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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 53

MBC 특별기획드라마

   이 산(李蒜)

                   제 53 부





#1. 도성. 전경. 낮

#2. 노인의 집. 낮

                      드문드문 초가집들 사이로 잿더미가 된 노인의 집에서
                      상여가 나온다.
                      놋쇠 종소리가 울리고, 어린 상주가 상여의 뒤를 따른다.
                      그 뒤를 젊은 유생들이 '스승님!' 하면서 오열하며 따르고.
                      지켜보는 사람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웅성인다.
                      보면, 오열을 하며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

#3. 내의원(익위사 집무실). 낮

                      크게 다쳐 상해 있는 청년 서얼들이 나가려하고...
                      서장보와 강석기가 이를 만류하고 있다.

청년1 : 비키시오. 우린, 가야겠소.
        가서, 스승님 가시는 마지막 길을 뫼셔야 하오!
강석기 : (OL) 안됩니다.
         모두들 장기를 다쳐, 거동을 하시면 위험하다 했습니다.
서장보 : 맞습니다, 진정들 하십쇼.
         이러다가 다들 죽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청년1 : (울컥) 그럼 죽겠소!
        우리 모두, 스승님 무덤 옆에 가 차라리 죽겠단 말이오!
강석기 : (안타깝다OL) 이보시오.
청년1 : (OL) 제발 우릴 보내주시오.
        이리 허망하게 가신 것도 억울한데,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외롭게 해 드릴 순 없소.
        죽어도 스승님 곁에서 죽겠소.

                      청년들, 침통해하고...석기와 장보...어찌하면 좋은가..
                      착잡하고 안타까운데..그 때..한 쪽 침상에
                      기대어 있던 박제가...

박제가 : (힘겹고, 아프게..) 그만들 하게.
다들 : (멈칫, 보는데)
박제가 : 죽겠다는 말, 그리 쉽게들 하지 말게.
         그것이 정녕 영감께서 바라시는 일이겠는가?
청년1 : ....!....
박제가 : 모두들
         영감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시던 전하의 모습을 잊었는가?
         헌데, 이제 와 자네들마저 상하게 되면
         전하의 그 성심이 어찌 되시겠는가?
다들 : .....!!.....
박제가 : 허니, 이제 그만들 하게.
         전하를 생각해서라도 자네들까지 허망하게 쓰러져선 안 되네.
         알겠는가?
         죽고 싶을만큼 원통하다면 그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아
         영감의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란 말이네.
다들 : .....!!.....

                      박제가의 말에, 숙연해지는 분위기.
                      청년1과 서얼들,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을 안다.

청년1 : .....스승님....스승니임.........

                      보면, 청년1과 다른 서얼들....아프고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고..
                      이를 지켜보는 강석기와 서장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보면, 내내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수...

#4. 산의 원탁 집무실. 낮

                      홀로 앉아 있는 산. 착잡하고 아픈 심정이다.
                      그 위로.

노인 (소리) : 전하....불초한 소신을....용서해주십시오....

#5. (회상) 내의원(서원 원장 방). 밤

                      산이 노인의 곁에서 임종을 하고 있다.
                      뒤편에는 홍국영과 박제가, 서얼들이 힘겹게 서 있는데.....

산 : (간절하고 절박하다)
     제학영감, 제발 기력을 놓지 마시오!
     살 수 있소! 내 무슨 수를 써서든 영감을 살릴 것이오!
노인 : ...소신은....이미...틀렸사옵니다....전하.....
산 : 영감!!
노인 : 짧지만...전하를 모신 지난 시간은
       ...소신의 인생에...더없는 광영이었사옵니다..
산 : 영감..
노인 : ....전하께오선...소신을 반쪽이 아닌...
       온전한...한 인간으로 살게 해 주셨습니다...
       부디 그런 성심으로...
       이 나라의....만백성을...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전하...
산 : 영감! 아니 되오!
     이대로 숨을 놓아선 아니 되오! 영감!

                      하는데....순간...노인의 손이 힘없이 툭..떨어지고..
                      순간, 산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굳어진다.

산 : 영감!!
노인 : ..........
서얼들 : 스승님....!!
산 : ....!!....
서얼들 : 스승님...안됩니다, 스승님...
         이렇게 가시면 안됩니다! 스승님...

                      서얼들, 오열하고.....
                      보면, 망연히 노인의 시신을 바라보는 산....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밀려온다.

#6. 산의 원탁 집무실. 낮

                      어두운 집무실 안.
                      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 두 눈을 가린다.
                      그런 산의 위로....
                      노인과 산의 일들이 회상된다.
                      '이 놈, 저 놈' 하며 산과 장난을 하듯 다정한 모습...
                      그리고...규장각을 맡아 달라 했을 때...
                      '과연 자신들이 출사해
                      뜻을 펼칠 날이 얼마나 되는가..'며 노론
                      중신들의 반발을 걱정하던 노인의 모습...

산 : (E) 나를 용서치 마시오, 영감.
     경을 지키지 못한 이 못난 임금을 용서치 마시오.....

                      보면...그렇게 아픈 눈물을 흘리는 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밀려오는 자책과 아픔을 견딜 수가 없는데...

#7. 저자 거리. 장터. 일각. 낮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건장한 왈패 하나가 나가떨어진다.
                      보면, 이미 여럿이 터져서 맞은 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데....
                      보면, 대수, 핏발이 선 눈으로 왈패1을 일으켜
                      멱살을 움켜잡는다.

대수 : 말해! 누구야? 누가 시킨 짓이냐고, 이 자식아..!
왈패1 : (벌벌) 글쎄, 저는 모르는 일이라지 않습니까? 알면 제가 왜..

                      하는데, 대수, 참지 못하고 다시 주먹을 날린다.
                      비명을 지르며 다시 나동그라지는 왈패1.
                      대수, 쓰러진 왈패1의 멱살을 잡고...

대수 :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허튼 소리 하면,
       그 땐 너도, 제학영감을 따라 황천길로 가게 될 거다...
왈패1 : (OL) 제발 살려주십쇼, 나으리!
        정말 저희가 한 짓이 아닙니다.
        그 날 밤 저흰 정말 마포에 있었다구요...
대수 : 그래도 이 자식이....!!

                      하면서, 대수, 왈패를 다시 후려치고, 칼을 꺼내들어
                      놈의 목에 겨누는데..그 때, 등 뒤에서 '대수야!' 하는 소리.
                      대수, 멈칫 놀라 보면...
                      그 뒤로 강석기와 서장보, 홍국영이 서 있는데...

대수 : .....나..나으리...!
홍국영 : (엄하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 일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일인 줄 알아?
대수 : ....!!....영감....
홍국영 : 소용없는 짓이다.
         전하의 영을 받아, 내가 이미 알아봤다.
         저들은, 도성을 떠났다.
         그 날 밤 양화진의 패거리들 하나가 이미 도성에서 종적을 감췄어.
대수 : 종적을 감추다니요? 그....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 제학영감을 죽게 한 놈들을 놔줘야 한단 말입니까..?
홍국영 : 약한 소리 하지마라.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대수 : ....!!....
홍국영 : 전하께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저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야...
다들 : .....!!.....
홍국영 : ........

#8. 산의 서재. 마당. 외경. 밤

#9. 동. 안. 밤

                      원형 탁자를 놓고 산이 장태우와 독대하고 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집무실 안.

장태우 : (굳은)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이번 사건의 배후에 저희 노론 중신들이 있을 것이라니요?
산 : (차갑고 냉정하다) 그리 정색을 하고 되물으실 것 없소, 좌상.
     한 날 한 시에, 집으로 돌아가던
     규장각 검서관들과 제학영감이 변을 당했소.
     헌데, 그 일을 사주한 자들이 누구겠소?
     이는 서얼의 등용을 반대한
     그대들, 노론 중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은
     저자 거리의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소?
장태우 : .....!.....
산 : .......
장태우 : 비록, 저희 노론들이 서얼의 허통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 하여, 선비 된 자로 어찌
         그런 참담한 일을 자행할 수 있겠사옵니까?
         소신, 이는 결단코 모르는 일이옵니다.
산 : (냉소 어린다)
     그래요. 모르는 일이겠지요...아니, 몰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좌상께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니 말이에요.
장태우 : ....!!....
산 : 헌데, 재미있군요. 과인은, 좌상이라면 모든 노론 중신들을
     손 아래 거느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른다니? 놀랐소.
     그러고 보면, 저들한테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 건
     나나 좌상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오.
장태우 : (당혹스럽다) 전하....!
산 : (O.L. 매섭게)
     허나, 나는 용서치 않을 것이오.
     누구라도, 이 일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자가 있다면 내가 보위에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찾아내어 그 죄를 물을 것이오.
장태우 : ....!!....
산 : .......

                 보면, 분노에 찬 산, 서슬 퍼런 눈으로 장태우를 바라보고..
                 장태우, 그런 산을 보며 당혹감을 느끼는데....

