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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모 13

(지운) 상처가 덧난 듯싶습니다


 상처를 봐야겠습니다


 [휘의 힘겨운 숨소리]


 [산새 울음]


 내가


 [떨리는 숨소리]


 내가 하겠습니다


 [비밀스러운 음악]


 [바람이 쏴 분다]


 저하


 이게


 나의 비밀입니다


 저하께서 사라졌다니!


 (수하1) 행렬이 산길을 지나던 중


 변복한 내금위장과  군사들이 나타나


 세자 저하를 빼돌렸다 합니다


 내금위장이?


 하여 아직도 저하는  찾지 못했단 말이냐!


 (수하1) 집의께서  내금위장을 붙잡았다 하니


 곧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긴장되는 음악]  [성난 숨소리]


 [새가 지저귄다]


 [형설의 힘겨운 신음]


 [빗장이 덜컥 열린다]


 [힘겨운 숨소리]


 전하께서


 저하의 목숨만은  살리라 명하셨나 보군


 [힘겨운 숨소리]


 폐세자를 명하고  유배까지 보내면서


 자네를 시켜  저하를 빼돌리려 하시다니


 [석조의 한숨]


 솔직히 조금 놀랐네


 여장까지 해서  눈을 돌릴 생각을 하다니


 [힘겨운 숨소리]


 (석조) 담이라 했던가?


 [의미심장한 음악]


 그 아이와 많이 닮았더군


 하긴


 쌍생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렇게까지 해서


 저하를 찾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형설) 자네 말대로


 이미 폐세자가 되신 분이네


 이제 그만


 [형설이 콜록거린다]


 그만 저하를 놓아주게나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네


 상헌군께서 선택하실 일이지


 [힘겨운 숨소리]


 황학산 인근 숲에서


 의심스러운 남녀를  보았다는 자가 있었습니다


 (석조) 내가 올 때까지  여기를 잘 감시하고 있거라


 [문이 덜컹 닫힌다]  [분한 숨소리]


 [산새 울음]


 [당황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휘의 힘겨운 신음]


 치, 치료부터 해야겠습니다


 [잔잔한 음악]


 (지운) 불을 피울 만한 곳을 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밝은 효과음]


 [풀벌레 울음]


 (수하2) 어, 여기  핏자국이 있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석조)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 근처를 샅샅이 수색해라


 반드시 저하를 찾아야 한다  알겠느냐!


 (수하들) 예!


 (수하2) 가자!


 (석조) 자은군의 행방은 아직인가?


 (수하3) 계속 수색 중입니다


 [풀벌레 울음]  [밤새 울음]


 [아련한 음악]


 왜 나오셨습니까?


 (지운) 뭐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지…


 [머뭇거리는 숨소리]


 혼자 있으려니 좀…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입니까?


 나에 대해


 많이 놀랐다는 거 압니다


 정 사서를 속인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요


 예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운) 저하가 아닌


 저를요


 여린 그 몸으로


 어떻게 그리 힘든 일을  홀로 감당하셨을지…


 송구합니다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잔잔한 음악]


 (휘) 쌍생이었습니다


 이 나라 세손이었던  나의 오라버니와


 오라버니가 죽고


 제가 대신 그 자리에  앉게 되었지요


 사람들을 속여 가며


 지금껏 남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힘든 일은 나중에


 천천히 말씀해 주십시오


 (지운) 지금은 저하의 몸이  더 우선입니다


 그러니 굳이 설명하진 마십시오


 지금은


 [이월의 겁먹은 신음]  (어린 지운) 안 돼!


 안 됩니다, 아버지, 안 돼요


 [담이의 놀란 숨소리]


 [어린 지운의 떨리는 숨소리]


 (휘) 어쩌면 나중에도


 모든 걸 다  말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무 말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바뀐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부드러운 음악]


 지금 제 앞에 계신 분이  저하시지 않습니까


 (지운) 저는 그거면 됩니다


 저하만 계신다면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는


 [풀벌레 울음]


 [의미심장한 음악]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상선) 주시게, 내가 하겠네


 [당황한 신음]


 예


 [긴장되는 음악]


 [긴장되는 효과음]


 [비밀스러운 음악]


 [가온의 거친 숨소리]


 (가온) 왜 나를 도운 겁니까?


