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6
1. 복지관 일각 / 낮
5부 엔딩 연결로. 지원, 달려온다. 선우, 서 있다. 선우에게 다가가는 지원.
지원;........ 안녕하세요.
선우;(소리 나는 쪽으로 서서히 고개 돌리는)
지원;저 기억 하시겠어요?
선우, 지원을 바라본다. 초점 없는 눈동자. 지원 쪽을 향해 멈춰있다.
지원;..........(대답을 기다리다 점점 이상함을 느끼는)
어린 시절 차 안에서 지원을 바라보던 또렷하고 뜨거운 눈동자. 초점 풀려 지원과 눈을 안 맞춘 채 멍하니 멈춰 있는 선우의 눈동자.
선우;..... 저한테 말씀하신 겁니까.
지원;(충격)!!
선우;아직 제 앞에 계세요?
지원;.........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한 것 같아요.
선우;....괜찮습니다.
지원;........(바로 떠나지 못하고).... 제가 도와드릴 일 없나요.
선우;재활 훈련팀이 어딘가요. 친구가 알아보러 갔는데 오질 않네요.
지원;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지원, 선우의 왼쪽에 서서 선우의 왼팔을 조심스럽게 잡아 자신의 오른팔을 잡게 한다.
지원;제 팔을 잡으세요.
선우, 지원이 이끄는 대로 발을 내딛는다. 두 사람,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선우는 지원을 의지해 걷는다. 지원, 선우 옆모습을 본다. 두 사람, 사람 없는 복도를 걸어간다.
지원;여긴 오늘 처음이세요?
선우;네.
금줄, 사무실에서 서류 봉투와 접혀있는 지팡이를 들고 나온다. (접혀 있을 땐 30센치 크기)
금줄;선우야..... (옆에 있는 지원을 보며)?
지원;재활 훈련팀을 찾으셔서.....
금줄;미안하다. 오래 기다렸지.
선우;수미는.
금줄;근처 부동산에. 방 나온 거 본다고.
선우;응....
금줄;수미랑은 이따 집에서 보기로 했고..... (지팡이를 펴며)일단 오늘은
점자 기초랑 보행 훈련만 받으면 된대.
지원;점자 교실은 1층 사무국 옆이예요.
선우;고마워요.
어린 선우(E);고마워.
지원;.......안녕히 가세요.
지원, 걸어간다. 뒤돌아보면 금줄, 지팡이를 선우 손에 쥐어준다. 선우, 흰 지팡이를 잡는다.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려보는 선우. 선우, 금줄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 집고 걸어간다. 지원, 선우 가는 것 끝까지 보고 있다.
2. 복지관 녹음실 / 낮
지원, 문 열고 들어선다.
실장;뭐 놓고 갔어요?
지원;아까 녹음 하던 거 마저 다 하고 가려구요.
지원, 책꽂이에서 책(상실의 시대)을 뽑아들며
지원;오늘 새로 등록한 사람 혹시 보셨어요?
실장;......부산인가 기장에서 온 남자?
지원;(반가운)네! 맞아요 거기.
실장;아까 사무국에서 잠깐 봤어. 가족이 없더라.
지원;(놀람)그럼 고아예요?
실장;아마 그럴 걸. 사고로 시력을 잃은 것도 최근이고.
지원;무슨 사고로요?
실장;거기까진 모르겠는데.
지원;..........
3. 강의실 / 낮
빈 강의실. 혼자 앉아있는 장일. 책 펴놓고 멍하니. 핸드폰 벨이 울린다. (1997년. 발신자 번호 안뜸)
장일;.....(선뜻 안 받고 있다가)여보세요.
지원(F);장일씨 난데요.
장일;(밝아지는)지원씨!
지원;오늘은 영화 못 볼 것 같아요. 복지관에서 곧장 과외하는 데로
갈려구요. 미안해요. (끊는)
장일;지원씨! 여보세요.
장일, 속상해 벌떡 일어나는데 다시 핸드폰 벨.
장일;(바로 받아)여보세요!
4. 용배네 거실 / 낮
반찬과 미역, 김, 젓갈류를 싼 보자기 한아름 놓여있다. 용배, 통화 중.
용배;장일아, 너 좋아하는 어리굴젓이랑 밑반찬 좀 만들었다. 오늘 저녁 밥상에 놔줄게. 아버지 지금 출발한다.
장일(E);오늘은 안돼요 아버지.
용배;왜....
장일(F);학교에서 밤 샐 것 같아요.
용배;그럴수록 밥을 잘 먹어야지. 내가 밥상 차려 놓을테니까 아침에 들어 와서 먹어. 나 지금 차 시간 맞춰 나간다.
장일;집에 지금 선우가 와 있어요.
용배;(놀람. 벌컥)뭐! 선우가 거길 왜 가 있어.
장일;방 구할 때까지 며칠만 있을 거래요. 어젯밤에 왔어요.
용배;그 녀석이 거길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거야. 혼자 오지도 않았을 거
아냐.
장일;친구 둘이 데려왔어요. 방 구하면 바로 나갈 거예요.
용배;얘, 장일아.....그 녀석 앞으로 너한테 엉겨 붙으려는 속셈 아니냐.
그럴 심산으로 서울 간 거 아니야?
장일;아니예요.
용배;내가 전화해서 알아듣게 타이르마. 거기가 어디라구.
장일;하지 마세요.
용배;도대체 무슨 방을 왜 구한다는거야.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끌어내야 겠다.
장일;아버지. 그러다 우리 벌 받아요.
용배;.........
장일;맹인 학교 찾아서 온 거 예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아버진 제발
모른 척 하세요. (끊는)
5. 옷 가게 / 낮
예쁜 구두와 옷들 가득한 팬시한 샵. 수미, 열심히 옷을 고르고 있다. 탈의실을
들락거리며 아찔한 미니부터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 공주풍 드레스까지. 야한 하이힐부터 샌들, 뮬.... 미친 듯 입어보고 신어본다.
수미;이걸루 할게요.... 이것두요..... 이건 몇 프로 세일이예요?
거울에 비친 모습 맘에 드는 듯 미소 짓는 수미.
6. 미용실 / 낮
머리 커트중인 중인 수미.
수미;(만족스런 미소)
7. 수퍼마켓 / 낮
카트를 밀고 가는 수미. 달뜬 마음. 장을 보고 있다. 인스탄트 음식이 아닌 제대로
요리를 할 작정으로 장을 보고 있다. 파, 무, 조개, 두부, 야채, 고기 등등.... 수미, 장바구니 들고 같이 물건을 고르는 젊은 부부를 본다. 다정해 보인다.
수미;...............
수미의 상상. 장일, 수미 다정하게 카트를 끌고 간다. 장일, 시식중인 젓갈을 하나 수미에게 먹여준다. 수미, 매운 듯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 장일 얼른 카트에서 물병을 꺼내 따 준다.
수미;(장일보며 미소)
카트 앞에 혼자 서 있는 수미, 미소 짓고 있다.
8. 장일네 부엌 / 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 화사한 옷을 입은 수미, 파를 썰고 있다.
수미;아직 배 안고프지?
거실에서 실내보행 연습중인 선우와 옆에서 거드는 금줄.
금줄;난 배고파 죽어.
