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2
(세희) 키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알겠다고요, 제가 잘 못했어요
네, 그러니까요, 키스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세희) 이제 좀 아시겠습니까?
아니면
더 아셔야겠습니까?
더 알래요
[휴대전화 벨 소리]
(세희) 지호 씨?
저, 전화 오는데요
저, 지호 씨
지호, 지호 씨
[세희의 멋쩍은 숨소리]
전화가...
(지호) 네
[세희의 멋쩍은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어, 엄마, 왜, 뭐?
(현자) 왜는, 어디서 뭐 하노, 둘이? 와 안 들어오노?
(지호) 어, 어데기는, 바닷가지
바다에서 뭘 하겠노? 바다에서 바다 보지
[갈매기가 끼룩거린다]
어, 알았다 [세희의 한숨]
갈게, 응
[통화 종료음]
[세희의 헛기침] [발랄한 음악]
[숨을 씁 들이켠다]
(세희) 들어갈까요?
(지호) 네
(세희) 근데 어머니께 너무 화내신 거 아닙니까?
(지호) 제가요? 제가 언제 화를...
아, 원래 사투리 쓰면 목소리가 좀 커져서
[살짝 웃으며] 옛날에 대학 때도 엄마랑 통화하면
애들이 막 왜 화내냐고 막 그랬거든요
(세희)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오늘 경험해 본 바로는
여기서는 평음을 격음이나 경음으로 바꿔서 말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한다'를 '칸다'로
'해 버린다'를 '해 뿐다'로
[지호가 픽 웃는다]
그걸 그새 또 분석하셨어요?
네, 뭘 알아들어야 김장을 하니까요
(세희) 아, 그리고 '이쁘다'는 '이삐다'로 표현하시더라고요
(지호) 그건 언제 또...
왜, 아줌마들이 서울 남자라고 이쁘다고 놀렸어요?
아니요, 저 말고 지호 씨
[잔잔한 음악] (세희) 저한테 지호 씨 이삐냐고 물어보시길래
가시죠, 또 전화하시겠습니다
뭐야, 왜 문장을 끝을 안 내고...
(세희)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잘 먹겠습니다
(종수) 어, 그래
항상 그, 차 조심, 사람 조심 전쟁 조심, 어?
혹시라도 뭔 일 생기면 바로 내려와야 된다, 바로, 이, 이
전쟁 나면 서울이 제1빠따인 기라, 1빠따, 응?
거기서 꾸물적거리지 말고 바로, 이, 이
(현자) 어여, 어여 가라, 어여 내일 출근해야지
(남자1) 어, 이 집 사우, 어디 가노?
(세희) 아, 예, 이제 가 봐야 해서요
(현자) 아유, 마, 고마 들어가소, 아들 바쁘다
(남자1) 어이, 니만 바쁘나? 내도 바쁘다
어, 가려면 이거 한 잔 받아묵고 가라
안 그라면 못 간다
(세희)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남자1) 아이고, 야, 니가 지금 어른 술잔을 거부하는 기가!
아...
[지호가 혀를 쯧 찬다]
[남자1의 당황한 신음]
[지호의 시원한 숨소리]
(지호) 자, 됐나?
(남자1) 아니, 내가 언제 니 묵으라 캤나?
[흥미진진한 음악] 아재, 니, 딱 한 번만 더 우리 신랑 괴롭히래이
(지호) 아재 사우 내려오면
내가 고마 확
술독에 담가 뿐다, 알았나!
[현자의 웃음] (남자1) 아이, 내가, 그, 뭘 그리 괴롭혔다고
[혀를 쯧 찬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아, 드가소, 빨리
[밝은 음악] [남자1의 못마땅한 헛기침]
- 간다 - (세희) 가 보겠습니다
(종수) 그래, 드가라, 이, 조심이 제일인 기라
- (지석)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어 - (종수) 그래, 이
- (은솔) 다녀올게요 - (종수) 갔다 온나, 어
(지석) 어
- (현자) 지호 가라 - (지호) 어
(지석) 똘이 아재 오래간만에 누나한테 한 방 묵었네, 어?
(은솔) 왜? 저번에도 이런 일 있었어?
(지석) [웃으며] 어, 어
그, 옛날에 누나가 돌보던 동네의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있었거든
근데 그 아재가 복날에 잡아먹는다고 데리고 가 버렸어
어? 설마 보신탕?
