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퀸 6
<메이퀸> 6부
바닷가 절벽 (낮)
홍철, 바다 보는데, 그 등 뒤로 다가가는 기출. 이 악물고 떨리는 손,
홍철 등 뒤로 내미는데...
해주 (E) 아저씨!
화들짝 놀라 보는 기출. 돌아보는 홍철. 굳은 얼굴로 기출 보는 해주.
해주 시방 뭐 하신당가요?
기출 (당황하다가 얼른 홍철 뒤의 보풀 같은 것 떼어내며) 어! 여, 여기...
거미줄 같은 게 묻어있네. 이게 왜 여기 있냐?
홍철 (힐끗 기출보고는 해주에게) 워째 왔다냐?
해주 (멈칫 하고는) 고것이...아부지, 저녁은 밖에서 드셔야 겄어라.
홍철 뭔 소리다냐? 집 놔두고 어째 밖에서 먹어야? (하고 가려는데)
해주 (막으며) 안 되어라! 안 된당께요! 아부지!
홍철 (멈칫) 어째 그냐? (하는데)
두목 (E) 어이! 천선장!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홍철과 해주. 두목과 사내 1,2가 다가온다.
두목 경치 조옿네! 저녁 안 먹고 여기서 뭐 해?
홍철 (당황해 해주 가리며) 왜... 왜 또 온 거다요?
두목 아, 천선장 이자 소식이 없으니까 왔지. 우리가 설마 놀러 왔겠어?
홍철 월급... 월급날은 아직 쪼까 남았는디...
두목 (피식) 월급? 빚진 놈이 참말로 느긋하네. (하고 사내1에게 눈짓하면)
사내1, 갑자기 해주를 번쩍 들어 절벽 쪽으로 간다. 놀라보는 기출.
해주 (발버둥 치며) 아부지!
홍철 해주야! (가려는데 사내2가 막고) 시방 뭐하는 짓이당가!
그 아이 놓으랑께!
두목 (어깨 잡으며) 가불이라는 것도 있잖아?
홍철 (두목 보고 해주 보는데)
두목 (쪽지 하나 꺼내며) 여기 전화번호하고 계좌번호 있으니까, 다음 주까지 이자는 좀 해결해 주세요. 예?
하고 홍철 주머니에 쪽지 넣는 두목. 다시 사내1에게 눈짓하면,
해주 놓아준다. 후다닥 달려와 홍철 붙잡는 해주. 해주를 안는 홍철.
두목 명심해. 다음 주까지야. 가자, 애들아. (하는데)
사내1 형님, 해남서 여기까지 왔는데, 기름 값도 안 받고 가요?
두목 그렇구만... (홍철 보며) 오늘 곱게 가잖아? 차비라도 좀 줘.
홍철 도, 돈이 없는디...
사내2 아~ 정말 피곤하네. 이 인간... (하고 다가서는데)
기출 (보다가) 내, 내가 드리겠소. (지갑 꺼내며) 얼마면...?
하는데, 지갑 통째로 뺏는 두목. 안에 있는 돈 다 꺼낸다.
두목 (지갑 돌려주며) 뉘신지 고맙소. (하고는 홍철에게) 천선장!
이자는 요렇게 딱딱 주는 거야. 믿고 있을게.
하고 가는 두목과 사내1,2. 해주 안은 채 입술 깨물고 보는 홍철.
그 모습 보는 기출.
해주 동네 일각 (저녁)
침울하게 걸어오는 해주와 홍철. 기출 따라오다가 힐끗 본다.
기출 어쩌다가... 빚을 지게 된 거예요?
홍철 술을 먹고 그놈들 배를 들이 받았제...
근디, 고것이 이자에 이자가 새끼를 치다 봉께,
인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부렀어야.
기출 ....
해주 (기출 보며) 아저씨, 오늘 고마운디... 저녁 드시고 가셔라.
기출 (멈칫 보고) 아, 아니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돼.
도현 집무실 (밤)
창 밖 보고 있는 도현. 그 앞에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기출.
도현 왜 혼자 왔나?
기출 ...
도현 분명히 데리고 오라고 했잖아?
기출 그, 그게... 그 사람이 안 오겠답니다..
