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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남녀의 사랑법 12

(건)  형님, 저희 오늘 양주라서


 이거 가지고 오신 거 킵해 놓겠습니다


 (재원)  야


 많이 보던 거다, 저거? 어?


 알코올 중독에서 구원받은 기분은?


 (재원)  야, 내가 무슨 알코올 중독이야  새끼야


 야,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 새끼야


 - (경준) 린이야, 우리 많이 먹자  - (린이) 응


 (건)  저기, 카메라 도둑 때문에  많이 속상하시죠?


 제가 한잔 드리겠습니다


 (경준)  야, 야, 야, 어디서  은근슬쩍 술을 먹으려 그래


 아직 안 돼


 카메라 도둑 다 잊기 전에는 안 돼


 한 잔도 안 돼  한 모금도 안 돼, 내려놔


 [건의 한숨]


 (린이)  자, 그럼 알코올 중독 한 분 빼고


 - (린이) 다들 원샷!  - (건) 아니, 잠깐, 물이라도 드려야지


 (건)  저기, 물, 물이라도…


 죄송합니다


 [한숨 쉬며]  자


 오징어!


 (린이와 경준)


 (린이)  통통통


 (함께)


 (경준)  찬찬찬


 (함께)


 (건)  해


 (은오)  흥청망청


 (함께)  [술잔을 테이블에 탁탁 부딪으며]


 - (경준) 짠!  - (은오) 야!


 (건)  [웃으며]  '야'?


 형, 근데 아까 그거 무슨 말이야?


 반지 언제 뺐어?


 (건)  뭘 물어봐


 파출소 가서  딱 그 도둑 잡고 나와서 버린 거지


 '이제 나한테 넌 죽은 존재다'


 '이 반지와 함께 너를 버린다'


 (경준)  잘했어  [은오의 한숨]


 [은오가 술을 조르르 따른다]


 (건)  [한숨 쉬며]  형님


 솔직히 제가  형님의 심정을 알 수 없어요  [은오가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그러니까, 야, 경준아, 한 잔만 드리자


 (경준)  에이, 안 된다니까


 너 파출소 가면 네가 데리러 갈래?


 안 된다고


 아, 진짜


 (건)  다신 그러지 마세요


 [건이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재원이 코를 훌쩍인다]


 이은오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흥미진진한 음악]


 본인 연애사를 다른 사람들한테  다 공유하는 편인가 봐요?


 이은오 씨는 몰래몰래  숨어서 하는 편인가 봐요?


 네, 저는 되도록 몰래몰래 해요  온 동네방네 소문 안 내고


 (재원)  [호응하며]  예, 내가 잘못했네요


 내가 혼자 피 철철 흘려 가면서  죽었어야 되는데


 온 동네방네 소문 다 내면서  울고불고 난리 쳐서


 내가,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내가, 내가…


 [한숨]


 [헛기침하며]  내가 잘못했네, 어


 [재원이 코를 훌쩍인다]  (건)  왜 그러세요?


 (린이)  분노 조절 장애 생긴 거 같아, 오빠


 - 야, 내가…  - (경준) 그런 거 아니고


 (경준)  아픈 사람이야, 이해해


 (건)  은오야, 형님이 카메라 도둑 때문에  충격이 크셔서


 네가 조금만 이해해


 (린이)  오빠, 좋은 여자 곧 나타날 거야


 (건)  맞는다, 너 목걸이


 - (린이) 어? 맞아  - (은오) 응?


 (경준)  그래, 너 목걸이 있다며, 목걸이


 (린이)  너 커플 링 뭐야? 남자 친구 생겼어?


 (건)  왜 우리한테 말 안 해?


 (경준)  꺼내 봐, 꺼내 봐, 꺼내 봐, 꺼내 봐


 (은오)  야, 다들 나한테 신경 끄시지?


