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0
(수자) 아이고, 잠깐, 잠깐
(시우) 아, 예 [버튼 조작음]
[수자의 웃음]
[흥미로운 음악]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석호) 아, 잠시만요!
[달려오는 발걸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석호) 아, 어?
[살짝 웃으며] 이제 오냐?
(시우) 예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석호의 한숨]
(시우) 이건 뭐예요?
[석호가 피식 웃는다]
(석호) 싱크대 수전
물 새더라
(시우) 아, 아니, 뭐, 집주인한…
아, 맞다, 이 아파트 형 거랬죠?
오, 집주인 [석호가 살짝 웃는다]
(석호) 내 거 아니고 아직 은행 거라니까
아, 어쨌거나 명의는 형 거잖아요 그게 어디예요
(시우) 아휴 번듯한 직장에 집까지 있고
누군진 몰라도 좋겠네요
뭐가?
형이랑 결혼하는 여자요
[석호가 피식 웃는다]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12층입니다
(시우) 저 갈게요
- (석호) 수고했다 - (시우) 예
[도어 록 조작음]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뉘시우?
그러는 아주머니는 누구신데요?
아주머니…
(수자) 나 이 집 주인 엄마
[흥미로운 음악] [놀란 숨소리]
[도어 록 작동음]
(동한) 어, 어, 아유
안녕하세요
(시우) 안녕하세요
[차분한 음악]
(사람들) 받아 줘, 받아 줘!
[사람들의 탄성] [여자1의 웃음]
(여자2) 멋있어
왜 저런 모험을 하지?
'사랑의 끝은 결혼이다'
그런 뻔한 결말이 답은 아니잖아요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어, 나 아직 회사에…
(시우) 지금 빨리 집에 와야 될 거 같은데
어?
[익살스러운 음악]
(수자)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셋이 여기서 같이 합숙을 한다?
- (동한) 예, 그렇죠, 맞습니다 - (시우) 예
언제까지요?
어, 언제까지…
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시우) 아니요 여름철 방재 기간까지요
그렇죠, 예
여름철 방재 기간이면…
아직 한참 남았네?
- (동한) 예 - (시우) 예
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사는 집에
남자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아, 이게 위험 기상 기간이다 보니까
(동한) 이제 그때그때 좀 상의를 하고
결정을 해야 될 것도 많고 그래 가지고, 그렇지?
(시우) 예, 맞습니다 [함께 웃는다]
(동한) 어쨌든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수자) 그러게요
우리 애가 과년한 나이다 보니까 이 상황이 아주
매우 많이 심려가 되기는 하네요
과년한 게 뭐예요?
결혼할 때가 지났다고
(수자) 저기, 근데 그…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사람도
같은 일 하는 사람이우?
예, 저희랑 같은 팀입니다
(동한) 누구지?
- (시우) 석호 형이요 - 아, 그렇죠, 석호, 우리 같이 [시우의 웃음]
어, 결혼은 했고?
- 아니요, 아직 - (동한) 예, 미혼이죠
- 나이는? - (시우) 예?
아이, 그 양반 올해 나이가 몇이나 됐냐고
동갑일 겁니다 진하경 과장하고, 그렇지?
[옅은 탄성]
(시우) 아니요
그, 석호 형이 워낙 동안이라서 그렇지
진하경 과장님보다 한참 위입니다
한 7살 정도
(동한) 어… [시우의 웃음]
[발랄한 음악]
7살…
그 정도야, 뭐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하경) 아유 엄마는 왜 말도 없이 오고 그래
(수자) 너는 엄마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에다가 사람을 막 들이면 어떡해
막 들인 거 아니고 총괄 2팀 선임님이랑 특보야
(수자) 내가 쳐들어간다 할 때
어째 헐레벌떡 제 발로 집에 오더라니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 놨는 줄 알았더니만
어이구
(하경) 일 때문에 합숙하는 거야
요즘 여름철 방재 기간이기도 하고
내가 과장 단 지 얼마 안 돼서 미숙하기도 하고
처리할 것도 많아서 내가 부탁한 거라고
어이구
네가 그런 걸로 누구한테 부탁할 인사냐?
(수자) 곧 죽어도 저 혼자 끙끙 앓고 마는 애가 무슨…
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해, 빨리
아, 더워, 그냥 여기서 얘기해
(하경) 아, 나가자고
- (수자) 어어? - (하경) 아휴
(수자) 아, 여기서…
- (시우) 들어… - (동한) 예, 들어가십시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타이어 마찰음]
[휴대전화 진동음]
(기준) 응?
[한숨]
어, 엄마
아, 그러게
내가 그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네
아, 죄송해요, 엄마 생신인데
응? 가방?
[흥미로운 음악]
너 또 쇼핑했니?
아, 그거? 내…
(기준) 넌 참 태평해서 좋겠다
내가 지금 아무 생각도 없이 사치라도 했다는 거야?
뭐, 생각이 있는 애가
저런 비싼 걸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 않았겠지
어
아, 그러셨구나, 어
아, 아니야, 그거 유진이가 고른 거야, 그 가방, 어
(기준) 아, 내가 말했잖아
우리 유진이 센스 있고 괜찮은 애라고
아, 엄마가 괜히 맨날 하경이랑 비교해서
트집만 잡아서 그렇지
우리 유진이 장점 많은 애라니까
응, 알았어
어, 엄마가 나중에 따로 불러서 밥 한번 사 줘
응
응
아, 야, 너 진짜 바보냐, 진짜?
아이씨
[문이 드르륵 열린다]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한숨]
[TV 전원음]
(기준) 아이, 저…
아, 아니…
넌 말을 하지 그랬냐
그, 그 가방 말이야
[유진의 한숨] 아니, 오늘 들고 나갔다가, 모임에
완전 스타 됐다고
엄마가 기분 좋아서 전화하셨더라고
다들 며느리 잘 얻었다고 칭찬이 자자했었나 봐
그날 그렇게 말한 거
미안해
[잔잔한 음악]
알면 됐어
[기준의 안도하는 숨소리]
(기준) 근데
무슨 돈으로 산 거야?
