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4
(여자1) 와, 낙엽도 있고
[여자2의 웃음] [카메라 셔터음]
(여자3) 귀엽네
[시끌벅적하다]
[자전거 벨이 울린다]
(하경) 서울의 현재 기온 21도
상대 습도 43%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다]
한반도를 지배하던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물러가면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적한 가을 날씨가 시작되었다
이맘때 서쪽에서 다가오는 이동성 고기압은 쾌적하다
그야말로 뭘 해도 좋을 것 같은 이 계절에 난…
(하경) 실연당했다
[잔잔한 음악]
[쓱쓱 걸레질한다]
[차분한 음악]
뭐 하나 제대로 준 게 없네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네
어, 난데
여기 있는 로션 쓰는 거야, 버리는 거야?
(시우) 아, 그거 아직 더 써야 되는데
그래? 알겠어
(하경) 아, 그리고
여기 콘센트에 꽂혀 있는 충전기들은 다 네 거야?
아니요, 그중에서 검정색 C 잭은 엄 선임님 거예요
검은색이 좀 여러 개인데
(하경) 그럼 일단 다 넣을게 네가 따로 챙겨 드려
(시우) 예
저, 근데 지금 내 짐 챙기고 있는 거면
그냥 둬요
내가 나중에 가서…
아니야, 거의 끝났어 내가 출근할 때 가져다줄게
그래도 무겁잖아요
내가 나중에 가서…
(하경) 뭐 하러 그래
끊을게
[통화 종료음]
[차분한 음악]
[리드미컬한 음악]
[문소리]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다급한 숨소리]
[도어 록 작동음]
(시우) 과장님, 과장님! [스위치 조작음]
[가쁜 숨소리]
짐 찾으러 왔어? 내가 가져다준다니까, 기다려
(시우) 일이 좀 생겼어요
(하경) 무슨 일?
사람들이 다 알아 버린 거 같아요
뭐, 뭘 알아?
우리 사내 연애 한 거요
[흥미로운 음악] (하경) 어?
[시우가 살짝 웃는다]
아이, 너 진하경 과장이랑 사귄다며!
네?
언제부터인데? 합숙할 때부터야?
지금 그 얘기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뭐, 누구랄 게 없는데?
나만 빼고 우리 팀들 전부 다 알고 있던데?
전부 다요?
전부 다
(시우) 아 과장님이랑 나 사귄 거요
우리 팀 사람들이 전부 다 알아 버렸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너랑 나랑 사귄 거 그걸 다 안다고?
예, 그리고 지금쯤
기상청 사람들도 다 알아 버렸을 거예요
뭐?
(하경) 아, 깜짝이야
[시우의 당황한 숨소리]
(수자)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경) 엄마가 거기서 왜 나와?
너희들 둘이 사내 연애를 했다 이거지?
- (하경) 엄마, 그게, 그러니까… - (수자) 어쩐지
분위기가 요상스럽더라니
오해야, 그러니까…
(수자) 오해는 무슨
내가 너희들 요렇게 발뺌할 줄 알고
증거까지 딱 잡아 놨어, 이것들아
[흥미로운 음악]
이래도 아니냐? 이래도 아니야?
[멋쩍은 웃음]
[풀벌레 울음]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수자) 뭐 하는 집 아들이냐?
(하경) 알 거 없어요
엄마가 그 정도도 못 물어봐?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어째서?
우리 이제 끝났다고, 헤어졌다고
왜?
엄마가 나서서 초 칠까 봐 연막 치냐, 지금?
아, 엄마
9급이야, 8급이야?
아, 진짜, 아… [흥미로운 음악]
아, 따질 건 따져 봐야 할 거 아니야
(수자) 너보다 직급이 아래인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한다마는
나이가 어리니 어쩌겠냐
그 정도는 우리가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대학은? [하경의 한숨]
부모님은 다 계시고?
지금 사는 집은 어디래?
아니라고요, 글쎄
아, 어떤 부모 밑에서 뭘 보고 배운 자손인지는
[하경의 한숨] (수자) 응? 내가 알아야지
아, 그래야 나중에 상견례를 하더라도
피차 실수할 일도 없을 거고
아니라고요, 엄마 우리 헤어졌다고!
(하경) 나도 엄마 말대로
내가 퍽이나 괜찮은 여자인 줄 알고
잘난 척하다가 한 방에 차여 버렸다고, 됐어요?
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그놈 그, 태어난 날하고 시 받아 와
엄마
왜?
설마 궁합도 안 보려고?
아, 진짜…
[차분한 음악] (하경) 아, 말이 안 통해
[풀벌레 울음]
[시우가 숨을 들이켠다]
(시우) 괜찮아요?
[한숨]
(시우) 어머님하고는 얘기 잘했어요?
[휴대전화 진동음]
[무거운 음악]
[한숨]
[통화 연결음]
[숨을 후 내뱉는다]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아휴, 이놈의 자식은 왜 이렇게 안 받아?
(경찰) 상황이 어땠는지 설명해 주시죠
[명한의 한숨] (남자) 예, 제가 주행 차선으로 가고 있었어요
속도도 빨리 간 것도 아니에요
근데 저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뛰어들었다니까요
내가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고
- 아유, 진짜, 이씨 - (남자) 난 진짜 억울해요
듣자 듣자 하니까, 씨
아,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명한) 그쪽이 와서 먼저 들이받았잖아
멀쩡히 길 지나가는 사람을!