수미;조금만 참아. 집 주인 오면 다 같이 먹자.
선우, 벽을 한 손으로 가볍게 스치며 걸어간다. 한 손은 앞으로 막고 더듬이 처럼
세워서. 벽에 붙어 걸으며 앞에 있는 장애물을 피해간다.
금줄;그렇지 그렇지. 이제 이 집에선 고꾸라지는 일 없겠다.
수미;오늘 배운 거야?
금줄;운동신경이 있어서 빨리 익히더라구.
수미;다행이다.
금줄;넌 머리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수미;난 10분 단위로 변신해. 관심 갖지 마.
9. 버스 정류장 / 밤
장일, 가만히 서 있다. 버스 오고 떠나고... 장일, 버스 여러 대를 그냥 보내며 서 있다. 표정 어둡다. 집에 가기 싫은.
10. 장일네 거실 / 밤
장일, 들어온다. 거실 한 쪽에 흰 지팡이 서 있다. 장일, 시선 돌린다. 장일 맞는
수미.
수미;늦었네.
장일;(퉁명)어 미안. 교수님 면담이 갑자기 잡혀 가지구. 저녁은 먹었어?
금줄;(버럭)안 먹고 기다렸지! 배고파 환장하겠다.
장일;먼저 먹지 그랬어.
선우;수미가 찌개 맛있게 끓였대. 밥 먹자.
식탁에 둘러앉은 네 사람. 금줄은 배고팠던 듯 달게 맛나게 푹푹 떠 밥을 먹고
수미는 장일의 의식해 단아하게 먹으면서 장일의 표정을 살핀다. 선우, 젓가락으로 접시와 접시사이 빈 공간을 더듬다가 접시를 찾아간다.
수미;오른 쪽이 멸치구 왼쪽은 계란말이. 김치는 멸치 옆.
선우;(멸치를 집는데 몇 번 헛손질)
장일;........(싫고).........
선우;...... (장일에게서 먹는 움직임이 안 느껴진다)장일아 넌 왜 안 먹냐.
장일;먹어야지. 많이 먹어.
금줄;캬.... 찌개 죽인다. 최수미 넌 미모, 그림, 요리 다 끝내주는구나.
성격만 이상하구.
장일;(관심 없이 싸늘)
수미;하마트면 완벽할 뻔 했어.
선우;(푹 웃는)
선우, 입에서 뭔가 튄 듯 냅킨 찾으려다 물컵을 건드려 엎는다. 반찬접시에 물이 쏟아진다. 장일 순간 인상을 팍 쓰는.
선우;내가 뭘 엎었구나.
수미;괜찮아 괜찮아. 내가 치울게. (선우 손에 냅킨 쥐어준다)자.
금줄;수미 니가 너무 짜게 해서 선우가 물 섞은 거야.
수미;그래 내가 잘못했다. 얼른 먹어.
금줄;(찌개 먹으며)캬... 여기는 소주 한잔 있음 좋은데.
수미;한잔 할래? 맥주랑 소주 사왔는데.
금줄;좋지. 이장일, 우리 한잔 하자.
장일;난 술 잘 못해. 니들이나 마셔.
선우;장일이 너 술 세잖아. 소주 두병 반 마시고도 거뜬했는데.
장일;........! 내가?
선우;어제 니가 그랬지, 우리 같이 술 마신 적도 있다고? 그래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어....
장일;...........
선우;너..... 합격 잔치했었잖아.
금줄;했지 했지. 동네에 이장일 법대 합격 장난 아니게 붙어 있었지.
선우;그날 너 엄청 많이 마시고도 멀쩡했어.
장일;........(뭔가 조여 오는 불안감)그때야 기분이 들떠 있을 때니까.
수미;우리 예상이 맞았네. 장일이가 옆에 있으니까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잖아.
선우;나한테 예쁜 여자 친구는 없었냐?
장일;(웃으며)글쎄.... 그건 내가 기억이 안 나는데...
11. 장일네 거실 / 밤
테이블에 맥주 소주 놓여있다. 오징어 땅콩 안주류 널려있고 술 마시는 네 사람.
수미;오늘 방을 몇 개 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
장일;제대로 찾아 본거야?
수미;복지관에서 멀지 않아야 하고, 돈에 맞춰서 구하려니까 많지 않더라 구. .
선우;난 괜찮아. 아무데나 해.
수미;장일아, 내일은 니가 선우 좀 복지관에 데려다 줄래?
장일;내가?
수미;금줄이랑 나는 부동산 사무실 돌다가, 구청에 가서 서류도 좀 해와야
돼.
금줄;내일만 장일이 니가 선우 좀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해주라.
장일;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일은 수업 때문에....
수미;금요일은 수업 없다며.
장일;..... 아, 맞다. 내일이 금요일이지. 그래 내가 해줄게.
선우;미안하다.
장일;미안하긴... 그런 소리 하지 마 임마.
12. 거리 / 아침
흰 지팡이에 선글래스 낀 선우, 장일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다. 흰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치며 발걸음 옮겨간다. 장일, 오른쪽에 붙어선 선우가 불편하다.
선우;사람들이 쳐다보니?
장일;아니.
선우, 턱이 있는 곳을 제대로 인식 못해 발 내려놓으며 휘청한다.
장일;(놀라서 선우 붙들며)미안하다. 미리미리 얘기해 줄게.
선우;아냐, 내가 서툴러서 그래.
장일;이제 앞으로 한 30미터는 계단이나 턱없다.
선우;어제 재활팀 선생이 그러더라. 지팡이로 한발 앞에 짚고 한발 가고,
또 한발 짚어보고 한발 가고. 한 발 앞에 뭐가 있나, 안전한가 보고 한발을 떼놓으래.
장일;잘하고 있어 지금.
선우;사는 데도 이런 지팡이 있음 참 좋을텐데. 한발 앞을 알 수 있으면.
장일;..........그러게.
오토바이 한 대 굉음을 내며 위협적으로 지나간다. 선우, 놀라 장일의 팔을 꽉 잡는다. 장일, 선우의 무게감이 실려 오면서 싫은 표정. 부담스러운 듯 선우를 쳐다본다. 선우는 장일의 표정을 알 리 없고.
13. 복지관 일각 / 낮
선우, 장일 서 있다.
장일;정문 앞으로 다섯 시까지 오면 되지?
선우;그래 다섯 시에 정문에서 기다릴게.
장일;이따 보자.
선우,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한 손으론 벽을 스치며 한 손으론 지팡이 두드리며.
장일, 선우가 걷는 것 괴로운 듯 보다가 돌아선다.
14. 캠퍼스 벤치 또는 학생식당/ 낮
지원, 책 펼쳐놓고 멍하다. 다른 생각 중.
플래쉬 백 -- 복지관. 지팡이 짚고 걸어가는 선우.
지원;........(멍하니)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장일;(걸어오다 지원보고 반갑게)지원씨.
지원;(깨어나며)?!
장일;수업 없어요? 멍하니 뭐하고 앉아있어요.
지원;어.......있어요. (책을 가방에 넣으며)들어가야지.
장일;기타 사러 언제 갈까요?
지원;기타요?
장일;문 리버 다시 한번 듣고 싶다고 했잖아요. 오늘 수업 끝나고 갈래요?
지원;그때 내가 말한 사람 기억나요?
