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1
(수진) 네, 총괄 2팀입니다
네, 그런데요?
네? 사고요?
[무거운 음악]
(동한) 사고? 무슨 사고?
왜, 누가 다쳤대? [수진의 놀란 숨소리]
[사이렌이 울린다]
[구급대원들이 분주하다]
(구급대원) 빨리빨리, 빨리!
선생님, 선생님! 응급 환자입니다
(구급대원) 20대 후반 남성입니다
[시우의 힘겨운 숨소리] 폭발 사고로 부상을 입었는데 눈을 뜨지 못하고 있어요
바이털 100에 60, 120회고요
(의사) 이쪽 처치실로, 빨리요!
(간호사) 네
보호자분은 안 계신가요?
(유진) 어, 여기요 제가 보호자입니다
환자분 이름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시우요, 기상청 직원입니다
[초조한 숨소리]
(동한) 왜, 누구?
이시우 특보라는데요?
지금 많이 다쳐서 병원이래요
(하경) 네가 가라, 이시우 특보
어딜 가라고요?
제주 태풍 센터
네가 가라고
진심이에요?
공적인 업무를 쉽게 결정하진 않아
[한숨]
그 말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네요
(하경) 응
너만 괜찮다면
[차분한 음악]
(시우) 체온이 1도가량 떨어지면
우리 몸의 면역력은 무려 30%나 약해진다
하경인 결혼할 상대가 아니면 진심으로 만나지 않아요
그건 알고 시작한 거죠?
(시우) 외부의 공격에
그만큼 취약해진다는 뜻이다
(기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유진) 떨어져 있자고
그러는 게 서로한테 좋을 거 같아
유진아
각자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
(유진) 이대로도 우리가 괜찮은지
솔직히 오빠한테도 그런 시간 필요하잖아
(하경)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으니까
생각해 보고 얘기해 줘
아니요
좋아요
생각해 보라니까
아, 뭐,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시우) 공적인 업무라면서
갈게요, 내가
그래, 그럼
나한테 뭐 더 할 얘기는…
없어
그래요
(시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도 마찬가지다
너 이렇게 나가면
진짜 나랑 끝이야
그거까지 생각한 거 맞아?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무거운 음악]
[문이 탁 여닫힌다]
[안내 음성] 77-4번 버스가 잠시 후 도착합니다
(시우)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아주 작은 표정 하나로도
마음의 온도가 싸늘하게 식어 버릴 때가 있다
그리고…
[수진이 놀란다]
사고를 당했다고요? 어디가 얼마나 다친 거죠?
(하경) 아, 아니 지금 전화하신 분이 누구시죠?
어느 병원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유진) 저 채유진이에요
[힘겨운 신음]
저 지금 시우 오빠랑 같이 있어요
(시우) 그렇게 마음의 온도가 1도라도 낮아지는 순간
우리는 모든 외부의 환경에 예민해지고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기 포트 종료음]
[밝은 음악]
[울음]
[매미 울음]
(TV 속 캐스터)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요즘입니다
오늘 서쪽 대부분 지역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광주에는 폭염 경보까지 발효 중입니다
(봉찬) 아이고, 비 소식은? 없어?
동풍 영향으로 동해안 지역에
(하경) 5mm 미만의 약한 비가 내리겠지만
강원도 일부 지역에 국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봉찬) 뭐, 비 소식이라 할 수도 없겠네, 그 정도 갖고는
[한숨]
하이고, 시뻘겋다, 시뻘게
(하경) 현재 행안부에서도
폭염 시 행동 요령을 뉴스를 통해서 발표하기로 했고요
각 지자체에서도 폭염 저감 시설 확보에
힘쓰기로 한 상태입니다
오케이
(동한) 와, 이거 해당 관공서 피로도도
상당하겠는데요, 이거?
[휴대전화 진동음] (봉찬) 뭐, 어쩌겠어, 어?
[봉찬이 말한다] (시우) 주말에 뭐 할래요? 제주도 가기 전의 마지막 주말인데
[발랄한 음악]
뭐 해, 회의 안 해?
아, 예
일단 각 지역에 맞는 영향 예보 준비해 주시고요
[휴대전화 진동음]
(시우) 가평에서 오리백숙?
특히 가평에 오리백숙…
[발랄한 음악] (동한) 응?
죄송합니다
어, 특히 양식장이 많은 남해안과 서해안에서는
(하경) 수온 조절과 차광막 설치에 힘써 주시고
언론엔 더위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멘트는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해 주세요
최대한 잘 마크하겠습니다
네
이상 없으시면 오늘 회의 마치겠습니다
아,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저마다 인사한다]
(직원1) 가평 오리백숙 좋지 [직원들의 웃음]
(봉찬) 아참, 그, 저기, 정했어?
