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6
(하경) 아까 빗물 펌프장 갔다가 근처에서 한잔했는데
저렇게 확 취하실 줄 몰랐네
대리 부르지 그랬어요
아, 그게…
(하경) 어?
혹시 집 나오셨어요?
(동한) 어, 뭐
그렇게 됐어
뭐, 그렇게 됐네
(하경) 근데 너는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야?
그냥 나도 그렇게 됐어요
대답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야?
과장님은 어느 쪽인데요?
무슨 말이야?
(시우) 보통 직장 동료가 취하면 집으로 보내지
모텔로 데리고 들어오진 않잖아요
[차분한 음악]
(하경) 상처는 고약하다
(여자) 이시우 씨
아니, 아까 간 줄 알았는데 여태 있었어요?
(하경)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못생기게 덧나 있고
이제 안면도 텄는데 자주 봐요, 우리
(여자) 조심히 가고
(하경) 상처에 대한 기억이 깊을수록
더욱 몸을 움츠리게 되고
[황당한 숨소리]
높이 솟은 빌딩 숲에 갇혀 버린 공기처럼
자기 연민과 통증에 잠긴 채
그렇게 빙글빙글 같은 자리를 맴돌며
스스로를 고립시켜 간다
서울에 올해 첫 폭염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축적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섬 현상으로
서울은 당분간 찜통더위가 이어지겠습니다
(라디오 속 앵커) 낮 동안 잔뜩 달궈진 아스팔트와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이
온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철민 기자입니다
[하품]
(태경) [신발을 신으며] 아휴, 아휴
아, 아침부터 왜 이렇게 더워?
뭐 해, 엄마, 더운데 불 앞에서?
[태경의 한숨]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잔잔한 음악]
엄마도 이제 이거 그만해 해 놔도 먹는 사람도 없고
침 튀어, 저리 가
또 병날까 봐 그러지!
[태경의 한숨]
[못마땅한 숨소리]
(태경) 쯧
[한숨]
(향래) 여름철 방재 기간이라 당분간 기상청에서 지내야 된대
같이 살려고 온 거 아니었어?
(향래) 어?
어, 어, 그랬지
그랬는데…
언제 와?
어…
장마 끝나고
[동한의 신음]
(동한) 아이씨, 더워
[동한의 신음]
[힘주는 신음]
[한숨]
어, 어유, 씨 [흥미로운 음악]
[힘주는 신음]
[다급한 숨소리]
(청원 경찰) 아이고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동한) 아, 예
[청원 경찰의 의아한 숨소리]
(1팀 총괄과장) 우리나라가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면서
- (1팀 총괄과장) 일사가 강하고 - (동한) 아, 죄송합니다
[거친 숨소리] (1팀 총괄과장) 더운 공기가 계속 유입되고 있습니다
(동한) 어?
(1팀 총괄과장) 그로 인해 일시적이긴 하나
6월임에도 평년에 비해 기온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1팀 총괄과장이 계속 말한다] (박 주무관) 출근이 이르시네요?
(동한) 응?
총괄 2팀 오늘부터 야간 근무 아니었습니까?
[익살스러운 음악] 오늘이?
[숨을 몰아쉬며] 그렇지
(박 주무관) 강원청에서 갑자기 본청으로 오셔서
헷갈리셨나 봐요
수고해
(박 주무관) 들어가십시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두가 드르륵 갈린다]
[심호흡한다]
[냄새를 씁 맡는다]
[손가락을 튀기며] 버터 버터, 버터, 버터
(석호) 버터, 버터
[숨을 씁 들이켠다]
아!
[씩씩댄다] [익살스러운 음악]
[징징거린다]
아, 냄새
[방향제를 칙칙 뿌린다]
[숨을 푸 내쉰다]
[징징거린다]
[한숨]
[인터폰이 울린다]
[흥미로운 음악]
[석호의 한숨]
[한숨]
[똑똑]
(시우) 네
[도어 록 작동음]
(관리 직원) 어, 마침 계셨네요
(시우) 아, 예 그,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관리 직원) 저희 직원이 여러 번 안내 문자를 보냈다는데
답이 없으셔서요
씁, 조만간 새로운 교육생이 들어오기로 돼 있어서
방을 좀 비워 주셨으면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다음 주 중으로요
다음 주 안에요?
새로운 교육생을 받으려면 저희가 정비를 좀 해야 해서요
(관리 직원) 원래도 한 달 이상은 계실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아, 예, 예
그럼 다음 주까지 꼭 좀 비워 주세요
(관리 직원) 수고하십시오
(시우) 예
[한숨]
[시우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우) 와, 이렇게 더운데 뛰러 나온 거예요?
