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2
(시우) 관계는 변한다
[카메라 셔터 효과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숨]
그리고
사이사이 쌓여지는 감정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새가 지저귄다]
[카메라 셔터음]
- (시우) 음, 이거 걸고 찍을까요? - (하경) 어
- (시우) 이렇게? - (하경) 걸려, 걸려, 걸려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기내 방송 알림음]
(방송 속 승무원)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제주 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좌석 벨트를 매 주시고 창문 덮개는 열어 두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성적인 음악] (시우) 두려운 것은…
나도 잘해 보고 싶어
나도 잘해 보고 싶다고, 너랑
(하경) 근데
난 딱 거기까지야
난 딱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안정적인 게 좋아
그 적당히를 넘어서면
내가 막 불안해져
내가 아니고
막 다른 사람이 되는 거 같다고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요
(하경) 그러니까 네가 결정해
제주도 가서 네가 결정하라고
이런 나랑 적당히라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생각해 보고 네가 결정해
(시우) 그런 작은 오해와 엇갈림이
보이지 않게 우리 관계에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우릴 어긋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우) 내가 바랐던 건 그저 이런 거
이렇게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어쩌다 우린
이렇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지점에
서로
서 있게 된 걸까?
[천둥 효과음]
[하경이 훌쩍인다]
(하경) 고마워 [하경의 헛기침]
[하경이 코를 푼다]
그 정도였냐, 이시우한테?
나도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뭐가 뭘 어떻게 잘못됐는지
[기준의 한숨]
[수진의 거친 숨소리]
(수진) 과장님
전화도 안 받으시고 계속 찾으러 다녔어요
[긴장되는 음악]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상황실 완전 난리 났어요 빨리 가 보셔야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책임자랑 얘기하겠다니까!
(명한) 아, 책임자 나오라고 책임자, 씨!
- (명한) 핸드폰 찍지 마, 씨! - (동한) 아, 예, 알겠으니까
(동한) 일단 진정 좀 하시고 나가서 말씀 나누자고요
진정? 당신 같으면 진정이 되겠어?
(명한) 생때같은 내 아들이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데!
어디서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르겠고!
남은 애간장이 타 죽겠구먼
뭐? 진정?
이런, 씨 그게 말이야, 방귀야, 이게, 씨
내가 진정을 어떻게 해, 씨!
(석호)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진짜!
뭐야, 당신이 책임자야? 어?
(명한) 빠져, 빠져!
(하경) 무슨 일입니까!
(명한) 어, 언니구먼
총괄 2팀 진하경 과장입니다
이시우 특보 직속상관이고요
(명한) 어, 그래요, 과장 언니
과장 언니도 들었지? 우리 시우 다쳤단 얘기
네
(명한) 그, 제주 태풍 머시기인가에서
다쳤단 전화를 받고
[거친 숨소리]
내가 이, 막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눈앞이 캄캄해져 가지고 내가 막, 씨!
일단 자리를 옮기셔서 얘기하시죠
상황실은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라서요
뭐라고?
(동한) 자, 일단 모시고 나가세요 들어와요, 빨리
(명한) 아이씨, 오지 마, 오지 마
오기만 해, 이씨 오기만 해, 이씨!
[탁] [직원들이 놀란다]
오지 마, 오지 마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오지 마, 나 건들지 마
건드리기만 해, 씨!
나 폭행죄로 고소한다, 나
(기준) 잠시만요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가 됩니다
어이구, 아, 그래서 뭐, 고소라도 하시게?
(기준) 기상청 상황실은요
그만큼 엄중한 곳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오셔서 행패 부리면
안 되는 곳이라고요, 아시겠어요?
- (명한) 야! - (기준) 예, 말씀하세요
내 아들도 엄중해!
(명한) 나한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야!
그것도 2대 독자!
이런, 씨
어, 과장 언니는 잘 알겠네
우리 시우랑 사적으로 막역한 사이잖아
안 그래?
[무거운 음악]
(명한) 아, 왜, 우리 저, 시우랑 그, 뭐냐, 저…
모텔도 같이 다니고 하는 사이인 거 내가 다 아는데?
아, 회사에선 아직 비밀이시구나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내가 저, 큰 소리로 안 할게
[당황한 숨소리]
저, 아무튼 우리 시우랑 과장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맞죠?
어제도 모텔에 같이 왔었더구먼요
둘이 그런 사이 아니신가?
[기준의 한숨]
(기준) 그만 나가시죠
왜 대답이 없으셔?
(기준) 나가서 저랑 말씀 나누시자고요, 예?
그래, 그럼
(명한) 나가서 얘기하지, 뭐
내가 정리할 테니까 나오지 말아요, 진 과장은
[차분한 음악]
[하경의 한숨]
[하경의 떨리는 숨소리]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 엄 선임님 - (동한) 응
[긴장되는 음악]
(동한) 와 저게 또 언제 또 저렇게…
[전화벨이 울린다]
어, 나요, 본청의 엄
우리 지금 확인했어
맞지? 저거
어, 맞아
14호 리키 뒤에 따라오던 15호 태풍 엘리샤
(미진) 오늘 11시경 오키나와 부근 서쪽 300km 해상에서
중심 기압 990, 최대 풍속 초속 20
강풍 반경 150으로 동북쪽으로 진행 중이었는데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명한의 한숨]
[명한의 한숨]
담배 있어요?
