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2
신피질 얘기 감사합니다
이번 생은 좀 망한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열심히 해 볼게요
(세희) 건투를 빕니다
이번 생은 어차피 모두 처음이니까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기계 알림음]
[안내 음성] 금일 버스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한숨]
[새가 짹짹 지저귄다]
[한숨] [차분한 음악]
[옅은 신음]
[고양이 울음]
[세희의 힘주는 신음]
(세희) 밥 먹자
[한숨]
싫은데, 내가 왜 주말을 마 대표님하고 보내야 되지?
(상구) 아니, 내가 이번엔 진짜 그 친구랑 잘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근데 둘이 만나는 건 조금 부끄럽나 봐
대박인 건 걔 친구 진짜 예뻐
- (상구) 어, 사진 보낸 거 봤지? - 안 봤어
(상구) 아니, 어차피 혼자서 맛없는 도시락 먹을 거면서
나한테 왜 그러지?
(세희) 흠 [흥미진진한 음악]
왜 내 시간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지?
마 대표, 너같이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고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자존감을 찾는 인간들에게는
혼자, 맛없는 도시락일지 몰라도 나한텐 오아시스 같은 도시락이야
미팅이니 회의니 평일 내내
너 같은 인간들의 잡담을 들으며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얼마나 강도 높은 스트레스인 줄 알고는 있나?
(상구) 어, 남 수석, 내가 말실수했어 미안해, 어?
자, 내가 사과할게
그리고 리셋해, 포맷해 리부팅, 오케이?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5일 만에 오롯이 혼자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어도 되는 내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야
방해하지 마
(상구) 아, 그럼, 진짜 중요한 시간이지
그런 시간들이 엄청 중요한 시간
자, 이 얘기는 끝, 오케이?
아, 근데, 아, 그 너희 집에 그, 누구더라?
그, 세 들어 산다는 지호인가?
아유, 뭐, 너랑은 비교도 안 되겠지만 걔라도 데리고 가야지, 뭐
(상구) 아니, 친구 녀석들이 다들 그냥, 뭐, 바쁘...
[통화 종료음]
[한숨]
[편안한 한숨] [잔잔한 음악]
(수지) 진짜 한번 안 해 볼래? 사람은 괜찮은데
으음, 난 됐어
아휴, 나 소개팅 소질 없는 거 알잖아
(수지) 야, 너 드라마 작가가 모솔인 게 말이 돼?
키스 한 번 안 해 본 아녀자가 키스 신을 그렇게 막 써 대고
너 이거 'TV 속의 TV' 나갈 일이야 [지호가 피식 웃는다]
야, 넌 언제 적 프로를
(지호) 그리고 키스, 그거 뭐 그거 별거 아니더구먼
(수지) 뭔 소리야? 키스가 별거인지 아닌지 모솔이 그걸 어떻게 알아?
[발랄한 음악] (지호) 어?
아니, 뭐...
그, 'TV 속의 TV' 막 이런 데에서 나도 많이 봤지
뭔 소리야?
지호, 너 나 몰래 연애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연애는 무슨
야, 수지야, 나 지금 전화 들어오거든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응, 응
[통화 종료음]
(지호) 하, 큰일 날 뻔했다
아, 똥멍청이, 왜 쓸데없는 말을 [밝은 음악]
뭐야?
[지호의 놀라는 숨소리]
쯧, 그래, 뭐, 이 정도는 집주인 언니한테 드리는 입주 선물
쯧, 자연스러웠어
[놀라는 신음]
아니, 뭐, 꼭 연애를 해야 키스를 하나?
나도 이제 해 봤다, 키스
[로맨틱한 음악]
미쳤다
[헛웃음]
자랑이니, 어? 아주 난 년 났네, 난 년 났어
아, 모르는 사람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경비원) 안녕하세요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세희) 어...
감사합니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4층
[오싹한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침을 꿀꺽 삼킨다]
[엘리베이터 도착음]
[안내 음성] 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지호의 황당한 숨소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저분이, 키스가, 신피질이 왜...
아니, 왜, 왜...
아, 잠깐만
[안내 음성] 내려갑니다
잠깐만, 왜 여기서 내려?
[놀라는 숨소리]
저 사람 설마
여기 살아?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지갑을 두고 왔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흥미로운 음악] (지호) 몇 호지?
하, 또 마주치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래, 그래, 일단 집을 들어가자
지금으로서는 집이 제일 안전해
[박진감 넘치는 음악]
[도어 록 조작음] [문이 달칵 열린다]
(여자1) 어, 자
[문이 탁 닫힌다]
[아이가 종알거린다]
[한숨]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안도하는 한숨] (지호) 우선은 이걸로 됐어
집 안에 들어왔으니까 이제 안전해
안심해도 돼, 흥분하지 마 [심호흡한다]
[익살스러운 음악] 어? 주인 언니 집에 계신가 보네?
[초인종이 띵동 울린다]
(배달원) 식사 왔습니다
(지호) 아, 진짜, 신피질이 같은 층이라도 사는 거면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아무리 재수가 없어도 이 넓은 서울에서 어떻게 같은 층에...
그래, 집주인 언니한테 물어보자
이웃에 누가 사는지 언니가 아시겠지
근데 이 언니 발 되게 크시네
275?
뭐야, 서장훈이야?
(지호) 안녕하세요, 집에 계셨네...
[밝은 음악] [고양이 울음]
왜 때문에 여기...
왜 때문에 여기...
그건 제가 물을...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아니, 저는
여, 여기 4, 여기가 401호고 제가 여기 살기도 하고 그런데...
