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5
(하경) 대기 불안정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공기의 충돌이다
[새가 지저귄다]
[휴대전화 진동음]
늦었다
[하경의 다급한 숨소리] [시우의 아파하는 신음]
[힘겨운 신음]
[힘겨운 신음]
[문이 탁 닫힌다]
(시우) 어, 같이 가요
어, 아니야, 넌 좀 늦게 와
지각이라면서요
그러니까 네가 지각하라고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피식 웃는다]
[도어 록 작동음]
[살짝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의미심장한 음악]
[한숨]
여보세요
[엘리베이터 도착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버튼 조작음]
(시우) 그래서 나더러 지금 어쩌라고
아니, 더는 안 해 줄 거야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다시는 연락하지 마
[무거운 음악]
[통화 종료음]
[한숨]
(하경)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더운 공기를 만났을 때
(하경) 어, 나 USB를 놓고 와서
(시우) 아, 아…
안 그래도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USB를 집으며] 고마워
근데 방금 그거 누구야?
전에 좀 알던 사람이요
(하경) 아…
(하경) 대기는 불안정해지고 위험 기상이 나타난다
안 가요? 늦었다면서
(하경) 어, 가야지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같이 가요
[힘주는 숨소리]
(유진) 어디 가? 얘기 좀 하자니까
(기준) 나중에
[한숨]
(유진) 원래 이렇게 뒤끝 있는 사람이었어?
뒤끝?
너 지금 오빠한테 뒤끝이라 그랬니?
그래, 나 이시우 그 사람 좀 만났다
(유진) 수도권청에 취재하러 갔다가 처음 만났고
괜찮은 사람 같아서 몇 달 사귀었어
뭐, 또 뭐가 궁금해?
대학교 때 짝사랑 고등학교 때 첫사랑까지
싹 다 얘기해 줘?
아니, 너 왜 이렇게 핵심을 못 짚어?
내가 지금 네가 전에 사귀던 남자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해?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라며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아니, 그런 거짓말을 왜 하는 거야?
한 직장에서 서로 얼굴 마주치는 거
불편할까 봐 그랬지
(유진) 나도 기상청 갈 때마다 그 여자 얼굴 보는 거
아주 껄끄러워 죽겠으니까
아무 말 안 하니까 나는 뭐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아?
난 처음부터 너한테 다 얘기했잖아 결혼할 여자 있다고
다 지나간 과거 따윈 상관없다고 한 건 오빠였어!
(기준) 아아
그래서 다 지나간 과거 따위가
우리 결혼식까지 찾아와서 그 난리를 쳐?
[한숨]
됐다
(유진) 얘기 끝내고 가라니까?
지금 안 가면 지각이라서 그래
(기준) 네가 어제 친 사고도 수습해야 되고
아…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유진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잔잔한 음악] (라디오 속 캐스터) 6월 초 평년 이맘때 대비 날씨가 덥습니다
오늘도 기온이 갑자기 오르면서 더워지겠는데요
현재 서울의 기온 23도 인천은 21도로
어제보다 1, 2도가량 낮지만
한낮의 기온은 29도로 덥겠습니다
6월이 여름을 앞둔 길목임을 감안하더라도
더운 날씨입니다
하늘도 종일 맑겠습니다만
구름 없는 하늘인 만큼 햇살이 강하게 쏟아지면서…
[일기 예보가 계속 흐른다]
운전대 똑바로 잡고, 양손으로
한 손도 충분하거든요?
안전 운전 하라고, 어?
(시우) 네
(하경) 서로 다른 원칙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아, 지금은 안전 운전이 먼저니까, 그렇죠?
[시우의 어색한 웃음]
(하경) 서로 다른 상처
나 저 앞의 횡단보도에서 세워 줘
(시우) 왜요, 다 왔는데?
그냥 청까지 가죠?
세워 줘
아, 누가 볼까 봐 그래요?
(시우) 그럼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 되지, 뭐
나 여기서 내릴까?
(하경)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더운 공기를 만나듯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났다
[시우가 피식한다]
(시우) 알겠어요
저기서 내려 주면 되죠?
(하경) 응 지금 우측으로 붙으면 돼…
[석호의 한숨]
(석호) 응?
[발랄한 음악]
[버튼 조작음] 어?
[어색한 웃음]
(하경) 이미 선택한 시작
그래서 겪게 될 예상치 못할 이상 기후들을
우리는 얼마나 피해 갈 수 있을까?
[빗소리 효과음]
[작은 목소리로] 그냥 넘어가요
오는 길에 만났어요
(석호) 예?
이시우 특보랑 저 오는 길에 만났다고요
아주 우연히
(석호) 예
(하경) 아주 우연히요
[석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석호) 아, 그나저나 의정부 쪽
도로 침수 때문에 오전 내내 정체라네요
중랑천이 넘쳤나 본데
침수… 중랑천이요?
새벽에 의정부에 비 온 거 몰라요?
시간당 50밀리나 쏟아부었는데
(하경과 시우) 비요?
[긴장되는 음악]
(봉찬) 음…
씁, 근데 이게 말이야, 어?
국지성 호우로 보기에는 좀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거 아니야?