실내에선 금연입니다
아, 그럼 뭐, 커피라도 좀 주시든가
[명한의 한숨]
(명한) 아이씨 다 끊어져 가지고, 씨
또 돈 달라고 하네, 이거, 아이씨
에이씨
쯧
[탁 던지는 소리] [명한의 한숨]
[긴장되는 음악]
[직원들이 분주하다]
(미진) 22시에는
오키나와 부근 서쪽 120km 해상에서
중심 기압 980, 최대 풍속 초속 28
강풍 반경 200으로 제주도 남쪽 해상으로 진격 중이야
[한숨]
(동한) 어, 보미야
아빠, 밤새 여기 있었어?
어, 좀 어때? 괜찮아?
괜찮지, 뭐, 다 가라앉았어
(향래) 택시 기다린다, 빨리 가자
(동한) 아니, 왜 택시를 불렀어? 내 차 타고 가면 되지
가자, 보미야
[쓸쓸한 음악]
[문이 스르륵 닫힌다]
[한숨]
(보미) 아빠 밤새 기다린 것 같던데?
이렇게 우리끼리만 가는 거 좀 그렇지 않아?
언제부터?
언제부터 자기가 그렇게 우리를 기다렸는데?
난 십몇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그거 하룻밤이 뭐?
(향래) 가는 동안 눈 좀 붙여
[향래의 한숨]
[떨리는 한숨]
찬아, 결아! 아침 먹자
[발랄한 음악] (명주) 여보, 식사해
- (명주 아들1) 내 거야! - (명주) 빨리 먹어, 어머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명주) 아유, 세상에, 야!
야, 일로 와, 아유 안 돼, 지금 안 돼, 지금 안 돼
이리 와, 둘 다, 이리 와, 아휴
자, 일단 밥 먹고 그래, 가방 챙겼어?
- (명주 아들1) 아니 - (명주) 어, 지금 챙겨, 가방
(명주) 일어나, 내려놓고, 내려놔 옷 입자, 옷 입자, 일어나, 일어나
[명주의 한숨]
(명주 아들1) 아, 준비장
아!
(명주) 준비장? 준비장 안 챙겼어?
- (명주 아들1) 어! - (명주) 어디 놔뒀어?
(명주) 이거 먹고
(명주 아들1) 아, 아아! [명주 아들2가 기침한다]
(명주) 하, 물 갖다줄게
준비장 챙겨! 책가방
(명주 아들1) 응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여보, 식사 안 해?
(명주) 여보
[명주 남편의 잠에 취한 소리]
유세다, 유세야
5급 공무원 두 번 준비했다간 아주…
[발랄한 음악] [한숨 쉬며] 아니다, 말자
결아, 찬아!
안녕하십니까 본청에서 온 이시우 특보입니다
(미진) 지금은 어때?
5km 상공에서 기압골이 지나가면서 태풍 끌어 올리면
(직원1) 태풍 속도 시속 20에서 25로
빨라질 예정입니다
(시우) 음…
이대로라면 늦어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시우) 아, 예, 저는 본청에서 온 이시우 특보입니다
계속해 봐요
(시우) 네?
아, 그, 제가 봤을 때는 [밝은 음악]
일본 쪽에 자리 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빠지는 속도가 너무 늦어서요
이대로라면 시속 10에서 15 정도로 늦어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직원1) 저기요
이런 경우는 태풍 진로에 영향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시우) 2002년도랑 2014년도에 발생한 태풍 가운데
일본의 북태평양 고기압 발달의 영향으로
속도가 느려진 사례가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2014년도는 돌핀이었고 2002년도가…
(시우) 하이선이었죠
둘 다 변이 지역에서 온대 저기압으로 변해
비만 많이 뿌려 대고 지나갔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시우) [웃으며] 아, 예
저는 본청에서 온 이시우 특보입니다
난 여기 과장 성미진이에요
(시우) 아,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일주일이나 빨리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미진) 해마다 기후가 예측 범위를 상상도 못 하게 확확 바뀌는데
뭐라도 대처하려면 일주일 미리 와 갖고는 부족하지
뭐부터 할까요?
5분 후 회의부터 시작해 봅시다
(시우) 네, 알겠습니다
(직원2) 안녕하세요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수진) 어? 이시우 특보 아니에요?
(시우) 좋은 아침입니다
(동한) 아이, 좋은 아침은 무슨 좋은 아침이야
태풍이 오고 있는데
(시우) 아이 그러니까 좋은 아침이죠
지금 이 타이밍에
제가 제주도 태풍 센터에 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세요?
(동한) 아이고 아주 현장 보내 놨더니
생기가 도는구먼, 아주
[동한의 웃음] [문이 스르륵 열린다]
(봉찬) 자, 태풍 옵니다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어
(미진) 국장님
간만에 일 좀 하는 사람 보내셨데요?
(봉찬) 그래?
내가 보낸 거 아니야 여기 진 과장이 보냈어
(미진) 진하경 과장?
야, 오늘 해 서쪽에서 떴어요?
[직원들의 웃음]
(하경) 회의 시작하시죠
위성 센터 준비되셨습니까?
(직원3) 지금 오키나와 먼 해상에서
두 개의 태풍이 발달 중인데요
그중 하나가 현재 중심 기압 985
중심 최대 풍속 초속 25의 강도로 발달한 상태며 [잔잔한 음악]
3시간 전에 비해서 시간당…
(하경) 네가 좋아
네가 너무 좋은데
그래서 너무 힘들어
뭐가 제일 힘든데?
넌 나랑 너무 달라
(하경) 그게 너무 좋은데
그래서 너무 힘들어
지금 이 속도라면
내일 오후엔 영향권에 접어든단 얘기네요?