장일;누구.
지원;왜 내가 진미회관 앞에서 차 유리 부쉈을 때....
장일;기억나죠. 그 사람은 왜요.
지원;나 그 사람 만났어요.
장일;(단순 질투) 어디서요?
지원;어제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만났어요.
장일;그 사람도 봉사하러 온 거 예요?
지원.... 예전에 본 그 사람 분명한데... 그 사이에 맹인이 됐어요.
장일; !
지원;나도 깜짝 놀랐어요. 사고로 그렇게 됐나 봐요.
장일;지원씨. 이제 리포트 쓸 만큼 봉사 다니지 않았어요?
시간 너무 뺏기는 거 같은데 그만 하지.
지원;녹음 봉사는 재밌어요. 계속 할 생각인데. 또 봐요!
지원, 걸어간다. 장일, 기분 안 좋다.
15. 수미 방 / 낮
‘선우 데리고 서울 가요. 며칠 있다 올게’ 쪽지 크게 붙어있다. 광춘, 한껏 차려입고 서 있다.
광춘;(무선전화 들고 서 있다)말만한 가시나가 이틀 밤을 나가서 자고....
연락도 한 통 없고.... (전화에)아 여보세요. 거기 복지관이 서울
어디 붙어있습니까.
16. 기차 역 플랫폼 / 낮
표를 들고 서 있는 광춘. 카메라(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행복 차림으로 서 있는 힘 좋아 보이는 아줌마 무리 서너 명. 이 중 뚱뚱한 아줌마 하나, 계속 힐끔거리며 광춘을 본다. 일행 두 명에게 뭐라 속닥 함께 쳐다본다. 광춘, 이들의 시선 의식하고 있다.
광춘;(으쓱! 괜히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옷깃을 턴다)
광춘, 유혹적인 눈초리로 스윽 한번 시선 줬다 바로 거둔다.
광춘;흠..... (혼자 폼 잡고 서 있는데)
여자(E);이 사기꾼!
광춘; !
여자;나한테 천만 원에 부적 판 점쟁이 맞지? 남편 바람기 잡고, 장사 대 박난다고 꼬드겨서.
광춘;아... 아니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여자;오해는 무슨 오해. 너 오늘 잘 만났다. 당장 경찰서로 가!
광춘;사람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여자;엉터리 점쟁이 최광춘이 맞잖아.
광춘;(펄쩍)누가 들음 진짜로 알겠습니다. 전 차 시간이 급해서 이만.
광춘, 달아난다. 아줌마들 쫓아간다.
여자;거기 서!
광춘, 요리조리 피해서 달려간다.
광춘;아.... 패를 한 번 떼보고 나왔어야 하는건데.
기차역 일각. 광춘, 여자들한테 잡혀 있다. 이마엔 땀이 번들.
광춘;아니..... 이보쇼.... 바람피는 여자가 여사님 보다 젊고 이쁘고 착한 데, 여사님네 식당 밥이 드럽게 맛이 없는데.... 낸들 어쩌라구요.
이참에 우리 삼백짜리 부적 한 장 더 하고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여자;(잡아 끌며)경찰서 가자니까.
광춘;내 참 드러워서! 뱉어내면 되잖아.
여자;당장 내 놔.
광춘;지갑에 천만 원 넣고 다니는 미친놈 봤어요. 내가 부쳐드린다니까.
여자;그걸 어떻게 믿어.
아줌마, 세 명 광춘을 벽에 밀치고 양팔을 붙든다. 뚱뚱 아줌마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필름 카메라)로 광춘의 사진을 찍는다. 범죄자 사진 찍듯이 정면으로 찍고
여자;옆으로 돌려.
왼쪽 측면으로도 찍고.
여자;뒤집어.
광춘 오른 쪽 측면으로도 찍고.
광춘;이게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인권유린이요 인권유린.
여자;돈 안갚기만 해. 일간지에 사진으로 도배를 해버릴테니까.
야, 정면으로 한방 더.
사람들 지나가면서 이상하다는 듯 본다. 광춘, 쪽팔린다. 양 옆의 아줌마 어깨동무를 하고 친구들과 사진 찍는 것처럼 ‘김치~’
17. 광춘네 거실 / 낮
머리 아픈 듯 이마를 괴고 앉아있는 광춘.
광춘;으........ 하아...... 이게 다 수미 년 때문이야. 그 년 찾으러 서울
갈 생각만 안했어봐. 이런 사단이 왜 나나냐고!
광춘, 머리 잡고 괴로워하다가 굳음 결심을 한 듯 깊은 호흡 한번. 서랍에서 편지지를 꺼내고 그 위에 볼펜을 탁 놓는다.
광춘;............
18. 진승원 창고 / 낮
장일에게 가져갈 반찬과 가방 책상에 놓여있다. 용배, 작업복을 벗고 잠바를 걸치는데 차실장 들어온다.
용배;실장님이 웬일이십니까.
차실장;야외테이블 다섯 개만 준비하세요. 지금 회장님 손님들 오실 겁니 다.
용배;.......지금요? 서울 가려던 길이었는데...
차실장;이보세요, 지금 평일 낮 네 시예요.
용배;오늘은 아들놈한테 꼭 좀 가봐야 할 일이 있는데.
차실장;야외 테이블 바로 손봐서 정리해주세요.
용배;......알겠습니다.
차실장;(나가려다)용배씨 혹시 진회장님 먼 친척이라도 되십니까.
용배;아닌데요.... 왜 그러시는지....
차실장;장일 군이 너무 특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요. 서울 집 만들어
주느라 제가 아주 골머리를 썩었거든요. (나간다)
용배, 기분 나쁘다. 반찬과 가방을 보며 주춤거리다 창고 문을 열고 야외테이블을 꺼내기 시작한다.
19. 점자 교실 / 낮
색안경을 쓴 선생, 앉아있다. 시각장애인 몇 명, 점자수업 중. 선우는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왼손 검지로 점들을 만져보고 있다.
선생;왼쪽부터 세로로 1,2,3. 오른쪽부터 세로로 4,5,6....
여섯 개 점들의 위치와 방향을 익히세요.
선우, 눈을 감았다 떴다하면서 집중하고 있다. 올록볼록 흰 점이 가득한 점자들.
선우, 하나도 모르겠다. 절망스럽다.
선생(E);옆으로 손가락을 쭉 따라가 보세요. 2번 점 하나만 있는 것도
있고, 4번 점 하나만 달랑 있는 것도 있죠. ㅅ(시옷)하고
ㄹ(리을)은 한 점이예요. 점의 위치를 외워야 돼. 잘 짚어보세요.
선우, 답답한 듯 책을 탁 덮는다.
지원(E);바보 같은 생각은 그만둬.
20. 음반 도서실 / 낮
선우, 창가 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 꽂고 있다. 손바닥만한 CD플레이어 연결돼 있고 눈 감고 듣고 있는.
지원(E);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배의 방향이나
제대로 잡아라. 아직도 행운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파도에 져선 안돼. 난 지기 위해서 바다로 나온 게 아니야.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도서목록과 대출인 장부 놓여있고 CD와 테잎이 가득한 대여 프론트.
지원,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선우를 보고 있다. 선우, 무심코 고개를 지원 쪽으로
돌린다. 지원 들킨 듯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장부를 보는 척..... 그러다 아차!
