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3
(지호) 안녕히 주무세요
(세희) 네
안녕히 주무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세희) 오늘
같이
잘까요?
네
뭐라고?
헤어지자고
우리 헤어지자
왜?
왜냐고 묻잖아
자신이 없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기가 찬 숨소리]
그게 뭔 개소리야?
너 지금 무슨 연극 대사 하냐?
개폼 잡지 마, 심원석
(원석) 개소리 아니고 개폼도 아니고
진심이야
나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연락 줘
나 당분간 상구 형네 가 있을게
(호랑) 야, 너
네가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뭐? 자신이 없어?
7년 연애한 것도 모자라서 5년을 더 기다리라면서!
근데
근데 이제 와서 자신이 없어?
(원석)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
너만 7년 연애했냐?
나도 했어, 나도 너랑 똑같이 7년 동안 연애했어!
근데 넌 왜 항상 너만 피해 본 것처럼 얘기해?
왜 항상 너만 기다리는 것처럼 얘기해, 왜!
야, 나도 그깟 결혼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접고
내 꿈 다 포기하고
하루하루 숨 막혀 죽겠다고, 어?
[거친 숨소리]
저 넥타이
진짜 답답해, 알아?
(수지) 나와 있었어?
[수지의 웃음]
(수지)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수지 모) 아, 요 밑에 슈퍼 좀 갔다 왔다
보리차라도 좀 끓여 놓으려고
(수지) 춥다, 엄마, 들어가자
(수지 모) 밥은 묵고 다니나?
(수지) 엄마랑 먹으려고 안 먹었지
[수지 모와 수지의 웃음]
[혼란스러운 숨소리]
[고양이 울음]
[세희의 한숨]
[고양이 울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 (세희) 아... - (지호) 아...
[문이 달칵 닫힌다] 아유, 뭘 이런 걸 다...
(세희) 아유, 네, 감사합니다
[멋쩍은 숨소리]
[세희가 귤을 탁탁 친다]
음...
결혼하고 지호 씨 방에는 처음 와 보네요
그러게요
(지호)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치, 치워 놓을 걸 그랬네요
(세희) 아니요, 좋은데요
지호 씨 같고
지호 씨 냄새도 나고
제가
내, 냄새가 나요?
네?
아니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아니...
[세희의 멋쩍은 신음]
[냄새를 씁 맡는다]
[헛기침한다]
'19호실로 가다'?
아, 그거
제가 대학 때 좋아하던 책인데
요즘 다시 생각나서 읽고 있어요
무슨 내용인지 여쭤봐도...
(지호) 음...
한 부부가 있는데요
[잔잔한 음악]
완벽한 부부예요
남들이 보기에도 부족함 없고
자신들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
근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해요
그래서 남편이 2층에 아내의 방을 만들어 줘요
'어머니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서
[옅은 탄성]
근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 역시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 버려요
(세희) 흠
그래서 그 아내는 어떻게 하나요?
어, 그래서 그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호텔에
가족들 몰래 방을 하나 구해요
(지호) 그리고 가끔 몇 시간씩
그 방에 혼자 머물러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그 방은
완벽하게 혼자인 자신만의 공간이니까요
결혼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기도 한다는 거니까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죠, 충분히
(세희) 좋은 얘기네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죠
(지호) 사실 그 책 읽으면서 세희 씨 생각을 했어요
[잔잔한 음악] [지호의 옅은 웃음]
그러셨잖아요
인생에서 책임질 수 있는 건
이 집과 고양이
그리고 자신뿐이라고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그때는 그 말이 되게 와닿았거든요
저 역시 이 방 하나 겨우 책임질 수 있는 상태니까
근데요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을까요?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세희) 타인을 견디고 부딪히는 것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지호) 묻고 싶었다
인생에서 사랑은 한 번이면
충분하죠
(지호) 그 한 번의 사랑은 이미 지나간 게 맞냐고
그리고 지나갔다면
당신에게 이제 사랑이 다시 시작될 일은 없는 거냐고
[세희의 한숨]
이제 그만
잘까요?
늦었는데
네
(세희) 제 베개를 가져와야겠네요
(지호) 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냄새를 킁킁 맡는다]
[밝은 음악] [방향제를 칙칙 뿌린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빨리 감기 효과음]
[냄새를 킁킁 맡는다]
[떨리는 한숨]
(지호)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 나 술이라도 먹었어야 됐나?
[혀를 쯧 찬다]
아니야, 술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렇지?
[입소리를 쩝 낸다]
어른답게 정정당당하게 성숙하게
[익살스러운 효과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세희가 스위치를 탁 끈다]
[세희의 옅은 숨소리]
지호 씨
자요?
예
네
[떨리는 숨소리]
[잔잔한 음악]
(세희) 지호 씨
내가
안아 줘도 돼요?
