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7
1. 복지관 복도 / 낮
6부 엔딩 연결로...... 꽃다발 들고 걸어가는 장일. 기타소리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2. 복지관 일각 / 낮
지원, 기타 친다. 문 리버. 선우, 앞에 앉아있고 장일, 꽃다발 들고 들어온다. 지원, 멈칫하지만 계속 기타연주. 장일, 지원 앞에 와서 선다.
선우;(누가 왔나.... 싶은 느낌)
지원;....... (기타 연주만)....
장일, 지원 옆에 꽃을 놓고 뒤로 물러서 한 쪽에 앉는다. 지원을 가운데 놓고 선우와 장일이 양 쪽에. 삼각형처럼 앉아있는 세 사람.
장일;(지원을 보고..... 선우도 보고)
선우;(눈 감고 듣는)
연주가 끝난다.
선우;(박수 쳐준다)잘 들었어요.
지원;두 군데 틀렸어요.
선우;점자 수업 끝날 때까지 계실 거예요?
지원;네. 음반 도서실에요.
장일;(말없이 두 사람 빤히 보고 있고)
선우;이따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지원;좋죠.
선우;(장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장일;..........
지원;이따 뵈요.
선우, 지팡이로 바닥을 스치며 나간다.
장일;저 사람이 그 분인가 부죠.
지원;여긴 왠일이예요.
장일;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지원;......네 그 사람 맞아요.
장일;지원씨 궁금해서 왔어요... 아니, 보고 싶어서 왔어요.
지원;나 지금 일하는 시간이예요.
장일;이것도 일 이었어요?
지원;..........
장일;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커피는 나랑 마셔요.
지원;선약이 있어요.
지원, 기타 들고 나가는데 장일 지원을 거칠게 잡는다.
장일;나보다 저 사람한테 더 친절한 이유가 뭐지. 동정심인가.
지원;(어이없다는 듯 픽)
장일, 지원을 확 안아 키스하려하는데 지원 장일을 밀치려 실랑이 하면서
기타가 퉁! 하고 떨어진다.
장일;...............
지원, 기타를 둔 채 나간다. 장일, 떨어진 기타를 보며 가만히 서 있는데
선우(E);헤밍씨 아직 여기 있어요?
장일, 돌아보면 선우가 문가에 서 있다.
장일;..............
선우;........다른 분인가...
선우, 아까 앉았던 자리를 더듬어 간다. 장일, 선우를 쳐다본다. 선우, 앉았던 자리를 더듬는다. 바닥에 손바닥보다 작은 시각장애인용 탁상시계가 떨어져 있다. 선우,
옆의 책상과 의자만 더듬더듬.....
장일;..........
장일, 움직임 없이 가만히 본다. 선우, 다른 쪽만 더듬거리다
선우;(장일 쪽을 향해) 혹시 이 근처에 시계 없습니까?
장일, 바닥에서 시계를 집어 들어 책상에 놓고 버튼을 탁 누른다.
(E);오후 4시 30분입니다.
선우;.......고맙습니다.
3. 복지관 복도 / 낮
선우, 복도 벽을 손으로 스치며 지팡이 짚으며 걸어간다. 장일, 뒤에서 뚜벅뚜벅 선우를 앞질러 가버린다.
선우;............
장일, 씁쓸한 표정.
4. 복지관 일각 / 낮
자판기 커피 마시는 지원과 선우.
지원;선우씨도 대학 입시 준비해 봐요. 점자로도 시험 볼 수 있어요.
선우;그래요? 난 점역 교정사 시험만 생각했는데.
지원;대입시 꼭 도전해 봐요. 선우씬 할 수 있어요.
선우;(미소)
지원;정말이라니까.
선우;아깐 누가 같이 있던 거였어요? 방에 누가 있었죠?
지원;아..... 다른 봉사자 한분이 있다 갔어요.
선우;지팡이 소리가 나질 않아서.... 누군데 말없이 있나 했어요.
지원;새로 온 분 같았어요.
선우;네......
지원;선우씨...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모르지만.... 어쩌다 사고를 당했어 요?
선우;........
금줄, 밝게 웃으며 걸어오는
금줄;선우야. 수업 잘 들었냐.
선우;어! 왔어?
지원;안녕하세요.
금줄;두 사람 너무 얘길 재밌게 하고 있어서 일부러 저기서 기다렸어.
선우;한 시간 더 있다 오지 그랬어.
금줄;알았어. 더 있다 올게.
선우;농담이야. 가자.
지원;조심해서 가요. 커피 잘 마셨어요.
5. 장일네 작은 방 / 밤
선우, 앞에 작은 탁상 놓고 앉아서 점자를 열심히 찍고 있다. 결연한 표정.
(아버지의 죽음부터 자신의 사고까지를 기록하고 있는). 점자들이 찍히며 한글 자막으로 함께 보여줘도 좋을 듯.
선우(E);아버지와 진노식 회장, 또 한 사람이 같이 있는 사진.
그 사진을 잊어선 안된다. 사진 속 그 사람은 누굴까. 아버지는 왜 진회장을 만나러 갔을까.
밖에서 현관 문 소리 난다.
선우(E);난 언제까지 침묵해야 할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장일(E);선우는.
금줄(E);방에. 우리도 좀 전에 왔어. 김선우가 데이트 하느라고 좀 늦었 다.
노크소리 나고 학교에서 돌아온 장일, 문을 연다. 선우, 점자 찍던 것 치우려다 다시 놓는다.
장일;...... 뭐해.
선우;응... 가나다라 연습.
장일;(옆에 앉아서 선우가 찍은 종이 보는)데이트를 했다구?
선우;데이트는 무슨....
장일;어떤 여자야?
선우;자원 봉사 해주는 분이랑 커피 한잔마시고 온 거야.
장일;어떤 사람인데?
선우;학생. 나랑 동갑이구. 참, 너랑 같은 학교다. 영문과래.
장일;사귀어 보지 그래?
선우;나 눈 높다. 못 생긴 여자 싫어.
장일;못 생겼어?
선우;아직 확인을 못해봤어. 눈이 안 보이니까 불편한 게 많네.
넌 눈멀지 않게 조심해라.
장일;그 여자는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선우;날 안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겠어.
장일;(웃는)그럼 여자친구로 만들어.
선우;좋은 사람 같은데 맹인 남자친구를 갖게 할 순 없잖아.
장일;맘에 들었다는 소리네. 선우;............
장일;..........
선우;방을 빨리 못 구해서 미안하다.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장일;나야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뭐. 편하게 있어.
선우;고맙다.
장일;고맙긴.
두 사람 웃고 있으면서도 불편한.
6. 진승원 창고 / 밤
용배, 수건으로 옷에 묻은 흙을 털며 들어온다. 책상에 놓인 우편물들. 고지서와 무가(無價)잡지 잡다한 것들. 그 중 하나를 보는 용배. 뭐지? 싶은 표정. 우표가 붙고 우체국 소인에 제대로 찍힌 봉투. 수신인 란에 부산 기장군 258- 1 ‘이장일 아버님’ 이라 적혀있다. 봉투 열어서 읽어보는 용배. 읽다 놀라 무릎이 풀썩 꺾이며 책상을 짚는다.
용배;............
