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9
빨리 와
우리 집에
가게
(지호) 아!
(세희) 정류장에 떨어뜨리셨어요
(지호) 아...
전화 많이 하셨네요?
(세희) 네
많이 했습니다
[세희의 한숨]
[도어 록 작동음]
저 먼저 씻어도 되겠습니까? 땀이 너무 나서
네, 그러세요
네
왜
네
왜 따라오십니까?
제가 따라간 게 아니고...
[잔잔한 음악]
(세희) 아...
아, 몰랐습니다
네, 그러신 거 같더라고요
그럼 씻으세요
[TV에서 중계 소리가 흘러나온다]
(세희) 남강역 사건 용의자인 것 같습니다
[놀라는 숨소리]
그, 여대생 스토킹했다는?
신고 내용도 똑같고 스패너도 그렇고요
근데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어요?
알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힘들게 구한 직장이라고 하셨잖아요
경솔하게 알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저한테 살짝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모른 척 연기하면서 걔를 좀 살펴볼 수도 있었고
지호 씨가 모른 척 연기를 하신다고요?
아니, 왜요?
제가 그런 거 못 할 거 같으세요?
[흥미로운 음악]
(지호) 제가 좀 오버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쉽게
'우리'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버스 타고 오셨냐고요
제가 대답해야 되나요?
그러실 필요는
없죠
그러니까요
(세희) 그 사람이 저희 계약을 아는 것 같다고요?
네
분명히
가짜 남편이라고 했거든요
(복남) 그러게 누가 가짜 남편이랑 결혼을 하래?
씁, 아무리 스토킹을 했다지만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러게요
그건 저희 둘밖에 모르는 사실인데
(지호) 아, 휴대폰 때문인가?
네?
(지호) 제가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거 보고 그랬거든요
남편이 아니라 진짜 집주인 아니냐고
네
저를 '집주인'으로 저장해 두셨더라고요
(세희) 그게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
그러게 왜 저를 집주인으로 저장하셔 가지고
그럼 뭐라고 저장해요?
아니, 뭐, 다른 거 할 게 없잖아요
뭐, 이름도 있고요
'세희'라든가 '세희 씨'라든가
[한숨]
[흥미로운 음악] 그러는 세희 씨는 저를 뭐라고 저장하셨는데요?
저는 당연히 지호 씨를
세입자라고 저장했네요
(세희) 보미 님 작은아버지께서 서에 계셔서 알려 두었으니까
아마 내일쯤이면 해결이 날 겁니다
그럼 복남이는 어떻게...
콩밥 먹어야죠
네
(TV 속 해설자) 오, 위험했어요! [TV 속 캐스터가 호응한다]
(TV 속 캐스터) 자, 산체스, 왼쪽엔 수비수가 있고요 [지호의 놀라는 숨소리]
(TV 속 해설자) 아, 앞쪽인데요
[세희의 놀라는 신음] (TV 속 캐스터) 안쪽으로 지루 들어갑니다!
(TV 속 해설자) 아, 산체스!
[지호와 세희의 탄성]
[TV 속 중계가 계속된다] (세희) 깔끔하게 넣었네요
역시 산체스
감사해요
[잔잔한 음악]
달려와 주셔서
거기서 같이 내려와 주셔서
그리고 또
'우리 집'이라고 말해 주셔서
많이 섭섭하셨습니까?
제가 그었던 선이
(세희) 남들 앞에서 부부 관계 연출하지 말자고 해서
그리고 '우리'라고도 부르지 말라고 해서
많이 서운하셨습니까?
네
저는
지호 씨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세희) 남들과 다르게 저희는
종료를 전제로 한 결혼이니까요
지호 씨에게는 주거 공간을
저에게는 월세라는 이익을 상호 합의 한 계약이긴 하지만
결혼 종료 후에는
저보다는 지호 씨의 피해가 더 클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여성이시고 저보다 나이도 적으시니까
그래서 사회적 평가가 더 엄격할 수도 있으니까
되도록 저와 관련된 관계들은 최소화하고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는 일도
되도록 피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결혼 종료 후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제 피해에 대해서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식 후에
왜요?
약속을 했으니까요
(세희) 지호 씨에게 폐가 되지 않겠다고 지호 씨 어머님과 약속을 했었으니까
지키고 싶었습니다
[잔잔한 음악]
앞으로도 지키고 싶고요
(세희) 저도 아직 지호 씨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언제라도 자기가 행복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실 겁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생활 동안 그 선택에
폐가 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이게 다입니다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저예요
네, 압니다
제가
졸업하고 보조 작가로 취직했을 때
한 달에 80만 원을 받았어요
(지호) 그때 저희 아빠가
당장 때려치우고 남해 내려와서 시금치 캐라고 그러셨어요
집 뒤에 있는 텃밭에서 시금치 일주일만 캐도 그거보다는
많이 번다고요
(지호) 그렇게 남들 다 이해 못 하는 일을
제가 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냐면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좋은 작가가 되겠다든지 유명해지고 싶다든지
성공하겠다든지
그런 생각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어쩌다가 시나리오라는 걸 보게 됐는데
그게 미치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시작한 거였어요
하루하루 글이라는 걸 쓰는 게 재밌어서, 그냥
(지호) 글을 써서 뭘 이루겠다든지 뭐가 되겠다든지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전
2년 뒤의 일 같은 거
생각 안 해요
거기까지 생각했으면
아마 못 했을 거예요, 이 결혼
(지호) 그냥 저한테는
지금 당장 이 방이 필요했고
이 집의 안전함이 좋았고
고양이랑도 헤어지기 싫었고
또
집주인이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래서 한 거예요
(지호) 지금 현재 이 집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러니까 결혼이 끝나고 난 뒤의 일 같은 건
저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지호)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일부러 선 긋는 거
하지 마세요
네
방문도
잠그지 마세요
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세희) 저도
할 말 있습니다
집주인
이라고 하지 마세요
[잔잔한 음악] (세희) 혼자라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남들 앞에선
'남편'이라고 하세요
위험한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으니까 혼자라고 오해받지 않게
2년 동안은 저와 함께
이 집의 소속이시니까
네
네
그럼 주무세요
아, 근데 제가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전화도 안 됐는데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택시 기사) 어, 공사 중이네?
