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의 사랑법 5
(내레이션)
추억의 물건?
나는 영화 티켓까지 다 모았었어
[사람들이 시끌시끌하다]
추억은 소중하니까
보면 생각나지
생각하면 괴롭고
(경준) 연애가 끝나면 제일 골치 아픈 문제이긴 하지
(린이) 나는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
집착은 안 하지만 돌려받는 게 맞아
뭘 꼭 돌려받아? 물건은 물건일 뿐이잖아
(건) 맞아, 소중한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면 되는 거지
나도 딱 그 마음이었어
[공이 골대에 탁 들어간다]
- (선영) 벗어 - (건) 뭘 벗어
(선영) 우리 방금 헤어졌잖아 그러니까 벗으라고
[한숨 쉬며] 또 시작이냐
(건) 헤어진 거랑 그거랑 뭔 상관인데?
(선영)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코트
그거 내가 미국 여행 갔다 오면서 사 준 거잖아
벗으라고
(건) 그래, 벗는다, 벗어
[흥미로운 음악] [건의 한숨]
- 티도 벗어 - (건) 돌았냐, 한겨울에?
그거 우리 커플로 산 거잖아, 벗으라고
(건) 야, 이거 네 거까지 다 내 돈 주고 산 거…
(선영) 벗어, 벗어! [건의 난감한 신음]
이거 입을 때마다 내 생각 할 거잖아 그거 싫으니까 벗으라고! [건의 당황한 신음]
(건) 아… [선영의 한숨]
[선영이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의 한숨]
(선영) 신발도 벗어
[못마땅한 숨소리]
(건) 어 [선영의 헛웃음]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 야, 양말도 벗어라
(건) 양말을 내가 왜 벗어야 돼?
- 그것도 내가 사 준 거잖아 - (건) 네가 양말을 언제 사 줬는데?
내가 미키 마우스 양말이랑 같이 사 줬지
네가 미키랑 스마일을 같이 사 줬다고, 나한테?
너 빵꾸 난 양말 신어 가지고 내가 사 줬잖아
양말은 진짜 안 돼
발은
제2의 심장이야
[흥미진진한 음악] [건의 추워하는 숨소리]
[건의 헛기침]
[건의 추워하는 숨소리]
[건의 힘주는 숨소리]
[건이 숨을 후후 내뱉는다]
[건의 힘주는 신음]
[건이 숨을 후후 내뱉는다]
[건의 힘주는 신음]
[건의 힘주는 신음]
(동식) 신으세요, 추우실 텐데
아니
일부러 벗고 있는 건데
맨발이 건강에 좋다 그래서
(동식) 아까 족발집 거리에서 싸우시는 거 봤어요
아, 보셨구나
[숨을 들이켜며]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감사히…
[힘겨운 숨소리]
(동식) 이거라도 입으실래요?
아유, 이렇게 감사할 데가…
[동식의 웃음]
(건) 어? 이 옷…
- 아, 제가 고등학교… - (건) 대운고등학교?
(동식) 네 [힘찬 음악]
(건과 동식) 축구부?
(건) ♪ 패기와 열정의 대운의 기상 ♪
(동식) ♪ 세상에 떨쳐라 대운의 기상 ♪
(건과 동식) ♪ 슛, 뛰어, 골, 뛰어 ♪
♪ 나가자, 싸우자, 우리의 대운 ♪
[탄성 효과음] (건과 동식) 대운!
- 아, 반가워요 - (동식) 아, 그러게요
(건) 네, 아…
아니, 어떻게 이 옷을 아직도 안 버리고
[동식의 웃음] (건) 올해 졸업?
(동식) 아니요, 5년 전에
(건) 나 6년 전에
우리 집에도 이 옷 아직 있어요
어쩐지 낯이 익…
(동식) 그 골키퍼 했던…
아, 걘 나랑 닮은 애고 난 만년 후보, 응원 담당 [지퍼를 슥 올린다]
[동식이 호응한다] [건이 숨을 들이켠다]
땀 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저, 24기 공격수 오동식입니다
(건) 아, 네, 반갑습니다
아, 어떻게 이런 순간에
돕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선배님
(건) 근데 평소에 이런 걸 가지고 다녀요?