우리 생활비 카드 한도 초과였을 텐데
내 여름 보너스에 비상금 좀 보태서 샀어
어차피 오빠도 나도
당분간은 바빠서 휴가는 꿈도 못 꿀 텐데
그쪽으로 지출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맙다, 유진아
내가 진짜 생각이 많이 짧았던 거 같아
됐거든
아, 한 번만 봐줘라, 좀
[기준의 애교 섞인 탄성]
아, 내가 미안해, 진짜 잘못했어
(기준) 마사지해 줄까?
[유진이 피식 웃는다]
[기준의 웃음]
내가 진짜 잘못했어, 내가 잘할게
군식구가 둘이면
전기세며 수도세며 만만치 않게 들 텐데
잘 계산해서 받고는 있는 거야?
내가 부른 거라고
[못마땅한 신음]
관리비며 뭐며 정확히 N분의 1로 내라 그래
엄마, 나 과장이야
하이고
누가 헛똑똑이 아니랄까 봐
(동한) 진하경 과장 어머님께서
신석호 주임이 아주 마음에 쏙 드셨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본인 의사도 있는 건데
그런 식으로 막 갖다 붙이시는 건 아니죠
(동한) 씁, 석호가
좀 멀멀한 게
사람이 뭔가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고
좀 까칠한 면이 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참 괜찮은 신랑감이야 그렇지?
[흥미로운 음악]
(시우) 아니, 글쎄
두 사람은 안 어울린다니까요?
석호 형이랑 진 과장님은
아예 안 맞는 스타일이라고요
취미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케미가 나려야 날 수가 없다니까요?
에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동한)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거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게 또 사람 일이야
더구나 여자랑 남자랑 이게 이성…
에이
모르는 거야
순진한 놈아
[동한의 웃음]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탄식] [문이 탁 닫힌다]
[분수대 물소리]
(수자) 그…
위층에 사는 총각도 같은 팀이라며?
누구, 신 주임?
주임이야?
깔끔하고 단정한 게 사람 참 괜찮아 보이더구먼, 응?
신경 끄세요
- (하경) 왔다 - (수자) 아이
그, 관심 가는 게 당연한 걸 가지고
아, 너도 그렇게 딱 잘라 끊지 말고
(수자)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좀 알아봐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아, 또 누가 알아? 응? 응?
가세요, 엄마, 조심히 가
신 주임이라고?
7살 정도야, 뭐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시우) 어머니는 잘 가셨어요?
(하경) 응
[차분한 음악]
(유진) 시우 오빠
비혼주의자예요
누구하고도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요
하경인 결혼할 상대가 아니면 진심으로 만나지 않아요
그건 알고 시작한 거죠?
- (하경) 맥주나 한잔할래? - (시우) 맥주…
[하경과 시우의 웃음]
- (하경) 마시자 - (시우) 네
[하경의 웃음]
(하경) 나 채유진 기자 만났어
너 비혼주의자라며
(시우) 네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돼?
그냥 나랑 좀 안 맞는 거 같아서요
(시우) 사랑한다고 결혼을 꼭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결혼하는 순간 가족으로 얽매이는 것도
좀 부담스럽고요
그리고 내 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지우고 싶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너한테 가족은 짐이라는 거구나
봐서 알잖아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결혼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실망했죠?
아니
(하경) 그렇다기보단
그냥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결혼이 배제된 연애에 대해서
어, 근데
그렇다고 내 진심까지 오해받기 싫거든요
(시우) 결혼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하는 사랑이 가볍거나
진심이 아닌 건 아니니까…
알아
그냥 궁금해서
이 연애의 끝엔 뭐가 있을까?
[잔잔한 음악]
결혼이 아니라면
(하경) 과연 이 연애의 끝엔
뭐가 있을까?
(시우) 수면은 특히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온이 높아지면
잠자는 동안 중추 신경계가 흥분돼 깊이 잠들 수 없게 된다
[탄식]
이런 밤은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복잡한 마음은 또다시 많은 생각에
생각에 [한숨]
생각을 불러온다
(하경) [한숨 쉬며] 덥다
(시우) 아, 더워
지난밤 서울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면서
올 들어 처음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는데요
(TV 속 캐스터) 오늘도 아침부터 무덥습니다
(하경) 굿모닝 [일기 예보가 계속 흐른다]
하, 오늘도 굉장하겠네요
(동한) 아, 이래 가지고
장맛비가 열기를 한번 식혀 줬어야 되는 건데
습도까지 높아 가지고
체감 기온은 더 심해지겠네
많이 걱정돼?
얼굴이… 잠을 못 잤나 보네?
아, 좀 덥더라고요
[동한이 컵을 탁 내려놓는다]
[TV 전원음] (동한) 우리 때문에 많이 불편하지?
방문도 못 열어 놓고
정말 다행히도 제가
아무리 더워도 방문을 열고 자는 습관이 없어 가지고
(하경) 걱정 마세요
어쨌든 미안해
(동한) [웃으며] 내가 최대한 빨리 집으로 복귀할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요
[동한과 하경의 웃음]
[시우의 한숨]
(동한) 어유
쟤는, 잠 설친 사람 여기 또 있네
(시우) 예?
(동한) 한동안 열대야가 심해질 텐데
[힘주며] 고생 좀 하겠다, 아유
나 먼저 준비할게
(시우) 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잠 못 잤어요?
(하경) 좀 덥더라고
(시우) 더웠죠
[살짝 웃는다]
[하경의 힘주는 신음]
[TV 전원음] (TV 속 쇼 호스트) 네 여러분들 너무 찾으셨죠?
신혼 가전 필수템 빅 쓰리 가지고 왔습니다
[발랄한 음악] 너무 더우니까요 에어컨부터 냉장고, 세탁기까지
이 모든 구성은 방송에서만…
- 뉴스 봐야겠다 - (시우) 어, 네
(TV 속 앵커) 통계청은 최근
혼인율과 혼인 대비 출산 비율 가중치를 반영해 출생… [TV 전원음]
커피 마실래?
어, 그럼 전 토, 토스트?