도현 (돌아보는)
기출 아무리 서, 설득을 해도 안 오겠다고...
도현 그 놈이 원하는 게 뭐야?
기출 (보는)
도현 돈이야?
기출 (멈칫) 예! 아, 아마... 그럴 겁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서 여기까지 온 거라..
돈만 안겨주면 울산 땅에서 나갈 겁니다.
도현 그런 인간들이 그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 거 같아?
한 번 돈으로 해결하면, 평생 그 놈의 현금인출기 노릇을 해야 돼.
기출 그렇게 악한 사람....아닙니다.
지금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 것이지... 빚만 해결해 주면....
도현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기출 (주춤) 아.. 예, 예...
도현 (노려보다가) 좋아. 시간은 모레 아침까지야.
내가 내일 서울에 가서 일 처리하고 돌아오면...
그때까지 책임지고 모든 일을 원상태로 돌려놔.
기출 (굽실거리며) 아.. 알겠습니다.
도현 창희가 공부를 참 잘하지?
기출 (멈칫 보는)
도현 그 녀석 인생은 자네하곤 달라야지. 안 그래?
기출 (침 꿀꺽 삼키고 보는 얼굴에서)
해주 집 앞 (밤)
홍철, 집 앞에 나와 하늘을 보는데, 걸어오는 정우.
정우 해주 아버지!
홍철 (멈칫 보고) 아, 윤선상님!
정우 뭐 하고 계세요?
홍철 야... 바람 좀 쐬느라고...인자 들어오시는 게라?
정우 예... 그럼...
정우, 지나가려는데 멈칫 보는 홍철. 그 얼굴에.
(플래시백) - 5부 씬32. 회장실 앞 복도.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정우의 모습.
(현재)
멈칫 고개 돌리는 홍철.
홍철 윤선상님!
정우 (가다가 돌아보는 얼굴에서)
정우 방 안 (밤)
앉으며 홍철 보는 정우.
정우 장도현이요?
홍철 야... 혹시... 그 분 아신다요?
정우 좀... 압니다. 근데 그건 왜?
홍철 거시기, 그분 딸이 죽었다고 하던디, 참말로 죽은 게 맞어라?
정우 (표정 굳고)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홍철 그 회장님이 지가 일하는 공업사에 요트를 수리 맡긴 적이 있어라..
그 공업사 사람들한티 들었지라..
정우 그 사람 딸 아닙니다.
홍철 야?
정우 애가 죽은 건 맞는데, 장도현이 딸이 아니구요... 그 부인 딸입니다.
홍철 고것이 뭔 말이어라? 부인 딸이면 그 분 딸이제,
엎어 치나 메치나 아니어라?
정우 두 사람 다 재혼한 겁니다.
홍철 (놀라) 재혼이라고라?
정우 예. 근데 그 사람이 일이 왜 궁금합니까?
홍철 아, 아녀라. 그냥... (하고 생각하는 얼굴에서)
동 집 앞 (밤)
복잡한 얼굴로 정우 집을 나서는 홍철.
홍철 재혼을 했다고라? 재혼...
하다가 갑자기 굳어지는 홍철.
뭔가 떠오른 듯 고개 홱! 돌리는 모습에서.
도현 집 안방 (밤)
잠옷 갈아입다가 금희 보는 도현.
도현 봉희 처제가 왔다고?
금희 예..
도현 아니, 그럼 나 좀 보고 가라 그러지?
안 그래도 내가 처제 스카웃하고 싶었는데..
금희 당신은 걜 만나도 일 이야기 밖에 할 게 없어요?
저는 제발 일에서 좀 떼놓고 싶어요. 무슨 기집얘가 석유에 미쳐서,
남자 만날 생각도 않고 저렇게 사는지...
도현 그러니까 내 밑에 오면 내가 책임지고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 수 있다니 까. 지금 어디 있대?
금희 몰라요. 휴가는 한 달짜리 장기휴가라는데, 어디 갔는지 누가 알아요?
지난번처럼 배낭 메고 히말라야라도 갔는지...
도현 아무튼 오면 꼭 붙잡아 놔. (하고는) 나 내일은 서울에 좀 가야 돼.