아, 아닙니다
(동식) 제가 순경 시험에 합격해서 오늘 고시원 탈출하는 길입니다
[동식의 웃음]
(건) 아, 축하해요, 진짜, 와
(동식) 아, 감사합니다
신기하네요
고시원에서 짐 챙겨서 나오다 보니까 가방으로 얻어맞고 계시는데
하, 뭔가 마음 한구석이 짠하더라고요 [건의 한숨]
남이 아니라서 그랬나 봐요, 선배님
[한숨 쉬며] 그게 내가 선물한 가방이야
선물한 가방으로 맞아 봤니?
[어색한 웃음]
(동식) 그 여자 진짜 차지게 때리더라고요
괜찮아,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오는 거지, 뭐
(동식) 저, 선배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술 한잔하실까요?
가자, 내가 쏠게
[동식의 웃음]
- (동식) 아, 감사합니다 - (건) 가자!
(건) 그날 우리 3차까지 달렸는데
[건의 한숨]
참 그립다
그때 우리 새벽에 취해서 몇 년 만에 학교 갔잖아
학교 운동장에서 공도 없이 축구하는데
땀도 안 나고 그렇게 재밌더라고
(선영) 나랑 헤어지고 그렇게 즐거웠다고?
하, 씨, 바지까지 벗겼어야 됐는데
그 남자 건이 후배면 내 후배인데
지금쯤 서울 어딘가에서 순경 생활 하고 있겠지
[선영의 짜증 섞인 신음]
- (선영) 아씨, 열받아, 씨 - (건) 언젠가는 만날 거다
- (건) 또 그날처럼 우연히 - (선영) 아, 진짜, 강건, 씨
난 이게 인연이라고 생각해
[웃음]
다시 만나면 운명이지, 뭐
(경준) 야, 결혼해
잘 지내고 있지?
(건) 그때 빌려준 슬리퍼랑 티 잘 간직하고 있어
만나면 돌려줄게
난 다 버렸어, 그 사람이랑 관련된 건
(재원) 난 하나도 못 버리겠어 빼지도 못하고 있잖아
각자 처리하는 게 맞아
돌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
돌려받아 뭐 할 거야
(린이) 어차피 버릴 건데
누가 버리든 무슨 상관이야?
관계를 정리하는 데 도움 되지 않아?
[코웃음 친다]
야, 최경준, 너 내가 아는데 솔직하게 말해라
너 그때 관계 정리하러 갔었던 거 아니잖아
[자동차 경적]
일하는 데까지 와서 이래야겠어?
네가 안 만나 주니까
우리 헤어졌잖아, 왜 만나야 돼?
왜 내 전화 안 받아?
우리 헤어졌다니까? [경준의 한숨]
(경준) 그럼 이 물건들 다 어떡할 거야
톡 했잖아, 그냥 다 갖다 버리라고
나도 톡 했잖아 그냥은 다 못 버린다고
- (린이) 알았어, 내가 갖다 버릴게 - (경준) 아, 야
(경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린이) 지금 그 말이 나올 타이밍이야?
제대로 정리하고 헤어지자며
그래서 너 내가 준 거 싹 다 싸 들고 온 거 아니야?
그거 다 구라야, 구라
(경준) 센 척하려고 그런 거야
너랑 헤어질 생각 없어
돌려줄 거 있다는 거 다 핑계고
나 너 다시 잡으러 온 거야
(린이) 잡힐 생각 없거든?
- 두고 가 - (경준) 아, 이거 끝 아니거든?
너한테 받은 거 돌려주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았어
(경준) 너도 내가 준 거 다 돌려줘야 되잖아
그러려면 열 번, 열 번이 뭐야 몇십 번은 더 만나야 돼
한꺼번에 갖고 왔으면 됐잖아
너 힘들잖아, 혼자 들고 가려면
(경준) 이거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
너 생각날 때마다 꼭 안아 달라면서 100일 날 네가 사 줬던 곰탱이
그거 너무 커 갖고 못 갖고 왔어
나 입사했을 때 네가 사 준 해피트리도 아직 사무실에 있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 네가 사 준 코트도
세탁소에서 찾아와야 돼
그거 다 합치잖아?
