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퀸 5
<메이퀸> 5부
해주 집 앞 (밤)
고개 드는 해주. 그 얼굴이 눈물범벅이다.
홍철 해주야...
해주 (울며) 아부지, 지 알고 있었어라. 지가 엄니 딸 아닌 거, 알고 있었어라.
홍철 (!) 해주야?
해주 그려서, 엄니한테 잘 보일라고 온갖 노력 다 했는디... 아부지, 아부지!
지 엄니는 누구다요?
홍철 (보는)
해주 지를 낳아준 친 엄니는 어디 있다요?
말 못하고 보는 홍철. 울며 보는 해주.
홍철 (당황하다가) 너 시방 뭔 소리를 한다냐?
아까 니 엄니가 한 소리는 승질이 나서 말이 헛나간 것이랑께.
니 엄니가 니 엄니제, 친 엄니 같은 것이 어디 있다냐?
해주 아녀라. 지 오래 전부터 알았당께요.
사람들이 지가 생긴 것도 엄니하고 다르다고 혔고요,
엄니가 지만 미워 하잖어라. 상태오빠하고 영주한텐 안 그러는디...
홍철 아, 아니라는디 워째 그려!
해주 (울며 보면)
홍철 생긴 걸로 거시기하면 나도 너하고 별로 안 닮았잖여?
글면 너가 아부지 딸도 아니다냐? 그러고 싶어야?
해주 (고개 저으며) 아녀라.
홍철 (앉으며 어깨 잡으며) 해주야. 넘들이 뭐라고 혀도, 하늘이 무너져도야,
니는 아버지 딸이랑께. 아부지 딸이면 엄니 딸인 것이여. 알겄어야?
해주 (울며 대답 못하고)
홍철 워째 대답 못 혀? 알겄어야?
해주 ... 야.
홍철 그려. 글면 엉뚱한 생각 하덜 말어야. 너가 그런 생각 해 불면,
아부지가 월매나 맘이 아프겄냐? 그러지 말어라이.
해주 죄송혀라. 참말로 죄송혀라.
홍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 해주. 하늘 보며 눈물 글썽해지는 홍철.
도현 집 정원 (밤)
기출과 함께 들어오는 창희. 일문이 나오다가 그 모습 보고 굳어진다.
기출 어디 가는 길이야? (하는데)
다짜고짜 창희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일문. 넘어지는 창희.
기출 (놀라) 아이고! 일문아! 왜 이래!
일문 (대꾸 없이 창희를 마구 발로 밟으면)
기출 (놀라 뒤에서 잡으며) 왜 갑자기 이러냐고! 창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일문 잘못이 없어? 내 동생은 지금 깨어나지도 못하는데,
이 자식은 뻔뻔하게 두 발로 서서 들어오잖아!
기출 (앞을 막으며) 그게 창희 잘못은 아니잖아. 이러지 마. 일문아.
일문 이 자식이 인화 데리러 갔잖아요? 그럼 끌고라도 와야지,
왜 그 배에 태웠냐고요? (창희 걷어차며) 어! 왜 태웠냐고! 이 자식아!
창희 (고통스러운 듯 쓰러진 채 이 악물고 있는데)
기출 (앞을 막으며) 그런 사고 날 줄 몰랐잖아. 창희가 알았으면 그랬겠니? 미안하다. 내가 사과할 테니까, 제발 이러지 마. 응?
일문 너! 만에 하나라도 내 동생 잘못되면, 그땐 진짜 죽을 줄 알아!
거지같은 것들 때문에 집안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에이! 빌어먹을!
하고 나가버리는 일문. 쓰러진 채 그대로 있는 창희.
얼굴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른다. 부축하는 기출.
기출 괜찮아? (얼굴 만지려 하며) 많이 다쳤어?
창희, 그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집 쪽으로 간다. 아프게 보는 기출.
해주집 마당 (밤)
마루에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해주. 결국 일어나 평상 앞으로 가,
밤하늘 바라본다. 안방 문 열고 나오던 달순. 해주 모습 보고는,
다시 문 닫아 버린다. 의식 못하고 그대로 밤하늘 보는 해주.
해주 (중얼거리듯) 엄니...
인화 병실 (밤)
인화를 간호하고 있는 금희. 그 슬픈 얼굴에서 F.O.
조선소가 보이는 언덕 정상 (아침- F.I)
올라오는 창희. 얼굴에 상처가 나 있다.
창희, 조선소 바라보며 심호흡하다가, 문득 고개 돌려 바라본다.
해주가 일각에 앉아 멍하니 조선소의 배들 보고 있다.
창희 해주야..
해주 (멈칫 보고) 음마... 창희 오빠?
창희 (다가가 보면)
해주 얼굴이 어째 그려라?
창희 (얼굴 만지고) 어제 밤에 넘어졌어. 몸이 회복이 덜 됐나 봐.
해주 조심하지라... 인자 괜찮다요?
창희 (옆에 앉으며) 넌 여기 웬일이야? 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해주 아녀라.
창희 그럼...?
해주 (불쑥) 창희 오빠는 어째 엄니가 안 보이셔라?
창희 (멈칫 보면)
해주 병원에도 안 오셨던디...
창희 (바다 쪽으로 시선 돌리며)... 없어.
해주 (!) 엄니가... 돌아가셨어라?
창희 어릴 적에 아버지하고 날 버리고 떠났어.
해주 (놀라 보면)
창희 가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더 싫은 아버지... (하다가 한숨 쉬며)
아무튼 떠났어. 얼굴도 기억이 안 나.
해주 오빠도 지하고 똑같구만이라.
창희 (보고) 무슨 소리야? 넌 어머니가 계시잖아?
해주 고것이... 우리 엄니는 우리 친 엄니가 아니어라.
아부지는 아니라고 하시는디... 지는 알어라.
지도 오빠처럼 우리 친 엄니, 얼굴도 몰라라.
창희 너 그래서 그렇게 집안 일 열심히 하고... (하다가) 지금 엄마가 구박해?
해주 (손사래 치며) 아, 아녀라.
창희 그럼? 친엄마 아니니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야?
해주 야, 지금 엄니가 니는 내 딸 아니다, 하는 것이 참말로 겁나구만이라.
친 엄니가 워떤 분인지 가끔 궁금하긴 해도,
혹시 지 찾아 올까봐 그것도 무서워라.
창희 왜?
해주 글면 아부지하고 헤어지게 되잖여라.
(고개 숙이며) 지는 아부지하고 헤어지면 세상 살 자신 없당께요.
창희 (말없이 물끄러미 보는데)
해주 (고개 들며) 근디, 요건 비밀이어라. 우리 아부지 아시면,
마음 아파 하실탱께, 절대로 딴 데서 말하면 안 되어라.
창희 알았어. 내 얘기도 비밀.
해주 글면 약속! (손가락 내밀면)
창희 (미소 머금고 손가락 걸고)
해주 복사! (손바닥 펴면)
창희 (손바닥 문지르다가 문득 그 손잡고) 손이 따뜻하네.
해주 음마? 오빠는 어찌 이래 차다요?
창희 마음이 따뜻하지 못해서 그래.
해주 그건 아녀라. 우리 아부지도 손이 차신디, 얼매나 맘이 비단결인디요?
글고, 지는 손이 더워서 여름에 아부지 손 잡으면 겁나게 좋당께요.
오빠가 그려라.
창희, 말없이 손잡은 채 해주 보는데, 문득 잡은 손 의식하고
슬며시 빼내는 해주. 얼굴 빨개진다. 그 모습 보고 창희도 어색해진다.
말없이 고개 돌려 조선소 바라보는 두 사람.
인화 병실 앞 (낮)
걸어오는 해주. “장인화” 이름이 보이는 병실 앞에 멈춘다.
노크하려다가 멈칫 보면, 문이 조금 열려 있다.
해주, 문틈으로 보면 병실 안 인화. 링거를 꽂은 채 잠들어 있고,
그 옆에는 초췌해 보이는 금희가 인화의 손을 잡고 앉아 있다.
동 병실 안 + 밖 (낮)
금희 옆으로 다가가는 도현. 그 옆에 일문이 서 있다.
도현 (어깨에 손 올리며) 당신... 이제 눈 좀 붙여.
벌써 이틀 동안 잠 한 숨 못 잤잖아.
금희 (인화만 바라보고)
도현 제발 고집 부리지 말고. 이러다 당신까지 쓰러져.
