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6
아, 좀 그쳐라, 윤지호
울음이
안 멈춥니까?
그럼
같이 가시죠
울어도 괜찮으니까
나랑 같이 가요
(세희) 내가 옆에서
같이 있어 줄게요
[잔잔한 음악]
(TV 속 아나운서) 1988년 세계가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종수의 헛기침] (지호) 1988년 세계인의 축제가
시작되던 그날 [종수와 현자가 대화한다]
나는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자의 아파하는 신음] (종수) 아이고, 움직이네
(지호) 그렇게 나는 세계가 지켜보는 대한민국의 88둥이로 태어났다
[현자의 탄성]
(지호) 대한민국의 전성기에 태어나
[종수와 어린 지호가 말한다] 우리 집, 우리 차가 있는 게 당연했던
고성장의 풍요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종수의 웃음]
(지호) 그 와중에 한 번의 신분 세탁도 있었다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물론 위기도 찾아왔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함께) 대한민국!
(지호)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종수) 자, 봐 봐, 슛, 슛, 슛!
(지호) 간절한 꿈은
[가족들의 환호성]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지호) 하지만 그 믿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꿈에는 등급이 생겼고
우리는 88둥이가 아닌
88만 원 세대가 되어 있었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스무 살의 투표권에는 힘이 없었으며
세계는 더 이상 대한민국을 주목하지 않았다
무한 경쟁 속 스펙 한 줄에 목을 매는 친구들
그사이에서 나는 꿈을 좇는 달팽이였다
조금은 느려도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끈질기게 믿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말해 준다면
이 녀석은 믿어 줄까?
(상구) 신랑 신부 입장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가시죠
네
(지호) 서른이 된 88년생 윤지호는
[하객들의 환호성] 작가가 되는 대신
월세를 깎아 주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진짜
결혼을 해 버렸다
집 때문에
찍습니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보미) 하나, 둘
[카메라 셔터음] 네, 됐습니다
(종수)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 (종수) 아유, 수고하셨습니다 - (명자) 아, 네, 네
(종수) [웃으며] 고생들 했어요, 예
[호랑이 훌쩍인다]
[수지의 헛웃음]
(수지) 야, 그만 좀 울어
누가 보면 신랑이랑 뭔 사이인 줄 알겠어
자기는 하객 알바인 줄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
(호랑) 어, 냉혈한
치
(상구) 신랑 신부 친구분들은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 (상구) 자,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 (수지) 야, 나가자, 사진
[호랑이 코를 훌쩍인다]
[흥미진진한 음악]
- (수지) 헐 - (호랑) 왜?
[못마땅한 숨소리]
야, 빨리 나가자 [수지의 한숨]
(수지) 야, 사진 찍고 후딱 내려오자, 알았지?
[수지의 한숨]
(보미) 저기, 친구분들 다 오신 건가요?
(지호) 네
(보미) 세희 님도요?
(세희) 네
씁, 거기 대표님하고 키 높이 구두 신으신 분
(보미) 신부 쪽으로 옮기세요
- (원석) 저, 저요? - (보미) 네, 네, 두 분
- (원석) 아, 안 돼요, 안 돼요, 안 돼 - (수지) 안 돼요!
[익살스러운 음악]
(수지) 여, 여기 자리가 비좁아요
(원석) 키 높이 아닌데 왜 키 높이라고 그래요?
원활한 예식 진행을 위해 신속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보미) 대표님, 키 높이 신부 쪽으로 옮기세요, 얼른
(상구) 자, 밸런스를 맞춥시다, 밸런스를
자!
자, 오케이
(보미) 저기요, 거기 키 높이랑 앞의 키 큰 여자분이랑
앞뒤로 자리 바꾸실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찍습니다, 하나, 둘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터진다]
[발랄한 음악]
(상구) 야, 네 여자 친구...
(원석) 아, 형, 여자 친구 만나도 알은척하지 마요
우리 아직 화해 안 했으니까
(상구) 알았어, 알았어
야, 근데 네 여자 친구 옆에 있던 그 길쭉한 여자애 너도 아냐?
(원석) 예, 랑이랑 절친이니까 저랑도 친하죠
(상구) 아니, 그러면 88년생 이 쪼그만 게 어르신을 차단했네, 이게
(원석) 형, 우리 조용히 밥만 먹고 나오는 거예요
알은척하지 말고, 진짜로, 알았죠?
(상구) 알은척을 왜 해? 나 내성적이야
[아이들의 웃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상구) 아유
아니, 여기 사람 없죠?
(수지) 있는데요
없잖아
(상구) 아, 그래요? 그럼 저희가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원석) 아, 형, 잠시, 어, 아니...
[원석의 헛기침]
[상구의 힘주는 신음]
(원석) 야, 그거 맛있냐?
(수지) 먹어 볼래?
(원석) 음, 맛있네
(상구) 안녕하세요, 저기, 우리, 저
처음 얼굴을 뵙죠? 맨날 이야기로만 듣고
(호랑) [웃으며] 아, 네, 안녕하세요
- (상구) 예, 반갑습니다 - (호랑) 저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호랑) 여기는 제 친구 우수...
(상구) 수, 수지 씨?
[흥미진진한 음악] (원석) 뭐예요? 알아요, 형님?
- (상구) 몰라 - (호랑) 근데 어떻게 수지 이름을...
(상구) 아니, 그냥 이렇게 딱 봐도 수지 씨같이 생기셨잖아요, 그냥
깔끔하시고 도도하시고
문자 막 보내면 사람 막 차단할 거 같은
그런 수지 차단
그런 스타일, 딱 쓰여 있어, 여기에
(호랑과 원석) 네?
(수지) 회사 일로 한번 뵀었어
잘 지내셨죠, 마 대표님?
