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1
(지호) 저희 집 이번 주에 김장해요
[밝은 음악] 집이 남해시잖아요
근데 제가 어떻게...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고요
일시랑 장소는 문자로 보낼게요
[한숨]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열린다]
(세희) 음,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흥미로운 음악]
그건 제 홍삼이고요
(지호) 이게 거기 거
아, 네
(세희) 벌써 나가십니까?
네, 아침 먹기로 했거든요, 복남이랑
카페에서 같이
네
(지호) 아
저희 월세 계약서
아니, 월세 결혼 계약서 가지고 나가요
엊그제 그쪽 어머니가 서랍을 여기저기 다 열어 보셔서
카페에 두려고요
그게 안전할 거 같아서
아, 이제 오실 일 없을 겁니다
(세희) 제가 확실히 얘기했고 또 비번도...
네 [흥미진진한 음악]
모자간의 얘기는 제가 알 바가 아니고요
(지호) 혹시 모르니까 주인분도 회사에 두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계약서 들키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네
그럼
[한숨]
잘했어, 윤지호
완벽했어, 전혀 동요가 없었어
포커페이스
단단히 삐지셨네 [고양이 울음]
그렇지?
[한숨]
[잔잔한 음악] [고양이 울음]
[컵을 탁 내려놓는다]
[고양이 울음]
[고양이 울음] 응?
(세희) 아이, 거긴 또 왜 들어갔어?
[고양이 울음] [세희의 힘주는 신음]
나가자
(보미) 헐, 대놓고 네거티브 전략이네요?
우리 '결혼 말고 연애'를 저격한 이름 같은데요?
(상구) 문제는 저게 먹혔다는 거야
이미 우리 앱 스토어 순위를 앞질렀어 출시 한 달 만에
(원석) 이 애플 보니까 부모님 직업란이랑 연봉 기입란까지 있네요?
(상구) 그게 의외로 보수적인 유저층에 먹힌 거지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관계를 원하거든
[세희의 한숨] [익살스러운 효과음]
남 수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비상사태를?
디자인 콘셉트가
[익살스러운 음악]
훌륭하네요
(세희) 저 이벤트 배너를 프로필 설명 하단에 배치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씁, 음...
남 수석님
(상구) 지금 디자이너로서의 감상을 얘기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좀
[익살스러운 효과음]
(원석) 이참에 저희도 콘셉트를 좀 바꿔야 되는 거 아닐까요?
연애 시장과 결혼 시장이 다르다는 전제 자체가 좀 위험한 거 같아요
[수긍하는 신음]
애초에 애플 이름부터가 잘못됐어요 '결혼 말고 연애'라니요
이 애플 이름 누가 지은 거예요?
[흥미진진한 음악]
[헛기침]
[상구의 한숨]
[헛웃음]
아니, 그런 분이 유일하게 결혼을 하셨네요
자, 그럼 콘셉트 회의 내일 다시 하는 걸로 하고
(상구) 지금처럼 우리가
[지직거리는 효과음] 연애만을 강조한 콘셉트로 갈지
아니면 결혼까지 아우르는 콘셉트로 바꿀지
내일 다시 생각들, 고민들 많이 해서 다시 만납시다, 오케이?
(직원들) 네
(세희) 오늘 왜 오신 겁니까?
그럼 적당히 자르시든가요
일이 있다고 하시든가
수비 잘하시는 분이 왜...
(세희) 지호 씨, 저희 계약서에는 없었지만
오늘 겪은 부당 노동에 대해서는
이걸로 갈음했으면 합니다
[지호의 기가 찬 웃음]
[지호의 한숨]
(지호) 자기가 무슨 원빈이야, 어?
'얼마면 되니'야, 뭐야?
뭔 일 있어, 집주인이랑?
야, 그걸 언제 또
(복남) 읽어 보니 꽤 괜찮네
나도 나중에 결혼은 계약 결혼으로 할까 봐
(지호) 치, 집도 있고 오토바이도 있는 애가 뭐 하러?
집 있고 차 있어도 사람이 있는 거랑은 완전 다르지
(복남) 이젠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외롭고
누나는 그래도 집에 남편이 같이 있어서 덜 외로울 거 아니야
[헛웃음]
야, 남편이 왜 남편인 줄 알아?
남의 편이라서 남편인 거야
(지호) 옛말에 죽 먹은 설거지는 딸 시키고
비빔 그릇 설거지는 며느리 시킨다고
허, 딸 같은 며느리?
아니, 그럴 거면 수양딸을 삼으시지 왜 며느리를 삼으셨대?
아유, 참
왜 그래?
누나, 지금 내가 아는 사람이랑 굉장히 많이 닮았어
누구?
- 우리 옆집 아줌마 - (지호) 어?
그 아줌마 맨날 [익살스러운 음악]
딱 이런 얼굴로 남편 욕하는데
어쩜 표정까지 똑같냐?
[복남의 한숨]
(복남)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풋풋했는데
누나한테서 옆집 아줌마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쯧, 나는 그냥 안 해야겠다, 결혼
[피식 웃는다]
[한숨]
(원석) 아니, 이게 애초에 설정값이 잘못됐다니까요
'결혼 말고 연애'라니요? 이름부터 정이 없잖아요, 정이
너무 비관적이에요
[저마다 호응한다] (직원1) 그러니까, 조금 극단적이긴 했었어
(원석) 그러니까 이제 우리 애플도
결혼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콘셉트로 가는 게 맞는다는 거죠
[직원들의 박수와 탄성]
[저마다 말한다]
[상구의 웃음]
(상구) 여러분, 이것 좀 보세요
이 비상사태 평일 주간에 누군가 월차 신청을 했네요
누군지 한번 우리가 알아맞혀 볼까요?
(직원1) 나 아니야
(상구) '휴가 신청서, 소속 디자인 팀 성명 남세희'
남 수석님이시네요
사적인 일이 좀 있어서 부득이하게 평일에
어느 회사원이 부득이하게 평일에 뭔 놈의 사적인 일이 있을까요?
김장하러 가야 합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보미) 헐
(상구) 김장?
김장? 김장이 뭐죠?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된 건가요?