네
지호 씨 냄새가 나네요
또 냄새가 나요?
[세희가 픽 웃는다]
체취라고 하죠? 정확히는
아니면 향기라거나
아, 그런 뜻의 냄새요?
지호 씨 작가 그만두길 잘했네요
(지호) 네?
(지호) 아직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농담인데
(지호)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세희) 아, 제가 농담에 소질이 좀 없어서
혹시 화났어요?
키스해도 돼요?
(지호) 오늘은 이 사람이 내 방에 온 첫날
네
(지호) 그걸로 충분하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코를 드르렁 곤다]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옅은 숨소리]
흠
[숨을 씁 들이켠다]
[밝은 음악]
흠
[기계음 효과음]
[기계음 효과음]
[칼질을 탁탁 한다]
흠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픽 웃는다]
[수지의 옅은 신음]
[도어 록 작동음]
(수지) 줘
[수지의 힘주는 신음]
일로 와
며칠 더 있다 가지
(수지 모) 아유, 됐다, 니만 일하나? 내도 일한다
(수지) 엄마, 이제 일 그만하면 안 돼?
(수지 모) 아이고, 뭔 또 쓸데없는 소리고?
[엘리베이터 도착음] (수지) 나 문래동에 분양받아 놓은 거
그거 내년에 입주할 수 있대
그러니까 내년에 서울 와서 같이 살자, 응?
(수지 모) 정 그래 내랑 살고 싶으면 니가 온나, 남해로
장난만 치지 말고
언제까지 이렇게 왔다 갔다 할 거야? 서울에서 남해까지
내가 걸어 다니나?
버스가 코앞까지 데리러 오고 데리고 가고 하구먼, 무슨
[수지의 한숨]
(수지 모) 어서 가라
뭔 소리야? 타, 빨리
됐다, 나는 지하철 타고 가면 된다
터미널까지 한 번에 가더구먼
무슨 지하철? 빨리 타 고집 피우지 말고
(수지 모) 니 아까 팀장한테 욕 듣는 거 내 다 들었다
마, 고마 빨리, 마, 출근해라, 마
(수지) 엄마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상구)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잔잔한 음악]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저는 저, 우수지 남자 친구 마상구라고 합니다
- (수지 모) 남자 친구예? - (상구) 예
[수지 모의 멋쩍은 웃음]
(수지 모) 아이고, 난 남자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
아, 이 친구가 워낙 과묵한 친구라서
(상구) 제가 어머님께 먼저 인사드려야 될 거 같아서
이렇게 찾아뵀습니다
아유, 키도 억수로 크고
(수지 모) 우리 수지도 한 키 하는데 우째 이래 딱 맞노?
제가 어릴 적부터 편식을 안 하고 시금치를 좋아해서요
[상구의 멋쩍은 웃음]
(상구) 재미없으...
아, 오늘 수지가 출근이 늦은 거 같은데
어머니, 오늘은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자, 타시죠
됐어요, 내가 모셔다드려
(수지 모) 어디, 저 차입니까?
(상구) 네 [수지 모의 웃음]
아, 어머니, 그거 주십시오, 제가
엄마...
(수지 모) 어서 출근해라, 니는
[어이없는 한숨] [차 문이 달칵 열린다]
[밝은 음악]
[상구의 멋쩍은 숨소리]
(상구) 아, 수지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네요
(수지 모) 무슨, 닮기는 하나도 안 닮았구먼
가는 과즙상, 나는 그냥
미인상?
[상구의 웃음]
수지 가가 내 젊을 때만 몬하지
(상구) 아니요, 지금도 어머니가 더 미인이신 거 같은데요?
[함께 웃는다]
- 네 - (수지 모)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아, 저는 그,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 그, 대표입니다
(상구) 아, 저희 주력 서비스는 그, 결말애라고 소개팅 애플인데
아, 그걸 뭐라고 설명해 드려야 될까? 어...
아, 그, 지호 씨 남편 아시죠?
그 회사 대표입니다
- 아, 지호 남편? - (상구) 예
(수지 모) 그 회사 사장이라고요?
네, 저랑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 회사 대표입니다
[상구가 살짝 웃는다] 그라믄 그쪽도 80이에요?
예, 올해 서른여덟 살입니다, 네
[한숨]
생각보다 많네예?
[상구의 멋쩍은 숨소리]
[픽 웃는다]
내보다 적으면 됐지, 뭐, 쯧
[발랄한 음악] [함께 웃는다]
(상구) 저, 혹시 어머니 저보다 어리신 거 아니시죠?
[함께 웃는다]
[코를 드르렁 곤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목이 캑 막힌다]
[옅은 숨소리]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세희) 저
잠시만
네
[문이 달칵 열린다]
[편안한 숨소리] [문이 달칵 닫힌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픽 웃는다]
오늘 잠은 다 잤네
[지호의 웃음]
[캔을 달칵 딴다]
[옅은 숨소리]
[한숨]
[드르렁 코를 곤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기분 좋은 신음]
[유쾌한 음악]
나 그냥 그대로 잔 거야?