더는 못 가겠는데요?
(세희) 저 위까지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까?
차로 가는 길은 이 길밖에 없어요
아, 혹시 걸어가는 길이 따로 있나요?
(택시 기사) 이쪽으로 가도 되는데
네, 감사합니다
[한숨]
(택시 기사) 30분도 더 걸릴 텐데
[거친 숨소리]
[힘주는 신음]
[지친 숨소리]
[스패너가 탁 굴러간다]
가요, 축구 보러
(세희) 빨리 와
우리 집에
가게
[새가 짹짹 지저귄다]
[옅은 신음]
[잔잔한 음악]
[고양이 울음]
[통화 연결음]
[지호의 편안한 신음]
[살짝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세희) 여보세요? [발랄한 음악]
(지호) 여보세요?
(세희) 집에 계셨네요?
근데 왜 또 전화를
어, 그게...
아...
(지호) 알람을 끈다는 게 이렇게 통화를 잘못 눌러서
네, 그러셨...
군요
[멋쩍은 웃음]
밤새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지호 씨는요?
저도요
[고양이 울음]
어?
(지호) 고양이,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혼자서 택시를 잡아타고 왔더라고요
(세희) 문밖에서 문 열어 달라고 울고 있길래 열어 줬습니다
[고양이 울음]
(지호) 얘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요?
없죠, 물론
농담이니까요
[놀란 숨소리] [밝은 음악]
농담을 하신 거구나
[멋쩍은 숨소리]
네
[픽 웃는다]
[살짝 웃는다]
[휴대전화 벨 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지호) 응, 지호, 웬일이야, 아침부터?
네, 보미 님
뉴스요? 안 봤는데요
뉴스 보라고, 왜?
어?
아...
잡혔다고요?
[의미심장한 음악]
(기자) 지난 10월 30일 발생한 남강역 감금 사건의 용의자가
[기자들이 소란스럽다] 오늘 새벽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용의자는 온라인 게임 채팅으로 만난 여성을 스토킹하다 납치해
(영상 속 기자) 13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용의자를 구속하는 한편
추가 범행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안 믿기네요
(지호) 이런 애일 거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세희) 자기 자신도 다 모르는데 타인의 이면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 출근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카페로 경찰이 찾아올 수도 있고
괜찮아요
범인도 잡혔는데 나가서 일해야죠
[하차 벨이 울린다]
(지호) 그럼 이따 집에서 봬요
(세희) 오늘 버스 타고 오실 거죠?
네
그럼 이따 봬요
(지호) 네
씨, 세상에, 복남이 그놈 새끼
(호랑) 지호, 너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지호) 응, 괜찮아
위험하기 전에 집주인이...
아니
[발랄한 음악] [픽 웃는다]
남편이
와 줬거든
(호랑) 아, 그러니까, 수지한테 들었어
아니, 형부 진짜 대단하시다
우린 걔 미소에 다 홀랑 넘어갔는데 어떻게 그 정보를 다 수집하셨지?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증거를 다 수집해 놨더라고
(호랑) [놀라며] 진짜 철두철미하시다
석이 말이 맞나 봐
큐브 그게 보통 계산으로 맞추는 게 아니라던데?
큐브 신기록 갖고 계신다면서? 회사에서
음, 그럴 만하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사람이거든
[비장한 음악]
(직원1) [놀라며] 대박, 52초
[직원들의 탄성]
(직원2) 역시 세희 님, 와
(직원3) 야, 세희 님 큐브의 신이라니까 [저마다 감탄한다]
- (직원4) 그러니까 - (직원1) 진짜 말이 돼?
(직원4) 사람이 봐도 봐도 신기해, 진짜
(직원5) 진짜 말도 안 된다
[직원들이 계속 감탄한다]
(직원3) 아, 이게, 하, 이게 공식이 있나, 이게?
- (직원5) 처음 봤어요 - (직원3) 아, 나 이거 모르겠어
- (직원4) 와 - (직원5) 저게 사람이야?
(직원6) 사람 아닌 거 같은데? 와
(상구) 저, 남 수석, 그거 끝났으면 잠깐 나 좀 볼까?
자, 일 때문에
[직원들이 감탄한다]
[비장한 효과음]
(상구) 어제 걔한테 뭐, 어떻게 했나?
뭐, 심하게 그런 건 아니지?
(보미) 때린 건 아니죠?
제가 사람을 때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상구) 아, 다행이다
(세희) 대신에
오토바이를 때렸습니다
- 뭘 때려? - (보미) 4천만 원짜리를?
