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와 조이 15
(승) 야, 다쳐, 다쳐, 다쳐
(도수) [웃으며] 아버지, 아버지 [어두운 음악]
(승) 우리 아들 다쳐 [도수의 신난 탄성]
[승의 웃음] (도수) 아버지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승) 우리 아들이 좋다니까 이 아비도 기분이 좋구나
[승과 도수의 웃음]
(조이) 설마 여기가
박승 대감의 집인 거야?
(하인1) 품삯 여기 있네
(조이) 아
[엽전이 잘그락댄다] 고맙습니다
(하인1) 아주 야무지게 잘 만들었네
도련님 옷도 좀 빨리 부탁하네
예
[하인1이 버선을 부스럭댄다]
아유, 아유, 아이고, 배야 [의미심장한 음악]
죄송합니다, 제가 급해서 그러는데
뒷간 좀 써도 되겠습니까?
뒷간?
아유, 갑자기 배가…
[조이의 힘겨운 신음] (하인1) 저쪽인데 얼른 해결하고 가게
[살짝 웃는다]
예, 알겠습니다
[조이의 헛기침]
[딱지 치는 소리가 난다] (아이1) 아! 안 넘어갔다
- (아이2) 아, 이게 아닌데 - (아이1) 앗싸
(아이2) 이야!
(아이1) 아! 아까워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조이) 나리가 목숨을 걸고 찾아낸 증좌들이…
[코를 흥 푼다]
[노랫소리가 들린다]
[하인2가 말한다]
(승) ♪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 [도수의 즐거운 소리]
(승과 도수) ♪ 새 중에는 봉황새 ♪
(조이) 씁, 술에 취했나?
(승과 도수) ♪ 쑥국쑥국 ♪
[승과 도수의 웃음]
(조이) 한 나라의 영의정이라는 자가
저러고 놀고 있으니
- (도수) 아버지 - (승) 어
나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너 몸 아프다고 속전을 주고 꺼내 왔는데
금방 돌아다니면 좀 그렇지 않으냐
[승의 웃음]
(도수) 그럼 아버지
내 별장은요?
(승) 응?
(도수) 구경 가고 싶은데 [승의 웃음]
그럼 우리 바람도 쐴 겸
그, 한 바퀴 휙 돌고 올까?
아, 그래도 돼요? [승의 웃음]
[도수의 웃음] 되지, 우리 아들이 하고 싶다는데
(승) 되지, 되지, 되지
[승의 웃음] (하인1) 대감마님
새 버선을 지어 왔습니다요
(승) 어, 어, 어, 어
어, 여기 두게 [도수의 힘주는 소리]
[승이 중얼거린다]
보자, 보자
아이고, 아유 [승의 웃음]
버선이 이 선이 아주 잘 나왔구나
[승의 웃음]
[승의 힘주는 소리]
이, 꼭 맞는구나
[승의 웃음]
[긴장되는 음악] (조이) 응? 뭐지?
[웃음]
[웃음]
저 안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까지 꽁꽁 몸에 지니고 있는 거지?
[힘주는 소리]
[승의 피곤한 소리]
[새근거린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놀라며] 서찰이다
[긴장되는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도수) 너
♪ 쑥국 쑥쑥국 ♪
[도수가 살짝 웃는다]
[기분 좋은 탄성]
[코를 드르릉 곤다]
[조이의 안도하는 숨소리]
짐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을 거예요
(한기) 거긴 완전 다른 세상이라
짐 대부분이 쓰레기가 될 텐데
(덕봉) 쓰레기를 끌고 가도 우리가 끌고 갈 테니
오지랖은 사양하네
배는 구했는가?
그믐날 오시에 포구에 가면
곡두 사환이었던 윤 씨가 있을 거예요
(한기) 포구에서 윤 씨에게 안내를 받으면 돼요
약조 지켜 줘서 고맙네
나도 그동안 안 쫓아내 줘서 고마워요
(한기) 각오야 되었겠지만
어떻게 도착은 하더라도
그곳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이곳에서 핍박받고 사는 데 적응할 수도 없잖은가
그 깡으로 버텨 보는 건 어때요?
버티라?
(덕봉) 자네 생각엔 버티면 이 나라가 바뀔 거 같은가?
[무거운 음악]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한기) 어쩌겠어요
의금부로 자진 출두 하기로 했다지?
태서 그 미친놈이 그러자네요
자복을 하면 정상 참작이 되어
형량이 감해질 수도 있을 걸세
당신이야 사람을 해치진 않았지만
난 아니에요
(한기) 감량을 바랄 순 없어요
그저 우리의 자백으로
박승의 실체가 밝혀지길 바랄 뿐이지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참회랄까?
각오가 되었으면 되었네
(한기) 한데
나도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헌신하는 거죠?
여기 여인들, 노비들
누구기에?
이들은 그저 나나 자네와 같은 사람들일세
여인이고 노비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살 권리가 있고
우린 그걸 지키기 위해 연대한 거네
헌신이 아닌
(맹수) 한기야, 가자
(한기) 이제 가 봐야겠네요
부디 뜻을 이루시길 바랄게요
[문이 탁 여닫힌다]
[풀벌레 울음]
[산새 울음]
- (익위사) 늦었네 - (덕봉) 아닙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익위사) 무슨 일이 있는가?
원래 기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덕봉) 물심양면 지원해 주셨는데
터전을 잘 지키지 못해 송구합니다
(익위사) 내게 송구할 일이 무엇인가
난 심부름꾼일 뿐인데
하여 이렇게 떠나면
언제 또 인사를 드릴 수 있을지 몰라
청을 드립니다
[차분한 음악]
지금껏 저희를 후원해 주신 분이 누구신지
알려 주실 수 없습니까?
언급 않기로 약조하지 않았나?
