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의 사랑법 11
(운영자)
되게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건강한 이별이 또 다른 건강한 관계로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고
아이, 누가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거야?
물어보니까 나는 전문가로서 진지하게 말한 건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건강한 이별이 대체 뭔데?
그걸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중이잖아
첫째, 이별의 이유를 상대방한테 고지한다
갑갑하다, 진짜
아, 말하면, 뭐, 알아들어?
못 알아들어도 일단 말을 하는 거지
두 번째, 서로 얼굴 보면서 말한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 통화로 말고
얼굴 보고 평화롭게
왜 때렸니?
(학생1) 헤어지자고 하니까…
(학생2) 네가 그 말만 했어?
(성우)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한테 말해 줘야 된다고 봐
(학생2) 내 얼굴만 보면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며
아, 콧구멍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라며!
(성우) 그 이후의 일은 상대방한테 맡기는 거지
(동식) 얼굴만 보면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학생2가 흐느낀다] 상처를 받았고
너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했니?
헤어지는 마당에 좋게 말할 수도 있었잖아
좋게 말했죠
계속 좋게 다른 이유를 대니까 얘가 못 알아듣잖아요
(선영) 거봐, 이별은 건강할 수가 없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하고 완전히 끝나는 건데
끊어 내는 사람이나 버림받는 사람이나
둘 다 아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응, 아니, 뭘 어떻게 해도 아프다니까?
그냥 아픈 채로 살아 내는 수밖에 없어
[새가 지저귄다]
[한숨]
나 잠을 한숨도 못 잤어
자려고 누웠다가도
문득문득 화가 나서! 씨
[흥미로운 음악] (선영)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화도 내고 복수도 다짐하고
(경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복수는 말이 안 돼 [재원의 한숨]
좋아하다가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아픈 것도 어쩔 수 없고 [재원의 한숨]
단지 그 연애 한번 잘못됐다고
자기 인생 망가트리는 건, 그건 너무
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
걔 최경준이지?
죽기 싫으면 닥치라 그래
윤선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씨
무슨 소리야?
응? 그 이름 가짜라고 하지 않았어?
아, 좀…
딴 사람들한테 내 얘기 좀 전하지 좀 마
지금 나만 찌질해 보이잖아 나만, 나만!
(재원) 아휴, 씨, 아유
- (선영) 누구 이야기야? - (경준) 박재원 이야기 아니야?
(선영) 비슷하게 찌질한 애가 또 있어?
그, 박재원이랑 둘이 술 한잔하라 그래
아니, 이름이 가짜인 것도
내가 지금 뒤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거 같은데
와, 이거는
막 내 심장을
난도질당한 느낌이야
(재원) 아…
아니, 뭐? 뭐? 뭐?
서린이 친구라고? 린이 친구라고?
그럼 경준이랑도 아는 사이라는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어떻게 내 옆에, 그렇게 가까운 데서
어떻게 그렇게 잘 살고 있을 수가 있어?
이게 말이 돼?
어? 대답해 봐,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씨
아휴, 진짜, 씨!
아휴, 씨
아휴
[재원이 소리친다]
나가, 나가, 찍지 마, 나가, 씨, 나가!
[재원이 소리친다]
나가, 안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찍지 마, 찍지 마, 씨
[기분 좋은 신음]
[은오의 웃음] [린이의 가쁜 숨소리]
[은오의 기분 좋은 신음]
[웃음]
(은오) 와, 너 진짜 빨라
[웃음]
[은오의 힘주는 신음]
[힘주는 신음]
아유, 힘들어
[흥얼거린다]
- 린아, 이제 집에 가자 - (린이) 응?
