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7
(시우) 나랑 같이 지내자고요?
(하경) 응,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같이 지내자, 여기서
왜 그러고 싶은지
물어봐도 돼요?
(하경) 식장이랑 청첩장, 답례품 취소 예약금은
신혼여행 자금으로 퉁칠게 그렇게 알아
(기준) 10년을 사귀었는데도
난 널 모르겠어
[한숨 쉬며] 그냥 허무해서 그래
10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는데
난 너한테 뭐였는지
넌 나한테 뭐였는지
서로 잘 안 맞는 사이였던 거지
지금이라도 그걸 알아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피식 웃는다]
그러니까
(기준) 그걸 아는 데 10년이나 걸린 거네, 우리?
그래서 이번엔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아
널 더 알아 가고 싶고
(하경) 우리가 서로 맞는 사람들인지도 확인하고 싶어
그래야 우리 관계를 더 갈지 안 갈지도
결정할 수 있고
그래서 동거를 하자고요?
(하경) 응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비밀이니까 좀 조심스러울 거고
집에서 이렇게 터놓고 지내면
서로 알아 가는 데 효율적이지 않을까?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나는 비추예요
비추?
동거요
[잔잔한 음악]
왜?
일단 연애를 하면서 효율성을 따진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고요
(시우) 같이 산다고 해서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맞고 안 맞고는 맞춰 가기 나름인 거라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야,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내가 해 봐서 알아요, 동거
[빗소리가 들려온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대체 왜 헤어지자는 건데?
지겨워
뭐가?
(유진) 이렇게 사는 거
이렇게 살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시작한 거잖아!
그랬지, 그랬는데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아
(유진) 이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행복의 전부면
난 더 이상 오빠랑 같이 못 가
미안해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숨을 하 내뱉는다]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기준) 무, 무슨 뜻이야 이거 지금?
혼인 신고를 미루자니
왜?
뭐 때문에?
혼란스러워
뭐?
솔직히 나는
오빠랑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거든?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유진) 툭하면 서로 싸우고 화내고
요즘 오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네가 알던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데?
어른스러운 사람
(유진) 똑똑한데 잘난 척하지 않고
자상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
근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아무런 대책이 없잖아
[차분한 음악]
(기준) 너 설마
전세 자금 대출받는 거 때문에 이러니?
[한숨]
맞구나?
[한숨]
(유진) 오빠 말대로
혼인 신고 하고 전세 자금 대출받는다고 쳐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
오빠랑 나랑 대출받은 거 갚는 동안
집값은 또 뛸 거고
그럼 우린 또 대출받아서 전세 얻어야 될 텐데
계속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너랑 나랑 젊은데 뭐가 걱정이야
우리가 언제까지 젊을 거 같아?
(유진) 전세 자금 대출 갚는 데 10년
운이 좋아서 청약이라도 당첨되면
그거 다달이 부어서 우리 거 만드는 데까지
어림잡아 20년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년퇴직 얘기 나올 거고
무엇보다 나는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월급쟁이로 살고 싶지 않아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 유진아
우린 좀 다를 줄 알았지
그렇게 어렵게 결혼했는데 조금은 달라야 되는 거잖아
최소한 안정적이기라도 하든가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건데?
(기준) 넌 대체 결혼을 뭐라고 생각한 거니?
[한숨]
모르겠어, 나도
(유진) 그러니까 그거 알 때까지 당분간 혼인 신고는 보류하자
[한숨]
[한숨]
[잔잔한 음악]
(하경)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것으로
내 실패한 지난 연애를 만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처받기 싫다면서요
어, 싫어
나도 그래요
(하경) 하지만 그는
우리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실망할 일도 많고 서로에게 주게 될 상처 또한
깊고 아플 거라고 한다
가까워지고는 싶지만
상처받기는 두려운 너와 나
우리의 적정 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시우) 아…
좀 많이 작네요
(중개인) 손님이 생각하시는 금액으로는
이 정도 방도 구하기 힘들어요
이것도 당장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어요
몇 군데 더 볼 수 있을까요?
(중개인) 그러지 말고 월세를 좀 높여 들어가세요
여기서 2, 30만 월세를 더 써도 퀄리티가 확 달라질 텐데
방 새로 나오면 연락 주세요
아, 예
- (중개인) 예 - 감사합니다
[한숨]
[차분한 음악]
[매미 울음]
(명한) 잠깐 놀고 있어 아빠 금방 나올게
[부스럭거리는 소리]
(여자1) 내 거도 사 왔어?
천천히 먹어
[문이 탁 닫힌다]
[비가 쏴 내린다]
[말소리가 들린다]
(여자1) 오케이
- (남자1) 나 콜이야 - (남자2) 나도 콜
[남자들이 시끌시끌하다] (남자1) 까 봐, 까 봐
[무거운 음악] 아, 읊어 봐, 뭐야? 자, 까 봐
(남자2) 오땡!
(남자3) 오땡 죽어, 오땡 죽어 육땡이야!
[남자들의 탄성]
[남자들이 시끌시끌하다]
(명한) 아, 시끄럽고, 돌려
(남자2) 알았어, 한잔 먹고
[남자들이 소란스럽다]
[떨리는 숨소리]
[감성적인 음악]
[책장을 사락 넘긴다]
[새가 지저귄다]
[휴대전화 알람]
[시우의 피곤한 숨소리]
[피곤한 숨소리]
[시우의 힘주는 신음]
[시우의 탄식]
[시우의 힘주는 신음]
어?
어, 저, 죄송한데 샴푸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시우) 아, 감사합니다
[발랄한 음악]
[개운한 숨소리]
(직원1) 아유, 자기 집이야, 뭐야
- (시우) 안녕하세요 - 응
(영상 속 캐스터) 이게 바로 여름이구나 싶을 정도로
햇볕이 따갑습니다
오늘 대부분 지역에서 [흥미로운 음악]
자외선 지수 매우 높음 수준을 보이겠고
오존 농도도 높게 나타나겠습니다
[놀라는 숨소리] [일기 예보가 계속 흐른다]
(시우) 오, 여기 좋은데요?