- (하경) 좋아 - (시우) 아, 예
[한숨]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동한의 한숨]
(동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거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게 또 사람 일이야
더구나 여자랑 남자랑 이게 이성…
에이
모르는 거야
- (시우) 어, 형 - (석호) 응
(시우) 아침 먹었어요?
아…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태경의 탄식]
(태경) 아, 더워 죽겠는데 무슨 김장을 해
엄마, 열무는 또 왜 이렇게 많이 사?
(수자) 열무김치 자작하게 담가서
시원하게 국수 말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러니까 별미를 왜 이렇게 많이 하시냐고요
[바스락거리는 소리] 다 생각이 있지요
- (수자) 여기요 - (상인) 아, 예, 감사합니다
(수자) 야, 서두르자
이거 오늘 다 다듬어서 김치까지 담그려면 시간 없어
또 무슨 생각?
(태경) 난 엄마가 생각이 있다고 할 때마다 너무 무서워
또 사고 칠까 봐
그…
하경이네 윗집 사는 남자 말이다
어?
아, 왜, 네가 지난번에 그, 밑반찬 맡겼다는 그 집 말이야
아, 1302호?
그이가 하경이네 회사 같은 팀원이래
진짜?
씁, 아,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지?
(수자) 응?
잘 알아?
에이, 알긴 뭘 알아
그냥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쳤지
사람 참 괜찮던데
또, 또, 또 아무 데나 갖다 붙인다
그러니까
네가 좀 알아보면 어떨까?
뭘?
(수자) 아, 뭐기는 뭐야
우리 하경이를 찍어다 갖다 붙여도 될 만한 인사인지 아닌지
그것 좀 알아보란 말이지
응?
와…
(수진) 그, 서울의 고층 관측 자료 말인데…
[흥미로운 음악]
오 주임님
- (수진) 아, 오 주임님 - (명주) 어!
(명주) 어? 왜?
(수진) 여기 태백 AWS 수치 말인데요
이게 맞나요?
어, 맞는데
[하품하며] 왜?
(수진) 어제 잠 잘 못 주무셨어요?
아, 좀 더웠어야 말이지
(명주) 아유
작은애가 밤새 뒤척이는 바람에 나도 같이 잠을 설쳤더니
영 맥을 못 추겠네
그렇다고 에어컨을 틀어 놓을 수도 없고 [다가오는 발걸음]
남편분은요?
아, 우리 그이는 공부해야죠
(명주) 이왕 시작한 건데
이번에는 원 없이 한번 해 보라고 했어요
[하품]
아, 안 되겠네
가서 찬물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아유
[수진의 한숨]
(수진) 차라리 오 주임님이 직접 5급에 도전하시는 게 빠를 텐데
오 주임님 기상청 들어올 때 7급 동기들 중에 수석이었다잖아요
명석한 두뇌에 빠른 판단력 거기다 리더십까지
그래서 다들 차기 과장감으로 점찍었었다는데
쯧, 결혼하면서 살림에 육아에 완전 과부하가 걸리면서
커리어도 같이 정체 구간에 걸린 거죠
게다가 이제는 고시 준비하는 남편 뒷바라지까지
참 만만치 않네요
그래도 지치지 않는 거 보면 대단하세요
그렇죠?
버티고 있는 거죠, 가장이니까
(수진) 음, 하긴
[수진의 의아한 숨소리]
근데 과장님도 잠 못 주무셨어요?
아, 나도 열대야 때문에
일하죠
[수진의 한숨]
기상청 사람도 못 피해 가는 열대야
(주영) 어이, 채유진이!
(유진) 어? 아니…
사회부 일진께서 여기 어쩐 일이세요?
아, 요즘 이렇다 할 만한 사건 사고가 있어야 말이지
[유진의 헛웃음]
그래서 기상청으로 오셨다고요?
아, 그런 말 있잖아
특종이 없으면 기상청으로 가라
(주영) 어, 뭐, 여기서 죽치고 있다 보면
뭐라도 하나 건지겠지
씁, 근데
여기 구내식당 밥은 먹을 만하냐?
쯧, 네, 뭐
오케이, 나중에 보자
[휴대전화 진동음]
네, 선배
(기자1) 야, 허주영이 기상청에 떴다며?
[흥미진진한 음악]
[문이 탁 닫힌다]
선배가 어떻게 아세요?
(기자1) 아 야, 지금 그게 중요해?
너 그 새끼한테 특종 뺏기면 회사 들어올 생각 하지 마
[어이없는 숨소리]
있지도 않은 특종을 어떻게 뺏겨요?
(기자1) 네가 허주영이 그 찰거머리를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일단 그 자식이 기상청에 뜬 이상
어떻게든 뉴스거리 하나는 만들어 낼 거야
감시 잘해
너 명색이 기상청 출입 기자라는 놈이
사회부한테 기상청 특종 뺏기면
(기자1) 뭐 되는지 알지?
네
(기자1) 너 회사에 고생하고 있는 식구들 생각해 봐라, 야
너 네가 잘해야 돼, 네가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통화 종료음]
[직원1과 주영이 대화한다]
[주영의 웃음]
[한숨]
(하경) 현재 정체 전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되면서
고온 다습한 공기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폭염이 계속되면서
밤에도 25도를 웃도는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봉찬이 숨을 들이켠다]
(봉찬) 아이고, 이거 열대야 계속되면
또 전력 사용량도 계속 늘 거고
그럼 뭐, 정전 피해 위험도 생길 거 아니야
그것도 그런데 문제는 언론입니다
(동한) 이게 뭐, '찜통'이라느니
'역대급', '살인 더위' 이런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람들 심리를 더 자극하니까요
(봉찬) 아이고, 참
(기준) 아,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서
폭염 관련 설명 자료 각 언론사에 잘 전달했습니다
저희 대변인실에서도 언론 대응에 총력을 다할 거고요
(봉찬) 오케이
(보미) 빨리 와
(동한) 응?
[흥미로운 음악]
[학생들이 두런거린다]
(하경)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야
(하경) 이상 예보 토의를 마치겠습니다
(봉찬) 어, 고생들 했어, 예
(직원들) 수고하셨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해
(기준) 뭐냐?