하고 다시 선우 쪽으로 시선. 선우, 일어서 다가온다. 프론트 데스크를 확인하느라 더듬는 선우의 손.
선우;오디오 도서 대출은 어떻게 합니까.
지원;여기서 하시면 돼요.
선우;(귀를 쫑긋.......)
지원;집으로 가져가실 거죠. 필요하심 씨디 플레이어나 카세트 플레이어 도 빌려드릴 수 있구요.
선우;(손가락으로 가리키며)......헤밍웨이? 헤밍웨이 작품 녹음 하신 분
맞죠?
지원;네 맞아요.
선우;(웃으며)잘 들었습니다.
지원;어떤 거 빌리시게요?
선우;목록을 좀 알고 싶은데.
지원;잠깐만요. (글씨로 된 목록을 건네려다)아참! (점자 북을 펼치며)
여기요. (손을 갖다 책에 대준다)
선우;.............
지원;......? (아차!)
책상 한켠 두 사람 나란히 앉아있다. 지원, 목록을 불러주고 있다. 목이 쉬어라 열심히. 지원 옆 노트엔 선우가 고른 것 적은 메모.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원;알렉상드르 뒤마 몽테크리스토 백작, 토스토 예프스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막심 고리끼 어머니, 펄벅의 대지, 빅톨 위고 레미 제라블, 노틀담의 꼽추.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니코스 카잔차키 스 그리스 인 조르바.
선우;그거요 조르바.
지원;오케이. (노트에 메모하고) 다음은 한국 소설로 넘어갈까요?
선우;아뇨 소설은 세 권이면 됐어요. 인문교양 쪽으로는 어떤 책들이 있 죠?
지원;(자료 넘기며)음.....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서양 사상사, 로마 그리스 신화도 있구요.
선우;네, 그거요.
지원;로마 그리스 신화도.
선우;혹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한비자 같은 책도 있습니까.
지원;(선우를 다시 보는!)....그런 책은..... 아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선우;........(아쉬운).... 네...
프론트 데스크. 지원, 선우에게 오디오 CD 네 장을 준다.
지원;아까 말씀하신 건 희망도서로 올려놓을 게요.
선우;감사합니다.
선우, 지팡이 더듬으며 걸어 나간다.
21. 캠퍼스 일각 / 낮
느리게 걷고 있는 장일. 시계를 본다. 4시30분.
선우(E);그래 다섯 시에. 정문에서 기다릴게.
명석, 장일에게 달려오며
명석;너 마침 잘 만났다.
장일;....왜요?
명석;스터디 스케줄 얘기 좀 하자구.
장일;(손목 시계 본다. 갈등하는).....
명석;잠깐이면 돼. 니가 없음 이거 못 짜지.
장일;그래요.
노트와 형법 민법 책 놓고 페이지 넘기며 일정표 짜는 장일과 명석.
장일, 몰두해 있다.
22. 복지관 앞 / 어스름
선우, 혼자 지팡이 잡고 서 있다. 정문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 울려 퍼지고.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힐끗 선우를 보고 스쳐간다. 선우, 시각장애인용 손목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시계음(E);오후 다섯 시 40분입니다.
장일(E);정문 앞으로 다섯 시까지 오면 되지?
선우, 공중전화 버튼을 더듬어 버튼을 누른다. 011 778 ....누르다 #을 잘못 누른다. 신호가 가지 않는다. 선우, 버튼을 새로 누르는데
(F);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정문 앞. 선우, 기다린다. 해가 점점 기운다.
시계음(E);오후 여섯 시 20분입니다.
지원, 정문을 나서다 선우를 본다. 선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차도 쪽으로 나온다.
선우;(어설프게 손을 뻗어) 택시!
승용차들, 쌩쌩 지나쳐 가고. 한발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지원 달려온다.
지원;제가 잡아 드릴게요.
선우; ?
지원;저예요 헤밍웨이.
선우;감사합니다.
지원;어디까지 가세요.
선우;한성 아파트 3차 갑니다.
지원;택시!
장일, 저만치서 걸어오다 지원이 선우를 택시에 태우는 모습을 본다. 두 사람이 탄 차, 출발한다.
장일;...........
23. 도 로 / 어스름
달리는 택시. 뒷좌석의 두 사람. 선우는 긴장해 있다.
지원;납치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선우;댁이 그 근처세요?
지원;네. 거기서 마을버스로 조금 더 가요.
선우;네.......
지원;아직 혼자 차 탈만큼 훈련 안 받으신 것 같던데.
선우;친구가 오기로 했는데 일이 생겼나 봐요. 약속에 늦는 녀석이 아닌 데.
달리는 택시. 뒤로 장일이 탄 택시 따라간다.
24. 아파트 단지 / 밤
택시에서 내리는 선우와 지원. 곧 뒤따라 장일이 탄 택시 좀 떨어진 곳에 와서 선다.
선우;여기서부턴 제가 할게요.
지원;엘리베이터 층만 눌러드릴게요.
25. 엘리베이터 / 밤
1층 엘리베이터 안. 선우와 지원, 서 있다.
지원;(버튼 누르며)7층! 저 갈게요.
지원, 내린다. 선우와 마주 보고 서 있다. 엘리베이터 문, 천천히 닫히는데 지원,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든다.
선우; (지원을 본 것처럼 미소로 목례)
지원;(놀라 손 차렷)
엘리베이터 문 스륵 닫혀버린다.
26. 아파트 단지 / 밤
장일, 들어가지 않고 화단에 서 있다. 지원, 아파트 현관에서 나온다.
장일;지원씨.
지원;어? 장일씨가 여기 웬일이예요?
장일;여기 웬일이예요?
장일;저 여기 살잖아요.
지원;아........
장일;지원씨는 여기 웬일루........
27. 베이커리 겸 카페 / 밤
찻잔 놓고 앉아있는 지원과 장일. 장일, 뭔가 물어보고 싶은 데 타이밍을 보고
있는 표정.
장일;여기서도 과외 해요?
지원;그건 아니구.... 그 분 모셔다 드렸어요.
장일;그 분?
지원;진미회관 앞 그 분.
장일;그 사람을 왜요.
지원;약속한 친구가 안 왔다고 혼자 택시를 잡고 있잖아요. 아직 혼자
다닐 만큼 훈련이 안된 분인데.
장일;원래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예요?
지원;..........
장일;아님 그 사람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지원;.......장일씨는 지금껏 누굴 도와주거나 도움 받아본 적 없어요?
플래쉬 백 -- 1부. 학생부실. (어린 선우와 장일)
선우;이장일, 너 지금껏 누굴 도와줘 본 적도 없고,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구나.
장일;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선우;너 무지 외로운 놈이구나. 친구 해주까?
카페. 장일, 멍하니 앉아있다.
지원;장일씨도 복지관에 한번 와 봐요. 그럼 내 마음 이해되실 거예요.
장일;난 나중에 검사가 돼서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요. 당장에 맹인
한 사람 길 안내해주는 그런 봉사 말고.
지원;그러세요.
유리창 밖. 집에서 나온 듯 지갑 하나만 든 수미, 커다란 수퍼마켓 봉지를 들고 지나가다 베이커리 유리창 너머로 장일과 지원이 마주 앉아있는 게 보인다. 두 사람 진지하게 얘기하는 모습.