(동한) 네 이동 속도는 빨라졌는데
현재 우리나라 남서쪽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26에서 27도
그리고 해양 열량 10 이하 [긴장되는 음악]
그리고 연직 시어 10 이하라서
태풍이 계속 발달할 만한 환경 조건이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태풍 센터
(하경) 태풍이 지금 에너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오전이라 해양 열량 상승 가능성
충분하다고 봅니다
(미진) 더욱이 올해 해수면 온도가 작년 대비 3℃가량 높아서
이대로라면 우리 영해에 진입했을 때
계속해서 에너지를 공급받을 가능성 큽니다
그럼 우리 내륙으로 상륙했을 때 그 위력은요?
상륙 시점은
C.i 2.5에서 3.0 사이쯤 되겠네요
그래도 현재로선 목포로 상륙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할 거 같은데요
(미진) 네, 맞아요
태풍이 목포로 들어올 경우 중심 기압 970에
중심 최대 풍속 초속 30m 이상이라고 치면
2018년도에 발생한 태풍 프라피룬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한숨]
[동한의 한숨]
[헛기침]
[한숨]
[봉찬의 한숨]
제14호 태풍 리키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습니다
(TV 속 캐스터) 태풍의 눈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중심 부근에서는
시속 100km 이상의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입니다
[긴장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태풍이 예보되면 수시로 태풍의 진로 및…
- 엄마 - (향래) 응?
시속 100km면 어느 정도인 줄 알아?
[안전 수칙 방송이 흘러나온다]
(향래) 글쎄?
서울에서 전주까지가 200km 정도니까
시속 100km면 거의 2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야
(보미) 어마어마하지? 그렇지?
그런 걸 다 계산할 줄 알아?
기상청에 체험 학습 갔을 때 배웠어
(TV 속 캐스터) 농촌에서는 논둑이나 물꼬 점검을…
(보미) 아빠 일하는 거 막상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좀 멋지긴 하더라
[방송이 계속된다]
햄은 왜 먹었어? 먹으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잠깐 깜빡했어
깜빡할 게 따로 있지
(향래) 초등학교 때 김밥 먹다 거기 들어간 햄 때문에
응급실까지 실려 간 거 벌써 잊었어?
(보미) [한숨 쉬며] 출출하다
뭐 먹을 거 없어?
이제 아빠 그만 찾아가
(향래) 안 그래도 방재 기간이라 정신없을 텐데
[무거운 음악]
약 먹을 시간 다 됐다
거기 약 놔둔 거 보이지?
(보미) 엄마
(향래) 응?
엄마 이혼해?
[놀란 숨소리]
얼른 약부터 먹어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동한의 한숨]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따님은 좀 어때요?
[커피 머신 조작음] (동한) 어, 새벽에 퇴원했어
[커피 머신 작동음]
다행이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동한) 고생을 아기 엄마가 많이 했지
[숨을 들이켠다]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살았는지를 모르겠다
참 열심히 뼈 빠지게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씁, 돌아보니까
내가 참 형편없는 아빠였더라고
애한테 알레르기 있는 것도 모르고 소시지를 그냥…
어휴, 하나뿐인 우리 딸만 잡을 뻔했지, 뭐
(하경)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아빠가 있잖아요
물론 자상하게 잘해 주는 아빠도 좋지만
자기 인생을 잘 사는 아빠도 좋은 아빠라고 생각해요
[잔잔한 음악]
위로해 주는 거야?
위로가 됐어요?
(동한) 어
[동한과 하경의 웃음]
걱정하지 마
아유, 태풍이 두 놈이나 온다는데
아주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그러게요, 그중의 한 놈은 프라피룬보다 강하다는데
아니, 그나저나
우리 진 과장이 아주 선견지명이 있어
(동한) 이시우 특보를 내려보내고 말이야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까…
(기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대답한다]
(김 주무관) 잘 부탁드립니다
[기준의 한숨]
[김 주무관의 한숨]
프라피룬 때는 사상자가 얼마나 됐죠?
사망자, 실종자만 38명이고 부상자는 366명
와, 그럼 뭐, 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했겠네요?
수도권만 700억이다
그보다 인명 피해가 문제지
아, 근데 그, 채 기자님은 무슨 일 있으십니까?
요즘 잘 안 보이시던데?
아, 그, 좀 쉬고 싶다 그래 가지고 그러라 그랬어, 어
(김 주무관) 씁, 혹시…
혹시 뭐?
2세 준비하시는 겁니까?
하, 야, 김 주무관아
예?
너 언론사에 수시 브리핑 시간 공지해야 되지 않니?
(김 주무관) 아, 맞다 하, 아, 내 정신 좀 봐
[문이 탁 닫힌다]
[한숨]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잔잔한 음악]
[새가 지저귄다]
[웃으며] 동진아
(동진) 누나!
(유진) 아이고, 어이구
잘 지냈어, 우리 꼬맹이?
(동진) 왜 이제 왔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유진) 그랬어?
아이고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응? [동진이 살짝 웃는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유진 모) 어, 왔어?
(유진) 어
아저씨는?
(유진 모) 아, 태풍 온다 그래서 배 옮기러 갔어
- (유진 모) 들어가자 - (유진) 응
- (유진) 가자 - (동진) 응
(직원4) AWS들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체크해 주시고
(직원1) 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게요?
저도 당분간 있어야 될 텐데
위치 정도는 알아 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이야, 열심히 하시네, 응? 늦지 않게 마쳐 주세요
- 아, 네 - (직원1) 자, 가시죠
[긴장되는 음악]
(하경) 왜 저런 거예요? 속도가 너무 느려졌는데
(동한) 분석 중이라는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안 나오고 있나 봐
(1팀 총괄과장) 1시간째 제주 남서쪽 해상에서
머물러만 있어
[문이 스르륵 열린다]
(봉찬) 아, 또 뭐야? 어?