하룻밤 자고 올 거야.
금희 서울엔... 왜요?
도현 음... 일이 좀 있어서...(웃으며) 왜? 떨어지기 싫어?
금희 그게 아니라, 내일... (하다가) 아니예요, 다녀오세요.
하고 욕실로 가는 금희. 갸우뚱하다가 침대에 눕는 도현.
해주 집 마당 (밤)
평상에 앉아 노란색 뜨개 옷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홍철.
해주, 안방에서 이불 빨래 감을 잔뜩 안고 나오다가 홍철을 본다.
해주 아부지! 뭐 하신당가요?
홍철 (멈칫 옷 감추며) 어! 아녀... 그건 또 뭐다냐?
해주 이불 보 좀 뜯었어라.
홍철 이 밤중에 그건 뭣 땀시!
해주 엄니 애 낳고 나서 뽀송뽀송한 이불 쓰시면 얼마나 좋겄어라.
하고 다라이에 이불보 담고 물 트는 해주.
그 모습 물끄러미 보는 홍철 얼굴에서 F.O.
해주 집 전경 (아침- F.I)
달순 (E) 뭐? 이사??
동, 안방 (아침)
놀란 얼굴로 홍철 바라보는 달순, 상태, 영주.
해주가 막 먹은 상 닦다가 역시 놀라 바라본다.
상태 이사를 간다고라? 또요!!
홍철 어제 빚쟁이들 또 찾아 왔었어.
달순 어머! 그래서?
영주 엄마~ 그 아저씨들 무서워.
해주 (보고는) 괜찮여. 영주야... 그 사람들 갔어야.
상태 글면, 우리 또 토끼는 거다요?
홍철 (대꾸 없이 한숨 쉬고)
달순 가면, 어디로 갈 건데?
홍철 글씨... 당신 친정 있는 인천은 워뗘?
달순 미쳤어? 요 모양 요 꼴로 친정 가까이 가라고?
아이고! 거긴 내가 손 안 벌린 줄 알아?
당신 땜에 우리 오빠도 거덜나게 생겼어!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고 그래!
홍철 글면 워디로 간다냐...
달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홍철 (말 못하고 보면)
달순 모르겠다. 다리 밑에서 애 낳고 거지꼴로 살든,
다 같이 바다에 빠져 죽든, 잘난 천홍철씨가 알아서 하세요!
(하고 옆의 해주 탁! 친다) 비켜라! 누울란다!
해주 (슬픈 얼굴로 일어나며) 이불 깔아 드릴께라..
달순 필요 없다. (누우며) 아이고~ 내 팔자야. 낼 모레 애 나올 판인데,
또 이사를 간댄다. 아이고~ 드러운 팔자야.
어쩌다 이 조달순이가 저 인간 만나서 이 신세가 됐냐.
아이고~ 복띵아. 너 불쌍해서 어떡해.
한숨 쉬는 홍철. 그런 홍철을 바라보는 해주의 아픈 시선에서.
해주 집 앞 (아침)
홍철, 생각이 많은 얼굴로 집을 나서는데 그 앞에 발이 보인다.
홍철, 고개 들어보면 기출이다. 오른쪽엔 묵직한 가방을 끼고 있다.
바닷가 일각 (아침)
바닥에 가방을 놓고는 지퍼를 여는 기출.
그 안에 만 원짜리 묶음들이 가득 들어 있다. 놀라 보는 홍철.
홍철 이게 뭐다냐?
기출 이거면 빚쟁이들 빚을 다 갚고도, 배 한 척은 살 수 있을 겁니다.
홍철 !
기출 울산 바닥... 이거 가지고 이제 정말 떠나세요!.
홍철 (가방 보며 침 삼키는데)
기출 그리고... 회장님께 가져갔던... 그 노란 옷도 돌려주고요.
보다가 가방을 향해 손 내미는 홍철. 기출 그 모습 보고 안도하는데,
일순 멈칫하는 홍철. 그 얼굴에..
해주 (E) 아부지, 아부지! 지 엄니는 누구다요?
지를 낳아준 친 엄니는 어디 있다요?
가방 잡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가, 몸 일으키는 홍철.
기출 천병장님...