수미;............
수미, 질투와 증오의 눈으로 두 사람 바라보다 간다.
장일;저녁 먹고 가요.
지원;과외하러 가야 돼요.
장일;내일 하겠다고 전화해요.
지원;(어이없는) 왜요.
장일;맹인 집 찾아주러 여기까지 올 시간은 있고 나랑 저녁 먹을 시간은 없어요?
지원;오늘 왜 이래요. 화나기 전에 갈게요. (일어선다)
장일;(손을 확 잡는다)당장에 학비 벌기도 힘들어 하면서 봉사는 무슨
허영이예요?
지원;(손을 확 뿌리치고 나간다)
장일;..........(화나고....질투.......)
장일, 가만히 앉아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28. 장일네 거실 / 밤
쌩한 표정으로 통화중인 수미.
수미;응, 선우 무사히 왔어 걱정 안해도 돼.
장일;난 아직 학굔데 오늘 밤새야 할 것 같아. 어쩌지.
수미;..........
장일;여보세요?
수미;할 수 없지 뭐. 수고해라.
전화 내려놓는 수미.
수미;일부러 이래.
선우;뭘?
수미;아냐 아무 것두.
선우;.......장일이?
수미;학교에서 일이 있음 복지관 사무실로 전화하면 되잖아. 정문에 있는
사람한테 못 간다고 전하고 택시 좀 잡아줘라. 이랬어야지.
선우;다른 분이 도와줬다니까. 괜찮아.
금줄;(화장실에서 나오며)나쁜 새끼야. 선우가 자길 위해서 해준 일은
다 까먹었어. 그 새끼도 절벽에서 떨어졌나봐.
선우;그만해.
금줄;내가 이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 너 예전에 장일이 만들어준 독서 대랑 목침 있지? 그거 지금 경비아저씨가 쓰더라.
수미;뭐!
선우;............
금줄;이장일 합격 기원 인두로 쓴 거 있지? 이름은 칼로 파서 지워버렸어.
경비실에 있길래 이거 뭐냐고 했더니 쓰레기통에 누가 버린 걸
주워다 쓰는 거래.
선우;............ 너 장일이한텐 그런 얘기 하지 마라.
금줄;당연하지 임마.
수미;(흘려듣다가 갑자기 번쩍! 선우를 본다)선우야.... 너 그건 기억하고 있네. 사고 나기 얼마 전의 일일 텐데.
선우;.........(아차 싶은)어.... 그건 기억이 나네.
금줄;이장일 옆에 있으니까 술술 떠오르나 부다. 몇 달만 여기 있음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도 다 떠오르겠어.
29. 도서관 / 밤
자리 많이 비어있는 도서관. 장일, 앉아있다. 외로워 보인다. 책은 펼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 일어선다.
30. 악기사 / 밤
기타를 고르고 있는 장일. 다양한 기타들 만져보고 어설프게 손가락으로 튕겨본다. 예쁜 기타를 하나 고른다. 미소 짓는 장일.
31. 장일네 거실 / 밤
쌩한 표정으로 앉아 스케치하는 수미. 귀에 이어폰 꽂고 앉아있는 선우. 몰입해 듣고 있다. 부엌에서 나온 금줄, 선우 앞에 물컵 놔주며
금줄;테이블 위에 물컵 놨다.
선우;(못 듣는)
금줄:(이어폰 한 쪽 빼고)여기 물잔 있다구.
선우;어, 그래.
금줄;(선우의 이마 만져본다)어? 너 왜 이렇게 뜨거워. 이 자식 열 있네.
수미;그래? (선우 이마 만져본다)진짜.... 아까 찬바람 맞고 오래 서 있어 서 그래.
선우;괜찮다니까.
금줄;야, 너 오늘은 방에 들어가서 자.
수미;난 내일 내려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선우;오빠 멀쩡하다니까. 얼른 들어가서 짐이나 싸.
32. 장일네 수미 방 / 밤
장일의 다른 계절 옷들과 책장이 있는 방. 행거에 나란히 걸려있는 장일의 자켓과 셔츠, 그 사이에 같이 걸어놓은 수미의 옷들. 수미, 짐 가방을 싸고 있다. 쇼핑백도 여러 개. 수미, 행거에서 옷을 내려 가방에 넣다가 멈춘다. 걸려있는 장일의 자켓 소매 한 쪽을 원피스 어깨에 걸쳐놓는다. 마지막 한 쪽도. 장일이 수미의 어깨를 안고 있는 듯하게.
수미;장일아..... 선우가 점점 기억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아.
혹시 그게 두려운 거니.
33. 지원네 동네 / 새벽
신문배달 오토바이 달려간다. 낡은 연립주택 근처. 또는 놀이터. 자다 깬 듯한 부스스한 지원, 추리닝에 가디건 걸친 차림으로 뛰어나온다. 어느 구석에 술에 취한 장일, 앉아있다. 옆엔 기타 케이스.
지원;장일씨. 이 시간에 왠일이예요.
장일;........미안해요. 지원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지원;어디서 이렇게 마신 거예요. 지금 몇 신 줄 알아요?
장일;저기가 집이예요?
지원;..........
장일;겨울엔 춥겠다. 내가 나중에 돈 벌어서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게 해줄 게요.
지원;어제 저녁엔 장일씨 집 앞이었잖아. 집에 안 들어간 거예요?
장일;집에 가기 싫어요. 날 괴롭힐려구 일부러 쳐들어 온 것 같아.
지원;누가요.
장일;한지원씨.
지원;..........
장일;..............나만 좋아해주면 안되나.
지원;취했다... 어서 일어나요.
장일;자! 선물. (기타를 안겨준다)
지원;.........
장일;이 기타는 나한테만 들려줘야 해. 지원씨가 부르는 문리버도 나만
들을 거야.
장일, 벽에 기대 눈을 감는다. 지원, 난감하다.
34. 장일집 작은 방 / 아침
이부자리 펼쳐져 있고 선우, 누워있다.
수미;선우야, 너 오늘은 복지관 가지 마. 내가 전화해 놨어.
금줄;그래, 약 사다 줄테니까 약 먹고 쉬어.
선우;갈 수 있다니까.
수미;야, 눈도 안 보이면서 아프기 까지 해봐, 이장일이 널 얼마나 짐스러 워 하겠니.
선우;..........
금줄;약 사올게 선우야.
수미;넌 부동산에 시간 약속했어?
금줄;했지. 약만 사다주고 바로 나갈거야.
35. 아파트 단지 / 아침 (?? )
걸어가는 수미와 금줄. 수미, 가방을 들었다.
금줄;오늘은 괜찮은 방이 나왔음 좋겠네.
수미;서둘러서 아무거나 잡진 마. 이장일, 김선우한테 빚 많은 애잖아.
이 정도는 해줘야지.
금줄;내 말이!
두 사람 걸어 나간 후 택시 한 대 들어오고 용배, 내린다. 보따리 가득 들고.
36.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 아침
용배, 버튼을 누른다. 용배 기다리고 서 있는 뒤로 비틀거리는 장일을 가까스로
부축하는 지원.
지원;다 왔어요. 이제 혼자 들어 갈 수 있죠?
