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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남녀의 사랑법 5

 

 (내레이션)

 

 추억의 물건?

 

 나는 영화 티켓까지 다 모았었어

 

 [사람들이 시끌시끌하다]

 

 추억은 소중하니까

 

 보면 생각나지

 

 생각하면 괴롭고

 

 (경준)  연애가 끝나면  제일 골치 아픈 문제이긴 하지

 

 (린이)  나는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

 

 집착은 안 하지만 돌려받는 게 맞아

 

 뭘 꼭 돌려받아?  물건은 물건일 뿐이잖아

 

 (건)  맞아, 소중한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면 되는 거지

 

 나도 딱 그 마음이었어

 

 [공이 골대에 탁 들어간다]

 

 - (선영) 벗어  - (건) 뭘 벗어

 

 (선영)  우리 방금 헤어졌잖아  그러니까 벗으라고

 

 [한숨 쉬며]  또 시작이냐

 

 (건)  헤어진 거랑 그거랑 뭔 상관인데?

 

 (선영)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코트

 

 그거 내가 미국 여행 갔다 오면서  사 준 거잖아

 

 벗으라고

 

 (건)  그래, 벗는다, 벗어

 

 [흥미로운 음악]  [건의 한숨]

 

 - 티도 벗어  - (건) 돌았냐, 한겨울에?

 

 그거 우리 커플로 산 거잖아, 벗으라고

 

 (건)  야, 이거 네 거까지  다 내 돈 주고 산 거…

 

 (선영)  벗어, 벗어!  [건의 난감한 신음]

 

 이거 입을 때마다 내 생각 할 거잖아  그거 싫으니까 벗으라고!  [건의 당황한 신음]

 

 (건)  아…  [선영의 한숨]

 

 [선영이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의 한숨]

 

 (선영)  신발도 벗어

 

 [못마땅한 숨소리]

 

 (건)  어  [선영의 헛웃음]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  야, 양말도 벗어라

 

 (건)  양말을 내가 왜 벗어야 돼?

 

 - 그것도 내가 사 준 거잖아  - (건) 네가 양말을 언제 사 줬는데?

 

 내가 미키 마우스 양말이랑  같이 사 줬지

 

 네가 미키랑 스마일을  같이 사 줬다고, 나한테?

 

 너 빵꾸 난 양말 신어 가지고  내가 사 줬잖아

 

 양말은 진짜 안 돼

 

 발은

 

 제2의 심장이야

 

 [흥미진진한 음악]  [건의 추워하는 숨소리]

 

 [건의 헛기침]

 

 [건의 추워하는 숨소리]

 

 [건의 힘주는 숨소리]

 

 [건이 숨을 후후 내뱉는다]

 

 [건의 힘주는 신음]

 

 [건이 숨을 후후 내뱉는다]

 

 [건의 힘주는 신음]

 

 [건의 힘주는 신음]

 

 (동식)  신으세요, 추우실 텐데

 

 아니

 

 일부러 벗고 있는 건데

 

 맨발이 건강에 좋다 그래서

 

 (동식)  아까 족발집 거리에서  싸우시는 거 봤어요

 

 아, 보셨구나

 

 [숨을 들이켜며]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감사히…

 

 [힘겨운 숨소리]

 

 (동식)  이거라도 입으실래요?

 

 아유, 이렇게 감사할 데가…

 

 [동식의 웃음]

 

 (건)  어? 이 옷…

 

 - 아, 제가 고등학교…  - (건) 대운고등학교?

 

 (동식)  네  [힘찬 음악]

 

 (건과 동식)  축구부?

 

 (건)  ♪ 패기와 열정의 대운의 기상 ♪

 

 (동식)  ♪ 세상에 떨쳐라 대운의 기상 ♪

 

 (건과 동식)  ♪ 슛, 뛰어, 골, 뛰어 ♪

 

 ♪ 나가자, 싸우자, 우리의 대운 ♪

 

 [탄성 효과음]  (건과 동식)  대운!