펼쳐져 떨어진 편지. <이장일 아버님께. 난 그날 밤 당신을 보았습니다. 산 속에서. 당신이 살인을 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지금껏 비밀을 지켜드린 건 당신과 아들이 불쌍해서 그랬소. 난 돈이 필요합니다. 4월 5일 오전 7시. 성동항 폐 창고 앞
쓰레기통에 3천만 원을 넣어두시오>
7. 국밥집 / 밤
사람들 가득한 작은 식당. 국밥과 소주 놓고 앉아있는 용배. 심란하고 복잡한
표정. 사람들 떠들고 웃는 속에 우두커니 앉아서 외롭고 고독하다. 소줏잔을 비운다. 취기가 돈다. 테이블엔 김치와 부추무침, 무채 같은 반찬들.
용배;여기 한병 더 줘요.
베레모를 눌러 쓴 광춘, 들어온다. 손님 바글바글 자리 없나 둘러본다. 용배는
출입문과 등지고 앉아있는.
주인;용배씨, 미안한데 합석 좀 해도 될까?
용배;(무심하게 끄덕)
주인;이리 앉으세요. (새로 물잔 놓아준다)
광춘;나도 국밥이랑 소주.
광춘, 용배 테이블에 앉으며
광춘;실례하겠습니.... (다... 하며 앞 사람을 본다. 용배다. 깜짝 놀라는!
얼른 시선 돌리는데)
주인;자, 소주 먼저. (소주와 잔을 탕 놓아준다)
광춘;....나.... 난 그냥 다음에 오지 뭐. 합석해서 불편하시게.....
주인;(국밥 탕 놓아주며)벌써 나왔는데. (나머지 반찬들도 놓아준다)
광춘,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든다. 용배, 광춘은 아랑곳 않고 심란하게 소줏잔
비운다. 취해 있다. 광춘도 소주 비운다. 광춘, 접시에서 반찬을 먹는데
용배;.......그건 제 쪽 반찬인데.....
광춘;아이구, 죄송합니다. (접시 바꿔주며)무채 새 걸로 드십시오.
용배;(주인에게)여기 한 병 더 달라니까!
각자 소줏병 하나씩 놓고 술 마시는 두 사람. 광춘, 용배를 살핀다. 많이 취한 듯 눈이 풀려있다. 광춘, 용기와 호기심이 생긴다.
용배;..........(한숨을 푹).........
광춘;...........(본다. 눈이 마주친다)....
용배;(소줏잔 비운다)
광춘;초면에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용배;사는 게 그렇죠 뭐. (일어서며 주인에게)화장실 열쇠 어딨어.
광춘;..........(혼잣말로)괴로워하는 이유가 편지 때문이오?
빈대떡 놓여있는 테이블. 용배, 와서 앉는다.
광춘;(빈대떡 접시 밀며)제가 하나 시켰습니다. 같이 드시죠.
용배;아닙니다.
광춘;저 혼자 먹긴 많습니다.
용배;(소주 마신다)
광춘(E);(빤히 보는)일면식도 없는 선우 아버지를 해친 이유가 대체 뭐요.
용배;........뭘 그렇게 빤히 봐요.
광춘;(고개 숙이며)아.... 전 그냥 빈대떡을 드시나 안 드시나 봤습니다.
용배;(퉁명)별 싱거운 사람을 다 봤네.
광춘;싱거우심 양념장은 여기....
용배;이 동네 사슈? 낯이 익는데....
광춘;흔한 인상이라 그렇지요... 예.
용배;(한숨과 함께 소주)
광춘;무슨 일로 그렇게 괴로워 하십니까.
용배;(한 대 칠 듯)거참! 남의 사정이 왜 그렇게 궁금합니까.
광춘;(고개 돌리고 술 마시는)
용배, 한잔 더 비우고 일어서다 비틀하며 푹 꺾이는데
광춘;(부축해 일으키며)괜찮으십니까.
용배;비켜! (밀어낸다)
광춘;(용배는 힘이 장사. 바닥에 풀썩 나동그라지는)......
용배;다 귀찮아 비켜. (술 취한 발걸음. 카운터로 간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대충 놓고 문 쪽으로)
주인;(용배 움직임과 동시에. 다가와 광춘 일으키는)괜찮으세요? 저 분도
단골인데 약주가 오늘 과하셔서....
광춘;저 사람 오늘밤 살인이라도 하겠소. (기분 나쁜 듯 바지를 탁탁
터는데)
용배;(문 열고 나가려다 벌컥 해 돌아본다)뭐!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용배, 무섭게 다가와 광춘의 멱살을 잡는다.
용배;지금 뭐라고 했어.
광춘;이거 놔요. (숨이 막혀)컥컥..... 놓으라니까.
주인, 용배를 떼어 놓으려 애쓰는데 역부족이다.
용배;지금 나한테 뭐라고 지껄였나고. (죽일 듯이 무섭게 잡고 흔드는데)
당신 오늘 죽어볼래? 죽어볼래?
광춘;컥.... 컥...... 경찰 불러 경찰!
용배, 경찰이란 소리에 광춘을 확 밀쳐 버린다.
광춘;(주인에게)아 뭐해 당장 경찰 부르라니까.
용배, 얼른 나가버린다. 광춘, 목을 잡고 분이 올라오는 듯.... 용배, 식당에서 나와 허겁지겁 걸어간다.
8. 용배네 거실 / 밤
어두운 거실. 용배, 거칠게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다.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탁자에 놓는다.
용배;.........선우 니 놈 농간이냐.
9. 진승원 서재 / 아침
아침 햇살 들어오는 창가. 신문 여러 개와 김이 올라오는 커피 잔이 놓여있는
책상. 편지를 보고 있는 노식. 굳어진 얼굴. 그 앞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용배.
노식;.......(무서우리만큼 담담)이걸 왜 나한테 가져와요.
용배;............
노식;용배씨가 일 처리를 잘했으면 이런 편지를 왜 받습니까.
용배;섭섭합니다 회장님.
노식;...... 내 앞에서 지금 섭섭하다고 그럤습니까.
용배;.......(움찔)제 말씀은 이걸 제가 어떻게 혼자 처리하냐는...
노식;혼자 처리해야지 나더러 어쩌라구요.
용배;......... (무서움, 배신감)회장님.
노식;장일이가 서울에서 편하게 공부하잖습니까.
용배;................
노식;그날 누가 본 겁니까.
용배;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실수 없게 처리했습니다.
노식;혹시 용배씨가 누구한테 얘기한 거 아닙니까.
용배;아이구 아뇨.
노식;그 사람이랑 짜고 벌인 자작극 아니예요? 돈 필요해서.
용배;(펄쩍)그런 일은 없습니다. 회장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하는 말씀입 니까.
노식;.........
용배;그 아들 녀석이 농간을 부리는 게 아닐까요.
노식;그건 용배씨가 찔려서 하는 생각이지, 그 녀석이 용배씨를 의심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용배;..... 그건 그렇네요.
노식;그 친구는 어쩌다 사고를 당한 겁니까? 눈이 멀 정도면 큰 사고
아닙니까.
용배;.......그건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전 모릅니다.
노식;(거짓말 느끼는)돈은 구해줄 테니까 그날 약속장소에 나가봐요. 진짜 누가 나오긴 할 건지.
용배;저도 그 녀석 동태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10. 복지관 일각 / 아침
선우, 금줄 걸어온다.
선우;내일부턴 나 혼자 움직여 볼게. 언제까지 니 시간 뺏을 수도 없고.
금줄;괜찮아 임마.
선우;......나 머리 자를 때 되지 않았어?
금줄;아니. 아직 괜찮은데.
선우;옷에 뭐 얼룩 묻은 건 없어?