(보미) 그, 김치 담그는 김장요?
네, 그 김장요
[흥미진진한 음악] (원석) 아니, 김장을
어디까지 가서 담그시길래 월차까지
남해요, 아내 집
아니, 처갓집에 김장하러 가야 합니다
(세희) 저 올해 월차 낸 적 한 번도 없으니까 빠른 결재 부탁드립니다
(직원2) 우리 애플 이름은 그냥 '결혼 말고 연애'가 낫겠어
[직원2의 한숨] (직원3) 그래
(직원4) 지금 이름 딱 좋구먼
- (직원5) 그래 - (직원1) 아, 무슨 결혼이야, 우리가 [직원들의 웃음]
(직원1) 결혼은 무슨
결혼이 저렇게 무서운 겁니다, 원석 님
[밝은 음악]
[뱃고동 효과음] 김장?
[갈매기 울음 효과음]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랑의 한숨]
[휴대전화 알림음]
(직원6) 어? 매니저님도 이 앱 까셨네요, 결말애
(호랑) [픽 웃으며] 아니, 남친이 이 회사 다니거든
그래서 그냥 한번 깔아 본 거야
(직원7) 진짜요?
오, 하트 진짜 많이 받으셨네요?
(호랑) 뭘, 그냥 재미로 깐 건데
(직원8) 하긴, 이제 곧 유부녀 되시는데
아, 두 분 날은 잡으셨어요?
어?
어, 뭐, 곧, 아직 얘기 중이야
[옅은 웃음]
(호랑) 점심 예약 리스트들 체크들 했지?
(직원들) 네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원석) 여보세요?
예, 어머니
예, 예
아, 서울 오셨어요?
예?
회사 앞요?
아, 예, 지금 나갈게요, 예
[통화 종료음]
[문이 스르륵 열린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석) 랑이랑 저랑 같이 저녁이라도 하고 가시지
(호랑 모) 내려가서 아버지 밥 챙겨야지
[호랑 모가 살짝 웃는다]
버스 시간 조금 남아서 딸 대신 우리 사위 얼굴 보려고 왔지
사위요? [호랑 모가 픽 웃는다]
아, 사진 보니까 반지 알이 제법 크던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랑이한테 당연히 제가 그 정도는 해야죠
(호랑 모) 그래
내 딸이라서 하는 얘기인데
[함께 웃는다]
요즘 세상에 우리 호랑이만 한 애 또 없다
결혼하면 그냥 살림이며 그냥 내조며 아주 야무지게 잘할 애야
어릴 때부터 나 보고 배워 가지고
[호랑 모가 살짝 웃는다]
알고 있죠
(호랑 모) 어, 그러면
식은 언제쯤 할 생각이야?
원석이네 부모님은 뭐라셔?
그게, 어머니, 제가 아직 집에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빨리 말씀드려 너무 길게 끌어도 안 좋아
(호랑 모) 그, 랑이도 언제까지 오피스텔에서 수지랑 둘이 그렇게 지낼 거야?
네, 그렇죠
(호랑 모) 아, 석이 너는 아직 그 옥탑방에 사는 거니?
네, 저는 아직 거기서 지내고 있어요
거기 온수는 나오니? 방풍은 돼?
아, 그럼요, 잘돼요
[웃음]
[발랄한 음악]
랑아, 무슨 내후년이야?
내후년에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해?
내년, 내후년에 왜 못 해? 그동안 모아 놓은 게 얼마인데
[안내 음성] 원하시는 거래의 버튼...
[기계 조작음] (호랑) 흠...
아니, 둘이서 50만 원씩 2년이나 모았는데
씁, 그러면 100만 원씩 24개월이니까 자그마치...
[안내 음성] 통장을 받으십시오
자그마치 엄청 많지
아, 어디다 벗어 뒀지?
아예 집에서 안 하고 왔나?
[휴대전화 진동음]
네, 박 대리님
(박 대리) 우 대리, 왜 안 와? 음식 나오는데
(수지) 아, 네, 갈게요
[통화 종료음]
아이씨
재킷만 안 벗으면 되지
(박 대리) 어유, 맛있다, 맛있어
(직원9) 후, 어유
(박 대리) 야,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어?
(직원9) 아유, 땀난다 [직원10의 시원한 신음]
- (박 대리) 아유, 덥네, 더워, 응? - (직원9) 아유
(박 대리) 아유, 우 대리, 안 더워?
어? 그거 벗고 먹지, 왜?
(수지) 아, 괜찮아요
[직원9의 시원한 숨소리]
[박 대리와 직원11의 놀라는 신음]
(박 대리) 어유, 어, 우 대리, 미안, 미안, 미안
어, 어, 미안, 미안, 미안
- (직원11) 대리님, 안 데셨어요? - (박 대리) 미, 미, 미끄러져 가지고
(박 대리) 야, 야, 물티슈, 물티슈
옷 줘, 줘, 줘 내, 내가 닦을게, 내가 닦을게
아, 미안해, 이게 미끄러져 가지고
[박 대리의 다급한 숨소리]
[어두운 음악]
[한숨]
(박 대리) 야, 내가 얘기했잖아, 안 한다고
안 하고 다닌다고 내가 얘기했잖아, 그렇지?
[흥얼거리며] 내놔, 내놔 5만 원씩, 5만 원씩 내놔, 내놔
(직원9) 아니, 근데 어떻게 브래지어를 안 하고 다니지?
요즘 그런 여자들 많아요?
그 정도면 B컵이죠?
(박 대리) B, B? 노, 노, 노
꽉 찬 A
어? 꽉 찬 A [직원10의 웃음]
(직원10)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박 대리) 나는, 어? 이렇게 딱 보면 딱 알아, 딱
- 어? 딱 알아 - (직원12) 에이
[기가 찬 숨소리] (박 대리) 아, 진짜 내가, 어?
결혼만 안 했으면 말이야
내가 우 대리랑, 어? 같이, 어? 밥 먹고 [비장한 음악]
[직원들의 웃음] 어? 할 거 하고, 내가, 응?
(직원12) 어? 우 대리님
(박 대리) 언제부터 있, 있었어?