(은오) 너무 춥다, 집에 가자
(린이) 은오야, 열 번만 해
너 자주 앉아 있으니까 이런 거 해야 돼
[은오의 한숨] 이게 허리에 참 좋다
(재원) 아씨, 나가라니까 진짜
진짜 나가서 기다리고 있네
미치겠네
[숨을 후 내뱉는다]
그래, 내가 더 열이 받는 건
남자
[한숨]
남자가 있는 거 같더라고
[익살스러운 음악] (은오) 아, 나 배고파, 집에 가자
(린이) 아, 나도…
- (은오) 린아, 집에 가자, 나 배고파 - (린이) 알겠어
(은오) 아, 나 배고프다고, 그만할 거라고
(린이) 5분만
'그동안 나의 몸은 얼마나 묵묵히 많은 일을 해 왔던가' [은오가 칭얼거린다]
[건의 개운한 신음] (린이) 뭐지?
- (건) 야, 은오야, 이것 좀 주워 줘 - (은오) 집에 빨리 가자
(건) 야, 이거 빨리 좀 야, 이거 좀 빨리 주워 줘, 야, 은오야
(은오) 야, 네가 일어나서 주워
(건) 아니, 나 못 일어나, 일어날, 지금 빨리 주워 줘, 빨리
[재원의 한숨]
아예 한집에 같이 사는 거 같더라?
[한숨]
나랑도 같이 살았잖아 아니, 왜 이렇게 쉬워?
연애가 뭐, 장난이야? 소꿉놀이야?
[한숨 쉬며] 그래, 뭐
연애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사귀었다 헤어질 수도 있고 좋아하면 뭐, 같이 살 수도 있어, 근데
근데
나랑 끝을 낸 다음에
나랑 끝을 낸 다음에
남자를 만나든지 말든지 해야 될 거 아니야, 어?
씨…
야, 윤선아
너, 하여간 너 남자 있기만 해 봐
너 만약에 남자 있으면…
[자동차 리모컨 작동음]
(건) 역시 밥은 햇반이야
(은오) 국은 비비고고
(린이) 운동은 공원이고
(건과 은오) 에이
(린이) 왜?
비싼 돈 주고 피트니스 갈 필요 없이 운동 기구 다 있고
(은오) 아니야, 린이야, 추웠어
(건) 그래, 그만 가자
봄 되면 다시 가
(은오) 야
이쯤에서 우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언제쯤 모양 좋게
그, 피트니스 회원권 같은 걸 끊을 수 있을까?
(건) 음
이번 생은 어림없다고 봐
(은오) 야, 내가 호텔 마케팅 같은 것도 좀 해 봤잖아
거기 피트니스 회원권 얼마인 줄 알아?
아휴, 됐어, 나 시급 9천 원이야
(린이) 운동, 공원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
진짜 우리 중에
인생의 앞날에 희망이 보이는 인간은 없는 거니?
(건) 얘, 충분히 희망차, 남친이 최경준이야
(은오) 그래, 경준이 돈 많지, 많을 거야
(린이) 잠깐, 나 정색하고 말하는데
그게 경준이랑 무슨 상관이지?
나는 조금 정색하고 말하면 너 경준이랑 결혼할 거잖아
나 결혼할 마음 없어
경준이 아니라 그 누구하고도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가 목을 가다듬는다]
(은오) 네, 여보세요
아, 네, O3 이은오입니다
네, 맞아요
아, PT요? 오늘요?
씁, 아, 이렇게 갑자기…
(건) 야, 영화 보기로 해 놓…
(은오) 아, 네, 가능합니다, 완전 가능합니다
네,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는 O3입니다
네,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휴대전화 조작음]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O3 이제 막 일이 쏟아지기 시작한
[흥얼거리며] 다 다다다 다다 다다다
아, 잠깐만
그러면 PT 전에
피부 관리 좀 들어가 볼까?
잠깐만 [익살스러운 음악]
- (린이) 갑자기? - (건) 또?
(건) 해 봐 봐
이야, 쟤는 자기가 저런다고
저 제품 마케팅을 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린이) 아니, 뭐, 광고주가 봐?
