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3
(미진) 아니, 그러니까
봐 봐
일본 쪽으로 빠진다고 그거 여기 나와 있잖아
(직원1과 미진) - 아니, 과장님, 여기서… - 안 그러면 피해가 너무 크지
북쪽에서 더 내려오고 있잖아요
기온이 내려오고 있으니까 남남동쪽으로 흐른다니까요, 지금
(미진) 거기 수치가 그렇게 나와 있어?
야, 야, 야, 야
이거 지금, 지금 데이터
이쪽으로 흐르고 있어
이쪽이 지금 저 위쪽이잖아
[바람이 세차게 분다]
[사이렌이 울린다]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거센 파도 소리]
[전화벨이 요란하다]
[봉찬의 한숨]
- (1팀 총괄과장) 국장님 - (봉찬) 어
(봉찬) 예
아, 저기, 예상 그…
- 강수량 다시 뽑아 - (1팀 총괄과장) 예, 알겠습니다
(봉찬) 예
자, 이거 한번 좀 봐 주세요
[전화벨이 울린다] (직원2) 예
[한숨]
[힘주는 신음]
예, 1팀 예보관입니다
예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새가 지저귄다]
(TV 속 앵커1) 지난밤 제14호 태풍 리키가
한반도를 휩쓸면서 전국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차분한 음악]
초속 30m의 강풍에 인명 피해가 120여 명
재산 피해 규모만 8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집계됩니다
(TV 속 앵커1) 특히 밤사이 쏟아진 폭우로
전국 곳곳에 침수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태경) 와, 이번엔 기상청이 아주 제대로 맞혔네
우리 하경이도 욕은 덜 얻어먹겠네
예, 예, 예, 그렇습니다
예, 이번 태풍은 뭐, 저희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예
(하경) 우리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살아간다
강수량도 그렇고 이동 경로도 거의 일치했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예, 네
[수화기를 탁 놓는다]
[봉찬의 한숨]
(하경) 때로는 준비한 시나리오가 정확히 들어맞기도 하고
(명한) 아, 나 화장실 좀
아유
아니, 근데 저 사람은 왜 데려가는 거야?
이 방법이 최선이었어
부자 관계도 나와 이시우의 관계도
개선해 보려고
[잔잔한 음악]
(시우) 세상엔
절대로 안 되는 게 있어요
사람이 태풍의 경로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우리 아버지 관계도 그래요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요
당신이 당신인 것처럼
나도 나일 수밖에 없다고요
미안해요
내가 이거밖에 안 돼서
우리
헤어져요
(하경)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빗나가면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날 보러 온 게 아니었나 보네?
아니, 그게…
유, 유진아
(하경) 중요한 사실은
준비했던 시나리오가 맞든 틀리든
인생은 계속되고
(봉찬) 어, 지금 15호 태풍
뒤따라 올라오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어, 지금 상태로 봐서는…
- (봉찬) 8시간? - (동한) 예
(봉찬) 어, 8시간 후면
한반도 영향권에 들어온다고 하니까
아, 굳이 서울 올라올 필요 없이
거기서 두 번째 놈은 좀 마크 좀 해 봐
어?
아, 이 사람아, 어디긴 어디야
아, 지금 당장 태풍 센터로 달려가야지
(봉찬) 아, 빨리 달려가
(하경) 네?
지금이요?
잠깐만요, 국장님, 저… [통화 종료음]
[차분한 음악]
(하경) 우리는 그다음
또 그다음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는 거다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숨을 들이켠다]
[한숨]
[수진의 한숨]
[한숨]
신 주임은 언제 알았어? [흥미로운 음악]
예 [석호의 헛기침]
전 좀 됐죠
[석호의 하품]
(석호) 응?
[시우의 어색한 웃음]
- (명주) 아… - (수진) 와, 그렇게나 빨리요?
오 주임님은요? 언제 아셨는데요?
아유, 나야, 뭐 감 잡은 지는 좀 됐지
[웃음]
[키보드 조작음]
[시우의 재채기]
(명주) 시우 특보 감기인가 보다?
(시우) 네
(하경) 5월 10일 아침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위성 센터 [재채기]
죄송합니다
어, 지금…
감사합니다
[명주의 웃음] (수진) 와, 소름, 진짜 대박 소름
그때부터였다고요?
와, 나 너무 소름
자기는 언제 알았어?
전 좀 나중이죠
왜, 있잖아요, 그때
[발랄한 음악]
[키보드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피식 웃는다]
[키보드 조작음]
[석호와 명주의 웃음]
(명주) 아, 하긴, 그때 겁나 티 나기는 했어, 그렇지?
[명주의 웃음] (석호) 아니 모르는 척해 주려 그래도
뭐, 한두 번이어야 말이죠
[하경의 놀란 숨소리]
똑바로 좀 하자, 이시우 특보, 어?
(시우) 네, 알겠습니다
(명주) 아유, 작작들 좀 할 것이지
(수진) 그나저나 어떡해요, 앞으로?
(명주) 뭘 어떡해
시치미 뚝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입 꾹 다물고 모르는 척해야지, 뭐
(동한) 뭐를 모르는 척해?
[명주가 콜록거린다]
- (명주) 예? - (동한) 뭔데? [수진의 헛기침]
(동한) 왜 갑자기 나 오니까 말을 멈추고 그래?
[웃으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직원들의 웃음]
[속삭이며] 엄 선임님도 알고 계시겠죠?