받기만 하는 자에게도 체면은 있어서 그럽니다
(덕봉) 이제 이 땅을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최초의 후원자는
돌아가신 세자 저하셨네
[의미심장한 효과음]
(익위사) 고향에 돌아온 여인들이
두 번 내쳐지는 것이 안타까워 돕고자 하신 것이지
(덕봉) 하나
저하께서 훙서하신 지가 언제인데…
(익위사) 그 후 저하의 의형제나 다름없는 분이
저하의 유지를 이어받아 후원을 하고 계셨네
그분이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한숨]
홍문관의
[웅장한 효과음]
(익위사) 라이언 나리일세
(승율) 홍문관 부수찬 라이언이라는 나리십니다
충청도 암행어사였을 당시 조이와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조이 곁에 계신 걸로 알고 있고요
[문이 탁 열린다]
(조이) 비령아, 비령아 [문이 탁 닫힌다]
[조이의 가쁜 숨소리] (비령) 아, 무슨 일이야?
그 버선
(비령) 어?
그 버선을 주문한 사람이 박승 대감이었어
그럼 지금 박승 대감 집에 다녀온 거야?
뭐라꼬?
(광순) 박승 대감 집에 갔다 왔다꼬?
예
(비령) 그럼 버선목 안쪽에 주머니를 달아 달라고 한 게
박승 대감이었던 거네?
어, 박승 대감이
내가 만들어 간 버선으로 갈아 신는 걸 봤는데
무슨 서찰 같은 걸 넣어서 몸에 지니고 있었어
억수로 중요한 서찰인갑다
버선에 넣어서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면은
[의미심장한 효과음]
근데 이 짚신
(조이) 왜 여기 한 줄만 다르죠? [의미심장한 음악]
(비령) 어?
[짚신을 부스럭댄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광순) 이게 뭐야
[광순이 의아해한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이거는
이거는 탕약 성분이다
(용균) 사향이 한 돈 반에 백렴이 두 돈
[용균이 당황한다] (용균) 광순아 나는 잘못 처방한 적이 없다
나는 당귀도 한 냥을 정확히 넣었고 초오도…
아버지가
탕약 성분을 증거로 남기신 거다
세자 저하의 독살을 알릴라고
[새들이 지저귄다]
[문이 탁 열린다] (승) 아, 도수야, 도수야
[승의 다급한 소리]
이거, 이거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왜요, 아버지? 매일 먹던 건데
(승) 이건 초오가 든 앵속각이야
[어두운 음악] 초오요?
(승) 음
이, 진상하려고 특별히 만든 거야
그러니
이걸 먹거라
[승의 웃음]
근데 진상이면…
이제 주상도 세자 곁으로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승이 살짝 웃는다]
아무튼 이건 초오가 든 거니
절대로 손대지 말거라, 알겠느냐?
[승의 웃음] 예, 알겠나이다
[도수가 살짝 웃는다] [무거운 효과음]
[탁 소리가 울린다]
[달칵 소리가 울린다]
[이언의 힘겨운 탄성]
내 길만 헤매지 않았어도 금방 집에 왔을 것을
(이언) 괜히 엉뚱한 배를 타 가지고 말이야
[이언의 지친 숨소리]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지친 숨소리]
"박승"
[한숨]
[한숨]
[배가 꼬르륵댄다]
[발랄한 음악]
[헛기침]
에헴
[강조되는 효과음]
[이언의 힘주는 숨소리]
[헛기침]
씁, 하
[만족스러운 소리]
[차분한 음악]
[한숨]
[이언의 만족스러운 소리]
[이언의 헛기침]
[익살스러운 음악]
(덕봉) 분명 멋진 사내라 하였는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언이 탁탁 숟가락질한다]
실례합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언) 아, 뉘신지…
(덕봉) 혹시 라이언 나리 되십니까?
[흥미로운 효과음]
[헛기침]
[헛기침]
(이언) [헛기침하며] 그렇소만
(육칠) 오, 이언 나리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이언이 호응한다]
[옷을 쓱쓱 털며] 아유 옷이 넝마가…
그래, 치종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느냐?
아, 그…
[흥미로운 음악]
[구팔의 다급한 소리] 뉘신지…
(구팔) 나리, 나리, 저…
누구세요?
[이언의 헛기침] 아, 그
치종의가 광순 누님 아버지랍니다
[구팔의 한숨] (조이) 이언 나리, 오셨습니까?
제가 글쎄 박승 대감의 집에서 그…
[흥미로운 효과음]
어머니
[강조되는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이언) '어머니'?
- (육칠) '어머니'? - (구팔) 엄마?
[난감한 숨소리]
- (육칠) 장모님? - (구팔) 아이…
[이언의 멋쩍은 웃음]
(구팔) 아니, 조이 누님…
(비령) 어, 어…
(이언)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흥미로운 음악]
조이의 어머니가 자네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자네의 후원자가 저하시고
저하의 치종의의 딸이 자네고
자네 옆에 비령이가 있고
비령이의 오라버니와 동생은 자네에게 가 있고
자네의 후원자는 이제 나인데 내 옆에 조이가 있고
조이 옆에 구팔이가 있고 구팔이 옆에 육칠이가 있고
육칠이 옆에 자네가 있는데 자네 아버지는 저하를 모셨었고
저하는 나에게 있어서 큰형님 같은 분이신데
또 그분이 자네 후원자였고
그러니까 자네는 조이의 어머니신데
그럼 자네는 나에게 있어…
(육칠) 도련님 그만, 그만, 그만, 아유!