이거 지금 실화니?
[고양이 울음]
(지호) 그 황금 같은 기회에
어떻게 자살골을 넣냐?
[지호의 답답한 신음]
[문이 달칵 닫힌다]
(세희)
아침?
[반짝이는 효과음] [잔잔한 음악]
[픽 웃는다]
[아삭거린다]
생양파를
넣으셨네
[웃음소리 효과음]
[밝은 음악]
생식인가?
[픽 웃는다]
[웃음]
[안내 음성]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합니다
[쓸쓸한 음악]
[버스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하차 벨이 울린다]
[버스 문이 쓱 열린다]
[지호의 당황한 신음]
[카드 인식음]
(지호) 안녕
(복남) 어, 왔어?
어...
- (복남) 누나, 이 사람 알아? - (지호) 어
누군데?
(복남) [웃으며] 난 모르지
누나 퇴근하고 어제 문 닫기 전에 와서 주고 갔어
이거 보여 주면 알 거라던데?
남자? 여자?
남자
누나한테 따로 연락한다던데?
[잔잔한 음악]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랑) 티본스테이크요?
어, 스테이크 굽기 어떻게 해 드릴까요?
(남자1) 뭐가 좋아?
(여자) 음, 미디엄 레어로 해 주세요
(호랑) 네, 미디엄 레어로 주문 넣겠습니다
불편하신 점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호랑) 14번 테이블 세팅 부탁해
(직원1) 네
매니저님 감기 걸리셨나 봐
(직원2) 그래?
(직원1) 응, 아까부터 계속 콧물 흘리시는데?
눈도 빨갛고
[호랑이 흐느낀다]
(호랑) 너 어디야? 나 진짜 화났어
야, 심원석, 빨리 집에 들어와
당장 전화받아, 뭐 하는 거야?
석아, 전화 좀 받아
지금 이거 진짜 끝내자는 얘기지?
(호랑) [흐느끼며] 읽씹이야
읽었는데도
답문을 안 해
[흐느낀다]
[한숨]
(배우1) 감사합니다
- (배우2) 감사합니다 - (배우1) 감사합니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휴대전화 진동음]
(남자2) 주말 잘 보내고 계세요?
[휴대전화 조작음]
(남자2) 인상이 정말 예쁘고 참하셔서 어떤 분일까 궁금했어요
(호랑) 아, 감사합니다
(남자2) 왠지 저랑 잘 맞으실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호랑) [살짝 웃으며] 그러셨구나
님도 인상이 좋으세요
[휴대전화 진동음]
(호랑) 알았으니까 얘기 좀 해
끝낼 때 끝내더라도 얼굴은 보고 끝내
(원석) 그럼 퇴근하고 매일 보던 곳에서 봐
[한숨]
[마우스 클릭음]
[새가 짹짹 지저귄다]
[코를 훌쩍인다]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어두운 음악]
(용석) 누가 하고 싶은 거를 처음부터 해?
하고 싶은 거는 잘된 애들이나 하는 거야
작가님, 나 좋아한 적 없어?
(지호) 하지 마
(지호) [힘겨운 목소리로] 감독님, 하지 마, 감독님
잠깐만!
(황 작가) 우리 너무 서로 소중하니까
이 팀워크 깨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는 거잖아
노력요, 작가님?
너 피 안 난다고 멀쩡하다고 그러니까 그냥 가던 길 계속 가라고
이렇게 억지로 질질 끌고 오는 게 이게 노력이에요?
정작 당사자는 피 흘리면서 아파 죽겠는데?
(박 감독) 윤 작가야
너 지금 여기가 무슨 대학교 동아리인 줄 아니?
그렇게 작은 일에 그렇게 징징대고 그러면
무슨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어?
그래서 저
이제 드라마 안 할래요
다시는 안 할래요
[잔잔한 음악]
어...
[살짝 웃는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민) 고마워요
아리차 제일 좋아하는 원두인데
대표님이 남자분이라고 하시던데
나라서 실망했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사실 좀 놀라긴 했어요
그러게요
작가님이 이쁜 귀걸이, 그분일 줄이야
인연인가?
[정민이 픽 웃는다]
(정민) 어제 왔다 가신 분은 우리 이사님이세요
이사님이 문자도 몇 번 남겼는데 답을 안 주셨다고
아, 네
카페 일이 좀 바쁘다 보니까
근데 여긴 어떻게...
아, 이사님이 한 번 전화를 하셨는데 여기 종업원분이 대신 받으셨대요
그리고 작가님 여기서 일하신다고 알려 주셨다더라고요
아...