당연하지, 합숙까지 같이 했는데
모르면 그게 사람이에요? 곰이지
(명주) [웃으며] 곰
[툭 치는 소리]
(동한) 내 얘기 했지?
(석호) 예?
(수진) [웃으며] 으음, 으음
(명주)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수진과 명주의 웃음]
[한숨 쉬며] 참 빨리들도 알았다
(동한) 그래, 맞아
나 이혼당하게 생겼어
[익살스러운 음악]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쯧
[새가 지저귄다]
(명한) 아, 선생님
내가 저, 돈이 6천 원밖에 없어서 그러는데
저, 공항까지만 좀 데려다주시면 안 되겠어요, 예?
아니, 저, 그러시지 말고…
아니, 저, 아, 이봐요
야, 이씨
아이, 진짜
아휴, 씨, 제기랄
[숨을 후 내뱉는다]
하, 참
어이, 과장 언니
나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시우 저 자식이 날 반기지 않는 거 뻔히 알면서
굳이 여기까지 날 데려온 이유가 뭐요?
저도 한 가지만 묻죠
(하경) 아들이 다쳤는데 그렇게 합의금 얘기만 나와요?
눈 감으면 코 베 가는 세상이고
(명한) 쪼금만 만만하게 보여도 쪼만하게 보는 게 이 세상이야
아버지인 나라도 정신 차리고
챙겨 먹을 건 챙겨 먹어야지
[차분한 음악] 그게 뭐? 뭐 잘못됐어?
(하경)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아버지가 있구나
[한숨]
[웃음]
[동한의 웃음]
[숨을 들이켠다]
(하경)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늘 자식한테 미안해서 쩔쩔매는 아버지가 있고
어린 자식을 두고
자기 혼자만 도망쳐 버리는
[떨리는 숨소리] 무책임한 아버지도 있고
자식한테 이렇게까지 뻔뻔하고 이기적인 아버지도 있는 거고
(명한) 아휴
에후, 씨
아, 괜히 따라와 가지고, 씨, 쯧
서울은 혼자 가셔야겠네요
[차 문이 탁 닫힌다]
[멀어지는 자동차 엔진음]
[새가 지저귄다] [차분한 음악]
(기준) 타, 장모님 댁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타라니까?
[다가오는 버스 엔진음]
[한숨]
[키보드 조작음]
(미진) 뭐 한다고 본청 과장님을 여기까지 보내셨대요?
딱히 도움이 될 거 같지도 않은데
뭐, 국장님 지시니까 따라야죠
네, 알겠습니다
현재 엘리샤가 중심 기압 985 최대 풍속 27로
(하경) 제주 남부 250km 부근 해상으로 북상 중인데요
이 정도 속도와 이 정도 크기면 남해안으로 상륙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로 분석은 내가 할 테니까
그쪽은 날씨 종관 흐름이나 맡으세요
아셨죠?
네, 그러죠
(미진) 이시우 특보는 좀 어때요?
(하경) 음, 화상 치료는 끝났는데 눈은 경과를 좀 봐야 한답니다
아, 그래요?
사람이 다쳤는데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시네요?
[긴장되는 음악]
(미진) 지금 그쪽 팀원 다치게 했다고
뭐라고 하는 겁니까?
아니요, 제 말은
최소한의 성의 있는 관심이라도 보여 주셔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미진) 진 과장
기상청 들어와서 내내 본청에서만 일했죠?
네, 그런데요?
(미진) 이게 뭔지 압니까?
백록담 AWS 점검하러 갔다가
미끄러지면서 이렇게 된 겁니다
저기 박 주임은 왼쪽 귀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해요
비바람 치는 날 현장 근무 갔다 간판에 맞아서 그렇게 됐고
여기 정수환 씨는 바람 장 관측하러 갔다
차량 전복 사고까지 당했어요
현장에서 10년 이상 일한 직원치고
이런 상처 하나쯤 없는 사람 없습니다
이시우 특보 다친 건 마음 아프지만
여기선 일상다반사라고요
아시겠습니까, 진 과장?
네
(직원3) 과장님
여기서 과장은 날 부르는 겁니다
- (직원3) 이것 좀… - (미진) 응
(미진) 뭐야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데?
그, 생각보다 많이 다치진 않았답니다
(시우) 그리고 또 제가 워낙에 회복력이 좋아서요
(미진) 눈도 다쳤다면서
그것도 2, 3일 정도 경과 지켜보면 된대요
뭐, 아직까지 별 이상 없습니다
그렇다네요, 진 과장
(미진) 자…
(하경)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차분한 음악]
(향래) 나 힘들어
그냥 깨끗하게 남자답게 이혼해 줘
(향래) 그냥 이혼하고
당신도 나도 홀가분하게
그냥 지금처럼 살자, 어?
[한숨]
[동한이 코를 훌쩍인다]
[메시지 알림음]
[마우스 조작음]
(태경) 이런 캐릭터는 어때요?
[메시지 알림음]
[피식 웃는다]
[밝은 음악]
[키보드 조작음] (석호) 귀여운데요?
[웃음]
[웃음]
[마우스 조작음]
(명주) 태풍 속보 아직이야?
(석호) 예? 아, 예
[숨을 들이켠다]
[마우스 조작음]
예, 태풍 속보 나갑니다
(수진) 네
[마우스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석호) 그럼 이따 퇴근하고 봐요
[석호가 숨을 들이켠다]
[메시지 알림음]
(박 주무관) 수진 씨 잠깐 나 좀 보자
[마우스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수진) 네
저 잠깐 정책실 좀 다녀올게요
(명주) 어
[휴대전화 진동음]
아…
아, 예,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우리 결이가 그랬어요?