[육칠이 거친 숨을 내뱉는다]
어, 어, 어, 그래 [익살스러운 음악]
[조이의 난감한 숨소리] (이언) [헛기침하며] 그래
여하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 모두 특별한 인연으로 이곳에 모였구나
[육칠이 살짝 웃는다]
(구팔) 세상에 이런 인연이 다 있네
우리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언) 여기 있는 모두는
세자 저하의 은혜를 되갚아야 되는 자들이다
필시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분명 하늘의 뜻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인
박승을 처단하라는 것이다
[이언의 한숨]
[부스럭거린다]
이것은
박승이 저하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입막음하기 위해
치종의를 협박하고 써 준 서찰이다
[광순의 힘주는 소리]
[의미심장한 음악]
(승) 시약청이 신설된 이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함구하고
동궁전에 탕약을 들이도록 협조하는 대가로
딸 라광순의 신변에 일체의 위협도 가하지 않을 것을 약조한다
[차분한 음악]
(이언) 안타깝게도 자네에겐 이것이
아버지의 유서가 되고 말았지만
자네 아버님은
딸인 자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부지가 내를 버린 줄만 알고
아부지를 마이 원망했습니더
[울먹이며] 근데 내를 보호할라고…
[광순이 훌쩍인다]
(광순) 이건 아부지 유품입니다
이게 뭔가?
[천을 탁 집는다]
세자 저하의 탕약에 들어간 성분입니다
(광순) 독살의 증좌로
아부지가 유품으로 남기신 거 같습니다
(이언) 박승의 인장이 찍힌 서찰
치종의의 인장이 찍힌 탕약 성분 기록
그리고 약조를 지킬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박태서의 자복까지 합해지면…
아마 지킬 겁니다
(덕봉) 그들이 자복을 하러 가는 걸
제가 갑비고차에서 보았습니다
지금쯤
박태서와 지맹수, 강한기도 한양에 도착했을 겁니다
[어두운 음악] (도수) 우아, 아버지 이게 다 우리 거야?
(승) 그래, 이게 다 네 거다
[도수의 신난 탄성] 아유, 다쳐, 다쳐, 이놈아
[승의 웃음] - (도수) 빨리 - (승) 그래그래
[도수의 신난 탄성] (승) 아유
우리 도수가 좋아하니 나도 좋구나, 응?
[승의 웃음]
생각보다 더 좋은데요?
뭐가 그렇게 너무 좋으냐?
다 마음에 들어요 [승의 웃음]
(도수) 무엇보다
소자는 아버지랑 같이 나들이 나온 것이
가장 마음에 드옵나이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
[웃음]
(승) 아유, 아유, 내 새끼
[승의 웃음]
아이고, 내 새끼
이 아비도 너랑 같이 나와서 너무 좋구나
가요, 아버지
(승) [웃으며] 그래
[새들이 지저귄다]
[한숨]
[맹수가 태서를 툭툭 친다]
(맹수) 미안해할 거 없다
그렇잖아도 말종이 그 자식 눈에 밟혔는데
(한기) 나도 마찬가지야
여인이라고 다들 반대할 때
태서 네가 나 받아 줬잖아
그때 이미 정했다
태서 네가 사약을 먹으래도 먹을 거라고
야, 지맹수
너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 거 같냐?
(맹수) [살짝 웃으며] 당연히 호랑이지
(한기) [헛웃음 치며] 치
퍽이나 호랑이로 태어나겠다 고양이면 몰라도
(맹수) 이게, 씨 [한기가 고양이 울음을 흉내 낸다]
[한기의 웃음]
(한기) 너는 고양이가 더 잘 어울려
[맹수가 호랑이 울음을 흉내 낸다] [한기가 고양이 울음을 흉내 낸다]
[무거운 음악]
(태서) 잠시만, 먼저들 가 있어
(승) 아, 도수야
- (도수) 아버지 - (승) 아, 천천히 가 [도수의 웃음]
(승) 이 녀석아, 천천히, 아휴
[웃으며] 도수야, 도수야
아유, 아유, 이 녀석
아, 조심해
[승의 웃음]
[가쁜 숨소리]
(태서) 어머니!
[가쁜 숨소리]
어머니
[흐느낀다]
어머니
누가 뭐래도
어머니는 제게 어머니세요
네 살배기가 뭘 기억하겠냐 해도
저는 다 기억해요
어머니가 절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그리고 그건
진짜였다는 거 알아요
[연신 흐느낀다]
어디에 계시든
아프지 마세요
태서야!
[흐느낀다]
(벼루아짐) 태서야
[긴장되는 음악]
[퍽 찌르는 소리가 난다]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도수의 웃음]
(도수) 오늘이 진짜 길일인가 봐
널 여기서 다 만나고
[도수의 웃음]
[도수가 칼을 쓱 뺀다] [도수의 기분 좋은 숨소리]
[태서의 신음]
[도수의 웃음]
[도수가 퍽 찌른다] [태서의 신음]
(승) 아, 도수… [도수의 가쁜 숨소리]
[웃음]
도, 도, 도수야, 너…
도, 도수야, 도수야
[승의 놀란 숨소리]
[승의 힘주는 소리]
[무거운 효과음]
[무거운 음악]
(도수) 아, 급해서 그랬나이다 급해서
아, 태서 또 도망갈까 봐
[콜록댄다]
(태서) [힘겨운 목소리로] 아버지
[떨리는 숨소리]
(승) 그만 가자
가서 뭐 좀 먹자꾸나
(도수) 이제 태서도 없고
만에 하나 자복할 놈도 없고 완벽하나이다
[도수의 웃음]
저것들도 없애 버려 [쓱쓱 베는 소리가 난다]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탁 소리가 울린다]
[무거운 효과음]
[힘겨운 숨소리]
(태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북소리가 난다]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승) 가문의 인장이 박힌 갓끈이다
아들아
네
아버지
(태서) 저에게 웃어 주시던 마음만은
진심이라 믿고 싶습니다
[무거운 효과음]
[흐느낀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이언) 다들 고생했네
고단할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게
(비령) 그럼 쉬셔요
(광순) 내일 뵙겠습니다
(육칠) [광순을 토닥이며] 편히 쉬십시오
(광순) [육칠을 토닥이며] 응, 니도
좌익위 나리를 통해
(덕봉) 지금껏 염치없게 얻어먹기만 하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늦게 찾아뵈어 송구합니다
아닐세
난 그저 따랐을 뿐 모두 세자 저하가 하신 일이네
(이언) 오히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는 게
미안할 뿐이지
아, 그럼 저희 집으로 가셔요
가셔서 같이…
(덕봉) 아니다 난 주막으로 가면 된다
(광순) 아이고, 그, 딸 집을 지척에 두고 무슨 소리입니까?
