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
(TV 속 사람들) ♪ 생일 축하합니다 ♪
♪ 생일 축하합니다 ♪
♪ 사랑하는 서윤이 ♪
♪ 생일 축하합니다 ♪
[TV 속 사람들의 환호성] (지호) 내 나이 9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밝은 음악] - (TV 속 여자1) 서윤아 - (TV 속 아이1) 네?
(TV 속 여자1) 소원 먼저 빌어야지
아, 맞다
(지호) 생일 초를 끄기 전에는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거
- (어린 지석) ♪ 사랑하는 누나의 ♪ - (현자) ♪ 사랑하는 지호의 ♪
(어린 지석과 현자) ♪ 생일 축하합니다 ♪
[어린 지석이 입바람을 후 분다]
어서 묵자
[익살스러운 음악] [종수의 헛기침]
(지호) 하지만 가부장제를 따르는 남부 가정에서
- (어린 지석) ♪ 사랑하는 누나의 ♪ - (현자) ♪ 사랑하는 지호의 ♪
(어린 지석과 현자) ♪ 생일 축하합니다 ♪
(지호) 딸내미가
생일 소원 같은 걸 빌 수 있을 [어린 지석이 입바람을 후 분다]
어서 묵자
[한숨] (지호) 리가 없잖아
어서 묵자, 어서 묵자, 어서 묵자
[늘어지는 효과음] 어서 묵자
[옅은 탄성]
(수지와 호랑) ♪ 사랑하는 지호의 생일 축하합니다 ♪
[수지와 호랑의 환호성]
(지호) 스무 살이 되어서야 [밝은 음악]
내 인생 처음으로 소원을 빌 수 있었다
[수지와 호랑의 환호성]
(호랑) 생일 축하해
(지호) 매년 소원은 똑같았다 [지호의 시원한 숨소리]
저 꼭 훌륭한 작가가 되게 해 주세요
(지호) 그리고 10년 뒤
나는 진짜
[흥미진진한 음악] 작가가 되었다
- 이혼해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수희야
- (오스카) 제발 - 난 할 말 끝났어, 갈게
[긴장되는 음악]
[침을 꿀꺽 삼킨다]
(지호) 멜로드라마의 보조 작가
[빨리 감기 효과음] 보조 작가 5년 차
이제는 서브 라인 정도는 쓸 수 있는 짬밥이지만
(수희) 아줌마!
(가정부) 아이고머니나! 아버지, 어머니, 아이고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사장님께서 아기 옷가지들 치우라고 하셔...
[거친 숨소리]
(수희) 이리 내요!
나가요! 다시는 내 방에 얼씬도 하지 마!
[오열하며] 내 아가
용서하지 않겠어, 오스카
[떨리는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못마땅한 신음]
[여자2의 웃음] [남자1의 탄성]
(지호)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자금 조달
아니, 회장님, 이 시간에 어떻게...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TV 속 회장) 감히 네가 이 박준하를 거역해?
내 회사에서 당장 나가!
예, 나가죠
그리고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죠
[오스카가 절규한다]
[TV 속 오스카가 연신 절규한다]
[절규한다]
(지호) 드디어
해방이다
(황 작가) PPL이 고따위로 나온 게 내 잘못만이야?
아니, 감독님이 제때제때 털었으면 내가 그렇게 몰아넣었겠어?
뭐?
아, 몰라! 전화 좀 하지 마, 좀
정신없어 죽겠는데, 정말 [휴대전화 종료음]
아이, 진짜
아, 키스를 하고 뺨을 때려야 되겠구나?
아니야, 뺨을 때리고 키스를...
아이, 모르겠는데
작가님
어?
[황 작가의 고민하는 숨소리]
- (지호) 최종본 올려놨고요 - (황 작가) 응
(지호) 그, 홍삼이랑 화장품이랑 [황 작가의 고민하는 숨소리]
그리고, 어, 나머지 에피소드도 다 털었어요
(황 작가) 응, 그래, 알았어
[키보드를 탁탁 치며] 아이, 지우자
작가님, 저 이제 가 볼게요
[키보드를 탁탁 치며] 응, 어디?
어머, 집에 가?
- 네 - (황 작가) 어, 그래, 수고했어
(황 작가) 한 한 달 만에 가는 거지?
한 세 달 만에...
[익살스러운 음악] 그렇게나 됐나?
(황 작가) [멋쩍게 웃으며] 어, 그래
그, 강동구 쪽에 산다 그랬지?
강서구 쪽에...
[익살스러운 효과음] 서구?
그랬다, 맞았다
언니랑 둘이 같이 산다 그랬지?
남동생이랑 둘이...
[익살스러운 효과음]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황 작가의 놀라는 숨소리]
(황 작가) 걘 누구지?
어, 그래, 가 봐
쫑파티 때 뵙겠습니다
(황 작가) 응
[발랄한 음악]
[옅은 신음]
[숨을 깊게 내쉰다]
[행복한 신음]
햇살이다
[휴대전화 진동음]
[신호등 알림음]
(지호) 응, 지호
어디 가긴, 집에 가지
[지호의 웃음]
[지호의 힘겨운 신음]
(지호) [가쁜 숨을 내쉬며] 한 3개월 만에?
아, 가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 빡 하고
내 침대에 내 이불에 푹 파묻혀 가지고
진짜 죽은 듯이 잘 거야
[지호의 웃음] (수지) 지석이 이놈의 새끼는 뭐 하는 거야?
누나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마중도 없어, 동생 놈이?
(지호) 아이고, 바랄 걸 바랍시다
집이나 안 태워 먹었으면 다행이지
(수지) 아무튼 가서 바로 뻗어 자 청소, 빨래, 그딴 거 하지 말고
아, 그리고 양호랑 전화받지 마라
(지호) 왜?
(수지) 또 싸웠대, 받으면 기본 2시간
(지호) 어, 알았다, 응
[힘겨운 신음]
[도어 록 조작음]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도어 록 작동음] [힘겨운 한숨]
[옅은 탄성]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지호) 내 왔다
아, 진짜, 속옷, 진짜
윤지석, 내 왔다고
[휴대전화 진동음]
응, 지호
(호랑)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7년 전에 어디 감히, 어?