설마
[익살스러운 음악] 아, 제가 집, 집을 잘못 들어왔나 봐요
(지호) 죄송합니다, 여기가 또 다 비슷하고 막 그런...
안녕히 계세요
[휴대전화 진동음]
예, 여, 여보세요?
(세희) 여보세요 [오싹한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윤지호 씨?
[경쾌한 음악] 네?
[호랑의 웃음]
(원석) 아,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하는 숨소리]
[원석이 입바람을 후후 분다] [휴대전화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호랑의 웃음] (원석) 야, 발 줘 봐
(호랑) 뭐 해? 냄새나
(원석) 아유, 7년 동안 맡았어요 뭘 이제 와서 그래요?
봐, 봐, 봐, 이거 다 뭉쳤잖아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어?
매장 화장실 가서 좀 앉아 있으라고 했지? 바보야, 쯧
아, 맞다, 오늘인가?
오늘? 오늘 뭔데?
오늘 무슨 날이야, 우리?
아, 아니다, 어제였구나
어제? 아, 아니, 어제 뭐 없는데?
나 확인 다 했는데 기념일 같은 거 없었, 없었는데, 뭐...
으음, 기념일은 아니고
[속삭이며] 나 생리 끝난 날
(원석) 야, 양호랑, 너 진짜, 씨
왜, 뭐?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너 진짜 죽었어 [웃음소리 효과음]
[신나는 음악] [호랑의 환호성]
- (원석) 일로 와 - (호랑) 야, 대박 좋다
(호랑) 어머나, 어머!
[원석이 말한다] 좋아, 좋아, 좋아
[호랑의 웃음]
아, 아, 대박 [휴대전화 진동음]
(원석) 잠시만, 저...
(호랑) 어?
왜? [원석의 못마땅한 신음]
응?
[호랑의 못마땅한 신음] [휴대전화 벨 소리]
(원석) 어?
쩝, 아이 [휴대전화 조작음]
어, 지호
네, 형!
(상구) 아니, 지금 난리 났다니까
아니, 하우스메이트가 왜 여자냐고
[흥미진진한 음악]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 집주인이 왜 남자냐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한숨]
[원석의 한숨] (상구) 지호라며, 잘생겼다며
담배도 끊었다며
그래요, 지호, 잘생겼잖아요
(원석) 진짜 담배도 이제 끊었는데
아, 무슨 형하고 장난치는 건가?
형이 저랑 장난치시는 거 아니에요?
세희라며요, 세희
(원석) 조용한 성격에 고양이 키우는 80년생
여기 형 옆에 있는 이 사람이라면서요 [흥미로운 음악]
(상구) 그래, 졸라 조용하고 고양이 키우는 80
자, 내 옆에 여기 세희 있네
이게 딱 세희, 여기 세희잖아
누가 봐도 얘가 세희잖아, 세희, 어?
아니요, 형님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보편적으로 어떤 조용한 80 남자가 고양이를 키울까요?
(상구) 와
그럼 보편적으로 어떤 잘생긴 여자가 담배를 끊을까?
일 났어, 일 났어
[상구의 심란한 한숨]
[상구의 한숨]
[상구의 기가 찬 숨소리]
[상구의 한숨]
(상구) 큰일 났어, 이제
응
어, 알았어
어
[통화 종료음]
[비장한 음악]
(지호) 여기
친구가 정리한다고, 미안하다고...
그 사람들이 무슨 정리를 합니까 당사자는 우리인데
(지호) 그러네요
저는 이름 때문에 당연히 여자분인 줄...
저도 윤지호라고 똑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군대 동기 중에
(지호) 네
[지호의 배가 꼬르륵거린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콜록 기침한다]
[연신 꼬르륵거린다]
[지호의 헛기침]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겠네요
네
[콜록거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세희) 그럼 정리되시는 대로 연락을...
[지호가 콜록거린다]
(지호) 네, 알겠습니다
[지호가 연신 콜록거린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절규한다]
[배가 꼬르륵거린다]
[거친 숨소리]
[고양이 울음]
(지호) 그래
네 말이 맞다
뭐라도 좀 먹고
이번 생은 그만 끝내야지
[배가 연신 꼬르륵거린다]
[답답한 한숨]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지호 - (지호) 응?
스테이크도 하나 먹을래?
(호랑) 있어 봐, 내가 목살로다가...
(지호) 괜찮아, 이거면 돼
[난감해하며] 미안해
(호랑) 아니, 어? 말이 되냐, 어?
봉희도, 옥희도 다 여자인데
어떻게 세희가 남자야? 그게 이쁜 이름이
(수지) 야, 이름 예쁘다고 다 여자냐?
하긴 너도 수지인데
(수지) 이씨 [지호가 피식 웃는다]
[지호가 콜록 기침한다]
물, 물? 자, 잠깐만
[지호가 콜록 기침한다] (수지) 저, 저 가시나가 진짜
- 괜찮아? - (지호) 응
[콜록 기침한다]
[숨을 씁 들이쉰다]
수지야
나 그 집주인 있잖아
그 남자가 사실은 내가...
왜? 그 새끼가 너한테 집적댔어? 어?
(호랑) 뭐? 그 자식이 너한테 집적댔어?
- 잘생겼어? - (수지) 키 커?
연봉은?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아니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상구) '마, 느그 서장 그, 남천동 살제, 어이?'
'내가 느그 서장이랑 다 했어! 어이?'
[상구가 술을 조르르 따른다]
[무서운 음악]
[한숨]
[탄성]
아, 자장면 맛있다, 여기
[쨍그랑 깨지는 효과음]
[유쾌한 음악] 아씨, 나보고 어쩌라고?