(수지) 불 좀 줄래?
[담뱃불이 칙 탄다]
[수지가 숨을 씁 들이켠다]
(박 대리) [콜록거리며] 어유, 담배 피웠었구나?
많이 따셨어요?
(박 대리) 어?
제 노브라로 내기한 거
(박 대리) 어?
(수지) 제가 이래 봬도 꽉 찬 A컵이라 티가 좀 많이 났죠?
[수지가 숨을 씁 들이켠다]
박 대리님도 저랑 같은 사이즈인 거 같은데
운동해서 뺄 생각 없으시면 말하세요
제 거 빌려드릴 테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거두어, 의도를 밝히지 않은 그 시선
그런 거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도대체 결혼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상구) 너의 그 견고한 IT 세계에 김장과 월차가 어떻게 침투했을까?
그 어떤 루트로?
뭐,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지
시월드가 시작됐고 그걸 내가 똑같이 노동으로 갚을 예정이야
(세희) 우리 집 제사에 불려 갔거든
지호 씨가
아...
[엘리베이터 도착음]
(상구) 아이 갓 잇, 예
너 병문이라고 알지? 엄병문이
걔는 명절 끝나고 나면 한 달 동안 마누라 뒤치다꺼리해야 된대
왜냐하면 엄씨 성을 가진 인간들은 쳐다보기도 싫대
그래서 쫓겨나면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자기네 부모 오면 또 '에헴, 여봐라' 하면서 가장 행세하고
나는 진짜 이, 이게 뭔지 모르겠네, 난
[세희의 코웃음]
(세희) 그게 바로 한국 부모들이 만들어 낸 사회의 병폐지
[흥미진진한 음악] 남의 자식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육체노동을 착취하고
정신노동을 강요하고
(세희) 그걸 다시 자기 자식의 부부 싸움 별거, 이혼으로 돌려받고
제정신을 가진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제도야, 결혼은
그러니까 절...
근데 왜 너 같은 놈이 그 제도를 선택했을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상구) 새삼 막 놀랍네, 어?
- (세희) 흠... - (상구) 좌 대출 우 고양이인 놈이
(상구) 그런 불합리한 제도를 왜 선택했을까?
뭐, 아내가 고양이 집사라도 되나? [고양이 울음 효과음]
아니면 뭐, 아내한테 월세를 받는 게 아니라면
내가 새삼 의문점이 들어서 그래
예뻐
[익살스러운 음악] 아무리 예뻐도 그렇지
(세희) 잊었어? 예쁘다고
남자는 어디에 약한 동물이다?
시각
그럼 예쁜 여자가 눈앞에 있다면 본다? 안 본다?
- 본다 - (세희) 그럼 그 예쁜 여자를
매일 볼 수 있다면 결혼한다? 안 한다?
무조건 한다 [늑대 울음 효과음]
그렇지
(세희) 그럼 또 이해되지?
[상구의 옅은 탄성]
[세희의 한숨]
[세희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수지)
[흥미진진한 음악] (수지)
[픽 웃는다]
야, 오늘 먼저 들어가, 내일 보자
마 대표, 오늘 중요한 미팅 있다고...
더 중요한 미팅이 지금 생겼어
자, 야, 옆문 저기인가?
(세희) 아니
옆문은 여기
(상구) 아, 거기야? 나중에 봐
[상구와 세희의 놀란 신음]
아, 미안, 미안, 미안
아, 참, 바빠 죽겠는데
아, 미안해, 내일 봐, 나중에 봐
[세희의 한숨]
[한숨]
[한숨]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상구) 짜잔
안녕, 우리 아기?
[상구의 놀라는 신음] [잔잔한 음악]
알았어, 알았으니까 우리 뭐, 밥이라도 먹고 데이트하자
아, 말했잖아 나 오늘 욕구 불만이라고, 응?
[입소리가 쪽 난다]
왜?
너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구나?
아니, 뭔 일?
[숨을 씁 들이켠다]
아, 왜 이래? 진짜 아무 일 없었어
[밝은 음악]
말해, 아니, 말해 줘, 무슨 일 있었지?
(수지) 아, 그냥 짜증 나는 일이 좀 있었어
나 가지고 남직원들끼리 내기를 했더라고
(상구) 무슨 내기?
내가 노브라인지 아닌지로 내기했대, 5만 원
(상구) 뭐?
아, 나, 이 새끼들이 진짜
(수지) 아, 됐어, 내가 먼저 한 방 먹이고 왔으니까
어떻게?
박 대리 그 새끼 커피 잔에 담배꽁초를 요렇게 버리고 왔지
아, 나 이 새끼들 때문에 진짜 미치겠네
[수지의 웃음] (상구) 내가 진짜 돈 많이 벌어서
너희 회사 사 버릴 거야
그래서 그 직원 놈의 새끼들 평생 내 수드라로 평생 부려 먹을 거야
아니, 자식들, 내기할 걸 내기해야지
사람을 뭐,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떤 여자가 직장에 노브라로 다니냐고, 노브라로!
하, 참
나
(상구) 너?
나, 나 오늘 노브라였는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진짜?
[버스 문이 쓱 열린다]
[사람들이 저마다 말한다] [휴대전화 벨 소리]
(여자1) 아, 뭐, 왜!
지금 가고 있다고, 집에 [버스 문이 쓱 닫힌다]
[한숨]
저녁은 드셨습니까?
(여자1) 밥을 먹었겠어, 어? 이 시간에? [유쾌한 음악]
(지호) 아니요, 집에 가서 먹어야죠
저도 아직인데
밖에서 뭐라도 같이 드시겠습니까?
(여자1) [헛웃음 치며] 뭐, 외식?
(지호) 뭘 밖에서 먹어요 생활비 빠듯한 사람들끼리
집에서 그냥...
(여자1) 아,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그냥 대충 꺼내 가지고
알아서 처먹어! 쯧 [익살스러운 음악]
어제 자기가 한 짓을 생각을 해야지 지금 외식 소리가 나와?