[시끄러운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나 같은 애랑 말이나 섞을 비주얼이었니?
코찔찔이 공돌이 거둬서 사람 만들어 놨더니
뭐? 할매를 모시고 산다고?
(지호) [픽 웃으며] 할매는 너무했네
(호랑) 너 지금 웃음 참았지, 지호?
아니야
아닌데
- (남자2) 양 매니저 - (호랑) 지호, 지호, 나 들어간다
(호랑) 자세한 얘기는 이따 만나서 해
(지호) 어
[통화 종료음]
[놀라며]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씁, 나 이런 색깔 있었나?
사이즈도 내 거 아닌 거 같은데
야, 윤지석!
와, 저게 누나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진짜
(지호) 니 집을 이래 엉망으로 해 놓고 지금 노래가 귓구멍에 들어오나?
내가 수건이랑 속옷이라도 좀 제때제때 빨라고 몇 번을...
[한숨]
니 또 게임하고 있제?
[익살스러운 효과음] [은솔의 놀라는 신음]
(지석) 아이, 씨, 누나! [흥미진진한 음악]
[지석의 비명] (지호) 악, 내 눈!
(지석)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어, 누나, 누나, 아, 아이다!
[지호의 비명]
[개가 왈왈 짖는다] (지석) 누나, 누나!
[지호의 비명] 누나, 잠깐, 잠깐!
- (지석) 누나! - (지호) 오지 말라니까!
[지석이 소리친다] (지호) 야, 야, 오지 말라고, 좀, 진짜!
따라오지 좀 마!
- (지석) 아, 누나 좀, 서 봐 봐, 좀! - (지호) 가라고!
- (지석) 누나, 잠깐만 - (지호) 야, 가, 따라오지 말라...
(지석) 잠깐만, 잠깐만
[지호와 지석의 놀라는 신음]
[지호의 아파하는 신음] 누나, 개않나?
안 다쳤나? 발 삔 거 아이가?
어?
어, 야, 야, 야, 야, 지석아
어, 내 개않고, 그, 어...
누나가 지금 좀 굉, 어 엄청시리 좀 혼자 있고 싶거든
그러니까 뭐, 뭐, 뭐, 뭐, 니는 뭐 가서 하던 거를 마저 하도록...
뭘 하던 걸 마저...
[한숨]
일단 들어가자, 인사해야지
누구랑? 아까 그 벗고 있던 여자분이랑 내랑?
(지호)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박수 치며] 아, 내 오, 내 오늘 약속 있었는데 깜빡해 버렸다
아, 내가 정신이 없다
그래, 음...
내 오늘 엄청시리 늦게 들어올 거 같으니까네, 뭐
그 여자분 재밌게 잘 놀다 가시라 해라
그래
[지석을 탁 치며] 누나 간다잉
(지석) 아, 좀!
자 집에 안 간다, 여 산다
- 왜? - (지석) 내...
내, 하...
내 와이프니까
언, 언제부터?
(지석) 아, 그, 뭐, 한 4, 4개월 됐다
니 고모 된다
[천둥이 콰르릉 치는 효과음]
니 조카 생겼다고, 임신했다, 내 여친
[밝은 음악] (지호) 다들 모르는 것 같은데
오늘은 서른
나의 서른 번째 생일이다
[종수의 헛기침]
올라오신다고 힘드셨죠, 아버님?
(지호) 아버님?
(종수) 아니다
니가 힘들지, 아가
(지호) 아가?
[멋쩍은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그, 지석이한테 들었겠지만
(종수) 니가 나가서 일하는 동안 이래 돼 삐가 중간에 말은 못 했다
어쨌든 간에 이제 가족이니께
화장실 같은 것도 급한 사람 먼저 양보해 주고
그리 서로, 응? 우애 있게, 응?
(지호와 지석) 네? 같이 살라고요?
- 셋이서? - (종수) 와? 안 되나?
- (지석) 안 되지! - (지호) 안 되죠!
신혼부부랑 어떻게...
신혼인데 어떻게 누나랑?
[수저를 탁 내려놓는다]
그라믄 우짜라고!
(종수) 잉?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수지) 야, 당연히 지석이가 나가서 살아야지
관리비도 생활비도 네가 다 냈잖아
누나한테 빌붙어 사는 학생 나부랭이 주제에 어디서 감히
야, 그리고 그 집도 네 명의잖아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집
지석이 명의야
뭐? 아니, 왜?
아빠가 그 집 살 때 네가 가계약금 냈잖아
(호랑) 아, 이 언니가 미국에서 살다 오셨나?
야, 한국에서 부모가 자취하는 남매한테 집 해 주면
당연히 아들 명의지
앞으로의 종족 번식 비용
그 종족이 자기들 제사 차려 줄 비용이 거기 다 포함돼 있는 거라고
지석이한테 지금 아버지 씨앗의 번식이 달려 있는데
딸이 보탠 쥐꼬리만 한 월급이 생각나시겠냐?
(수지) 야,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구시대적인...
지호
너도 오늘 나가서 임신하자
일어나, 클럽 가게
너도 오늘 걔네들처럼 화끈하게 종족 번식 해 버리는 거야
(호랑) 그래
[흥미진진한 음악] (지호) 니 또 게임하고 있제?
[야릇한 효과음]
아! 잠깐만, 그만
(지호) 당분간 내 앞에서 그런 자극적인 단어들을 좀 쓰지 말아 줄래?
나 사실...
아이씨, 지석이가 하는 거 봐 버렸어
종족 번식
- (수지) 허, 왓? - (호랑) 허, 싯!
(지호) 아, 그러니까, 안 봤으면 모를까 [흥미로운 음악]
절대 같이 못 살아, 난
근데 어쩌다가?
너랑 통화한다고 베란다에 한참 있었거든
그래서 자기도 내가 온 줄 몰랐나 봐
(수지) 아니, 도대체 너희 통화를 얼마나 했길래?
한 40분?