그럼 박스가 아니라 그냥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돼, 그냥
차는 뒀다가 뭐 해?
(린이) 한꺼번에 실어서 우리 집으로 갖고 와
그러면 나 너희 동네 가도 돼?
저번에 싸우고 헤어졌을 때
(경준) 너희 동네도 오지 말라 그랬잖아
(린이) 꼭 돌려줘야겠다며
네 말대로 내가 그걸 혼자 다 어떻게 집까지 갖고 가?
그렇지
그러면 나 그때 너희 집에 가서 자도 되나?
[린이의 한숨]
(린이) [웃으며] 헤어졌는데 뭘 자고 가
[발랄한 음악]
(경준) 아, 나는 헤어질 생각이 없다니까?
아, 네가 뭐, 자고 가는 게 싫다면
뭐, 그 근처에서 열 번만 더 만나자
내가 너 만날 때마다 몇 박스씩 이렇게 갖다드릴게요 [박스가 달그락거린다]
다음에 만날 땐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집 갈까?
(린이) 근데 이건 뭐야?
(경준) 이거 기억 안 나?
(린이) 내가 이런 것도 사 줬었어?
(경준) 우리 놀이공원 데이트 처음 갔을 때 네가 사 준 거잖아
[린이의 호응하는 신음]
(린이) 그랬나?
아, 뭘 이런 것까지 다 보관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경준) 그러면 떡볶이집 가지 말고
놀이공원 데이트를 그냥 갈까?
나 하루 종일 이거 쓰고 다니면서 아주 생쇼를 할게
(린이) 그럼
너 여기서 딱 기다려 나 마감하고 올 때까지
그럼 헤어지는 거 다시 생각해 볼게
아, 지, 진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동차 경적]
(린이) 그 토끼 머리띠를 보는데
[한숨 쉬며] '그때 되게 좋았지' 싶더라고
[경준이 빵을 탁 내려놓는다]
내가 딱 노린 게 그거야
[집게를 달그락거리며] '우리 옛날에 사랑했잖아 아, 지금도 사랑하잖아'
[빵을 탁 놓으며] 위기를 기회로
내가 또 이게 되는 남자거든
(재원)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게 한 가지가 있는데
어, 그러니까
음…
(은오) 아이, 난 다 버렸다고 했잖아
하나도 없어, 걔랑 관련된 물건
그, 나한테 카메라가 있었거든?
(재원) 내가 양양 내려갈 때 몇 개 들고 갔었는데
그러니까 그 카메라가
지금은 나한테 없어
응
[잔잔한 음악]
[카메라 작동음]
[재원이 입바람을 후 분다]
(재원) 좋았어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의 옅은 탄성]
[카메라 조작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입바람을 후후 분다]
[카메라 셔터음]
어, 자, 이제 2주 차야
일단 보드는 거의 완성이 됐고
(재원) 나는 이제 그다음 공정으로 들어갈 거야
- 그래서 다음… - (은오) 뭐 해!
[문이 탁 닫힌다]
또 나무 보드 주문 들어왔어?
- (재원) 어 - (은오) 두 개나 들어왔어?
(재원) 어, 두, 두 개 [은오의 놀라는 신음]
(은오) 서울 올라가기 전까지 다 만들 수 있겠어?
응,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은오가 호응한다] [재원이 살짝 웃는다]
(은오) 어? 이게 뭐야?