 (혜종) 사람을 죽이고자 한다면  단호해야 할 터인데


 아무래도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가온) 답하시지요


 내금위장을 시켜 내 뒤를 밟고  날 도운 이유가 무엇인지


 (혜종) 그자들을 죽인  너의 이유는 무엇이냐?


 그리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였느냐?


 그것이 아니면 네 울분이  풀릴 것이라 생각하였느냐?


 [가온의 거친 숨소리]  [북이 텅텅 울린다]


 (의금부도사) '대역죄인 강화길을  참수에 처한다'


 [사람들이 술렁인다]


 [망나니의 기합]  [사람들의 비명]


 (가온)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이 나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제석'


 (혜종) '낡은 것을 몰아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네 아비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약속하며


 나눠 가진 것이다


 난


 그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벗을 잃고


 자식마저 버린


 못난 왕이 되어 버렸구나


 하나


 단 한순간도  그 약속을 잊은 적 없었다


 내 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 살아갈 것이다


 네 아비와 꿈꾸었던 그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니라


 (상선) 전하, 탕약을 들이겠습니다


 [한숨]


 [의미심장한 음악]


 대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는데


 (상선) 누가 있는가 하였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옅은 신음을 내뱉는다]


 서책을 음독 중이었느니라


 (상선) 예


 [문이 달칵 닫힌다]


 (혜종) 은서야


 관악산 중턱 너른 바위 뒤에


 네 아비의 무덤이 있을 것이다


 [무거운 음악]


 가 보거라


 [화롯불이 타닥거린다]


 (신하) 전하!  [달려오는 발걸음]


 (신하들) 전하!  [긴장되는 음악]


 전하!


 [신하들이 연신 외친다]


 [신하들이 통곡한다]


 (신하들) 전하!


 [무거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상선) 전하!


 (신하들) 전하!


 전하!


 전하!


 (상선) 전하!


 (신하들) 전하!


 [신하들이 연신 '전하'를 외친다]


 (내관) 상위복!


 상위복!


 상위복!


 [산새 울음]


 [아련한 음악]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계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운)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직


 아픕니다, 많이


 괜찮으실 겁니다


 제가 저하의 곁에 있을 테니


 나와 함께 있으면


 평생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할 겁니다


 (휘) 가족도 벗도


 모두 포기한 채


 숨어 지내야 될 터이니


 (지운) 괜찮습니다, 저는


 제가 꿈꿔 온 삶과


 비슷하기도 하니


 [부드러운 음악]  [옅은 웃음]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작은 초가집을  구할 것입니다


 아마도 바닷가 근처가 좋겠지요?


 물고기를 잡을  배를 타야 할 것이니


 해 질 녘쯤 집으로 돌아와


 제가 잡은 물고기로


 저하께 맛있는 저녁밥을  차려 드리지요


 또 장날이 되면  함께 나들이를 나가는 겁니다


 그곳에서


 저하께 드릴 작은 선물을


 몰래 살 것이고요


 혹 뭐 갖고 싶은 건 없으십니까?


 [옅은 웃음]


 천천히 생각해 보지요


 정 사서에게 받고 싶은


 그 선물


 [풀벌레 울음]  [새가 지저귄다]


 [형설의 힘겨운 신음]


 [수하4가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형설) 여보게, 그 물 좀 주시게


 [형설이 콜록거린다]


 (수하4) 여기 있네  [형설의 힘겨운 숨소리]


 [형설의 거친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수하4의 힘겨운 신음]


 [형설의 거친 숨소리]


 [형설의 힘주는 신음]


 군대감!


 [현의 다급한 숨소리]  (현) 괜찮으십니까?


 군사들이 이리 가는 것을 보고  찾았습니다


 어찌 된 겁니까? 저하께선요?


 (형설) 나루에서 헤어졌습니다


 아마 황학산 쪽으로  향하였을 것입니다


 정석조가 군사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갔으니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저하를 찾아야 합니다


 가시죠


 [다급한 숨소리]


 [긴박한 음악]


 [형설의 거친 숨소리]


 [산새 울음]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수하3) 여기 핏자국이 있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석조의 거친 숨소리]


 (수하2) 저기, 저쪽입니다!