여기는 임자가 없습니까?
(동한) 무슨 뜻이야?
왜 여기서 비비려 그래?
그러는 엄 선임님은 왜 여기서 지내시는데요?
나는 사정이 있는데?
저도 사정이 있습니다
[시우의 힘주는 신음]
오, 여기 좋은데요?
(향래) 엄마 먼저 나간다?
(보미) 가요, 가
(향래) 서두르자 엄마 오늘 제일 바쁜 날이야
오전에 사무실 들러서 교육도 받아야 되고
오후에 들를 집만 세 군데란 말이야
늦겠네, 오늘?
저녁 혼자 챙겨 먹을 수 있지?
(향래) 밥은 밥통에 있고…
(보미) 반찬은 냉장고에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되잖아
아유, 다 컸네, 우리 딸
[도어 록 작동음] (보미) 아빠 건가?
(향래) 이건 또 왜 두고 갔어
하여튼 순 자기 마음대로
아, 나갈 거면 아예 들어오질 말든가
아, 네 아빠가 뭘 버리질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이렇게 다 낡아 빠진 거까지 다 갖고 들어오니까
치우기 힘들어서
하고 싶으면 해
(향래) 어?
이혼
뭐?
내 눈치 볼 거 없다고
(향래) 보미야
너 누가 그런 말을 함부로 하래
엄보미!
보미야!
(시우) 일찍 나오셨네요?
(하경) 왜 거기서 나와?
(시우) 아…
[어색하게 웃으며] 잠깐 일이 좀 있어서…
(하경) 응
어제 뭐 했어?
볼일이 좀 있어 가지고요
왜요?
아니, 어제 전화도 안 되고 뭐, 무슨 일이 있나 어쨌나 해서
내 전화 기다렸어요?
아니
기다렸네, 뭐
아니라니까, 안 기다렸다니까?
[발랄한 음악]
(하경) 왜 이래, 회사에서
기다린 거 맞네
(시우) 얼굴에 딱 써져 있는데요?
[하경의 헛웃음]
(하경) 이시우 특보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내가 기상청에서 좀 유명해 그, 포커페이스로
그리고 뭐라 하지? 그…
'본 투 비 철벽'이라나 뭐라나? [시우가 피식 웃는다]
아, 누가 그래요?
내가
아무튼 주관적 객관화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너 점점 말이 짧아진다?
아, 그거는 친밀감의 표시입니다
과장이랑 특보 사이에 친밀감이 왜 필요한가 싶은데?
아, 우리는 좀 특별하니까요 [다가오는 발걸음]
(하경) 뭐가 특…
(석호) 좋은 아침입니다
- (시우) 좋은 아침입니다! - (하경) 오셨어요? 신 주임님
들어가시죠
좋은 아침입니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명주) 어어, 잠시만요, 잠시만요 같이 가요, 같이 가
아이고, 고맙습니다 [버튼 조작음]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버튼 조작음]
(기준) 윤 주무관님은 휴직계를 내셨더라고요?
아, 저 처음 방재과에 있을 때 잠깐 제 사수셨거든요
아아, 예
어디 막 편찮으시고 그러신 건 아니죠?
아, 아니고요
그냥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 그래서
1년만 쉬라 그랬어요
그럼 생활은요?
내가 벌면 되지
아이고
(기준) 둘째도 올해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힘드실 거 같은데
아유, 힘들 때 의지가 안 되면
그게 어떻게 부부겠어요?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명주) 안 내려요?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명주) 아, 네
[숨을 씁 들이켠다]
[명주와 기준의 어색한 웃음]
뭐, 무슨 일 있어요?
아, 실은
제 친구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거든요
아…
[흥미로운 음악]
예, 그래서요?
그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가지고
주위에서 다 뜯어말리는 걸 결혼까지 강행했는데
아, 그런데요?
아니, 근데 식까지 다 올려 놓고 이제 와서
혼인 신고를 안 하겠다는 겁니다
남자가? 아니면 여자가?
와이프가요
(기준) 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이거?
아, 뭐…
그럴 수 있죠
그럴 수가 있다고요?
(명주) 음…
결혼식까지는 뭐에 씌어서 충동적으로 저질렀다가
씁, 막상 혼인 신고를 하려니
정신이 번쩍 든 걸 수도 있고
아…
그럼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걸까요?
씁, 아니면
덜컥 겁이 난 걸 수도 있고
[잔잔한 음악]
(명주) 아, 왜
법적으로 엮이는 순간 왠지 게임 끝일 것 같은?
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선을 넘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한숨]
아휴
모르긴 해도 그 와이프라는 사람
지금의 결혼이 좀 불안한가 본데
믿음을 주도록 해 봐요
믿음을 갖는 순간 용기가 생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사람과 함께라면
가시밭길도 걸어 볼 만하겠다는 용기가
[명주의 헛기침]
(하경) 대기 상태는 어때요?
(동한) 음, 동해상 쪽으로 상층 기압골이 느리게 빠지면서
당분간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고기압의 흐름이 느리겠어
일사량이 높아지겠는데요?
(시우) 그리고 오존 농도도 높아질 거 같고요
자칫 정오쯤이면
경보 단계로 넘어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동한) 아이고 오늘 또 전화통 엄청 불나겠구먼
대기질 통합 센터에 코멘트 좀 해 줘
네
[잔잔한 음악]
참 아이러니하죠
(동한) 응? 뭐가?
오존 말이에요
(하경) 저 멀리 성층권에 있을 땐 참 고마운 존재인데
지표면 가까이에 생기는 동시에 해로워지니까요
저마다의 적정 거리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래도 오존과 사람 사이의 적정 거리는
산출이라도 할 수 있죠
그 계산조차도 불가능한 거리도 있잖아요
뭐?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 거리
[웃음]
직접 부딪쳐 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함께 웃는다]
고슴도치들이 그렇다잖아
(동한) 수도 없이 찔려 가면서
서로 붙어 있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거리를 찾아 간다고
결국 서로 상처를 입으면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관계
(동한) 그렇지
아휴, 뭐, 10년 넘게
적정 거리를 못 찾고 헤매는 사람도 있는데, 뭐
나처럼
그래서 집은 들어가셨어요?
