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5
(호랑) 어, 지호, 나 도착
어, 천천히 와
[통화 종료음] (종업원1) 어서 오세요
[밝은 음악]
둘이 먼저 만났네?
(수지) 어, 왔어?
[살짝 웃는다]
뭐야? 둘이 밥 먹자더니
누가 할 소리?
얘 온다고 말 안 했잖아
(지호) 에이, 미리 말했으면 둘 다 안 나왔을 거면서
근데 왜 둘이 나란히 앉았어?
[밝은 음악] 마주 앉으면 얼굴 봐야 되잖아
[수지의 헛웃음]
(수지) 뭐래?
있잖아, 나
너희한테 할 말 있어서 불렀어
(수지) 무슨 할 말?
음...
꼭 둘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해야 되는 말이라서
(지호) 그래, 일단 이거 물, 물 한 잔씩들 마시고
뭔데? 무슨 일 생겼어?
뭐야? 불안하게
무슨 일인데?
있지, 얘들아
나...
(상구) 자, 그럼 자연 유입은 SEO 이후에 계산해 보는 거로 하고
자, 또 다른 논의 사항 있습니까?
[한숨]
네, 남 수석님?
지난번 회식 3차 때
(세희) 저의 성 정체성으로 내기하셨던 분들 누구누구시죠?
[직원들의 난처한 신음]
아니, 내기는 무슨 내기를...
그, 하, 참 그딴 걸 왜 합니까, 우리가?
(상구) 우리 내기 끊었어요
[직원들의 어색한 웃음] 아니, 우리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어색하게 웃으며] 참, 어이가 없네?
제가 동성애자다에 베팅하셨던 분들?
[흥미로운 음악]
(세희) 음, 이성애자다
무성애자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축하드립니다, 보미 님
저
결혼합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뭘 해?
(상구) 남, 남 수석님
아니, 뭘 한다고?
(직원들) 결혼...
결혼?
다들 주세요, 5만 원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 자, 남 수석
나랑 잠깐만 얘기 좀 할까?
혹시 우리가 몰래 내기한 것 때문에
막 '엿이나 잡수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그냥 장난치고 그러는 거지?
그런 거지? 그렇지?
5만 원 냈어?
(상구) 야, 아니, 결혼을 한다고? 진짜 결혼?
매리지? 웨딩? 관혼상제의 그 혼?
어
[속삭이며] 여자랑 하는 거야, 그 결혼?
(세희) 어
웃기지 마! 네가 어떻게 결혼을 해?
무성애자인 놈이 어떻게 결혼을 하냐고!
(상구) 내가 그거 믿을 거 같아?
너 그거 가짜 결혼이지?
인마, 속일 사람을 속여 나는 안 속아!
쯧, 자식이 말이야
예뻐
[익살스러운 음악]
아, 이뻐?
어
엄청
[흥미진진한 음악]
세희가 사랑에 빠졌구나
세희가 드디어 사랑을 알아 버렸어!
[상구의 웃음]
네가 결혼을
한다고?
집주인이랑?
놀랐지?
[호랑의 놀란 숨소리]
[수지가 숨을 하 내쉰다]
언제부터 사귄 건데?
사...
(지호) 사귄 건 한두 달 정도
(수지) 그럼 그 집 들어갈 때부터 사귄 거야?
그런, 그런 셈이지
(호랑) 그때부터 사귀었다고?
응, 그때부터
근데 왜 우리한테 말 안 했어?
저번에 그 남자랑 아무 사이 아니라 그랬잖아
어? 그랬잖아
(호랑) 그랬지, 너무 딱 잡아떼길래 수상하긴 했지만
(지호) 어...
그때는 너무 얼마 안 됐을 때니까
조금 너희한테 말하기 민망해서 그랬지
근데 얼마 안 됐는데 결혼을 한다고?
어, 왜
만난 지 한 두세 달 만에 막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거야 딴 사람들 얘기지
딴 사람도 아니고 지호 네가?
[흥미로운 음악] 내가 왜?
아니, 누구랑 친해지는 데도 몇 개월이 걸리는 애가
(수지) 기승전을 건너뛰고 결혼을 한다니까 이상하잖아
안 이상해?
사람 관계라는 게 꼭 만난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만난 시간은 짧아도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싶으면
필요해?
[멋쩍게 웃으며] 아, 그...
필요, 필요하다는 말을 사람한테 쓰는 게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이게 무슨 말이냐면...
[긴장되는 효과음]
나 알았다, 네가 왜 결혼하는지
[긴장되는 효과음] 어?
지호 너
[심장 박동 효과음]
첫눈에 반했구나? [종소리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호랑의 환호성]
(호랑) 만나자마자 바로 반한 거야, 그렇지?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완전 첫눈에 뿅, 그거지?
응, 맞아
[호랑의 놀라는 숨소리] (수지) 맞아?
(지호) 그게, 그게 그렇더라고
진짜 막 첫눈에 뿅, 막 이런 거
[호랑의 탄성]
그래서 결혼도 갑자기?
응
운명인 것 같아
[호랑과 수지의 놀라는 숨소리]
(호랑) 운명?
- (수지) 운명... - (호랑) 어떡해
[어색한 웃음]
[호랑의 기뻐하는 신음]
[종소리 효과음] 운명인 것 같아
어휴
미쳤다, 진짜
와, 드라마 좀 쓰더니만 연기자 났네, 연기자 났어
[하차 벨이 삑 울린다]
[밝은 음악]
(세희) 가시죠
이쪽으로
(지호) 회사에는 어떻게, 알리셨나요?
(세희) 네, 마침 전체 회의가 있어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호) 아, 그, 난코스로 예상된다던 동료분은
(세희) 그것도 의외로 한 방에 해결됐습니다
수컷의 진화 심리학적 본성을 이용해서
(지호) 네?