 남자 친구 생긴대도  너희한텐 절대로 말 안 해


 나는


 누구처럼 온 동네방네


 사생활 알리고 그러지 않을 거야


 - (린이) 어, 어디 가?  - (은오) 화장실


 (경준)  야, 친구면 그런 거는  얘기해 줄 수 있지, 야


 [재원의 한숨]  어?


 (건)  [작은 목소리로]  저거 진짜 비밀 많아


 (경준)  지나가는 강아지한테 물어봐도


 대답해 주겠다, 야  [한숨]


 [세면대 물이 쏴 흘러내린다]


 [한숨]


 [세면대 물이 뚝 멈춘다]


 [숨을 후 내뱉는다]


 어떻게 알고 왔지?


 날 보고도 안 놀랐어


 다 알고 온 거야


 [한숨]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온 거지?


 (경준)  아, 맞는다


 은오 기획서랑  비딩 제안 요청서 갖고 왔는데


 까먹기 전에 줘야겠다


 야, 이거 내가 갖다줄게  나 지금 화장실도 가야 돼


 - (경준) 그럴래?  - (재원) 응


 (건)  저거 뭔데?


 - (재원) 이거 비밀번호가…  - (건) 0660 별요


 [도어 록 작동음]  지난번에 네가 준 은오 기획서 있잖아


 - (건) 응  - (경준) 반응이 좋아 가지고…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은오의 한숨]


 (재원)  [한숨 쉬며]  경준이는 이것 때문에 온 줄 알아, 응


 내 사촌 동생이랑 많이 친한가 봐


 [픽 웃으며]  상상도 못 했네


 [한숨]


 [한숨 쉬며]  참 재밌다


 뭐, 어쩌다 보니까 내가 O3에


 [픽 웃으며]  제안 요청서까지 들고 오고


 이은오 씨는 마케터인가 봐


 나 너랑 일 못 해


 당연하지, 나도 너랑 일 못 해


 그럼 여기 왜 왔어?


 (재원)  그냥 좀 확인하고 싶었어  여기에 적힌 이은오가


 내가 파출소에서 만난  이은오가 맞는지


 [한숨]


 확인 끝났으면 가


 (재원)  야, 근데


 너 나한테 할 말이 그게 다야?


 무슨 말이 더 듣고 싶은데?


 무슨 말을 들어야 내 화가 풀릴까?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안 풀릴 것 같은데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한숨]  (재원)  아니, 적어도 무슨 설명이라도 해 봐


 왜 네 친구들한테는  양양에서 있었던 일을 말 못 하는지


 왜 나랑 그렇게 헤어졌는지


 왜 내가 너 찾아 헤매는 거


 경준이한테 다 들어서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 숨어 있었는지, 어? 말해 봐


 어?


 [한숨]


 아, 답답해


 아, 야, 나 진짜  너무 답답해 죽겠다, 진짜, 어?


 [한숨]


 이은오는 이런 성격이었구나


 윤선아는 안 그랬는데


 [애잔한 음악]  넌 진짜


 다 가짜였구나, 나한테


 네가 만약에 선아였으면


 지금 무슨 말이라도 했을 거야  그게 억지라도


 선아는, 선아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나한테 얘기해 줬을 거라고


 난 그래서 선아가 좋았던 거고


 그래서 이은오가 택한 이별 방식이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거였어


 선아는 그렇게  사라질 애가 아니었거든


 그렇게 뭐, 말도 안 되는  카메라 도둑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뭐, 이런 애가 아니거든


 선아는 나랑 헤어질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나한테


 적어도 나한테


 끝이라는 말은 분명히 했을 거야


 걘 너처럼 비겁하지 않아


 넌 진짜 처음부터 다 가짜였고


 다 거짓말이었어


 [문이 탁 여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흐느낀다]


 [은오가 연신 흐느낀다]


 - (경준) 어떻게 됐어?  - (재원) 어, 일단 자료는 다 넘겼고


 (재원)  뭐, 자세한 건 네가 좀 설명해 줘


 [경준의 어깨를 툭 치며]  나 간다, 어, 갈게


 (건)  벌써 가시게요?