(하경) 앉을까?
[하경의 한숨]
나도 이런 걸 너한테 물어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혼이라는 거 해 보니까 어때?
나?
지금 나한테 물어본 거니?
아, 진지하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니까
왜?
이시우가 결혼하재?
됐다, 내가 너한테…
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진지하게 대답할게
하, 결혼이 어떠냐?
(기준) 뭐, 한마디로, 씁
좋다, 나쁘다, 뭐, 어떻다
그런 정의 내리기가 좀 힘들다?
그래?
[잔잔한 음악] 아니, 그, 우리 둘만 좋으면은
만사 오케이일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기준) 서로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쓸 일도…
아, 이게 단순히 두 사람이라서 2배가 아니라
뭐, 한 10배 가까이 늘어난 기분?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뭐
우리가 그렇게 막 쉽게 한 결혼은 아니니까
무조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 생겨서인지
작은 일 하나에도 조금 쉽게 예민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숨을 들이켠다]
그리고 또…
어, 그리고 전에는 우리 둘만 보였는데
씁, 결혼하는 순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관계들까지 막 의식하게 되고
또 반대로 전에는 그렇게 편했던 관계들이
이제 좀 부담스러워지기도 하고
쯧, 뭐, 어쨌든
함께 살면은 서로에 대한 단점도 그만큼 잘 알게 되니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쉽지 않은 거 같아, 난
[한숨]
[키보드 조작음]
저 진상
문민일보 맞지?
응?
(기자2) 요즘 문민일보 왜 그래?
아무리 기삿거리가 궁해도 이거는 상도덕이 아니지
[한숨]
잠깐만
(유진) 잠깐 얘기 좀…
(유진) 여기 있습니다, 딸기스무디
[주영이 숨을 들이켠다]
나 바쁜데
[유진이 살짝 웃는다]
아, 제가 선배님 사 드리고 싶어서 그러죠
정 그러면 술이나 한잔 살 것이지
[유진이 살짝 웃는다]
(주영) 음
결혼했다더니 얼굴 좋아졌다
그런가요?
그, 신랑이 기상청 사람이라며?
음, 네
뭐, 좀 쌈박한 정보 좀 없나?
(주영) 어, 떠도는 소문도 괜찮고
뭐, 기상청 내에
음, 뭐, 파벌 싸움 그런 게 심하다든가
아니면 뭐, 직장 내 왕따 뭐, 성희롱 사건 이런 것도
공무원 조직이라 뉴스거리 될 만한데
씁…
실은 그래서 말인데요
뭐? [흥미로운 음악]
그, 최근에 저 위에서 세력 다툼이 되게 심하다 하더라고요
자, 누구? 뭐, 어떤 세력 다툼?
잠깐만, 저 위면은…
차장하고 청장?
더, 더 위예요, 더 위요
씁, 엠티하고 엠피
엠티, 엠피…
- (기준) 워! - (김 주무관) 아, 깜짝이야
- 뭐 해? - (김 주무관) 쉿, 쉿, 쉿
(기준) 아, 유진이네?
- 저 사람 - (기준) 응
(김 주무관) 문민일보 허주영 기자 아닙니까?
몰라
(김 주무관) 문민일보 칼잡이로 유명하잖아요
그래?
(김 주무관) 저, 저 사람이 어디든 쑤셔 대기만 하면
누구 하나 밥줄 끊기는 건 일도 아니라고요
아니, 근데 사회부 기자가 왜 기상청에 왔어?
채 기자님은 왜 저기 있는 걸까요?
엠티…
엠, 그게 뭐야?
그거 누구 약자지? 누구야?
[숨을 씁 들이켠다]
(유진) 엠티는요
북태평양 기단
엠피는 오호츠크해 기단
이 두 기단이 세력 다툼을 하는 여름을 말씀드린 건데
이 정도도 모르면은 기상청에서 특종 잡기 힘들죠
[흥미로운 음악]
그런데도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헛웃음]
아
한마디로
여기 네 구역이니까 꺼져 달란 소리네?
아, 저는 다만
선배님 같은 분이 이런 소소한 건수까지 가져가시면
(유진) 후배인 제가 밥벌이하기가 참
힘들다는 말씀 드린 겁니다
어, 싫다면?
저도 뭐, 사회적으로 이슈 될 만한 기사 하나 터트려 보죠
(유진)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 인간 취급 받느니
그냥 천지 분간 못 하는 꼴통 소리가 더 나을 거 같은데
채유진이 많이 컸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선배님
[한숨]
아휴, 선배는 개뿔
아, 저러면서 무슨 기자라고
[시우가 놀란다]
괜찮아?
괜찮아
저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시우의 한숨]
(시우) 시간 진짜 빨리 간다
패딩 입고 본청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래?
난 결혼식 올린 게 백만 년은 된 거 같은데
할 말이 뭔데?
(시우) 음…
전에 내가
결혼할 생각 같은 거 없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유진) 음…
한마디로 그냥
벙쪘지
[차분한 음악] '얜 뭐지?'
'근데 나랑 왜 만나는 거지?'
처음에는 그냥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
그래서?
물론 우리의 만남이 꼭 결혼 전제로 만나는 건 아니어도
(유진) 어쨌든 오빠랑 나랑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거니까?
더 이상 함께할 미래는 없겠구나 싶었지
[유진이 숨을 들이켠다]
[유진의 한숨]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우린 결국 헤어지겠구나'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식어 갔던 게
그러다가 기준 오빠 만난 거였고
[유진의 한숨]
[키보드 조작음]
(유진)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우린 결국 헤어지겠구나'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식어 갔던 게
[동한의 한숨]
(동한) 어? 어? [긴장되는 음악]
아, 여의도 현재 기온 왜 이래?
(명주) 아, 뭐가 잘못됐나요?
(동한) 아니, 지금 36.7도인데?
그럼 주변 인근 지역이랑 7도 이상 차이가 난다는 건데
이게, 이거 MQC 제대로 한 거 맞아?
아, 보긴 봤는데…
(동한) 보긴 봤다니? 무슨 뜻이야?