홍철 이거... 장회장이 준 돈이다냐?
기출 (멈칫 보고) 아, 아니에요! 이건 제가 만든 돈입니다.
홍철 장회장하고 그 사모님 둘 다 재혼했다면서야?
기출 (놀라서 얼어붙은)
홍철 그 죽었다는 아그... 그 유진이라는 아그가, 우리 해준 거 맞지야?
기출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무슨 소리예요?
홍철 너그 회장이 사모님하고 재혼하는디, 우리 해주가 방해가 된 거다냐?
그려서 갸가 죽었다고 하고, 나한티 맡긴 것이제?
기출 아니라고 했잖아요? 왜 이래요! 진짜!
홍철 글면 가 보드라고. 나가 사모님께 확인을 해 볼텡께. (돌아서는데)
기출 (황급히 잡으며) 잠깐만요! 잠깐만요! 천병장님!
홍철 이거 놓으랑께. 인자는 너가 뭔 말을 혀도 못 믿겄어!
기출 저 돈이면! 저 돈이면 천병장님 식구들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구요!
해주 그 아이, 친딸처럼 아끼시잖아요?
홍철 그려도, 천륜을 어기는 건 아닌 거 같어야. 나도 생각 많이 했는디,
인자는 더 이상 안 되겄어.
기출 제발! 제발! 생각을 좀 해보라구요!
홍철 (보면)
기출 천병장님 말씀 다 맞아요! 다 맞는데... 지금 그 아이 돌려주면,
그 집에 어떤 일 일어나겠어요? 해주한테도 좋을 일 아니라구요!
홍철 그려도 내 집구석에서 사는 것보단 나을 것이여. 여그는 지옥이여!
기출 천병장님, 제발..
홍철 이거 고만 놓으랑께!
하고 밀치면 넘어지는 기출. 홍철 돌아서는데...
돌멩이 하나 집어 드는 기출. 눈 희번덕거리다가,
기출 (돌멩이 놓고) 사모님 모시고 나올게요!
홍철 (돌아보면)
기출 장회장님 아시면 좋을 일 없어요. 우선 사모님이라도 만나 보세요!
홍철 언제, 워디서 말이다냐?
기출 (침 삼키고) 오늘 밤 9시에, 천병장님 공업사 앞 부두에서 만납시다.
보는 홍철. 마주 보는 기출 얼굴에서.
중학교 도서관 (낮)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창희. 몇 권 들고 나간다.
동 교실 안 (낮)
책 들고 뒷문으로 들어오는 창희.
자리에 놓인 가방 앞으로 가다가 멈칫 본다.
강산이 칠판 앞에 서 있는데, 칠판 가득히 복잡한 수식이 적혀 있다.
다가가는 창희. 그것도 모른 채 분필 들고 고민하고 있는 강산.
다시 칠판에 문제를 푸는데...
창희 (멍하니 보다가) 이게 다 뭐야?
강산 (화들짝 놀라 돌아보고는) 아이~ 짜식! 들어왔으면 티를 내야지...
귀신이냐?
창희 (칠판 보며) 이게 뭐냐고?
강산 아, 이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들어 봤어?
창희 페르마?
강산 너 수학 잘 하니까 알겠구나?
350년 동안 풀리지 않아 전 세계 수학자들이 도전했던 그 공식...
수학의 대빵 가우스도 풀지 못했다지... 아마.
창희 근데, 니가 지금... 이 문제를 풀고 있다고? (강산 주위 보며) 책도 없이?
강산 (칠판에 쓰인 마지막 부분 가리키며) 여기서 막혔어.
그래도 여기까진 어떻게든 풀었는데...
(머리 긁적이며 칠판에 써 있는 페르마의 공식을 읽는다)
"n이 2보다 큰 자연수일 때, 방정식 xⁿ+yⁿ=zⁿ을 만족하는 세 자연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잣말) 역시 무한대 처리가 문제야.
타원 함수와 연관되어 있는 건 분명 맞는데 말야...
홀수 짝수 판별법으로 다시 접근해 볼까?
창희 (놀라 멍하니) 이걸 니가 풀었다고?
강산 얌마! 사오정이냐? 못 풀어서 지금 이러고 있다 그랬잖아?