아니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나
이젠 헷갈려
씁, 나하고 내 가족의 가장 편안한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동한) 그냥 지금처럼 가끔 한 번씩 얼굴 보고
이 정도가 적당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 그건 좀 비겁한 변명 같은데
그런가?
[웃음]
오늘 호우 확률은 낮다고 봐야겠죠?
(동한) 그렇지 20%도 채 안 되니까
오케이, 알겠습니다
(하경) 자, 여러분
오늘 대기 중 오존 농도가
시간당 0.3ppm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대기질 통합 예보 센터에서
수시로 운량과 일사량 체크 들어올 텐데요
잘 협조해 주시고요
외부에서 오존 관련 문의 전화 오더라도
친절히 응대해 주세요 이상입니다
(직원들) 네
[마우스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못 합니다
(기준) 아, 여름철 방재 기간에는
언론 대응만으로도 정신없는 거 아시잖아요
거기다 다달이 쓰는 칼럼만 해도 벅찬데
어떻게 특집 기사까지 씁니까?
(업무과장) 알지
그래서 나도 어려울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씁, 근데 아무래도 채 기자 붙잡고 늘어질 것 같던데?
자네 와이프 말이야
예?
그쪽 편집장이 콕 집어서 물어보더라고
(업무과장) 한기준 사무관이 채유진 기자 남편이냐고
뭔지 느낌이 탁 오지 않냐?
네?
특집 기사요?
(편집장) 씁, 자네 남편이 기상청 대변인 아닌가?
기상 특보 뜰 때마다 TV에 얼굴 비치는 그 친구
네
글도 아주 잘 쓰더구먼
(편집장) 기상청 월간지에 실린 칼럼 봤어
'오존의 두 얼굴'
맞지? 그거 채 기자 남편이 쓴 거
[살짝 웃는다]
아, 네
(편집장) 그 글발로
기상 관련한 특집 기사만 좀 써 달라고 해 봐
어?
아…
[고민하는 숨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어, 오빠, 무슨 일이야?
(기준) 어, 바빠?
(유진) 뭐, 그럭저럭
근데 왜?
무슨 일인데?
(기준) 아이, 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하냐? [차분한 음악]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할 수도 있는 거지
뭐, 별일 없고?
(유진) 어
어, 없지, 그럼
아, 그래?
(기준) 알았어
그럼 일해, 이따 집에서 보자
어, 알았어
[한숨]
[한숨]
[전화벨이 울린다]
총괄 팀 김수진입니다
기상청이죠?
아니, 갑자기 이렇게 오존 경보를 때리면 어떡해요 [어두운 음악]
우리 애 유치원에서 소풍 간대서
어렵게 휴가 내고 새벽부터 도시락 싸 놨는데
(여자2) 아니, 이럴 거면 하루 전에 알려 주든가
그게요
오존은 공기 중 자동차 배기가스나 유해 물질 때문에
갑자기 증가하는 거라서요
실시간으로 경보를 내릴 수밖에 없거든요
참고로 오존 경보는 기상청에서 내리는 게 아닙니다
(남자4) 웃기고 있네
야, 날씨가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놈의 오존 경보야!
그것 때문에 수도권 들어가려는 화물차랑 승합차 다 통제한다잖아!
너희들이 우리 먹여 살릴 거야?
저기요, 선생님
'야', '자', 반말은 하지 마시고요
어, 그 문제는 환경부나 도로교통공단에 문의하세요
저희 기상청에서는 오존 경보를 내리는 게 아니라서요
(남자5) 아, 근데 오존은 좋은 거 아니었어요?
오존층이 있어야 좋다고 들었는데?
예, 그건 성층권에 있을 때 얘기고
대기 중의 오존양이 많아지면 인체에 해롭습니다
아, 그렇구나, 음
(남자5) 씁, 아, 근데 그…
전화받으시는 분 몇 살이에요? 결혼했어요?
끊겠습니다
[전화벨이 울린다]
[수진의 한숨]
내가 받을게 가서 점심이나 먹고 와
아니에요, 제가 받아요
먹고 와서 해
밥맛도 없네요
(수진) 네, 총괄 팀 김수진입니다
네, 그게
오존 주의보는 저희 기상청 소관이 아니라서요
(석호) 어유, 국장님 오셨습니까?
(봉찬) 어 [동한이 호응한다]
아, 진 과장 어디 갔어?
예, 그, 사후 분석 건으로 잠깐 정책과에 갔습니다
어, 그래?
- (봉찬) 아, 일해, 어, 일해, 일 - (석호) 예
(봉찬) 일들 하시고
- 어이, 엄 선임 - (동한) 예
나랑 커피 한잔하자, 어, 나와
[동한의 헛기침]
(수진) 선생님 소리 지르지 마시고요!
(남자6) 뭐야?
소릴 지르다니! [긴장되는 음악]
누가 지금 소리 질렀다는 거야!
(수진) 선생님이요
아까부터 계속 소리 지르고 계시잖아요
씁, 이게 근데…
야, 너 정직당하고 싶어?
시말서 쓰게 해 줄까?
(남자6) 이게 지금 얻다 대고 까불고 있어! [수진의 한숨]
야, 우리 아들이 고위 공무원이야
내가 걔한테 말하면 너 당장 모가지라고
알아들어?
이보세요, 선생님
(명주) 아드님이 그렇게 높으신 분이면
그쪽에다 직접 컴플레인하세요
이쪽으로 전화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오존 주의보는 저희 기상청 소관이 아니라
환경부 소관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욕할 일 있으면 그쪽에다가 전화하시든가 말든가!
[명주의 성난 숨소리]
그래도 돼요?