금줄;말끔해.
선우;.......응.....
금줄;....(의아한).....
선우, 금줄 걸어간다.
지원(E);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11. 녹음실 / 낮
책 읽는 지원. 마이크 앞에 놓고 열심히 읽고 있다. 신경숙 ‘깊은 슬픔’
지원;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기다리지, 떠날 땐 돌아오기를, 오늘 은 내일을, 넘어져서는 일어나기를. 나는 너를.
물 마시며 나오는 지원. 아픈 듯 목을 만진다.
실장;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지원;(잠기거나 쉰 목소리)아뇨 괜찮아요.
실장;뭐가 괜찮아 목이 잠겼는데.
12. 음반 도서실 / 낮
선우, CD 반납한다.
실장;김선우씨가 도서 대출 1위네요. 매달 1위한테는 상이 있어요.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선우 손에 쥐어준다)
선우;이게 뭡니까?
실장;연주회 티켓이예요. 두 장이니까 가고 싶은 사람이랑 가세요.
선우;감사합니다.
실장;(장부 보며)보자.... 신청하신 건 아직 완성이 안됐네요.
선우;언제쯤 될까요.
실장;지금 한지원씨가 열심히 작업 중인데 너무 무리해서
목이 확 갔어요.
선우;........
실장;김선우씨가 신청한 건 기를 쓰고 녹음하더라구요.
선우;...........
13. 거 리 / 낮
약국봉지를 든 지원, 걸어가다 멈춰 선다. 시선 닿는 곳엔 선우, 혼자 걸어간다.
지원, 선우에게 시선을 두고 걸어간다. 선우, 어떤 가게(카페)에 문 열고 서서 뭔가 묻고 다시 나온다. (선물 가게를 찾고 있는) 선우, 옆 가게로 들어가는.
지원;............
지원, 선물 가게 밖에 서서 유리창을 통해서 안을 본다. 선우, 뭔가 물어보는 모습. 지원, 가게로 들어간다.
14. 선물 가게 / 낮
보세 옷이나 악세사리 등을 파는 팬시 샵. 지원, 들어온다. 가게 안에 서 있는
전신거울에 지원이 비치고 선우는 거울 바로 앞에 서 있다.
선우;목에 두를 수 있는 예쁜 스카프 같은 거..... 찾는데요. 선물 할 거거 든요.
주인;받으시는 분 나이대가....
선우;저랑 동갑이요.
지원;..............
주인;이건 어떠세요. (지원에게)편하게 보고 계세요.
지원;(고개 끄덕)
선우;(만져보며)감촉은 좋은데 무슨 색깔이예요?
주인;은은한 회색이요.
선우;이거 말고 좀 밝고 화사한 색으로 주세요.
주인;받으시는 분 얼굴이 흰 편인가요?
선우;...........
지원;............
주인;이건 핑크톤의 화사한 색이예요.
선우;(만져보며)아주 예뻐야 하는데.....
주인;아주 예쁜 색이예요.
선우;(미소)그걸로 표장해 주세요.
주인, 선우에게 쇼핑백을 건네준다. 선우, 나가고 지원도 머리끈 하나 들고 천 원짜리 한 장 놓고 따라 나온다.
15. 거 리 / 낮
선우, 한손엔 쇼핑백. 한 손엔 지팡이 걸어간다. 횡단보도. 선우 혼자 서 있다.
파란 불로 바뀌는 데 소리가 나질 않는 신호기. 선우, 건너가지 않는다. 건너편의 사람들 걸어와 선우 옆을 스쳐간다. 선우, 당황해 두리번거린다. 차들 지나가고. 지원, 선우 근처에 와서 선다. 시각장애인용 버튼을 눌러준다. 다시 녹색불로 바뀐다. 신호음이 난다. 선우, 횡단보도로 나선다. 지원, 선우에 발맞춰 천천히 걸어간다.
16. 복지관 일각 / 낮
선우, 걸어간다. 지원, 좀 떨어져서 뒤따라 걷고 있다. 음반 도서실로 들어가는
선우. 지원도 어디쯤에서 멈춰 선다. 선우, 빈 손으로 나온다. 떨어져 서 있는
지원을 스쳐 지나간다.
17. 점자 교실 / 낮
빈 교실. 선우, 앉아 점자를 천천히 짚어간다. 스카프를 한 지원 들어온다.
지원;선우씨.
선우;(고개 돌리며 미소)
지원;나 이뻐요? 선우씨가 준 스카프 했는데.
선우;잘 어울려요.
지원;내가 얼굴이 좀 흰 편인데 이 색깔 너무 잘 어울려요.
선우;목 많이 아파요?
지원;약 먹었더니 괜찮아요. 선우씨, 연주회 같이 가요.
선우;아뇨, 그거 지원씨 친구랑 같이 가라고 드린 거예요.
지원;난 선우씨랑 가고 싶은데. 그날 내가 집 근처로 갈까요?
선우;아뇨. 그럼 공연장에서 만나요.
지원;공연 시작이 3시니까 2시쯤 만나서 커피 한잔 하고 들어가요.
선우;(웃는)좋아요.
18. 대학 스터디 룸 / 낮
장일과 명식을 포함, 학생들 6명 정도 앉아서 스터디 중이다. 오래 앉아 있었는 듯
옆에는 김밥, 우유, 빵 등이 놓여있다. 장일, 몸이 안 좋은 듯 얼굴이 창백하다.
이마에 식은 땀. 딴 생각에 빠져있다.
명식;판례 요약본만 외우는 건 웃겨. 어렵더라도 판례 전문(全文)을 읽어 야 소수의견도 알고 나름의 논리를 배울 수 있지.
학생1;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읽어. 그냥 이번 달까지 헌법 2회독(헌법
책을 두 번 떼는 것)이나 끝내자.
명식;우리한텐 독한 놈 이장일이 있잖냐. 전문 읽고 정리해 온대.
플래쉬 백 4부-- 거리. 어린 장일을 부축하는 지원.
지원;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술 마신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요. 얼른 집에 가서 푹 자고 일어나요. 낼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 비우면 기운 펄펄 날거예요.
장일;(눈물이 날 것 같은)
대학 스터디 룸.
장일;..........(멍하니)
명식;이장일.
장일;(퍼뜩 깨는)어? 어디까지 했지?
명식;너 오늘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식은 땀까지 흘리네.
장일;(땀 닦는다)
19. 장일네 거실 / 낮
용배,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용배;장일아..... 선우야........ 선우 없냐.
용배, 이 방 저 방 문 열고 뒤지기 시작.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단촐한 선우의
세간. 옷 걸려있고 앉은뱅이 작은 책상에 휴대용 CD플레이어와 점자를 찍은 종이가 여러 장 놓여있다.
거실. 장일 들어온다. 거실에 놓인 커다란 가방을 보고
장일;..... 아버지 오셨어요?
장일, 작은 방으로 들어가 본다. 용배, 점자 찍힌 종이를 막 들춰본다. 한 장이 쑥 빠져 떨어지기도 하고.
장일;(들어와 뺏는) 왜 남의 물건을 만지고 그러세요.
용배;내 말이 틀렸니. 이 녀석 계속 눌러 붙어 있잖아.
장일;방 알아보고 있대요.
용배;(두리번 두리번 하다 선우의 짐 가방을 뒤진다)
장일;뭐하시는 거예요!
용배, 선우의 옛날 수첩을 꺼낸다. 펼쳐본다.
용배;이 녀석 눈 감고도 글씨는 쓰지?