(지석) [웃으며] 어, 바로 그거지
(은솔) 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지석) 우째 되기는, 그래 갖고 누나가 그 집 경운기 끌고 가가
부둣가 앞에서 시동을 딱 걸었지
[지석의 웃음]
개 살려서 안 보내면 경운기 수장시켜 삔다고
(은솔) [감탄하며] 언니
대박
(지호) 니는 뭘 또 지나간 얘기를
(지석) 우리 누나가 한 번 마음 준 거는 고마 끝까지 간다
인자 평생 발목 잡혔습니다, 매형
[지석의 웃음]
앞에 보고 운전해라, 이 새끼야
(지석) 알았다
(지호) 고마워, 몸조심하고
- (지호) 드가라 - (지석) 어
(지석)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매형
(세희) 네, 들어가세요
[세희의 놀라는 신음] [잔잔한 음악]
- (세희) 그럼 - (지호) 간다
(지석) 씁, 이제 우리 아가야들도 가 볼까요, 네?
[숨을 씁 들이켠다]
와?
아니, 언니랑 아주버님 좀 이상해서
뭐가?
씁, 너무
풋풋해
(지석) 하, 신혼인데 당연히 풋풋하지
(은솔) 아니, 신혼의 풋풋함 그런 거 말고
오빠랑 나랑 썸 탈 때 그런 분위기?
뭐라노? 부부 사이에 뭔 썸?
아, 가자, 가자, 춥다
하, 부부 사이에 저런 표정이 나올 리가 없는데
(지호) 저는 여기
뒤쪽이시죠?
네
저기네요
(지호) 아...
저, 옆 좌석 분께 바꿔 달라고 말해 볼까요, 자리?
음...
쯧, 아니요
그냥 앉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세희) 자리 바꿔 달라는 것도 다른 사람한텐 실례일 수 있겠더라고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거니까
네,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요
[잔잔한 음악]
(지호) 내 유년기를 채웠던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키스는 언제나 해피 엔딩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키스가 엔딩이어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 알았다
진짜는 그 이후에 시작되니까
[버스 문이 쓱 닫힌다]
[버스 엔진음]
그리고 사람들은
진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진짜는
아주 아플 수도
어두울 수도
있으니까
키스도 결혼도
현실에선 해피 엔딩이 아니다
[한숨] 저 남자와 나의 드라마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
그리고
[한숨] (지호) 나의 욕망도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숨을 후 내쉰다]
큰일 났네
(지호) 내 안의 모든 연애 세포가
깨어나 버렸다
[쪽 뽀뽀하는 효과음]
[비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 (세희) 안녕하십니까 - (경비원) 어, 안녕하세요
(경비원) 아이고, 이 새벽에 어딜?
(지호) 아, 저희 집에 좀 다녀오느라고요
(경비원) 아, 예, 아유, 들어가세요
- (세희) 수고하십시오 - (지호) 수고하세요
[고양이 울음]
[도어 록 작동음]
(지호) 잘 있었어?
그래도 금방 왔지?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주무시고 오실 걸 그랬나요? 간만에 집에 가셨는데
아니요, 출근해야죠
복남이가 주말 타임으로 바꿔 준 건데
그래도 몇 시간이라도 눈 좀 붙이시게 얼른 주무세요
네
[고양이 울음]
김장 즐거웠습니다
바다 여행도
네
저도요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세희) 먼저 들어가세요
아니에요, 먼저 들어가세요
아니요, 그래도 들어가시는 거 보고
그럼
[잔잔한 음악] 아...
[고양이 울음]
[숨을 후 내쉰다]
[심호흡한다]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열린다]
[픽 웃는다]
쯧, 그러고 보니까
같이 제대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네
[휴대전화 조작음]
(지호)
(세희)
(지호)
(지호) 아, 왜 그랬어, 왜?
아, 왜 물어봐?
[한숨]
[지호의 민망한 신음]
(지호)
흠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세희)
[밝은 음악]
[스위치를 탁 끈다]
[세희의 옅은 숨소리]
[지호의 한숨]
아, 같이 잤으면 좋겠다
한 침대에서
(지호) 뭐래? 왜 이래, 나?
쓰레기
[지호의 괴로운 신음]
[새가 짹짹 지저귄다]
[원석의 한숨]
(호랑)
[한숨]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호랑의 힘주는 신음]
자, 어디 가?
동물원
(여자1) '동물원 가요' 해야지
(아이1) 동물원 가요
[호랑과 여자1의 웃음] [잔잔한 음악]
(여자1)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
감사합니다
- (여자2) 어, 차 왔다 - (여자3) 차 왔다 [저마다 말한다]
(여자1) 가자
- (여자3) 선생님, 안녕하세요 - (교사) 안녕하세요 [저마다 인사를 나눈다]
(여자1) 잘 갔다 와, 응? [저마다 말한다]
[차 문이 드르륵 열린다]
(여자4) 선생님 말 잘 듣고
- (여자1) 잘 따라다녀, 알았지? - (아이1) 네
- (여자4) 민준아 - (아이2) 갈게
(여자4) 잘 갔다 와, 잘 놀아야 돼
[휴대전화 진동음]
- (호랑) 어 - (원석) 가고 있어?