창희 너 이런 거 하면서 학교 성적은 왜 그래?
강산 (보는)
창희 이런 실력 있으면서 왜 꼴찌 하냐고?
강산 야, 학교 공부는 재미없잖아? 꼴찌는 속 편하고.
창희 (다시 멍하니 보는데)
강산 (칠판 다시 보다가) 에이! 안 되겠다! (하고 지우려는데)
창희 잠깐만! 냅 둬 봐!
강산 (멈칫 보고) 왜? 풀 수 있겠냐?
창희 (대답 없이 칠판 보고)
강산 난 갈 건데, 안 갈 거냐?
창희 (여전히 칠판 보는 얼굴에서)
중학교 앞 (낮)
강산, 휘파람 불며 교문 앞을 나서는데, 불쑥 나타나는 인화.
인화 짜잔~ 반갑지?
강산 (한숨 쉬며) 또 너냐? 얌마, 너 초등학생이 왜 매일매일 중학교로 등교하는데? 그것도 남들 하교하는 시간에!
인화 몰라서 물어? 숙녀가 이만큼 성의를 보였으면...
이제 오빠가 우리 학교 앞에 와서 날 기다려 줄 때도 됐잖아? 안 그래? 그러고 보면 나 너무 착해. 오빠한테는...
강산 (기막힌) 아이고, 그만 착하셔도 됩니다. 가라 가. 제발. (돌아서는데)
인화 (E) 아빠가 이거 전해주라고 했는데...
강산, 돌아보면 인화가 책 한 권 들고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선명하게 쓰인 책이다.
강산 (놀라며) 야, 그거! 이리 줘 봐!
강산, 다가가면 재빨리 물러나며 책 뒤로 감추는 인화.
강산 야, 이리 줘 보라니까?
인화 (책 뒤로 감춘 채) 주면 뭐 해 줄 건데?
강산 이게? 안 내 놔?
인화 대답 안 하면 박박 찢어버릴 거야! 갖다 버려 버릴 거라구!
강산 아, 알았어! 맛있는 거 줄게.
인화 진짜지? (하고 책 내밀면)
강산 (좋아서 책 훑어보고)
인화 맛있는 거 뭐 사 줄 건데?
강산 (대꾸 없이 책만 보는)
인화 오빠!
순간, 보고 인화의 머리통 꽁! 때리는 강산.
강산 옜다! 맛있는 꿀밤! 회장님께 고맙다고 전해 드려! (하고 뛰어가면)
인화 우씨! 오빠!! (머리 만지며 속상한 듯 씩씩대는 모습에서)
해주 집 안방 (낮)
해주, 걸레로 방을 닦다가 일순 발견한다. 홍철이 들고 간 상자가 눈에 뛴다. 상자 열어 보면 안에서 나오는 노란색 뜨개 옷.
해주, 뜨게 옷 들어보는데 들어오는 달순.
해주 (보고는) 엄니... 이거 우리 복띵이 입힐라고 얻어온 거다요?
손으로 뜬 거 같은디?
달순 그런 옷은 없었는데? 이리 줘 봐.
옷 건네주는 해주. 달순 옷 살피다가 일순 안색 변하는데,
해주 고기 배 문양도 뜨져 있당게요.
달순 (툭 던지며) 갖다 버려라.
해주 어째서라? 정성 들여 뜬 거 같은디요.
달순 이년아! 갖다 버리라면 버려! 어디서 썩은 옷을 들고 와 디다밀어!
해주 지가 가져온 거 아닌디...
달순 귓구녕 막혔냐! 갖다 버리고, 반찬거리나 장만해! 니 오빠 배 고프댄다!
해주 ... 알았어라. (옷 들고 나가면)
달순 망할 놈의 인간... 저걸 여태 가지고 있었어? 그래... 죽어도 못 잊겠다 이거지? (이 악무는 모습에서)
천지석유 화학 일각 (낮)
기사 한 사람에게 뭔가 설명하는 기출. 기사가 끄덕이면,
그 옆에 놓인 트럭에 올라타는 기출.
동, 일각 (낮)
트럭을 몰고 나오는 기출. 지나가던 최비서를 스쳐간다.