 

 - 아, 반가워요  - (동식) 아, 그러게요

 

 (건)  네, 아…

 

 아니, 어떻게 이 옷을  아직도 안 버리고

 

 [동식의 웃음]  (건)  올해 졸업?

 

 (동식)  아니요, 5년 전에

 

 (건)  나 6년 전에

 

 우리 집에도 이 옷 아직 있어요

 

 어쩐지 낯이 익…

 

 (동식)  그 골키퍼 했던…

 

 아, 걘 나랑 닮은 애고  난 만년 후보, 응원 담당  [지퍼를 슥 올린다]

 

 [동식이 호응한다]  [건이 숨을 들이켠다]

 

 땀 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저, 24기 공격수 오동식입니다

 

 (건)  아, 네, 반갑습니다

 

 아, 어떻게 이런 순간에

 

 돕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선배님

 

 (건)  근데 평소에 이런 걸  가지고 다녀요?

 

 아, 아닙니다

 

 (동식)  제가 순경 시험에 합격해서  오늘 고시원 탈출하는 길입니다

 

 [동식의 웃음]

 

 (건)  아, 축하해요, 진짜, 와

 

 (동식)  아, 감사합니다

 

 신기하네요

 

 고시원에서 짐 챙겨서 나오다 보니까  가방으로 얻어맞고 계시는데

 

 하, 뭔가 마음 한구석이 짠하더라고요  [건의 한숨]

 

 남이 아니라서 그랬나 봐요, 선배님

 

 [한숨 쉬며]  그게 내가 선물한 가방이야

 

 선물한 가방으로 맞아 봤니?

 

 [어색한 웃음]

 

 (동식)  그 여자 진짜 차지게 때리더라고요

 

 괜찮아,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오는 거지, 뭐

 

 (동식)  저, 선배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술 한잔하실까요?

 

 가자, 내가 쏠게

 

 [동식의 웃음]

 

 - (동식) 아, 감사합니다  - (건) 가자!

 

 (건)  그날 우리 3차까지 달렸는데

 

 [건의 한숨]

 

 참 그립다

 

 그때 우리 새벽에 취해서  몇 년 만에 학교 갔잖아

 

 학교 운동장에서 공도 없이 축구하는데

 

 땀도 안 나고 그렇게 재밌더라고

 

 (선영)  나랑 헤어지고 그렇게 즐거웠다고?

 

 하, 씨, 바지까지 벗겼어야 됐는데

 

 그 남자 건이 후배면 내 후배인데

 

 지금쯤 서울 어딘가에서  순경 생활 하고 있겠지

 

 [선영의 짜증 섞인 신음]

 

 - (선영) 아씨, 열받아, 씨  - (건) 언젠가는 만날 거다

 

 - (건) 또 그날처럼 우연히  - (선영) 아, 진짜, 강건, 씨

 

 난 이게 인연이라고 생각해

 

 [웃음]

 

 다시 만나면 운명이지, 뭐

 

 (경준)  야, 결혼해

 

 잘 지내고 있지?

 

 (건)  그때 빌려준 슬리퍼랑 티  잘 간직하고 있어

 

 만나면 돌려줄게

 

 난 다 버렸어, 그 사람이랑 관련된 건

 

 (재원)  난 하나도 못 버리겠어  빼지도 못하고 있잖아

 

 각자 처리하는 게 맞아

 

 돌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

 

 돌려받아 뭐 할 거야

 

 (린이)  어차피 버릴 건데

 

 누가 버리든 무슨 상관이야?

 

 관계를 정리하는 데 도움 되지 않아?

 

 [코웃음 친다]

 

 야, 최경준, 너 내가 아는데  솔직하게 말해라

 

 너 그때  관계 정리하러 갔었던 거 아니잖아

 

 [자동차 경적]

 

 일하는 데까지 와서 이래야겠어?

 

 네가 안 만나 주니까

 

 우리 헤어졌잖아, 왜 만나야 돼?

 

 왜 내 전화 안 받아?