대갈빡 깨진 놈은 여기 따로 있는데, 이씨!
- (남자) 아니… - (명한) 억울하긴 개뿔이 억울해!
아, 아
아유, 씨
[숨을 후 내뱉는다]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한숨]
[새가 지저귄다]
(기준) 어, 아침 다 됐으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와
[유진의 난감한 숨소리]
나 별로 밥 생각 없는데
아, 유진아 너 좋아하는 만둣국 끓였는데?
(기준) 봐 봐, 맛있겠지?
[유진의 힘겨운 숨소리]
미안, 나 진짜 속이 좀 별로라서 그래
(기준) 아…
[유진의 힘겨운 숨소리]
[한숨]
[탁 내려놓는 소리]
[힘겨운 숨소리]
(기준) 유진아
(유진) 어
(기준) 네가 정 부담스러우면 우리 혼인 신고
나중에 하자
난 괜찮으니까
시간 좀 더 갖고 싶으면 가져도 된다고
솔직히 나도 결혼 생활이라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잘 모르는 것도 많고
그래서 잘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온통 잘 안되는 거투성이고
그래서 너한테 못난 모습도 보인 것 같고
또 그게 창피해 가지고
일부러 너한테 더 센 척했던 것도 있는 것 같고
근데
앞으로 좀 더 잘해 볼게, 유진아
[잔잔한 음악]
잘해 보자, 우리
응?
오빠
[숨을 들이켠다]
그래도 빈속으로 출근하지 말고 뭐, 우유라도 데워 줄까?
(유진) 응
어, 그래, 준비하고 나와
[한숨]
[한숨]
[밝은 음악]
[재킷을 쓱쓱 문지른다]
[가방을 달그락 집는다]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기분 좋은 탄성]
[도어 록 작동음]
[한숨]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12층입니다
(하경) 어?
[흥미진진한 음악]
언니
하, 하, 하경아
어, 나, 나 지금 여기 왜 있냐면…
- (태경) 지금 나… - 엄마가 보냈지?
(태경) 어?
[하경의 못마땅한 숨소리]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태경) 야, 야, 야, 야 네가 참아!
아, 엄마가 얼마나 네가 걱정되면 그랬겠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꼭두새벽까지
언니까지 보낼 일이야, 이게?
(태경) 그러게, 나도 네가 이렇게 빨리 출근하는 줄 몰랐다
나름 생각해서 시간 맞춰서 나온 건데
도대체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을 하는 건데
(하경) 왜 이렇게 내 결혼에 집착을 하고?
내가 헤어졌다 그러면 헤어진 줄 알 것이지?
헤어져? 누구랑?
됐고
엄마한테 가서 전해 나한테 이제 신경 끄라고
아, 됐다, 그냥 내가 해야지
어, 야! 안 돼
나 엄마한테 죽어
언니가 왜 죽어? 언니가 뭘 잘못했다고
(태경) 어?
야, 네가 지금 전화를 해 봐 예쁜 말이 나오겠어?
가시 돋친 말로 상처 주고 거기다 소금까지 쫙쫙 뿌리겠지
그럼 그거 뒷감당 누가 해? 다 내가 해야 되겠지?
배 여사 또 나를 붙잡고 몇 날 며칠 달달달달 볶을 텐데
와!
야, 진하경
너 이 불쌍한 언니를 그 지경까지 몰아세워야겠어?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전화는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본다
절대 반대야, 결사반대 무조건 반대야
[흥미진진한 음악]
그래, 언니가 뭘 알겠냐, 아유
[안도하는 숨소리]
고맙다, 동생아
넌 진짜 좀 멋있어
너 오늘 나 못 본 거다?
출근해
아, 내가 갈게, 간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한숨]
여보
(동한) 이것 좀 봐 봐 봐
[동한의 웃음]
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
(동한) 어, 이게
[삑 소리가 난다]
(녹음 속 동한) 사랑하는 보미야 생일 축하해!
[웃음]
재밌지?
[동한의 웃음]
(동한) 이게 호신용으로 소리도 나고
가방에 이렇게 달고 다니면은 되게 좋아할 거 같은데, 그렇지?
보미 지금 중1이야
알지,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향래) 요즘 어떤 중1이 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 하니?
그래? 이거 새로 나온 거라는데?
(향래) 으이그 [문이 달칵 열린다]
(보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향래) 밥 먹고 가야지
배 아파서 밥 생각 없어요
왜, 배가 왜 아파?
[작은 목소리로] 그날이래
'그날'?
(향래) 보미야 이거라도 마시고 가 [문이 달칵 열린다]
(동한) 무슨 날이지?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아, 그, 그날…
[새가 지저귄다]
[직원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 (직원1) 어머, 진짜? - (직원2) 어
[짹짹거리는 효과음] (직원3)
[발랄한 음악] (직원4)
(직원5)
(직원6)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짹짹거리는 효과음]
[한숨]
[짹짹거리는 효과음]
[저마다 인사한다]
[탄식]
[직원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짹짹거리는 효과음] (직원7) 둘이 사귄다며?