 [시끌시끌하다]


 (지운) 산에서 기다리시라니까


 많이 힘드실 텐데요


 (휘) 김 상궁과 홍 내관이  저를 많이 걱정할 것입니다


 한시가 급하니


 아무래도  곧바로 가는 것이 좋겠지요


 저와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 쓰여 그런 건 아니고요?


 [살짝 웃는다]


 뭐라고요?


 북성산 너머에  안가가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예


 그곳으로 가면  모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숨]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셔야겠습니다


 (지운) 이대로는  너무 눈에 띌 것이니


 (상인) 여기 있습니다


 [엽전이 짤그랑거린다]


 [엽전을 탁 건네주며] 고맙네


 (상인)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음악]


 (지운) 가시지요


 옷을 갈아입을 만한 곳을  봐 두었습니다


 아, 예


 [풀벌레 울음]  [산새 울음]


 [긴장되는 음악]


 아무래도 흩어져서  찾아봐야겠습니다


 (현) 저하께서 안가로  가셨을 수도 있으니


 내금위장께선  그곳에 다녀와 주십시오


 저는 근처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예


 [휘의 어색한 신음]


 무엇입니까?


 시장하실 거 같아서요


 드셔 보십시오


 입맛에 꼭 맞을 것입니다


 [잔잔한 음악]


 옷은 잘 맞으십니까?


 (휘) 예


 이제야 제 옷을 입은 듯


 편안하네요


 너무 아쉬워 마십시오


 이곳을 떠나면 제가 매일  어여쁜 옷을 사 드릴 테니


 (지운) 그곳에선 저하께서  치마를 입으시든 댕기를 드리시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실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질 않습니다


 궐을 떠나 진짜 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요


 (지운) 아, 저하


 잠시만 계십시오


 제가 사야 할 것이 있었는데  깜빡했습니다


 (휘) 아, 무엇을…


 (지운) 드시고 계십시오, 저하


 잠시면 됩니다!


 [옅은 웃음]


 [바람이 살랑거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긴장되는 음악]


 [휘의 힘겨운 신음]


 [숨을 들이켠다]


 [헛기침]


 [의미심장한 음악]


 [칼 뽑는 소리가 챙챙 울린다]


 [김 상궁과 복동의 겁먹은 신음]


 (수하5) 이 둘을 살리고 싶으면  검을 버려라!


 [복동과 김 상궁의 말리는 신음]


 정녕 네놈들이…


 [김 상궁과 복동의 겁먹은 신음]


 [분한 숨소리]


 [휘의 힘겨운 숨소리]  [산새 울음]


 [휘의 성난 숨소리]


 이게 무슨 짓이냐!


 송구합니다


 하오나 이젠  궐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궐이라니


 [어두운 음악]


 (휘) 외조부님께서


 여길 어찌…


 전하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극적인 음악]


 속히 환궁을 준비하시지요, 저하


 [당황한 숨소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시다니요?


 [긴박한 음악]


 [가쁜 숨소리]


 [지운의 가쁜 숨소리]


 [극적인 음악]


 (백성1) 아, 왕이 죽었다니  그게 참말인가?


 (백성2) 그렇다니까


 아까 철수하던 군사들 못 봤어?


 (백성1) 왕이면 뭐 혀?  죽으면 다 이렇게 똑같은디


 세상사 다 무상하다니께, 참


 (원산군) 독살이라니?


 (종친) 전하를  마지막에 뵈었던 의원의 말이


 옥체가 변색이 된 게  분명 독살일 것이라 하였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기가 찬 숨소리]  [의미심장한 효과음]


 뭘 그리 고민하시옵니까?


 (창천군) 더 늦기 전에


 어서 후계를 지목해 주시옵소서  대비마마


 (대비) 국상 중입니다


 재궁을 앞에 두고  어찌 그런 말을 꺼내는 겝니까?


 (창천군) 전하께서  갑자기 승하하신 이때


 세자의 자리마저 비어 있으니  민심이 동요할 것입니다


 환난이 닥치기 전에  어서 보위를 정하셔야 하옵니다


 (대신들) 보위를  정하셔야 하옵니다


 [대신들의 헛기침]


 한데 상헌군은  왜 아직 보이질 않는 게요?