(세희) 음, 지호 씨는요?
그, 워낙 오래된 친구분들이시라 납득이 어려울 거라고
(지호) 아, 뭐, 저도 뭐, 의외로 한 방에
어떤 방법을 쓰셨길래?
아, 그, 운...
(세희) 응?
우, 운, 운이 좋았어요
스토리텔링 기법을 좀 썼거든요
드라마 작가였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그러셨군요
(세희) 그럼 들어갈까요?
저, 괜찮으시겠습니까? [지호가 숨을 깊게 들이쉰다]
네
열심히 해 볼게요
[지호가 숨을 후 내뱉는다]
어머니는 제 시청자층이셨으니까 어렵지는 않을 거 같은데
아버지께서...
아버지는
그냥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초인종이 딩동 울린다]
[발랄한 음악]
(지호) 집주인의 어머니, 조명자
서울 종로구 출생, 1955년생
현모양처이자 온화한 어머니로 비치기를 원하는 가정주부
아들 왔어?
- (세희) 잘 지내셨어요? - (명자) 어
(지호) 아들의 결혼 이슈가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어
집안의 평화를 되찾길 바라는 안정 지향의 전형적인 어머니 캐릭터
제가 말씀드렸던 지호 씨입니다
(지호) 어, 안녕하세요
왔어요? 오는 데 힘들지 않았어요?
아유, 그럼요
(지호) 저, 이거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어머나, 세상에
아, 꽃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살짝 웃는다]
(명자) 음, 냄새 좋다
이게 얼마 만에 받아 보는 꽃다발이야?
[명자의 웃음] (지호) 이런 캐릭터는 내 전문이지
일일 드라마를 오래 한 보람이 있군
(명자) 저기, 아버지는 친구분들하고 여행 가셨다가
지금 공항에서 오시는 길이래
응, 앉아 있어요
- (지호) 아, 네 - (명자) 그래그래
(지호) 집주인의 아버지 남희봉
윤리 교사로 임용되어 30년간 교편을 잡다가
작년에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한
음, 전형적인 교육자 캐릭터
씁, 이거 다 내 전문 분야인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명자) 왔어요?
[긴장되는 효과음]
[고양이 울음 효과음]
[으르렁대는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명자) 난 또 얘가 세입자라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어
결혼할 사이끼리 집 오가는 거 자연스럽지
우리가 그런 거 이해 못 할까 봐?
안 그래요, 여보?
안 그러니?
(지호) [웃으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명자) 알지, 그럼
그럴 땐 남자들이 나서서 얘기해 주면 좀 좋아?
우리 집 남자들이 숫기가 없어
근데 이거 욕 아니다
또 그런 남자들이 뒤에서 엄청 챙겨 주잖아
씁, 그 뭐라더라?
츠, 츤데레?
맞지? 응?
알죠, 저희 집도 경상도라
(명자) 아, 그래? 경상도 어디?
(지호) 아, 남해입니다
[명자의 놀란 숨소리]
(명자) 어머, 남해에서 S대 온 거면 대단하다
서울에서도 인서울 하기 얼마나 힘든데
그렇죠?
(희봉) 결혼을 왜 하겠다는 건가?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왜는? 청춘 남녀가 좋아서 하는 거지
(명자) 당신은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을
(희봉) 명문대까지 나와서 작가 일 하는 거면 일에 대한 욕망도 클 텐데
갑자기 결혼을 왜 하겠다는 건가?
일도 관두고
아, 그, 그, 그게...
(세희) 그만하시죠
어머니 등 떠밀어 압박하실 땐 언제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희봉) [한숨 쉬며]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지호) 네, 그, 그게...
어, 어...
세, 세희 씨랑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요즘은 사귀는 사이끼리 그렇게 안 부르지 않나?
네?
(희봉) 78도 아니고 88년생이 사귀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나?
지금 압박 면접 하십니까?
물을 걸 묻는 거다, 오버하지 마라
결혼을 왜 하냐니, 그런 걸 왜 물어요?
아비가 그런 것도 못 묻냐?
(지호) 오, 오빠를
[긴장되는 효과음]
사...
[익살스러운 효과음]
사랑합니다
[밝은 음악]
[종소리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의 어색한 웃음] [명자의 웃음]
[밝은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명자)
(명자)
아, 이런
(명자) [웃으며] 아들, 사랑해
- (지호) 운동 가세요? - (세희) 네
점심이 늦으시네요?
아, 네, 늦잠을 좀 자서요
[살짝 웃으며] 인사 갔다 와서 긴장이 풀렸나 봐요
(세희) 그날 긴장을 많이 하셨나 봐요
(지호) 네, 아무래도
긴장하셨을 텐데 어떻게 그런...
네?
(지호) 오, 오빠를
[익살스러운 효과음]
사, 사랑합니다
그런 대사는 드라마 경험에서 나오신 겁니까?
[지호가 콜록거린다]
과감한 결단력에 다시금 놀랐습니다
(지호) [캑캑대며] 네
아버님 캐릭터상 좀 뭔가 확실한 돌파구가 필요해 보여서요
[물을 조르르 따르며] 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돌파구였죠
덕분에 해결된 것도 놀라웠고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아닌데
저는 아버님이 그 말을 기다리셨다는 생각이 들던데
[잔잔한 음악]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제가 당신 아들에게 안전한 사람인지
(지호) 사실 그럴 때는 좀 뻔하지만
사랑만큼 확실한 대답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그만큼 하기 쉬운 말도 없죠
이제 내일 상견례만 남았네요
네, 그럼 이제 모든 프로세스가 다 끝나는 건가요?
네, 이변이 없다면 없을 겁니다
그럼
(지호) 다녀오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옅은 한숨]
(호랑) 와, 예쁘다
(수지) 뭐가?
