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4
(원석) 랑아, 탄다, 뒤집어
몇 시 차 탄대?
7시
이제 탔겠네
(원석) 아니, 뭐, 지호 북유럽 이민이라도 갔어?
자기 집 간 거 가지고 뭘 그래?
남해는 4시간이면 가잖아
과속하면 3시간이면 가고
그게 아니라
지호가 얼마나 힘들게 서울에 올라왔는데
(원석) 아, 뭘 힘들게 와?
재수도 안 하고 합격해서 바로 올라온 애가
야, 하버드를 합격해 봐라 집에서 안 보내 주면 아무 소용 없지
(원석) 집에서 왜?
(호랑) 지호 아버지가 남해교대 아니면 대학 안 보내 준다 그랬거든
서울 가면 돈 든다고
아, 그랬어? 근데 어떻게 올라왔대?
그게, 지호가
좀
(수지와 호랑) 돌아이거든
지호가? 에이, 걔가 무슨 천하의 순둥이가 [경쾌한 음악]
너 아직 윤지호를 모르는구나?
[학생들이 떠들썩하다]
(호랑) 야, 이 정도면 잘 나온 거지
(수지) 지호 아버지의 철학은 확고했어
판검사 할 거 아니면 여자 직업은 무조건 교사
(호랑) 근데 지호가 서울대 법대 갈 성적까지는 못 나왔거든
[학생들의 환호성]
"졸업"
(호랑) 그래도 지호 꿈은 어릴 때부터 작가였으니까
서울대 국문과를 가겠다 결심했지 [지호의 한숨]
(수지) 그래서 밥 먹다가 국문과의 '국'을 겨우 꺼냈는데
(지호) 아버지
저 국문...
[종수가 소리친다] [흥미진진한 음악]
(호랑) 아버지는 진짜 국을 엎으셨지 [카메라 셔터음 효과음]
(원석) 헐, 근데 어떻게 설득했대?
(수지) 설득은 무슨, 말했잖냐, 돌아이라고
[닭이 꼬끼오 운다]
(호랑) 아무도 모르게 원서 등록 다 하고 입학식 전날
(수지) 야반도주를 했어
[비장한 음악]
[휴대전화 조작음]
(학생) 어, 안녕 [휴대전화 진동음]
[놀라는 신음]
(호랑) 지호 아빠 1학기 끝날 때까지
지호가 남해교대 다니는 줄 아셨다 [성난 한숨]
와, 지호 진짜 좀 돌아이네?
(원석) 난 쟤가 제일 돌아이인 줄 알았거든
(호랑) 아니야, 수지는 그냥 성격이 더러운 거야
[원석의 탄성]
윤지호가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뒤통수를 칠 때가 있지
[지호의 가쁜 숨소리]
지금 아저씨가 화나셔서 오래 못 기다리거든요 [버스 경적]
빨리 대답해 주셔야 돼요
네
저랑
결혼하실래요?
[아름다운 음악]
[버스 경적] (지호) 저, 빨리요, 기다리고 계셔서
네 [지호의 기쁜 숨소리]
그럼 제가 짐부터 빨리 뺄게요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나셔 가지고
저기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저를
좋아하십니까?
아니요
짐 가지고 오세요, 들어가 있을게요
[잔잔한 음악]
[연인들의 웃음]
사발면 그릇을 씻어 놓으셨더라고요
아, 네, 습관이 돼서요
정말 좋은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지호) [웃으며] 감사합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남자) 어, 저기 자리 났다, 자기 앉아
- (여자) 자기가 앉아 - (남자) 아니야, 자기 앉아 [여자의 웃음]
- (여자) 가방 줘 - (남자) 어
(여자) 근데 머리 진짜 잘됐다
- (남자) 그렇지? - (여자) 응
- (여자) 근데 더워 - (남자) 더워?
앉으시죠
(지호) 아, 먼저 앉으세요
아닙니다
[잔잔한 음악]
(지호) 나는 지금
집주인과 결혼하러 간다
제 조건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이견 있으신지
어, 주인분 조건에는 이견이 없는데요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라도...
[멋쩍은 웃음]
아시다시피 제가 해 오던 일을 그만둬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좀 생활비 조정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월세를 조금만 깎아 주시면...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5만 원만 깎아 주시면
저도 크게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럼 월 25만 원에 다시 계약하는 걸로
네, 감사합니다
(세희) 무리하시는 건 아닙니까?
결혼요
[잔잔한 음악]
지금 상황으로선 내려가시는 쪽이 더 경제적인 편이 아니신지
쩝, 아니에요
내려가더라도 무슨 일이든 구해야 하는 상황이고
또 거기다가 매일같이 아빠랑 부딪힐 게 뻔하고
(지호) 집세만 안 나간다뿐이지
상황적으로 서울보다 좋을 게 하나도 없거든요
일자리도 없고
월세를 능가하는 스트레스 강도군요
[지호가 살짝 웃는다]
그래도 좀 놀랐습니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결혼관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서
(세희) 세입자로서의 결혼을 선택하신 게 사실은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그냥
말씀하신 것처럼
애정이나 사랑, 뭐, 이런 게
적어도 2년 동안은 필요 없을 거 같아서요
저한테 지금 필요한 건 저 방이니까요
(세희) 나는 오늘 세입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알고 있다
남들 같지 않은 남다른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은
살면서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어요
결혼
(세희) 생각보다 상당히
아, 이번 주 분리수거하셨어요?
(세희) 남다른 아내를 만났다
[옅은 신음]
[새가 짹짹 지저귄다]
[탄성]
진짜
잘 잤다
[웃음] [밝은 음악]
[개운한 신음]
[웃음]
[고양이 울음]
(지호)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지호) 아 [지호의 헛기침]
같이 좀 드실래요?