#10. 장태우의 집. 방. 안(서원 원장 방). 밤

                 장태우, '쾅' 하고 거세게 서탁을 내려친다.
                 보면, 최석주와 민주식을 비롯한 중신들....그 서슬에..
                 표정들이 굳어지는데...

장태우 : 말하게. 누군가?
         주상의 말씀대로 정녕 자네들 중 누군가
         이런 짓을 벌였는가 그 말이야!

                 장태우의 서슬에, 모두들...숨만 죽이고...

민주식 : (조심스럽게 나선다) 대감....당치 않으십니다..
         어찌 저희들에게, 그 같은 하문을 하십니까.
장태우 : (멈칫, 보면)
민주식 : 규장각의 서얼들이 못마땅한 것이,
         어디 비단, 저희들만이겠습니까?
         이미 도성의 숱한 백성들도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저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헌데, 주상께서 저희를 지목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를 빌미로 노론을 압박하자는 심산인 것입니다.
장태우 : ....!....
중신1 : 맞습니다. 저희를 몰아세울 것이라면 증험을 내놓으라고 하십시오.
        증험도 없이 이러는 것은
        저희를 탄압하려는 모략이고 음햅니다! 대감.
장태우 : (서늘하게) 그러니까 뭔가?
         자네들은 모두 이 일에 무고하다 그 말인가?

                 장태우의 서슬에...다들 긴장한 채 보는데...

장태우 : (의미심장하게) 좋네. 자네들이 그리 말한다면 내 믿어보지.
         나 또한, 자네들이 감히 나를 속였다곤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다들 : ...!...
장태우 : 허나, 명심해야 할 걸세.
         만약 이 자리에 누군가가 정말 그 일을 사주했다면
         주상전하가 아니라 내가 먼저 그 죄인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다들 : ....!....
장태우 : .........

#11. 동. 집 앞. 밤

                 민주식이 중신3,4 등과 '그럼, 거기서 봅시다.'
                 하는 말을 나누고 헤어진다. 대신들, 초헌을
                 타고 가면..민주식 그 모습 보다가
                 돌아서는데...그 때, 최석주가.

최석주 : 어리석은 짓을 했더군!
민주식 : (멈칫, 본다)
최석주 : 공연한 일로 분란만 만든 것이네.
         이것이 어디 서얼 몇 사람을 잡는다고 해결될 일이던가.
민주식 : (당혹스럽다) 대감...저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하는데)
최석주 : (O.L) 덜미나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게.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아무리 평생을 모신 자네라 해도 대감께선 감싸주지 않으실 게야.
민주식 : .....!.....
최석주 : ..........

#12. 거리 일각. 밤

                 초헌을 타고 가는 중신3...
                 보면, 그 뒤를 쫓는 시선들...

#13. 동. 일각. 밤

                 역시, 가고 있는 민주식. 불안한 표정인데..
                 보면, 은밀히 그 뒤를 밟고 있는 대수와 서장보, 그리고 강석기.

#14. 궐. 활터. 밤

                 환하게 횃불이 밝혀진 활터. 산이 활을 쏘고 있다.
                 보면, 활시위를 당기는 산의 눈빛, 서늘하게 빛나고 있는데.
                 그 때, 한쪽에서 다가오는 홍국영.

홍국영 : 전하...
산 : (시선 주지 않고, 정제된 느낌. 담담히 활을 거두며)
     알아 보았는가?
홍국영 : 예...지금, 숙위소 군관들과 금군을 동원해
         은밀히 노론 중신들의 뒤를 밟고 있습니다.
         곧, 저들의 덜미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
산 : (담담히, 그러다가) 아마, 장태우 대감도 나서서 알아보고 있을 걸세.
홍국영 : (멈칫, 보면)
산 : (다시, 활을 하나 뽑아들며) 내 일부러 그 자의 자존심을 건드려놨으니
     그 성정이라면, 자신의 뜻에 반해 이런 일을 꾸민 자를
     제 손으로 찾아내려 들 게야.
홍국영 : ....!!....
산 : 제학영감의 가는 걸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네.
     그러자면, 하루라도 빨리 죄인들을 잡아들여야 할 것이네.
홍국영 : 예, 전하..명심하겠사옵니다.
산 : .......

                 산, 분노에 젖은 서늘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응시한다. 산이 놓은 화살...과녁에 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명중하고...그것을 바라보는 산, 눈에 비장한 결연함이 깃든다.

#15. 궐. 효의 처소 앞. 낮

                 원빈이 최상궁을 대동하고 온다.
                 보면, 최상궁의 손에 서책이 한 권 들려져 있는데...
                 김상궁, 원빈을 보고 다가와 예를 갖추면.

원빈 : 중전마마께선 안에 계시는가?
김상궁 : 예.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빈 : (굳어진다. 최상궁에게) 내 주게.
최상궁 : (서책을 내밀면)
원빈 : (짜증스럽다, 확 낚아채서 들어가는데)
김상궁 : (뭐냐...저 태도는 싶고...)

#16. 동. 안. 낮

                 효의와 원빈이 서책을 놓고 앉아 있다.
                 효의, 위엄 있는 모습이고 원빈, 굳은 표정인데..

효의 : 언행장의 부덕(婦德)편을 말해 보게.
원빈 : ...부덕은 재주와 총명이 남다름이 아니라,
       안정하여 절개를 가다듬고,
       사람에게 싫지 않게 하는 것이옵니다.
효의 : 그렇네. 무릇 부녀의 덕이란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하고
       널리 정을 쌓아 도탑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네.
       그러자면 어찌 해야 하겠는가?
원빈 : (입술을 깨문다) ....몸가짐과 말씨를 바르게 하고,
       .......투기와 시비를 삼가해야 합니다.
효의 : (OL) 맞네. 투기하여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몸에 병을 두는 것과 같으니,
       무릇 이를 가장 멀리해야 할 것이네..
원빈 : (이를 악물고) 예, 마마... 명심하겠사옵니다.
효의 : 허면, 사숙의 좌우명 열 네 가지를 말해보게.
원빈 : (도저히 못하겠다)
효의 : 어찌 대답이 없는 것인가?
원빈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마마.
       규방의 어린 계집들도 알고 있는 것이 내훈이옵니다.
       헌데, 어찌 소첩에게 이런 것을 하문하시옵니까?
효의 : (멈칫, 본다) 뭐라...?!
원빈 : 마마. 지난 일은 소첩이 어리석었사옵니다.
       허니, 제발 이런 벌은 거두어 주십시오.
효의 : 자네가 이제 보니
       여태 아무것도 깨치지 못한 게로군...
원빈 : ....!....
효의 : 내가 왜 자네에게 내훈을 들고 오라 했는지
       자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게야.
       잘못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용서해달란 것인가?
원빈 : 마마..!
효의 : (서책을 덮고) 오늘은 이만 할 것이니
       내일 같은 시각에 다시 오게.
원빈 : ...!!...
효의 : (차갑다) 뭘 하는가?
       물러가라는 내 말이 안 들리는가?
원빈 : ....!!....

                  원빈, 치욕스런 얼굴로 서책을 들고 일어선다.
                  효의, 굳은 얼굴로 서책을 내려놓고.
                  예를 갖추는 원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오는데.

#17. 효의 처소 밖. 낮

                  원빈이 창백한 얼굴로 나온다.
                  그러다 순간, 원빈..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리는데...
                  놀란 최상궁이 '마마!' 하고 잡으면...
                  이내 그 품에 풀썩, 쓰러지는 원빈. (진짜로 쓰러지는 겁니다)
                  보면, 김상궁도 '마마..?!' 하면서 놀라는데.

#18. 궐 일각. 낮

                  혜경궁이 이상궁들을 거느리고 급히 오고 있다.

#19. 원빈 처소 앞. 낮

                  효의가 걱정스런 얼굴로 어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그 때.

혜경궁 : 원빈이 쓰러지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효의 : 어마마마...
혜경궁 : 내 중전께 뭐라 당부드렸습니까?
         마음에 맺힌 것을 풀고 원빈을 아껴주라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불러다 내훈을 가르치고 꾸중을 하시다니요?
         이제 막 궐에 들어온 원빈입니다.
         법도를 몰라 실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어찌 타이르기 전에 다그칠 생각부터 하신단 말입니까?
효의 : ....!!....
혜경궁 : ........
김상궁 : (속이 상하고)
효의 : 송구하옵니다, 어마마마.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혜경궁 : (속상하고 못마땅한 얼굴로 보고)
효의 : ........

#20. 동. 안. 낮

                  원빈, 기운 없는 얼굴로 앉아 있고 그 앞에 혜경궁이 있다.
                  옆으로 이상궁이 있고.