무심코 기출 얼굴 보는 최비서. 가다가 멈추고 고개 갸우뚱한다.
숲속 공터 일각 (낮)
트럭 세워져 있다.
그 앞에서 몽키 스패너로 번호판 나사를 힘겹게 풀어내고 있는 기출.
손이 덜덜 떨리다가 몽키 스패너 손에서 미끄러지는데...
땀 가득 찬 기출의 손 부르르 떨린다.
진정시키려는 듯 기출, 자신의 손 줬다 폈다 하는데서.
다른 야외 일각 + 트럭 안 (낮)
차에 시동 거는 기출. 숨 몰아쉬고는 트럭 엑셀레이터 밟는다.
일순 눈 질끈 감는 기출. 뭔가 꽝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핸들에 얼굴 묻었다가 차에서 내리는 기출.
트럭 앞으로 다가가면, 저만치 나가떨어진 녹 슨 드럼통이 보인다.
완전히 찌그러진 드럼통 보다가. 돌아서는 기출.
갑자기 총을 맞은 다리가 아픈 듯 숙이며 다리를 만진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절룩거리며 트럭으로 가는 기출.
뚝 길 일각 (낮)
어두운 얼굴로 자전거 타고 오는 창희. 문득 앞을 바라본다.
그 앞에 해주가 소쿠리 들고 걸어가고 있다.
미소 머금는 창희. 자전거 몰고 가며 자전거 벨 울린다.
멈추고 보는 해주. 얼굴 밝아진다.
해주 창희 오빠!
창희 (자전거 세우고) 뭐 해? 여기서?
해주 (소쿠리 보며) 요거 뜯느라고..
창희 그게 뭔데?
해주 (주변 두리번거리고는 다가와 작게) 호박 잎 쪼까 뜯었어라.
찜 쪄서 된장에 쌈 싸 묵어불면 겁나 맛있당께요.
창희 (덩달아 속삭이며) 근데 왜 조용히 얘기하는데?
해주 이거 남의 밭에서 슬쩍 했어라. 서리한 거 치곤 좀 많지라? (큭큭 웃는)
창희 (같이 웃는데)
해주 음마! 늦었어라! 싸게 가야 되는디...
창희 타! 내가 데려다 줄게!
해주 그려도 되겠어라?
창희, 끄덕이면 뒤에 타는 해주. 자전거가 간다.
창희 옷자락 살짝 잡고 옆으로 앉은 해주. 밝은 얼굴이다.
해주 집 마당 (낮)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해주.
달순, 평상에서 잠든 영주 무릎에 뉘어놓고 부채질 하는 중이다.
뒤이어 자전거 끌고 창희 들어와 문 앞에 서는데,
달순 참 빨리도 온다.
해주 (얼른 소쿠리 앞으로 내밀며) 호박잎이어라. 금방 밥 해서 찔탱께,
쪼까 기다리셔라.
달순 이년아. 언제 밥해서 그것까지 해 쳐먹어? 아침에 해 놨던 밀빵이나 쪄!
해주 야... (창희보고 웃으며) 오빠, 잠시만 기다리셔라.
여그까지 데려다 줬는디, 밀빵 좀 먹고 가셔라.
신나게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는 해주.
창희, 달순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달순의 시선 곱지 않다.
동, 부엌 (낮)
아궁이에 불 지펴져 있고, 솥뚜껑 여는 해주. 김이 올라온다.
물 위의 소쿠리에 면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밀빵 보인다.
동, 마당 (낮)
평상 위에서 밀빵 먹는 상태와 영주, 달순.
해주는 다른 바구니에 밀빵 담고 있고, 창희는 보기만 하는데...
상태 야! 하나 먹어야. 맛있당께.
해주 그려요, 오빠... 먹어 보셔라. 지가 찐 거라니께요.
영주 진짜 맛있어요.
창희 (보고 하나 드는데)
달순 아이구, 저 집구석은 양심도 없나? 지 에비가 울산 나가라고 쫓아낸 지가 언젠데, 아들 되는 놈은 날름 빵 받아먹고... 낯가죽이 철판인가 보다.
