가 산, 삼면은 바다
주요 하천만 11개, 댐은 1,206개
그 가운데도 안개는 워낙 초국지적 현상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단 이유로 특보를 하지 못하는 건데
그걸 어떻게 기상청의 무능함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가 있는 겁니까!
[피식 웃는다]
(유진) 뭐야
어젠 관측 장비가 없어서 못 하는 거라면서요
예산 부족으로 돈 없고 장비 없고
솔직히 모든 정부 부처가
툭하면 둘러대는 변명이잖아요, 그거
변명이요?
그렇잖아요
(유진) 기상청 한 해 예산이 4천억이 넘던데
장비가 없어서 안개 특보를 못 한다고 해 봐요
우리 국민들 중에 누가 납득할 수 있겠어요?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들은 안개 특보들도 잘만 내던데?
다른 나라 어디요?
(유진) 뭐, 예를 들면 영국, 미국, 호주, 일본…
(하경) 영국?
영국 기상청의 한 해 예산이 얼마인 줄 알아요?
자그마치 1조 6천억 원 우리나라의 4배가 넘어요
미국? 일본?
- (하경) 호주? - (유진) 됐고요
적어도 이런 기사를 쓰려면!
논문 정도는 읽어 보고 쓰든가 그게 아니면!
(하경) 가까운 사람에게 팩트 체크라도 받든가
그쪽이야말로 일부러 방관한 거 아닙니까?
어디 한번 엿 먹어 봐라
사적 감정으로다가 일부러?
[떨리는 숨소리]
(기준) 제 불찰입니다
여긴 제가 정리할 테니까 과장님은 가서 일 보세요
언론 대응
똑바로 하세요
[기준과 유진의 한숨]
'정리'?
조용한 데로 가자, 가서 얘기해
(유진) 뭘 정리한다는 거야, 지금?
(기준) 네가 사고 친 거!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 될 거 아니야
내가 담당자인데!
[기준의 한숨]
덤비려면 뭘 좀 알고 덤비든가
진하경 쟤
여기서 날고 기는 애들 다 제치고 예보국 최연소 과장 먹은 애야
그게 뭐?
너 처음 여기 왔을 때
(기준) 강수 유무 적중률이랑 강수 유무 정확도도
구분 못 했던 애잖아
그런 애가 지금 누굴 상대로…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그러니까 이런 기사 쓸 때
최소한 나한테 상의 정도는 했었어야지
그래서 어제 인터뷰할 사람 섭외해 달라고 찾아갔었잖아!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기준) 자신 없으면 나한테 감수라도 받든가!
내가 왜?
(유진) 기자가 언제 관계사 감수받고
기사 쓰는 거 봤어?
나도 엄연한 기자야
당신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의무가 있다고!
[한숨]
기자 좋아한다
(기준) 논리도 없고 팩트도 없고
그저 까 대기만 하면 다 기사고 기자야?
오빠
그렇게 잘난 기자분께서 거짓말은 왜 해?
거짓말이라니?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이시우
너 모른다며
[무거운 음악]
너 이래도 몰라?
[성난 숨소리]
[한숨]
(명주) 아유 많이 깨지는 분위기인데?
(수진) 아, 그러게 그 여자한테 인터뷰는 왜 해 주셔 가지고…
(석호) 해 달라는데 안 해 주는 것도 이상하잖아, 어?
아, 그럼 또 한기준 때문에
공과 사 구분 못 한다 그럴 거 아니야
[명주의 한숨]
(명주) 이래서 실패한 사내 연애는 괴로운 거란다
뭐, 그렇다고 성공한 사내 결혼도 별로 바람직하진 않지만
죄송합니다
(하경) 기사에 필요하다고 해서 인터뷰한 건데
아무래도 제가 말을 잘 가리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한숨 쉬며] 됐고
[펜을 탁 놓는다]
그래서
한바탕 질러 주고 온 거야?
네, 너무 화가 나서요
잘했어
그, 기자들이 근거 없이 우리 기상청 까 대는 게
뭐,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도 할 말 해야지
[잔잔한 음악] (봉찬)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뭐
참는 데 도가 텄다 하더라도
최소한 팩트가 틀렸을 땐 그때그때 바로잡아 주는 게 맞아
잘했다고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아
잘한 김에 말이야
진 과장 보고서 하나 만들어라
어?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개 특보를 내지 않는가에 대해서
근거 제시하고 정리해 봐
아, 대놓고 반박 기사 쓸 순 없으니까 좀…
특집 기사 하나 가자,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하경) 무슨 일입니까?