장일;왜 그러시는데요.
용배;요즘 무슨 짓을 하면서 이 집에 붙어있는지 내가 좀 알아야겠다.
장일;나오세요. 빨리.
거실로 용배를 끌고 나오는 장일.
장일;왜 이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용배;...........
장일;무슨 일 있죠?
용배;아니다. 넌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
장일;몸이 안 좋아서 일찍 왔어요.
용배;몸이 왜 안 좋은데?
장일;별 거 아녜요.
20. 반 지하 방 / 낮
작은 창문이 있는 방. 얼룩지고 장판도 들떠 있다. 곰팡이 얼룩져 있는 벽.
금줄;아후.... 방바닥은 다시 깔아달라고 해야겠어.
사람 살 데가 아니야, 지금은.
선우;여기로 하자니까.
금줄;니가 여길 못 봐서 다행이다.
선우;(미소)못 보는 게 좋을 때도 있네.
금줄;........선우야.... 이제 아버지가 들어준 적금이랑 보험, 옛날 집 전세금
거의 다 까먹었다.
선우;........돈 벌면 돼.
금줄;니가 어떻게?
선우;안마랑 지압 배우잖아.
금줄;난 니가 그거 안 했음 좋겠는데.
선우;그럼 당장 내가 뭘 해서 돈을 벌어. 영원히 안마만 할 건 아니니까 걱정 마.
21. 장일네 거실 / 밤
선우와 금줄, 들어온다. 용배, 거실에 앉아있다 일어선다.
금줄;어? 안녕하세요.
선우;........?
금줄;(선우에게)장일이 아버지 오셨어.
선우;안녕하셨어요.
용배;그래, 저녁은 먹었냐.
금줄;네. 먹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용배;장일이는 몸살이 났는지 일찍 잔다.
금줄;공부를 너무 심하게 해서 그래요.
용배;선우는 나랑 얘기 좀 하자.
찻잔 놓고 선우와 용배 앉아있다. 용배, 선우를 빤히 본다.
용배;재활 교육은 받을만 하고? 이젠 너 혼자 생활할 만큼은 된거냐.
선우;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용배;선우야, 이런 말 야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널 위해서도 이제
독립을 해야지. 언제까지 여기서 얹혀 지낼거야.
선우;죄송합니다.
용배;장일이 공부하기도 힘든데 니가 여기서 지내면 챙겨줄 수도 없고
신경쓰이고 미안할 거 아니냐.
선우;그럼요, 이해합니다.
용배;지금 돈이 모자란 거냐, 제대로 안 알아본 거냐.
금줄, 부엌에서 나오며
금줄;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선우 여기서 지낸지 보름도 안됩니다. 선우가 장일이한테 해준 걸 생각하면 여기서 삼년을 지내도 모자라요.
용배;뭐?
선우;금줄, 넌 빠져.
금줄;장일이를 위해서 선우가 억울하게 덮어쓴 게 한두 갠 줄 아세요?
용배;억울한 게 뭔데? 선우 너, 이 녀석한테 무슨 얘길 한거냐.
금줄;선우가 무슨 소릴 해요. 옛날 기억도 확 지워진 애가.
용배;억울하게 뭘 덮어썼는데? 누구한테 그 딴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금줄;선우 아니었음 장일이가 지금 대학생활이나 제대로 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선우;그만해.
금줄;깡패들이 서울로 해꼬지 하러 간다는 걸.....
선우;그만하라니까!
창백한 얼굴의 장일, 방에서 나온다.
장일;무슨 일이야, 왜 이래.
용배;아니다.
장일;무슨 일이냐구.
금줄;선우한테 나가라고 독촉하시잖아.
장일;(용배에게)그러셨어요?
선우;아냐, 금줄이 오바하는 거야. 금줄, 너 나 좀 보자. (일어선다)
금줄;(못마땅한 듯)쯧....... (선우 부축해 방으로)
장일;(피곤한 듯)아버지...... 들어 가 주무세요. 제발.....
22. 장일네 또 다른 방 / 밤
수미가 썼던 방. 용배, 누워서 심란한 듯 뒤척뒤척..... 하다가 구석 어딘가로
시선. 손을 뻗어본다. 여성용 샘플 화장품 병이 나온다.
용배;.........
용배, 일어서 여기저기 뒤지는데 옷걸이에 걸려있는 장일의 옷들 사이에서 여성용 블라우스와 하늘거리고 레이스가 달린 야한 원피스를 하나 발견한다.
23. 장일 방 / 밤
문 벌컥 열고 들어와 누워있는 장일한테 옷을 던지는 용배.
용배;이런 미친 녀석.
장일;.......(일어나 앉는)
용배;여자 때문에 병 난거냐. 그년이 여기서 먹고 자고 했어?
장일;아버지 제발 좀.....
용배;내가 너 꼬드기지 말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 그게 작정을 했나보다.
장일;...........!
용배;내가 알아듣게 말을 했는데도. 발칙한 년 같으니라고.
장일;지원씰 만나셨어요?
용배;너 혹시 책임질 짓이라도 한거냐.
장일;(버럭)지원씨를 만나셨나구요! 아버지가 지원씨 만나셨어요!
장일, 울고 싶다. 아버지를 한 대 치고 싶다.
24. 장일네 작은 방 / 밤
장일과 용배의 다투는 소리 희미하게 들려온다. ‘아버지 도대체 왜 이러세요.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세요’ ‘너야말로 왜 이러냐. 니가 지금 여자랑 분탕질이나 칠 때야’ ‘아니예요 아니라니까요.’ 선우, 점자틀 앞에 놓고 열심히 점자를 찍고 있다.
선우(E);날 경계하고 불편해 한다. 아들 공부에 방해될까봐 우려하는 것 이상의 경계심. 장일아 너희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의심이 진실인거 냐.
25. 계단 강의실 / 낮
강의중인 계단강의실. 인상 좋은 증년남자교수 강의 중. 칠판엔 Kitsch 라 쓰여있다. 지원, 콤팩트 거울 보며 거울보고 있다. 손목시계도 보고. 약속에 대한 설렘.
교수;키취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달라요. 오늘 한 시간 얘기해서 끝날 얘기가 아니란거지. 키치가 예술이고 예술이 키치다.....
고급예술처럼 보이는 싸구려가 키치다....
장일,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지원 옆으로 걸어간다. 빈자리에 앉는다.
지원;..........
강사;방금 들어온 학생은 뭐지.
장일;교수님! 오늘 하루 청강하게 해주십시오. 좋아하는 사람이 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학생들;(오........ 와.........)
교수;저 학생을 위해서 오늘 수업 여기까지.
학생들 주섬주섬 나가고 지원도 가방 챙긴다.
장일;미안해요. 아버지가 지원씨 만난 거 모르고 있었어요. 사과할게요.
지원;괜찮아요.
장일;사과 받아준다는 뜻으로 오늘 나랑 같이 영화보고 저녁 먹어요.
지원;약속이 있어요. 가볼게요.
장일;(잡는다)....... 지원씨.....
지원;.........아버지 일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장일;화 풀었음 좋겠어요.
지원;화나지 않았어요. 아버지도 이해되고.... 장일씨도 힘들겠다 싶어요.
장일;내가 불쌍하다 그 소린가요?
지원;......
장일;맞아요. 공부 하나 잘하는 거 빼곤 난 변변한 게 없어요. 아들이
최고인 줄 아는 홀아버지에 돈도 빽도 없는 집안. 내가 검사가 되면
개천에서 난 용일 거예요.