혜경궁 : 몸은 좀 어떻습니까. 이제 나아지신 겁니까?
원빈 : 예...어의의 말론 가벼운 혈허증이라 하니 부디 심려치 마시옵소서..
혜경궁 : (다행이지만, 걱정하는) 곧 왕손을 회임해야 할 사람이
         이리 병약해서 어찌한단 말입니까?
원빈 : 송구합니다, 어마마마.
혜경궁 : (OL) 아닙니다. 다, 궐 생활이 낯설고 외로워 그런 것입니다.
         내, 주상을 찾아 뵙고 숙창궁을 자주 들르시라 말씀을 올려야겠어요.
원빈 : ........

                  혜경궁, 말을 마치고 문득..병풍에 시선을 준다. 그러다가.

혜경궁 :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상궁.
이상궁 : 예, 마마.
혜경궁 : 이 곳에 병풍을 하나 새로 들여야겠으니 도화서에 기별을 해 두게.
이상궁 : 예, 마마.
원빈 : (궁금한 눈빛인데) 병풍이라니요? 어마마마..
혜경궁 : 원빈! 내 이 곳에 회임을 기원하는 병풍도를 하사할 것입니다.
         허니, 하루 빨리 쾌차하여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세요.
원빈 : 망극하옵니다, 어마마마...
혜경궁 : 그럼, 쉬도록 하세요.
         내가 아픈 사람을 놓고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일어서려는데)
원빈 : 저, 어마마마...소첩, 한 가지 청이 있사온데
       말씀을 올려도 되겠는지요?
혜경궁 : 무엇입니까? 말씀하세요, 원빈.
원빈 : 병풍도를 도화서에 맡기신다면
       소첩, 전부터 알던 화원에게 그림을 맡겨도 되겠는지요..
혜경궁 : 원빈께서 아는 화원이라구요?
원빈 : 예, 어마마마..
혜경궁 : (의아한 얼굴로 보고)
원빈 : ........

#21. 기방 외경. 낮

                   구성진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좋다, 좋아!' 하는 음담의 목소리가 들린다.

#22. 동. 방1 안(사가 방). 낮

                   음담, 이천, 매향, 금홍, 소향 있고.
                   상 가득 산해진미와 술병이 가득 놓여 있다.
                   금홍, 가야금을 타고 있고,
                   거나하게 취한 음담이 흥에 겨운 얼굴로 장단을 맞춘다.
                   이천, 난감한 얼굴로 물을 홀짝인다.
                   금홍, 연주를 마치고 예를 갖추는데.

음담 : (감탄하며) 기가 막히구나!!
       그 꽃같은 손에서 어찌 그리 신명나는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금홍 : 나으리같은 미남이 앞에 계시니 저두 흥이 절로 나 그러지요..
이천 : (물을 마시다 콜록대고)
음담 : 미남? (으허허허 웃고는, 금홍의 입술을 콕 찌르며)
       달콤하거든 새콤하지나 말아야지...
       그 고운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말이 아니라 꿀이로구나...
금홍 : 어머, 나으리도 참...

                   기생들 다들 웃고...
                   이천, 혼자 인상을 찌푸린다.

소홍 : 근데, 나으린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술이며, 음식엔 손도 안대시구 물만 계속 드세요?
음담 : (그제야 이천 보고) 자자, 이리 와서 내 술 한 잔 받게.
       자네의 그 찌든 세속의 욕망을 씻겨 내려면
       그래, 백거이가 즐겨 마셨다는 이 호산춘이 좋겠구만..

                   이천, 얼른 잔을 들어 술을 받고,
                   음담, 술을 콸콸 붓다가 이내 흘러넘친다.

이천 :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른다) 이게 얼마짜린데...
음담 : (버럭) 어허!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는 내 말을 잊었는가?
이천 : (움찔하고)
음담 : 이보게, 매향이.. 자넨 가서 호산춘 두어 병 더 내 오게.
매향 : (놀라) 호산춘을요? 예, 나으리...
이천 : ....!!!....(헉, 안되는데)

#23. 동. 마당. 낮

                   방 안에서는 음담과 기녀들의 웃음소리 들리고.
                   이천, 그 앞에서 난감한 얼굴로 전낭을 열어
                   돈을 살피고 있다.

이천 : (미치겠다) 버릴 게 많다고 하더니...
       가진 돈을 다 털라는 거야, 뭐야..

                   그 때, 한쪽에서 매향, 술상을 들고 온다.

이천 : 이보게, 매향이...이 때까지 저 방에서 먹은 게 모두 얼마나 되나?
매향 : 글쎄요...지난 사흘간 큰 상이 열두 개 들어갔구,
       호산춘 스무 병에, 진양주 열두 병, 또...(하는데)
이천 :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대충 돈이 얼마나 되냐구..
매향 : 글쎄요, 족히 백 냥은 넘을 거 같은데요?
이천 : (허걱) 뭐어?! 배.....백 냥?

#24. 주막. 낮

                    달호와 막선이 있다. 달호, 내관 옷을 입고 있고..
                    막선, 그 옆에서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는데..

달호 : 홍승지 영감 덕에, 정6품 상세로 궐에 들어가게 됐으니..
       이제 자넨, 주막 접게. 까짓 거 이제 내가 먹여 살릴게.
막선 : 근데, 상세면 녹은 얼마나 받는거유..?
달호 : 매달 쌀 서 말에 무명이 다섯 필이나 되네.
막선 : 예..? 그렇게나 많이요..? 아이구, 팔자 폈네...
       내가 늘그막에 아주 팔자가 피게 생겼어..

                    그 때...주막 안으로 이천이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이천 :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보게...다..달호...
달호 : (놀라 본다) 나으리...?
이천 : (다리가 풀썩 꺾인다)
달호 : (놀라서) 나으리..무슨 일이십니까, 아니..대체 왜 이러세요..?!
이천 : 달호......나....나....밥 좀 주게...
달호 : 예....?!

#25. 주막 방(달호 방). 낮

                    이천, 허겁지겁 국밥을 먹고 있다.

달호 : (기가 막히다) 그러니까 나으리 말씀은
       그 음담선생인가 음탕선생인가 하는 사람 술값을 대느라
       종일 기방에서 밥 한 술 못 드셨다 그겁니까?
이천 : 상을 비우기가 무섭게 시켜대고 또 시켜대니 도리가 있나.
       내 입이라도 줄여야지.
       (심난하다) 정말 미칠 지경이네..
       아프단 핑계를 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러다 도화서까지 짤리게 생겼어.
달호 : (이해가 안 된다) 나으리...꼭 그렇게까지 해서 그걸, 배우셔야 됩니까?
이천 : (정색을 하며)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그 분의 완벽한 필세를 못 봐서 그러네..
       그 분의 춘화엔 이 세상에 없는 신기와 재주가 담겨 있다니까..!
달호 : (뭐냐, 싶고)
이천 : (답답하다) 어서 빨리 그 비법을 전수받아야 하는데
       도통 가르쳐 줄 생각은 안하시니...
달호 : (의혹어린) 이거 아무래도 냄새가 구린 게 딱 사기꾼인데...
이천 : 뭐...?
달호 : 나으리..혹시, 그 음담인가 음탕인가가..
       그림 그리는 걸 본 적은 있으십니까?
이천 : ...어...?
달호 :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완벽한 그림을...그 사람이
       그린 게 확실하냐구요!
이천 : (그러고보니 본 적이 없고)
달호 : (끌끌) 걸렸군..딱 걸렸어...
       이건요, 그림 몇 장 갖다 놓고
       나으리 주머니 털려는 수작이 분명하다구요.
이천 : ....!!!....

                      이천, 당혹스러운 얼굴로 눈을 굴리고,
                      달호, 그런 이천을 보며 쯧쯧 혀를 찬다.

#26. 궐 전경. 낮

#27. 산의 서재. 낮

                      산, 홍국영과 있다. 산, 서책을 넘겨보고 있다.

산 : 이것이 노비 제도에 대한 개혁안인가?
홍국영 : 예, 전하.
         아직은 초안이나, 전하께서 살피신 연후에
         보강하는 것이 옳을 듯 하여 올렸사옵니다.
산 : (서책을 덮으며) 알겠네.(하고, 굳은)
     살피고 있는 일은 어찌되고 있는가?
홍국영 : (굳어지는) 사흘 안으로, 조계(중신의 죄를 논한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때, '전하, 남내관이옵니다!' 하는 소리 들리고.
                      남사초, 급히 들어온다.

남사초 : 전하, 지금 규장각에 검서관들이 등청해 있다 하옵니다.
홍국영 : ....!....
산 : 그게 무슨 말인가? 등청이라니?
     어의의 말론, 검서관들은 내달이나 되야 나올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남사초 : ........

                      산, 놀랍고 당혹스러운데.
                      홍국영, 역시 놀란 얼굴로 보고.

