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의 사랑법 4
(은오) 정말 비 온다고 한 거 맞아?
(재원) 응, 비 온다 그랬어
아, 안 올 거 같은데
(재원) 난 안 와도 좋은데
일로 와
[은오의 한숨]
- (재원) 나 있잖아 - (은오) 응
왜 책 말고 딴게 보고 싶지?
(은오) 내가 좀 볼 게 많지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 무슨 뜻이야, 이거?
그냥 예뻐서 했어
(은오) 이젠 그 어디에서도 의미 같은 건 찾지 않기로 했다는 게 의미
의미가 없는 게 의미야
[재원의 옅은 웃음]
(재원) 그런 거 좋아
(은오) 왜 좋아?
(재원) 그냥 좋아
[재원의 생각하는 신음]
네 스타일, 성격
그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좋아
[한숨]
[비가 투둑투둑 떨어진다]
[비가 쏴 내린다] (은오) 어?
어, 비 오나 봐!
(재원) 그래, 내가 오늘 비 온다 그랬잖아
[은오의 기뻐하는 탄성] - (재원) 그렇지? - (은오) 응!
(재원) 내 말이 맞지? [은오의 웃음]
온다 그랬잖아 [함께 웃는다]
[은오의 기분 좋은 신음]
[재원과 은오의 웃음]
(은오) 가자
(재원) 어? 야, 어딜, 어디…
야, 어디 가?
야, 위험해!
(은오) 빨리 와, 재원! [감성적인 음악]
(재원) 야, 윤선아! [은오의 웃음]
[웃으며] 야, 같이 가!
[은오의 기분 좋은 탄성]
[은오의 웃음] (재원) 야
- (은오) 비다! - (재원) 야, 윤선아, 같이 가!
[은오의 기분 좋은 탄성] [재원의 웃음]
- (재원) 아, 시원해! - (은오) 좋지?
(재원) [웃으며] 야
[재원의 웃음]
(은오) [웃으며] 야
야, 야
(재원) 우산 없이
우산이 없다는 걸 속상해하지 않고 [은오의 웃음]
[재원과 은오의 신난 탄성] 우산이 없어서 더 좋았던 적은
[은오의 웃음]
그날이 내 인생의 처음이었어
[은오의 웃음]
[비가 연신 쏴 내린다]
[재원의 한숨]
(은오) 한 달만 있다가 갈 거지?
(재원) 응, 휴가 한 달만 쓰긴 했는데
왜?
(은오) 만약에 한 달 더 휴가 쓰면 잘릴까?
왜, 나 휴가 한 달 더 쓸까?
[커피를 조르르 따르며] 뭐, 만약에 잘리면
옛날에 다니던 회사 다니지, 뭐
[함께 살짝 웃는다]
[재원의 옅은 헛기침]
[은오가 컵을 달그락 든다]
나 휴가 한 달 더 쓰면
나랑 결혼해 줄래?
[은오의 어이없는 웃음]
진심이야?
(재원) 응
신랑 있고, 신부 있고 어? 이렇게 같이 살 집 있고
또 우리 서로 좋아하고 있고
[재원이 살짝 웃는다]
'안 된다', '망설인다' 이런 거 다 지웠다면서
(은오) 맞아, 지웠어
재밌을 거 같아, 결혼식
그렇지? 재밌을 거 같지?
(재원) 하자, 재미로 하자, 둘이서, 응?
- (재원) 하자 - (은오) 그래
[함께 웃는다]
(은오) 근데 프러포즈는 이걸로 끝이야?
- 프러포즈? - (은오) 응
[갈매기 울음]
(은오) 내 로망이 하나 있는데…
다시 얘기해 봐, 뭐라고?
요새 공중전화가 있어?
걔 핸드폰 없대?
너무 오그라드는데?
프러포즈? 했어, 응
[어색한 웃음]
[재원이 동전을 달그락 집어넣는다]
[감미로운 기타 연주]
(재원) ♪ 참 이상한 일이야 ♪
♪ 나는 하루 종일 너만 봐 ♪
[감미로운 기타 연주가 새어 나온다] [웃음]
[재원의 노랫소리가 새어 나온다] (라라) 뭔데, 뭔데, 뭔데?
뭔데!