(1팀 총괄과장) 발달 과정으로 볼 때
전형적인 국지성 호우가 맞긴 합니다
의정부 지역에서 발달한 비구름대가
남양주 지역으로 넘어가기까지 정확히 21분 걸렸습니다
05시 30분경 호우 주의보를 내보냈고
총 누적 강수량이 70에서 80밀리로 관측됐습니다
(봉찬) 강수가 집중됐다는 지역이 어디였더라?
중랑천 인도교 주변이요
(봉찬) 중랑천, 아이고, 야
[서류를 탁 놓으며] 그럼 뭐 주의보 내렸을 땐
손쓸 틈도 없었겠네
(1팀 총괄과장) 예
(봉찬) 어, 진 과장
이거 어떻게 생각해?
수증기 유입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거 같지 않아? 어때?
(하경) 어제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면서
지표면이 가열된 게 가장 큰 원인 같습니다
그로 인해 대기 불안정이 강해지는 환경을 조성하게 됐고요
(시우) 밤사이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의정부 부근으로 불안정이 강해진 게
가장 큰 이유 같은데요?
(봉찬) 뭐?
아, 근거가 뭐야?
(시우) 아, 예, 여기 보시면
의정부 부근의 대기 상하층의 기온 차가
40도 가까이 벌어졌잖아요
(봉찬) 어
- (봉찬) 어이, 진 과장 - (하경) 네
이거 정밀하게 분석 좀 해 봐
예, 알겠습니다
(봉찬) 아이고, 예리한데? 좋았어
본청으로 불러올리길 잘했네
[봉찬의 웃음] (시우) 감사합니다
(봉찬) 씁, 그럼 보자
[흥미로운 음악]
(수진) 저 수많은 강수 에코 중에
어떤 게 국지성 호우로 발달할지 어떻게 알아맞혀요?
그것도 한 시간 안에
가스레인지 위에 라면 물을 올려놓고
어디서 먼저 기포가 올라올지 알아맞히는 정도의 확률이랄까?
예?
[헛웃음]
아예 맞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
그래야 정신 건강에 이로워
[펜을 탁 놓는다] [한숨]
(봉찬) [손뼉 치며] 자, 자 쫄 거 없고
그냥 우리들 긴장하라고
위에서 이렇게 잽 한번 날렸다 생각하면 되는 거야, 어?
하지만 눈 부릅뜨고 실황 감시
오케이?
국지성 호우는 실황 감시가 관건
이상, 오케이, 고생했어
[저마다 인사한다]
[직원들이 인사한다]
(동한) 아,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 엄 선임 - (동한) 예
나랑 커피 한잔하자
(동한) 아…
(봉찬) 나와
(동한) 예
[동한의 한숨]
[문이 스르륵 열린다]
[새가 지저귄다]
(동한) 아… [동한의 헛기침]
예
야, 너 어제 나랑 한잔하고 바로 들어갔던 거 아니야?
(동한) 아, 잠이 안 와 가지고
한잔 더 하고 잔다는 게
그렇게 됐습니다
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봉찬) 천하의 엄동한이가
딴 때도 아니고 여름철 방재 기간 동안에
술 마시다가 지각을 해?
[웃음]
너 왜 그러는데?
(동한) 아, 저 위는 사흘이 멀다 하고 패턴이 바뀌는데
저라고 한결같을 수 있겠습니까?
너 집에 무슨 일 있냐?
아니요, 없어요, 그런 거
[시원한 숨소리]
[차분한 음악]
(향래) 날씨에 미쳐서
남해고 동해고 산이고 바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고
집에는 어쩌다가 한 번
그것도 와서 잠만 자고 가는 애 아빠를
있다고 해야 돼, 없다고 해야 돼?
어?
지난 14년 동안
보미랑 나는 그렇게 살았다고
알겠니, 엄동한?
[동한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향래) 뭐야?
어디 가?
(동한) 어, 나
당분간 청에 가서 좀 지낼게
여름철 방재 기간이라 일이 많아
당신 정말 이래야겠니?
보미나 당신한테도 이게 더 편할 거 같고
마음대로 해
이럴 거면 아예 들어오지 말든가
[싱크대 물소리]
[한숨]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수진) 엄 선임님 원래 주당이세요?
(명주) 글쎄 그렇단 얘기 별로 못 들었는데
(수진) 흠, 역시 [마우스 조작음]
이번 인사에서 물먹은 거 때문에 힘드신가 보다
그렇죠, 주임님?
맞죠, 주임님?
(석호) 글쎄
(하경) 다들 주목해 주세요
지난 10년간 국지성 호우 관련 이슈를 분석하려고 하는데요
어, 지역별 강수량, 지속 시간 분포도 포함해서요
10년 치 전부 합니까?
(하경) 네
10년 치를 전부 다 볼 필요가 있을까요?
(시우) 오늘 새벽 사례는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 같은데요?
(하경) 이례적이긴 해도
기후 변화 때문에
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수 있어서
우린 장기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그래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잖아요
(시우) 장기적인 측면보다는 초단기적으로 파악하는 게
예보 적중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수진) 맞아요 국장님도 그러셨잖아요
'실황 감시가 관건이다'
자료 분석보단 실황 감시가 더 중요한 거 아닐까요?
