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5
(세희) 이게 잘 안 보이나?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열린다]
[지호의 한숨]
[고양이 울음]
[세희의 옅은 숨소리]
- (지호) 저 이제... - (세희) 우리...
아...
먼저 말씀하세요
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아닙니다, 지호 씨 먼저 말씀하세요
이제 우리
계약을
그만 종료했으면 좋겠어요
[잔잔한 음악]
(세희) 계약을
종료하고 싶으시군요
네
오늘 덕분에 너무 재밌었어요
저도 오늘 호랑 씨 덕분에 너무 많이 웃어서
(영효) 집에 가면 아주 떡실신 각입니다
[함께 웃는다]
그건 저도 인정
어, 인정? [기쁜 신음]
(호랑) 네
(영효) 아, 네
- (호랑) 가세요 - (영효) 아유, 먼저, 먼저 들어가세요
[상구와 수지의 웃음]
(영효)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상구) 어? 저거 호랑 씨 아니야?
- (영효) 조심히 들어가요 - (호랑) 네 [차 문이 달칵 닫힌다]
(수지) 처음 보는 남자인데?
(호랑) 가세요
(상구) 아니, 저 친구 우리 회사 담당 회계사인데
에? 진짜?
(상구) 어
(세희) 계약을
종료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생각보다 제작사 계약이 빨리 성사될 거 같아서요
그럼 방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지호) 방을 구하면...
(세희) 방을 구하시면
저한테 월세를 내실 이유가 없어지시니까
네
그럼 저희 계약도
유지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월세 때문에 한 결혼이니까요
[잔잔한 음악] 그렇겠네요
[한숨]
잘된 일이네요
[고양이 울음]
글도 다시 쓰게 되시고
경제적 자립도 하게 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쉬세요
나머지 얘기들은 곧 다시 하도록 하죠
(지호) 저기, 세희 씨
아까 하시려던 말씀
안 하셨어요
[한숨]
별 얘기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
분리수거는 제가 하겠다는 그 얘기였습니다
일 시작하시면 지호 씨도 바빠지실 것 같아서 [잔잔한 음악]
[고양이 울음]
[문이 달칵 여닫힌다]
안사람이 중간에서 이런 조율 잘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희봉) 이만 가마
(지호) 저기, 아버님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희봉) 뭔데 그러냐?
죄송하지만
저 이거
받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 세희 씨와 결혼한 이유
집 때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조건이 잘 맞아떨어졌고
가치관이 비슷했고
그래서 했습니다, 결혼
죄송합니다
(희봉) 그래서 뭐,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네?
아니,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결혼 그거 다 그런 거다
(희봉) 누가 사랑만 해서 결혼을 하냐?
조건이 맞아야지
어,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갑자기 왜...
(지호) 아버님은
저를 왜 허락하셨어요?
갑작스러운 결혼을
결혼이라는 건 때가 있는 거니까
(희봉) 그때 아가, 네가 세희 배우자로 잘 나타나 줬고
싹싹하고 착하고 반듯하고
뭐,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냐
뭐, 근데 사랑까지 한다니 그건 다행이었고
[희봉의 웃음]
(지호) 다행인 거군요
결혼에 있어서
사랑은
씁, 오늘 좀 이상하구나
뭔 그런 질문을
그때 아버님이 세희 씨랑 왜 결혼하냐고 물었을 때
사랑해서라고 대답했으니까요, 제가
[잔잔한 음악]
(지호) 그게 요즘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거짓 대답을 한 게
(희봉) 갑자기 왜?
세희 씨를
사랑하게 됐거든요
진짜로
[웃음]
뭐, 그렇게 됐다니 다행이구나
원래 그렇게 살면서 생기는 거다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게
(희봉)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그래도 집은 남자가 하는 게 맞는다
나중에 애 낳고 살림하기 힘들 텐데 넣어 둬라
그만 가자
[희봉의 힘주는 신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희봉) 네 남편도 언젠가는 좀 수그러들겠지
갖고 있다가 아가야, 네가 잘 좀 구슬려 보거라
날 추운데 조심히 가거라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차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고양이 울음]
[휴대전화 진동음]
네, 지호 씨
세희 씨
네
(지호) 질문이 있어요
(지호) 계약상의 갑을 관계가 아닌
남자, 여자도 아닌
인생의 후배로서
궁금한 게 있어요
네
(세희) 말씀하세요
(지호) 결혼은
뭘까요?
결혼이 뭔지
아세요, 세희 씨는?
[잔잔한 음악]
[희봉의 성난 숨소리]
[희봉이 세희를 짝 때린다] (명자) 아이고, 어유, 어유, 여보
(희봉) 뭘 해, 결혼?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뭐? 아기가 생겨?
- 뭐! 쯧 - (명자) 아이고, 여보
(명자) [울먹이며] 말로 해요, 말로, 말로
책임질 수 있어요
사랑하니까 책임질 거예요
(희봉) 허, 뭐? 사랑?