(재원) ♪ 생각해 ♪
[라라의 놀라는 탄성]
♪ 보다 웃곤 해 ♪ [웃음]
(재원) ♪ 참 신기한 일이야 ♪
♪ 넌 내 마음에 노크도 없이 ♪
♪ 불쑥 들어와 ♪
♪ 쿵쿵 뛰어다니며 날 ♪
[라라가 놀라워한다]
(재원) ♪ 흔들어 놓곤 해 ♪ [은오의 웃음]
♪ 그런 너에게 ♪
♪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날 ♪
(재원) ♪ 혹시 가둬 둘 ♪
♪ 너의 마음속의 방을 내어 줄래 ♪
♪ 음 ♪
♪ 이런 난 어떠니 ♪
♪ 라 라라 ♪
[감미로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 (재원) 찍는다 - (은오) 응
[카메라 조작음]
(재원) 됐다
[재원의 헛기침]
(재원) 자, 지금부터 윤선아, 박재원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은오) 와! - (재원)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신부 윤선아는 박재원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은오) 네!
신랑 박재원은 윤선아를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재원) 네!
[은오의 웃음]
(재원)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영원히 함께하겠습니까?
(은오) 네!
(재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영원히 함께하겠습니, 아, 떨어, 아… [은오의 웃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 (은오) 네, 아, 이제 그만 - (재원) 왜, 왜, 왜…
(은오) 이것으로 결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재원) 아직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직, 아직 안 끝났어
이거
(은오) 죽을 때까지 빼기 없기
[마우스 조작음]
(재원) 그래서 걔한테 더 화가 나
[한숨]
(재원) 걔는 그 반지 어떻게 했을까?
버렸겠지?
맞아
버렸어
[한숨]
인간적으로 헤어지면 반지는 좀 돌려주자
[어이없는 웃음]
돌려주면 뭐 하게? 다른 여자 주게?
뭐야, 내가 그렇게 쪼잔한 놈으로 보이냐?
[커피 머신 작동음] (경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여자야
결혼식은 왜 했을까? 헤어질 거면서
(선영) 그러게
어, 잠깐만 나 지금 기획서 쓰다 와서 좀 바빠
[선영이 코웃음 친다] (재원) 헤어질 계획은 없었던 게 분명해
(건) 아직도 좋게 해석하고 싶으신가 봐?
(경준) 그 결혼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잖아 잊어버렸으면 좋겠어
[컵을 탁 내려놓으며] 그래, 잊어라
- (재원) 이게 지금 법 따질 문제야? - (린이) 나는 이해해
법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
감정적으로 막, 더 복잡해지는 거지
심플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
캠핑카에서 같이 산 건
(경준) 두 달이야
두 달이 짧아?
인생 길어, 두 달은 짧고
그렇게까지 계속 생각할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재원) 아이, 됐어, 하지 마
다들 잘났어, 아주
자기 문제 아니라는 거지, 뭐
(건) 혹시 말이야
같이 살면서 뭐 없어진 거 없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본대?
(건) 아, 그냥 방금 든 생각인데
남자가 목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선영의 놀라는 신음] (재원) 내가 목적이 아니면 뭐?
아니, 그냥 뭐…
[건이 숨을 후 내뱉는다]
(건)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접근한 게 아닌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예를 들어 박재원이 금두꺼비를 갖고 있었다거나, 한 냥짜리
돈이 얼마야?
아, 내가 금 한 냥보다 못해? 내가 그런 남자로 보여?
미안해, 내 친구가 좀 많이 모자라
걔가 작가라서 상상력이 좀 풍부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있을 법한 얘기야
(건) 뭔가가 탐이 나서 접근을 했어 그리고 그걸 훔쳤어
목적을 달성했는데 만날 이유가 없는 거잖아
걔 소설가라면서? 제대로 먹고사는 거 맞아?
아, 그래 봬도 계간지로 데뷔했어
상상력이 이렇게 후진데 제대로 먹고는 사냐고
솔직히 말해 보라 그래 뭐 없어진 거 없대?
(재원) 없어
[건이 혀를 쯧 찬다]
아, 진짜 없어
가진 것도 없는데 왜 접근했지?