[발랄한 음악] (직원8)
(직원9)
[짹짹거리는 효과음] (직원10)
(직원11)
(직원12)
(직원13)
[짹짹거리는 효과음] (직원14)
(직원15) 잘 어울리네 선남선녀들이구먼
[짹짹거리는 효과음] [식당이 시끌시끌하다]
[한숨]
[직원들이 두런거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탄식]
[한숨]
[명주가 흥얼거린다]
(명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떡하겠어
무조건 직진해야지
(시우) 네?
(명주) 상대는 진하경 과장님이야
이미 사내 연애의 쓴맛을
사약처럼 들이켠 전력이 있으신 분이라고
그런 상대와 사내 연애를 시작했으니
어쩌겠어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대를 견뎌야지
안 그래, 시우 특보? [냉장고 문이 탁 열린다]
(시우) 그렇죠
저, 근데요, 오 주임님, 사실은…
[냉장고 문이 탁 닫힌다] (명주) 괜찮아
나는 그 연애 응원하니까
부디 이쁜 사랑 하시고
이번에는 우리 진 과장님
마음에 스크래치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시우 특보
만약에 이번에도 비슷한 일로 상처받으면
우리 진 과장님
진짜 제네바행 비행기에 올라탈지도 몰라
[잔잔한 음악] 뭐, 진 과장님도 진 과장님이지만
우리 총괄 팀도
[웃으며] 1년에 과장이 두 번이나 바뀌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이제 막 서로 합 맞기 시작했는데
(시우) 네
(명주) 하기야
시우 특보도 진 과장님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어
그렇게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질 거 같았으면, 뭐
시작도 안 했겠지
[함께 웃는다]
[명주의 한숨]
사람들 입방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 알았지? - (시우) 네
- 파이팅, 시우 특보! - (시우) 파이팅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한숨]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어, 무슨 일이야?
[한숨]
어떡하죠?
소문이 생각보다 진지한 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
(하경) 무시해
그냥 귀 닫고 입 닫고 무시하라고
그럼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 없어지게 돼
아, 그래도 좀…
(하경) 일 얘기 아니라면 끊는다
그리고 앞으로는 회사에서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
[엘리베이터 도착음] [통화 종료음]
[차분한 음악]
[직원들이 대화한다]
(1팀 총괄과장) 응, 수고했어요
(직원16) 수고하셨습니다
(하경) 수고하셨어요
(1팀 총괄과장) 응
(하경) 뭐, 특별한 이슈 없어요?
(1팀 총괄과장) 씁, 간만에 평온해
(하경) 바이칼호 쪽 상층 기압골 발달 속도가
평년보다 좀 빠른 거 같은데
그래 봤자 일주일 상간이야
(1팀 총괄과장) 어쨌든 날씨도 좋고
씁, 방재 기간도 끝나서 시간적 여유도 있겠다
연애하기 딱 좋은 계절이지, 뭐
어디 연애하기만 좋은 계절인가요?
당분간 실황 감시 쪽은 여유가 좀 생길 거 같은데
겨울철 방재 기간 대비해서
지난 30년간 첫서리일 자료 분석해 보는 거 어때요?
그걸 벌써 시작하라고?
(1팀 총괄과장) 아이, 왜 그래? 방재 기간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도 숨 좀 돌리자
방재 기간 끝났다고 긴장 풀지 말자고요
이동성 고기압 뒤에는 항상 저기압 따라오는 거 아시죠?
(하경) 기류가 좀만 바뀌어도 이상 기현 나오니까
우리 모두 긴장하자고요
업무 시간에 쓸데없는 농담 하지 마시고요
[웃음]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농담 한마디 한 거 가지고
(1팀 총괄과장) 죽자고 덤비네 아이고
[차분한 음악]
[한숨]
[하경의 한숨]
[한숨]
[삐거덕거린다]
[흥미로운 음악]
[수자의 힘주는 신음]
들어오는 거냐, 나가는 거냐?
어, 그게…
엄마 미선이 알지, 미선이? 내 후배 있잖아, 걔
(태경) 걔 어제 출판 기념회 한다 그래 갖고
내가 딱 한 잔만 한다는 게… [어색한 웃음]
걔가 또 책을 냈어?
어, 어, 어
잘하는 짓이다
(수자) 응? 자기 후배는 1년이 멀다 하고
책을 턱턱 잘만 내는데
넌 대체 올해로 몇 년째냐?
나도 이제 책 나와 그러니까 출판사랑 계약했지
(수자) 어유 그거야 나와 봐야 아는 거고
아, 지금처럼 그렇게 허송세월하다가
1년이 갈지 5년이 갈지 누가 알아
(태경) 쳇, 엄마
그러다 책 대박 나면 어쩌려고 이러셔?
제발 좀 책부터 내고 얘기하세요
진태경 작가님, 예?
(수자) 어휴 자식이 둘이나 있으면 뭐 해
어느 자식 하나 어미 마음을 헤아려 주는 놈이 없으니
엄마도 하경이 좀 이제 그냥 놔둬
(태경) 걔가 연애를 하든 비혼주의로 살든
너한테도 딱 잡아떼디?
뭘?
하경이가 자기네 팀원이랑 연애하는 거
팀원?
팀원하고 사귀어, 하경이? 팀원 누구?
아, 그, 왜, 있잖아
(수자) 훤칠하고 희멀건하니
배우 뺨치게 잘생긴 애
희멀건하니 배우 뺨치게 잘…
신석호 씨?
