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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남녀의 사랑법 11

(운영자)

 

 되게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건강한 이별이  또 다른 건강한 관계로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고

 

 아이, 누가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거야?

 

 물어보니까  나는 전문가로서 진지하게 말한 건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건강한 이별이 대체 뭔데?

 

 그걸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중이잖아

 

 첫째, 이별의 이유를  상대방한테 고지한다

 

 갑갑하다, 진짜

 

 아, 말하면, 뭐, 알아들어?

 

 못 알아들어도 일단 말을 하는 거지

 

 두 번째, 서로 얼굴 보면서 말한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 통화로 말고

 

 얼굴 보고 평화롭게

 

 왜 때렸니?

 

 (학생1)  헤어지자고 하니까…

 

 (학생2)  네가 그 말만 했어?

 

 (성우)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한테  말해 줘야 된다고 봐

 

 (학생2)  내 얼굴만 보면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며

 

 아, 콧구멍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라며!

 

 (성우)  그 이후의 일은  상대방한테 맡기는 거지

 

 (동식)  얼굴만 보면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학생2가 흐느낀다]  상처를 받았고

 

 너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했니?

 

 헤어지는 마당에  좋게 말할 수도 있었잖아

 

 좋게 말했죠

 

 계속 좋게 다른 이유를 대니까  얘가 못 알아듣잖아요

 

 (선영)  거봐, 이별은 건강할 수가 없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하고  완전히 끝나는 건데

 

 끊어 내는 사람이나 버림받는 사람이나

 

 둘 다 아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응, 아니, 뭘 어떻게 해도 아프다니까?

 

 그냥 아픈 채로 살아 내는 수밖에 없어

 

 [새가 지저귄다]

 

 [한숨]

 

 나 잠을 한숨도 못 잤어

 

 자려고 누웠다가도

 

 문득문득 화가 나서! 씨

 

 [흥미로운 음악]  (선영)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화도 내고 복수도 다짐하고

 

 (경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복수는 말이 안 돼  [재원의 한숨]

 

 좋아하다가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아픈 것도 어쩔 수 없고  [재원의 한숨]

 

 단지 그 연애 한번 잘못됐다고

 

 자기 인생 망가트리는 건, 그건 너무

 

 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

 

 걔 최경준이지?

 

 죽기 싫으면 닥치라 그래

 

 윤선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씨

 

 무슨 소리야?

 

 응? 그 이름 가짜라고 하지 않았어?

 

 아, 좀…

 

 딴 사람들한테  내 얘기 좀 전하지 좀 마

 

 지금 나만 찌질해 보이잖아  나만, 나만!

 

 (재원)  아휴, 씨, 아유

 

 - (선영) 누구 이야기야?  - (경준) 박재원 이야기 아니야?

 

 (선영)  비슷하게 찌질한 애가 또 있어?

 

 그, 박재원이랑 둘이 술 한잔하라 그래

 

 아니, 이름이 가짜인 것도

 

 내가 지금 뒤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거 같은데

 

 와, 이거는

 

 막 내 심장을

 

 난도질당한 느낌이야

 

 (재원)  아…

 

 아니, 뭐? 뭐? 뭐?

 

 서린이 친구라고? 린이 친구라고?

 

 그럼 경준이랑도  아는 사이라는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어떻게 내 옆에, 그렇게 가까운 데서

 

 어떻게 그렇게  잘 살고 있을 수가 있어?

 

 이게 말이 돼?

 

 어? 대답해 봐,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씨

 

 아휴, 진짜, 씨!

 

 아휴, 씨

 

 아휴

 

 [재원이 소리친다]

 

 나가, 나가, 찍지 마, 나가, 씨, 나가!