(재원) 야, 걔 얼굴 좀 보자 그래 걔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아, 진짜 마음에 안 드네
그 자식 나부터 좀 보자 그래
[마이크가 삐 울린다] 어? 나, 나요, 나
내가 방금 촉이 왔는데
박재원 뭐 잃어버렸어
윤선아가 훔쳐 간 게 맞아
(건) 윤선아는 그걸 갖기 위해서 박재원한테 접근한 거고
그 물건 때문에
자길 사랑한 척했다는 거를 인정하기가 싫겠지
(건) 그런 말 있잖아
재산 많은 80대 노인한테 20대 여자가 접근해서 하는 말
[얇은 목소리로]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의 아기를 갖고 싶어요'
그걸 진심으로 믿고 싶은
그런 거
- (선영) 맞아 - (재원) 야, 이거
하지 마, 야, 카메라 꺼, 이거
나, 아, 이 인터뷰, 아니야
이거 나 못 하겠어, 안 할래
(재원) 안 해
[다가오는 발걸음]
아, 근데 진짜 아니야, 어? 아니야
걔는 있잖아, 나 정말로 좋아했어
거침없이 솔직했고 거침없이 뜨거웠고
이 이상 나를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싶게
그렇게 나를 좋아했어
걔는 있잖아, 어?
적당히를 모르는 애였어
어떻게 그렇게 나를 더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날 좋아했다고
씨발,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씨, 쯧
[재원의 한숨]
[흥얼거린다]
- (남자1) 우리 맥주 두 병만 더 줘라 - (라라) 맥주 두 병? 오케이!
"사랑과 평화"
- (라라) 아, 썬 - (은오) 응
- 음식물 쓰레기 - (은오) 어, 알았어
(라라) 맥주 두 병 나왔어 [사람들이 호응한다]
재밌게 놀아 [사람들이 호응한다]
[문이 탁 닫힌다]
[옅은 웃음]
(라라) 벌써 갔다 왔어?
- (라라) 통은? - (은오) 몰라
- (라라) 몰라? - (은오) 응
(라라) 갖다 버린 거 아니야?
[옅은 웃음]
[사람들이 대화한다]
(라라) 오빠 이제 나 보고 옛날만큼 안 웃는다
[사람들의 웃음] [사람들이 시끌벅적하다]
- (빈) 이게 웃는 거야 - (남자2) 변했네, 변했어 [라라가 말한다]
(은오) [작은 소리로] 간다고 말해
- (라라) 선아야, 너도 한잔해 - (빈) 얼른 앉아
- (남자2) 한잔해 - (은오) 아, 안 돼, 나 집에 가야 돼
- (라라) 어? - (빈) 집? 숙소 말하는 거야? [여자1이 묻는다]
응, 박재원도 나랑 같이 가야 돼
(빈) 어? 둘이 어디 가기로 했어?
- 어, 잠깐… - (은오) 집에 간다고, 집
(은오) 나 재원이 캠핑카에서 같이 살잖아
[사람들이 놀란다] - (라라) 진짜? - (빈) 같이?
[밝은 음악] (은오) 응! 살아, 둘이 같이
우리 같이 산 지 거의 한 달?
한 달 다 돼 가
- (빈) 어? 한 달? - (라라) 뭐래, 미쳤어! [사람들이 술렁인다]
[재원의 멋쩍은 웃음]
(은오) 우리 결혼도 했어
- (라라) 어? 헐! - (빈) 결혼했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재원) 아니야, 그게…
- (재원) 그게, 어, 어떻게 된 거냐면 - (라라) 미쳤어!
(재원) 그래, 결혼했어
근데 뭐, 이게, 진작에 말을…
(은오) 그러니까 다들 알아 둬
박재원 내 거
[사람들이 술렁인다] (여자1) 대박
(여자2) 축하해 줘야지 [사람들이 호응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축하한다]
[재원의 쑥스러운 웃음]
(재원) 야, 넌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같이 산다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냐?
(은오) 살잖아, 3주를 내내 거기서 잤는데 [재원의 웃음]
(재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게 안 부끄러워?
(은오) 하나도 안 부끄러워
[재원의 웃음] 온 세상에 대고 다 말할 수도 있어
(재원) 온 세상에 대고 다 어떻게 얘기할 건데?