그래, 그 사랑 뜯어 먹고 살 거냐?
걔네 집에 빚 있는 건 너 그거 어떻게 할 건데?
결혼이 인마, 무슨 뭐, 애들 장난이야?
학교에 소문이라도 나면...
지금 제일 힘든 건 그 친구예요
어떻게 아버지는 시종일관 아버지 체면, 아버지 소문
교육자라는 분이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나가, 당장 나가! [명자의 말리는 신음]
(희봉) 내 집에서 나가, 다시 들어오지 마!
나가! 당장 나가! [명자가 흐느낀다]
(세희) 지호 씨
(지호) 결혼은
그러니까
진짜 결혼은
(세희) 목소리가
떨린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세희) 눈가가
젖는다
행복한 거겠죠?
(세희) 지호 씨가
운다
나 때문에
[새가 짹짹 지저귄다]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고양이 울음]
[살짝 웃는다]
잘 잤어?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세희) 집에 다녀옵니다
계약 종료 시 추가적인 요구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숨]
[새가 짹짹 지저귄다]
[힘겨운 신음]
아, 속 아파
[냉장고 문을 달칵 연다]
[원석의 힘겨운 신음]
[원석의 시원한 숨소리] [냉장고 문을 달칵 닫는다]
[원석의 비명]
[비밀스러운 음악] [원석의 놀라는 신음]
아...
아니, 보미 님이 왜 여기 계세요?
왜 있긴요
기억 안 나요?
어제 일
[흥미로운 음악]
어제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
(원석) 아, 뭐야, 이거, 팬티 내가 왜 팬티 입고...
[원석의 당황한 신음]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내외해요?
(보미) 어제는 홀라당 잘 벗더니
진짜 기억 안 나나 보네?
어젯밤 일
[원석의 한숨]
[보미가 하품한다]
(보미) 아, 아, 속 쓰려
뭐 좀 해장할 것 좀 없어요?
(원석) 아, 근데 왜 이 베개를 안고 있어요?
아니, 보미 님이 뭔데
왜 남의 베개를 마음대로 베고 자냐고요
이게 어떤 베개인데
왜 말도 없이 함부로 허락도...
재수 없어
클럽에서 객사할 뻔한 거 업고 왔더니
뭐? 함부로?
자다가 자기 혼자 옷 벗어 놓고서
[애잔한 음악]
[문이 달칵 여닫힌다]
(원석) 보미 님
미안해요, 내가 진짜 오해했어요
내가 지금 되게 후진 놈이라 그래요
내가 나한테 화난 거를 보미 님한테 괜히 그랬어요
미안해요, 진짜
해장 안 해요?
[시끌시끌하다]
[영효의 헛기침]
(영효) 호랑 씨, 이런 것도 잘 드세요?
[살짝 웃으며] 네
술 먹은 다음 날은 여기서 꼭 해장국을 먹어야 속이 풀리거든요
[옅은 탄성]
진짜 제 이상형이네요
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보미) 어? 신 대리님
(영효) 어? 보미 씨
- (영효)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 (보미) 네
[영효의 웃음]
(영효) 이쪽으로 앉으세요
(사장) 아쉽네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래도 지호 씨 덕분에 단골도 좀 생겼었는데
저도 아쉽네요
좋은 일자리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장의 한숨]
(사장) 얼마 되지는 않아요
그냥 일종의 퇴직금 겸 축하금
[사장이 픽 웃는다]
[사장의 힘주는 신음]
(지호) 아, 근데 복남이는요?
(사장) 복남아! 복남...
이 자식 또 어딜 간 거야? 아, 참
[픽 웃는다]
[복남의 놀래는 신음] (지호) 아! 깜짝이야
아, 뭐야, 놀랐잖아
(복남) 아니, 뭐긴?
[지호의 한숨] 인사도 못 하는 줄 알고 얼마나 뛰어왔는데
(지호) 깜짝이야
뛰어와? 왜?
너 오토바이는?
눈물의 이별식을 하고 왔지
팔려고 내놨어, 학원 다니려고
학원?
아, 그, 예전에 말했던 그거? 기술 이민?
내 라이프 스타일로 여기서 살다간 골로 갈 거 같아서
[복남이 픽 웃는다]
뭐야, 웬 액자?
기억 안 나?
이거 내가 연출해 준 부부 사진
아...
(복남) 예식장 알바 갔다가 내가 챙겨 왔어 [잔잔한 음악]
고맙지?
고맙다, 복남아
(세희)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TV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명자) 뭐?
(세희) 결혼 생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명자) 무슨 소리야?
싸운 거야, 응? 싸웠어?
(세희) 아니요
성격 차이 때문에 같이 살기 힘들 것 같아서
합의하에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명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안 맞으면 서로 맞춰 가면서 사는 거지
그게 결혼이지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어?
아, 여보 [희봉의 한숨]
아, 얘 좀,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희봉의 못마땅한 숨소리]
어머, 세상에
(보미) 지호 씨 친구분은 어떻게 아세요, 회계사님이랑?