(재원) 아, 그거 폴라로이드 그냥 한번 찍어 봤어
나도 이거 한번 찍어 볼래
(재원) 잠깐만
- (은오) 아 - (재원) 이거거든
(재원) 자, 들어 봐
이렇게 해서 그냥 찍으면 돼 [카메라 조작음]
- (은오) 여기 누르면 돼? - 어
- 아, 나 찍게? - (은오) 어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은오의 의아한 신음]
(재원) 자, 이제
여기서 필름을 뽑고 [은오가 호응한다]
- 우와 - (재원) 이제 좀 기다리면 돼
- (은오) 아, 기다려야 돼? - (재원) 응
(은오) [놀라며] 그럼 나 기다리는 동안
- (은오) 저것도 찍어 볼래 - (재원) 어, 뭐, 아, 그 필름 카메라?
(재원) 그거 좀 찍기 힘든데
어, 일단은 감도를 좀 알아야 되고 [은오의 탄성]
셔터 스피드 개념도 알아야 되고 조리개 개념을 좀 알아야 되는데
아니다, 일로 와 봐
- (재원) 봐, 이게 포커스야 - (은오) 응
(재원) 이걸로 초점을 잡는 거야 [은오가 호응한다]
- (재원) 흐려서 잘 안 보이지? - (은오) 응
이거를 돌려서, 그, 가운데 보면 상이 두 개가 돼 있지? [은오가 대답한다]
그게 이렇게 하나로 겹쳐지면 이제 초점이 맞는 거야
(은오) 어, 오, 이제 잘 보인다
- (재원) 잘 보여? - (은오) 어
(재원) 잘하네, 소질 있네, 똑똑하다
(은오) 그럼 말로만 하지 말고
(재원) 뽀뽀?
[재원이 쪽 뽀뽀한다]
[함께 웃는다] [밝은 음악]
[은오의 탄성]
[함께 웃는다]
[재원의 탄성]
[은오의 기분 좋은 신음] (재원) 아, 날씨 진짜 좋다
(은오) 진짜 좋다
[은오의 웃음]
(은오) 먹을래?
[재원의 웃음]
[재원이 말한다]
- (재원) 천천히 - (은오) 당겨, 당겨?
[오토바이 가속음]
[함께 웃는다]
(재원) 와, 죽을 뻔했다
- (재원) 나 손 놓는다? - (은오) 어, 안 돼, 안 돼
(은오) 안 돼, 안 돼, 아직, 아직! 아직, 잠깐만
- (재원) 자, 손 놓는다 - (은오) 안 돼!
(은오) [웃으며] 안 돼!
[함께 웃는다] 안 돼!
- (재원) 가자! - (은오) 안 돼 [은오와 재원의 웃음]
[은오의 기분 좋은 탄성]
[재원의 웃음]
[재원의 탄성]
(은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멋있게
[은오의 웃음]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됐어?
[은오가 말한다]
(재원)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재원의 아파하는 탄성] [은오의 놀라는 신음]
[카메라 셔터음]
(재원) 아 [은오의 웃음]
- (재원) 이거 봐, 피, 피, 피, 어어! - (은오) 어디?
(재원) 뻥이롱
(은오) '뻥이롱'? [함께 웃는다]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재원) 포커스를 맞춰서 상이 겹쳐…
- (은오) 맞는 것 같아, 봐 봐 - (재원) 맞는 것 같아?
(재원) 볼게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안 맞…
(은오) 재원! 빨리 나와
(재원) 왜, 왜, 왜? [은오의 웃음]
(재원) 아, 뭐야, 하지 마 찍지 마, 나 부었어
(은오) 어어, 손 내려
- (은오) 여기 봐, 웃음 - 웃음…
[카메라 셔터음] (은오) 아, 예쁘다
- (은오) 아, 잠깐, 잠깐, 잠깐 - (재원) 왜, 왜
(재원) 아, 이런 수동 카메라로 셀카를 어떻게 찍어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재원) 하, 그러니까 그게 없는 이유는
걔한테 있어, 응
내가 줬어, 걔한테
걔가 그 카메라 너무 좋아하길래
- 왔어? - (경준) 짜잔
(린이) 아, 생큐, 생큐
(경준)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그 카메라를 형이 어떻게 샀는데
쓰던 걸 줬다고? 박재원 성격에?
(경준)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빌려 달라고 해도
안 주던 그 카메라를?