(은오) 우리 같이 살아요, 우리 결혼했어요
(재원) 야, 야, 하지 마
(은오) 우리 같이 살아요, 우리 결혼했어요!
[사람들이 환호한다] (재원) 아니…
[재원의 웃음]
(은오) 우리 같이 살아요, 우리 결혼했어요
(재원) 야, 하지 마, 부끄럽잖아 [은오의 웃음]
아, 진짜
아, 우리 같이 살아요! 결혼했어요!
[사람들이 환호한다] [재원과 은오의 웃음]
와, 씨, 나 유부남이다! [경쾌한 음악]
[재원과 은오의 웃음]
(은오) 와, 날씨 좋다
- 시원하지? - (은오) 응
[재원의 웃음]
(은오) [웃으며] 저리 가
[재원의 웃음]
[재원의 탄성] [은오의 웃음]
(재원) 야, 선아야, 빨리 와
같이 가!
[은오의 탄성]
[재원의 탄성] [은오의 웃음]
[재원의 힘주는 신음]
[가쁜 숨소리]
[힘주는 신음]
(은오) 재원, 힘내!
[가쁜 숨소리] 파이팅!
먼저 갈게
가지 마, 같이 가!
[재원이 소리친다]
[재원이 중얼거린다]
(재원) 윤선아의 지구는 어디인가
그리고 윤선아의 화성…
뭐야, 야, 뭐야!
이게 뭐야
아, 싫어! [은오의 웃음]
아! 아!
(은오) 엄청 귀엽지?
아, 이쁘다
[은오의 웃음]
(은오) 자, 다 나왔다
[남자3이 말한다] [은오의 웃음]
[사람들의 의아한 신음]
- (남자2) 뭐야 - (여자1) 뭐야
- (남자2) 재원이 것만 왜 이렇게 커? - (여자1) 계란도 있네?
(은오) 많이 먹어, 재원 특별히 꼬막도 넣었어
[재원의 웃음]
아휴, 뭐 이렇게 내 거 꼬막을 많이 넣었어
나 꼬막 진짜 좋아하는데
[재원이 라면을 후루룩 먹는다]
[재원의 만족하는 신음]
[재원의 만족하는 신음] 맛있어?
(재원) 아유, 국물이 다르네
'아'
(재원) 우리 정말 좋았다니까?
그러니까 무슨 목적이 있어서
나한테 접근을 하고 이런 게 아니었다고
이게 다, 어?
저 새끼, 저거, 경준이 때문이야
어, 내가 바로 그 최경준인데
아, 쟤가 회사 일을 제대로 처리를 못 해서
내가 서울로 급하게 올라… 아휴
아니, 한 달 휴가를 내 놓고
두 달이나 놀면 되겠어? 회사가 장난이야?
여기 회사 대표님이 날 스카우트하면서 내건 조건이
한 달 휴가였어, 한 달 휴가
(재원과 경준) - 그… - 그러니까, 한 달이라고, 한 달
한 달이 지나도 안 오니까 내가 그냥 사고를 친 거야
(경준) 어쩔 수 없이
난 형처럼 능력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좀 인터뷰에 내 얘기 하려면 조용히 해라
다 들려, 다 들려
[재원의 한숨]
(재원) 아, 왜 이렇게 자꾸 전화해 지금 올라간다니까
"양양 국제공항"
그래, 내가 가서 해결할게
그러니까 넌, 씨,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어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나 올라가자마자 구청 들어가서 내가 해결할게 [은오가 가방을 탁 내려놓는다]
그래, 야, 우리 법적으로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냐
야, 그리고 내 보드 [차 문이 탁 닫힌다]
내가 택배로 보내 놨으니까 너는 그거나 좀 잘 받아 놔, 어
(은오) 재원 [재원의 한숨]
(재원) 선아야, 미안해, 내가
내가 지금 서울에 너무 급한 일이 터져 가지고
[한숨]
- 너 내 번호 외웠어? - (은오) 어
만약에 너 머리 나빠서 내 번호 까먹으면 어디에 뒀다고?
- (은오) 여기 - (재원) 만약에 이것도 잃어버리면?
- (은오) 안 잃어버려 - (재원) 그러니까 만약에 잃어버리면
(재원) 우리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했지?