아, 자, 자, 잠시만요
(하경) 지금 당장 방재 기상 포털에 있는
정보부터 내리세요 더 혼선 생기기 전에
예, 다, 잠시만요
(명주) 아, 이게…
아, 제가 하겠습니다
[한숨]
[주영의 한숨]
(기자2) 어? 이거 왜 이러지?
[기자들이 술렁인다]
(주영) 왜, 뭐, 문제 생겼나?
씁, 어, 여의도 기온이 좀 이상한데…
[시스템 작동음]
예, 오류인가 보네요
오류?
(주영) 어디
(시우) 형
그…
이제 오 주임님 어떻게 되는 거예요?
뭐, AWS의 MQC 놓친 건 엄연히 직무 태만이니까
원칙대로 주의 또는 징계 받을 거야
(시우) 아니, 뭐 실수할 수도 있지, 뭐
[석호의 한숨]
씁, 너는 가끔 이렇게 순진한 소리를 하더라?
(시우) 예?
우리 공무원이야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
[차분한 음악]
(동한) 아휴
어, 어디 가세요?
화장실
[한숨]
(수진) 어떡해요?
국장님께 보고드리셔야 되죠?
정보 오류가 난 게 몇 분쯤 되죠?
5분도 채 안 될 거예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수진 씨 가서 일 봐요
네
아, 예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알아요 한 번도 이런 적 없으셨잖아요
죄송해요
(명주) 제가 요즘 통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아유, 이런 변명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죄송해요
(하경) 잠깐 숙직실 가서 1시간 쉬고 오시는 거 어때요?
보고는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감사합니다
[잔잔한 음악]
(명주) 저, 과장님
과장님은 결혼하지 마요
이런 말씀 듣기 좀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과장님 파혼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솔직히 전 부러웠어요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하는 거지
저처럼 뭣도 모르고
무조건 해야 하는 줄 알고 결혼해서 애까지 낳으면요
하, 진짜 답도 없어요
과장님은 홀가분하게 편히 살아요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면서
과장님 시간 온전히 누리시면서요
- (학생1) 너 닮았어 - (학생2) 아, 뭔 소리야! [학생들이 시끌시끌하다]
(동한) 어?
(직원2) 학생들, 저 따라올게요
(학생들) 네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향래) 여보세요?
어, 그, 보미 오늘 학교 안 갔나?
(향래) 오늘 현장 학습 갔는데?
근데 당신이 그건 왜?
여기 와 있는데, 보미?
'여기'?
(동한) 여기 기상청
아무튼 일단 끊어
[통화 종료음]
보미 얘가…
[잔잔한 음악]
아이, 왔으면 아빠한테 전화를 하지
(동한) 그랬으면 아빠 백으로
친구들이랑 그냥 여기저기 싹 다 구경시켜 줬을 텐데
아빠 공무원이잖아요
(보미) 공권력을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되죠
(동한) 그렇지, 맞아, 맞아
[동한의 웃음]
그래서 어디 어디 구경했어?
예보국이랑 지진과요
(동한) 어
직접 보니까 어때?
우리 기상청 사람들 고생 엄청 많이 하지?
(보미) 그걸 뭐, 꼭 봐야 아나
어?
(보미) 엄마가 그랬거든요
기상청 사람들 고생하는 건 똑똑한 사람들만 안다고
그래
(동한) [웃으며] 그렇지
그걸 아니까 우리 딸도 똑똑한 사람이네, 그렇지?
[동한의 웃음]
아니, 그러면 뭐, 내일도 와?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는데요? 왜요?
아니, 구내식당이 진짜 맛있거든 맛집이야
아빠가 밥 사 줄게, 어? 꼭 전화를 해
아니, 그 정도 공권력은 얼마든지 써도 되잖아
뭐, 생각해 보고요
그래
(동한) 생각해 봐
긍정적으로
[동한의 웃음]
갑자기 거긴 왜 간 건데?
말했잖아, 체험 학습 간 거라고
그래서 하필 기상청을 왜 간 건데?
(보미) 선생님이 내가 가려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생기부에 과학과 관련된 체험도 중요하대서
그래서 간 거야
그럼 엄마한테 미리 말을 하든가
말했으면 못 가게 했을 거잖아
뭐?
엄마 항상 그러잖아
(보미) 아빠 일에 지장 주지 말자면서
중요한 일 있어도 연락 안 하고
맨날 혼자서 참기만 하고
나도 알 건 알아야 하잖아
[어이없는 숨소리]
네가 뭘 알아야 되는데?
아빠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보미) 아, 얼마나 중요한 일 하길래
엄마랑 나랑 내팽개치고 일에만 매달려 살았는지
나도 알 권리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뭘 알게 됐는데?
오늘 한 번 가 보고 어떻게 알아?
그래서 또 가시겠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향래의 어이없는 숨소리]
[차분한 음악]
[동한의 웃음]
[시우가 피식 웃는다]
아, 뭐 좋은 일 있으세요?
(동한) 아니, 아까 우리 딸이
기상청에 체험 학습 왔더라고
(시우) 오 [동한의 웃음]
(동한) 이게 진짜 신기한 게 뭔 줄 아냐?
우리 딸이
나를 좀 닮은 거 같더라고
[시우의 웃음]
(시우) 아, 그거는 신기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 아니에요?
(동한) 당연한 거지
[함께 웃는다]
참 이게, 자식이라는 게 참 신기해
우리 딸만큼 힘든 게 없거든
근데 또
우리 딸만큼 날 웃게 만드는 사람도 없는 거야
아휴
그렇게 좋으세요?
너도 결혼해 가지고 아기를 낳아 봐
(동한) 이거 말로 어떻게 설명을 하냐, 응?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거는 모르는 거야
(시우) 아니, 집까지 나오셨잖아요
그런데도 가족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래도 가족밖에 없지
(동한) 시우야, 너는
나처럼 이렇게 지방으로 계속 돌고 그러지 말고
씁, 가족이랑 어떻게든 딱 붙어 있어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게
이게 안 좋은 거 같아 [휴대전화 진동음]
이게 보면, 어?