물론 안 되지
만
우리도 사람이야
(명주) 저쪽에서 매너 없이 나오면 우리도 방어할 권리는 있어
그래도…
(명주) 됐어, 김수진 씨
걱정하지 마, 뒷감당은 내가 해
[휴대전화 진동음]
(하경) 어? 시우 특보, 어디 가?
아, 잠깐 볼일이 좀 있어 가지고요 [휴대전화 진동음]
그럼
네?
1,000에 60이요?
관리비는 따로고요?
(시우) 아, 그, 혹시
관리비 포함해서 월 50은 안 될까요?
글쎄, 안 된다니까
그 돈으론 어제 본 게 최선이에요
아, 그러지 마시고
주인분한테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세요
방도 깨끗이 쓸 거고요
아, 어차피 그리고 또 잠만 잘 거라서요
글쎄, 말해 봤자 안 될 게 뻔한데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한숨]
(봉찬) 그러니까 왜 본청까지 와서 이렇게 홀아비 티를 내냔 말이야
(동한) 아 홀아비는 누가 홀아비예요
엄연히 와이프랑 우리 딸이 있는데
(봉찬) 그래, 내 말이
집도 있고 처자식도 있는 사람이
왜 여기서 몇 날 며칠 이렇게 무전취식하고 있냐고
위험 기상 기간이지 않습니까
(동한) 예전에는 여름철 방재 기간이면
노상 기상청에 살았는데 뭘 별스럽게 그러십니까
그때야 중앙 서버가 갖춰져 있지 않을 때고, 인마
(봉찬) 야, 지금에야 집에 누워서도
중국, 일본 실황까지 다 볼 수 있는데
왜 그래야 되는 건데?
됐고
요즘 애들은 너 이러는 거 굉장히 싫어해
요즘 애들은 어떤 애들 말씀하시는 거…
당직실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니?
(봉찬) 네가 살림 차리고 있다고 당직실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내 책상에 쌓인 컴플레인이 한가득이야, 이씨, 그냥…
[입소리를 쩝 낸다]
아, 참, 거…
야, 빨리 짐 싸서 집으로 들어가
너 그러려고 굳이 그 선임 자리도 마다치 않고
본청까지 온 거잖아
(봉찬) 그럼 너 본청까지 왜 온 건데?
그냥 강릉청에 남아서
대빵 노릇 하면서 폼 잡고 살면 되잖아
쯧, 아, 그, 서울 사람들 인심이 박하네
제수씨는 너 이렇게 밖에서 궁상 떨고 다니는 거 알고 있냐?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마음대로 해라
(봉찬) 네가 아무리 동풍 냄새를 잘 맡으면 뭐 하냐
제 마누라 속내도 하나 못 읽는 놈이
이거나 버려
아휴
[잔잔한 음악]
[시우의 한숨]
[흥미진진한 음악]
(기준) 오늘 총괄 팀으로 들어온 민원 전화 누가 받았습니까?
전데요?
(하경) 무슨 일이시죠?
(기준) 예보국으로 주의 조치 들어왔습니다
[서류를 탁 받는다]
오존 주의보 관련해서 문의 전화 한 민원인한테
기상청 소관이 아닌 일로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면서요
민원인 상대하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아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같이 소리치고 끊어 버리면 어떡합니까?
[무거운 음악]
그랬어요, 김수진 씨?
내가 그랬어요
(기준) 그런 식으로 감싸 주실 일은 아니고요, 주임님
아니, 감싸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았다고요
(기준) 이것 봐요
본인 할 일도 제대로 못 해내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니, 이게 선배가 나서서 실드까지 칠 일입니까, 예?
(명주) 내가 받았다니까 왜 딴소리해요, 한 사무관?
내가 그 전화 받았고 내가 소리쳤고
내가 끊어 버렸어요, 됐어요?
좀 참으시지 그러셨어요
참을 게 따로 있지
(명주) 우리 모가지 싹 다 잘라 버리겠다는데
그걸 그냥 듣고 있어요?
그거는 민원 전화가 아니라 협박이잖아
아니, 우리가 무슨 자기들 화풀이 배설구도 아니고
왜 우리가 그런 쌍소리를 다 듣고 있어야 하냐고요
(기준) 네, 알겠습니다
[한숨 쉬며] 아무튼 일 좀 똑바로 합시다, 김수진 씨
그런 전화는 왜 오 주임님한테 넘겨서
이런 사달을 냅니까?
이게 다 김수진 씨가 자기 할 일을
똑바로 못 해내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이것 보세요, 한기준 사무관
(수진)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수진이 훌쩍인다]
전화받자마자
우리 아들이 누군지 아냐 그러는데 저더러 어쩌라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다짜고짜 반말은 기본이고요
너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
계집애가 싸가지가 있네, 없네…
[수진이 흐느낀다]
저요
날씨 예보하려고 기상청에 들어온 거예요
그런 하찮은 전화나 받으려고
그 어려운 공무원 시험 통과해 들어온 거 아니라고요!
우, 우, 울지…
(하경) 이번 일은 내가 감사과에 절차에 따라서 답변서 제출할게요
그만 가 보세요
(기준) 어, 어, 아, 아니
예, 그럽시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문이 스르륵 닫힌다]
(하경) 김수진 씨
네?
우리 그런 일 하려고 여기 들어온 거 맞아요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
[잔잔한 음악]
민원인들 항의 들어 주는 거
(하경) 그래요, 불편하죠
근데
오존 주의보 하나에도
그렇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수진 씨 알고 있었어요?
생계가 걸린 화물차 기사님들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오존 주의보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우리가 일일이 저런 민원인들 전화 안 받았다면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하는 예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요
우리가 그 어려운 공무원 시험을 뚫고 여기에 있는 이유는
시민들에게, 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우리에겐
수진 씨가 얘기한 그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알겠죠?
[훌쩍인다]
괜찮아?
[명주가 수진을 토닥인다]
[탁 내려놓는 소리]
(하경) 저요
이런 진상 민원들 전화 받으려고
힘들게 공무원 시험 통과해서 여기 온 거 아니거든요?