 

 우리 헤어졌다니까?  [경준의 한숨]

 

 (경준)  그럼 이 물건들 다 어떡할 거야

 

 톡 했잖아, 그냥 다 갖다 버리라고

 

 나도 톡 했잖아  그냥은 다 못 버린다고

 

 - (린이) 알았어, 내가 갖다 버릴게  - (경준) 아, 야

 

 (경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린이)  지금 그 말이 나올 타이밍이야?

 

 제대로 정리하고 헤어지자며

 

 그래서 너 내가 준 거  싹 다 싸 들고 온 거 아니야?

 

 그거 다 구라야, 구라

 

 (경준)  센 척하려고 그런 거야

 

 너랑 헤어질 생각 없어

 

 돌려줄 거 있다는 거 다 핑계고

 

 나 너 다시 잡으러 온 거야

 

 (린이)  잡힐 생각 없거든?

 

 - 두고 가  - (경준) 아, 이거 끝 아니거든?

 

 너한테 받은 거 돌려주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았어

 

 (경준)  너도 내가 준 거 다 돌려줘야 되잖아

 

 그러려면 열 번, 열 번이 뭐야  몇십 번은 더 만나야 돼

 

 한꺼번에 갖고 왔으면 됐잖아

 

 너 힘들잖아, 혼자 들고 가려면

 

 (경준)  이거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

 

 너 생각날 때마다 꼭 안아 달라면서  100일 날 네가 사 줬던 곰탱이

 

 그거 너무 커 갖고 못 갖고 왔어

 

 나 입사했을 때 네가 사 준  해피트리도 아직 사무실에 있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  네가 사 준 코트도

 

 세탁소에서 찾아와야 돼

 

 그거 다 합치잖아?

 

 그럼 박스가 아니라  그냥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돼, 그냥

 

 차는 뒀다가 뭐 해?

 

 (린이)  한꺼번에 실어서 우리 집으로 갖고 와

 

 그러면 나 너희 동네 가도 돼?

 

 저번에 싸우고 헤어졌을 때

 

 (경준)  너희 동네도 오지 말라 그랬잖아

 

 (린이)  꼭 돌려줘야겠다며

 

 네 말대로 내가 그걸  혼자 다 어떻게 집까지 갖고 가?

 

 그렇지

 

 그러면 나 그때  너희 집에 가서 자도 되나?

 

 [린이의 한숨]

 

 (린이)  [웃으며]  헤어졌는데 뭘 자고 가

 

 [발랄한 음악]

 

 (경준)  아, 나는 헤어질 생각이 없다니까?

 

 아, 네가 뭐, 자고 가는 게 싫다면

 

 뭐, 그 근처에서 열 번만 더 만나자

 

 내가 너 만날 때마다  몇 박스씩 이렇게 갖다드릴게요  [박스가 달그락거린다]

 

 다음에 만날 땐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집 갈까?

 

 (린이)  근데 이건 뭐야?

 

 (경준)  이거 기억 안 나?

 

 (린이)  내가 이런 것도 사 줬었어?

 

 (경준)  우리 놀이공원 데이트 처음 갔을 때  네가 사 준 거잖아

 

 [린이의 호응하는 신음]

 

 (린이)  그랬나?

 

 아, 뭘 이런 것까지 다 보관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경준)  그러면 떡볶이집 가지 말고

 

 놀이공원 데이트를 그냥 갈까?

 

 나 하루 종일 이거 쓰고 다니면서  아주 생쇼를 할게

 

 (린이)  그럼

 

 너 여기서 딱 기다려  나 마감하고 올 때까지

 

 그럼 헤어지는 거 다시 생각해 볼게

 

 아, 지, 진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동차 경적]

 

 (린이)  그 토끼 머리띠를 보는데

 

 [한숨 쉬며]  '그때 되게 좋았지' 싶더라고

 

 [경준이 빵을 탁 내려놓는다]

 

 내가 딱 노린 게 그거야

 

 [집게를 달그락거리며]  '우리 옛날에 사랑했잖아  아, 지금도 사랑하잖아'

 

 [빵을 탁 놓으며]  위기를 기회로

 

 내가 또 이게 되는 남자거든

 

 (재원)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게 한 가지가 있는데

 

 어, 그러니까

 

 음…

 

 (은오)  아이, 난 다 버렸다고 했잖아

 

 하나도 없어, 걔랑 관련된 물건

 

 그, 나한테 카메라가 있었거든?