[건의 한숨]
[린이의 어색한 웃음]
(건) [한숨 쉬며] 다 했어?
[은오의 옅은 웃음]
(건) 근데 너 아까 경준이랑 결혼할 마음 없다는 거, 그거 진짜야?
아니지? 경준이 알아?
결혼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는데 경준이랑
야, 말 안 했으면 경준이 당연히 너랑 결혼하…
(은오) 야, 야, 야, 지금 우리가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
[건강식품을 탁 내려놓으며] 자네, 요즘 소설을 쓰고 있기나 해?
린이도 하나 먹고
우리 린이 남자 믿지 말고
언니 믿고 딱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 언니, 사랑해요
[경준의 한숨]
(경준) 예쁘긴 이게 진짜 예쁜데
하지만
이걸로 할게요
(점원) 처음 고르신 게 요즘 제일 핫한 상품인데요
딱 봐도 그런데요
(경준) 그래도 그냥 이걸로 할게요
(점원)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차에 싣고 갈 수 있죠?
(점원) 네, 가능합니다
[잔잔한 음악]
(경준) 아휴, 우리 린이 자전거 한 대 사 줘야겠네
- 린이야 - (린이) 경준
(린이) 잘됐다, 우리 이거 싣고 은오네 가자
아니, 내가 협탁 필요하다 그랬잖아
근데 이게 딱 여기 나와 있다?
이거 리폼하면 너무 예쁘겠지?
빨리 트렁크 좀 열어 봐 봐
(경준) 잠깐만
아, 이거 우리랑 같이 일하는 인테리어업체에서
오픈 하우스에 뒀던 건데 내가 얻어 놨어
(린이) 아, 정말?
(경준) 그러니까 이거, 이것 좀 이런 것 좀 버리고, 이런 거…
[경준이 협탁을 탁 내려놓는다]
저거 비싼 거야?
[재원의 한숨]
- (직원1) 안녕하세요 - (재원) 네
(재원) 한결 씨, 최 대리는요?
(직원1) 아, 새벽에 판교 현장 간다고…
팀장님, 그, 주말에 받은 O3 자료요
좀 찾아봤는데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이 결과가 되게 좋더라고요
이번 비딩에 참여 요청할까요?
회사 규모가 좀 작던데 괜찮겠어요?
음, 큰 회사가 맡아도
어차피 실무자는 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서 괜찮을 것 같고요
(직원1) O3에서 몇 달 전에 맡았던
미술관 개관 파티 프로젝트 찾아봤는데
소셜 미디어를 되게 잘 이용했더라고요
안 그래도 참신한 업체 찾고 있었는데 잘됐어요
이따 최 대리님 출근하면 상의해서 미팅 잡아 보려고요
일단 자료 내가 좀 더 훑어볼게요
(직원1) 네
(린이) 딱, 딱 봐도 비싸 보이지?
완전 새거 같지?
30에 사 [경준의 당황한 신음]
(건) 무슨 30이야 10만 원 주고도 안 사겠다
(경준) 야, 그거 수입 브랜드야
원래 얼마인데?
(린이) 얼마야?
(경준) 120 정도…
[놀란 신음]
나도 얻은 거긴 한데
- (경준) 대충 그 정도 될걸? - (건) 이게?
(린이) 진짜? 이게 그렇게 비싼 거였어?
야, 30은 안 되겠다
전시했던 제품이니까 50
오, 싫어
(린이) 아, 얘 진짜 물건 볼 줄 모르네
이렇게 비싸고 좋은 물건을
야, 너한테는 50만 원에도 안 팔아 [건이 코웃음 친다]
(경준) 린이야, 쟤한테 팔지 마, 너무 싸
(린이) 너무 싸?
[건이 서랍을 쓱 여닫는다] (린이) 오, 본다, 본다
[휴대전화 진동음]
어, 형
나 판교 현장 가는 날이잖아
[은오가 숨을 후 내뱉는다]
난 옛날의 이은오가 아니다
잘하자, 이은오
(재원) 이은오 씨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봐
[경준의 헛웃음]
(경준) 지금 그거 물어보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난 사람을 불러?