 - (재원) 다음에 또 봐요  - (건) 네


 - (린이) 오빠, 가  - (경준) 전화할게  [재원이 대답한다]


 (건)  조심히 가세요


 이야, 저 형님 완전 쿨하시다


 완전 내 스타일


 (경준)  린이야, 우리도 가자, 은오 내일 보고


 (린이)  그래


 (건)  잠깐만요  이거 또 내가 혼자 다 치우라고?


 (린이)  알겠어,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경준)  [웃으며]  가자! 가자, 가자, 빨리 가자


 잘 치우고 잘 자


 [경준이 뽀뽀를 쪽 한다]


 [경준의 웃음]  (린이)  만둥이 잘 자


 너 뭐 하는 새끼야? 어?


 - 야, 이…  - (린이) 저 바보는 맨날 주먹만 내


 (경준)  그러니까, 저 바보는 맨날 주먹만 내


 [경준과 린이의 웃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탁 열린다]


 [건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건)  야, 애들 갔어


 [건의 한숨]


 [은오의 한숨]


 (은오)  [달그락거리며]  네가 경준이한테 줬지, 내 기획안?


 경준이 인맥 넓잖아  우리 중에 제일 잘나가고


 그냥, 뭐, 어디 아는 회사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건)  야, 솔직히 너 믿으니까  그렇게 뿌리고 다닌 거지


 실력도 안 되는 애를  아무 데나 갖다 밀어붙였겠냐?


 봐라, 봐, 당장 박재원 씨 찾아온 거


 (은오)  아니, 비딩도  내가 능력이 돼야 따 오는 거고


 아, 몰라


 진짜 너무너무 비참해


 뭐가 비참해, 아니야, 그런 거


 [은오가 코를 훌쩍인다]


 (건)  어어!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숨을 카 내뱉는다]


 야, 그거 한꺼번에 백만 원어치를…


 확인 끝났으면 가


 무슨 말이 듣고 싶은데?


 - (재원) 이야!  - (은오) 이야!  [은오의 웃음]


 (재원)  하지 마


 [건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이야, 이거 언제 다 치우냐


 은오야, 설거지하자


 이거를 다 그냥 이렇게 두고 들어…


 야, 이은오


 이게 지금 한 병에 얼마짜리인데  이걸 한꺼번에


 지금 이걸, 얼마나 소중한 걸 이걸…


 (건)  어디 갔어


 [의아한 숨소리]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흥미로운 음악]


 [술 취한 신음]


 [힘겨운 신음]


 (선영)  아니야, 아, 진짜


 아씨…


 오랜만이다, 이은오


 (은오)  언니,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선영)  나 건이한테


 건이한테는 왜요?


 집에서 쫓겨났어


 왜요?


 (선영)  네가 우리 아빠라고 생각해 봐


 나 같은 딸이 좋겠어?


 매일 이렇게 술 퍼먹고 다니는데?


 아니, 근데 집에서 쫓겨났는데  왜 건이한테 가요?


 갈 데가 건이밖에 없으니까


 - (은오) 건이 우리 집에 살아요  - (선영) 알아


 그래서 거기로 갈 거야


 [호응하는 신음]


 (은오)  안녕히 가세요


 (선영)  야


 너 지금 나 미친년이라고 생각하지?


 예?


 아니요, 저는 평소에 언니 진짜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영)  응?


 [의아한 숨소리]


 나 누가 봐도 미친년인데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어?


 [헛기침하며]  그래


 [선영의 힘주는 신음]


 [숨을 들이켠다]


 근데


 이 멋진 언니가  아직 건이를 못 잊었다


 왜냐?


 우리 건이가 나한테 옛날에 그랬거든


 우리가 헤어져도  엄마가 미친 듯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기한테 오라고


 우리 건이 멋있지?


 뭐, 괜찮죠, 건이


 너 건이 좋아하지?