신석호는 또 누구야?
아이, 그 하경이 윗집 사는 남자 있잖아
같은 팀이라며
에이
그이는 훤칠하지는 않지
배우 뺨치게까지도 아니고
아, 그 정도면 잘생겼지 왜 그래?
아이, 그래서 엄마 뭐, 뭐, 팀원 누구?
이시우란다
(수자) 아, 그, 왜
그, 얼마 전까지 같이 합숙하던 총각 있잖아
둘이 몰래 사내 연애 중이라는데
이것들이 내 앞에서는 아니라고 펄쩍 뛴다?
펄쩍 뛰지, 그럼
엄마가 아는 순간 공격이 시작되는데
내가 뭘?
(태경) 어떤 집안이냐 아버지 뭐 하시냐
대학 어디 나왔냐 8급이냐, 9급이냐
생년월일시 다 대라
하경이가 그러디? 내가 그거부터 따져 물었다고?
[피식 웃는다]
그걸 하경이가 말해야 알아?
(수자) 엄마 레퍼토리인 거 세상이 다 알아
뭘 또 세상씩이나
엄마
그냥 모르는 척 좀 해 줘
(태경) 엄마가 끼어드는 순간 잘 만나다가도 삐그덕거린다고
아니, 하경이가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잖아
그걸로 만족을 좀 해, 어?
아, 시끄러워, 알았어
알았다고!
- (수자) 아, 근데 - (태경) 응?
너 어디서 외박했다고?
아, 신서…
[익살스러운 음악]
신 선배
아까는 미선이라며
(태경) 그러니까 미선이 출판 기념회에
신 선배도 같이 왔다고
아, 뭘 알면서 자꾸 물어봐? 쯧
[문이 탁 닫힌다]
[태경의 한숨]
와…
하여튼 배 여사 촉 하나는 대단해
[휴대전화 진동음]
(태경) 응?
(석호)
[밝은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를 집는다]
(태경) 이따 저녁에 시간 되죠?
[피식 웃는다]
[웃음] [헛기침]
(석호)
- (명주) 엄 선임님 - (동한) 응
(명주) 어제 말씀하신 지역별 기온 변화 분석이요
(동한) 응, 확인해 볼게
(명주) 네
(동한) 아, 오 주임 애들이 몇 살이라 그랬지?
첫째가 10살이고 둘째는 8살이요
(명주) 왜요?
그러면은 잘 모르겠네
응? 뭐가요?
아니, 우리 보미가 곧 생일이거든
[명주의 옅은 탄성] (동한) 아, 이거 선물을 뭘로 해야 되나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
아, 보미가 중학교 몇 학년이라 그랬죠?
중1
(명주) 중1
명품이죠
[웃으며] 명품은 무슨…
(명주) 무슨 명품이야, 학생한테?
아유, 뭘 모르시네들?
요즘 중고딩 애들
명품 하나씩은 소장하는 게 트렌드래요
(수진) 제 조카도 이번에 모의고사 등수 올리는 조건으로
자기 엄마한테 발렌 거 패딩 코트 사 달라고 딜 걸었다던데요?
진짜로?
[명주의 놀란 숨소리]
그러면 그게 뭐, 얼마나 하려나?
에이, 그거 만만치 않을걸요?
- 그렇지? - (명주) 응
[익살스러운 음악] (동한) 이게… 어어!
[명주의 놀란 숨소리]
중학생이 이걸 입는다고?
(명주) 와, 미쳤다, 미쳤어
[놀라며] 난 평생 이런 비싼 패딩 만져 보지도 못했네
아니, 이거면은…
[다가오는 발걸음]
(하경) 수진 씨
지난 10년간 9월 하순에서 10월 중순까지
이동성 고기압의 이동 경로 좀 찾아 줄래요?
네? 10년 치를 다요?
네, 10년 치 전부 다요
네
(동한) 아유, 이거…
그냥 웬만한 거 사 주고 끝내세요
(명주) 학생이 무슨 명품씩이나
보니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네
- (동한) 그러게 - (명주) 어유
저런 걸 입나?
[메시지 알림음]
[마우스 조작음]
(박 주무관) 수진 씨 생각해 봤어?
[차분한 음악]
(수진) 임 주임님이 휴직계를 냈다고요?
왜요?
응, 남편이 미국 지사로 발령이 나서
몇 년 같이 나갔다 올 건가 봐
[수진이 호응한다] (박 주무관) 씁, 그래서 공석이 하나 생기는데
네
씁, 그래서 말인데
수진 씨 전부터 정책과로 옮기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랬죠
그래서 전근 신청서도 몇 번이나 냈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신청해 봐
(박 주무관) 우리 과장님 성미에 아마 한 큐에 결재 떨어질걸?
- [놀라며] 진짜요? - (박 주무관) 응
[한숨]
[마우스 조작음] 지상 24시간 예상도는 누가 분석하고 있죠?
(시우) 전데요
[발랄한 음악]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시우 특보?
(시우) 음… 1시간 내로 끝내겠습니다
[마우스 조작음]
(하경) 아, 나 바이칼호의 절리 저기압 발달 자료도
찾아봐야 할 거 같은데
그것도 제가 지금 보고 있는데…
보시기 편하게 예상 일기도까지 추려서 드릴게요
아니야 그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줘
금방 끝나는데요?