[지호의 어색한 웃음]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작가님 대본 보고 뵈러 왔어요
제작사 대표 고정민입니다
[지호의 옅은 신음] [잔잔한 음악]
(정민) 박 감독이랑 하려던 대본을 우연히 봤어요
고시원 이야기
[정민이 살짝 웃는다]
어떤 분인지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같이 일해 보고 싶어요, 작가님하고
저, 이제 드라마 안 해요
보조 작가 일 그만둔 지 꽤 오래됐어요
죄송합니다
(정민) 음
보조 작가를 그만두신 거예요? 글 쓰시는 걸 그만두신 거예요?
[잔잔한 음악]
저는 작가님 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한숨]
(상구) 안녕, 수지?
(수지) 벨트 매
(상구) 네! [자동차 시동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민) 글도 더 이상 안 쓰시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글도
이제 안 씁니다
음
이유를 여쭤봐도 되나요?
결혼했어요
결혼하면서 일도 정리했고
아, 여기 카페 알바는
그냥 집에만 있기 심심해서 하는 거예요
아...
결혼하셨군요
네
죄송해요, 여기까지 찾아와 주셨는데
그럼
드시고 가세요
(정민) 근데 작가님
왜 제 귀에는 그게 되게 슬픈 변명처럼 들리죠?
[잔잔한 음악]
커피 잘 마셨습니다
혹시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 말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같이 일은 안 하더라도 술은 같이 마실 수 있잖아요
[끼익 멈춘다]
[한숨]
[차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상구) 왜 이렇게 화가 났어, 어?
뭐 하자는 거야?
뭐 하긴, 바쁜 여자 친구 대신해서
한가한 내가 어머니 모셔다드리고 왔잖아
그게 왜?
마 대표가 얘기한 연애가 이런 거니?
보이고 싶지 않은 남의 사생활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거?
그래서 사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거
비참?
[기가 찬 숨소리]
[한숨]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 서로 보여 주고 서로 사정 알고
그런 평범한 과정들이 어떻게 비참이야, 어?
나는 비참해!
(수지) 평범?
그게 나한테 얼마나 끔찍한 건 줄 알아?
'부모님 뭐 하시냐?'
'엄마 아빠 잘 계시냐?'
그런 평범한 질문들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다고
그럼 넌 그러겠지
'뭘 그렇게 꼬아서 듣냐?'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백 명이고 천 명이야
그런 세상에 사는 게 어떤 건 줄 알아?
그러니까 같이 살자고
(상구) 그 세상 내가 네 옆에 있겠다고!
옆에?
어떻게?
결혼이라도 하면
우리 엄마 같이 모시고 살 수 있어?
(수지) 대답해 봐
모시고 살 수 있냐고
하면 되지, 왜 못 해?
그래
마 대표님 부모님한테 뭐라고 할 건데?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몸 불편한 엄마 모시고 살아야 하는 그런 여자랑 결혼할 거예요'
그렇게 날 소개할 거야?
[애잔한 음악]
[떨리는 숨소리]
우리 엄마
그 몸으로 식당 일 하면서 혼자서 나 키워 냈어
그래도 다행히 공부 머리 있어서
월급 또박또박 주는 대기업에 들어갔고
이제야 겨우
모시고 올 수 있게 됐어
마 대표님네 집처럼 삼대가 집 짓고 함께 모여 사는
그런 평범한 세상 나는 몰라
우리 엄마
아프면 의지할 곳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고
죽어도 묻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게 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이야 마 대표
그러니까 나한테 헛바람 넣지 마
네가 그렇게 따듯하게 굴면
내가 다른 세상 욕심내게 되잖아
[떨리는 한숨]
[훌쩍인다]
(지호)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은 결국
[어두운 음악]
몰래 얻은 자신의 방을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지호) 그리고 여자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다
[지호의 심란한 한숨] 외도를 하고 있었다고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여자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도라는 큰 거짓말을 할 만큼
그 방을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걸까?
(수지) 난 이해되는데?
그 방은 남들이 아는 순간 아무 의미 없어지는 방이니까
(지호) 그렇다고 바람피운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수지) '지난 1년간 난 매우 지저분한 한 호텔방에서'
'낮 시간을 모두 보내 왔어요'
'그곳에 있으면 행복해요'
'난 사실 그곳 없이는 존재하지 않아요'
'자신이 그렇게 말할 때 남편이 얼마나 무서워할까'
'그녀는 깨달았다'
모르겠어?
(지호) 응
(수지) 그러니까 그냥
이해받지 못하는 걸 설명하는 것보다 미친년 되는 게 더 쉬우니까
사실 세상은 그게 더 편할 때가 많아
구차한 년보다 미친년이 낫지
[잔잔한 음악]
(지호) 나는 아까 그 대표님에게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지호) 이제 글을 쓰지 않느냐는 물음에
왜 결혼했다고 답했을까?