[긴장되는 음악]
지난 10년간 전부 부탁드려요
(수진) [한숨 쉬며] 아 오늘도 졸망 각이다, 진짜
[마우스 조작음] [수진의 한숨]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볼펜을 딸깍거린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직원1) 확인해 봤어요?
(직원2) 지금 전화해 볼게요
(기준) 뭐야, 이거?
왜 이렇게 기사마다 내용이 다 제각각이야?
(김 주무관) 아, 그게 저희도 호우 주의보 뜨고 나서 알아서요
곧바로 보도 자료 올렸는데 몇 군데에서 이미 기사를 썼답니다
(기준) [기사를 툭 놓으며] 아이씨
지금 총괄 몇 팀이야?
(김 주무관) 이미 교대했을 텐데요?
지금은 총괄 2팀입니다
총괄 2팀?
[흥미진진한 음악]
[문이 탁 닫힌다]
(기준) 총괄 2팀
총괄 2팀, 총괄 2팀
총괄 2팀, 총괄 2팀
(유진) 전화 왔었어
(시우) 무슨 전화?
[유진과 시우의 한숨] (유진) 다 끝난 마당에
내가 언제까지 이런 전화 받아야 돼?
미안해
네가 수신 차단해 줘
안 그래도 나 지금 오빠 때문에 충분히 난처하거든?
나 때문에?
기준 오빠가 알았다고
내가 전에 오빠랑 만났던 거
아니, 다 지난 일인데 무슨 문제가 돼?
(유진) 아, 아니, 그러게
왜 남의 결혼식장까지 와서 그 난리를 쳐?
그리고 나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왜 하필 본청 발령인데?
기준 오빠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도
당연한 거 아니야?
아, 진짜
[한숨]
(시우) 그래서
싸웠어?
그걸로 너 힘들게 해?
[한숨]
(유진) 우리 기준 오빠 그런 사람 아니거든?
날 얼마나 위해 주는데
그런 걸로 막 딴지 걸고 막 삐지는 사람 아니야!
[시우의 한숨]
어, 그래, 알겠어 앞으로 조심할게
뭐 더 할 말 있어?
됐어, 없어
(유진) 치
오, 오빠…
[긴장되는 음악]
(기준) 뭐 하는 겁니까?
얘기 중이었는데요?
아니
총괄 팀에서 이렇게 다이렉트로 언론을 상대하고 하면 안 되죠
(기준) 엄연히 소통 루트인 대변인실이 있는데
이러니 언론사마다 호우 관련 기사가
다 제각각인 거 아닙니까, 예?
나랑 얘기해, 오빠, 어? 내가 다 설명할게
(기준) 채 기자님은 빠지세요 기상청 내부 일입니다
하, 왜 이래, 진짜
(기준) 본청 근무가 처음이라 모르시나 본데
대변인실은 기상청의 입입니다
아무리 예보를 잘해도 대변인과 협업이 없으면
오늘 오전에 나간 호우 기사처럼
다 정보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요
그러니까요
애초에 대변인실과 출입 기자 사이에서
원활한 소통이 잘 이루어졌다면
총괄 팀까지 개입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정보 공유부터 똑바로 하고 그런 말을 하든가
(기준) 허락도 없이 자꾸 경계선 넘고 그러면 안 되지, 어?
본청에 오래 근무하셔서 잘 아실 텐데요
상황실은 기상청의 심장이라는 거
심장이 누구 허락받고 뛰는 거 보셨습니까?
뭐야?
그렇게 특보 상황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싶으면
(시우) 위험 기상 시마다 상황실 와서 직접 모니터링하든가
[어이없는 숨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기준) 그 자식 그거 뭐냐?
(기준) 아니, 대변인실에서
위험 기상 상황 좀 그때그때 정보 공유해 달라는 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아니, 그리고
자기가 뭔데 기자하고 독대를 해, 독대를
그것도 유부녀를
아주 그냥 뻔뻔한 자식
어디서 남의 와이프를…
그것도 기상청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마주 서서 말이야, 어?
알았구나?
뭘?
이시우가 채유진 전 남친인 거
너, 너, 너도 알고 있어?
(하경) 응
(기준) 언제부터?
(하경) 파견 나왔을 때부터
[기가 찬 숨소리]
(기준) 그, 그걸 알면서도 너희 팀으로 받아 준 거라고?
야, 진 과장 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너도 안 되는 거 알면서 채유진이랑 사귀었잖아
야, 너…
[웃으며] 와
(기준) 야, 너, 너 진짜 무서운 애구나, 어?
왜? 그 자식 데려다 놓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니?
그런 식으로 복수라도 하고 싶었던 거야?
뭐래
(기준) 하, 그렇게라도 날 괴롭히고 싶었나 본데
어쩌냐?
나 그렇게 나약한 남자가 아니야
그런 거 가지고 막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알아?
이봐, 한기준, 소설 그만 쓰고…
(기준) 아이, 잠깐만
혹시 너…
아직도 나 때문에 힘든 거니?