 

 [재원이 소리친다]

 

 나가, 안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찍지 마, 찍지 마, 씨

 

 [기분 좋은 신음]

 

 [은오의 웃음]  [린이의 가쁜 숨소리]

 

 [은오의 기분 좋은 신음]

 

 [웃음]

 

 (은오)  와, 너 진짜 빨라

 

 [웃음]

 

 [은오의 힘주는 신음]

 

 [힘주는 신음]

 

 아유, 힘들어

 

 [흥얼거린다]

 

 - 린아, 이제 집에 가자  - (린이) 응?

 

 (은오)  너무 춥다, 집에 가자

 

 (린이)  은오야, 열 번만 해

 

 너 자주 앉아 있으니까  이런 거 해야 돼

 

 [은오의 한숨]  이게 허리에 참 좋다

 

 (재원)  아씨, 나가라니까 진짜

 

 진짜 나가서 기다리고 있네

 

 미치겠네

 

 [숨을 후 내뱉는다]

 

 그래, 내가 더 열이 받는 건

 

 남자

 

 [한숨]

 

 남자가 있는 거 같더라고

 

 [익살스러운 음악]  (은오)  아, 나 배고파, 집에 가자

 

 (린이)  아, 나도…

 

 - (은오) 린아, 집에 가자, 나 배고파  - (린이) 알겠어

 

 (은오)  아, 나 배고프다고, 그만할 거라고

 

 (린이)  5분만

 

 '그동안 나의 몸은  얼마나 묵묵히 많은 일을 해 왔던가'  [은오가 칭얼거린다]

 

 [건의 개운한 신음]  (린이)  뭐지?

 

 - (건) 야, 은오야, 이것 좀 주워 줘  - (은오) 집에 빨리 가자

 

 (건)  야, 이거 빨리 좀  야, 이거 좀 빨리 주워 줘, 야, 은오야

 

 (은오)  야, 네가 일어나서 주워

 

 (건)  아니, 나 못 일어나, 일어날, 지금  빨리 주워 줘, 빨리

 

 [재원의 한숨]

 

 아예 한집에 같이 사는 거 같더라?

 

 [한숨]

 

 나랑도 같이 살았잖아  아니, 왜 이렇게 쉬워?

 

 연애가 뭐, 장난이야? 소꿉놀이야?

 

 [한숨 쉬며]  그래, 뭐

 

 연애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사귀었다 헤어질 수도 있고  좋아하면 뭐, 같이 살 수도 있어, 근데

 

 근데

 

 나랑 끝을 낸 다음에

 

 나랑 끝을 낸 다음에

 

 남자를 만나든지 말든지  해야 될 거 아니야, 어?

 

 씨…

 

 야, 윤선아

 

 너, 하여간 너 남자 있기만 해 봐

 

 너 만약에 남자 있으면…

 

 [자동차 리모컨 작동음]

 

 (건)  역시 밥은 햇반이야

 

 (은오)  국은 비비고고

 

 (린이)  운동은 공원이고

 

 (건과 은오)  에이

 

 (린이)  왜?

 

 비싼 돈 주고 피트니스 갈 필요 없이  운동 기구 다 있고

 

 (은오)  아니야, 린이야, 추웠어

 

 (건)  그래, 그만 가자

 

 봄 되면 다시 가

 

 (은오)  야

 

 이쯤에서 우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언제쯤 모양 좋게

 

 그, 피트니스 회원권 같은 걸  끊을 수 있을까?

 

 (건)  음

 

 이번 생은 어림없다고 봐

 

 (은오)  야, 내가 호텔 마케팅 같은 것도  좀 해 봤잖아

 

 거기 피트니스 회원권 얼마인 줄 알아?

 

 아휴, 됐어, 나 시급 9천 원이야

 

 (린이)  운동, 공원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

 

 진짜 우리 중에

 

 인생의 앞날에  희망이 보이는 인간은 없는 거니?

 

 (건)  얘, 충분히 희망차, 남친이 최경준이야

 

 (은오)  그래, 경준이 돈 많지, 많을 거야

 

 (린이)  잠깐, 나 정색하고 말하는데

 

 그게 경준이랑 무슨 상관이지?