태풍 센터 정했냐고
(하경) 아, 네
(명주)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석호) 뭐, 내려갈 때 됐죠
(명주) 이번에 누가 내려간대?
(수진) 누군진 모르겠지만 전 아니겠죠?
[명주의 한숨]
아, 뭐야, 아직도 안 정한 거야?
어, 제가 갑니다
(명주) 어? 언제 정해진 거야?
(시우) 어제요
(석호) [피식하며] 당첨 축하한다 [명주의 옅은 탄성]
[웃음] (수진) 저도요
[명주의 어색한 웃음]
(봉찬) 자, 그럼 이 특보하고 진 과장
- (봉찬) 내 방으로 잠깐만 와 - (시우) 네
[휴대전화 진동음]
어, 어, 보미야
(동한) 어
어, 어 [명주의 한숨]
내가 가고 싶다, 제주도
[발랄한 음악] (하경) 제주도 간다니까 신났네?
(시우) 제주도가 아니라 태풍 센터라서 신난 거죠
꼭 한번 근무해 보고 싶었거든요
아시잖아요, 현장 체질
(하경) 언제는 본청 근무가 소원이라더니
이제는 현장 체질이다?
(시우) 뭐, 제가 워낙에 멀티가 가능하다 보니
좋겠다, 다 가능해서 가서 잘해 봐
(시우) 왜 이래요?
먼저 가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아무튼 가평의 오리백숙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한숨]
[한숨]
[키보드 조작음]
[차분한 음악]
(기준) 그럼 7월 29일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 하층엔 덥고 습한 공기가
그리고 대기 상층엔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폭염의 원인으로는
우리나라 남쪽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해 있고
중국 내륙에서 발달한 티베트 고기압까지
세력을 더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키보드 조작음]
[마우스 조작음]
[들뜬 숨소리]
[글씨를 쓱쓱 쓴다]
(동한) 어! [보미의 놀란 숨소리]
뭐야, 웬 오버?
[웃음]
아니, 오늘 못 오는 줄 알았어
체험 학습 한 번 더 남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언제 끝나?
(보미) 10분 있다가
일기도 그리기 수업만 들으면 끝나요
그러면 아빠랑 밥 먹을까?
(동한) 기상청 구내식당 진짜 맛있어
뭐…
그러든가
[웃음]
몇 시까지 가면 돼요?
이따 끝나고 바로 전화를 해
나올게, 알았지?
네
네? 내일이요?
(봉찬) 응
- 왜, 좀 빠른가? - (하경) 당연히 빠르죠
전 다음 주에나 가는 줄 알았는데?
(봉찬) 아니, 거기 태풍 센터 성 과장 말이야
알잖아, 성격 급한 거
본청 파견 근무자 언제 내려보낼 거냐고
지난주부터 아주 난리야
응? 하루라도 빨리 내려와서 관련 업무 미리미리 숙지해야지
태풍 올라와서 급하게 손발 맞출 때
실수 없을 거라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본청 상황도 있는 건데
(하경) 지금 폭염 와서 다들 난리인 거 아시잖아요
(봉찬) 특보 상황은 뭐, 내려가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안 그래?
- (시우) 어… - (하경) 아, 그래도 아니죠
저 이시우 특보한테 제주도 가라고 어제 얘기했어요
준비할 시간은 줘야죠
괜찮습니다
(봉찬) 그래, 괜찮지?
(시우) 예
그, 특보 상황은 현장에서도 커버할 수 있어서
문제없을 거 같습니다
(봉찬) 그래, 됐네, 그럼
자, 문제없으면 주말에 출발하는 걸로
오케이, 얘기 끝, 쯧
아이고
[문이 탁 닫힌다] (하경) 그렇게 덥석 괜찮다고 하면 어떡해?
당장 내일 어떻게 내려갈 건데? 준비 하나도 안 해 놓고
뭐, 어차피 가평의 오리백숙 싫다면서요
(시우) 주말 계획도 틀어졌는데
태풍 센터 가서 일이나 하죠, 뭐
장난이야, 진짜 삐진 거야?
뭐, 반반?
(하경) 됐고 국장님한테 다시 얘기하자
(시우)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사람 헷갈리게 해요?
무슨 말이야?
잠깐 혼자 있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나랑 떨어져서?
[차분한 음악] (시우) 그래서 나한테
제주도 내려가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 놓고 며칠 빨리 간다고 또 왜 이러는 건데요?
네가 뭘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난 업무적인 결정에
내 사적인 감정 절대로 개입시키지 않아
내 이전 연애에서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한숨]
국장님한테 다시 얘기할 거 없어요
(시우) 내일 내려가겠습니다
과장님
(기준) 아, 조 기자님
예
그, 혹시 오늘 채 기자 청에 안 들어왔습니까?
어…
휴가 냈다던데?
모르셨어요?