아, 예, 예, 가끔 그럴 때가 있기는 한데
아유
예, 예, 예, 아, 진짜요? [긴장되는 음악]
[문이 스르륵 열린다]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
(시우) 이미 퇴원했고요
일하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넌 그렇게 모든 게 다 네 마음대로니?
(시우) 우리
헤어져요
(하경)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해 버리면 끝이야?
그래, 넌 뭐, 네 얘기 한 거겠지
근데 나 아직 대답 안 했어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달려오는 발걸음] [직원3의 거친 숨소리]
(직원3) 진 과장님 좀 들어와 보셔야겠습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하경) 저게 뭡니까?
(미진) 내가 묻고 싶은데요?
뭡니까, 저거?
(시우) 형, 태풍 속보 창의 저거 뭐예요?
(석호) 속보? 속보가 왜?
[석호의 힘주는 숨소리]
(동한) 어어, 어, 이…
상황판에 웬 펭귄이야?
[명주의 놀란 숨소리]
(명주) 신 주임 신 주임이 저거 올린 거야?
(동한) 뭐 해, 이거 내려!
(석호) 예, 예, 예
[숨을 후 내뱉는다] [마우스 조작음]
(미진) 지금 태풍이 코앞까지 치고 올라온 마당에…
대체 담당자 누구입니까?
이런 실수는 말이죠 우리 신입도 안 합니다
(하경) 신 주임이야?
[휴대전화 진동음]
네, 저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동한) 어, 그…
신 주임이 다른 파일을 업로드했나 봐
(명주) 하, 다 내 잘못이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동한) 글쎄
그게 무슨 펭귄인지는 나도 모르지
그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익살스러운 음악] [태경이 흥얼거린다]
엄 선임님까지 진짜 왜 그러세요?
제가 없을 땐 과장 직무 대행이라는 거
잊으셨어요?
(하경) 14호 태풍 진로 한번 맞혔다고
다들 들떠 있나 본데
15호 태풍 코앞이라고요
(동한) 미안하다 내가 할 말이 없네
어어, 아…
(명주) 이해해 주세요, 과장님
지금 엄 선임님 그럴 정신이 아니세요
[동한의 한숨]
실은 사모님한테 이혼당하게 생기셨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네?
(명주) 그러니까요 무슨 정신이시겠어요
제가 신경을 쓰고 있었어야 됐는데
전부 다 제 불찰입니다, 과장님
아니, 왜 그런 얘기를 해 이거 스피커폰이면 어떡해
(석호) 이거, 이거, 이건 이건 제 잘못입니다, 과장님
- 신 주임님? - (석호) 이거, 하…
(석호)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판에 이런 끔찍한 실수를 한 건
이건 제 사전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거, 예, 전부 다 제 책임입니다
- 아… - (석호) 제가 시말서 쓰겠습니다
- (하경) 예? - (석호) 시말서도 부족하면
제가 감봉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명주) 아이, 무슨 소리야 [동한이 말린다]
[동한과 석호가 말한다] 아니요, 과장님, 제 불찰입니다 제가 체크를 했었어야 했는데
(동한) 아니야, 아니야 그만해, 그만해
(동한과 명주) - 이거 내, 내가 잘못한 거고… - 아니에요
(명주) 지금 엄 선임님은 이혼 직전이라고요!
[시끌시끌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하경) 아, 오 주임님 저, 그러면…
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한 사…
한 사람씩이요
[새가 지저귄다]
(동진) 누나! [동진의 거친 숨소리]
(유진) 뛰지 마, 뛰지 마 넘어진다
(동진) 매형 왔어
매형?
(유진) 여기 왜 왔어?
너한테 할 얘기 있다 그랬잖아
(유진 모) 어, 아, 아, 왔구나
- (기준) 아유, 장모님 - (유진 모) 어, 어
(유진 모) 아, 저기, 유진아 이거 갖고 들어가서 먹고 있어
엄마는 저, 저녁 찬거리 좀 사러 나가게
아, 아유, 괜찮습니다
(유진 모) 아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밥 한 끼는 잘 먹어야지
어? 어서 [난감한 숨소리]
[유진의 한숨]
유진아
[한숨]
[유진 모의 한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좀 달래 줘
아유, 원래 저렇게 화를 내는 애는 아닌데, 응?
네
[잔잔한 음악]
[동한이 숨을 들이켠다]
아내가 이혼하재
(하경)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닌 거 같아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별말을 못 했어
(하경) 헤어지잔다고 헤어지게요?
[한숨]
그렇게 해 달래 자기 힘들게 하지 말고
(동한) 아, 평생 나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 매달리면
더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 가지고…
그 생각을 바꿔야죠
생각을 어떻게 바꿔
(하경) 아, 뭐, 설득을 하든 해명을 하든
작전을 짜 봐야죠
작전을?
시나리오 원, 투, 쓰리 몰라요?
(유진)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당연히 너 보러 왔지
(기준) 뭐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이대로 헤어질 수 없잖아
뭘 어떻게 할 건데?
할 게 더 남아 있긴 해?
[잔잔한 음악]
(유진) 오빠
미안하다, 유진아
(기준) 너 마음 아프게 한 거 속상하게 한 거
내가 다 잘못했어
[한숨]
왜 이래, 뭐 하는 거야?
(유진)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오빠랑 같이 서울 올라가자, 유진아
[한숨]
빨리 일어나
올라간다고 하면, 그럼 일어날게
[한숨]
[한숨]
- (유진) 일어나 - (기준) 아아
대답부터 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어나라고, 좀
저, 저, 정말?