뭐, 4천만 원짜리라고 해도 한 방에 날아가던데
더군다나 뭐, 그다지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진짜야,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
제가 아침에 전화했잖아요 범인 잡혔다고
네, 저도 뉴스 봤습니다
(보미) 이거 보세요
제가 작은아빠한테 부탁해서 입수한 거예요, 진범 사진 [익살스러운 효과음]
(상구) 신고 리스트 계정 보니까 그거 도용된 거더라고
[흥미진진한 음악] - 뭐? - (보미) 세희 님도 보셨잖아요
연복남 씨 별스타그램에서 엄청 인기 많은 셀럽이에요
(상구) 요새는 SNS 캐면 [휴대전화 캡처 작동음]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
범인이 계정을 새로 파서 연복남 사진을 올려놓은 거지
(보미) 연복남 씨인 척하면서 여자들한테 접근한 거죠
완전 상습범이에요, 상습범 [상구의 한숨]
그럼
걔는
뭔데?
그냥 성실한 알바생이죠
선량한 시민이기도 하고
[오싹한 음악] [놀라는 숨소리]
[침을 꿀꺽 삼킨다]
[흥미진진한 음악]
어? 너...
(지호) 너 왜 콩밥 먹으러 안 가고 여기서 토스트를...
(사장) 어제 남편이 얘 오토바이 다 부쉈다며?
예?
(사장) 멀쩡하게 서 있는 오토바이 발로 차서 다 부쉈다며!
(지호) 아니, 사장, 사장님, 그게, 그게...
쟤요
스토커예요
(사장) 뭐, 스토커?
(지호) 네, 남강역 사건 용의자라니까요
뭐지, 버, 벌써 그새 탈옥한 건가? [사장의 한숨]
사장님, 사장님,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좀 해야 되...
지호 씨, 아니, 너무 심하잖아
(사장) 멀쩡한 애를 범죄자라니, 스토커라니?
아, 그러니까 그게 핵심이라니까요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게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아, 됐어, 그만해, 아빠
(지호) 하, 자기가 뭔데 그만하라 마라야?
아빠?
[오싹한 음악]
남편한테 전화해, 당장! [으르렁대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뭐? 남강역 사건 용의자?
(세희) 죄송합니다, 착오가 좀 있었습니다
[으르렁대는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사장) 착오가 있었으면 대화로 풀어야지
다 큰 어른이 애 바이크를 부숴 놓고 말이야
그 비싼 걸! [익살스러운 효과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장) 그게 어떤 오토바이인데
자기 자취방 보증금까지 빼서 산 오토바이예요, 그게!
[휴대전화 진동음] [사장이 혀를 쯧 찬다]
[사장의 한숨]
[으르렁대는 효과음] [깨갱대는 효과음]
점잖게 생겨 가지고는...
여보세요, 예
[웃으며] 아, 예, 예
[세희의 한숨]
뭐, 나도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는데 우리 아빠 화나면 아무도 못 말려요
(복남) 아, 그래도 그건 말 안 했어요
가짜 부부
[흥미진진한 음악]
(세희) 그건 어떻게...
그리다 예식장 버스 타고 갔죠?
[세희의 놀란 숨소리]
보통 버스 타고 자기들 결혼식을 가지는 않죠
정상적인 부부는
[버스 문이 쓱 열린다]
[카드 인식음]
[카드 인식음]
(복남) 버스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좀 웃긴다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세희) 저, 혹시 손수건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까?
그, 신부가 울 때 신랑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꼭 닦아 줘야 한다고
아니, 제가 울기는 왜 울어요? 저 그런 캐릭터 아니에요
(세희) 네, 그래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지호 씨 예복 비용은 제가 절반 부담하겠습니다
(지호) 아, 아니에요 얼마 들지도 않았는데요, 뭐
(복남)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더라고, 대화가
(세희) 그래도 저랑 다르게 웨딩 슈즈와 부케값도 드셨으니
다음 달 월세에서 차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남) 어? 오늘?
아, 안 돼, 나 오늘 저녁 알바 있잖아
(복남) 근데 마침 내가 알바하는 예식장 앞에서 내리네?
[잔잔한 음악]
(예식장 직원) 어, 복남 씨, 대기실에 있는 안내판 세팅 좀 해 줘요
아, 예
(복남) 실례 좀 하겠습니다
(지호) 네
[반짝이는 효과음]
[세희의 놀라는 신음]
(세희) 아, 죄송합니다
아, 네
(복남) 그래서 생각했지
'이 신랑 신부 뭐가 평범하지는 않구나'
예를 들면 계약 결혼?
[카메라 셔터음] (보미) 수고하셨습니다
[직원3의 탄성] (직원5) 수고하셨습니다
(세희) 수고하셨습니다, 보미 님
(지호) 감사합니다
- (복남) 그, 사진 한 장 더 찍으시죠 - (보미) 네?
(복남) 아, 그, 여기 우리 예식장에서 서비스로 액자 해 드리거든요
액자에 들어가게 두 분 한 장씩 사진 찍어 주시면...
- (세희) 괜찮습니다 - (지호) 아니요
(보미) 서비스요? 그럼 해야죠
다시 서 보세요, 얼른요
[잔잔한 음악]
그, 포즈를 좀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복남) 아까 보니까 다정한 컷이 하나도 없던데
그랬나?
세희 님, 다른 포즈 좀 취해 보세요
다른 포즈라 하면...
(복남) 뭐, 뽀뽀라든지
(지호와 세희) 네?
(복남) 아니면 뭐, 신부님 허리라도 안으시든지
에이, 결혼사진인데 저게 뭐야, 밋밋하게 [세희의 난감한 신음]
저러면 나중에 두고두고 사진사 탓해요, 사진 볼 때마다
(보미) 두 분 뭐라도 좀 포즈 취해 보세요
두 분 뭐라도 좀 서로 스킨십을 해 보라고요
오케이, 훨씬 다정하네
그렇죠?