[놀란 숨소리]
아, 아, 그게 오늘이었어요?
[웃으며] 네
아, 제가 이렇게 깜빡깜빡해 가지고, 요즘, 네
- (기자) 네, 수고하세요 - (기준) 예, 들어가세요
[차분한 음악]
[터치 패드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탁 내려놓는 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기준) 휴가?
(기준)
(기준) 일단 집에 들어와 얼굴 보고 얘기해
[한숨]
[터치 패드 조작음]
(기준) 유진아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명주) 뭐지, 이 분위기?
(수진)
(수진)
내가? [익살스러운 음악]
(수진) 예?
뭐라고 하셨어요, 오 주임님?
(명주) 아, 제가요?
아, 그…
과장님
저, 그…
회식하실래요?
회식이요?
(명주) 어, 그…
시우 특보 내일 제주도 내려간다는데
그, 아, 아, 물론 임시 파견이라 금방 돌아올 거지만
그래도 잘 갔다 오라는 의미로다가
회식 한번 하면 좋을 거 같아서
어떠세요?
좋은데?
(명주) 아… [수진의 어색한 웃음]
예, 뭐, 회식…
[수진의 어색한 웃음]
석호 씨도 괜찮지?
전 선약 있습니다
(명주) 아, 그…
다른 날로 옮기면 안 돼?
처음으로 하는 총괄 2팀 회식인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총괄 2팀 첫 회식
(수진) 우리 팀 그동안 한 번도 회식한 적 없었잖아요
웬만하면 약속 다시 잡으시고
저희랑 같이하시죠, 신 주임님?
안 돼, 중요한 약속이라 예, 죄송합니다
(명주) 아, 뭐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지
(하경) 그러죠, 그럼
예?
회식합시다, 되는 사람들끼리
괜찮지, 이시우 특보?
네
그, 그럼 제가 예약하겠습니다
[어색한 웃음]
[차분한 음악]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왜 그래? 다들 너 때문에 회식하자는 건데
[물 끓는 소리]
왜, 뭐가 언짢은 건데, 또?
(시우) '또'라니요?
내가 언제 언짢은 기색을 했다고 '또'라 그래요?
나 과장님이 제주도 가라고 한 순간부터
한 번도 언짢은 기색 한 적 없었는데
얘가 왜 이래, 오늘
(시우) '얘' 아니고요
어른입니다
당신 남자고요
[물 끓는 소리가 잦아든다]
[저마다 대화한다]
(직원2) 안녕하세요
- (동한) 어, 어, 맛있게 드세요 - (직원2) 네
(직원들) 안녕하세요 [동한이 호응한다]
(직원3) 누구예요?
(동한) 우리 딸, 우리 딸 [직원들이 호응한다]
(직원4) 먼저 드세요, 먼저 드세요 [저마다 양보한다]
(동한) 고마워
[밝은 음악]
아니, 체험 학습 왔어
(배식원) 아 너무 예쁘게 생겼어요
- (동한) 그렇죠, 예쁘죠? - (배식원) 예
[동한의 웃음]
(동한) 아, 여기 기상청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
예보관들이거든 그래서 직원들이 그걸 아니까
빨리 먹고 가서 일하라고 양보해 주는 거야 [보미의 옅은 탄성]
네, 고맙습니다
[동한의 한숨]
나물도 좀 먹고
소시지 나왔다, 소시지
소시지 이거 아빠 어릴 때부터 먹던 건데
진짜 맛있어
[동한의 웃음]
[수진과 명주가 말한다]
(동한) 어떻게 합석 좀 해도 되지?
- (수진) 어, 당연하죠, 당연하죠 - (명주) 음, 그럼요
[동한의 웃음] (명주) 응, 잠깐만
(동한) 어, 어, 고마워
(동한) 여기 우리 딸, 엄보미
어, 안녕, 보미야 [동한의 웃음]
(수진) 안녕하세요
(명주) 반가워
여기는 아빠랑 같이 일하시는 분들 우리 같은 팀
안녕하세요
(명주) 안녕
- (수진) 어, 예쁘게 생겼다 - (동한) 그렇지?
엄마를 닮았나 봐요
[명주의 웃음] (동한) 무슨 소리야
아이, 왜? 슬쩍슬쩍 아빠 얼굴도 있는데
(수진) 근데 따님께선 기상청에 어쩐 일로?
아빠 만나러?
아니, 체험 학습 왔어
- (수진) 음, 체험 학습 - (명주) 음
과학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
네, 뭐…
(동한) 어떻게 알았어?
아니, 요즘 체험 학습 오는 애들 자기 적성에 맞는 거로 선택해서
점수 쌓는다고 하더라고요
[동한의 탄성]
(명주) 슬쩍슬쩍 닮은 게 아니라 과학 머리까지
아주 아빠를 쏙 빼닮았네
제가요?