(상구) 어? 나도 썸녀 바람맞히고
황금 같은 주말에 여기 사무실 나와 갖고
자장면이나 먹고 있는데
어? 더 이상 내가 너한테 뭘 할까?
그래, 한 대 쳐라
네 마음이 풀린다면 한 대 쳐, 자
아니야, 쳐서 될 문제가 아니야
자, 이걸로 여기 경동맥을 찔러 최고야, 그게, 아주
자, 찔러 봐!
[놀라는 신음] [개가 낑낑거리는 효과음]
(상구) 아니, 아니, 그래도 너같이 철저한 놈이
왜 확인 전화를 한 통 안 했냐?
어? 너같이 철저한 놈이
그게 지금 이 회사 CEO가 물을 말인가, 응?
[비장한 효과음]
(세희) 모든 데이터가 완벽했어
페북으로 얼굴 확인도 했고
무엇보다 계약 조건 이행이
분리수거부터 고양이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어
초기 설정값에 그, 여자라는 항목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쁘냐?
이뻐?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상구) 뭐지, 이 무반응은?
이쁘구나?
(지호) 오늘은 친구 집에서 자고 가겠습니다 [상구가 계속 묻는다]
그러니까 편히 계세요
(상구) 이쁘지?
100% 이뻐요
[거리가 소란스럽다]
(수지) 너희 감독은 연락 없어?
(지호) 그러게, 어디 여행 가셨나?
야, 그 감독 믿을 만해?
(수지) 맨날 네 작품 하자, 하자 하면서 몇 년을 부려 먹는 거야?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가 살짝 웃는다]
[헤드셋 조작음] (수지) 여보세요
예, 팀장님
[수지의 한숨]
네, 제가 지금 들어가서 수정할게요
예, 예, 들어가세요
[헤드셋 조작음]
[헤드셋을 툭 던지며] 아, 쌍놈의 새끼
회사야?
[수지의 짜증 섞인 한숨] 들어가 봐야 돼?
그러라네
사실 내일 해도 되는데 오늘 하는 게 마음 편해서
그렇지
언젠가 해야 되는 일이면
오늘 해 버리는 게 낫겠지
(수지) 그렇지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미룬다고 남이 해 주나
지호, 너 우리 집에 먼저 들어가 있어라
수지야, 나 여기 좀 내려 줘라
어, 저, 저, 저 앞에 정류장
(지호) 고마워
뭔 일 있으면 연락해
(수지) 그 남자가 수작 부리면 바로, 끽
[살짝 웃는다]
수작 부린 건 나인데
아휴, 미룬다고 그 수작이 없어지나
가 보자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제가
[지호의 헛기침]
사과부터 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왔습니다
그때 제가
버스 정류장에서
거, 거기서
키스
한 거
죄송했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세희) 오프사이드
네?
통상적인 공격이 아니라
방어할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치고 들어온 오프사이드였죠, 그건
네, 맞습니다 일방적인 오프사이드 키스
정말 죄송했습니다
네
화 많이 나셨죠?
네, 저 같아도 화...
(세희) 화는 감정이 얽힐 때 생기는 거고요
강압적인 접촉을 당했을 땐 보통 당황스럽고 불쾌하죠
가, 강압, 가, 강압요?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지호) 제가 그날 너무 갑자기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거지
결단코 어떤 농락을 하, 하려다든가
강압적인 그런 불순한 의도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
[익살스러운 음악]
제가 지금 바로 나가는 게 스토리 전개상 맞는 거는 아는데요
사실은 제가
지금 갈, 갈 데가 없습니다
(지호) 제가 기다리고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만 빨리 해결되면 바로 나갈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숨을 씁 들이마신다]
[옅은 한숨]
[키보드 조작음]
(지호)
(지호)
(지호)
(지호)
[한숨]
[고양이 울음]
지금 문을 잠근 거야? [문을 달칵 잠그는 효과음]
[유쾌한 음악]
대박
(지호) 아, 씨, 쯧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힘겨운 목소리로] 여보세요
네
[밝은 음악]
아니요, 자고 있긴요
[잔잔한 음악]
- 금토 드라마요? - (박 감독) 응
(박 감독) 안 그래도 좀 산뜻한 청춘 멜로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위에서 찾고 있었는데
뭐, 이렇게 많이 써 놨는데, 뭐 못 들어갈 이유가 없지
저는, 저는 너무 감사하죠
- (박 감독) 용석 - (용석) 네
(박 감독) 이번에 입봉작인 거 알지?
두 분이 힘내서 한번
[손뼉을 짝 치며]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씁, 아무래도 인물들의 과거나 그, 비밀이 좀 더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지호) 음, 네
(용석) 아, 근데 그, 조연 중에 작가 지망생 역할이 좀...
(지호) 왜요?
아니, S대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작가 지망생을 하는 건
아이, 좀 비현실적이지 않나?
비현실적이에요?
왜, 감독님들도 언론 고시 재수, 삼수 많이들 하잖아요
[픽 웃으며] 아, 아니, 그거는 좀 다르지
우리는 회사라도 들어가는 거는 취업 고시인 거고
(용석) 씁, 작가는 뭐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깜깜한 터널을 저 혼자 걸어가는 거잖아
S대까지 나온 똑똑한 애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할까?