안 그래도 아침밥치고는 조금 많이 하기는 했는데
아닙니다, 저는 아침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됩니다
네
[발랄한 음악]
[고양이 울음]
(지호) 음, 맛있다
밥도 잠도
이런 꿀 같은 아침이 정말 얼마 만인지
매슬로가 맞았다
먹고 자는 것도 힘든 마당에 뭔 놈의 연애, 뭔 놈의 사랑
보증금 500도 없는 내가 결혼 하나로 월세를 5만 원이나 깎다니
그게 2년 치면 얼마야, 도대체?
크, 신의 한 수였어, 윤지호
[편안한 한숨]
(세희) 편하다, 고양이도 나도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이런 평온한 주말이 얼마 만인지
더 이상 소개팅에 시달리지 않아도
분리수거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
월세 5만 원 할인으로 이 값진 평온을 되찾다니
[물소리가 솨 들린다]
(지호) 아, 저, 계란 하나 썼어요
이따가 채워 넣을게요
네
(세희) 역시 세입자와의 결혼이 답이었다 [방울 소리 효과음]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어, 지호
어? 그게 오늘이었나?
아, 알았다
어, 이따 저녁에 갈게
네,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어
부모님이십니까?
(지호) 아, 네, 결혼식 때문에 오늘 올라오신다 그래 가지고
저는 이따가 저녁에 동생 집에 좀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저도 오늘 갈까요?
네? 왜요?
결혼을 하려면 인사를 드려야...
아, 그렇죠
그런 것들을 해야 되죠, 결혼을 하려면
네, 사실 제가 어젯밤에 프로세스 정리를 좀 해 봤는데
아, 그럼
[흥미로운 음악]
(지호) 저걸
다 한다고요?
보시는 사항은 일반적인 결혼
(세희) 그러니까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결혼일 경우
수행되어야 할 절차들입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모든 걸 다 생략하고
[포인터 작동음]
요 부분, 여기까지만 수행하면 됩니다
(지호) 네, 그, 그럼 오늘 저희 집에 인사를...
제 생각엔 그게 효율적일 것 같은데 혹시 너무 갑작스러우시면
아니요, 오늘 가시죠
[비장한 효과음]
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호랑) 안녕히 가십시오 - (손님) 네, 수고하세요, 가자
(호랑) 슬기 씨
(직원1) 네, 매니저님
아까 13번 테이블 오더 잘못 받았었지?
아, 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실수 안 하겠습니다
쯧, 그건 말이 안 되지
네?
수습 2개월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해?
그냥 실수하면 나한테 알려 줘 그래야 내가 빨리 수습을 해 주지
네, 매니저님
3번 테이블에 예약 있으니까 세팅하고
(직원1) 네
어?
(호랑) 어, 뭐야, 말도 안 하고! 나 진짜 삐진다?
너 때문에 어제 우리 막걸리 5병이나 깠어
그래서 이렇게 바로 다시 왔잖아
치
그래서 그 집에 다시 하우스메이트로 들어간다고?
어, 하우스메이트이긴 한데
말하자면 좀 길어
(지호) 수지랑 셋이 같이 보자, 조만간
(호랑) 수지한테는 말했어? 뭐래?
응, 전화했더니 그냥 됐고 술이나 마시재
(호랑) [놀라며] 그렇게 먹고도 술이 또 들어간대?
어, 걘 토끼인가 봐 간을 맨날 어디서 빨아 오나 봐 [지호의 웃음]
근데 그건 뭐야? 고기? 한우?
(지호) 어, 나 어디 좀 가야 돼 가지고
그러고 보니 오늘 차림새가 좀 남다른데?
(호랑) 오, 웬일로 백도 메고
[발랄한 음악]
뭐야?
이거 지금
차림새가 딱 어디 인사 가는 각인데?
[호랑의 놀라는 신음]
지호, 너
어?
새 작가님 만나러 가는구나?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 [호랑의 웃음]
(호랑) 그래, 잘 생각했어
세상에 작가, 감독이 걔네밖에 없냐?
그런 놈들 때문에 관두기에는 네가 아깝지
[어색한 웃음]
호랑, 나 물어볼 게 있는데
(호랑) 응?
그, 남자가 여자 집에 인사를 갈 때
남자가 어떤 얘기를 해야 어른들이 좋아하실까?
(지호) 어, 그러니까 결혼 같은 거 승낙받으려면
네가 그런 게 왜 궁금해?
[익살스러운 음악]
아니, 그게, 어...
대사 써야 되는구나?
(호랑) [놀라며] 새 작가님이 테스트하는 거야?
아, 그런 거라면 또 내가 전문이지
그렇지?
[지호의 어색한 웃음]
[밝은 음악]
[안내 음성] 잠시 후 도착 버스는...
[반짝이는 효과음]
일찍 오셨네요?
네
(세희) 아, 버스 오네요, 가시죠
아, 예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럼 제가 유념해야 할 항목은 그 세 가지 말고는 더 없을까요?
(지호) 아, 변수가 하나 있긴 한데
남동생이 조금 골 때리는 편이라
골 때린다 함은 어떤 식의?
(지호) 아니에요 그 녀석은 제가 전담 마크 할게요
그냥 저희 아버지만 좀 신경 써 주시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네, 세 가지 항목 기억하겠습니다
(지호) 음, 만약에요 그 세 가지 방법이 다 안 통하면
다른 방식을 좀 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방식일까요?
그게 좀 선호하지 않으시는 방식일 수도 있는데
(지호) 제가 친구한테 자문을 좀 구했거든요
그 친구가 결혼 전문가라
[익살스러운 음악]
(호랑) 장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결정적 한마디
첫 번째, 따님 손에 평생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따님을 '사장 사모님' 소리를 듣게 하겠습니다
세 번째, 따님을 평생 공주님처럼 모시고 살겠습니다
네 번째, 벽에 똥칠할 때까지 따님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이게, 이게 통한다고요?