양남댁 싸 온 죽이라도 좀 먹든지.
금희 어떻게 잠이 와요? 어떻게 먹어요? 인화가 이러고 있는데..
도현 여보...
금희 아직 우리 애가 눈도 안 떴는데... 잠이 오면... 죽이 들어가면...
그게 엄마에요?
해주 (지켜보다가 시무룩해 져 돌아서는데)
금희 (E) 인화야!!
도현 (E) 왜 그래?
해주 (멈칫 서며 다시 문틈을 들여다보면)
일문 아버지! 인화가 눈을 떴어요!
도현과 금희 보면, 인화가 눈을 뜨고 멍하니 보고 있다.
도현 인화야! 아버지 보이냐?
인화 (힘없이 보면)
금희 인화야, 인화야... 엄마 못 알아보겠니?
인화 엄마...
금희 그래, 엄마야. 인화야... 정신이 드니?
인화 엄마... 피자 먹고 싶어.
금희 (일순 와락 껴안으며) 우리 애기 살았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현 (일문 보며) 주치의 불러!
일문 예, 아버지!
동, 병실 밖 (낮)
일문 나오다가 멈칫 본다. 주춤 물러나며 고개 숙이는 해주.
인상 찌푸려지는 일문.
일문 야! 거지! 니가 왜 왔어?
해주 (발끈해) 지 거지 아니라고 했... (하다가) 인화, 괜찮여라?
일문 기집애야! 너 지금 약 올리냐? 니가 인화 저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하는데)
도현 (E) 뭐하고 있어?
해주 보면, 문 열고 나오는 도현.
도현 의사 불러오라고 했잖아?
일문 예... (해주 째려보고 가면)
해주 (꾸벅하며) 안녕하셨어라?
도현 (말없이 노려보면)
해주 거시기... 인화 쪼까 보고 싶은디...
도현 인화가 너 볼 일 없다. 내가 니 아버지 볼 일은 좀 있다만...
해주 고것이 무슨 소리다요?
대꾸 없이 돌아서 들어가는 도현. 문 탁! 닫아 버린다.
시무룩해 보다가 돌아서는 해주.
동, 병실 안 (낮)
도현 바라보는 금희.
금희 누가 왔어요?
도현 그 해주라는 아이.
금희 (얼굴 굳어지는데)
인화 해주가 왔어요? 그럼 다들 괜찮은 거예요? 산이 오빠도 무사해요?
도현 그래. 다들 구조 됐다.
인화 아! 다행이다! 그럼 해주 들어오라고 그러죠.
금희 (보고는) 인화야. 이제 그 아인 다시는 만나지 마라.
인화 왜?
금희 너 이렇게 만들었잖아? 걔가 배 운전 했다면서!
인화 (멈칫 보는)
금희 처음부터 이상한 애였어. 두 번 다시 상대도 하지 마. (도현 보며)
정말 뻔뻔한 애네요. 오지 말라고 분명히 얘길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네요. 어디서 그런 게 나타나서...
인화 (시선 불안한. 손가락으로 침대보만 만지작거리는데)
도현 당신 걱정 마. 내가 그 아이 아버지한테 내 요트 값까지 모조리 청구할 테니까. (하는데)
인화 (놀라) 안 돼요! 아빠!
도현 (보면)
인화 그거... 내, 내가 그랬어요.
금희 무슨 소리니, 그게?
인화 그러니까... 아빠 배 말야. 자랑하고 싶어서... 내가 타자고 했다고.
금희 (놀라 보면)
인화 열쇠가 꽂혀 있길래.... 돌렸더니..(울상이 돼서) 갑자기 배가 움직이잖아.
금희 그렇다고 어떻게 니가 배를 몰아?
인화 배가 덜컹거리면서 막 나가니까 해주가 운전한 거야.
도현 (표정 굳은 채로) 어쨌든 해주라는 애가 배를 몬 거잖아?
인화 그래도 해주가 나 구해줬단 말이에요! 나 물 먹어서 죽을 뻔 했는데,
걔가 날 살려 줬다구요...
도현과 금희, 놀라 서로 쳐다보면...
눈치 보다가 갑자기 머리 움켜쥐며 인상 쓰는 인화.
금희 (놀라 보고) 왜 그러니? 인화야!
인화 아....머리 아파. 깨질 거 같아.
금희 어디가? 어떻게! (도현 보며) 주치의 선생 왜 안 와요?
인화야, 조금만 참아. 의사 선생님 곧 오실 거야.
인화 (머리 잡은 채) 아빠... 배 없어져서 어떡해요? 그거 비싼 거잖아.
도현 이 녀석아. 지금 배가 문제냐? 그까짓 배 백 척이라도 너하곤 못 바꿔.
하는데 들어오는 일문. 의사와 간호사도 같이 들어온다.
인화, 간호사가 든 주사기 보고 안색 변한다.
인화 주사 맞을 거야? 싫어! 나 안 아퍼! 하나도 안 아프단 말야!
어이없어 보는 금희와 도현 모습에서.
해주 집 마당 (낮)
해주,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서는데, 평상에서 영주 머리 빗기는 달순.
달순 (보고 비꼬듯) 오셨어요? 아침 드시자마자 팽~ 하니 사라지더니,
이번엔 비행기를 부수고 오셨나? 휴일이라 아주 신이 나셨구먼!
하이고, 그렇게 돌아다니고 싶어 병원엔 어떻게 누워 계셨대?
해주 (밝게) 죄송혀라, 엄니... 쪼까 다녀올 데가 있어서,
점심 아직 안 드셨지라?
달순 썩을 년아. 지금이 몇 신데 점심 타령이야?
너 기다리다가 모두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 죽을 뻔 했다!
해주 영주야. 쪼끔만 기다리라이. 언니가 금시 밥 해 줄탱께. (하는데)
영주 점심 먹었어, 언니..
해주 (멈칫 보면)
달순 차암~ 빨리도 나선다. 후딱 방에나 기어들어가 봐!
하고 영주 머리 계속 빗기는 달순. 의아해 보는 해주.
동, 안방 ( 낮)
해주, 들어오면 작은 상위에 보자기가 씌어 있다.
해주 앉으며 보자기 치우면, 삶은 감자 한 그릇이 놓여 있다.
해주, 약간 감격해 보는데...
달순 (E) 야! 빨랑 쳐 먹고 뒷집에도 좀 갖다 줘라!
밀가루 다 떨어졌는데, 혹시 또 한 포대 줄지 아냐?
해주 (멈칫) 야... 야! 엄니! (하고 감자 먹는 모습에서)
배 밭 일각 (낮)
썩은 배가 여러 군데 떨어져 있고, 배나무 잎도 떨어져 앙상하다.
그 앞에 서 있는 정우와 봉희, 중년.
중년 이기 암만캐도 이상한 기라... 작년까지 공해가 암만 심해도,
이래 이파리까지 떨어 지고 배가 썩지는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나무까지 죽는기라.
하는데, 봉희 떨어진 이파리들을 치우고 흙을 손에 묻혀 맛본다.
일순 흙을 퉤퉤! 뱉는 봉희를 보는 정우.
정우 왜 그래?
봉희 (중년 보며) 아저씨, 배 밭에 농약 친지 얼마나 됐어요?
중년 바람이 쎄가, 요새는 농약 안 칬는데?
봉희 확실해요?
중년 그렇다 카이!
그 말에 흙을 손으로 파 보는 봉희. 안에서 썩은 뿌리 하나 꺼낸다.
정우 (보고) 뭐야? 뿌리가 썩었잖아?
봉희 이거 성분 분석 좀 해 봐야겠다.
정우 (의아해 보는데서)
정우 집 앞 (낮)
흙과 나무뿌리 봉지에 담아오는 봉희와 정우. 집안으로 들어서려는데,
해주가 감자 든 채반 들고 나온다.
해주 아저씨! 어디 갔다 오신당가요?
정우 해주구나? 오랜만이다.
해주 그러게 말여라. 요새 어째 그리 통 안 보이셨다요?
아저씨 보고 싶었는디요.
정우 그랬어? 야아. 우리 통했구나. 아저씨도 해주 보고 싶었는데... (웃는데)
봉희 이 꼬맹인 누구냐?
정우 어, 앞집 살아. (해주 보며) 해주야, 이쪽은 내 친구.
해주 (봉희에게 인사) 첨 뵙겠어라..