몰랐어?
(명주) 아빠가 우리나라 최고의 기상학자신 거
아, 최고는 또 무슨 최고야?
[직원들의 웃음] (명주) 최고지
(동한) 먹어 봐 봐, 이거, 보미야
(수진) 오, 엄 선임님
이런 다정한 면도 있으셨네요?
상황실에선 완전 호랑이 선임이신데 [명주의 웃음]
보미 좋겠다
엄 선임님
저도 햄 하나만 올려 주시면 안 돼요?
- 뭐지? - (수진) 응?
(수진) 안 돼요?
자네 밥은 자네가 알아서 드시게
넵 [명주와 수진의 웃음]
먹어 봐, 보미야
(명주) 먹어 봐
[의미심장한 음악]
- (동한) 맛있지? - (명주) 맛있지?
[휴대전화 진동음]
(명주) 응?
잠깐만, 잠깐만요
- (수진) 네 - (동한) 응
(명주) 예, 어머니
(명주 시모) 어, 오늘 애들 좀 일찍 데려가야겠다
(명주) 예?
아, 날이 더워서 그런지
눈도 아프고 내가 영 컨디션이 별로야
아, 어떡하죠, 어머니?
저, 오늘 총괄 2팀 회식이 있는데
(명주) 특보 하나가 제주도 내려가거든요
아, 과장님이 처음으로 직접 잡으신 회식이라
빠지기가 좀 그런데…
아, 오늘만 아범한테 애들 좀 맡기면 안 될까요?
걔는 공부하는 애잖니
[탄식]
그럼 저녁만 먹고
예,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요
예, 예
[통화 종료음]
아, 어떡하냐
내가 회식하자 그래 놓고 나만 빠질 수도 없고
[차분한 음악] [한숨]
(시우) '얘' 아니고요
어른입니다
당신 남자고요
야, 여기 기상청이야
그럼 특보라고 제대로 호칭하든가요
공과 사
기상청하고 나, 연애와 일
(시우) 분명하게 선 긋고 싶은 거 알아요
그런 과장님 입장 이해하고
어떻게든 맞춰 주고 싶어요 그러기로 했으니까
근데
나는 나예요
과거에 연애했던 한기준이 아니라
나라고
그러니까 나랑 하는 연애에 그 사람 들이지 마요
그 사람이랑 과거에 어땠고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왜 그렇게 사내 연애에 움츠러들고
왜 그토록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는지 다 알겠는데
그 연애는 그 연애고
내 연애는 내 연애예요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거 기분…
참 별로라고요
내가 언제 사사건건 비교를 했어?
내가 비밀인 것도
(시우) 나하고 거리 두는 것도
자꾸만 나를 '얘', '쟤' 부르면서 가볍게 두는 것도
다 그래서잖아
나한테서 한기준 떠올리면서
똑같이 상처받을까 봐
똑같이
쪽팔려질까 봐
- 야, 이시우 - (시우) 맞아요
나 결혼 같은 거 생각 못 해요
할 수가 없는 놈이에요, 태생이
(시우) 그래도
사랑은 하고 싶어요, 당신하고
[감성적인 음악]
나는 진짜
당신이 너무 좋으니까
근데
그게 당신한테 혼란을 줬다면 미안해요
아무것도 약속 못 할 거면서
사랑만 하겠다고 덤벼서 그것도 미안해요, 근데
그래서
나하고 관계 다시 생각하고 싶다고 하면
그래도 돼요
근데
적당히는 안 돼요
대충 어느 정도 선 지키면서 뜨뜻미지근한 적당한 관계
나 자신 없다고
무슨 뜻이야, 지금 그 말?
그러니까 내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잘 생각해 봐요
나랑 계속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문이 탁 닫힌다]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네, 진하경입니다
그럼 제가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긴장되는 음악]
[한숨]
미치겠다, 진짜
(수진) 예쁜 보미 덕에 저희가 호강하네요, 감사합니다
[동한의 웃음]
(명주) 어? 보미는요?
- 보미 화장실, 뭐 마셔 - (명주) 어
(명주) 어, 진짜요? 어, 그럼 나 이거 먹어 볼래 [동한이 동전을 넣는다]
- (명주) 맛있어? - (수진) 네
[콜록거리는 소리]
[무거운 음악]
[보미가 콜록거린다]
[가쁜 숨소리]
[콜록거린다]
[콜록거린다]
[보미가 연신 콜록거린다]
[가쁜 숨소리]
[프린터 작동음]
[한숨]
[마우스 조작음]
[세면대 물소리] [가방을 달그락 뒤진다]
[꺽꺽거린다]
(직원5) 어! 학생, 학생, 괜찮아요?
[힘겨워하며] 아빠 우리 아빠 좀…
(직원5) 아, 어떡해
- (수진) 다행인 거 같아요 - (명주) 다행이지?
