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의 사랑법 16
(학생1) 야, 너부터 말해 봐
(학생2) 아니야, 너부터
[함께 웃는다]
(학생1) [헛기침하며] 일단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지
(학생2) 무슨 소리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먼저잖아
(함께) 응?
아, 같이 좋아해야지! [함께 웃는다]
[새가 지저귄다] [피식한다]
그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어릴 땐 잘 몰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해서 연애를 시작할 확률
아마 온 우주가 다 도와야 가능한 일일걸?
(린이) 시간이 좀 지나잖아?
그럼 자꾸 잊어버리게 돼
우주가 도와줘서 우리가 만났다는 걸
아, 그, 환상 같은 게 다 사라졌어
맨날 싸우고 파출소 오는 연인들만 보니까
아이, 물어보잖아요 어떤 연애가 하고 싶은지
사실 나는 모솔이라서
(병준) 예? 정말입니까?
아니, 그 얼굴에 그게 가능합니까?
아무튼 연애 언젠간 해야지
(동식)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날 선물처럼 올 거라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난 이거 잘생겨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병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올 거라고 믿어?
(동식) 나한테 한 말이야?
아니, 인터뷰다
(병준) 이거 반말 인터뷰잖아
죄송합니다
(재원) 야, 뭐 하냐, 늦겠다, 빨리 가자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도 연애의 일부라고 생각해
설레는 것만 연애는 아니잖아
어?
봤지?
우리 경준이는 좀 타고났어
난 연애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어
근데 이제 시시해
- (건) 치 - (선영) 그래도 여전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혼자는 너무 외롭잖아
이 넓은 세상에서
내 편 하나 있으면 든든하지 않겠어?
[힘주며] 아이고
내가 예전에 선영이랑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했었거든?
'엄마 보고 싶을 때마다 나한테 와라'
근데 지금은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네
헤매다가
할 거 다 해 보고
그런 다음에
[잔잔한 음악] 나랑 한 번 더 만나자
(건) 걔는 무슨 말인지 몰라
모를 거야
옛날에도 몰랐던 것처럼
(재원) 네, 이것 때문에 이렇게 계단 위치랑
이런 것들을 바꾸면서 조금 늦어졌습니다
(건축주) 사실 자꾸 늦어지기만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설계 변경 전보다 훨씬 좋네요 [함께 웃는다]
(경준) 내가 진짜 건축주한테 돌 안 맞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
이걸 해내 버리네?
하, 장하다, 멋있다, 박재원
귤까지 선물 한 박스 딱 받고
(재원) 야, 너는 인마, 형을 어떻게 보고, 어?
아휴, 씨
(경준) 이제 끝났지?
더 이상 미친 짓 없어, 이제
알았어, 안 해, 안 해
야, 차 키나 줘, 내가 열어 줄게, 빨리
요즘 같은 시대에 차 키가 뭐가 필요해
(경준) 가운데 딱 잡고 발로 삭
(재원) 오, 뭐야, 이런 게 돼?
이거 한 번도 안 해 봤어?
(재원) 내 차도 돼, 이런 거?
되잖아, 이 바보야
야, 온 김에 가평 타운하우스나 한번 돌자
안 돼, 은오랑 미팅 있잖아
(재원) 몇 시에?
(재원) 야, 두 시에 미팅이 있었으면 그걸 좀 미리미리 얘기를 했었어야지
(경준) 아니, 회사로 오겠다는 분들을 굳이 여기까지 와 가지고
미팅해 가지고 시간 다 날려 먹은 게 누군데
하, 이씨, 그리고 좀 기다리면 어때
어차피 은오 내 친구인데
(재원) 야, 최경준, 내가 이거는 순전히
너의 인생 선배이자 직장 상사로서 하는 얘기인데
너 친구한테 그러는 거 그거 갑질하는 거야
아, 이게 또 무슨 갑질이야, 또
[큰 소리로] 아니, 기다리게 하면 그게 갑질이야 뭐가 갑질이야
(경준) 알았어, 알았어, 시끄러워, 시끄러워!