응, 버스 탔어
오늘 오전 근무지?
어
이따 어디로 갈까?
음, 7시 연극이니까
그때 대학로에서 보자
그래, 이따 봐
(원석) 랑아
(호랑) 어?
사랑해
어, 나도
사랑해
응
[통화 종료음]
[한숨]
[원석의 심란한 숨소리]
[심란한 숨소리]
[발랄한 음악]
[한숨]
편하기는 개뿔
(수지) 취향은 또 왜 이래? 한결같이
[픽 웃는다]
하, 참
아휴
[힘주는 신음]
[키보드를 탁탁 친다]
(디자이너) 오케이
아니, 불편해서 어떻게 입고 다녔어요?
(수지) 뭐, 반은 벗고 반은 입고 다녔죠
이상하게 겨드랑이 부분이 항상 불편하더라고요
고객님 가슴 형태가 남들이랑 달라서 그래요
아, 그래요?
네, 얼굴 생김새가 제각각이듯이 가슴 모양도 사람마다 다 달라요
(디자이너) 음, 사이즈도 그렇고 볼륨 위치도 그렇고
가슴이 좁냐 넓냐도 조금씩 다 다른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요
그냥 기성복에 사이즈만 맞으면 구겨 넣어 버리니 불편할 수밖에 없죠
맞추러 오는 분들이 꽤 있나 봐요
아, 네
결혼하고 부업 삼아 하는 건데 어떻게 알고들 찾아오시네요
[살짝 웃는다]
(수지) 그러게, 자료가 꽤 많으시네요
[잔잔한 음악]
저, 이 자료들을 데이터화해서
가슴 모양에 따른 유형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데이터요?
네, 뭐, 예를 들면
새가슴형, 납작형, 처진형 뭐, 이렇게 다양한 유형을 만들어서
그 유형에 맞는 속옷을 바로 추천해 주는 거죠
(수지) 그러면 이렇게 오지 않아도
온라인상으로 유형을 선택해서 바로 구매로 이어질 수 있잖아요
[멋쩍은 웃음]
전 그런 건 좀 잘 몰라서
그냥 결혼 전에 배운 기술 썩히기 아깝고
이렇게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한 땀 한 땀 만드는 게 좋아서
[살짝 웃으며] 그래서 하는 거예요
아, 제가 너무 속물 같았네요 부끄럽게
(디자이너) 아니에요, 좋은 말씀 해 주신 건데
제가 장사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그렇죠, 뭐
[웃음]
(수지) 아, 얼마예요?
네, 25만 원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문이 스르륵 닫힌다]
[원석의 놀라는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원석) 세희 님
세희 님
(세희) 아...
아, 잠시 잠들었네요 [안마기 종료음]
주말엔 웬일이세요, 회사에?
아, 안마를 좀 받으러 나왔습니다
아, 어제 김장하러 다녀오셨죠, 지호 집에
네, 이게 아무래도 파스로 해결될 부분이 아닌 거 같아서
(세희) 음, 근데 원석 님은 주말에 웬일로 회사에...
아
마사지?
아니요, 아니요 저는 데이트하러 나왔다가
일 때문에 잠깐 들렀어요
음, 네, 그럼 즐 데이트
네
[안마기 조작음] (원석) 저기, 세희 님
세희 님은 지호 많이 사랑하시죠?
아, 그게...
아니에요, 제가 괜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즐 마사지요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거리 소음이 요란하다]
[원석의 한숨] 결혼이
잘 안 풀리십니까?
모르겠어요
이게 결혼이 안 풀리는 건지 아니면 연애가 안 풀리는 건지
(원석) 그것도 아니면 사랑이 안 풀리는 건지
(세희) 싸움이 잦아지시나 보네요
싸우는 건 원래 자주 싸웠어요
(원석) 대로변에서 소리 지르고 싸운 적도 있고
식당에서 막 등갈비 집어 던진 적도 있고
7년 동안 거의 뭐 격투기 선수처럼 싸웠어요
근데 지금은
[한숨]
지금은 저희가 어떤지 아세요?
안 싸워요
[잔잔한 음악]
서로 한참 뭔가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아는데도
근데도 안 싸워요
싸우면
돌이킬 수 없을까 봐
(원석) 맞아요
(세희) 사실 지호 씨랑 저랑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모든 게 잘 맞아떨어져서 결혼을 했습니다
불편한 게 없어서 같이 살기로
근데 그러고 나니까
(원석) 감정이 생겼나요?
네
(세희) 내 자신으로 오롯이 편안해지니까
마음에도
공간이 생긴다는 걸 이 결혼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원석의 한숨]
역시 사랑이랑 결혼은 다른 문제인가 보네요
꼭 그런 명제라기보다는 서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세희) 어차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그 욕망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제도 중 하나고요
[살짝 웃으며] 욕망요?