장일;지원씨, 우리 한잔만 더 해요. 집에 들어가기 싫다니까.
용배; ?! (돌아본다)
장일;(지원을 안다시피)우리 다른데 가요. 응? 한지원 우리 다른 데 가자.
지원;(손 떼놓으며)왜 이래요.
용배;.............장일아.......
지원;(깜짝 놀라고)
장일;..........(게슴츠레 고개 들어본다)
37. 장일네 거실 / 낮
용배, 장일의 따귀를 때린다.
장일;.........
용배;너 지금 제 정신이냐. 니가 지금 제 정신이냐구.
너 편하게 공부시키려고 애비는 진회장 밑에서 개처럼 기고 있는데
밤새 술이나 처먹고 여자 끼고 들어와? 사람새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이 자식아.
장일;...........누가 아버지더러 개처럼 기라고 했어요?
용배;뭐야.......
장일;왜 스스로 진회장의 개가 돼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세요.
용배;진회장님 아니었음 니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학비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겠니.
방 안 쪽. 선우, 숨 죽이고 앉아있다.
용배(E);이 집을 누가 해준건데 여기다 선우 녀석을 불러들여. 니가 받아 주니까 눌러 붙어 있는거 아냐.
장일(E);나라고 좋은 줄 아세요.
용배(E);이 녀석 어딨냐. 당장 나가라고 해.
장일(E);맹인학교 갔어요. 점자 배우러.
용배(E);선우 내보내고 아까 그 기집애도 만나지 마.
장일(E);이러실 거면 가세요. 아버지도 선우도 다 지겨워요.
선우;................
서러움 가득한 용배의 표정. 터지려는 울음을 참고 있다.
용배;이 애비가 널 위해서 지옥을 갔다 왔는데 내가 지겨워....?
장일;(눈물 나는)네.... 지겨워요. 너무 죄송한데 정말 지겨워요.
38. 도로 / 낮
한강을 건너는 택시. 달리는 택시 안. 용배, 서러운 듯 울고 있다. 흑흑..... 소리 내 흐느낀다. 소매로 계속 눈물 닦는다.
39. 장일네 부엌 / 낮
장일, 식탁에 앉아있다. 물병과 쥬스병 놓여있다. 방금 일어난 듯 머리가 헝클어진 선우, 귀에 이어폰 꽂은 채 더듬거리며 들어온다.
장일;(놀람 당황)너 집에 있었니.
선우, 듣지 못하고 들어와 식탁 의자에 앉는다.
장일;...........선우야.
선우;(못 듣고)
장일, CD플레이어에 꽂힌 이어폰 잭을 뽑는다. 지원의 책 읽는 목소리 흘러나온다.
(지원(E);어느 날인가 돈 많은 남자가 와서 1년 동안 신어도 닳지 않을 튼튼한
가죽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난 그 사람의 등 뒤에 죽음의 천사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나 외에는 아무도 그 천사를 보지 못했 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그 남자의 영혼이 그의 곁을 떠나리란 것을 난 알았습니다.)
장일;(지원 목소리 인식 못하고 소리 흐르는 위로)선우야.
선우;(그제야 장일을 인식한 척 놀라는)어! 너 언제 왔어.
장일;좀 전에. 아버지도 다녀가셨는데..... 몰랐어?
선우;몰랐어. 오셨음 말하지 인사라도 하게.
장일;복지관에 간 줄 알았지. 방문도 잠겨있던데.
선우;그랬나.
장일;수미랑 금줄은?
선우;수미는 내려갔고, 금줄은 방 보러 나갔어.
장일;.........(선우를 이상하다는 듯 본다..... 지원의 목소리를 인지하는)....
지원(E);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이 질문 중에 또 한 가지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
장일;(스톱 버튼 누른다)
선우;나 듣고 있는데.
장일;술이나 한잔 할래.
선우;(웃으며)대낮부터?
40. 거실 / 낮
클래식 흐른다. 창가로 환한 햇살이 들어온다. 얼음잔과 맥주와 양주병 놓여있다. 많이 비어있다. 장일, 마시고 잔 내려놓는다. 과일과 치즈, 과일 깎는 칼이 놓여있다. 장일, 취기가 돈다.
장일;자, 이젠 너. (맥주 양주 거칠게 섞어 따른다)
선우;나만 마시고 있는 거 아냐? 눈이 안보이니까 알 수 가 있어야지.
장일;(머리를 한 대 치며)이 새끼..... 내가 널 속일 까봐?
선우;(온순하게 잔을 들어 마신다)
장일;(칼로 과일 조금 베어 물고 테이블에 툭 던진다. 선우를 빤히 보는)
선우;(술 마시는)
장일;선우야.
선우;응.
장일;우리 집 보이냐? 방이 세 개, 화장실 두 개. 넓고 좋다.
선우;(미소)응.... 좋은 것 같아.
장일;내가 너 서울 오라고 할 때 왔으면 좋았잖아. 너도 지금쯤 대학생이
돼 있겠지. 여자친구도 사귀고 도서관에서 밤도 새고.... 우린 옛날처 럼 단짝친구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낼텐데....
선우;니가 나한테 그랬었어?
장일;그래 임마. 내 말 들었음 이렇게 소경이 돼서 나타나진 않잖아.
선우;난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딱 하나 빼곤 없지만.
장일;그 하나가 뭔데.
선우;내 인생 이게 끝이 아니라고 믿는 거.
장일;(웃으며)고난을 박차고 일어서라. 빛나는 내일이 증언하리.
선우;니 책상 앞에 붙어있던 거네.
장일;지금 당장 눈을 뜰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야.
선우;니 얼굴을 보는 거.
장일;..........왜?
선우;니가 지금 내 앞에 있잖아.
장일;너 지금 나 놀리냐?
선우;술이나 더 마셔.
장일;좋지. (술잔 2개에 술을 섞어 따르다 문득! 멈춘다.
선우를 본다)너 기억하는 구나.......내 방 책상 앞에 붙어있던 촌스런
문구.
선우;니가 말하니까 묻혀있던 기억이 떠오르나봐.
장일;너 혹시 보이는 거 아냐? 보이면서 안 보이는 척 연기하는거지?
선우;취했다. 그만 마시자. (일어서는데)
장일;(멱살을 잡고)........너 나한테 말 안하고 있는 거 있지.
선우;........
장일;말해. 말해 어서.
선우;......사실은......
장일;........(죽일 듯이 긴장으로 쏘아보는데)
선우;나 사실은 한강 유람선 타보고 싶다. 너한테 미안해서 말 못하고
있었어.
장일, 두려움과 긴장이 안에서 폭발하듯 갑자기 선우를 때린다. 선우, 장일을 밀친다. 테이블로 엎어지는 장일. 술잔이 바닥에 떨어진다. 장일, 소파에 앉아있는 선우를 손으로 때리다 쿳션을 들어 닥치는 대로 팬다. 선우, 맞고만 있다.
장일;옛날 김선우 어디갔어. 나한테 싸움 가르쳐주던 옛날 김선우 어디
갔냐구.
선우;(웅크린 채 계속 맞고 있는)
선우(E);아버지는 진노식 회장을 안다. 아버지는 진회장 별장에 갔다.
아버지가 죽었다. 장일이가 장학금을 받고 서울로 온다.