차라리 새걸 사 주는 게 우리가 아는 박재원인데, 그렇지?
그럼 지금 그 카메라는 윤선아란 여자한테 가 있다는 거야?
(경준) 세 개 다? 진짜 세 개를 다 그냥 형이 줬대?
우와, 박재원 씨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야, 그래 나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됐냐?
아, 몰라, 뭐, 아무튼
나는 걔가 그 카메라를 어떻게 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
하지만 윤선아 씨는 팔아먹었을 거야
뭘 팔아먹어, 팔아먹…
[한숨]
만약에 걔가 이 인터뷰 보고 있으면
이 말 꼭 전하고 싶은데
(재원) 나 해, 해도 돼?
(재원) 어
할게 [목을 가다듬는다]
(재원) 야
너 정말 그 카메라 팔아먹었니?
만약에 진짜로 팔았으면
그 카메라 판 돈으로 뭐 했냐?
뭐, 맛있는 거 사 먹었냐?
뭐, 술 사 먹었어? 쇼핑했어?
너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야, 너 진짜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야,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정도가 있…
[재원의 한숨]
씨, 진짜, 씨
너 나한테 왜 그랬어?
두 달 동안 나는 사랑을 했어
하, 진짜
생각만 해도 진짜 개빡치네, 씨
(은오)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지만
사랑했던 마음만은…
아니
제발 걔 좀 찾아 줘라
이름은 윤선아
예쁘지만 나쁜 애
[경준의 질색하는 신음] [린이의 웃음]
(경준) 아, 아이씨, 짜증 나, 아유, 개극혐
[흥미로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은오) 그때 난 진심이었어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미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인데
과거는 돌아보지 않을 거야
지금 난 지금이 가장 중요해
(은오) 오늘 일반 쓰레기 버리는 날 맞지?
(건) 맨날 확인하냐?
[프라이팬이 지글거린다] 월, 수, 금 일반 쓰레기 화, 목 재활용
(은오) [놀라며] 오늘 파스타 당겼는데, 생큐
(건) 에이, 밥 먹고 먹지, 식전에
아니 일단 소중한 내 피부부터 좀 챙기고
(건) [웃으며] 조금만 기다려
[건이 달그락거린다] [은오가 개운한 숨을 내뱉는다]
(은오) 이거 면 다 삶긴 건가?
(건) 던져 봐
자 [건의 힘주는 신음]
더 삶아야겠다
[은오의 웃음]
(은오) 아, 뭐 하는 짓이야, 더럽게
여보세요
이탈리아 셰프들이 쓰는 방법이거든?
[헛웃음 치며] 아니거든?
내가 면이란 면은 다 있는 가게에서…
(건) 그런 가게에서 뭐?
(은오) [젓가락을 달그락 집으며] 아니야, 아무것도
(건) 와인도 한잔할래?
- 그래 - (건) 아, 이거 칠링 안 했는데
(건) 잠깐 냉장고에 넣어 놔도 되겠지?
(은오) 그냥 얼음으로 하지?
(건) [와인병을 달그락 내려놓으며] 맞는다, 너 냉장고의 이거 뭐야?
[달그락거리며] 과일 칸에 이상한 거 들어 있는데
이거 카메라 필름 아니야?
다 쓴 거지, 이거?
이걸 왜 냉장고에 넣어 놨어?
[잔잔한 음악]
(재원) 딱이네
(은오) 그걸 왜 냉장고에 넣어?
(재원) 아, 이거? 색감 변할까 봐
나 서울 가면 나 다니는 단골 사진관에서 현상하려고
[은오가 호응한다]
(은오) 그렇게 하면 색감이 안 변해?
뭐, 아예 안 변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실온에 두는 거보단 나으니까 [카메라 조작음]
[은오가 호응한다] (재원) 왜, 신기하지?
(은오) 응 [재원의 옅은 웃음]
(재원) 나 없을 때 저거 꺼내서 먹으면 안 된다
[함께 웃는다] 내가 확인할 거야
- (은오) 몇 개인 줄 알고? - (재원) 열세 개
(건) 아니, 이거 왜 또 냉장고에 넣어, 왜, 어?