 [문이 달칵 열린다]


 [긴장되는 음악]


 [무거운 음악]


 (대신들) 저하


 아니, 세자가 여길 어찌…


 (기재) 소신 저하를 모시고 오느라


 잠시 늦었사옵니다


 [울먹이며] 아바마마


 아바마마


 [떨리는 숨소리]


 (창천군) 폐세자의 신분으로


 유배길을 이탈한 죄인이  궐에 들다니요


 국상 중인 궐 안에


 멋대로 죄인을 데리고 온  상헌군과 세자를


 모조리 잡아들이시지요


 왕실의 지엄함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마마


 아무리 죄인이라 하나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상례를  다하러 온 것까지


 어찌 벌을 한단 말이오?


 (대비) 세자가 아비에 대한  예를 다하도록


 잠시만 내버려 두시오


 마마, 엄연히  국법이란 것이 있사옵니다


 마마께서 하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나서 군사들을 움직이지요


 (창천군) 당장 가 상헌군과  세자를 잡아들이라 명할 것입니다


 (대비) 창천군!


 [문이 쾅 열린다]


 [긴장되는 음악]


 [문이 달칵 닫힌다]


 (기재) 내 대비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창천군께서는 좀 물러나 주시지요


 [창천군이 씩씩거린다]


 (대비) 아무리 그래도  세자를 데려오다니


 [코웃음]  대체 어쩌시려는 겁니까?


 (기재) 옥좌가 비었으니  어서 후계를 선택하셔야지요


 지금 폐세자가 된 이를


 다시 왕위에 올리기라도  하라는 말입니까?


 역모를 저지른 자를  올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역모라니요?


 제현 대군은 어디에 있습니까?


 [풀벌레 울음]  [훌쩍인다]


 [다가오는 발걸음]


 (휘) 겸아


 (제현 대군) 형님


 [훌쩍인다]


 송구합니다


 형님께서 제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하셨는데


 [무거운 음악]


 괜찮다


 다 괜찮을 것이다


 [한숨]


 괜찮을 것이야


 (창천군) 참으로 가관이지


 상례를 핑계로 폐세자가  종횡무진 궐을 활보하는 꼴이라니


 그것 때문에  이리 저를 보자 하신 것입니까?


 (창천군) 상헌군이  유배 간 세자까지 데려온 데에는


 다 꿍꿍이가 있지 않겠소?


 전하께서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들었소


 자칫하다간 우리도


 상헌군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될지 모른다 그 말이오


 (원산군) 우리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군대감이 나와 함께  권당을 도모하지 않았소


 (창천군) 그 일로 전하와  나의 사이가 틀어졌다


 의심하는 이들이 많소이다


 행여라도  그걸 이용하려 들기 전에…


 (원산군)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대감


 권당을 도모한 건 대감이시지요


 [어두운 음악]  저는 그저 창운군 대감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려


 말씀을 올렸던 것뿐이고요


 이제 와 발을 빼시겠다?


 (창천군) 군의 그 검은 속을  내 모를 줄 아시오?


 세자가 나가떨어지면  차례가 돌아올 거라 생각한 게지


 상헌군이 지키고 선 세자보다


 아직 어린 우리 제현 대군이  만만하였던 게지


 [코웃음]


 그리 잘 아시는 분께서  욕심을 내었을 때


 그에 따른 책임도  응당 져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뭐, 뭐요?


 (원산군) 부원군께서도 알다시피


 지금 상황에 전하께서 승하하시면


 제일 득을 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리 자명한 사실을


 상헌군께서도 모를 리 없었겠지요


 [분한 숨소리]


 (기재) 창천군께서  사병을 길렀습니다  [책장을 사르륵 넘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한숨]


 [장부를 탁 덮는다]


 사병을 기른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나


 이것만으론 역모라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창천군께서


 유생들을 주동한 일로


 상왕 전하와 갈등이 있었지요


 (기재) 전하께옵선


 창천군의 사병의 존재  역시 알고 계셨으니


 창천군께서  얼마나 두려우셨겠습니까?


 [어두운 음악]


 설마


 창천군이


 주상을 독살했다는 겁니까?