[잔잔한 음악]
[지호의 지친 숨소리]
(용석) 우리 둘 다 입봉작으로 대박 한번 내 보자
작가님도 이번 생에 스타 작가 한번 해 봐야지
[밝은 음악] (지호) 그래, 나도 이번에 터널 끝이다
어디 한번 돼 본다, 나도
[키보드를 탁탁 치며] 슈퍼스타 작가
[방울 소리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방울 소리 효과음]
[방울 소리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방울 소리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방울 소리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방울 소리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고양이 울음]
[후련한 한숨]
[웃음]
[휴대전화 진동음]
(여자2) 남세희 님의 대출 납입 기일은 9월 29일, 금리 3.2% 적용 예정입니다
대출 금액 187,259,712원에 대해
납입할 금액은 864,934원입니다 [동전이 잘랑거리는 효과음]
너희은행
[한숨]
[어두운 음악]
[비장한 음악]
그렇다면
[흥미진진한 음악]
[고양이 울음 효과음]
[한숨]
[필기구를 툭 내려놓는다]
[세희의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상구) 뭐 하냐?
익월 생계비 조정 중
(상구) 아이고, 야
아니,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자기 집에 세입자를 들이지?
음, 나는 암만 생각해도 너는
이렇게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종이 아닌 거 같은데?
월세가 필요하니까
(세희) 앞으로 월세를 10년만 받아도 3,600이야
월세와 월급이 보장되면
적어도 12년 안에는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지
그래서?
[흥미진진한 음악] 정년이 50세라고 치면 앞으로 남은 건 12년 남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2.1세
퇴직 후 내가 내 집에서 숨을 거두기 전까지
내 집에 사는 기간 약 32년
(세희) 어차피 생산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집에 없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그동안에 월세를 받고 대출금을 최대한 빨리 상환하는 게
나의 골이니까
그래, 내가 네 골은 알겠는데
(상구) 저기 당장 다음 달 월세가 비네?
그게 누구 때문이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고양이 울음]
[도어 록 작동음]
[오싹한 효과음]
[날카로운 효과음]
[잔잔한 음악]
[반짝이는 효과음]
[세희의 의아한 숨소리]
[날카로운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한숨]
[강조되는 효과음]
[놀라는 숨소리]
(상구) 4.7
이게 가능한 점수야, 너한테?
야, 이 정도 점수면 그냥 같이 살아, 어?
너같이 지랄맞은 놈한테 이 점수를 받았다는 거는
수능 만점보다 더 힘든 거야
그래도 안 돼, 그건
(상구) 왜? 요즘 여자 남자 메이트 엄청 많아
그리고 너는 뭐 연애고 여자고 관심 없잖아
그래도 안 돼, 리스크가 너무 커
리스크?
무슨 리스크?
[반짝거리는 효과음]
[한숨]
[키보드를 탁 친다]
[지호가 쓰레기통을 탁 닫는다]
[지호가 부스럭거린다]
[시끌벅적하다]
(지호) 벌써 출근하시나 봐요
네
어, 분리수거는 이제 안 하셔도 되는데
아, 그래도 아직까지는 제 일이니까
나가기 전까지 제가 하는 게 맞는 거죠
네
네
그럼
저기
[발랄한 음악] 네
혹시 화장실 타일 줄 새로 공사하셨습니까?
아, 네, 그, 너무 오래돼서 주말에 살짝 했는데...
아, 혹시, 그, 허락을 맡아야 되는 거였나요?
(세희)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럼 혹시 거실 유리창도 닦으셨나요?
네, 제가 글 쓸 때 청소하는 습관이 좀 있어서
그렇군요
(세희) 그럼 혹시
키스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하게 되신 겁니까?
(지호) 미친놈인가?
[저마다 대화한다]
그걸 왜 물으시는...
저한테, 아니, 우리 존립에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요
그래도 그게 지금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할머니1) 집에는 고추 다 말렸어?
(할머니2) 다 말렸어, 빻아다 놨어
[저마다 말한다] (세희) 아, 아, 네, 그렇군요
[밝은 음악] - (할머니1) 색깔이 좋지? - (할머니2) 응
(할머니1) 고추가 좋더구먼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여자3) 안녕하세요
[저마다 대화한다]
(세희) 자, 이제 편하게 얘기해 보시죠
어...
그게...
솔직히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었다?
네
(지호) 어, 그러니까...
제가 연애를 한 번도 해,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니 당연히 키스도 해 본 적이 없고요
그날 썸남이랑도 그렇게 됐고
네, 그랬죠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였어요
(지호) 연애도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야 하는 건데
난 둘 다 없으니까 [세희의 한숨]
보통 연애를 해야 키스도 하는데
과연 그럴 일이 일어날까, 내 인생에?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그냥 한번 해 보자
내가 또 언제 키스를 해 보겠나
뭐, 그랬던 거 같...
같아요
[지호의 헛기침]
[세희의 한숨] [지호의 어색한 웃음]
말해 놓고 나니까 더 미친 사람 같네요
이해 안 되시죠?
아니요, 그런 이유라면 정말 이해가 됩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정, 정말, 정말요?
네, 관계는 다 비용입니다 [흥미로운 음악]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감정이든
(세희) 그러니까 비용 없이 결과를 도출하고 싶어서
저한테 키스를 하셨던 거군요
네, 어, 맞아요, 저 그런 논리였어요
앞으로 그 어떤 이성적인 관계를 바라시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요, 아, 지금 제 코가 석 자인데 무슨 놈의 이성 관계를...
그럼 됐습니다
- 네? - 완벽합니다
뭐가...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세희) 지금까지 저희 집에 들어왔던 하우스메이트들 목록입니다
보시다시피 무려 7명의 메이트들 중
가장 점수가 높으신 분이 윤지호 씨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완벽한 점수의 메이트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만날 수 있다는 확률도 희박하고요
근데
[지호가 태블릿을 탁탁 짚는다]
(지호) 여기 너무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그게 바로 저희의 맹점이자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네?