아, 그게...
(호랑) 애플로 만났어요, 결말애
우리 애플요? 헐
(보미) 그렇게 포인트 달라고 하시더니 이분 때문이셨구나?
(영효) 이게 다 보미 님, 원석 님 덕분입니다
유능하신 개발자분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이상형을 다 만나네요
이번 생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상형요?
(영효) [웃으며] 아, 네
저 호랑 씨 같은 분이랑 결혼하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밝고 야무지고 털털하고
저 만나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보미) 결혼하시는구나?
두 분 날짜는 잡으셨어요?
아니에요, 그런 거
[영효의 웃음]
(영효) 맞아요, 아니에요, 그런 건
아직은 썸남, 썸녀예요
근데 이건 제가 될 때까지
최상타치해서 프러포즈해야 할 부분이죠
샘 오취리가 놀라서 에취 할 때까지
동의?
[어색한 웃음]
어, 보감
[영효의 탄성]
(영효) 아, 아, 네
(호랑)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영효) 네
와, 아직도 급식체 쓰시네
완전 깨죠?
급식체요?
유학파예요?
(영효) 아이, 호랑 씨
이거 넣어서 먹어야 맛있는 거예요
이거 지금 이렇게 많이 넣어 갖고 여기 넣어 봐요
- (호랑) 아, 저 들깻가루 싫... - (원석) 어, 안 돼요
랑이 들깻가루 싫어해요
[잔잔한 음악] (영효) 아, 네
죄송합니다
[통화 연결음]
저예요
괜찮으시면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희봉이 콜록거린다]
[희봉의 한숨]
(희봉) 갈라서겠다고?
(세희) 네
(희봉) 그래, 네 마음대로 살던 놈이니까
결혼도 네 마음대로 이혼도 네 마음대로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제가 제 마음대로 살아왔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럼 이게 네 마음대로 사는 거지, 뭐냐?
아버지
아버지, 저는요
그날 이후로
단 한 순간도 제 마음 가는 대로 살아 본 적이 없었어요
왜인 줄 아세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택한 사람을
부정당했으니까
[어두운 음악]
그것도 내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얼마나 사랑했는데
근데 그 사람이 내가 선택한 인생을 송두리째 무시했으니까
그게 제 마음속에 어떤 문을 만들었는지
아세요?
그러는 너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아냐?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 선택은 똑같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불구덩이로 들어간다는데
그걸 그냥 두고 보냐?
(희봉) 그때 네가 그런 결혼 했으면 지금 얼마나 불행했을지를 생각해 봐
그래서 자기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은 그 불구덩이 속으로 내모신 거예요?
(세희) 여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모든 짐을 혼자서 다 짊어지도록
내 자식이 더 중요하니까
유치하고 증오스럽더라도
그것이 부모 마음이다
사랑이고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누굴 어떻게 옆에 두겠어요
무슨 자격으로
혼자 불행하면 되지
[희봉의 한숨]
[경쾌한 음악]
[입바람을 후 분다]
[입바람을 후 분다]
우아
[정민의 거친 숨소리] [지호의 탄성]
(지호) 대표님, 진짜 무슨 박쥐인 줄 알았어요
[정민이 콜록거린다]
(정민) 아,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런 표현을
[정민이 콜록 기침한다]
[정민의 개운한 숨소리]
계약은 정말 안 하실 거예요?
[정민의 한숨]
세희 때문에요?
저랑 얽히기 싫어서?
[살짝 웃는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지호) 저 이혼해요
네?
음,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어요
왜요?
대표님 때문인 거 같아서요?
네
[지호가 입소리를 쩝 낸다] [잔잔한 음악]
(지호) 그 정도로 영향력 있지는 않으세요 저희 사이에
[살짝 웃는다]
네
오버했네요, 제가
[함께 살짝 웃는다]
흠, 오히려 더 명확해졌어요
대표님 덕분에
제가 세희 씨를 진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더 정확히 알게 됐어요
근데 왜...
음...
사랑을 하고 싶은데
마음껏 그 사람이랑 사랑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그럼 애는? 아, 애는 언제 낳는 거야?
(희봉) 결혼 그거 다 그런 거다
누가 사랑만 해서 결혼을 하냐?
조건이 맞아야지
결혼이라는 19호실에 갇혀 있는 느낌이랄까?
[정민의 옅은 한숨]
좀 이상하죠, 복잡하고?
아니요
너무 이해되는데, 난
결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 있는 일 같아요
(정민) 문제는
그 사랑들이 [희봉의 한숨]
(정민) 하나같이
(정민) 다 진심이라는 거죠
알고 보면 하나같이 다 예쁜 마음인 건데
근데 예쁜 것들도 얽히고설키면
그게 원래 어떤 예쁜 모양이었는지
알아볼 수가 없어지니까
그게 원래 무슨 사랑이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지니까
(정민) 그래서 부부는 '정으로 산다 무촌이다, 가족이다'
그런 다양한 표현들이 가능한 사이가 되는 건가 봐요
진짜 대단하고
무서운 일인 것 같아요 부부가 된다는 거
[살짝 웃는다]
그래도 작가님이랑 세희는
해피 엔딩이길 바랐는데
저희가 왜
새드 엔딩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이혼해서요?