(호랑) 미세 먼지들
미친 거 같지?
어
지호보다?
아니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지호)
지호가 뭐래? 나 괜찮냐고?
어
지호가 말할 때 나 안 괜찮아 보였어?
부러워하는 티 많이 났어?
아니, 조금밖에 안 났어
[호랑의 한숨] [수지의 웃음]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호랑)
[발랄한 음악]
[한숨]
(지호) 이런 말 좀 이상한 거 알지만
(지호)
치
[혀를 쯧 찬다]
어휴, 이럴 줄 알았어
(호랑)
(수지) 치
(호랑) 자기가 왜 미안해? 내 남편 뺏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순해 빠져 가지고, 쯧
야, 너 형부 본 적 없지?
형부가 누군데?
지호 신랑
(호랑) 너도 자세히 모르지?
벌써 형부냐?
쯧, 아, 날 잡기 전에 우리가 검증부터 한번 들어가야 되는데
(호랑) 그 순둥이 이거 애먼 사람한테 넘어간 거 아니야?
원석이 오면 원석이한테 물어보자
(수지) 그래도 원석이가 제일 많이 알 거 아니야
뭐야?
너희 아직 화해 안 했어?
[한숨]
5일째 집에 안 들어와, 심원석
안 된대, 환불?
안 된대, 절대
[익살스러운 음악]
[원석의 힘겨운 신음]
너 집에 안 가냐?
(상구) 너 때문에 3일 동안 소주를 23병을 먹었더니
내장이 파열되고 간의 일부가 녹아내린 느낌이야
집이 있어야 집에 가죠
내가 집이 어디 있어요?
(상구) 네 명의지만 여자 친구 보증금으로 구한 그 옥탑방으로 좀 가라
안 가요, 안 가 나 진짜 이번에 화 많이 났어요
그 소파 산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내가 제일 아끼는 무선 키보드
그것도 내가 중고나라에 엄청 싸게 팔았다고요, 씨
(상구) 그러니까 걔는 도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냐?
아니, 소파 사 달래서 소파 사 줬잖아
아니, 소파가 답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답이라는 거야?
하, 몰라요 내가 그 변덕을 어떻게 알아요?
[흥미로운 음악]
혹시 그게 소파가 아니라 다른 걸 원하는 거 아니야?
(수지) 정말 소파를 사 주다니 너희 원석이도 참
응? 맑다, 애가 티가 없어
어유, 야, 근데, 어? 좋긴 좋다, 어?
[수지의 웃음]
(호랑) 맑디맑지
그 티 없이 하얀 조약돌 같은 공대생을
내가 7년 동안 광물 좀 비슷하게 만들었나 했는데
착각이었어
돌은 그냥 돌인가 봐
그냥 네가 먼저 말해, 결혼하자고
(호랑) 아, 미쳤어?
아, 왜? 먼저 하고 싶은 사람이 얘기하는 거지
아, 싫어
절박하게 보이기 싫단 말이야
[흥미진진한 음악]
결혼요?
그렇지, 자, 봐라
소파, 신혼집, 후배
즉, 후배처럼 소파를 놓을 수 있는 신혼집에 가고 싶다
즉, 결혼하고 싶다
맞네
(원석) 아이,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아니, 뭐, 그럴 리 없기까지 뭐 있어?
너희 7년 만났다며 그럼 보통들은 다 결혼해
형님, 우리 랑이는 보통 그런 여자가 아니라니까요
(원석) 내가 논문 쓸 때 걔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우리 교수 가족 여행 가면 그 집 개 봐 주고
또 그 집 애들 숙제까지 다 도와주는 애예요
그런 애가 지금 제가 제일 중요한 시기인 거 제일 잘 알 텐데
결혼은, 에이, 형 우리 랑이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상구) 오, 마이 갓
그걸 우리가 놓쳤다
소파가
디피됐던 거라서 그러는 거야
[익살스러운 음악]
(원석) 아, 대박, 아
[상구의 한숨] 아, 그거네, 아, 형, 그거였어
- (상구) 맞아 - (원석) 아, 그거였네, 아
형,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를?
아, 우리가 그걸 놓쳤다
(원석) 아, 씨, 그걸 내가...
아유! 술
[상구의 힘겨운 신음] 안주 드세요, 아, 형...
[상구의 시원한 숨소리] 아, 소파 디피, 알았어
[통화 연결음]
(지호) 어, 엄마, 안 자나?
(현자) 와?
(지호) 어, 내일 아침 차로 출발하나?
(현자) 어
어, 다른 게 아니고, 씁
그, 상견례 때문에 내 좀 할 말이 있는데
(종수) [큰 목소리로] 어, 지호가, 와?
아, 아빠, 엄마는요?
(종수) 아, 몰라, 느그 엄마가 내를 바꿔주는데?
- (종수) 와? 너 뭔 일이고? - 아...
(지호) [멋쩍게 웃으며] 그게...
[도어 록 작동음] (지호) 알았어요, 아빠, 조심히 오세요, 네
- (지호) 아, 오셨어요? - (세희) 예
(세희) 아버지이십니까?
(지호) 네
아, 저 오늘 결혼식 안 올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아, 저도 오늘 말씀드렸는데
아, 정말요?
네, 아무래도 미리 말씀드려야 내일 상견례 때 이변이 없을 것 같아서
[살짝 웃는다]
(세희)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잘 수용하셨습니까?
네, 뭐, 다행히 아빠가 의외로 별말씀이 없으셔 가지고
(지호) 아무래도 동생네도 아직 결혼식을 안 올려서 그게 좀 도움이 됐나 봐요
(세희) 네
저희 어머니도 별 이견이 없으셨습니다
결혼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팩트를 알려 드린 게 충격이었나 봐요
아, 다행이네요
어, 그러면, 씁
이번 상견례를 끝으로 더 이상의 비용 지출은 없는 거겠네요?
