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16
(지호) 어, 엄마, 이 밤에 어쩐 일이고?
어? 진짜가?
[잔잔한 음악]
[종수의 초조한 숨소리]
[종수의 한숨]
(종수) 어, 왔나? 어
(지호) 아직이가?
(현자) 응, 많이 춥지?
들어가기는 한참 전에 들어갔는데
(종수) 아, 나올 긴데
(지호) 어?
[현자와 종수의 놀라는 숨소리]
(종수) 아이고, 야
(간호사) 이은솔 산모님 아이 태어났습니다
(종수) 아이고, 반갑다, 이?
만나서 참으로 반갑다, 이?
[종수와 현자의 웃음]
(현자) 니였구나
온다고 고생했다
아이고
[문이 스르륵 열린다] (종수) 아들?
[현자의 웃음] 아들, 응
[훌쩍인다]
아버지, 눈이...
왜...
뭐고?
당신 우나? [현자가 픽 웃는다]
그 뭔 소리고?
울긴 누가 운다고!
쯧, 쓸데없...
[끅끅거린다]
[잔잔한 음악]
[종수의 복받친 신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지석이 흐느낀다]
[아기 울음] [지호가 픽 웃는다]
(지호) 쯧, 우리 엄마 할머니 돼 뿠네
(현자) 그래, 내 할머니 돼 뿠네
참 좋은 일인 거 같다
가족이 생긴다는 거
참 좋은 일이지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지
(지호) 엄마
내 이혼할라고
선물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 같다
우리가
[지호의 한숨]
(지호) 왜 아무 말이 없노?
(현자) 내가 뭐, 말할 필요가 있나?
니 결정 한번 내리면 안 바꾼다 아이가?
결정하기 전까지 제일 힘든 것도 니고
[지호의 한숨]
그 후에 제일 힘든 것도 니인데
내가 뭔 말을 하노?
[지호의 심란한 한숨]
(지호) 엄마 [현자의 한숨]
엄마는
아빠랑 와 이혼 안 했노, 그때?
내 10살 때
아빠 내버리고 외갓집 가 있었다 아이가
우리 다 데리고
니 그거를 기억하나?
[현자의 한숨]
니
네 아빠랑 내랑
양가에서 반대하던 거 기를 쓰고 결혼한 거 모르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의아한 신음] [잔잔한 음악]
진짜?
진하게 연애했다 아이가
네 아빠랑 내랑 둘이 없으면 죽는다고 난리 블루스를 떨고
그리 어렵게 결혼했는데
(현자) 뭐, 살다 보니
그리 갈라설 생각까지 하게 되데
(지호) 근데 와 안 했노?
이혼할라고 딱 마음을 먹고
퍼질러 자고 있는 네 아빠를 딱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연애 때 생각이 계속 나는 거라
'아, 내가 그때 헤어졌으면'
'이 사람 평생 그리워했겠구나'
(현자) '평생을 마음 한편에 두고 절절하게 그리워했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뭐, 그리 생각이 드니까
고마 살자 싶더라
지호야
사람 인생 다 비슷하고
고만고만하다
다만
지 별 주머니를 잘 챙기는 게 그게 중요하지
별 주머니?
고만고만한 인생 안에도
때에 따라 반짝반짝 떠다니는 것들이 있다
그때마다 그걸 안 놓치고
지 별 주머니에 잘 모아 둬야 된다
(현자) 그래야 난주 힘들고 지칠 때
그 별들 하나씩 꺼내 보면서
그 시간을 견딜 수가 있는 기다
[잔잔한 음악]
[한숨]
그러니까
[숨을 씁 들이켠다]
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혼하는 기다, 내도
내 별 주머니에
반짝반짝
가득 채우고 싶어서
지랄하고 앉아 있네
[익살스러운 음악]
(현자) 니 느그 아빠한테 이혼한다고 입도 뻥끗하지 마라
여기서 머리 빡빡 깎이가 신생아실로 도로 들어가는 수가 있다
아, 그러면 언제 말하노?
내가 우찌 아노?
니가 알아서 해라
망할 놈의 가시나 이혼 같은 소리 하고...
[한숨]
(지호) 아팠다
[잔잔한 음악]
가족은 선물이라는 엄마의 그 예쁜 말이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호) 나를 혼내는 말 같아서
[지석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지호) 결혼은
반짝반짝 빛나는 일
[종수가 코를 드르렁 곤다]
(현자) 지호 아빠, 가자
- (종수) 어? - (현자) 일어나라, 가자
- (종수) 어, 왔나? - (현자) 일어나라, 일어나라
(종수) 아, 가만있어 봐
[종수의 힘겨운 신음]
(현자) 와 이라노?
[종수의 편안한 신음]
(지호) 결혼은
[종수가 코를 드르렁 곤다] 잠자라니까, 차에서, 아유, 진짜
(지호) 미워도 다시 한번
[현자의 한숨]
뒤돌아보는 일
(지호)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우리가
(지호) 처음으로
부끄러워졌다
(지호) 악수 한번 할까요, 우리?
건투를 빌어요
우리 둘 다
이혼은 처음이니까
[잔잔한 음악]
네
건투를 빕니다
지호 씨도
(지호) 악수로 시작한 관계는
(지호) 악수로 끝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전반전은 결혼이었지만
[밝은 음악] 후반전은
사랑이고 싶으니까
(상구) 감사합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직원1이 인사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 대리) 아,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 배터리 충전기 있냐, 너희?
(직원2) 아, 저 방에 있어요
- (박 대리) 어 - (직원2) 조금 있다가 갖다 드릴게요
박 대리님
(박 대리) 어유, 마 대표, 오랜만이네?
(상구) 잘 지내셨어요?
(박 대리) 그럼
(상구) 맙소사, 이 코가 왜 이러세요?