 

 나는 조금 정색하고 말하면  너 경준이랑 결혼할 거잖아

 

 나 결혼할 마음 없어

 

 경준이 아니라 그 누구하고도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가 목을 가다듬는다]

 

 (은오)  네, 여보세요

 

 아, 네, O3 이은오입니다

 

 네, 맞아요

 

 아, PT요? 오늘요?

 

 씁, 아, 이렇게 갑자기…

 

 (건)  야, 영화 보기로 해 놓…

 

 (은오)  아, 네, 가능합니다, 완전 가능합니다

 

 네,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는  O3입니다

 

 네,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휴대전화 조작음]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O3 이제 막 일이 쏟아지기 시작한

 

 [흥얼거리며]  다 다다다 다다 다다다

 

 아, 잠깐만

 

 그러면 PT 전에

 

 피부 관리 좀 들어가 볼까?

 

 잠깐만  [익살스러운 음악]

 

 - (린이) 갑자기?  - (건) 또?

 

 (건)  해 봐 봐

 

 이야, 쟤는 자기가 저런다고

 

 저 제품 마케팅을  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린이)  아니, 뭐, 광고주가 봐?

 

 [건의 한숨]

 

 [린이의 어색한 웃음]

 

 (건)  [한숨 쉬며]  다 했어?

 

 [은오의 옅은 웃음]

 

 (건)  근데 너 아까 경준이랑  결혼할 마음 없다는 거, 그거 진짜야?

 

 아니지? 경준이 알아?

 

 결혼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는데  경준이랑

 

 야, 말 안 했으면  경준이 당연히 너랑 결혼하…

 

 (은오)  야, 야, 야, 지금 우리가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

 

 [건강식품을 탁 내려놓으며]  자네, 요즘 소설을 쓰고 있기나 해?

 

 린이도 하나 먹고

 

 우리 린이 남자 믿지 말고

 

 언니 믿고 딱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 언니, 사랑해요

 

 [경준의 한숨]

 

 (경준)  예쁘긴 이게 진짜 예쁜데

 

 하지만

 

 이걸로 할게요

 

 (점원)  처음 고르신 게  요즘 제일 핫한 상품인데요

 

 딱 봐도 그런데요

 

 (경준)  그래도 그냥 이걸로 할게요

 

 (점원)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차에 싣고 갈 수 있죠?

 

 (점원)  네, 가능합니다

 

 [잔잔한 음악]

 

 (경준)  아휴, 우리 린이  자전거 한 대 사 줘야겠네

 

 - 린이야  - (린이) 경준

 

 (린이)  잘됐다, 우리 이거 싣고 은오네 가자

 

 아니, 내가 협탁 필요하다 그랬잖아

 

 근데 이게 딱 여기 나와 있다?

 

 이거 리폼하면 너무 예쁘겠지?

 

 빨리 트렁크 좀 열어 봐 봐

 

 (경준)  잠깐만

 

 아, 이거 우리랑 같이 일하는  인테리어업체에서

 

 오픈 하우스에 뒀던 건데  내가 얻어 놨어

 

 (린이)  아, 정말?

 

 (경준)  그러니까 이거, 이것 좀  이런 것 좀 버리고, 이런 거…

 

 [경준이 협탁을 탁 내려놓는다]

 

 저거 비싼 거야?

 

 [재원의 한숨]

 

 - (직원1) 안녕하세요  - (재원) 네

 

 (재원)  한결 씨, 최 대리는요?

 

 (직원1)  아, 새벽에 판교 현장 간다고…

 

 팀장님, 그, 주말에 받은 O3 자료요

 

 좀 찾아봤는데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이  결과가 되게 좋더라고요

 

 이번 비딩에 참여 요청할까요?

 

 회사 규모가 좀 작던데 괜찮겠어요?