밟는다, 꽉 잡아라
[자동차 가속음]
[은오가 숨을 하 내뱉는다]
(은오) 너무 일찍 왔네, 괜히 없어 보이게
을일수록 제시간에 당당하게, 자신 있게
[긴장한 숨소리]
나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
(린이) 은오야
옛날에 너 바보 아니었어
[차분한 음악] 나 옛날에 바보 아니었어
(린이) 옛날의 너도 지금의 너도 넌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한숨 쉬며] 맞아
어떤 이은오라도 나는 이은오야
오늘도 실수할 수 있고 내일도 잘 안될 수 있지만
괜찮아
잘할 수 있다
[은오가 숨을 후 내뱉는다]
[초인종이 울린다]
(은오) 네, 이렇게 해서 모든 행사는 19시쯤에 끝날 예정이고요
여기 세부 실행안입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재원) 아, 우리 직원들이 동네 산책이라는 그 메인 콘셉트에
점수를 아주 후하게 줬더라고요
(경준) 그러니까
우리가 이 건물 지으면서 비슷한 말 했었잖아 [재원이 호응한다]
-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가는 공간' - (재원) 맞아
(재원) 아, 저는 이 건물 지으면서 그 생각 했어요
나무, 느티나무
그러니까 왜, 시골에 그런 거 있잖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냥 편안하게 쉬는 그런 공간?
(은오) 맞아요, 오랜만에 그 동네에 찾아가도
여전히 딱 버티고 있는 그런 느티나무 같은 건물
어, '우리 동네에 있는 그런 건물에도'
'가볍게 산책하듯이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취지로 만든 기획안이었죠
(경준) 그래서 메인 행사도
좀 자연스러운 토크 쇼 같은 포맷으로 한다곤 했는데
[멋쩍게 웃으며] 나랑 형이랑 할 수 있을까
[재원의 옅은 웃음] 뭐, 만든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거지
그래서 케이터링이나 공연도 화려한 쪽보다는
(은오) 정감 있는 분위기로 하려고
(재원) 아, 그래서 공간 한편에 모닥불도 피우고
군고구마 같은 것도 준비한다?
응, 이거 색다르다, 재밌네, 좋네요
[노크 소리가 들린다]
- 팀장님, 잠시만요 - (재원) 네
- (재원) 계속하고 있어 - (경준) 네
(재원) 아, 그리고 경준아
그, 건물에서 불 피울 수 있는지 체크해 봐
안 될 수도 있으니까
- (경준) 알겠습니다 - (재원) 어
[문이 탁 열린다] (경준) 실행안대로 가고
세부 예산만 보내 주면 되겠다 [문이 탁 닫힌다]
은오야
어때?
(은오) 뭐가 어때?
(경준) 계속 막 보던데, 막?
[경준이 키득거린다]
괜찮나?
[종이를 사락 정리하며] 아, 뭔 소리야
(재원) 자, 이거를 어떻게 해야 될까?
보자
자, 일단은 시청에 연락해서
수압 낮춰 줄 수 있는지 체크해 보시고요 [직원이 대답한다]
그게 안 되면 우리 쪽에서
감압 밸브를 설치하든지 해야 될 거 같아요
- (경준) 팀장님, 잠깐만요 - (재원) 어, 왜?
- (경준) 저 은오 씨랑 나갔다 올게요 - (재원) 어디 가게?
- 린이네 피자 먹으러 - (재원) 그래
- (재원) 갔다 와 - (경준) 가자
[직원들이 회의한다]
[문이 탁 여닫힌다]
(사람들)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린이) 짜, 짜, 짜, 짜, 짜, 짜, 짜, 짜잔!
(경준) 우와 [은오의 놀라는 신음]
우와
(건과 은오) 거짓말이지?
(경준) 아니, 이거 진짜 네가 만들었다고?
맛은 더 끝내주지, 일단 먹어 봐
[건의 힘주는 신음]
(린이) 어때, 어때?
(은오) 이거 레시피 공모전 상금이 얼마라고?
- 오백 - (경준) 그거 네 거다
받고 더블
(린이) 뭐야, 짰지?
왜 이렇게 평가를 후하게 주지?