아휴, 남편이 아니라 원수야, 원수, 그냥, 정말
아휴, 내가 결혼은 왜 해 가지고
(복남) 누나, 지금 내가 아는 사람이랑 굉장히 많이 닮았어
- 누구? - (복남) 우리 옆집 아줌마
- 어? - (복남) 그 아줌만 맨날
(복남) 딱 이런 얼굴로 남편 욕하는데
어쩜 표정까지 똑같냐?
(여자1) 뭐? '돈 벌어다 주면 됐지'?
참, 꼴랑 저기 생활비 몇 푼 쥐여 주면서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떨어요
아이고, 내가 더러워서 정말
아이고, 징그러워, 징그러워, 정말 [남자1의 못마땅한 신음]
(여자2) 부부 싸움... [여자1의 성난 숨소리]
[전자레인지 작동음]
[입바람을 후 분다]
(세희) 아, 저 내일 월차 냈습니다
아...
그래요?
네, 남해 집 주소 알려 주시면 김장 시간 맞춰서 가겠습니다
네, 보낼게요, 주소
저기
저는 내일 못 가요
(세희) 네, 알고 있습니다, 카페 나가셔야죠
저희 집 제사도 혼자 가셨으니
지호 씨네 김장도 저 혼자 가는 게 맞죠
6시간 노동 똑같이 잘 채우고 오겠습니다
[숨을 씁 들이켠다]
아, 그, 계약서는 회사에 잘 갖다 두셨어요?
(세희) 아, 아니요 가방에 넣고 다니고 있습니다
마 대표가 가끔씩 책상 서류를 뒤져 봐서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요
아, 그럼 안 되죠
마 대표님 아시면 큰일이죠
네, 그러면 안 되죠
그럼 수지 씨도 알게 될 테니까
네? [흥미로운 음악]
모르셨습니까?
마 대표랑 수지 씨랑 연애 관계 중인 거
사귄다고요?
아니, 어, 어쩌다가 마 대표님이랑 수지랑?
그러니까요, 인간이란 참으로 신기하죠
씁, 그렇게 안 어울리는데 어떻게 사귈 수가 있는 건지
흠...
(지호) 뭔 소리야?
우리도 결혼했는데
(세희) 흠...
[상구의 거친 숨소리]
노브라라니, 내 여친이 노브라라니
[익살스러운 음악]
[한숨]
남들이 본다고, 남들이
(상구) 너 사람들이 그거 모를 거 같지? 딱 보면 딱 알아요
아니, 보는 놈들이 잘못이지 내가 잘못이야?
보는 놈이 잘못이지 아주 잘못된 거지, 근데!
[상구의 한숨]
(상구) 너 솔직히 말해 봐
너 전에도 출근할 때 그런 적 있어? 없어?
뭐, 가끔?
외근할 때 풀었다가 깜빡할 때 있지
(상구) 오, 마이 갓
미쳤어, 진짜
(수지) 아니, 미쳤으면 홀딱 벗고 다녔겠지
[상구의 답답한 신음]
[유쾌한 음악] [상구가 절규한다]
(상구) 한마디를 안 져, 한마디를
날 좀 이해해 달라고 난 싫다고, 싫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
야, 우수지, 넌 지금 내 마음속의 소리가 안 들려?
여자 친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이 진실된 마음이?
글쎄?
왜 내 귀에는 본인의 소유욕을 애정으로 포장하면서
자기 합리화 하는 것처럼 들리지?
(상구) 왜, 왜 그게 그렇게 들리냐고!
[상구의 답답한 한숨]
이건 계약서랑 다르잖아
왜 남의 사생활을 터치해?
어, 너, 그래, 말 잘했다
네가 계약서에 뭐라고 썼는지 알지?
(상구) 자, 이게 사생활이야? 어?
[의미심장한 음악]
뭐야, 이 계약서? 계약서가 이상한데?
아, 이제 아주 발뺌하는 그런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어?
(상구) 자, 이거 보자
우리의 '2년제 입주 결혼 계약서'인데 [흥미진진한 음악]
이게 뭐야, 이게?
이, 이게 뭐야?
[픽 웃는다]
[물소리가 솨 난다]
(세희) 지호 씨 [지호의 놀라는 신음]
아이고,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게 뭐예요? '연애 계약서'?
[밝은 음악] 네, 마 대표랑 수지 씨의 연애에 대한 계약서인가 봅니다
(세희) 제가 뭐랬습니까 둘이 안 어울린다 그랬죠?
그리고 여기 좀 보십시오
수지 씨가 갑이고 마 대표가
을입니다
(지호) 헐, 진짜네?
얘도 참, 무슨 연애를 계약을 하고 해?
[세희의 웃음]
저희가 할 얘기는 아니네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근데 이거를 어떻게 갖고 계세요?
아, 아까 마 대표랑 부딪혔는데
그때 물건이 섞이면서 제가 가지고 온 거 같습니다
아, 섞여서
아니, 막, 저희 계약서랑 바뀌고 그런 거 아니죠?
[함께 웃는다]
[싸늘한 효과음]
네?
[천둥이 콰르릉 치는 효과음] [지호의 놀라는 신음]
[유쾌한 음악]
근데 얼마 안 됐는데 결혼을 한다고?
만난 지 한 두세 달 만에 막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근데 너 아까부터 왜 계속 남친을 집주인이라 그래?
[캑 기침하며] 내가 그랬어?
(호랑) 뭐, 알바? 왜?
어?
아니, 일을 해야 월세도...
아니, 생활비도 내고 휴대폰 요금도 내고 그러지
[한숨]
윤지호 이 또라이
[휴대전화 진동음]
(수지) 이 밤에 뭘 준다고?
(지호) 어...
그때 엄마가 보내 준 게장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준 건데 수지 너만 못 줬더라고
(수지) 응, 고마워
어머니한테 연락 한번 드려야겠다
잘 계시지?
(지호) 응, 그럼
(수지) 어디 안 좋은 데는 없으시고?
(지호) 응, 그럼
네가 월세 결혼 한 것도 아시고?
(지호) 응, 그러...
월세가 25만 원이데?
야, 요새 그런 방값이 어디 있냐?
수지야, 그게...