(동한) 아니야, 나도 뽀얀 피부야
(수진) 아, 그냥 뽀얀 거뿐만 아니라…
(시우) 식사하셨어요?
[저마다 호응한다] (직원5) 저기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기 학생이 쓰러졌어요
여기 화장실 안에 지금 학생이 쓰러져서
숨을 못 쉬고 있어요!
(동한) 어어! [동한의 다급한 숨소리]
(명주) 앉아 있어 아, 저, 119 좀 불러 줘!
(시우) 네
[사이렌이 울린다]
[향래의 다급한 숨소리]
- (동한) 어 - 어떻게 된 거야? 보미는?
아, 그, 잘 모르겠어
(동한) 그, 아까 점심 먹을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좀 있다 화장실에서 쓰러졌어
보니까 막 숨 가빠하고 얼굴이랑 목에 발진도 있고
애 뭐 먹였는데?
구내식당에서 밥 먹였어
반찬이 뭐였냐고
어, 그, 잡곡밥에 미역국이랑
햄이랑 무채 있었고
보미 햄 먹였니?
어
보미 가공육 알레르기 있잖아
(향래) 그것도 잊어 먹었니?
[차분한 음악]
(동한) 먹어 봐 봐, 이거, 보미야
- (동한) 맛있지? - (명주) 맛있지?
아유, 진짜
[한숨]
(하경) '역대급 더위 기약 없는 폭염'
'살인 더위에 지치는 사람들'
이런 기사 좀 안 나오게 해 달라고 했잖아요
한기준 사무관님!
유진이가 나갔어
어?
별거하자더라
왜?
나 이제 어떡하냐, 하경아?
[차분한 음악]
[후루룩거리는 소리]
[통화 연결음]
어, 엄마
(유진) 잘 지내고 있어? 별일 없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한 서방도 잘 있지, 뭐
(기준) 이젠 내 전화도 안 받고
문자는 아예 읽지도 않고 있고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
(하경) 너 설마 그 동거 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기준의 한숨]
아니면 또 다른 일이 있었던 거야?
야
너 혹시 그거 아냐?
(기준) 너랑 연애할 때
매일 일보다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기분이 들었었거든
그럴 때마다 내가 진짜 일보다 못한 존재인가 싶어서
서운하기도 하고
또 그런 생각 들 때마다
괜히 나만 철딱서니 없는 사람 된 거 같아 가지고
되게 짜친 기분 들고
내가 그랬어?
(기준) 응
너 그래
공과 사 구분하자고 할 때마다 너 진짜 되게 권위적이야
아, 물론 너는 대변인한테 하는 말이라곤 하지만
그 이전에 난 남자 친구였잖아
그래서 기분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었거든
[차분한 음악] (시우) 공과 사
기상청하고 나, 연애와 일
분명하게 선 긋고 싶은 거 알아요
그런 과장님 입장 이해하고
어떻게든 맞춰 주고 싶어요 그러기로 했으니까
근데
(기준) [한숨 쉬며] 근데
[기준의 허탈한 웃음]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우리 유진이한테 그러고 있더라고
그러면서 사사건건 하경이 너랑 비교하고 있고
(시우) 그 연애는 그 연애고
내 연애는 내 연애예요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거 기분…
참 별로라고요
유진이는 그냥 유진이인데
(시우) 나는 나예요
과거에 연애했던 한기준이 아니라
나라고
(시우) 그러니까 나랑 하는 연애에 그 사람 들이지 마요
[기준의 한숨]
(명주) 예, 걱정하지 마세요 네, 지금 다 챙겼어요, 네
아, 오셨네요
엄 선임님 딸은 괜찮대요
위험한 고비는 좀 넘긴 모양이에요
다행이네요
아, 저기, 오늘 회식은…
시우 특보는 회식 장소로 곧바로 오기로 했고
(명주) 엄 선임님은 딸 상태 보고 뒤에 합류하기로 했고요
아, 네
[한숨]
(시우) 이거 드세요
(동한) 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공부였어
그거는 방법만 알면 점수가 나왔거든
[한숨 쉬며] 근데 이놈의 날씨랑 가족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방법을
공식도 없고
매뉴얼도 없고
어떻게 해야지 좋은 아빠가 되는 건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지
[떨리는 숨소리]
좋은 가장이 되는 건지
그런 걱정을 한다는 거 자체가 좋은 아빠죠
저는요
우리 아버지가
그런 고민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아, 뭐, 그렇다고요
[시우가 피식 웃는다]
어, 보미는?
(향래) 괜찮아졌어
지금 맞고 있는 진정제 링거 다 들어가려면
아무래도 밤늦게나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신은 그만 들어가 봐
보미 아토피 다 나은 줄 알았어
[향래의 한숨]
세상에 저절로 낫는 병이 얼마나 될 거 같아?