(상구) 아유, 우리, 저, 우 대리님 덕분에 너무 잘 지냈어요
환절기라 그런가? 감기도 된통 걸리고
차단당해서 이 멘탈까지 한번 털리고
그러면서 아주 행복하고 느낌 있게 보냈어요
[작은 목소리로] 수지 차단
[호랑의 헛기침]
(호랑) 어, 지호다
[호랑의 탄성]
[하객들의 탄성]
야, 잘 어울린다!
[밝은 음악]
(호랑) 아, 우리 지호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이야
(원석) 그러게
술 먹고 우리 옥탑방에 토하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살짝 웃으며] 그다음 날 아침에 비둘기 떼 모여드는 바람에
아, 엄청 고생했었지
네가 쫓아낸다고 독수리 흉내 내고
야, 독수리 아니고 매였거든?
(상구) 씁, 아니, 근데 쟤는 뭘 훔쳐 먹고 다니나?
주둥아리에 뭘 저렇게 묻혔어?
저거 초고추장 같은데?
그러게, 얼굴에 왜 저런 걸 묻히고 다니시지?
(수지) 근데 왜 코에 고추장이 계속 흐르지?
(상구) 그러게, 초고추장이 계속 흐르네?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초고추장? [하객들의 놀라는 신음]
[침을 꿀꺽 삼킨다]
[숨을 하 내쉰다]
[흥미로운 음악]
(지호) 진짜 피곤하셨나 봐요 [세희의 한숨]
며칠 사이에 활동량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오죽하면 코피가 다
(지호) 아니, 쌍코피는 누구한테 맞아야만 나는 건 줄 알았는데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긴 합니다
(세희) 이, 웬만한 개발 프로젝트 못지않네요 결혼식이라는 게
이제 다 끝났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세요
네
빨리 우리 집에 가서 쉬고 싶네요
뭐, 제가 말실수라도?
아, 아, 아니, 아니요
(지호) 저, 이것 좀 더 빨아야겠다, 한 번 더
[힘겨운 숨소리]
[한숨]
(세희) 빨리 우리 집에 가서 쉬고 싶네요
우리 집
[잔잔한 음악]
[피식 웃는다]
[지호가 피식 웃는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현자) 몸이 달려서 그런다, 몸이 달려서
그럴 때는 뭐라도 입에 빨리 집어넣어 버려야 된다
자, 얼른 묵어요
- (세희) 아, 네 - (현자) 어
(현자) 요것도 같이 먹어야 된다
- (세희) 아, 예 - (현자) 어
(현자) 와 이래 말랐어요?
뭐를 좋아합니까?
뱀탕 그런 것도 잘 먹나?
(세희) 아, 뱀, 뱀탕은 제가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아, 그렇지요?
서울 사람들은 그런 걸 잘 안 먹더라
그라믄 뭐, 뭐를 먹어야 되겠노?
저기...
지호 씨는 단단한 사람입니다
예?
저도 아직 지호 씨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잔잔한 음악] 글을 쓰겠다 결심했을 때도
그만두겠다 결심했을 때도
그리고 결혼도
스스로를 위해서 선택하신 걸 겁니다
(세희) 약하고 수줍어 보여도 단단한 사람이니까요
내진 설계가 잘된 분입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그러니까 지호 씨는
언제라도 자기가 행복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실 겁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생활 동안 그 선택에
폐가 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이게 다입니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행복하게 해 주겠다, 지켜 주겠다'
그런 말이 아니라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이 이거뿐이라서
그게 뭐? 맞는 말이네
부부라고 서로 행복을 맡겨 놓은 것도 아이고
누가 누구를 우찌 행복하게 해 줍니까?
(현자) 자기 하나도 행복하기 힘든 시대인데
서로한테 폐 안 끼치면 고게 제일이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는 말보다 나는 훨씬 좋다
[살짝 웃는다]
뱀탕 나중에 해다 줄게요
한번 먹어 봐요
아, 뱀탕요?
맛있다
[종수의 웃음]
(종수) 아, 우리가 그 어려운 시절에도
다시 일어난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사돈
(희봉) 예, 예, 예, 그렇죠, 그렇죠 [종수의 웃음]
(종수) 야들은 다 이래 좋은 시대에 태어나가
뭐가 힘들다, 뭐 어쩐다 카는데요
(현자) 이만 가입시더, 여 다들 피곤하시다
(지석) 그래, 아빠, 빨리 집에 드가자
(종수) [웃으며] 알았다
뭐, 아무쪼록 부족한 딸이지만도
- (희봉) 예, 예 - (종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돈
- (희봉) 예, 예. 예 - (명자) 아유, 걱정 마세요, 사돈 [종수의 웃음]
- (종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현자) 예
- (명자) 네, 네 - (현자) 이제 들어가시소
- (명자) 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네 - (종수) 예 [현자가 인사한다]
(은솔) 언니, 갈게요
(지호) 어, 그래
미안해, 몸도 무거운데
(은솔) 아니에요, 무슨
근데 언니
아주버님 완전 존잘이에요
어? 존잘?
진짜 잘생기셨어요
[은솔이 살짝 웃는다]
[잔잔한 음악]
(세희) 그럼 저희도 그만 가시죠
(지호) 네
(은솔) 진짜 잘생기셨어요
왜 그러세요?
아, 아니, 또 코피가 나나 해서
아까부터 제 얼굴을 계속 몰래몰래 보시길래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니요, 그, 그게...
(지호) 모기가 있는 거 같아서요
이 날씨에요?
그러니까요
(지호) 생존력 진짜 쩌네요
[헛기침하며] 저기...
감사합니다
아까 밖에서 들었거든요
저희 엄마한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괜히 신경 쓰이시게 한 거 같아요
제가 미리 해결했어야 되는 일인데
(세희) 그게
지호 씨만의 일은 아니니까요
상대 쪽에서 이 거주에 불안함을 느낀다면
뭐라도 설명을 드리는 게 집주인인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서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 지호 씨만의 일은 아니죠
우리 일이지
[밝은 음악]
우리 일요?