[수지의 놀라는 신음]
그럼 지석이도 40분이나 한 거야?
[피식한다] [야릇한 효과음]
고 녀석 고거 그렇게 안 봤는데
(호랑) 어유, 야! [지호의 괴로운 신음]
(남자3) 마! [달그락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남자3의 거친 숨소리]
뭐? 당장 나가?
저기요, 나는 그쪽을 진짜 동생같이 생각했어
나는, 응? 진짜 형 같은 마음에, 어? 어?
(세희) 여기 식초 두 방울만 부탁드립니다
(남자3) 친동생처럼 생각을 하고, 응?
내가 진짜 친형제다, 응?
브라더다, 이런 마음으로!
알겠어?
모릅니다, 외동이라
(세희) 저희가 처음에 썼던 계약서입니다
[흥미로운 음악] 계약 조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세입자 을은 집주인 갑의 집에 사는 동안'
'하우스메이트로서 A, B, C의 계약을 이행한다'
A를 이행했던 적 없음
B 없음
C 없음
(남자3) 그러면 이번 달 월세 다 뱉어내!
지난 금요일 밤 만취 상태로 들어오셨죠?
(세희) 현관 비번을 까먹어서 대문을 10분 동안 발로 차고
참치 캔인 줄 알고 고양이 참치 캔을 5캔이나 뜯어 먹고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소변을 보셨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집에 있었어?
그날 출장 간다고...
(세희) 그리고 경찰이 출동했었죠?
(남자3) 어, 맞아 그, 어디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거 제가 방에서 자다가 신고한 겁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야, 이 새끼야! [상구가 말린다]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 인마, 인마, 집에 있었으면, 인마
나와서 말로 하면 되지, 그거를...
- (남자3) 놔, 이 새끼야! - (상구) 형님, 참...
(남자3) 놔, 놔, 이 새끼야! [상구의 힘겨운 신음]
이 새끼 완전 돌아이 새끼야! [남자3의 성난 신음]
(상구) 그, 뇌가 어떻게 생겼으면
같이 사는 사람을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지?
(세희) 냉장고값 청구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라고 네 선배한테 전해
(상구) 그 선배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남 수석님, 너는 모르겠지만 인간한테는 그런 게 있어, 인간미
너 여기서 '미' 자가 무슨 '미' 자인 줄 알아?
'미개하다' 할 때 그 '미'?
노
(상구) 맛 '미', 인간의 따뜻한 맛!
'맛' 하니까 생각났는데
(세희) 그 개저씨가 먹은 고양이 참치 캔
그거 일반 참치보다 훨 비싼 거야, 수입산이라
- 어디 가? - (세희) 집
아니, 이게 무슨 집 같은 소리지?
안정화 작업을 오늘까지 마무리해야지
다음 주가 새 버전 업데이트 마감이잖아
분리수거도 오늘이 마감이라
그리고
(세희) 고양이 밥 줘야 돼
인간미 있게
[고양이 울음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상구) 노!
아, 미안합니다, 하던 일 하세요
[멀리서 개가 짖는다]
[지호의 한숨]
[답답한 한숨]
자
5년간
이 집의 실질적인 관리와 살림을 도맡았던 사람은 바로 접니다
그런 저를 하루아침에 군식구로 전락시키는 현 상황은
명백한...
명백한...
(수지) 명백한 기본권 침해입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이 집에 가계약금을 보탠 것도 본인!
첫 월급으로 투 도어 냉장고를 샀던 것도 본인!
작년에 꼬진 보일러 바꾼 것도 바로 본인이 아닙니까!
(수지) 라고 따져, 아빠한테
그리고 찾아, 네 권리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종수와 지석의 웃음]
[도어 록 조작음] [비장한 음악]
[도어 록 작동음] 아버지
(종수) 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버님
응, 그래, 아가, 그, 뭔 일이고?
제가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요
[흥미진진한 음악] (지호)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들이래요
아들?
(지호) 게임은
[아기 웃음 효과음]
끝났다 [호각 소리 효과음]
(종수) 응?
[함께 웃는다]
야, 내가 손자를, 어디, 어디, 어디
(지석) 아버지, 손자 생겼습니다
[함께 웃는다]
[아기 웃음 효과음]
(호랑) 지호 잘하고 있을까?
[수지가 냄새를 씁 맡는다]
(수지) 어디서 망삘의 냄새가 난다
쯧, 불안해, 튼 거 같아
(호랑) 우수, 우리 맥주 한 잔 더 할까?
(수지) 배불러
그럼 택시 타고 이태원 갈까? 거기 클럽 같은 데 많잖아
(수지) 안 하던 짓 하지 말고 그냥 원석이한테 전화해
아, 헤어질 거라니까 몇 번을 말...
(호랑) 너 또 브래지어 안 했어?
아, 답답하단 말이야 술 먹는데 소화도 안 되고
(호랑) 아, 좀 가려, 티 나
야, 너 진짜 헤어질 거야?
어, 이번엔 진짜야
3일이나 연락 없는 건 헤어지자는 얘기지
(호랑) 서로 기다리고 찾아가고 그렇게 질척대는 거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거야
어유, 우쭈쭈
[잔잔한 음악]
(수지) 야, 쟤 클럽 간대
저게, 씨
(종수) 사내놈이라 그런가 코가 오뚝하네
[가족들의 웃음]
(은솔) 예쁘죠, 아버님? [지호의 한숨]
[종수의 웃음]
[문이 스르륵 여닫힌다]
[현자의 힘겨운 신음]
(현자) 묵어라
(지호) 뭔, 잘 밤에 무슨 미역국을...
생일날에 미역국 한 그릇은 묵고 자야지
맞다, 오늘 내 생일이었제
까먹고 있었다
(지석) [웃으며] 와, 진짜 예쁘네
[시원한 숨소리]
저 새끼는 뭐가 좋다고 저리 웃어 젖히고 지랄병이고?
내가 서울 와 가지고 직장 만들라 캤지
손주 만들라 캤나
[한숨]
쯧, 우야겠노
만들어 온 거를 뭐, 도로 무를 기가?