네, 아마도요
아니요, 이 사태만은 제가 기필코 막겠습니다
[비장한 신음]
[한숨]
[개가 왈왈 짖는다]
(지석) 누나, 이야, 나가 살더니만 까리해졌노, 어?
이 못 보던 옷인데, 이거, 어?
(지호) 아이다, 원래 있던 거다
(지석) 아인데, 이것도 못 보던 가방인데, 어?
(지호) 아, 원래 있던 거라니까
(지석) 아인데, 다 이거...
- 못 보던 남자인데? - (지호) 아이, 원래 있, 있...
(지호) 어, 그, 남자 친구다, 인사해라
(세희) 처음 뵙겠습니다, 남세희라고 합니다
아, 예, 윤지석입니다
(지호) 아, 엄마 아빠 있제?
(지석) 어, 어, 어, 어
어, 식사 안 하셨죠?
들어오세요, 예
어여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세희) 나쁘진 않은데요?
그렇게 골을 때리시는 것 같지는 않...
(지석) 엄마, 아빠! [흥미진진한 음악]
누나가 남자 데리고 왔다 팔다리 다 달렸다!
나와 봐 봐, 어?
(종수와 현자) 뭐라고?
(지석) 엄마, 엄마, 빨리 나와 봐라!
- (종수) 뭐라고? - (현자) 뭐를 데려와?
- (지석) 진짜, 진짜, 진짜, 진짜다 - (종수) 응?
(지석) 진짜 백 프로, 백 프로 빨리 온나, 빨리 온나!
[익살스러운 효과음]
[으르렁대는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와, 그거, 꽃게된장 안 좋아하나, 어?
방아 큰 거 넣고 팔팔 끓여가, 이게
이, 서울에서는 못 먹어 보는 귀한 긴데, 이게
예?
[으르렁대는 효과음]
(지호) 많이 먹으라는 뜻입니다
아,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종수의 헛기침]
한잔, 음
네
[익살스러운 효과음]
[으르렁대는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깨갱대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저희 집은 가부장 원 톱 체제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집중 공략 하시면 됩니다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되는데요
첫째, 첫 잔은 무조건 원샷입니다
[옅은 탄성]
내도 한 잔 줘
네
그래, 무슨 일 한다고?
소셜 네트워킹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으르렁대는 효과음] 수석 디자이너 및 CTO로 일하고 있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지호) 둘째, 대답은 무조건 단답형으로 [익살스러운 음악]
두 마디 이상 길어지면 안 들으세요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 IT? 어
그래, 그, 뭔 IT?
네, 휴대폰 애플을 개발하는 일인데
어, 애플? [긴장되는 음악]
(종수) 어, 그, 뭐, 전자 제품 만드는 하청 회사가?
(지호) 셋째, 뭔가 설명을 요구할 때는 고유명사를 예로 드세요
최대한 유명한 걸로
그러니까 그, 요즘 많이들 쓰시는 깨톡 같은 걸 만드는 회사입니다
[휘파람 효과음]
(종수) 어, 그래?
그 회사가 어디쯤 있는데?
네, 코워킹 스페이스라고 [으르렁대는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세희) 스타트업들이 밀집...
[깨갱대는 효과음]
삼송과 알지 사이의 건물에 있습니다
어, 그거 완전히 노른자 땅 아이가, 어? [익살스러운 음악]
(종수) 그, 좋은 데 다니네, 어, 그래 [지석이 호응한다]
[지석의 웃음] 요즘은, 마, 대기업도 다 단물 빠진 기라
어, 그래, 그, 깨톡, 페이스북 이런 거 만드는 게
이게 4차 산업 혁명 아이가, 어? 어
[종수가 계속 말한다] (지호) 혼자 신나서 계속 말씀을 하신다
그럼 거의 미션 클리어입니다
(종수) 사람이, 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가요, 저절로, 어?
[종수의 웃음]
이게 4차 산업 혁명이야, 응?
[종수의 웃음]
저절로 가요, 저절로, 어
[종수와 지석의 웃음]
(현자) 자, 고만하고 밥 드시소
(종수) 거, 방아를 너무 많이 넣은 거 아이가? 어?
에이, 쯧
(지호) 저, 아빠
그래서 저희가
결혼을 하고 싶은데요
- (은솔) 헐 - (지석) 대박
결혼?
(지호) 아니, 저, 뭐 갑, 갑작스러운 건 아는데
서로 나이도 있고 [개가 짖는 효과음]
[으르렁대는 효과음] [깨갱거리는 효과음]
또 뭐, 기왕 하는 거 고마 빨리해 버리는 게
(지석) 누나, 니 아 뱄나? [긴장되는 음악]
아베... [지호가 콜록거린다]
아이, 아이다
(지호) 저, 그런 거 절대 아이다
[지호가 콜록거린다]
근데 여기서 아베가 왜 나옵니까?
[으르렁거리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그러니까 그, 아를 배...
임신했냐고요
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으르렁대는 효과음]
저희가 주거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긴장되는 음악] (세희) 서로 사적인 영역은
절대 침범하지 않는...
(지석) 둘이 같, 같, 같이 산다고요?
(현자) 아, 그러면 니 그, 같이 산다는 언니가 [으르렁대는 효과음]
남자 친구가?
뭐라고?
같이 살아?
[으르렁대는 효과음] [긴박한 음악]
[지석의 말리는 신음] (종수) 아니, 지금 둘이 동거한단 말이가?
(지호) 아이다, 아빠, 그게 아이고...