아니야, 아니야 이거 객관적으로도 진짜 맛있어
(경준) 보니까 데코도 훌륭하고
린이 네가 미적 감각이 좀 있는 거 같아
(건) 그래서 이 피자 이름은 뭡니까?
음, 지금부터 생각을 해 봐야죠
아이, 무슨 걱정이야 마케터가 딱 요기 있는데
작가님도 계신다, 머리 한번 굴려 봐?
야, 야, 잠시만, 나 지금 머리에서 뭐가 터져 나올 거 같거든?
[건과 은오의 웃음]
(은오) 야, 잠깐만
이거 피자 이름 지으면 뭐 떨어집니까?
아이, 그럼, 그럼, 그럼
내가 상금 타면 거하게 한턱 쏠게
[건이 입소리를 끽 낸다]
그땐 재원 오빠 네가 불러
(경준) 야, 은오야 이번 기회에 같이 일하면서
우리 형이랑 좀 이렇게 진행을 해 보는 건 어때?
아까 둘이 보니까 막 눈빛이 살벌하더라고
왜 때려, 새끼야
[경쾌한 음악]
[컵을 탁 놓으며] 뭐야, PPL? 아, 뭐, 이런 걸
진짜 열심히 해야지, 응, PPL [옅은 웃음]
(재원) 이거
짜서 섞어 먹어?
요즘 잘 나오네
[재원이 중얼거린다]
오케이, 짜서…
(은오) 이 목걸이 무슨 뜻일까?
아니
무슨 의미야?
(재원) 글쎄
무슨 의미일까?
음
아, 야, 방금 내린 거 같네?
편지 같은 것도 없고
(은오) 아니, 대체 왜
이런 게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거지?
잘못 넣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재원) 아니, 그랬으면, 응?
아까 회사에서 만났을 때 돌려줬어야지, 안 그래?
나한테 보낸 건 맞아? [은오의 한숨]
(재원) 그거 걔 거 맞아
윤선아 청계천에서 만나면 주려고 서울 오자마자 내가 샀고
못 봐서 못 줬는데
[숨을 들이켠다]
[한숨 쉬며] 근데 계속 가지고 있었어
버리려고 했는데 못 버리겠더라
나 원래 진짜 쿨한 남자인데
이야, 하하, 참
아, 너무 신경 쓰여
아니, 뭐가 그렇게 신경 쓰여
자기 자신을 찾는 것도 그렇게 바쁘신 분이
아, 솔직히
그…
그,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게 그게 참…
참…
아무래도 다음에 만나면 돌려줘야겠어
내가 걔를 무슨 말로 설득하겠어 그냥…
난 내가 할 건 다 했어
(은오) 아니, 메모도 한 장 없으니까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잖아
아, 내 마음이 그렇게 중요해?
아, 주는 사람이 메시지가 없으면 받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 아니야?
전화를 해 볼까?
[부정하는 신음]
아니, 절대로 전화 안 받을 거야 절대로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헛웃음]
(재원) 이거 봐, 이거 봐 [헛웃음]
응 [휴대전화 진동음이 뚝 멈춘다]
안 받아
[안내 음성]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음악] 다음에…
[휴대전화 조작음] 뭐야?
[기가 찬 숨소리]
[한숨]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그걸 누구한테 물어봐?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린이의 놀라는 신음]
(건) 와, 뭐야?
- (린이) 와 - (건) 와
(린이) 우리 경준이 진짜 멋지다
여길 우리 경준이가 지은 거래
진짜 대단하지?
이야, 진짜 신기하긴 하다
(건) 내 친구가 이런 건물을 짓다니
또 이런 건물의 오픈 파티를 주도하다니
여기 북 카페도 생긴대
거기에 네가 쓴 책만 딱 들어오면 완전 완벽한데, 그렇지?
[건의 옅은 웃음]
(건) 너도 뭐 하나 해야지, 너 뭐 할래?
나?
난 여기 단골이 될 거야
너무 좋지, 가자
(린이) 아, 아니다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기 알바 구하나?
아, 여기서 알바하면 진짜 좋겠다
(건) 야, 사람이 어떻게 알바를 네 개를 해?