- (광순) 안 됩니다 - (비령) 같이 가요
[광순이 재촉한다] (육칠) 요 앞까지 저희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네, 네
어두우니까 조심하십시오
[조이의 웃음]
[문이 삐걱 열린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조이야
잠시만 기다리거라
(조이) [놀라며] 아이…
[잔잔한 음악]
마음 같아선 직접 해 드리고 싶지만
부담스러울 테니 조이 네가 가서 해 드리거라
이건 내가 직접 쑨 도토리묵말랭이니 가서 무쳐 먹고
정말 고맙습니다
(조이) 그럼 가 보겠습니다
- 어머니! - (이언) 그…
무쳐 먹을 때 쑥갓을 넣으면
[한숨]
향이 참 좋으니라
[살짝 웃는다]
[밤새 울음]
(조이) 어머니
얼른 저녁상 차릴 테니 제 방 구경하고 계셔요
[문이 탁 여닫힌다]
[힘주는 소리]
(광순) [살짝 웃으며] 빨아 놓은 게 이것뿐이네예
(덕봉) 고맙네, 이거면 충분하네
[광순의 힘주는 숨소리]
(광순) 그, 장작을 좀 전에 넣어 가지고
금방 따뜻해질 깁니더
조이가 어무이 닮아 가지고 손끝이 많이 야무지지예?
마 몬하는 게 없습니다
바느질도 잘하고 힘이 좋아 가지고 빨래도 잘하고
싸움도 억수로 잘합니다이
맞네, 나도 싸움 좀 하네
[함께 웃는다]
[문이 탁 여닫힌다] (조이) 자, 자
[조이의 힘주는 소리] [밝은 음악]
자, 자, 자
이언 나리께서 주신 버섯으로 찌개 끓였어요
- (비령) 배고파, 배고파 - (조이) 얼른 먹어
[잘그락 소리가 난다]
아, 그리고 이건
(조이) 이언 나리가 직접 쑨 도토리묵말랭이예요
이것도 한번 잡숴 보세요
묵을 직접 쑤셨다고?
(광순) 아이고 이거는 뭐, 아무것도 아입니다
요리 솜씨가 웬만한 여자들보다 낫습니다
(덕봉) 음
이언 나리가 진짜 묵을 쑤었다고?
[조이의 웃음]
(조이) 뭐, 이거 말고도 다른 재주도 많으세요
[조이의 웃음] (비령) 아유, 조이 언니는 좋겠네
(광순) 그, 키가 큰 아가 우리 육칠이인데
가도 재주가 많습니다
'우리 육칠이'?
우, 우, 우리, 우리 구팔이도 재주가 많다
(비령) 늦었어, 늦었어, 늦었어 그렇지? 늦었지? [조이와 광순의 웃음]
아유, 진짜
(광순) 아, 야, 이거 맛있다, 어? 묵말랭이
(비령) 맛있네
(조이) 아유, 가만히 좀 계세요 [물이 찰랑거린다]
(덕봉) 괜찮대도 그런다
(조이) 제가 해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덕봉) 아이고
(조이) 이제 다 되었습니다
[조이의 개운한 숨소리]
아, 발이 이게…
[차분한 음악]
수세미즙을 내어 바르면 거친 피부가 완화된다던데
철이 지나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꿀을 좀 사다 발라 드릴게요
나이 들면 늙고 굳어지는 게 당연한 것을
괜찮다
아이
너도 이리 좀 온 머리 좀 다시 빗자
[살짝 웃는다]
이 빗
혹시 어디서 난 게냐?
씁, 아까 그 비령이라는 아이 것이냐?
아, 이게 비령이 것은 아니고요
(조이) 그, 하 설명하자면 좀 긴데
비령이랑 보리가 너무나도 닮은 얼굴이라서
저도 가끔 좀 헷갈리긴 하거든요?
그, 아무튼 비령이가 준 것은 아니고
예전에 개화골에 있을 때
보리라는 동무가 제게 준 빗입니다
보리?
(조이) 근데 왜 그러십니까?
[옅은 한숨]
[따뜻한 음악]
(조이) 맨날 부러진 빗만 쓰더니 새 빗이네?
(보리) 잉 아까 어떤 아줌니가 줬어
아참, 그 아줌니가 언니 찾던디?
나를?
(보리) 언니 집 알려 달래서 알려 줬는디 못 만났어?
(조이) 그럼
설마 어머니가…
개화골에 오셨던 거군요
[살짝 웃는다]
저를 찾아와 주셨던 거예요
(덕봉) 어느 것 하나 지나치지 않고
켜켜이 쌓여 가는 게 삶이라더니
빗 하나가 허투루 된 게 없구나
[살짝 웃는다]
머리 빗자
(덕봉) 자
[훌쩍인다]
[조이의 탄성]
[웃음]
(조이) 곱다, 고와
(조이) 어머니랑 오늘 밥도 먹고
옷도 지어 드리고
머리도 빗겨 주시고
[살짝 웃으며] 너무 꿈만 같았어요
(덕봉)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조이) 어렸을 때 생각이 자꾸 나는 거예요
(덕봉) 그래
(조이) 근데 아까 이언 나리가 쑨 도토리묵말랭이 진짜 맛있었죠?
- (덕봉) 어, 진짜 맛있더라 - (조이) 그렇죠?