(1팀 총괄과장) 태풍이 진로를 멈춘 채
제주 해상에 머물러 있는데
자세한 원인은 파악 중에 있습니다
(봉찬) 아이고, 참 [마우스 조작음]
(미진) 19시 현재 태풍 리키
동쪽으로 갑작스러운 경로 변화와 함께
제주 남서쪽 해상에 머물러 있는 중입니다
태풍의 상하층 구조가 분리되면서 진로에 지장을 줄 가능성은요?
불가능한 건 아닌데
현재 위성 사진만으론 파악하기 어렵죠
[봉찬의 한숨]
(하경) 현재 제주 지역의 단열선도를 보고 싶은데
특별 관측 가능할까요?
그러려면
성산에서 존데 관측을 해야 하는 건데…
근처에 우리 쪽 관측 차량 나가 있습니다
아, 마침
성산 근처에 우리 쪽 관측 차량이 나가 있다네요
국장님, 어떻게, 존데 띄울까요?
어떻게, 존데 띄워서 단열선도만 보면 알 수 있어?
네, 상하층이랑 5km 상공의 바람 확인이 꼭 필요해요
[봉찬의 한숨]
[쉭쉭 바람 나오는 소리]
[시우가 입바람을 후 분다]
(시우) 저, 주임님
그, 제주도는 AWS가 전부 몇 대나 있을까요?
(직원1) 총 25대입니다
아
오늘 다 둘러보나요?
에이, 제주도가 얼마나 큰데 그걸 다 봅니까?
(직원1) 오늘은 급한 대로
제주 동쪽 지역 여덟 곳만 체크할 겁니다
아, 네
[말소리가 들린다]
[유진 가족이 화기애애하다]
(유진) 어? 시우 오빠
(시우) 어 네가 여기 어쩐 일이야?
(유진) 아, 나 엄마 집에 잠깐 내려왔지
(시우) 아…
(유진) 여, 여기 우리 엄마랑 동생…
(시우) 아, 안녕하세요, 안녕
(유진) 오빠 여기 어쩐 일이야?
나 태풍 센터에 파견
(동진) 어? 형 기상청에서 일해요?
(시우) 응, 기상청에서 일해
(동진) 우리 누나 남자 친구예요?
어?
(유진 모) 아유 무슨 소리야, 누나 결혼했는데
[웃으며] 매형 얼굴 봤잖아
(동진) 아, 맞다, 참
(직원1) 이 특보 지금 과장님 연락인데
바로 성산에 가서 존데 관측을 좀 하라는데요?
아, 예, 지금이요?
예, 아무래도 이 태풍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은 거 같아요
(동진) 나도, 나도 갈래요! [유진 모의 놀란 숨소리]
[발랄한 음악] (유진 모) [웃으며] 어머, 동진아
(동진) 아, 아…
아, 나도 가고 싶어!
누나, 나도 가면 안 돼?
에이, 그건 안 돼 형님들 일하시는데
(동진) 나도 가고 싶어, 어? 제발
나도 갈래
(시우) 아, 저, 혹시 멀리서 구경만 하는 거면
같이 가도 될까요?
[살짝 웃는다]
안 될까요?
[통화 연결음]
(수자) 어쩐 일이냐?
응, 태풍 온다는 얘기 들었죠?
일찍도 전화한다
아침부터 뉴스에서는
태풍 대비하라고 방송을 하고 또 하고 그러더구먼
알겠어, 그럼 끊어요
(수자) 야, 야 너는 네 할 말만 하면 다냐?
왜, 뭐, 하, 하실 말씀 있어요?
아휴
그 총각 말이다
신 주임 얘기라면 끊습니다
아니, 아니, 그 총각 말고
그, 왜, 지금 너희 집에서 같이 합숙하고 있다는
그냥 해사시한 그이
이름이 이시우인가…
이시우가 왜?
내 얘기 안 하던?
이시우가 엄마 얘길 왜 해요?
뭐, 또 무슨 일 있었어?
나랑 같이 저녁 먹었다, 왜
엄마가 이시우랑 저녁을 왜? 언제?
아니, 왜?
둘이 저녁 먹을 일이 뭐가 있다고?
아니, 그럼 어떡하냐 네가 내 전화는 안 받고
나는 위층 총각이 궁금해 죽겠고
엄마 설마 이시우 앞에서 나랑 신 주임 얘기 한 거 아니지?
그러게, 그러게 어미가 전화를 하면
재깍재깍 받았어야지, 응?
아, 네가 대꾸가 없으니 어째, 그럼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 안 될 건 또 뭐 있어?
네 부하 직원한테 과장 어미가 저녁 좀 사 줬기로서니
그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될 일이냐?
[한숨]
요즘 그런 세상 아니라고, 엄마
(하경) 요즘 그렇게 함부로 부하 직원 사적으로 불러서
신상 털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엄마 얼굴 안 봐
어이구, 뭘 또 이렇게 오버야?
얘
혹시
너도 눈치챘니?
뭘?
그, 그, 그 총각이 너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
[흥미로운 음악]
요게, 요게 가만히 보니까
응? 남몰래 너를 그, 뭐냐, 그…
어, 그래, 흠모
(수자) 그, 너를 흠모하고 있는 눈치더라니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종료음] 여보세요?
여보, 여…
얘, 하경아, 끊었…
하, 못 산다, 진짜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뭐야, 이것들?
설마 쌍방이야?
에이, 아니지
태경이라면 몰라도 하경이는 아니지
모로 가도 안전빵이 최우선인 놈인데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퇴근?
(기준) 응
넌 야근?
(하경) 응, 밥 먹으러
(기준) 응
같이 먹을래?