봉희 (본채 만 채하고 정우에게) 임마, 니가 이러니까 장가 못 가고 이 궁상 으로 사는 거다. 요런 꼬마말고 쭉쭉 빵빵 아가씨를 좀 만나라.
해주 지도 아가씨 맞는디요?
봉희 (해주 머리 콩 때리며) 계란을 암탉이라고 해라. 니가 무슨 아가씨냐?
해주 (우씨) 아줌닌 팍삭 삭은 닭 같은디요?
봉희 뭐? 아줌니? 팍삭? 이 쪼꼬만 게 어른한테 어디!
해주 오는 말이 돌멩인디, 어째 가는 말이 비단 되겄어라?
봉희, 어이없는 듯 보고, 정우, 두 사람 보고 웃는데서.
정우 방안 (낮)
정우, 책 보는 가운데, 찐 감자를 맛나게 먹고 있는 봉희.
해주 (못마땅한) 아줌니! 고만 좀 먹으랑께요.
우리 아저씨 줄라고 갖고 왔단 말여라.
봉희 꼬맹아.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단다.
그리고 분명히 내가 아줌마 아니라고 그랬지?
해주 남의 걸 고래 뺏아 먹응께, 시집을 못 갔구만이라.
나가 남자라도 싫겄소.
봉희 이게? 이 돌콩 같은 게 어떻게 어른한테 한 마디도 안 질려 그러냐?
아이구, 내 딸 같으면 벌써 그냥 콱!
해주 우물에서 슝늉 찾네요잉. 시집이나 가셔놓고 딸 얘기 하셔라.
(정우 보며) 이 아줌니는 뭐 하는 사람인디, 아저씨하고 친구다요?
정우 (웃으며) 석유 연구하는 학자야.
해주 학자요? 공부하고는 담 쌓고 산 얼굴 같은디요?
봉희 (어이없어 보는데)
정우 (피식 웃고) 참! 해주야. 부엌에 밀가루 한 포대 있는데,
그거 어머니 갖다 드려.
해주 (멈칫 보고) 아녀라. 지난번에도 주셨는디..
정우 난 혼자라서 먹을 일이 별로 없어. 근데 니가 들고 갈 수 있겠어?
해주 야... 지 힘 쎄당께요. 참말로 고맙구만이라, 아저씨..
(일어나며) 이 아줌니 다 주지 말고 꼭 드셔라. (하고 나가면)
정우 (미소로 보다가) 저 녀석 이쁘지 않냐?
봉희 퍽도 이쁘다. 쪼꼬만 게 벌침을 삶아 먹었는지 톡톡 쏘기만 하구만...
정우 (미소 머금고) 우리 유진이 생각나서 그래.
살아 있다면 쟤 나이가 됐을 텐데..
봉희 (멈칫 보고) 그러게 임마, 빨리 장가가서 딸 하나 낳아라.
정우 그러는 너는?
봉희 나야 쨔샤. 석유하고 결혼했지...
(하고는) 야, 조만간 언니한테 가 볼려 그러는데, 같이 안 갈래?
정우 (멈칫 보고 얼굴 굳어지며) 내가 거길 왜 가?
봉희 얌마! 너 왜 그렇게 언닐 싫어해? 그냥 재혼한 것도 아니고,
사별해서 재혼한 건데 뭘 그렇게 미워하냐고?
정우 (차갑게)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말라 그랬잖아?
그럴 거면 니 언니네로 가!
봉희 알았다! 자식아! 괜히 신경질이야?
정우 (대꾸 없이 굳은 얼굴에서)
인화 병실 (저녁)
잠들어 있는 인화 보다가 도현 쳐다보는 금희.
금희 여보, 미안해서 어떡하죠?
도현 (보면)
금희 해주라는 애 말이에요. 인화 구해준 줄도 모르고 지난번에 때리기까지 했는데?
도현 당신이?
금희 예...
도현 (잠시 생각하는 얼굴에서)
병실 특실 (밤)
강산의 침대 반쯤 들려 있고, 대평이 앉아 있다. E 노크소리.
뒤이어 들어오는 도현. 손에 과일 바구니 들고 있다.
강산 (보고) 어! 안녕하세요?
도현 그래. 많이 나았구나.
강산 저야 원래 튼튼하잖아요?
좀 있으면 또 근질근질해서 날아다닐걸요? 하하!
대평 (퉁명스럽게) 우짠 일이고?
도현 (과일 바구니 놓으며) 제 요트 때문에 사고가 났으니, 사과드리려구요.
대평 사과는... 개코라 캐라. 남의 손주 다리 뿌싸놓고 무신 놈의 사과고?
강산 아이~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과일 바구니 보며) 여기 진짜 사과 있다구요. (하나 꺼내 물며) 음.. 맛있네.
도현 거기 인화 편지도 있다. 읽어보렴.
강산 어, 껌딱지 깨났어요? (아차 싶어) 아 인화가,..하도 껌을 좋아해서...
(어색하게 웃는) 하하하.
대평 깨 났으믄, 다행이구마.
도현 그래서 말씀인데... 산이하고 인화 나으면, 사고 났던 애들하고 가족들 초청해서... 제가 파티를 열어주려고 하는데... 어떠신지...
강산 요트에 탔던 얘들 모두요? 와! 멋진데요?
대평 파티도 좋다마는... 배사고 한번 났으면 뭐 깨닫는 기 쪼매 있어야제.
아 잡을 뻔 했으이까네, 내는 배 하고는 인연이 없다, 이런 생각 말이다.
도현 (말없이 미소 머금는데서)
도현 집 정원 (낮)
정원 테이블에 깔려 있는 호화로운 음식들... 와인까지 놓여 있고,
도현이 그 뒤 그릴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시중드는 양남댁과 인화.
금희와 강산,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옆엔 인화의 빈자리 있고,
그 옆엔 해주가 있다. 맞은편에 홍철과 달순, 상태, 영주가 있고,
기출과 창희는 해주 옆에서 좀 떨어져 있다.
홍철네 식구들 정신없이 음식 먹고 있는데,
홍철, 고기 굽는 도현의 자상한 모습,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앉아 있는 금희 번갈아 본다.
이를 불안하게 주시하는 기출. 홍철의 시선에 도현의 옆에서 아양을 떠는 인화의 모습이 어느 순간, 해주로 바뀐다. 홍철, 그 모습 물끄러미 보는데, 툭 치는 달순.
달순 뭐 해? 안 먹고?
홍철, 멈칫 깨어나 보면 해주의 모습 다시 인화로 바뀌며,
인화, 고기 접시 들고 와 대평 앞에 놓는다.
인화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늘 저 이쁘죠?
대평 (허허 웃으며) 너야 늘 귀엽제.
인화 저 크면 산이 오빠한테 시집 갈건데.. 저 손주 며느리로 어떠세요?
그 말에 음식 먹던 강산이 캑캑거리고, 대평 그저 껄껄 웃는데,
금희 (무안해) 인화야. 여자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농담이래도...
인화 엄마, 나 농담 아냐! 산이 오빠 내꺼 라니까? 내가 찜해 놨거든!
강산 야! 내가 갈비찜이냐? 어따 대고 찜이래?
인화 (아랑곳 않고 강산 옆에 앉으며) 약혼은요. 더 일찍 해도 상관없어요.
강산 (숟가락으로 머리 때리며) 정신 차려라, 꼬마야. 뭔 약혼?
인화 왜? 사극 드라마 보면 내 나이 때 다 시집도 가더라 뭐...
고기 굽던 도현, 싫지 않은 듯 보고 미소 짓는데,
해주, 대평과 강산을 갸우뚱하며 바라보다가,
해주 (옆의 인화에게 속삭이듯) 야, 니 갈비찜 아부지는 워째 저리 나이가 많으시다냐? 늦둥이당가?
인화 (기막힌) 너 몰랐어? 산이 오빠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셔.
해.풍.조.선... 회장님이시라구...
해주 (놀라) 뭐라고야? 그 커다란 조선소 회장님이라고야?
(놀라 강산과 대평 다시 번갈아 보는데)
금희 (홍철과 달순 향해) 아드님이 우리 일문이랑 같은 반이라고 들었는데... 총명하게 생겼네요.
상태 (금희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열심히 먹기만 하는)
일문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엄마 쟤, 우리 반 꼴찌예요, 꼴찌.