#28. 궐. 규장각 집무실. 낮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박제가, 청년1,2.
                      이들, 힘겨운 몸으로 안의 서책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때, '주상전하 납시오.' 하는 소리 들리고.
                      박제가, 청년1,2 놀라 보면....
                      산, 남사초, 홍국영이 들어온다.
                      박제가, 청년1,2 얼른 예를 갖추고.
                      산, 이들의 모습을 당혹스러운 얼굴로 본다.

산 : 대체 어찌 된 것인가?
     자네들이 왜 이 곳에 나와 있는 것인가?
박제가 : 조정의 업무가 산적해 있는데
         어찌 소신들, 마냥 자리를 보존하고 있겠사옵니까?
         하여, 조금이라도 거동할 수 있는 자들만
         먼저 등청한 것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전하...
산 : 등청이라니? 당치 않네!
     자네들이 지금 그 몸으로 어찌 정사를 살핀단 말인가?
박제가 : 전하...
산 : (OL) 모두 내의원으로 돌아가
     내 영이 떨어지거든 그 때 등청하도록 하게.
     (가슴 아프다) 제학영감으로 족하네.
     내 부족함으로 자네들까지 잃을 순 없네.
박제가 : (OL) 부족함이라니요? 전하...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산 : ....!....
박제가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다시는 소신들에게 그런 말씀을 마시옵소서.
         소신들은 물론이옵고
         지하에 계신 제학영감께서도 이 같은 말씀을 들으셨다면
         가슴을 치셨을 것입니다.
         영감께서는 더없이 존경할 수 있는 주군을 만나..
         평생 그토록 바랐던 꿈을 이루셨고,
         ......이제 그 꿈을 저희에게 물려주셨습니다.
         헌데...어찌 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산 : (OL) 이보게.
청년1 : (OL) 맞습니다, 전하.
        소신들 모두 숨이 붙어있는 한
        이 곳에서 전하를 도와 그 뜻을 이룰 것이옵니다.
        허니, 돌아가라는 말씀은 거둬 주시옵소서.
서얼들 : 거두어 주시옵소서..전하..
산 : ...

                      박제가, 청년1,2. '전하!' 하며 진심어린 얼굴로 보고.
                      그런 이들을 보는 산, 미안하고 또 고마운 심정이다.
                      보면, 홍국영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29. 숙위소 집무실. 낮

                      홍국영. 서장보, 강석기, 대수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서장보 : 부제학 민주식 영감과,
         공조참판 박철명, 호판 이동수 대감 뒤를 살폈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다들 몸을 사리며 경계하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홍국영 : ....!....
강석기 : 하지만, 저들이 모이는 기방과 서원에 사람을 심어두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홍국영 : (초조하다) 허나, 벌써 사흘이나 지났네.
         이리 지체했다간 자칫 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네.
         좀 더 서두르도록 하게..

                      다들 긴장...강석기, 서장보, 대수, '예, 영감!'
                      하고 나가려는데.

홍국영 : 대수 너는 잠시 남거라...
대수 : 예...? 예.....

                      강석기, 서장보, 나가면.

대수 : 무슨 일이십니까, 영감...
홍국영 : 아무래도 이리 살펴서 될 일이 아닌 듯 하다...
         저들이 움직이도록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겠다.
대수 : ....!!....
홍국영 : (품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주며) 읽어 보거라.
대수 : 이게 뭡니까?
홍국영 : 읽어 보면 알 것이다.

                      대수, 쪽지를 읽는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며.

대수 : 아니, 이럴수가! 영감!
홍국영 : ..
대수 : 허면, 규장각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
홍국영 : 그렇다!

                      홍국영, 의미심장한 눈빛을 빛내고.

#30. 궐 밖. 밤

                      민주식, 퇴청을 하고 있다.
                      한쪽에 초헌이 있고, 그 곁에 가마꾼들이
                      고개를 숙인 채 부복해 있다. 이내 민주식, 초헌에
                      올라 '가자.' 한다.

#31. 거리 일각. 밤

                      민주식, 초헌을 타고 간다.
                      한참을 가는데, 갈림길에서 방향을 트는 초헌.
                      민주식, 순간 멈칫, 당혹하는데.

민주식 : 지금 뭘 하는 것이냐?
         여긴 안국동으로 가는 길이 아니질 않느냐..

                      그러나 초헌, 빠르게 움직이고.
                      민주식, 당혹스런 얼굴로 '네 이놈들,
                      당장 멈추거라!' 하는데.
                      민주식을 태운 초헌,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골목에서 사내 둘이 꿈틀대는
                      자루를 들쳐 업고 빠르게 움직인다.
                      보면, 골목 안에 텅 빈 초헌이 놓여 있고.

#32. 어느 공터. 밤

                      앞씬의 사내들, 경계를 서고 있고.
                      바닥에 민주식을 싼 자루가 놓여 있다.
                      그 위로 발길질이 이어지고. 보면, 그 사람...대수다.
                      대수, 분에 찬 얼굴로 사정없이 민주식에게 발길질을 하고
                      안에선 거친 비명이 새어 나오는데.
                      그 때. '그만 하거라.' 하는 소리 들린다.
                      보면, 홍국영이 안으로 들어온다.

대수 : (헉헉거리며) 안 됩니다, 영감!
       이런 놈은 그냥 이 자리에서..(하는데)
홍국영 : 됐다! 시작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대수, 물러서는데 분이 풀리지 않는 얼굴이고.
                      홍국영, 자루 앞으로 가서 묶여 있던 줄을 풀면
                      포박된 채,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린 민주식이 나온다.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민주식.

민주식 : ...누구냐? 네 놈들은 대체 누구냐?
홍국영 : (하하, 웃는다) 누구냐니요? 이제 보니 한참 어리석으십니다! 영감.
         그걸 말해줄 거라면
         뭣 때문에 영감을 이리 어렵게 잡아들였겠습니까?
민주식 : (두렵다) ...뭐..뭐냐? 대체 누가?(하는데)
홍국영 : (O.L) 영감께서 왜 규장각의 서얼들을 잡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노론의 뜻과 반하면 어찌되는 지
         그 본보기를 보이고 싶으셨겠지요.
민주식 : ...!!...
민주식 : 허나, 여깄는 저희들은, 영감께서 한 일은 물론
         영감과 함께 일을 모의한 자들까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증험을 들고 바로 의금부엘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쉽고 재미가 없어서 말입니다.
민주식 : ....!!....
홍국영 : 영감께서 본보기를 보여주셨으니,
         저도 그에 걸맞는 본보기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허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규장각 관원들이 당한만큼
         꼭 그만큼을 곧 모두 돌려받게 되실테니 말입니다.

                      홍국영, 눈짓하면. 대수와 사내들, 와서
                      저항하는 민주식을 거칠게 다시 자루 안에 집어 넣고 묶는다.
                      그런 민주식을 보는 홍국영. 서늘한 눈빛을 빛내는데.

#33. 대전 앞. 밤

                      내관이 되어 들어온 달호와 남사초가 있다.

남사초 : 그래? 홍승지가 숙위소에 없단 말인가?
달호 : 예...신시쯤 숙위소를 나서셨다 합니다.
남사초 : 알겠네.
         (하고는) 그나저나 자네가 이리 궐에 돌아오니
         내 마음이 다 든든하네..
달호 : (씩 웃으며) 저도, 나으릴 다시 모시게 되서 영광입니다.
       뼈가 가루가 되도록 성심을 다해 뫼시겠습니다.
남사초 : (OL) 고맙네...(하고 가려는데)
달호 : (OL) 저....헌데, 나으리. 퇴궐 시각을 훌쩍 넘겼는데
       이만 퇴궐해도 될까요?
남사초 : (허허..) 방금 뼈가 가루가 되도록 하겠다던 사람이
         벌써 퇴궐 소린가?
달호 : (민망하다) 그게...그게..제가 홀몸이 아닌지라..
남사초 : 알았네! 그만 들어가 보게.
달호 : 예, 나으리...

                      달호, 예를 올리고 얼른 움직여 간다.
                      남사초, 그런 달호를 웃으며 보다가 이내 대전으로 들어간다.

#34. 대전. 밤

                      산, 남사초와 있다.

산 : 이상하군..홍승지가 자리에 없다니?
     지금 시각이라면, 내일 보고할 조계를 살피느라
     자릴 비울 여력이 없을 것인데..
남사초 : 허면, 다시 사람을 보내 궐 안을 살펴보라 하겠사옵니다.
산 : 아니네! 그럴 것 없네....

                      하지만 산..조금 의아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는데....

#35. 기방2(사가 방 오른쪽). 밤

                      홍국영, 대수, 술을 마신다.
                      홍국영, 술잔을 들어 마시고는.