낮 근무도 없는데 늦잠 같은 거 안 자요?
여긴 뭐가 맛있나?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뭘 다시 생각해요?
너하고 나
[차분한 음악]
(시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하경) 근데 이거 의미가 뭘까?
여기 마지막에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이 구절
(시우) 음…
서로의 비슷한 점들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준다
뭐, 그런 의미 아닐까요?
(하경) 예를 들면?
(시우) 뭐, 요런 거? [하경의 웃음]
(하경) [웃으며] 뭐야
(시우) [웃으며] 왜, 왜
(시우)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하경과 시우가 대화한다]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는
그 아름다운 시구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아프게 엇갈려야 하는지
(시우) 갑자기 왜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어제 거기서 널 본 순간부터
계속해서 생각이 멈추질 않아
(하경) 계속해서 내 상처가 떠오르고
자꾸 화가 나
저랑 진짜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예요
그래, 나도 믿고 싶고 나도 삼키고 싶다?
(하경) 근데
그게 계속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가지더라고
알아, 나도 네가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는 거
근데 그래서 더 문제인 거 같아
넌 분명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믿을 수가 없으니까
[떨리는 숨소리]
과장님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그러고 싶어
나 먼저 갈게, 먹고 와
아버지였어요
(시우) 어제 모텔에 갔던 거요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어두운 음악]
[빗소리가 들려온다]
(여자) 이시우 씨?
이명한 씨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와요
(남자1) 어이, 쫄리면 죽어, 응?
(남자2) 화투 치는 사람 어디 갔나?
아이씨
오빠, 아들 왔어 [남자들의 웃음]
- (남자1) 내 거다 - (남자3) 응?
(여자) 아주 잘생기셨네
야, 시우야, 왔냐?
(명한) 야, 일로 와
인마, 시우야!
인마, 시우야, 시우…
아이고, 아유, 씨
야, 인마, 시우야!
(명한) 인마, 야, 야, 야, 야, 야!
인마, 시우야
[시우의 성난 소리] [명한의 거친 숨소리]
아, 이 자식이 이게, 씨
야, 인마,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어떡해
또 도박이야?
그렇게 숨넘어갈 듯이 전화해 댄 이유가 또 이거였어?
아, 뭐, 어떡하냐 아들이라곤 너 하나밖에 없는데
(명한) 야, 일단 돈 가져온 거 다 줘 봐
뭐야
아나, 씨…
너 돈 안 가져왔어?
나
돈 없어
네가 돈이 왜 없어?
(명한) 인마, 좋은 직장 들어가서
월급 통장에 돈 팍팍 꽂히고 있는 거
내가 다 아는데
그렇게 모아 둔 거
1년 전에 아버지가 다 털어 갔잖아
그랬었나?
(명한) 야, 아무튼 동전이라도 좋으니까 다 줘 봐
야, 아버지가 지금 가진 거 다 풀고
땅 파고 들어가게 생겼다, 지금
야, 응?
(시우) 아, 없는 돈을 어떻게 주냐고!
당장 방 구할 보증금도 빠듯해서 연수원 신세 지고 있는데!
대출도 안 돼?
(명한) 인마 공무원들한테 해 주는
그, 대출 혜택 같은 거 그런 거 있을 거 아니야
진짜 나한테 전화하지 마요
(시우) 한 번만 더 전화하면
아버지고 뭐고 경찰에 확 신고해 버릴 거니까
이 자식이 이거…
인마, 거기 서, 서
이씨, 어어?
아, 씨
[다리를 두드리며] 아유, 씨
[비가 쏴 내린다]
(하경) 근데 너는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야?
(시우) 그냥 나도 그렇게 됐어요
(하경) 대답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야?
(시우) 과장님은 어느 쪽인데요?
'과장님'?
(하경) 무슨 말이야?
보통 직장 동료가 취하면 집으로 보내지
(시우) 모텔로 데리고 들어오진 않잖아요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하경의 한숨]
[잔잔한 음악]
[한숨]
[한숨]
[새가 지저귄다]
[어두운 음악]
주민 센터?
왜?
(기준) 응, 혼인 신고 하게
신혼부부 전세 자금 대출 좀 알아봤더니
필요한 서류 중에
혼인 관계 증명서도 있어야 하더라고
그래?
지금 있는 아파트는 계약 연장 더 안 된대?
거기 좀 비싸잖아, 혜택도 없고
(기준) 너 표정 왜 그래?
너 혹시…
그 아파트에 벌써 정들었니?