[흥미로운 음악] (세희) 가능성이 이성이라면
같이 사는 데 결격 사유가 되겠지만
이미 가능성이 끝난 이성이라면
더없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저희는 이미 키스까지 해 봤으니
이성으로서의 호감은 이미 검증이 끝난 거죠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 그러네요 - (세희) 음
아니, 진짜로
어쩌다가 제가 키스를 하긴 했는데
정말 제 스타일 아니시거든요
저도 그렇습니다
[밝은 음악]
아, 그럼 혹시 저희 그냥 같이 살아도...
되는 거죠 [지호의 놀라는 숨소리]
(호랑) 그냥 같이 살기로 했다고?
뭐, 괜찮겠어? 그래도 남자인데?
(지호) 그럼
뭐, 이제, 뭐, 그럴 일도 없고
(호랑) 그럴 일?
이제?
어, 이제...
이제 와서 뭐, 내가 어떻게 30에 그런 방을 구하겠어
그러니까 그 집주인은
대출금 때문에 당장 월세가 필요하고
나는 보증금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필요하고
[손뼉을 짝 치며] 뭐, 서로 딱인 거지, 뭐
쯧, 하긴 언제 이런 데 살아 보겠어
(호랑) 야, 이런 데 전세는 얼마래? 비싸겠지?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호) 아, 안녕하세요
(박 감독) 어, 윤 작가 왔어?
(용석) 일찍 왔네?
안녕, 윤 작가
[의미심장한 음악]
안녕하세요
(황 작가) 놀랐어?
[황 작가의 웃음]
아, 다들 또 보니까 너무 좋다
- (박 감독) 작가님, 앉아 주세요 - 네 [황 작가가 대답한다]
(박 감독) 씁, 어, 그래서 그, 좀 큰 줄기 정도는
우리, 저, 황 작가님이 좀 잡아 주시면 어떨까 해서
(용석) 사실 편성 받을 때도 그게 좀 유리하고
신인 작가 이름으로 편성 잘 안 내주는 거 알잖아
네
아, 물론 공동 작가야 오해하지 말고, 윤 작가
오해는요
저야 영광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그래
내가 설마 이 나이에 보조 작가 작품을 뺏겠어? 응?
[황 작가의 웃음]
많이 도와줄게, 잘해 보자, 파이팅
(박 감독) 좋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1회부터 한번 정리를 좀 해 봅시다
아, 이거 뭐부터 얘기를 해야 되나?
(황 작가) 할 얘기가 많아서 [사람들의 웃음]
[황 작가의 한숨]
(박 감독) 아니, 윤 작가
네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세희) 저...
[지호가 분무기를 칙칙 뿌린다]
[큰 목소리로] 저
아, 오셨어요?
네
글이 또 잘 안 풀리시나 보네요?
네, 그, 스트레스를 조금 받다 보니까 또 습관적으로다가...
정말
이상적인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멋쩍게 웃으며] 아, 그, 그런가요?
네, 훌륭하십니다
아, 감사...
[웃으며] 감사합니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풀벌레 울음]
[고양이 울음]
[함께 놀란다] [고양이의 놀란 울음]
[함께 탄식한다]
[세희가 맥주 캔을 탁 내려놓는다]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같이 보시죠
어, 아니에요, 저는 또 일해야 돼서
[문이 달칵 열린다] [놀라는 신음]
아이씨 [문이 달칵 닫힌다]
[TV에서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 (TV 속 해설자1) 좋아요, 이오비! - (TV 속 캐스터1) 왼쪽으로 슛!
[함께 놀란다]
(TV 속 해설자1) 요리스 골키퍼 정면으로 가는군요
[함께 탄식한다]
(TV 속 캐스터1) 지금 아스널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익살스러운 효과음]
전환되는 수비 배치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TV 속 해설자1) 예 [지호의 시원한 숨소리]
역시 더비 매치는 쫄깃하네요
리그의 꽃이라 할 수 있죠
(호랑) 근데
그 남자 결혼은 안 한대? [흥미진진한 음악]
아니, 그 나이에 집도 있고 직업도 멀쩡한데 결혼은 왜 안 해?
[놀라며] 혹시 게이 아니야?
근데
결혼은 안 하세요?
아니, 그, 보통 적령기에는 다들 하시니까
더군다나 집도 있으시고
보통은 그렇죠
근데 전 비혼입니다
아, 비혼이면 그럼 아예, 그, 영원히 안 하시는...
네
(세희) 인생에서 이 집과 고양이 그리고 저 자신
이 세 가지만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 이상의 비용과 에너지가 드는 일은 할 필요가 없죠
네
근데 그럼 이 집은 대출이 언제까지?
이제 30년만 갚으면 됩니다
[강조되는 효과음] 30년요?
[익살스러운 음악]
아니, 그럼 평생을 이 집만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건데, 그게...
(지호) 그게 좀 허망하지 않나 해서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만큼 더 확실한 것이 있습니까?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지호) 근데 여기 바로 앞에 종합 병원이 있더라고요
(세희) 네, 도보로 10분
제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어?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요, 지금이 아니라 노후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병원이 근거리에 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니까요
[어색한 웃음]
아니, 아직 젊으신데 뭘, 벌써부터 그런 것까지
이 집에서 제 생을 마감할 거니까 모든 것을 다 고려해야죠
(세희) 음, 사실은 지호 씨 방이 제 임종 공간입니다
[오싹한 음악]
네?
[옅은 웃음]
그 방이 통풍이 잘되거든요
[바람이 휭 부는 효과음]
방이 어쩐지
시원하더라
아, 논리적으로 이해는 가는데
뇌가 정사각형일 거 같아
심장도
하, 진짜 내 스타일은 아니야
[발랄한 음악]
(명자) 어, 잠깐만요
[명자의 멋쩍은 웃음]
- (명자) 예, 고마워요 - 아닙니다
[안내 음성] 4층, 문이 닫힙니다
몇 층 가세요?