 

 음, 큰 회사가 맡아도

 

 어차피 실무자는 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서 괜찮을 것 같고요

 

 (직원1)  O3에서 몇 달 전에 맡았던

 

 미술관 개관 파티 프로젝트 찾아봤는데

 

 소셜 미디어를 되게 잘 이용했더라고요

 

 안 그래도 참신한 업체  찾고 있었는데 잘됐어요

 

 이따 최 대리님 출근하면  상의해서 미팅 잡아 보려고요

 

 일단 자료 내가 좀 더 훑어볼게요

 

 (직원1)  네

 

 (린이)  딱, 딱 봐도 비싸 보이지?

 

 완전 새거 같지?

 

 30에 사  [경준의 당황한 신음]

 

 (건)  무슨 30이야  10만 원 주고도 안 사겠다

 

 (경준)  야, 그거 수입 브랜드야

 

 원래 얼마인데?

 

 (린이)  얼마야?

 

 (경준)  120 정도…

 

 [놀란 신음]

 

 나도 얻은 거긴 한데

 

 - (경준) 대충 그 정도 될걸?  - (건) 이게?

 

 (린이)  진짜? 이게 그렇게 비싼 거였어?

 

 야, 30은 안 되겠다

 

 전시했던 제품이니까 50

 

 오, 싫어

 

 (린이)  아, 얘 진짜 물건 볼 줄 모르네

 

 이렇게 비싸고 좋은 물건을

 

 야, 너한테는 50만 원에도 안 팔아  [건이 코웃음 친다]

 

 (경준)  린이야, 쟤한테 팔지 마, 너무 싸

 

 (린이)  너무 싸?

 

 [건이 서랍을 쓱 여닫는다]  (린이)  오, 본다, 본다

 

 [휴대전화 진동음]

 

 어, 형

 

 나 판교 현장 가는 날이잖아

 

 [은오가 숨을 후 내뱉는다]

 

 난 옛날의 이은오가 아니다

 

 잘하자, 이은오

 

 (재원)  이은오 씨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봐

 

 [경준의 헛웃음]

 

 (경준)  지금 그거 물어보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난 사람을 불러?

 

 [컵을 탁 내려놓는다]

 

 (재원)  너는 꼭 판교 현장 간다고 하고  린이 만나러 가더라?

 

 아니, 자재 들어오는데  받을 사람 없어서

 

 (경준)  진짜 새벽 4시에 갔어

 

 아, 린이 만나러 간 거 맞는데  오늘 할 일 다 하고 갔다고

 

 하, 이 사람 보소?

 

 나도 나인 투 파이브 하고

 

 시간 외 수당 다 따지고  한번 그렇게 해 볼까? 어?

 

 [입소리를 쩝 낸다]

 

 (재원)  한결 씨가 이 업체 괜찮다더라?

 

 그러면 비딩 참여하라고 해?

 

 (경준)  근데 은오에 대해서는 왜 물어봐?

 

 (재원)  야, 너 근데 주말의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너 린이랑 둘이서  클라이언트 하나 날려 먹고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야, 그랬으면 나한테  무슨 해명을 했어야 될 거 아니야

 

 - 미안해  - (재원) 그래서

 

 그래서 그 클라이언트랑

 

 이 이은오 씨랑, 뭐

 

 결, 결혼을 하려고 했었던 거야?

 

 [건의 시원한 숨소리]  (린이)  나 강민수 만났다?

 

 경준이네 회사에 집 지으려고 왔더라고

 

 (건)  은오랑 왜 헤어졌는지 물어봤어?

 

 결혼을 하셨더라고

 

 - 같은 항공사 여자랑  - (건) 어?

 

 (린이)  대박이지?

 

 애가 벌써 9개월이래

 

 작년에 은오 부산 내려갔을 때 있지?

 

 그때 이미 여자는 임신 상태였던 거지

 

 [젓가락을 탁 내려놓는다]

 

 은오 만나던 중에  바람피운 거 아니야

 

 - 응  - (건) 걔 아직 부산에 있대?