 

 (재원)  내가 양양 내려갈 때  몇 개 들고 갔었는데

 

 그러니까 그 카메라가

 

 지금은 나한테 없어

 

 응

 

 [잔잔한 음악]

 

 [카메라 작동음]

 

 [재원이 입바람을 후 분다]

 

 (재원)  좋았어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의 옅은 탄성]

 

 [카메라 조작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입바람을 후후 분다]

 

 [카메라 셔터음]

 

 어, 자, 이제 2주 차야

 

 일단 보드는 거의 완성이 됐고

 

 (재원)  나는 이제  그다음 공정으로 들어갈 거야

 

 - 그래서 다음…  - (은오) 뭐 해!

 

 [문이 탁 닫힌다]

 

 또 나무 보드 주문 들어왔어?

 

 - (재원) 어  - (은오) 두 개나 들어왔어?

 

 (재원)  어, 두, 두 개  [은오의 놀라는 신음]

 

 (은오)  서울 올라가기 전까지  다 만들 수 있겠어?

 

 응,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은오가 호응한다]  [재원이 살짝 웃는다]

 

 (은오)  어? 이게 뭐야?

 

 (재원)  아, 그거 폴라로이드  그냥 한번 찍어 봤어

 

 나도 이거 한번 찍어 볼래

 

 (재원)  잠깐만

 

 - (은오) 아  - (재원) 이거거든

 

 (재원)  자, 들어 봐

 

 이렇게 해서 그냥 찍으면 돼  [카메라 조작음]

 

 - (은오) 여기 누르면 돼?  - 어

 

 - 아, 나 찍게?  - (은오) 어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은오의 의아한 신음]

 

 (재원)  자, 이제

 

 여기서 필름을 뽑고  [은오가 호응한다]

 

 - 우와  - (재원) 이제 좀 기다리면 돼

 

 - (은오) 아, 기다려야 돼?  - (재원) 응

 

 (은오)  [놀라며]  그럼 나 기다리는 동안

 

 - (은오) 저것도 찍어 볼래  - (재원) 어, 뭐, 아, 그 필름 카메라?

 

 (재원)  그거 좀 찍기 힘든데

 

 어, 일단은 감도를 좀 알아야 되고  [은오의 탄성]

 

 셔터 스피드 개념도 알아야 되고  조리개 개념을 좀 알아야 되는데

 

 아니다, 일로 와 봐

 

 - (재원) 봐, 이게 포커스야  - (은오) 응

 

 (재원)  이걸로 초점을 잡는 거야  [은오가 호응한다]

 

 - (재원) 흐려서 잘 안 보이지?  - (은오) 응

 

 이거를 돌려서, 그, 가운데 보면  상이 두 개가 돼 있지?  [은오가 대답한다]

 

 그게 이렇게 하나로 겹쳐지면  이제 초점이 맞는 거야

 

 (은오)  어, 오, 이제 잘 보인다

 

 - (재원) 잘 보여?  - (은오) 어

 

 (재원)  잘하네, 소질 있네, 똑똑하다

 

 (은오)  그럼 말로만 하지 말고

 

 (재원)  뽀뽀?

 

 [재원이 쪽 뽀뽀한다]

 

 [함께 웃는다]  [밝은 음악]

 

 [은오의 탄성]

 

 [함께 웃는다]

 

 [재원의 탄성]

 

 [은오의 기분 좋은 신음]  (재원)  아, 날씨 진짜 좋다

 

 (은오)  진짜 좋다

 

 [은오의 웃음]

 

 (은오)  먹을래?

 

 [재원의 웃음]

 

 [재원이 말한다]

 

 - (재원) 천천히  - (은오) 당겨, 당겨?

 

 [오토바이 가속음]

 

 [함께 웃는다]

 

 (재원)  와, 죽을 뻔했다

 

 - (재원) 나 손 놓는다?  - (은오) 어, 안 돼, 안 돼

 

 (은오)  안 돼, 안 돼, 아직, 아직!  아직, 잠깐만

 

 - (재원) 자, 손 놓는다  - (은오) 안 돼!