(은오) 청계천 세 번째 징검다리 이번 달 마지막 주 토요일 10시
그래, 그것도 까먹으면 안 돼
(직원) 저기요, 죄송한데 차 좀 빼 주세요
(재원) 예, 예, 죄송합니다, 금방 뺄게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핸드폰 하나 사자니까
왜 빈이 형 핸드폰을 자꾸 빌려 써
서울 가서 내 핸드폰 개통하면 제일 먼저 전화할게
- (은오) 얼른 가 - (재원) 알았어
- (재원) 나 갈게 - (은오) 응
- (재원) 나 진짜 간다? - (은오) 응
- (재원) 갈게 - (은오) 어, 가
- 가 - (재원) 들어가, 빨리
(은오) 어, 가
어, 얼른 가
(재원) 그게 끝이었어
영원히 끝
분명히 서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는데
그걸로 끝
원래 계획은 서울로 같이 올라오는 거였는데
하, 경준이 때문에
[한숨]
[한숨]
- (경준) 팀장님, 어디 가세요? - (재원) 몰라
(경준) 모르긴 뭘, 왜 몰라요, 이걸 지금…
(재원) 아, 이것 좀 갖다 버리라고 이걸 계속 들고 다니냐, 이거를!
(경준) 이거를 왜 버려! 이거를, 지금
(재원) 그거 안 쓸 거라고, 진짜! 일 더럽게 못하네, 정말
저 새끼, 저거, 씨
[한숨 쉬며] 진짜 열받는다, 이제
(경준) 형, 일로 와 봐
(경준) 형
[경준의 짜증 섞인 신음] [버튼 조작음]
- (경준) 진짜 설계 바꿀 거야? - (재원) 아, 바꿀 거야
- 바꾸면 안 된다니까, 봐 봐 - (재원) 왜 안 되냐? 야, 네가 팀장… [엘리베이터 도착음]
(경준) 어유, 대표님, 오셨습니까
당장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카드 인식음] (재원 부) 너 일로 와
[문이 달칵 열린다]
[직원들이 인사한다]
[경준이 흥얼거린다]
(재원 부) 부암동 주택 누구 마음대로 설계를 바꿔?
이 회사가 네 회사야?
아버지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들어?
- 대표님 - (재원 부) 이 자식이…
(재원) '이 자식'이 아니고 박재원 팀장입니다, 대표님
(경준) 문 닫았습니다, 이모부
마음껏 소리치시고 막 두들겨 패셔도 됩니다
(재원 부) 너 설계를 몇 번을 바꾸는 거야?
벌써 시공사랑 계약하고 첫 삽을 떠도 시원찮을 판국에!
(재원) 보세요
이쪽으로 북악산이 딱 보일 건데
계단이 이렇게 나 있어야
오르내리면서 창밖을 바라볼 거 아닙니까
(경준) 북악산은 2층 가족실에서도 겁나 잘 보이는 걸로
다시 한번 확인이 됐습니다, 대표님
(재원 부) 지금 설계도도 좋다잖아, 건축주가
더 좋은 걸 모르니까 좋다고 하죠
모형 볼 줄 모르니까 모형 볼 줄 아는 우리가 가르쳐 줘야죠
(재원 부) 그럼 처음부터 잘하지 그랬어, 이 자식아
북악산이 첫 설계 때는 딴 동네 있다가 이번 달에 이사 왔니?
아니, 어떻게 처음부터 잘합니까 경험이 없는데
(재원) 그러니까 제가 대표님 월급의 반의반밖에 안 받잖아요
(재원 부) 아, 내가 이걸 믿고 회사를 맡겼…
(재원) 아, 그러니까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나 따로 회사 잘 다니고 있었잖아요 근데 왜 일로 데리고 와서…
아, 나 전의 회사 대표님 너무너무 존경했는데 [경준의 한숨]
(경준) 이모부, 제가 저번에 대구탕에 소주 먹을 때 뭐라 그랬어요
분명히 후회하시게 된다고 말씀…
(재원 부) 넌 뭐 했어, 이놈아!