(복남) [살짝 웃으며] 그렇죠, 악수도 스킨십이니까
(보미) 자, 찍습니다
[카메라 셔터음]
[세희의 멋쩍은 신음]
(세희) 그럼 제 사인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하셨잖아요
예식장 대금 최종 정산 할 때
아...
맞는다
(지호) [의아해하며] 아니, 그럼
스패너는 왜...
(세희) 응
[답답한 한숨]
[긴장되는 음악]
(지호) 우아 [세희의 탄성]
병맥주 따 주려고 했던 거였죠
병따개가 없어서
[밝은 음악] (복남) 두 분이서 낮술이라도 한잔하시든가요
가짜 부부 사기단
아니다, 퍽치기 부부 공갈단인가?
[복남의 헛웃음] (세희) 아니, 그...
[세희의 멋쩍은 신음]
[지호의 한숨]
[지호가 숨을 하 내쉰다]
(복남) 아, 그리고 오토바이 수리비는 내일 중으로 청구할게요
(세희) 아...
오토바이
[익살스러운 음악]
음
저
복남 군
복남 씨
아니죠, 아드님
[익살스러운 효과음]
잠시만
(네일 아티스트) 오늘은 일찍 왔다? 오전 근무만 해?
(호랑) [픽 웃으며] 응, 이런 날도 있어야지
[네일 아티스트의 옅은 탄성]
[휴대전화 진동음]
(수지) 너 오늘 감배 모임 갈 거야?
감배 모임?
(호랑)
(수지) 응
(호랑)
(수지)
(호랑) 언니, 나 오늘 색깔 있는 걸로
괜찮아?
내일 오프라서 괜찮아
[네일 아티스트의 옅은 탄성]
[지호의 힘주는 신음] (수지) 왔어?
(지호) 미안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수지) 아니, 아니야, 춥지?
(호랑) 아,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복남이 화 많이 났어?
형부 이제 집 팔아 가지고 오토바이값 물어내야 되는 거야?
야, 숨 좀 쉬고 물어라
(수지) 잘 해결된 거야?
(지호) 어, 뭐, 집까지 팔 정도는 아니고
씁, 다행히 잘 얘기해서 좋게 잘 마무리됐어
하, 근데 비싼 오토바이는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라
쯧, 그래도 다른 데는 멀쩡해서 백미러값만 물기로 했어
할부로 [지호가 살짝 웃는다]
(지호) 나도 이제 더 열심히 해야지, 알바 복남이 가게니까
쯧, 헐, 그러니까 가게 사장 아들일 줄이야
그래도 우리 이번 일로 좀 다시 봤다, 너희 남편
(지호) 응?
(수지) 아니, 백미러값 안 물려고 트리플 악셀 하던 사람이
그 비싼 오토바이를 박살 내니까 놀랐지, 완전
[살짝 웃으며] 뭐, 나도 좀 놀라긴 했어
(수지) 우리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은근 애처가이신가 봐?
(호랑)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거야 너 같은 냉혈한은 모르겠지만
깝치지 마라
(수지) 감배 모임 가야 돼서 언니 컨디션 별로니까
감배 모임?
(호랑) 그러게, 나도 아까 그게 궁금했는데
감배 모임이 뭐야? 왜 그렇게 불러?
가 보면 알게 될 거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시끌벅적하다]
(호랑) 야, 나 요즘 쓰는 화장품...
(여자1) 씁, 지호, 네 결혼 얘기 좀 해 봐라
사실 우리가 좀 많이 섭섭해요
어떻게 스몰 웨딩이라고 카도 우째 우리한테 말이 한마디도 없노?
(지호) 미안하다, 경황이 좀 없었다
(여자1) 그래서 신혼집은 어데고?
아파트? 전세? 설마 자가?
어, 자가
[사람들의 탄성] - (여자2) 야, 네 남편 능력 진짜 좋다 - (여자3) 대박
뭐, 물론 대출 끼고야
(여자2) 야, 요즘 대출 없이 어떻게 시작해 그건 당연한 거고
좋을 때다 우리도 신혼 때가 제일 좋았거든
(여자1) 그래서 결혼하니까 좋나?
응, 뭐
[반짝이는 효과음]
[픽 웃는다]
좋은 거 같아
(여자3) 음, 뭐가 그렇게 좋을까?
(여자2) 음, 우리 남편도 신혼 때는 퇴근하자마자 달려들고 막 그랬는데
퇴근하자마자 엄청 찾지?
어? 뭐, 그렇지
그 사람도 엄청 찾기는 해
[익살스러운 음악] (세희) 고양이
(지호) 현관에서부터 막
고양아
(지호) 내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나가면
(지호) 오셨어요?
[고양이 울음] (지호) 다짜고짜 나를 번쩍 안고서
(세희) 그럼
(지호) 바로 방으로 들어가거든
[사람들의 탄성] (여자2) 바로 방으로?
(여자1) 아유, 뜨겁다, 뜨겁다
(여자3) 야, 너무 뜨거운 거 아니야? 으
(여자1) 야, 그래도 아기는 너무 빨리 놓지 마라
아기를 놓는 순간 신혼은 끝이야, 알았지?
(여자3) 야, 그건 20대 때 얘기고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지
(여자2) 하긴 낳으려면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낳는 게 낫겠다 싶긴 해
근데 그런 생각 들다가도 시댁 갔다 오면 그런 생각 1도 없어져
(수지) 야, 그래도 개저씨들 같은 직장 상사보다 시부모가 낫겠지
이거 마시고 털어
[여자2의 한숨] - (여자1) 짠 - (지호) 짠
(여자1) 수지야, 니는 아직도 그래 말술을 먹나?