내가 니를 그리 가르쳤나, 응?
쎄가 빠지게 서울 보내 놨더니만 어디 못된 짓만 하고 다니노! 어?
동거?
마, 고마하시고 앉으이소
(종수) 가시나, 니 돌았나, 어? 정신 나갔나?
콱, 마, 대가리 빡빡 깎아가 방에 가둬 뿌까! [지석의 놀란 신음]
잠시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세희) 지금 현재 저희가 하고 있는 동거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뭐? 동거? 동거?
[익살스러운 효과음] (종수) 니 지금 동거라고 씨불였나?
저는 지금 오해하고 계신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잠시 제 말을 들어 주시면...
빗자루 같은 게 어디 꼬박꼬박 입을 놀려 쌓노! 어?
확, 마, 쓸어 뿌까! 응? [지석의 말리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석의 놀라는 신음]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오싹한 효과음]
[고양이가 날카롭게 우는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따, 따, 따, 따, 따, 따, 따님 손...
따님 손에 평생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습니다!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직원들이 말한다]
(호랑) 아유, 아, 편하다
(직원2) 매니저님, 그 소파 사기도 전에 질리는 거 아니에요?
질리긴? 나 벌써 이 소파에 맞춰서 인테리어 구성도 싹 다 해 놨다고
[직원들의 웃음]
(가게 직원) 오늘은 왜 안 오나 했네
[가게 직원의 웃음]
어, 소파 다음 주 중에 배달 갈 거예요
(직원1) 아, 네
(직원2) 어, 슬기 씨, 이거 샀어?
네
(직원3) [멋쩍게 웃으며] 집 원룸이라 그러지 않았어?
집에 소파 들어갈 데가 있어?
(직원1) 저, 이사를 하게 돼서
저 사실
결혼해요, 다음 달에
[저마다 놀란다] - (직원2) 뭐? - (직원4) 대박
(직원3) 진짜 축하해 [저마다 축하한다]
(직원1) 매니저님, 죄송해요
(호랑) 응? 뭐, 뭐가?
[어색한 웃음]
나한테 왜?
매니저님이 이 소파 너무 사고 싶어 하셔서
(직원1) 하나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제가 다른 거로 사려고 했는데요 오빠가 이게 너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직원1의 멋쩍은 웃음]
[어색한 웃음]
(호랑) 아, 아, 뭐야, 이 분위기? [사람들의 어색한 웃음]
아이, 됐어, 없으면 다른 거 사면 되지, 뭐가 문제야?
- (호랑) 아, 저, 언니, 나 갈게요 - (가게 직원) 어
(호랑) 다들 내일 보자
[저마다 인사한다]
(가게 직원) 들어가
[직원2의 탄성] (직원3) 너무 잘됐다
(직원2) 어디서 만났어? [저마다 말한다]
[통화 연결음] (원석) 어, 랑아
석, 나 좀 데리러 나와
뭐야? 어딘데 이렇게 시끄러워?
[시끌벅적하다] (원석) 어, 나 밖이야, 상구 형 만났어
(호랑) 뭐야? 그걸 왜 지금 얘기해? [상구의 시원한 숨소리]
아니, 나는 너 오늘 회식한다길래
쯧, 그냥 왔어, 너랑 저녁 먹으려고
아, 진짜?
그럼 조금만 기다릴래요? 30분 있다 나갈게
배고파 죽겠는데 뭔 30분이야?
아, 됐어, 혼자 먹을래
[통화 종료음] 쯧
[한숨]
랑아, 랑
[통화 종료음] 랑...
(상구) 여친이랑 또 싸웠어?
(원석) 얘 요새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씨, 쯧
형한테 말해 봐, 뭐 때문에 그러는지
그걸 모르겠으니까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거죠
줘 봐
뭘요?
핸드폰, 전문가가 데이터 분석해 줄게, 공짜로
아, 됐어요, 우리 랑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싫으면 말고
자, 데이터 분석 들어갈게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 자, '사랑해, 뭐 해, 매장 쉰다'
'내일 주꾸미 먹자, 주꾸미' 빈속에 먹으면 큰일 나
- (원석) 그거 이상한... - 아야 해, 아야, 알았어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상구) 아이고, 문제의 사진이 나왔고
(호랑)
(원석)
(상구) '슬기 득템했네, 추카추카'
너 미쳤지?
그게 왜...
너 이 메시지에 어떤 그, 메타포가 분석이 안 되는 거지? 레알, 지금? [흥미로운 음악]
아니, 자기 사진 보냈길래 이쁘다 그러고
(원석) 매장 직원 결혼했다길래 축하해 줬는데
뭐, 그거 말고 뭐가 더 있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맙소사
자, 보자
(상구) 이 사진이 정녕 자기 사진을 보낸 걸까? 어?
그리고 그냥 이게 직원 무슨 축하한다는
그런 이야기로 보이는 거야?
이 두 개의 공통된 시그널이 분석이 안 되냐고
이 개발자야
소파?
[상구의 한숨]
아니, 무슨 소파 얘기를 이런 식으로 해요?
사고 싶으면 사고 싶다 그러면 되지
사면 그거 너희 집에 둘 데 있어?
그 좁아터진 옥탑방에
그 소파를 사자는 말을 여자가 어떻게 꺼내냐고
아, 아
(상구) 아, 아이고, '아'다, '아'야
아, 자, '아' 해 봐
(원석) 아...