[덕봉과 조이의 웃음]
[새들이 지저귄다]
[뛰어오는 발걸음]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조이) 어, 누구세요?
(벼루아짐) 혹시 여기 류덕봉이라고
(조이) 아, 네
어머니, 누가 찾아오셨어요
[벼루아짐의 가쁜 숨소리]
[무거운 음악]
(덕봉) 자네가 여기까지 웬일인가? [벼루아짐이 흐느낀다]
(벼루아짐) 꼬리섬이
꼬리섬이
박승한테 당해 불었네
[덕봉의 놀란 숨소리]
아이들은? 바회는?
(덕봉) 댁이랑 여인들은?
(벼루아짐) 댁이는 애들을 데리고 피신은 했구먼
[안도하는 숨소리]
근디 바회가
[울먹이며] 바회가…
[바회의 힘주는 소리] (승) 호적 대장에도 없는 것들이다
[벼루아짐이 입소리를 쉿 낸다] 다 끌고 가거라
[어두운 음악]
[바회의 거친 탄성] [칼 소리가 쨍쨍 난다]
[바회의 기합] [수하1의 신음]
[수하2의 기합] [바회의 신음]
[사람들의 비명]
[거친 숨소리]
[수하3의 힘주는 소리]
[수하3이 칼로 쓱 벤다] [사람들의 비명]
[사람들이 흐느낀다] [무거운 효과음]
[벼루아짐이 흐느낀다] [덕봉의 힘겨운 숨소리]
(조이) 아, 어머니
박태서가 당하다니?
(덕봉) 자복을 하기 위해 친구들을 데리고 포구로 가던 중
갑비고차에 온 박승 부자에게 당하는 걸
이 사람이 보았다고 합니다
(육칠) 아니, 인간이 어찌 그렇게 극악무도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서자라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아니어라
[벼루아짐의 한숨]
도수가 아니라 태서가 적자여라
[비장한 음악]
(벼루아짐) 나가 애들을 바꿔치기했어라
나가 죽을 때 죽더라도
박승 그 인간 죽는 거 보고 죽어야겄응께
뭐든 시켜만 주쇼잉
(덕봉) 하여
박승을 잡아야겠습니다
저희도 나리를 도와
박승을 처단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아' - (도수) 아
(승) 아유, 잘 먹네 아유, 잘 먹네
(이언) 우리의 목적은 같네 [도수와 승의 웃음]
박승을 처단하는 것
하지만 박승은 국문도 빠져나간 자다
(이언) 박태서의 자복 없이 박승의 서찰과
치종의가 남긴 탕약 성분 기록만으로
박승을 건드렸다가 오히려 우리가 당하는 수가 있다
[한숨]
박승이 버선 안에
서찰을 넣고 다니는 걸 보았다고 했느냐?
(조이) 예, 분명 버선 안에 서찰이 있었습니다
그 서찰이 무엇인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조이) 한데 하인들 말로는
잠을 잘 때도 버선을 신고 잔답니다
[흥미로운 음악]
[승이 코를 드르릉 곤다]
(육칠) 아니, 그럼 발은 씻을 거 아닙니까
[물이 찰랑거린다]
[힘주는 소리]
(구팔) 박승은 기방 출입도 안 한답니까?
기방은커녕
최근에는 칭병 휴직을 핑계 삼아 출근도 하지 않고
(승) 자, '아'
(도수) 아
(승) 천천히 먹어, 천천히
(이언) 박도수를 보살피느라 두문불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승이 흐뭇해한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외출할 때는
반촌 현방을 들를 때뿐이다
맞아
나리, 제가 박승 대감이 푸줏간에서
앵속각이라는 걸 사는 걸 보았습니다
앵속각?
(조이) 예 분명 앵속각이라 하였습니다
소를 도살할 때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서 먹이는 마취 환입니다
(덕봉) 그래서 푸줏간에 있는 약재입니다
앵속각은 환각제의 일종입니다
(광순) 먹으면 헛것이 보입니다
헛것이라, 헛것이라…
아,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모두 모여 보십시오
[흥미진진한 음악]
[새가 지저귀는 효과음]
[탁 치는 소리가 난다] [육칠의 탄성]
[사람들의 미심쩍은 숨소리]
[거친 숨소리]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가능한지 안 한지는 직접 해 봐야지요
(사람들)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전하를 알현할 방법을 모색해 두마
(이언) 너희들이 서찰을 빼 오면
난 확보한 증좌를 가지고 입궐하여
박승의 추포권을 얻어 오마 [흥미로운 음악]
(덕봉) 저희들은 나리께서 박승을 추포해 오시면
박승을 지옥에 떨어뜨릴 계획을 짜 두겠습니다
그래
움직이자
(사람들) 예!
[강조되는 효과음]
[강조되는 효과음]
[날렵한 효과음]
[웅장한 효과음]
[날렵한 효과음]
[밝은 음악]
[구팔과 육칠의 힘주는 소리]
(육칠) 맛있어서 그렇게 하지
[구팔이 호응한다]
[구팔과 육칠의 힘주는 소리]
(육칠) [흥얼거리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구팔과 육칠의 기합]
[익살스러운 효과음]
제가 만든 이 인절미를
전하께서 맛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흥미로운 음악]
(이언) 이 인절미를 맛보신다면 분명 다시 찾으실 겝니다
그때 제가 직접 전하를 알현하겠습니다
알겠네
[비장한 숨소리]
[풀벌레 울음]
[숨을 카 내뱉는다] [주전자를 달그락 내려놓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음산한 효과음]
[긴장되는 효과음]
[힘주는 소리]
[음산한 효과음]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괴성이 들린다]
[긴장되는 효과음] [음산한 음악]
[도수의 놀란 소리]
[도수의 겁먹은 탄성]
(도수) 아, 아, 아버지, 아버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도수의 겁먹은 탄성]
[함께 웃는다]
[비령의 비명] (구팔) 으아! 깜짝이야
[도수의 가쁜 숨소리]
[음산한 음악]
[음산한 효과음]
[도수의 겁먹은 숨소리]
[음산한 효과음]
[도수의 놀란 숨소리]
[거친 숨소리]
[도수의 겁먹은 소리]
우리 집으로 가자
(도수) 으아! 아, 아버지, 아버지
[울먹이며] 아버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광순의 힘겨운 숨소리]
[익살스러운 음악] (육칠) 광순 누님, 조심조심
돌, 돌아, 돌아 보십시오 [광순의 힘주는 소리]
[육칠의 힘주는 소리] (광순) 아이고
[육칠의 거친 숨소리] 육칠아, 나 죽을 뻔했다
[광순의 가쁜 숨소리] (육칠) 죽으면 내 따라가려 했소
[광순이 살짝 웃는다] 가시죠
[육칠의 힘주는 소리]
(도수) 아버지, 아버지!