[현자의 힘주는 신음]
[잔잔한 음악]
뭔데?
방 구할라 카면 보증금 있어야지
(현자) 나이 서른에 신혼부부한테 뭐, 낑기가 살 수도 없고
엄마...
아빠한테 비밀이데이
내 비상금 꽁치는 거 알면 또 난리 친다
[문이 스르륵 여닫힌다]
(지호) 30년 가부장 인생에서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문제는
[익살스러운 음악]
세상 물정에 너무 순수하다는 것
[대기표 알림음]
[시끌시끌하다]
(은행원) 죄송합니다, 고객님 대출이 어려우실 거 같네요
아...
아예 안 되나요?
네, 현재 프리랜서이신데 연 소득이 2천 미만이시고
(은행원) 4대 보험도 적용이 안 되시고 신용 등급도 5등급이시고요
죄송합니다
저기...
(지호) 이거 제가 쓴 드라마인데
작년에 그래도 나름 엄청 유명했던 건데
비록 아침 드라마이긴 하지만
[멋쩍은 웃음]
제가 신원은 확실하거든요
여기, 여, 제, 이게 제 이름인데
제 이름 보이시죠? 여기 윤, 윤지호
아, 그리고 잠시만
이, 이것도 제가 이것도 제가 쓴 드라마거든요
(은행원) [멋쩍게 웃으며] 고객님, 죄송합니다
아, 네
안 보셨나 보네요
저기...
(중개인) 네, 어서 오세요
(지호) 네
방 좀 알아보려고요
보증금 얼마짜리?
아, 한 이 정도...
아, 3천?
아니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유쾌한 음악]
(중개인) 아가씨, 진짜 운 좋은 줄 알아
나 아니면 그 가격에 이런 방 못 찾아
네, 정말 못 찾겠네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난다]
(지호) 아저씨, 여, 여기 누가 창문을
그렸나 봐요
(중개인) 응, 진짜 감쪽같지?
[개가 멀리서 왈왈 짖는다] [발랄한 음악]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자물쇠를 달칵 채운다]
[한숨]
(상구) 자, 신규 업데이트 마감까지 일주일 남았습니다
우리, 저, 주요 사항들 한번 체크해 볼까요?
그, 안정화 관련해서는 남 수석님이
일차적으로 마무리 지으신다고 했는데 완료됐나요?
아니요, 진행 중입니다
남 수석님, 초기 시안이라도 오늘 내로 넘겨주셔야...
(세희) 오늘 내로는 불가능합니다
6시 퇴근 전까지 완료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라서요
[흥미로운 음악]
[멋쩍은 웃음]
아니, 저희가 퇴근이 어디 있습니까?
(상구) 그래서 야근이라는 아주 효율적이고 낭만적인 제도...
(세희) 당분간 야근은 힘들고요
제가 꼭 해야 할 필수 업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개발 업무는
각자 분담하실 수 있도록 리스트 업 해 놨으니까
이제 다들 알아서...
(보미) 저, 혹시 어디 다른 데 스카우트되셨어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저녁에 고양이 밥을 줘야 돼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분리수거도 있고
[거리 소음이 요란하다]
(상구) 그래, 어, 내가 소개시켜 준 하우스메이트 때문에
네가 빡친 거는 내가 인정
근데 다 큰 어른이, 어? 회사 일을 이런 식으로 시위하는 거는
그거는 아주 못된 거야
어? 다음 주가 마감인데
마 대표
내가 이 회사 입사할 때 제1의 조건이 뭐였지?
연봉
아닐 텐데
아, 그, 무슨 '즘'이었어
(상구) 오르가즘은 아니잖아?
아, 알고리즘
너의 삶의 그 알고리즘이...
내 삶의 알고리즘을 회사가 깨지 않는다
너 때문에 하우스메이트가 공석이야
(세희) 그래서 내 생활이 깨졌고
생활 패턴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난 야근 못 해
[상구의 한숨]
오케이
쯧, 내가 저 새끼 저거 하우스메이트 찾아서
우리 회사 벽에 똥칠할 때까지 내가 묶어 둘 거야
너는 내가 아주 무서운 사람인 걸 아직 모르는 거야
[잔잔한 음악]
[포스 조작음]
(편의점 직원) 2,600원입니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지호) 홍삼 신 몇 개를 써야 저런 데 살 수 있을까?
[휴대전화 진동음]
응, 지호
(호랑) 방 구했어?
방?
아직
어? 보증금, 보증금 없이?
(호랑) 응, 월세만 30
30?
그거 어딘데? 나 지금 바로 갈 수 있어
(호랑) 근데 조건이 좀 있대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청소기 작동음]
지호!
[지호의 웃음] (호랑) 뭐 마실래?
(지호) 어, 아니야, 나 괜찮아
근데 누구라고? 원석이 아는 사람?
(호랑) 어, 학교 선배 친구래, 남세희라고
투룸 타운 하우스에 작은방이 하나 남아서
거기 월세를 놓고 싶은가 봐
그러니까 월세 겸 하우스메이트 같은 거랄까?
타운 하우스?
어, 근데 그 여자가 좀 원하는 게 많던데?
바로 입주해 줬으면 좋겠고...
나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어
(호랑) 일주일간 조정 기간이 필요하고
어, 야, 한 달이라도 괜찮아
그, 좀 지랄맞은 거 같던데 그래도 괜찮겠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야, 호랑, 내가 대한민국 상위 1% 지랄 님들을
무려 5년 동안이나 모신 보조 작가야
난 이제 그 어떠한 일들의 보조도 다 맞출 수 있어
(호랑) 치, 쯧, 알겠어
그럼 원석이한테 바로 번호 주라고 한다?
원석이랑 화해했구나?
쩝, 화해는 내가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준 거지
어떻게 이번에는 쉽게 풀렸네?
원석이도 너 달래는 기술이 늘었다, 야
늘긴 늘었지
다른 기술이
[야릇한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어, 나 알았어
(지호) 뒷말 안 들을게, 나 지금 촉 왔거든
아니, 어젯밤에 원석이가...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안 들려
어저께 그냥 막 난리를...