네, 우리 일이죠
(세희) 공동의 사안이니까
[가게 안이 시끌벅적하다]
(수지) 이모, 여기 자리...
(가게 주인) 여기 자리 없다
(수지) 아, 그래요?
[흥미진진한 음악]
야, 너 알고 왔지?
(호랑) 여기 맛집인 거? 알고 왔지
호랑 씨
와
(호랑) 어?
[원석의 다급한 신음]
(상구) 아니, 어떻게 이렇게 놀랍게 우연히 만날 수가 있죠?
- (호랑) 어머, 그러게요 - (상구) 네
- 서울 참 좁죠? - (상구) 그러니까요
씁, 어? 땅도 좁은데 같이 앉으시죠
(수지) 아니요, 됐어요
(가게 주인) 아이고, 마, 바빠 죽겠는데 여기, 뭐, 여기를 막고 있노?
- (상구) 아유, 죄송합니다 - (가게 주인) 퍼뜩퍼뜩 들어가!
[수지의 놀라는 신음]
(상구) 아, 들어갑시다
거, 할머니 괴롭히고 그래요? 앉아요!
(호랑) 그래, 바쁘시다잖아
[호랑의 헛기침]
- (상구) 자, 건배 - (호랑) 그럴까요?
- (호랑) 건배 - (상구) 건배
[호랑의 시원한 숨소리]
(상구) 와, 원샷 파이팅
호랑 씨, 소맥 잘 드시네요? [호랑이 살짝 웃는다]
외모로 봤을 때는 그냥 이슬만 섭취하실 거 같은데
[웃으며] 원래 잘 못 마셨는데 요새 좀 늘어서요
남친이랑 헤어졌거든요
(상구) 아이고, 그러셨구나 남친하고 헤어지셨구나
아이고, 어떡해?
저도 마 대표님 앱 가입할까 봐요
(상구) 예?
아니, 뭐, 호랑 씨 같은 미모의 분이 저희 앱에 가입해 주시면
[멋쩍게 웃으며] 저희야 뭐, 영광이긴 한데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원하세요?
저는 뭐, 딴건 안 따지고요
공대 남자만 아니면 돼요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 아하, 공대 남자, 얘 공...
공대 남자한테 뭐 이렇게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봐요
[원석이 술잔을 쾅 내려놓는다]
'공대 남자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라고 전해 줘요, 들어나 보게
(상구) 들으셨죠? [호랑의 헛웃음]
'헤어진 마당에 말해 뭐 해? 입만 아프게' [익살스러운 음악]
라고 전해 주세요
(상구) 아니, 둘이 얘기, 나한테 그래들
(수지) 야, 그만해
(호랑) 다음 생에는 부디 인간의 언어를 좀 배우길 바란다고도 전해 주시고요
이번 생엔 그른 것 같으니까
(원석) [테이블을 탁 치며] 양호랑, 너 진짜, 씨
(호랑) 진짜 뭐!
[기가 찬 숨소리]
내가 널 이해해 보려 그랬거든 근데 이번 건 좀 심해, 알아?
(호랑) [헛웃음 치며] 네가 뭘 이해해 보시려고 그랬는데?
네가 날 뭘 어떻게 이해해 보시려고 그랬는데?
야, 그 꼬는 웃음, 그거 하지 마, 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진짜 이유가 뭔지
네가 그걸 1이라도 알아?
나도 알아, 진짜 이유!
[잔잔한 음악] (원석) 나도 안다고
네가 왜 화났는지 나도 안다고
[원석의 성난 숨소리]
(상구) 자, 자, 자, 자 캄 다운 하시고, 그...
사실 원석이도 그거 알고 많이 괴로워했어요
호랑 씨가 진짜 화난 이유
[상구의 한숨]
디피된 소파를 사 와서라는 거
[익살스러운 음악]
네? [수지의 한숨]
(상구) 그거 디피된 소파라 뭐라도 묻었을까 봐
얘가 그걸 집에 가져와 갖고 얼마나 빡빡 닦던지
여기 막 그때 알이 배어 갖고 많이 아야 하고
(수지) 마 대표님, 그 입 좀...
(상구) 그거, 배송비 그거 몇 푼 아끼겠다고
정류장에서부터 그걸 질질 끌고 와서는
꽃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입 좀 닫아요
호랑 씨
원석이 진짜 최선을 다했어요
생각해 낸 이유가
겨우 그거야?
(호랑) 내가 디피된 소파 때문에 화났다는 거?
어?
[호랑의 헛웃음]
(호랑) 내가...
내가 너한테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구나?
7년이나 만났는데
[애잔한 음악]
- (상구) 아니, 호랑 씨? 호랑 씨 - (수지) 호랑아
- (원석) 형, 어떻게 된 거예요? - (상구) 나가 봐
(원석) 호랑아, 호랑아!
호랑아, 호랑아
야, 양호랑, 너 진짜! 씨
[한숨]
그것도 아니었어?
아,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데, 응?
(호랑) 너
나 오늘 지호 부케 받은 거 알아?
그래, 아까 봤잖아 받다 넘어질 뻔한 것까지 다 봤어
(원석) 랑아, 말 돌리지 말고 왜 화났는지 얘기를 해 봐, 응?
(호랑) 부케 받으면
6개월 안에 결혼해야 되는 것도 알아?
갑자기 뭔 소리야?
말 그만 돌리고 우리 대화로 풀자, 응?
하, 부케 받고
6개월 안에 시집 못 가면
3년 동안 못 한대
아, 왜 계속 쓸데없는 미신 얘기야?
(원석) 랑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호랑의 힘주는 신음] [원석의 아파하는 신음]
[수지의 놀란 숨소리]
(수지) 헐
[호랑이 흐느낀다] [원석의 아파하는 신음]
(호랑) 야, 이씨!
[호랑의 힘주는 신음]
(원석) 아, 씨, 양호랑, 너 진짜 미쳤어? 왜 그래!
결혼!
