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3
(지호) 나는 멜로드라마의
보조 작가
(여자1) 대출 금액 187,259,712원에 대해
[고양이 울음 효과음] 납입할 금액은 864,934원입니다
(지석) 니 고모 된다
- (지호)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은솔) 아들이래요
(지호) 게임은 끝났다 [가족들의 웃음]
(지호) 타운 하우스?
(호랑) 바로 입주해 줬으면 좋겠고...
(지호) 나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어
[놀란 숨소리]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지호) 어, 슛!
[지호의 놀란 탄성] (세희) 골!
나한테 쪽팔려서 그래요
(지호) 나이 서른 먹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 하고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세희)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서른도 마흔도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지호) 저 이상한 말이 그날은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지호) 안녕하세요, 집에 계셨...
[고양이 울음]
(지호) 저는 이름 때문에 [잔잔한 음악]
당연히 여자분인 줄...
- (세희) 혹시 - (지호) 네
화장실 타일 줄 새로 공사하셨습니까?
(세희) 거실 유리창도 닦으셨나요?
[방울 소리 효과음] (지호) 네, 제가 글 쓸 때
청소하는 습관이 좀 있어서
그렇군요
[지호의 한숨]
(지호) 인사도 못 드리고 가요
누구세요?
(지호) 꿈을 먹고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이제부터 내 인생은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래도 이렇게까지 깜깜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외로울 줄은 몰랐다
[잔잔한 음악]
(세희)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호) 네
혹시 시간이 좀 되시면
네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
네
네? [익살스러운 음악]
뭘, 뭘 해요?
결혼요
제가 왜 결혼...
(지호) 아, 우, 우리가 왜 결혼을...
아니, 집주인분이랑 저랑 왜 그런 걸...
왜 해요?
아닙니다,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에?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한숨]
(세희) 그만 자야겠네요
[고양이 울음]
음, 쓰시던 방에 이불은 그대로 있습니다
베개 커버는 세탁 중이니까 제가 새걸...
(지호) 아니요, 됐습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베개 커버 없이 주무시는 건 청결에 좋지 않은데요
아니, 이만 가 보겠다고요
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 잠깐 산책 나온 거라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맥주는 잘 마셨습니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잔잔한 음악] [풀벌레 울음]
[한숨]
"택시"
[숨을 씁 들이켠다]
어떻게 이렇게 갈 데가 하나도 없냐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세희) 택시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비밀번호는 그대로입니다
(세희) 혹시 시간이 좀 되시면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
분명히
결혼이라고 말했지?
[달칵]
[흥미진진한 음악] 아니, 왜 맨날 문을...
(지호) 하, 지금 문 잠글 사람이 누군데...
아니, 장난쳐? 지금 뭐야?
하, 결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얘기를 해 놓고 왜 자기가 문을 잠...
아, 진짜, 씨
내가 첫차 시간 맞춰 놓고 바로 나간다, 내가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치
치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한숨]
[인터폰 조작음]
네, 401호입니다
지금 옆집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거 같은데
왜 동의서도 없이...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네
공사 소리가 아니었네요
[오싹한 음악]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흥미진진한 음악] [고양이 울음]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호가 코를 드르렁 곤다]
[오싹한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첫차 올 때까지만 있다 가겠습니다
일어나시면 없을 테니 미리 안녕히 계십쇼
못 들은 걸로 하자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 울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코를 연신 드르렁 곤다]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 나야, 지호 왜 전화를 안 받지? 톡도 안 읽던데
(호랑) 그래? 방송국 회의 들어갔나? [말소리가 들린다]
(수지) 호랑, 먼저 끊는다
[통화 종료음] [칙칙 뿌린다]
[박 대리가 말한다]
(박 대리) 어, 우 대리, 바람 쐬러 나왔어?
(수지) [웃으며] 네
(박 대리) 아, 온 김에 같이 담배도 한 대 같이 피우고 가지 그래?
[함께 웃는다]
어?
(직원1) 대리님, 요즘 그런 농담 하면 안 돼요
(박 대리) 괜찮아, 우 대리잖아, 우 대리 [직원들의 웃음]
- (박 대리) 진짜 괜찮아 - (직원1) 하, 그럼 괜찮죠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쯧, 진짜 안 받네?
[옅은 탄성]
[호랑의 편안한 신음]
(가게 직원) 오늘은 왜 안 나오나 했다
어, 이거 이제 몇 개 안 남았어
맨날 만지지나 말고 하나 사
진짜요?
아, 안 되는데 신혼집엔 꼭 이거 놓고 싶었는데
또 안 나오려나, 내년엔?
내년? 아유, 아, 그냥 남자 친구한테 빨리 결혼하자 그래
(가게 직원) 그러다 이쁜 시절 다 지나간다
(호랑) 너무 바쁜 사람이라
우리 남친 S대 나왔잖아요
어, 그래? 뭐 하는데?
언니는 말해도 몰라 엄청 어려운 일 해
(가게 직원) 음, 잘났어, 정말
[뿌듯한 신음] [가게 직원의 웃음]
(호랑) 쯧, 하
[지호가 코를 드르렁 곤다] [고양이 울음]
[휴대전화 알람음]
[고양이 울음]
[한숨 쉬며] 아, 놀라라
두 시간밖에 안 잤는데 엄청 개운하네
[개운한 신음]
[한숨]
[익살스러운 음악]
[고양이 울음]
[고양이 울음]
[고양이 울음]
[지호가 픽 웃는다]
너는 무슨 새벽 5시에 밥을 먹니?