 - 예?  - (선영) 씁!


 [흥미로운 음악]  (선영)  너 지금 내가 딱 말하는데


 너 나중에 건이랑 결혼하면


 나한테 죽는다


 (은오)  아니, 내가 강건이랑 왜 결혼을 해요


 아, 이 언니 진짜  왜 징그러운 얘기를 해요


 (선영)  씨!  [은오의 아파하는 신음]


 아


 우리 건이가 징그러워?


 (선영)  야, 우리 건이 안 징그러워


 우리 건이


 되게 섹시해


 아, 미쳤나 봐, 진짜  왜 때리고 그래요


 솔직히 옛날부터 네가 엄청 싫었어


 와, 이건 또 갑자기 뭔 날벼락…


 아니, 내가 왜, 왜 싫어요?


 건이가 너 좋아하니까


 (은오)  아니, 나도 건이 좋아해요  그럼 친구인데 안 좋아하나?


 (선영)  야


 너 가


 나 지금 장풍 쏠 거야


 그러니까 가


 쏜다


 장


 풍!


 [자동차 경적]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씁, 추워서 손이 얼었…


 [입바람을 하 분다]


 [손바닥을 쓱쓱 비비며]  그럼 잠깐만


 다시


 장!


 풍!


 (은오)  와, 이 언니는 많이 취했네  우리 집 못 찾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선영)  어, 다시, 이게 잘 안 날아가…


 잠깐


 야, 야, 너, 너 집이 어디야?


 왜 대답을 안 하냐


 나 지금 왜 계속 여기지?


 아, 저기로…


 [한숨]


 이은오 또 버스 타러 간 거 아니야?


 쟤는 무슨 술만 마시면 버스를 타러 가


 [애잔한 음악]


 (재원)  다 가짜였구나, 나한테


 네가 만약에 선아였으면


 지금 무슨 말이라도 했을 거야  그게 억지라도


 (재원)  선아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말은  솔직하게 나한테 해 줬을 거라고


 난 그래서 선아가 좋았던 거고


 걘 너처럼 비겁하지 않아


 (재원)  넌 진짜 처음부터 다 가짜였고


 다 거짓말이었어


 [트렁크를 탁 놓는다]


 - (여자) 작지 않아, 나한테?  - (민수) 괜찮다니까


 [도어 록 작동음]


 (민수)  누구지?  [문이 탁 열린다]


 (은오)  자기야, 나 왔어


 나 생각보다 빨리 와서 놀랐…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민수)  아, 몰랐던 거 아니잖아  내가 너한테 맘 떠난 거


 아니야, 너 그런 말 없었잖아


 [한숨]  내가 수도 없이 신호를 줬어


 (민수)  너랑 있으면 답답하다고  [한숨]


 너 너무 지루해, 평범하고


 [애잔한 음악]  너랑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니까?


 [한숨 쉬며]  그걸 몰랐어?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거 아니고?


 [흐느낀다]


 나 일주일 뒤에 출근인데


 그럼 난 어떡하라고


 [은오가 흐느낀다]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가 연신 흐느낀다]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직원)  어떡하죠, 팀장님?


 (면접관1)  이은오 씨  입사 취소됐다는 연락 못 받았어요?


 네?


 그게 무슨…


 우리 인사 팀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면접관1)  문자도 남기고  이메일로도 알렸다던데


 (선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선아의 웃음]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게 된  신입 사원 윤선아입니다


 하, 제 면접 이야기는 다 들으셨죠?


 그 텐션 쭉 유지하면서


 여러분들의 스트레스  제가 확 날려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면접관1)  고마워요


 (선아)  어? 입사 동기?


 나랑 같이 면접 봤죠?


 [선아의 웃음]


 잘 부탁해요


 응


 (면접관1)  두바이 호텔에 가기로 했던 직원이


 발령이 취소돼서 여기 남기로 했어요


 그래서 마케팅 팀에는  한 명만 뽑기로 했어요


 왜


 왜 저만 입사가 취소됐어요?