(린이) 왜 못 해?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 (진행 요원1) 은오 씨, 무전기요 - (은오) 아, 네, 감사합니다
(은오) 아, 저 밖의 포토 존 위치 좀 다시 잡아 주세요
이 건물이 동네와의 조화가 굉장히 중요해서
그게 한 프레임에 담기면 좋을 거 같거든요?
- (진행 요원1) 알겠어요 - (은오) 네, 감사합니다
(진행 요원1) 먼저 2층 영상물부터 확인하시겠어요?
(은오) 네
(경준) 은오야
(은오) 나 저 위의 체험 공간들 좀 확인하려고
너도 이따가 진행 팀 가서 무전기 받아 가
(경준) 알았어
와, 이은오 멋있다 [경준의 옅은 웃음]
[감미로운 음악이 연주된다] (가수) ♪ 너는 유난히도 밝게 웃더라 ♪
♪ 수없이 꺼내 본 그 사진처럼 ♪
♪ 나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 ♪
♪ 난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하나 ♪
♪ 너의 밤 너의 별 ♪ [연주자들이 코러스한다]
♪ 너를 향하던 모든 시간은 아름다웠고 ♪ [린이의 옅은 웃음]
[가수가 계속 노래한다] 이야, 오늘 힘 좀 줬다?
(경준) 나 지금 바빠 가지고, 이따 봐 [린이가 호응한다]
(린이) 어, 어, 알겠어
뭘 봐?
(은오) 아, 좀 있다 1층의 식음료량도 좀 체크해 주세요
(진행 요원1) 네
- (은오) 특이 사항 있나요? - (진행 요원2) 아, 네
(진행 요원2) 지금 어쿠스틱 밴드 공연은
시간 맞춰서 이상 없이 잘 진행되고 있고요
각 파트별 이벤트들도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근데 이쪽은 공간에 비해서 인원이 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은오) 아, 그러면 두 그룹으로 나눠서 진행해도 될 거 같아요
(진행 요원2) 네, 알겠습니다
[무전기 조작음]
네, 여기 상황실입니다
2전시실은 두 그룹으로 나눠서
두 그룹으로 나눠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재원 부)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 [웃으며] 별말씀을
(재원 부) 어, 재원아
(재원) 아, 예
(재원 부) 시장님, 제 아들 녀석입니다
(재원) 안녕하세요, 박재원입니다
(시장) 아이고, 박 대표님께서 아드님 자랑 늘어놓으실 만하네요
[함께 웃는다]
아주 멋진 곳이네요, 축하합니다
(재원) 감사합니다
- (시장) 저, 그럼, 예 - (재원 부) 예 [시장의 웃음]
(재원 부) 안녕히 가십시오
(재원) 저, 아버지,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 응, 그래, 일 봐 - (재원) 네
(경준) 이모부
제 여자 친구예요
안녕하세요, 서린이입니다
반가워요 [재원 부의 웃음]
(재원 부) 회사 앞에서 몇 번 마주치고 인사한 적도 있죠?
네, 맞아요, 몇 번 뵀어요
정식으로 인사시켜 드리고 싶어서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재원 부) 너무 많이 들었지
경준이가 자기 여자 친구 얘기 할 때는
아주 눈이 반짝반짝해져서는
(린이) 아, 진짜요?
(경준) 나 너 볼 때 맨날 이렇게 보잖아 [경준의 웃음]
(재원 부) 오래 사귀었다더니 아직도 사이가 좋네?
보기 좋다
(린이) 감사합니다
근데 린이 씨는 지금은 무슨 일 해요?
아, 아, 저는…
(재원 부) 아, 그래, 대학원 준비한다고 했지?