[살짝 웃는다]
그렇지, 뭐
아이고
(기준) 유진아
집이라는 건
우리가 자리 잡고 정붙이면 그게 우리 집 되는 거야
오빠가 괜찮은 데 알아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오빠 거 도장이랑 신분증 줄 테니까
유진이 네가 주민 센터 가서 신고 좀 해 줘라
아, 같이 가고 싶은데
오빠 내일까지 칼럼 마감이어 가지고
혼자 할 수 있지?
- 그럼 - (기준) 응, 좋았어
- (유진) 더 먹을래? - (기준) 응?
아, 왜 이렇게 안 먹었어?
(기준) 유진이 너 닭 싫어하니?
[유진이 살짝 웃는다]
아이…
[웃으며] 닭 다리도
[옅은 탄성]
- (기준) 응, 식사했어? - (직원1) 아, 네
- (기준) 점심 식사 했어? - (김 주무관) 아, 예
일이 좀 있어 가지고 저는 그냥 김밥 먹었습니다
에이그,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기준) 다 같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살짝 웃는다]
(김 주무관) 예
아, 근데 뭔 일인데 그렇게 열심히 해?
예?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뭔데 그래?
(김 주무관) 그게 사실은
과장님이 칼럼 한번 써 보라고 하셔 가지고요
칼럼? 무슨 칼럼?
'테마 스토리'요
'테마 스…' [흥미로운 음악]
과장님이 그걸 쓰라 그랬다고?
(업무과장) 어 그거 내가 그러라 그랬어
(기준) 아니 그거 제가 할 일인데 왜…
(업무과장) 원고 인쇄소에 넘겨야 될 날짜는 얼마 안 남았지
자네 칼럼도 아직이지
나도 아무런 대안 없이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
아니, 그, 마무리 중이라니까요 다 써 놓고?
(기준) 마지막으로 마무리 중입니다, 예
(업무과장) 그럼 빨리 마무리해서 넘겨, 그럼 되겠네
김 주무관은요?
김 주무관도 쓰던 거 계속 쓰고
둘 다 써서 넘겨
(업무과장) 그 가운데 더 나은 걸 이번 달에 내보낼 테니까, 됐지?
김 주무관, 파이팅
파이팅
- 예 - (업무과장) 파이팅하자고
[업무과장의 헛기침]
- (김 주무관) 사무관님 - (기준) 응?
파이팅
그래, 파이팅이다
에이, 진짜, 씨…
(기준) 내가 쓴다, 써, 내가
쓴다, 써
내가 꼭 쓰고 만다
[키보드 소리가 요란하다]
[순번 알림음]
[차분한 음악]
(직원2)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 주무관) 수고하셨습니다
[키보드 조작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김 주무관이 키보드를 탁 친다]
다 됐다
벌써?
예
아, 사무관님은…
(기준) 어
어, 나는 아직 다른 할 일이 좀 많이 남아 가지고
[웃으며] 너무 많아, 너무 많아
아, 난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 먼저
(김 주무관) 예 [마우스 조작음]
[스위치 조작음]
저,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응
고생했어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익살스러운 음악]
(기준) 아…
[기준의 괴로운 신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동한의 한숨]
(하경) 어? 일찍 나오셨네요?
아니, 오늘부터 야간 근무인 거 깜빡해 가지고
(동한) 12시간 일찍 왔어
아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또 지각인 줄 알고
정신없이 뛰어왔는데 1팀 회의 중이더라고
뭐예요 본팀은 느긋하게 지각하시더니
다른 팀은 정신없이 뛰어오시고?
[동한의 웃음]
(동한) 아, 어저께 취했으면은 그냥 버리고 가지
되게 꼴 보기 싫었을 텐데
여름철 방재 기간이잖아요
(하경) 일손이 부족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데
아까운 인력을 길바닥에 두고 갈 순 없죠
아까운 인력은 무슨 짐만 되고 있구먼
저녁은요?
아직, 뭐, 별생각 없는데
30분 드릴게요 뭐라도 드시고 오세요
(동한) 어
[문이 스르륵 열린다]
[살짝 웃는다]
[동한이 놀란다] [흥미로운 음악]
왔냐?
[문이 스르륵 닫힌다]
왜?
[문이 스르륵 열린다]
쟤 왜 저렇게 쳐다보지?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동한) 어, 밥 먹고 왔어
정리된 거잖아, 그렇지?
(1팀 총괄과장) 가뜩이나 기온이 높은데
일사까지 강해서 큰일이야
일몰 때가 됐는데도
여전히 28도 선을 유지하는 거 보면
씁, 당분간 열섬 현상으로 서울 지역이 녹아날 거 같은데?