(기준) 방금 전에
우리 쪽 과장님한테서 연락받았는데
반박 특집 기사 내보내신다고…
그런데요?
(기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자료의 양이 워낙 방대해서
초안만이라도 되는대로 빨리 넘겨주시면 좋겠는데…
그게 있어야
반박 기사를 낼 수 있어서요
정말 몰랐니?
어, 몰랐어
(하경) 결혼이란 걸 하면
더 많은 사실과 상황을 공유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네
초안은 내일 오전까지 넘겨드릴게요
그럼
[한숨]
[새가 지저귄다]
[익살스러운 음악] 뭐? 뭘 해?
(태경) 결혼 정보업체에 널 등록시키셨다고
우리 어머니께서
[수자의 헛기침]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빙추마냥 코가 쑥 빠져서는
(수자) 너 그러고 다니는 거 꼴 보기 싫어서
아예 네 수준에 맞게
너랑 딱 조건부터 맞는 놈이랑 내가 찾…
거봐, 내가 저럴 거라 그랬지?
[문이 탁 여닫힌다] 아, 이게 다 저를 위해서 그러는 거지, 뭐, 응?
(수자) 떡하니 조건 좋은 놈이랑 잘 만나서 결혼까지 해 봐
기상청에서 제 위상도 높아질 거고
그, 그 한기준이 그 자식이 문제냐, 지금?
내 말이 틀렸냐, 뭐!
뭐, 그렇게 맞는 말은 아닌 거 같아, 엄마
장단 좀 맞춰, 이 계집애야
[풀벌레 울음]
[캐리어 가방이 우당탕거린다]
(수자) 얘, 얘, 너 그게 다 뭐냐?
(태경) 어? 하경이 집 나가나 봐, 엄마
(수자) 뭐? 너, 너 진짜로 나가려고?
결혼 정보업체에 집어넣은 내 정보 다 삭제시키고
(하경) 등록 취소해
취소하기 전까지 나 안 들어와
(수자) 아, 얘, 얘 거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 (수자) 얘, 하경아! - (태경) 야!
(수자와 태경) - 하경아, 아유, 저거, 저거… - 엄마, 엄마, 내가 뭐라 그랬어
[흥미로운 음악]
[안전띠를 탁 채운다]
[자동차 시동음]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차분한 음악]
[스위치 조작음]
[스위치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아, 예, 과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경) 어, 잤니?
아니요, 아직이요
어, 잘됐다
그, 영국 자료 분석한 거 있잖아
그거 좀 번역이 이상한 거 같은데 같이 봐 줄래?
[스위치 조작음]
(시우) 어, 어디요?
12페이지에 두 번째 챕터 있잖아?
네, 잠시만요
[밝은 음악]
(시우) 아, 네
[휴대전화 진동음]
예
어, 27페이지의 테이블 3-1
(하경) 그거 혹시 그래프는 없니?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졸린 목소리로] 네
시드니 사례 말이야 이거 자료로 써도 되는 걸까?
특이점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시우) 아…
(하경) 내 말 듣고 있니?
(시우) 네, 듣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한숨]
[한숨]
[초인종이 울린다]
여긴 웬일이야?
아이, 그럼 5분 간격으로 전화하지 말든가요
마지막 전화 30분 전이었는데?
(시우) 아이, 뭐 이 시간까지 깨 있다 보니까
배고파서 야식 먹으러 나왔다가
과장님도 배고프겠다 싶어서
들어와
(시우) 자
[시우의 웃음]
어, 토핑 반반이네?
왜요?
반반 나 별로 안 좋아하거든
아, 그러면, 자
[잔잔한 음악] (시우) 이렇게
반반씩 합쳐서
음
맛있어?
먹어 봐요
- 이렇게? - (시우) 예
(하경) 반반을 합쳐?
(시우) 예, 반반을 합쳐서
먹는다
- 이렇게? - (시우) 예
맛있죠?
(시우) 많이 먹어요
[웃음]
[밝은 음악]
과장님, 이거 영국 기상청 자료고요
이거 거기 보면 기사 원본 있거든?
- 그것도 찾아 봐 줘 - (시우) 아, 네
(시우) 과장님
제가 중요한 표시들만 파란 줄 쳐 놨습니다
세분화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시우가 말한다]
(하경) 대충 끝난 거 같은데
어때?