경준이한테 얘기를 듣고서도 깜빡깜빡해요, 요즘
박 교수 [차분한 음악]
어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린이) 네
- (재원 부) 최 대리 - (경준) 네, 대표님
이따 얘기하자
네
숱한 위기가 진짜 많았습니다
(경준) 그럴 때마다 빛을 발했던 거는
여기
같이 일하면 밑의 사람 개고생시키고 힘들게 하는
박재원 팀장님의 끈기였던 거 같습니다
제가 다른 건 진짜 모르겠어요 인정 안 하는데
끈기 하나, 끈기 하나는 제가 인정합니다
[경준의 웃음]
같이 일하는 사람 개고생시키는
(재원) 박재원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사람들의 웃음]
제가 가장 사랑하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존경하는 저희 대표님을 비롯해서
수많은 선배님들의 경험과 연륜을 따라갈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뭐
끈덕지게 하는 수밖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은 통한다고요
그게 건물을 지을 때도 그렇고요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저를 믿어 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재원) 네가 몇 번이고 빠져도 내가 잡아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파도만 봐
나는 너만 보고 있을 테니까
[사람들의 환호]
[무전기 작동음] (진행 요원2) 이은오 씨, 상황실로 와 주세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경준) 감사합니다!
[버튼 조작음]
- (재원 부) 수고했다 - (재원) 네, 아버지, 들어가세요
- (재원 부) 마무리 잘하고 - (경준) 네, 이모부 [재원 부가 호응한다]
(재원) 고생하셨습니다
(재원 부) [힘주며] 그래
- 야, 고생했다, 빨리 들어가라 - (경준) 형은?
나는 뭐, 뒷마무리 좀 되는 것 좀 보고
(경준) 현장 팀이 알아서 잘하겠지 [재원의 옅은 웃음]
아, 맞는다, 은오 좀 부탁하자
올 때 내 차 타고 와 갖고 돌아갈 차가 없어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마
- 갈게 - (재원) 응
(재원) 경준아, 고생했다
(경준) 고생했어
[옅은 웃음]
(재원) 어
저, 혹시 이은오 씨 어디 갔는지 알아요?
아, 아까 나가는 거 같던데요?
네, 고마워요
아유, 누구세요, 아…
(건) [한숨 쉬며] 아
아, 나 지금 와인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아, 나 왜 이렇게 춥냐, 지금
야, 히터 좀 틀어 줘, 빨리
[달칵거리며] 아, 히터 나오는구나, 이게 지금
아, 나 왜 이렇게 춥지
얘들아,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냐
왜 이렇게 춥나 했더니 여기가 근원지였네
아주 시베리아 벌판이야, 아주 여기
너희 싸웠냐?
[건의 한숨]
[건의 피곤한 한숨]
[가쁜 숨소리]
(재원) [한숨 쉬며] 씨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은오) 얘기 좀 할까?
(건) 야, 데려다줘서 고마워, 가
- (경준) 들어가 - (린이) 응
[건이 숨을 들이켠다]
심상치 않네
[린이의 한숨]
[린이의 한숨]
아까 그거 무슨 말이야?
재원 오빠 아버지한테 나 대학원 준비한다고 했어?
전에 물어보시길래
(경준) 그렇게 얘기했어
(린이) 왜 그랬어? 아니잖아
린이야
난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여자 친구 뭐 하냐고 물어보면
(경준) 뭐라고 말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
(린이) 그냥 알바한다고 하면 되잖아
그게 뭐, 이상해?
난 그렇게 말하는 게 좀 그래
그러면 사람들 말만 길어지잖아
'왜 아직까지 알바를 하냐'
(경준) '전공은 뭐냐', '대학을 가긴 간 거냐'
너도 맨날 듣는 말이잖아
너도 그런 말 듣기 싫지 않아?
설명하기 귀찮긴 하지만
뭐 어때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난 그게 좀 싫더라고
(경준) 그래서 둘러댔어
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구구절절 긴말하는 것도 싫고
[한숨]
나도
네가 지금처럼 사는 건 좀 별로인 거 같아
(린이) 무슨 말이야?
(경준) 대학원 가서 공부를 좀 더 하든지
아니면 취업 준비를 하든지
[쓸쓸한 음악]
제대로 된 직업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
왜?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 린이야 - (린이) 경준아
너 나를 하나도 모르는 거 같아
(린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경준이 네가 날 제일 모르는 거 같아
나는 뭘 많이 가지는 것보다
내가 필요한 것만 가지면서 살 거야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런 인생은 그냥 나한테 맞지도 않아
그래서 직업을 하나로 정해서 오래 다니거나 그럴 생각이 없어
적게 벌어도 시간이 많은 게 좋고
번듯한 직업이 없어도
소소하게 내 생활 이어 나가는 게 좋아
너 이런 나를 정말 몰라?