[지호가 픽 웃는다]
[속삭이며]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쉿
너희 주인 깬다
조용히 먹어, 제발, 조용히
[오싹한 효과음]
[고양이 울음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디 갔다 오세요?
회사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 시간에요?
(세희) 네
혹시 지금 일어나신 겁니까?
(지호) 네
이 시간에요?
네 [뻐꾸기시계 효과음]
(지호) 아니, 제가 어제 첫차 타고 나간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막차가 아니고요?
막차요?
[헛웃음 치며] 말씀이 좀 심하신 거 아니에요?
(지호) 막차를 타고 가라니
도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길래
어제부터 좀 너무하시네요
[지호의 한숨]
밤새 심란해서 두 시간도 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다가
첫차 타려고 새벽같이 일어난 사람한테
아, 이렇게 막 말씀하실 정도로 무례한 분이셨어요?
저는 그저 팩트를 말씀드린 겁니다
지금은 첫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네?
지금은
[째깍거리는 효과음]
저녁 5시입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첫차는 타실 수가 없죠
막차라면 모를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말을 버벅대며] 새벽 5시가 아니라
저녁 5시라고요?
네
그럼 제가 두 시간이 아니라...
정확히 14시간을 주무신 거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지금 이거
실화인가요?
네, 실화입니다
[지호의 배가 꼬르륵거린다]
[고양이 울음]
알람이 잘못 맞춰져서
(지호) [멋쩍게 웃으며] 진짜 첫차 타고 나가려고 했는데...
네, 너무 깊이 잠드셔서 저도 깨우지를 못했네요
(세희) 그동안 잠을 잘 못 주무셨나 봐요
지금 계신 곳이 편하지는 않으신가 봅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왜 저한테 잘해 주세요?
제가요?
네
(지호) 라면도 큰 거 주시고
어제 베개 커버도 새걸로 주시고
- (세희) 아니, 그건... - 결혼도
하자고 하셨잖아요
그 부분은 못 들은 걸로 해 달라고 어제 말씀드...
들었는데요, 저는
그냥 신경 쓰지 않으셔도...
신경 쓰여요, 전
(세희) 불겠습니다, 드시죠
[세희가 입바람을 후 분다] 혹시 저를
좋아하세요?
[밝은 음악]
(지호) 혹시 저를 좋아하세요?
[잔잔한 음악]
아니요
(세희) 컵라면은 제가 매운 걸 못 먹기 때문에 그걸 드린 거고
베개 커버 없이 주무시는 건
침구의 청결에 좋지 않기 때문에 새걸 드린 겁니다
그리고 결혼은
제가 필요하니까 여쭤본 겁니다
필요하다고요?
네
(세희) 만약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된다면
세입자분께서 최적의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니, 도대체 뭐가...
뭐, 어떤 사고를 거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요?
저는 집에 있어 줄 관리자가 필요하고 지호 씨는 집이 필요합니다
(세희) 저는 정기적인 월세가 필요하고
지호 씨는 보증금 없는 방이 필요합니다
서로 같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 아닙니까?
그래서 한번 여쭤본 겁니다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결혼을...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집 때문에 결혼을 해요?
그럼 결혼은 뭐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 뭐, 애정, 사랑
뭐, 그런 것 때문에 하는 거죠, 결혼은
[세희의 한숨]
(세희) 그렇죠, 보통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근데 애정, 사랑 그런 게 지금 당장 필요하십니까?
집보다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필요하겠죠
저한테도
그러시군요
저는 지호 씨가
저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제 판단 오류였네요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해 주십시오
(세희) 그럼 천천히 드시고 가십시오
[어이없는 숨소리]
[복사기 작동음]
[복사기 조작음]
(박 대리) 우 대리, 퇴근 안 했어?
(수지) 아, 네, 마무리 좀 해야 돼서
(박 대리) 아, 내일이지?
에헤, 이런 건 좀 애들 시키지
지금 우 대리가 이런 거 뽑을 짬밥이야?
어린애들한테 너무 잘해 주고 그러면 안 돼, 여자 상사라고
시킬 땐 좀 빡세게 시키라고
퇴근 안 하세요?
아니, 뭐, 할 일이 좀 남아 있기는 한데
(박 대리) 씁, 우 대리가 있으니까 오늘은 내가 먼저 가야겠다
네? 제가 남은 거랑 박 대리님 퇴근이랑 무슨 관계가...
아, 그게, 쯧 우 대리랑은 관계없지만
왜 사람들 보는 눈이...
- 네? - 아니, 저번에 부장님이 그러더라고
(박 대리) 되도록 결혼 안 한 여직원이랑 단둘이 야근하지 말라고
아이, 그게 좀 그렇거든
물론 우 대리는 결혼 안 해서 모르겠지만
나 같은 유부남들은 그런 소문도 조심해야 되고
여직원들이랑 엮여서 소문나고 그러면 나는 진짜...
그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박 대리) 아니, 뭐, 그렇다고 이렇게 일찍 가?
(수지) 씨방 새끼
[박 대리의 못마땅한 신음]
(직원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발랄한 음악]
"영업 중"
"영업 종료"
자, 10분 안에 매장 정리하고 칼퇴합시다
(직원들) 네
- (호랑) 이쪽 한번 다시 닦아 줘요 - (직원2) 네
- (호랑) 슬기 씨, 여기도 - (직원3) 네
(직원3) 우리 쌀국수 먹으러 갈래요?
[저마다 호응한다]
(직원2) 쌀국수 맛있겠다
[직원2의 놀라는 신음]
(직원2) 야, 야, 야, 야 저 남자 완전 귀엽지 않냐?