- (건) 왜, 왜, 왜, 왜, 왜 - (은오) 아, 먹을 거야
신선하게 보관해야 맛있어
(건) 너 카메라가 있었어?
필름 카메라 없잖아
(은오) 야, 이거 마늘 다 탔다, 버리자
(건) 어, 자, 잠깐…
[건의 힘주는 신음]
아휴, 아까워
[학생들이 시끌시끌하다] (선영) 강건이 함께 사는 여자가 있다고?
알아, 이은오랑 사는 거
걔 때문에 헤어졌잖아
나랑 강건이랑
내 생각에는 언젠가 두 사람 결혼할걸?
[카메라 조작음]
[서랍을 쓱 닫는다]
(직원) 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경준)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가?
(재원) 야, 맞는다, 상암동 입주 청소 끝났지?
- (경준) 어, 왜? - (재원) 사진 찍으려고
- 제발 그런 건 좀 전문가한테 맡겨라 - (재원) 그래
[문이 탁 여닫힌다] (경준) 하여간 사서 고생을 한다니까
"사진관"
(은오) 이게 1년 전 거라 색감이 좀 변했을 텐데
(사진사) 아, 뭐, 그런 색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냉장고에 보관하셨죠?
(은오) 네
(사진사) 어떻게, 파일로 보관하실 건가요? 아니면 스캔해 드릴까요?
(은오) 아니요, 인화해 주세요
(사진사) 전부요?
(은오) 네, 전부 한 장씩
[사진사의 한숨]
아, 여기가 인화를 되게 잘한다던데
(사진사) 네? 아, 예, 뭐 전문가들이 많이 오긴 하죠, 예
[사진사의 웃음]
(은오) 저, 얼마나 기다려요?
[카메라 조작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감성적인 음악]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인화기 작동음]
[전화벨이 울린다]
(사진사) 여보세요
예,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박재원이에요
(사진사) 어, 어, 그래그래, 오랜만이야
아, 왜 요즘은 통 안 와? 필카 안 찍어?
아, 요즘엔 필카 안 찍고요 디카로만 작업해요
(재원) 어, 지금 포토샵 작업 끝나서 웹 하드에 올렸는데
언제쯤 가면 될까요?
(사진사) 아유, 야, 오늘은 좀 바쁜데
어, 급한 거 아니면 내일 작업해서 회사로 보내 줄게, 퀵으로
오케이
[사진사가 수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은오) 다 된 거죠?
(사진사) 아, 그러네요
어, 이 사람…
- (사진사) 내가 아는 사람인데 - (은오)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사진사) 아니, 그 청년 저기, 저기, 건축 회사 다니는…
아니에요, 그 사람 아니에요
(사진사) 아이고…
(은오) 제가 할게요, 계산해 주세요
(사진사) 네
[은오의 한숨]
(재원) 이건 내가 끝까지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걔한테 줬다는 카메라 세 개
그거 내가 준 거 아니야
[재원과 은오가 대화한다] (재원) 공항에서 헤어질 때 그 가방 봤거든
근데 급하게 비행기 타느라 깜빡했어
(재원) 뭐, 서울 와서 돌려받을 거니까 상관없기도 했고
(재원) 됐어
[재원의 힘주는 신음]
[숨을 하 내뱉는다]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이 첫날이야
나무가 들어왔어
어, 원래는 발사나무로 할까 하다가 너무 비싸고
삼나무는 옹이가 너무 많고 무거워서
그냥 이렇게 오동나무로 하기로 했어
내가 오늘부터 이렇게 보드 만드는 과정을
너한테 보여 줄 거야
[은오가 피식한다] [감미로운 음악]
[영상 속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 자, 이제 오늘은
이렇게 상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지그소로 자르는 작업을 할 거야
[힘주는 신음]
자
좀 있으면 네가 출근하니까 여기까지
아, 오늘은
이, 요 스트링거에 이 갈비뼈를 붙일 거야
어, 보드 상판에 올릴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야
아, 맞는다
내가 아직 얘기를 안 했더라
나 지금 보드 만들어, 우리 거
(영상 속 재원) 이게 보드가 있잖아
되게 만들기 쉬워 보여도 정말 어려운 작업이야
(영상 속 재원) 이 보드에 레일을 쌓는 작업을 할 거야
(재원) 이 본드가 굳는 데까지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이걸 하나 붙이고 두 시간을 기다려 줘야 돼 [휴대전화 알람음]
[휴대전화를 달그락 집는다]
[피곤한 숨소리]
[힘주는 신음] [냉장고 문을 탁 닫는다]
[뚜껑을 달그락 잠근다]
지금 보고 있지, 나 힘든 거?