그, 정, 정말 같이 올라가는 거다, 그럼?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어나, 빨리, 어?
(유진) 하, 진짜
[웃음]
[한숨]
[차분한 음악]
[한숨]
(석호) 제 실수는 인정하지만 이유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한숨] 죄송합니다
[떨리는 숨소리] 사생활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명주) 남편이 공부에 통 집중을 못 하는 거 같아서요
참 5급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머니도 이제 더는 애들 못 봐 주시겠다 그러시고
(동한) 아내가 이혼하재
우리
헤어져요
저, GDAPS 지금 어떻습니까?
[키보드 조작음]
(직원3) 상층 제트의 영향을 받아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연직 시어 확인 결과 50 이상이에요
(시우) 아, 네
실수한 직원은 찾았습니까?
네, 뭐
기상청 잘 돌아간다
(미진) 본청 상황실에서 의자 깔고 앉아
편안하게 모니터나 들여다보니까
빠져 가지고 말이야
성 과장님은 실수 같은 거 안 해 보셨어요?
(하경) 태풍 센터
모두 다 현장 다니시느라 많이 다치고 힘들고 고생스럽죠
압니다
하지만 저희 본청 상황실도 그래요
[새가 지저귄다] [잔잔한 음악]
[동한의 거친 숨소리]
(하경) 누군가는 이혼당하기 일보 직전이고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휴대전화 진동음]
(명주) 아유, 아유, 잠깐만
예,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일하는 중이라
잠깐만요, 이거 나 좀 보내 줘
- 네 - (명주) 미안해, 미안해
[마우스 조작음] (하경) 누군가는
[명주가 말한다] 온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죽어라 일하면서도
맨날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명주) 예, 죄송합니다
[한숨]
(하경) 누군가는 계절이 가는 걸 모니터로만 들여다보고요
[휴대전화를 탁 놓는다]
[한숨] [종이 넘기는 소리]
[중얼거린다]
(하경) 또 누군가는
연애 한번 못 해 보고 청춘을 다 보내고 있어요
(미진) 뭡니까?
지금 누가 누가 더 힘드나 자랑하는 시간입니까?
아니요
(하경) 태풍 센터든 본청 상황실이든
다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상청 안에서는
그러니까 일의 경중 따지면서
편 가르기 하지 마시라고요 성 과장님
이 주임
(직원3) 예?
예상 시나리오부터 갖고 오세요
(직원3) 아, 예 [바스락거리는 소리]
[한숨]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동한의 긴장한 숨소리]
당신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동한) 어
나한테 시간을 좀 줘라, 향래야
딱 3개월만
우리 3개월 동안만 유예 기간을 가지자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솔직히 이대로는 나도 너무 억울해
(동한) 그러니까 3개월 동안만
가족처럼 살아 보자고
그러고 나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할게, 어?
그때 돼서 이혼하자 그러면
그래, 이혼해 줄게
서울에서 꺼지라 그러면 내가 꺼질게
그런다고 뭐가 바뀔 거 같은데?
아니, 솔직히
그, 사형수한테도 유예 기간이라는 게 있는데
(동한) 나도 그 정도는 좀 좀 지켜봐 줄 수 있지 않냐? 어?
나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 헌신한 거는 인정을 해 줘야지
기상청 근무는 어쩌고 온 거야?
점심시간이라서 잠깐 뛰어왔어
그만 가 봐, 점심시간 넘기겠어
(동한) 아이, 여보, 보미 엄마
가라고, 그만
[무거운 음악]
[도어 록 작동음]
[새가 지저귄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한숨]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동한) 어, 어, 향래야
(향래) 이거 다 뭐야?
(동한) 어?
(동한) 아, 그거…
[헛기침하며] 태풍이 온다 그래 가지고
이번 건 좀 바람이 세다 그래서 붙였는데?
여보세요?
보미 엄마
(향래) 아무래도 3개월은 안 되겠어
(동한) 어 [잔잔한 음악]
그래
두 달 줄게
두 달?
두 달 동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보라고
(향래) 대신 그러고 나서 깨끗이 이혼 도장 찍는 거다?
[울컥하는 숨소리]
그래, 고맙다, 향래야
[한숨 쉬며] 내가 진짜 잘해 볼게, 내가
[통화 종료음]
여보세요?
고맙다! 향래야
[웃음]
[떨리는 숨소리]
(유진 모) 자
[유진 모의 힘주는 숨소리] [이불 터는 소리]
새 이불이라 뽀송뽀송할 거야
(기준) 네, 감사합니다 [유진 모의 웃음]
(유진 모) 씁, 아유, 근데 방이 좀 눅눅하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방을 좀 바싹 말려 둘 걸 그랬나?
(기준) 아, 괜찮습니다, 어머니
아, 저, 지금이라도 잠깐 보일러 좀 돌릴까?
(유진) 됐어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 (유진 부) 어, 그, 그래 - (유진 모) 어, 어, 어, 그래
- 어, 얼른 자, 잘 자라 - (유진 부) 그래,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유진 부모가 호응한다]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러게 근처 모텔로 가서 자라니까
(기준) 아…
아버지가 자고 가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그래
누가 아버지야
새아버지도 아버지야, 유진아
너무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뭘
(기준) 말도 퉁명스럽게 하고
아까 저녁 먹을 때는 눈도 한번 안 마주치던데?
오빠가 뭘 안다고 그래?