(직원4) 응, 대박
(직원3) 비주얼 완전 내 스타일인데? [직원5의 탄성]
[밝은 음악] (직원4) 진짜 잘생겼다
(직원5) 어? 근데 저분
매니저님 남자 친구분 아니에요?
[직원2의 놀라는 숨소리] (직원4) 대박
- (직원2) 아, 진짜? - (직원3) 몰랐어요 [저마다 사과한다]
존잘이지?
나 먼저 갈게, 내일 보자
[저마다 인사한다]
- (호랑) 석 - (원석) 아이고, 왔어요?
[직원들이 저마다 부러워한다]
(직원2) 아, 근데 매니저님 막 되게 장수 커플이라고 하지 않았나?
음, 한 7년이라 그랬나?
[함께 놀란다]
(직원4) 근데도 저렇게 맨날 늦게 끝나면 데리러 오시잖아, 대박이지?
(직원3) 어, 대박, 진짜 완전 부럽다
(직원5) 부럽다, 멋있다
[호랑이 스위치를 탁 끈다]
[호랑의 옅은 신음]
[호랑이 흥얼거린다]
석, 오늘은 뭐 했어?
오늘?
오늘은 엄청난 성과가 있었지
[놀라는 숨소리]
투자자 찾았어?
누가 투자한대?
(원석) 랑, 이거 봐 봐
어제 완성한 그래프인데 진짜 이쁘지 않아?
[웃으며] 요거, 무슨 별자리 같기도 하고
진짜 칼 세이건 말이 맞나 봐
결국 인간과 우주는 연결돼 있다는 거
[원석이 피식 웃는다]
진짜 아름답지?
응, 그러네, 동래 파전같이 생긴 게
[호랑의 헛기침]
(호랑) 석, 내가 그때 말한 소파 있잖아
뭐? 아, 그 옆 매장에 새로 들어왔다는 거?
(호랑) 어, 그거 벌써 몇 개 안 남았다네?
(원석) 그래, 살놈살이라니까
경기 불황이다 뭐다 해도 살 놈들은 다 살 거 사고 살더라
[원석이 키보드를 탁탁 친다]
그,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많이 산대
그 소파가 신혼집에 딱 적당하게 잘 나와 가지고
(원석) 랑아, 그러니까 할놈할이라는 거야 할놈할
저출산이다 뭐다 해도 할 놈들은 다 할 거 하고 사는 거야
어유, 대한민국 아직 멀었다, 진짜
[흥미진진한 음악]
랑아, 뭐, 매장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니, 나 오늘 엄청나게 보람찬 하루였는데?
[휴대전화 진동음]
아, 또 뭐 때문에 화난 거야?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 뭐 했나? 아, 미치겠네
- (호랑) 석 - 예?
(호랑) 지호 사는 그 남자 집 주소가 뭐야?
수가 물어보는데 하도 연락이 안 돼서
아, 지호요, 그 그 집에서 나왔는데요, 저번 주에요
(호랑과 수지) 뭐?
너희 몰랐어?
아니, 그럼 걔 지금까지 어디서 잔 거야?
(세희) 저는 지호 씨가
저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게 뭔 소리야?
(지호) 같은 카테고리가 뭐야?
[사람들이 수군댄다] 아, 진짜 희한한 사람이네
(여자2) 야, 잠옷, 잠옷
[사람들이 키득거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안내 음성] 잠시 후 도착 버스는...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 수지야, 난데
(수지) 야, 너 어디야!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고
어, 미안, 미안 내가 이따가 자세히 얘기할게
어, 나, 그, 세 들어 살던 동네 근처인데
(수지) 어, 안 그래도 우리 그쪽이야 동네 어디쯤인데?
(지호) 어, 진짜? 나 여기 여기 버스 정류장인데
(수지) 어, 저기 정류장 보인다
웬 미친 여자가 잠옷 바지 입고 앉아 있는데
넌 어디 있어?
어...
그게 나야
[차가 끼익 멈춘다]
(호랑) 지호!
너 길에서 잔 거야?
[유쾌한 음악]
야, 열어
문, 문
- (수지) 아, 씨! - (호랑) 뭐라고?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수지의 성난 숨소리] (호랑) 그래서 잠옷 바람으로 바로 나온 거야?
(수지) 이...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식빵에 뼈를 처발라 먹어 버릴라 [포효하는 효과음]
[수지의 성난 숨소리]
너희 작가랑 감독은 알아?
(수지) 아, 미친... 새끼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개불 탕탕이를 회 쳐 먹어도 모자랄...
야, 그 새끼 전번 대, 몇 번이야?
아이, 진짜 꼭, 대답 좀 듣자, 좀, 참
[수지의 한숨] (지호) 아무도 몰라
그냥 그 길로 패대기치고 그냥 나와 버렸어, 바로
(호랑) 우리한테 얘기를 하지
우린 너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지도 몰랐잖아
(수지)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를 하지
아니, 왜 그 밤에 그 집주인 집에 갔어?
이제 거기 살지도 않는다면서
(지호) 응?
그냥, 걷다 보니까
뭘 걷다 보니까야? 작업실에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흥미로운 음악]
지호, 너 그 남자랑 뭐 있구나, 어?
(호랑) 뭐가 지금 막 수미수미한데?
아니야, 수미수미는 무슨 무슨 수미수미...
에이, 이상한데?
아니야, 진짜 아니야
에헤, 눈빛 흔들리는데
아니라니까!