아, 이거?
쯧, 그냥 술 먹고 집에 가다가 넘어졌어
아이고 [엘리베이터 도착음]
어, 왔다, 가자, 야, 가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린다]
[흥미진진한 음악]
[안내 음성] 문이 닫힙니다
(박 대리) 아, 맞는다, 투자받았다며?
오, 축하해, 마 대표
(상구) 네, 아유, 감사합니다
씁, 근데, 아니...
우 대리님이 안 보이네요?
- 우 대리? - (상구) 예
퇴사했잖아, 몰랐어?
아, 그러셨구나 [익살스러운 음악]
(박 대리) 그래, 이래서 내가 여직원들이랑 같이 일하기가 싫다니까
시집가기 전에 잠깐 회사 다니고 말이야
걔네들이 가장의 책임감 같은 걸 알겠어?
(박 대리) 어유, 추워, 추워
- (상구) 박 대리님 - (박 대리) 어?
(상구) 오랜만에 뵀는데 저랑 담배 하나 피우고 가시죠
- (박 대리) 어, 그럴까? - (상구) 네
(박 대리) 어, 먼저, 먼저 가 있어, 따라갈게
씁, 응
마 대표, 안 피워?
네, 끊었어요
담배 저랑 원래 잘 안 맞았거든요
아, 그래?
씁, 그래도 담배 안 피우면 사회생활에 좀 지장 있을 텐데
대화 같은 것도 좀 그렇고
어떤 대화, 어떤 지장요?
담배 피우러 나가서 남자들끼리 막 하는 그런 헛소리
그런 거 못 끼는 지장요?
[흥미진진한 음악]
저도 알아요
수컷 세계에서 센 척하고 막 섹드립 하고
그러면 자기가 세 보이고 막 자기 존재감 인정받는 거 같고
근데 그런 건 중2 때 끝내야 되는 거 아닌가?
(상구) 아니다, 요즘 중2들은 그런 짓거리 안 하지
왜냐하면 애들이 똑똑해서
뭐가 후진지를 잘 알거든
뭔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다가오는 오토바이 엔진음]
[당당한 음악]
[끼익 멈춘다]
왔어?
(상구) 내 여자 친구인데 인사할래요?
어?
(수지) 일찍 나와 있었네?
어
우리 진호하고 속 깊은 대화를 좀 나눴어
그렇지?
(수지) 아, 그래?
오랜만이다, 진호?
[당황한 신음]
살이 또 쪘네?
(상구) 저게 빠진 거야
[못마땅한 신음]
진호야, 형이 너보다 3살 위다, 어?
잘 지내고, 또 보자
잘 있어 [상구의 힘주는 신음]
(상구) 안녕
[오토바이 시동음]
[발랄한 음악]
(수지) 전부 노 와이어 제품인 거죠?
(가게 직원) 네, 다 푸시업 몰드예요
이거 혹시 피팅할 수 있나요?
- 네, 그럼요, 이쪽으로 오세요 - (수지) 네
(상구) 고생해
아, 날씨도 추운데 진짜 고생 많으십니다 [문이 달칵 닫힌다]
저는 마상구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아이고
아유, 운동 많이 하셨네요
하여튼 파이팅입니다, 헤헤
씁, 자
(상구) 아유, 드디어 샘플 조사 다 끝났네
[수지의 한숨] 고생하셨습니다
(수지) 그래도 할 게 천지야
온라인 홈페이지도 준비해야 되고 디자이너분이랑 샘플 시안도 봐야 되고
[엘리베이터 도착음]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린다]
- (수지) 잘 가 - (상구) 어, 고생했어
아, 그리고 끼니 같은 거 빼먹지 말고 잘 챙겨 먹어
프리랜서는 이 밥심으로 일하는 겨!
[힘주는 신음]
[수지와 상구의 기합]
(수지) 오빠
왜?
라면 먹고 갈래?
어허, 나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 더 이상 아닙니다, 어
진짜?
응, 타
앗싸! [흥미진진한 음악]
[상구가 버튼을 탁탁 누른다]
(옥탑방 주인) 어
[옥탑방 주인의 웃음]
아니, 아직 방 보러 온 사람이 없어 갖고
내가 방 나가면 바로 연락할게
- 네, 아주머니 - (옥탑방 주인) 응
아이고, 아니, 요 몇 달 사이에 뭔 일이 있어 갖고
얼굴이 이렇게 상했을까?
(옥탑방 주인) 집에 가 갖고 엄마 밥 먹고
이뻐져 갖고 와
[웃으며] 나 가
(원석) 예, 들어가세요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잔잔한 음악]
[원석의 힘주는 신음]
[한숨]
(원석) 잘 있어
[한숨]
[중개인의 웃음]
- (중개인) 3년 정도 사셨죠? - (세희) 네
(중개인) [놀라며] 아, 정말 깨끗하게 쓰셨다
[중개인의 웃음]
투룸 하우스로는 이만한 데가 없어요
어, 이쪽으로 오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고양이 울음]
[남자의 탄성] [중개인의 웃음]
(중개인) 작은방은 옷방으로 쓰셔도 되고 나중에 아이방으로 쓰셔도 되고요
(남자) 이 방이 참 쾌적하네요
커 가지고 통풍도 잘되겠고
(중개인) 그럼요, 이만한 데 없어요 [여자의 웃음]
또 한번 보세요
(남자) 자기야
어, 나가
(남자) 잘 봤습니다
- (여자) 안녕히 계세요 - (중개인) 잘 봤어요, 연락드릴게요
(중개인) 가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잔잔한 음악]
[TV에서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호의 놀라는 신음]
[지호의 탄식]
(지호) 에이, 졌다, 졌어 [고양이 울음]
[지호의 못마땅한 신음]
[사료를 차르륵 붓는 소리가 들린다]
(지호) 으, 얼굴 당겨
[개운한 신음]
[옅은 숨소리]
[코를 드르렁 곤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고양이 울음]
(지호) 세희 씨에게
오늘도 축구 잘 보셨나요?