[애잔한 음악] [호랑이 흐느낀다]
(호랑) 나 결혼이 하고 싶단 말이야 이 똥멍청이야!
[호랑이 오열한다]
(호랑) [오열하며] 결혼...
(상구) 와, 진짜, 아니, 육탄전에서 순식간에 멜로로 바뀌는 거야
'결혼!'
'호랑아'
와, 이거는 반전이 아니라 완전 장르 파괴 수준이더라고
[상구의 탄성]
(수지) 마 대표님 연애 많이 안 해 봤죠?
뭐요? 연애?
아, 나 또 어이가 없네?
오 대리님, 내 이름이 왜 마상구인지 알아요?
(상구) 내가 18살 이후로 내 연애에 마가 떠 본 적이 없어서
내 이름이 마상구
[상구의 웃음]
문자로 오다가다 끝나는 거 말고 진짜 연애
가족인지 친구인지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짜치고 질척대게
(수지) 그렇게 1년 이상 지내본 적 없죠?
아까 쟤네처럼
내가 네 다리인지 내 다리인지 그런 건 내가 많이 봤죠
[수지의 헛웃음]
아니, 그러는 사람은
그거 해 봤어요?
그 진짜 연애라는 거?
안 해요, 그런 거, 짜쳐서
난 남자랑 연애 안 해요
추억만 만들지
[잔잔한 음악]
전 이쪽에서 택시 타면 되는데 마 대표님은요?
[상구가 동전을 달칵달칵 넣는다]
[오락기 작동음] (수지) 뭐야, 왜 저래? 참
(수지) 안녕하세요
뭐예요?
우 대리 딸내미
저 안에서 울고 있길래 내가 구해 줬어
[헛웃음 치며] 뭔 소리야?
뭔 소리긴? 아주 그냥 붕어빵이구먼
[잔잔한 음악]
- 됐어요, 가져가세요 - (상구) 씁, 어허, 넣어 둬, 넣어 둬
아니, 남자랑 추억은 만든다며, 어?
이거 오늘 추억이니까 그냥 가져가요, 예?
아, 그리고 인간적으로
나 그거, 차단은 좀 풀어 주면 안 돼요?
아, 내가 이제 뻘 문자 안 보낼 테니까
예?
(상구) [차를 툭툭 치며] 자, 출발
(수지) 치
닮기는 개뿔
[살짝 웃는다]
[호랑이 흐느끼며 말한다]
(원석) 응, '지호도 결혼하고 회사 막내도 결혼하는데'
알았어, 알았어
랑아, 그만 울고 우선 자자, 응?
계속 울면 머리 아파, 응?
[호랑이 흐느낀다]
알았어, 응, 자자, 일단
알았어, 알았어, 자자
그만 울어
[잔잔한 음악]
울지 마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새가 짹짹 지저귄다]
- (지호) 일어나셨어요? - (세희) 네
(세희) 아침을 맛있게 차리셨네요
네, 아침밥을 꼭 먹는 스타일이라
그리고 결혼하고 첫날이기도 하고
네
(세희)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지호) 어, 드시고 가시지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입주한 첫날인데
(지호) 같이 먹으려고 많이 하기도 했고요
[옅은 한숨]
아...
그럼 조금만 먹겠습니다
[밝은 음악] 아, 네
잘 먹겠습니다
맛있습니다
네
알아요, 저 음식 잘하거든요
네, 정말 그렇네요
(세희) 좋은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지호) 라면 말고 이렇게 밥 먹는 거
처음이네요
우리
그렇네요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수지) 뭐 했어, 어제는?
(지호) 어제?
음, 집에 들어가서 씻고 축구 조금 보다가 잤지
축구? 둘이 같이?
아니, 어제는 좀 피곤해서 그냥 휴대폰으로 각자 방에서
각자 방?
너희 각방 써?
아...
각자 휴대폰, 각자 휴대폰으로 봤다고
[지호의 어색한 웃음]
(지호) 야, 이거 먹어 야, 이거 먹어 봐, 진짜 맛있다
됐어, 신혼이 먹어야지
힘쓸 일도 많을 텐데
언제가 제일 섹시해?
- 어? - (수지) 아, 신혼이잖아
막 시도 때도 없이 끓어오른다며, 신혼은?
안 그래, 무슨, 그런 거 없어
(수지) 지호
너희 혹시 섹스리스야?
아니야, 그런 건 또
(수지) 그런 것도 아니면 뭘 그렇게 말을 아껴?
나는 그동안 만났던 남자 썰이란 썰은 다 풀어 줬구먼
자기는 남편 얘기 하나도 안 해 주고
우리
라고 말할 때
[잔잔한 음악]
'우리'라고 말할 때가 참 좋아
그 사람이 '우리 집, 우리 일' 그렇게 말하면
되게 좋더라고, 난
(수지) 그러니까
'우리'라고 말하면 막 흥분된다는 거야?
[흥미로운 음악]
어? 그게 네 페티쉬야?
아, 그런 게 아니라...
(호랑) 지호 페티쉬가 뭔데?
아니, 페티쉬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면 막 흥분된대
[호랑의 놀라는 신음]
역시 작가는 페티쉬도 문학적이네
- '우리' - '우리'
[호랑과 수지의 웃음]
(호랑) 근데 지호 너 결혼 첫날부터 어디 간다고 나온 거야?
아, 나 알바 구하러
뭐, 알바? 왜?
어?
아니, 일을 해야 월세도...
아니, 생활비도 내고 휴대폰 요금도 내고 그러지
[호랑의 놀라는 신음]
(호랑) 야! 형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어, 아니, 왜...
[발랄한 음악]
아니, 결혼했는데 어떻게 알바를 나가게 할 수가 있어?
(수지) 야, 요새 세상에 어떻게 혼자 버냐?
넌 결혼하면 일 안 할 거야?
해야지
집안일
(호랑) 쯧, 애도 낳고 시월드도 봉양하고
야, 그것도 프로 의식으로 해야 되는 일이야
원석이는 뭐래?