[안내 음성]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합니다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놀라는 신음]
[원석의 한숨]
[호랑이 훌쩍인다]
(원석) 그렇게 울 거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호랑) 안 울어
안 울 거야
(원석) 생각은 좀 정리됐어?
(호랑) 응
[훌쩍인다]
내가
잘못했어
[잔잔한 음악]
네가 뭘 잘못했는데?
소리 지르고 화내고
네가 힘들게 소파 사 왔는데 내가 짜증만 내고
(호랑) 그리고 또
[원석의 한숨]
결혼하자고 너 부담스럽게 하고
그리고 또...
그래서 다시 만나면 뭐가 달라지는데?
어?
다시 만나면 결혼하자고 안 그럴 거야?
네가 싫어하면
안 할게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원석) 너는 그냥 결혼이 하고 싶잖아!
왜 나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걸 숨겨?
숨기는 게 아니라
난 너랑 하고 싶으니까, 결혼...
(원석) 나랑 하고 싶은 게 맞아? 확실해?
네가 네 마음한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어?
무슨 말이야, 왜 그래?
너 다른 남자랑 연락했잖아
(원석) 봤어
우리 회사 애플로 채팅한 거
그거, 그거 그냥 해 본 거야
네가 다니는 회사니까 그냥 깔아 본 건데
거기서 먼저 연락이 와서...
어쨌든 했잖아, 연락
그거 그냥 한 거야, 진짜 별 뜻 없이
그게 왜 별 뜻이 없어?
너는 결혼이 하고 싶고
결혼할 여자를 찾는 남자랑 연락을 했어
근데 그게 아무 뜻이 없다는 거야?
[흐느끼며] 아니야,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
(원석) 마음?
마음도 결국 사실 관계야
요 몇 개월 동안 우리 어땠니?
넌 입만 열면 결혼 난 눈만 뜨면 도망가기 바빴어
넌 항상 나한테 부담을 줬고
난 너를 못 채워 줬어
그게 우리 팩트고 마음이야
그리고 네가 그 남자한테 답문한 것도 네 마음의 일부야
너도 이제 네 마음에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쓸쓸한 음악]
이제 그만 정리하자
나도 힘들다
짐은 너 없을 때 가서 뺄게
[호랑의 떨리는 숨소리]
[다급한 숨소리]
[호랑이 흐느낀다]
(호랑) 안 돼, 원석아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나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
나 혼자서 어떻게 살...
나 혼자서...
너 없이 나 혼자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가?
제발 가지 마
나 너 없으면 죽어
(원석) 나 없어도 너 안 죽어
힘든 건 잠깐이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세희) 오늘 하루는 별일 없으셨습니까?
(지호) 네, 뭐, 평소처럼 평화롭게
세희 씨는요?
저도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 별일이 있었어요
(지호) 어떤 제작사 대표님이 찾아오셨었어요
제작사요?
(지호) 네, 드라마요
같이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셨어요
아, 그럼 다시 일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요, 제 마음을, 아직은
[잔잔한 음악] (지호) 남자 이름 같으시죠?
여자분이신가요?
(지호) 네
아주 단단한 여자분이셨어요
단단한데 뭐랄까?
그 단단함으로 주위를 해하는 게 아니라
품어 줄 것 같은
흔치 않은 분이셨어요, 그 대표님
[살짝 웃으며] 이름은 저처럼 흔한데
(세희) 그러네요
흔한 이름이죠
[휴대전화 진동음]
응, 지호
어?
진짜?
(지호) 랑아
공원 벤치에 이러고 있는 거 데리고 왔어
(수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못 걷겠다 그래서
랑아
호랑
(지호) 안에 들어가서 좀 눕자, 응?
그래, 들어가자, 감기 걸려
못 들어가겠어
저 방에
못 들어가겠어
[애잔한 음악]
[원석이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원석의 한숨]
(상구) 어, 진짜 왔어?
(원석) [술 취한 목소리로] 어, 어? 세희 형이다
남세희다 [원석의 웃음]
봐요, 봐요, 내가 전화하면 바로 온다니까, 우리 세희 형은
많이 마셨어?
어
(원석) 한잔 받으세요, 저의 멘토님
멘토?
(원석) 그럼!
이제 형 아니고 우리 세희 형이 제 멘토예요
(상구) 야, 너 얘가 뭐라 그러디?
너 얘한테 뭐라 그랬냐?
세희 형이 솔직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지금 말씀하신 문장들의 주어가
모두 다 원석 님 자신이네요
상대방이 주어인 경우는 없군요
그래서 한번 주어를 바꿔 봤어요
랑이는
나 때문에 웃는다?
[애잔한 음악] (배우1) 어쩌면 그녀와 난
영원히 닿지 않는 평행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랑이 훌쩍인다]
(원석) 랑이는
나 때문에
행복하다?