아...
아, 그게... [익살스러운 음악]
혹시 결혼을 유지하는 게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하세요?
이혼은 그 행복의 실패고?
21세기의 콘텐츠의 주역인 제작사 대표가
(지호) 저한테 실험 정신 넘치는 작품을 기대한다고 했던 그분이
설마 그렇게 꽉 막힌 생각을 갖고 계시는 건 아니죠?
[황당한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피식한다]
아니죠, 절대
(정민) 절대요, 작가님
저희는 절대 그런 제작사가 아닙니다
음
계약은 진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네요
[픽 웃는다]
[지호의 힘주는 신음]
[발랄한 음악]
[탄식]
나 지금 먹이신 건가?
[초인종이 딩동 울린다]
이 시간에 누고?
(수지 모) 말도 없이 우짠 일인데? [문이 달칵 닫힌다]
[잔잔한 음악] (수지) 우째 오긴,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상구의 탄성]
[세희의 힘겨운 신음]
[상구의 탄성]
아, 겁나 맛없네, 이거, 어유
[세희가 술을 조르르 따른다] (상구) 자장면은 우리 수지랑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내가 지금 황금 같은 일요일에 너랑 오붓하게 이걸 먹고 있으니까
진짜 나 토할 거 같아, 난
[상구의 한숨]
아니, 근데 얘는 집에 들어갔으면 갔다, 어떻게 했다, 뭐, 답을 줘야지
야
너 이거 이렇게 먹는 술 아니야
이렇게 먹으면 간 다 녹아
[술 취한 목소리로] 그럼 넌 대학 때부터 간 없이 살고 있나?
나는 간을 빨면서 다녔지, 어?
(상구) 아이, 줘, 빨리, 그만 먹어
아니, 술도 안 먹는 놈이 갑자기 왜 이래?
[옅은 한숨]
너 고백했냐?
[잔잔한 음악]
아니, 고백한다며, 지호 씨한테
[한숨]
그 셋 중의 하나 선택해 갖고
[상구의 한숨]
(세희) 마 대표, 고백할 때 어떤 문구가 덜 느끼해?
(상구) 1번, 이제 우리 진짜 결혼할까요?
2번, 이제 우리 진짜 부부 할까요?
3번, 이제 우리 진짜 함께할까요?
야, 너답지 않게 성실하게 세 개를 준비했네?
[세희의 한숨]
그래서 셋 중의 뭐로 한 거야?
[세희의 한숨]
세 개 다
못 했어
네가 세 개 다 느끼하다며
[기가 찬 숨소리]
못 한 거야? 안 한 거야?
[한숨]
안 했구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상구)
[웃음]
[TV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수지) 뭐 봐?
(수지 모) 자 어떻노?
딱 내 스타일인데
(수지) 누구, 외국인?
왜 저렇게 하얘?
내 스타일 아이다
느그 오빠야도 내 스타일 아이더라, 생긴 거는
(수지) 아, 왜 이렇게 뭉쳤어?
아이고
(수지 모) 야, 우수
니 왜 느그 오빠 이야기 내한테 숨기는데?
내가 뭘 숨겨
그냥 별로 할 얘기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왜 할 말이 없냐고
(수지 모) 내 느그 오빠야 본 날
내 니한테 엄청 배신감 느꼈다, 아나?
배신감?
그랬어?
그래, 나는 니가 모솔인 줄 알았거든 [잔잔한 음악]
(수지 모) 하도 남자 얘기 안 해서
그것 때문에 배신감 느꼈다
내 딸이 30년 모솔이라 흑마술 쓸까 봐서
내가 맨날 걱정한 게 억울해서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니 니 남친이랑 내랑 왜 자꾸 경쟁시키노?
응?
그렇다 아이가
(수지 모) 엄마가 배신감 느꼈다 하면
'엄마가 뭔데 배신감 느끼노?' 하고 버럭 화를 내야 될 건데
'그렇나?' 이라면서 왜 죄지은 표정 짓는데?
뭐, 니 내한테 죄책감 느끼나?
내 다리가 니한테 죄책감이가?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근데 왜?
나는 내 다리가 니를 잡고 있는 거같이 느껴지지?
[잔잔한 음악] 아니라니까!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근데 회사는 왜 안 나오노?
맨날 스트레스 때문에 약을 달고 살면서
저번엔 원형 탈모까지 생기고
내가 회사를 어떻게 그만둬? 돈 들어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그래, 니 말 잘했다
(수지 모) 니 돈, 그거 니가 니한테 쓰는 거가?
분양받은 아파트에 다 쏟아부으면서
거기는 나중에 엄마랑 같이 살 거니까!