(기준) 아이 뭘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자꾸 아버지 눈치 보시게 만드니까
그래서 싫어 내 눈치 자꾸 보는 게
엄마하고 동생한테는 안 그러면서
그거야 유진이 네가 자꾸…
그래, 나도 좋은 분인 거 알아
(유진) 엄마 위해 주고
동생한테 좋은 아버지인 거 나도 아는데
여기에 내 자리는 없다고
엄마 가족이지 내 가족은 아니니까
그래서 나도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건데…
근데?
[한숨]
됐다
(유진) 그만 자자
기껏 결혼까지 해 놓고
혼인 신고 하고 싶지 않다는 건 너잖아
같은 말을 또 반복해야 돼?
내가 뭘 믿고 혼인 신고를 해?
(유진) 오빠는 우리 관계보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하경이 누구를 사귀고 있는지
그 문제가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더 중요한 사람인데
그게 하필…
그게 하필 이시우 그 자식이니까 그러지
[한숨]
그래서?
(유진) 오빤 지금 진심으로 뭐가 제일 걸리는데?
내가 이시우랑 동거한 거?
아니면 이시우가 진하경이랑 사귀고 있는 거?
둘 다
난 둘 다 기분 나쁘고 불쾌해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는 거잖아
결론이 어디 있어, 유진아
이미 너랑 나랑 결혼까지 했는데 그게 우리 결론인데
그러니까 후회되면 말하라고
물러 줄 테니까
[차분한 음악]
[기준의 성난 숨소리]
(기준) 유진이 너 진짜 밉게 말할래?
오빠가 무릎까지 꿇었으면 이제 그만 넘어가야지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미안하지만 난 오빠처럼 못 살아
(유진) 남들 앞에서 다정한 부부인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가식 떨고 연기하면서 나…
나는 그렇게 못 산다고
난 뭐, 좋아서 그러고 살고 싶은 줄 알아?
(기준) 그냥 다들 그런다고 하니까
부부라는 게 다 그런 거라고 하니까!
글쎄, 남들 다 그렇게 살아도 나는 그렇게 못 산다고!
그래서 어쩌자고!
그러니까…
[울먹이며] 그러게 왜 여기까지 와서 힘들게 하냐고!
[문이 탁 열린다] - (유진 모) 어머, 여보, 여보 - (유진 부) 뭐야
(유진 부) 자네 지금 내 딸 울리나? [유진 모가 말린다]
[흥미로운 음악] (기준) 아버님 그, 그, 그게 아니라…
- (기준) 그게 잠깐… - (유진 부) 나와
- (기준) 아버님, 아버님 - (유진 부) 나오라고!
- (유진 모) 어머, 어떡하니 - (유진) 아…
[기준의 아파하는 신음]
[유진 부의 성난 숨소리]
(유진 부) 야, 이 자식아
누가 내 딸 눈에서 눈물 나게 하래!
(기준) 아, 아이, 아버님 그, 그, 그게 아니라요, 그…
(유진 모) 여, 여보 이거 놓고 얘기해, 어? 놓고
(유진 부) 야, 내가 너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에 [유진 모의 한숨]
내가 경고했냐, 안 했냐
내 딸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손에 죽는다고 했어, 안 했어!
아, 하, 하셨습니다
근데 애를 울려?
(유진 부) 너희들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어, 10년이 지났어?
이제 겨우 몇 달 살아 놓고
벌써 우리 애를 울려 이, 이놈의 자식 그냥…
(유진) 아빠! 왜 그래…
(유진 부) 뭐?
- (유진) 아… - '아빠'?
[밝은 음악]
아니…
(유진) 아, 오빠, 왜 그래, 진짜!
(기준) 응?
[유진의 한숨]
(유진) 이건 우리 문제니까 아저씨는 빠지세요
- (유진) 들어가, 오빠 - (기준) 응
(유진) 들어가, 빨리
[유진의 한숨] (유진 모) 어, 어
[유진의 한숨]
들었지, 여보?
분명히 아빠라 그랬지, 그렇지?
[유진 모의 웃음]
(유진 모) 아이고 당신도 얼른 들어가
자기들 문제 자기들이 알아서 해 자, 자, 가세요
(유진 부) 아, 분명히 그랬다니까
(유진 모) 알았다고요 들어가시라고요, 좀
[유진 모의 웃음]
자, 자
[스위치 조작음]
[유진의 한숨] [문이 닫힌다]
(미진)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첫 번째 시나리오는 [긴장되는 음악]
전남 남해안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전국적으로 피해를 주고 포항으로 빠지는 겁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동쪽으로 더 꺾이는 경우입니다
전자의 경우보다 피해는 적겠지만
태풍 반경 안에 들어오는 남부 지방은 타격이 있을 겁니다
(하경) 세 번째 시나리오는요?
(미진)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면서 [마우스 조작음]
제주 남쪽 해상 가장자리를 따라 규슈 쪽으로 전향하는 건데
이럴 경우에는
남해안 일부와 부산에 영향을 조금 주는 정도입니다
(하경) 북태평양 고기압이 조금 더 수축된다면
두 번째 시나리오처럼
더 동쪽으로 전향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네요?
(미진) 현재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으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엄 선임님
(하경) 남쪽으로 진로가 이동되면서
약화될 가능성은요?
(동한) 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북쪽 제트 기류 영향으로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경) 그럼 동쪽으로의 이동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네요?
(미진) 네, 좀 더 정확한 건
지상 자료 들어와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좀 더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요?