이게 있잖아, 보드 만드는 게 정성이 엄청 들어가는 거다
(재원) 그냥 알고 있으라고
(영상 속 재원) 아, 근데 너 없을 때
몰래몰래 만들려니까 진짜 힘들다
(재원) 글쎄, 네가 이 보드를 좋아할진 모르겠는데
나는 진짜 열심히 만들고 있거든
이제 다음 공정은
[문이 달칵 열린다] - (은오) 뭐 해! - 여기, 어?
또 나무 보드 주문 들어왔어?
(재원) 어, 잠깐만
(재원) 자, 들어갑니다, 갈게요
자, 천천히
여기가 어디일까?
(은오) 아, 여기 어딘데, 뭐야 [재원의 웃음]
(재원) 어디게?
(은오) [냄새를 씁 맡으며] 여기 공방이네
- (재원) 어 - (은오) 공방 냄새인데?
(재원) 짠!
- (은오) 뭐야, 공방이잖아 - (재원) 어
- 아니, 그리고 보드 - (재원) 그래, 보드
(재원) 보드 몇 개야, 지금?
- (은오) 두 개 - (재원) 두 개, 그래, 두 개, 응
(은오) 근데?
(재원) '근데'라니?
응, 응
(은오) 아! 나 뭐, 이거 사포질 도와 달라고 부른 거야?
(재원) [한숨 쉬며] 아니야! 그런 거
이거 봐, 보드가 몇 개야, 두 개잖아 두 개면 뭐겠어? 너랑 나
커플 보드지! 내가 직접 만든 거
너 잠들면 내가 몰래몰래 나와서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너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기 전에 내가, 내가 직접 만든 거, 힘들게, 다
[웃으며] 직접
(은오) 대박
(재원) 응, 대, 대박
다야, 그게? 뭐…
(은오) [웃으며] 그래서 나 이제 뭐 하면 되는데?
자, 지금부터 우리가 여기에 그림을 그릴 거야
(재원) 이게 네 거고 이게 내 거야
- (은오) 우와 - (재원) 좋지?
(은오) 고마워! [재원의 웃음]
[재원의 기분 좋은 탄성] [은오의 웃음]
[카메라 조작음]
[감성적인 음악]
[카메라 조작음]
(재원) 공항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전화도 한 통 없었고 여기에도 안 왔어
근데 내가 진짜로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날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만나기로 한 날
음성 메시지 하나가 왔더라
[휴대전화 조작음]
[코를 훌쩍인다]
재원 씨, 나야
선아
(은오) 그동안 즐거웠어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카메라는 내가 가질게
아니야
내가 훔쳤어
처음부터 훔칠 생각이었어
(녹음 속 은오) 미안해
(재원) 나 이거 경준이한테도 얘기 안 했거든
뭐, 굳이 다 말할 필요는 없잖아 좋은 얘기도 아닌데
나 이 마지막 메시지 수십 번도 더 들었어, 근데
이거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수화기를 달칵 내려놓는다]
[재원이 숨을 후 내뱉는다]
[웃음]
오늘 청담동 며느리 콘셉트
(선영) 아
이거는 비밀인데
이거 다 비었다?
아무것도 없어, 빈 백
[웃음]
가끔 들고 다녀
기분 낼 수 있거든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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