원석아, 5년이면 나 서른다섯이야
(호랑) 연애만 12년을 하자는 거야?
(원석) 그리고 랑이는 나 없으면 못 산다?
(원석) 그렇게 주어를 상대로 바꿔 봤더니 답이 의외로 간단하더라고요
애초에 답을 도출해 낼 공식 자체가 틀렸던 거지
7년 동안 나는
그냥 내가 행복한 길만 선택하고 있었네요
[원석의 한숨]
[상구의 한숨]
인생이 너무 길어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봐
(지호) 그러게
앞으로 더 첩첩산중이겠지?
너도 오늘 심란해 보인다?
나 오늘 제작사 대표가 찾아왔었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근데 내가
글을 왜 안 쓰냐는 질문에
'결혼했어요' 이렇게 대답했어
나 왜 그랬을까?
(수지) 음
그냥, 뭐,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겠지
사실 결혼이라는 거 사회에서 좋은 방패가 될 때가 있잖아
안온하고 단단한 방패
근데
순간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뭘 비겁까지야
남들한테 묻어가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인생 가끔 짝다리 짚고 서 있을 곳도 필요하니까
우수 너도
(지호) 짝다리 짚고 설 때가 있어?
어디?
마 대표님?
내 다리는 이미 세 개라서 짝다리 짚을 필요가 없어
응?
우리 엄마 다리가 내 다리니까
[잔잔한 음악] (수지)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해야겠다
[가게 안이 시끌벅적하다]
(상구) 너는 왜 애한테 그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해 가지고, 쯧
(세희) 그거 사실 내가 한 말은 아닌데
네가 한 말이잖아, 나한테
12년 전에
[잔잔한 음악]
(상구) 세희야
[세희가 술병을 탁 잡는다]
[세희의 한숨]
[상구의 시원한 숨소리]
[세희의 옅은 숨소리]
인간은 어차피 다 졸라 이기적인 동물이야
네가 마음 떠난 사람한테 미련 갖는 거?
너 그것도 그, 욕심이다
내가 걔랑 있으면 좋고
내가 걔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
나는 걔가 없으면 막 못 살 거 같고 그런 거잖아, 지금
근데 정민이 걔는 아닌 거야
너랑 있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고
네가 없어도 그냥 살 만한 거야
그래서 떠난 거야
(상구) 아, 그게 여기였구나
시간 진짜 빠르다
[상구의 한숨]
야, 너 혹시 그때
뭐, 둘이 다른 일 있었냐?
아니, 둘 다 갑자기 그냥 휴학 신청하고
정민이는 복학도 안 하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좀 그러네
너 혹시
그때 이후로
소식 들은 거 있어?
없지
아니, 친구들하고 애들하고도 다 연락 끊고
(상구) 아, 그, 뭐, 미국 갔다는 얘기는 들은 거 같...
[원석의 힘겨운 신음] 야, 거기다 토하면 안 된다
야, 가만있어, 화장실 가서 해
일어나, 자, 가자
[원석의 힘겨운 신음] [상구의 당황하는 신음]
야, 참아 [쓸쓸한 음악]
[차 문이 달칵 닫힌다]
(수지) 뭐 좀 안 먹어도 되겠어? [자동차 잠김음]
(호랑) 괜찮아
나 먼저 들어가 있을게
(수지) 침대에서 자, 바닥에서 자지 말고
(상구) 아...
[상구의 한숨]
[잔잔한 음악]
(수지) 원석이는?
(상구) 아, 내가 잘 데리고 있어
수지야
어머니한테 온 문자 보고 너희 집 몰래 쫓아갔었어
네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걸까 봐
계단을 미친놈처럼 뛰어 올라갔어
[상구의 헛웃음]
졸라 구리지?
네 말대로 난 네 세상을 모르나 봐
난 그냥 평범하게 모난 데 없이 자랐어
그래서 사실
네가 좀 어려워
네 그 뾰족함이 버거울 때가 있어
근데 있잖아
나는 네가 많이 좋나 봐
[잔잔한 음악]
너의 그 뾰족한 창들이 나를 막 찌르는데도
그게 너무 아픈데도
그렇게 나라도 찔려서 그 창이 무뎌진다면
그거 참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도 오늘처럼 불쑥 그렇게 네 방 들여다보지 않을게
그리고 네 세상 다 아는 척 행동하지도 않을게
근데 너도
세상 앞에 좀 더 제대로 서 봐
내가 볼 때 넌 세상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어
항상 도망치고 아니면 싸우고
회사 핑계로 엄마 방패로
[수지의 의아한 숨소리] [잔잔한 음악]
그렇게 세상을 비난만 하고 살았어
한 번쯤은 제대로 세상을 붙잡고 서서
얼굴 마주 보고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시작하면
난 네 옆에서 버틸 준비가 돼 있어
알았어?