니도 참 대단하다
[여자3의 웃음]
(여자3) 나 임신했을 때 맥주가 너무 당겨서
밤마다 맥주 CF 보면서 달랬잖아 [여자2의 웃음]
맥주 광고 찍은 송중기가 보고 싶어서가 아이고?
[사람들의 웃음]
(호랑) 야, 요즘에는 송중기보다는 박보검이 대...
(여자3) 야, 애도 안 가져 본 아가씨들이 그 심정을 어떻게 알겠냐?
(여자2와 여자1) 모르지
여기 흡연실은 따로 없죠?
(가게 직원) 저기 주차장 쪽에서 피우시면 됩니다
(수지) 네
흡연실은 왜?
(수지) 쯧, 요새 아무 데서나 피우면 벌금 매기잖아
음, 맞는다, 한 10만 원인가 그 정도 할걸?
수지야
(여자1) [헛기침하며] 니는 결혼할 생각이 없나?
어, 난 별로 생각 없는데?
(여자1) 근데 뭐,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할 수도 있잖아
(수지) 뭐, 그렇지, 생각이 바뀌면 할 수도 있겠지
(여자1) 씁, 그러면, 저기 담배는 좀 끊어야 되지 않을까?
(수지) 응?
(여자1) [헛기침하며] 아니, 그렇잖아
그, 아기를 나중에 놓을라 카면 뭐, 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니코틴이라는 게 몸에 축적이 되는 거란 말이야
그럼 아기한테 엄청 영향이 안 좋다고, 맞지?
[수지의 탄성] (여자2) 어, 맞아, 맞아
[저마다 말한다]
- (수지) 야, 봤지? - (호랑) 응?
(수지) 감 놔라
(여자3) 그래, 아기 낳으려면 여자 몸이 중요하더라고
(수지) 배 놔라, 이래서 감배 모임
[호랑의 탄성] [지호가 픽 웃는다]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지호의 시원한 숨소리]
(수지) 야, 결혼하면 왜 다들 과일 장수가 되는 거냐?
감 놔라 배 놔라, 어?
[지호가 픽 웃는다] (호랑) 그래서 다들 결혼을 하는 거야
인생의 빅 재미 중 하나가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거든
[입바람을 후 분다]
근데 호랑, 너 아까 거기서 뭐, 많이 못 먹었어?
배고파?
어, 배고팠어
아까 거기서 거의 못 먹었어 속 쓰려서
[헛웃음 치며] 야, 싸움은 내가 했는데 네가 왜 속이 쓰려?
부러워서
결혼한 애들 부러워서, 속 쓰려서 못 먹었어, 아무것도
[호랑이 입바람을 후 분다]
(여자2) 진짜 서른 되니까 너무 달라 체력도 달리고
맞아, 나도 서빙하느라 조금만 서 있어도 피곤하고
아니, 피부도 예전 같지 않고
- (호랑) 엊그제는... - (여자1) 맞네
아기를 놓고 나니까 몸 자체가 달라졌다 아이가
- (여자1) 니는 안 그렇나? - (여자2) 넌 유치원 보냈잖아 [쓸쓸한 음악]
(여자2) 다 키웠지, 뭐
(여자1) 아기를 다 키우면 뭐 해요?
평생 키워야 될 남편이 남아 계시는데요
아니, 내 죽겠다
니 알지? 46kg 넘었던 적 있어?
없었다니까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랬다니까
[여자1이 계속 말한다]
[입바람을 후 분다]
[시원한 숨소리]
갈게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지호) 바이
(호랑) 아, 치마 뜯어지겠다
간만에 편의점 먹방 찍었더니
그러면 좀 걸을까?
(호랑) 그럴까? [지호의 웃음]
(호랑) 희주랑 영옥이는 시집가더니 완전 절친 됐더라
(지호) [웃으며] 그러게
걔네들 옛날에는 물과 기름이었는데, 완전
(호랑) 지호 너도
응? 나?
애들이 원래 너 되게 어려워했잖아
(호랑) 근데 결혼하니까 봐, 되게 편하게 대하잖아
이제 공통분모가 생긴 거지
[멋쩍게 웃으며] 그거야 뭐,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거지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아까 애들 말 틀린 거 하나 없지, 뭐
뭐가?
어쨌든 아이를 낳는 건 결국 여자니까
(호랑) 한 살이라도 어리고 건강할 때 낳는 게 낫지
그러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는 게 맞고
호랑아
너는 결혼이 왜 하고 싶어?
[잔잔한 음악]
(호랑) 너 알지?
나 어렸을 때 까만 옷은 쳐다도 안 봤던 거
(지호) 알지
빨강에 핑크에 노랑에
우리 만날 때마다 수지랑 너 오늘은 무슨 옷 입고 오나
[살짝 웃으며] 내기하고
(호랑) 근데 이제 옷장 열면
나도 모르게 안 튀는 색 옷만 집게 된다
어느 옷에나 입어도 잘 어울리고 어딜 가도 튈 일이 없잖아
그래서 좋아
있지, 우리 엄마 목욕탕 다니는 모임 중의 아줌마 하나가
어느 보험 회사 팀장인가 그렇대
관리를 엄청 해서 날씬하고 주름도 없고
돈도 엄청 잘 번다나 봐
목욕하고 나오면 맨날 밥도 사 주고
아줌마들도 멋있게 산다고 엄청 부러워하고
(지호) 음, 그렇구나
(호랑) 근데
어디 놀러 갈 땐 그 아줌마만 쏙 빼놓고 간다
(지호) 진짜? 왜?