 [기재의 한숨]


 (기재) 선택하시지요


 역심을 품은 제현 대군인지


 아니면


 폐세자인지


 [중전의 초조한 숨소리]


 (상궁) 마마  부원군 대감 드십니다


 [창천군이 씩씩거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창천군의 한숨]


 [창천군의 힘주는 신음]


 어찌 됐습니까?


 원산군 그 작자와  일을 도모하는 게 아니었는데


 [한숨]


 안면 몰수를 해도 정도가 있지


 유생들 일로 문책을 받을까  염려된 아버지가


 왕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런 젠장


 [창천군의 분한 숨소리]


 이리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당장 사병을 부르시지요


 [긴장되는 음악]  예?


 (중전) 시간이 없습니다


 연통을 쓰십시오


 얼른요


 [긴장한 숨소리]


 [문이 쾅 열린다]  [신하들이 소란스럽다]


 이게 무슨 짓이냐!


 (관군1) 전하를  시해한 역적들이다


 당장 잡아들이거라!


 (관군들) 예!


 뭐라?


 (중전) 이놈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창천군) 네 이놈들!


 (중전) 이 손 놓지 못하겠느냐!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느냐!


 (창천군) 그 손 놓지 못할까!


 감히 중전마마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이놈들!  [중전이 소리친다]


 [신하들이 소란스럽다]  (중전) 이거 놓으라니까!


 놔라!


 이것들이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중전의 거친 숨소리]


 [창천군의 놀란 숨소리]


 [의미심장한 음악]


 (기재) 상선을 사주하여  전하의 탕약에 독약을 타셨다고요?


 (창천군) 뭐…


 [창천군의 당황한 숨소리]


 [작은 목소리로]  싸움을 거시려거든


 상대를 잘 고르셨어야지요


 상헌군


 (관군1) 끌고 가라!


 (관군들) 예!


 [중전의 거친 숨소리]


 이게 무슨 모함이오?


 [신하들이 흐느낀다]  (중전) 이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창천군) 이건 모함이야!


 (신하들) 마마!


 (창천군) 상헌군!


 (신하들) 마마!


 [풀벌레 울음]


 (제현 대군) 한데  여긴 어찌 오신 겁니까?


 [한숨]


 아바마마께서 가시는 길에


 인사라도 올리고 싶어 온 것이니라


 형님


 [다가오는 발걸음]


 (관군2) 뫼시거라  [관군들이 대답한다]


 [긴장되는 음악]


 [제현 대군의 당황한 신음]  (휘) 무슨 일이냐?


 (제현 대군) 형님, 형님!


 이거 놔!


 형님!


 이거 놔!  [제현 대군의 거친 숨소리]


 (휘) 제현 대군이 잡혀갔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중전과 창천군이


 전하의 독살을 사주했다 합니다


 [놀란 숨소리]


 어째서…


 부원군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 욕망을 채우려는 것엔


 이유 같은 건 없는 법이지요


 (기재) 보위를  오래 비워 둘 순 없으니


 속히 마음을 추스르십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면…


 내 앞에 선 이가


 [어두운 음악]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단 뜻입니다


 [허탈한 숨소리]


 (휘) 저는 이미 폐위된 세자입니다


 아바마마의 뒤를 이을 사람은


 제현 대군뿐입니다


 어서 그 아이를 풀어 주십시오


 저는 제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기재) 그럴 수 없습니다


 스승이었던 자의 도움을 받아  도망을 꾀하였다고요?


 왕명을 어기고 도망간 폐세자로  죽음을 맞는 거 외엔


 저하께선 선택지가 없습니다


 내금위장 윤형설은  그 팔다리를 자르고


 내관과 상궁은 당장 목을 베지요


 정지운 그자는 관노로 보내어


 평생 빌어먹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음악]


 너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진정 보여 주길 바라느냐?


 [떨리는 숨소리]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기재) 말하지 않았느냐


 욕망을 채우려는 것엔  이유 같은 건 없는 법이라고


 왕이 되십시오


 저하의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신다면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셔야지요


 게 누구 없느냐


 [문이 달칵 열린다]


 저하를 동궁으로 모시거라


 (관군들) 예


 저하!


 [칼 뽑는 소리가 챙챙 울린다]


 비키거라, 이게 무슨 짓이냐


 (관군3) 저하를 모시라는  상헌군 대감의 명입니다


 아무도 만나실 수 없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거칠게 싸운다]


 [현의 힘주는 신음]


 괜찮으십니까, 저하?