아, 나도 4층이에요, 고마워요, 아가씨
[명자가 살짝 웃는다]
[안내 음성] 문이 열립니다
[도어 록 조작음]
(명자) 아가씨, 왜 거기 들어가요?
네?
어, 그것은, 여기가 저희 집이라서가 아닐까요?
[명자의 헛웃음]
여기 우리 아들 집인데?
네?
[흥미진진한 음악]
(지호) 어떡하지?
[명자의 거친 숨소리]
(명자) 아, 됐어!
그러니까 저 아가씨가 사귀는 아가씨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우스메이트라고
하우스메이트인지 메주인지 어쨌든 여자잖아
(명자) 아니, 사귀지도 않으면서 같이 살아서 너 뭘 어쩌자는 거야?
사귀지도 않으니까 같이 사는 겁니다
(세희) 세입자니까요
너 진짜 결혼 안 할 거야?
(명자) 이 엄마 말려 죽일 셈이야?
결혼 이야기는 왜 또 꺼내세요? 안 한다고 했잖아요
네 아버지가 나랑 이혼한다잖아
너 결혼 못 시키면 나랑 이혼한대
(명자) 내가 이 나이에 이혼당해야 되겠니?
[답답한 신음]
엄마도 좀 마음 좀 편하게 살아 보자
넌 어떻게 그렇게 네 생각만 하니?
[명자의 답답한 신음]
(세희) 죄송합니다
외부인 방문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제가
외부인이 아니라 부모님이시잖아요
(지호) 자식 생각하는 부모 마음 다 똑같죠, 뭐
(세희) 자식을 볼모로 자기들 삶을 완성시키려는
그 이기심이 똑같은 거겠죠
지호 씨만 괜찮으시다면 그냥 잠시 무시하고 계셔도
아유, 아니요, 아유, 어떻게 그래요
청심환을 두 알이나 드시고 가셨는데
아, 아는 감독님이 남는 작업실 하나 있다고 해서
일단은 거기로 가면 되고
또 계약금 받으면 방도 곧 구할 거니까요
네
그럼 이번 달 월세는 제가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세희) 그럼 저는 회사 때문에 먼저...
아, 예, 가 보세요
[잔잔한 음악]
[고양이 울음]
[지호가 살짝 웃는다]
(지호) 고양이
[고양이 울음]
너랑도 정 많이 들었는데
[웃음]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이제 나 가면 낮에 너 혼자 심심해서 어쩌냐?
[고양이 울음]
[지호가 혀를 쯧 찬다]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힘주는 신음]
[코를 훌쩍인다] [키보드를 탁탁 친다]
뭐야?
왜?
어? [고양이 울음]
(지호) 감독님, 아니, 이거는 수정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드라마잖아요
(용석) 아이, 왜 그래? 황 작가님이 줄기 잡아 주시기로 했잖아
(지호) 아니, 그러니까 그 줄기가...
[한숨 쉬며] 이게 예전에 하던 치정 멜로랑 뭐가 달라요?
아니, 고시원 청춘 멜로에서 왜 출생의 비밀이 나오냐고요
윤 작가님 왜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굴어?
네?
고시원, 청춘 신선한 거 그런 거 우리도 좋은 줄 다 알아
근데 좋다고 사람들이 먹어?
(용석) 조미료도 좀 들어가고 그래야 먹지
맛있어야
[용석의 한숨]
작가님
서울대 나왔다면서?
황 작가님한테 들었어
그 나이면 지금쯤 동기들 다 자리 잡고 잘돼 있을 텐데
작가님도 잘돼야지
나이 서른에 언제까지 이런 데서 먹고 자고 할 거야?
안 그래?
(명자) 아버지 예전 학교 여교사래
스물여덟이니까 나이 차이도 딱이고
(세희) 네, 아까 다 들었어요
(명자) 늦지 않게 나가
아들, 노력이라도 좀 해 줘 엄마 위해서
(세희) 알았어요, 주무세요
[잔잔한 음악]
(지호)
[지친 한숨]
[한숨]
(사회자) 신랑 입장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객들의 환호성]
신부 입장
[하객들의 환호성]
이쁘다!
야, 별거 없어, 그냥 해, 결혼
야, 별거 없어 그냥 한 번 더 가, 군대
뭐가 달라, 지금?
다르지
야, 저기 봐라
(상구) 한두 시간 고생하고, 어? 어른들 구색 맞춰 드리고
한복 입고 대추나 몇 알 먹으면 끝나, 그거, 결혼
결혼식만 하고 각자 집에 가나 보지?
(상구) 때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지
이 부부의 형태라는 건 아주 다양하거든
쇼윈도 부부, 주말부부
섹스리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사회자가 진행한다]
야, 인마, 너는, 인마, 결혼하면 아버지가 대출금 다 갚아 주신다며
나 같으면 한번 갔다 오겠다
(사회자) 신랑 신부 맞절
잘 어울린다!
(수지) 왜 안 와?
지호 늦는댔어, 회의 때문에
근데 우리 대학 동기 결혼식에 네가 왜 오냐?
원석이 대학 동기이기도 하거든
우리 원석이 바빠서 내가 대신 온 거거든?