(수지) 2년 뒤 너만 괜찮다면 내가 거기 들어가도 돼?
네 남편 다음 부인으로
야
(수지) 뭐?
뭘 잘했다고
어휴, 미친년
(상구) 미친놈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하, 참
아니,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결혼을...
뭐, 인간의 삶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거니까
(상구) 아니, 어떻게 집 때문에
아니, 어떻게 월세 따위로!
[세희의 한숨] [잔잔한 음악]
(세희) 집 때문이라니
월세 따위라니
집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돈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나한테는 그냥 노는 방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방이었고 절실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유했을 뿐이야
적당한 제도를 이용해서
뭐, 나도 돈이 필요했고
[상구의 한숨]
지호 씨 보면서
그 친구 생각났던 거냐?
[한숨]
말 못 해서 미안해, 가짜 결혼인 거
(수지) 그럼, 당연히 말 못 하지 그걸 어떻게 얘기하냐?
그리고 네가 나한테 왜 미안해?
진짜 힘든 건 너인데
[지호가 살짝 웃는다]
진짜 괜찮아?
쯧, 그럼
이것도 내가 선택한 일인데
(지호) 나 결정까지 오래 걸려서 그렇지
한 번 선택한 일 후회 잘 안 하잖아
일이 아닌 거 같으니까 그렇지
(수지) 이 결혼이
너한테 일이 아닌 거 같으니까
지호 너, 남편, 아니
집주인 좋아하잖아
[잔잔한 음악]
(지호)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수지) 뭔 소리야?
(호랑) 에? 누구?
(지호)
처음부터는 아닌 거 같고
같이 살면서 좋아하게 된 거야?
쯧, 아니다
처음부터였나?
[살짝 웃는다]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는
그 사람은?
그 사람도 널 좋아해?
아니
몰라, 그 사람은
내가 자기 좋아하는지도
(지호) 마음에도 길이라는 게 있을 텐데
[잔잔한 음악]
(지호) 길이 있다면
그 길이 분명 시작된 곳도 있을 텐데
(원석) 랑아
랑아
짜잔
(호랑) [놀라며] 아, 만들었어?
(원석) 응 [호랑의 놀라는 신음]
우아, 나도 바로 입금할게, 50만 원
(호랑) 석아, 우리 약속한 대로 한 달에 50만 원씩 꼭 넣자
그리고 알차게 모아서 3년 만기 끝나면 더 좋은 데로 이사하기, 알았지?
알았어
(원석) 근데 우리 벌써 100만 원이나 모였다
우리 이러다가 마당 딸린 집 사는 거 아니야?
음, 난 아파트가 더 좋은데
음, 아파트 갈 거면
[호랑의 웃음]
(원석) 알았어, 아파트 가자 [함께 웃는다]
(호랑 모) 아유, 이제 안심이다
얘 낳고 키우려면 지금도 그렇게 빠른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너 우리 호랑이 고생시키면 안 된다
예, 어머니
그래
자
(호랑 모) 자, 취직 선물
회사 열심히 오래오래 다녀, 어?
다시는 뭐, 혼자 뭐 개발한다 뭐 한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알았지?
예, 감사합니다
그래
[함께 웃는다]
[한숨]
(지호) 마음이 시작된 곳이 있다면
분명 어디선가는
(지호) 만나야 하는 곳도
있을 텐데
랑아, 자?
[호랑의 옅은 신음]
(호랑) 응, 왔어?
늦었네?
음, 소주 냄새
좀 마셨어
랑아
우리 주말에 데이트 갈까?
데이트?
(원석) 응, 데이트
간만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아, 그리고 랑이 네가 보고 싶은 연극 있었댔잖아
내가 예매해 놓을게요
그래, 그러자
그래, 그러자
[잔잔한 음악]
(지호)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에서는
또 다른 길이 시작될 수 있을까?
(지호)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당신과 나의 길이 다른 것도
(지호) 우리의 길이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닌
당신 마음에
(세희)
(지호) 길이 없는 것
애초에 당신 마음으로 가는 길 같은 건
없는 걸까 봐
나는 그게 두렵다
(세희)
(지호)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음으로 가는 길은 몰라도
김장하러 가는 길은 아는 이 남자가
나는 좋아져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종수) 아, 그래?
아, 그거, 마, 김장하는 날에 막걸리 몇 병 갖고 되겠나, 어?
다라이에 통으로 사 온나, 통으로, 이
이, 그래, 알겄다, 어
그, 지석이랑 새아기랑 곧 도착한단다 [통화 종료음]
김장이 뭔 국가 행사라고
몸도 무거운 아를 오라 가라 쌓고, 참말로
지호는? 지호 언제 온다노?
지호가 여 올 시간이 어디 있노?
서울서도 먹고살기 바빠 죽겄구먼
아, 집에 있는 아가 뭐가 힘들다고, 어?
(종수) 시집갔으면 김장하는 법도 친정에서 배워 가야지
참말로, 참, 에이
[휴대전화 벨 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응, 지호가? 와?
어? 여 온다고?
(지호) 어, 이따 도우러 갈 거다
네가 평일에 우찌 올라고?
(지호) 아니, 내는 못 가고 있어 봐 봐라, 곧 도착할 기다
누가 온단 말이고?
[잔잔한 음악]
[바람이 쌩 들어온다]
(남자2) 어이, 추워, 문 닫아
[익살스러운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밝은 음악]
[강아지가 낑낑댄다]
[빨리 감기 효과음]
[휴대전화 경고음]
[안내 음성]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휴대전화 경고음] 어?
[안내 음성] 처가댁은 이 방향이 아닙니다
[힘겨운 탄성]
[안내 음성]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한숨]
[힘겨운 신음]
(여자3) 으쌰, 어휴 [저마다 힘준다]
(여자4) 니 진짜 손도 크다
우찌하려고 100포기를 샀노? 그, 일손도 모자란데
아따, 걱정 마라
느그 신랑들 보쌈 먹으러 오기 전까지 끝낸다
[여자들의 웃음]
근데 지호는 안 온다더나?
- (현자) 지호? - (여자4) 어
(현자) 맞는다, 지 대신 누가 온다 카던데?