[도수의 다급한 숨소리]
(승) 도수야, 도수야, 왜, 도수야?
왜? [도수의 겁먹은 소리]
(도수) 방금 귀신이, 귀신이…
내, 내 갓이 막 휙휙, 휙휙 날아다니는데…
(승) [도수를 토닥이며] 아이고, 내 새끼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우물, 우, 우물에서 저승사자가…
이게 다 심신이 허해서 그런 것이니
의원 불러다가 저, 탕약이라도 지어 먹자
[도수가 울먹인다] (승) 아유
[음산한 음악] [도수의 놀란 숨소리]
응? 도수야, 도수야
도수야
[겁먹은 소리] 도수야
[음산한 효과음]
[겁먹은 소리]
도수야, 도수야, 아, 이…
[승의 다급한 숨소리]
도수야, 자
[승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도수야, 도수야, 도수야
[음산한 음악] [도수의 놀란 소리]
[도수의 겁먹은 소리]
[도수가 울먹인다] [음산한 효과음]
[도수의 겁먹은 소리] (승) 아, 도수야, 도수야
아, 아, 석 달 만에 뒤집기를 했던
그 똘망똘망했던 우리 도수가…
아이고, 아유
[흐느끼며] 아유
(하인1) 소문대로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가 없네
도련님이 좋아하겠어
여기 품삯
[엽전이 잘그락댄다] (조이) 아, 고맙습니다
[조이의 헛기침]
한데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일감을 더 주시면 제가 만드는 김에
성님 배자도 하나 지어 드릴게요 덤으로다가
(하인1) 그럼 도련님 두루마기도 하나 부탁하세
[웃으며] 예, 얼른 지어 올게요
(승) 조상님들 우리 도수 좀 살펴 주십시오 [하인1이 감탄한다]
아유
(조이) 아, 근데 집 앞에서 어떤 스님 한 분을 마주쳤는데 [흥미로운 음악]
아유, 글쎄 이 집에 아들 귀신이 붙었다고
헛소리를 하는 거 있죠?
아들이 원한을 품고 죽어서 여길 떠돈다나?
[조이가 살짝 웃는다]
근데 헛소리인 게
이 댁 아드님은 도련님 한 분뿐이시잖아요
(하인1) 실은 서자가 하나 있기는 하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서도
[놀라며] 그래요?
(조이) 아유
무슨 바다에서 죽어서 어쩌고 하던데
(하인1) 그렇잖아도 요즘 도련님이 밤잠을 설치시던데
낮엔 시들시들하다가
밤엔 막 비명을 지르고 헛소리를 하고
그래서 달려가 보면 식은땀을 죽죽 흘리고
(조이) 아, 그게 그냥 무시할 일이 아닌 게
저희 동네 감나무집 삼대독자가
귀신이 들려서는 자꾸 헛걸 보고 비명을 지르고
막 무슨 저승사자가 보인다는 둥 그랬다가
사람 구실을 못 하고 결국 폐인이 되더라고요
아유
[승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아, 근데 그걸 굿으로 잡은 거 있죠
- (하인1) 굿으로? - (조이) 예
(조이) 오장동에 비령이라고
아주 용한 무당이 있는데 퇴마를 한다더이다
아,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승) [헛기침하며] 아, 여기, 이보게 [문소리가 삐걱 난다]
(하인1) 예, 대감마님
[승의 헛기침]
[흥미로운 음악]
오장동의 비령이를 데려오게
[산새 울음]
(승) 내가 이깟 요망한 점술을 믿어서
너희들을 부른 것이 아니니라
어쩌다 찜찜한 소리를 들었기에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니
만약 차도가 없을 시 너희들을 벌할 것이니라
알겠나이다
(승) 또한 너희들 중 누구 하나도
오늘 이 일에 대해서는 일절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야!
예
[한숨]
시작하거라
[사물놀이 연주] [무령이 딸랑거린다]
[광순의 추임새]
[연주가 뚝 멈춘다]
[비령이 혀를 쯧쯧 찬다] [흥미로운 음악]
살생을 밥 먹듯이 하니
(비령) 귀신들이 드글드글 들러붙는구나
양쪽 어깨에 미명귀 둘
등 뒤에 손각시 여섯
다리 짝과 머리 꼭대기에도 백귀, 악귀, 육안귀, 새우니들이
잔치를 벌이는구나! [무령이 딸랑거린다]
어허!
어디서 반말을 지껄이는 게야?
(조이) 용서하십시오, 아버님
제가 아버님의 분부를 따르지 못하고 실수를…
[긴장되는 효과음]
이 사람이 그때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들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벼루아짐) 뭐라 지껄였는가
태서헌티 다 들었지라
(이언) 너희들은 박승 앞에서 그대로 연극을 하도록 하거라
내가 뭐랬어요, 아버지
태서는 못 한다니까
[긴장되는 효과음]
(비령) 못난 놈!