내가 왜 이런 사람들까지 다 참아 줘야 되는데요?
(동한) 그럼 너는
우리가 힘들게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시민들, 국민들한테 봉사하라고야
책임을 가지고 공무에 최선을 다하라고
그게 우리가 녹을 먹는 이유야
여기가 무슨 철 밥통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데 아니야, 여기
그런 걸 바라는 거면 다른 일을 알아봐
책임감, 사명감 이런 거 없으면 절대로 이 일 할 수가 없어
알겠어?
[동한이 피식 웃는다]
많이 컸네
(명주) 기분 풀어 나 때문에 수진 씨만 혼나고
내가 너무 미안하네
(수진) 혼난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저
사실은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요
오늘 하루 종일 진상 민원인들 전화 받으면서
'아, 진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었는데
진 과장님 말씀 듣고 나니까
오히려 되게 명쾌해졌어요
(명주) 그런 생각을 했어? [명주의 놀란 숨소리]
진짜 다 컸다, 김수진 [수진과 동한의 웃음]
(동한) 아,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
진하경이라고 처음부터 뭐, 저랬겠어?
아무튼 가, 내일 봅시다
- (시우) 예, 가세요 - (명주)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수진이 인사한다]
(석호) 오늘도 당직실에서 주무실 생각인가
(명주) 너무 오래 지방으로 도셨지
오히려 집이 불편하실 수도 있어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명주) 안녕하세요 [직원들이 인사한다]
(석호) 안 타?
(시우) 아, 먼저 가세요 저는 다음 거 탈게요
(명주) 내일 봐, 시우 특보
(시우) 내일 뵙겠습니다 [수진이 인사한다]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아, 먼저 가세요
[잔잔한 음악] [버튼 조작음]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아, 먼저 가세요
(시우) 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뭐 해, 혼자?
아, 엘리베이터가 꽉 차 가지고 다음 거 타려고요
[시우가 살짝 웃는다]
배고프다, 저녁 같이 먹을래?
냉삼?
그래
(서점 직원) 찾으시는 책이 이 책 맞죠?
네, 맞아요
[살짝 웃는다]
이거 어디 있었어요? 저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아, 재고 창고에 있더라고요
창고요?
(서점 직원) 계산대는 저쪽입니다
(태경) 아, 네
[차분한 음악]
[흥미로운 음악]
[피식 웃는다]
[석호가 피식 웃는다]
보시겠어요?
아, 아니요, 아니요, 보세요, 예
혹시…
(태경) 어…
알아보시는구나
네
제가 이…
(석호) 반찬 맞죠?
[흥미로운 음악] 반찬요?
저한테 반찬 맡기셨었잖아요 1201호님
1302호님?
[통화 연결음] 아, 얜 반찬 맡겨 놨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태경) 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석호의 한숨]
동생분한테 꼭 전하세요
내일까지 안 찾아가면 그냥 싹 다 버릴 거라고
어, 잠깐만요, 잠깐만요
그냥 가면 어떡해요
뭘요?
아까 보던 그 책이요, '도시 악어'
(태경) 어느 대목이 재밌어서 그렇게 웃으셨는지
얘기 좀 해 주세요
아
아, 그거 재밌어서 웃은 거 아닌데
그럼요?
악어가 도시로 오려면
핸드백이 되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해서요
(석호) 이 악어라는 게
원래 수중 생활을 하는 파충류과 동물이라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거든요
근데 제목부터가 '도시 악어'라니까
[황당한 숨소리]
그건 문학적 허용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요?
제가 장담하는데
(석호) 아까 그 책 쓴 작가요
악어에 대해서 자료 조사는 고사하고
인터넷으로 검색 한 번 안 해 봤을 겁니다
아닐 거거든요?
자료 조사를 똑바로 했다면
악어의 앞 발가락과 뒤 발가락이 다르다는 거 정도는 알아야죠
[흥미로운 음악]
뒤 발가락이요?
이 악어가
앞 발가락은 다섯 개지만
뒤 발가락은 네 개거든요
(석호) 근데 아까 그 책에 이게…
아유, 참
[석호의 헛웃음]
아무리 펜만 들면 작가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씁, 이렇게까지 기본이 안 돼 있을 수가 있나
한심해서 웃은 겁니다
[웃음]
기본이 안 돼 있어서 죄송합니다
예?
설마 그쪽이…
[한숨]
[시우의 웃음]
(시우) 이것도 익었어요
(하경) 고마워
[휴대전화 진동음]
누구야?
음,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우) 맛있어요?
혹시 내가 너무 훅 들어갔나?
뭘요?
(하경) 음…
같이 들어와서 살자고 한 거
좀 부담스러웠나 싶어서
아니요
솔직하게 말해 줘서 좋았는데
(시우) 그래서 제 생각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거고요
내가 그 얘기 꺼낸 이후로 뭔가 어색해진 거 같아서
(하경) 네가 나한테 거리를 좀 두는 거 같기도 하고
그 거리 과장님이 원하던 거 아니었나?
비밀 연애 하자면서요
너하고 나 사이에 비밀을 만들자는 건 아니었지
[생각하는 숨소리]
혹시 제가
문자 어디서 온 건지 말 안 해 줘서 그래요?
그것도 포함이기도 하고
[피식 웃는다]
자요
부동산?
예, 부동산이요
방 보러 오래요
부동산 왜?
뭐, 연수원에서 언제까지 지낼 순 없잖아요
(시우) 하, 서울에서 방 구하는 게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장난 아닌 거 알아요?
어제도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허탕 쳤어요
그럼 너 어제 볼일 있었다고 한 것도 이거야?
(시우) 예
이시우,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하경) 내가 집에 와서 살자는 걸
굳이 마다하면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음, 그거는
저는 생활과 연애는 분리하자는 주의여서요
자존심 때문은 아니지?