장일, 술 취해 뻗어있다. 창가로 깊게 쓰며드는 햇살. 선우, 장일을 등지고 창밖을 향해 서 있다.
선우(E);진정서 제출을 장일이가 말렸다. 경찰서에 가는 나를 장일이가
뒤에서 치고 벼랑으로 굴렸다. 나는 살아났고 앞을 볼 수 없다.
난 널 용서할 수 없다.
41. 남성복 명품매장 / 낮
진노식, 수트 입고 서 있다. 점원, 무릎 꿇고 앉아서 바짓단을 바로 해주고 있다.
희정;내 남편 멋있네. 그걸루 해요. (점원에게)타이랑 셔츠는 다른 것
좀 보여주세요.
노식;양복은 지난달에도 새로 산 게 있는데.
희정;이번 달에 중요한 계약 있잖아요. 그때 입으라고 내가 주는 선물.
노식;선물은 내가 줘야 하는 거 아냐. 커피잔도 새로 사줘야 하고.
희정;은애가 누구예요?
노식;..........!
희정;슬픈 꿈이라도 꾸는 지.....흐느끼는 목소리로 은애야.... 어데가나...
이러더라구 어젯 밤에.
노식;........
희정;나야 결혼도 했었고 애도 둘 달 고 와 당신이랑 살고 있지만....
잠꼬대로 딴 여자 이름 부르는 게 기분 좋진 않더라구.
노식;(타이 다른 색깔 대보며)이거 괜찮아?
희정;옛날 약혼녀예요?
노식;......별 걸 다 묻는다.
희정;당신은 내 맘대로 옷 입힐 수 있는 내 남편이야. 꿈속에서도 잊지
마요.
노식;알았어.
희정;사무실로 들어갈 거예요?
노식;데이트 약속이 하나 있어.
42. 소규모 공연장 / 낮
(Kbs홀도 괜찮음)불 꺼진 객석. 무대에선 피아노 한 대와 윤주. 리허설 중.
윤주;(노래... 헨델의 울게 하소서)
불 꺼진 객석에 혼자 앉아있는 진노식. 눈 감고 노래 듣다가 끝나면 박수쳐준다.
객석으로 다가오는 윤주.
윤주;바쁘실텐데 뵙자고 해서 죄송해요.
노식;아니야 덕분에 노래 잘 들었다.
윤주;(노식 옆에 앉는다)노래는 졸업연주회 까지만이예요. 앞으론 그냥
취미로만 할거예요.
노식;엄마랑 아직 한참 더 싸워야겠구나.
윤주;부탁이.... 아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했어요.
노식;경영학을 공부하겠다는 거? 그건 이미 나도 찬성했는데.
윤주;저 결혼 한다구요.
노식;...........?
윤주;성악과 선밴데 엄마가 반대해요. 가난한 집 장남에 음악하는 남자라 구요. 난 이 사람 없인 못 살 것 같아요. 우리끼리 결혼하려구요.
노식;그 남자가 널 낳아준 엄마보다 소중하냐.
윤주;........내 인생이 엄마꺼는 아니니까요.
노식;그 남자는 니꺼가 될 거 같으냐.
윤주;..........
노식;그 남자가 니 인생이 돼서도 안된다.
윤주;회장님은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해 본 적 있으세요?
노식;사랑....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윤주;..........
노식;사랑에 너무 많이 기대지 마라.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거란,
니가 변하지 않을꺼란 생각은 하지 마.
윤주;그 사람도 나도 안 변할 것 같은데요.
노식;그래서 사람들이 다친다. 그렇게 믿어서.
윤주;..............
43. 선우네 옥탑 / 낮
태주와 쿤, 마당에 서 있다. 텅 비어있는 방과 쓰레기 나뒹구는 마당. 태주, 쓸쓸하게 바라본다. 쿤, 뒤에 말없이 서 있다.
44. 옛날 회사 사무실 / 밤 (?)
장부와 영수증 잔뜩 쌓아두고 뭔가 정리하고 얘기중인 노식과 태주.
태주;이건 10년 계획으로 멀리 보고 가는 게 맞아요.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고 하면 다른 걸 놓치실 거예요.
노식;내 생각도 그래. 그렇게 하자.
문 열리고 도시락을 싸든 은애 들어온다. 태주, 밝아지는 얼굴.
노식;일하는 데 그런 건 왜 싸들고 와. 일 방해되게. 태주보고 싶어 왔나.
45. 옛날 회사 일각 / 밤
(5부 노식의 회상과 다른 시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는 태주와 은애.
은애;....... 아이가 생긴 것 같아요. 어떡하죠.
태주;...... 내가 형한테 말씀드릴게요.
은애;안돼요. 얘기하면 안돼요.
태주;불안해 하지 말아요 은애씨.
은애;난 그이가 싫어요. (고개를 숙이고 운다)
태주, 도닥 거려주면 은애 태주에게 안긴다. 멀리서 보던 노식, 돌아서 간다.
은애;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언제나 나 보다 일이 먼저,
돈이 먼저예요.
태주;형님, 은애씨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은애;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면 당장 지우라고 할 거예요.
태주;그렇지 않아요.
은애;그 사람은 나한테 마음을 준 적이 없어요. 계속 나 혼자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태주;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됩니까.
은애;차라리 내가 문태주씨를 죽도록 사랑했으면 좋겠네요.
태주;은애씨.... 나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은애;(눈물 닦으며 돌아서 간다)
태주(E);은애씨를 처음 본 날부터 난 매일이 행복이고 매일이 지옥이었는 데. 내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합니까.
태주, 눈물이 그렁.
46. 옛날 회사 사무실 / 낮
형사들 들이닥쳐 구속영장을 내보이며 태주를 끌어낸다.
형사;문태주씨 맞습니까.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긴급체포 합니다.
태주;(믿기지 않는) 뭐요?!
형사들, 태주를 끌고 나간다.
태주;진노식 사장님 좀 만나게 해주세요. (부르는)형님! 형!
47. 선우네 옥탑 / 낮
서 있는 태주와 쿤은 옆에서 불어로 통화 중. (태주는 시간을 거치며 자신감있고, 겉으론 시니컬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데 프로가 됨)
쿤; (불어)미스터 문과 나는 한국에서 좀 더 머물 것 같습니다.
아마도........(태주를 보면)
태주;그건 나도 모르지. 내 아들을 찾을 때 까지.
쿤;.......(불어로) 그건 지금 확정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전화끊고)
태주;눈이 멀어서 떠났다는 게 사실이야?
쿤;........ I‘m afraid so.
태주;..............
48. 선우네 동네 / 낮 (??)
비닐장갑 낀 손으로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광춘. 편지를 넣고 장갑도 얼른 벗어 주머니에 넣는다. 가방 든 수미, 걸어온다.
수미;뭐해.
광춘;아 깜짝이야. 이노무 가시나. 뭐하다 이제 와.
수미;(의심)..... 편지 부쳤어?
광춘;편지는 무슨 편지를 부쳐!
수미;.......이상한 짓 하지 마. 벌써 옛날 일이야.
광춘;생사람 잡지 마. 내가 뭘 어쨌다구.
수미;화실 들렀다 갈게요. (가는)
광춘;선우는 어떻게 하고 있냐.
수미;잘 있어요.