(미진) 뭐…
제주 동쪽 지역과 서쪽 해상에 존데를 띄우는 건데
(하경) 그런데요?
(미진) 뭐, 아시다시피 이런 날씨에
바다에 나가 존데를 띄우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하경)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거죠?
(미진) 이렇게 하시죠
동쪽 월정리 지역에만 존데를 띄우는 걸로
뭐, 오차야 좀 나겠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거보다야 낫지 않겠어요?
그럼 해상은 제가 직접 가죠
[긴장되는 음악]
(미진) 진 과장
존데 관측 해 본 적 없죠?
근데 이런 날씨에 배를 타고 거기까지 나가서
존데를 띄우겠다고요?
(봉찬) 아, 진 과장 내 말 잘 들어
어차피 정확한 예보 뭐, 그런 거 없어, 어?
우린 예측만 할 뿐이지
무슨 말인지 알지?
지난 14호 태풍으로 너무 큰 피해를 입었어요
(하경) 연이어 올라오는 엘리샤 때문에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예측이라고 해도
좀 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예측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예보 진짜 틀리면 안 돼요, 국장님
[한숨]
왜 따라와?
배만 타고 나가면 존데 띄울 수 있을 거 같죠?
(시우) 이런 날은 자동 관측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긴장되는 음악] [한숨]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파도가 거세게 친다]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쉭 소리가 난다]
[긴박한 음악]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무전기 조작음] 기상 1호 이어도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무전기 조작음] (미진) 우리는 준비 끝났어요
정확히 21시에 띄웁시다
[무전기 조작음] 그러시죠
[시우의 거친 숨소리]
(시우) 과장님
역시나 바람이 너무 세서 자동 관측은 불가능할 거 같고요
수동으로 띄워야 될 거 같아요
옆에서 시간 좀 재 줄 수 있죠?
응, 알겠어
[파도가 거세게 친다]
(미진) 5
4
(하경) 3!
2!
1!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긴장되는 음악] [시스템 알림음]
[봉찬의 한숨]
[초조한 숨소리]
[시스템 알림음]
[강조되는 효과음]
[시스템 알림음]
[시스템 작동음]
됐다, 데이터 들어오기 시작했어
[시우의 안도하는 숨소리]
[시스템 알림음]
온다
(석호) 이어도 해상 관측 데이터 들어옵니다
(동한) 어, 그래?
[봉찬의 한숨]
[키보드 조작음]
어…
네, 관측값 받아 보셨죠?
어, 지금 데이터 넣고 있고
수치 모델 예측 자료 확인만 하면 돼
(하경) 수치 모델 나오는 대로 저한테 바로 쏴 주세요
(동한) 오케이
[무전기 조작음]
[시스템 작동음]
과장님 예상이 맞았어요
(시우) 이대로면 남해상을 따라 진행하면서
일부 남부 지방에만 피해가 가겠네요
[차분한 음악]
[무전기 조작음] 수치 모델 받아 보셨죠?
네, 방금 봤어요
진로는 남해상으로 발표해야겠네요
아니요
[무전기 조작음]
(미진) 네?
(하경) 결과는 그렇게 나왔지만 예보는 첫 번째 시나리오로 가시죠
[무전기 수신음] (미진) 진심입니까?
[무전기 조작음] (하경) 네
아까 고 국장님께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무전기 조작음] 진 과장
이렇게 되면 우리 전부 문책받는 건 알고 있죠?
[무전기 조작음] 예, 압니다 책임도 제가 질 거고요
[무전기 조작음]
진 과장이 왜 그걸 책임집니까?
태풍이 예상 경로를 벗어나는 건
어디까지나 태풍 센터 과장인 내가 책임질 문제입니다
[무전기 조작음] 안 되겠습니까?
좋아요
첫 번째 시나리오로 갑시다
(미진) 수고했어요, 진하경 과장님
[무전기 조작음] (하경) 수고하셨습니다
[밝은 음악]
(업무과장) 예? 예보를 세게 가자고요?
[한숨 쉬며] 예
진 과장이 첫 번째 시나리오로 가겠답니다
북쪽 제트 기류의 영향이 생각보다 약해지면
동쪽으로 전향되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우리나라 남부 내륙으로 들어올 경우를 대비하자는 겁니다
씁, 아니, 그렇다고 과잉 예보를 내자고?
예보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하경)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배워서요
알겠습니다, 과장님
분부대로 대변인실에 지시하겠습니다
[통화 종료음]
[웃음]
[도어 록 작동음]
(보미) 뉴스, 뉴스… [도어 록 작동음]
[보미의 가쁜 숨소리]
뉴스… [TV 전원음]
(TV 속 앵커2) 속보입니다
북상 중이던 제15호 태풍 엘리샤가
내일 새벽 우리나라 전남 남해안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태풍은 중심 풍속 초속 30m의 강한 태풍으로
기상청에 따르면 15호 태풍 엘리샤는…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보미야
저게 그렇게 궁금해서 뛰어온 거야?
(보미) 어
아빠가 예보한 거잖아
[헛웃음] [잔잔한 음악]
언제부터 그렇게 자기 아빠 일에 관심을 가졌대?
(TV 속 앵커2) 특히 취약 시간대인 밤사이
강풍과 폭우 피해에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기상청은 덧붙였습니다
- (동한) 신 주임 - (석호) 예
(동한) 오 주임한테 통계 자료 갖다주고
나한테 발생 현황 가져와 [석호가 대답한다]
(명주) 수진 씨
이거 태풍 정보 좀 전달해 주고 와요, 생큐
[봉찬의 한숨]
[직원들이 분주하다]
(하경) [한숨 쉬며] 이제 됐다
(시우) 결국엔 첫 번째 시나리오로 가는 거예요?