(호랑)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수지) 야, 너 빨리 들어가, 원석이 걱정한다
지호, 우리 집으로 간다
[자동차 시동음] [쓸쓸한 음악]
[세희의 옅은 숨소리]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맞선녀) 안녕하세요, 저 남 선생님 소개로 연락드린 황지언입니다
(세희)
[익살스러운 효과음] (맞선녀) 운명을 믿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아, 이런...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맞선녀)
[한숨]
(지호) 왜 거기서 해? 침대 놔두고
(수지) 에헤, 손님이 어디 감히 바닥에 자려고 그래?
내가 바닥 좋아하는 거 몰라?
[지호의 행복한 신음]
지호, 나 일 좀 해도 되지?
(지호) 응
(수지) 내일 좀 큰 행사가 있어서
(지호) 데모 데이?
(수지) 응
스타트업 대표들이랑 투자자들 만나게 해 주는 행사인데
뭐, 일종의 소개팅 같은 거?
'결혼 말고 연애' 회사 이름 되게 특이하다
너 이거 소개팅 앱인데 안 해 봤어?
(수지) 그러니까 여기다가 네 사진을 올리잖아?
그럼 사람들이 점수를 매기는 거야
- 점수? - (수지) 어
(수지) 점수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거든
그럼 너랑 똑같은 등급의 남자만 소개해 주는 거야
(지호) 아니, 그러면 나보다 등급이 높은 남자는 나는 못 만나는 거야?
(수지) 어, 만나고 싶잖아?
결제해야 돼, 대박이지?
(지호) [헛웃음 치며] 뭐야? 카스트제도도 아니고
야, 이거 좀 기분 나쁠 거 같은데?
야, 이 앱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데, 요즘에
내일 행사도 얘네가 제일 유망주고
[휴대전화를 툭 내려놓으며] 투자자들이 지금 다 눈독 들이고 있어
요즘 사람들 참 멘탈 강하다
그럼, 헬조선에서 멘탈 강해야 연애하지
안 그러면 못 해
짝짓기도 이제 경쟁 시대라고
유 노 왓 아임 세잉, 베이비?
예, 베이비
아니, 턱에 구멍이 나셨어요? 왜 이렇게 많이 흘리세요? [수지의 웃음]
[밝은 음악] (지호) 진짜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세희) 저희 앱은 바로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소개팅에 실패할까요?
삘이 통한다, 대화가 통한다
그런 건 너무 주관적인 감상 아닐까요?
저희는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인간을 가장 원초적인 동물로 설정하고 앱을 만들었죠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최우선으로 본다는 팩트
물론 여기에는 물리적 거리라는 변수도 포함돼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최우선으로 소개해 주는 거죠
그 결과 5개월 만에 35만 명 가입
월 3억 8천만 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투자자1) 저, 근데
네
(투자자1) 그, 앱 이름이 왜 '결혼 말고 연애'입니까?
이왕이면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강조하는 게 좋지 않나요?
결혼이 어째서 사랑의 결실입니까?
[투자자1의 웃음]
(투자자1) 아니, 연애의 목적이 결국 결혼이죠
그러니까 그게 결실이 아니고 뭡니까?
결혼은 구속입니다
(세희) 특히 현 사회에서의 결혼은
유전자 보존을 위한 사회 제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랑의 결실요?
그건 사랑을 볼모로 삼아 결혼 제도를 영속해 나가려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들의 헛된 바람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투자자2) 아니, 시대에 뒤떨어졌다니...
뭐야, 왜 저래?
(투자자1) 아니, 그럼 내가, 우리 세대가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란 말입니까?
(상구) 아, 아니죠, 아닙니다
저희 앱에 이름이자 지향점이 바로 결혼 말고 연애입니다
결혼이란 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 목적과 과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애는 단 하나의 가치관을 공유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사람들의 박수]
[픽 웃는다]
약 좀 팔 줄 아시네
(상구) 질문받지 말랬지, 어? 내가 받는다고
그냥 투자자들한테 그 네 멀쩡한 얼굴만 보여 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아니, 아주 잠시 잠깐만 그냥 일반인인 척
어? 정상인인 척하는 게 그렇게 어렵...
[개가 낑낑대는 효과음] 남 수석님, 오늘 PT 아주 최고였습니다 최고예요
야, 어디 가?
이제부터 시작이야 네트워킹 자리 가야지
난 모르겠으니까 그런 데는 정상인만 가시죠
(세희) 마 대표님 같은
[한숨]
뒤끝 있는 스타일이야
사포 같은 매력이 있지
그 사포를 내가 부드럽게 만들어 줄 거야
[한숨]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지호) 문이 잠겨 있네요
짐 가지러 왔는데
[한숨]
문이 잠겨서요
제 짐 좀 주시죠
[날카로운 효과음] 내 짐 내놔, 이 새끼야
[휴대전화 진동음]
[황 작가가 살짝 웃는다]
윤 작가, 커피
(황 작가) 이것만 마시지?
(지호) 감사합니다
마셔
아직도 화났어?
(지호) 네?
아니요, 그, 화가 아니라...
알아
[황 작가의 한숨]
미안해
(황 작가) 생각해 봤는데 윤 작가 말도 맞더라
맨날 참신한 거, 새로운 거 한다고 결심해 놓고는
결국엔 또 맨날 하던 걸...
그 나물에 그 밥
비비고 섞고
근데 나 처음 데뷔했을 땐 안 그랬거든
근데 먹고살려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
[황 작가가 코를 훌쩍인다]
윤 작가랑 나랑 세월이 얼마야
벌써 5년째인데
누구보다 윤 작가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은 나인데, 나
그거 알아?