[긴장되는 음악]
(직원1) 아, 바람이 많이 부네요
아, 그러게요
[한숨]
[달그락거리는 소리] (시우) 아
[유진 모의 한숨]
(유진 모) 그러지 말고 네가 먼저 전화해
뭘 전화해?
(유진 모) 너 한 서방 전화 기다리는 거잖아
엄마가 어떻게 알아?
(유진 모) 보면 모르냐? 딱 보면 알지
부부 싸움 그거 그거 오래 묵히는 거 아니야
웬만하면 전화로라도 오늘 화해하고
내일 일찍 올라가
엄마, 나 오늘 왔거든?
(유진 모) 아, 추석 때 한 서방이랑 같이 내려오면 되지
(유진) [한숨 쉬며] 왜?
나도 엄마처럼 첫 번째 결혼 실패할까 봐 겁나?
[차분한 음악]
(유진 모) 응
겁나
내가 너무 철없을 때 했던 결혼이었고
그래서 더 어긋나 버린 것도 많았었고
됐어요, 그만해, 그 얘기
한 서방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볼 때 그래
(유진 모) 무슨 일인지 잘 모르지만
그냥 네가 져 줘, 응?
그냥 네가 맞춰 줘
[한숨]
내가 알아서 한다고
(유진) 그만해
[한숨]
한 잔만 할래?
나 다시 상황실 들어가 봐야 돼
태풍 두 개가 올라오고 있어서
[한숨]
내가 그렇게 답답한 놈이냐, 하경아?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막 짜치고 그래?
[수저를 탁 놓으며] 야, 내가 그렇게 나빴냐?
(하경) 내가 그렇게 예민하고 까칠하고
정나미 떨어지게 행동하고 그래?
아니, 뭐 어느 부분 그렇기는 했는데
(기준) 아, 근데 전반적으로 놓고 보면
솔직히 너 꽤 괜찮은 사람이지
[잔잔한 음악] 능력 있고 책임감 있고 자기 조절 잘하고
그리고 뭐 일에 관련된 것만 아니면
나름 나에 대한 배려심도 있고
그냥 나랑은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뿐인 거고
너도 그래
(하경) 성실하고 자기 일 최선 다하고
매사 깔끔하고 정확하고
뭐, 일정 부분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어
나랑 좀 안 맞았을 뿐이지
(기준) 몰랐네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솔직히 난 네가
매사에 날 무시한다고만 생각했었거든
'아유, 저 바보 같은 새끼 저것도 제대로 하나 못 해?'
막 그러면서
좀 더 잘하길 바랐던 거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었어
이런 얘기를 왜 우린 진작 안 했을까?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난 몰랐고
(기준) 그래서 오해했고
그게 쌓였고
그러게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은데 말이야
(하경)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은데
우리는 왜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알아주기만 바라고 있었을까?
[쉭쉭 소리가 난다] [빗소리]
(직원1) 어? 비 오네?
이 특보, 잠깐만요
예
[쉭쉭 소리가 난다]
[잔잔한 음악]
[빗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기준) 어디야?
어디인지만 얘기해 주면 안 되겠니?
[유진 모의 한숨]
[쉭 소리가 난다]
[긴장되는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폭발음]
(유진) 시우 오빠!
오빠! [유진의 놀란 숨소리]
오빠, 괜찮아?
(직원1) 이 특보!
일어나 봐, 이 특보!
(유진) 어떡해, 괜찮아? [시우의 힘겨운 숨소리]
(직원1) 정신 차려, 이 특보!
(명주) 얼마나 다쳤는지…
제주 병원 다시 연결해 줄래요?
네?
(하경) 이시우 특보 상태 좀 확인하게요, 연결해 줘요
(수진) 아, 네
[전화기 조작음]
(봉찬) 네, 아무튼 저희가 최종적으로 받은 보고에 의하면요
아, 다행히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요?
예?
(명한) 그러니까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니까 보상은 못 하시겠다
뭐, 그거요?
(봉찬) [웃으며] 아니요
뭐, 당연히 저희 직원이 다쳤으면 보상해 드려야죠, 근데
우리 이시우 특보 상태가 어떤지
아버님이 궁금해하실까 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들이 진짜, 씨
[긴장되는 음악] (명한) 이봐요, 공무원 아저씨들
당신들
지금 어떻게든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머리 굴리는 모양인데
나한텐 안 통해! 쯧
(동한) 저기, 씁 말씀이 좀 지나치신 거 같은…
아유, 됐고! 씨, 쯧
(명한) 어쨌든 일단 보상 문제 어떻게 할 건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고
예, 아버님, 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봉찬) 어
아, 무슨 일이야?
(하경) 어, 방금 전에 병원이랑 직접 연락을 해 봤는데요
조금 전에 일반 병실로 옮겼답니다
눈을 조금 다쳤다고 하고요
누…
눈을 다쳐?
(명한) 하, 눈이면…
기본이 1급 중증 장애라는 거 알고 계시나?
아니, 다쳤다고 다 장애가 되는 건 아니고요!
아무리 아버님이지만
말씀 너무 함부로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뭘 함부로 해?
(명한) 함부로 한 건 당신들이지!
아, 사람을 위험한 현장에 던져 놓고
병신을 만들었으면
국가에서 책임지는 게 당연지사지! 씨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아니요, 틀린 거 없습니다
그렇지?
저 과장 언니는 나랑 말이 통하네
(하경) 그래서 말인데요 저랑 같이 제주도로 가시죠
뭐?