- 그렇죠? - (세희) 네
그럼 상견례 마치고 와서
내일 최종 계약서를 마무리하는 건 어떠신지?
네
(세희) 아, 그런데 지호 씨 어머니께선
어머니 생각은 어떠십니까?
네?
생각해 보니까 저번 인사 때부터 지호 씨 어머니께선
별다른 의견이 없으신 것 같아서
[잔잔한 음악] 어...
엄, 엄마는...
원래 의견이라는 게 잘 없으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집은 가부장 원 톱 체제라고
아, 그러고 보니까 세희 씨 아버님도 별말씀이...
아버님 생각은 어떠신...
관심 없습니다
네?
(지호) 내일 5시예요 제가 터미널에 나가 있을게요
(종수) 그래, 알았다
(지호) 서울 날씨 추우니까 단단히 입고 오세요
(종수) 하모
(지호) 엄마, 멀미약도 꼭 챙기고
엄마는 왜 답문 한마디가 없노?
전화도 아빠 바꿔 줘 삐고
(지호)
(현자)
[기가 찬 숨소리]
자는데 문자를 어찌 보내노?
참...
뭐지?
내한테 시위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종수의 웃음]
(종수) 이 결혼이라는 게, 이게 인륜지대사 아닙니까, 예?
이게 어디 보통 인연입니까, 예?
[종수의 웃음]
그런 의미에서, 거 제 술 한잔 받으시소
(희봉) 아, 예, 그러죠 [종수의 헛기침]
(종수) 예
그, 요새 아들이 참 똑똑치예? 예
처음엔 식을 안 올린다 캤을 때 좀 섭섭하더만
따지고 보면 요새 같은 불경기에 참 현명한 생각 아입니까?
(희봉) 예, 뭐,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죠
[종수의 웃음]
- (희봉) 제 잔 한잔 받으시죠 - (종수) 아, 예
(종수) [웃으며] 아, 예, 예, 아유, 감사합니다
남해에서 S대 올 정도면 어렸을 때부터 정말 똑똑했겠어요
아입니다, 뭐, 남들하고 똑같지예
(명자) 대화해 보면 어른 공경할 줄도 알고요
남들하고 똑같지예
(명자)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얼마나 그냥 순하고 싹싹하고
(현자) 아닙니다
똑같지예, 남들하고
아, 예
똑같습니다
(현자) 요즘 아들만치로 적당히 철도 없고 적당히 지밖에 모르고
딱 요즘 아입니다, 다를 거 없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아, 예
(희봉) 뭐, 쓸데없는 걸 물어보고, 참
[명자의 멋쩍은 웃음]
아, 그, 그, 저, 그 사부인도 한잔 받으시소, 예
[종수의 웃음] (명자) 예, 그럴까요?
(종수) 좋은 날인데 [종수와 명자의 웃음]
아, 예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 (종업원2) 예, 감사합니다 - (지호) 어? 계산하셨어요?
(세희) 네
어느 블로그에서 상견례 자리 비용은 미리 계산하는 게 좋다고 하길래
[옅은 탄성]
이런 공동 지출은 월말에 정산할까요?
(지호) 이렇게 매번 반씩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울 텐데
오늘이 지나면 그럴 일도 없을 텐데요
(세희) 쯧, 오늘 건 그냥 제가 하는 걸로
(지호) 어, 아니에요
여기 비싼 데인데
부모님께서 서울까지 걸음 하셨지 않습니까
(세희) 교통비와 그 수고도 정산해야죠
네
[지호가 픽 웃는다]
(지호) [헛기침하며] 아, 아니
이렇게 인사하고 알리고
몇 가지 단계만 거치면 끝난다는 게, 참
생각보다 쉽네요, 결혼
저는 사실 걱정했었거든요
가족들이 이해하기 어려울까 봐
(세희) 저는 이렇게 쉬울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정말요?
네
꽤 괜찮은 조합이니까요, 우리
[잔잔한 음악]
대출이지만 제가 집이 있는 것도
지호 씨가 명문대를 나왔지만 실업자인 것도
양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겁니다
음, 전자는 이해가 가는데 후자는 왜...
(세희) 사회적으로는 교육자 집안의 체면을 충족시키고 싶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떠받들기는 싫은 며느리를 원하니까요
제 양친의 위선적 욕구를 본의 아니게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탄성]
(지호) 제가 명문대를 나와서 실업자가 된 게
이렇게 시너지를 가져올 줄은 몰랐네요
다행이에요
제가 감사하죠
[지호가 살짝 웃는다]
(현자) 내가 뭐를?
내가 뭔 소리를 했다 그럽니까?
[종수의 헛기침]
(종수) 이 사람이, 이거, 오늘따라 이거, 와 이라노, 응?
[종수의 헛기침]
취했나, 니?
[종수와 명자의 멋쩍은 신음] [현자의 시원한 숨소리]
(현자) 그랍시다, 제가 좀 취했습니다
제가 좀 취해서 할 말을 좀 하겠습니다
저희도 이래 얼렁뚱땅 딸내미 보낼 생각 없습니다
[명자의 멋쩍은 웃음]
(명자) 얼렁뚱땅이라니요?
(현자) 저희도 남들처럼 할 거 다 하고 식도 올려야겠습니다
[멋쩍은 웃음]
애들끼리 얘기 다 됐던데...
(희봉)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은 올려야지요
[현자의 헛기침] [종수의 한숨]
[잔잔한 음악]
[한숨]
(종수) 노망났나, 어?
니 어디 아프나? 어?
(현자) 갱년기 올 때 됐지, 뭐
(종수) [헛웃음 치며] 니 진짜 와 그라노, 어?
딸내미 결혼 막 확 엎고 싶어서 그러는 기가?
(현자) 뭐를?