[잔잔한 음악] 알아요
그 점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는 애가 그래?
[지호가 살짝 웃는다]
(황 작가) 치, 웃기는
일어나 우리 오늘 술이나 한잔하러 나가자
작가님이랑 저랑 둘이요?
어, 왜, 싫어?
어, 아니요, 그게 아니고 작가님 술 잘 안 드시잖아요
왜?
오늘은 한잔 마시지, 뭐
나가자
작가님
감사합니다
(황 작가) 왜 그래? [함께 웃는다]
가자
어, 남았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박 대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마다 말한다]
(투자자1) 야, 이거, 등급제 소개팅이라
이거 완전 신카스트제도네?
매출 얼마나 예상해?
지난주에 그, 버전 업데이트했으니까
아마도 앞으로 300% 이상 뛰지 않을까
겸손하고 부끄럽지만 그렇게 예상해 봅니다
(투자자3) 이야, 그럼 우리 같은 VC는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절대 아니죠
더 큰 성장을 위해서 투자금이란
어머니의 젖줄과도 같은 아주 소중한 겁니다
[투자자3의 웃음] 저희 IPO 할 때까지 팍팍 밀어주십시오
[투자자들의 웃음] [딸랑거리는 효과음]
(투자자1) 나 이 마 대표 태도가 참 좋아 [투자자3이 호응한다]
요즘 젊은 대표들 같지가 않아
- (투자자1) 안 그래? - (투자자3) 어, 맞아
(투자자1) 어, 박 대리
(박 대리) 어유, 대표님
아유, 안녕하셨습니까?
- (투자자1) 고생 많아, 응 - (박 대리) 아유
[수지가 인사한다] - (상구) 반갑습니다 - (박 대리) 아유, 예
(박 대리) 아유, IR이 수준급이시던데요?
- (상구) 아유, 아닙니다 - (박 대리) 그렇지, 우 대리?
(수지) 네, 메시지가 분명해서 좋았습니다
(박 대리) 근데 우 대리는 이 애플 써 봤어?
우 대리 정도면 다이아는 나올 거 같은데
[수지의 웃음]
(수지) 아쉽게도 그렇게까지는 안 나오더라고요
(박 대리) 에이, 설마 얼굴만 올려서 그런 거 아니야?
아, 우 대리는 풀 숏을 올려야 되는데
(투자자3) 아, 그래? 우리 우 대리 풀 숏이 그렇게 훌륭했어?
그건 내가 지금 처음 알았네?
[투자자들의 웃음] 아이고, 그럼요
(박 대리) 저희 회사에서 이 문과 무를 겸비한 에이스잖아요, 에이스
[투자자들의 웃음]
또 저희 우 대리가...
(상구) 박 대리님, 어, 죄송한데 담배 좀 가지고 계신가요?
아, 제가 차에 놔두고 와서
(박 대리) 아, 담배...
(투자자1) 어, 말 나온 김에 같이 하나 피우고 올까?
- 아, 그러실까요? - (상구) 아, 좋습니다
[투자자1이 호응한다] (박 대리)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쪽으로
아,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요
우 대리, 우 대리 한 대 피우러 가야지
(투자자1) 야, 박 대리 [사람들의 웃음]
(수지) 다녀들 오세요
[쓸쓸한 음악]
[한숨]
[상구가 라이터를 달칵 연다]
[상구가 라이터를 탁 켠다]
[상구가 라이터를 달칵 닫는다]
(상구) 담배는 역시 옥상인 거 같아요
혹시 나 기억 안 나요?
아, 예식장에서?
예, 맞아요, 예식장에서 처음 뵀죠?
[상구의 웃음] (수지) 세상 좁네요
그러니까요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음, 그 예식장 말고는 뭐 기억 안 나요?
[작은 소리로] 작년에 옥상 파티
[흥미로운 음악] [상구의 웃음]
아니, 내가 그때 지금처럼 담뱃불 붙여 주고
(상구) 같이 얘기하면서 맥주 같이 먹었잖아요
아, 그때 그쪽은 칵테일 먹었고
그러고 나서 둘이...
[살짝 웃는다]
아, 오케이, 오케이
알은척하기 싫으신 거 같은데 괜히 제가...
(수지) 아니요
말씀을 안 하셨으면 모를까 꺼내셨으면 하는 게 예의죠
우리 잤잖아요, 그날
아니, 뭐, 모른 척해 드리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수지) 작년에 제가
그쪽이랑요?
아니, 진짜로 기억이 안 나요? 진짜로?
(상구) [손가락을 탁 튀기며] 자, 303호, 우리 묵었던 방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어떻게 그걸 까먹어요?
우리 그때 완전 느낌 있었잖아요 기억나요?
[헛웃음]
(수지) 미안해요
제가 웬만하면 같이 잔 남자는 다 기억하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그다지 인상 깊지는 않았나 봐요
[익살스러운 음악]
아니, 내가 기억 안 난다고?
그 좋았던 기억들은 다 어디 간 거지?
나의 그 인상 깊었던 행동들이 다 잊힌 건가?
(황 작가) 여기 분위기 좋지?
(지호) 네, 진짜 좋은데요
[의미심장한 음악]
[박 감독의 웃음] - (황 작가) 자, 위하여 - (박 감독) 자
[박 감독의 시원한 숨소리]
(박 감독) 아, 우리, 저, 용석이가 우리 윤 작가 숙소도 구해 주고 그랬다며?