지원;그런 얘기 안 해도 돼요.
장일;개천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공부했고, 용이 되고 싶어서 또 공부해요.
용이 되면 지원씨한테 든든한 남자로 서고 싶어요.
지원;그런 얘기 부담스러워요. 난 그냥 장일씨랑 친구면 좋겠어요.
장일;처음엔 나한테 왜 친절했습니까.
지원;.........
장일;술 취해서 뻗은 날 왜 일으켜 줬어요. 그것도 동정심이었나.
지금 그 맹인한테 하듯이?
지원;동정심 아니예요.
장일;............
지원;장일씨를 도와준 것도 동정심 아니었고, 지금 그 사람한테도 동정심
아니예요.
장일;그럼 사랑이라도 됩니까.
지원;........
지원, 가방을 들고 나간다. 장일, 책상에 걸터앉는다. 눈물이 그렁 맺힌다. 장일, 가만히 앉아있다.
26. 공연장 로비 + 앞 / 낮
공연장 로비. 선우, 구석에 서 있다. 사람들 공연장으로 종종걸음 치며 들어간다. 뛰어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선우;............(손목시계 눌러본다)
(E);오후 2시 40분입니다.
선우;...........
지원(E);공연이 3시에 시작이니까 우린 2시쯤 만나서 커피 한잔 하고
들어가요.
사람들 들어오며 통화하는 소리 얘기하는 소리. 선우, 신경이 곤두선다. ‘미안 미안 나 지금 도착했어. 이 앞 도로 다 엉켜있어’ ‘사고가 엄청 크게 났어’
안내방송(E);중앙순환도로에서 발생한 7중 교통사고로 심한 정체가 발생 했습니다. 공연을 15분 후에 시작하겠사오니 관객여러분께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중앙순환 도로에서 발생한..........
선우, 로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불안하다. 멀리서 앰블런스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 뛰어 들어가고. 선우를 툭 치고 들어가기도 하고.
선우;지금 이 앞에서 사고가 났나요?.... 사람들 많이 다쳤어요?
27. 거리 / 낮
버스 안. 지원, 손잡이 잡고 서서 창 밖 계속 내다보며 발 동동. 기사 옆으로 가서
지원;아저씨, 좀 내려주실래요?
지원, 내려서 뛰기 시작한다. 차를 막혀 있는 거리. 지원, 계속 달려간다.
28. 공연장 앞 / 낮
사람들,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바쁘고. 멀리서 여러 대의 경찰차 소리 호루라기
소리. 앰블런스 소리 들린다. 선우, 불안하다. 당황해 있는. 선우, 지팡이를 더듬어 계단을 내려간다. 선우, 내려간 후 다른 쪽에서 숨이 차게 뛰어오는 지원. 둘러본다. 공연장 로비로 들어간다. 지원, 로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안내데스크로 가 숨찬 호흡 가다듬으며 물어보는 지원. ‘혹시 여기 티켓 맡겨놓은 거 없나요.... 시각장애인 남자 분 계신 거 못 보셨어요.....’ 지원, 밖으로 나온다. 둘러보다 뛰어간다. 지원이 사라진 후, 선우 걸어온다. 공연장 문 앞에 서 있다. 불안하고 안절부절 힘들다.
선우;...........
지원, 서 있는 선우를 보고 달려온다.
지원;선우씨!
선우; !
지원;미안해요. 차가...(너무 막혀서........)
선우;(와락 껴안는)
지원;............
선우;괜찮은 거죠? 안 다친 거죠?
지원;........괜찮아요.
선우;다쳤는데 거짓말 하는 거 아니예요?
지원;말짱해요.
선우;(안도의 한숨.........)후.....
지원;(선우의 안도감에 따뜻한)..... 연주회 놓쳐서 어떡하죠.
선우;다른 거 다 놓쳐도 괜찮아요 이제.
지원;...........
선우;.........(미소)
지원;그럼 시시한 연주회라도 볼래요? (선우 팔을 끌어 공연장 로비로)
지원, 선우의 팔을 끌고 로비로 들어온다.
선우;어디 가는 거예요?
지원;걱정 말구 따라와요. 어릴 때 여기서 콩쿨 해봐서 잘 알아요.
29. 공연장 내 연습실 / 낮
창이 있는 작은 방. 피아노 한 대 놓여있다. 지원, 선우 팔을 잡고 들어온다.
지원, 피아노 근처의 의자에 선우를 앉힌다.
지원;자... 선우씨는 여기 앉아요.
지원, 피아노 앞에 앉는다. 띵....띵.... 건반 몇 개 눌러본다.
선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연주하는 지원. 선우, 미소로 듣는다. 지원, 피아노 치다가 선우를 보며 미소. 선우, 피아노 가까이 다가가 선다.
선우;(연주에 맞춰 노래하는)가끔 두려워져....
지원;.........
선우;(노래 계속)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널 확인해.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30. 호수 공원 / 낮
선우, 자전거 타고 있다. 2인용 자전거, 앞자리엔 지원이 타고 있다. 선우, 신나게 페달을 밟는다. 햇살 따스한 공원, 두 사람의 자전거 씽씽 달리고 있다.
지원(E);선우씨 오늘 우리 어디까지 가볼까요?
선우(E);끝까지 달려 봐요.
지원(E);세상 끝까지?
선우(E);세상 끝까지.
31. 운동장 / 낮
텅 빈 운동장. 달리고 있는 선우. 전력질주. 신나게 달린다. 100미터 앞에 지원이 서 있다.
지원;맘 놓고 달려요 선우씨. 더 빨리 더 빨리!
선우, 눈 감고 달리는데 방향이 직선으로 안 나가고 기울어진다.
지원;어.... 어.... 그 쪽 아닌데....
지원, 선우가 달리는 쪽으로 뛰어간다. 두 사람 간격을 두고 달려간다. 둘 다 신난 얼굴. 선우, 지원과 부딪혀 넘어진다. 지원한테 선우가 깔려있는. 두 사람 미묘하고 달콤한 긴장. 키스를 할 듯 말 듯.... 선우, 지원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지원;............
선우;내가 상상한 것보다 예뻐요.
두 사람 가까이 있는 채로 멈춰있다....... 두 사람 얼굴과 얼굴 사이에 난 틈으로
빛이 들어와 퍼진다. 두 사람 묘한 긴장으로 멈춰있는데 선우가 먼저 몸을 돌려 일어나 앉는다.
지원;............
32. 진승그룹 회장실 / 낮
태국 리조트 조감도나 이미지 사진 크게 걸려있다. 진노식, 계약서에 싸인 한다.
태국과 합작 투자 리조트 건설 서류. 외국인 회장도 계약서에 싸인 한다. 악수하는 두 사람.
노식;(자신감, 만족스러운 미소)
진승그룹과 외국 임원진들 앞에 두고 소감 발표하는 노식.
노식;제 오랜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에 전 늘 꿈을
꿨어요. 따뜻한 곳에 근사한 쉴 곳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자.... 살다가 지칠 때 떠오르는 포근한 곳을 만들자....
차 실장, 뒤에 서서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얼른 핸드폰 받으며 나간다.
차실장;여보세요.
용배(F);차실장님 접니다. 회장님은 언제 내려오십니까.
차실장;이번 주까진 서울에 계실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용배(F);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차실장;저한테 말하세요.
용배(F);그게 좀........