'이놈아' 아니고 최경준 대리입니다, 대표님
(재원 부) 아나, 이것들, 진짜
[재원 부의 한숨]
(재원) 들어가십시오
(재원 부) 한 번만 더 이러면
너희 둘
둘 다 자른다
(재원) 감사합니다
(경준) 아, 저는 왜…
아, 아…
[흥미진진한 음악] [경준의 한숨]
[경준의 힘주는 신음]
(재원) 나는 이 회사가 너무 좋아, 근데
[한숨 쉬며] 그, 대표님이 조금, 아…
나는 대표는 너무 괜찮아, 좋아, 응
근데 팀장이 참 그래
(재원) 그래서 말인데, 경준아
내가 이거 계단 위치 바꾸는 거 계속 생각을 해 봤거든?
- (재원) 이렇게 조금만… - 잠깐, 스톱
(경준) 형, 말은 바로 하자
계단 위치만 바뀌어?
계단 위치 바뀌면 화장실이랑 안방 위치
다 바꿔야 되는 거 알아, 몰라?
(재원) 알아, 아는데, 바꾸자, 어?
같이 현장 가 볼까? 지금 같이 가 볼까? [경준이 거부한다]
왜 안 돼, 왜 안 돼
안 돼, 오늘 린이랑 데이트 있어 [재원의 한숨]
(경준) 린이 알바 끝나는 시간 맞춰서 조퇴할 거야
- 그럼 셋이 같이 가자 - (경준) 뭘 셋이 같이 가
(재원) 데이트 같이 하자고
(경준) 뭐, 고춧가루야? 왜 섞이려고 그래?
(재원) 데이트 같이 하자, 아이스크림 사 줄게 [경준의 짜증 섞인 신음]
경준아, 야, 최 대리 [문이 탁 여닫힌다]
야, 인마!
- (손님1) 나왔다 - (손님2) 나왔어?
(린이) 주문하신 목동 피자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손님들이 감사 인사를 한다] (손님3) 맛있겠다!
(린이) 잠깐만, 잠깐만
[경준의 한숨]
[버튼 조작음]
[긴장한 숨소리]
[숨을 하 내뱉는다]
나 옛날의 이은오 아니야
난 새로운 이은오야
[숨을 후 내뱉는다]
(은오) 대리님
(선배) 어머
[은오의 웃음]
못 알아봤어 왜 이렇게 많이 변했어?
(은오) 잘 지내셨어요?
참, 이제 과장님 거쳐 차장님 되셨다면서요?
(선배) [웃으며] 응
이뻐졌네
스타일이 왜 이렇게 많이 변했어?
스타일만 변한 거 아닙니다
다 변했어요, 다
하긴 우리 회사에서 알바하던 때가…
- (은오) 하, 벌써 7년 전이에요 - (선배) 맞네
- 졸업 전이었지, 그때? - (은오) 네
아
- (은오) 여기 제 명함요 - (선배) 취직했구나?
(선배) 뭐야, 회사를 차렸어?
1인 회사예요 회사 이름은 영삼이 아니고 오쓰리
(은오) 이은오 제 이름에 동그라미가 3개라서요
(선배) 어어? 넉살도 좋아지고? [은오의 옅은 웃음]
얼마나 됐어?
아직 1년 안 됐어요, 9개월 정도?
(선배) 음, 먹고는 살아?
아는 사람들은 다 찾아다니면서 구걸하고 있어요
(은오) 들어온 일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요
겨우 입에 풀칠은 하는 정도?
저, 그래서 말인데요, 대리님 아니, 차장님
저 일 좀 주세요
- 무슨 일? - (은오) 다요, 다
외주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저 혼자 못 하면 아르바이트 쓸 거고요
작은 일, 큰일, 험한 일, 궂은일 안 가리고 다 해요, 아무거나
포트폴리오는 가져왔어?
[잔잔한 음악]
[함께 살짝 웃는다]
- (재원) 안녕하세요 - (소장) 어, 왔어?
[소장의 웃음] (재원) 이거 왜 이래요?
(소장) 아, 아직 하수관 연결을 못 했는데
그저께 비 왔잖아, 에이 [재원의 안타까운 신음]
(재원) 이거 소장님 거
사모님 생신이시잖아요
(소장) 아유, 뭘 우리 집사람까지 챙겨?