그냥 달라고
예
무시하자, 무시해
[마우스 조작음]
김 주무관
수치 모델과에 가서
3개월 전망 관련해서 외국 모델 자료 좀 받아다 줄래?
[웃음] [마우스 조작음]
(기준) 김 주무관
아이, 뭐 하는데 말하는데도 듣지도 못하고 저래?
[김 주무관의 웃음]
(직원17) 진하경 과장하고 이시우 특보
두 사람 언제 그렇게 발전한 걸까요?
(직원18) 동병상련이 이래서 무서운 건데
채유진 기자가 결혼 전에 사귄 사람이 이시우잖아
(직원19) 씁, 가만 그럼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직원17) 크로스 러브?
(직원20) 에딕티드 러브
(기준) 너희들 이러고 노냐?
(김 주무관) [놀라며] 선배님
아, 죄송합니다, 그…
저는 눈팅만 했습니다
수치 모델과에 가서
(기준) 3개월 전망에 필요한 추가 자료 뭐 있나
확인하고 좀 받아 와
넵
[문이 달칵 열린다]
[잔잔한 음악] [문이 탁 닫힌다]
(직원17) 한기준 사무관이랑 채유진 기자도 이 사실 알까요?
(직원18) 당연히 소문 들었겠지
이래서 사내 연애는 하는 게 아닌데 [마우스 조작음]
[한숨]
[마우스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시우) 아…
올겨울 기후 전망 보고서 말인데요
(기준) 라니냐 전망 부분 조금 더 보강해야 될 거 같은데
예, NOAA 발표 때문입니까?
아, 뭐, 그것도 그렇고
유럽 중기 예보 센터랑 일본, 호주 기상청에서도
라니냐가 올 거라고 전망을 해서요
(기준) 오후 4시 전에는 보도 자료 나가야 되니까
그 전까지 자료 좀 보강 부탁드릴게요
그게 다입니까?
다른 할 말이 더 있어 보여서요
[기준의 한숨]
난 하경이를
꽤 오랜 시간 지켜봐 왔어요
(기준) 근데 그게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더라고요
그 친구의 모든 게 당연했고
당연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감사도 사라지고
소중한 줄도 모르게 돼 버리더라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난 그냥 내가 나쁜 놈으로 끝났어
근데 이시우 씨는 좀 달라서
하경이한테 타격이 너무 클 거야
[차분한 음악]
내가 차인 겁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사람들한텐
헤어졌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아
'왜 헤어졌는가'
그것만 궁금할 뿐이지
이런 직장 생활
게다가 남녀 문제
(기준) 이런 데 있어서 여전히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남자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미 나 때문에 상처 입은 하경이한테
더 불리한 소문들만 따라다니게 될 거고
근데
이시우 씨도 잘 알겠지만 진하경
그런 식으로 사람들 입방아에 올라도 되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
압니다
(기준) 그러니까…
[한숨]
내가 자꾸 이런 말 하는 것도 진짜 웃기는데
이별 같은 거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이시우 씨
그런데도 정 이별을 해야겠거든 잘했으면 좋겠어서
나처럼 쓰레기 짓 하지 말고
(하경) 예상보다 한기가 빠르게 남하하고 있는데요?
예보 분석 팀 의견부터 좀 들어 보고
이렇게 되면 영향 예보과에 상황 빨리 알려 줘야지
(하경) 그러시죠
[동한이 입소리를 쩝 낸다]
(직원21) 갑자기 한파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경) 시베리아에 중심을 둔
찬 대륙 고기압이 갑자기 발달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거 같습니다
(동한) 위성상으로도 한기 핵이 남하하는 게 보이고
(직원22) 북태평양 고기압이 완전히 동쪽으로 빠져 있는 와중에
바이칼호 쪽 찬 대륙성 고기압의 확장 속도가 빨라진 거네
이거 완전 엎친 데 덮친 격인데?
대관령 쪽은요?
어, 대관령이랑 철원 같은 내륙 지방을 중심으로
(동한)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거 같아 [긴장되는 음악]
(하경) 주임님 이번 주 중기 예보 어떻게 나갔죠?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차츰 쌀쌀해진다는 전망은
(석호) 통보문에 언급이 되긴 했습니다
(시우) 갑자기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지면
체감 온도는 그것보다 더 심할 텐데요
(명주) 그러게 말이야, 걱정이다
[직원21의 한숨]
(직원21) 이렇게 되면
전국의 출하 앞둔 농가에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곧 김장철이라
강화도 김장용 가을무랑 강원도 일대 고랭지 배추에도
저온 피해가 예상되고요
경북 지역의 콩 작물, 고추 작물 같은 건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동한) 응
(하경) 계속 모니터링하다가 최종 분석 해서
모레 한파 특보 여부 결정하시죠
그리고 농가 쪽에는 해당 지자체에 저온 피해 공문 보내 주시고요
(직원22) 아, 대처는 하겠지만
아, 평년보다 찬 대륙 고기압이 빠르게 발달하는 거면
계속 팔로우하다 시그널을 좀 주셨어야죠
그렇게 연애만 주야장천 해 대는데 뭔들 보이겠어? 에이
- (동한) 씁, 어, 김 팀장 - (직원22) 어?