그 아줌마가
빨간 코트거든
[잔잔한 음악]
(호랑) 일하느라 바빠서 결혼을 안 했대
지호, 난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평범하게 살고 싶어
남편도 있고 애도 있는 그런 아줌마
친구들 모임 가서 같이 시부모 얘기도 하고
애 키우는 얘기도 하고
그런 까만 코트만 입고 싶어, 이제
남들이랑 섞여 있어도 튀지 않고 똑같은 사람
남들 하는 거 똑같이 하면서 같이 얘기하고 같이 웃는 거
그게 내 꿈이야
결혼은 나한테
'너도 남들만큼 괜찮다'
'여자로서 가치가 있다'
라고 얘기해 주는 까만 코트야
(지호) 호랑은 빨간색이 참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수지) 아이씨, 와 이리 안 오노?
(지호) 오겠지, 뭐
(호랑) 지호, 수지!
(수지) 아유, 나 집에 간다
- (지호) 아, 잠깐만 - (수지) 나 갈래 [호랑의 웃음]
(수지) 야, 신호등이가?
(호랑) 왜? 예쁘잖아
(수지) 징그럽다, 징그러워 [지호의 웃음]
- (지호) 가자 - (호랑) 가자 [잔잔한 음악]
(지호) 남들과 다른 색을 입어도 언제나 당당했던 아이
그게 호랑이었는데
(지호) 우리는 언제부터
남들과 다른 색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걸까?
(지호) 하지만 무엇보다 씁쓸한 건
(가게 직원)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지호) 나 역시 결혼이라는 까만 코트를 입었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
(지호)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휴대전화 진동음]
(여자2) 지호, 결혼 다시 한번 축하해
줌마 됐으니까 우리 좀 더 자주 보자
(여자3) 그래, 다음에는 부부 동반 모임으로
(여자1) 웰컴 투 유부, 유부
(지호) 좋았다
무언가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하차 벨이 울린다]
[버스 문이 쓱 열린다]
(지호) 여기 어, 어쩐 일이세요?
버스 타고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아까 문자에
(세희) 시간이 너무 늦어서
어제 복남이 사건도 있었고
그래서 사실은 좀 걱정됐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요?
네
(지호) 음, 집주인으로서의 호의 같은 건가요?
아니면 세입자에 대한 배려?
(세희) 음, 뭐
일종의 구단주로서의 선수 관리 차원 같은 거랄까요?
[픽 웃는다]
네
가실까요?
(세희) 동창 모임을 하셨다고요?
(지호) 네
그래서 사실 좀 이상했어요, 오늘
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인데
제가 결혼을 했다고 하니까
[살짝 웃으며] 뭔가 친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떤 그룹에 속한 기분 같은 거
오랜만에 느껴 보거든요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이제 소속감의 단계를 거치시나 보네요
네?
매슬로의 욕구 이론요
(세희) 인간의 욕구는 한 단계를 거치면 자연히 다음 단계를 원하게 되니까요
갑자기
(지호) 여기서 매슬로가 왜 나오는...
갑자기가 아니죠
[흥미진진한 음악] (세희) 지금 지호 씨의 그 상태가 바로
가장 동물적인 인간의 욕구니까요
지호 씨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통해
가장 원초적 1단계인 의식주 욕구를 해결했고
그리고 집주인인 저를 통해 2단계인 안전 욕구 역시 해결했죠
그러니까 이제 3단계인 소속감 욕구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게 되신 거죠
그러니까 그런 기분들도 그저 동물적인 기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지호) 가끔 느끼는 거지만
다 부질없는 인간의 하등한 욕구일 뿐이죠
(지호) 참 재수 없을 때가 있다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왜 저를 그런 표정으로...
하늘에 별이 참
없네요
(지호) 아, 오늘 이번 달 월세 입금했어요
(세희) 아, 네, 확인했습니다
[잔잔한 음악]
[스위치를 탁 켠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청소기 작동음]
(원석) 랑아, 아직도 자?
(호랑) 응
[청소기가 뚝 멈춘다] 아, 일어나, 벌써 해가 중천에 떴어요
(호랑) 조금만 있다가 쉬는 날은 늦잠 좀 자게
아, 얼른, 볕 좋으니까 이불 좀 널어놓게
[호랑의 못마땅한 한숨]
(호랑) 아, 진짜 오늘따라 꼭두 아침부터 부지런이야, 너는
아유, 그만 좀 긁어라, 좀
랑아, 너 그러다 비듬 생겨
뭐?
아유, 이제 7년이나 됐다고 긴장감이 완전 제로구먼?
(원석) 옛날에는 막 먼저 일어나서 머리 감고 아이라인 그리고 다 하더니
갔네, 갔어
[한숨]
그러는 너는 7년이나 되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아주?
(호랑) 나 오늘 건드리지 마
나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씻지도 않을 거니까
[원석의 못마땅한 신음]
(원석) 아, 일어나라고, 좀, 어?
어? 이거 뭐야?
손톱에 때 낀 거 아니야?
어유, 더러워
랑아, 너 손톱에 때 꼈다고, 때 어유, 더러워
(호랑) 아휴, 야! 내가 무슨 때가 있다고 그래?
눈 똑바로 뜨고 봐, 무슨 때가 있...
[반짝이는 효과음] [잔잔한 음악]
어?
(원석) [살짝 웃으며] 너 이거나 봐
이거 뭐야?