달순 (그 말에 얼굴 굳는데)
강산 얌마! 말은 똑바로 해라! (금희 보고 손들며) 꼴찌는 저에요, 저!
일동 (그 모습에 웃고)
대평 이노무 자석, 꼴등이 자랑이가? 손까지 들고 동네방네 떠들구로.
인화 이상하다. 해주는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데... 해주 오빠는 꼴찌야?
둘이 안 닮았나 봐.
달순 (얼굴 더 굳어지고)
홍철 안 그래도 나가 저놈 땜시 머리가 아퍼야.
공부 하니라고 방도 혼자 쓰는디 저 모양인께... 뭐가 될라고 저라는지..
달순의 얼굴 더 일그러지는데, 와인 잔 들고 다가오는 도현.
도현 회장님, 더운데 제 서재로 가시죠. 드릴 말씀도 있고...
대평 (멈칫 보는데서)
동, 서재 (낮)
각종 조선책이 서가에 꽂혀 있고, 여러 종류 배 모형들이 전시된 서재.
와인 잔 들고 들어오는 도현과 대평.
도현 우리 인화가 산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어르신..
아직 어리지만, 장차 사돈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대평 그냥 솔직하게 내 안방에 들어오고 싶다 캐라.
내 죽고 나서 해풍조선까지 꿀꺽할 속셈, 모를 줄 아나?
도현 무슨 말씀을... 저보다 더 오래 사실 거 같은데요...
대평 (대꾸 없이 서가에 책들 보다가) 조선 책이 많구마.
배를 책 보며 만들라 카는 얼빠진 놈들이 옛날에도 있었제.
도현, 말없이 와인 마시는데, 서가에서 뭔가 꺼내 보는 대평.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라는 제목이 들어온다.
대평 이거 좀 빌려 도고.
도현 (다가와 보고는) 수학책 아닙니까? 어르신이 이걸 봐서 뭐 하시게요?
대평 내 볼라 카는 기 아이고, 산이 줄라 칸다.
도현 애들이 볼 책도 아닌데요?
대평 싫으면 말아라! 우라질 놈! 책 한 권 빌리 주는 것도 아깝나?
(하고 책상에 툭! 던지는데)
도현 (정색하며) 회장님... 이 까짓 책이야 백 만권이라도 사 드리죠.
대신에 배 밭은 양보 좀 해주시죠.
대평 (보고) 그거 말할라꼬 불렀나... 자네, 그래 오래 보고도 내를 모르나?
내가 언제 양보라 카는 걸 하는 거 봤더나?
도현 그래서 학수 동생 정우를 내세웠습니까?
그 아이 정도로는 저 못 막습니다.
대평 건방 떨지마라. 자네 집구석이라꼬 어른 앞에서 함부로 짖는 거 아이다.
도형 회장님... 한 때 스승으로 모신 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럽니다.
이쯤에서 물러나시지요.
대평 (노려보며) 개가 사람 물면 우째 되는지 아나?
도현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회장님 뒤에 있던 분들, 다 은퇴하셨지요.
회장님도 여생 편하게 보내셔야지요. (하는데)
들고 있는 와인을 도현의 얼굴에 홱! 뿌리는 대평.
눈 깜짝 않고 대평 보는 도현.
대평 건방진 놈... 호랭이가 늙었다꼬 하룻강아지가 덤비나? 거울 보거라.
내한테 싸움 걸었다가 니 꼬라지 우째 될지... (하고 나가 버린다)
거울 앞에 가 서는 도현. 붉은 와인이 피처럼 얼굴에 흘러내린다.
차가운 미소 머금는 도현.
동, 정원 (낮)
굳은 얼굴로 걸어 나오는 대평. 강산에게 다가간다.
대평 산아, 일 나거라! 가자!
강산 아, 왜요?
대평 일나라카면 일 나거라! 일마야!
일동 (보는데)
금희 (다가와) 왜 벌써 가시게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좀 더 노시다 가시죠.
대평 묵고 놀고 하다보면, 젊은 놈이 뒤쫓아 오제.
(강산 보며) 퍼뜩 일나라카이!
강산 (하는 수 없이 주춤 일어나면)
인화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저 산이 오빠랑 더 있고 싶단 말이에요.
대꾸 없이 강산 손 끌고 나가는 대평. 우르르 일어나는 일동.
달순만 부은 얼굴로 음식 먹고 있다.
동 집 앞 (낮)
나오는 대평과 강산. 앞에 대평의 지프차가 서 있다.
강산 장회장님하고 무슨 일 있었어요? 갑자기 왜 이러세요?
대평 (대꾸 없이 차 문 열면)
강산 할아버지, 오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애들 파티라구요.
왜 분위길 깨세요?
대평 이눔아야. 세상 더 살아 봐라.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진짜 죽는다.
퍼뜩 타거라!
불만 어린 얼굴로 차에 타는 강산. 시동 걸고 출발하는 대평의 차.
동, 정원 (낮)
음식 먹는 달순의 앞에 다가오는 금희.
금희 (아주 살갑지는 않게) 해주가 참 속이 깊은 애더군요.
제가 오해를 해서 야속한 얘기도 많이 했는데...
한 번을 대들지 않고...밝고 싹싹한 딸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달순 (이죽거리듯) 속 편한 소리 하시네요. 제 입장 돼 보세요,
그 소리 나오시나...
금희 (멈칫 뭐 이런 여자가 있나? 보는데서)
달순 (해주 보며) 야! 이 기집애야! 고만 쳐 먹고 영주 좀 봐. 쟤 졸리잖아?
업고 좀 재워!
금희 얼굴 굳어지고, 해주 보면 영주가 배부른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해주 야... (하고 일어나는데)
창희 (잡으며) 해주야. 밥부터 마저 먹어.
달순 (보고) 뭐야? 넌?
창희 (달순 보며) 무슨 다 큰 애를 업어서 재워요? 해주도 아직 어린데..
달순 남의 집구석에서 뭘 하든 니가 뭔 상관이야? 별꼴이야, 진짜...
창희 (보는데)
해주 오빠... 지 많이 먹었어라. (달순 보며) 엄니, 지가 업겄어라. (하는데)
금희 아니다. 더 먹어. (양남댁 보며) 아줌마! 쟤 좀 방안에 데리고 가 눕혀요!
홍철 (멈칫 보고) 아니어라. 상태야, 니가 데리고 가 쪼까 눕혀야.
달순 아, 왜 상태를 시켜? 이 기집애가 업는다는데!
인화 아줌마 이상해요!
달순 (멈칫 보면)
인화 아줌마, 해주한테 도시락도 안 싸 주잖아요?
맨날 옷도 한가지 밖에 안 입히고, 아줌마 계모에요?
금희 (찌푸리며) 인화야. (하는데)
달순 계~ 모? 응! 그래! 너 말 잘 했다. 내가 저 기집애... (하는데)
기출 (벌떡 일어나며) 왜 그러십니까! 정말!
일동 (놀라보고)
일문 어이! 아저씨,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기출 아니,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홍철 보며 눈짓하는데)
달순 참말로 이상하네? 애고 어른이고 왜 다들 나만 보고 뭐라 그래?
내가 뭘 잘 못했다고! 부잣집이면 다야?
아이구! 왕년에 누구 부자 아닌 사람 있었어?
(하고 앞에 놓인 와인 마시려는데)
홍철 뭐 하는 짓이여! 시방! (하고 뺏으려는데)
달순 이거 놔! 술 먹고 콱! 죽어 버릴 테니까!
홍철, 와인 잔 뺏다가 와인 달순에게 쏟는다. 달순, 노려보는데,
홍철 미쳐 부렀냐? 아그 가진 여편네가 뭔 술이당가?
달순 그래! 미쳤다! 내가 미치지 않게 생겼어?
해주 저 년이 온갖 착한 척은 다하고...
내가 지 밥도 안 해 준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모양인데...
그러면서 지 오빠 등신 만들고 있는 거... 당신 눈엔 안 보여?
홍철 뱉으면 다 말이당가? 아니 지 딸래미 칭찬하면 기분 좋아야 정상이제, 왜 험담을 하고 난리여? (금희 힐끗 보고) 여그 남의 집이다이.
지발 교양 좀지켜불자.
달순 교양? 내 교양 누구 때문에 다 날아갔는데!
(일동 보며) 그래. 나 이 모양으로 산다고 무시하는 모양들인데...