[익살스러운 음악]
[한숨 쉬며] 야, 하경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런 놈을 본청에 데려다 놓고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난 이미 결혼했다고
이런다고 나 너한테 다시 돌아갈 수가…
[기준이 아파한다]
(하경) 아, 아침부터 위에서 한 방 맞고
정신없어 죽겠는데 웬 거지 같은…
야, 너 한 번만 더 이딴 일로 나 불러내 봐
그땐 바로 대변인실에 공식 항의 들어갈 거고
문책받게 할 겁니다 한기준 사무관님
- (하경) 알겠어요? - (기준) 어
[기준의 아파하는 숨소리]
맞네, 맞아
아직도 나 때문에 힘든 거
[아파하는 숨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무거운 음악]
[시우의 한숨]
(시우) 과장님, 이거
피해가 컸던 집중 호우 사례만 뽑았습니다
응, 거기 둬
(시우) 여기요?
뭐 마실 거라도 갖다드릴까요?
응, 아니, 괜찮아
저한테 뭐 화나셨습니까?
무슨 소리야?
그러신 거 같아서요
(시우) 혹시 제가 국장님 앞에서 과장님 의견에 토 달아서
그거 때문에 기분 나쁘셨습니까?
[한숨 쉬며] 이봐, 이시우 특보
[무거운 음악]
나와
(수진) 그러게, 왜 국장님 앞에서 잘난 척 나서 가지고는
이게 뭐예요
과장님 열받는 바람에 우리만 모두 생고생하고…
(명주) 그만, 투덜거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분석해
[수진의 못마땅한 숨소리]
[키보드 조작음]
[문이 탁 닫힌다]
(하경) 이시우 특보, 너…
[부드러운 음악]
뭐 하는 거야?
걱정 마요, 안 들켜요
너 이러려고 나 도발했지?
(시우) 도발한 거 아닌데요?
진심으로 걱정돼서 물어본 건데
사내에서는 1미터 이내 접근 금지야, 지켜
[시우의 웃음]
[하경이 캔을 칙 딴다] 한기준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아니, 뭐, 굳이 과장님을 밖으로 불러내서 할 얘기가 뭔가
(시우) 궁금해서요
난 안 물어봤는데 왜 넌 물어봐?
채유진이 아침부터 전화한 거 난 안 물어봤잖아
근데 왜 넌 물어봐?
그거 때문이었어요?
나한테 까칠했던 게?
누가 그렇대?
그랬구먼, 뭐
어어? 1미터
- (시우) 그랬구먼 - (하경) 1미터
아니, 한기준이 내가 전 남친인 거 알았나 봐요
(시우) 유진이가 조금 시달리던 눈치더라고요
저한테 앞으로 조심해 달래서 그런다고 했어요
끝
한기준이 좀 뒤끝 있는 스타일이긴 하지
자, 이제 과장님 차례
한기준이 뭐래요?
자기한테 복수하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고
(하경) 네가 자기 와이프 전 남친인 거 알고
일부러 우리 팀으로 받았냐고
근데 내가 복수를 왜 해, 그리고
솔직히 우리 누구한테 복수하려고 이 미친 짓 시작한 거 아니잖아
안 그래?
아, 미친 짓이요?
(하경) 내가 사내 연애를 하다가 그 망신을 당해 놓고
또 이러고 있는데
미친 짓 맞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하경) 나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상층 한기 남하 놓쳐서 그런 거지
알아요, 나도
(하경) 됐어, 그럼, 간다
이따 저녁에 집에 가도 되죠?
피노 누아 한 병 사 오든가, 그럼
(시우) 네!
[하경의 놀란 숨소리]
똑바로 좀 하자, 이시우 특보, 어? [흥미로운 음악]
(시우) 네, 알겠습니다
[커피 머신 작동음]
[시우의 어색한 웃음]
아, 과장님이 화가 엄청 나셨더라고요
(시우) 저 진짜 깨졌어요
아, 생각보다 성깔 있으시네
누가 뭐래?
예
(태경) 세탁기 놔두고 뭐 해?
[태경의 힘주는 신음]
하경이 아직 연락 없어?
[한숨]
솔직히 반려견의 견권까지 논하는 세상에
본인 의사도 안 물어보고
결혼 정보업체에 딸내미 신상 탈탈 털어서
등급까지 매기는 엄마
시대착오적이고 구태하긴 하지?
그게 어디 나 좋자고 그래?
(수자) 제 수준에 맞는 신랑감 만나서 결혼하면
제 인생도 편하고
나도 어디 가서 말하기 떳떳하고 얼마나 좋아?
아, 평생 헌신해서 키웠는데 부모로서 이 정도도 못 바라?
아휴, 글쎄 다 엄마 욕심이라니까?
아, 시끄러워!
넌 가서 네 일이나 해
(수자) 마감 턱 밑에 받쳐 놓고 날밤 새우면서 징징거리지 말고
[어이없는 숨소리]
[태경이 신발을 달그락 신는다]
[태경의 한숨]
(태경) 내가 전화해?
아, 됐어, 얘 나도 존심 있는 여자야
[익살스러운 음악]
아유
(태경) 엄마 마셔 엄마 마셔, 엄마 마셔
뭐 속상한 일 있어?
아니
신랑이랑 싸웠구나?
싸우기는, 치
종목이 뭐야? 시댁 일? 성격 차?
(기자1) 아니면 혹시 애 낳재?