 

 지금 기차 타고 부산 가자, 빨리

 

 (린이)  아, 경준이가 벌써 때려 줬어  나 막 콜라 퍼붓고

 

 앉아, 앉아

 

 [한숨]

 

 그래서 헤어진 거였네

 

 그래서 은오가  석 달간이나 사라졌던 거고

 

 롱디 힘들다고  은오 부산까지 부를 땐 언제고

 

 (경준)  부산에서 같이 지내다가

 

 그 새끼 서울 발령 받으면 결혼한다고

 

 이은오 직장도  부산에 구했었잖아, 그때

 

 근데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야  세 달 동안

 

 린이 그때 영국 엄마한테 가 있었는데

 

 은오 때문에 들어왔잖아

 

 아니, 그러면 그때

 

 그 자식은 좀 만나 본 건가?

 

 (경준)  찾아가 봤는데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졌다고 하더라고

 

 아, 맞는다  은오가 취직한 호텔에 찾아갔었다?

 

 린이랑 나랑 그때…

 

 은오랑 같이 면접 본  여자애를 만났었는데

 

 (여자)  아, 이은오 씨는 입사가 취소됐어요

 

 연락을 못 받았는지  첫 출근을 했더라고요

 

 (린이)  [한숨 쉬며]  아니, 무슨 회사가 그래요

 

 [경준의 한숨]  갑자기 입사가 취소되고

 

 [한숨 쉬며]  그래서 내 친구는요?

 

 내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여자의 난감한 신음]  (경준)  혹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여자)  아, 그것까지는 잘…

 

 아휴, 이은오 씨 착하던데

 

 잘됐으면 입사 동기였을 텐데

 

 아, 너무 걱정 마요

 

 뭐, 기회는 이때다 하고

 

 [살짝 웃으며]  긴 여행이라도 갔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휴, 감사합니다

 

 (경준)  핸드폰도 아예 없애 가지고

 

 실종 신고를 하네 마네  뭐, 난리도 아니었어, 그때

 

 린이 맨날 울고

 

 [애잔한 음악]

 

 (재원)  그러면 다시 나타났을 땐

 

 뭐, 어디에 있었다  이런 얘기는 없었고?

 

 강민수 그 새끼랑 왜 헤어졌는지  말도 안 하더라

 

 (경준)  대충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작 가지 않아?

 

 남자 새끼는 바람피워  호텔 취업은 취소돼

 

 그것도 오갈 데 없는 객지에서

 

 [한숨]

 

 그러고 나서  이은오 성격 엄청 변했잖아

 

 바보같이 착했는데, 얌전하고

 

 바보같이 착했어? 얌전하고?

 

 (은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나눠 준다고

 

 기업 이미지가 좋아질까요?

 

 [리모컨 조작음]  저희 O3는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자, 몇 가지 연극 포스터들을  들고 와 봤어요

 

 요즘 대학로에서 핫하게 공연되고 있는  '너 라면 어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작품도 롱런 조짐이 보이고 있죠

 

 '스캔들 나기 좋은 날'

 

 '결혼의 맛'

 

 자, 이제 제가 보여 드릴  포스터들 중에서

 

 다른 점을 찾아 보세요

 

 자, 그냥 서 있던 배우가

 

 이 라면을 들고 있고  '너 라면 어때'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음료를 들고 있습니다

 

 어때요? 제품이 확 살죠?

 

 포스터뿐만이 아닙니다

 

 여주인공이 대사를 하는 내내

 

 이 라면을 들고 대사를 하는 거죠

 

 왜? 라면을 끓이려는데  남자 친구가 찾아왔으니까요

 

 딩동

 

 누구세요?

 

 철컥, 끼익

 

 어머, 이 시간에 웬일이야?

 

 할 말 있다고? 지금 새벽 3시야

 

 라면? 어, 자려다가 배가 고파서

 

 너도 먹을래? 이 라면 맛있는데

 

 [웃으며]  잠깐만

 

 [의아한 숨소리]

 

 근데 너 왜 왔어?

 

 뭐? 헤어지자고? 왜!