 (은오)  같이 뽑으셨잖아요


 [면접관1의 한숨]


 윤선아 씨랑 같은 면접조였죠?


 (면접관1)  두 사람 다 서류 전형은  아주 훌륭했어요


 근데 윤선아 씨가 이은오 씨보다  면접 점수가 높았어요


 우리가 원한 건  신입 사원다운 패기와 도전 정신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였어요


 이은오 씨의 대답은


 너무 평범했어요


 평범했어요


 [한숨 쉬며]  미안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쓸쓸한 음악]


 어, 여보세요


 엄마, 나 은오


 아, 미안해, 핸드폰이 고장 나서


 민수?


 (은오)  어, 잘 있어, 잘 있는데…


 응, 걔가 엄마 전화를 안 받지


 어…


 엄마, 민수가  갑자기 해외 연수를 가게 돼서


 [울먹이며]  아니야


 아니야, 내가 뭐  걔 없다고 잘 못 지내나, 나 잘 있어


 회사도 너무 좋고


 어…


 다 너무너무 좋아


 어, 나 너무 재밌어, 부산도 너무 좋고


 엄마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진짜 많은데


 지금 전화로는 못 하거든?


 응


 내가 직접 만나서 다 설명할게


 응


 무슨 소리야, 내가 울긴 왜 울어


 아니, 그냥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엄마 너무 보고 싶어서


 [흐느낀다]


 [은오가 흐느낀다]


 (은오)  그때도 오늘처럼 버스를 탔어


 [연신 흐느낀다]


 그 버스가  나를 박재원에게 데려다줬어


 (은오)  가끔 생각해


 그때 내가 그 바다로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빈의 서핑"


 (빈)  점심 먹으러 온 거면 여기 앉아


 손님 왔어


 (라라)  뭐 먹을래?


 아, 메뉴…


 [빈의 웃음]


 (라라)  라면?


 (은오)  네


 (라라)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라면 시키더라고


 [빈의 웃음]


 라면


 (은오)  아니요, 잠깐만요


 저 안 평범한데요


 (라라)  응?


 저


 홍콩 완탕면


 (은오)  안탄…


 (함께)  완탄몐  [원어민 음성 효과음]


 (라라)  맛있게 먹어


 [빈이 흥얼거린다]


 [입바람을 후후 분다]


 (빈)  응?


 [잔잔한 음악]


 [숨을 하 내뱉는다]


 (빈)  더 줘?


 (빈)  응


 천천히 먹어


 [입바람을 후후 분다]


 어유


 잘 먹는다, 응?


 [작은 목소리로]  알았어


 (라라)  아침 안 먹었어?


 [살짝 웃으며]  일주일 동안 거의 못 먹었어요


 [안타까워하는 신음]


 (빈)  [달그락거리며]  어, 어, 이거 더 먹어


 더 먹어


 [은오가 젓가락을 달그락 집는다]


 [코를 훌쩍인다]


 [차분한 음악]


 [훌쩍인다]


 [빈이 달그락거린다]


 (빈)  자, 이거 마저 먹어


 한 냄비를 다 먹냐?


 이제 없어


 저 여기서 일해도 돼요?


 (라라)  어?


 - (빈) 아니  - (라라) 돼


 [빈과 라라의 당황한 신음]


 (빈)  어


 - (라라) 안 돼  - (빈) 돼  [빈의 당황한 신음]


 (라라)  하나, 둘, 셋


 (빈과 라라)  돼


 (빈)  어  [빈과 라라의 웃음]


 - (빈) 너무 잘 맞아, 너무 잘 맞아  - (라라) 사랑해


 (빈)  나도 사랑해  [라라의 웃음]


 [은오의 옅은 웃음]


 아, 그래, 어…


 같이 일할 거면 그, 이름은 알아야지


 이름이 뭐야?


 이름


 꼭 말해야 돼요?