아니라니까
[다가오는 발걸음]
(기준) 저, 같이 좀 앉겠습니다
(기자1) 어, 어머 안녕하세요, 한 사무관님
(기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 근데 자기 왜 국만 갖고 왔어? 오늘 불고기 반찬 좋던데
내 거 줄게
[기준의 힘주는 신음]
[유진의 웃음]
[웃으며] 아
아, 저희 유진이가 고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아, 근데 또 이렇게 살 안 찌는 거 보면은
참 그, 체질도 타고나야 돼요, 그렇죠?
(기자1) 아, 예, 그러게요 [함께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잠깐만, 나 전화 좀
뭐 하는 거야, 지금?
지금 네 체면 살려 주는 중이잖아
(기준) 왜, 싫어?
아니면 여기서 뭐, 싸운 거 티 팍팍 낼까?
(유진) 싸운 게 아니라…
오빠가 일방적으로…
아까 그 자식이랑 무슨 얘기 했어?
[익살스러운 음악]
(기준) 아, 예
그 자식 아주 내 앞에서 기세가 등등하더라?
찔리거나 미안한 기색이 1도 없어
미안하거나 찔릴 일이 뭐가 있어? 이미 다 끝난 사이인데
너 지금 그 자식 편드는 거니?
그게 아니잖아
(기준) 아무튼 앞으로 그 자식하고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마
아니, 뭐, 혹시라도 마주치더라도 인사도 하지 마
눈길도 주지 마, 알겠지?
왜? 아주 회사를 그만두라 그러지?
- 너 그럴래? - (유진) 오빠
아니, 기자들 출입하는 데 많잖아
(기준) 뭐, 경찰서라든지 검찰청이라든지
그렇게 불편하면 오빠가 다른 청으로 가면 되겠네
으이그
본청 놔두고 내가 어딜 가니? 여기가 꽃 자리인데
(기준) 씁, 그리고 유진이 너
자꾸 오빠가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꾸할 거야?
너 오빠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 주는 거야
치, 안 넘어가면 또 어쩔 건데?
(기준) 아무튼 앞으로 두 번 다시 거짓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았지?
(기자1) 아, 미안 나 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기준) 빨리 드세요 아, 국 다 식겠네
[웃음]
자기도 어서 먹어
[발랄한 음악]
[기준이 흥얼거린다]
(유진) 많이 먹어
(기준) [웃으며] 아유, 너는 지금 조 기자님도 계신데
아무튼 우리 유진이가 이렇게 저밖에 모른다니까요
[유진의 웃음] (기자1) 그러게요, 아유
[기자1의 웃음]
(기준) 음, 맛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종업원) 네
(직원3) 진하경 팀장
오늘 신입한테 발리고 열폭했다면서요?
(명주) 아유 뭐, 그 정도는 아니고
(직원4) 거기 1년 차 김수진 씨
입이 댓 발 나와서 툴툴거리고 있던데요, 뭐 [직원3이 호응한다]
신입 때문에 국장한테 한 소리 듣고
열받아서 10년 치 자료 분석 왕창 때렸다고 [직원3의 놀란 숨소리]
아니, 본인 스트레스를 일로 푸는 스타일
진짜 아니지 않아요?
(직원3) 아, 주임님 힘들어서 어떡해요?
최 과장님 땐 좋았는데 [차분한 음악]
아, 뭐…
(명주) 앞으로 잘하겠지
(종업원)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직원3) 씁, 근데 저는 볼 때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서 좀 무서워요
- (직원4) 맞아 - (명주) 아이, 그렇게까지야
[수진의 한숨]
[긴장되는 음악]
(시우) 과장님!
식사하셨어요?
어, 방금, 두 사람은요?
저희는 요 앞에서 칼국수 먹고 왔어요
(하경) 음, 맛있었겠다
(석호) 씁, 근데
이시우 너 연수원에서 지낸다고 하지 않았냐?
네
근데 아침에 어떻게 과장님을 그 방향에서 만났어?
[흥미로운 음악]
연수원 바로 요 앞이잖아
(시우) 아…
그…
[전화벨이 울린다]
(수진) 네, 총괄 2팀 김수진입니다
(수도권청 직원) 방금 전 서울에 뜬 강수 에코 말입니다
에코요?
[긴장되는 음악] [키보드 조작음]
잠시만요
(수진) 엄 선임님
수도권청인데
방금 전에 서울에 강수 에코 뜬 게 좀 이상하다는데 봐 주시겠어요?
(동한) 어? 뭐…
어?
어, 이게 왜…
(석호) 허, 집을 보러 갔어? 그 이른 아침에?
예, 집이요
(하경) 아, 그게 그 집주인이 아마 너무 바빠서
아마 그 시간밖에 시간이 안 됐나 봐요
그, 그렇지? 맞지?
(시우) 어, 예, 맞아요
집주인이 바쁘다고 그래 가지고요, 네
[시우의 어색한 웃음]
(석호)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같이 가신 것도 아닐 텐데
[흥미로운 음악]
[하경의 헛웃음]
그러게요
[하경의 어색한 웃음]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긴장되는 음악]
[사람들이 다급해한다]
[시끌시끌하다]
(아이) 가자
[아이들의 탄성]
[비가 쏴 내린다]
(태경) 엄마 예보에 비 온다는 얘기 있었어?
[태경의 다급한 소리] (수자) 아이고
있기는 뭐가 있어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이불 빨래를 했겠냐?