(향래) 퇴근하고 잠깐 집에 좀 들러
(동한) 아, 이게 웬일이냐? 야, 우리 와이프…
- (시우) 아아, 예, 네, 네 - (동한) 야, 너
- 먼저 들어가라 - (시우) 아, 예
(동한과 시우) - 어, 나 집, 저, 갔다 올게 - 아, 예, 예, 다녀오세요
[웃으며] 알았어
(시우) [웃으며] 아, 네 [동한의 웃음]
- (시우) 다녀오세요, 네 - (동한) 어, 어
[도어 록 작동음]
[태경의 거친 숨소리] (태경) 안녕하세요
예, 또 뭡니까?
(태경) 이것 좀 받아 주세요
어, 이게 뭐예요?
김치요
(태경) 저희 엄마가 지난번에 반찬 맡아 주셨다고
답례로 전해 드리래요
아, 이러실 필요 없는데
(태경) [웃으며] 아…
저기, 죄송한데
저 잠깐 들어가서 손 좀 닦아도 될까요? [석호의 난처한 숨소리]
아, 이거 들고 오다가 뭐가 묻었는지
[킁킁거리며] 아, 손에서 자꾸
김치 냄새 나는 거 같아요 [석호가 질색한다]
[흥미로운 음악] (석호) 잠시만요, 어유
- (석호) 어? 잠시만요 - (태경) [웃으며] 네
(석호) 저기요? 저기요! [태경이 감탄한다]
으아, 아…
[도어 록 작동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어, 여기 왜 서 계세요?
(수자) 어? 어…
어, 그게, 저…
들어가세요
어, 아, 아, 아니야, 됐어
(수자) 저기, 이거
- (시우) 아… - (수자) 이거
총각이 가지고 들어가
[수자의 웃음] 아,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들어가세요
아니, 저…
그럼 잠깐…
아, 네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수자의 힘주는 신음]
엄마가 여긴 왜 또 왔어?
내가 어디 못 올 데 온 것도 아니고
밑반찬 주러 왔다, 됐냐?
팀원들도 있는데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고 그러지 마요
그럴수록 내가 더 자주 들락거려야지
시커먼 사내가 둘씩이나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네
너도 시집가서 딸내미 낳아 봐라 걱정이 되나 안 되나
(하경) 아무튼 좀만 앉아 계시다가 가요
곧 엄 선임님 오는데 엄마 보면 불편해
더 있어 달라고 사정해도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
(수자) 어이구, 참 나
(시우) 어, 저, 이것 좀 드시고…
(수자) 어? 아유, 고마워요, 총각
(시우) 아, 네
(수자) 아니,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안 내려와
(하경) 누구? [흥미로운 음악]
[수자의 당황한 탄성]
어, 저기, 저기, 그…
[물 내려가는 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석호) 예
(태경) 아, 감사합니다, 예
[문이 탁 닫힌다]
[태경의 탄성]
[태경의 놀란 숨소리]
문학에 조예가 깊으신가 보다
예, 뭐, 그 정도는 기본 교양으로 봐야죠?
잘난 척은
(석호) 예?
아, 훌륭하시다고요, 예
예
[한숨 쉬며] 아, 이런 거 안 보내 주셔도 괜찮은데, 참
(태경) 아, 저희 집이 원래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된단 주의거든요
그리고 반찬이 왜 안 필요해요?
뭐, 이슬만 먹고 살아요? [석호의 한숨]
그때그때 해 먹는 편입니다
깔끔한 스타일이구나?
(태경) 외동, 장남인가?
저 외동인데요
아, 본가는요?
수원이요,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에이,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죠
제 동생이랑 같은 팀이라면서요
예, 뭐, 아무튼 그…
어머님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고요
다음부터는 안 주셔도…
같은 팀, 같은 아파트 위아래 층
와, 이거 진짜 기가 막힌 인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원래 이 근방에 기상청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석호) 씁, 이 아파트만 해도
제가 아는 기상청 직원들만 여섯이나 됩니다
어, 많이 사는구나
[석호의 한숨]
[부드러운 음악]
[헛기침]
(석호) 그…
뭐, 자료 조사가 미흡해서 그렇지
나름, 예 내용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부분이요?
뭐?
누구한테 뭘 알아보라고 보내?
저기, 내 말 좀 들어…
(하경) 엄마 진짜 왜 이래! [수자가 놀란다]
하, 내가 분명히 얘기했지?
신석호 주임은 내 부하 직원이라고
아, 나도 나지만 그 사람한테 이게 무슨 실례야
내가 어떻게 얼굴을 보라고!
[하경의 한숨]
그렇게 기댈 데가 필요하면 엄마 팔자나 고쳐!
(수자) 이, 이게 듣자 듣자 하니까
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자식이 걱정돼서 잠 못 자는 어미 심정을 네가 알아?
다 저 위해서 이러는 거구먼 싸가지 없이
뭐? '엄마 팔자나 고쳐'?
(시우) [작은 목소리로]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수자) 것봐, 이 총각도 그건 좀 아니라잖아
아니요, 그…
(시우) 과장님 말고
어, 어머님이요
[익살스러운 음악]
어?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한 거라면서 밀어붙이는 일 중에
자식이 행복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수자) 아니, 아니, 아니, 그럼
딸자식이 한 살 한 살 나이만 들어 가는데
그냥 지켜만 봐?
좋은 기회, 좋은 남자 좋은 나이 다 지나 보내고?
아무리 좋은 기회라고 해도 본인이 싫다면 소용없지 않을까요?
(수자) 그거는 총각이 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결혼은 말이야, 응?
나 결혼 안 해요
뭐?