 (라라)  안 해도 돼


 근데 우리가 부를 이름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아…


 (빈)  어, 네 마음대로


 네가 불리고 싶은 대로 지어  [라라가 호응한다]


 (은오)  그때


 윤선아가 생각났어


 (면접관1)  윤선아 씨는 오늘 느낌이  아주 캐주얼하시네요?


 (선아)  네, 마케팅은  고객 대면 부서가 아니니까요


 옷은 어차피  합격하면 유니폼이 나올 거고


 머리는 곧 염색하고 정리하면 되고요


 면접에서는 제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 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어울리지 않나요?


 (면접관1)  네, 잘 어울리네요  [면접관들의 웃음]


 취미가 어떻게 돼요?


 (선아)  댄스입니다


 [면접관2의 웃음]


 (면접관2)  아니, 그런 건  확인이 좀 어렵지 않나?


 (선아)  뭐, 한번 보여 드릴까요?


 제가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선아가 살짝 웃는다]


 아, 뭐, 음악이 없으면 서운하니까


 씁, 아, 거기 빨간 넥타이 매신 분


 핸드폰 음악이라도 틀어 주시면


 제가 분위기  확실하게 한번 띄워 보겠습니다


 (면접관3)  어어, 음악이…


 근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듣는  음악이 아닌데


 (선아)  아, 괜찮습니다, 아무거나 주세요  [면접관3의 웃음]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좋아요


 그, 박수 한 번만 주세요


 그럼 전 윤선아로 할게요


 (빈)  윤선, 윤선이?


 아니요


 윤선아


 [애틋한 음악]


 (은오)  그렇게 난 윤선아가 됐어


 그리고 박재원을 만났어


 (선영)  바람직한 이별?


 그래, 뭐


 그런 게 가능한 거라면  나도 그렇게 헤어지고 싶지


 [한숨]


 정말 그렇게 이별할 생각은 없었어


 나라고 뭐, 그렇게 헤어지고 싶겠어?


 그래도 좋아했던 사람인데


 옷이나 벗기고 가방으로 패고


 내가 준 물건 다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어


 박재원이랑 청계천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


 나왔었어, 카메라 가방 들고


 급하게 서울로 간 그 사람에게


 미처 전해 주지 못한  카메라 가방 돌려주고


 모든 걸 고백하려고 했었어


 그냥 난


 '선영아, 이러지 마'


 '나 너 좋아해'


 뭐, 그런 말을 듣고 싶었어


 근데


 기다리고 있는 재원을 보니까


 (은오)  [한숨 쉬며]  나설 수가 없었어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남긴 거야


 '네 카메라 내가 훔쳤다'


 차라리 나를 미워하라고


 나쁜 년이라고 욕하라고


 그 마음으로


 나를 잊으라고


 근데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주질 않더라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다들 나를 떠나가더라고


 나도 그렇게 헤어지고 싶진 않았어


 그렇게 헤어지고 싶진 않았어


 (선영)  그냥


 사랑한다는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서


 나도 다른 사람한테  당한 적이 있으니까


 재원의 마음을 알아


 어떻게 하면 사랑을 확인받는지


 어떻게 헤어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


 어떻게 박재원과 헤어졌어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영원히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후회만 해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만 해


 [한숨]


 외롭다


 [피곤한 신음]


 (은오)  여기가 어디지?


 [은오의 놀라는 숨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란 숨소리]


 (선영)  씨…


 언제 나오냐, 아, 힘들어, 씨


 아, 찾았다!


 강건아, 놀자!


 여기가 아닌가


 [흥미진진한 음악]


 씁, 아닌가?


 찾아야지, 뭐, 또


 [코를 훌쩍이며]  아, 추워


 건이야


 어?


 이 자식, 아직도 안 갔냐?


 장풍!


 아이, 단단한 새끼, 씨


 장풍!


 풍!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내가 너 인정, 오케이


 잘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영이 코를 훌쩍인다]


 아유, 참  [선영의 헛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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