- (여자4) 수지야, 수지 - (여자5) 야, 수지야
- (여자6) 수지 - (여자4) 수지
지호
- (상구) 아유, 부장님, 축하드립니다 - (혼주) 감사합니다
(상구) 야유, 큰일 하셨습니다, 예, 예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여자6) 너 옷 되게 이쁘다, 근데
(여자4) 마련했지
[저마다 말한다] (여자5) 야, 수지야, 너 명함 하나만 줘라
우리 동생 이번에 HK에 원서 넣거든
별거는 못 해 줘
(수지) 회사 전반적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메일 보내라 그래
[사람들의 탄성]
(여자4) 우리 오빠가 그러는데 너 사업 지원 팀 수재라며?
으음, 나도 명함 하나만
(여자6) 야, 나도, 나도, 나도 [여자5의 웃음]
- (여자6) 어, 나도 - (수지) 어째 반만 들었냐?
(수지) 우리 팀에서 연예인 수지 아재형 버전이라고 '수재'라고 불러
[사람들의 웃음] (여자5) 뭐야, 진짜
진짜 수재는 우리 지호지
(수지) 여기서 학교 다닐 때 전액 장학금 받아 본 사람
지호밖에 없을걸?
[여자4의 탄성] [여자5의 어색한 웃음]
(여자5) 어, 아, 그래, 그 야, 지호야, 너 간만이다
어, 넌 지금, 그, 뭐 하지?
(수지) 야, 지호 드라마 작가야
(사람들) 진짜?
[저마다 놀란다] (여자6) 와, 진짜? 대단하다
아니야, 아직 보조 작가야, 그냥
야, 너무 신기하다
뭐 썼어? 어떤 거?
어, 제일 최근에 했던 건
'빙구의 사랑'
비, 빙구, 빙구?
[사람들의 어색한 웃음] (여자4) 어, 빙구, 빙구
그전에는 '꽃순이 라면 가게'
[사람들의 어색한 웃음]
랑 '주부의 신' 그건 좀 다들 알던데
어, 아! 아, 어
[사람들의 어색한 웃음] (여자4) 어, 그거, 그거
봤지? 그래 [저마다 호응한다]
[잔잔한 음악]
야, 너희 '주부의 신' 몰라?
(여자4) 아, 요즘 내가 TV를 잘 안 봐서
(수지) 그거 아침 드라마계의 명작이야
어? 야, 휴대폰 검색해 봐, 빨리, 어?
[저마다 호응한다]
- (수지) 빨리, 빨리, 빨리 - (여자5) 어, 그래? 아유, 몰랐네
(여자6) [멋쩍게 웃으며] 어, 그래, 미안
나 선약이 있어서 먼저 좀 일어날게
[저마다 인사한다]
(호랑) 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오버야?
하나만 해, 하나만
[호랑의 한숨] (지호) 왜 나왔어?
나 진짜 일 있어서...
나도 집에 가야 돼
쯧, 여기 7737 오나?
아휴, 왜 잘난 애들은 겸손까지 하려 그럴까? 재수 없게
그렇지?
[지호가 살짝 웃는다]
아, 그러게, 공부는 뭐 하러 괜히 잘해 가지고
(호랑) 나 봐, 공부 못해서 선택권도 없고 편하잖아
[살짝 웃는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거는 다 이유가 있는 건가?
(지호) 아빠가 굶어 죽는다고 국문과랬는데
[픽 웃으며] 그 말이 딱 맞긴 맞네
지호
요새 글이랑 사이가 안 좋아?
(지호) 응?
(호랑) 아니, 수지보다 돈도 못 벌고 나처럼 연애는 안 해도
글 쓸 때 너는 진짜 행복해 보였었는데
[잔잔한 음악]
[놀라며] 요새 글 쓸 때 안 행복해?
글이랑 권태기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상구)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 (상구) 응? - (세희) 나 먼저 간다
(상구) 같이 가, 치사하게, 야, 야
- (상구)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남자) 네
(상구) 같이 가
(세희) 나 약속 있어, 늦으면 안 돼
(상구) 야, 주말에 네가 무슨 약속이 있어?
아, 오늘 선보는구나? 그렇지?
(세희) 간다
(상구) 남 수석, 정상인인 척해 [익살스러운 음악]
그럼 너도 결혼 한 번 할 수 있어 파이팅
아유, 안녕하십니까, 마상구입니다
결혼 말고 연애
[한숨]
아이씨
[상구가 흥얼거린다]
[함께 놀란다]
(상구) 어유,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나, 미치겠네
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수지) 네 [상구의 다급한 신음]
[야릇한 효과음]
"콘돔"
씁, 이거
(상구) 어제 썼는데, 안 썼나?
주세요
- (상구) 뭘요? - 그거
제 거예요
(상구) 아, 콘돔?
[헛웃음]
씁, 어? [흥미로운 음악]
옥상 파티 맞잖아
아니, 감히 나를 못 알아봐? 하하
(황 작가) 고시원 원래 주인을 죽이고
자기가 주인이 된 최영주라는 여자가 있고
어, 여기에 재벌 3세인데
최준성이라는 작가가 들어와서 자기 엄마를 찾아
근데 봤더니 사실은 알고 보니까 둘이 이복형제인 거야
배다른, 어? [용석의 탄성]
글 쓸 때 너는 진짜 행복해 보였었는데
요새 글 쓸 때 안 행복해?
(황 작가) 연인들이 있는데 서로 다 달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박 감독) 재밌는데?
(용석) 예, 재밌어요
(황 작가) 그렇지?
(용석) 윤 작가님, 어때?
네?
아...
네, 재미
(용석) 네
있어요, 이게?
뭐가요?
(지호) 왜 고시원 이야기 하자고 해 놓고 재벌 3세가 여기 숨어 살아요?
왜 청춘 멜로 하기로 해 놓고 배다른 형제 하냐고요
(박 감독) 아니, 윤 작가...