내가 뭘요?
그쪽에서 말을 먼저 좀 그래 한다 아이가
(종수) 뭔 말을? 사람들 점잖기만 하더만
요새 아들 같지 않다고
순하다, 싹싹하다 카고
(종수) 아, 그게 여자한테 칭찬이지
(현자) 맞벌이하면 아 키우는 값이 더 드는데
그만두고 집에 있어서 좋다 카고
아, 그게 사실이지
결정적으로
야가 어딜 봐서 내를 닮았소?
(지석) 엄마랑 누나랑 똑같이 생겼다
그, 몰랐나?
[문이 스르륵 여닫힌다]
(지호) 엄마
[한숨 쉬며] 와 그라는데, 진짜?
엄마도 전번에 영현 언니 결혼식 갔을 때
시끄럽고 돈만 쓰는 일이라고 그랬다 아이가?
고마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인사하면 됐지
아, 왜 꼭 결혼식을...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서 그렇지 만만하게
(현자) 니 '순하다, 싹싹하다' 그게 칭찬인 줄 아나?
그게 다 '시부모 말 잘 듣고 찍소리하지 마라' 그 뜻이다, 아나?
결혼식 안 하는 것도
혼전에 같이 산다고 무시하는 거 아이면 뭔데?
아, 뭘 그리 또 꼬아서 생각을 하노?
사실이니까 그렇지, 사실이니까
그래, 니, 내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보자
[한숨]
니
결혼은 와 할라 하는데?
(지호) 와 할라 하기는, 결혼을
아니, 뭐, 나이 서른에 결혼하는 게 뭐, 이상한 일이가, 그게?
일은?
글은?
안 쓴다, 이제
접었다
(현자) 그카면 취집한 거네?
시집이 아니고
와, 뭐? 좀 그라면 안 되나?
내가 니 취집이나 하라고 서울대 보낸 줄 아나?
(현자) 니 이러려고 니 아부지한테 그래 구박받으면서 글 쓴 기가?
고작 이리 될라고?
그러면 뭐?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나?
딸내미 뭐, 유명 작가라도 되면 덕이라도 좀 볼라고 기대했었나?
내 니 덕 좀 볼라 했다, 왜?
본전 생각 나서 아까워 죽겄다
[지호의 기가 찬 숨소리] (현자) 내가 내준 니 입학금
니 아버지 몰래 보내 준 서울 생활비
니 리딩 갈 때 입고 갔던 그 백화점 원피스 다 내놓고 가라
취집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남들 받는 백 하나 못 받으면서
디디하구로
뭘 가진 기 있어야 받지, 가진 기
뭐가 있는데, 우리 집?
딸내미 방 하나도 못 구해 주면서
(지호) 뭐를 받을라 하노, 양심이 좀 있어라!
[쓸쓸한 음악]
뭐, 글?
그런 것도 집에 돈이 있어야 쓰는 기다
돈 없으면 고마 잠이나 자야지
꿈을 어찌 꾸노?
[문이 스르륵 여닫힌다]
[한숨]
(명자) 그러니까 아버지는 여자 집 쪽 생각하셔서
남자는 몰라도 원래 신부는 드레스도 입고 싶고 그런 거거든
원래 남 생각 안 하고 사시는 게 인생 모토 아니셨습니까?
라고 전해주세요
(명자) 저기, 그러니까 세희는
굳이 남들 의식해서 비싼 결혼식 할 필요 있나, 뭐, 그런...
며느리가 왜 남이냐?
라고 전해
[명자의 한숨]
(명자) 그러니까 아버지는 새 식구가 들어오는 기쁜 날인데
다 같이 모여서 축하도 하고, 뭐, 그런...
[세희의 헛웃음]
(세희) 그냥 뿌린 축의금이 아깝다고 말하세요
그게 아버지한테는 훨씬 진정성 있어 보이니까
(명자) [놀라며] 세희야
(세희) 남들한테 '내 아들 멀쩡하다' '명문대 며느리 얻었다'
자랑하고 싶으신가 본데
그런 체면치레 하시라고 결혼하는 거 아닙니다
결혼하면 더 이상 어머니한테 이혼 협박 안 하고
제 일에도 신경 끄신다고 한 약속 지키세요
(희봉) 결혼식도 안 올리는 결혼이 무슨 결혼이냐?
인정 못 한다
(명자) 아, 저기, 차 막히겠다, 어서 가, 어서
[쓸쓸한 음악] 빨리 가, 그냥
[문이 달칵 여닫힌다]
저녁에 한정식 먹은 거 아니었어?
소화 다 됐어, 엄마랑 싸우면서
결혼식 진짜 안 하려고?
[한숨]
나는 지금 백수고
집주인도 대출금 갚느라 빡빡한데 무슨 결혼식이야?
(호랑) 드레스 안 입고 싶어?
사진도 안 찍을 거야?
[살짝 웃으며] 글쎄?
집주인도 나도 그런 데에는 별로 취미 없어서
지호, 너 결혼식이라는 게 그게 너희 행사가 아니야
너희 의견은 중요하지가 않다고
(수지) 너 드라마 할 때 제작 보고회 그런 거 왜 해?
사람들 이목 끌고 그래야
투자자, 방송사들도 손해 안 보니까 하는 거잖아
그런 거야, 결혼식도
그러니까 하기 싫다고
아니, 그런 걸 왜...
그리고 부모님이 무슨 투자자냐?
투자자 맞지, 뭘
(수지) 어머니도 그러셨다며 물론 홧김에 하신 얘기겠지만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 보상받고 싶으신 거지, 심적으로도
(호랑) 그래, 나도 너 드레스 입은 거 보고 싶은데
엄마는 오죽하시겠어?
(지호) 결혼식 할 돈 없어
나도 집주인도
[의아한 숨소리]
근데 너 아까부터 왜 계속 남친을 집주인이라 그래?