(향래) 먹는 거, 입는 거
하다못해 잠자리까지 살피고 보살피니까
저만큼 건강한 거야
미안해
뭐가?
쥐뿔도 모르면서
좋은 아빠 흉내 내다가 애 잡을 뻔했잖아
[코웃음]
알기는 하니?
흉내도 뭘 알아야 내는 거지
[문이 스르륵 열린다]
[떨리는 숨소리]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풀벌레 울음]
(수자) 나가냐?
(태경) 어? 어
나 취재 약속 있어
근데 엄마 어디 가?
무슨 일인데 저녁에 나가?
엄마 또 하경이네 집 가는 거 아니지?
난 하경이 말곤 뭐, 일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아?
거의 그렇지 않나?
늦지 말고 다녀! 술 좀 작작 마시고
치
[문이 삐걱 열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수진) 괜찮으시겠어요?
(명주) 응? 뭐가?
시어머니 아니에요? 아까부터 계속 전화 오던데
아, 뭐, 정 힘들면
당신 아들한테 전화하시겠지
공부 중이시잖아요
나는 열심히 일해서 온 가족 먹여 살리고 있거든?
나도 가끔은 이런 날이 있어야 숨통이 좀 트이지
(명주) 나 오늘 먹을 거야
마실 거고 취할 거야
노래방도 가자, 응? [수진이 살짝 웃는다]
근데 신 주임님은 갑자기 웬 선약일까요?
(수진) 원래 기상청하고 집밖에 모르시던 분이
여자 생겼나?
아유, 생겨도 하나 이상할 나이 아니니까
(수진) 음
(명주) 과장님! 여기, 여기, 여기
(하경) 아…
[흥미로운 음악]
[석호가 숨을 들이켠다]
(석호) 야, 이거 굉장히
열심히 그리셨네요, 네
아휴, 그럼 뭐 해요
(태경)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막막하기만 한데
(석호) 왜 펭귄을 선택한 건데요?
귀엽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요?
(태경) 음…
우선 생긴 게 앙증맞고
무엇보다 걷는 게 귀엽잖아요
뒤뚱뒤뚱
[태경의 웃음] (석호) 아…
씁, 근데
그게 귀여워 보이라고 그렇게 걷는 게 아닌데…
네?
그…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건
(석호) 일종의 그…
시계추 운동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계추가 한쪽 정점에 다다르면 잠시 멈춰서
이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뀌는 거죠
그…
예
(태경) 아…
그건 몰랐어요
그래서요?
[밝은 음악] 예?
그래서요?
아…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러니까 그렇게
- (석호) 뒤뚱뒤뚱 걸으면 - (태경) 네
(석호) 그, 에너지의 80%가 몸에 비축이 되는데
비축할 수가 있는데
[태경이 글씨를 쓱쓱 쓴다] [웃음]
아, 이게 진짜 놀라운 게
(석호) 이 모든 원리가 진짜 과학적이거든요
오, 진짜요?
(석호) 예 [태경의 옅은 탄성]
[석호의 들뜬 숨소리]
아, 그리고
펭귄만의 특별한 그, 혈관의 얽힘이 있어요
원더네트라고
정맥하고 동맥이 이렇게 서로 꼬여 있는 거거든요
(태경) 오, 진짜 많이 아신다
[웃으며] 제가 제가 과학자라고 했잖아요
(석호) 아이, 아이… [태경의 웃음]
[명주가 흥얼거린다]
(하경) 다들 좀 늦나 보네요?
늦겠죠 뭐, 좀 늦는다고 했으니까
(명주) 아, 일단
저, 뭐 좀 시켜 놓을까 봐요 과장님
배도 고픈데
어, 시키세요, 주임님
아, 그, 뭐, 뭐 먹을래?
(수진) 다 삼겹살 먹어요
(명주) 삼겹살? [차분한 음악]
어, 그럼 삼겹살 먹을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수자의 한숨]
어
(시우) 아…
(수자) 먹어
젊은 사람들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 예
저, 그런데 갑자기 저를 왜…
아이고, 일단 먹고 얘기해, 자
(시우) 아, 아
(수자) 여기
응, 응
저기…
우리 하경이는 어쩌고 있어?
지금 폭염 때문에 정신이 없을 거예요
그때 나 다녀가고 나서 별다른 말은 없었고?
예, 없었는데요?
그날은 내가 허를 찔렸어
(수자) 응? 갑자기 비혼주의를 훅 들이대는 바람에 그냥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내가 그냥 물러나기는 했는데 말이야
저기, 그…
윗집 총각 말인데…
석호 형은 안 됩니다
뭐?