대기 흐름이 바뀔 기미는 아직 없는 거죠?
또 모르지
어디서 시원하게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려 줄지
[하경이 살짝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태경) 전화 좀 해 엄마 많이 아프단 말이야
[수자의 힘겨운 숨소리]
(수자) 아휴
[태경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와, 하경이 이 계집애
엄마 아프다는데 전화 한 통 없는 거 봐
놔둬
걔 오늘부터 야간 근무일 거다
(태경) 아, 그래도 그렇지
아프다 그러면 문자라도 한 통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게 아주 오냐오냐하니까 싸가지가 점점, 씨, 쯧
꾀병이라고 생각하겠지
엄마 아프다는 걸로 백기 들라 그럴까 봐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오늘 새벽 소나기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될까요?
와, 이 계집애 진짜, 씨
[통화 종료음]
[태경의 못마땅한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잔잔한 음악]
(수진) 오늘은 참 고요하네요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경) 그래도 국지성 소나기 가능성 있으니까
잘 감시해 주세요
(수진과 동한) 네 [마우스 조작음]
[한숨]
(석호) 오 주임님 뭐, 무슨 일 있어요?
어?
나한테 뭐라 그랬어?
뭐, 신경 쓰이는 일 있으신 거 같은데
아
뭐, 어, 그냥 [잔잔한 음악]
(명주) [웃으며] 집안일
[한숨]
(명주 남편) 여보
나 5급 기술 고시 다시 보면 안 될까?
[한숨]
[전화벨이 울린다]
- (시우) 과장님 - (하경) 어?
제 쪽으로 돌려 받을까요?
어, 아니야, 괜찮아
네, 총괄 2팀 진하경입니다
네?
아, 네, 지금 여기 손님이 와 계시는데
과장님을 좀 뵙고 싶다고 자꾸 그러셔 가지고요
아, 네, 네, 네 [의미심장한 음악]
(명한) 아…
예
아유,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아, 전 이명한이라고
이시우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명한) 아니, 저 우리 아들 일로다가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한 10분만 시간을 내 줄 수 없을까요?
아, 네
[태경의 한숨]
[성난 숨소리]
진하경 이 지독한 년 끝까지 전화를 안 하네
[흥미로운 음악]
[기준이 중얼거린다]
(기준) 아이씨
[휴대전화를 탁 놓으며] 안 돼, 씨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중얼거린다]
[휴대전화를 집는다]
아니야, 아니야, 어떡하지?
(하경) 이시우 씨 아버님?
예, 맞아요
내가 시우 아비입니다
(하경) 아, 예, 네
어, 무슨 일이신지…
[어두운 음악]
저 실은 내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아, 이거 초면에 이런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이거 참…
[명한이 숨을 씁 들이켠다]
뭐, 그런데
우리 시우랑 보통 사이는 아닌 거 같고 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아, 왜 우리 저, 시우랑 그, 뭐냐, 저…
모텔도 같이 다니고 하는 사이인 거 내가 다 아는데?
(명한) 아, 회사에선 아직 비밀이시구나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내가 저, 큰 소리로 안 할게
[당황한 숨소리]
저, 아무튼 우리 시우랑 과장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맞죠? 응?
어제도 모텔에 같이 왔었더구먼요
아…
[난처한 웃음]
실례지만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뭔지…
혹시 돈 좀 있어요?
(명한) 씁, 보아하니 연륜도 깊어 보이시고
나이도 좀 있어 보이시고
게다가 과장님이라 그러시고
뭐, 그러면은 씁, 우리 시우보다 연봉도 좀 되실 거고
아, 내가 저기
어, 급하게 써야 할 데가 있어서 그런데
혹시 돈 좀 뀌어줄 수 있나 해서
(시우) 형
과장님 어디 가셨는지 알아요?
전화받고 나가신 거 같던데
(석호) 몰라
네가 전화 한번 해 봐
(시우) 네
[휴대전화 진동음]
예, 진하경 과장님 핸드폰입니다
[긴장되는 음악]
예?
[태경이 흐느낀다]
(구급대원) 보호자분 같이 타세요
(태경) [흐느끼며] 네
[사이렌이 울린다]
(명주) 진 과장님 들여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석호) 우리가 들어가란다고 그냥 들어갈 사람이 아니잖아요
어떡해요, 엄 선임님
[무거운 음악]
[거친 숨소리]
[시우의 거친 숨소리]
(시우) 과장님
방금 집에서 전화 왔었는데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대요
여기요
과장님!