[태경의 한숨] 아이고, 허리야
[수자와 태경의 한숨]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
[긴장되는 음악]
(남자1) 야, 기상청!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응?
이렇게 큰비가 내리는데 예보도 안 하고 앉았고
이러니까 기상청 체육 대회 날 비 오는 거 아니야! 아유, 진짜
에이…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남자2) 어? 뭐야
[사람들이 술렁인다] 정전이야? 아이씨
(여자1) 정전이야? 어?
이게 뭐야
이거 합선됐나? 어?
(여자2) 야, 초 좀 찾아 봐, 초 좀
(여자1) 아, 지금 건물 전체에 정전되고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어? 손해가 얼마인 줄이나 알아요?
아, 이런 것도 못 맞힐 거면 기상청 때려치워!
세금 축내지 말고!
(남자3) 아, 여기 상가 피해 본 거 지금 당신이 다 책임질 거야?
(석호) 실황 감시 안 하고 뭐 했어?
(수진) 했어요
했는데…
내가 놓쳤어
왜요? 뭐 하다가요?
[한숨]
대체 요즘 왜 이러시는데요? 일부러 이러시는 거예요?
(명주) 과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예보관이 실황을 놓친다는 건 직무 유기입니다
(하경) 피해 정도에 따라서 면직이 될 수도 있는 사항이라고요
[석호의 한숨]
(석호) 에코를 안 놓치고 예보를 했다고 해도
불과 5분밖에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 시간 안에 예보했어도 침수는 못 막았다고요
피해 규모는 줄일 수 있었겠죠
시간당 80밀리가 쏟아지는데 무슨 수로요?
(동한) 그만해!
미안
내가 잘못한 거야, 그만해
[한숨]
(수진) 죄송해요
자료 분석하다가 레이더 영상을 놓쳤어요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분한 음악]
(수진) 솔직히 오늘 중에 10년 치 자료 분석하라는 것부터
무리 아닌가요?
제가 자료 분석 대신 실황 감시만 제대로 했어도…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김수진 씨
자료 분석과 실황 감시 모두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하경) 어느 한쪽 때문에 어느 한쪽을 놓치는 거
그거 변명이라고요, 알겠어요?
변명 아니거든요?
저 진짜 열심히 하려 그랬거든요?
저, 김수진 씨
(수진) 실력이
뭐, 그것밖에 안 돼서 진짜 죄송한데요
[수진의 떨리는 숨소리]
그래도 제가 잘하려 그랬던 거까지는
폄하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수진이 훌쩍인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명주와 동한의 한숨]
(명주) 팀 분위기 참 잘 돌아간다
[동한의 한숨]
[한숨]
(박 주무관) 진하경 과장님이랑 엄 선임님
국장님이 지금 방으로 오시랍니다
(하경) 네
[동한의 한숨]
하천 물이 불으면서 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주택 12채가 물에 잠기고
강남 지하상가에 현재 전기 공급이 끊긴 상태입니다
(박 주무관) 정확한 피해 규모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고요
인명 피해는?
(박 주무관) 그게…
있습니까?
(박 주무관) 안릉 빗물 펌프장에서
배수 시설 정기 점검 중이던 작업자 두 명이
불어난 빗물로 실종됐다고 합니다
[무거운 음악] [동한의 한숨]
(봉찬) 그래서 수색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대?
현재 구급대랑 시설 관리 쪽에서 구조 작업 중이기는 한데
(박 주무관) 정확한 건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죽겠구먼
죄송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제 잘못이고 제가 어떻게든 책임지겠습니다
왜 혼자 멋있는 척하세요 아까부터 계속?
(동한) 뭐?
팀원들 앞에서도 그렇고 국장님 앞에서도 그렇고
왜 계속 본인이 책임지겠단 말 하냐고요
실황을 놓친 게 나니까 그러지
(하경) 그러니까요 왜 놓치셨는데요?
천하의 엄동한이라면서요
동풍의 냄새만 맡아도 비를 예측한다는 분이
빤히 눈앞에 있는 실황을 놓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숨]
왜요?
후배 앞에서 선임 노릇 하려니까 맥이 빠져요?
아니야, 그런 거
몇 번을 얘기해, 그런 거 아니라고
뭐가 됐든
지금 총괄 2팀의 과장은 저고
(하경) 엄 선임님의 잘못 또한 제가 책임질 거니까
함부로 책임지겠단 말씀 하지 마세요
월권이에요, 그거
[동한의 한숨]
[한숨]
[잔잔한 음악]
[한숨]
(시우) 흔히들 날씨랑 기후가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잖아요
[서류들이 와르르 떨어진다]
[속상한 숨소리]
날씨가 그날그날 바뀌는 기분이라면
기후는 사람의 타고난 성격 같아서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서류를 바스락 정리한다] 그 사람 성격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분까지 맞힐 수 있겠어요
[바스락거리는 소리]
(수진) [훌쩍이며] 지금 진 과장님 편드시는 거예요?