 

 (은오)  [웃으며]  안 돼!

 

 [함께 웃는다]  안 돼!

 

 - (재원) 가자!  - (은오) 안 돼  [은오와 재원의 웃음]

 

 [은오의 기분 좋은 탄성]

 

 [재원의 웃음]

 

 [재원의 탄성]

 

 (은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멋있게

 

 [은오의 웃음]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됐어?

 

 [은오가 말한다]

 

 (재원)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재원의 아파하는 탄성]  [은오의 놀라는 신음]

 

 [카메라 셔터음]

 

 (재원)  아  [은오의 웃음]

 

 - (재원) 이거 봐, 피, 피, 피, 어어!  - (은오) 어디?

 

 (재원)  뻥이롱

 

 (은오)  '뻥이롱'?  [함께 웃는다]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재원)  포커스를 맞춰서 상이 겹쳐…

 

 - (은오) 맞는 것 같아, 봐 봐  - (재원) 맞는 것 같아?

 

 (재원)  볼게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안 맞…

 

 (은오)  재원! 빨리 나와

 

 (재원)  왜, 왜, 왜?  [은오의 웃음]

 

 (재원)  아, 뭐야, 하지 마  찍지 마, 나 부었어

 

 (은오)  어어, 손 내려

 

 - (은오) 여기 봐, 웃음  - 웃음…

 

 [카메라 셔터음]  (은오)  아, 예쁘다

 

 - (은오) 아, 잠깐, 잠깐, 잠깐  - (재원) 왜, 왜

 

 (재원)  아, 이런 수동 카메라로  셀카를 어떻게 찍어

 

 (은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재원)  하, 그러니까 그게 없는 이유는

 

 걔한테 있어, 응

 

 내가 줬어, 걔한테

 

 걔가 그 카메라 너무 좋아하길래

 

 - 왔어?  - (경준) 짜잔

 

 (린이)  아, 생큐, 생큐

 

 (경준)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그 카메라를 형이 어떻게 샀는데

 

 쓰던 걸 줬다고? 박재원 성격에?

 

 (경준)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빌려 달라고 해도

 

 안 주던 그 카메라를?

 

 차라리 새걸 사 주는 게  우리가 아는 박재원인데, 그렇지?

 

 그럼 지금 그 카메라는  윤선아란 여자한테 가 있다는 거야?

 

 (경준)  세 개 다?  진짜 세 개를 다 그냥 형이 줬대?

 

 우와, 박재원 씨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야, 그래  나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됐냐?

 

 아, 몰라, 뭐, 아무튼

 

 나는 걔가 그 카메라를 어떻게 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

 

 하지만 윤선아 씨는 팔아먹었을 거야

 

 뭘 팔아먹어, 팔아먹…

 

 [한숨]

 

 만약에 걔가 이 인터뷰 보고 있으면

 

 이 말 꼭 전하고 싶은데

 

 (재원)  나 해, 해도 돼?

 

 (재원)  어

 

 할게  [목을 가다듬는다]

 

 (재원)  야

 

 너 정말 그 카메라 팔아먹었니?

 

 만약에 진짜로 팔았으면

 

 그 카메라 판 돈으로 뭐 했냐?

 

 뭐, 맛있는 거 사 먹었냐?

 

 뭐, 술 사 먹었어? 쇼핑했어?

 

 너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야, 너 진짜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야,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정도가 있…

 

 [재원의 한숨]

 

 씨, 진짜, 씨

 

 너 나한테 왜 그랬어?

 

 두 달 동안 나는 사랑을 했어

 

 하, 진짜

 

 생각만 해도 진짜 개빡치네, 씨

 

 (은오)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지만

 

 사랑했던 마음만은…

 

 아니

 

 제발 걔 좀 찾아 줘라

 

 이름은 윤선아

 

 예쁘지만 나쁜 애

 

 [경준의 질색하는 신음]  [린이의 웃음]

 

 (경준)  아, 아이씨, 짜증 나, 아유, 개극혐

 

 [흥미로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은오)  그때 난 진심이었어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미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인데

 

 과거는 돌아보지 않을 거야

 

 지금 난 지금이 가장 중요해

 

 (은오)  오늘 일반 쓰레기 버리는 날 맞지?