[상구의 한숨]
그래서 계속 신혼집 막, 소파, 그런 얘기를 했구나
[흥미진진한 음악] 기분이다
(상구) 형이 너한테 정말 중요한 얘기 해 줄게, 잘 들어
여자들은 절대 자기가 원하는 걸
직접 자기 입으로 남자에게 얘기하지 않아, 절대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남자 입으로 듣기를 바라는 거지
그래서 그 원하는 걸 듣기 위해서
남자에게 계속 말을 해
그 말을 계속 돌려
휘몰아치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번개처럼 돌다가 쾅쾅 했다가, 막 [천둥이 콰르릉 치는 효과음]
귀엽게 또 막 돌려, 막
막 이렇게 돌려, 그냥 막!
딱!
납득이 가?
그러니까 너 같은 하수들은 맨날 뺑이만 치는 거야
아, 역시, 형님
연애는 얼굴로 하는 게 아니라 스킬로 하는 거네요
[원석의 옅은 탄성] (상구) 뭐, 연애는 얼굴로 할 수도 있어
[반짝이는 효과음]
내가 누구냐?
마상구
[익살스러운 음악] 마성의 상구
그런 남자야 [상구의 웃음]
(원석) 마성의 상구, 마성의 상구
[원석의 탄성]
(지호) 물 좀 드세요
아, 네
[긴장되는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따, 따, 따, 따, 따, 따, 따님 손...
따님 손에 평생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습니다!
[한숨]
물이군요
무릎은 괜찮으세요?
[지호의 한숨]
(지호) 저도 무릎 꿇는 사태만은 어떻게든 막아 보고 싶었는데
아빠가 상 엎으면 게임 끝나는 거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그 덕에 아빠 신임을 얻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도대체 그런 관용구는 누가 만들어 낸 걸까요?
(세희)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니
그게 현실적으로 상용 가능한 일입니까?
다른 후보들도 많았는데
[고양이가 으르렁대는 효과음]
그나마 고른 겁니다
[고양이가 날카롭게 우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주무세요
[문이 달칵 닫힌다]
[헛웃음]
그나마 고른 거 맞네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한숨]
(지호) 응?
(호랑)
(지호)
(호랑)
(지호)
(호랑)
(지호)
[잔잔한 음악]
[호랑의 한숨]
[문이 달칵 여닫힌다]
[한숨]
랑아, 자?
내가 미안해
(원석)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진작에 빨리 알아들었어야 됐는데
뭘?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원석) 나 진짜 다 알았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동안 속 시원하게 말도 못 하고
울지 마
일로 와
(호랑) [훌쩍이며] 몰라, 이 똥멍청이야
[잔잔한 음악] 마지막 소파도 막내가 사 갔단 말이야
(원석) 한 번만 봐줘
한 번만 봐줘 [호랑의 앙탈 부리는 신음]
[원석의 애교 섞인 신음]
[쪽 뽀뽀한다]
[호랑의 힘주는 신음] 봐줄 거야?
(호랑) 알겠어 [원석의 애교 섞인 신음]
[함께 웃는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세희의 옅은 숨소리] (지호) 출근하세요?
(세희) 네
어제 인사하러 갈 때 샀던 선물 세트 비용입니다
음, 반씩 부담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아니에요, 그건 그냥 제가
(지호) 어제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무, 무릎 괜찮으세요?
생각해 봤는데 어제는
현명한 결단을 내리셨던 거 같습니다
[멋쩍은 웃음]
(세희) 실상 저희 프로세스에서 양가 인사가 가장 중요한 절차인데
지호 씨의 결단으로 깔끔하게 처리됐으니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호의 어색한 웃음]
다행이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네
저도 오늘 집에 말할 생각입니다
오, 오늘요?
네
저희 집도 기본 가부장제 진영이긴 한데
(세희) 실상 어시스트가 강화된 투 톱 체제라
아, 어머니가 어시...
그래서 인사 전에 먼저 어머니 쪽으로 볼을 넘길까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셀카 한 번만
세, 셀카는 왜...
텍스트보다 확실한 이미지 하나가 납득에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요
아, 네
[옅은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카메라 셔터음] (세희) 음?
다시 찍어야 되는 거죠?
(지호) 네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카메라 셔터음]
(지호) 이, 이렇게 옆으로 한번 해 보실래요?
- (세희) 이렇게요? - (지호) 네
(세희) 음?
씁, 이, 이러면 버튼을 누를 수가...
(지호) 아, 그, 이, 이 손으로 하면 되는데
[세희의 옅은 탄성]
[카메라 셔터음]
(세희) 결혼할 여자분입니다
[직원들이 시끌벅적하다]
(직원5) 오늘 점심 메뉴 뭐래?
[한숨]
[비밀스러운 음악]
(보미) 점심 안 드세요?
전화받고요
안 오는데요?
곧 옵니다
[휴대전화 벨 소리]
(상구) 아휴, 너무 많이 먹었다
야, 내가 살다가 너한테 밥을 다 얻어먹는다?
(원석) 아유, 스승님인데 제가 사야죠
투자자도 소개시켜 주셨는데
(상구) 와, 오늘 의상 완전 느낌 있는데?
너 여자 친구랑 화해했구나?
(원석) 뭐, 오늘 사러 갑니다
(상구) 잘했다, 잘했어
아니, 인생 어떻게 그렇게 살 거야, 어?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갖추면서 사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원석) 진짜 형 팁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 (상구) 에이 - (원석) 저 안 그랬으면
(원석) 똥멍청이처럼 막 하나도 모를 뻔했어
역시 여자 문제는 마블리입니다
(상구) 에이, 잠깐만
(상구) 나 303호야, 언제 와?
형, 여자 친구 생겼어요?
담뱃불? 이름이 뭐 이래요?
여친 아니야
작년에 내가 담뱃불 붙여 주다 만난 여자인데
그날 둘이 303호 굿 타임 바로 입성했지
오, 모텔 굿 타임?
근데요?