(수지) 네 그 엽기적인 프러포즈에 답했냐?
답은 무슨? 자기가 답할 처지야?
여자가 먼저 결혼하자고 말하게 한 주제에
(호랑) 일어나니까 먼저 나가고 없더라
자기도 잘못한 건 아는 거지
호랑아
원석이가 너랑 결혼 생각 있는 건 맞아?
뭐?
그러니까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 있어?
둘의 결혼에 대해서
[피식 웃는다]
무슨 얘길 해?
우수지, 우리 7년 만났어
근데 자기가 결혼 생각 없으면 그게 사람이냐?
쓰레기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숨을 하 내쉰다]
너 결혼 그냥 해
야, 저런 인격체도 결혼하는데 네가 왜 못 하냐?
[익살스러운 효과음]
(원석) 아니, 저 형은 직장도 있고 집도 있잖아요
저는 결혼한다고 해도 어디서 살아요?
랑이 부모님한테 옥탑방 보여 드릴 수도 없고
그 투자는 아직이야?
뭐, 이따 만나기로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원석) 뭐, 이러다 간만 보고 접는 건 아닌지
(상구) 저, 이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저기...
그냥 형 회사 들어올래?
아니, 너도 엄연히 너희 애플 회사 대표인 거 아는데
그래도 뭐, 어디 소속이 돼 있어야 결혼하기가 좀 편하지
말씀은 고마운데 그래도 하던 건 끝장을 봐야죠
(원석) 제가 투자한 시간도 있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이 뭔지 잘 모르겠고요
[잔잔한 음악] [원석의 답답한 한숨]
형은 알아요, 결혼?
(상구) 어?
씁, 글쎄?
근데 좋은 거 아닐까?
하나보다는 둘이 낫잖아
내가 뭘 해도 항상 이해해 주는 사람
언제나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닐까, 그런 거?
갑자기 왜 그래요? 왜 이렇게 느끼해졌대?
씁, 요새 그런 사람이 좀 있나?
(상구) 어마어마하지! 자식아
[상구의 웃음]
남 수석! 결혼이 뭐예요?
결혼이 뭡니까? 유부남!
결혼하니까 좋아요, 아저씨?
[긴장되는 음악] [한숨]
내가 일할 때 말 걸지 말랬지?
너 때문에 로직이 다 흐트러졌잖아
그래, 친구
그리고 사적인 이야기 하지 마 회사에서
오케이
허, 사람이라는 게 참 눈으로도 침을 뱉을 수 있네요, 형
(상구) 씨, 쯧
연대 의식이라고는 없는 새끼야
저런 놈도 결혼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냐?
[날카로운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카페 주인) 엄청 동안이시네요? [지호가 살짝 웃는다]
보기보다는 나이가...
뭐, 시험 준비해요?
(지호)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잠깐 좀 쉬고 있어요
아, 그 나이에? 음...
작가를 했어요?
아, 드라마 보조 작가 일을 좀
보조 작가?
씁, 어, 아, 그런 것도 있어요?
[카페 주인의 멋쩍은 웃음]
(카페 주인) 음, 씁, 우리 가게는 좀 어렵겠어요
사실 20대 친구들을 좀 구하고 있어서
어, 미안해요
아, 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욜로 카페"
(사장) 아, 큰일 났네, 씨
(지호) 아, 저 여기 알바...
(사장) 복남아, 복남아!
아, 어딜 갔어? 이놈의 새끼, 쯧
[사장의 거친 숨소리]
알바 구하러 왔어요?
- 아, 네 - (손님) 사장님
(사장) 아, 아, 예, 잠시만요
아, 바빠 죽겠는데 어딜 간 거야?
저기, 요 앞에 가서 아, 복남이 좀 찾아 줄래요?
[흥미진진한 음악] 어, 복남이가 누구...
우리 집 애인데 내가 주방에 있는 사이에 나가 버렸나 봐
목줄로 묶어 놓든가 해야지, 씨, 쯧
혼자 나간 거예요?
그 생긴 게, 어, 여기 털이 갈색이고
(사장) 어, 복슬복슬하고 옷은 핑크색
걔가 구석을 좋아하거든 그런 데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예
아, 갈색에 복슬복슬 핑크색
(손님) 사장님, 여기 주문 안 받아요?
(사장) 딱 보면 그냥 이뻐요
부탁 좀 합시다, 예
예, 갑니다, 예, 잠시만요, 예
(지호) 복남아
복남아
복남아
아, 무슨 종인지를 안 물어봤네
씁, 갈색 푸들인가?
복남아 [개들이 왈왈 짖는다]
(지호) 복남아, 복남아 복남아, 복남아, 복남아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지호) 복남아
복남아
(남자) 뭐 찾아요?
(지호) 아...
요 앞 가게에서 키우는 강아지인데 주인 없이 혼자 나갔나 봐요
이름이 복남이라고
아, 복남이?
혹시 보셨어요?
곱슬곱슬한 갈색 털에
[익살스러운 음악]
핑크색 옷 입은
[반짝이는 효과음]
그냥 딱 보면 이쁜...
아, 이쁘대요?
(지호) 네, 아마도요?
[남자가 숨을 씁 들이켠다]
(남자) 아! [익살스러운 효과음]
보셨어요?
아니요
[살짝 웃는다]
(지호) 그럼...
(남자) 저기요
번호 좀 주세요
왜요?
개 찾으면 연락 줄게요 그럼 번호가 있어야지
아, 네
[휴대전화 조작음]
(지호) 여기
(남자) 씁, 이름만 봐서는 이쁠 것 같지는 않은데
복남이
[살짝 웃는다]
근데 내가 번호를 왜...
주인도 아닌데
[사장이 입바람을 후 분다]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사장) 아, 보자
아유, 어서 와요
- (지호) 아, 어떡하죠? - (사장) 네?