아니요
제가 틀렸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예보만 맞히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거고
(시우) 과장님은 현재 발생하는 기상이
시민들한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던 거죠
한날한시에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지역마다 미치는 영향은 다 제각각이잖아
(석호) 똑같이 시간당 80밀리의 비가 내려도
역삼은 말짱하지만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강남역 일대는 물바다가 되니까
[석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예보라는 건
그거까지 반영할 수 있어야 되거든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자료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거고
진 과장이 10년 치 자료를 분석하라고 한 건
생산자 중심의 예보가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예보를 하라는 뜻인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는 성과만 생각했던 거고
(시우) 과장님은 진짜 예보가 필요한 사람들까지 전부 다
생각했던 거죠
[훌쩍인다]
좀 어렵네요
그렇죠?
[한숨]
(명주) 아유
과장님은 팀원들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네?
책임 중요하죠
(명주) 근데
과장님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각자 맡은 역할에서만큼은 프로예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고요
그 정도 믿음도 없이 일을 시키고 계신 건 아니죠?
사실 팀원들이 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 같아요
(하경) 제가 내리는 지시도 못 미더워하니까
[명주의 한숨]
(명주) 과장님 지시를 못 믿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내린 지시조차 자신 없어 하는
과장님이 못 미더운 거지
[잔잔한 음악]
음, 아
여기 지난 10년간 국지성 호우 관련 분석 자료입니다
어, 호우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 외에도
상하층 제트 커플링
하층 수렴, 상층 발산 같은 케이스까지 전부 포함시켰습니다
참고하세요
아…
그럼 시키신 일도 다 했으니 이만 퇴근할게요
퇴근 준비 안 하세요?
[휴대전화 진동음] [살짝 웃는다]
네, 어머니 애들 오늘 비 많이 맞았죠?
[살짝 웃으며] 그러게요, 어머니
그러니까요, 어머니
엄마가 기상청에 다니는데 애들이 비를 맞네요
[명주의 웃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통화 연결음]
(기준) 어, 유진, 오빠야
[흥미로운 음악] 아이, 그럼
지금 나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 그나저나 우리 아기 오늘은 뭐 먹고 싶나?
[혀 짧은 말투로] 오, 떡볶이?
알았쪄요, 오빠가 다 사 줄게요
[작은 목소리로] 아, 뭐 오빠는 무슨…
[피식 웃는다]
[엘리베이터 도착음]
- (석호) 수고해 - (직원5) 응, 수고했어
(시우) 어? 지금 퇴근하는 거예요?
(석호) 응, 넌?
(시우) 가야죠
(석호) 다들 퇴근했어 내가 마지막이야
[긴장되는 음악] [사이렌이 울린다]
[사람들이 분주하다]
(구조대원1) 야, 여기 뭐 보이는 거 없어?
- (구조대원1) 빨리 찾아봐! - (구조대원2) 찾아봐!
(구조대원1) 저쪽도 한번 찾아보자고
(구조대원3) 예
(구조대원2) 자, 시간이 없어요!
[구조대원들이 분주하다]
(하경) 여긴 어쩐 일이세요?
(동한) 어, 아, 어차피 누워 있어 봤자 잠도 안 오고
여기 와서 기웃거리기라도 해야지
'저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구나'
할 거 아니야
인부들은요?
(동한) 아직
[하경이 코를 훌쩍인다]
(하경) 감사합니다
[동한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통화 연결음]
어?
[안내 음성]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화 종료음] (시우) 안 받으시네
[숨을 씁 들이켠다]
어떤 걸 더 좋아하려나
[고민하는 숨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의미심장한 음악]
[사이렌이 울린다]
(구조대원4) 여기 찾았어요!
(구조대원5) 모두 무사해요, 여기! 여기, 여기! [잔잔한 음악]
(구조대원6) 조심히
[사람들이 분주하다]
(구조대원4)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기자2) 의식 있습니까?
(구조대원4) 괜찮아요? [카메라 셔터음]
여기, 여기 이쪽으로 조금만 당겨 주세요
(기자2) 의식 있습니까? 의식이요, 의식!
(구조대원4) 여기요 손, 손, 손, 손!
아, 다행이다
[한숨 쉬며] 살았다, 진짜
(하경) 식사는 하셨어요?
(동한) 아니, 진 과장은?
가죠, 뜨끈한 국물이라도 좀 먹게
(하경) 어?
혹시 집 나오셨어요?
(동한) 어, 뭐
그렇게 됐어
[하경의 한숨]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태경) 어, 어어, 잠깐만요
아, 고맙습니다
(석호) 몇 층 가세요?
어, 12층이요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우리 위층 사시나 보다
(태경) 1301호? 1302호 사시나?
1302호인데요
(태경) 아…
이웃이네요, 이웃, 이웃사촌
[익살스러운 음악] 제 동생은 1201호 사는데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태경) 들어가세요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오류음]
(태경) 어? 뭐야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오류음]
[도어 록 조작음]
[태경이 입김을 하 분다]
[도어 록 오류음]
어? 뭐야, 바꿨나?
[당황한 숨소리]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숨을 씁 들이켠다]
[편안한 숨소리]
[초인종이 울린다]
[석호의 한숨]
(석호) 누구야?
아…
어…
[도어 록 작동음]
[익살스러운 음악] 안녕하세요
(석호) 예, 무슨 일이세요?
아, 아까 말씀드렸죠? 제 동생 여기 아래층에 산다고
예, 근데요?