[부드러운 음악]
(시우) 흔들렸잖아요, 나한테
들켜서 미안하다
(하경) 사과할게
(시우) 나는 사과 안 할래요
과장님한테 들킨 거
안 미안할 거라고요, 나는
진심이거든
[가방이 툭 떨어진다]
[한숨]
[한숨]
[사진이 퐁당 빠진다]
[변기 물이 쏴 내려간다]
[한숨]
(기자2) 어? 채 기자 아직도 안 갔어?
어? 어, 일이 좀 있어서 [세면대 물소리]
이시우 있잖아
그새 임자가 생겼다더라
무슨 소리야?
(기자2) [한숨 쉬며] 벌써 소문 쫙 퍼졌어
사귀는 사람이 같은 기상청 직원이라는데?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경) 정말 예쁘지 않니?
(시우) 네
(하경) 난 하루 중에 이때가 제일 좋더라
(시우) 굉장히 아침형 인간이시구나
[하경이 살짝 웃는다]
그리고 또요?
나 당분간 이 집 안 내놓으려고
계속 생각이야 나겠지만
그 위로 새로운 추억이 쌓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또요?
왜 또, 뭘 알고 싶은데?
전부 다
(시우) 진하경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요
[부드러운 음악]
너 티 내지 말랬다?
(시우) 여기 기상청 아니거든요?
[함께 웃는다]
회사 사람들이 아는 순간 우리도 끝이야, 알지?
알아요
사람들 앞에서 난 계속 선을 그을 수밖에 없을 거고
그것도
알고 있고요
(시우) 가시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석호) 너 여자 생겼냐?
아니요, 아직이요
(하경) 지금 당장이요
(시우) 예, 지금 당, 당장
(명주) 뭐야, 지금? 시우 특보 갈구는 분위기야?
(수진) 그런 거 같은데요?
뭐 찍혔나 봐요
(시우) 하지만 이 거리는
주변 환경에 의해서
얼마나 쉽게 가려지고
앞으로는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잡담은 자제해 주세요 이시우 특보
(하경) 고생했어요 가서 일 보세요
(시우) 좁아지고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시우) 아니요, 아닙니다
(시우) 왜곡되는지
(하경) 난 두 번 다시 공개 사내 연애 같은 거 안 해
(시우) 알아요
(시우) 여기 계곡이 밀집된 지역이랑
하천 부근, 터널 입구 쪽으로 강조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요?
(시우) 지금은 여기까지가
그녀와 나만 아는 우리의 가시거리
(시우) 그러다가 만약에 들키면요?
그럼 그날로 우리 관계도 끝
(시우) 와…
스릴 있네요?
다신 겪고 싶지 않아 그렇게 헤어지는 거
알았지?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가끔은 짙은 안개나 황사
비나 눈 같은 악천후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통화 연결음]
[유진이 훌쩍인다]
[잔잔한 음악]
[통화 연결음]
(시우) 그러면서
또 알아 가겠지
[휴대전화 진동음]
서로의 가시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서로에게
계속 용기 있게 다가가는 것뿐이라는 걸
[휴대전화 진동음이 계속된다]
늦었다
[하경의 다급한 숨소리] [시우의 아파하는 신음]
[힘겨운 신음]
[힘겨운 신음]
[문이 탁 닫힌다]
(시우) 어, 같이 가요
어, 아니야, 넌 좀 늦게 와
지각이라면서요
그러니까 네가 지각하라고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피식 웃는다]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휴대전화 진동음] [살짝 웃는다]
[의미심장한 음악]
[한숨]
여보세요
[부드러운 음악]
(석호) 아침에 어떻게 과장님을 그 방향에서 만났어?
- 오는 길에 만났어요 - (석호) 예?
- (하경) 아주 우연히요 - (기준) 허락도 없이
(기준) 자꾸 경계선 넘고 그러면 안 되지, 어?
그 자식 데려다 놓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니?
(하경) 너 한 번만 더 이딴 일로 나 불러내 봐 [기준의 신음]
(하경) 이시우 특보, 너…
(시우) 심장이 누구 허락받고 뛰는 거 보셨습니까?
(하경) 똑바로 좀 하자 이시우 특보
(수진) 수도권청인데
방금 전에 서울에 강수 에코 뜬 게 좀 이상하다는데 봐 주시겠어요?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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