[잔잔한 음악]
고양이도 잘 있고요?
[고양이 울음]
세희 씨가 이 편지를 발견하셨을 때는
언제쯤일까요?
(지호) 아마도 제가 떠난 후에
이 방에 들어오셨을 때겠죠?
사실 저 세희 씨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세희 씨가 좋아했던 시집을 봤어요
(지호) 그리고
고 대표님이 그 시집의 주인이라는 것도 알아요
(지호) 미안해요
세희 씨, 몽골 사람들은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지 않는대요
대신 시신을 달구지에 싣고 가서
어딘지 모를 곳에 그냥 떨어뜨리고 온대요
(지호) 그리고 그곳에 다시 찾아가 시신을 살펴보는데
육신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크게 슬퍼하고
(지호) 흰 뼈만 빛나고 있으면 기뻐하면서 돌아온대요
저도 이 방을 떠나고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한숨]
[가게 안이 시끌벅적하다]
(원석) 웬일이세요? 저랑 식사를 다 하자고 하시고
오늘 월차 낸 사람이 원석 님이랑 저밖에 없으니까요
아, 그렇죠
(원석) 근데 밖에서 식사 잘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세희) 집에서
먹기 싫어서요
혼자
[한숨]
밥 정이 참 무섭죠?
[원석의 한숨]
(원석) 아, 집 내놓으셨다면서요?
네, 곧 계약할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시게요?
이사 갈 집은 구하셨어요?
뭐, 어디든 방은 있겠죠
그 집만 아니면
상관없습니다, 어디든
[한숨]
어, 어, 그거 아직 안 익었어요
(세희) 뭐, 어때요
배만 채우면 됐지
근데 지호는 어디로 여행 갔대요?
[애잔한 음악]
저...
(세희) 어디 멀리 가십니까?
아마도
그럴 거 같아요
어디 진짜 멀리 간 거예요, 지호?
(세희) 네
몽골로 가신 것 같습니다
몽골요?
(원석) 와, 쩐다, 윤지호, 몽골을 갔어?
[옅은 숨소리]
[웃음] [유쾌한 음악]
[호랑의 웃음]
자, 여기
개않겠나?
개않다, 내 머리 모르나?
온나, 들어온나
콱 마, 콱 마
콱 마, 콱 마, 내 드간다?
들어와라, 빨리
- 진짜 한다 - (호랑) 와라
[지호와 호랑이 소리친다]
(지호) 깨졌어, 어떡해, 어떡해
[지호와 호랑의 웃음]
(호랑) 아, 진짜 아파
(지호) 아, 어떡해
둘이 이렇게 노는 거 완전 오랜만이다, 그렇지?
그러게, 나도 좋다
(호랑) 근데 여행 간다 그랬는데 나랑 맨날 이렇게 둘이 놀아도 돼?
간만에 쉬는데 제주도라도 가지 [지호의 한숨]
(지호) 야, 나 바닷가 처녀야
바다 보러 여행을 가라고, 또?
(호랑) 치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하긴 여행이 뭐 별거냐? 재밌고 맘 편하면 됐지
응
게스트 하우스는 어때? 안 불편해?
(지호) 응, 재밌어
외국인 친구들도 많고
다인실이어서 가끔 잠을 좀 설치기는 하는데
지낼 만해, 진짜 나름 여행 온 거 같기도 하고, 좋아
[호랑이 숨을 씁 들이켠다]
지호
너 방 구하기 전까지 우리 옥탑방 들어와 있을래?
거기...
쯧, 원석이 방 뺐대
수원 엄마 아빠 집으로 들어간대
(호랑) 잘됐지, 뭐
혼자 있으면 밥도 못 챙겨 먹을 텐데
어차피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고 나 보증금도 급할 거 없으니까
너만 괜찮으면 들어와 있어
[밝은 음악]
[살짝 웃는다]
[함께 웃는다]
계란
[상구가 냄새를 씁 맡는다]
(수지) 라면 먹자
네, 네, 네
(수지) 짜잔
이번 생에 우수지가 끓여 준 라면을 다 먹고
(상구) 나는 인생 성공한 거 같아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상구의 탄성]
[익살스러운 음악]
맛있어?
아주 맛있네, 아주 그냥
[수지가 픽 웃는다] (상구) 기가 막히다, 야, 어유
너무 맛있어
아, 김치
아니, 근데 왜 생라면이야?
라면이 이게 맛없기가 힘든 음식인데, 이게
(수지) 이거랑 먹어 봐, 맛있을 거야
응, 이건 또 뭐야?
아유, 김치까지 있어?
음, 음
[피식한다]
(수지) 아, 있지, 세희 씨 집 내놨다며?
어디로 가는데?
나도 잘 몰라
나도 세희 얼굴 본 지 오래됐어
걔 지금 연차 쓰고 있는데 20일 쌓인 거 다 쓰려나 봐
(상구) 지금 온 회사가 남세희 씨 때문에 아주 죽을 맛입니다, 그냥, 아휴
음...
(상구) 아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걔는?
먹어, 빨리
참, 어유...
야, 좀 먹어 봐
많이 먹어 [상구가 숨을 씁 들이켠다]
- 오, 맛있다, 음 - (수지) 맛있지?
(상구) 응, 부러져, 오
- (TV 속 캐스터) 들어갑니다! - (TV 속 해설자) 자, 산체스, 골!
(TV 속 캐스터) 산체스가 골을 만듭니다
(세희) 산체스 또 골 넣었네 [TV에서 중계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참 자주도 넣네
[혀를 쯧 찬다]
[한숨]
우리야 [고양이 울음]
너 그 목걸이는 네가 꺼내 와서 걸었어?