 

 (건)  맨날 확인하냐?

 

 [프라이팬이 지글거린다]  월, 수, 금 일반 쓰레기  화, 목 재활용

 

 (은오)  [놀라며]  오늘 파스타 당겼는데, 생큐

 

 (건)  에이, 밥 먹고 먹지, 식전에

 

 아니  일단 소중한 내 피부부터 좀 챙기고

 

 (건)  [웃으며]  조금만 기다려

 

 [건이 달그락거린다]  [은오가 개운한 숨을 내뱉는다]

 

 (은오)  이거 면 다 삶긴 건가?

 

 (건)  던져 봐

 

 자  [건의 힘주는 신음]

 

 더 삶아야겠다

 

 [은오의 웃음]

 

 (은오)  아, 뭐 하는 짓이야, 더럽게

 

 여보세요

 

 이탈리아 셰프들이 쓰는 방법이거든?

 

 [헛웃음 치며]  아니거든?

 

 내가 면이란 면은 다 있는 가게에서…

 

 (건)  그런 가게에서 뭐?

 

 (은오)  [젓가락을 달그락 집으며]  아니야, 아무것도

 

 (건)  와인도 한잔할래?

 

 - 그래  - (건) 아, 이거 칠링 안 했는데

 

 (건)  잠깐 냉장고에 넣어 놔도 되겠지?

 

 (은오)  그냥 얼음으로 하지?

 

 (건)  [와인병을 달그락 내려놓으며]  맞는다, 너 냉장고의 이거 뭐야?

 

 [달그락거리며]  과일 칸에 이상한 거 들어 있는데

 

 이거 카메라 필름 아니야?

 

 다 쓴 거지, 이거?

 

 이걸 왜 냉장고에 넣어 놨어?

 

 [잔잔한 음악]

 

 (재원)  딱이네

 

 (은오)  그걸 왜 냉장고에 넣어?

 

 (재원)  아, 이거? 색감 변할까 봐

 

 나 서울 가면  나 다니는 단골 사진관에서 현상하려고

 

 [은오가 호응한다]

 

 (은오)  그렇게 하면 색감이 안 변해?

 

 뭐, 아예 안 변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실온에 두는 거보단 나으니까  [카메라 조작음]

 

 [은오가 호응한다]  (재원)  왜, 신기하지?

 

 (은오)  응  [재원의 옅은 웃음]

 

 (재원)  나 없을 때  저거 꺼내서 먹으면 안 된다

 

 [함께 웃는다]  내가 확인할 거야

 

 - (은오) 몇 개인 줄 알고?  - (재원) 열세 개

 

 (건)  아니, 이거 왜 또  냉장고에 넣어, 왜, 어?

 

 - (건) 왜, 왜, 왜, 왜, 왜  - (은오) 아, 먹을 거야

 

 신선하게 보관해야 맛있어

 

 (건)  너 카메라가 있었어?

 

 필름 카메라 없잖아

 

 (은오)  야, 이거 마늘 다 탔다, 버리자

 

 (건)  어, 자, 잠깐…

 

 [건의 힘주는 신음]

 

 아휴, 아까워

 

 [학생들이 시끌시끌하다]  (선영)  강건이 함께 사는 여자가 있다고?

 

 알아, 이은오랑 사는 거

 

 걔 때문에 헤어졌잖아

 

 나랑 강건이랑

 

 내 생각에는  언젠가 두 사람 결혼할걸?

 

 [카메라 조작음]

 

 [서랍을 쓱 닫는다]

 

 (직원)  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경준)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가?

 

 (재원)  야, 맞는다, 상암동 입주 청소 끝났지?