[한숨]
카리스마 쩌네, 마상구
아유, 하루에 두 번 털리는 거는 내가 좀 무서우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가 후퇴하겠습니다
그럼 또 봅시다, 우수지 씨
안녕
아유, 우수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아유, 아유 [차 문이 달칵 열린다]
[기가 찬 숨소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딸랑거리는 효과음]
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캐릭터야
치
[반짝이는 효과음] [잔잔한 음악]
(지호)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19호실이 있다
[수지의 웃음]
(지호) 아무리 가까워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방
[TV에서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 어? - (지호) 어?
[함께 탄식한다]
근데
왜 바닥에 앉으세요, 저번부터?
네?
아...
(지호) 저는 원래 바닥에 앉는 게 익숙해서 이게 더 편해요
근데 왜 계속 소파에 앉으셨어요?
어...
그땐 그러기에는
이 집이 좀 불편해서
세희 씨도...
불편하셨죠?
[살짝 웃는다]
(지호) 아무리 편해져도
초대할 수 없는 그런 방
[고양이 울음] (지호) 주무세요
네, 지호 씨도요
(세희) 아...
아깐 경황이 없어서
아, 맞다
저, 지호 씨
네
그 드라마라는 거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 결혼 때문에 망설이시는 건 아니죠?
네?
(세희)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결혼이 뭔가
지호 씨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거라면
그러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약속드렸다시피
저는 지호 씨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네
[문이 달칵 열린다]
(지호) 오늘은 저 사람도 나도 왠지
(지호) 자신만의 19호실에서 쉬어야 하는 날인 것 같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나른한 신음]
호랑, 아침 뭐 먹을래?
(수지) 응?
[문이 달칵 닫힌다]
집에 있었네?
잠깐 들렀어, 짐 싸러
(원석) 아니, 네가 왜 짐을 싸? 내가 나가면 되는데
생각해 봤는데 내가 나가는 게 나을 거 같아
네가 그냥 여기 있어
아니, 저, 네가 왜 나가? 보증금은 네가 냈잖아
나중에
이 집 만기 되면 그때 입금해 줘
[문이 달칵 닫힌다]
(원석) 호랑아
너
괜찮은 거지?
응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그래, 다행이네
갈게
[잔잔한 음악]
네 말이 맞아
나 이제
내 마음한테 솔직해져 보려고
[차 문이 탁 닫힌다]
[남자2의 힘주는 신음]
[차 문이 탁 닫힌다]
(지호) 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시간
(비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정민) 네
글을 쓰고 싶어요
(지호)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그게 제 방향이에요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
그런데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정민) 뭔데요?
어디 계약 걸려 있는 게 있어요?
아니요
일을 그만둔 계기가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조감독한테
성폭행당할 뻔했어요
(정민) 음...
그 일부터 해결하고 싶어요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요
그렇다면
음, 그게 좋겠네요
어떤 식의 해결을 원하세요, 작가님?
그걸 상의하려고 찾아왔어요
어떤 식의 해결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죠
(정민) 좀 복잡해도 고소를 진행하는 방법과
아니면
뭐, 간단하게 없애 버리는 방법
[익살스러운 음악]
없애요?
(정민) 네, 저는 주로 후자를 택하는 편인데
저희 직원들이 그런 일을 좀 하거든요
(지호) 저, 저분들이 어떻게...
뭐, 갑자기 놀래서 죽여 버리거나
(정민) 아니면 웃겨서 죽여 버리거나
아, 가끔은 그, 답답해서 죽는 경우도 있어요
[정민이 피식 웃는다] [정민이 손뼉을 짝 친다]
아, 우리 농담도 텄으니까 뭐,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지호) 네
[살짝 웃는다]
(지호) 근데 대표님
농담 진짜 못하시네요
[입소리를 쩝 낸다]
그게 매력이라고들 하던데
[정민이 살짝 웃는다] (지호) 네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민) 나 왔어
(가게 주인) 어, 어서 와
[지호가 살짝 웃는다]
(정민) 여기는 메뉴판이 없어요
어떻게, 제가 좀 알아서 시켜도 되죠, 작가님?
(지호) 네, 그럼요, 좋아요
(정민) 삼촌, 우리 여기 파전하고 골뱅이탕
그리고 막걸리 3통
3통요?
아, 죄송해요
삼촌, 4통
[정민의 웃음]
[살짝 웃는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민) 짠
[시원한 숨을 내뱉는다]
[픽 웃는다]
작가님, 술을 참 맛있게 드세요
[웃으며] 아
술이 맛있네요, 오늘
오랜만이라 그런가?
남편이랑은 술 잘 안 드세요?
아, 남편...