(지호) 안 돼, 안 들려, 안 들려 [호랑의 장난스러운 신음]
- 여기 물 좀 주세요 - (호랑) 야, 야
[문이 스르륵 열린다]
(지석과 은솔) ♪ 생일 축하합니다 ♪
♪ 생일 축하합니다 ♪
(지석) ♪ 사랑하는 우리 누나 생일 축하합니다 ♪
[은솔과 지석의 환호성]
은솔이가 누나 생일 축하한다고 케이크 사 왔다, 케이크
소원 빌자, 소원, 어?
[은솔과 지석의 환호성]
(은솔) 언니, 소원 뭐 비셨어요?
다음 생에는 달팽이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은솔) 왜요?
걔네들은 집에서 쫓겨날 일 없으니까
[은솔의 멋쩍은 신음] 아, 진짜 너무하네
(지석) 니 지금 임산부한테 시집살이시키나, 어?
니 케이크까지 사 왔는데
내가 이러니까 니랑 같이 못 산다는 거다, 어?
[지호가 지퍼를 직 채운다]
(은솔) 언니, 이렇게 가시면...
언니, 자주 놀러 오세요
근데 저 언니랑 진짜 같이 살아도 괜찮은데
[잔잔한 음악]
진짜로 같이 살아요?
지석이 학교 가고 나면
우리 둘이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할 텐데
몸 무거운 은솔 씨한테 내가 살림 맡길 수 있을까요?
지석이 저 자식, 저거 걸핏하면 나한테 애 보라고 할 텐데
그러면 내가 일하고 살림하면서 애까지 볼까요?
몰라서, 어려서 그러는 거 아니까
나 더 나쁜 사람 만들지 마요
[지호가 바스락거린다]
고기 좋아한다면서요?
(지호) 고기 사 먹고, 어, 남으면...
친정아버지 병원비도 좀 보태고
[밝은 음악]
(여자 목소리) 맥티넘 타운 하우스 401호입니다
지도를 함께 첨부해 드릴게요
(아이2와 남자4) 가위, 바위, 보
(여자 목소리) 이 번호로 들어가시면 되고요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열림음]
(지호) 실례합니다
(여자 목소리) 저는 요즘 연일 야근이라
늦게 들어갈 것 같습니다
[도어 록 작동음]
(지호) [놀라며] 우아
응?
(여자 목소리) 방 두 개 보이죠?
[지호의 탄성] 문 열려 있는 방이 지호 씨가 쓰실 방입니다
제 방문은 항상 닫혀 있을 거니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제가 부탁드릴 업무는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집과 관련된 관리 업무
두 번째는 주 1회 있는 분리수거
[고양이 울음]
마지막으로 제가 야근을 하는 동안
[고양이 울음]
안녕
(여자 목소리) 고양이를 돌봐 주시면 됩니다
(여자 목소리) 들으셨겠지만
일주일 뒤에 계약하는 걸로 어떠세요?
(지호) 넵, 좋습니다
(수지) 야, 이제 하다 하다가 세입자까지 인턴제냐?
아유, 헬조선, 진짜
저번 세입자한테 엄청 데었다나 봐
(지호) 잘해 봐야지, 뭐, 난 좋아
근데 뭐 하는 여자라고, 집주인이?
무슨 디자이너라던데?
카, 컴퓨터 쪽?
(지호) 며칠째 야근한다고 나도 얼굴도 못 봤어, 아직
엄청 바쁜가 봐
아, 호랑이가 보내 준 사진 있다, 볼래?
여기
(수지) 핑크? 인상은 좋네 [비밀스러운 음악]
야, 80이래, 엄청 동안이지?
[탄성]
(수지) 이 언니 관리를 엄청 잘했네
이름이 뭐라고?
(지호) 세희라던데, 세희, 남세희
세희 님 [익살스러운 효과음]
네, 보미 님
(보미) 보시면 현재 회원 가입 퍼널이 너무 길어서
유저들이 중도 이탈 하고 있고요
특히 프로필 정보 입력 페이지에서요
새 버전에서는 이걸 간소화해서
회원 가입 성공률을 올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세희) 근데 보미 님, 안 불편하십니까? [직원1의 지친 한숨]
그 원피스 마감 때마다 꼭 입으시는 거 같아서
이거라도 입고 있어야
여자라는 제 정체성을 잃지 않을 거 같아서요
[흥미로운 음악]
[직원2의 하품]
[직원2의 힘겨운 신음]
[놀라는 신음]
[저마다 힘겨운 신음을 내뱉는다]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남자 목소리)
[키보드를 탁탁 친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잔잔한 음악]
(남자 목소리)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너무 늦어서 메모 남깁니다
마침 오늘이 분리수거 날이라 아침에 다 처리했고요
정기 소독은 오전 11시에 완료했고
가스 검침은 오후 3시에 완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에게는
참치 캔 반 통과 사료 2컵을 급여했고요
아, 냉장고에 이틀 지난 닭가슴살이 있길래
삶아서 고양이 간식으로 주었습니다
[고양이 울음]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간만에 기분 좋구나?
[고양이 울음]
[한숨]
[알람이 울린다]
[세희의 한숨]
[지호의 힘겨운 신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고양이 울음]
[고양이 울음]
너도 잘 잤냐옹?
[고양이 울음]
(여자 목소리)
[키보드를 탁탁 친다]
[메시지 수신음]
(남자 목소리) 넵, 제가 그럼 회사로 가겠습니다
(상구) 어? 메이트 결정했구나?
남 수석, 고생했어
여러분, 이런 대표 이런 회사 본 적 있어요?
직원의 거주 복지까지 생각해서 메이트까지 직접 구해 주는
♪ 이런 나란 대표 어디 있나 ♪
(세희) 어떻게 아는 사이랬지?
아, 그, 원석이라고 우리 창업 동아리 후배의 친구인데
아, 왜, 또 마음에 안 들어?
(상구) 경찰에 또 신고할 거 같아?
아, 내가 그냥 직접 다시 구해 볼까?