못 찾았어요, 복남이
자기 발로 들어왔어요, 좀 전에 고마워요
그래요? [사장의 웃음]
아, 다행이다
(지호) 어, 근데 어디...
(사장) 아, 앉아요, 앉아
- (사장) 알바 구한댔죠? - (지호) 아, 네
(사장) 그, 복남이 찾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요
애가 걸핏하면 나가 싸돌아다녀서
어, 근데 이름을 참 잘 지으셨네요, 복남
- (사장) 이력서 가져왔어요? - (지호) 아, 네, 그럼요 [잔잔한 음악]
[사장의 옅은 탄성]
[살짝 웃는다] [반짝이는 효과음]
"복남"
[익살스러운 음악]
(보미) 씁, 맞다, 아까 박 대리라는 사람이
오늘 자기 회사 회식한다고 전화 왔었는데
(상구) 자식들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거 뻔한 거 아니야
자기들 회식하는데 나보고 와 갖고 돈 내라는 거 아니야
박 대리? 그거 휘닉스 박 대리지? 그놈의 새끼, 그거
(보미) 아니요, HK의 박 대리요
(상구) HK?
아, 거기 회식을 하는구나?
어디서 몇 시에 어떻게...
메신저로 보내 놨어요
그래?
씁, 근데 왜 맨날 나만, 그
솔선수범하는 듯한 이 무거운 기분은 뭐지?
(상구)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이 무게감은 네가 짊어져야 되는 거 아니...
어? 세희 님 부인이다
(상구) 어? 제수씨
- (상구) 어, 안녕하세요 - (지호) 어, 안녕하세요
(상구) 아, 여기 어쩐 일이세요?
아, 세희 보러 오셨구나?
어, 아니요, 저는 근처에 일 좀 보러 나왔다가 어떻게...
아, 잘됐다
우리, 저, 간식 타임인데 같이 가서 드세요
아니에요, 저는 집에 가야죠
아이, 같이 가서 드시면 좋은데, 왜?
[살짝 웃는다]
[밝은 음악]
(상구) 제수씨, 편하게 들어오세요 [지호가 살짝 웃는다]
여기 저희 사무실 처음 와 보시죠?
- (지호) 네 - (상구) 어때요? [상구의 웃음]
(지호) 아, 너무 좋네요
(상구) 예, 하여튼 신경 좀 썼어요
[지호의 웃음]
아, 세희는 지금 회의 중인데 곧 끝날 거예요
아, 여기가 남 수석 자리거든요
둘러보시고요 저는 요것 좀 준비하고 있을게요
- (지호) 네 - (상구) 제수씨, 파이팅! [지호의 웃음]
(상구) [웃으며] 아, 너무 좋아!
[살짝 웃는다]
(세희) 지난주에는 분명히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최종 시안 수정 사항 없냐고 여쭤봤었는데요, 두 번씩이나
아, 그게...
(직원1) 아, 이게 아무래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라...
그런 이해관계까지 제가 일일이 다 알아야 합니까?
그 문제는 용빈 님께서 사전에 조율하셨어야죠
(직원1) 예, 뭐, 그렇기는 한데...
앞으로 이렇게 우선순위가 낮은 일로
제 작업 흐름을 깨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잔잔한 음악]
(상구) 자, 많이들 먹어
(직원들) 잘 먹겠습니다!
(상구) 잘 먹기는 뭐, 법카로 다...
[직원들의 웃음]
(직원2) 이거 지금 홀로그램 아니죠?
제가 살아생전에 세희 님의 부인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직원들의 웃음]
(상구) 오버는, 아유
(보미) 저 업무상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죠?
(지호) 네? 저... [카메라 셔터음]
(상구) 아, 이쁘다
(지호) 근데 제, 제 사진은 왜 찍으시...
세희 님 이상형이시잖아요 저희 데이터에 반영하려고요
이, 이상형요?
(보미) 대표님한테 그러셨다는데요?
이뻐서 결혼하는 거라고, 맞죠? [밝은 음악]
(상구) 아니, 나는 남 수석이
여성에게 이런 화려한 부사를 쓰는 건 처음 들었어
'엄청'
'엄청 예뻐' 이랬다니까?
[직원들의 탄성]
(직원3) 의외네?
(상구) 아, 제수씨 오니까 너무 좋아요
우리가 언제 남 수석을 이렇게 놀려 보겠어?
[직원들의 웃음] (직원4) 그러니까요
(직원2) 이제 자주 놀러 오세요, 형수님
[지호의 웃음] [직원들이 시끌벅적하다]
(상구) 제수씨, 이거 하나 더 드세요
- (지호) 아, 네 - (보미) 으, 더럽게 손댄 걸 [상구의 멋쩍은 신음]
(보미) 이거 드세요 [지호의 웃음]
(지호) 감사합니다
- (직원4) 많이 드세요 - (직원5)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직원들이 시끌벅적하다]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박 대리) 자, 자, 우리 파도 한번 타자, 파도
자, 나부터 오른쪽으로 도는 거야
[박 대리의 시원한 숨소리]
[수지의 시원한 숨소리]
(수지) 이제 일어날까요?
(박 대리) 어? 아니야, 아니야 조금만 더 있어 봐
씨, 왜 안 와? 씨
어? 마 대표님!
마 대표님,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상구) 예, 아이고
- (박 대리) 아유, 먼 길 오셨어 - (상구) 아유, 예, 잘 지내셨죠?
(박 대리) 아, 그럼요
(상구) 아니, 또, 오늘 또 무슨 팀 회식이에요?
(박 대리) 아, 아니, 아니, 신입들 OJT 마지막 날이라
술 한잔 사 주려고 모였지
(상구) 아유, 반갑습니다 [저마다 인사한다]
(박 대리) 자, 여기는 우리 결말애 마상구 대표님, 박수
(직원들) 박수!
저는 대표 마상구
소개팅은 결말애, 파이팅!