(동한) 저기, 제수씨 잘 지내지?
(직원22) 어
다행이네
아니, 여기 와이프가 내 두 기수 후배
[동한의 웃음]
(명주) 응, 맞아요 [흥미로운 음악]
어, 두 분도 참 사내 연애 화끈하게 하셨었는데, 그렇죠?
아유, 기상청에다 그냥 꿀을 발랐다가
(동한) 전체 분위기 싸하게 만들었다가
(명주) 맞아, 맞아, 우리도 눈치
- (명주) 겁나 봤죠, 예 - (동한) 난리도 아니었어, 어
(직원22) 아, 저, 저기
공문 전달은 대변인실이랑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직원22의 헛기침]
(직원21) 살다 보면…
갱년기, 갱년기 [직원21의 어색한 웃음]
자, 잘 정리할게, 응
(하경)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동한) 아니야 적당히 눌러 줘야 돼
그래야지 앞으로 입조심하지
(명주) 맞아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고
남의 연애사를 회의 석상에 올리는 것도 아니죠
백번 동감합니다
(석호) 쯧, 씁, 저기
한파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네
일들 하시죠
(하경)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실은…
저랑 이시우 특보 말인데요
(시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잔잔한 음악] 예
아, 뭐,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안 그렇습니까?
(동한) 그래, 좋아, 어
너무 티만 내지 말자고, 어
[명주의 탄성] [직원들의 웃음]
[새가 지저귄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무슨 일이야?
당분간만 비밀로 해요
뭘?
우리 헤어진 거요
무슨 말이야?
그냥, 번거롭잖아요
(시우) 이제 막 사귄다고 소문났는데
벌써 헤어졌다고 말해 봐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상상하고 추측하고
자기들 멋대로 떠들어 대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당분간만 사귀는 걸로 해요
잠잠해질 때까지만
나 때문이니?
사람들이 '진하경 또 차였구나' 수군거릴까 봐
그래서 그래?
아니요
그럼 내가 불쌍해질까 봐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아니에요
아니면 뭔데?
그냥 듣기 싫어서 그래요
[감성적인 음악] (시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과장님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는 거
그거 진짜 못 참겠어서
그래서요
(하경) 몰랐니? 사내 연애가 원래 그런 거야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사람들 안줏거리밖에 안 되는 가십거리라고
그걸 알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또 그 길을 간 건 나였고
- 미안해요 - (하경) 사과하지 마
(하경) 내 선택이었고
내 사랑이었고
내 이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사과하지 마
그 결과조차 내가 감당해야 될 몫이니까
내가 감당이 안 돼서 그래요
나는 지금 이 이별이
너무 힘들어요
(시우) 내 서툰 이별 때문에
당신이 아픈 게 싫었다
그런데
그래서 당신이 더 힘들 줄 몰랐다
(기자) 채유진
이 꼭지 오늘부터 네가 맡아
(유진) 어?
이거 세희 선배가 맡던 기획 기사 아니에요?
임신했다고 당분간 업무량 좀 줄여 달래
어머, 선배 임신했어요?
[기자의 웃음]
임신이 무슨 큰 벼슬도 아니고
아주 당당하게 일을 줄여 달래
[유진의 어이없는 숨소리]
임신 초기면 그럴 수도 있죠
아니, 그럴 거면 육아 휴직을 내든가
(기자) 그래야 위에 인력 충원이라도 요청할 거 아니야
애매하게 이게 뭐야, 이게, 쯧
그래서 이거 언제까지 쓰면 될까요?
앞으로 네가 쭉
네?
네가 쭉 맡아서 쓴다고 생각해
(기자) 출산 휴가에 육아 휴직까지 연결해서 쓰면
1, 2년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소리인데
여자들 그러기 시작하면 글 끝도 무뎌지고 감도 떨어지고
그러다 적응 못 하면 경단녀 되는 거고
하, 설마요
그렇다고 무슨 경단녀까지…
[웃음]
왜? 거짓말 같아?
[차분한 음악] (기자) 가서 물어보든지
[한숨 쉬며] 애 낳고 주저앉은 네 선배들
수두룩 빽빽하다
그러니 이번이 기회다 생각하고 잘 써 보란 소리야
그동안 계속 꼭지 하나 맡고 싶어 했잖아
그 칼럼
사회면 맨 앞에 실리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겠습니다
[기자가 숨을 들이켠다]
(기자) 오케이, 수고
뭘 그렇게 맹렬하게 생각해? 이뻐 보이게
[유진의 웃음]
그냥
왜, 뭐 안 좋은 일 있어?
씁, 실은
칼럼 꼭지 하나 맡게 됐는데…
(기준) 진짜?
아, 그럼 우리 유진이 고정 칼럼 하나 맡게 된 거야?
아이, 뭐야, 그럼 축하할 일이네
잠깐만
어, 오빠 브리핑 끝나면 오늘 일정 끝나니까
우리 퇴근하는 대로 와인 한잔하러 갈까?
나 와인 못 마셔
왜? 아직도 속 안 좋아?
아, 무슨 일인데 그래 유진아, 말해 봐
오빠가 다 해결해 줄게, 어?
(기준) 뭐, 새 노트북 필요해?
뭐, 아니면 가방? 우리 백화점 갈까?
(유진) 나
임신했어
어, 어?