나는 거기 안 살 거라고!
그럼 이 다리로 혼자 어떻게 살 건데?
[한숨]
봐라
내 다리가 니한테 걸림돌이네
내 다리를 짚고 세상에 서라 했더니만
내 다리를 지가 혼자 이고 지고
깔려 있었네
[수지의 떨리는 숨소리]
[휴대전화 진동음]
(상구) 1번, 이제 우리 진짜 결혼할까요?
2번, 이제 우리 진짜 부부 할까요?
3번, 이제 우리 진짜 함께할까요?
수지야, 네 도움이 필요해
프러포즈로 어떤 게 제일 덜 느끼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고백할 거라고 물어봐서
(수지) 작가님, 어떤 게 덜 느끼할 거 같은지 한번 봐 주실래요?
[살짝 웃으며] 글쎄
셋 다 비슷한 거 같은데?
그래도 한번 골라 봐
네가 받을 고백 같으니까
어?
마 대표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누구겠냐?
네 남편
[잔잔한 음악]
아...
너 안 기뻐?
응?
(지호) 왜 기쁘지 않았던 걸까?
(지호) 어쩌면 기다렸던 말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
근데 나는 왜
무서웠을까?
(상구) 야, 야, 남세희, 정신 차려 집에 다 왔어
- (세희) 응, 가자, 가자 - (상구) 야, 들어가자
(상구) 야, 집 앞이야, 정신 차려, 들어가자
- (상구) 야, 야, 남세희, 정신 차려 - (세희) 자, 가자
- (상구) 야 - (세희) 가자, 가야지
(상구) 어, 지호 씨
(세희) [큰 목소리로] 지호 씨?
(상구) 야, 조용히 해, 인마, 아, 씨
[익살스러운 음악] - (지호) 어머, 세희 씨! - (상구) 아유
- (상구) 집으로 들어가요, 집으로 - (지호) 네, 네
[상구의 힘겨운 신음]
(상구) 야, 야, 정신 차려
(상구) 야, 너희 집 왔다, 야, 비밀번호 눌러
- (세희) 어? 에이씨 - (상구) 아이, 똑바로 눌러, 좀, 아
[상구의 힘겨운 신음] [도어 록 작동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상구) 아유, 들어가
[상구의 힘주는 신음]
집 왔어, 집 왔어
아, 참 나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 (상구) 자, 신발 벗고 - (지호) 아, 신발
(상구) 야, 야, 신발 벗고 들어가
(세희) 내가 신을 거예요!
(상구) 조용히 좀 해, 인마
(세희) 나 신발 벗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상구) 아, 진짜
아, 야, 아유, 좀 몸에 힘을 줘!
오징어야, 뭐야, 이거?
[상구의 놀라는 신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아, 나, 씨, 들어가
(세희) 응? 여기 내려 주세요
(상구) 지호 씨, 얘 방 어디예요?
- (지호) 아, 저쪽 - (세희) 지호 씨?
- (상구) 아이, 들어가! - (지호) 이쪽요
(세희) 어? 실례하겠습니다 [지호가 스위치를 탁 켠다]
(상구) 실례는 무슨, 네 집인데 실례는 [세희가 중얼거린다]
누워, 누워
[상구와 지호의 힘주는 신음]
아휴, 정신 좀 차려라, 아유, 좀 자
- (상구) 아, 이불 좀 덮어 줘요 - (지호) 네
[세희의 힘겨운 신음] [상구의 한숨]
(상구) 아, 그놈의 술을 왜 이렇게 먹는 거야?
아휴, 씨
[지호의 한숨] 아유, 참
많이 마셨어요?
아니, 그 이과두주를 한 병을 다 마셨다니까요
이과두주를요?
아니, 무슨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술을
아, 그러니까요
아니, 무슨 참새처럼 앉아 갖고 그냥 홀짝홀짝 계속 마시더라고요
아니, 그렇게 마시는데 사람이 안...
[오싹한 효과음] (상구) 아이, 깜짝이야!
[지호의 비명]
[흥미진진한 음악] (세희) 흠
[지호의 거친 숨소리]
자는 거야?
(상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야, 남세희, 괜찮아?
(세희) 흠
와, 진짜 대단하다
아니, 이 만취 상태에서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어요
(상구) 이거는 아주 대단하고도 이상한 놈이죠
저는 그렇게 봐요
그러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혹시 죽었나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상구) 술은 적당히 먹어야 되는데
이과두주가 40도가 넘어요
이, 막 '아야' 한다고
목이 막 '아이코, 아이고, 아!'
[상구와 지호의 한숨]
(상구) 아, 예, 아유, 감사합니다
[상구의 시원한 숨소리]
씁, 음...
세희가 사실
지호 씨한테 고백하려고 했어요
네, 알고 있어요
아, 들으셨구나, 우리 아기한...