(여자3) 누가?
(세희) 저...
몰라, 기다려 보라 카대
[여자들의 웃음]
(세희) [큰 목소리로] 저...
[멀리서 개가 짖는다]
안녕하십니까
어, 아이고
(현자) 아이고, 세희 씨가...
아니, 저, 남 서방이 우얀 일로?
- 네 - (여자3) 신랑인가 봐
[저마다 호응한다] (여자4) 잘생겼네
(여자5) 그러게, 진짜 잘생겼다 [여자들의 웃음]
(여자6) 멀쩡하게 생겼네
- (여자4) 니 신랑 해라 - (여자3) 내 거면 좋지
(여자4) 아이고, 야 [시끌벅적하다]
(여자4) 동네가 환해지네
[여자들의 웃음]
아, 저, 김장을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카면 저, 온다 카는 게
네, 바로 접니... [문이 달칵 열린다]
(종수) 누가 왔다고?
어, 우리 사우 [익살스러운 음악]
야! [사람들의 웃음]
[세희가 인사한다] (종수) 그래, 그래, 그래
그, 그, 웬일이고?
아, 그, 김장을 하러 왔습니다
김장?
네
(종수) 그, 잘 왔어, 잘 왔어, 들어와
[웃으며] 어, 들어온나, 어, 그래, 어
어여 온나, 어, 그래
그, 이따 김장 끝나면 그거 보쌈 해가 묵자, 응, 앉아라
아, 아닙니다
저는 보쌈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김장을 도우러 왔습니다
꼭 해야 합니다, 김장
(종수) 응?
(세희) 아, 사실은 지호 씨가 며칠 전에
저희 부모님 댁에서 제사 준비를 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에 상응하는 노동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종수) 아, 그게 뭔 소리고?
며느리가 제사 준비하러 가는 게 뭐, 당연한 기지
(현자) 응, 그랬나? 제사?
네
(종수) 아, 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여 앉아라
나랑 낮술이나 한잔하자
- (세희) 아이, 그... - (현자) 옷이 그래가 김장하겄나?
할라믄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는데?
내 작업복 줄까?
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현자) 그래 - (세희) 네
[익살스러운 음악]
[종수가 숨을 씁 들이켠다] [문이 달칵 열린다]
(종수) 허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진동음]
(세희)
(복남) 뭔 일 있어?
(지호) [헛기침하며] 어? 아니야
(복남) 어? 수지 누나다
[복남이 살짝 웃는다]
와, 오늘도 이쁘네, 저 누나
완전 내 스타일, 쯧
왜?
아니
되게 빨리 바뀌네, 좋아하는 스타일이?
(지호) 예전에는 나한테 그렇게 예쁘다 그러더니
[복남이 픽 웃는다]
누나는 그냥 좀 귀여워했던 거지
내 스타일은 아니야, 원래
[복남이 픽 웃는다]
[기가 찬 숨소리]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수지) 뭐? 김장을 하러 갔다고, 남해에?
응
(수지) 와, 너도 너지만 너희 집주인 남편도 대단하다
하긴 그러니까 둘이 그런 계약을 했겠지
[지호가 살짝 웃는다]
야, 야, 몸살 나서 못 오는 거 아이가?
아줌마 100포기는 했을 긴데
에이, 우리 집에서 퍽이나 일을 시켰겠다, 사우한테
(지호) 그냥 보쌈이나 조금 먹다 오겠지, 뭐
안다 아이가, 진짜로 김장을 시키겠나?
[비장한 음악]
[타이머 작동음]
[경쾌한 음악]
[저마다 지시한다]
[저마다 말한다]
[세희의 힘주는 신음]
[여자들의 웃음]
(여자4) 아이고, 아이고
[여자들의 웃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여자5) 아이고, 아이고
(여자3) 아이고, 좀...
정신이 없제?
네
(현자) 이기 소금에 팍 절인 기라 억수로 짜거든
[익살스러운 효과음] 팍 절인 거요?
그래, 그래가 바로 양념 묻히면 안 되고
(현자) 맹물에 이리, 이리 이리 몇 번 해 주고
그래가 물 빠지구로 요래 딱 내려놓으면
그럼 되거든, 대강 알겠지?
(세희) 맹물에 이리저리 빠지구로 대강 넌다라는...
그래, 해 봐라
[익살스러운 음악]
아이고, 참, 그래 깨작거리지 말고
(여자3) 요래, 요래, 요래 팍팍 하라고, 팍팍 요래, 요래, 요래, 요래
네, 팍팍
(여자6) 아따, 새신랑이 이래 골골대가 우짜노?
지호 엄마, 니 손주나 보겄나?
(여자4) 아이고, 니 그, 마른 장작이 더 오래 타는 거 모르나?
[여자들의 웃음]
(여자6) 우야노, 우야노
시끄럽다
(현자) 남의 사위 앞에 두고 몬 하는 말이 없다
[여자들의 웃음]
(여자4) 편드는 거 봐라, 야 [여자들의 웃음]
[익살스러운 음악]
[세희의 힘겨운 숨소리]
[숨을 후 내쉰다]
(여자3) 아이고, 참, 한 번 더 훔치소
훔, 훔치라고요?
(여자6) 아, 이래, 이래, 이래, 이래 하라고
아, 네
[헛기침하며] 이래, 이래, 이래, 이래, 이래
(여자3) 아, 그러니까 한 번 더 헹구라고, 팍팍
[여자들의 웃음]
(여자5) 아이고, 욕본다
(여자6) 우짜노? [익살스러운 음악]
[한숨]
와 남의 사우 등짝을 그래 두드려 패고 지랄이고?
[여자들의 웃음]
[휴대전화 진동음]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응? 뭐고?
진짜로 김장을 하네?
뭐고? 와 사람을 때리노?