마희정, 종종 걸음으로 달려온다. 불안정하고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 차실장, 전화를 끊는다.
차실장;(의아)사모님.....
희정;회장님은?
차실장;지금 말씀 중이시죠. 그런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희정;(차실장의 팔을 잡으며)차 실장.......나 지금 졸도하기 직전이야.
33. 도로 / 낮
달리는 차 안. 마희정, 손수건을 손에 꼭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희정;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노식;부르르 할 거 없어. 윤주 인생은 윤주 꺼야.
희정;피 안 섞인 자식이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요!
노식;피 한방울 안 섞였어도 윤주 내 자식이야. 당신이야 말로 함부로
내뱉지 마.
34. 작은 교회 / 낮
텅 빈 교회. 웨딩드레스 차림의 윤주, 앉아있다. 넋나간 표정. 윤주의 등 뒤로 마희정 달려온다. 진노식, 희정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희정;나쁜년!
윤주,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희정을 본다.
희정;.........?
윤주;좋은 남자야 엄마. 부모님 마음 아프게 하지 말라고 오늘 안 왔어.
영원히 날 안보겠대.
희정;너.... 차인거야. 그 놈 한테 까였어?
윤주;엄마가 원한 결과잖아.
희정;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어. 헤어질 꺼면 미리 포기할 것이지.
윤주;포기가 말처럼 쉬워? 나도 못하는 걸 왜 그 사람이 못했다고 화를 내.
희정;그 자식 집이 어디야. 말해. 내가 가서 대가리부터 아작아작 짓밟아
놓을 테니까. 숨통을 똑 끊어 버릴거야.
노식;그만 해.
희정;뱀 같은 자식. 나한테 복수할려고 이랬어. 니가 반대해서 니 딸
엿 먹는 거 봐라.
노식;그만 하라니까.
희정;엿 먹으니까 맛있냐.
윤주;(버럭)어쨌든 엄마 뜻대로 됐잖아요!
희정;뭐가 잘났다고 내 앞에서 큰 소리야. 드레스도 이런 싸구려를 입고 어디서 니가 큰소리야! (면사포 쓴 윤주 등짝을 한 대 갈기는데
눈물이 푹 솟는다) 내가 너 이딴 드레스 입고 시집가는 꼴을 봐야겠 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노식;당신 이리 와. 진정해.
희정;여보...... (노식한테 안겨 우는)
노식;(다독이며)괜찮다. 이제 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당신 인생도 당신
맘대로 안됐는데 자식 인생을 욕심내면 쓰나.
희정;오늘 결혼식은 해프닝이다. 없던 일이야. 친구들한테 밥 사면서 입막음 해. 이거 소문나지 않게. 알았어?
윤주;(눈물이 나면서도 어이없는 듯 픽)
희정;(버럭)울다 웃지 마 이 기집애야! 뭐 잘났다고 웃어, 차인 주제에!
윤주;(엄마한테 부케 던지며)차였다는 소리 좀 그만해.
희정;차인 주제에. 죽도록 사랑했던 미친놈한테 까인 주제에!
윤주,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희정은 윤주를 껴안는다. 노식도 두 사람 안으며 도닥도닥..... 세 사람, 정이 느껴진다.
35. 미술실 / 밤
수미, 열심히 그림 그리는 중. 수채화. 앞에 놓인 비단천과 꽃들로 정물화 그리는 중. 여학생 하나 다가와 팔짱끼고 삐딱하게 서서 그림을 보고 있다.
여학생1;우리 학교에선 니가 대표로 나간다며. 전국 대학 미전.
수미;네.
여학생1;교수들한테 뭘 준거야.
수미;(픽 웃으며 그림만 열중)이름 학번 다 떼고 그림으로만 심사했는데 요.
여학생1;그림에 니네 아버지 부적이라도 붙였나보다? 재수없어.(가는데)
수미, 돌아본다. 갖고 놀 듯 부드럽게 물어본다.
수미;너 이름이 뭐니.
여학생1;........(인상 팍 쓰는)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수미;시기하고 질투할 시간에, 그림이나 열심히 그리란 말 안할게.
넌 백 년 동안 그려도 나처럼 될 수 없으니까.
여학생1;얘 좀 봐.....
수미;재능은 없고 샘은 많고 난 너 같은 애들이 제일 불쌍해. 넌 그냥
나 같은 천재를 질투하고 부러워하면서 살아. (웃는)
여학생1;(물감 푼 물통을 들어 수미 얼굴에 끼얹는다)
36. 수미네 집 앞 / 밤
‘최광춘 신점’ 간판을 보고 서 있는 수미. 먼지와 때가 끼어있는 간판. 사진에도 얼룩져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머리 끝이 채 마르지 않고 옷이 얼룩진 수미, 처연하게 보고 서 있는데 광춘 걸어온다.
광춘;뭐하냐.
수미;저거 떼자. 요샌 손님도 없잖아.
광춘;아픈 데를 찌르면 좋아?
수미;뭐가 아픈데. 저거 때문에 평생 돌 맞고 산 내 생각은 안 해?
광춘;나한테서 태어난 건 니 팔자야. 누굴 원망해.
수미;술이나 한잔 하자. (집으로 들어간다)
37. 수미 방 / 밤
작은 소반에 맥주와 오징어 땅콩 놓여있다. 맥주 마시는 두 사람.
수미;학교 대표루 전국 대학 미전에 나가게 됐어. 3등 안에
들면 유학갈 수 있어. 난 1등 할거야.
광춘;.......(지그시 보며)활활 타오르는 불기운이 들었어. 될거다.
수미;나 유학가면 이거 접고 서울로 가요. 가서 최광춘이란 이름도 바꿔.
광춘;과거를 세탁하고 싶다 이거냐.
수미;나, 유학 가서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이거 다 팔고
서울 가.
광춘;서울 가서 내가 뭘 먹고 살아.
수미;옛날에 드나들던 극단 있잖아. 거기 가서 판소리, 장구 가르쳐.
광춘;하이구야.... 서울에 잘난 사람 쌔고 쌨는데.
수미;유일한 장점이 뻔뻔한 거 아니예요? 가서 비비고 붙어있어.
광춘;이거 다 팔아봤자 서울에 전세 하나 변변한 거 못 구해.
수미;그럼 여기서 계속 엉터리 점쟁이 짓 하겠다구.
광춘;그게 속 편하지.
수미;(버럭)당신 내 아버지 맞아? 나는 당신 딸 맞아요? (눈물이 왈칵)
날 위해서 그거 하나 못해줘? 내가 받은 거라곤 그림 그리는 재주 하나 밖에 없는거야? 엄마는 도망가고 아버지란 사람은 이렇고?
난 정말 가진 게 그렇게 없는 애야.....
광춘;..........
수미;내 사주는 어떤데. 아무한테도 사랑 못 받고 그림만 그리다 죽어요?
광춘;(일어서 나가는)유학이나 가고 말해.
수미;반드시 간다니까!
광춘;울지 마. 복 나간다. 니 말대로 할게. 다 팔고 서울 갈게.
광춘, 문 꽝 닫고 나간다. 수미, 눈물 계속 흐른다. 벽 한 켠 숨어있듯 붙어있는
장일의 그림.
38. 장일네 거실 / 밤
전화벨이 울린다. 장일, 부엌에서 물잔 들고 나오다 유선 전화 받는다.
장일;여보세요.
지원(F);거기 김선우씨 계신가요.
장일;......(지원이라 느끼는).... 어디십니까.