(직원들) 파이팅! [상구의 만족스러운 신음]
(상구) 아유, 한잔 먹자
(박 대리) 아, 그럼 우리 마 대표도 왔는데 자리를 옮기자
(상구) 아, 요 앞에 육횟집으로 가시죠
(박 대리) 육회, 육회 좋아, 육회 먹으러 가자
- (상구) 계산할게요 - (가게 직원) 네
- (수지) 이걸로요 - (가게 직원) 아, 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내가 계산할 건데
왜 그쪽이 내요? 우리가 마신 술인데
(수지) 영수증 주세요
(가게 직원) 네, 20만 6천 원입니다 [상구의 한숨]
여기 사인 좀 부탁드릴게요
(수지) 돈 잘 버시는 건 알겠는데 갑질 받아 주는 데에는 쓰지 마세요
그럴 돈 있으면
인형 뽑기나 더 하시든가
[잔잔한 음악] (가게 직원) 여기요
(수지) 수고하세요
(가게 직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허, 참
저 여자 뭐야?
뭐
매력 발산 하는 거야?
사람 설레게? 참
아, 카드, 수고하세요
(상구)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마다 인사한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박 대리의 시원한 숨소리]
(박 대리) 야, 자, 자, 자, 눌렀어, 눌렀어 얼른 확인해 봐, 확인
- (직원6) 예! - (박 대리) 확인해 봐
(직원6) 자, 대리님, 이제 친구입니다
[직원들의 탄성] 어이, 박 대리
[직원6의 당황한 신음] (박 대리) 이 새끼, 진짜 친구인 줄 아나, 어?
[직원들의 웃음]
[박 대리의 못마땅한 신음] - (직원7) 어, 부럽다 - (직원8) 아, 저도 해 주세요
- (박 대리) 우 대리 - (수지) 네?
아, 왜 내 친추 안 받아 줬어? 2주는 된 거 같은데
[웃으며] 아, 그래요?
몰랐어요
아씨, 지금 확인해 봐
나중에요
왜? 유부남이랑은 친구 안 해?
아유,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박 대리, 아, 저도 얼마 전에 직원한테 제대로 까였어요
'아니, 무슨 대표 따위가 친구 신청을 하고 그래요!'
[직원들의 웃음] [저마다 말한다]
(상구) 그래서 요즘에는 그, 회사 문화가 그런가 봐요
친구 신청 회사 사람들끼리 받지도 하지도 말자
그 직원 여자죠?
예, 예, 그렇죠, 네
(박 대리) 그럼 그렇지
꼭 보면 여자애들 그래요, 어?
그런 경우는 딱 하나다?
남친이랑 휴가 때 찍은 사진 겁나 많은 거지
그런 게 아니면 안 받아 줄 이유가 뭐야, 도대체?
[저마다 호응한다] (직원7) 이유 없어요
(수지) 아유, 알겠어요
예? 친추 받을게요, 됐죠?
[직원들의 탄성]
(박 대리) 역시 우리 우 대리는 완전 쿨해, 쿨해, 쿨해, 쿨해, 응?
대신 호텔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은 지우기 없기다?
(수지) '좋아요'나 누르지 마세요 [직원6의 헛기침]
소름 돋으니까
[직원들의 탄성]
(박 대리) 한잔해, 한잔
내가 누를 거야, 누를 거야 누를 거야, 누를 거야
[쓸쓸한 음악]
- (박 대리) 아, 좀 더 따 봐 - (직원8) 네
(박 대리) 없잖아, 술 [수지의 한숨]
담배?
왜 그래요?
왜 저딴 개소리 듣고도 참고 있냐고요
[기가 찬 숨소리]
저기요, 마 대표님, 자중하시죠
아니, 내 앞에선 이렇게 똑 부러지면서
저 안에 들어가서는 허허실실 왜 그러지?
[수지의 기가 찬 숨소리] (상구) 저 사람들 앞에서는 모지랭이야?
야, 넌 대표시라 잘 모르겠지만
(수지) 나 같은 월급쟁이는 회식도 회사 생활의 연장선이거든?
저기서 대리끼리 싸우면 신입 애들 앞에서 퍽이나 그림 좋겠다
그러니까 더 제대로 까야지 후배들 앞이니까, 어?
저딴 짓거리 못 하게 알려 줘야지!
내가 왜!
네가 대기업에서 여자로 살아 봤어?
(수지) 별거 아닌 걸로 시끄러워지면 결국 입방아에 오르는 건 나야
[잔잔한 음악]
그러니까 남의 직원한테 신경 끄시죠, 마 대표님
[한숨]
(지호) 마 대표님은 얘기해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으신 거 같아요
(세희) 그렇습니까?
아니, 아까 보미 씨 표정 보셨어요?
마 대표님이 샌드위치 숨겼을 때
[지호의 웃음]
(지호) 보미 씨가 은근히 또 귀여운 면이 있으신 거 같더라고요
(세희) 그렇군요
그거 아세요?
이렇게 집에 같이 들어가는 거
처음이에요, 우리
[잔잔한 음악]
그런가요?
서울 살면서
다른 때는 다 괜찮은데
이상하게 집에 혼자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싫더라고요
(지호)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막연하게 상상했었거든요
'결혼하면 누군가와 함께 집에 가겠구나'
'그럼 참 좋겠다'
네
[한숨]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지호) 우리야
[지호의 힘주는 신음]
혼자 심심했지?
[지호가 스위치를 탁 켠다]
아, 제가 얘 이름 지어 줬어요
'우리'라고
아니, 얘도 이름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지호) 어,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계속 부르는 건 좀 뭐랄까?
엄마가 저한테
'영장류, 밥 먹어' 하는 거랑 비슷하잖아요
[지호가 살짝 웃는다]
마음에 안 드세요?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세희가 사료를 차르륵 붓는다] [고양이 울음]
조금 불편합니다
불편요?