홍국영 : 이번 일은 필시 민주식, 그 자의 소행일 것이네..
대수 : (보고)
홍국영 : 우리가 모든 걸 쥐고 있다 겁을 주었으니
         분명 흘린 것은 없나 뒤를 살피러 나설 것이네.
         허면, 그 때, 그 자의 덜미를 낚아채야 하네!
대수 : 알겠습니다, 영감.
홍국영 : 그리고 전하께서 우리가 이리한 걸 아신다면
         결코 용납치 않으실 것이네.
         허니, 이번 일은 반드시 함구해야 할 것이네.
대수 : (OL) 걱정 마십시오, 나으리.
       솔직히 이번만큼은 저도 놈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홍국영 : (보고)
대수 : 헌데, 나으리...
       민주식 영감 한 사람으로 끝내시는 겁니까?
       다른 중신들도 손을 써야하는 거 아닙니까?
홍국영 : 염려 말게!
         내 뭐라 했는가? 이제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서서히, 저들을 옥죄일 것이니 두고 보게.

                      홍국영,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술을 마시고.
                      그런 홍국영을 보는 대수의 시선.

#36. 도성 일각. 밤

                      중신1, 집 앞에 있고. 노복이 나와서 대문을 열고 맞이한다.
                      중신1, 안으로 들어서려 하는데.
                      그 때, 어디선가 사내 둘이 나타나 노복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순식간에 중신1에게 재갈을 물리고 자루에 싸서 사라진다.
                      어두운 밤거리에 떨어진 중신의 관모만이 뒹구는데.

#37. 궐 일각. 낮

                      남사초가 급히 가고 있다.

#38. 산의 서재. 낮

                      산, 채제공, 홍국영과 있다.
                      산, 당혹스런 얼굴로 보고.

산 : 부제학 민주식 영감이 피습을 당했다니?
     그게 정말입니까? 대감!
홍국영 : (담담한 얼굴)
채제공 : 예, 전하! 밤에 괴한들에게 납치가 되었다 하옵니다..
         다행히 큰 변고는 피했으나,
         상흔이 깊어 등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산 : ....!!....
채제공 : 조정에 이런 변이 계속되니
         자칫 민심까지 어수선해질까 염려되옵니다, 전하...

                      산,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고.
                      홍국영, 그저 담담한 얼굴로 보는데.
                      그 때, '전하, 남내관이옵니다!' 하는 소리 들린다.
                      이내. 남사초가 들어온다.

남사초 : 전하, 큰일났사옵니다.
         방금 전, 광진 나루터에서 형조판서 이동수 대감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하옵니다!!
산 : (벌떡, 일어선다) 뭐어? 형판 이동수 대감이?!

                      산, 충격어린 얼굴로 보고.
                      채제공, 역시 당혹스러운 얼굴로 보는데.
                      보면, 홍국영도 조금 놀라는 얼굴이다.

박상궁 : (E) 전하, 금군별장 입시옵니다.
산 : 듭시라 하라!
박상궁 : (E) 예에.

                      이윽고 들어오는 금군별장.

산 : 별장영감! 어찌 된 것이오? 형판이 죽다니?
금군별장 : 예! 형판대감의 시신이 묘시에 광진 인근을 살피던
           군졸들에 의해 발견됐사옵니다.
산 : .....!!.....
금군별장 : 형판을 모시던 종복의 말로는
           진시를 조금 넘겨 사가에 당도했사온데,
           갑자기 괴한들이 닥쳐 대감을 납치해갔다 합니다.
산 : 그 자들의 용모파기는 작성되었는가?
금군별장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날이 어두워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옵니다.
산 : (굳은)
금군별장 : 하온데, 전하...
           이 일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사옵니다.
산 : 무엇인가?
금군별장 : ('又'가 쓰인 종이를 내밀며)
           시신의 팔에 칼로,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사옵니다.
산 : 이것은....'또 우' 자가 아닌가?
     무엇인가. 시신의 몸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면...
     이건, 형판을 시해한 자들이
     뭔가, 전하려는 뜻이 있다는 게 아닌가?
금군별장 : 예...전하. 분명 그런 듯 싶사옵니다.
           또한,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시신에 '우' 자를 새겨 넣은 것은
           이 같은 일이 또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아니겠사옵니까.
산 : ....!!!....

                      산, 보면...당혹스럽고 굳은 얼굴로 종이를 바라보는데....

#39. 동. 밖. 낮

                      산이 착잡한 얼굴로 남사초와 나온다.

산 : 형판의 식솔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안동포 쉰 필과 염인(염습을 하는 사람)을 보내도록 하게.
남사초 : 예, 전하...
산 : (착잡하다) 규장각 관원들의 변고가 채 나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조정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난 것인지...
남사초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번 일로 궐 안에 흉흉한 말들이 오가고 있는 걸 아시옵니까.
산 : 흉흉한 말이라니....
남사초 : 그것이....같은 날, 두 노론 중신이 화를 당한 것이
         규장각 관원들의 변고와 흡사하여...
         이것이 그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말들이
         퍼지고 있다 하옵니다...전하.
산 : ....!!....

#40. 궐. 일각. 낮

                      홍국영, 굳은 표정으로 가는데...
                      그 때, 한쪽에서 장태우와 최석주 등이 온다.
                      장태우, 굳은 표정으로 홍국영을 보고...
                      홍국영, 그런 장태우를 보고 말없이 예를 표하고
                      지나가려 하는데....

장태우 : 안부라도 묻는 것이 도리 아닌가? 홍승지.
홍국영 : (멈칫, 멈춰 서고) 안부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감.
장태우 : 민주식 영감의 일을 자네도 알고 있을 게 아닌가?
         허니, 나를 봤으면, 응당 안부를 묻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해서 묻는 것이네..
홍국영 : (...!...) 송구합니다, 대감.
         궐 안의 어수선한 일들로 정신이 없어 차마 살피지 못했습니다.
         너그러이 혜량해 주십시오.
장태우 : 그래? 정신이 없다?
         헌데, 이상하군. 내가 보기엔
         자네 낯빛은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말일세..
홍국영 : ...!...
장태우 : (최석주에게) 자넨 어찌 보이는가?
         다들 간밤의 일로 아연해 있는데
         홍승지의 얼굴은 변함없이 참으로 의연하지 않은가?
         마치, 이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네.
최석주 : ....!!....
홍국영 : ....!!....
장태우 : .......

                       홍국영, 조금 당혹한 얼굴로 장태우를 보고.
                       장태우, 매서운 눈빛으로 홍국영을 본다.
                       그리고...그런 두 사람을 보는 최석주의 시선.

#41. 산의 원탁 집무실. 낮

                       산, 홀로 앉아 있다. 그 위로.

남사초 (소리.E) : 같은 날 두 노론 중신이 화를 당한 것이
                  규장각 관원들의 변고와 흡사하여
                  이것이 그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말들이
                  퍼지고 있다 하옵니다.

                       산, 굳어지는 얼굴. 그 위로 다시...
                       어젯밤 대전에서 자신이 남사초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산 : (E) 이상하군. 홍승지가 자리에 없다니....
     지금 시각이라면 내일 보고할 조계를 살피느라
     자릴 비울 여력이 없을 것인데..

                       다시, 그런 산의 위로...앞 씬, 집무실에서
                       민주식의 일을 듣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던
                       홍국영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순간, 산의 위로 불안감이 엄습한다.

산 : (E) 설마.....설마 홍승지가.....

                       산의 얼굴에...이내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고....
                       착잡한 상념에 잠기는 산의 모습....

#42. 효의 처소. 일각. 낮

                       효의, 씁쓸한 얼굴로 있는데....그 때, 한 쪽에서 김상궁이
                       약첩을 들고 온다.

김상궁 : 마마, 말씀하신 약재를 가져왔습니다..
효의 : 그래...애썼네.(하고)
       가세. 원빈이 기력을 찾았다니 숙창궁에 들러 봐야겠네.
김상궁 : (놀란다) 예...? 안됩니다, 마마.
         마마께선 납시지 마십시오. 약첩은 제가 전해주고 오겠습니다.
         원빈마마 때문에 공연히 억울하게 꾸중만 들으셨는데
         뭐가 이쁘다고 몸소 가셔서...(하는데)
효의 : (OL) 말을 삼가게.
       자넨 이제 중궁전의 큰방상궁이네.
       헌데, 어찌 이리도 말을 가려할 줄 모르는가?
김상궁 : ....송구하옵니다, 마마..
효의 : (불편한 얼굴로 보고, 걸음을 옮기고)
김상궁 : (속상한 얼굴로 보며) 송연이 고 년만 떼 놓으면 될 줄 알았더니..
         원빈인지 골빈인지 어디서 싹퉁머리 없는 게 들어와 가지군...
         (휴...한숨을 내쉬는데)

#43. 궐 일각. 낮

                        효의, 김상궁 등을 이끌고 오는데. 문득 멈춰 선다.
                        보면, 한 쪽에서 송연, 초비가 온다.