(원석) 세희 님, 저는 사실 그런 거 없어요
저는 그냥 랑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고
제가 랑이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
랑이 없으면 저 안 돼요 저는 못 살아요
그런 거 서로 뭐, 다 아는데 뭘 더 솔직해요?
[원석의 한숨]
(세희) 흠
'나는 네가 웃는 걸 보는 게 좋다'
'내가 널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된다'
지금 말씀하신 문장들의 주어가 모두 다
원석 님 자신이네요
[잔잔한 음악]
상대방이 주어인 경우는 없군요
그럼
데이트 잘하십시오
근데
요즘 친구들은 주로 뭘 합니까?
데이트할 때
[잔잔한 음악]
[놀라는 신음] [흥미진진한 음악]
[괴로운 숨소리]
[쪽쪽거리는 효과음]
[쪽쪽거리는 효과음이 계속된다]
[숨을 후 내쉰다]
왜 이래?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
하, 더러워
(지호) 테이블이 너무 더러워
어디 갔다 와?
어, 브라자 맞추고 왔어
아, 그때 말한 그 맞춤?
(지호) 신기하네, 나도 한번 해 볼까?
비싸지, 근데?
어, 개비싸
씁, 흠
야
너 가슴 좀 내놔 봐라
뭐?
뭘 내놔?
[수지가 중얼거린다]
(지호) 온라인 사업?
응, 사람들이 직접 자기 가슴 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만 구축해 놓으면
맞춤 속옷도 대중화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안 그래?
그렇지, 안 될 건 없지
근데 그걸 네가 직접 하게?
그걸 내가 어떻게 해? 회사 다녀야지
쯧,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취미 삼아 해 보려고
(수지) 그 디자이너분 드려도 되고
그냥 네가 직접 한번 해 보지
(지호) 너 전부터 네 사업 하고 싶어 했잖아
이번 기회에 그냥 한번 해 보는 건 어때?
야, 그 좋은 회사를 내가 어떻게 관두냐?
(수지) 거지 같아도 업계 최고 연봉인데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내 인생이 내 것만은 아니잖아
나는...
이 언니는 너희하고 사정이 달라요
(지호) [멋쩍게 웃으며] 미안해
나는 그냥
네가 그 얘기 하는데 눈이 너무 반짝거려서, 그래서
내 눈이 반짝거렸어?
응
마치 네가 집주인 얘기 할 때처럼 반짝반짝 그러디?
(지호) 아, 왜 불똥이 또 글로 튀어?
나 진짜 진지하게 궁금한 게 있는데
안 하고 싶어, 집주인이랑?
뭘 해?
왜, 좋아하는 남자잖아
한집에 그러고 사는데 몸이 막
[익살스러운 음악]
괜찮아?
옆방에 있는데 안 달아올라?
안 달아올라, 뭘 달아올라 안 그래, 무슨
얘는, 참 나
그래? 신기하다
모솔이어서 그런가?
아예 아무것도 몰라서?
[수지가 픽 웃는다]
(수지) 그래도 조심해, 지호
[익살스러운 음악] 같이 잘 생각 아니면 스킨십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말고
- 왜? - (수지) 왜긴
너 나 대학 때 첫 남친 기억 안 나?
아, 그 6개월 동안 손만 잡고 다녔던?
그래, 나 그때 우울증 걸렸잖아 진도를 하도 안 빼서
(수지) 그러니까 끝까지 갈 생각 아니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스킨십은
원래 첫 욕정이 가장 무서운 법이야
특히 너 같은 모솔한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거라고
알간?
[밝은 음악]
[어색한 웃음]
(지호) 그렇다
나는 이 계약 결혼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와
(학생1)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지호) 대학 시절 연애 한 번 못 해 본
모태 솔로라는 사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한집에 살게 되다니
(학생2) 야, 야, 야, 깼다! 우아
- (학생3) 대박! 역시, 와 - (학생2) 야
[학생들이 소란스럽다] (지호) 그것도 내 판도라의 상자를 연 남자와
(학생1) 왜 이렇게 잘해?
야, 너 처음 하는 거 아니야?
(학생3) 야, 원래 초짜들이 더 무서운 거야 [학생1의 탄성]
뭘 모르니까
그러니까, 진짜 초짜가 무섭다
아, 하루에도 진짜 키스 생각만 몇 번을 하는 거야, 이 모솔아!
[지호의 답답한 신음]
[지호의 괴로운 신음]
[지호의 답답한 한숨]
머리 아프세요?
아니에요
(지호) 근데 여기 어쩐 일로...
아, 잠시 회사 들렀다가 와 봤습니다
지호 씨 마칠 시간 된 거 같아서
[잔잔한 음악]
(세희) 주말인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야릇한 음악]
하고 싶은 거요?