(시우) 아, 과장님 이러시면
저 진짜 앞으로 제 얘기 솔직하게 말 못 해요
아, 물론 이런 제 처지가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차분한 음악]
아, 왜 그렇게 봐요?
아니야
(식당 주인) 맛있게 드세요
(시우) 감사합니다
저, 사장님 저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식당 주인) 네
[흥미로운 음악]
(수자) 뭐 하냐?
(태경) 와, 씨, 진짜
[태경의 속상한 신음]
아이고, 지랄
[태경의 기침]
(태경) 아유, 씨
[울먹인다]
[탁탁 칼질하는 소리]
이게 다 뭐야?
저녁 안 먹었지? 어서 와서 앉아
잘 먹을게
(기준) 응
이게 뭐야?
우리 전세 보증금은 그걸로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기준) 아, 물론 이것도 빚이긴 한데
그래도 신혼부부 전세 자금 대출 이자보다 더 싸니까
훨씬 이득이잖아
근데 너희 편집장이 나한테 칼럼 하나 써 달라고 했다면서
어떻게 알아?
유진이 너는 그런 일이 있으면
오빠한테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아니, 오빠 바쁜데
괜히 일 하나 더 얹는 거 같아서
그래서 그랬지
가서 오빠가 해 준다고 얘기해
- 진짜? - (기준) 응
(기준) 그거 내가 안 하면은 너희 편집장 그 사람
너 두고두고 괴롭힐 거 아니야
막 남편 하나 어떻게 못 한다고 뒷소리들 할 거고
시간 되겠어?
뭐, 안 돼도 해야지 어쩌겠어
내 와이프 일이기도 한데
그럼 나 내일 아침에 가서 진짜 얘기한다?
어, 얘기해라
[잔잔한 음악] [기준이 살짝 웃는다]
근데 오빠 이런 건 어떻게 알아냈어?
(유진) 진짜 대단하다, 오빠
[웃음]
(명주) 믿음을 주도록 해 봐요
믿음을 갖는 순간 용기가 생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사람과 함께라면
가시밭길도 걸어 볼 만하겠다는 용기가
[유진과 기준의 웃음]
- (향래) 숙제 낸 건 다 했지? - (학생) 네
그러면 오늘은 거듭제곱의 합 해 볼까?
(향래) 이거랑 이거 먼저 풀어 볼까?
(학생) 네
[차분한 음악]
(향래) 아까
그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야?
(보미) 응?
아빠랑 이혼해도 된다니
그런 말을 왜 해?
그냥
떨어져 살 때보다 엄마가 더 힘들어 보여서
(보미) 나 때문이면 그러지 말라고
아빠랑 같이 사는 것도 좋지만
난 엄마가 행복한 게 더 좋거든
나 아빠랑 같이 사는 거 싫지 않은데?
(향래) [한숨 쉬며] 그냥 지금 좀
엄마랑 아빠랑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빠랑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었잖아
가까워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학생) 쌤, 저 다 풀었는데요?
- (학생) 쌤? - (향래) 어?
(학생) 저 이거 한 번만 봐 주세요
(향래) 아, 어디 좀 볼까?
[풀벌레 울음]
[꼬르륵]
(동한) 아이…
[동한의 한숨]
[입소리를 쩝 낸다]
아휴
아, 참 나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동한의 웃음]
- (시우) 여기 있습니다 - (동한) 응
(동한) 어디서 벌써 한잔 걸치고 오는 길이야?
예, 여친이랑요
한잔했습니다
[시원한 숨소리]
그러면 여친 집으로 갈 것이지 뭘 일로 오냐?
[시우의 시원한 숨소리]
(시우) 그냥요
그 여자한테 조금 쪽팔려 가지고요
왜?
실은 제가
진짜 가진 게 쥐뿔도 없는 놈이거든요?
(시우) 어, 그래서 자존심 하나로
지금까지 간신히 버티면서 살아왔는데
아, 오늘 다 뽀록났습니다
[잔잔한 음악]
(하경) 실은 말이야
아버지 돌아가시고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은 적이 있었다?
엄마, 언니, 그리고 나
세 식구가 당장 오갈 데가 없어진 거야
배는 고프지, 날은 너무 춥지
밤새 이러고 있을 생각을 하니까
당장 막 아무 집에나 가서
'저 좀 재워 주세요' 하고 싶은 거 있지
(시우) 그래서
그날 밤 어떻게 했어요?
노숙했지, 뭐
그다음 날 언니는 큰아버지 댁으로 보내지고
난 작은이모 댁으로 가고
엄마는
식당 일 하시면서 몇 년 동안 떨어져 살았어
그래서 알아
집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하경) 지금 네 마음이 얼마나 고단한지도
사생활과 연애를 분리하겠다는 네 마음은 존중해
그것 때문에 부끄럽고 싶지 않은 네 자존심도 존중하고
근데 있잖아
너무 애써서 괜찮은 척은 안 해도 돼
알겠지?
(동한) 아, 그게 허세 부리다가 뽀록나면 진짜 쪽팔린 건데
예, 뭐
그렇긴 한데요
오히려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어요
최소한 이 여자 앞에서만큼은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고
좀 더 가까워져도 아프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요
[웃음]
[한숨 쉬며] 그렇지
그렇게 서로만의 거리를 만들어 가는 거지
서로만의 거리…
(동한) 아휴, 배부르다
이제 그만 주절거리고 일어나자
네?
안 잘 거야? 아유, 내일 출근해야지
(시우) 저 여기서 자도 되겠습니까?
아, 내가 뭔데 '된다', '안 된다'야
(동한) 아, 나 코 골아
아, 뭐, 그런 거쯤이야 전혀 상관없습니다
(동한) 어
[웃음]
[코 고는 소리]
[흥미로운 음악]
[시우의 한숨]
[코골이 소리가 요란하다]
(시우) 아씨
[시우의 한숨]
[코 고는 소리가 계속된다]
[새가 지저귄다]
어제 수진 씨 일은 내가 감사과에 답변서 제출했는데?
(기준) 어, 어
아, 이거 마셔
아, 뭔데?