아유, 저, 수지한테
(지호) 네
수지가 아기구나
[멋쩍은 신음]
그, 아마 쑥스러워서 얘기 못 했을 거예요
(상구) 지금까지 그런 말
그, 자기 입으로 해 본 적이 없는 놈이라
[한숨]
안 한 게
아니고요?
[한숨]
마 대표님은 세희 씨가 화내는 거 본 적 있으세요?
아, 저야 있죠
(상구) 세희가 종종 저한테 눈으로 침을 뱉어요
그, 자기 일 방해하는 거 질색팔색하거든요
[함께 웃는다]
그럼 뭘 무서워하는 걸 본 적은요?
아, 세희는 고양이 빼고 다른 동물들을 다 무서워해요
그럼
우는 것도 본 적 있겠네요?
아, 그게...
네, 솔직히 있죠, 그것도
부럽네요
[잔잔한 음악] 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세희 씨의 19호실
근데 19호실요?
그걸 보여 줘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텐데
근데 거기 뭐가 있는지 자기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호) 아니면
어떻게 문을 여는지 모르거나
또 아니면
제가 보는 게 두려운 걸 수도 있고
제가 좀 이상한 소리를 했죠?
아니요, 저 다 이해했습니다
정말요?
(상구) 그럼요, 그 19호실
폴더 이름이 19호실이라...
정말 독특하고 대단한 놈이네요
네? 폴더
[입소리를 쩝 낸다]
걱정 마세요
어, 다시는 그런 영상들 끊게 [익살스러운 음악]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아, 아, 민망해
[지호의 당황한 신음] (상구) 아, 자식, 그거
그쪽은 좀 조심하고 그래야지 다 큰 어른이
[지호의 당황한 신음] 아니, 그게 외장, 아니야
외장 하드에 갖고 다니면 편하기도 한데, 그게
어,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요, 죄송합니다
지호 씨
(상구) 아, 뜨거워, 아
저, 굉장히 뜨겁네요
(영효) [웃으며] 아, 진짜 대박
아까 그 친구분이 말씀 안 해 주셨으면
저 호랑 씨 들깻가루 싫어하는 것도 모를 뻔했어요
쯧, 이건 제가 빼박캔트로 입력해 두겠습니다
들깻가루
[영효의 웃음]
호랑 씨, 추우시죠?
(호랑)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영효) 에이, 괜찮지 않은데?
아까부터 발가락 계속 꼼지락거리시던데
[영효의 웃음]
엉따 미리 틀어 놨으니까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 (호랑) 석 - (원석) 응 [잔잔한 음악]
[호랑의 행복한 신음]
(호랑) 많이 기다렸어?
(원석) 으음, 방금 왔어
(호랑) 춥다, 얼른 가자
(원석) 아니야, 아니야, 여기 앉아 봐
[원석이 가방을 직 연다]
이거 신고 가자
가지고 나왔구나?
그럼, 당연히 가지고 나왔지 이 수족 냉증아
[원석의 힘주는 신음]
[원석이 숨을 씁 들이켠다]
(원석) 빨리 신자, 발 언다
[원석이 중얼거린다]
[살짝 웃는다]
운동화도 가지고 나왔지
[호랑의 웃음] [원석의 힘주는 신음]
(영효) 어떠세요, 호랑 씨 생각은?
(호랑) 네?
(영효) [웃으며] 아, 제 차요
SUV로 바꾸는 게 괜찮을 거 같지 않아요?
나중에 식구도 늘고
씁, 그러면 SUV가 아주 괜찮을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특히 아기들 태우기에는
(호랑) 아...
[호랑의 어색한 웃음]
(영효) 아, 제가 또 호랑 씨 불편하게 만들었구나
죄송해요
아이, 나 오늘 왜 이렇게 에바지?
이렇게 푸드덕대니까 여자 친구가 아직도 없지
미안해요, 호랑 씨
[호랑의 어색한 웃음]
[한숨]
저 만나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밝고 야무지고 털털하고
(원석) 랑아, 왜 그래요?
울어요?
아니, 내가 뭐 잘못했어요?
먼저 등 돌렸잖아요
아니, 뭐가요?
내가 지금 가다가 잘 가라고 손 흔들었는데
석이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갔잖아요
원래 사귀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된다기보다는
너무 서운해요
(호랑) 나도 안 그러고 싶은데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왜 이렇게 서운한 게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
알겠어요
내가 진짜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랑이 울지 마요
(원석) 감기 걸려요
울음 뚝
[호랑이 훌쩍인다]
[헛웃음 치며] 털털하긴 개뿔
걔가 얼마나 잘 삐지는데
(상구) 아이, 자식, 그, 조심 좀 하지
영화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해?
우리 아기는 뭐 하고 있나?
[휴대전화 진동음]
뭐야, 이건 또?
(원석)
(상구) '자? 자니? 자고 있어?'
자고 있어?
'자고 있어?'는 또 뭐야?
아, 이 자식, 이거, 아직도 나한테 많이 배워야 되겠네, 이거
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거, 애들이 왜 이래, 난?
[숨을 씁 들이켠다]
이거 회사 터가 안 좋은가?