효의 : (놀라) 송연아!
송연 : (예를 갖추고) 마마...
효의 : 네가 이 시각에 궐에는 어인 일이냐?
송연 : (조심스럽다) .....병풍도를 올리라는 하명이 있어 들었사옵니다. 마마..
효의 : (의아하다) 병풍도라니...어느 처소에 말이냐?

                        그 때.

원빈 (소리.E) : 소첩의 처소이옵니다, 마마.

                        보면, 아직 낯빛이 어두운 원빈이 있다.
                        송연,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이고,
                        효의, 당혹스러운 얼굴로 본다.

원빈 : (송연을 보며) 아래 처소에 채비를 해 두었으니 가 보거라!
송연 : 예, 마마.(하는데)
효의 : 거기 있거라, 송연아...
송연 : ....!....
원빈 : ...!...
효의 : (노엽다) 원빈..!
       내 그리 일렀거늘 이것이 대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이 아이를 또 불러들이다니..
       정녕 원빈이, 중전인 내 말을 가벼이 여긴 것인가?
원빈 : (물러서지 않고 보며OL) 당치 않으시옵니다.
       소첩이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소첩, 마마의 말씀을 가벼이 여긴 것이 아니라
       다만, 어마마마의 말씀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효의 : 어마마마의 말씀....?
원빈 : 예. 이 아인 숙창궁의 그림을 위해
       어마마마께서 특별히 불러주신 아이옵니다.
       하오니 어찌 하겠습니까? 마마.
       왕실의 웃어른은 다름 아닌 혜경궁마마시니...
       소첩, 그것에 따르는 것이 왕실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효의 : ....!!....
원빈 : (어쩔테냐...하는 눈빛이고)
송연 : ..........

#44. 궐 일각. 낮

                        효의, 송연과 있다.

효의 : 이 일은 내 어마마마께 다른 화원이 맡도록 부탁드려보마..
       허니, 너는 마음 쓰지 말거라..
송연 : 아니옵니다, 마마...
       소인은 괜찮으니 개의치 마시옵소서.
효의 : (OL) 송연아!
송연 : 저로 인해 혜경궁마마와 격조하시다 들었습니다.
       헌데, 어찌 또 다시 분란을 자청하려 하시옵니까? 마마.
효의 : ....!!....
송연 : (밝고 의연하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것은 소인의 일이옵니다. 마마.
       어디든 궐에 소용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도화서가 맡은 책무이고
       소인은, 그 책무를 다해야 할 도화서의 화원이 아니옵니까?
       소인, 성심을 다해 이 일을 해낼 것이니
       부디 심려치 마시옵소서, 마마.
효의 : (안타깝다) 송연아!!
송연 : (의연하게 미소 지어 보이고) 망극하옵니다, 중전마마.
       소인을 이리 보살펴주셔서...
효의 : ..

                        송연, 가만, 깊은 눈으로 효의를 보고.
                        그런 송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효의.

#45. 원빈 처소 일각(규장각 집무실 전용). 낮

                        작은 방에 빈 병풍과 화첩들이 있다.
                        송연, 초비 있다.

초비 : (화첩 넘기며) 보니까 원빈마마 처소는
       8폭보단 6폭이 좋을 거 같더라. 근데, 그림은 뭘로 하는 게 좋을까?
송연 : (담담히) 이번엔 연화도를 해 볼까 해요.
초비 : 연화도면, 연꽃?
송연 : 예... 6폭을 이어진 그림으로 그려보면 좋을 거 같아요.
초비 : 그래...다산에 부귀영화까지 상징하는
       연꽃 그림이 쫙 펼쳐지면...진짜 멋지겠다...
송연 : (애써 미소 짓고)
초비 : 이제 도화서에 가서 별제 나으리께 말씀드리고
       그리면 되겠다...
송연 : 예...

                        초비, 송연, 짐을 챙기는데.
                        그 때. 최상궁의 '원빈마마 납시오' 하는 소리 들린다.
                        송연, 초비, 예를 갖추고.

원빈 : 그래, 네가 그릴 병풍은 살펴 보았느냐?
송연 : 예, 마마.
원빈 : 헌데, 밖에서 들으니 그림을 도화서에서
       그릴 것이라 하던데...
       그리 하지 말고 내 처소에 들어 그리거라!
       내 그 병풍도가 어찌 완성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구나.
송연 : ....!!....
초비 : (이건 뭔 소린가..싶은데)
송연 : (안 된다) 하오나, 마마...
       그림은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라
       도화서에서 그려야 합니다.
       필요한 안료와 붓도 모두 그 곳에 있고....(하는데)
최상궁 : (매섭게OL)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마마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이냐?
송연 : ....!!....
원빈 : (굳은)
송연 : 송구하옵니다.
원빈 : 허면, 내 처소에 들러 그리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니
       너 또한 그리 알고 매일 입궐하거라!

                        원빈, 차갑게 보다가 돌아서 가고. 최상궁, 뒤를 따른다.
                        송연, 당혹스럽다. 굳은 표정으로 가는 원빈을 바라보는데.

초비 : 아니, 병풍을 들어와서 그리라니?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야...어..?
송연 : ........
초비 : ..
송연 : 어찌 되었든 도화서로 가서 준비를 해야죠.
초비 : 그래..퇴궐하자!

                        두 사람. 짐을 정리한다.

송연 : 그나저나 이천 나으리는 돌아오셨나 궁금하네요..
초비 : 나도 그래..

#46. 도성 일각. 낮

                        탁지수, 송연이 가고 있다.

탁지수 : 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사흘씩이나 도화설 안 나오는겐지...
송연 : (걱정이다) 그러게요...나으리께서 잔꾀가 많긴 하셔도
       절대 도화설 빠지실 분은 아니신데...
탁지수 : 아직 멀었느냐?
송연 : (둘러보며) 아뇨, 거의 다 왔어요, 나으리.
       내정교 지나 의원집 옆이니까...

                        하고 보는데..그 때, 저만치 어느 집 문이 열리며
                        이천이 버선발로 뛰쳐 나오는데..
                        이어 밖으로 던져지는 거대한 맷돌..!

이천 : (안을 향해) 마누라... 미안하네..
       내 곧 이 돈을 세 배, 아니 열 배로 불려올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하고 이천, 줄행랑을 놓는데..
                        보면, 놀라고 기막힌 얼굴로 보고 있는 송연과 탁지수.

탁지수 : (기막히다) 저 인간이 아프다더니...!!
송연 : (당혹스럽고)

#47. 도화서. 마당. 낮

                        탁지수, 송연, 들어온다.

탁지수 : (분에 찬 얼굴로) 아프대서 집까지 찾아갔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 당장 이 일을 별제 나으리께 고해 경을 치게 할 거다.

                        보면, 마당에 있던 초비, 시비, 세모, 미수 등..
                        무슨 일인가 보는데..

송연 : 나으리..진정하세요..
       이화사 나으리께서도 사정이 있으실 거에요.
탁지수 : 무슨 사정 말이냐?
         멀쩡히 기방으로 가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내가 그 인간 일까지 도맡아 하느라
         집에도 못 들어간 걸 생각하면....
송연 : ..나으리...

                        하는데. 저만치 박영문과 강두치가 지나간다.
                        탁지수, '별제 나으리!' 하면서 가고.
                        송연, 어쩌면 좋나...난감한 얼굴로 보는데.

초비 :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저렇게 방방 뛰셔..어?

                        송연, 걱정스런 얼굴로 대답 없이 멀리서 굳어지는
                        박영문의 얼굴을 보는데..

#48. 기방1. 낮

                        이천, 음담 있다. 그 앞에 지필묵과 그림 몇 장이 있고..
                        이천, 손에는 술병을 들고 있는데...

음담 : (뚱하게) 술 가져오랬더니...
       무슨 쓰레기들을 이렇게 펼쳐 논 겐가?
이천 : (당혹,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다니) 쓰레기라니요?
       이건 스승님께서 그리신 춘화가 아닙니까?
음담 : (가져와 보는데, 갸우뚱하고) 시끄럽고, 얼른 술이나 내 놔, 이 놈아.
이천 : (못 참겠다, 용기를 내어) 시..싫습니다..
       술을 드시고 싶으시면, 이 그림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그려봐 주십시오.
음담 : 뭐야?
이천 : (절박하다) 그러니까, 제가 스승님을 믿을 수 있도록
       재주를 보여주시라...이 말입니다.
음담 : (기가 막히다OL) 이런, 건방진 놈....
       버리라고 데려왔더니, 버리라는 건 안 버리고
       네가 버르장머리를 내다 버렸냐? 어..?

                        하는데, 그 때, 밖에서.

매향 (소리) : 이화사 나으리, 잠시만 나와 보십시요.
이천 : (멈칫한다) 왜, 왜 그러는가?
매향 (소리) : 어서 나와보세요, 급한 일입니다..
이천 : (아이씨..미치겠다. 종이 막 펼치며) 자, 술 드시고 싶으시면
       얼른 그리고 계십쇼, 예?
음담 : (버선짝으로 머리 치며) 술부터 내 놔, 이 놈아...