(기준) 아, 그게 실은…
그, 문민일보 편집장 알지?
아, 그 사람이 내 칼럼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주 자기네 지면에 특집 기사 하나 써 달라 그러네?
아, 기상 관련해 가지고
그래서?
아, 혹시 너 시간 되나 해서
너 내가 분명히 저번에 얘기했지 마지막이라고?
이번 딱 한 번만, 하경아
(기준) 아, 이미 그쪽에다는 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니까 마지막에 슬쩍 한 번만 봐 주기만 하면 돼
(기준) 아, 진짜 마지막
진짜 딱 한 번만 더 봐 줘라 하경아, 어?
야, 너 네 와이프도 이러는 거 아니?
나한테 찾아와서 이러는 거?
어유, 야, 너 그걸 어떻게 말하니?
(하경) 못 말하겠지, 쪽팔려서?
나한테도 좀 그래 봐!
진하경
우린 친구잖아
[흥미로운 음악] 친구?
너하고 나 10년이야
우리가 연인으로는 실패했지만
(기준) 그래도 우정은 남아 있는 거 아니냐?
대학교 때부터 같이한 시간이 얼마인데?
연애만 날아갔지 다른 추억은 다 그대로다, 나는?
- 넌 아니냐? - (하경) 어, 난 아니야
(하경) 난 한기준이랑 보낸 시간 다 잊었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하경아
너 한 번만 더 이런 부탁 해 봐
네 와이프한테 다 얘기해 버린다
아, 진하경! 너 진짜 이러기냐?
하경아!
진 과장!
하, 아, 어떡하지?
아씨, 아…
아이씨
좋은 아침, 고생하셨습니다
(1팀 총괄과장) 진 과장은 언제 봐도 파이팅이 넘치네, 응?
감사합니다
거 본인 관리만 그렇게 철저하게 하지 말고
팀원들 좀 신경 쓰고 그러지?
저희 팀원이요?
(1팀 총괄과장) 당직실에 살림 차렸다는 소리 못 들었어?
아, 엄 선임님이요?
당분간만 좀 봐주세요 사정이 좀 있으신 거 같던데
아니, 뭐, 사정은 총괄 2팀에만 있나
(1팀 총괄과장)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침대를 차지하고 있으면
당직자들은 어디 가서 눈을 붙이냐고
[흥미로운 음악]
하나가 아니라 둘이에요?
(1팀 총괄과장) 팀원 관리도 과장의 업무야
최 과장님 계셨어 봐 자기 팀원들 저렇게 두나
(하경) 이시우… [저마다 당황한다]
(하경) 두 사람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 정 갈 데가 없으면 모텔도 있고
하다못해 찜질방도 있잖아요
(동한) 아, 근데
어차피 잠깐 눈만 붙이고 금방 출근할 거니까
(시우) 한여름에 찜질방은 좀…
너는 왜 연수원에 안 있고 여기 있어?
너 방 구할 때까지 연수원에 있는다고 하지 않았어?
어, 그게요…
(동한) 얘 연수원에서 쫓겨났대 한 며칠 됐을걸?
[흥미로운 음악]
며칠이나 됐다고?
(하경) 너 그럼 그 며칠 동안 쭉 당직실에 있었던 거야?
(동한) 아니야
당직실에선 그저께부터고
그 전엔 차에서 잤대
(시우) 아니, 왜 자꾸…
와…
(동한) 근데 우린 진짜 괜찮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과장님은 그냥 신경 꺼
어떻게 신경을 안…
안 써요?
(하경) 두 사람 때문에 당직실 못 쓴다고
다들 나한테 와서 난리인데
아니, 그걸 직접 얘기를 하지, 왜…
뭐라 그러는데?
팀장이 돼서 팀원들 못 챙긴다고요, 어?
두 사람 언제까지 방치할 거냐고
(동한) 아…
[동한이 후루룩 먹는다]
(기준) 아…
어떡하지? [문이 달칵 열린다]
(업무과장) 어이, 한기준
[문이 탁 닫힌다]
문민일보 특집 기사 써 주기로 했다며?
(기준) 아…
예, 뭐, 예
(업무과장) 야, 역시 마누라 백이 세긴 세구먼, 어?
바로 어젠 못 쓴다고 나한테 바락바락 대들더니, 어?
마누라 말 한마디에 오늘 바로 그냥 오케이네?
아, 아니, 뭐 딱히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업무과장) 야, 아내를 위한 희생
잘해 봐
파이팅
예
[흥미로운 음악]
(김 주무관) 멋있습니다
- (직원2) 파이팅 - (직원3) 최고
와, 파이팅
[기준의 웃음]
(기준) 하, 씨…
어떡하지?
[한숨]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아휴
해야지, 응, 해 보자
(기자1) 채유진 기자 결혼하더니 글발 좋아졌네
타이틀도 핵심을 딱 찌르고 말이야
(기자2) 신랑이 기상청에서 일한다잖습니까 [웃음]
(기자1) 일전에
기상청 사람이랑 동거한단 소문이 있던데
[무거운 음악] 그 친구랑 결국 결혼에 골인한 모양이지?
(기자2) 아마 그럴걸요?
남편도 글 좀 쓴다던데
[기자2의 웃음] [기자1의 탄성]
채 기자 다 가졌네, 다 가졌어
(기자1) 동거하고 결혼에 골인이라… [삐 울리는 효과음]
[말소리가 아득하게 울린다]
[새가 지저귄다]
[풀벌레 울음]
(명주) 시우 특보는 그렇다 치고
엄 선임님은 댁으로 들어가시면 될걸
(석호) 그러게요
(명주) 우리 집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아유, 애가 둘인데 안 되죠
셋이야
얼마 전에 우리 남편 휴직계 냈거든
아…
신 주임이 좀 받지?
전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수진) 어림없어요
신 주임님 결벽증 있어서 절대 안 될걸요?