 

 지금 이게 이 시간에 찾아와서  할 말이야?

 

 이유가 뭐야?

 

 여자가 있다고?

 

 어떤 여자? 언제부터인데?

 

 [헛웃음]

 

 너라면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어?

 

 언제부터야, 날 속인 게!

 

 이렇게 연극 핵심 장면 내내  이 라면을 들고 대사를 하는 거죠

 

 괜찮은데 이게 드라마 PPL하고는  어떻게 다르죠?

 

 드라마처럼  파급력이 있을 거 같지도 않은데

 

 아, 이건 메인 광고가 아니라

 

 감성 마케팅이죠

 

 [흥미로운 음악]  (은오)  앞서가는 식품 전문 업체가

 

 문화 콘텐츠를 후원한다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를  같이 노리는 거죠

 

 (담당자1)  근데 그 정도는

 

 [살짝 웃으며]  제품만 갖다줘도 될 거 같은데

 

 (은오)  그래도 되죠

 

 그런데 그 정도로  후원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부끄러우시죠

 

 네, 부끄러우실 겁니다

 

 (담당자2)  솔직히 우리 회사 마케팅 팀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옅은 웃음]

 

 (은오)  네, 그래도 되죠

 

 [라면을 탁 내려놓으며]  그런데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가는 건 정말

 

 부끄러우실 거예요

 

 [담당자2의 한숨]

 

 (담당자3)  정말 기대 이상인데요?

 

 아까 그 정도면 진짜 반응 좋은 거예요

 

 (은오)  제가 항상 기대 이상을 해냅니다  맡겨만 주세요

 

 [은오의 옅은 웃음]

 

 오늘 면접 보나 봐요?

 

 (담당자3)  아, 네, 오늘 두 명 뽑는 건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원해 가지고  하루 종일 면접 보게 생겼어요

 

 커피? 녹차?

 

 (은오)  아, 예, 저는 녹차로, 네, 감사합니다

 

 [차분한 음악]

 

 - (직원2) 읽어 보세요  - (은오) 네, 감사합니다

 

 [은오가 중얼거린다]

 

 [여자의 한숨]

 

 [은오가 중얼거린다]

 

 (은오)  그때

 

 윤선아를 만나지 않았으면

 

 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은오의 한숨]

 

 (은오)  여러분, 긴장하지 맙시다!

 

 그냥, 그냥 자연스럽게 하세요

 

 우리의 진가를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볼 테니까

 

 - (은오) 여러분, 파이팅!  - (면접자) 파이팅!

 

 (은오)  [손뼉을 딱 치며]  파이팅!

 

 - 아, 녹차 제가…  - (담당자3) 네

 

 [한숨]  - (경준) 형  - 응

 

 (경준)  그러면 은오한테도  이 비딩 제안 요청서 보낸다?

 

 아, 은오 일 잘해

 

 커리어 봤으면 알 거 아니야

 

 아, 맞는다

 

 내일 걔네 집에서  옥상 캠핑 할 건데 형 올래?

 

 형, 와라

 

 이은오 씨 집에서?

 

 (재원)  어, 저번처럼 그냥 지나가다 들른 걸로  서로 부담 없이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도 해 보고

 

 아니, 무슨 한겨울에 춥게

 

 (경준)  에이, 이 사람아

 

 냉면이 괜히 겨울 음식이겠어?

 

 형 겨울에도 평양냉면 맨날 먹잖아

 

 그냥 그런 거야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 거기가?

 

 응, 괜찮아

 

 걔 어차피 작업실 셰어해, 친구랑

 

 그, 건이  내 친구 소설가 백수 있지? 걔랑

 

 아니, 무슨 사는 집을  남자랑 셰어를 해?

 

 뭐, 같이 사나?

 

 [옅은 헛기침]  사귀나?