모르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거야
걱정을 왜 하는데, 괜찮아, 나, 경준아
나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그런 지금의 내가 난 너무 좋아
난 네가 왜 그렇게까지 날 걱정하는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 괜찮다고? - (린이) 어, 나 정말…
(경준) 하루아침에 알바 잘리고 쫓겨나 놓고 그게 괜찮아?
갑자기 구멍 난 생활비 메꾸려고 급하게 다른 알바 구하고
그 알바도 또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데 그게 괜찮아?
그게 어떻게 괜찮아?
그런 너 보고 있으면 나는 하나도 안 괜찮아
나는 아직도 네가 그런 일 당했다는 거
너무 화가 나고 열받아 죽겠어
[한숨 쉬며] 린이야
내가 너한테 돈 잘 버는 일 하라는 거 아니잖아
돈은 내가 벌면 돼
나는 그냥 네가 남들한테 쉽게 보여지고
함부로 취급당하고 그런 게 너무 싫어
그리고 앞으로 계속 알바만 하면서 살 수도 없는 거잖아
서른 넘고 마흔이 넘었는데 알바를 그, 두세 개를 뛰면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린이야
[한숨 쉬며] 너 평생 그렇게 못 살아
[힘겨운 숨소리]
그래, 경준아
네 맘 잘 알겠어
근데
(린이) 너한테는 내가 사는 모습이
대책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진지해
이게 내 방식이고 이게 내 인생이야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내 행복을 찾아 가면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
린이야 네가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너를…
(린이) 세상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경준의 한숨]
[린이의 한숨]
[흐느낀다]
[무거운 음악]
내가 지금 슬픈 건
경준이 네가 날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야
스스로 자기 인생 하나 챙기지도 못하는 철부지
너는 날 계속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경준) 그게 아니야
(린이) 너는 날 이해해 줄 줄 알았어
다른 사람도 아니라 경준이 너라서
더 나를 인정해 주고 더 응원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더 함께해야 할 이유가 있니?
야, 야
너 딱 거기까지만 해
(경준) 한 마디만 더 해라, 진짜
- 헤어지자 - (경준) 야, 서린이
헤어지자
너는 나를 부정하잖아
넌 내 인생을 부정하잖아
-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 (린이) 거짓말했잖아, 이모부한테!
(린이) 너 내가 왜 영국에서 엄마랑 안 살고 돌아왔는지 모르지?
은오가 사라져 버려서 걱정이 돼서 온 거 맞는데
영국에 있는 동안
진짜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았어 엄마 때문에
우리 엄마도 사람들한테 거짓말했단 말이야
사람들한테
나더러 자기 딸 아니라 조카라고
그렇게 나를 부정했단 말이야
헤어지자
다시 연락하지 마
[차 문이 탁 닫힌다]
[카드 인식음]
[한숨]
[깊은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은오) 난
아직도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난 네가 아는 윤선아가 아니야
날 제대로 알게 되면 후회할지도 몰라
난 여전히 겁도 많고 어설프고
엉망이야
[옅은 웃음]
그래, 맞아
여전히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재원) 그리고 겁도 많네
(은오) 응
근데 일부러 센 척하진 않으려고
나 지금 되게 무섭고 떨리는데
근데
그런 내 진심을 말해 보려고
여전히 엉망이고
예전의 윤선아도 아니고
아직 완성된 이은오도 아니야
아직도 지워야 할 단어들이 수두룩한 사람이고
이런 나라도
괜찮아?
[재원의 한숨]
사실
그, 편지를 목걸이랑 같이 보낼까 생각도 했었어, 근데
근데 이은오가 해석하는 게 낫겠더라 그 목걸이의 의미
(재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은오야 나 너한테 못 한 말이 있는데
[차분한 음악]
옛날의 착하고 얌전했던 이은오도
내가 만나 사랑했던 윤선아도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이은오도
너는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여전히
여전히 네 안에 있어
이런 나라도 정말
괜찮겠어?