[소장의 웃음] (인부) 소장님 케이크 안 사도 되겠다, 오늘
- (재원) 자, 그리고 이건 간식 - (인부) 아이고, 감사합니다
- 고마워, 박 팀장 - (재원) 아유, 고맙긴 뭘요
[소장의 웃음] (재원) 주세요, 제가 할게요
(소장) 아니, 하지 마, 하지 마, 옷 버려
냄새날 텐데 [재원이 탁 삽질한다]
- (인부) 아이고 - (소장) 아이, 참 나
[재원이 탁 삽질한다]
(소장) 아이참, 잘하네
[라디오가 지직거린다]
[한숨]
[카 오디오를 탁탁 친다] [애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꼭 때려야 말을 듣지
[한숨]
[애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은오) 이 노래 알아요, 박재원 씨? - (재원) 네
[애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은오) ♪ 시간마저 데려가지 못하게 ♪
♪ 나만은 널 보내지 못했나 봐 ♪ [재원이 웅얼거린다]
♪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은 ♪ [애절한 음악]
(은오) 그 사람은 그날 양양을 막 도착했고
(재원) 한 달 동안 캠핑카에서 살아 보기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가
한 달 동안 파도 위에서 죽어라 보드만 타기
(은오) 뭔가 좀 흥분한 거 같았어
여행지에선 다들 그러잖아 나도 그랬고
(은오) 짜잔!
[은오와 재원의 웃음]
[탄성]
(재원) 우린 그때 조금은 미쳐 있었던 거 같아
[은오의 가쁜 숨소리]
[비가 쏴 내린다] [재원의 웃음]
(은오) [웃으며] 야!
(재원) 윤선아, 박재원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재원) 아, 우리 같이 살아요! 결혼했어요!
[사람들이 환호한다] [재원과 은오의 웃음]
(은오) 함께 그 바닷가에서 보낸 두 달이 꿈같아
(재원) 걔도 서울 산다 그랬거든
한 번쯤 마주칠 줄 알았는데
한 번도 못 봤어
(은오) 잊으려고 노력해
아니야, 다 잊었어 [애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은오) 비 오나?
[레버 조작음]
뭐야, 고장 났나?
뭐야
어, 너 왜 이래, 뭐 때문에 이래
어?
아니, 거기 멈춰 서면 어떡해?
내려가, 내려가라고
[한숨]
[버튼 조작음]
(은오) [버튼을 연신 누르며] 어머, 너도 안 내려가니?
어머
(재원) 아, 냄새 심하다, 진짜 [은오의 한숨]
(은오) 차 좋네
[재원이 구시렁거린다] 후, 부모 돈일 거야
[운전대를 탁 치며] 이 차는 내가 샀어, 내 돈으로
[재원과 은오의 한숨]
[은오가 구시렁거린다]
[버튼을 탁탁 누르며] 아, 옆에도 안 내려가는 거 같은데
(은오) 그래, 네 차 창문 잘 내려가서 좋겠… [재원의 힘겨운 신음]
[은오의 놀라는 신음] [흥미진진한 음악]
[재원이 숨을 후 내뱉는다] 미치겠네, 서울 왜 이렇게 좁아?
[은오의 한숨]
쟤 나 못 봤겠지?
[기어 조작음]
[한숨]
헤어진 이유?
(재원) 나처럼 헤어지면 뭐가 제일 힘든지 알아?
뭐, 걔가 보고 싶고 옛날 생각이 나고 그런 거보다
'아, 대체 내가 뭘 잘못했나'
그것만 계속 생각하게 돼
글쎄
이유가 워낙 많아서
(재원) 이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어 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고
첫 번째 이유는 걔가 기억 못 하는 게 있어
(재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좋아
- 만약에 - (재원) 응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 거 같아?
다른 사람? 어떤 사람?
그냥 뭐, 이런 타투도 안 하고
이런 옷도 안 입고 이런 머리도 아니면?
(재원) 뭐, 그럼 윤선아가 아니지
(은오) 그게 이유야
말했잖아 양양에서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고
(은오) 그때 결심했던 거 같아
'아, 나는'
'얘랑 헤어져야겠다'
'여기서만 만나고 끝내야겠다'
차라리 싸우고 헤어졌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야
(은오) 어…
두 번째 이유는…
(재원) 그냥
걔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나 알았으면 좋겠어
[쓸쓸한 음악]
(재원) 응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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