그깟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우리 도수 손에 피를 묻혀?
[긴장되는 효과음]
쓸모없는 놈
당장 내 집에서 나가!
[광순의 웃음]
[거친 숨소리]
저하! 세자 저하
[긴장되는 효과음]
예장을 치른 지 하세월인데
어찌 아직도 구천에 계시는 겁니까?
[비령이 울먹인다]
안주도 어찌 그리 푸르게 썩어 가고
이자의 심장을 왜 그리 움켜쥐고 계시는 겁니까?
[승의 놀란 소리]
(승) 그, 닥, 닥치거라
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야?
[무령이 딸랑거린다] [긴장되는 효과음]
박승
세자를 시해한 이 나라의 역도
[놀란 소리]
[문이 삐걱 열린다]
(태선) 여보게, 이언이!
[태선의 가쁜 숨소리]
영감
자네 예상이 맞았네
전하께서 인절미를 찾으시네
그렇습니까?
(태선) 전하께서 드셔 보신 인절미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인절미라시며
인절미를 가지고 당장 입궐하라 하시네
지금 당장요?
지금 당장
채비하거라
(육칠과 구팔) 예
맛보시겠습니까?
[태선의 웃음]
[흥미진진한 음악]
[작은 목소리로] 서두르거라 시간이 없다
[무령을 탁 집어 든다]
[조이의 헛기침]
(비령) 자, 지금부터 신령님을 청할 것이다
신령님 앞에서 부귀공명은 속세의 부질없는 것이니
몸에 있는 모든 패물과 도포를 훌훌 벗어 던지거라! [무령이 딸랑거린다]
[헛기침]
어서! [무령 소리가 요란하다]
[갓을 탁 내려놓는다] 아버지
(도수) 아버지, 빨리 벗어
[울먹이며] 아버지, 나 죽는다잖아 아버지
[승의 헛기침] [승이 당황한다]
빨리빨리 하거라
(도수) 아버지 [승의 헛기침]
(비령) 버선
그 버선도 벗거라
어허, 귀신이 거기 씌었네
(광순) 신령님이 노하신다!
[바닥을 탁 치며] 판을 엎으라신다! 에이!
(승) 야, 도수야, 씁 이놈아, 도수야, 안 돼, 안 돼
도, 도, 도… [도수의 다급한 숨소리]
[무거운 효과음]
아이… [무령이 딸랑거린다]
(비령) 지금부터 의식을 치를 것이니
너희들은 계속해서 절을 올리거라
먼저 절을 멈추어선 절대 아니 될 것이야!
[사물놀이 연주]
(승) 아니, 저…
(비령) 신령님이시여
이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오나
이들의 절을 받아
부디 마음을 넓게 써 주소서
박승, 박도수
이자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오나
부디 이 절을 받아
마음을 넓게 써 주소서 [탁 울리는 효과음]
먼저 절을 멈추어선 절대 아니 될 것이야
신령님이시여 [의미심장한 효과음]
[탁 울리는 효과음] 이들은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지만
부디 이들…
신령님이시여!
[초조한 숨소리]
(조이) [작은 목소리로] 나리, 나리
[조이의 가쁜 숨소리] (이언) 그래 서찰은 성공하였느냐?
(조이) 아, 예, 여기 있습니다
[무거운 음악]
[이언이 서찰을 부스럭 편다]
(왕) 병술년, 세자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한 대가로
박승에게 충청도에 대한 권한을 넘긴다
[놀란 숨소리]
무엇입니까?
세자 저하를 독살하는 대가로
박승이 주상 전하로부터
충청도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언의 한숨]
[이언이 서찰을 부스럭 접는다]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있다 한들
내가 어찌 한 나라의 왕을 단죄한단 말이냐
[한숨]
[이언의 한숨]
[조이의 헛기침]
그냥 허수아비와 두더지를 생각하십시오
허수아비와 두더지?
예 [흥미로운 음악]
논밭을 지키라고 허수아비를 세웠는데
허수아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두더지가
마구 곡식을 물어 가고
논밭에 병균을 퍼트리는 겁니다
(조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단 두더지를 잡아야지
바로 그겁니다
있으나 마나 한 허수아비보다
지금은 두더지를 잡아야 할 때입니다
네 말이 옳다
박승부터 잡을 것이다
예
(조이) 박승이 이제 곧 자신의 죄를 술술 불 것입니다
늦지 않게 와 주십시오
그래, 반드시 박승의 추포권을 받아 오마
[부드러운 음악]
[쉭쉭 끓어오르는 효과음] - (육칠) 나리 - (구팔) 도련님!
[구팔이 중얼거린다]
(육칠) 뜨거워 죽겠네 빨리 한번 입이라도 맞추든가
지금 눈빛 교환하고 있을 때입니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헛기침]
[헛기침] [코를 훌쩍인다]
얼른 입궐하셔야 된다면서요?
신시까지는 가셔야 된다면서요?
(이언) 어
[헛기침]
- 다녀오마 - (조이) 예
[살짝 웃는다]
[흥미로운 음악]
[강조되는 효과음]
[펄럭 소리가 울린다]
"광화문"
[이언의 비장한 숨소리]
[구팔의 긴장한 숨소리]
이제 액을 씻는 마지막 단계를 치를 것이니 [무거운 음악]
네가 지은 모든 죄를 신령님께 고하거라
그래야 너와 네 아들이 살 수 있어!