(하경) 일단 저랑 같이 가셔서 시우 특보 상태부터 확인하시고
그리고 차후 문제를 논의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명한의 한숨]
(동한) 진 과장…
하나뿐인 아드님이시잖아요 그것도 2대 독자
그래
(명한) 아니, 그러니까 내가 우리 시우를 위해서
보상 문제 여기서 담판을 짓자고
그러니까 아드님 상태부터 확인하시는 게 먼저죠
[흥미로운 음악]
(하경) 그래야 저희가 얼마나 보상을 해 드릴지
판단할 수도 있고요
저 내일 첫 비행기로 갈까 하는데 괜찮겠죠, 국장님?
(봉찬) 아, 그럼, 당연하지
근데 어떻게, 괜찮겠어?
물론이죠
그럼 내일 아침에 공항에서 뵙죠
[한숨]
(업무과장) 뭐?
아, 자네가 왜 거길 같이 가?
동행할 사람이 필요한 거면 운영 지원과에서 나서는 게 맞지
마침 저도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요
안 돼
지금 태풍이 두 개나 올라오고 있는 판국에, 쯧
진짜 안 됩니까?
응, 안 돼
[숨을 들이켠다]
그럼 제 휴가 지금 쓰겠습니다
뭐야?
태풍, 네, 중요하죠
(기준) 국민의 안전 살피는 일도 중요하고
근데요
저 입사하고 지금까지 방재 기간에 휴가 쓴 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휴가가 뭡니까?
월차 한 번 반차 한 번 쓴 적 없이
정말 뼈를 갈아 넣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고…
(기준) 그러니까요
저만 그런 사명감으로 일하는 거 아니고
대변인실에 또 저만 있는 거 아니니까
이번 한 번만 좀 봐주십시오
그러니까 왜 꼭 하필 지금이냐고!
그러게요!
하필 유진이가 지금 집을 나갔네요!
[기준의 떨리는 숨소리] [익살스러운 음악]
에?
(업무과장) 너 설마…
채 기자 요 며칠 안 보인 게 그거 때문인 거냐?
진짜 제 결혼 생활이 걸린 일입니다, 선배
저 다녀오게 해 주세요
[한숨]
[차분한 음악]
[통화 연결음]
어, 진 과장
내일 제주도 첫 비행기
나도 같이 가자
어
[통화 종료음]
[비행기 엔진음]
[명한이 드르렁거린다]
[동한의 피곤한 숨소리]
(동한) [코를 훌쩍이며] 응?
밤새웠니, 또?
어
(동한) 아니 이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잠깐 얘기 좀 하자, 우리
[멀어지는 발걸음]
[수자의 한숨]
[수자의 힘주는 신음]
(수자) 태경아, 밥 먹자!
얘가…
태경아! 밥 먹고 또 자!
응?
얘가 아침부터 어딜 간 거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태경) 어? 어
(석호) 아…
안녕하세요
[한숨]
밤샘하셔서 피곤하실 텐데
좀 쉬시다 오후에 봐도 되는데…
[살짝 웃는다]
오늘 출판사랑 12시에 도장 찍는다면서요
아, 뭐, 도장이야 그냥 찍으면 되죠
씁, 그…
[헛기침]
(석호) 보내 주신 거 틈틈이 훑어봤는데
- (석호) 좀 걸리는 문구가 있어요 - (태경) 음?
[숨을 들이켠다]
(석호) 여기 '배타적 발행권'
이건 뭘 말하는 겁니까?
글쎄, 저도 잘…
(석호) 씁, 그러면
여기, 이 '저작권 사용료'는요?
아, 이건 아마 동화를 집필한 제가 받게 되는 돈일 거예요
(석호) 그러면 여기 11조처럼 설정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흥미로운 음악]
왜 안 되는 걸까요?
그…
계약 담당자한테 전화 좀 걸어 봐요
(태경) 네?
아…
[달그락거리는 소리]
[통화 연결음]
아, 네, 안녕하세요 저 진태경인데요
아, 저, 저, 잠시만요
- (태경) 여기… - (석호) 네
예, 안녕하세요 아, 저, 다름이 아니라
그, 보내 주신 계약서 11조 저작권 사용료 문항 말인데요
(석호) 예, 예
이거 퍼센티지가 너무 낮게 설정된 거 아닙니까?
진태경 작가가 글, 그림 다 그리고 그쪽은 출판만 하는 건데
저요?
저 진태경 작가 매니저인데요
[부드러운 음악]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부 회의 거치시고
다시 연락 주십시오
예
씁, 일단
수익 분배 퍼센트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상의해 보고 연락 준대요
아, 네
앞으로 계약서 받고
문구 같은 거 읽어 보다가 뭐 걸리는 거 있으면
꼭 그쪽한테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돼요
(석호) 아, 창작자로서의 권리가
이 계약서 문구 한 줄 때문에 날아갈 수도 있는 건데
[말소리가 아득해진다] 이렇게 설렁설렁 넘어가면 안 돼요 네? 알았죠?
나 한 번 이혼했어요
근데요?
[밝은 음악] 네?
[멋쩍은 웃음]
아, 그냥 그렇다고요
[태경이 달그락거린다]
(석호) 사람들이
펭귄에 대해서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뭘요?
암수 사이가 좋을 거라고
아니에요?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암컷이랑 수컷이랑 새끼 살뜰히 보살피던데?
산란기 때만 그래요
(석호) 그러다가 다음번 짝짓기 철이 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짝을 또 찾죠
근데
(태경)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건데요?
동물의 세계에선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고요
우리 뭐, 아침 먹을래요?
예
[태경과 석호의 웃음]
오…
왜? 좀 먹으면서 얘기하지
뭐야?