[고양이 울음] 아니면
너희 누나가 걸어 주고 갔어?
너희 누나는 떠날 거면서
그건 왜 걸어 주고 간 거야?
이유가 뭐라니?
[고양이 울음]
넌 아니?
너희 누나 마음
[고양이 울음]
[한숨]
[잔잔한 음악]
[한숨]
[사람들의 웃음]
(사람들) [영어] 안녕
[사람들의 웃음] (지호) 안녕
(외국인1) [한국어] 안녕하세요
- (지호) 어? 안녕하세요 - (외국인1) 네
[지호와 외국인1의 웃음]
[풀벌레 울음] [축구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영상 속 캐스터) 아스널 왼쪽으로 긴 패스 연결됐습니다 [영상 속 해설자가 호응한다]
왼쪽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중앙으로 슛!
(외국인2) [영어] 안녕, 지호
어, 안녕, 낸시
[외국인2의 웃음]
[축구 중계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넌 오늘도 축구 보는구나
응, 중요한 경기야
근데 넌 축구를 왜 좋아하는 거야?
보고 있으면 좀 지루하지 않아?
지루해?
아니야 [흥미로운 음악]
[한국어] 어, 그러니까
잇츠 낫 임포턴트 저스트 워칭
아니다, 관계 대명사를 써야 되는구나
왓 유어, 아닌데
하, 그러니까...
[웃음]
축구는 단지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같이 보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외국인2의 의아한 신음] 음...
[잔잔한 음악] - (지호) 악! 아, 골! - (세희) 골!
(지호) 아, 대박!
[지호의 웃음]
[TV에서 축구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함께 놀란다]
[함께 탄식한다]
같이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경기가 기억되는 거거든
[지호가 살짝 웃는다]
(외국인2) [영어] 네가 무슨 얘기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
[외국인2의 웃음] [지호가 혀를 쯧 찬다]
[한국어] 그러게 말이다
이것이 진정 수능 영어의 폐해다
[혀를 쯧 찬다]
네가 한국말을 좀 배워 왔으면 얼마나 좋니?
[외국인2의 한숨]
(외국인2) [영어] 어쨌든, 내일 뭐 할 거야?
(지호) 내일? 케이크 만들러 가
[한국어] 나 케이크 만들러 가
[영어] 누구 주려고?
[고민하는 신음]
내...
전 남편
[발랄한 음악]
뭐라고? [픽 웃는다]
[혀를 쯧 찬다]
잘 자, 낸시
(지호) [한국어] 난 잔다
[지호의 힘주는 신음]
(강사) 그럼 다들 먼저 반죽부터 시작할게요
[고양이 울음 효과음]
(강사) 선물하고 싶은 사람한테 그 마음을 담아 봐도 괜찮을 거 같아요
뭐, 고마움이나 추억이나
뭐, 사랑 고백 뭐, 이런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놀라며] 너무 이쁘다
[살짝 웃는다]
너구리를 진짜 잘 만드셨네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유, 참, 예쁘네
[고양이가 날카롭게 우는 효과음]
(직원3) 여기서 지신 분이 내일 야식 쏘는 거예요
딴말하기 없고
- (직원4) 콜, 콜, 파이팅! - (직원3) 오케이? [저마다 호응한다]
- (직원3) 자, 원석 님, 준비 다 됐죠? - (원석) 네
(직원3) 스리 [호루라기 효과음]
(직원들) 투, 원
- (직원3) 가자! - (직원5) 출발
[직원들이 소란스럽다]
(직원3) 뭐 하세요? 진짜
[직원들이 소란스럽다]
(원석) 나와, 나와, 나와, 너 나와 너 거기 왜 있어? 너 나와!
(직원6) 그렇지, 그렇지! [직원들의 환호성]
아, 게임 더럽게 못하네
- (원석) 방금 뭐라 그랬어요? - (보미) 왼쪽, 왼쪽
- 밟아! - (원석) 나오라고!
[직원들의 다급한 신음]
[직원들의 환호성]
[저마다 기뻐한다]
(상구) 됐어, 됐어
어, 남 수석!
(직원4) 잘 먹겠습니다
[직원들의 의아한 신음]
- (직원3) 안녕하세요 - (직원7) 안녕하세요 [저마다 인사한다]
(원석) 좁은데 불편하지는 않으시겠어요?
집이 뭐, 먹고 자면 됐지
불편할 게 있습니까?
[헛웃음]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원석의 한숨]
(상구) 저기, 혹시 회사를 뭐 때려치우고 막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직 월차가 남았잖아
[옅은 탄성] (세희) 그만두지는 않았어
[잔잔한 음악]
[상구의 한숨]
(지호) 뭐지, 이 어디선가 본 듯한 방 구조는?
음, 원석이가 짐을 덜 뺐네
[옅은 탄성]
[지호의 편안한 신음]
뭐야? 이거 왜 이렇게 편해?
꼭 내 침대처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호) 랑아, 나 옥탑방 잘 들어왔어
[픽 웃는다] 고마워
[영효가 살짝 웃는다]
- (호랑) 감사합니다 - (영효) 네
[영효가 숨을 하 내뱉는다]
(영효) 아, 호랑 씨, 제가요, 달력을 봤는데
내년 삼일절이 목요일이더라고요
그래서 금, 월, 화 연차 내고 주말까지 끼면
발리 정도는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살짝 웃으며] 아, 발리 가시게요?
(영효) 네, 신혼여행지로 딱이잖아요
호랑 씨
내년에 저랑 같이 발리 가요
[휴대전화 진동음]
(세희) 원석 님, 감사합니다
깨끗이 쓰고 나가겠습니다
이사 다 하셨나 보네
[한숨]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보미) 퇴근 안 해요?