[컵을 탁 내려놓는다]
(재원) 너는 꼭 판교 현장 간다고 하고 린이 만나러 가더라?
아니, 자재 들어오는데 받을 사람 없어서
(경준) 진짜 새벽 4시에 갔어
아, 린이 만나러 간 거 맞는데 오늘 할 일 다 하고 갔다고
하, 이 사람 보소?
나도 나인 투 파이브 하고
시간 외 수당 다 따지고 한번 그렇게 해 볼까? 어?
[입소리를 쩝 낸다]
(재원) 한결 씨가 이 업체 괜찮다더라?
그러면 비딩 참여하라고 해?
(경준) 근데 은오에 대해서는 왜 물어봐?
(재원) 야, 너 근데 주말의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너 린이랑 둘이서 클라이언트 하나 날려 먹고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야, 그랬으면 나한테 무슨 해명을 했어야 될 거 아니야
- 미안해 - (재원) 그래서
그래서 그 클라이언트랑
이 이은오 씨랑, 뭐
결, 결혼을 하려고 했었던 거야?
[건의 시원한 숨소리] (린이) 나 강민수 만났다?
경준이네 회사에 집 지으려고 왔더라고
(건) 은오랑 왜 헤어졌는지 물어봤어?
결혼을 하셨더라고
- 같은 항공사 여자랑 - (건) 어?
(린이) 대박이지?
애가 벌써 9개월이래
작년에 은오 부산 내려갔을 때 있지?
그때 이미 여자는 임신 상태였던 거지
[젓가락을 탁 내려놓는다]
은오 만나던 중에 바람피운 거 아니야
- 응 - (건) 걔 아직 부산에 있대?
지금 기차 타고 부산 가자, 빨리
(린이) 아, 경준이가 벌써 때려 줬어 나 막 콜라 퍼붓고
앉아, 앉아
[한숨]
그래서 헤어진 거였네
그래서 은오가 석 달간이나 사라졌던 거고
롱디 힘들다고 은오 부산까지 부를 땐 언제고
(경준) 부산에서 같이 지내다가
그 새끼 서울 발령 받으면 결혼한다고
이은오 직장도 부산에 구했었잖아, 그때
근데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야 세 달 동안
린이 그때 영국 엄마한테 가 있었는데
은오 때문에 들어왔잖아
아니, 그러면 그때
그 자식은 좀 만나 본 건가?
(경준) 찾아가 봤는데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졌다고 하더라고
아, 맞는다 은오가 취직한 호텔에 찾아갔었다?
린이랑 나랑 그때…
은오랑 같이 면접 본 여자애를 만났었는데
(여자) 아, 이은오 씨는 입사가 취소됐어요
연락을 못 받았는지 첫 출근을 했더라고요
(린이) [한숨 쉬며] 아니, 무슨 회사가 그래요
[경준의 한숨] 갑자기 입사가 취소되고
[한숨 쉬며] 그래서 내 친구는요?
내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여자의 난감한 신음] (경준) 혹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여자) 아, 그것까지는 잘…
아휴, 이은오 씨 착하던데
잘됐으면 입사 동기였을 텐데
아, 너무 걱정 마요
뭐, 기회는 이때다 하고
[살짝 웃으며] 긴 여행이라도 갔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휴, 감사합니다
(경준) 핸드폰도 아예 없애 가지고
실종 신고를 하네 마네 뭐, 난리도 아니었어, 그때
린이 맨날 울고
[애잔한 음악]
(재원) 그러면 다시 나타났을 땐
뭐, 어디에 있었다 이런 얘기는 없었고?
강민수 그 새끼랑 왜 헤어졌는지 말도 안 하더라
(경준) 대충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작 가지 않아?