지원(F);복지관에 있는 한지원이라고 하는데요. 선우씨 계시면 좀 바꿔주 시겠어요.
장일;............
장일, CD뒤적거리는 척 하며 서 있다. 선우, 통화중이다. 미소 머금고.
선우;지압 실습 갔다가요, 집에 와서 쉬었어요. 지원씨는요? (웃는)
안 피곤해요?
장일;..........
선우;아뇨, 짐도 몇 개 안되고 친구랑 옮길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요.
전화도 빨리 놓을게요. 그래요... 잘자요... 먼저 끊어요... 먼저 끊으 라니까. 알았어요. (미소)잘자요. (끊는다)
장일;연애하네 김선우.
선우;너 옆에 있었구나...
장일;아버지가 한 말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어.
선우;적당한 거 나와서 내일 옮길거야.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 장일아.
장일;신세는.....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옮기는 거 도와줄게.
선우;짐 가방 몇 개나 된다고.... 복지관 가는 길에 옮기면 돼. 바로
근처라 나도 다니기 편해졌어.
장일;요즘도 그 분 매일 복지관에서 봐?
선우;매일까진 아니고.
장일;나 솔직히 니가 상처받을까 걱정돼 선우야.
선우;.........
장일;그 사람, 너한테 순간적인 감상으로 그러는 건 아닌지...
선우;상처 받겠지. 이미 좋아하고 있으니까.
장일;...........
선우;어짜피 받을 상처라면 미리 땡겨 받을 필요는 없잖아.
어짜피 나중에 아플건데 지금은 이대로 있고 싶어.
장일;.....그래.... 좋을 대로 해라.
39. 진승원 서재 / 밤
책상에 수북히 쌓인 만 원짜리 다발(3천만 원)을 꺼내 상자에 담고 있는 용배.
브랜디 잔 놓고 앉아있는 노식. 용배, 그 옆에서 서 있다.
노식;어떤 놈인지 반드시 얼굴을 확인하고 와요.
용배;알겠습니다.
40. 폐창고 주변 / 아침
가방 들고 걸어오는 용배. 모자를 푹 눌러썼다. 커다란 쓰레기통 안에 가방을 놓고 간다. 멀리서 숨어서 보고 있는 광춘. 용배가 돈 가방 놓고 떠나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광춘, 어시장 상인들이 입는 긴 비닐 앞치마에 작은 끌대를 끌고 간다. 일부러 멀리 돌아 주변을 살피는데 용배 어느 한 곳에 숨어서 신문 읽는 척하며 가방 놓은 곳을 주시한다.
광춘;............(멈칫.... 다른 데로 돌아간다)
시간경과. 해가 기운다. 용배,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광춘도 멀리서 빵 먹으며 용배를 지켜보고 있다. 용배, 주변 살피며 쓰레기통 안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간다. 광춘, 멀리서 따라간다. 용배,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한다.
용배;안 나왔습니다. 예.....지금껏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상하게 얼씬거리는 사람도 하나 없구요.
광춘;.........(숨어서 듣는.... 잘 안 들리는 듯 귀를 세우고)
용배;돈 가방은 제가 그대로 갖고 왔습니다. 회장님 차 트렁크에 넣어
놓겠습니다...... 예, 회장님.
광춘;........(혼잣말)회장님....?
41. 진승원 / 낮 (늦은 오후)
진노식의 차 서 있다. 용배, 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걸어온다. 운전석 문을 열고
트렁크 스위치를 누른다. 용배, 차 트렁크에 돈 가방을 넣는다. 광춘, 문 밖에서 숨어서 보고 있다. 용배, 한 켠에 놓여있던 마른 걸레를 집어 들어 차를 닦는다.
잠시 후, 차 실장과 진노식 나온다. 용배, 고개 숙여 인사한다.
용배;.........
노식;(용배를 슬쩍 보고 시선 거두는)
차 실장 노식에게 문 열어주고 노식, 차 탄다. 차 움직여 나간다. 광춘, 몸을 숨겨
차가 멀어지는 걸 본다.
광춘;..............
42. 반 지하 방 / 오후
옷과 이불 작은 서랍장과 소반, 점자책 몇 권이 전부인 단촐한 방. 선우, 벽을 더듬으며 방향을 익히고 있다.
금줄;며칠 혼자 지낼 수 있겠어?
선우;그럼. 얼른 가 봐. 고생했다.
금줄;밥은 싱크대 옆 쟁반에 차려놨다. 속옷은 서랍에 다 있고.
선우;내가 애냐. 걱정 말고 가.
금줄;(두고 가기 짠한)..... 금방 올게 임마. (나간다)
금줄 나가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리고. 선우, 벽에 기대앉는다. 오후의 넘어가는
밝은 햇살 창문을 통해 내려온다.
선우;......갔냐?
고요하다.
선우;.......아무도 없어?
선우, 고개를 숙인다. 눈물이 나는 듯 가만히... 선우를 비추는 오후의 밝고 따스한
햇살.
지원(E);선우씨.
선우, 고개 들면 가방을 매고 수퍼 봉지를 든 지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고무장갑과 세제와 두루마리 화장지를 꺼내놓는다. 선우가 끼어들 새 없이 조잘조잘 밝게 말한다.
지원;(밝게)부자 되고 잘 풀리라고 가루비누랑 두루마리 화장지 사왔어요.
만약 이 집에서 복권 당첨 되면 나랑 반띵!
선우;헤밍씨..
지원;수퍼 앞에서 친구 분 만났어요. 그 분은 왜 맨날 목걸이를 그렇게
걸고 다녀요? 그래서 별명이 금줄이예요? (가방에서 점자 참고서
세권 꺼내 주며)자! 일단 국어 영어 국사 참고서만 가져왔어요.
매일매일 읽고 공부하세요. 제가 자주 검사하고 스티커 붙여드릴게 요.
선우;숨 좀 돌리고 말해요. 여긴 왜 온 거 예요.
지원;왜 왔겠어요.
형광등이 켜진 방. 지원, 가방에서 책 여러 권 꺼내며
지원;오늘은 어떤 거 읽어줄까요.
선우;그거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지금 있어요?
지원;(책 꺼내며)있죠.
형광등이 탁 나간다.
지원;어?
선우;왜요?
지원;불이 나갔어요.
선우;아.......
지원;기다려요. 내가 형광등 사다가 갈아줄게요. (일어서는데)
선우;(잡는)앉아요. 내일 내가 갈게요. 여자한테 형광등 갈게 하면 내
체면이 뭐야.
지원;.......그럼 이제 뭘하죠?
선우;난 어둠 속에서도 책 읽는 남자잖아요.
선우, 점자를 더듬어 책을 읽는다. 선우의 손끝에 오톨도톨 닿는 점자들. (詩: 한용운 ‘해당화’)
선우;당신은 해당화가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 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플래쉬 백 -- (선우 지원 멜로 씬 들)6부 야유회 지원을 안고 가는 선우.
7부 피아노 방 노래하는 선우. 7부 공원 자전거 타는 두 사람.
선우(E);너에게 이 시를 보낸다. 니 옆에 있는 게 행복하고, 니 옆에 있는
게 두려운 나는, 널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깊은 터널에 갇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너와 함께 터널의 끝 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둘만 아는 길, 우리 둘만
아는 시간.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말해줘. 난 길을 떠날거 야. 넌 여기 남아도 난 너를 새겨서 가는 길이 외롭진 않을 것이 다.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지원, 선우를 보고 있다.
선우;오늘은 여기까지.