아니
마음에 쏙 들어
[밝은 음악]
쏙, 쏙 든다고?
어, 계약서 갖고 지금 회사로 가고 있다
워낙 바쁘셔 갖고
(현자) 아이고, 한시름 놨다
호랑이가 아는 언니라 카니까 뭐, 성격도 안 개않겠나?
(지호) 씁, 성격?
음, 재밌는 언니야인 거 같다
(현자) 그래? 빈손으로 가지 말고 뭐, 간식거리라도 사 갖고...
걱정 마라
안 그래도 지금 뭐 좀 사 갈라 한다
[미심쩍은 숨소리] [문이 스르륵 열린다]
'마음에 쏙 든다'?
내 평생 저 새끼가 인간에게 부사를 쓰는 건 처음 듣는데
(보미) 가끔 쓰세요
'마 대표가 오늘도 개늦네요'
'마 대표 개그 핵노잼'
너 그거 콘셉트지?
막 주목받고 싶고, 그렇지? 어?
(상구) 아니면, 우아 나 진짜 먹이려고 그러는 거야?
대표님, 왜 샌드위치 안 와요? 시킨 지가 한 시간인데
(상구) 아니, 배달이 밀려도 그렇지 이 자식들은 진짜 맨날 늦어
그냥 우리가 가는 게 빠르겠어요 걸어가면 5분인데
아유, 넌 너무 착해 빠졌어
그냥 내가 갔다 올까?
네
알았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 (보미) 다녀오겠습니다 - (상구) 엎드려, 야
[엘리베이터 도착음]
[반가운 신음]
(지호) 안녕하세요
[익살스러운 음악]
아, 저, 그, 집...
고양이...
아, 이거, 이거요
[보미의 탄성]
(보미) 아, 이렇게 늦으시면 어떡해요? 점심시간 다 지나가는데
아, 예, 죄송해요
제가 연락받고 바로 출발한 건데...
언제 적 구식 멘트예요? 맨날 지금 출발했다 하고
네, 죄송합니다 [흥미로운 음악]
와, 근데 진짜 동안이시네요?
네? 뭐, 언제 봤다고?
아, 그렇죠, 뭐 뵙는 건 처음이긴 한데...
감사하네요, 얼른 주세요
(지호) 아, 네
아니, 제가 진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저한테 너무 좋은 기회를 주셔 가지고
아니, 뭐, 기회랄 것까지
(보미) 그냥 자본주의 사회에 합당한 거래죠
아, 뭐, 네, 그렇죠, 뭐
그럼 앞으로 좀 잘 좀 부탁드릴게요
언니
아, 제가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아니요
네, 죄송합니다
그럼
아, 저...
혹시 이따가 저녁에 뵐 수 있나요?
뭐, 봐서요
와, 저녁에 또 샌드위치 시켜 먹으라고?
저 알바 영업력 쩌네, 진짜
아, 언니 소리 싫어하시는가 보네
[잔잔한 음악]
- (세희) 죄송합니다 - (지호) 죄송, 네, 죄송합니다
[직원3의 탄성] (직원4) 어, 맛있다, 이거
- (직원3) 이거 어디 거예요? - (상구) 많이 먹어
(상구) 많이 먹어야 힘을 쓰는 거야
(직원3) 앞에 새로 생긴 가게 그 가게예요, 이거?
[직원들이 시끌벅적하다]
(직원5) 그만 먹어, 이거 내 거야
[밝은 음악] (직원2) 세희 님, 점심 드세요, 샌드위치
이거 누가...
(직원2) 그거 여기 위에 있던데요?
빨리 오세요,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남자 목소리) 계약서 보셨나요?
(여자 목소리) 네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지호)
(지호)
(여자 목소리)
와, 진짜 쿨하시구나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호가 살짝 웃는다]
(헤어 디자이너) 어떻게, 평소처럼 커트?
아니요, 오늘은 고데기 세팅요
(헤어 디자이너) 응?
(지호) 아, 혹시 이렇게 가능할까요?
(헤어 디자이너) [웃으며] 어디 가는구나?
씁, 소개팅?
아니요, 소개팅은 아니고 [잔잔한 음악]
아, 선생님, 저 이따가 여기 눈썹도 조금 정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헤어 디자이너) 응, 알겠어
[마우스 클릭음]
(보미) 누구예요?
[비밀스러운 음악] (세희) 아, 새로 들어온 하우스메이트요
(보미) 축구 덕후이신가 보네요
남자들은 대부분 축구 좋아하죠
(세희) 퍼널은 이 정도면 뭐...
보미 님, 핑크 좋아하시죠?
네, 제 시그니처 컬러죠
요즘 친구들은 남자들도 핑크색을 많이 선호합니까?
세희 님이 미학적 감각이 부족하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보미) 핑크는 사실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색이 아니거든요
저 정도 피부 톤이라야 소화할 수 있는 색인데
어떻게 남자가 핑크를
(상구) 아휴, 아, 피곤해, 아, 죽겠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상구의 힘겨운 신음]
[유쾌한 음악]
왜? 일해, 일
(보미)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남녀에 핑크가 어디 있겠어요
네, 진보적인 시대니까요
[가게 안이 시끌벅적하다]
(남자5) 사장님
(남자6) 이모님, 소주 하나 주세요
(용석) 작가님!
[잔잔한 음악]
빨리 와, 빨리
- (황 작가) 어서 와, 어서 와 - (용석) 왜 이렇게 늦게 와?
- (황 작가) 아, 머리했네? - (박 감독) 옷이 그냥...
(용석) 야, 이제 진짜 짬 좀 된다 이거지?
작가님, 보조 작가가 막 이렇게 쫑파티 막 늦고 막 이래도 돼요?
(박 감독) 이거, 또 이거 괜히 또 이런다, 또, 어?
자기 옆에, 어? 윤 작가 자리라고 아무도 못 앉게 하더니
[용석의 당황한 신음] (지호) 진짜?
[지호의 놀라는 신음]
- (지호) 나 많이 기다렸나 봐? - (용석) 아, 제가 언제요?