 

 - (경준) 어, 왜?  - (재원) 사진 찍으려고

 

 - 제발 그런 건 좀 전문가한테 맡겨라  - (재원) 그래

 

 [문이 탁 여닫힌다]  (경준)  하여간 사서 고생을 한다니까

 

 "사진관"

 

 (은오)  이게 1년 전 거라  색감이 좀 변했을 텐데

 

 (사진사)  아, 뭐, 그런 색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냉장고에 보관하셨죠?

 

 (은오)  네

 

 (사진사)  어떻게, 파일로 보관하실 건가요?  아니면 스캔해 드릴까요?

 

 (은오)  아니요, 인화해 주세요

 

 (사진사)  전부요?

 

 (은오)  네, 전부 한 장씩

 

 [사진사의 한숨]

 

 아, 여기가 인화를 되게 잘한다던데

 

 (사진사)  네? 아, 예, 뭐  전문가들이 많이 오긴 하죠, 예

 

 [사진사의 웃음]

 

 (은오)  저, 얼마나 기다려요?

 

 [카메라 조작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감성적인 음악]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카메라 셔터음]

 

 [인화기 작동음]

 

 [전화벨이 울린다]

 

 (사진사)  여보세요

 

 예,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박재원이에요

 

 (사진사)  어, 어, 그래그래, 오랜만이야

 

 아, 왜 요즘은 통 안 와?  필카 안 찍어?

 

 아, 요즘엔 필카 안 찍고요  디카로만 작업해요

 

 (재원)  어, 지금 포토샵 작업 끝나서  웹 하드에 올렸는데

 

 언제쯤 가면 될까요?

 

 (사진사)  아유, 야, 오늘은 좀 바쁜데

 

 어, 급한 거 아니면 내일 작업해서  회사로 보내 줄게, 퀵으로

 

 오케이

 

 [사진사가 수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은오)  다 된 거죠?

 

 (사진사)  아, 그러네요

 

 어, 이 사람…

 

 - (사진사) 내가 아는 사람인데  - (은오)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사진사)  아니, 그 청년  저기, 저기, 건축 회사 다니는…

 

 아니에요, 그 사람 아니에요

 

 (사진사)  아이고…

 

 (은오)  제가 할게요, 계산해 주세요

 

 (사진사)  네

 

 [은오의 한숨]

 

 (재원)  이건 내가 끝까지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걔한테 줬다는 카메라 세 개

 

 그거 내가 준 거 아니야

 

 [재원과 은오가 대화한다]  (재원)  공항에서 헤어질 때 그 가방 봤거든

 

 근데 급하게 비행기 타느라 깜빡했어

 

 (재원)  뭐, 서울 와서 돌려받을 거니까  상관없기도 했고

 

 (재원)  됐어

 

 [재원의 힘주는 신음]

 

 [숨을 하 내뱉는다]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이 첫날이야

 

 나무가 들어왔어

 

 어, 원래는 발사나무로 할까 하다가  너무 비싸고

 

 삼나무는 옹이가 너무 많고 무거워서

 

 그냥 이렇게 오동나무로 하기로 했어

 

 내가 오늘부터  이렇게 보드 만드는 과정을

 

 너한테 보여 줄 거야

 

 [은오가 피식한다]  [감미로운 음악]

 

 [영상 속 재원의 힘주는 신음]

 

 (재원)  자, 이제 오늘은

 

 이렇게 상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지그소로 자르는 작업을 할 거야

 

 [힘주는 신음]

 

 자

 

 좀 있으면 네가 출근하니까 여기까지

 

 아, 오늘은

 

 이, 요 스트링거에  이 갈비뼈를 붙일 거야

 

 어, 보드 상판에 올릴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야

 

 아, 맞는다

 

 내가 아직 얘기를 안 했더라

 

 나 지금 보드 만들어, 우리 거

 

 (영상 속 재원)  이게 보드가 있잖아

 

 되게 만들기 쉬워 보여도  정말 어려운 작업이야

 

 (영상 속 재원)  이 보드에 레일을 쌓는 작업을 할 거야

 

 (재원)  이 본드가 굳는 데까지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이걸 하나 붙이고  두 시간을 기다려 줘야 돼  [휴대전화 알람음]

 

 [휴대전화를 달그락 집는다]

 

 [피곤한 숨소리]

 

 [힘주는 신음]  [냉장고 문을 탁 닫는다]

 

 [뚜껑을 달그락 잠근다]

 

 지금 보고 있지, 나 힘든 거?