(하경) 응
[하경이 당황한다]
[잔잔한 음악]
(하경) 이제 내 차례다
나는 너와의 이별에
몇 번째 시나리오를 택해야 할까?
시나리오 1, 매달린다
시나리오 2 이대로 쿨하게 헤어져 준다
시나리오 3
최대한 애매하게 시간을 끈다
(시우)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빗소리가 들려온다]
(태경) 왜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아무래도 [한숨]
난 안 될 것 같아요
뭐가요?
태경 씨랑 만나는 거요
(석호) 제가 원래
한 가지 일 외에는 집중을 잘 못하거든요
(태경) 그런데요?
(석호) 근데
태경 씨랑 만나고 나서부터 자꾸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되고 있어요
근데 그러면 안 되거든요 기상청이라는 데는?
원래는 우선순위가 뭐였는데요?
[한숨 쉬며] 당연히 기상청이죠, 날씨
그럼 지금은 뭔데요?
[부드러운 음악]
나요?
[한숨]
(석호) 원래
제가 이런 캐릭터가 진짜 아니거든요, 예?
그러니까
전 그동안 언제나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지켜 왔고
한 번도 그 규칙을 어긴 적이 없었어요, 왜냐?
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니까
근데…
근데요?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요
[석호의 한숨]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진짜 큰 실수라도 하면은
국민의 공익에 심각한 피해가 갈 거고
또 그렇게 되면 난 또 자괴감에 빠질 거고
(석호)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상실감에 빠질 거고
그렇게 되면 난 또…
(태경) 신석호 씨!
[한숨 쉬며] 예?
(태경) 어휴
[태경의 떨리는 숨소리]
나도 좋아해요
[웃음]
정말요?
[웃음]
저녁 안 먹었죠?
(태경) 어, 우리 녹두전에 막걸리 한잔해요
[웃으며] 나가요
[벅찬 숨소리]
같이 가요, 태경 씨
(석호) 태경 씨
[비가 쏴 내린다]
(명주 남편) 나이스!
아, 문제도 이렇게 딱딱 잘 맞으면 좋겠다
(남자1) 그러니까요, 형님 오늘 딱딱 아주 잘 맞네요 [남자들의 탄성]
[남자들의 웃음]
[사람들의 탄성] [명주 남편의 웃음]
[힘주는 탄성] 나이스!
[탄식]
[남자들의 탄식] - 나 한 번만 더 하자 - (남자1) 아이, 그래요
(남자2와 남자3) - 나 동전 있어, 동전 있어 - 야, 오늘 좋아, 컨디션 좋아
[왁자지껄하다]
당신 여기서 뭐 하니?
당신은 여기 어쩐 일이야?
(명주 아들) 것봐, 아빠 맞잖아
내가 아빠 여기 오는 거 봤었다니까?
어제랑 그저께도 왔었다니까?
그렇지, 아빠? 내가 맞힌 거 맞지?
[명주 아들의 웃음]
[잔잔한 음악]
[탁 내려놓는 소리]
[명주의 떨리는 숨소리]
당신한텐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어
시나리오?
(명주) 하나
회사로 복귀한다
여보
둘
나랑 이혼한다
여보
(명주) 셋
죽어라 공부한다
[명주의 한숨]
나는 뭐, 힘이 남아돌아 당신 뒷바라지한다고 한 줄 알아?
그래도 그 나이에 당신이 꿈이라는 걸 꾸니까
더 늦기 전에 도전 한번 해 보라고
미련 같은 거 남기지 말라고
나도 정말 지치고 힘들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서 당신 공부해 보라고 한 거야
근데 뭐?
공부 스트레스…
[명주의 떨리는 숨소리]
당신 나한테 그런 변명 둘러대는 거
미안하지도 않니?
애들한텐 안 미안해?
어머니는 또 무슨 죄인데?
그 연세에 저 망아지 같은 놈들 둘씩이나 매일…
[명주의 떨리는 숨소리]
명주야, 미안하다, 내가…
진짜 잘못했어
[떨리는 숨소리]
[훌쩍인다]
선택해
(명주) 시나리오 1이야 2야, 3이야?
[떨리는 숨소리]
[새가 지저귄다]
얼탱이가 없구먼, 뭐야, 저게
(TV 속 앵커3) 오늘 새벽
우리나라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했던
제15호 태풍 엘리샤가…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향래) 보미야
너 밤새 그러고 있었어?
(보미) 아, 몰라, 빡쳐
왜, 뭐가?
(보미) 일기 예보
(TV 속 앵커3) 오전 11시쯤 온대 저기압으로 약화된 뒤
점차 소멸할 예정입니다
이는 내륙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당초 예상과 달리…
[뉴스가 계속된다] 난 또 뭐라고…
(보미) 왜 틀렸지?
14호는 그렇게 정확히 맞혀 놓고
예보만 맞으면 뭘 해
(향래) 틀리더라도 피해 없이 지나간 게 다행인 거지
[잔잔한 음악]
왜?
(보미) 닭살
(향래) 응?
(보미) 뭐야, 엄마?
난 엄마랑 아빠가 롱디한 시간이 길어서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근데?
지금 꼭 기상청 사람처럼 말하잖아
[헛웃음]
(향래) 신소리 그만하고 학교 갈 준비나 하셔
엄마 금방 아침 준비할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동한의 힘주는 숨소리]
(동한) 여보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보미야
아빠 이거 해장국 사 왔어
(보미) 해장국?