(지호) 어?
내가 그랬어?
어, 두 번이나
[흥미로운 음악] [지호의 어색한 웃음]
(지호) 그랬나?
[웃으며] 내가 왜 그랬지?
너희 혹시
집주인과 세입자의 역할극 같은 거 하는 거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월세가 밀렸군'
(수지) '오늘 밤 혼을 내 주겠어?'
어? 막 이렇게? [호랑의 웃음]
(호랑) 미쳤나 봐, 우수지
(지호) 아니야, 무슨...
(수지) '욕실에 찬물밖에 안 나온다고?'
'그럼 내가 뜨겁게 데워 주지'
'내 몸으로, 우'
[호랑과 수지의 웃음]
- (수지) 막 이렇게 - (호랑) 더러워, 더러워
(호랑) 더러워
(지호) 아니라고, 미쳤나 봐, 진짜 [수지와 호랑이 키득거린다]
뭐야? 너 또 안 하고 나왔어, 브라자?
어
(호랑) 왜 그러는 거야, 진짜?
왜 그걸 안 하고 다녀?
야, 생각을 해 봐라
(수지) 하루 종일 이렇게 멀쩡한 살들을, 어?
이렇게 쥐어짜고 있는데
넌 안 힘드냐?
(호랑) 놔라, 너 죽는다, 진짜
[휴대전화 진동음]
(수지) 아, 브라자만 안 해도 회사 가는 게 조금은 덜 힘을 텐데
(지석)
[한숨]
[세희의 옅은 숨소리]
(상구) 아줌마, 여기 500 한 잔 더요
됐어요
오늘 취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취했어, 충분해
(상구) 씁, 네 뉴런들은 참 합리적이다
500 한 잔에 취하고 아주 좋은 애들이야
음주에는 그렇게 합리적인 뉴런들이 왜 결혼에는 이게 안 돌아갈까?
뭔 말이야?
결혼식은 축의금 회수를 위한 잔치라고, 어?
(상구) 사람들이 자기 밥값을 내고도
막 환호를 하는 이상한 행사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해, 어?
축의금 거둬서 치르는 행사야
어차피 남는 장사라고
자식 가지고 하는 장사에 들러리 설 생각 없어
어허
그 들러리 한 번 안 서서 결혼 생활 내내 힘들래?
(상구) 아니면 한두 시간 참고 편하게 지낼래?
너 결혼식 안 올렸다고
너희 부모님 쿠사리 다 감당할 자신 있어?
(세희) 음...
(상구) 그냥 해, 식 올리는 거 얼마 안 들어 [흥미진진한 음악]
대표님이 견적 한번 뽑아 줘?
됐어
오케이
(상구) 어차피 밥값은 축의금으로 퉁치면 되고
예복은 내가 싼 데 알아
폐백은 생략, 오케이
자, 이 정도 나오네
됐다니까, 쯧
이거밖에 안 든다고?
(상구) 여기서 지인 찬스를 쓰면 더 다운되지
얘 데려다 써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누구길래 아까부터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익살스러운 음악]
[원석이 드르렁거린다] (상구) 아까가 아니라 어제부터 잤어
아, 얘 걔잖아, 너희 소개시켜 준 저, 저, 지호 씨 친구
[원석을 툭툭 치며] 야, 일어나, 일어나!
[퍽 소리가 난다] 아유, 야, 야, 조심해, 이거
[원석의 아파하는 신음]
[원석의 힘겨운 신음]
(원석) 아, 처음 뵙겠습니다
모바일 청첩장은 제가 해 드릴게요, 공짜로
[도어 록 조작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아버지 쪽은 어떻게...
[잔잔한 음악]
(함께) 저희 그냥...
(세희) 먼저 말씀하세요
저희 그냥
결혼식
할까요?
[밝은 음악]
(상구) 자, 이번 주에도 안정화 작업을 위해 만전을 기해 주시고요
돌아오는 월요일 전체 회식인 거 다들 아시죠?
월요일부터 누가 회식을 해요?
사내 문화에 이의 있습니다
그게 리버럴한 우리 회사의 강점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직접 대표 하세요, 예?
(세희) 저는 이번 회식은 불참해야 할 것 같은데
(상구) 씁, 관혼상제가 아니면 회식 불참은 불가능한 거 아시죠, 남 수석님?
결혼식이 있습니다, 월요일 저녁에
(상구) 아, 월요일 저녁 결혼식이라
정말 결혼식 하기 좋은 월요일 저녁이죠?
도대체 월요일 저녁에 어떤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리죠?
누구 결혼식인데요?
제 결혼식입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래서 꼭 가야 합니다
(세희) 음, 월요일 저녁에 하는 게 제일 저렴해서
아, 마 대표님이 사회자인데 혹시 회식 때문에 못 오십니까?
[직원들의 당황한 신음]
(수지) 촬영할 때 딱 한 번 입었다더니 진짜 거의 새거네?
(지호) 고마워
내가 그 친구한테 밥 산다고 꼭 전해
근데 남이 입던 드레스인데 진짜 괜찮겠어?
(호랑) 촬영용이라 그런지 너무 밋밋한데? 볼륨감도 그렇고
(지호) 에이, 한 시간 정도 잠깐 입을 건데, 뭐
예쁜데?
그리고 나는 웨딩드레스 다 똑같아 보이더라
[놀라며] 어떻게 그래?
지호, 너 색맹 아니야?
(수지) 평일 저녁인데 하객들 많이 온대?
(지호) 어, 부모님 하객들이 대부분이고 우리는 거의 없어
집주...
세희 씨도 뭐, 회사 사람들 정도
신랑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나?
나 요새 연애를 좀 쉬어서
치
연애가 아니라 성생활을 쉬신 거겠죠 [지호가 피식한다]
(호랑) 야, 너 그때 연락하던 그 아저씨 별로야?