(지호) 아니, 그렇잖아요, 감독님
이럴 거면 그냥 화끈하게 정통 막장을 하는 게 낫지
왜 속여요, 사람들을?
(황 작가) 윤 작가
지금 막장이라고 했...
너무 막말하네
아니, 난 도와주려고...
너 정말 이번 작품 안 하고 싶어?
이번 작품 하고 말고는 제가...
제가 정하는 겁니다, 작가님
이거 원래 제 작품이잖아요
[잔잔한 음악]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지친 한숨]
[캔을 딸깍 딴다]
[세희의 한숨]
[한숨]
[지친 한숨]
[한숨]
[휴대전화 알람음]
잘 들어갔으면
그다음엔 뭐?
이게 무슨 시간 낭비냐
[고양이 울음]
[옅은 웃음]
아
미안하다, 바빠서 밥도 까먹고
[한숨]
우리한테 필요한 건 결혼이 아닌데
[휴대전화 진동음]
(박 감독) 윤 작가, 어디야?
황 작가님한테 사과해
이러다 진짜 작품 못 해
이 바닥에서 끝나고 싶어?
[문이 달칵 열린다]
누구세요?
(지호) 뭐, 뭐야? 여기 왜 들어와요?
[헛웃음]
[술 취한 목소리로] 내가 작가님 보러 여기도 못 오나?
(용석) 내가 구해 준 곳인데?
[용석의 힘겨운 신음]
[용석의 답답한 한숨]
작가님
아니, 왜 그래, 진짜?
나 지금 작가님이랑 이 작품 잘해 보려고 하는데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지호) 아니, 나도, 나도 그랬어요, 근데
아니, 이건 우리가 하려던 얘기가 아니잖아
[한숨]
(용석) 아니, 누가 하고 싶은 거를 처음부터 해?
하고 싶은 거는
잘된 애들이나 하는 거야
아니, 우리 같은 애들은 우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라고
가, 감독님, 알았어, 알았어요 술, 술 깨고 내일 얘기해
왜 이래요?
작가님
나 좋아한 적 없어?
하지 마
(지호) [힘겨운 목소리로] 감독님, 하지 마, 감독님
잠깐만!
술 취했잖아! 내일 얘기해요
하지...
잠깐만, 하지...
하지 말라고, 진짜!
[지호의 거친 숨소리]
야, 네가...
네가 지금 진짜 나쁜 게 뭔지 알아?
3년 동안 사람 마음 헷갈리게 한 것도 아니고
내 작품 가지고 장난친 것도 아니고
여친 있는데 나한테 집적댄 것도 아니야
[한숨]
나는 지금 오늘 잘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는데
네가 지금 여기까지 나가게 만들었어, 알아?
나 진짜 잠 좀 자고 싶단 말이야 이 나쁜 새끼야!
[잔잔한 음악]
[훌쩍인다]
[훌쩍인다]
(지호) 아무리 친해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떨리는 숨소리]
[풀벌레 울음] [멀리서 개가 짖는다]
[한숨]
(은솔) 아, 하지 마, 오빠
(지석) 아, 일로 와 봐라, 어?
오늘 밤에 다 잤다, 니, 어? 어?
[지석과 은솔의 웃음]
(지호) 때론 가족이 세상에서 [지석과 은솔이 웃으며 대화한다]
제일 먼 사람들일 때도 있다
(지호) 꿈을 먹고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이제부터 내 인생은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깜깜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외로울 줄은 몰랐다
(지호) [울먹이며] 도대체...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되는 건데!
[지호가 흐느낀다]
나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
뭐야?
이건 또 뭔 내비게이션 모드야?
[잔잔한 음악]
(TV 속 해설자2) 지금 아스널 입장에서는 월컷의 이런 돌파가 좀 더 필요하고요
- (TV 속 캐스터2) 예 - (TV 속 해설자2) 마지막 슈팅은 [세희가 캔을 딸깍 딴다]
(TV 속 해설자2) 지금 굴절된 것으로 보이죠?
(TV 속 캐스터2) 첼시가 여전히 한 골 앞서 있습니다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이 공을 아스널이 따내는데요
[TV에서 중계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고양이 울음]
(지호) 아...
저, 제가 자다가
꿈을 꿔서 깨는 바람에
잠깐 걸으려고 나왔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요
네, 악몽을 꾸셨나 보네요
네
가도 가도 끝이 안 나는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꿈을 꿨어요
그러셨군요
(지호) 잘 지내셨어요?
네, 뭐
[옅은 숨을 내뱉는다]
(세희)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
네
혹시 시간이 좀 되시면
네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
[잔잔한 음악]
(지호) 그때 나는 어디라도 잠깐 주저앉고 싶었다
그게 맨홀이든 구덩이든
어디든 간에
네 [밝은 음악]
(지호) 오늘 밤은 좀 편하게 자고 싶다
[밝은 음악] (지호) 혹시 저를 좋아하세요?
- 지호가 - (수지) 좀
(지호) 저... [함께 비명을 지른다]
(수지와 호랑) 돌아이거든
[카메라 셔터음]
(여자7) 저 남자 완전 귀엽지 않냐?
(호랑)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많이 산대
그러니까 '할놈할'이라는 거야 '할놈할'
(호랑) 잘난 척 좀 하지 마, 재수 없으니까!
(지호) 아빠가 상 엎으면 게임 끝나는 거라
(종수) 이게 돌았나! 어?
니 지금 동거라고 씨불였나?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운명인 것 같아
첫눈에 반했구나?
뿅 막 이런 거
(세희) 혹시 저를 좋아하십니까?
지호 씨니까요
(세희) 지호 씨니까 그랬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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