보면 참 각별해, 보기 좋아
(황 작가) 그래
나는 요새 애들 남사친, 여사친 그러는 거 참 좋더라
아, 우리 때에는 그런 게 어디 있어?
남자 여자가 친구가 어디 있어?
밤만 같이 새워도 소문이 어휴, 말도 마
(박 감독) 그렇지, 그때는 소문
그것 때문에 우리가 참 마음고생 또 심했지, 또
(황 작가) 어머, 난 몰라도 감독님은 아니지
감독님, 나 진짜 좋아했었잖아
왜 그래? 그러지 마 [황 작가의 웃음]
(박 감독) 어? 지금, 지금, 왜 그 얘기를 그러지 마
(황 작가) [웃으며] 사랑이 어떻게 그렇게 변하니?
[박 감독의 헛웃음]
(박 감독) 저기, 윤 작가, 저, 한잔 받아, 어?
어
[옅은 신음]
그, 저기, 그렇더라고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데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어
어딜 가나 다 그렇더라고
(황 작가) 다반사야
이놈의 새끼, 이거
너 얼른, 저, 사과해
(박 감독) 쯧, 이 녀석이, 저, 윤 작가한테 큰 실수 했다며, 어?
그래서 내가 그냥, 어저께 그냥
아주 그냥 혼꾸멍을 내 놨어 그냥, 어?
용석이가, 저, 윤 작가한테 사과하고 싶다 그래서
그, 내가 데리고 나왔어
(황 작가) 응, 잘했어
작가님, 내가 너무 취해서, 하
아, 잠깐 미쳤었나 봐
미안해요, 정말
(황 작가) 용석이, 너 나 진짜 너 죽여 놓으려 그랬어
근데 박 감독 봐서 참은 거야, 알았어?
지금
다들 뭐 하시는 거예요?
(지호) 왜
감독님이
왜 감독님이 조감독님을 혼내요?
작가님이 뭘 참아요?
당한 건
저인데
당하다니? 말이 좀 그러네?
그럼 성추행을
아니, 성...
성폭행 미수를 '당했다'고 표현하지 뭐라고 해야 하나요?
서, 성폭행이라니?
윤 작가,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해?
넌 그냥 닥쳐, 감방에 처넣기 전에
(박 감독) 윤 작가, 말이 좀 심하네, 어?
아니, 가족 같은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꼭 해야 되겠어, 어?
자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모여서 지금 사과까지 하는데?
그러니까요
이런 자리를 대체 왜 만드시는 건데요?
제가 왜 사과를
왜 이렇게 받아야 되는 거예요?
(황 작가) 잠깐만
봐, 윤 작가
우리 서로 너무 소중하니까, 응?
이 팀워크 깨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는 거잖아
노력요, 작가님?
이게 지금 노력하시는 거예요?
길 가다 던진 돌에 맞아서 제가 피를 흘리는데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게 그게 노력 아니에요?
(지호) 너 피 안 난다고, 멀쩡하다고 그러니까 그냥 가던 길 계속 가라고
이렇게 억지로 질질 끌고 오는 게 이게 노력이에요?
정작 당사자는 피 흘리면서 아파 죽겠는데?
[박 감독의 한숨]
윤 작가야
너 지금 여기가 무슨 대학교 동아리인 줄 아니, 어?
(박 감독) 그렇게 작은 일에 그렇게 징징대고 그러면
무슨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어?
드라마? 이거는 팀워크야, 어?
네가 지금까지 온 것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우리 없으면 네 작품 하나 들어가기 힘들어, 알아?
네
알아요
[쓸쓸한 음악]
[입소리를 쩝 낸다]
그래서 저
이제 드라마 안 할래요
다시는 안 할래요
그러니까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황 작가) 윤지호
[문이 스르륵 여닫힌다]
[황 작가의 탄식]
[떨리는 한숨]
잘했어
너 진짜 잘했어, 윤지호
[훌쩍인다]
안 울고
진짜 잘 참았어
(호랑) 아, 안주 [지호의 힘겨운 숨소리]
[지호의 옅은 신음]
(수지) 자, 한 잔 더
어? 나 벌써 다섯 잔째인데?
벌써는 무슨, 아직이지
(수지) 원래 회사 관둔 날에는 밤새도록 축배를 드는 거야
[지호의 한숨] (호랑) 그래, 넌 오늘 그냥
마시고 토하고 또 마시고 토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무섭다, 너희
나 위로해 준다며
그러니까, 자, 위로주
(호랑과 수지) 짠! [밝은 음악]
[수지의 탄성]
[호랑의 환호성]
아, 나 이제 진짜 못 마시겠어 배 터질 거 같아
그래?
그럼 이제 연료도 채웠으니 출동해 볼까?
- 어딜? - (호랑) 노래방 가야지
안 돼, 안 돼 나 진짜 안 돼, 진짜, 잠깐만
(지호) 나 지금 가면 진짜 나 100% 토해
- 얘들아, 제발, 잠깐만! - (호랑) 그럼 발라드만 부를게
(호랑) 가자
[지호가 애원한다] (수지) 가자
[호랑과 수지의 환호성]
[신나는 음악]
(함께) ♪ 우리들의 얘기로만 ♪
♪ 긴긴밤이 지나도록 ♪
♪ When the time is alright It's way to survive ♪
♪ 기다려 Hold on ♪
♪ 사랑들은 하고 있나 ♪
♪ 많은 것을 약속했나 ♪
♪ 힘들어도 Try 포기하지 말아 ♪
♪ It will be alright alright ♪
(지호) 수지와 호랑은 항상 그랬다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왜 그랬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남들처럼 묻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열심히 웃고 떠들어 주는 것
사실 그것만큼 큰 위로가 있을까?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수지) 뭐?