[코를 훌쩍인다]
[무거운 음악] 읽어 보고 사인해
- (동한) 여보, 이… - (향래) 순간적인 결심 아니고
(향래) 오래 생각한 거야
내 생각, 내 결정 존중해 줘
내가 잘못했다
향래야
(동한) 내가 당신한테 보미만 맡겨 놓고 이렇게…
나 혼자 지방 돌면서
당신 외롭게 만들어서 내가 정말 미안해
근데 이게…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있어 나, 내 직업이…
변명하지 마
(향래) 그래, 물론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부산으로 가라면 부산으로 가고
남해로 가라면 남해로 갔던 건 사실이었겠지
그렇지만 어느 순간 당신도 그 생활이 편해졌던 거잖아
맞아
반성해
그 여자 누구니?
여자 누구?
TV에도 가끔 나오는 그 여자 있잖아
진하경?
진하경 과장
왜? 뭐?
나 봤어
(향래) 당신이 그 여자 집으로 들어가는 거
(동한) 아니야, 그런 거!
아니,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그게 그냥…
합숙이었거든, 응? 그게 나 혼자 있었던 게 아니야
우리 팀 특보 예보관이 있어 시우라고
걔랑 같이 그냥 신세를 지고 있었던 거야
진짜로 아니라고
시우, 시우한테 확인을 해 봐도 알 거 아니야
그, 내가 우리 보미 이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우리 보미 이름 아무 데나 함부로 걸지 마
그래그래, 알았어
(동한) 근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
그거 아니라는 거 당신도 알 거 아니야
그래, 아닐 거라고 생각해
(향래) 나 당신이랑 그렇게 떨어져 살았어도
한 번도 그런 거 의심해 본 적 없었어
당신 믿었으니까
근데 막상 눈으로 보니까
참 힘들더라
그래, 향래야, 내가…
당신 본청 발령받고 집에 며칠이나 있었니?
내가 집에 있는 게
당신이랑 보미가 거북해한다고 생각했어
핑계 대지 마, 엄동한
(향래) 네가 거북하고 불편해서 도망쳤으면서
왜 나랑 애 핑계를 대?
당신 그렇게 나가고 내 마음이 어땠는 줄 알아?
아, 내가…
내가 철이 없었다
[잔잔한 음악]
왜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거니?
너한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잘못했어, 응? 향래야
집으로 바로 들어갈게
누구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여보, 나 한 번만…
나 힘들어
(향래) 그냥 깨끗하게 남자답게 이혼해 줘
그냥 이혼하고
당신도 나도 홀가분하게
그냥 지금처럼 살자, 어?
(간호사)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하경) 이시우요
(간호사) 이시우 환자랑은 어떤 관계시죠?
[명한의 한숨]
(명한) 아, 저기, 내가
이시우 환자 아비 되는 사람이오, 아비
보호자, 어
오른쪽으로 가셔서 305호실입니다
(기준) 네, 감사합니다
(명한) 아, 근데 얼마나 다친 거요?
[애잔한 음악]
[빗소리가 들려온다]
[목멘 소리로] 괜찮아?
[떨리는 숨소리]
[시우의 한숨]
[흐느낀다]
나 괜찮아요
울지 마
[떨리는 숨소리]
[문이 드르륵 열린다]
(명한) 야, 시우야
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
눈은 왜 이래?
너 인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아버지예요?
어, 그래그래, 나다, 아버지야
(명한) 아이고, 이놈의 자식, 이거
이거 생각했던 거보다 많이 안 좋네, 상태가
여기 어떻게 왔어요? 아니, 왜 왔어요?
(명한) 야, 이놈아
아, 사고 났단 전화를 받고 내가 어떻게 가만있어?
아, 핸드폰은 연결도 안 되지
내가 하도 답답해서
그길로 그냥 냅다 본청으로 뛰어갔지, 뭐
본청에 갔었다고요?
(명한) 야, 걱정하지 마
내가 거기 가서 너희 국장까지 만나 가지고
보상금 문제 단단히 못 박고 왔으니까
넌 그냥 가만히만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어?
야, 근데
너 눈 말고, 뭐 다른 데 다친 데 없어? 어?
어디 봐 봐, 봐 봐 [시우의 떨리는 숨소리]
야, 너 아픈 데 있으면 제대로 말해야 돼
그래야 인마, 보상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거야, 알겠어?
과장님
어
이 사람 좀 내보내 줘요
[무거운 음악] (명한) 이…
야, 이시우
나가세요 그리고 서울로 빨리 올라가세요
(명한) 아이, 뭔 소리야?
야, 너 이렇게 다쳤는데 아빠가 곁에 있어야지
제발 좀 가라고요!
[성난 숨소리]
하, 이놈의 자식 야, 야, 진정해, 어? 야
(의사) 저기 환자 보호자분 오셨다고요?
(명한) 어, 예, 예, 예
내가 이시우 환자 아비 되는 사람이오
안녕하세요 밖에서 잠깐 말씀 좀 나누시죠
(명한) 아, 예
[거친 숨소리]
- (명한) 그럽시다, 예 - (의사) 예
그래도
너 걱정하셔서 저러는 걸 거야
내가 다쳤다고
나 걱정할 사람 아니에요
(시우) 아들 걱정돼서 일부러 찾아올 사람도 아니라고요
하, 시우야…
그런 아버지라고요, 저 사람은!
(시우) 여기까지 데려올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고요!
[성난 숨소리]
[하경의 한숨]
[시우의 떨리는 숨소리]
(기준) 하, 막상 보니까 무슨 말이 안 나오네
아, 바보냐, 아씨
(의사) 안면부에 화상을 좀 입었습니다 [한숨]
다행히 심재성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하다거나
흉터가 크게 남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근데 폭발 때 왼쪽 각막이 좀 다친 것 같긴 한데
처치를 했으니까 경과를 좀 지켜보시죠
(명한) 각막 손상이요?