나 원래부터 이렇게 후지게 산 사람 아니었어!
이 인간 만나기 전엔 나도 잘 나갔다구! 아니, 해주 저년만 아니었어도!
하는데 일순 탁자 꽝 내려치는 홍철. 그 바람에 음식 그릇과 잔들이,
나가떨어진다. 놀라 보는 일동..
해주 아부지!
달순 어이구! 천홍철! 너 지금 나 치려고 했냐?
니 애 밴 년을 지금 치려고 했냐고? 그래 쳐 봐.! 어디 쳐보라고!
해주 지발 그만 해요! 엄니!
하는데, 영주가 잠에서 깨 소리 내 운다. 참담한 얼굴로 해주 보는 홍철. 찌푸려진 얼굴로 보는 금희.
기출 집 거실 (낮)
홍철 팔을 잡고 들어오는 기출.
기출 그러게 뭐 하러 여길 왔어요? 이게 무슨 꼴입니까?
홍철 ....
기출 천병장님... 딴 생각 하는 거 아니죠?
홍철 하나만 물어 보자잉.
기출 (보는)
홍철 우리 해주, 쌍둥인 것이다냐?
기출 무슨 소리에요?
홍철 거시기, 인화라는 갸가 해주하고 나이가 같잖여?
근디 뭔 일로 한 아그는 버려 불고 한 아그는 델꼬 살게 했냔 말여.
기출 (보고 말 못하는데)
홍철 자석아. 답답혀 죽겄다잉. 딴 생각 안 할 팅께, 말 좀 해 보더라고.
워째 그랬다냐? (하는데)
창희 (E) 아버지!
두 사람, 멈칫 보면 창희가 들어온다.
창희 해주 어머니, 상태하고 동생 데리고 집에 가셨어요.
홍철 (멈칫 보고) 글면... 우리 해주는?
도현 집 거실 (낮)
방에서 백화점 쇼핑백 들고 나오는 금희. 해주가 거실에 서 있다.
해주 (고개 숙이며) 죄송혀라. 잔치 상 차리셨는디, 지 식구들 땜시...
근디, 우리 엄니가 나쁜 분은 아니셔라. 아그를 가지셔서,
쪼까 예민해지셔서 그러신 게라.
금희 ... 이거 한번 입어 봐.
쇼핑백에서 노란 색 원피스 한 벌 꺼내는 금희.
해주 오메! 요것이 뭐다요?
금희 아줌마가 너한테 미안해서 옷 한 벌 샀다.
해주 안 그러셔도 되는디...
금희 어디 맞는지 한번 보자. (해주 몸에 원피스 대어 보며) 어때?
해주 한 번 입어 봐도 되겠어라?
금희 그래..
해주, 입고 있는 옷 벗는다. 떨어진 런닝 뒤, 목 아래 흉터자국이 선명하 다. 원피스 입는 해주.
해주 어뗘라? 괜찮은 게라?
금희 그래. 노란색이 잘 어울리는 구나.
해주 지퍼 쪼까 올려주셔라. (돌아서려는데)
홍철 (E) 해주야!
멈칫 보는 금희. 열려진 현관에 홍철이 서 있다.
해주 아부지! 아줌니가 지 옷 줬어라!
홍철 ... 그냐?
해주 (신나서 혼자 지퍼 올리고) 어째 보인당가요? 이쁘다요?
홍철 그려... 이쁘구마이.
해주 (일각에 있는 거울 앞에 가 보고는) 오메! 옷이 날개라두마이!
천해주가 천사가 돼 부렀네! (금희 보며) 참말로 고맙구만이라!
말없이 미소 띠는 금희. 신나서 거울에 요리조리 몸 비춰 보는 해주.
그 모습 물끄러미 보는 홍철.
동 서재 (저녁)
도현, 배 모형들 중 드릴 십 모형 하나를 들며 굳은 얼굴로 생각하는데, 들어오는 금희.
도현 다들 갔나?
금희 예. (혼잣말) 어떻게 저런 엄마 밑에서 그런 애가 나왔는지 몰라요.
도현 (보고) 무슨 소리야?
금희 해주 말이에요.
도현 당신도 그렇게 느꼈어? 그 아이 부모랑은 별로 안 닮아 보이더군.
그리고... 왠지 낯이 익어.
금희 (보고는) 몇 번 봤으니까 그렇죠. 오늘은 미안해서 불렀는데,
아무래도 인화하고 어울리는 거 그렇게 달갑지는 않아요.
환경이 너무 안 좋은 얘 같아요.
도현 나도 어릴 때 그렇게 살았잖아?
금희 당신하고 같아요? (하고는) 근데... 강회장님하고 무슨 일 있었어요?
도현 (멈칫 보고) 아니야. 무슨 일은...
금희 (약간 의아해 보는 얼굴 위로)
달순 (E) 벗어! 이년아!
해주 집 안방 (밤)
해주의 원피스를 벗겨 내려는 달순.
달순 (잘 안 벗겨지자 등짝 후려치며) 벗으라는 소리 못 들었어!
홍철 (들어오다가 그 모습 보고) 시방 뭐하는 짓이다냐? 어째 또 이려!
달순 너 나가! 나가서 그 집 가 살아! 인환가 하는 그 기집애 집 가 살라구. 니가 그 애 목숨 구해줬다니까 그 집서 데리고 살겠지! 가라고!
홍철 아, 뭣 땀시 이러냐니께!
해주 (원피스 다 벗고) 여깄어라, 엄니...
홍철 그 집서 준 것을 어째 벗으라고 이 난리여!
달순 갔다 팔려 그런다, 왜!
홍철 뭐라고라?
달순 그럼 우리 형편에 백화점 물건 입게 생겼냐?
마누라하고 아들놈은 남들 앞에서 등신 만들어 놓고,
이년만 명품 옷 입혀 놓으면 입 찢어지게 좋냐?
홍철 (버럭) 이러지 말랑께! 지발!
달순 옴마마? 애 떨어지겠네?
그래! 이제는 툭 하면 소리 지르고 팰려고 그러지?
내 신세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큰 소리야!
홍철 달순아...
달순 나도 소싯적엔 인천 바닥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나도 이런 명품 옷 입고 나서면 길 가던 사내들 모두 고개 쫙 빼고,
쳐다봤다고! 금흰지 금텐지 그 여편네 보다 내가 못 한 게 뭐있어?
근데 당신이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었잖아!
홍철 그려! 모두 다 잘못잉께, 해주한테 그만 좀 혀라.
나! 해주하고 쪼까 살자잉. (울컥해 눈물 터지며) 나 얘랑 살고 싶당께.
해주 (우는 홍철 보고 글썽해서) 아부지... 어째 이러신당가요?
지는 이 옷 맘에 안 들어라. 긍께 울지 마셔라.
홍철 이 자석아...너가 이 아부지 땜시 이것이 뭔 꼴이다냐?
(울며) 나가 죽일 놈이다이. 죽일 놈이여...
해주 (같이 울며) 아부지... 울지 마시라니께요... 지 진짜 괜찮여라.
달순 (기가 막혀 보고) 아이구! 누가 보면 내가 저년 때려 죽일려 하는지 알겠네! 아, 그만 좀 짜! 심봉사 심청이 만났냐!
하고 나가 버리는 달순. 계속 끅끅 울고 있는 홍철.
그런 홍철을 보며 같이 우는 해주 모습에서.
동, 마루 (밤)
마루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해주. 그 모습 물끄러미 보는 홍철.
해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올려준다. 그 모습에,
(플래시백 1)- 3부 씬21. 도현 집 앞.
쇼핑을 하고 행복하게 인화와 함께 들어가는 금희 모습.
(플래시백 2)- 2부 씬8. 해주 동네 골목길.
빈 병 박스 든 캐리어를 끌고 다리 절며 오는 해주의 모습.
(플래시백 3)- 씬28. 도현 집 거실.
해주에게 원피스 입혀주는 금희.
(플래시백 4)- 3부 씬3. 해주집 마당.
해주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휘어잡는 달순.
(플래시백 5)- 씬1. 해주 집 앞.
해주 (울며) 그려서, 엄니한테 잘 보일라고 온갖 노력 다 했는디...
아부지, 아부지! 지 엄니는 누구다요?
(현재)
해주 보며 눈물 뚝 떨어지는 홍철. 이불 여며주고 일어난다.