남자 새끼는 바람피워 호텔 취업은 취소돼
그것도 오갈 데 없는 객지에서
[한숨]
그러고 나서 이은오 성격 엄청 변했잖아
바보같이 착했는데, 얌전하고
바보같이 착했어? 얌전하고?
(은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나눠 준다고
기업 이미지가 좋아질까요?
[리모컨 조작음] 저희 O3는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자, 몇 가지 연극 포스터들을 들고 와 봤어요
요즘 대학로에서 핫하게 공연되고 있는 '너 라면 어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작품도 롱런 조짐이 보이고 있죠
'스캔들 나기 좋은 날'
'결혼의 맛'
자, 이제 제가 보여 드릴 포스터들 중에서
다른 점을 찾아 보세요
자, 그냥 서 있던 배우가
이 라면을 들고 있고 '너 라면 어때'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음료를 들고 있습니다
어때요? 제품이 확 살죠?
포스터뿐만이 아닙니다
여주인공이 대사를 하는 내내
이 라면을 들고 대사를 하는 거죠
왜? 라면을 끓이려는데 남자 친구가 찾아왔으니까요
딩동
누구세요?
철컥, 끼익
어머, 이 시간에 웬일이야?
할 말 있다고? 지금 새벽 3시야
라면? 어, 자려다가 배가 고파서
너도 먹을래? 이 라면 맛있는데
[웃으며] 잠깐만
[의아한 숨소리]
근데 너 왜 왔어?
뭐? 헤어지자고? 왜!
지금 이게 이 시간에 찾아와서 할 말이야?
이유가 뭐야?
여자가 있다고?
어떤 여자? 언제부터인데?
[헛웃음]
너라면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어?
언제부터야, 날 속인 게!
이렇게 연극 핵심 장면 내내 이 라면을 들고 대사를 하는 거죠
괜찮은데 이게 드라마 PPL하고는 어떻게 다르죠?
드라마처럼 파급력이 있을 거 같지도 않은데
아, 이건 메인 광고가 아니라
감성 마케팅이죠
[흥미로운 음악] (은오) 앞서가는 식품 전문 업체가
문화 콘텐츠를 후원한다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를 같이 노리는 거죠
(담당자1) 근데 그 정도는
[살짝 웃으며] 제품만 갖다줘도 될 거 같은데
(은오) 그래도 되죠
그런데 그 정도로 후원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부끄러우시죠
네, 부끄러우실 겁니다
(담당자2) 솔직히 우리 회사 마케팅 팀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옅은 웃음]
(은오) 네, 그래도 되죠
[라면을 탁 내려놓으며] 그런데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가는 건 정말
부끄러우실 거예요
[담당자2의 한숨]
(담당자3) 정말 기대 이상인데요?
아까 그 정도면 진짜 반응 좋은 거예요
(은오) 제가 항상 기대 이상을 해냅니다 맡겨만 주세요
[은오의 옅은 웃음]
오늘 면접 보나 봐요?
(담당자3) 아, 네, 오늘 두 명 뽑는 건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원해 가지고 하루 종일 면접 보게 생겼어요
커피? 녹차?
(은오) 아, 예, 저는 녹차로, 네, 감사합니다
[차분한 음악]
- (직원2) 읽어 보세요 - (은오) 네, 감사합니다
[은오가 중얼거린다]
[여자의 한숨]
[은오가 중얼거린다]
(은오) 그때
윤선아를 만나지 않았으면
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은오의 한숨]
(은오) 여러분, 긴장하지 맙시다!
그냥, 그냥 자연스럽게 하세요
우리의 진가를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볼 테니까
- (은오) 여러분, 파이팅! - (면접자) 파이팅!
(은오) [손뼉을 딱 치며] 파이팅!
- 아, 녹차 제가… - (담당자3) 네
[한숨] - (경준) 형 - 응
(경준) 그러면 은오한테도 이 비딩 제안 요청서 보낸다?