아예 연락 차단해 버린 거야?
(수지) 멀쩡하게 생겼는데 너무 푸드덕대 정신 사나워
치
[헛기침하며] 저, 랑아
(호랑) 응?
나 원석이한테 연락했다 결혼식 때문에
아, 그래?
(지호) 원석이 요즘 맨날 술 마시나 봐
목소리 되게 안 좋던데
[어색하게 웃으며] 그래?
연락 안 해 볼 거야?
헤어진 남친한테 뭐 하러 연락을 해, 구질구질하게
[발랄한 음악]
일주일 이상 연락 없으면 헤어지자는 말 아니야?
나 다음 주에 소개팅해
(상구) 자!
어떤 콘셉트를 원하십니까?
멜로, 로코, 아니면 코미디?
- 뭐야, 이게? - (상구) 결혼식 콘셉트 [흥미진진한 음악]
너 축가 부를 거야?
(상구) 씁, 아니다
결혼식에는 이 코끼리 코나 앉았다 일어나기
뭐, 팔 굽혀 펴기 이런 고전적인 콘셉트들이 재밌긴 하지
난 너무 기대돼
하지 마, 아무것도
어?
마 대표가 할 일은 딱 하나야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결혼식을 끝내는 것
이게 또 무슨 소리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그냥 그렇게 끝내겠다고?
응,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아주 짧고 흔한 결혼식으로
부탁해
[차분한 음악]
저거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데
[풀벌레 울음]
(지호) 신랑 예복은 어떻게
(세희) 그냥 양복으로 대체할까 합니다
(지호) 네
어, 그럼 양가 한복은
아, 저희 집은 친척 거 빌리신다고
저희 어머니도 있으시다고
(지호) 네,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됐네요
어, 이제 그럼 다 된 거죠?
가장 중요한 게 남았죠
저희 계약서
아, 네
[흥미로운 음악]
(지호) 그럼 저희가 합의해야 할 게
비용 처리에 관한 부분과
(지호) 계약 종료에 관한 부분이네요?
(세희) 네
저번에 논의했듯이
명절과 가족 행사에 관한 비용은 각출하는 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좋아요
계약 종료는 2년 후로 하고
(세희) 중간에 다른 변수가 생길 경우에는 다시 합의하는 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아, 근데
계약 종료 시에는 어떤 형태로 되는 건가요?
(지호) 어, 그러니까
합의 이혼인 건가요?
물론 뭐, 저희가 혼인 신고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변에 알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네, 그렇게 되겠네요
(세희) 이혼의 형태로 종료를 알려야겠죠
외부적으로는
서로의 성격 차이에 의한 합의 이혼 정도가 어떠십니까?
네, 그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지호) 아니, 이 밤에 뭘 갖다준다 그러노?
(지석) 상견례 때 엄마가 갖고 왔던 반찬
니 그라고 가는 바람에 못 줬다 아이가
[지호의 한숨]
씁, 그, 으흠
엄마가 니 남친 번호 좀 달라던데
아, 모른다 캐라 내가 안 가르쳐 준다고
또 뭔 소리 할라 그러노?
엄마 갑자기 진짜 와 그라는데, 진짜, 어?
와 그렇게 유별나게 구노?
사실 나도 좀 놀랐다
아, 우리 엄마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지석) 결혼식도 그렇고 특히 백 받으라는 얘기는 진짜 좀 충격
그러니까
(지석) 걱정 마라, 어? 이제 식만 올리면 되는데, 뭐
엄마 아빠는 내가 잘 모시고 갈게 식장에서 보자
[픽 웃으며] 가라
(지석) 누나
근데
난 엄마가 왜 그라는지 조금은 알겠다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혼이 그래 간단한 게 아이다
[숨을 씁 들이켠다]
니도 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기다, 간다
[피식한다]
누가 보면 결혼 6년 차인 줄 알겠다
꼴랑 6개월 주제에
[잔잔한 음악] [픽 웃는다]
(지호) 사회학자 게리 베커에 의하면
결혼해서 사는 이득이 혼자 사는 것보다 커야 [지호의 한숨]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지호)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이익과 이익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
다만 우리의 이익에는
애정이 없을 뿐
그러니 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문이 달칵 열린다]
[밝은 음악]
가실까요?
네
생각보다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어? 막힌다고?
그럼 얼마나...
(호랑) 사고 났나 봐 1시간 넘게 걸릴 거 같은데 어떡하지?
1시간?
(수지) 지호, 너희 먼저 이동해야 될 거 같아 안 그럼 늦어
(지호) 어, 알았어, 이따 봐, 그럼, 응
어떡하죠? 픽업 오기로 한 친구들이 막히나 봐요
네, 안 그래도 교통 상황 보고 있는데 사고가 났네요
저희 먼저 그럼 택시로 이동해야 될 거 같은데
안 그러면 늦을 거 같아요
네, 그러죠
저 버스 예식장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인데
(지호) 그러게요
택시 타면 택시비 꽤 나올 텐데
뛸까요?
네
[지호의 가쁜 숨소리]
[지호가 콜록 기침한다]
제시간에 도착하겠죠?
네, 충분합니다
(세희) 저, 혹시
손수건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까?
네? 손수건요?
아니, 오늘 사회 보는 친구가 손수건을 꼭 챙기라고 해서
그, 신부가 울 때 신랑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꼭 닦아 줘야 한다고
(지호) [웃으며] 울어요? 제가요?
그렇죠? 그럴 일은 없으시겠죠?