(원석) 이제 해야죠
아까 게임 녹화한 거 있죠?
그거 한번 틀어 봐요
[흥미진진한 음악]
[게임 소리가 흘러나온다] (원석) 틀었어요
(보미) 이거 봐요
스타트는 원석 님이 빨라요
근데 중간에 멘탈이 흔들리면서 페이스가 말리기 시작해요
- (보미) 보이죠? - 어, 네
(보미) 그냥 초반에 앞차를 보내 주고
마지막에 스퍼트를 올려서 추월하는 게 나았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원석) 역시 데이터 분석가, 보미 님
(보미)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게임 이야기, 공식 이야기
그리고 게임 공식 이야기거든요
진짜요? 저도 그래요, 저도
- (보미) 그래서 말인데 - (원석) 네
- (보미) 시간 좀 되시면 - (원석) 네
저랑 좀 사귀어 볼래요?
(원석) 네
네, 네?
[잔잔한 음악]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한숨]
[열쇠를 달그락거린다]
[고양이 울음]
[세희의 힘주는 신음]
(세희) 고생했어
[고양이 울음]
아, 누구세요?
(지호) 네?
아니, 그것은 제가 물을...
누구세요?
(남자) 아, 저 여기 새로 이사 온 사람이에요
이제 여기 저희 집이에요
네?
(지호) 집을 팔았다고?
좌 대출 우 고양 씨가?
아니, 왜?
[지호의 한숨]
어디 갔지?
어디 갔어?
[잔잔한 음악]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고양이 울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지호의 한숨]
[지호의 심란한 숨소리]
오늘부터 진짜 우리
1일 하자고
내가 먼저 고백하려 그랬는데
(지호) 그건 물 건너갔네
우리야
전화도 안 받고
어디 있는 거니, 이 남자?
[한숨] [잔잔한 음악]
(지호) 그 방을 떠나 몇 달 동안 서울을 걸어 다니면서
내 마음에 뭐가 남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오늘도
같이 잘까요?
아니요, 오늘은 좀...
(지호) 솔직히 밉기도 했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행복한 거겠죠?
(지호) 많이 아프기도 했다
(지호) 밤하늘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지호) 우리 둘만의 별 주머니가
(지호) 이제 우리 계약을
그만 종료했으면 좋겠어요
(지호) 우리에게도 과연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
의심했다
(지호) 하지만 뒤돌아봤더니
내 마음에 남은 건
(지호) 미움도 아픔도 아닌
그저 그리움
[살짝 웃는다]
그저
보고픔
[한숨]
[한숨]
이렇게 내 별 주머니는 가득 찼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남자는?
[휴대전화 진동음]
응, 지호
지호, 너 옥탑으로 갔다며?
혹시 만났어?
[잔잔한 음악]
우리야 [고양이 울음]
잘 있었어?
[고양이 울음]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여긴 어떻게 왔어?
네가 너희 형 업고 왔구나? 택시 타고
[고양이 울음]
[세희의 옅은 숨소리]
지호 씨네?
(세희) 아깐 지호 씨 가방이 나오더니
이젠 아예 지호 씨가 나왔네
[한숨]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
내가
꿈에 나올 만큼
[픽 웃는다]
이젠 말도 하네
몽골은 잘 갔다 왔나?
몽골?
(세희) 몽골
나 놔두고 가니까 좋던가?
나만 두고 가니까
재밌던가?
[살짝 웃는다]
아니
하나도 재미없었어
(지호)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 그리웠어
[웃음]
웃기시네
[애잔한 음악]
사랑해
[당황한 신음]
뭐?
사랑해요
많이
참
나쁘다
[울먹이며] 내 옆에 없을 거면서
깨면 없을 거면서
왜 사랑한대?
나쁜 사람이네, 지호 씨
[세희가 흐느낀다]
(지호) 미안해
이제 아무 데도 안 갈게
미안
무슨 꿈이 이렇게 슬프냐
그래도
좋네
(세희) 이렇게라도 보니까 좋다, 지호 씨
꿈이라도
좋다
지호 씨
[고양이 울음] [새가 짹짹 지저귄다]
[세희의 놀라는 숨소리]
[세희의 놀라는 신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세희의 힘겨운 신음]
[세희의 옅은 숨소리]
응?
[세희의 한숨]
(세희) 응?
[의아한 숨소리]
설마
우리 네가 탄 거냐?
[고양이 울음]
유자차
[고양이 울음]
아무래도 알코올성 치매가 찾아온 것 같다
[픽 웃는다]
차라리 잘된 거인지도 모르겠군
[새가 짹짹 지저귄다]
[세희의 옅은 숨소리]
[캔을 달칵 딴다]
(지호) 일어났어요?
[잔잔한 음악]
아, 일어나자마자 또 술이에요?
속 안 쓰려?
아침 먹자
어서 씻어요, 냄새나
[문이 달칵 열린다]
[세희가 냄새를 씁 맡는다]
뭡니까, 지호 씨?
네?
(세희) 지금
지금 게장이 넘어가요?
왜요?
(지호) 아, 아침에 좀 부대껴요, 양념게장?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그럼 왜요?
왜 때문에 게장이 넘어가면 안 되는데요?
이혼했지 않습니까
우리
[세희의 한숨]
(세희) 지금 상당히 이상합니다, 이 상황
이혼하고 몽골 간다고 사라지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셔서
게장을 드시고 계신다는 게
저는 정말
상당히 복잡합니다
[옅은 한숨]
그럼 저
가요?
[한숨]
쯧, 알겠어요
갈게요, 그럼
[잔잔한 음악]
그 말이 아니잖아
어디 갔었어?
어디 있었어?
인사동
인사동?
[한숨]
[세희의 한숨]
[세희의 혼란스러운 신음]
[세희의 한숨]
(지호) 화났어요?