(하경) 아…
아, 그거 걱정할 거 없어
엄마랑 나랑 사이 안 좋을 때마다 가끔씩 꺼내시는 카드야
- 들어가자 - (시우) 응급실로 가고 계시대요!
뭐라고?
(시우) 과장님 어머니요 구급차까지 부르신 거 같아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같다고요
[무거운 효과음]
[사이렌이 울린다] (태경) 야, 진하경 너 뭐 하는 애야?
엄마가 아프다는데!
네가 아무리 엄마한테 화가 나 있어도 그렇지
이렇게 인정머리 없이 굴 일이야?
아프다 그러면 일단 전화는 해 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흐느끼며] 엄마 지금 다 죽어 간단 말이야
[차분한 음악]
[태경이 흐느낀다]
그래서 지금 어느 병원으로 가는데?
(태경) 모르겠어, 일단 가까운 응급실 간다니까 연락할게
알겠어, 그럼 근무 끝나고 거기로 갈 테니까…
(태경) 야, 엄마 다 죽어 간다고!
[태경이 흐느낀다]
나 지금 자리 비울 수 없는 거 알면서 그래
(태경) 빨리 와! 지금 당장!
글쎄, 알겠다고
내일 아침에 교대 끝나고 바로 갈 테니까…
(태경) 아휴, 진짜 넌 됐어, 끊어, 이 계집애야!
[통화 종료음]
[떨리는 숨소리]
(시우) 과장님
나 괜찮으니까 너 먼저 들어가
(동한) 진 과장
아휴
현재로서는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어서
적어도 내일까지는 대기에 별다른 변화 없을 거야
열섬 현상으로 밤에 더울 거고
낮에는 뭐, 당연히 더 더울 거고
어쨌든 내일 교대 시간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 거 같거든?
빨리 병원부터 가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부드러운 음악]
너 나 못 믿냐?
그 정도 믿음도 없으면서 일을 시키고 계신 건 아니죠?
못 믿어서가 아니고 책임 때문에요
제가 어찌 됐든 총괄 2팀 책임이니까
진 과장 책임감은 우리 기상청 사람들 다 알아
(동한) 그러니까 지금은 가서 딸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떨리는 숨소리]
나도 빚 한번 갚자, 진하경
빨리 가요
그러면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동한) 특보
들어와
아, 예, 들어갑니다
[의료 기기 작동음]
[하경의 다급한 숨소리]
(하경) 어떻게 된 거야? 엄마는 어떻대?
[하경의 거친 숨소리] [태경의 한숨]
(태경) 몰라
지금 막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태경의 한숨]
갑자기 기운 없다고 드러눕더니 계속 어지럽다고 하고
조금만 먹어도 다 토하고
그러다 화장실 가고 싶다고 일어서는데
[울먹인다]
갑자기 몸이 막 한쪽으로 기울면서 쓰러지더니
[태경이 흐느낀다]
[흐느끼며] 아, 진짜 이마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
나 진짜 엄마 그대로 죽는 줄 알았어, 이 계집애야!
검사 결과는?
시간 좀 걸릴 거래
(태경) 지금 응급 환자들 넘쳐 나서
검사 밀렸다고
[잔잔한 음악]
(명주) 엄 선임님 이거 아까 말씀하신 거
(동한) 어, 어
어, 서울 지역 지면 온도하고 일사량
10분 간격으로 계속 체크해 줘요
(명주) 네, 알겠습니다
(동한) 고기압 이동 경로 계속 체크했어?
예, 뭐, 현재로서는 경로가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습니다
(동한) 응, 이동 속도 빨라지면 바로 보고하고
(석호) 네
[마우스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병원에 잘 도착했어요?
[서류를 사락 넘긴다]
[기준이 중얼거린다]
(기준) 돌겠네, 아이씨, 몇 시야?
아, 어떡해 [괴로운 숨소리]
[한숨]
진…
[익살스러운 음악]
[한숨 쉬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기준의 한숨]
[괴로운 신음] [발을 탁탁 구른다]
[기준의 거친 숨소리]
몇 시야?
[한숨]
[풀벌레 울음]
[밝은 음악] [새가 지저귄다]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직원들) 안녕하세요
(직원3) 좋은 아침입니다
[탄식]
어디 간 거지? 왜 안 보여?
(기준) 하, 나 이거…
(명주) 어? 아침부터 무슨 일…
어머, 한 사무관님 밤새웠어요?
(기준) 아, 예, 뭐 일 좀 하느라고요, 예
아, 근데 그, 진하경 과장이 안 보이네요, 어디 갔습니까?