동, 헛간 (밤)
딸칵, 불 켜지는 소리와 함께 드러나는 내부.
전 주인이 쓰던 물건들이 중구난방으로 쌓여있다.
구석에 있는 부서진 장롱의 맨 아래 문을 여는 홍철.
작은 상자를 꺼내 열어보면, 노란색 뜨개옷(1부 씬16)이 들어있다.
옷을 만지작거리는 홍철 얼굴에서 F.O.
천지석유화학 일각 (낮- F.I)
손에 상자 들고 걸어오는 홍철. 화학단지의 엄청난 규모에 놀란 듯,
두리번거리며 온다.
동 회장 비서실 (낮)
홍철 바라보는 여비서.
여비서 회장님을... 뵈러 오셨다구요?
홍철 야.
여비서 약속 하셨어요?
홍철 아녀라. 고것은 아닌디...
여비서 그럼 뵙기 힘드실 거예요.
홍철 아, 어제도 같이 만났어라. 꼭 좀 봬야 할 일이 있구만이라...
여비서 지금은 손님이 계신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동, 도현 집무실 (낮)
대치하듯 마주 서 있는 도현과 정우.
도현 기출한테 얘기 들었다. 그 동네 와서 산다면서?
녀석... 좀 일찍 찾아오지 그랬냐? 일단 좀 앉자.
정우 그럴 필요 없습니다.
도현 (보고 미소 띠며) 그래, 옛날부터 넌 나를 싫어했지.
그렇다고 강대평 회장한테 가서 붙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정우 경고하는데, 배 밭에서 손 떼세요! 그 땅은 우리 형 땅이었어요!
당신이 뭔데 형이 나눠준 땅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려 합니까?
도현 정우야. 배 밭 문제는 니 형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니 형과 내가 살던 때는 아무 기술도 없어서 무엇 하나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소가 만들어지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단 말이다.
정우 제 형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 형이라면, 배 밭에 목메고 사는 사람들은 죽여가면서 꿈을 이루진 않습니다!
도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거다! 그까짓 배 밭 평생 일군다 해도,
그 사람들 삶은 똑같아. 하지만 그 배 밭에 조선소가 세워지면,
지금보다 수 백 배는 그 사람들 삶이 나아질 거다. 모르겠냐?
정우 궤변 늘어놓지 마십시오! 난 당신이... 예전에 우리 형한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알고 있어요.
도현 (멈칫 보고) 무슨 소리냐? 그건?
정우 양심이 있다면 거기 대고 물어 보세요.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
내가 있는 한, 그 배 밭 한 뼘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굳이 조선소 하겠다면 정당한 값, 지불하고 하세요.
도현 (말없이 노려보는데서)
동, 접견실 (낮)
홍철,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는데, 다가오는 여비서.
여비서 손님? 회장님께서 만나 뵙겠다고 하십니다.
홍철 (멈칫 고개 들고 보는데서)
동 회장실 앞 복도 (낮)
여비서를 따라 걸어오는 홍철.
무심코 엘리베이터 쪽으로 고개 돌리다가, 타고 있는 정우 본다.
굳은 얼굴의 정우. 홍철 못 본 채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홍철 아니, 윤선상이 어째...? (하는데)
여비서 (돌아보며) 이쪽입니다, 손님..
홍철 아, 예... (의아한 듯 고개 갸우뚱하는데서)
동, 도현 집무실 (낮)
여비서 따라 들어서는 홍철. 도현이 밝은 얼굴로 일어난다.
도현 아이구! 해주 아버지, 어서 오세요!
홍철 (꾸벅 인사하며) 바쁘신디, 방해한 건 아닌지...
도현 아닙니다. 앉으세요. 홍비서, 차 좀 줘.
여비서 예. (인사하고 나가면)
자리에 앉는 도현과 홍철.
도현 무슨 일로 회사까지 오셨습니까?
홍철 고것이...긍께... 거시기.. (하고 말 못하면)
도현 해주한테 무슨 일 있어요?
홍철 (멈칫 보고) 아, 아녀라. 그것이 아니라... 거시기, 회장님...
예전에 바다에서 딸을 잃어버린 적이 있지요잉?
도현 (얼굴 굳어지고)
홍철 이름이 유진이라 했지라? 11년 전인디...
도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죽었습니다. 그건 왜요?
홍철, 침 삼키고는 상자에서 노란색 뜨개옷 꺼낸다.
그 옷보고 눈 커지는 도현!
홍철 이 옷을 모르시겄어라? 그 때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인디...
도현 (얼굴 싸늘해지며) 처음 보는 옷인데,
그게 유진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홍철 (당혹스런 얼굴로) 그럴 리가 없는디... 잘 보셔라.
틀림없이 회장님 따님이 입고 있던 옷이당께요.
도현 (뜨개 옷 들어보고는) 아니요. 내 딸 옷 아닙니다.
홍철 혹시... 하도 옛날 일이라서, 거시기 까 묵어 분 거 아니다요?
사모님한티 봬 드리면 알 수도 있을 거 같은디...
도현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홍철 (멈칫 보면)
도현 우리 딸은 분명히 죽었어! 그 아이 시신까지 찾았단 말야!
홍철 (놀라) 시, 시신까지요?
도현 그래! 그 아이 잊으려고 집사람이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근데 당신이 뭔데 그 상처를 건드리려고 해!
어디서 이 따위 옷을 주워 와서 곪은 상처 터뜨리냔 말야!
홍철 (멍한 얼굴로 옷 집어 드는 모습에서)
동, 바깥 복도 (낮)
상자 들고 나오는 홍철. 뭐에 홀린 듯 도현 집무실 바라보고 걸어간다.
찻잔 쟁반 들고 오다가 의아해 보는 여비서.
동, 집무실 (낮)
무섭게 굳어 있는 도현. 차 쟁반 들고 들어오는 여비서.
여비서 회장님... 차는?
도현 박기출이... 박집사 어디 있어?
여비서 예?
도현 말 귀 못 알아들어? 박기출이 어디 있는지 알아 오란 말야!
해주 동네 일각 (낮)
가방 들고 동네 주민에게 인사하며 나오는 기출.
기출 아무 걱정 마십시오, 며칠 내로 돈이 입금 될 겁니다.
하는데 그 옆에 다가와 끼익! 서는 도현의 차. 놀라 보는 기출.
도현이 직접 운전대 잡고 있다. 창문 내리는 도현.
기출 아니, 회장님?
도현 (쳐다보지도 않고) 타.
기출 (얼떨떨한 얼굴로 보는데서)
바닷가 일각 (낮)
다가와 멎는 도현의 차. 도현, 차 문 열고 내린다.
긴장해서 가방 안은 채 같이 내리는 기출.
기출 (둘러보며) 회장님... 여긴 왜..?
도현 따라 와.
앞장 서 해변으로 가는 도현. 불안감에 사로잡혀 따라가는 기출.
동, 바닷가 일각 (낮)
방파제는 아닌, 바다물이 올라오지 못하는 낮은 둑이 있는 곳.
그 곳에 서서 바다 바라보는 도현. 그 뒤에서 불안하게 보는 기출.
기출 (눈치 보다가) 회장님... 오늘은 실적이 괜찮았습니다.
(가방에서 서류들 꺼내며) 제법 등치가 큰 배 밭 주인이 잘 알던 사람이어서... (하는데)
도현 천홍철이라는 사람, 뭐하는 인간이야?
기출 예?
도현 (대꾸 없이 바다 보면)
기출 구, 군대 선뱁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공업사에서 일하구요.
도현 그 친구가 날 찾아왔어.
기출 (굳어지며) 그 사람이 왜... 왜요?
도현 (몸 돌려 쳐다보며) 유진이에 대해서 묻더군. 딸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순간, 얼어붙는 기출. 손에 든 서류와 가방 툭! 떨어뜨린다.
기출, 당황해 가방과 서류 주우려는데, 손이 떨려 서류가 잡히지 않는다.
도현 그 아이, 살아 있지?
기출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아, 아닙니다!
하는데 그대로 기출의 가슴팍을 발로 차는 도현. 바다에 빠지는 기출. 깊지 않지만, 넘어져 허우적댄다.
도현 나와.
흠뻑 젖어 나오는 기출.
기출 회, 회장님...
도현 다시 묻지. 그 아이 살아 있지?
기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다시 걷어차는 도현. 물 속으로 나뒹구는 기출.