메일 보낸 거 맞아?
아니, 일을 왜 그렇게 해?
알았어, 내가 지금 가서 알아볼게
아이씨 [통화 종료음]
왜? 가 봐야 돼?
중요한 클라이언트인데 일이 좀 꼬였어
[휴대전화 벨 소리] (수지) 내가 이래서 전화기 꺼두려고 했거든
아니야, 아니야, 얼른 가 봐, 괜찮아
미안해
[휴대전화 조작음]
(수지) 네, 부장님
아, 죄송해요
어유, 밤새워 마시자더니
[휴대전화 진동음]
어, 원석아
(원석) 어유, 무거워
아니, 일은 네가 그만뒀는데 왜 자기가 신났대?
(지호) [웃으며] 그러니까, 술도 잘 못 마시는 게
(원석) 아니, 근데 너 늦었는데 어떻게 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헐, 야, 우리 스물 아니고 서른이다
[원석이 피식 웃는다] (지호) 야, 택시 왔다
(원석) 어, 어, 택시
생큐, 생큐
[원석의 힘겨운 신음] (지호) 됐다
(원석) 생큐
(지호) 그래도 모두
[지호의 한숨] 돌아갈 곳이 있구나
[잔잔한 음악]
[기계 알림음]
[안내 음성] 금일 버스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지호) 나만 빼고
[한숨]
나 왜 맨날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지?
[휴대전화 진동음]
응, 지호
(현자) 어데고? 안 자나?
어, 아직 밖이다
일이 좀 있었다
(현자) 일찍일찍 다니라
남의 집에 살면서 그래 늦게 다니면 밉보인데이
(지호) 드간다, 지금
(현자) 방도 깨끗이 치우고 다니고 커피 마신 컵도 그때그때 씻고
알았다
(현자) 머리 말리고 나서도 고마 나오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걸레질해가 훔치고
(지호) 하, 좀 알았다, 알았다고 하잖아!
(현자) 이게 와 짜증을 내노?
엄마가 네 걱정돼가 잘하라고 하는 말인데
뭐 어떻게 더 잘하라고, 어?
잘하면? 뭐, 내만 잘하면 되는 줄 아나?
엄마는 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현자) 그래, 알았다
빨리 들어가고 밥 잘 챙기고
엄마 끊는다
지호야
(지호) 어
(현자) 서울이 너무 추우면 니 내려와도 된다
여 니 방도 그대로 있고 하니까 언제든지, 알았제?
[통화 종료음]
[새가 짹짹 지저귄다]
[비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경비원) 어, 잠깐, 잠깐만요
- (세희) 네? - (경비원) 이거 가지고 가요
(세희) 저한테 온 겁니까?
(경비원) 예, 이거 401호 거라고 웬 남자가 맡기고 가던데
(세희) 예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응? 내 가방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세희)
[탄성]
(지호)
(지호)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세희)
[문이 달칵 열린다]
(수지) 뭐야? 뭐야?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아침이야?
(지호) 좀 먹고 다녀라, 좀
어떻게 아줌마가 보내 주신 반찬 저기 고대로 다 있냐
야, 우리 엄마가 손이 좀 크잖냐
(수지) 우리 주말인데 낮술이나 하러 나갈까?
(지호) 수지야
나 오늘 남해에 내려가려고
그래, 집에 가서 좀 쉬다 와
아니, 아예 가려고, 서울 정리하고
[잔잔한 음악] (수지) 응?
작품도 엎어졌고 그냥 할 일도 없고 해서
집 때문이면 여기 있어 나 진짜 괜찮아
집 때문이 아니라
(지호) 그냥
서울 날씨가
너무 추워, 좀 지쳐
내려갈래
[새가 짹짹 지저귄다]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휴대전화 조작음]
[초인종이 딩동 울린다]
씁, 안 계시나?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고양이 울음]
[살짝 웃는다]
(지호) 고양이, 잘 있었어?
밥 먹었니?
가자
아이고
[고양이 울음]
(용석)
[쪽지를 탁 버린다]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지호의 옅은 한숨]
차마 내 손으로 버리지는 못하겠어서
(지호) 여기 좀 두고 갈게
분리수거 좀 부탁해
[도어 록 조작음]
[명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호) 안녕하세요
(명자) 어?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어? [되감기 효과음]
[도어 록 작동음]
아니, 어쨌길래 상대 집에서 그 난리냐고
뭐, 뭘 받겠다고 그랬다고?
(세희) 월세요
너 제정신이야?
결혼할 여자한테 월세를 왜 받아?
난 월세가 필요하니까
(세희) 결혼하면 일도 그만두고 싶고 애도 낳고 싶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싶다고 그 여자가 먼저 말하길래
나도 같이 사는 사람한테 월세도 받고 싶고
분리수거도 하고 고양이 똥도 치워 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게 왜요?
그게 왜라니?
아니,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그게 지금 정상적으로 할 소리야, 응? 맞선 자리에서?
(지호) 응, 확실히 정상은 아니지
(세희) 정상적인 게 뭔데요?
[놀라는 숨소리] (명자) 그냥 남들처럼 사랑 주고, 사랑받고
그렇게 살다가 아기도 낳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그게 뭐가 평범해요?
평범하지
(명자)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대한민국에서 결혼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이 얼마인 줄 아세요?