네
제 고양이인데 다른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건 좀
불편하죠
아
그렇죠
그러실 수 있죠
(지호) 어, 그럼
제가 오늘
회사에 갔던 것도
불편하셨겠네요?
네, 사실은 좀 그랬습니다
[잔잔한 음악] 네
그렇죠?
어쩔 수 없이 결혼의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세희)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 이상을 요구받는 건
사실 좀 많이 불편합니다
남들 앞에서 부부 관계를 연출해야 하는 오늘 같은 상황들은
되도록 좀 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래야죠
그게 맞는 거죠
그렇죠
그럴게요, 앞으로는
(세희) 그럼... [고양이 울음]
발톱 깎여야 해서
아, 네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풀벌레 울음]
(수지) 호랑아, 원석이가 너랑 결혼 생각 있는 건 맞아?
그러니까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 있어?
둘의 결혼에 대해서
[한숨]
[발소리가 들린다]
(호랑) 왔어?
(원석) 아, 너무 피곤하다, 진짜, 어휴
(호랑) 오늘 투자자 미팅 있었댔지?
고생했어
(원석) 어, 나 오늘 완전 고생했어
아니, 무슨 개나 소나 다 스티브 잡스야
다 차고에서부터 시작하래
뭐, 여기가 미국이야?
차도 없는데 차고가 어디 있어, 씨
아, 편하다
석아
(원석) 응?
우리 결혼 말이야
(원석) 응
네 생각은 어때?
내 생각?
(호랑) 응
정식으로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네 생각
결혼하고 싶은 거야, 너도?
그게
[한숨]
사실은 아직 잘 모르겠어
[잔잔한 음악]
모르겠어?
어, 그러니까 나 너 너무 사랑하는데
(원석) 그래서 항상 같이 있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같이 사는 건데
근데
결혼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사랑하잖아, 나
당연하지, 나 너 없으면 못 사는 거 너도 알잖아
근데 사랑한다고 결혼을 하는 건지는...
어?
아이도 낳고 책임도 지는 거잖아, 결혼은
(원석) 근데 지금은 내 투자 하나도 성사 못 시키고 있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
[호랑의 쓴웃음]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넌
(원석) 응
그래서 요즘 생각이 많아
고민도 많이 되고
랑아, 혹시 실망했어?
아, 아니
고민할 수도 있지
연애랑 결혼은 또 다른 거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이게 참 어렵다
(원석) 랑아, 난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사랑이랑 결혼이랑 과연 같은 걸까?
[원석의 한숨] [잔잔한 음악]
(지호) 비운의 88년생들
[한숨]
(지호) 대한민국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태어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세대
(지호) 풍요와 빈곤을 동시에 맛본 세대
그래서 우리는
비운의 88년생이라 불린다
우리에게는 결혼도 연애도 우리도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휴대전화 진동음]
(상구)
[살짝 웃는다]
(수지) 아니에요
(지호) 유대와 낭만이라는 평범함도
[수지의 한숨]
비용과 에너지가 되어 버렸다
(지호) 그래서
잠시 착각했다
같이 있어 줄게요
이제 지호 씨만의 일은 아니죠
우리 일이지
우리 일요?
네, 우리 일이죠
(지호) 당신의 그 말에
나도 평범함을 가진 줄 알고
나에게도
'우리'가 생긴 줄 알고
[쓰레기통이 달칵 열린다]
잠시
기뻤다
오늘도 아침을 맛있게 차리셨네요
(지호) 어제는
제가 확실히 좀 오버가 심했습니다
네?
아, 네, 뭐, 괜찮습...
(지호) 제가 일을 그만두고 자존감이 좀 낮아져서 그랬나 봐요
죄송해요, 폐 끼쳐서
[멋쩍은 숨소리]
사실
'우리'라는 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봤거든요
'우리 집, 우리 동네'
그런 말 요즘 듣기 힘든 말이잖아요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낀 게 너무 간만이라
제가 좀 오버했어요
집주인님이랑 저랑
진짜 우리라고
착각했나 봐요
그러니까 이제 쉽게
'우리'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오해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쓸쓸한 음악]
[밥솥을 달칵 연다]
(지호) 나는 내가 지금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다
제 수저 좀
아, 네
(지호) 나 혼자 착각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쪽팔려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복남) 윤지호 씨?
네, 누구세요?
(복남) 나예요, 골목길
골목길?
[생각난 숨소리]
아, 복남이 찾을 때 그 골목길
[고양이 울음] (복남) 그래요, 복남이
(지호) 아, 근데 웬일이에요?
(복남) 아,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 (복남) 지금 옆에 종이 있어요? - (지호) 종이?
네, 있어요
(복남) 그럼 펜은요?
(지호) 어, 펜도 있어요
(복남) 그럼 남자 친구는요?
남자 친...
[잔잔한 음악]
- 네? - (복남) 남자 친구도 있어요?
(지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남자 친구
(지호) 당신에게 내가
없어요, 그런 거
(지호) 상처 주고 싶어졌다는 거
우리의 중력이
깨졌다 [밝은 음악]
(지호) 만난 지 첫날부터 막...
(세희) 만난 지 첫날부터 많이 친해지셨나 보네요
(보미) 질투하셨잖아요, 아까 내내 [세희의 헛웃음]
아닌데요?
(세희) 뭐죠, 지금 그 부적절한 태도는?
(지호) 혹시 뭐, 저한테 화나는 일 있으세요?
제가 왜?
(호랑) 형부랑은 완전 반대 스타일 아니냐?
(지호) 너까지 왜 이래?
(호랑) 갑자기 내 경험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드네 [원석의 아파하는 신음]
(수지) 계속 같이 있으면 마 대표님 덮칠 거 같아서요
[상구의 웃음]
이걸 왜 두 개 다 해?
(호랑) 비혼주의 할 거니까 철저하게
(수지) 한번 만나 보는 것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은데?
(세희) 부인의 사회생활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호랑) 네 남편 어떡해?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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