(세희) 아니요
진짜요?
[세희의 한숨]
진짜 화 안 났어요?
(세희) 네, 안 났어요
(지호) 아닌데, 화났는데?
(세희) 안 났어요, 화!
인사동이라니?
인사동에 있으면서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해요?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어떻게 한 번을 안 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잔잔한 음악] [살짝 웃는다]
웃어요?
왜 웃어요?
사람 미치게 만들어 놓고
집까지 팔게 해 놓고 지금 웃음이 나와요, 지금?
세희 씨가
화를 냈다
처음으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처음으로 나한테 세희 씨 마음 이야기했어
고마워요
19호실을 열어 줘서
미안해
힘들 때 떠나서
(지호) 내가 좀 안아 줄까요?
(세희) 몰라요
(지호) 뭘 몰라요? 안아 줄게요 [밝은 음악]
됐어요, 왜 이래요?
- (지호) 왜요? 좀 안아요, 간만인데 - (세희) 아, 싫어요, 오지 마요
(지호) 에이, 일로 와 봐요
(세희) 아, 진짜
오지 말라 그랬죠, 내가
아침
더 안 먹어도 돼요?
더 안 먹어도
돼요
[차분한 음악] (보미) 그동안 제가 분석한
원석 님과 저의 커플 적합도 지표예요
이렇게 이론상 완벽한 매칭 쉽지 않다는 거 잘 아시죠?
현명한 답변 기다릴게요
결정하신 건가요?
네
(원석) 보미 님
보미 님은 저한테 맥 OS 같은 분이에요
새롭고 신기하고 직관적이라 더없이 편한 그런 사람이에요
근데요
저는 좀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여전히 윈도가 그리워요
제 머리는 맥 OS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걸 아는데
그걸 아는데도 제 마음과 손은
아직 윈도를 기억하나 봐요
[잔잔한 음악]
미안해요, 보미 님
네, 알았어요
제가 들은 거절 중에 가장 로맨틱하네요
아, 그런가요?
(원석) 감사합니다
(보미) 근데 언제까지 그 구식 체제에 갇혀 살 생각이에요?
윈도도 업데이트를 해야 되지 않아요?
회계사님이 내일 프러포즈한대요
그러니까 포맷당하기 전에 빨리 업데이트하시라고요
아, 보미 님 원래 알고 계셨던 거예요?
[픽 웃는다]
(지호) 세희 씨
[세희의 옅은 숨소리]
세희 씨, 좀 일어나 봐요
저녁 먹어야죠
나 조금만 더 자면 안 돼요?
[밝은 음악]
(세희) 요즘 잠을 너무 못 자서
[세희의 나른한 신음]
(지호) 그래도 밥만 먹고 더 자요, 응?
(세희) 응
내가
오므라이스 해 줄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치킨 시켜 먹어요
[발랄한 음악]
[함께 시원한 숨을 내뱉는다]
[세희가 숨을 씁 들이켠다]
(세희) 좋네요 [지호의 편안한 신음]
(지호) 네, 너무요
계약을 안 하셨다고요?
들었어요, 고 대표한테
네
저 때문에
좋은 기회를 포기하신 건 아닌지
[숨을 씁 들이켠다]
뭘 다들 그렇게 자기 때문에 내가 뭘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대표님도 그렇고
(지호) 뭘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비운의 88년생은
기회라는 건 너무 소중하고 희소한 거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고요
그 기회 중엔 사랑도 포함되어 있고요
[잔잔한 음악]
대표님도 아버님도
제가 뭘 포기하면 안 되는지 알려 주는 좋은 계기였어요
[살짝 웃는다]
저는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포기한 게 아니라
사랑을 최우선으로 선택한 거예요
진짜 사랑 같은 거
그런 거
제가 사는 이 시대에
제대로 한 번 하기도
너무 힘든 거니까요
그래서, 음, 만약 결혼이 우리의 사랑을 해하는 제도라면
저는 앞으로도 선택하지 않고 싶어요
세희 씨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지호 씨와
다시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습니다
(세희) 그리고
법적인
보호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험한 일이 생겨도
제가 제일 먼저 달려갈 수 있게
하지만 결혼이 사랑을 변질시킬 수 있는 제도임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부모님들이 정해 놓은 관습과 틀에
더 이상 우리 감정이 다치는 일도 원하지 않고요
앞으로의 시간 동안 우리만의 대안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죠
네
[지호의 시원한 숨소리]
[숨을 씁 들이켠다]
근데
대표님이랑 단둘이 만났어요?
[헛기침]
언제? 어디서?
음, 그러니까 그것은... [흥미진진한 음악]
[세희가 숨을 씁 들이켠다]
고 대표가 먼저 전화가 와서
[지호가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먼저 전화를 해요?
네 [지호의 헛웃음]
(지호) 아니, 그 대표님 좀, 좀 이상하네
왜 남의 남자를 막 마음대로 막 불러내고 그러지?
그러, 그러니까요
바꿀까요, 전화번호?
됐어요
[지호가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치킨이 식어 가고 있습니다
(호랑) 어, 지호
(지호) 구청? 구청은 왜?
응, 그 소파 버려야 될 거 같아서
주인아줌마가 연락 왔더라고
(지호) 그러네
[놀라며] 야, 여기 곰팡이 엄청 슬었다
긁히기도 여기저기 다 긁히고
[살짝 웃으며] 그렇지?
구청 가서 폐기물 신고 하고 이따 가지러 갈게
(지호) 그래, 이따 봐
응
[휴대전화 메시지 수신음]
(정민) 변호사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공격수로서의 성공적인 첫발 축하드립니다 [밝은 음악]
그리고 다른 제작사에서 연락 갈 거예요
순수한 팬심으로 제가 영업을 좀 해 버렸네요
원하시는 글 꼭 쓰세요, 작가님
[지호의 개운한 신음]
[문이 스르륵 열린다]
오랜만이야, 마 대표
(상구) 응, 어?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보름 만에 출근하는 우리 남 수석님?