나 결혼 안 할 거라고, 엄마
아이고, 이게, 밤이 늦었다
어여 자고 내일 다시 얘기해
(하경) 진짜야
결심했어, 나 결혼 안 할 거야
(수자) 얘, 얘, 얘, 하경아
아이고, 뭘 그렇다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을 하고 그래
그래, 오늘은 엄마가 좀 심했다
내가 쪼끔 지나쳤다 치자고
결혼 안 할 거야, 엄마
[차분한 음악] 오늘부터 나 그, 비혼주의
(하경) 그거 할 거라고
그러니까 앞으로 내 앞에서
결혼, 맞선, 남자 얘기 꺼내지도 마요
하경아
나 오늘 배웅 못 나가 조심히 들어가세요
[당황한다]
[문이 탁 여닫힌다]
[시우가 숨을 후 내뱉는다]
(석호) 그래서 악어 뒤 발가락이 네 개인 거거든요
(태경) 와…
진짜 과학자시구나
아니요, 뭐 과학자까지는 아니고…
(태경)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동물에 대해 아는 것도 많으시고
과학자라서가 아니라
제가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 그래요?
어, 그럼 펭귄은요?
[밝은 음악] (태경) 펭귄에 대해서도 좀 아세요?
펭귄이요?
[태경이 살짝 웃는다]
(태경) 실은 제가 다음 작품 구상 중인데
주인공이 펭귄이거든요
펭귄에 대해서도 좀 아시나 해서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펭귄입니다
(태경) [놀라며] 어, 진짜요?
와, 잘됐다!
그럼 저 좀 도와주세요
(석호) 예? [태경의 웃음]
[석호의 멋쩍은 웃음]
(태경) 네?
[웃으며] 아유, 뭐…
(향래) 당신이 얘기해
(동한) 뭐를?
당신이 보미한테 직접 얘기하라고
(동한) 그러니까 뭘 얘기하냐고
다음 주에 기상청에 체험 학습 오지 말라고
당신 바쁘잖아
아니, 난 괜찮아
(동한) 전혀 방해가 안 돼
그게 원래 있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보미 보니까 내가 좋아
내가 싫어
[무거운 음악]
당신이랑 보미가 거기 기상청에 같이 있는 거
내가 싫다고
[동한의 한숨]
뭐 하러 따라와?
아, 택시 잡아 드릴게요 날도 더운데
[수자의 한숨]
옛날에는
여름이 덥다 덥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날씨도 요즘 사람들 성격 닮아 가 그런가
어째 이렇게 지독한지
이렇게 더운데도 열심히 사는 거 보면
다들 대단한 거죠
대단하긴, 지독하다니까
(시우) 지독해야만 살아남는 세상이 돼 버린 것도
사실이잖아요
내가 그랬나?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시우의 웃음]
날씨나 잘 맞혀
아, 그거는 잘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말이나 못하면…
(시우) 아, 저, 어머님, 그리고 과장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홧김에 그런 걸 거예요
비혼주의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쉽게 결정하고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잔잔한 음악]
하경이 걔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그런 말을 그렇게 홧김에 할 애가 아니거든
[숨을 들이켠다]
내가 너무 밀어붙였나?
[수자의 한숨]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시우) 택시 타고 가셨어요
[잔잔한 음악]
우리 엄마 좀 유별나지?
(시우) 음…
조금?
이 아니고 많이?
[시우의 웃음] 딸 가진 부모는 원래 다 그렇거든?
그거 알면서 아까 왜 그랬어요?
뭐가?
비혼주의자요
(시우) 그게 은근히 듣는 사람 입장에선
충격이 크다던데
아, 빈말이라도 그건 아니죠
빈말 아닌데?
나 진짜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네 말대로 결혼이 전제된 연애는 좀 갑갑하기도 하고
서로한테 짐이 되는 관계는 나도 싫거든
피곤하다
가서 자자
[시우의 한숨]
[한숨]
[한숨]
[동한의 한숨]
[동한의 힘주는 숨소리]
[한숨]
[새가 지저귄다]
(하경)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의 낮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 문제는 연일 지속되는 이 열대야로
시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업무 집중 방해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는 건데요
그, 표를 보시면…
[문이 스르륵 열린다]
(박 주무관) 청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청장님이 왜?
(봉찬) 아, 회의 중이잖아, 왜?
[봉찬의 한숨]
[긴장되는 음악]
어이, 진 과장
어제 오후에
방재 기상 포털 사이트에다 잘못된 정보 올린 적 있어?
(하경) 네, 아주 잠깐…
오류 확인하고 바로 수정했습니다
[봉찬의 한숨]
[안경을 툭 내려놓는다]
그래서 그거 지금 얘기하는 거야?
(봉찬)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를 했어야 될 거 아니야!
아니, 오보청 뭐, 구라청도 부족해서
이젠 뭐, 뭐, 뭐?
'오류청'?
이게 뭐 하는 거야, 지금
아이고
청장님 어디 계셔?
(박 주무관) 예, 지금 청장실에 지금…
(봉찬) 아휴
아, 예, 청장님
아, 예, 예
(하경)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하, 씨, 이건 또 언제 봤대?
[한숨]
[한숨] [코를 훌쩍인다]
(수진) 아, 미쳤나 봐 기자들, 진짜!
아니, 이런 거까지 이렇게 기사를 올리면 어쩌자는 거예요?
우린 뭐, 사람도 아닌가
자주 있는 실수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아니, 처음 있는 실수인데 이런 거까지 꼬투리 잡으면 어떡해
[한숨]
[명주의 한숨]
[의미심장한 음악] (김 주무관) 아니, 근데 사회부 기자가 왜 기상청에 왔어?
채 기자님은 왜 저기 있는 걸까요?
(유진) 선배
이건 제가 놓친 게 아니라 일부러 안 쓴 거거든요?
[한숨 쉬며] 아니
이런 사소한 오류까지 언론에서 씹으면
기상청 사람들 진짜 일 못 해요
네, 그럼요
[한숨]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네
네
[한숨]
얘기 좀 하자
(유진) 뭔데 그래?
기상청 방재 포털 사이트 정보 오류
이 소스 제공한 거 너지?
나 아니거든?
내가 다 봤거든?
(기준) 너희 회사 칼잡이인지 뭔지
그 허 기자라는 사람이랑 너랑 속닥거리는 거
나 아니라고
넌 대체 애가 왜 그래?
(기준) 기상청 그만큼 출입했으면 우리 사정 뻔히 알 거고
그럼 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는 거잖아
너희는 실수 안 해?