아, 똘이 아줌마 진짜 웃기네
아씨
(손님) 여기 주문요
아, 네
(복남) 주문 내가 받을게, 가 봐
- 어딜? - (복남) 남편한테
그렇게 걱정되면 빨리 가 봐, 그냥
(복남) 대신 주말에 나와, 나 대신
[빨리 감기 효과음] [신나는 음악]
(여자4) 아이고, 이러다 오늘 날 새우겠네
(여자3) 그러게
[힘겨운 숨소리]
[힘주는 숨소리]
[힘겨운 숨소리]
[세희의 힘주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오싹한 효과음]
[은솔의 어색한 웃음] (세희) 네?
[익살스러운 음악] 네?
[경쾌한 음악]
[입바람을 후 분다]
[콜록거린다]
[괴로운 신음]
[헛기침한다]
[힘겨운 숨소리] (여자3) 남 서방!
- (세희) 예! - (여자3) 어휴, 참 나
(여자3) 여 와서 배추 좀 짜, 좀, 어?
부뚜막에서 저러고 앉아 있을까, 와?
[여자들의 웃음]
[여자들이 시끌벅적하다]
(지석) 아, 매형은 진짜 김장하러 왔는갑다
참, 희한하네, 응?
- (여자5) 꽉꽉 짜라, 어 - (여자3) 아이고
흠, 밥도 줬고
근데 얘 어디 갔지?
(지호) 고양이, 고양이야?
[고양이 울음]
여기 있어?
[고양이 울음]
[지호가 픽 웃는다]
응? 여기 있어?
[고양이 울음] 응? 여긴 언제 들어왔어?
[놀라며] 아이고, 너 사고 쳤구나?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어? 나 이거 되게 읽고 싶던 건데
살짝 빌려 가도 괜찮겠지?
[고양이 울음]
깨끗이 읽고 반납하겠습니다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아...
선물 받은 거였구나
[한숨]
(현자) 이제 됐다, 고마 드가소
(세희) 아닙니다, 아직 약속한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월차 낸 김에 오늘 갈음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자) 남 서방, 개않나?
(세희) 네
(지석) 누나 [밝은 음악]
(수지) 웬일이야? 그렇게 소리 꽥꽥 지르고 가더니
[수지의 놀라는 신음]
뭐야? 애플 접고 속옷 장사 하기로 했어?
(상구) 속옷 브랜드 중에 제일 편하다는 걸로 다 샀어
뭐라도 너한테 하나 맞겠지
그러니까 한번 입어 보라고
그래도 불편하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다시 구해 볼게
[잔잔한 음악] 너한테 편한 걸로
강압으로 느끼고 간섭으로 느끼게 한 거
내가 그건 진짜 미안해
서서히 고쳐 볼게
그러니까 너도 그냥 나 조금만 배려해 줘
근데 솔직히 싫을 수 있잖아
내 여자 누가 계속 쳐다보고 나쁜 생각 할까 봐
나도 싫을 수 있는 거잖아
알았어, 나도 미안 간섭으로만 생각해서
(상구) 그렇다고 그냥 전화기 꺼 놓고 그러면 사람이 얼마나 초조하겠어! 쯧
그건 회의 때문에 그런 거고
1시간만 기다려, 같이 저녁 먹자
저녁?
근처에 좀 있어
[상구의 벅찬 숨소리]
[밝은 음악]
아이씨, 좋아 죽겠네, 그냥
(세희) 감사합니다
괜찮으세요?
어깨랑 허리랑 좀 어떠세요?
(세희) 음, 조금 결리기는 하는데 두면 괜찮아지겠죠
(지호) 아니에요
더 심해지기 전에 제가 약국 가서 파스랑 약이랑 좀 사 올게요
(세희) 저, 지호 씨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카페 일은요?
아, 지장 없이 잘 정리하고 왔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세희) 제가
걱정돼서 오신 겁니까?
네
그렇군요
아깐
진짜 반가웠어요
오셔서
[잔잔한 음악]
고맙습니다
[문이 달칵 열린다]
[새가 끼룩거린다]
[한숨]
(지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잔잔한 음악] (지호)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지호)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나는 궁금했었다
[픽 웃는다]
(지호) 그리고 그 길을 알게 된 순간 [잔잔한 음악]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 이유는
질투 때문도
좌절 때문도 아니다
(지호) 12년 전의 똑같은 날에
나는 사랑을 꿈꿨고
(지호) 당신은
그 사랑을 끝냈다는 사실이
그냥 좀
슬펐다
(종수) 자, 쭉쭉, 자, 드십시다, 예 [저마다 호응한다]
[사람들의 웃음]
[종수의 시원한 숨소리]
아이고, 우리 사우 오늘 고생했다, 어?
[사람들의 웃음] (세희) 네
자, 한잔 받아라
[종수의 힘주는 신음]
(종수) 너그들 이런 사우 봤나, 어?
김장한다고 처갓집에 내려오는 사우, 어?
[종수의 웃음]
(남자3) 아이고, 그, 색시한테 얼마나 잡혀 살면
그, 처갓집 김장 일에 다 올까? 사내놈이
(현자) 아, 잡혀 살기는
색시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에다가도 절을 한다 안 캅니까?
우리 지호가 얼마나 이쁘면 이카겠습니까?
(남자3) 아이고, 아이고, 저, 딸 자랑은
[사람들의 웃음] (종수) 그래
맞나? 느그 색시가 이삐서 내려온 기가?
아, 대답해 봐라!
아, 예, 이삐서 아니, 예뻐서, 맞습니다
[사람들의 웃음]
(남자3) 아따, 그, 니 마음에 든다, 야
그, 내 잔도 하나 더 받아 봐라
[남자3의 웃음]
아, 이미 잔이 있습니다만
씁, 뭐 하노? 빨리 비우고 받아야지!
아, 예
(남자3) 자
[세희의 당황한 신음]
[남자3의 힘주는 신음]
마시라 [익살스러운 음악]
씁, 마시라!
[당황한 숨소리]
네
(남자3) 마시라!
(지석) 매형!
잠깐만요, 네
- (세희) 네 - (지석) 여기요! 네
- 급한 일입니까? - (지석) 예, 예, 예, 예, 예!