어, 저기…
(태경) 이것 좀
이, 이거 왜, 이거…
이것 좀 대신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얘가 현관 비번도 바꿔 놓고 전화도 안 돼서요
아, 그…
경비실에 맡기셔도 될 텐데
그러니까요 제가 그래서 경비실 가 봤는데
순찰 중이라고 써 붙여 놨길래
(태경) 하, 게다가 이 무더운 날씨에 저희 노모께서
자식 먹이겠다고 김치며 불고기며 잔뜩 싸 주셨는데
상하면 어떡해요
무거운 거 제가 다시 들고 갈 수도 없고
[익살스러운 음악]
부탁 좀 합시다, 네?
이웃사촌
(석호) 아…
[석호의 한숨]
(명주 시모) 아유 아범 기다렸다 같이 가라니까
(명주) 아, 오늘 회식이라 좀 늦나 봐요
(명주 시모) 그래?
(명주) 아유 오늘 감사해요, 어머니
(명주 시모) 아유, 괜찮아, 괜찮아 [명주의 웃음]
- (명주) 그럼 주무세요, 예 - (명주 시모) 응, 응, 그래
- (명주 아들) 안녕히 주무세요 - (명주 시모) 아이고, 그래그래
(명주) 옳지 가자, 가자, 주무세요
(명주 시모) 그래그래
(명주) 가자, 가자, 가자
(명주 시모) 그래 멀리 안 나간다, 응
- (명주) 네 - (명주 시모) 응, 얼른 가
- (명주) 자 - (명주 시모) 응
(명주) 아이고, 졸려? [풀벌레 울음]
(명주 아들) 어? 아빠!
(명주) 어?
당신 생각보다 일찍 왔네?
회식이라더니 왜 여기 있어?
(명주 남편) 그냥, 안 갔어
왜?
그냥, 생각할 것도 좀 있고
(명주) 왜, 또?
뭐 때문에?
여보
나 5급 기술 고시 다시 보면 안 될까?
(명주) 어? [차분한 음악]
당신 일은 어떡하고?
[한숨]
나 1년만 휴직할까 하는데 안 될까?
아…
안 되죠!
(하경) 뭐, 다른 사람들은
'그깟 실수 좀 하면 어때'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사람들이죠
그건 그렇지만
책임진다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동한) 이런 불확실한 미래의 날씨를
그냥 성실하게 예측하고 예보하는 게
그게 우리 일인 거야, 근데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일들까지 우리가 책임을 진다?
어불성설이야
그 말 먼저 한 사람이 바로 엄 선임님이시거든요?
그건 내가 잘못을 한 거니까
내가 잘못한 거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
(동한) 그런 거지
(하경) '우리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누군가는 죽고' [잔잔한 음악]
'누군가는 재산 모두를 날릴 수가 있다'
'매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단서가 될 만한 신호를 찾아내라'
누가 말했게요?
글쎄, 누구지?
또 8년 전에 5급 임관생들 교육할 때
(하경) 그런 말씀 하신 거 기억나요?
'국가의 안전을 담당하는 모든 시스템은'
'기상 예보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예보관은 첫째도 사명감'
'둘째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하경이 피식 웃는다]
내가 그때 그 수업만 안 들었어도 지금 이 개고생 안 하고
고위직으로 가는 코스 밟고 있을 거라고요, 내가
[동한의 웃음]
그러니까 그런 뻔한 말에 누가 넘어가래?
(동한) 네가 선택한 거지
[어이없는 웃음]
[한숨]
[한숨 쉬며] 그랬던 사람이 왜 이러고 있냐고요
(하경)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동한이 숨을 씁 들이켠다]
(동한) 왜 이럴…
그 어떤
동력을 잃은 거 같아
(하경) 예?
뭐 때문에, 어떤 의미로
누굴 위해서
뭐, 이런 게 있어야 되는데
[동한이 숨을 씁 들이켠다]
없어, 내가, 지금
[한숨]
[안내 음성]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거운 음악]
거래가 정상 처리 되었습니다 [현금 인출기 작동음]
현금을 받으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놓고 가시는 물건…
(하경) 어, 조심조심 어, 조심조심
아이고, 잠깐, 여기, 엄 선임님
(동한) [술 취한 말투로] 응
(하경) 댁이 어디예요? 집 주소
(동한) 나 강원도 강릉시 과학단지로
아, 그건 강원청 주소고요 서울 집
대리 불러 드릴게요
(동한) 응? 집?
집이…
나 집이 없어
나 강원…
기상청, 기상청
내, 나 기상청 가…
[하경의 힘겨운 신음]
기상청
[의미심장한 음악]
[무거운 효과음]
이시우 씨?
(하경) 계단요, 계단, 계단
(동한) 응
[무거운 음악]
(하경)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원칙
서로 다른 상처를 간직한 너와 내가 만났으니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장님이 왜…
네가 왜
여기 있어?
[시스템 알림음] [긴장되는 음악]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부드러운 음악]
(시우) 방금 집에서 전화 왔었는데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대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같다고요
(석호) 우리가 들어가란다고 그냥 들어갈 사람이 아니잖아요
나 괜찮으니까 너 먼저 들어가
(남자4) 그, 나이 어린 애인이랑 사귀려면은
투자 좀 하셔야지
설마 과장님 만났어요?
[시우의 성난 숨소리] [남자4의 당황한 소리]
(하경) 계속해서 생각이 멈추질 않아
[한숨]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너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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