오타 낼 때 없냐고
[어이없는 숨소리]
오빠는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들어서 뭐 하니?
넌 맨날 아니라고 발뺌만 하는데
[차분한 음악]
어떻게 나랑 결혼했어?
뭐?
그렇게 내 말 못 믿을 거면서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왜 나랑 결혼까지 했냐고, 어?
아니, 유진아 왜 또 얘기가 글로 튀는 건데
맥락 없이!
(기준) 난 지금 기사 얘기하는 거잖아
나는 지금 두 사람 간의 신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나를 신뢰 못 한다는 건
(유진) 기자 채유진을 떠나서
오빠의 아내로서도 너무 중요한 문제 같은데
아니야?
(봉찬) 진 과장
자네 자꾸 팀원들 관리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죄송합니다
(봉찬) 아니, 이게 무슨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왜 그래?
이게 무슨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어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책상을 탁탁 치며] 여름철 방재 기간, 이게, 이게
잘 버틸 수 있겠냐고, 응?
아,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얘기해
그래야지 내가 뭐 인원을 보강하든 뭘 할 거 아니야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태풍 올라오면은 그때는 뭐니 뭐니 해도 팀워크가 생명이야
명심하라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 제주도 내려갈 사람 정했어?
네?
아니, 이제 그, 영향 태풍 슬슬 올라올 시기잖아
(봉찬) 그러면 태풍 센터 내려갈 사람 정해야 되는 거지
안 정했어?
아, 아직…
[무거운 음악]
[명주의 한숨]
[명주의 한숨]
[명주의 놀란 숨소리]
[머뭇거리는 숨소리]
저…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명주) 그…
우리 애들 데리러 가야 돼서…
(동한) 어, 어, 들어가 괜찮아, 들어가
예, 저, 수진 씨
(명주) 이따 조 주임 오면 그, 내 업무 인계 좀 부탁해
중요한 사항은 내가 전화하겠다고
네, 그럴게요
고마워
[한숨] [문이 스르륵 열린다]
진 과장님은 혼나고 계신데
퇴근을 하시네요 [문이 스르륵 닫힌다]
정보 오류 낸 건 오 주임님이지만
그 사실을 국장님께 보고 안 한 건 과장님이잖아
(하경) 오 주임님은요?
(석호) 그, 조금 전에 퇴근하셨습니다
아, 애들 데리러 가야 된다 그래서 내가 그냥 가라 그랬어
(하경)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다들 퇴근들 하시죠, 그럼
- (석호) 예 - (수진) 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정해서 본인한테 통보해
내려가면 못 있어도
뭐, 한 두어 달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차분한 음악]
[풀벌레 울음]
무슨 일 있어요?
(하경) 응?
아니, 왜?
아니, 국장님 방 다녀온 뒤로 계속 고민 중인 얼굴이라
아, 태풍 센터 때문에
(하경) 곧 있으면 영향 태풍 시즌이라
팀원 중 한 명을 내려보내야 할 거 같아서, 제주도로
아…
네가 가 줄래?
[무거운 음악]
네가 가라, 이시우 특보
[다가오는 발걸음]
우리 좀 떨어져 있자
(기준)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떨어져 있자고
그러는 게 서로한테 좋을 거 같아
유진아
각자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
(유진) 이대로도 우리가 괜찮은지
솔직히 오빠한테도 그런 시간 필요하잖아
진심이에요?
공적인 업무를 쉽게 결정하진 않아
[한숨]
그 말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네요?
(하경) 응
너만 괜찮다면
[기준의 한숨]
(기준) 너 설마
오늘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 근데 그건 누가 봐도 그 상황은 오해할 만했고
네가 나였어도 화냈을 상황이잖아
아니
나는 오빠 말을 먼저 들어 봤을 거야
[기준의 한숨]
(기준) 뭐, 그래서
너 정말 나가겠다고?
나도 숨 좀 쉬고 싶어
(유진) 한집에서 오빠가 인상 쓸 때마다
또 나 때문에 저러나 얼마나 숨 막히는지 알기나 해?
내가 또 뭘 그렇게 널 숨 막히게 했니?
지금도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잖아
이해받지 못하는 관계가
얼마나 답답하고 숨 막히는지 알아?
그러는 넌 날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긴 하고?
(기준) 너라는 사람 사랑해서
10년 사귄 여자까지 버리고 너랑 결혼했는데…
나 때문에 10년 사귄 여자까지 버렸다는 그 말 이제 좀…
아, 이제 좀 제발 그만하면 안 돼?
그런데도 네가 내 사랑을 못 믿겠다고 하니까 그러지
(기준) 그래서 혼인 신고도 못 하겠다 그러고
미래가 불안하단 소리나 듣고
그러니까!
(유진) 그냥 우리 좀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고
서로를 위해서 어떤 게 최선인지
[한숨]
[유진이 캐리어를 드르륵 끈다]
(시우) 이런 밤은 생각이 많아진다
[잔잔한 음악]
[시우의 한숨]
(기준) 하경인 결혼할 상대가 아니면
진심으로 만나지 않아요
그건 알고 시작한 거죠?
(하경) 결혼이 아니라면
과연 이 연애의 끝엔
뭐가 있을까?
[숨을 들이켠다]
[한숨]
(시우)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복잡한 마음은
또다시 많은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불러온다
[휴대전화를 툭 내려놓는다]
(시우) 그렇게 우리들의 잠 못 드는 열대야는
깊어만 가고 있었다
(기준) 너 이렇게 나가면 진짜 나랑 끝이야
그거까지 생각한 거 맞아?
(봉찬) 태풍 센터 정했냐고
어, 제가 갑니다
(시우) 기상청하고 나, 연애와 일
분명하게 선 긋고 싶은 거 알아요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거 기분 참 별로라고요
(하경) 나도 잘해 보고 싶다고, 너랑
(시우)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사람 헷갈리게 해요?
[콜록거린다] (직원3)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기 학생이 쓰러졌어요 [동한이 놀란다]
[사이렌이 울린다] (수진) 네? 사고요?
(유진) 이시우요
기상청 직원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