뭐, 이래저래, 뭐, 한 5, 6천?
2억 7천이에요
애 하나 키우는 데에는 3억
(세희) 그렇게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을
컵라면 용기가 플라스틱인지 스티로폼인지
그것도 모르는 여자랑 어떻게 해요?
아, 그게 뭔 소리야? [고양이 울음]
(명자) 지금 경비 아저씨 뽑아?
어리고 이쁘잖아
남자들 그러면 사족을 못 쓴다는데 넌 어떻게 된 게...
(세희) 어리고 이쁜 건 얘 하나로 충분해요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아들, 저, 저기...
혹시 문제 있니?
문제?
아니, 왜, 환경 호르몬 때문에
요새 남자들 성 기능이 30대부터...
어머니 [지호의 놀란 숨소리]
[흥미로운 음악] (명자) 아휴, 몰라
너 뚜쟁이들 사이에서 찍혔어
더 이상 선 자리 들어오는 일도 없을 테니까 황 선생한테 빌어
걘 아직도 너 마음에 있나 보더라
[헛웃음 치며] 아, 제가 왜...
나 너 때문에 이혼당하면 여기 들어와서 산다
예?
(명자) 네 아버지 네가 제일 잘 알 테니까 긴 설명 안 해
늙은 엄마 모시고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어리고 이쁜 마누라 데리고 사는 게 더 나을지
잘 생각해 봐
[명자의 못마땅한 신음]
깜짝이야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고양이 울음]
(지호) 저... [함께 비명을 지른다]
[세희의 당황한 숨소리] [밝은 음악]
[심호흡한다]
(지호) 아...
(지호) 아, 진짜 죄송해요 [세희가 숨을 하 내쉰다]
어머님한테 들키면 안 될 거 같아서...
(세희) 아, 아닙니다,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희가 숨을 씁 들이마신다]
근데 짐은 왜...
계시던 곳에서 나오신 겁니까?
아, 네
저 사실 내려가요, 남해로
글 쓰시는 일은...
정리했어요
(지호)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좋은 방 주셔서
[살짝 웃으며] 덕분에 제 첫 작품도 여기서 쓸 수 있었고
뭐, 망하긴 했지만
잘되실 겁니다, 어디서 뭘 하시든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니까
저희 집 세입자 중에서도 최고의 점수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웃으며] 네
집주인분도 잘되실 거예요
(지호) 결혼도 곧 좋은 분 나타날 거고
(세희) 음, 글쎄요
나타난다 한들 제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지호) [웃으며] 왜요?
저한테도 그렇게 프러포즈하셨는데 못 할 게 뭐 있어요?
지호 씨니까요
[잔잔한 음악]
지호 씨니까 그랬던 겁니다
최고의 점수를 받은 세입자니까
(세희) 저는 결혼이 아니라 지호 씨가 필요해서 제안드렸던 겁니다
(지호) 심쿵할 포인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저한텐 좋은 여자보다
월세 수익을 보장해 줄 우수한 세입자가 필요하니까요
(지호) 그래도
처음이었다
(지호)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건
- (매표원) 어디 가세요? - 남해 제일 빠른 거로요
(지호) 20대 내내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호) 힘들 때마다 한강 다리를 건넜다
한강 너머를 보며
이 넓은 서울에서
내가 필요한 곳이 그래도 한 군데는 있겠지
(지호) 라고 생각했다
(지호) 10년 동안 너도 참
많이도 치이고 다쳤구나
올라올 땐 반짝거렸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을까?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내려갈 거면서
이곳에 내 자리 같은 건
원래 없었던 건데
[잔잔한 음악]
(지호) 여, 여기는 왜...
어떻게...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아,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어서 꺼졌는데
(세희) 방에 떨어뜨리고 가셔서...
이것 때문에 오신 거예요?
마침 나가는 길이었는데 저녁 7시 차라고 하신 게 기억나서
필요한 물건들 같길래
(지호) 네
꼭 필요한 것들이에요
(버스 기사) 자, 출발하겠습니다
그럼
네
"졸업"
(세희) 지호 씨니까요
지호 씨니까 그랬던 겁니다
(지호) 내가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말해 준 사람
[지호의 가쁜 숨소리]
(지호) 지금 아저씨가 화나셔서 오래 못 기다리거든요
빨리 대답해 주셔야 돼요
네
저랑
결혼하실래요?
[밝은 음악]
저, 빨리요, 기다리고 계셔서
네 [지호의 기쁜 숨소리]
그럼 제가 짐부터 빨리 뺄게요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나셔 가지고
저기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저를
좋아하십니까?
아니요
(지호) 우리의 프러포즈가
시작되었다
(세희) 나는 오늘 세입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카메라 셔터음]
진짜 결혼? 여자랑 하는 거야, 그 결혼?
(지호) 만난 시간은 짧아도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싶으면...
- 필요해? - (호랑) 나 알았다
- 네가 왜 결혼하는지 - (지호) 어?
(상구) 인마, 세상 사람들이 다 속아도 나는 안 속아!
- 예뻐 - (상구) 아, 이뻐?
(지호) 저희 집은 가부장 원 톱 체제이기 때문에
(종수) 확, 마, 쓸어 뿌까! [지석의 놀라는 신음]
[지호가 발로 탁 찬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원석과 수지) 짜잔!
(호랑) [흐느끼며] 프러포즈 받는 건 줄 알았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세희) 결혼을 왜 하냐는 그런 걸 왜 물어요?
오빠를 사랑합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역시 세입자와의 결혼이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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