나는 너 회사 때려치운 줄 알고 이 자리도 빼려고 그랬지
근데 여러분, 남 수석님이 제 발로 이렇게 출근하셨습니다
그리웠어
마 대표의 그
[익살스러운 효과음] 개그
[총소리 효과음] [휴대전화 진동음]
(상구) 내 거? 야, 남 수석 너 버스에서 핸드폰 바뀌었나 보다
- 응 - (상구) 응?
(지호) 출근 잘했어요?
(세희) 응, 잘했죠
[익살스러운 음악] (지호) 아, 혹시 이따가 늦게 와요?
호랑이가 소파 버려야 된다는데 우리 둘이 옮길 수가 없어서
(세희) 응
그냥 둬요, 내가 가서 할게
그래요
나도요
[입소리를 쪽 낸다] [오싹한 효과음]
[미심쩍은 숨소리]
전원 뽑았어?
(영효) 어, 그래서 이렇게 준비를 해서요
4년 차에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생각입니다
결혼이라는 게 사실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잖아요
그러니까 실패하지 않으려면
[웃으며] 차근차근
철저하게 준비해야죠
영효 씨
죄송해요
(호랑) 영효 씨 마음을 제가
받을 수가 없어요
오늘 사실 그 말씀 드리러 나온 거예요
예상은 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솔직한 이유요
그래야 저도 말끔히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애잔한 음악] (호랑) 이거
그 친구가 저한테 프러포즈하면서 준 반지예요
저 사실 그동안 이거 맨날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어요
저도 영효 씨 만나면서 되게 노력해 보려고 했거든요
제 마음한테
근데
마음은
노력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오는 거지
[살짝 웃는다]
좋은 말이네요, 정말
그건 저도 레알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함께 웃는다]
(영효) 동의?
(호랑) 어, 보감
[함께 웃는다]
[세희가 흥얼거린다]
(세희) 오랜만이네요, 원석 님
드디어 출근하셨네요
그, 방은 지낼 만하세요?
네, 매우 좋습니다
원룸이라는 게 그렇게
이상적인 주거 공간일 줄이야
그럼 다행이네요
[원석이 혀를 쯧 찬다]
세희 님, 혹시
랑이가 찾아오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 호랑 씨가 오시기로 했는데
(원석) 네? 랑이가요?
네
구청에 들르셔서 신고서 작성하고 옥탑방 와서 나머지 정리 하신다고
구청에서 신고요? 뭘, 뭘 정리를 해요?
아, 그, 소...
(원석) 혹시 그게 혼인 신고인가요?
네?
음...
[익살스러운 음악] 씁, 아무래도 그렇겠죠
(세희) 30대 초반의 여성이 구청에 가서 신고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씁, 아마 그것밖에 없겠죠
혼인 신고
아, 아까 보니까 회사 앞 카페에 회계사분이랑 같이 계시던데
호랑 씨
여기 앞의 카페요?
(원석) 저 오늘 반차 낸다고 얘기 좀 해 주세요
네
[픽 웃는다] [밝은 음악]
[옅은 숨소리]
감사합니다
건강히 잘 지내세요
좋은 분 만나시고요
네, 호랑 씨도 사랑까지 줍줍 하는 핵이득 결혼 꼭 성공하세요
꼭요 [호랑과 영효의 웃음]
네
[원석의 가쁜 숨소리]
[잔잔한 음악]
너 여기 어, 어떻게...
나 안 되겠어
뭐가?
나 포기 못 하겠어, 포기 못 해
(원석) 나 안 할 거야
[원석의 가쁜 숨소리]
아, 어차피 이제 소용없어
이미 너무 오래됐고
여기저기 상처도 나서 재생 불가야
아니야
(원석) 오래됐으니까
상처 났으니까
그러니까 더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펴 줘야지
어?
[울먹이며] 랑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앞으로 더 아끼고 노력할게
그래서 내가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되찾아 놓을게
왜 울어?
(원석) 그러니까 호랑아
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 (원석) 제발 - 아...
알았어, 그럼
네가 가져가, 그렇게 원하면
[훌쩍인다]
이게 뭐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소파인 줄은 몰랐네
(호랑) 내가 왜 다른 반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어떻게
다른 반지를 받아?
내가 어떻게 이 반지를 빼?
이게 어떤 반지인데
이번 생에 반지는
이거 하나로
충분해
그러니까 원석아
나랑
결혼해 줄래요?
[밝은 음악]
[흐느끼며] 내가 먼저 말하려 그랬는데
바보야, 울지 마, 화장 다 지워져
[훌쩍인다]
너나 울지 마
[웃음]
[원석이 흐느낀다]
(호랑) 얼굴이 왜 이래? 속상하게
그럼 우리 신혼집은 어디로 가?
(원석) 옥탑방, 그거 빼지 말 걸 그랬나?
[훌쩍인다]
[호랑의 탄성]
신혼집 필요 없어
어머님 아버님 집에 들어가서 살 거거든
어?
우리 엄마 아빠 집에?
응
그래도 그건 좀 그런데
왜?
아니, 너 괜히 시집살이하고 그런 거 나 싫단 말이야
(호랑) [힘주며] 정신 차려, 쯧
우리 형편에 받아 주시는 것도 감사한 거지
어머님이랑 다 얘기 끝난 거니까 딴지 걸지 마
우리 엄마랑 벌써?
응, 말 나온 김에 우리 계획을 좀 공유해 보자
(호랑) 잠깐만
자
(원석) 이게 뭐야?