(동한) 왜?
너 어렸을 때 이거 엄청 좋아했었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그러니까, 그 집이 아직까지도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
(동한) 장사가 잘돼
아침 안 먹었지? 어?
오늘 당신 아침 하지 마 이거 먹자, 일로 와
[부스럭거리는 소리]
내가 특별히
선지를 많이 달라 그랬거든?
선지 좋잖아
아, 냄새 좋은데?
(동한) 그렇지?
그릇 같은 게 좀…
- (보미) 여기 있어 - (동한) 어, 어
(동한) 수, 숟가락도 그러면…
아, 이게 좀…
좁나?
어, 뭐, 거기 둬도 되고
숟, 숟가락만 있으면 돼
[발소리가 들린다]
[흥미로운 음악]
이것들 봐라?
[시우가 숨을 하 내뱉는다]
(시우) 이거 입어요
눈은 괜찮아?
(시우) 괜찮은 거 같은데요?
그렇다고 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는데
(시우) 말했잖아요
존데 띄우는 데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나도
과장님이랑 생각이 같았거든요
태풍 엘리샤가
우리나라 동쪽 외곽으로 빠질 거란 거요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나온 거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랑 괜찮겠어?
(하경) 우리 관계가 끝나더라도 같이 일할 수 있겠냐고
(시우) 과장님은 괜찮겠어요?
[감성적인 음악]
(하경)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그래, 헤어지자
우리 헤어지자, 이시우
그래요
(하경) 태풍이 발생하는 원인은
지구가 자전을 반복하면서 생긴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는 내륙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당초 예상과 달리
(TV 속 앵커4) 큰 피해 없이 지나간 것인데요
이 때문에 기상청 예보에 대한 신뢰를…
예, 죄송합니다, 예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봉찬) 아, 예, 예, 예 확인했습니다, 예
[마우스 조작음]
아…
네
예
예, 그럼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예
[한숨]
[한숨]
(하경) 지금 이 태풍이 당장은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르나
길게 보면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 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시우) 그럼 청에서 봐요
네 짐은 어떻게 할까?
(시우) 아…
다음 비번 때 가져갈게요
그래, 그럼
예
[기준의 한숨]
아, 왜 그러고 서 있어? 남의 집이야?
[한숨]
(기준) 배고파
[유진 모의 힘주는 신음]
[달그락거리는 소리]
[잔잔한 음악]
[풀벌레 울음]
(직원4) 맛있게 드세요
(시우) 아, 맛있게 드세요
(동한) 시우야
(시우) 어, 예
[시우가 살짝 웃는다]
아이, 너 진하경 과장이랑 사귄다며!
[흥미진진한 음악]
(시우) 예?
(동한) 아,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냐?
우리 합숙할 때 나 중간에 껴 가지고
둘이 얼마나 불편했겠어
언제부터인데? 합숙할 때부터야?
지금 그 얘기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동한) 누구랄 것도 없던데?
나만 빼고 우리 팀들 전부 다 알고 있던데?
전부 다요?
전부 다
(동한) 야, 그나저나 너 간 크다
딴 사람도 아니고 진 과장을
[웃으며] 그것도 사내 연애를 이렇게 하고 말이야, 이거, 어?
(직원5) 진하경 과장이랑 사귄다고?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동한) 근데 듣고 보니까
(직원6) 언제부터 사귄 거래?
(동한) 난 진짜 너무 좋더라 [말소리가 아득해진다]
되게 둘이 잘 어울려
난 진짜 축하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해
내가 너무 눈치가 없어서 [동한의 웃음]
(직원7) 저 친구랑 진 과장이랑 사귄다고? [시우의 탄식]
(직원8) 과장 취임하더니 능력 좋네
(직원9) 진 과장은 좋겠다
(직원10) 부럽다, 아
(동한) 축하해!
[물소리]
[문소리]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다급한 숨소리]
(시우) 과장님, 과장님! [스위치 조작음]
[물소리가 멈춘다]
(하경) 짐 찾으러 왔어? 내가 가져다준다니까, 기다려
(시우) 일이 좀 생겼어요
(하경) 무슨 일?
아, 사람들이 알아 버렸어요
뭐, 뭘 알아?
우리 사내 연애 한 거요
어?
아, 과장님이랑 나 사귄 거요
우리 팀 사람들이 전부 다 알아 버렸다고요
뭐?
[익살스러운 음악] (하경) 아, 깜짝이야
(수자)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너희들 둘이 사내 연애를 했다 이거지?
엄마, 그게…
어째 분위기가 요상스럽다 했다
오해야, 그러니까…
(수자) 오해는 무슨
내가 너희들 요렇게 발뺌할 줄 알고
증거까지 딱 잡아 놨어, 이것들아
[댕 울리는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이래도 아니냐? 이래도 아니야?
(시우) 소문이 생각보다 진지한 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
(하경) 무시해 그냥 귀 닫고 입 닫고 무시하라고
(기준) 아, 유진아 너 좋아하는 만둣국 끓였는데?
- (기자) 어디 아파? - (유진) 그냥 배가 좀…
(유진) 한참 오빠인 줄 알았는데
한참 애더라고
많이 좋아하는구나
(시우) 헤어졌어, 우리
연애가 한쪽만 좋다고 되는 거냐?
(태경) 어? 어!
(태경) 어디 갈까요? [석호의 웃음]
(하경)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실은 저랑 이시우 특보 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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