야, 이거 조치를 취해야 되겠는데, 이거
[숨을 씁 들이켠다]
(상구)
[옅은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호랑)
[잔잔한 음악]
[호랑의 놀라는 신음]
읽었다
(호랑) 읽었다, 어떡해?
아씨, 괜히 보냈나 봐
[휴대전화 벨 소리] [호랑의 비명]
[휴대전화가 툭 떨어진다]
[호랑의 놀라는 신음]
여보세요
(원석) 응, 나야
(호랑) 어, 자는데 깬 거 아니지?
너 한창 잘 시간이잖아
아니, 아직 안 잤어
(호랑) 그랬구나
다행이다
수지랑은 지낼 만해?
걔 잘 때 이 엄청 갈잖아
[살짝 웃는다]
마우스피스 끼고 자서 괜찮아
좋은 사람 같더라, 그 사람
[잔잔한 음악]
응, 그런 거 같아
나도 아직 알아 가는 중이야, 그 사람
그리고 내 마음도
네 말대로
내가 몰랐던
내 마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잘했어, 그럴 수 있지
너도 그분 되게 시원시원해 보이시더라
솔직하고
어, 그런 거 같아
석아
응?
생각해 봤는데 내가
20대의 전부를
내 인생의 4분의 1을 너랑 함께했더라
미안
내가 그 시간 끝까지 책임 못 져서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사과받으려던 말이 아니고
(호랑) 뭐냐면
그래서
참 다행이다 싶었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들을
너랑 같이 보낼 수 있었어서
[먹먹한 숨소리]
(호랑) 그러니까
뭐 힘든 일 있거나 도울 일 있으면 연락해
우리 연인 사이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랜 친구이기도 하잖아
너무 늦었는데 연락했지?
피곤할 텐데 얼른 자, 끊을게
(원석) 랑아
어?
행복해져
꼭
알았지?
(지호) 예쁜 마음이었다
[잔잔한 음악]
[수지 모의 심란한 숨소리]
(수지 모) 수지야
엄마 마음
그렇게 모르겠나, 이 가스나야
니가 행복해야
그래야 엄마도 행복한 기다
아유,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딸
[수지 모가 흐느낀다]
이제 훨훨 날아댕기라
엄마 몫까지
(지호) 결국은 다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예쁜 마음들
[휴대전화 진동음]
(영효)
(지호) 지나간 마음도
새로운 마음도
(지호) 누군가의 서툰 마음도
그리고
아픈 이 마음도
(지호) 결국은 다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 예쁜 마음들을 모두 다
그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어, 엄마, 이 밤에 어쩐 일이고?
어? 진짜가?
[세희의 힘겨운 신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힘겨운 숨소리]
[잔잔한 음악]
[세희의 힘겨운 숨소리]
[옅은 한숨]
(지호)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명자) 싸웠니, 응? 싸웠어?
세희가 뭐 잘못했니?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성격 차라며
(명자) 세희가 많이 무뚝뚝하지?
속도 모르겠고, 그렇지?
그래서 많이 속상하지?
네
맞아요
속을 모르겠을 때가 좀 있어요
그래, 그럴 거야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나이가 들어도 애야
(명자) 그래서 여자가 잘 어르고 달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힘들어
(지호)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응?
[잔잔한 음악] 결혼은 어른과 어른이 만나서 하는 거죠
세희 씨도 이미 훌륭한 어른이고요
다만
상처가 좀 많은 어른일 뿐이죠
(지호) 아버님도 어머님이랑 비슷한 말씀 하셨어요
안사람이 중간 역할을 잘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세희 씨가
집주인이었으니까요
제가 그 집에 사는 이유도
일정 부분의 의무를 다하는 조건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사랑이 더 깊어질수록
혼란이 커졌어요
이 혼란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노동을 노동으로 갈음하고
제사를 김장으로 받아치면서
이 혼란을 메우는 게 맞는 건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김장?
설마 세희가 김장하러 갔니?
어머니
저는
세희 씨를 어르고 달래면서 결혼 생활 하고 싶지 않아요
(지호) 어머님, 아버님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요
아물지 않은 세희 씨 상처에
쿠션 역할로 남고 싶지 않아요
세희 씨한테 상처
한 번 주셨잖아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기가 찬 숨소리]
아니, 그게 대체 언제 적 얘기인데?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일어났으니까요
상처받은 사람들은 있고
(지호)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오늘
밥 먹을 걸 그랬어요
어머니랑 단둘이 밥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제사 때랑 상견례 말고는
얘, 너 진짜...
아니, 아무리 요즘 애들이 자기 멋대로라고 해도
(명자) 아니, 이렇게 너희 마음대로 결혼을 뒤엎는 게 어디 있니?
결혼이 장난이니?
결혼은 신성한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
[한숨]
(지호) 근데 저는요
결혼이 신성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잔잔한 음악]
사랑이
신성한 거지
[기가 찬 한숨]
죄송합니다
[도어 록 작동음]
[고양이 울음]
[한숨]
[청소기 작동음]
(정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네가
(세희) 다
다 알고 있었다고?