아, 은오 일 잘해
커리어 봤으면 알 거 아니야
아, 맞는다
내일 걔네 집에서 옥상 캠핑 할 건데 형 올래?
형, 와라
이은오 씨 집에서?
(재원) 어, 저번처럼 그냥 지나가다 들른 걸로 서로 부담 없이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도 해 보고
아니, 무슨 한겨울에 춥게
(경준) 에이, 이 사람아
냉면이 괜히 겨울 음식이겠어?
형 겨울에도 평양냉면 맨날 먹잖아
그냥 그런 거야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 거기가?
응, 괜찮아
걔 어차피 작업실 셰어해, 친구랑
그, 건이 내 친구 소설가 백수 있지? 걔랑
아니, 무슨 사는 집을 남자랑 셰어를 해?
뭐, 같이 사나?
[옅은 헛기침] 사귀나?
에이, 무슨 소리야 걔네 그냥 소꿉친구야
(경준) 따뜻하게 입고 와, 추워 [재원의 호응하는 신음]
내일 봐
[밝은 음악]
[시원한 숨소리]
[컵을 탁 놓는다]
(은오) 어
아, 됐다
- (은오) 다 됐어? - (경준) 어, 다 돼 가
[경준이 중얼거린다]
[문이 탁 열린다]
(경준) 얘들아, 불 다 됐다, 이제 고기 올리자 [문이 탁 닫힌다]
[건과 린이가 대답한다] 나 이거 갖고 갈게
(건) 야, 이것도
[냉장고 문이 탁 닫힌다] (린이) 경준
은오한테 강민수 만난 얘기 하지 마
(경준) 아, 내가 바보예요? 좋은 기억도 아닌데 뭘 얘기해
(린이) 얼마나 상처받았으면
우리한테 그 새끼 이름도 안 꺼내겠어
야, 근데 은오 커플 링 있다?
(린이) 뭔 소리야?
[흥미로운 음악]
(건) 반지를 두 개나 매달아 놨던데 목걸이에?
(경준) 에이, 설마 강민수
그 새끼 못 잊고 막 그런 거 아니겠지?
- (건) 에이 - (린이) 와
(린이) 아니, 바람피우고 딴 여자 임신까지 시켜서 헤어졌는데
그 반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고?
그럼 누구 건데? 딱 봐도 커플 링이었는데
(린이) 아, 아니야 강민수랑 한 반지 절대 아니야
(경준) 생겼다
남자 생겼다
아, 이은오 요새 우리한테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
아니, 남자 생겼다고
(경준) 뭐 들은 거 없어? 한번 조사를 해 봐
(건) [웃으며] 왜 이렇게 신났어?
- (린이) 가자 - (경준) 생겼다
넌 술 좀 챙겨 와
- (린이) 티 내지 마 - (경준) 알았어 [문이 덜컥 열린다]
[한숨]
술 [문이 덜컥 닫힌다]
[손가락을 딱 튀기며] 오케이, 술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 어유, 추워, 씨
어유, 왜 이렇게 춥냐, 오늘, 아…
[재원의 추워하는 숨소리]
아씨
아, 좀 따뜻하게 입고 올 걸 그랬나, 아씨
아, 너무 멋을 부렸나?
하, 참…
[한숨]
[숨을 후 내뱉는다]
- (경준) 먹자 - (은오) 먹자, 먹자, 먹자 [린이가 호응한다]
(건) 잠깐
- (은오) 오 - (건) 자
오늘 식사를 하기에 앞서
(건) 이 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 (은오) 아, 그냥 빨리빨리 따라 - (린이) 아, 빨리 마셔
- (경준) 먹어, 그냥 - (건) 노, 노, 노, 노, 노, 노, 노
너희 후회하지 마라
(건) 이 술이 어떤 술이냐
이게 100년 이상 된 원액을 1,200가지 섞어서 만든 술이거든
이거 내가 얼마 주고 샀는지 알아?