(상구) 씁, 아니, 근데 엊그저께 만났는데 생을 까더라고
내가 기억이 안 난대
그래서요?
그래서 프로페셔널답게 바로 미끼를 던졌지
- (원석) 어 - 바로 답장이 오겠지
303호라니요? 무슨 말씀이시죠?
[익살스러운 음악] [원석의 의아한 숨소리]
그럼 뭐라 그러실 건데요?
'어, 이거 지은이 전화번호 아닌가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는 303호라고 저장돼 있길래 지은이인 줄 알았어요'
오, 이거 한 방 먹이는 건가요?
(상구) 먹이는 거지 [원석의 웃음]
303호가 자기뿐인 줄 알아?
선영이, 미자, 숙희 다 303호야 어디서 까불어? 쯧
형, 이 여자 진짜 열 좀 받겠는데요?
이제 봐라
여기까지 빡쳐 가지고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답장을 보낼 거야
또 하나 배웠습니다
- (상구) 가자 - 예, 스승님
(수지) 메신저 왔었네?
(상구)
(수지) 뭐야? 이 병신, 쯧
(박 대리) 내가 그렇게 술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어?
어? 에이스, 퇴근해?
오늘 이 대표랑 한잔하기로 했는데
아, 그래요? 메신저 온 거 없던데?
어, 방금 연락 왔어
- (수지) 아 - (박 대리) 음
(박 대리) 그러면 1차만 있다 가
좀 중요한 약속이라 오늘은 어려울 거 같아요, 죄송해요
중요한 약속? 누굴 만나길래?
[옅은 탄성]
데이트?
[웃으며] 아니에요
(박 대리)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고 보니까 오늘 화장하고 의상하고 신경을 좀 썼는데?
남친 생겼네, 남친 [직원6이 피식 웃는다]
다음번 회식에는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봬요
(박 대리) 그래, 알았어
너무 늦지 말고, 술 먹지 말고 엄마 걱정하신다
[한숨]
[한숨]
[발랄한 음악]
(원석) 야
[피식하며] 너 회사에서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뭘 사길래 여기까지나 나오라 그래? 차 겁나 막히는구먼
[수지를 툭 치며] 아, 네가 꼭 같이 가 줘야 돼
여기 너희 랑이 일하는 데잖아 너희 랑이랑 가면 될 걸, 왜?
아, 안 돼 랑이 모르게 사야 된단 말이야
뭔데 그래?
그런 게 있어, 빨리 와, 같이 가자
[원석의 개운한 한숨]
어? 석이 왜 이 시간에?
나 데리러 왔나?
[원석의 웃음]
뭐야? 나한테 연락도 없이 왜 둘이서?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원석) 어
어, 석, 어디야?
(원석) 어? 어, 나 사무실이지
- 그래? - (원석) 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나 끝나고 바로 간다고
(원석) 어, 그래, 이따 봐
어
뭐야?
혹시... [익살스러운 효과음]
[놀라며] 설마
[원석의 웃음]
[휴대전화 진동음]
[익살스러운 음악] (호랑)
(원석) 휴
(수지)
[발랄한 음악]
(호랑) 응, 알았어, 일찍 갈게
[수지의 힘겨운 숨소리]
[원석의 힘겨운 신음]
(수지) 이래서 네가 날 불렀구나?
(원석) 당연하지 이 힘든 걸 나 혼자 어떻게 하냐?
야, 랑이 이거 보면 깜짝 놀라 갖고 눈알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눈 큰 애가
야, 떨어지면 네가 주워서 도로 넣어라
[원석의 웃음]
(수지) 근데 할부 몇 개월로 했냐?
(원석) 12개월, 나 진짜 큰맘 먹고 샀다
야, 너 진짜 큰맘 먹었네, 어? [원석이 피식 웃는다]
오래 기다렸을 텐데 이 정도는 해야지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허, 참
뭔데?
븅? 아니, 누구길래 대화명이 이래?
있어
차단하게?
차단했어
[원석이 피식 웃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상구) 지은아, 올 때 오빠 셔츠 좀
영윤아, 오빠 303호야
(상구)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문자도 확인 안 하네?
(세희) HK에서 메일 왔더라
[상구의 한숨] 데모 데이 최종 보고서
누군데?
뭐, 무슨 대리였는데
우 대리?
(세희) 흠
아니, 박진호 대리
[칭얼거리며] 박, 박진호
(상구) 박진호
(호랑) 언니, 안녕하세요
(가게 직원) [웃으며] 왔어?
(직원3) [놀라며] 그 소파 나갔나 보네?
(가게 직원) 어, 어, 누가 디피된 거라도 사겠다고 해서 오늘 나갔어
음, 어쩐대? 이제 다른 데 가도 못 구할 텐데
괜찮아요, 저도 곧 이사하면 좀 더 큰 게 필요해서
어, 정말? [발랄한 음악]
(직원4) 매니저님, 이사하세요?
아직 계약 기간 많이 남으셨잖아요
아니, 뭐, 그 전에 이사할 일이 생길 거 같아서
(직원2) [놀라며] 혹시 매니저님도 결혼하세요?
아직 뭐가 결정 난 건 아니고 근데 뭐, 멀지 않을 거 같기는 하네?
(직원2) [놀라며] 진짜요?
[저마다 축하한다]
(직원1) 어, 잘됐다
그럼 제 결혼식 부케 매니저님이 받으세요
뭐, 그래
[직원4의 웃음]
- (호랑) 지호 - 아, 깜짝이야!
[함께 웃는다]
(지호) 안 그래도 나 지금 너한테 전화하려 그랬는데
(호랑) 뭐야? 웬 케이크?
(지호) 원석이가 사 오라던데?
뭐 축하할 일 있다고
너희 오늘 무슨 날이야?
원석이가?