 형님


 (현) 무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궐을 나가시지요


 제가 모실 것입니다


 (기재) 칼을 거두시지요!


 내금위장과  동궁전 사람들론 모자라십니까?


 (현) 어찌 저하를  이리 험하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대군께서 멀쩡히 이곳에 계신 것이


 내 마지막 예우였다는 것을  모르시나 봅니다?


 [어두운 음악]


 원산군께서


 세자의 자리를 삭탈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지요?


 두 형제를


 대군이라는 이유만으로  봐드리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현) 이거 놓거라!


 - 형님!  - (현) 이거 놔!


 (현) 저하, 저하!


 [다급한 숨소리]


 저하!


 [석조의 한숨]  [달려오는 발걸음]


 [지운의 가쁜 숨소리]


 [한숨]


 어리석은 놈


 (지운) 저하께선 어디 계십니까?


 네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세자 저하를 만나야겠습니다


 폐세자를 빼돌려  대체 어찌하려 했던 것이야!


 (지운) 아버지!


 저하를


 봬야 합니다


 이제 네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석조) 곧 즉위식이 있을 것이니


 그만 돌아가거라


 [무거운 음악]


 하면


 저하께서 왕이 되신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안 돼, 안 돼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풀벌레 울음]  [화롯불이 타닥거린다]


 [훌쩍인다]


 [제현 대군의 다급한 숨소리]


 (제현 대군) 형님


 정말로


 저, 저의 조부님이


 아바마마를 죽이신 겁니까?


 아니죠?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떨리는 숨소리]


 매일 두려웠습니다


 언젠가 제가 형님 자리를  빼앗게 될까 봐요


 한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어마마마와 조부님의 욕심 때문에


 언젠가 이런 날이 올까


 그게 두려웠나 봅니다


 제가 죽을까 봐


 죽는 게 두려워서요


 미안하구나, 겸아


 [잔잔한 음악]


 (휘) 나는


 나만 이리 힘든 줄 알았다


 나만 두려운 줄 알았느니라


 아바마마는


 내가 죽였다


 [떨리는 숨소리]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니라


 [한숨]


 걱정 말거라


 내가 살려 줄 것이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라


 [문이 달칵 닫힌다]


 왕이 될 것입니다


 폐세자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내어


 왕으로 만드신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휘) 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현 대군을 살려 주십시오


 (휘) 제 사람들은 건들지 않겠다


 그것만 약속해 주십시오


 하면 기꺼이


 외조부님의 인형이  되어 드릴 것이니


 그것이면 되겠습니까?


 [어두운 음악]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문이 달칵 닫힌다]


 (관군4) 멈춰라!


 [몸싸움 소리가 요란하다]


 [관군들의 힘겨운 신음]


 [관군5의 힘겨운 신음]


 [거친 숨소리]  (휘) 모두 물러서라


 [애절한 음악]


 [울먹이며] 몸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으셨을 터인데


 (휘) [울먹이며]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안 됩니다


 아니라고 해 주십시오


 (지운) 저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함께할 것이라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와 나가시면


 제가 모실 터이니 제발…


 (휘) 이젠


 제 곁에 오시면 안 됩니다


 절대


 하면


 치료만


 (지운) 치료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경건한 음악이 연주된다]  [아름다운 음악]


 (통찬) 배!


 등!


 배!


 (복동) 주상 전하 납시오!


 상참을 시작하겠소


 [애절한 음악]


 (지운) 상처가 아물 때까지만  전하의 곁에 있겠습니다


 (하경) 신첩 원자를 생산하여  [신하들이 저마다 말린다]


 전하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옵니다


 (기재) 골치 아픈 일들은  제게 맡기시고


 후사를 잊는 일에만 몰두하십시오


 (휘) 명심하겠습니다


 (기재) 전하께선 좀 어떠하신가?  다치신 곳은?


 (어의) 다치시다니요?


 (지운) 다 알고 있었던 거야?


 (현) 그분이 잘못되면


 난 이제 견딜 수  없을 거 같다, 지운아


 그러니 정리했으면 좋겠다


 (지운) 현아, 이제는 나도  전하가 내 세상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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