기출 (일어나며) 회장님! 아닙니다! 아니에요!
도현 그런데 왜 그자가 날 찾아와 그 아이 얘길 해!
왜 유진이 옷을 들고 있어! 살아 있지?
기출 아닙니다...회장님... 아닙니다.. (하는데)
물로 뛰어드는 도현. 기출의 뒷머리를 잡고 그대로 바닷물에 쳐 박는다.
바둥대는 기출. 도현이 머리채 잡아 일으키자 콜록대는 기출.
도현 내 앞에서 머리 굴리지 말라 그랬지!
벌레 같은 놈! 그 아이 살려 둬서 내 뒤통수치려고 그랬어?
감히 니까짓 놈이! (뺨 때리며) 말 해! 어디 있어! 말하라고!
다시 기출을 걷어차는 도현. 쓰러진 기출의 등을 마구 밟는다.
계속 맞으면서 끝내 아니라고 부르짖는 기출 모습에서.
(점프)
둑 위에서 숨 몰아쉬는 도현. 그 아래 바다에 흠뻑 젖은 기출이 꿇어 앉아 있다. 와들와들 떨며 흐느껴 우는 기출.
기출 믿어 주십시오, 회장님... 정말 그 아이는 죽었습니다...
제가 죽는 걸 봤습니다.
도현 그럼 설명을 해 봐. 그 아이 옷이 왜 그 놈 손에 있어?
기출 (떨며 우는데)
도현 말하기 싫어?
기출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회장님!
도현 (보면)
기출 사, 사실은... 저 혼자 아이를 죽일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 그래서..
천병장 그 사람을 끌어 들였습니다. 그 사람이 죽였습니다..
도현 죽는 걸 봤어?
기출 예... 그, 그런데... 그 사람이 딴 마음을 품고 옷을 저 몰래 챙긴 모양입니다... 까맣게 몰랐는데... 그 사람도 빚이 많아서...그걸로 회장님 협박하려고 한 거 같습니다...살려 주십시오... 회장님... 살려 주세요.
도현 하긴...니 따위가 사람 죽일 강단은 없지.
날 협박하는 건 꿈도 못 꿀 거고..
기출 그렇습니다. 회장님... 믿어 주십시오..
도현 그럼 그 친구, 내 앞에 다시 데려와.
기출 예?
도현 니 말이 맞는지 삼자대면 해 보자고. 데려와.
하고 돌아서는 도현. 절망적인 얼굴로 보는 기출.
야외 일각 (낮)
비 맞은 생쥐 꼴로 걸어오는 기출. 그 얼굴에..
도현 (E) 만에 하나 그 친구가 금희를 찾아가는 일이 생긴다면,
그 뒷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
니 아이 장래도 생각해야지.
우뚝! 걸음 멈추는 기출. 비참한 얼굴이 살기 띤 얼굴로 변해 간다.
도현 집 거실 (낮)
앉아 있는 봉희. 금희가 차 쟁반 들고 와 앞에 앉는다.
금희 너 정말 너무한 거 알아? 휴가 온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언니를 찾아와?
것도 하나뿐인 동생이?
봉희 언니야 뭐 나 없어도 잘 살잖아. 돈 잘 버는 남편 있고,
토끼 같은 자식들 있고.
금희 지금 있는 데는 어딘데?
봉희 남자 집.
금희 뭐? 정말이야? 어떤 남잔데? 어디 살아? 뭐 하는 남잔데?
봉희 알려고 하지 마. 다쳐.
금희 봉희야~
봉희 언니. 내가 남자가 있으면 진짜 이 집 올 이유가 없다.
둘이 껴안고 뽀뽀하느라 바쁘지, 뭐 하러 언닐 만나러 와?
금희 (흘기며)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럼 군소리 말고 집에 들어와.
내일부터 당장 선이라도 보자.
봉희 됐거든? 시대가 어떤 시댄데 선이야?
금희 니가 니 앞가림 못 하니까 그렇잖아? 기집애가 나이나 적어?
언제까지 머슴애처럼 그렇게 살래?
봉희 그래. 난 머슴애 같아서 언니 두 번 갈 동안에 시집 한 번도 못 갔다.
그래도 내 짝은 내가 고를 거니까, 닦달하지 말라고요.
금희 퍽이나 고르겠다? 어떤 짝을 원하는데?
봉희 알잖아. 옛날 형부 같은 사람.
금희 (멈칫 굳어지는데)
봉희 얘들은? 속 안 썩이고 잘 있어? 그놈들 본지 오래 됐네.
초등학교 교실 안 (낮)
들어오는 인화. 해주를 비롯한 학생들이 청소하고 있다.
해주 쓰레기통 들고 나가려는데,
인화 야! 어디 가?
해주 응. 쓰레기 버릴라고라.
인화 잠깐 기다려. (하고 시녀들 보면)
시녀1 인화야! 왜 벌써 들어와? 청소 덜 끝났는데...
시녀2 아직 먼지 다 안 빠졌어. 좀 더 있다 와.
인화 (대꾸 않고 시녀3에게) 야! 너 자리 빼.
시녀3 (놀라) 어?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인화 (해주에게) 해주 넌 가방 챙겨서 내 옆 자리로 옮겨.
시녀3 인화야! 냄새 나는 쟤랑 어떻게 앉으려고 그래.
인화 네 입 냄새도 장난 아니거든! 빨리 자리 안 빼고 뭐해!
사녀3 (울상이 돼서 가방을 챙겨서 해주 자리로 가는데)
인화 야! 쓰레기통도 이제 니들이 비워!
시녀1 (놀라) 인화야, 그건 해주가..
인화 해주 대신 니들이 비우라고! 뭐 해? 빨랑 안 하고!
당황해 보다가 쓰레기통 들고 후다닥 나가는 시녀들.
인화, 자선을 베푼 듯 해주 바라본다.
해주 인화야... 거시기 말여.
인화 (손을 딱 들고 저지하면서) 됐어! 고맙다는 말!
해주 (잉?)
인화 뭐..내 옆자리까지는 인정해줄게. (바로 정색하며) 그렇다고 내가 너랑 동급이란 생각은 하지 마. 넌 오늘부터 넘버 투야.
해주 그게 아니라, 너 그.... 갈비찜 오빠 말이다이.
인화 갈비찜?? (급 환해지는 얼굴) 우리 강산이 오빠? 근데 웬 관심??
해주 참말로...그 인간이 그 큰 해풍 조선소 회장 손자가 맞다냐?
중학교 앞 (낮)
가방 메고 삐딱하게 걸어오는 강산. 멈칫 앞을 보고 씩 웃는다.
자전거 끌고 가는 창희. 달려가 창희에게 올라타며 목 조르는 강산.
창희 (넘어질 뻔 하다가 돌아보며) 아~ 뭐야?
강산 짜샤. 의리도 없이 혼자 토끼냐?
창희 어디 갔던 거야? 수학 시간에 안 보이던데?
강산 재미없어서 잔디밭에서 한 숨 잤다.
창희 야, 그렇다고 수업을 빠지면... (하는데)
해주 (E) 둘이서 뭐 한당가?
두 사람, 멈칫 보면 앞에서 해주가 나타난다.
창희 (반가워) 해주야...
강산 어이! 땜쟁이, 설마 이 오라버니 기다렸냐?
해주 그려! 워찌 알았다냐?
강산 (놀라) 진짜?
해주 (창희 보며) 오빠, 나가 이 뻥쟁이한티 볼 일이 쪼까 있응께,
나중에 봅시다잉. (강산 팔 잡아 며) 일루 와 보드라고.
강산, 해주에게 끌려가며 창희 돌아본다. 헤벌레 웃으며 손드는 강산.
어색하게 미소 짓다가 쓸쓸하게 돌아서는 창희 모습에서.
거리 일각 (낮)
걸어오는 강산과 해주. 싱글벙글하며 해주 보는 강산.
강산 어쩐 일이냐? 땜쟁이 니가 먼저 나를 찾고?
해주 (멈춰 서더니) 앞장 서드라고.
강산 어딜?
해주 조선소에 가야쓰겄어.
강산 조선소에는 왜?
해주 그짝이 조선소 손자라는 거 요때까정 어째 숨겼당가?
강산 아아! 그거? 뭐 숨긴 건 아니고.. (하다가, 으쓱해서) 왜?