(원석) 랑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학자 있잖아
괴델 아저씨
그 아저씨가 정리한 불완전성 정리가 지금 컴퓨터 개발의 토대가 된 건데
그게 뭐냐면
'진리임에도 증명될 수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어
어, 그동안 나는 너한테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거 같아
근데 내가 깨달은 게 뭐냐면
어차피 우리 사랑은 완전한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게 너무나 완벽한 진리라서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무슨 말인지
내가
알겠냐?
개발자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말해
(원석) 이제 앞으로
다시는 너 혼자 불안해하게 안 둘게
그러니까 호랑아
나랑
결혼해 줄래요?
[잔잔한 음악] [흐느낀다]
나 진짜 너랑 결혼하는 거야?
응, 진짜 결혼하는 거야
[흐느낀다]
씻었을 때 하지 이게 뭐야, 떡 진 머리로
그러니까 내가 씻으라고 했잖아 이 바보야
[호랑이 연신 흐느낀다]
[흥얼거린다]
[카드 인식음]
[상구가 흥얼거린다]
(남자) 어?
어디서 물이 떨어지는 거야?
뭐야?
[상구가 연신 흥얼거린다]
(상구) 아유, 회의는 오늘 여기까지만 합시다
자, 윤보미 씨
대표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자리에 앉아요
자, 여러분, 제가 정말 아주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아주 유능한 개발자를 한 명 스카우트했습니다 [밝은 음악]
[저마다 놀란다] - (직원3) 대박 - (직원7) 누구요?
씁, 몇몇은 그, 안면이 있을 텐데요?
(상구) 누구냐?
깨울람의 심원석 대표
박수
분위기가 왜 이래?
[익살스러운 효과음]
자, 마무리들 지으세요
도대체 왜 반대하는 거야?
(세희) 왜냐니? 깨울람이 망했으니까
만약 마 대표가 섣부른 동정심과 친분으로 지인을 스카우트하는 거라면
직원들을 대표해서 내가 나서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남 수석, 너는 너희 회사 대표가 그렇게 짜치는 인간으로 보여?
(상구) 야, 원석이 걔 겉으로는 어수룩해 보여도 걔 천재야, 천재
너 07잡스 알지? [세희의 의아한 신음]
아니, 그, 왜, 그, 저 07컴공 신입생 중에
'제2의 김태희를 찾아라' 그 사이트 만들어 갖고
막 서버 다운되고 대박 나고 막 마비됐었잖아
[세희의 탄성] 그래, 걔가 원석이야
걔가 그때 몇 살이었는지 알아? 18살
걔가 빠른 연생에 조기 졸업자라 자기 동기들보다 2살 어렸는데도
톱 오브 톱이었어
그래, 남 수석, 솔직히 걔가 사업적으로는 조금 미흡할 수도 있어
하지만 걔가 개발자로서는 정말 최고야
진짜야, 남 수석, 나 믿지?
아니, 그 표정은 뭐지?
비 맞은 길냥이를 보는 듯한 그 눈빛은?
아니야
뭐가 아니야?
아니라니까
[상구의 답답한 숨소리]
너 세상에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뭔지 아냐?
(상구) 똥 싸다 끊는 거
똥 닦다 마는 거
그리고 말하려다가 마는 거
알겠어, 그럼 나가서 얘기해
(상구) 나가긴 어딜 나가, 밖에 추워
[한숨]
알겠어, 그럼
마 대표, 너
(세희) 혹시
울었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내가 왜 울어?
[헛웃음 치며] 뭐, 내가 왜 울어?
아니, 너 원래 울고 나면 눈가 주위가 빨갛잖아
남들보다 눈 밑 피부가 예민해서
뭐라는 거야? 남...
뭐가 빨개, 뭐가 빨갛긴?
아, 네가 내 피부에 대해서 뭘 안다 그래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아무리 내가 널 18년 동안이나 봐 왔지만
그렇다고 너에 대해서 다 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
그래, 아무리 절친이라 그래도 그런 건 다 알 수가 없는 거야
자, 봐 봐
내가 여기 알레르기가 있어 갖고 여기가 항상 좀 빨개
내가 근데 왜 울어? 그냥 빨간 거지
그래, 맞아 자기 자신도 다 모르고 사는데
타인이 타인을 어떻게 다 알겠어
그렇지 [손가락을 탁 튀긴다]
(세희) 그런데 말이야
어?
왜
울었어?
[애잔한 효과음]
(수지) 와, 감쪽같네, 어?
그렇죠?
[복남의 탄성]
(복남) 그래도 헤어지는 날까지
흠집 하나 없이 보내 주고 싶었는데, 쯧
헤어지는 날?
(수지) 뭐야, 누구한테 넘길 생각 있는 거야?
[복남이 피식 웃는다] 얼마 생각하는데?
[직원들이 저마다 말한다]
(복남) 비밀입니다 [수지의 웃음]
[잔잔한 음악]
[수지가 픽 웃는다]
귀엽고 난리야
계속 같이 있으면 내가 마 대표님 덮칠 거 같아서요
아, 그리고 303호가 아니라 304호였어요, 우리 방
내가 너랑 자고 싶댔지 언제 연애하고 싶댔어?
(수지) 어, 나 못돼 처먹었어
못돼 처먹어서 그나마 여기서 이까지 버티는 거야
마 대표
[상구가 흐느낀다]
(수지) 저...
[상구가 심호흡한다]
울어요?
아, 왜...
어디 아파요?
- (직원1) 대표님, 대표님! - (직원3) 대표님!
(수지) 일로 와요
- (직원3) 어디 가신 거야? - (직원5) 그러니까
(직원들) 대표님!
- (직원5) 갑자기 어딜 가셨어? - (직원1) 대표님! [저마다 말한다]
이쪽에도 없네요
(직원3) 아, 그럼 진짜 어디 가신 거야?