 

 에이, 무슨 소리야  걔네 그냥 소꿉친구야

 

 (경준)  따뜻하게 입고 와, 추워  [재원의 호응하는 신음]

 

 내일 봐

 

 [밝은 음악]

 

 [시원한 숨소리]

 

 [컵을 탁 놓는다]

 

 (은오)  어

 

 아, 됐다

 

 - (은오) 다 됐어?  - (경준) 어, 다 돼 가

 

 [경준이 중얼거린다]

 

 [문이 탁 열린다]

 

 (경준)  얘들아, 불 다 됐다, 이제 고기 올리자  [문이 탁 닫힌다]

 

 [건과 린이가 대답한다]  나 이거 갖고 갈게

 

 (건)  야, 이것도

 

 [냉장고 문이 탁 닫힌다]  (린이)  경준

 

 은오한테 강민수 만난 얘기 하지 마

 

 (경준)  아, 내가 바보예요?  좋은 기억도 아닌데 뭘 얘기해

 

 (린이)  얼마나 상처받았으면

 

 우리한테 그 새끼 이름도 안 꺼내겠어

 

 야, 근데 은오 커플 링 있다?

 

 (린이)  뭔 소리야?

 

 [흥미로운 음악]

 

 (건)  반지를 두 개나 매달아 놨던데  목걸이에?

 

 (경준)  에이, 설마 강민수

 

 그 새끼 못 잊고 막 그런 거 아니겠지?

 

 - (건) 에이  - (린이) 와

 

 (린이)  아니, 바람피우고  딴 여자 임신까지 시켜서 헤어졌는데

 

 그 반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고?

 

 그럼 누구 건데?  딱 봐도 커플 링이었는데

 

 (린이)  아, 아니야  강민수랑 한 반지 절대 아니야

 

 (경준)  생겼다

 

 남자 생겼다

 

 아, 이은오 요새 우리한테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

 

 아니, 남자 생겼다고

 

 (경준)  뭐 들은 거 없어? 한번 조사를 해 봐

 

 (건)  [웃으며]  왜 이렇게 신났어?

 

 - (린이) 가자  - (경준) 생겼다

 

 넌 술 좀 챙겨 와

 

 - (린이) 티 내지 마  - (경준) 알았어  [문이 덜컥 열린다]

 

 [한숨]

 

 술  [문이 덜컥 닫힌다]

 

 [손가락을 딱 튀기며]  오케이, 술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  어유, 추워, 씨

 

 어유, 왜 이렇게 춥냐, 오늘, 아…

 

 [재원의 추워하는 숨소리]

 

 아씨

 

 아, 좀 따뜻하게  입고 올 걸 그랬나, 아씨

 

 아, 너무 멋을 부렸나?

 

 하, 참…

 

 [한숨]

 

 [숨을 후 내뱉는다]

 

 - (경준) 먹자  - (은오) 먹자, 먹자, 먹자  [린이가 호응한다]

 

 (건)  잠깐

 

 - (은오) 오  - (건) 자

 

 오늘 식사를 하기에 앞서

 

 (건)  이 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 (은오) 아, 그냥 빨리빨리 따라  - (린이) 아, 빨리 마셔

 

 - (경준) 먹어, 그냥  - (건) 노, 노, 노, 노, 노, 노, 노

 

 너희 후회하지 마라

 

 (건)  이 술이 어떤 술이냐

 

 이게 100년 이상 된 원액을  1,200가지 섞어서 만든 술이거든

 

 이거 내가 얼마 주고 샀는지 알아?

 

 - 10만 원  - (은오) 누구한테 샀는데?

 

 (건)  이 바보들한테서!

 

 (경준)  원래 얼마인데, 그거?

 

 (건)  씁, 이게 아마 한 병에 300?

 

 (경준)  이 새끼, 일로 와  [은오의 놀라는 신음]

 

 너 일로 와, 이 새끼야

 

 이 사기꾼 놈!

 

 [건의 다급한 신음]  (경준)  내놔, 내놔

 

 (은오)  야, 너희 저렇게  비싼 술이 어디서 났어?