(수진) 퇴근하셨는데요? 일이 있어서
아, 퇴근…
(시우) 아침부터 왜 우리 과장님을 찾으십니까?
(기준) 아, 뭐 크게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예
(동한) 아, 저기 해장국이나 먹고 갈까?
- (명주) 오, 좋죠 - (동한) 어, 어
- (석호) 좋습니다 - (동한) 그래, 가 [수진이 호응한다]
(기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예 [직원들이 호응한다]
[한숨]
진짜 미치겠네, 이거 어쩌지?
(석호) 아, 한 대변인은 요즘 왜 이렇게 뻔질나게 들락거려?
(수진) 그러니까요
아니, 진 과장님 그렇게 가열차게 배신 때릴 땐 언제고
아주 툭하면 찾아온다니까요?
자기가 아쉬워서 그러지, 뭐 자기가 아쉬워서
뭐가 아쉬운데요?
- 칼럼 - (수진) 칼럼이요?
(수진) 설마 '테마 스토리' 그거요?
(명주) 응, 여태까지 그거 다 진하경 과장이 손봐 준 거였잖아
예? 말도 안 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을걸?
(명주) 신 주임도 알고 있지 않았어?
봐, 그렇다니까?
(수진) 헐, 뭐야, 완전 재수 없어
그러고 보면 진하경 과장은 좀 무른 데가 있기는 해
(명주) 그렇지, 신 주임?
[석호의 한숨]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시우) 아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동한) 왜? 뭐, 해장국 안 먹고?
(시우) 예, 생각이 없어서요 이따 뵙겠습니다
- (명주) 어, 가요 - (동한) 응
(명주) 아, 오늘은 소머리 말고 황태로 가시죠, 엄 선임님
(동한) 오, 좋지
(수진) 맛있겠다 [직원들의 웃음]
(직원4) 기상의 날 기념사 스크립트
지난 자료 모두 다 준비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요약하래요?
(명주 남편) 아, 청장님 기념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행사 기본 계획을 짜는 저희 업무랑 관련이 없어서요
그걸 왜 당신이 판단해요? 과장은 나인데!
[차분한 음악] 죄송합니다
(직원4) 하, 어떻게 한 번에 된 적이 없어
다시 만들어 오세요
[숨을 후 내쉰다]
(동한) 신 주임
[한숨]
- (명주) 어 - (명주 남편) 응
(명주) 아침은?
당신 끓여 놓은 국이랑 해서 애들이랑 같이 먹었어
아, 애들 학교는 잘 갔고?
아이, 그럼
[명주가 살짝 웃는다]
큰놈이 미술 학원 다니고 싶다던데
영어, 수학, 태권도에 미술까지 다니면
[웃으며] 아이고
학원비로만 한 달에 거의 8, 90이야
앞으로 둘째도 그렇게 보내야 되는데
쯧, 그래, 알아
정말 1년이면 되겠니?
나 혼자선 1년 이상은 못 버텨
명주야
[잔잔한 음악]
1년 안에 5급 통과 못 해도 미련 없이 다시 돌아오기다?
(명주) 그거 약속하면 어떻게 버텨 볼게
[울컥하는 숨소리]
당신 좋겠다, 나 같은 마누라 둬서
[함께 웃는다]
그걸 말이라고
내가 복이 터졌지
[명주 남편의 웃음]
고맙다, 마눌
[울먹이며] 내가 꼭 패스할게
[명주 남편이 흐느낀다]
- (명주) 아휴 - (명주 남편) 아유
(명주) [웃으며] 아이고
아유, 큰일이다, 우리 남편
점점 눈물만 많아져서
[훌쩍이며] 아유
[명주 남편의 웃음]
이 커피 맛있다
[명주 남편과 명주의 웃음]
[함께 시원한 숨을 내뱉는다]
[함께 웃는다]
[잔잔한 음악]
(의사) 탈수가 심하게 왔네요
거기다가 헤모글로빈 수치도 좀 떨어져 있고
전해질 수치도 좀 내려와 있고
뭐, 일단은 수액이랑 같이 약 처방해서 놔 드렸으니까
다 맞으시면은 괜찮아지실 겁니다
입원은 안 해도 될까요, 그럼?
(의사) 댁에 돌아가셔서요
일단은 잘 드시고 푹 쉬시고
아, 무엇보다 스트레스받으시면 안 되니까
어르신 기분도 좀 잘 맞춰 드리시고요
두 분 따님께서 좀 그렇게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멀어지는 발걸음]
[한숨]
(하경) 단순한 탈수 증상이라서 잘 쉬시면 된대
(태경) 우리 뭐 어쩌고 하던데?