- 10만 원 - (은오) 누구한테 샀는데?
(건) 이 바보들한테서!
(경준) 원래 얼마인데, 그거?
(건) 씁, 이게 아마 한 병에 300?
(경준) 이 새끼, 일로 와 [은오의 놀라는 신음]
너 일로 와, 이 새끼야
이 사기꾼 놈!
[건의 다급한 신음] (경준) 내놔, 내놔
(은오) 야, 너희 저렇게 비싼 술이 어디서 났어?
[건의 가쁜 숨소리]
- (경준) 우리 형 - (린이) 박재원
(경준) 아, 우리 형이 얼마 전에 여자한테 호되게 당해 갖고
알코올 중독 직전까지 갔었잖아
(린이) 알지? 그 카메라 훔쳐 간, 그
[어색한 웃음] (건) 카
얼마나 순정파냐
술 취해서 그 여자 찾겠다고 파출소까지 들락거리고
그래서 최경준이 그 집에서
술이란 술은 있는 대로 다 가지고 와서 나한테 팔았는데
(린이) 겨우 10만 원에
내 손에 있는 게 300만 원짜리면
저 안에 있는 건 얼마짜리일까?
(린이) 사기꾼
(건) [뚜껑을 뻥 따며] 이은오
너부터 줄게, 한번 맛봐
(은오) 응
(경준) 야, 이 새끼야
넌 그게 그렇게 비싼 술이면 비싸다고 말을 해 줬어야지
이거 완전 흉악한 놈이네, 이거
새끼라고 했어?
그래, 이 새끼야, 이 사기꾼 새끼야
- (건) 다음 우리 린이, 한잔할래? - (경준) 야, 야, 잠깐 스톱
(경준) '우리'라는 말은 빼라
린이한테 '우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거는 이츠 미
(건) 경준이의 린이, 한잔 받으시게
- (경준) 아, 야, 야, 방울! - (린이) 에이
[경준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 너 이거 무슨 맛인지 알겠어?
(경준) 어, 형, 어디야?
[건이 술을 쪼르르 따른다] 다 왔어? 잠시만
- (경준) 어, 형, 여기야, 올라와 - (재원) 어
(린이) 재원 오빠?
아,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다
(경준) 내가 불렀어, 괜찮지?
[긴장되는 음악] (건) 어, 이 술 이거…
(경준) 계단 올라와
형!
[초조한 숨소리]
(린이) 오빠, 얼른 와요, 우리 막 시작했어
(경준) 내 친구들 처음이지?
인사해! [경준의 웃음]
(건) 안녕하세요, 강건이라고 합니다
(재원) 내가 박재원이에요, 네
[재원의 웃음] (건) 어유, 잘생기셨다
(재원) 되게 보고 싶었는데 [건의 멋쩍은 웃음]
(린이) 내 친구, 오빠
[재원의 한숨]
처음 뵙겠습니다, 박재원이에요
네
[애잔한 음악]
거, 어떤 사람인지 되게 궁금했어요, 이은오 씨
(경준) 악수를 왜 이렇게 오래 해
- (경준) 빨리 갖고 온 거 내놔 - (재원) 여기
(경준) 어? 뭐야?
형 반지 뺐어? 반지 어디 갔어?
(재원) 아, 이거?
버렸어
그 여자 모든 게 다 가짜라서
(경준) 건아, 1인분 세팅
(건) 아, 형님, 잔 내가, 그럴게
- (경준) 형, 앉아 - (재원) 응, 고마워
(린이) 오빠, 앉아 [은오의 옅은 헛기침]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아니, 오빠 춥겠다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어
(재원) 별로 안 추운데, 괜찮은데?
- (린이) 차 갖고 왔어? - (재원) 응
(린이) 그럼 대리 불러야겠네
오빠, 여기 예쁘지?
(재원) 좋다, 되게
(린이) 이은오, 괜찮아?
(은오) 응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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