(지호) 음, 하고 싶은 거...
네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입소리가 쪽 난다]
[지호가 침을 꿀꺽 삼킨다]
아니요, 없어요, 그런 거
[익살스러운 효과음]
없습니다! 저는 그런 거
(세희) 흠...
[세희의 한숨]
그럼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러 가실래요?
[잔잔한 음악]
[잔잔한 음악이 들려온다]
(세희) 응?
저거 보러 갈까요?
네
(가수) ♪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
♪ 자그마한 모든 게 커져만 가 ♪
♪ 항상 평범했던 일상도 ♪
♪ 특별해지는 이 순간 ♪
[관객들의 환호성] [가수가 흥얼거린다]
♪ 너를 알게 된 뒤 보이는 ♪
♪ 모든 것들이 너무 예뻐 보여 ♪
♪ 그렇게 신난 아이처럼 ♪
♪ 순수한 사람이 된 것 같아 ♪
♪ 아, 아, 아 ♪
[가수가 계속 노래한다]
(세희) 그래서 고양이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만을 선택해서
기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담아 둘 필요가 없는 기억들은 쉽게 잊을 수 있다는 거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게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입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호 씨는요?
네?
지호 씨는 좋아하는 동물이...
아, 좋아하는 동물요?
저는 달팽이요
달팽이요?
네, 달팽이요
걔네들은 평생 자기 집을 가지고 다니잖아요
아, 그렇네요
그 친구는 태어날 때부터 자가 주택가네요
[밝은 음악] (세희) 아, 이거 새로운 해석이네요
[풍선이 팡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탄성]
[사람들의 탄성]
저거 하러 갈까요?
네? 또 뭐, 어디를...
저거요
네
(가수) ♪ 사랑하고 싶게 돼 ♪
♪ 사랑하고 싶게 돼 ♪
[사람들의 환호성]
(원석) 랑
(호랑) [살짝 웃으며] 어, 왔어?
- (원석) 응 - (호랑) 응
(호랑) 시간 많이 남았네
(원석) 그러니까
가방 들어 줄까?
(호랑) 아니야, 됐어
우아, 저 남자 진짜 못한다
[흥미진진한 음악]
- 어? - (호랑) 어?
(사람들) 에이
[날카로운 효과음]
[입바람을 후 분다]
[탄식]
[익살스러운 음악]
- (호랑) 지호 - (지호) 어, 너희
- 아, 오늘 공연 본다 그랬지? - (원석) 응
(호랑) 야, 근데 형부 저런 거 왜 하고 계시는 거야? 형부답지 않게
(지호)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하자고...
- (원석) 아, 데이트 코스 - (지호) 응?
(원석) 아니, 아까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요즘 애들은 뭐 하고 노는지 데이트할 때
[잔잔한 음악] 그래 가지고 내가 우리 데이트 코스 알려 드렸거든
데이트?
(여자5) [웃으며] 뭐야?
[저마다 야유한다] - (여자6) 진짜 못한다 - (여자7) 대박 못해
[흥미진진한 음악]
[사람들의 웃음] - (남자2) 에이 - (여자6) 진짜 못한다
(남자2) 내가 던져도 되겠다
(세희) 흠...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1만 원어치 더 하겠습니다
(남자2) 야, 재벌인가 봐
- (호랑) 또 해? - (여자6) 또 한다, 또 한다
(지호) 아...
이번엔 제가 한번 해 볼게요
아, 네, 그러시죠
[사람들의 탄성] [발랄한 음악]
[사람들의 환호성]
[사람들의 환호성]
(남자2) 야, 대박, 대박, 다 해 버려 다 해 버려, 이야
[사람들의 환호성]
[풍선이 팡 터진다]
[풍선이 연신 팡팡 터진다] [사람들의 환호성]
[밝은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풍선 터뜨리기를 2만 원어치나 하고
아니, 그 인형이 그렇게 갖고 싶으셨어요?
(세희) 이거 지호 씨 건데
(지호) 제 거였어요?
(세희) 네, 그래서 고양이 아니고 달팽이인데
[발랄한 음악]
[지호의 웃음]
이거 지호 씨가 들어요 지호 씨 거니까
아니, 그냥 좀 들어 주시지, 무거운데
그리고 이것도
아니, 또 뭘 들라고, 저 손 없어요
(세희) 안 돼요, 지호 씨 거니까 지호 씨가 들어요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아니,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상구가 혀를 쯧 찬다]
(수지) 어, 미안, 미안, 많이 기다렸어?
(상구) 응
(수지) 아, 진짜 미안해
내가 집에서 일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
근데 전화기는 왜 꺼 놨을까?
전화했었어?