진 과장님이랑은 안 맞아요
성격, 취향, 취미, 생활 패턴
뭐 하나 맞는 게 없어요
(시우) 예, 제가 잘 압니다
아, 안 맞는 거는 살면서 맞춰 가면 되는 거지
(수자) 막말로
서로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다른 세상에서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하루 이틀에 이 손발이 딱딱 맞을 수가 있어?
딱딱 맞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거는 그러네요
자고로 부부란
이, 완성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수자) 만난 다음
둘이 하나로 완성시켜 가는 거야
[발랄한 음악] 그 과정이 결혼 생활이라는 거고, 응?
그렇게 완성되는 게 부부라는 거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무슨
실속 보장 보험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니 맨날 뭐, 시작도 못 하지
응? 맨 조건부터 따지고 실속부터 챙기고
그러면 후회한 적 없으세요?
뭘?
어머님이 하신 결혼이요
그야, 뭐, 백날 후회하기는 하지
'웬수 같은 놈의 인간' '벼락 맞을 인간' 이러면서
(수자) 응,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또 할 거 같기는 해
왜요?
[웃음]
둘이어서 좋았던 순간들도 참 많았거든
(수자) 우리 태경이, 하경이도 그렇고
내 인생에서
제일 잘 만든 작품이 그 두 놈이거든
[수자의 웃음]
저기, 그래서 말인데…
(시우) 그래도 안 됩니다
석호 형은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뭐가 이렇게 단호박이야?
아, 총각이 뭔데?
어, 피자 식겠습니다, 드시죠, 예
(시우) 아, 제가 드릴게요
[어색한 웃음]
음
이야
[수진의 한숨]
아무래도 오늘 회식은 글렀죠?
무슨 소리야?
(명주) 이렇게 맛있게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데?
(수진) 오 주임님
오늘 회식의 본디 목적을 잊으셨나 본데요
첫째, '이시우 특보의 송별회를 위한 자리다'
둘째, '총괄 2팀의 첫 번째 단체 회식에'
'그 의의가 있다'였거든요?
(명주) 근데 어쩌겠냐
자기들이 안 오겠다잖아
과장님이 이렇게 판 깔아 주고
자리까지 깔아 줬는데 안 오겠다는 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수진의 한숨]
이왕 이렇게 된 거 2인분만 더 시키자
총괄 2팀의 여자들의 단합 대회로
다시 세팅해서 가는 거지
어때요, 과장님?
그래도 될까요?
그러죠
(하경) 여자들끼리의 회식 그것도 좋네요
[명주의 신난 탄성] 사장님, 여기 삼겹살 2인분 추가해 주시고요
- 소주 주세요 - (사장) 네 [밝은 음악]
소주로 달리시게요?
뭐, 이왕 세팅해서 다시 달리는 거 센 걸로 가시죠
- (명주) 오 - (하경) 괜찮죠?
어머
(명주) 어머, 어머
[명주의 웃음]
- (하경) 받으시죠 - (명주) 아, 네, 자
(하경) [한숨 쉬며] 노래방도 콜?
완전 콜
- 콜 - (수진) 콜
- (하경) 짠 - (수진) 콜 [명주의 신난 탄성]
- (명주) 가자, 가자 - (수진) 가자, 3차, 3차
[함께 웃는다]
[왁자지껄하다]
(명주) 노래를 너무 잘하던데? [수진이 호응한다]
노래… [함께 웃는다]
(하경) 저 하이 소프라노예요
- (명주) 하이 소프라노? - (하경) 나는 [수진과 명주가 고음을 내지른다]
(하경) 낮은 거는 노래라고 생각 안 해요 [수진의 탄성]
(명주) 나는 바리톤인데 [수진과 하경의 웃음]
[통화 연결음]
[통화 종료음]
[한숨]
[잔잔한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네, 오 주임님
지금 어디세요?
(명주) [술 취한 말투로] 과장님이 너무 취한 거 있지
[명주의 웃음]
아, 나 이제 들어가 봐야 되는데
미안하지만 시우 특보가 지금 좀 와 줄 수 있을까?
[시우의 한숨]
(시우) 하, 나 왔어요
많이 취했어요?
걸을 순 있어요?
나도 잘해 보고 싶어
나도 잘해 보고 싶다고, 너랑
[잔잔한 음악]
(하경) 근데
난 딱 거기까지야
난 딱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안정적인 게 좋아
그 적당히를 넘어서면
내가 막 불안해져
내가 아니고
막 다른 사람이 되는 거 같다고
그래서 난
적당히밖에 안 돼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요
(하경) 그러니까 네가 결정해
제주도 가서 네가 결정하라고
이런 나랑 적당히라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생각해 보고 네가 결정해
(시우) 예전에 어떤 선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아무리 위성 사진을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구름의 흐름을 관찰해 보라고
(시우) 솔직히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이해가 안 되는 위성 사진을 본 적도 없는 데다
날씨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 있었으니까
그러다
당신을 만났다
[놀란 숨소리]
(하경) 아, 머리야 [하경의 힘겨운 숨소리]
[한숨]
어? [부드러운 음악]
[하경이 살짝 웃는다]
[웃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하경) 어?