[어두운 음악] 그러면 시력에 이상이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의사) 처치가 잘되긴 해서
추후 경과를 좀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명한) 아니, 뭐 추후 경과는 됐고요
[명한의 생각하는 숨소리]
그, 폭발로 인한 왼쪽 각막 손상
저, 그 부분을 소견서에다 중요하게 다뤄 주시죠
하, 저, 우리 아들 저거 보상금 제대로 받으려면은
선생님의 고귀한 소견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하걸랑요
[의사의 난처한 숨소리]
저,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의사의 난처한 한숨]
[어두운 음악]
걱정되면 혼자 오시지 그러셨어요
(유진) 시우 오빠 아버지요
말 그대로 그냥 거머리 같은 분이세요
지긋지긋하지만 떼어 낼 수도 없고
확 잘라 버리고 싶지만 잘라지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한테 당연한 일이
시우 오빠한텐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고요
[다가오는 발걸음]
(명한) 어, 과장 언니
여기 있었구먼
어쩔 거야, 우리 아들?
내가 방금 주치의랑 얘기하고 왔는데
실명할지도 모른대
[긴장되는 음악]
실명이요?
각막이 다쳤대, 각막이 어쩔 거야?
(명한) 앞날이 구만리나 남은 놈 그 멀쩡한 눈 멀게 해 놓고
아무튼
이번에 보상금 제대로 안 해 주면 나 가만히 안 있어
괜히 허튼수작 부리면서 보상금 깎을라치면, 씨
내가 아무튼 청와대 신문고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에 싹 다 올려 버리려니까, 알겠어?
씁, 그러면 최소한
뭐, 과장 언니나 국장 둘 중의 하나는
모가지 댕강 아니겠어? 어?
그러니까 괜히 일 키우지 말고
보상 문제 신경 잘 쓰라고 알겠지?
[다가오는 발걸음]
(기준) 보상금 문제는 저랑 말씀 나누시죠
당신은 뭔데 자꾸 끼어들어?
기상청 대변인 한기준이라고 합니다
(기준) 아, 주로 언론 상대가 제 업무이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어르신 같은 분들도 상대할 때도 있습니다 [명한의 못마땅한 숨소리]
그러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고요
[명한의 한숨]
- 그만 가시죠 - (명한) 아이씨! 쯧
(명한) 됐고! 쯧
당신은 국장한테 전화해서 보상금 준비해 놓으라 그래 [문이 드르륵 열린다]
빨리, 빨리해
아, 빨리빨리, 빨리, 빨리!
[어두운 음악] 아무튼 내가 이번에
못 받아도 3천 이상은 받아야 되겠으니까, 알겠어?
아, 빨리빨리 빨리 전화해, 빨리해!
(시우) 그만 좀 하세요!
(명한) 어?
야
[시우의 성난 숨소리]
(시우) 나와요
(명한) 야, 인마,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이놈의 자식 너, 저, 병실에 누워 있어야지 [시우의 성난 숨소리]
아, 다친 놈이 이렇게 싸돌아다니면 어떡해, 인마
- (시우) 가세요, 빨리 - (명한) 씁!
(명한) 이 자식이, 이게 어떤 기회인데, 이게, 씨
(시우) 그래, 이게 당신한테 어떤 기회인데, 그렇지?
뭐라고?
그래서 이번엔 또 그 돈으로 뭐 할 건데?
(시우) 노름? 사기 도박? 여자?
대체 이번엔 또 뭐?
근데 이 자식이 정말…
쪽팔린다고, 당신!
그러니까 제발 좀
내 눈앞에 꺼지라고!
이 자식이!
[명한의 한숨]
(명한) 아유, 씨
[명한의 분한 숨소리]
명심해
3천이야
3천
[기준의 한숨]
날 보러 온 게 아니었나 보네?
(기준) 응?
그렇지?
아니, 그게…
(기준) 유, 유진아
(TV 속 앵커) 현재 제14호 태풍 리키가
초속 30m로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경) 잠깐 얘기 좀 해
얘기 좀 하자고
일단 미안해
너한테 말도 안 하고 아버님 모시고 온 거
- 근데… - (시우) 세상엔
절대로 안 되는 게 있어요
사람이 태풍의 경로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우리 아버지 관계도 그래요
(시우)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요
당신이 당신인 거처럼
나도 나일 수밖에 없다고요
나한테 생각해 보라고 했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나
그게 지금 무슨 뜻이야?
[애잔한 음악]
(하경) 뜨거운 성질의 태풍이
차가운 공기가 있는 우리나라를 통과하면서
성격이 바뀌는 것
그것을
우리는 변이 지역이라고 한다
내가 놔줄 테니까
나한테서 도망치라고요
(하경) 이시우라는 뜨거운 태풍이
차가운 공기의 나를 만났고
그리고
그는 결국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미안해요, 내가 이거밖에 안 돼서
우리
헤어져요
(하경) 어쩌다 우린
이렇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지점에
서로 서 있게 된 걸까?
(하경)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
(시우) 일하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하경) 좀 더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요?
(미진) 제주 동쪽 지역과 서쪽 해상에 존데를 띄우는 건데
뭐, 아시다시피 이런 날씨에 바다에 나가 존데를 띄우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봉찬) 정확한 예보 뭐, 그런 거 없어
우린 예측만 할 뿐이지
[하경이 말한다] (하경) 아무리 예측이라고 해도
좀 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예측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너랑 난 결혼까지 했는데 그게 우리 결론인데!
그러니까 후회되면 말하라고
[문이 드르륵 열린다] (유진 부) 자네 지금 내 딸 울려?
(기준) 아, 아버님 그, 그, 그게 아니라…
(석호) 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아요
태경 씨랑 만나는 거요
우리 헤어지자,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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