아, 집에 두고 왔다
(상구) 아니, 그러니까 내가 집 앞으로 간다니까
왜 자꾸 여기 맨날 와 갖고 왜 이러냐고, 도대체
[잔잔한 음악] (수지) 미안해
씁, 너 혹시 오늘 노브라야?
아니야, 오늘은, 노브라는 아니고
[속삭이며] 노팬티
너 진짜...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수지의 웃음]
너 진짜야? 어?
진짜인지 아닌지는 보면 되잖아
우수지, 너 이놈의 자식 진짜
너 만약에 진짜면 아주 오늘 나한테 혼날 줄 알아, 어?
인마, 날씨 추운데 하나라도 더 입고 다녀야지!
자, 봐, 내가 확인하겠어!
(상구) 일로 와 봐! [수지가 소리친다]
거짓말쟁이인지 뭔지 내가 확인해 보면 다 나와
(상구) 뭐야? 드라이기를 갖고 다녀?
(수지) 어, 여기 건 약해서 내 게 편해
아니, 그래서 왜 밖에서 만나서 이 고생이냐고
집에서 만나면 이런 거 안 가지고 다녀도 되잖아
(상구) 아니, 솔직히 사귀면서 여자 친구 집도 안 가 본 사람이 어디 있냐?
아니, 그 집 놔두고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고
[드라이기 작동음]
(상구) 어휴, 줘 봐, 줘 봐 그거 하나 못 말려요
[잔잔한 음악] 내가 전문가야, 이거
(수지) 아, 좀 제대로 해
(상구) 제대로 하잖아 네 머리카락이 이상한 거야
이거 봐, 다 걸리잖아, 이거 가발이야?
[함께 웃는다]
예뻐요
그래요?
네
너무 예뻐요
(지호)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아, 생각해 보니까
선물을 한 번도 해 드린 적이 없더라고요
(세희) 결혼 때 반지도 안 했었고
그래서 한 번쯤은 뭔가를 꼭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좀 뻔하고 진부해도 남들처럼
그런 선물
네
그래서 남들처럼 뻔하고 진부한 데이트 한 거예요?
우리 오늘
(세희) 아...
뭐...
(지호) 원석이한테 물어보셨다면서요?
요즘 애들 뭐 하고 노냐고
네, 생각해 보니까 지호 씨랑 저랑 세대가 꽤 달라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까 꽤 아재시더라고요
(지호) 80이시니까
제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중학생이셨고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군인 아저씨?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니, 뭐, 또 군인 아저씨까지야...
그냥
군인 [지호가 피식 웃는다]
네 [세희가 픽 웃는다]
(지호) 아, 그래서 저도 마 대표님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80이랑 데이트하려면 어디 가야 되냐고
학교 때 자주 오셨다면서요?
네
(세희) 아, 주문하셔야죠
- 뭐로? - (지호) 아...
(지호) 저는 이걸로
저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시켜 놓을게요
아
(지호) 이거 해 보고 올게요
네
[변기 물이 솨 내려간다]
[픽 웃으며] 귀엽고 난리
[문이 달칵 열린다]
[물소리가 솨 난다]
[물소리가 멈춘다]
[귀걸이가 툭 떨어진다]
[지호의 놀라는 신음]
(지호) 아...
감사합니다
[잔잔한 음악]
줘 봐요
내가 해 줄게요
(정민) 찾았다
고맙습니다
예뻐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민) 아, 미안해요
이 자리에서 하늘이 제일 잘 보이거든요
실례했어요
[의미심장한 음악]
저기
[살짝 웃는다]
안녕히 가세요
[살짝 웃으며] 네
(세희) 어, 아직 안 나왔네요?
잘 어울리시네요
(지호) [웃으며] 그렇죠?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석) 랑아
지호 남편 은근히 웃긴다, 그렇지?
아니, 어떻게 내가 알려 준 그대로 가서 데이트를 하냐?
그러게, 되게 풋풋해 보이더라, 둘이
우리도 풍선 터뜨리기라도 할 걸 그랬나, 간만에?
됐어, 돈 아까워
(원석) 그렇지? 인형도 어차피 다 짐인데
[호랑의 어색한 웃음]
(호랑) 이것도 너무 많이 시켰다
아, 이거 어머니가 사 주셨다 취직 선물로
[어색하게 웃으며] 그랬어?
엄마는 뭐래? 무슨 얘기 했어?
어, 어머니는 뭐, 그냥, 뭐...
(세희) 서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어차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그 욕망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제도 중 하나고요
랑아
우리 결혼하는 거 말이야
어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얼마나?
5년 정도?
5년?
응
아무래도 그 정도는 좀 걸릴 거 같아서
[어색한 웃음]
원석아, 5년이면 나 서른다섯이야
연애만 12년을 하자는 거야?
(원석) 랑아, 피곤하면 그냥 집에 가서 쉴래?