[직원들이 저마다 말한다]
(직원1) 대표님!
[수지의 한숨]
(수지) 대표가 울다가 직원들한테 들키면 하, 그게 뭔 쪽이에요?
[코를 킁 푼다]
[훌쩍인다]
왜 그러는데?
진짜 어디 아파? 병원 데려다줘요?
내가 생각해 봤는데
회사는 안 될 거 같아
(수지) 네?
나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회사는 못 팔 것 같아
[잔잔한 음악]
근데 회사를 안 팔면
널 앞으로 못 보는 거잖아
(상구) 그래서
내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
[상구의 힘겨운 신음]
그렇게 나랑 자고 싶으면
회사 팔고 와
그럼 연애해 줄게
그럼 내가 회사 팔라고 했던 말 때문에
그걸 진짜로?
나한테 사랑도 중요한데
나한테
사랑만큼 내 회사도 너무 중요해
(상구) 아, 진짜 쪽팔리는데
그래도
너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한숨]
[상구의 한숨] (수지) 있잖아
키스해도 돼?
어?
뭐를 해?
키스해도 되냐고
[상구의 답답한 숨소리]
그러지 마, 나 회사 포기 못 한다고
그래서? 하지 마?
아이, 그런 얘기가 또 아니잖아
[훌쩍인다]
해, 그럼?
해
[밝은 음악]
(지호)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미) 아, 대표님은 어디 간 거야?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조작음] (세희) 카페로 가시죠
제가 케이크 쏘겠습니다
(지호)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지호) 어서 오세요
(지호)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깨울람 직원1) 야, 심 대표, 너 결말애로 간다며?
그러려고 우리 애플 엎은 거냐?
(깨울람 직원2) 하, 네 말 믿고 2년을 허비한 내가 한심하다
(깨울람 직원1) 얼마나 잘되나 보자
(지호)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문이 달칵 여닫힌다]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호랑) 짜잔, 준비 끝
어때, 예뻐?
[호랑의 웃음]
[호랑의 웃음]
- 예뻐 - (호랑) 이쁘지?
(지호)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 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복남) 그 책은 재밌나 보네? 계속 읽는 걸 보니까
응, 재밌어
(복남) 치
(지호) 아직도 화 많이 났지?
뭐 때문에?
(복남) 아, 같이 일하는 누나가 좀 귀여워서
같이 욜로 하다가 아주 골로 갈 뻔한 거?
[지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하, 진짜 미안해
[복남이 픽 웃는다]
그래도 그 가짜 남편이 멋있어서 봐준 줄 알아요
내가 그딴 말에 넘어갈 줄이야
집주인 하나는 잘 만났더라, 누나
무슨 말?
내가 물어봤거든
백미러값 합의하러 왔을 때 누나랑 왜 결혼했냐고
그랬더니? 뭐랬는데?
[잔잔한 음악]
[안내 음성]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합니다
(지호) 아, 오늘 왜 마 대표님은 안 오셨어요?
(세희) 아, 마 대표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지호의 옅은 탄성]
(지호) 아, 원석이 그 회사 들어간다면서요?
(세희) 네, 아마 곧 저희 팀으로
(지호) 음, 그렇구나
와
하늘에 별이 참 많네요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지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저게 북두칠성인가?
[개가 왈왈 짖는 효과음]
[밝은 음악]
[물소리가 솨 난다]
[지호가 흥얼거린다]
[물소리가 멈춘다]
[고양이 울음]
[지호의 멋쩍은 웃음]
그게 뭐예요?
저희 결혼식 사진입니다
아...
(지호) 잘 나왔네요, 사진
생각도 못 했는데 [지호가 살짝 웃는다]
(세희) 회사 분들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선물이라고
[지호의 탄성]
[픽 웃는다]
좀 썰렁하긴 하네요
더 부르시지 그러셨습니까
아, 사실 저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얘네 둘 말고는
둘이면 많으신 거죠
많은 건 아니죠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세희) 인생에 있어서 친구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랑은요?
사랑은 어떨까요?
(지호) 저는 사랑도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인생에서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희) 인생에서 사랑은
한 번이면
충분하죠
[잔잔한 음악]
(지호) 수지는 남자와 부동산업자는 많이 만나 볼수록 좋다고 했다
호랑은 결혼할 남자가 곧 사랑이며 운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은
인생에 딱 한 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지호)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수지) 뭔 소리야?
(호랑) 에, 누구?
(지호)
[밝은 음악]
(수지) 야, 장난해?
(호랑) 뭐야, 지호, 지금 혹시 염장질?
그럼 나도 우리 원석이 사랑한다고 여기 고백한다
(수지) 이것들이, 씨, 잠이나 자!
(지호) 인생의 단 한 번인 사랑이
시작되었다
[살짝 웃는다]
(지호) 결혼이라는 거 참 좋다
(복남) 결혼하고 남편 짝사랑하는 거 그것도 쉽지 않겠다, 누나
티가 나?
(세희) 이것 때문인가?
원석 님의 사수는 저분이십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세희) 이 회사 온 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 결혼해!
[함께 소리친다]
(상구) 계약을 한다고? 우리의 연애를?
(수지) 나 마 대표님 좋아, 연애하고 싶어
(원석) 형이랑 수지요?
완전 복구 불가능의 인생 그냥 망하는 느낌?
(수지) 상구 오빠
(지호)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하세요?
(명자) 우리 며늘아기 아까워서 어떻게 일 시키니?
(수지) 지호도 이제 시월드 시작인 건가?
(지호) 저 남자의 마음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게
있기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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