(용석) 그냥 내가 더위를 많이 타 가지고 그냥 옆에 내가 자리 비워 둔 거거든?
(황 작가) 야! 너희 진짜 꼴 보기 싫어
아, 사귀려면 사귀고 자려면 자고 아, 빨리빨리 해 버려
[지호가 픽 웃는다] 어유, 꽁냥질만 벌써 3년째
누가 둘 중에 버티는 거야?
아이, 그런 거 아니에요, 작가님
누구겠습니까?
저는 아닌데
뭐야?
[박 감독의 탄성] [지호의 웃음]
[함께 웃는다]
(박 감독) 그러면 지금 저 윤 작가가 깐 거야?
왜? 우리 용석이 마음에 안 들어?
아, 까긴요, 감독님 조감독님이 무슨 남자예요?
브라더죠, 브라더
(지호) 아무것도 모르는 용석이 제가 3년을 키웠잖아요
[지호의 웃음]
(박 감독) 야, 윤 작가 진담인 거 같다
너 진짜 아닌가 봐 [용석의 한숨]
(용석) 와, 나 이거 지금 자존심 상하지?
윤 작가님 계속 이러면 진짜 내가 진짜 확 꼬셔 버린다?
아, 그래?
씁, 그러려면 오늘 누나보다 먼저 뻗으면 안 되는데?
- (용석) 가, 가 - (황 작가) 아, 나한테 와, 잘해 줄게 [지호의 어르는 신음]
- 한잔해, 누나 - (박 감독) 왜 그래?
[저마다 말한다]
(용석) 수고하셨습니다 [비장한 음악]
(상구) 스플래시 화면은?
- 이상 없습니다 - (상구) 오케이
(상구) 로그인할 때 웹 꺼지는 증상 어떻게 됐지?
네, 버그 잡았습니다
(상구) 프로필 동영상 업로드
(직원6) 네, 작동됩니다
굿 잡
결말애
[비장한 효과음] 2.0 업데이트
[침을 꿀꺽 삼킨다] [째깍거리는 효과음]
완료 [신나는 음악]
[키보드를 탁 누른다] [직원들의 환호성]
(상구) 지난 3주간 2.0 업데이트를 위해서
철야 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고생하신 여러분
여러분들에 대한 그 노고에 대한 감사는
연말 보너스로 거칠게 표현하겠습니다!
[직원들의 환호성]
한 달 매출 5만 원도 안 되던 우리 결말애를
해마다 200% 이상 성장하게 만들어 주신 여러분들의 노고에
[흐느끼며] 진심으로 감사...
[직원들이 피식 웃는다]
감사드립...
[상구의 한숨]
다소 부끄럽지만 구호 한번 외치겠습니다
우리는!
(직원들) 남이다!
일한 만큼!
(직원들) 돈 받자! [밝은 음악]
(상구) 자, 건배!
[직원들의 환호성]
자, 쭉쭉 마셔, 마셔! [시끌벅적하다]
[상구의 시원한 숨소리]
어유, 뜨거워 맥주가 왜 이렇게 뜨거워?
아, 좋다!
이제 옷 갈아입으셔도 되겠네요
저 갈아입은 건데요?
어제 건 진핑
오늘 건 연핑
아...
네
[직원1과 직원2의 가쁜 숨소리]
(직원2) 대박, 우리 식당에서 윤소희 봤어, 윤소희
[저마다 묻는다]
(세희) 윤소희?
그게 누군데?
(세희) 왜?
[익살스러운 음악] 우리 투자자야?
[직원들의 어이없는 웃음]
- (소희) 맞아요 - (용석) 네 [소희와 용석의 웃음]
(용석) 윤 작가님
- (지호) 안녕하세요 - (소희) 안녕하세요
(소희) 아유, 작가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지호) 아, 제가 뭘요 소희 씨가 너무 고생 많으셨죠
(소희) 아유, 아니에요
저, 그럼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 (지호) 아, 네 - (용석) 어
(용석) 어
(지호) [웃으며] 헐, 센스 봐
[함께 웃는다]
미안, 작가님
마지막 회 수습하느라고 고생 많았지?
뭐래, 새삼?
3년을 계속 고생시켜 놓고 [용석이 피식한다]
(용석) 그러게, 만난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네, 우리
[잔잔한 음악]
저기, 작가님
나 작가님한테 할 말 있는데
(세희) 저기
좀 지나갑니다
- (지호) 아, 네 - (용석) 아, 예
[용석의 멋쩍은 웃음]
(지호) [멋쩍게 웃으며] 아, 나는 산책, 산책 좀
- (용석) 어 - (지호) 응
(용석) 저기, 빨리 들어와
[풀벌레 울음]
[픽 웃는다]
(지호) 어? 어, 슛! [세희의 놀라는 신음]
아, 산체스, 쯧
[흥미진진한 음악]
아, 죄송합니다
아, 저도 이거 너무 보고 싶던 경기라...
[지호의 놀라는 신음]
[함께 놀란다]
- (지호) 슛! - (세희) 어, 슛...
- (지호) 악! 아, 골! - (세희) 골!
(지호) 아, 대박!
[지호의 웃음]
괜찮으세요?
아, 저, 죄송...
아, 그, 제가, 그러니까...
아, 저번, 저번 경기도
산체스가 역전 골 넣었는데
아, 근데 그거를 오프사이드라고...
아니, 근데 그거 오프사이드 아니었거든요
제가 경기를 한 세 번을 넘게 돌려 봤는데
아, 그것만 인정됐어도 아스널이 그날 이기는 거였는데, 쯧
물론 뭐, 벵거의 전술이 썩 훌륭했다는 거는 아니에요
아닌데...
죄송합니다
(세희) 아스널
[잔잔한 음악]
팬이십니까?
[변기 물이 솨 내려간다]
(상구) 야, 윤보미, 남 수석 어디 갔냐? 얘...
이 자식이, 대표가 얘기하는데, 인마 야, 이 자식...
[상구의 놀라는 신음] (황 작가) 어머, 깜짝이야!
허, 뭐야?