아, 심원석 바보탱구 무슨 서프라이즈를 이렇게 허술하게
[호랑의 생각난 숨소리]
(호랑) 지호, 있지, 나 오늘
[속삭이며] 프러포즈 받아
[지호의 놀라는 숨소리] [발랄한 음악]
(지호) 너희 그럼 이제 진짜...
(호랑) [웃으며] 내가 알고 있었던 거 비밀이야
아씨, 놀라는 표정 어색하면 안 되는데
[놀라는 숨소리] [지호가 살짝 웃는다]
어때? 안 어색해?
안 어색해 [휴대전화 진동음]
[호랑의 웃음] 눈알 튀어나올 거 같아, 야
(지호) 잠깐만
랑아, 나 전화 좀 받고 들어갈게
(호랑) 알겠어, 빨리 들어와
네
[흥얼거린다]
(원석) 야, 야, 야, 야, 랑이 왔나 보다
- (원석) 야, 빨리 불 꺼, 불 꺼 - (수지) 이거?
(원석) 아니, 아니, 그 옆의 거, 그거, 그거
어, 어
[스위치가 탁 꺼진다]
석, 집에 왜 불을 다 꺼 놨어?
(호랑) 석, 집에 없어?
[문이 달칵 열린다]
[호랑이 킥킥댄다]
[스위치를 탁 켠다]
(원석과 수지) 짜잔!
[원석과 수지의 웃음]
(수지) 야, 눈알 튀어나온다, 야
[원석의 웃음]
이게 뭐야?
(원석) 우리 랑이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구나?
[원석의 웃음]
내가 얘기했잖아 눈알 튀어나온다고
아, 다행이네요
어머니가 안 믿으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세희) 네, 셀카를 여러 번 찍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 친구들한테 말하려고요
(세희) 아, 그, 여고 때부터 친구분들 말씀이시죠?
네, 좀 마음에 걸리던 친구가 있었는데
다행히 먼저 결혼을 할 거 같아서요
잘됐네요
근데 저는 좀 너무 갑작스러운 거라 애들이 믿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침에 찍은 커플 셀카를 보내겠습니다
그걸 한번 이용해 보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주무세요
[통화 종료음]
뭘 어떻게 이용하라는 거지?
(호랑) 야, 심원석!
하, 미친 거 아니야? 돌았어?
(호랑) 여기다 소파를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원석) 아니, 네가 갖고 싶어 했잖아, 소파
없는 자리 만들어 가지고
내가 마지막 겨우 하나 남은 거 사 왔구먼
아니, 또 뭐가 문제인데?
어? 왜 그러는데, 또?
테트리스 하냐, 지금, 어?
(호랑) 네 눈으로 봐 밥 먹을 공간이나 있어, 지금?
아, 소파에서 밥 먹을 거냐고!
아, 먹으면 되지, 왜 못 먹어?
[기가 찬 숨소리]
내가 너랑 뭔 말을 하냐?
쪽팔려, 진짜, 씨
뭐, 쪽팔려?
내가 쪽팔려?
(원석) 야, 양호랑 너 진짜 말 그따위로 할래?
(수지) 야, 하지 마
(호랑) 그따위로 안 하면 네가 말을 알아들어?
서울대 나오면 뭐 하냐? 사람 말을 이렇게 못 알아 처먹는데
- (지호) 야, 그만해 - (원석) 뭐?
진짜 말 다 했냐, 지금?
(원석) 그럼 네가 말을 알아 처먹게 해 주든가!
나한테 못 알아 처먹는다고 지랄만 하지 말고!
[잔잔한 음악]
너
지금 나한테
지랄이라 그랬어?
야
왜? 또 울려고?
그럼 내가 또 빌어야 되냐?
뭐?
아니, 왜 맨날 나만 미안해야 되는데, 어?
아, 왜 맨날 나만 너 맞춰 줘야 되는데?
하, 진짜...
진짜 지겹다, 지겨워
아, 막, 씨, 진짜
나가지 마
나가면 끝이야, 심원석
[훌쩍인다]
[성난 숨소리]
(지호) 그만 마셔
[호랑이 숨을 하 내쉰다]
네가 소파 가지고 싶다 그랬다며
(수지) 원석이 저거 할부로 어렵게 샀나 보던데
너희 아까
주얼리 숍엔 왜 간 거야?
(수지) 응?
거기 내 시곗줄 갈러
야, 원석이가 내 시곗줄도 자기 돈으로 갈아 줬어
소파 같이 옮겨 줘서 고맙다고
원석이 같은 애가 어디 있어? 걔가 평소에 좀 잘하냐?
[쓴웃음]
프러포즈
오늘은 네가 좀 심했어
(수지)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우리도 있는 앞에서
야, 걔가 그거 산다고 매장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는데
프러...
프러포즈 받는 건 줄 알았다고!
[잔잔한 음악] (호랑) 누가, 누가 진짜 소파 사 달랬냐고
소파 놓을 수 있는 집에 가고 싶다 그랬지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길래
나는 오늘...
나는 오늘 프러포즈 받는 건 줄 알았다고
[오열한다]
(지호) 호랑의 꿈은 17살 때부터 한결같았다
(호랑) 자그마치 7년이야
이제 우리 매장 막내도 결혼하는데
나는 언제까지 나이 서른에 연애만 해야 되는 거냐고
[오열한다]
(지호) 좋은 엄마가 되는 것
[한숨]
(호랑) 내 나팔관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내 자궁도 이제 늙는다고
아, 못 들어 주겠네, 진짜
야, 울지 마, 그만해
결혼, 그게 뭐라고, 진짜
[훌쩍인다]
뭐?
결혼?
그게?