지금 12주째야
[차분한 음악]
(업무과장) 오늘도 고생들 했어
자, 일찍 퇴근하자고
(김 주무관) 네
(업무과장) 자, 자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명주의 웃음]
(명주) 신 주임은 약속 있어?
(석호) 예? 아, 예, 뭐, 뭐
(수진) 또 게임 시작하셨구나 그렇죠?
(석호) 아니야
(수진) 그럼 무슨 약속인데요?
혹시 소개팅이라도 하세요?
아닙니다
[수진의 탄성] (명주) 아니래
[엘리베이터 도착음] [문이 스르륵 열린다]
(명주) 하, 아이고, 타도 돼?
안녕하세요
[삐 소리가 울린다]
(명주) 아… [흥미로운 음악]
제일 나중에 타신 분
[명주의 헛기침]
(석호) 아니요
- (석호) 전 오늘 - (명주) 아이…
(석호)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명주) 어머, 아이… [석호의 힘주는 숨소리]
(하경) 먼저 가세요
[삐 소리가 멈춘다]
[석호의 한숨]
(시우) 잠시만요
[직원들의 탄성]
[시우의 웃음]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시우의 한숨]
(하경) 왠지 좀 어색하네
난 괜찮은데
그러니까 우리가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라고?
사람들이 잠잠해질 때까지만요
[차분한 음악]
우리 꼭 이래야 하는 걸까?
네
그러면 좋겠어요
[하경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진동음]
[탁탁 칼질하는 소리]
(종업원) 어서 오세요
[잔잔한 음악]
[한숨]
[석호의 가쁜 숨소리]
(태경) 어? 어!
아, 아
[태경의 웃음]
(석호) [숨을 몰아쉬며] 차, 차가 더 막힐 거 같아서…
(태경) 어, 차가 밀려서 전철 타고 왔는데
출구가 헷갈렸구나
[석호와 태경의 웃음]
우리 어디 갈까요?
[리드미컬한 음악] [석호와 태경의 옅은 신음]
[스위치 조작음]
- (태경) 아야! - (석호) 어떡해, 어떡해
[태경이 아파한다] (석호) 아, 미안, 미안, 미안
- 어떡해, 미안, 이거 어떡해 - (태경) 머리카락
(석호) 잠깐만, 잠깐만 가만있어, 가만, 미안해요
와, 어떡해요? 괜찮아요?
- 아, 따가워 - (석호) 아, 진짜 아프겠다
(석호) 진짜 미안해요
[태경의 가쁜 숨소리]
예? 응?
[석호의 당황한 신음]
[쿵] [석호의 아파하는 신음]
(태경) 어? 어? [석호가 아파한다]
어떡해, 미안해요, 어떡해 아, 미안해요
[석호의 아파하는 숨소리] 어, 어떡해
[석호와 태경의 웃음]
[석호의 신음]
[기준의 한숨]
(기준) 바보 같지, 나?
(하경) 응, 바보 같다, 너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
[기준이 숨을 들이켠다] [잔잔한 음악]
난 마음의 준비가 정말 하나도 안 돼 있었거든
[유진의 한숨]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가 생겼다는데 가장 먼저 나온 말이
아, 아니, 그…
우, 우리 그거 계, 계획에 없었던 거 아니야?
[어이없는 숨소리]
너무 어이없지 않아?
뭘 기대했는데?
(유진) 아니, 그래도 최소한 '너무 기쁘다'라든가
'아기는 건강하냐'든가
뭐, '축하한다'든가
할 말 많잖아
[한숨]
왜?
뭐?
많이 좋아하는구나, 네 남편
[유진의 한숨]
(유진) 한참 오빠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까 한참 애더라고
철도 좀 덜 든 거 같고
기대고 살면 편하겠다 싶어서 결혼했더니
그렇지도 않고
내 편이 되어 주겠다 생각했는데
계속 어긋나기만 하고
세상에 편한 관계가 어디 있어
(시우) 부모 자식은 편해?
나는 우리 아버지가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어
부모, 자식, 부부, 형제
가족이라서 더 어렵고
더 힘들어
그래서 더 속상하고
더 서운하고
(시우) 그러니까 나는 역시
비혼주의 하길 잘한 거 같아
그렇지?
왜, 진하경 과장하고 잘 안돼?
헤어졌어, 우리
아직 12주면
아기 태어날 때까지 시간 좀 있으니까
천천히 준비하면 되지, 뭐
아이는 거저 키우냐고
지금 월세에 생활비만 해도 사는 게 빡빡한데
(하경) 그래도 반반은 안 된다 이미 끝난 얘기야
영어 유치원비도 만만치 않다던데
[하경이 피식 웃는다]
그 와중에 벌써 영어 유치원도 생각했어?
요즘 시대에 조기 영어 교육은 중요하니까
그건 포기 못 하지
사실은 좋은 거지, 너?
[입소리를 쩝 낸다]
(기준) [한숨 쉬며] 실은 내가
과연 아빠 노릇을 잘해 낼 수 있을까
그게 걱정돼
지금 남편 노릇도 제대로 못 해서 헤매고 있는데
[잔잔한 음악]
잘할 거야
잘할 거라고, 너
(하경) 예전부터 너 해야 되는 건 열심히 잘했잖아
내가 어설픈 완벽주의자라서 까탈스럽게 굴어서 그렇지
너 이시우하고 정말 이대로 끝낼 거야?