[살짝 웃는다]
(지호) 우리는 맥주만 마셔요, 축구 보면서
(정민) 음
되게 특이한 사람이거든요
취한 것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서로 많이 조심하나 보네요, 부부라도
(지호) 네, 그렇죠, 많이 조심하죠
그 사람이랑 저는 각자의 19호실이 있거든요
19호실요?
네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그런 영역요
아, 좋네요, 그런 사이
정말요?
(정민) 그럼요
부부라도 그런 게 필요하죠
사랑하면 더욱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죠
[헛기침]
저, 대표님은 왜 결혼 안 하셨어요?
예? 예, 저요?
[정민의 웃음]
(지호) 네
아니, 이렇게 예쁘고 단단하신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하셨나 해서
그냥, 그냥 궁금해서요
제가 결혼을 해서 그런가, 더
[놀라며] 실례되는 질문이었나요?
아니요
저도 어릴 때는 궁금했어요
(정민) '씁, 저 언니는 왜 저 나이까지 결혼을 안 했을까?'
그땐 결혼은 언젠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줄 알았으니까
했었어요, 한 번, 결혼 같은 거
학교 때 CC였던 친구랑 같이 살았었어요
동거요?
[픽 웃는다]
와, 쩌네요
[웃음]
뭐, 그런 멋진 의미의 동거는 아니었고
사귀다가 아이가 생겼었어요
(정민) 그래서 결혼하자 그러면서 같이 살았었죠
뒤가 궁금하죠?
네, 솔직히
아이가 잘못되면서 헤어졌어요
[잔잔한 음악]
그 집에서 반대하기도 했고
아, 이거 작가님이 너무 투명한 사람이라
나까지 괜히 투명해지네
(정민) [살짝 웃으며] 제가 이래서 작가님 같은 분들하고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어유, 쯧
제가 괜히
실례되는 질문을 했네요
좋아요
이게 한 해 한 해 나이 드는 것의 특권이죠
아픔도 이제는 다 추억이니까
(정민) 감사합니다
(지호) 어쩌면 나는 그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잔할까요?
네 [정민의 웃음]
(지호) 짠 [함께 웃는다]
[정민의 시원한 숨소리]
(지호) 이 사람이 [함께 웃는다]
그의 19호실이라는 걸
그리고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지호) 그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자신의 그 방을
마주해야 한다는 걸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지호) [술 취한 목소리로] 나는
딱 보는 순간 알았다니까 [정민의 아파하는 신음]
대표님이 나의 스타일이라는 걸 [지호의 웃음]
(정민) [술 취한 목소리로] 그랬어? 고마워
쯧, 나도 작가님이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아주 기분이 좋다 [함께 웃는다]
[지호를 툭 치며] 그리고 작가님
그 새끼 아무 걱정 하지 마
내가 그냥 아주 혼꾸멍내 줄 테니까
아, 나쁜 새끼
아, 그딴 새끼들은 그냥 이렇게 딱 잡아 놓고
그냥 구실을 못 하게 거기를 그냥 콱 그냥 잘라 버려야 돼
새끼, 진짜 나쁜 새끼, 씨 [지호의 감탄하는 웃음]
- (지호) 대표님! - (정민) 응
(지호) 미쳤어, 미쳤어 [정민의 아파하는 신음]
미쳤어, 미쳤어, 대표님
아유, 작가님, 아프다 [지호의 웃음]
(비서) 저, 대표님, 거의 다 온 것 같은데요
- (지호) 콱! 으이구 - (정민) 그냥 콱, 그냥
[지호와 정민의 웃음] (비서) 작가님, 여기 맞나요?
(지호) 네?
어,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세워 주시면 돼요
(비서) 아, 네
(정민) 아니, 작가님, 여기 맞아요?
(지호) 아, 저, 대표님, 저, 저, 사실, 그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일단, 일단 갔다 올게요
[웃음]
[편안한 한숨]
참 좋은 사람이야
참 좋은 사람인 거 같죠?
(비서) 네
(지호) 왜 좋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오는 걸까?
[정민의 한숨]
[한숨]
[개운한 신음]
응?
(지호) 왜 인연은 항상
예상치 못해서
슬픈 걸까?
[잔잔한 음악]
당신과 나의 19호실이
열려 버렸다
(세희) 오늘도 같이 잘까요?
(상구) 고정민? [세희의 비명]
(세희) 어떻게 얘기해도 상처가 될 거야
지호 씨는 투명한 사람이니까
[수지의 행복한 신음] (지호) 사랑이 생기고 나서부터
상처는 더 커져만 가는 걸까?
(세희) 내가 지호 씨 남편인 거 너한테 영향이 있을까?
지호 씨 글 쓰는 일에
(상구) 아니, 고백한다며, 지호 씨한테
(세희) 네가 3개 다 느끼하다며
(세희) 내가 걱정했던 건 단 한 사람
우리...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