(호랑) 그래, 너같이 잘난 맛에 세상 혼자 다 사는 너 같은 여자는
결혼 같은 거 우습겠지, 근데 [수지의 헛웃음]
나같이 쥐뿔도 없는 년은 결혼이 다라서 그런다
인생의 목표다, 왜!
[답답한 한숨]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호랑이 흐느낀다]
네 인생이 나팔관이야?
(수지) 네 아이덴티티가 고작 자궁이야?
왜 네 자존감을 결혼이랑 맞바꾸냐고!
나 같은 건 자존감도 자궁에 붙어 있어서 그렇다, 왜!
(수지) 야, 양호랑, 너 꼬지 마
왜 계속 말을 꼬아 들어!
잘난 척 좀 하지 마, 재수 없으니까!
(수지) 미친년, 저거 또 지랄병 도졌네
[못마땅한 숨소리]
아휴, 진짜
(지호) 야, 어디 가?
나 더는 여기 못 있겠다
먼저 갈게
(지호) 야, 야, 수지야, 수지야!
야, 수지야! [호랑의 못마땅한 숨소리]
- (지호) 아, 진짜, 잠깐만 - (호랑) 나쁜 년
수지야
지호, 내가 오늘 어땠는지 알아?
나 오늘 모처럼 제시간에 퇴근한 날인데
그놈의 소파 산다고 자기 남친 따라다니고
자기 방 청소까지 했어
근데 내가 쟤한테 재수 없다는 얘기까지 들어야겠어?
알아, 랑이가 오늘 잘못했어
[한숨]
(지호) 그러니까 얼굴 보고
화내고 싸우고 그러고 풀고 가
너까지 오늘 이렇게 가 버리면
랑이, 쟤 너무 외롭잖아, 오늘
[한숨]
외로운 것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야
(수지) 잘 시간도 없이 피곤한 친구한테, 어?
자기 짜증을 기어코 푸는 게 그게 섭섭하다고, 난
[수지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잠깐만
어, 받아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수지) 네, 대표님
[웃으며] 정말요? 저 찾으셨어요?
(지호) 고등학교 때 수지의 꿈은 사장님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꼭 사장이 될 거라고 했다
(수지) 아니요, 제가 대표님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잔잔한 음악] [수지의 웃음]
(지호) 항상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멋진 아이
그게 수지였다
네, 네, 곧 뵐게요, 네
[통화 종료음]
나 회사 들어가 봐야 될 거 같아
지금? 이 밤에?
(수지) 낮밤이 어디 있냐, 월급쟁이가
중요한 클라이언트인데 술자리 빠지면 뒤끝 엄청
[지호의 한숨]
[수지의 한숨]
(지호)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수지는
사장님들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회사원이 되었고
[한숨]
[지호의 한숨]
(지호) 결혼이 유일한 꿈이었던 호랑은
연애 5년에
동거만 2년째
(지호)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살기 위해
(지호) 집주인과
결혼하기로 했다
[축구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친구분들이 납득하시던가요?
아니요
못 했어요, 일이 좀 있어서
저기, 혹시
친구분들은 뭐 하세요?
아니, 그러니까
어, 다들 무슨 일 하시면서 어떻게들 사시는지
뭐, 회사 다니거나 결혼했거나 사업하거나
그렇게들 살죠, 남들처럼
[살짝 웃는다]
그렇죠, 남들처럼
[지호의 한숨]
아니, 문득
저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잔잔한 음악] 다들 달려가고는 있는데
이게 지금 꿈에 가까워지는 건지
아니면 멀어지는 건지
(지호) 감이 잘 안 와서
그래서 먼저 가 본 사람들은 어떻게들 사나 궁금해져서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그런 거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는 안 되죠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세희) 잘 아시겠지만 이미 모든 게 포화나 고갈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나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기준도 새롭게 세워야겠죠
가령 예를 들자면
결혼
같은 거요?
네
(지호) 세상이 나아질 리가 없으니
(지호) 당연히 내 인생도 더 나아질 리가 없다
더 나은 내일이 아니라 최악의 내일을 피하기 위해
[지호의 한숨] 사는 걸지도 모른다
(세희) 그럼
(지호) 아, 저기, 잠깐
제가 저희 결혼 생활에 대한 기준을 한번 생각해 봤는데요
어, 아무래도 이 결혼의 제1 기준은 효율성과 경제성이 아닐까 싶어서요
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호) 여타 비용이 드는 일은 좀 되도록 생략했으면 하는데요
뭐, 결혼식이라든가 그런 건 당연히...
당연히 생략입니다
(세희) 저희 결혼에 관한 모든 절차와 지출은 딱 상견례까지만
네, 꼭 그래야 될 거 같아요
네, 반드시
[잔잔한 음악] (지호) 예전처럼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고양이 울음]
금수저들이나 하는 의식이다
[스위치를 탁 끈다]
"졸업"
[스위치를 탁 끈다]
(지호) 이제 우리는
(지호) 근데 저희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네, 그랬던 것 같네요
(지호) 그저 평범하게 먹고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밝은 음악]
(세희) 제가 동성애자다에 베팅하셨던 분들
이성애자다
무성애자다
저 결혼합니다
- (수지) 언제부터 사귄 건데? - (지호) 사...
(세희)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 이상 요구받는 건 사실 좀 많이 불편합니다
(호랑) '헤어진 마당에 말해 뭐 해? 입만 아프게'라고 전해 주세요
디피됐던 거라서 그러는 거야
(원석) 아, 그거였네, 아 [호랑의 속상한 신음]
(세희)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랑) 순둥이 이거 애먼 사람한테 넘어간 거 아니야?
제 결혼식입니다 그래서 꼭 가야 합니다
(세희) 아주 짧고 흔한 결혼식으로
[수지와 지호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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