(기준) 야, 진하경
연애가 한쪽만 좋다고 되는 거냐?
아, 대체 그 자식은 헤어지자는 이유가 뭐야?
몰라, 그냥 갖가지 이유를 갖다 대는데
(하경) 결론은 하나지
내가 별로라는 거
야, 말도 안 돼
네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데, 어?
똑똑하지, 일 잘하지 책임감 있지, 운동도 잘해
넌 네가 아직도 얼마나 매력적인 여자인지
아직도 모르냐?
너도 나 찼잖아
(기준) 응?
그거는 뭐, 그냥… [하경이 피식 웃는다]
아, 됐어, 이미 다 끝난 얘기고
두 번 다 그렇게 끝났다는 건
연애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거지, 뭐
야
그러니까 와이프한테 잘해, 어? 술 그만 마시고
꽃이라도 들고 가든가
아니면 백화점 끝나기 전에 선물이라도 들고 가든가
간다
내가 못나서야
네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너 진짜 괜찮은 여자라고, 진하경
가라
[휴대전화 진동음]
[차분한 음악]
여보세요
(시우) 나는 한 번도
아버지 아들이어서 행복했던 적이 없어
내 잘못도 아닌데
엄마랑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게
내 잘못인 거처럼 말씀하셨어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에 엄마는
자기 인생까지 포기했다고
그러다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그것마저도 나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
너 때문에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거라고
너무하셨네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지나 말든가
(시우) 낳아 놓고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고 내 탓만 하는 부모는
진짜 최악이더라
[휴대전화 벨 소리]
(여자4) 어, 여보
미안
엄마가 생각보다 많이 편찮으시네
어, 지금 세찬이랑 들어가
어, 여보, 지금 버스 온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
[버스 문이 쉭 열린다]
아저씨, 잠시만요
[여자4가 당황한다]
(유진) 어, 제가 도와드릴게요
(여자4) 어, 네, 감사합니다 [유진의 웃음]
[잔잔한 음악]
(유진) 어, 먼저 타세요
(여자4) 아, 네
[아기 울음]
(여자4) 울지 마, 세찬아 오, 괜찮다
[여자4가 아기를 어른다]
죄송합니다
[아기 울음이 계속된다]
[여자4가 아기를 계속 어른다]
[한숨]
(기자) 출산 휴가에 육아 휴직까지 연결해서 쓰면
1, 2년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소리인데
여자들 그러기 시작하면 글 끝도 무뎌지고 감도 떨어지고
그러다 적응 못 하면 경단녀 되는 거고
[한숨]
(기준) 어, 왔어?
많이 피곤하지? 어, 가방 이리 줘
뭐야?
제대로 축하도 못 해 줬잖아
(기준) 아깐 오빠가 미안해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워 가지고
혼자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너무 고맙고
너무 사랑해, 유진아
나 다음 주에 산부인과 예약했어
아, 아, 그랬어?
(기준) 언제, 무슨 요일?
오빠랑 같이 가자, 시간 뺄게
[무거운 음악]
이렇게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무, 무슨 말이야, 그게?
솔직히 오빠도 원하지 않잖아
(유진) 지금 우리 상황에 아이까지…
부담스럽잖아
유진이 너 설마…
그렇게 하자, 오빠, 응?
[풀벌레 울음]
[차분한 음악]
(시우) 세상에는
당연한 행복 따윈 없어
그래서 헤어졌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을 게 뻔해서
내 불행을
그 여자한테 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시우) 그래서
(시우) 아, 안녕하세요
아, 저는 요 앞에 잠깐 지나가다가요, 네
(수자) 우리 하경이는?
네?
우리 하경이 어디 있냐고
"응급실"
저, 혹시 이명한 씨…
(간호사) 아, 네, 잠시만요
(의사) 아 이명한 씨 보호자분이세요?
네, 뭐…
교통사고로 들어오셨는데
피 검사랑 몇 가지 검사를 하다가
좀 이상한 게 발견돼서요
이상한 거요?
(의사) 예
[무거운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통화 연결음]
아, 좀 받아요, 과장님
[한숨]
[통화 연결음]
[수자의 헛기침]
(수자) 자네
(시우) 아, 예
나랑 얘기 좀 하지?
아, 네
[휴대전화 진동음]
[드르렁거리는 소리]
(TV 속 캐스터) 완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던
전국 대부분 지역에
때 이른 기습 한파가 찾아오면서
비상에 걸릴 예정입니다
겨울처럼 추워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기 쉬운데요 [잔잔한 음악]
이럴 때일수록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명한이 드르렁거린다]
[시우의 한숨]
(봉찬) 자, 그래서 이 추위가 언제쯤 누그러질 거 같아?
현재 상황으론…
(시우) 예보를 뒤집어야 될 수도 있습니다
(기준) 이시우가 내뱉은 말 기어이 총대 메 주겠다고?
(1팀 총괄과장)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석호가 놀란다]
(시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하경) 혹시 알고 계셨어요? 조직 검사가 필요하대요
(시우)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이별 끝엔 항상 아버지가 있었거든요
(하경) 후회할 테니까
언젠간 후회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시우) 나 아직 당신 진짜 많이 좋아해요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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