참, 보고만 있자니 안됐네 진 과장님
[수진의 한숨]
(수진) 그러게요
(동한) 어? 아, 이거 아직 안 말랐네
아이…
차에서 잘 만해?
(시우) 예, 뭐, 좀 결리고 모기한테 뜯기는 것만 빼면
아주 나쁘진 않습니다
(동한) 아, 모기, 씨, 간지러운데
[모기가 왱왱거린다]
[모기가 왱왱거린다]
(시우) 아…
[힘주는 신음]
[웃음]
[동한의 한숨]
(동한) 여기서 잘 수가 있나 어유, 씨
[멋쩍은 숨소리]
[익살스러운 음악]
[어색한 웃음]
[스위치 조작음]
뭐 하세요, 안 들어오고? [문이 탁 닫힌다]
(함께) 아… [도어 록 작동음]
(하경) 엄 선임님은 저쪽 서재 방 사용하시면 되고요
이시우 특보는 이쪽 작은 방
(동한) 아, 이거 이래도 되나 싶네
공짜로 있으라는 거 아니에요
(하경) 매달 나오는 관리비 삼등분해서 청구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음, 삼등분해 가지고?
(하경) 그거 싫으시면 엄 선임님은 집으로 돌아가시면 되고
이시우 특보는 방 구해서 나가고
시우야 그냥 우리 모텔이 낫지 않겠냐?
(시우) 아니면 근처의 찜질방은 어떠세요?
좋은 거 같아 어쨌든 여기보단 편할 거 같아
(시우) 아, 그렇죠? 아, 저,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하경) 두 분 설마 저 여자로 보세요?
(동한) 아유, 뭔 소리야, 그게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우의 어색한 웃음]
(하경) 그런 이유 아니라면 그냥 계세요
타이틀은 [밝은 음악]
어, '여름 방재 기간을 위한 총괄 2팀 브레인 삼인방의 합숙'?
브레인이요? 제가요?
(동한) 씁, 얘는 브레인까지는 안 되는 거 같은데?
아이, 무슨 소리입니까?
잊으셨나 본데
(시우) 지난 3월 수도권 지역 우박 예측한 사람은 저였거든요?
그거는 그냥 어쩌다가
(동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거고
호우 시그널 잡아낸 것도 저였고요
아, 그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술 당기네
가서 맥주라도 좀 사 올까요?
(동한) 씁, 그러면 마른오징어 있으면 좀 같이 사 올까?
아, 예,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동한) 아…
화장실 어디지?
(하경) 아, 화장실 이쪽이요 [문소리]
저는 안방 거 쓰면 되니까 두 분이서 편하게 사용하세요
어, 고마워
(동한) 저기…
내가 괜히 민폐 끼쳐 가지고 미안하네
어쨌든 내가 있을 데를 빨리 알아볼게
네
하, 진짜
(시우) 어…
엄 선임님은 어떤 맥주를 좋아하시려나
[웃음]
[흥미로운 음악]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한숨]
[엘리베이터 도착음]
어!
[흥미로운 음악]
어, 반찬, 반찬, 반찬
[초인종이 울린다]
응? 비밀번호 알면서
(하경) 일찍 왔…
하경아
네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기준) 역시 여기 있었구나
혹시나 하고 와 봤는데
글쎄, 혹시나든 역시나든 네가 여기서 뭐 하는데?
그냥
- 네가 생각이 나더라 - (하경) 뭐?
나 잠깐만 들어가면 안 되냐?
하, 미쳤니?
와…
(기준) 너 어떻게 알았냐? 나 지금 미쳐 버리겠는 심정인 거
나 너무 힘들다 잠깐만 들어가면 안 되냐?
(하경) 아, 글쎄, 너 힘든 건 네 와이프한테 가서 얘기하고
- 빨리 가라 - (기준) 아
(기준)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잠깐만 들어가자
(하경) 어딜 들어와, 얘가!
(동한) 왜, 누구 왔어?
[흥미로운 음악]
누구 있냐, 안에?
네가 상관할 일 아니야, 빨리 가
- (하경) 아… - 남자 목소리인데?
누구야, 대체!
(하경) 야!
(기준) 아…
나 좀 많이 취했나 보다, 어유
아니, 왜 왔어, 이 시간에?
어? 맞네? 엄동한 선임님
[다급한 숨소리]
(석호) 진하경 과장님
(하경) 신석호 주임님? [흥미진진한 음악]
어, 신 주임
아, 엄 선배님은 왜 또 거기 계십니까?
(동한) 어, 나는 진하경 과장이 들어와서 같이 있자고…
- (동한) 어? - (기준) 같이…
왜 같이…
(석호) 아, 설마 1201호가 진 과장님 집이에요?
네, 그런데요?
근데 신 주임님은 여기 왜…
저 1302호요, 요 위층
예?
(동한) 아이, 둘이 이, 이웃사촌이야?
(기준) 가만, 가만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 자,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요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시우) 어? 형!
어어?
이거 무슨 상황이에요?
(석호)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그건
(기준) 하, 하경아 이거 뭐냐, 대체?
(하경)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느닷없는 사건의 연속
아니, 이 사람들 다 뭐냐니까!
(하경) 시끄럽고! 너 일단 따라와
[기준의 당황한 소리]
(하경) 그 속에서
(기준) 하, 하경아
(하경) 우리의 적정 거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서로를 찔러 대야 하는 걸까?
[부드러운 음악]
(하경) 여기가 어디라고 밤에 찾아와서 난리야? 왜!
미안하다, 하경아
[기준이 흐느낀다]
(기준) 우리 하경이…
(하경) 일어나, 정신 차려
(기준) 진짜 미안하다, 하경아
[기가 찬 숨소리]
(시우) 자꾸만 진하경이 좋아져서 그게 큰일이라고요
(시우) 아직도 한기준하고 정리 안 된 게 남아 있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수진) 그 채유진 기자가 결혼 전에 사귀었던
구 남친은 누굴까요?
[기준의 성난 숨소리]
(기준)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사람들이 놀란다]
[소란스럽다]
(하경) 이시우,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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