네 [웃음]
아니, 별걱정을 다
아니, 제가 울기는 왜 울어요? 저 그런 캐릭터 아니에요
네
그래서 정말 다행입니다
[잔잔한 음악]
(여자1) 어, 지호야
- (여자2) 어쩜 이렇게 곱냐? - (여자1) 아, 그러게 말이야
- (호랑) 지호! 지호, 지호 - (수지) 지호
- (지호) 왔어? - (호랑) 어떡해? 너무 예쁘다
(수지) 오, 예상은 했지만 내가 봐도 심쿵이네?
친구분들 앉으세요, 사진 찍습니다
(수지와 호랑) 네
(호랑) 음, 예쁘다
- (수지) 야 - (지호) 응?
(수지) 너희 신랑 사진보다 실물이 훨 낫던데?
뭐야, 얼굴 안 본다더니?
[지호의 어색한 웃음] (호랑) 그러니까, 완전 깜놀, 키도 크고
(지호) 그래? 키가 큰가?
야, 너 화장 워터프루프로 했어?
워터프루프 왜?
[놀라며] 야, 울면 나중에 화장 다 지워져
그래서 신부 화장은 워터프루프로 하는 거야, 몰라?
(보미) 찍을게요
하나, 둘
[카메라 셔터음]
[호랑의 탄성]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터진다]
[함께 웃는다]
"파티 & 웨딩"
[시끌벅적하다]
(남자1) 아이고, 반갑습니다
[저마다 인사를 나눈다]
(희봉) 이 사람은 뭘 이렇게 먼 데서까지 오고
(남자2) [웃으며] 축하해
(희봉) 그래, 어, 들어가, 응
(지석) 어데 가노?
(현자) 화장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보미) 어, 신부님 화장실 가셨는데
아, 그래요?
[한숨]
내한테 뭐 볼일 있나?
없다
니한테 뭔 볼일?
근데 와 여기서 나오는데?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갔지
(지호) 엄마
그 사람 전화번호 왜 물어봤노?
왜? 내가 뭐, 내 사위 될 사람 전화번호도 못 물어보나?
[한숨]
뭔 얘기를 할라고, 또
뭐?
[한숨 쉬며] 엄마, 니 소원대로 결혼식도 하니까
고마 이제 애먼 소리 좀 하지 마라
(지호) 그 사람한테 또 이상한 소리 하면 그때는 내 진짜 화낸다
어?
니도
딱 니 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 봐라
[기가 찬 숨소리]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보미) 곧 예식 시작된대요
(지호) 네
(보미) 참, 저 검정색 가방 세희 님 가방 맞죠?
(지호) 네, 맞아요, 왜요?
아, 아까 어머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뭐 전할 게 있다고
네? 저희 엄마가요?
네, 가방에 뭐 넣어 두고 가시던데
아, 내 이럴 줄 알았다, 쯧
(지호) 뭐고, 이게?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금부터 신랑 남세희 군과
(상구) 신부 윤지호 양의 결혼식이 곧 시작될 예정이니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종수의 옅은 탄성]
[뛰어오는 발걸음]
(보미) 저, 세희 님
네? 왜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기
지호 씨 [지호가 흐느낀다]
[옅은 한숨]
(현자) 저 지호 엄마입니다
[잔잔한 음악] 아직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몇 번 못 봐서
상견례 때는 미안했습니다
큰딸이라는 게 그렇데예
어떨 땐 남편 같고 어떨 때는 또 친구 같고
아빠한테 기죽고 동생한테 치이고
못난 엄마 만나 갖고 마음고생 많았습니다, 우리 딸
그래도 다행히 내 안 닮고 똑똑해서
엄마처럼은 안 살겠구나 다행이다 싶었는데
요새 세상에는 우찌 됐든 부모를 잘 만나야지
혼자 똑똑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나 봐예
(현자) 세희 씨
내 부탁 딱 두 개만 해도 되겠습니까?
지호가 나중에 글 쓰고 싶다 하면
글 쓰게 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살림은 내가 가서 뭐든 도와줄게예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다시 글 쓸 수 있게
지 꿈 포기 안 하고
엄마처럼 안 살구로 그리해 주소
그리고
[울먹이며] 우리 지호 한번 울면 잘 못 멈춥니더
그러니까
혼자서 울지 말게 해 주소
울려도 꼭 같이 옆에 있어 주소
[지호가 연신 흐느낀다]
(보미) 세희 님, 신랑 입장해야 된대요 어떡해요?
어
가세요
제가 잘 알아서 들어갈 테니까
먼저 가세요
(보미) 그래요, 세희 님 신부님은 잘 수습할 테니까
얼른 먼저 들어가세요 하객들 기다려요
가세요
아, 휴지
맞아, 맞아, 휴지
아, 좀 그쳐라, 윤지호
[흐느낀다]
울음이
안 멈춥니까?
그럼
같이 가시죠
울어도 괜찮으니까
나랑 같이 가요
내가 옆에서
같이 있어 줄게요
[잔잔한 음악]
(지호)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당신과
나의 이익이 만나는 일
그리고 어쩌면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
간단치 않은 일이
시작되어 버렸다
[밝은 음악]
(지호) 우리 일요?
네, 우리 일이죠
(수지) 헐, 사진 찍고 후딱 내려오자, 알았지?
- (보미) 키 높이 - (원석) 저, 저요?
신부 쪽으로 옮기세요
(상구) 알은척을 왜 해? 나 내성적이야
[카메라 셔터음]
(지호) 우리라고 말할 때가 참 좋아
흥분된다는 거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 (호랑) 우리 - (수지) 우리
[호랑의 힘주는 신음] (원석) 나 너 너무 사랑하는데
[호랑이 흐느낀다] 결혼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과연 사랑이랑 결혼이랑은 같은 걸까?
(보미) 세희 님 이상형이시잖아요 저희 데이터에 반영하려고요
엄청 예뻐
[직원들의 탄성]
(세희) 지호 씨는 언제라도 자기가 행복한 길을 선택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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