 

 [건의 가쁜 숨소리]

 

 - (경준) 우리 형  - (린이) 박재원

 

 (경준)  아, 우리 형이 얼마 전에  여자한테 호되게 당해 갖고

 

 알코올 중독 직전까지 갔었잖아

 

 (린이)  알지? 그 카메라 훔쳐 간, 그

 

 [어색한 웃음]  (건)  카

 

 얼마나 순정파냐

 

 술 취해서 그 여자 찾겠다고  파출소까지 들락거리고

 

 그래서 최경준이 그 집에서

 

 술이란 술은 있는 대로  다 가지고 와서 나한테 팔았는데

 

 (린이)  겨우 10만 원에

 

 내 손에 있는 게 300만 원짜리면

 

 저 안에 있는 건 얼마짜리일까?

 

 (린이)  사기꾼

 

 (건)  [뚜껑을 뻥 따며]  이은오

 

 너부터 줄게, 한번 맛봐

 

 (은오)  응

 

 (경준)  야, 이 새끼야

 

 넌 그게 그렇게 비싼 술이면  비싸다고 말을 해 줬어야지

 

 이거 완전 흉악한 놈이네, 이거

 

 새끼라고 했어?

 

 그래, 이 새끼야, 이 사기꾼 새끼야

 

 - (건) 다음 우리 린이, 한잔할래?  - (경준) 야, 야, 잠깐 스톱

 

 (경준)  '우리'라는 말은 빼라

 

 린이한테 '우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거는 이츠 미

 

 (건)  경준이의 린이, 한잔 받으시게

 

 - (경준) 아, 야, 야, 방울!  - (린이) 에이

 

 [경준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  너 이거 무슨 맛인지 알겠어?

 

 (경준)  어, 형, 어디야?

 

 [건이 술을 쪼르르 따른다]  다 왔어? 잠시만

 

 - (경준) 어, 형, 여기야, 올라와  - (재원) 어

 

 (린이)  재원 오빠?

 

 아,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다

 

 (경준)  내가 불렀어, 괜찮지?

 

 [긴장되는 음악]  (건)  어, 이 술 이거…

 

 (경준)  계단 올라와

 

 형!

 

 [초조한 숨소리]

 

 (린이)  오빠, 얼른 와요, 우리 막 시작했어

 

 (경준)  내 친구들 처음이지?

 

 인사해!  [경준의 웃음]

 

 (건)  안녕하세요, 강건이라고 합니다

 

 (재원)  내가 박재원이에요, 네

 

 [재원의 웃음]  (건)  어유, 잘생기셨다

 

 (재원)  되게 보고 싶었는데  [건의 멋쩍은 웃음]

 

 (린이)  내 친구, 오빠

 

 [재원의 한숨]

 

 처음 뵙겠습니다, 박재원이에요

 

 네

 

 [애잔한 음악]

 

 거, 어떤 사람인지  되게 궁금했어요, 이은오 씨

 

 (경준)  악수를 왜 이렇게 오래 해

 

 - (경준) 빨리 갖고 온 거 내놔  - (재원) 여기

 

 (경준)  어? 뭐야?

 

 형 반지 뺐어? 반지 어디 갔어?

 

 (재원)  아, 이거?

 

 버렸어

 

 그 여자 모든 게 다 가짜라서

 

 (경준)  건아, 1인분 세팅

 

 (건)  아, 형님, 잔 내가, 그럴게

 

 - (경준) 형, 앉아  - (재원) 응, 고마워

 

 (린이)  오빠, 앉아  [은오의 옅은 헛기침]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아니, 오빠 춥겠다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어

 

 (재원)  별로 안 추운데, 괜찮은데?

 

 - (린이) 차 갖고 왔어?  - (재원) 응

 

 (린이)  그럼 대리 불러야겠네

 

 오빠, 여기 예쁘지?

 

 (재원)  좋다, 되게

 

 (린이)  이은오, 괜찮아?

 

 (은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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