됐어, 예매한 거라며, 봐야지
(원석) 가자
(호랑) 이거 뭐야?
'김종욱 찾기' 예매한 거 아니었어?
'김종욱 찾기'?
(원석) '김종민 찾기' 아니야?
[호랑의 한숨]
아니, 나는 김종민 말고 김종욱이 또 있을 줄은 몰랐지
괜찮아, 지금이라도 취소하고 다시 예매하면 돼
(호랑) 됐어, 어차피 지금 해 봤자 표도 없어
그냥 이거 봐
[답답한 숨소리]
김종민 씨를 보셨나요?
(배우1) 여기서 그 사람을 봤다는 분이 있던데
아, 모르시는구나?
(배우2) 저를 찾는 여자가 있었다고요?
어디죠? 어디 있습니까, 지금?
[배우2의 떨리는 한숨]
제가 또 한발 늦었군요
[애잔한 음악] (원석) 야, 양호랑 너 미쳤어? 왜 그래?
(호랑) 결혼!
[호랑이 흐느낀다]
나 결혼이 하고 싶단 말이야 이 똥멍청이야
[호랑이 오열한다]
(원석) 근데 결혼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사랑이랑 결혼이랑 과연 같은 걸까?
(배우2) 제가 대체 얼마나 더 걸려야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요?
(호랑)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 하더라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좋잖아
[호랑이 살짝 웃는다]
(배우1) 언제쯤이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원석) 랑아, 무슨 내후년이야?
내후년에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해?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원석) 5년 정도?
[호랑의 어색한 웃음]
(호랑) 원석아, 5년이면 나 서른다섯이야
연애만 12년을 하자는 거야?
(배우1) 왜 우리는
계속 어긋나기만 하는 걸까요?
[호랑이 훌쩍인다]
[고양이 울음]
[세희의 힘주는 숨소리]
먼저 씻으세요
네?
먼, 먼저 씨, 씻어요?
네
어젠 제가 먼저 씻었으니까 오늘은 먼저 쓰세요, 욕실
아, 그런, 그런 뜻이죠?
네? 왜...
뭐, 다른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니
[헛기침]
아니요, 다른 뜻이 뭐가 있겠어요
먼저 씻으라는 말이 먼저 씻으라는 뜻이지
아, 먼저, 먼저 쓰세요, 화장실
저는 오늘 화장도 지우고 해야 돼서
화장을 하신 겁니까?
네, 왜요?
아니요
저는 지호 씨는 화장 안 하시는 줄 알고
세수한 얼굴이랑 항상 똑같으셔서
(지호) [세희를 툭 치며] 뭐예요
한 거예요, 화장
[밝은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세희) 음?
[문이 달칵 닫힌다]
[픽 웃는다]
뭐야, 이상한 데서 사람 심쿵하게 하고
[한숨]
근데 언제까지 심쿵만 하냐
사랑은 플라토닉이 아니잖아요 이 80 아재야
아...
[매혹적인 음악]
예뻐요
[밝은 음악] 왜 이래?
미쳤어?
와, 이제 하다 하다 여자 손길에
음란 마귀니, 너?
[한숨]
(수지) 내가 오빠 집까지 데려다준다니까
(상구) 싫어, 내가 너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어서 그래
요새 지하 주차장이 얼마나 위험한데
참, 희한한 고집일세
(상구) 저기, 우리 우수지 씨는 결혼 생각이 없으신가?
(수지) 결혼?
전혀
- 전혀? - (수지) 응
마 대표님은 하려고? 결혼 같은 거
나도 뭐, 그다지
(상구) 뭐, 근데, 뭐, 기회가 되면 그냥 하는데
근데 또 같이 밥도 먹고 장도 보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같이 생활 공유하는 거
그,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싫다고
(수지) 그런 찌질한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섹스를 하냐?
환상 깨지게
(상구) 뭐?
(수지) 결혼은 남녀 관계의 무덤이야
섹슈얼의 끝이라고
생각을 해 봐
어떻게 대출 이자랑 명절 문제로 다투는 남자 여자가
같이 잘 수 있겠어?
내 생각이 틀렸어?
수지야, 그냥 보통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
(상구)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서로 또 보면 위로해 주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남들이 다 하는 거 난 안 하고 싶다고
(수지) 내 인생도 버거워
나는 내 분수를 잘 안다고
남의 인생까지 망칠 생각 없어
[한숨]
[익살스러운 음악]
[놀라며] 맞아
확실히
욕구 불만 상태야
위험해
[한숨]
[지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물소리가 솨 들린다]
(지호) 잘 읽었습니다
추억인 줄 모르고 빌렸네요
미안해요
(수지) 뭐 타고 가? 버스?