49. 장일네 거실 / 밤
외출에서 돌아온 금줄, 뻥한 얼굴로 서 있다. 술병 술잔 널브러져 있다.
장일, 머리를 잡으며 방에서 나온다.
금줄;선우랑 술 마셨냐.
선우;(말없이 물병 들어 마시는)
금줄;술 마시고 씨름했어?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장일;몰라. 기억 안나. (다시 방으로 가다) 방은 구했어?
금줄;아니 아직....
장일;(방으로 들어간다)
50. 강의실 앞 복도 / 낮
학생들과 함께 지원, 나온다.
용배;저기......한지원 학생됩니까.
지원;(돌아본다)
51. 카 페 / 낮
마주 앉아있는 지원과 용배.
용배;한지원 양도 좋은 학교 다니는 학생이니까 내 말 이해 할 거예요.
우리 장일이.... 큰 인물이 되야 할 놈 이예요.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 때지, 여자친구 껴안고 뒹굴 때가 아니란 겁니다.
지원;(불쾌한)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장일씨랑은 그냥 학교 친구예요.
용배;그냥 학교 친구가 같이 밤새 술 마시다 아침에 남자네 집으로 들어
오나요.
지원;.........(기분 상하고)
용배;우리 장일이, 가진 것 없는 애비 만나 불쌍하게 자란 놈이예요.
공부할 수 있게 좀 도와줘요.
지원;잘 알겠습니다. 전 수업이 있어서요. (일어서는데)
용배;꼬드겨 흔들지 말고, 찾아와도 만나주지 말아요.
52. 캠퍼스 일각 / 낮
지원, 밝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간다. 걸어오던 장일, 지원을 보고 반가운 듯 환하게 웃는데 지원, 무시하고 지나친다.
장일;.........
53. 복지관 앞 / 낮
관광 버스 서 있다. 지원, 버스로 올라온다. 선우, 창가 쪽에 혼자 앉아있다. 지원, 선우와 통로를 사이에 둔 옆자리에 가서 앉는다. 선우, 이어폰 끼고 있다.
지원;.........(가만히 보고 있는데)
선우;(이어폰 빼고)헤밍씨?
지원;......어떻게 아셨어요?
선우;좋은 냄새가 나서요. (미소)
54. 유원지 / 낮
스티비원더 가발을 쓴 선글래스 시각장애인, Part time lover를 신나게 립씽크 하고 있다. 지원과 다른 봉사자들, 시각장애인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지원;(둘러본다 누군가를 찾는 눈길).........
멀리 떨어진 곳. 선우, 혼자 앉아있다. 지원, 소리친다.
지원;거기서 혼자 뭐해요.
선우;(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 돌리는)
지원;오세요, 이제 게임할 건데.
선우;(관심 없는 듯)이따 갈게요.
지원, 내려오다 경사진 비탈에서 돌에 걸려 발을 삐끗하며 구른다.
지원;악!
선우;(벌떡 일어난다)
지원;(발목 잡고)아흐....
선우;괜찮아요?
지원;(아픈 거 억지로 참으며)네......
선우;안 괜찮은 것 같은데.
지원;갠찮다니까요. (일어서는데)아흐... (하며 주저앉는)
선우;(지원의 발목을 조심스레 더듬어 만져본다)발목을 다친 것 같은데요. 나한테 엎혀요.
지원;아니예요. 괜찮아요.
선우;못 걷잖아요.
지원;좀 있으면 괜찮아 질거예요.
선우;엎히라니까....
지원;괜찮다니까.
선우;불안해서 그래요? 내가 앞을 못 보니까.
지원;.......
지원, 머뭇거리자 선우, 지원을 들어 안는다. 지원, 깜짝 놀라고.
선우;난 지금 헤밍씨 다리가 됐어요. 헤밍씨는 내 눈이 돼줘요. (지원을 업은 채 걸어 올라간다)
지원;..........
선우;이대로 쭉 올라가요?
지원;나무가 있어요. 세 발짝 앞에서 오른 쪽으로.
선우;하나 둘 셋...(오른 쪽으로 비껴간다)
평지로 나온 선우.
지원;왼쪽으로......네 이제 쭉 가요. (촬영장 동선에 맞게 대사 해주심 됩 니다)
지원, 선우 목에 두 손을 두른 채 선우 얼굴을 바라본다.
지원;.............
선우, 나무에 쾅 부딪힌다.
지원;악!
선우;똑바루 좀 해요! 앞은 안 보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 아냐?
지원;(발끈)내려줘요.
선우;정말 내려줘요?
지원;네.
선우;그럼 난 앞으로 갈 수 가 없는데. 지팡이 놓고 왔잖아요.
지원;그럼 계속 가요.
선우;앞이나 잘 봐요.
지원;어어.... 다섯 걸음 앞에 또 나무.
선우, 지원을 업고 나무 사이로 걸어간다. 봄 햇살 비치는 숲.
지원;......무겁죠.
선우;무겁네요.
지원;힘 주고 있는데.
선우;힘 준게 이 정도예요?
지원;내려 줘요.
선우;누구 맘대로.
지원을 안고 걸어가는 선우.
55. 점자 교육실 / 낮
손가락으로 점을 짚어가는 선우.
선우;...제 이름은 김... 선....우입니다....
점자 기구를 사용해서 점을 찍고 있는 선우.
점자선생;(만져본다)이젠 김선우씨 영어 점자도 잘하시네.
56. 음반 도서실 / 낮
CD를 반납하는 선우.
지원;열심히 들으시네요.
선우;발목은 다 나았어요?
지원;이제 말짱해요. 고마워요.
선우;제가 신청한 건 아직 안 왔나요?
지원;네...... 우선은 많이 알려진 작품 위주로 선정을 하고 있어서요.
선우;네..... 수고하세요.
선우, 나간다. 지원, 잠시 갈등하다 따라 나간다.
지원;저기요.
선우;(돌아보면)
지원;방법이 없는 건 아니예요.
57. 공원 벤치 / 낮
따뜻한 햇살이 퍼진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선우와 지원. 지원, 책 읽어 주고 있다. 지원 옆엔 책이 여러 권 쌓여있고 물병도 두어개.
지원;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선우;.............
지원;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우리가 날개를 가진 존재란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선우를 본다)
선우;(미소)
58. 강의실 앞 / 낮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장일. 신경 쓴 듯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학생들 우르르 나온다. 지원 보이지 않는다.
59. 복지관 일각 / 낮
장일, 꽃다발 들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간다. 흰 지팡이 든 시각장애인 걸어온다.
장일;여기 음반 도서팀이 어딥니까.
장애인;(장일이 가는 직진 방향으로 가르쳐 주고)
장일, 걸어가는데 걸어가는 쪽과 다른 방향에서 기타소리가 난다. 문리버. 장일,
소리를 따라간다. 장일의 발길이 머무는 곳, 문이 열린 작은 방에 지원이 기타를 치고 있다. 그 앞에는 선우 혼자 앉아있다.
지원;(기타치며 선우를 보며 미소 짓고)
선우;(입가에 잔잔한 미소)
장일, 걸어 들어간다. 지원, 장일이 걸어오는 걸 본다. 잠시 멈칫하다가 계속 연주.
장일, 꽃다발 들고 와 지원 앞에 와서 서는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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