지원;찡한데요. 이 책 제목이 뭐예요?
선우;나온 지 오래된 책인데... (겉표지 만지며)제목은 점자가 눌려서
짚이질 않네요.
지원;다음에도 마저 읽어주세요. 나 이 책 너무 맘에 든다.
지원, 가방에서 스티커를 꺼내 점자 책 표지에 잔뜩 붙여준다. 창문으로 보이는 두
남자의 발. 지원은 스티커 붙이느라 정신없어 인식하지 못한다.
43. 동네 / 밤
가로등 아래 서 있는 태주와 쿤. (쿤은 15년 이후부터 한국어를 쓰는 게 좋을 듯)
태주;내 아들이 이런 데서 살고 있다는 거..... 어떻게 생각해?
쿤;.......(어깨를 으쓱)
태주;영어랑 불어는 자네가 가르쳐. 검도랑 펜싱도. 아니 가르칠 수 있는
건 뭐든 다 가르쳐 여자 꼬시는 방법까지.
쿤;(웃는)I'll try. You gonna see him tonight?
태주;오늘은 돌아가지. 손님도 계신데.
44. 광춘네 거실 / 밤
광춘, 편지지 앞에 앉아있다.
광춘; 뭔가 있어.....
‘진노식 회장님께’ 라 쓰는 광춘.
광춘(E);당신이 죽이라고 시킨 겁니까?
45. 안마 수련원 실습실 / 낮
(안마수련원은 별도의 기관임. 그러나 복지관 내에 있다고 설정해도 무방할 듯)
옆으로 누워있는 시각장애인 선생의 목을 지압하는 선우.
선생;힘을 좀 더 빼고. 손목 그렇게 쓰면 관절 다 버려요.
실습실 한 켠. 선우, 힘든 듯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선우 손에 물병을 쥐어주는
지원. 선우, 물병에 닿은 지원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지원;...............
선우, 지원을 앉혀놓고 뒤에서 지압해 준다. 뒷목을 누르는 선우의 손가락.
선우;제대로 하려면 2년은 배워야 한대요. 아직 서툴러요.
지원;.........
선우;다음 주부터 실습 나가요. 형편 어려운 어르신들이 공짜로 안마 받으 러들 오신대요.
지원;(안마하는 선우의 손을 잡아 멈춘다)
선우;.........
지원;난 선우씨가 안마 안했으면 좋겠는데.
선우;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좋든 싫든 지금 내가 해야 할 경험.
지원;어쩌가 사고가 난 거예요. 왜 앞을 못 보게 됐어요.
선우;........뒷통수를 맞았어요.
지원;뭘루요? 야구공? 축구공? 아님 누구한테?
선우;나중에 얘기할 날이 있을 거예요.
선우, 지원을 두고 가버린다.
46. 화실 / 낮
수미, 런닝셔츠 하나만 걸치고 미친 듯 그림에 몰두해 있다. 몸 여기저기 물감이
묻었다. 금줄, 맥주 캔 들고 들어온다.
금줄;야.... 근사한데!
수미;내가, 그림이?
금줄;둘 다.
수미;목 말라. 빨리 내놔.
맥주 마시며 앉아있는 두 사람.
수미;선우는 잘 있지?
금줄;그럼. 옮긴 집이 반 지하라 좀 안됐어. 내가 이장일이라면 나가지
못하게 잡았을텐데.
수미;너 내려올 때 옷 갖다달라는 걸 깜빡했다. 이장일네 집에 옷
두고 왔는데.
금줄;작품 내러 서울 간다며. 그때 가서 찾어.
수미;......그러지 뭐.
금줄;너 그리고 서울 가면 그 여자 좀 만나봐 줄라.
수미;그 여자?
금줄;선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수미; ?
47. 복지관 / 낮
CD 정리하는 지원과 실장. 수미,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다 데스크로 시선.
수미, 지원을 본다. 지원, 밝게 웃으며 무거운 걸 번쩍 번쩍 들고 소매로 이마에 땀을 닦고.... 털털한 모습.
금줄(E);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선우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내가
보기엔 그 사람도 진심 같고 좋은 여자 같은데.... 그래도 여자가 보면 좀 더 낫지 않겠어.
지원;실장님, 이것두요. 복사본 스무 개.
수미;...........
플래쉬 백 -- 5부. 캠퍼스. 장일과 웃으며 걸어가는 지원.
지원;음반 도서 찾으시나요?
수미;네....
지원;(두툼한 장부 갖다 주며)여기서 목록 찾으심 돼요.
수미;.......(뒤적이는 척)여기서 봉사활동 하려면 어떡하면 되나요.
지원;(반갑게)신청서만 써주시면 돼죠. 봉사하시게요?
수미;하고는 싶은데 시간이 될지.....
지원;일단 하겠다고 마음먹음 어떻게든 돼요.
수미;...... 여기서 봉사를 왜 하세요?
지원;.........글쎄요....
수미;선우 때문에 하시나요.
지원;........
음료수 두고 마주 앉은 지원과 수미.
수미;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늘 밝고 어디서나 기죽지 않고 한마디로
대장같은 애였어요. 그러던 선우가 사고로 저렇게 돼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지금은 여기서 한 번 더 바닥으로 떨어질 까봐 걱정 이구요.
지원;.........
수미;선우를 갖고 노는 게 아니었음 좋겠어요.
지원;전 지금 좀 당황스러운데요....
수미;저 선우 여자친구 아니예요. 괜히 떠볼려고 이러는 거 아니니까 오해 마세요. 선우는 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지금 선우한테 유일 한 위로이자 희망이 댁이 아닐까 생각해요. 선우 곁을 떠나지
말아주세요.
지원;...........
수미;선우를 더 많이 사랑해 주세요.
48. 진승원 서재 / 낮
노식, 편지를 보고 있다. ‘진노식 회장님께. 당신이 죽이라고 시킨 겁니까?
광춘(E);당신이 죽이라고 시킨 겁니까. 회장님 편이 돼 드리겠습니다.
비밀을 지켜드리는 댓가를 잊으시면 곤란합니다. 현금 1억을
준비해 주십시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노식;.......
용배;어떻게 이런 일이.....
노식;....그 녀석은 지금 어딨습니까.
용배;서울에서 재활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혼자 얼추 찾아다닐 수
있는 모양입니다.
노식;진정서 낸다고 뛰어다니던 건 기억을 못한다구요.
용배;예.
노식;없애요.
용배;......!
노식;없애요. 그 놈도.
용배;회장님 전 못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합니다. 더 이상 죄 짓기 싫습니다. 아니 무서워 죽겠습니다.
노식;다음 편지는 장일군 한테 갈 것 같지 않습니까.
용배;..........
노식;일단 겁만 주던가.... 그 다음에 날아올 편지를 보면 그 녀석과 연관 이 있는지 없는지 알 거 아닙니까.
용배;전 자신 없습니다. 회장님.... 도와주십시오.
노식;...........나더러 없애 달라는 말인가.
용배;(고개 조아리고만 있는)
노식;............
49. 호텔 복도 / 밤
무궁화 3개 정도의 호텔 또는 모텔. 어두운 복도. 걸어가는 선우. 어느 방문 앞에 멈춰서 벨을 누른다.
50. 호텔 방 / 밤
문을 여는 노식. 선우, 꾸벅 인사한다.
선우;안녕하십니까. 실습생입니다.
인사 하고 고개 드는 선우의 얼굴에서.
.적도의 남자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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