[무령이 딸랑거린다]
[사물놀이 연주]
[가야금 연주가 들린다]
[고풍스러운 가야금 연주]
(내관) 전하
인절미가 왔사옵나이다
인절미가 왔다고? 들라 이르라
(이언) 신 홍문관 저작 라이언
전하께 드릴 인절미를 새로 빚어 왔나이다
어서 꺼내 보거라
(이언) 예, 전하 [왕이 가야금을 쓱 넣는다]
[상궁이 달그락거린다]
(왕) 이건 콩고물인절미
이건 흑임자인절미
[입맛을 쩝 다신다]
오, 쑥인절미까지
현기증이 나는구나
(이언) 전하의 건강이 이 나라의 건강 아니옵니까?
하여 인절미에 보약의 으뜸인
초오를 조금 넣어 봤사옵니다
[콜록댄다] [긴장되는 음악]
왜 그러시옵니까, 전하?
초오를 넣다니, 얼마나 넣었느냐?
일전에 과인이 먹은 인절미에도 초오가 들어 있었더냐?
예, 전하, 들어가 있었나이다
[퉤 뱉는다]
초오 한 푼을 넣었나이다
[입소리를 쩝 낸다]
[천을 탁 집는다]
(이언) 그것은 동궁전 치종의가 남긴
세자 저하의 탕약 성분입니다
[긴장되는 효과음] 보시다시피 초오가 여섯 돈이나 들어가 있나이다
전하께서 드신 인절미의 무려 60배나 되는 양이지요
이렇게 초오가 많이 들어 있는 탕약을
동궁전에 윤허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몸에 좋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여 전하께 초오가 든 인절미를 진상할 수 있음이
신의 행복이자 영광이오니
매일 초오가 든 인절미를
진상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아니, 초오가…
아, 그러니까
(왕) 아무튼 그 일에 관해서는
과인의 입으로 직접 윤허한 적이 없다
[이언의 헛기침]
[서찰을 탁 집는다]
[긴장되는 효과음]
전하께서 윤허하신 게 아니라면
옥새가 찍힌 전하의 친필 서찰을
어찌 박승이 지닐 수 있나이까?
과인이, 그러니까
과인이 윤허한 것이 아니라
(왕) 박승이 세자의 똑똑함을 저어하여
과인을 겁박하였느니라
전하께서 아들을 질투한 비정한 아비는 아니셨고요?
[긴장되는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이언) 전하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어버이십니다
한 나라의 어버이 되시는 지존께서
하물며 권력 앞에 자식을 외면하시다니요
전하께서 하늘을 두려워하시지 않는데
하늘이 어찌 전하를 돌보겠나이까?
신 목숨 걸고 감히 묻겠나이다
전하께서 박승 대감을 방패막이 삼으신 것입니까?
박승 대감이 전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것입니까?
[한숨]
세자 저하의 죽음에 관해 일말의 비애가 있으시다면
죄인 박승을 단죄할 수 있도록
박승 대감의 추포권과
그가 장악한 갑비고차의 영치권을 돌려주시옵소서, 전하!
[긴장되는 효과음]
(왕) 그것 말고
과인이 너에게 관직을 제수할 수도 있다
영의정 어떠냐?
신이 원하는 건
정당한 심판이지
부당한 권력이 아니옵니다
(이언) 신 전하께 진심으로 간언드리옵니다
암행어사로 발탁되어 시찰하는 동안
백성들이 악정에 시달리는 걸 보았나이다
바라건대
대신들과 모든 벼슬아치들을 신칙하여
기강을 바로 세워 폐단을 막고
가난한 백성들을 진휼하여 주시옵소서
신분이 미천하다고 박대하기보다는
재능 있는 인재들을 등용하시고
여인과 아이 같은 약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예법들을 경장하시어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시옵소서
[무거운 음악]
[왕의 한숨]
[왕이 입소리를 쩝 낸다]
갑비고차의 영치권을 돌려주고
박승의 추포권을 주겠노라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왕) 그만 물러가거라
[왕의 힘주는 소리]
[가쁜 숨소리]
[어두운 음악] [달그락거린다]
[사물놀이 연주] [무령이 딸랑거린다]
[무거운 음악]
(비령) 정녕 네 아들놈이 죽어야 정신 차리겠느냐!
[긴장되는 효과음]
아, 아버지가!
[연주가 뚝 멈춘다]
[도수가 울먹인다]
(도수) 태서를 시켜서 공상물을 빼돌렸고!
(승) 도, 도수야
그걸 덮으려고
어사를 살해하였고 [승의 당황한 소리]
- (도수) 치종의를 겁박하여 - (승) 이놈아
탕약에…
(승) 야, 이놈아, 정신 차려
네가 지금, 지금… [도수가 흐느낀다]
탕약에 초오를 넣어서
세자 저하의 병세를 악화시켰고 [승의 당황한 소리]
(도수) 마지막 독이 든 탕약을 내가, 내가
내가 가져갔나이다
[도수의 힘주는 소리]
용서해 주십시오
아, 잘못했, 잘못했… 잘못했습니다
아, 아,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 아, 용서해 주십시오
(육칠과 구팔) 어명이오! [승의 놀란 소리]
[웅장한 효과음]
[비장한 음악]
잘못했습니다
(도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스스로 자복하는 것을 다들 들었는가?
(함께) 네!
죄인 박승과 박도수는 오라를 받으라!
(승) 놔라, 이놈들!
어디 천것들이 내 몸에 손을 대느냐!
놔!
[퍽] [승의 신음]
[승이 탁 쓰러진다]
[무거운 음악]
[승이 당황한다]
[몽두를 탁 던진다]
[승이 당황한다]
[흥미진진한 음악]
(이언) 죽는 것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언의 환호] (구팔) 출세도 안 해
혼인도 안 해
(육칠) 진정으로 미치신 거 아닙니까?
- (이언) 찾았다! - (구팔) 어디, 어디, 어디?
(조이)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이언) 내가 곁에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비령) 신령님께서 둘이 백년해로한다시네
(덕봉) 류덕봉으로서 김조이를 응원하마
(이언) 이곳이 우리 모두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다
(조이)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이 그렇습니다
.어사와 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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