(하경) 우리만 잘하래
(태경) 너
(하경) 손가락질하지 마
너 잘해야 돼
(하경) 내가 뭐
- (태경) 알았어, 쉿 - (하경) 안 오고 싶어서 안 왔냐?
(수자) 조용히 해
[사람들이 대화한다]
(시우) 천만 원이에요
이거 내 통장에 있는 거 전부 다 털어 온 거야
진짜 이게 마지막이에요
(명한) 음, 역시
여자 끗발이 아버지 끗발보다 무섭다, 그렇지?
[어두운 음악]
응? 그, 진하경 과장
네 이거 맞지?
[명한이 숨을 씁 들이켠다]
나이는 좀 들어 보이던데
야, 그래도 이쁘더라
기품도 있고 분위기도 좋고
야, 근데 저, 그, 과장쯤 하려면은
저, 급수가 어떻게 되냐?
야, 연봉도 세지?
하여간 이 자식 이거 아버지 닮아 가지고
이거 능력 있어, 이거, 어? 아이, 자식
아버지 설마 과장님 만났어요?
너 그 여자 얘기 듣고 온 거 아니야?
혹시 돈 좀 있어요?
(명한) 아, 내가 저기
급하게 써야 할 데가 있어서 그런데
혹시 돈 좀 뀌어줄 수 있나 해서
아니, 우리 시우가 이 자식이 이게
씁, 아, 이게 다 좋은데
이게, 이게, 이게 좀 약해
[웃음]
그래도 뭐, 씁 본청까지 올라온 거 보면은
실력이 아주 없진 않은 거 같고
나이 어린 애인이랑 사귀려면은 투자 좀 하셔야지
씁, 한 천만 원이면 되는데
[떨리는 숨소리]
진짜 미쳤어
괜찮아, 인마!
(명한) 야, 야, 야 내가 보아 하니까
그 과장이란 여자 너 한참 좋아하는 거 같더라
저번에 그, 사귀던 그 기자 애보다 훨씬 안정감도 있고
속도 깊어 보이고
그, 무엇보다
얼굴이 딱 내 스타일이야
야, 어쨌든 고맙고
야, 버스 타고 가지 말고 택시…
[시우의 성난 숨소리] [명한의 당황한 소리]
이 자식이 이게 어디 아버지 멱살을…
이거 안 놔?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제발 좀!
나도 좀 살자
제발 좀
(시우)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고요
제발
아, 이 새끼가…
[무거운 음악]
[시우의 거친 숨소리]
[한숨]
(태경) [힘주며] 엄마
(수자) 아유
온 김에 밥 먹고 가
쉬세요, 좀
열무김치 새로 담가 놨어
저, 태경이한테 너 먹을 반찬이랑 들려 보냈는데
(수자) 맛은 봤어?
(태경) 뭐야? 윗집에서 반찬 안 줬어?
윗집이라니?
아니, 네가 비번도 바꿔 놓고 전화도 안 받길래
아이, 그럼 경비실에 맡기지, 그걸…
아…
아, 쉴까 봐 그랬지 불고기 반찬도 있고 하니까
아유, 아유, 시끄러워
가 물이나 한 잔 떠 와, 아이고
(하경) 아유
(태경) 이상한 사람이네
아니, 왜 그걸 안 주고 여태 갖고 있어?
혼자 사는 거 같았…
[놀라며] 뭐야?
자기가 다 처먹은 거 아니야?
[석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익살스러운 음악]
[석호의 못마땅한 숨소리]
[석호의 한숨]
[석호의 한숨]
[인터폰 조작음]
[인터폰 연결음]
[한숨]
씁, 아, 뭐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계속 집엘 없어, 도대체가!
아, 반찬을 맡겼으면 가져가야지, 이…
(석호) 아휴 뭐 어떡하라는 거야, 이거, 며칠째
[석호가 방향제를 칙칙 뿌린다]
온 집 안에 음식…
[석호의 짜증 섞인 소리]
[석호가 방향제를 칙칙 뿌린다]
[한숨]
[냄새를 킁킁 맡으며] 아유
언니, 물 좀 가져가!
[하경의 한숨]
[달그락 정리한다]
(업무과장) 한기준이 어디 갔어?
글쎄요? 씁 아까부터 안 보이시던데
[업무과장이 숨을 씁 들이켠다]
이거, 씨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업무과장의 한숨]
[익살스러운 음악] (기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떡하지?