[종수의 웃음]
(종수) 자, 듭시다 [저마다 호응한다]
(지석) 괜찮습니까? 많이 드시던데
괜찮지는
[익살스러운 효과음]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한계점이 몇 잔 남지 않았네요
- (남자3) 이 집 사우 어디 갔노, 어? - (은솔) 아주버님
(은솔) 빨리, 빨리요, 빨리, 빨리, 빨리 [세희의 힘겨운 신음]
(지석) 하, 진짜 그 아재한테 잘못 걸리면 대책 없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다가는 진짜 죽습니다, 골로 갑니다
(세희) 그런 중요한 얘기는 미리 좀 해 주시지
(은솔) 언니는요? 어디 가셨어요?
아, 제 약 사러 가셨는데 오질 않으시네요
(지석) 그러면 이, 바로 들어오지 말고 여기 산책 좀 하다 들어오세요
(은솔) 그래요, 언니한테 전화하셔서 데이트 좀 하고 들어오세요
(세희) 네
(지석) 가자 [은솔의 웃음]
- 힘들었어? - (은솔) 응, 가자
[지석과 은솔의 웃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상구) 우리 같이 밥 먹는 거 처음인 거 알아?
그런가?
왜, 그때도 가기 전에 먹었잖아, 밥
(상구) 무슨 밥을 먹냐? 막걸리만 마셨지
자기 혼자 6통 먹고 취해 가지고, 어휴
막걸리도 쌀이니까 밥 아닌가?
[헛웃음]
우리 이제 앞으로 같이 꼭 이렇게 밥 먹자
일주일에 3번 이상, 이거는 명령이에요
웬 밥 타령?
(상구) 너 이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밥심, 밥 정 이런 말들이 괜히 나온 줄 알아?
[픽 웃는다] 서로 정 쌓고 그러는 데는
이 밥만 한 게 없어요
하긴 그러니까 지호도 빠진 거지
(상구) 응? 제수씨가 어딜 빠져?
아, 그러니까...
지호가 집주인한테 빠졌어
아, 내 친구가 그쪽 친구 좋아한다고
말하지 마, 그쪽 친구한테는
혼자 짝사랑인 거 같으니까
(상구) 씁, 아휴
과연 그게 짝사랑일까?
[잔잔한 음악]
어?
세희가 과연 모를까?
지호 씨가 자기 좋아하는 거
(세희) 지호 씨
지호 씨!
지호 씨!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지호가 좋아하는 걸?
응
(수지) 그럼 세희 씨는?
그 사람 마음은 어떤데, 지호한테?
여기 밥맛 좋다
햅쌀인가 봐, 음
[식탁을 탁 치며] 아이씨, 지호 모솔이란 말이야!
아무것도 모른다고, 걔는, 쯧
(수지) 걱정돼서 물어봤구먼
씁... [한숨]
세희는 아니까 더 무섭겠지
사, 사랑이 뭔지 아니까
[잔잔한 음악] 더 무섭지 않을까, 세희는?
[지호의 한숨]
[지호의 한숨]
(지호) 그냥 적당히 거절하시지, 막걸리
아니, 평소에는 거절도 잘하시는 분이 왜 거기서는...
왜요?
이런 기분이셨군요?
제가 저희 집 제사 왜 갔냐고 했을 때
[한숨]
이런 섭섭한 기분
(세희) 좋네요, 바다
정말 오랜만에
(지호) 저도요
바다
처음이에요
가족, 친구 외에
다른 사람이랑 같이 보는 거
남자랑
보는 거 처음이에요
(세희) 의외로 안 해 본 게 많으시네요 지호 씨는
(지호) [살짝 웃으며] 그러네요
항상 바빴어요, 20대 때는
그래서 제가 안 해 본 게 좀 많아요
그래서 모르는 것도 많고
(세희) 제가
20대 때 좋아했던 시가 있는데
거기 보면 그런 말이 나와요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잔잔한 음악]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이 오는 것이다'
막상 그 시를 좋아할 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그 말을 알고 나니까
그 시를 좋아할 수가 없더라고요
알고 나면
못 하는 게 많아요, 인생에는
그래서 저는
지호 씨가 부럽습니다
모른다는 건
좋은 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호) 그럼 세희 씨도요
예전에 봤던 바다라도
오늘 이 바다는 처음이잖아요
다 아는 것도 해 봤던 것도
그 순간, 그 사람과는 다 처음인 거잖아요
우리
결혼처럼
[잔잔한 음악]
정류장 때 키스처럼
그 순간이 지난 다음 일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그렇게 된 거지
저 중의 어떤 애는 그냥 흘러가고
또 어떤 애는 부서지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희 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를 살아 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세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세희)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세희) '부서지기 쉬운'
(세희)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세희) '마음이'
'오는 것이다'
(세희) 사람들이 왜 답답할 때 바다를 보러 오는지 알겠네요
여기선 자기 마음을 만날 수가 있군요
(지호) 네?
근데 제가 예전부터 꼭 시정해 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세희) 정류장에서 지호 씨가 한 건 키스가 아니라 뽀뽀입니다
아...
뭘 굳이 또
네
(세희) 어떻게 보면 뽀뽀라고 할 수도 없죠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표면적인 피부 접촉에 의한 입맞춤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호) 네, 알겠어요
그건 키스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세희) 키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알겠다고요, 제가 잘 못했어요
네, 그러니까요, 키스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잔잔한 음악]
(세희) 이제 좀 아시겠습니까?
아니면
더 아셔야겠습니까?
더 알래요
(지호)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의 마음이
내게 왔다
[발랄한 음악] (지호) 내 안의 모든 연애 세포가
깨어나 버렸다
(세희) 이 여자가 예쁘다
[지호의 거친 숨소리] (수지) 안 하고 싶어, 집주인이랑?
한집에 그러고 사는데 몸이 막
(세희) 먼저 씻으세요
(지호) 하, 왜 그랬어, 왜?
아, 하루에도 진짜 키스 생각만 몇 번을 하는 거야, 이 모솔아!
[지호의 답답한 신음]
(원석) 우리 결혼 말이야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상구) 그냥 여자 친구 집이 궁금하다고
(수지) 나와 있었어?
(세희) 요즘 친구들은 주로 뭘 합니까? 데이트할 때
(원석과 호랑) 어?
(세희) 내가 무섭다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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