#49. 동. 마당. 낮

                        이천, '대체 누가 날 찾아왔단 말인가?' 하며
                        방에서 나오고.
                        매향, '저기...' 하면서 손가락으로 마당을 가리킨다.
                        보면, 마당에 박영문, 탁지수, 송연 있고.
                        이천, 순간, 허걱 놀라는데...

이천 : 벼..별제 나으리...!
박영문 : (노한 채로)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이천 : (헉, 그대로 마당에 무릎을 꿇는다)
       나으리...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박영문 : (OL) 듣기 싫네!
         내 탁화사의 말을 듣고도 설마했는데...
         자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자네가 도화서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럴 수가 있냔 말이야!
이천 : (OL) 용서해 주십시오, 나으리...저는 다만....(하는데)
박영문 : (OL) 됐네...자네한텐,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네.
         내일부터 도화서에 나올 필요 없으니 그리 알게!
이천 : (OL) 별제 나으리...?!
다들 : ....!!....
송연 : (놀라서) 별제 나으리!!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천 나으리께 분명 무슨 사정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박영문, 매서운 얼굴로 돌아서고.
                        이천, '한 번만 봐 달라, 잘못했다'며 매달리는데...
                        그 때. 벌컥 방문이 열리더니 음담이 나온다.

음담 : (그림을 던지며) 옛다, 이 놈아...
       이거나 쳐 먹고, 얼른 술이나 내 놔..(하는데)

                        보면, 다들...그런 음담을 보고 놀라는데....
                        그 때, 순간...음담을 보던 박영문이 멈칫, 놀란다.

박영문 : (놀라) .....장령 나으리...!!
음담 : (뭐야..? 하는 얼굴로 보고)
박영문 : (어떻게 이럴 수가...하는 표정이고)
음담 : (술이 잔뜩 취해 여전히 모르겠고)

                        보면, 이천과 탁지수, 송연....뭔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50. 동. 기방1 안. 낮

                        음담, 박영문, 이천, 탁지수, 송연 있다.
                        음담, 한 쪽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고.
                        이천, 경악한 얼굴로 보며.

이천 : 예에? 그럼, 이 분이 도화서의 화원이셨단 말입니까?
박영문 : 그냥 화원이 아니셨네.
         돌아가신 선 대왕마마의 어진을 네 번이나 그려
         그 공으로 도화서에선
         처음으로 종4품 장령의 반열에 오르신 분일세..
다들 : ...!!...
송연 : 그럼, 혹시 이 분께서 대화실에 걸린 매화도를 그리신
       장홍복 나으리란 말씀이세요?
박영문 : 그래...맞다...
송연 : ...!!...
다들 : .....!!.....
박영문 : 다들 그 그림을 봐서 알겠지만...
         장홍복 나린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필세를 가진 분이셨네.
         헌데, 어느 날 갑자기 도화서를 떠나신 후론
         십수 년이 넘게 우리도 소식을 듣지 못했지...
         (이천을 보며) 그런데, 대체 자넨 어디서 이 분을 만난 것인가?
이천 : ....저...그러니까..그게 말입니다...

                        이천, 차마 말을 못하고 더듬거리는데..
                        보면, 그 때, 모로 누워 자고 있던 음담,
                        돌아 누워 대자로 뻗더니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고...
                        보면 송연, 그런 음담을 가만...바라보는데.

#51. 도성 일각. 낮

                        대수가 관복을 입고 가고 있다.
                        그 때 보면, 저 앞...한 대갓댁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포도청 군관과 포졸들이 모여 있는데...
                        무슨 일인가. 대수, 다가가서.

대수 : 난, 숙위소 군관 박대수라 하네. 무슨 일인가?
포교 : 오늘 아침에 공조참판 박철명 대감이 괴한의 손에..
       절명하셨습니다.
대수 : 뭐....?!

                        대수, 당혹스러운데..
                        그 때 보면, 안에서 관원들이 시신을 들것에 들고 나온다.
                        보면, 덮여진 천 아래로 내려와 있는 시신의 팔.
                        그 팔에 '又' 자가 새겨져 있는데...
                        당혹스런 얼굴로 그것을 보는 대수...

#52. 숙위소. 집무실. 낮

                        대수와 서장보, 강석기가 함께 있다.

서장보 : 뭐? 공조참판 박철명 대감 뿐 아니라
         이조참의 오태수까지 죽었다고?
강석기 : 그렇네. 게다가 두 사람의 시신에 모두
         먼저 죽은 호판 대감처럼
         '우' 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네.
대수 : ....!!....
서장보 : 나 원...그럼, 이건 연쇄살인이란 말이 아닌가?
         누가 작정을 한 게로군.
         누군지 몰라도 노론 중신들을 하나하나 죽여나갈 작정인거야.
강석기 : (대수한테) 대수야! 혹시, 뭐 아는 거 없느냐?
대수 : (놀라서) 예...? 뭐...뭘 말씀입니까?
강석기 : 지금 궐에, 이것이 홍승지 영감께서
         벌인 일이란 말이 떠돌고 있다.
대수 : 예에....?!
강석기 : 만약 그렇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허니,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말을 해 다오.

                        강석기, 서장보...걱정이 어린 얼굴로 보고..
                        대수, 어찌하면 좋나...대답하지 못하고
                        불안한 얼굴이 되는데.

#53. 궐 일각. 낮

                        중신들, 삼삼오오 모여 불안하고 격분한
                        얼굴로 수군대고 있다.
                        '홍국영의 짓이다, 증험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 말들.
                        그 때, 채제공과 함께 지나가던 산...
                        그 모습을 보고 굳어지는데...

#54. 산의 서재. 마당. 낮

                        산이 굳은 표정으로 오는데...
                        보면, 대전 앞에 남사초와 장태우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론...의금부 종사관이 예를 표하는데.
                        산, 멈칫...뭔가 하는 표정으로 이들을 보는데..

남사초 : (사색이 되어) 전하...
산 : 무슨 일인가.
장태우 : 이 자는 의금부 도사입니다, 전하.
산 : (도사를 보고) 좌상께서 무슨 까닭으로 의금부 도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오?
장태우 : 소신, 조정 중신들을 살인 교사한 자를 알아내어
         그 죄인을 고변하러 온 것이옵니다. 전하.
산 : ....!!....
장태우 : .........

#55. 동. 산의 서재. 낮

                        원탁 탁자에 앉은 산, 불쾌한 듯 화를 내며.
                        앞에 서 있는 장태우.

산 : (앉으며) 말을 삼가시오. 좌상!
     이 일에 홍승지가 연루되어 있다니?
     어찌 그처럼 참담한 말을 내게 할 수 있소?
장태우 : .........
산 : 홍승지는 누구보다 과인이 잘 알고 있소.
     과인의 영을 어기고 그 같은 짓을 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장태우 : 그렇다면 아마도
         홍승지 또한 감히 지존이신 전하를 가벼이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산 : (OL) 좌상!!
장태우 : (OL) 전하! 증험이 있습니다.
         소신, 이 일에 홍승지가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를 가져왔습니다.
산 : (충격...) 뭐...라구요?
장태우 : 소신, 규장각 서얼들의 일에 노론이 개입되었다는
         전하의 말씀을 듣고
         제 스스로 저들의 뒤를 살펴보았습니다.
         헌데, 그러던 중 참으로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지요.
산 : ....!....
장태우 : 바로, 전하께서 그토록 총애하시는 홍승지가
         저자의 왈패들을 돈으로 사서
         민주식 영감을 피습한 것이었습니다.
산 : ....!!!....
장태우 : 이미, 의금부에서 그 왈패들을 잡아
         모든 죄를 토설받았습니다. 전하.
산 : ....!!!....

#56. 숙위소 집무실. 낮

                       채제공과 홍국영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국영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감.
         제가 이번 중신들의 죽음을 교사했다니요?
채제공 : 자네가 사람을 사...민주식 영감을 피습했다 들었네.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홍국영 : ....!....
채제공 :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가?
         이 일이 어떤 화가 될 지 몰라 그런 것인가?
홍국영 : (굳은) 민주식 영감의 일을 제가 사주한 것은 사실입니다.
채제공 : ....!....
홍국영 : 허나, 중신들의 일은 모르는 일입니다.
         결단코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대감.
채제공 : ..
홍국영 : ..
채제공 :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홍국영 : ...!...
채제공 : 모르겠는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민주식 영감의 일만으로도
         자넨 그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됐단 말이네.
홍국영 : ....!!....

#57. 산의 서재. 밤

                       산, 착잡한 얼굴로 앉아 있는데...
                       그 때, 문이 열리고 남사초가 들어온다.

남사초 : 전하, 홍승지 입시옵니다..
산 : ...!...

                       이내, 안으로 들어서는 홍국영.
                       그런 홍국영을 보는 산의 굳은 표정.