어, 박 감독, 윤 작가 못 봤어?
(박 감독) [힘겨운 숨을 내쉬며] 못 봤어
(황 작가) 어유, 냄새, 또 어디 간 거야?
(세희) 그래서 실상 따지고 보면
아스널이 4위를 한 건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일곱 번입니다
이는 리버풀의 4위 기록과도 동일한 횟수고요
[축구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호) 아, 근데 그 기록들을 직접...
(세희) 직접 제가 통계를 내 본 겁니다
[지호의 놀라는 신음]
[지호의 탄성]
(용석) 어디야?
나 지금 나왔지, 주차장
[잔잔한 음악]
(세희) 가 보시죠, 남자 친구분
아니에요, 남자 친구
아직은
[살짝 웃는다]
아직은 그냥 썸인데
아, 사실 아까 제가 저기서 고백을 받을 뻔했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떨려 가지고 일로 도망 나오는 바람에
아, 원래 오늘 아스널이 이기면 제가 먼저 고백하려 그랬는데
(지호) 그랬는데...
제가 왜 여기서
처음 뵙는 분한테 이런 고백을 하고 있을까요?
(세희) 준수하시네요, 얼굴도 키도 준수
그렇죠? 잘생겼죠?
네, 별점 10점 만점에
(세희) 7점은 되겠네요
너무 짜다
최소 9점이죠, 저 정도면
(지호) 키 커, 눈썹 짙어 [반짝이는 효과음]
어깨 있어, 직업 있어, 그리...
[소희의 웃음]
- (소희) 응, 보고 싶었어 - (용석) 아이고
여자도
있네
(영상 속 해설자) 잘 잡았어요
중앙으로 넘어옵니다
(용석) 아이고 [소희의 웃음]
(영상 속 해설자) 슛! 골!
[영상 속 관중의 환호성]
[잔잔한 음악] (지호)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에 공격수였던 적이 없었다
- (황 작가) 아휴 - (소희) 아유, 감사합니다 [잔이 짠 부딪힌다]
- (황 작가) 수고 많았어요 - (소희) 아, 아니에요, 작가님
(소희) 감사해요 [황 작가와 소희의 웃음]
(용석) 작가님
- (소희) 어, 작가님, 얼른 앉아요 - (지호) 네
(용석) 아, 어디 갔었어? 보고 싶었잖아
(지호) 나도
[함께 웃는다] (황 작가) 자, 마셔, 마셔, 아유, 지겨워
우리 또 같이 해요
(소희) 아유, 감사합니다
[저마다 말한다]
(지호) 언제나 적당히 수비하고 적시에 물러섰다
(지호) 공이 오면 받아칠 용기도
그렇다고 피할 깜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 수비수
마 대표, 이거 지금 갑질의 횡포라는 건 아나?
'회식은 1차만 한다'가 내 근무 조건이었을 텐데?
(상구) 아, 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내 차 대리 부르면 돼
됐어, 아직 버스 있어
(세희) 네 차보다 버스가 더 빠르니까
아, 나 버스 타고 갈 거라고, 버스!
[신호등 알림음]
또는 지하철도 있지, 아마
타세요, 버스
(지호) 그냥, 버스 그냥 타시면 안 될까요?
그게 좀 덜 쪽팔릴 거 같아서
그래요
[안내 음성] 버스가 잠시 후...
[지호의 한숨]
(세희) 덜 쪽팔린 거 맞습니까?
(지호) 아니요
이 동네 처음 와 봤고요
외출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고 여행도 싫어합니다
(세희) 집 아니면 거의 회사에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볼 일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버스 올 때까지 10분은 더 걸릴 텐데
(세희) 이렇게 서로 불편하게 있을 필요 없고요
저한테 그만 쪽팔리셔도 된다고요
나한테
쪽팔려서 그래요
[잔잔한 음악] 그쪽이 아니라 나한테
나이 서른 먹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 하고
혼자서 3년을 얼었다 녹았다
서른까지 울렁울렁
그 내 마음한테 내가 쪽팔려서 그래요
[헛웃음]
스무 살도 아니고
나이 서른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숨을 들이켠다]
그래서 그런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 짧은 문장에 서른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쓰다니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네?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 친구한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세희)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눠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지호) 이상했다
저 이상한 말이 그날은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지호) 저
성함이라도...
역시 모르는 게 낫겠죠?
네
네
다시 뵙지도 못할 분한테
제가 위로를 받았네요
다시 못 볼 사람이라 위로가 된 걸 겁니다
[안내 음성] 잠시 후 도착 버스는...
(지호) 다시 못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왠지 좀 애틋했다
(지호) 신피질 얘기 감사합니다
이번 생은 좀 망한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열심히 해 볼게요
(세희) 건투를 빕니다
이번 생은 어차피 모두 처음이니까
(지호) 잠시 잊고 살았다
이번 생도
이 순간도
다 한 번뿐이라는 걸
[밝은 음악]
(지호) 긴 하루였다
5년간 살았던 집에서 나오고
3년간의 썸 아닌 썸을 끝내고
처음 보는 남자와 키스를 했다
대박이다
윤지호
[웃음]
[고양이 울음]
[고양이 울음]
(지호) 내가 상상한 서른은 아니지만
처음 살아 보는 서른치고는
나쁘지 않다
[스위치를 탁 켠다]
다시 못 볼 그 사람의 말처럼
[잔잔한 음악]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고양이 울음] [밝은 음악]
(상구) 이 정도 점수면 그냥 같이 살아
이 점수가 가능해?
(지호) 저 사람 혹시 여기 살아?
(세희)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상구) 아니, 하우스메이트가 왜...
(호랑) 집주인이 왜 남자냐고?
[코를 드르렁 곤다]
(세희) 못 들은 거로 하자
[오싹한 효과음] (수지) 그 새끼가 너한테 집적댔어?
(명자) 여기 우리 아들 집인데?
예?
아, 씨, 안 들려
(지호) [흐느끼며] 나는 지금 오늘
잘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는데
(세희) 미안하다
(지호) 네가 지금 여기까지 나가게 만들었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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