(재원) 네가 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동안
[한숨]
나도 지금의 널 천천히 알아 가 볼게
이제부터는 제대로 사랑해 볼게
(재원) 뭐, 그런 의미야
이은오가 이걸 좀 알아냈으면 좋겠어
네가 지우지 못했던 그 단어들
(재원) 그 단어들을 지우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알아 가 보는 건 어때?
[숨을 하 내뱉는다]
일단은
일단
'연애'
'연애'라는 단어부터 나랑 같이 알아 가 보자, 응?
[재원의 떨리는 숨소리]
아, 나 왜 이렇게 떨리지?
너랑 키스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닌데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처음 같아서
[감미로운 음악]
(운영자)
(은오) 음…
진정한 나를 찾아 가는 과정?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된 거 같아
뭐, 물론 많이 괴롭고 힘들었지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더 애틋해
난 너무 어려운 거 같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지
내 가장 깊숙한 곳을 보여 주면서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보면서
그렇게 서로 둘이 하나가 되려고 애쓰는 거
그게 연애 아닐까?
신기하지?
바보 같은 내가 싫어서 피하고 숨기고만 싶었는데
이제 더는 무섭지 않아
아직 엉망진창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라면
더 용기 내서 마음껏 솔직하게 부딪혀 보고 싶어
억울해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끝내고 싶진 않아
어떤 연애든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순간에 끝날 수도 있는 게 연애라고 생각하고
린이랑 내 사이엔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가 있어
이건데
이건 다음에 얘기해 줄게
어쨌든 이것 때문에라도
이렇게 헤어진다는 건
좀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헤어질 이유가 있으면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
원래 연애는 전쟁 같은 거야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는 거는 결코 쉽지 않거든
일단 내 연애는 휴전이야
종전은 아니고
오선영, 포기하지 마
얼른 휴전 끝내고 더 찾아 봐
정 찾다가 지치면
그때 또 나한테 와서 물어봐
[선영을 흉내 내며] '너 이은오 좋아하지?'
[웃음]
그 핑계로
우리 또 얼굴 한번 보자
(재원) 우리 오늘부터 1일인데
뭐 할까?
- (은오) 음, 일단은 - (재원) 응
(은오) 내 이름을 불러 줘
- (재원) 이름? 이은오 씨 - (은오) 응
(재원) 이은오 [은오의 웃음]
은오야
이은오! 은오야! [은오의 말리는 신음]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감성적인 음악] [재원과 은오의 웃음]
[재원의 기분 좋은 신음]
이은오 [은오의 웃음]
가자
(은오) 어? 눈이다
와, 눈 온다
(재원) [웃으며] 이은오는 눈 좋아해?
(은오) 응, 비만큼이나
(재원) 그럼 이은오는 또 뭐 좋아해?
(은오) 음…
- (은오) 햇볕 좋은 날 - (재원) 응
- (은오) 따뜻한 라테 - (재원) 어
(은오) 고양이 발바닥
[재원의 탄성] [은오의 웃음]
- (은오) 함께 하는 산책 - (재원) 응
(은오) 라일락 향기
그리고…
(재원) 그리고?
그리고
박재원
[옅은 웃음]
"끝"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숨을 카 내뱉는다]
(경준) [술 취한 말투로] 뭐?
윤선아가 왜 이은오야?
그러니까 그 윤선아가 내 친구 이은오라고?
야, 야이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게 왜
무슨, 장난하냐, 그럼 내가 알았겠지
나 빼고 다 알아? 누구누구 아는데?
아, 잠시만
잠시 기다려 봐, 내가 전화해 볼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강건 이 새끼 전화 안 받는데?
그럼 봐 봐 그럼 린이한테 전화하면 되니까
[휴대전화 조작음] [중얼거린다]
[통화 연결음] [놀란 숨소리]
아, 맞는다 나 린이한테 전화하면 안 되는데
[딸깍 소리가 새어 나온다]
[작은 목소리로] 받았는데? 잠시만 조용히 해
여보세요
(남자) 여보세요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서린이 휴대폰 아니에요?
(남자) 맞는데요?
너 누구야?
린이 어디 있어?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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