(정민) 응
둘이 막걸리 마시다가 그렇게 돼 버렸네
(세희) 다
알고 계셨던 거였구나
둘이 친한가 보네
좀 그런 듯?
(정민) 좀 이상한가, 우리 둘이 친한 거?
(세희) 뭐, 일반적이지는 않은 거 같은데
(정민) 그렇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그러더라고
못 지낼 건 또 뭐 있냐고
씁, 근데 또 작가님이 은근 날 먹이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또라이 같아, 작가님
[정민이 픽 웃는다]
아, 좋은 의미로
[옅은 웃음]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지호 씨가
세희야
내 말이
네 마음에 가서
그렇게 유언처럼 남을 줄은 몰랐어
[잔잔한 음악]
미안해
그땐 내가 내 마음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어서...
말
(세희) 안 해도 돼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잖아
그땐
그냥 그렇게 된 거지
행복해져
행복해져라
세희야
[세희의 한숨]
[도어 록 작동음]
[지호가 가방을 직 닫는다]
[잔잔한 음악]
[한숨]
[잔잔한 음악] (세희) 지호 씨 집에는 어떻게
제가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는 게...
(지호) 제가 어제 말씀드렸어요
엄마 아빠가 잠깐 올라오셨었거든요
올라오셨었군요, 어머님 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면 같이 뵀을 텐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잘 말씀드렸어요
(세희) 방은 구하셨습니까?
(지호) 우선은 여행을 좀 떠나려고요
혼자서 여행 같은 걸 다녀온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러셨죠
많이 바쁘셨죠
정말 다행입니다
지호 씨가 원하는 길을 찾으셔서
[한숨]
그런가요?
네
하고 싶은 일도 찾으셨고
못 해 봤던 일도 하게 되셔서
행복한 길을 찾아내셔서
다행이에요
그럼 세희 씨는요?
네?
세희 씨는
어떻게 지내실 거예요?
뭐, 계획 같은 거 있으세요?
저야 뭐, 똑같죠
(세희) 출근하고 퇴근하고 축구 보면서 고양이랑 또 그렇게
(지호) 그렇게 원래대로 평안하게?
(세희) 네
세입자도 다시 구하실 건가요?
뭐
어쩌면
(지호) 그럼 이제 파기할까요?
계약서는 원래 파기하는 게 깔끔하니까
네, 원하신다면
네
[잔잔한 음악]
우리 계약
이걸로 진짜 끝이 났네요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세희) 당신을 위해서 산
선물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과 함께 볼
축구 경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요
(세희)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해 버리면
이것 또한
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무거운 유언처럼
남겠지
(지호) 가 보겠습니다
나오지 마세요
네
축구 경기 보면서요
궁금하신 적 없으세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인터미션 때 선수들은 주로 뭘 하는지
씁, 전반전 평가를 하거나 후반전 전술을 짜거나
뭐, 바나나를 먹거나 그러겠죠?
음, 은근 할 게 많네요?
네, 그러네요
그러니까요
악수 한번 할까요, 우리?
건투를 빌어요
우리 둘 다
이혼은 처음이니까
[애잔한 음악]
네
건투를 빕니다
지호 씨도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세희) 다시
혼자가
되었다
[옅은 숨소리]
(TV 속 해설자) 패스, 연결됐습니다 [TV 속 캐스터가 말한다]
(TV 속 캐스터)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중앙으로! [세희의 놀라는 신음]
- (TV 속 해설자) 외질! 네 - (TV 속 캐스터) 슛!
(TV 속 캐스터) 왼쪽으로 빗나갔습니다, 외질 [세희의 탄식]
- (TV 속 해설자) 자, 산체스 - (TV 속 캐스터) 산체스
어, 어!
(TV 속 해설자) 산체스, 골!
(세희) 야, 좋아, 아주 좋아!
[감격스러운 숨소리] [TV 속 중계가 계속 흘러나온다]
산체스
[옅은 숨소리]
[세희의 옅은 숨소리]
(세희) 고양이
고양아
고양이?
[세희의 한숨]
[고양이 울음]
(세희) 고양이, 어디 갔었...
[고양이 울음]
[잔잔한 음악]
(지호) 제가 얘 이름 지어 줬어요, '우리'라고
(지호) 라면 말고 이렇게 밥 먹는 건 처음이네요
우리
(지호) 저는 사랑도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인생에서
(지호) 예전에 봤던 바다라도
오늘 이 바다는 처음이잖아요
우리 결혼처럼
정류장 때 키스처럼
[떨리는 숨소리]
키스해도 돼요?
네
[떨리는 숨소리]
[흐느낀다]
어떡하지?
[한숨]
보고 싶다
[연신 흐느낀다]
보고 싶어
[잔잔한 음악]
(세희) 나는 오늘
단 한 번이었을 사랑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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