우리의 결혼 개발 5개년 계획
(호랑) 그러니까 우리는 당분간...
[호랑이 계속 말한다] (지호) 사회학자 게리 베커에 의하면
결혼해서 사는 이득이 [원석과 호랑의 웃음]
(수지) [영어] 제 이메일 받으셨어요?
(지호) [한국어] 혼자 사는 것보다 커야
[수지가 영어로 말한다]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상구) 왔어, 우리 아기?
(수지) 오빠!
(상구) 응, 벨트 매야지
(수지) 아, 너무 춥다
(상구) 오늘 스타일 좋아, 친절한 우수지 씨 [수지의 웃음]
자, 출발!
(수지) 뭐?
오빠도 출장 간다고?
(상구) 서프라이즈 하려고 내가 비밀로 했지
홍콩, 3시 비행기, 부앙
뭐야, 나랑 같은 비행기잖아
쩔지? 어, 자리 몇 번이야?
우리 가서 좌석 바꿔 갖고 그냥 딱 붙어서 가자고, 오케이?
(수지) 당연하지
난 거의 맨 앞이야, 2A, 오빠는?
맨 앞 2A면...
어, 그렇구나
나는 날개 쪽이야
[발랄한 음악]
아...
비즈니스석이 아니구나?
아이, 그럼
(상구) 연 매출 50억을 달성하는 우리 우 대표님에 비하면
내가 뭐, 그걸 쫓아갈 수 있나
[어색한 웃음]
그리고 나는 원래 날개 쪽을 좋아해
그래서 치킨 먹을 때도 날개만 먹어
와
[함께 멋쩍게 웃는다]
(상구) 자, 가자
(수지) 오빠
(상구) 네
우리 마일리지 같이 쓸까?
(수지) 내 마일리지 오빠도 출장 다니면서 쓰면 좋잖아
좌석 업그레이드도 하고
아, 그러면 나야 뭐, 대박 좋지
근데 그게 가족끼리밖에 안 될걸?
아, 맞는다, 그렇지?
그럼 그냥 해 버릴까, 결혼?
[밝은 음악]
뭐를 해?
왜, 싫어?
아니, 싫기는 내가 왜 싫어? 좋지
(상구) 근데 너 결혼 제도 싫어했잖아
아이, 그리고 어떻게 마일리지 같은 거 때문에 결혼을 하냐?
아이참
(수지) 마일리지 같은 거라니?
내가 지난 몇 년간 숙박비 아끼려고
공항 의자에서 노숙하면서 모은 금쪽같은 마일리지야
그 마일리지를 오빠랑 쓰겠다는 생각이 그냥 쉽게 생기는 건 줄 알아?
얼마나 사랑하면 그런 마음이 생기겠냐고
- 수지 - (수지) 됐어!
생각해 보니까 나만 손해인 거 같아
안 해, 결혼!
(수지) 내가 오늘 우리 아들내미도 데리고 왔구먼
똥멍충아
[반짝이는 효과음]
(상구) 여보, 우리 같이 갑시다, 평생!
(지호) 하지만 문학가 괴테는 결혼만큼 본질적으로
자신의 행복이 걸려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지호) 괴테는 말했다
'결혼 생활은 참다운 뜻에서 연애의 시작이다'
[키보드를 탁탁 친다]
[지호가 코를 훌쩍인다]
[지호의 힘주는 신음]
[안마기 조작음]
[안마기 작동음]
[편안한 한숨]
(세희) 다 썼어?
아니, 아직
(지호) 방송만 보고 이따 또 밤새워야지
[옅은 탄성]
[지호의 한숨]
맥주 마실래?
[잔잔한 음악]
[지호의 웃음]
(지호) 우리는 3년 전에 혼인 신고를 했다
혼인 신고와 함께 계약서도 다시 썼다
[편안한 한숨]
(세희) 전세금을 절반씩 부담했으므로 본 빌라는 공동 명의
빌라에 대한 권리도 양측이 동일하게 소유하는 것으로
이의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지호) 쯧, 자, 명절엔 각자의 집으로 가서
따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으로 한다
이건 좀...
왜요, 문제 있습니까?
힘들지 않을까요?
한국 정서상 명절에 따로 인사를 드리는 건
좀 용납되기 어려울 거 같은데?
인사가 아니니까요
(세희) 부당 노동 저번 명절에도 겪으셨잖아요
갔다 와서 우리 둘이 일주일 동안 얼마나 서로 미안해하고 어색했습니까
지호 씨랑 그런 분위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서가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정서가 중요하지
[밝은 음악]
오케이, 콜
우리의 대전제에도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지호) 다음은...
(지호) 계약 내용은 1년마다 갱신되지만 [세희가 말한다]
대전제는 항상 똑같다
[지호의 고민하는 신음]
우리의 사랑을 [세희가 말한다]
[지호의 웃음] 최우선으로 할 것
[세희의 웃음]
- 콜 - (지호) 콜
[고양이가 그르렁댄다] [TV에서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호) 물론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각자의 집으로 갔던 첫 명절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셨고
우리 아빠는 상을 엎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 이상의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희의 힘주는 신음]
그냥 우리는 남들에게 돌아이 부부가 되었고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혼인 신고를 하든 안 하든
무엇을 택해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희) 방송하겠다
[지호의 옅은 탄성]
[긴장한 한숨]
(지호) 중요한 건 어떤 형태로든
지호야
응?
사랑해
[밝은 음악]
(지호) 옆에 있는 이 사람과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것
나도
[고양이 울음]
(지호) 그래서 오늘도 우선 우리는
사랑만 하기로 한다
(지호) 그리고
(지호) 어? 버스 왔다
빨리 타!
[함께 웃는다] [지호가 소리친다]
(지호)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여러분에게
모든 진심을 담아
건투를 빈다
(지호) 어차피 이번 생은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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