싫어, 지하철 탈 거야, 칙칙폭폭
(수지) 내가 일만 없으면 다시 데려다줄 텐데
아이고, 됐습니다, 우수지 씨
아니, 진심으로 그렇게 아쉬우면 올라가서 커피 한잔 주든가
(수지) 으음?
아니, 인간적으로 진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커피 한잔을 안 주냐?
[상구의 한숨] (수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구먼?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약았다?
약은 게 아니고 그냥 여자 친구 집을 구경 가고 싶다고
(상구) 그냥 네 방 냄새도 궁금하고
네가 벗어 놓은 잠옷도 궁금하고
그래, 그냥 너희 지저분한 화장실도 궁금해
(수지) 아니, 그런 게 왜 궁금해?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아니, 그냥 일상을 공유하고 싶으니까, 너랑 같이
(수지) 가, 차 끊기기 전에
나 가서 일해야 돼 [상구의 답답한 한숨]
아, 맞다, 김장 김치 좀 가져갈래? 지호가 줬는데
됐어, 김치 끊었어
[수지가 픽 웃는다]
[수지의 힘주는 신음]
[트렁크가 달칵 열린다]
[수지가 부스럭거린다]
(상구) 어? 너 거기서 뭐 하냐?
야, 너희 엄마 좀 이상하지 않냐?
뭐, 집에 뭐, 금덩이 숨겨 놨대? 참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트렁크가 탁 닫힌다]
(수지) 뭐 해? 가자
(상구) 어
[한숨]
(수지) 잘 가고 도착하면 문자해
(상구) 응
[버튼을 탁 누른다]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 저, 수지야 - (수지) 응?
혹시 집에 친구들 놀러 오기로 했니?
아니, 이 밤에 누가 와? 애들 다 바쁜데 [의미심장한 음악]
응
(수지) 왜? 또 커피 타 달라고?
나 피곤해 집에 가서 혼자 쉬고 싶어, 응?
그래
(수지) 잘 가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수지) 첫 번째, 집 밖에서만 만난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두 번째, 사생활에 대해 절대 묻지 않는다
"콘돔"
(수지) 주세요
그거, 제 거예요
[상구의 가쁜 숨소리]
(수지) 미안해요
제가 웬만하면 같이 잔 남자는 다 기억하는데
내가 너랑 자고 싶댔지 언제 연애하고 싶댔어?
그날은 그냥 내가 한번 찔러 본 거야
몸이 당겨서
(수지) 결혼? 전혀
나와 있었어?
[수지의 웃음]
[떨리는 숨소리]
[문이 달칵 닫힌다]
[세희의 한숨]
[잔잔한 음악]
(수지)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수지 모) 아, 요 밑에 슈퍼 좀 갔다 왔다
보리차라도 좀 끓여 놓으려고
(수지) 춥다, 엄마, 들어가자
(수지 모) 밥은 묵고 다니나?
(수지) 엄마랑 먹으려고 안 먹었지
[함께 웃는다]
[도어 록 조작음]
[문이 달칵 여닫힌다]
(세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혼란스러운 숨소리]
[호흡을 가다듬는다]
[훌쩍인다]
(세희) '그는' [한숨]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가자
랑아
왜?
아, 왜?
우리 헤어지자
(세희)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민아
내 물건 다 뺐어
네 것만 챙겨 가면 돼
(세희)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설명할게
아버지 전화 때문에...
(정민) 내 앞에서
너희 아버지 이야기 하지 마
[애잔한 음악]
내 앞에서
너희 가족 이야기
하지 마
우리
얘기 좀 하자, 어?
내 앞에서
'우리'라고 하지 마
행복해지지 마
(세희) 네 말대로
행복해지지 않았었다
[잔잔한 음악]
[지호의 웃음]
(세희) 네 말대로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었다
[지호의 웃음]
근데 오늘 그 자리에서
잠시
행복했다
잠시
다 잊었었다
같이 보실래요?
(세희) 나는 이 여자가
예쁘다
[지호의 웃음]
저 마음이
귀엽다
하지만
(지호) 안녕히 주무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세희) 그와 동시에
내가 두렵다
[문이 달칵 열린다]
내가 무섭다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하지만
이제 나도
오늘
같이
잘까요?
(세희) 행복해지고 싶다
[밝은 음악]
[지호가 코를 드르렁 곤다] (세희) 불편하셨죠?
(세희) 음...
(정민) 사랑하면 더욱더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좋네요, 그런 사이
[지호가 픽 웃는다]
(지호) 어떤 제작사 대표님이 찾아오셨었어요
(세희) 그때 이후로 소식 들은 거 없어?
(수지) 마 대표가 얘기한 연애가 이런 거니?
보이고 싶지 않은 남의 사생활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거?
(지호)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정민) 했었어요, 한 번, 결혼 같은 거
(지호) 그 사람이랑 저랑은 각자의 19호실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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