공항으로 바로 가려고?
(동한) 내 짐이야
아, 깜짝이야
[스위치 조작음]
아, 집에 들어가시려고요?
아니, 지금 영향 태풍 시즌이니까
당분간 청에서 좀 지내려고
이, 이시우 특보는요?
시우는 출발했어
네?
제주도
(동한) 오늘 간다 그러던데? 모르고 있었어?
아무튼 저거 국 따뜻할 때 먹어, 응?
속 풀어야지
[차분한 음악]
[비행기 엔진음]
(시우) 그거 알아?
당신은 나에게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였어
[긴장되는 음악]
(수진) 그, 저…
[수진이 놀란다]
(하경) 사고를 당했다고요?
어디가 얼마나 다쳤죠?
아, 아니, 아…
전화하신 분이 누구시죠?
어느 병원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유진) 저 채유진이에요
[시우의 힘겨운 숨소리]
[한숨]
저 지금 시우 오빠랑 같이 있어요
[시우의 힘겨운 신음]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여보세요
(기준) 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뭐, 뭐라고?
[기준의 거친 숨소리]
어, 하경아 아,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
이시우가 다쳤대
(기준) 아니, 그래서 이시우가 다쳤는데
왜 우리 유진이가 거기 같이 있는 거냐고
우연히
뭐?
우연히 만났대, 거기 제주도에서
하, 씨
[한숨]
어떡해
[유진의 한숨]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너랑 사내 연애 하다가 깨지는 바람에
(하경) 내가 데어서…
[울먹이며]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까칠하게 대했는데
아니…
너 원래 나 만날 때도 예민하고 까칠했어
[흐느끼며] 아, 너 때문에
[잔잔한 음악] 내가 겁먹고
(하경) 또 나만 힘들까 봐
표현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못 했는데…
나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
[하경이 연신 흐느낀다]
(하경) 그러니까
이시우의 비혼주의 때문이 아니었던 거다
너무 뜨거워질까 봐
감당하지 못할까 봐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까 봐
그렇게 적당히 에둘러 대면서
끓는점까지
그 마지막 1℃를 올리지 않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동한의 한숨]
[석호의 한숨]
[석호가 혀를 쯧 찬다]
- 엄 선임님 - (동한) 응 [긴장되는 음악]
(동한) 와 저게 또 언제 또 저렇게…
[전화벨이 울린다]
어, 나요, 본청의 엄
우리 지금 확인했어
맞지? 저거
(미진) 어, 맞아
14호 리키 뒤에 따라오던 15호 태풍 엘리샤
오늘 11시경 오키나와 부근 서쪽 300km 해상에서
중심 기압 990, 최대 풍속 초속 20
강풍 반경 150으로 동북쪽으로 진행 중이었는데
응
(직원6) 위성 센터죠? 그, 태풍 강도 좀 알려 주세요
(미진) 22시에는
오키나와 부근 서쪽 120km 해상에서
중심 기압 980, 최대 풍속 초속 28
강풍 반경 200으로 제주도 남쪽 해상으로 진격 중이야
[동한의 한숨]
(동한) 응, 알겠어
계속 데이터 좀 전송해 주고, 응
[수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 (동한) 신 주임 - (석호) 예
(동한) 시간대별 해양 열량 변화 자료 뽑아 주고 [석호가 대답한다]
오 주임은 새로 나온 예측 자료에서
연직 시어랑 지향류 흐름 좀 파악해 줘
(명주) 네
[긴장되는 음악]
[숨을 들이켠다]
이것들 아주 다 죽었어
[흐느낀다]
[하경이 연신 흐느낀다]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천둥이 콰르릉 울린다]
[감성적인 음악]
(기준) 그 정도였냐, 이시우한테? [폭발음]
(하경) 나도 모르겠어 [유진이 놀란다]
어디서부터 뭐가 뭘 어떻게 잘못됐는지 [기준의 한숨]
책임자랑 얘기하겠다니까
- (명한) 진정을 어떻게 하라고! - (하경) 무슨 일입니까!
(기준) 여기서 이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가 됩니다 [명한이 말한다]
그만큼 엄중한 곳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향래) 나 힘들어 그냥 깨끗하게 남자답게 이혼해 줘
(기준) 하필 유진이가 지금 집을 나갔네요!
저 다녀오게 해 주세요
내일 제주도 첫 비행기 나도 같이 가자
(하경)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은데
우리는 왜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기준이 유진을 부른다] 알아주기만 바라고 있었을까?
(시우)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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