니가 보기에도 내가 좀 달라 보이냐? (하는데)
해주 (철퍼덕! 등짝 후려치고)
강산 아아! 아퍼! 뭔 기집애가 이렇게 아프게 때리냐?
해주 진즉 말했으면 멀찌감치서 감칠맛 나게 입맛만 다시지 않았을 거 아녀!
강산 뭔 소리야?
해주 싸게 싸게 앞장 서야! 오늘 조선소를 완전히 정복해 버릴팅께!
해풍 조선소 안 (낮)
조선소 안, 거대한 철판들이 크레인에 의해 이동 중이고
여기저기 용접하는 모습들과 계속되는 소음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화물수송차량들이 지나다니는데
입이 딱 벌어진 해주,
강산 (가다가 돌아보고는) 야 땜쟁이! 입 벌린 채 허수아비처럼 서 있을거냐?
해주 (환하게 웃으며) 그려! 가드라고!
동, 조선소 일각 (낮)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놓여 있다. 입을 딱 벌린 채 올려다보는 해주.
해주 (강산보고) 야! 저기 올라가 봐도 되지야?
강산 (헉...놀래서 보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저길 어떻게 올라 가냐?
해주, 다가가 둘러보다가 엘리베이터 발견하고 버튼 누른다.
해주 올라가는 거 있잖여?
강산 (입맛 다시는) 뭐.. 꼭...가고 싶다면 갔다 오든가.
해주 같이 안 간당가?
강산 야! 나야 맨날 보는 게 그거고, 맨날 타는 게 그건데...
뭘 또 올라가서까지..
해주 (의심의 눈초리) 설마... 높은디 못 가는 건 아니지야?
강산 (버럭)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너!
(점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뛰어나와 난간으로 달려가는 해주.
아래 내려 보면, 그 밑에 펼쳐진 바다와 도크와 선박들.
한 눈에 들어오는 해풍 조선의 풍경에 입이 귀에 걸린 해주
해주 (두 눈을 비볐다가 다시 뜨는) 워메! 시상에...(하다가 돌아보는데)
강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해주, 오라고 손짓하는데
강산, 고개 젓고, 해주, 다시 오라고 손짓하고
강산, 고개를 휙 틀어서 외면하면 해주,
장난끼 어린 눈으로 천천히 강산에게로 다가간다.
강산 (놀라며) 오지 마! 왜 이래!
해주 거기서 저 짝이 보이긴 한다냐?
강산 야, 나는 다 봤어. 다 아는데 뭘 또 보냐?
해주 인자 봉께, 불도 무섭고 높은데도 무섭고 그렇구마이...
뭔 놈의 사내가 그런댜?
강산 (저게 진짜!! 원망어린 눈빛으로 보는)
해주 (고개 돌리다가 휘둥그레지며) 오메! 저건 첨보는 배네이! (달려가면)
강산 아씨.... 뛰지 말라고!!! 쫌!!
동, 조선소 도크 앞 (낮)
도크에서 완성되어 가는 벌크선 앞에 서 있는 강산과 해주.
해주 워메! 가까이서 봉께 겁나불게 크구마잉. 조것은 뭔 배다냐?
강산 벌크선이야. (해주보고) 벌크선이 뭐하는 밴 줄 알아?
해주 물건 나르는 배 아녀?
강산 벌크선은 크기에 따라 나누는데 이건 케이프사이즈야.
8만톤급 이상이나 되거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리처드 베이에도,
입항이 가능한 선박의... 최대크기를 말한다 이 말씀이지. 알겠냐?
해주 인자봉께... 아는 것은 쪼까 있는 거 같은디,
몸은 영 안 따라주는 사람이구마이.
강산 (얼굴 굳고) 더 이상 구경하기 싫어?!
해주 쏘가지도 밴댕이구마이.
강산 뭐? (발끈하려다가 참고) 야! 땜쟁이, 우리 협상하자.
해주 뭔 협상?
강산 내가 배 만드는 전 과정 다 보여 줄 테니까,
너는 나한테 용접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거야. 어때?
해주 참말로? 뻥 아니지야?
강산 야! 내가 누구냐? 이 조선소 후계자야! 이게 다 내 거라고!
해주 좋아야. 글케 하지야.
강산 그럼 당장 하자! 용접부터!
해주 지금은 안 되야! 싸게 가서 밥해야 한께.
강산 야! 밥을 왜 니가 해? 밥통이 하는 거지!
해주 나 강께, 나중에 보드라고! (하고 뛰어가 버리면)
강산 야! 야! 땜쟁이! (뒷모습 보다가) 아 진짜..
(하다가 뛰어가는 뒷모습 보며 미소 짓는데서)
해주 동네 어귀 (낮)
뛰어오는 해주. 달려가다가 멈칫 멈추고 도로 뒷걸음질 친다.
그 시선에 바다가 보이는 일각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홍철의 뒷모습.
동 일각 (낮)
홍철, 바다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 눈을 가리는 해주의 손.
홍철, 멈칫 하는데,
해주 누구다~ 요?
홍철 해주구마이.
해주 땡!
홍철 (미소 띠며) 세상에서 젤로 이쁜 내 딸 해주야.
해주 딩동댕~ (앞에서며) 아부지, 아부지! 지 오늘 워디 갔는지 알겠어라?
홍철 (보면)
해주 시상에! 조선소를 갔당께요! 워메~ 뭔 놈의 배들이 산더미만 한디요.
벌크선도 보고, 자동차 운반선도 봤지라!
와따메! 참말로 어마어마 하더랑께요!
홍철 그려서 신났구마잉.
해주 야! 무지하게 신났어라. 근디 아부지는 여기서 뭐 한다요?
홍철 해주야. 쪼까 앉어봐야.
해주 (앉으며 보면)
홍철 우리 딸 한번 안아 보자잉. (하고 해주를 안는다)
해주 (좋으면서) 오메! 어째 이러신당가요?
홍철 너한티 미안해야. 나가 생각을 잘 못 하고... 하마터면 니를...
해주 지한티 워쨌길래요?
홍철 아녀야. 니는 참말로 나가 세상에서 젤로 좋아하는 내 딸이랑께.
죽을 때꺼정 너하고 안 떨어질 것이구마이.
해주 (헤헤 웃고) 지도 그럴 거구만이라. 아부지하고 평생 같이 살 것인께요.
홍철 (말없이 힘주어 안는데)
해주 (멈칫 보고 떨어지며) 얼레? 안녕하셨어라?
홍철, 떨어지며 보면 기출이 서서 보고 있다.
해주 집 앞 (낮)
밝은 얼굴로 걸어오는 해주. 갑자기 놀라 담벼락 쪽으로 숨는다.
그 시선에 2회에 등장했던 빚쟁이 두목과 사내 1, 2가 차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다. 침 삼키는 해주. 후딱 몸 돌리는데, 그쪽 보는 두목.
바닷가 절벽 앞 (낮)
걸어오는 기출과 홍철.
홍철 뭔 야그길래 여그까지 온다냐?
기출 (아래 절벽 보며 얼굴 무섭게 굳어지고)
홍철 야! 박상병!
기출 (돌아보고 침착하려 애 쓰며) 우리 회장님 만나러 갔다면서요?
홍철 (멈칫 보고) 들었다냐? ...그려...그랬어야.
기출 (일그러지며) 내가 그렇게까지 부탁했는데, 왜 거길 갔어요?
홍철 미안해야. 글치만 우리 해주, 어차피 회장님 딸도 아니라면서야?
기출 (말없이 노려보고)
홍철 기출아. 글면 우리 해주는 누구 아이다냐?
기출 (여전히 노려보고)
홍철 (한숨 쉬고) 그려. 차라리 말하지 말어라잉. 나도 인자 알 필요 없어야.
하고는 절벽 쪽으로 걸어가는 홍철. 기출의 눈이 번뜩인다.
홍철 나가 잠시 꿈을 꿨응께... 친 부모 같은 거 알 필요 없어야.
누가 뭐래도 해주는 내 딸이여. 저 바다서 둘이 배 타면서 죽을 때꺼정,
알콩달콩 살란다.
홍철, 바다 보는데, 그 등 뒤로 다가가는 기출. 이 악물고 떨리는 손,
등 뒤로 내미는데...
해주 (E) 아저씨!
화들짝 놀라 보는 기출. 돌아보는 홍철. 굳은 얼굴로 기출 보는 해주.
세 사람 모습에서,
(5부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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