산 : ..
홍국영 : ..
산 : 앉게.
홍국영 : (앉는다)
산 : ..
홍국영 : ...
산 : 자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는 것인가?
홍국영 : ...........
산 :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는가?
     내가 정녕, 자네를 잘못 본 것인가?
홍국영 : 신을 벌하여 주십시오. 전하!
산 : 지난날 내 세손 때에도 자네는 같은 짓을 했었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반복하는가?
홍국영 : ..
산 : ..
홍국영 : 모든 것이 신의 불충에서 비롯된 것이옵니다.
         신을 용서치 말아주시옵소서!
산 : (괴롭다) 그런 말이나 듣자고 한 얘기가 아니질 않는가?
홍국영 : .......
산 : 중신들 모두 한 목소리로 자넬 조사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네.
     저들의 손에 자네를 옥죌 증험까지 쥐고 있으니,
     거칠 것 없이 자넬 몰아붙일 것이란 말이네..
홍국영 : .......
산 :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어찌할 것인가?
홍국영 : 전하! 신이 조사를 받겠습니다.
산 : (멈칫, 보면) 자네 지금 뭐라 했나..
홍국영 : 의금부로 가, 조사를 받겠습니다.
산 : ...!!...
홍국영 : 중신들을 살인 교사한 것은 소신의 짓이 아니옵니다.
         허니, 조사를 받도록 윤허해주십시오, 전하.
산 : ....!!....
홍국영 : (결연한데)

#58. 숙위소. 집무실. 밤

                     대수, 있는데. 홍국영,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다.

대수 : 영감!
홍국영 : .......
대수 : 대전에 드셨다 들었습니다. 대체 일이 어찌되는 것입니까.
홍국영 : 자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네...
대수 : (OL) 하지만, 지금 중신들의 일로 영감께서...(하는데)
홍국영 : (OL) 내가 어찌 되든 자넨 절대 나서지 말게.
         알겠는가? 자네까지 이 일에 말려들어서는 안 되네.
대수 : (OL) 하...하지만 영감....(하는데)
홍국영 : (OL) 자넨, 내가 이른 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하네..
         지금 전하껜...그 일이 더 시급해! 알겠는가?
대수 : 영감....!

                     홍국영, 이미 마음을 정한 듯 낮게 가라앉은 얼굴로 보고.
                     대수,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보는데...

#59. 궐 일각. 낮

                     한 쪽에서 급히 달려오는 대수.
                     보면, 홍국영이 의금부 관원들과 함께 간다.
                     홍국영, 담담하고도 의연한 얼굴인데..
                     그리고 보면, 한 쪽에서 그런 홍국영을 지켜보는
                     장태우와 최석주 등의 중신들.
                     대수, 홍국영의 모습을 보며...주먹을 움켜 쥐는데...

대수 : ...영..감....

#60. 정순 처소. 낮

                     정순이 강상궁과 있다.

정순 : 그래? 정말 그 일로 홍승지가 의금부로 끌려 갔단 말이냐?
강상궁 : 예...마마...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정순 : ...!!...

                     정순, 가만...그러다가.

정순 : 알겠다...그만 나가 보거라.
강상궁 : 예...(하고 나가면)

                     홀로 생각에 잠기는 정순. 그러다 한 쪽 장의 서랍을 열어
                     서찰 하나를 꺼내드는데....

정순 : (혼잣말...) 홍국영....
       이런데도...네가 내 손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

                     정순, 입가로 냉소가 번지고.

#61. 동. 대전. 밤

                     산,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
                     그 얼굴에

남사초 : (E) 전하! 홍승지가 의금부에 끌려 가고 있습니다.
산 : ..

                     그 때, 밖에서 박상궁의

박상궁 : 전하! 번암대감 입시옵니다.

                     이어, 채제공이 안으로 들어온다.

산 : 어서 오시오, 대감.
채제공 : 어찌 이런 시각까지 집무실에 계십니까? 전하.
산 : 잠이 오질 않습니다.
     내가 지금 어찌 편히 침소에 들 수 있겠습니까? 대감.
채제공 : 전하! 의금부에서
         홍승지에 대한 고신을 해도 좋을런지
         전하의 하명을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산 : ...!!...
채제공 : (어찌 할 것이냐) 전하...
산 : (갈등이 어리고) ...........

#62. 궐. 훈련장. 밤

                     대수가 목검을 들고 미친듯이 휘두르고 있다.
                     숨이 턱에 닿도록 휘두르다...
                     무릎이 꺾이는 대수. 안 된다..이대로는 안 된다...
                     대수, 숨을 헐떡이며...갈등이 어리는 얼굴로 돌아보는데...

#63. 동. 대전 앞 뜰. 밤

                     대수, 남사초와 있다.

남사초 : 전하를 뵈러 왔다고...?
대수 : 예....제가 알현을 청한다고...좀 고해주십쇼, 나으리.
남사초 :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겠구나.
대수 : 예...?
남사초 : 지금 전하께선 궐에 안 계신다.
대수 : 궐에....안 계시다니요...
       허면...지금, 어디에 납셔 계신 것입니까...?

                     대수, 보는데....

#64. 의금부 외경. 밤

#65. 동. 옥사 안. 밤

                     홍국영이 갇혀 있다.
                     담담하고 의연한 표정인데...
                     그 때, 밖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진다.
                     홍국영, 담담한 얼굴로 시선을 틀어 보면...
                     관원이 와 옥사의 문을 연다.

홍국영 : 무슨 일인가?

                     하고 보면...관원이 물러서고...
                     그 자리에...산이 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

홍국영 : (....!!!....) 전하.....
산 : .........
홍국영 : .....!!.....
산 : .........
홍국영 : ..
산 : ..
홍국영 : 전하...이 곳까지...어인 일이시옵니까...
산 : 내 생각해 보았더니....
     어찌 된 것인지 자네에게 그 까닭을 묻지 않았더군.
홍국영 : ....!....
산 : 자넨 분명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텐데
     나는 자네에게 그것을 묻지 않았어.
홍국영 : ....전하.....
산 : 허니, 내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들려 주게.
     나는 자네의 진실을 듣고 싶네.
홍국영 : 전하!
산 : 조정 중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자네가 아니라는 것이 사실인가?
홍국영 : .....!.....
산 : (간절하게 본다)
홍국영 : (떨려 온다) ...믿어...주시겠사옵니까?
산 : ....!....
홍국영 : 그것이 무엇이든
         소신이 전하께 올리는 말씀을...믿어 주시겠사옵니까? 전하.
산 : ....!!....
홍국영 : .......

                    보면, 홍국영, 절실한 얼굴로 산을 보고.
                    산, 그런 홍국영을 아무 말 없이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데...

#66. 궐 전경. 낮

#67. 동. 일각. 낮

                    장태우를 비롯한 중신들이 모여들고 있다. 격앙된 얼굴들.

#68. 편전. 낮

                    장태우를 비롯한 모든 중신들이 모여 있다.
                    모두들 기세등등한 얼굴들인데...
                    그 때, 남사초 '주상전하 납시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산이 안으로 들어선다.

장태우 : 전하! 신, 좌의정 장태우,
         전하께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산 : 무엇이오? 말해보시오.
장태우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오늘 등청을 하여, 전하께서 의금부에 하옥된
         도승지 홍국영에 대한 고신을 금지시켰단
         말을 전해 들었사옵니다.
         그것이, 정녕 사실이옵니까? 전하.
산 : 그렇소. 사실이오.
장태우 : .....!!.....
다들 : (웅성거리는데)
산 : 홍승지가 민주식 영감의 일에 연루가 된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오.
     헌데, 더 무엇을 알아낼 것이 있어 도승지를 고신한단 말이오.
장태우 : 알아낼 것이 없다니요?
         전하, 홍승지는 형조판서와 공조참판, 그리고 이조참의의 죽음을
         교사하여...(하는데)
산 : (O.L. 태연하게) 과인이 어젯밤 의금부에서 홍승지를 만났소.
     헌데, 홍승지는,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하더군요.
     하여, 과인은 홍승지에 대한 수사를 이미 중지하라 했소.
다들 : ....!!....
장태우 : (기가 막히다) 전하...!!
         이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고신도 받지 않은 자가 죄를 자복할 리가 없질 않사옵니까?
         헌데, 어찌 전하께선 증험도 없이
         수사를 중단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산 : 증험을 보이면 되겠소?
장태우 : (멈칫, 본다)
산 : 경들에게 홍승지가 무고하단 증거를 보여주면 되겠냔 말이오.
다들 : ....!!....
산 : 좋소. 그렇다면.
     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경들에게 그 증험을 보여주겠소.
장태우 : ....!!....
다들 : .....!!.....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술렁이고 당혹해하는 중신들.
                      보면, 그런 이들을 매섭게 바라보는 산.
                      산의 그 모습에서 엔딩.

.이산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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