 

 이게 있잖아, 보드 만드는 게  정성이 엄청 들어가는 거다

 

 (재원)  그냥 알고 있으라고

 

 (영상 속 재원)  아, 근데 너 없을 때

 

 몰래몰래 만들려니까 진짜 힘들다

 

 (재원)  글쎄, 네가 이 보드를  좋아할진 모르겠는데

 

 나는 진짜 열심히 만들고 있거든

 

 이제 다음 공정은

 

 [문이 달칵 열린다]  - (은오) 뭐 해!  - 여기, 어?

 

 또 나무 보드 주문 들어왔어?

 

 (재원)  어, 잠깐만

 

 (재원)  자, 들어갑니다, 갈게요

 

 자, 천천히

 

 여기가 어디일까?

 

 (은오)  아, 여기 어딘데, 뭐야  [재원의 웃음]

 

 (재원)  어디게?

 

 (은오)  [냄새를 씁 맡으며]  여기 공방이네

 

 - (재원) 어  - (은오) 공방 냄새인데?

 

 (재원)  짠!

 

 - (은오) 뭐야, 공방이잖아  - (재원) 어

 

 - 아니, 그리고 보드  - (재원) 그래, 보드

 

 (재원)  보드 몇 개야, 지금?

 

 - (은오) 두 개  - (재원) 두 개, 그래, 두 개, 응

 

 (은오)  근데?

 

 (재원)  '근데'라니?

 

 응, 응

 

 (은오)  아! 나 뭐, 이거  사포질 도와 달라고 부른 거야?

 

 (재원)  [한숨 쉬며]  아니야! 그런 거

 

 이거 봐, 보드가 몇 개야, 두 개잖아  두 개면 뭐겠어? 너랑 나

 

 커플 보드지! 내가 직접 만든 거

 

 너 잠들면 내가 몰래몰래 나와서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너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기 전에  내가, 내가 직접 만든 거, 힘들게, 다

 

 [웃으며]  직접

 

 (은오)  대박

 

 (재원)  응, 대, 대박

 

 다야, 그게? 뭐…

 

 (은오)  [웃으며]  그래서 나 이제 뭐 하면 되는데?

 

 자, 지금부터 우리가  여기에 그림을 그릴 거야

 

 (재원)  이게 네 거고 이게 내 거야

 

 - (은오) 우와  - (재원) 좋지?

 

 (은오)  고마워!  [재원의 웃음]

 

 [재원의 기분 좋은 탄성]  [은오의 웃음]

 

 [카메라 조작음]

 

 [감성적인 음악]

 

 [카메라 조작음]

 

 (재원)  공항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전화도 한 통 없었고 여기에도 안 왔어

 

 근데 내가 진짜로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날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만나기로 한 날

 

 음성 메시지 하나가 왔더라

 

 [휴대전화 조작음]

 

 [코를 훌쩍인다]

 

 재원 씨, 나야

 

 선아

 

 (은오)  그동안 즐거웠어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카메라는 내가 가질게

 

 아니야

 

 내가 훔쳤어

 

 처음부터 훔칠 생각이었어

 

 (녹음 속 은오)  미안해

 

 (재원)  나 이거 경준이한테도 얘기 안 했거든

 

 뭐, 굳이 다 말할 필요는 없잖아  좋은 얘기도 아닌데

 

 나 이 마지막 메시지  수십 번도 더 들었어, 근데

 

 이거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수화기를 달칵 내려놓는다]

 

 [재원이 숨을 후 내뱉는다]

 

 [웃음]

 

 오늘 청담동 며느리 콘셉트

 

 (선영)  아

 

 이거는 비밀인데

 

 이거 다 비었다?

 

 아무것도 없어, 빈 백

 

 [웃음]

 

 가끔 들고 다녀

 

 기분 낼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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