아…
(기준)
(기준) 아이씨, 미치겠네 [익살스러운 효과음]
연락하면 어떡하려고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면 안 돼, 하면 안 돼 그럼 어떡하지? [익살스러운 음악]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뭘 어떡해, 전화해야지
[떨리는 숨소리]
[통화 연결음]
어, 하경아, 난데
아, 밤샘 근무 하느라고 힘들었지?
아, 그, 실은 그…
나 한 번만 살려 줘라
진짜로 미안한데
딱 한 번만 나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어?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괜찮아지셨어
다행이다
미안해요
뭐가?
우리 아버지요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단 말도 잘 안 나오네요
밥 먹었니?
(하경) 먹어 봐
우리 엄마가 직접 쑤신 거야
해마다 이맘때면 이걸 만들어야 지나가거든
왜요?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건데
내일이 아버지 기일이야
(태경) 음
씁, 아무래도 엄마 솜씨는 하경이가 닮았나 봐?
계집애, 투덜거리면서 잘 무쳤다, 그렇지?
내일 온다니?
오겠어?
(태경) 기대하지 마
엄마도 하경이 이해하잖아
[한숨]
잘 무쳤네
[잔잔한 음악]
(하경) 아버지 돌아가신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중 하나야
[문소리]
(어린 하경) 다녀왔습니다
엄마
집에 없어?
[놀란 숨소리]
[어린 하경의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효과음]
(하경)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우릴 버리고 혼자 도망쳐 버렸거든
[떨리는 숨소리]
나는 그런 아버지도 겪었어
(하경) 그러니까 너도
네 아버지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시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맛있네
(시우)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하나만 약속해 줄래?
(시우) 뭘요?
혹시라도 네 마음이 변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 줘
(하경) 네 마음이 흔들려도 나한테 가장 먼저 얘기해 줘
물론 네 마음이 변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내가 모르는 채 겪는 거야
[잔잔한 음악]
아버지처럼
[울먹인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하경) 한기준처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시우)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 준다'
약속할게요
됐어, 그럼
우리 같이 지내자
(기준) 다 했습니다
(업무과장) 보자
김 주무관이 쓴 것도 나쁘지 않던데?
아, 뭐, 그것도 읽어 보시고 이것도 읽어 보시고
다 읽어 보신 다음에 말씀해 주세요
그래
예
[웃음]
(김 주무관) 수고하셨습니다
아, 수고는 김 주무관이 했지
(기준) 아무튼 우리 과장님은
괜히 안달 나면 이 사람 저 사람 괴롭히고 그러시더라고
예?
아, 예 아, 저야 좋은 경험이죠, 뭐
그래, 경험, 그게 중요한 거야
칭찬해, 그 태도
(업무과장) 이야! 한기준이 돌아왔네, 어?
이거 곧바로 인쇄 넘기는 걸로 하자
예, 알겠습니다 바로 파일 넘기겠습니다
[한숨]
할 수 있으면서, 아유, 참
[업무과장의 웃음]
[웃음]
[휴대전화 진동음]
(기준) 응?
(유진) 잠깐 볼 수 있어?
[다가오는 발걸음]
(기준) 어쩐 일이야? 바쁠 시간 아니야?
뭐 마실래? 뭐 좀 사 줄까?
아, 맞다, 어제 혼인 신고는 했니?
그, 대출받으려면은 서둘러야 할 건데
우리 계약 기간 얼마 안 남아서
실은 그거 때문에 보자고 한 건데
어, 뭔데?
우리 혼인 신고
조금만 미루면 안 될까?
[잔잔한 음악]
(기준) 어?
(시우) 나랑 같이 지내자고요?
(하경) 응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같이 지내자, 여기서
그게 무슨 말이야?
(기준) 아니
무슨 뜻이야, 이거?
혼인 신고를 미루자니?
왜? 뭐 때문에?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경) 오늘 대기 중 오존 농도가
시간당 0.3ppm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남자4) 날씨가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놈의 오존 경보야?
(기준) 오늘 총괄 팀으로 들어온 민원 전화 누가 받았습니까?
그런 하찮은 전화나 받으려고
(수진) 그 어려운 공무원 시험 통과해 들어온 거 아니라고요!
우리 그런 일 하려고 여기 들어온 거 맞아요
하고 싶으면 해
- (향래) 어? - (보미) 이혼
(1팀 총괄과장) 당직실에 살림 차렸다는 소리 못 들었어? [시우의 탄성]
(하경) 하나가 아니라 둘이에요?
(하경) 이시우… [저마다 당황한다]
(기자) 기상청 사람이랑 동거했다고요?
(시우) 네 남편이 안 거 같아 너랑 나 동거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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