창희 (그 말에 밀빵 도로 내려놓는데)
상태 (빵, 입에 가득 물고) 어째 그라요, 엄니...쟈 내 친군디?
창희 쟈가 우리 학교서 1등 한다니께.
달순 1등 하는 놈은 남의 집에서 양식 축내도 된다더냐?
해주 (미안하게 창희 보고) 엄니... 지 아부지한테도 쪼까 드리고 오겠어라.
달순 주든지, 말든지.
해주,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는 창희.
창희 내가 바래다줄게.
해주 아녀라. 괜찮은디...
창희 해안 도로 달려 보고 싶어서 그래..
해안도로 일각 (낮)
달려오는 창희의 자전거.
해주, 자전거 뒤에 보자기에 싼 자그만 바구니 앞에 끼고 앉은 채,
창희의 교복 셔츠를 한 움큼 양손으로 꽉 잡고 있다.
창희 그러다... 교복 찢어지겠다.
해주 야?
창희 그렇게 꽉 쥐면 교복 찢어진다구... 그냥 허리 잡아.
해주 야...
허리 잡는 해주. 얼굴이 좀 붉어진다.
동 일각 (낮)
해주 태우고 달려오는 창희의 자전거.
해주 오빠, 밀빵 하나 드실랑가요?
창희 아냐... 너희 아버지 드릴 거잖아.
해주 괜찮여라. 넉넉히 가져 왔응께... 아까 못 먹었잖여라...
창희 괜찮다니까?
해주 글지 말고 하나만 드셔라.
해주 빵 꺼내, 건네주면 창희 한 손으로 받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는다.
창희 어? 조심해!
넘어지는 자전거. 중심 잃고 자전거와 함께 풀밭으로 구르는 두 사람.
두 사람 구르다가 해주, 창희 품에 폭 안긴다.
놀라 서로를 바라보는 해주와 창희. 두 사람 두근두근 하고...
놀란 해주 얼른 또르르 옆으로 굴러 일어난다.
해주, 바구니에서 나와 나뒹구는 밀빵 얼른 주워 담으면,
일어나 같이 주워 담는 창희. 줍다가 손이 부딪친다.
뻘쭘해지며 손 거두는 두 사람. 서로 보며 어색하게 웃는데,
그 옆으로 트럭이 지나간다.
트럭 안 (낮)
사이드미러에 비친 해주와 창희의 모습.
알아채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운전하는 기출.
바다 공업사 앞 (낮)
다가와 멎는 창희의 자전거. 밀빵 싼 보자기 들고 내리는 해주.
창희도 따라 내린다.
해주 고마워라, 오빠... 오늘 지 땜시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겠어라..
창희 이렇게 시간 뺏기는 건 언제라도 괜찮아.
해주 거시기...울 엄니한티 들은 소리는 잊어 버리쇼잉.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께요.
창희 (보고 미소 띠며) 넌 참... 좋아.
해주 (멈칫 보며) 뭣이가요?
창희 그 밝음이... 널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져.
해주 (헤~ 웃으며) 글면, 다행이지라.
창희 너 자전거 탈 줄 알아?
해주 야.
창희 그럼 내 자전거 두고 갈게. 집에 갈 때 타고 가.
해주 아녀라. 안 그래도 된당께요!
창희 금방 또 저녁 해야 되잖아. 집까지 멀기도 하고...
해주 참말로 안 그려도 되는디...
창희 갈게. 또 보자.
해주 야...
자전거 놓고 걸어가는 창희. 가다가 보고 있는 해주에게 손들어 보인다.
같이 손 흔드는 해주. 문득 그 손을 왼쪽 가슴께에 대 본다.
해주 음마... 워째 이런댜? 왜 갑자기 여그가 이렇게 뛰능겨...
(얼굴 발그레해졌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동, 공업사 안 (낮)
자전거 끌고 들어오는 해주. 작업실에서 나오던 홍철이 본다.
해주 아부지!
홍철 ... 웬 자전거냐?
해주 누가 태워 줘서라... 아직 점심 안 드셨지라? (보자기 내밀며)
지난번에 뒷집 아저씨가 주신 밀가루로 밀빵을 쪼까 쪘어라.
홍철 밀빵? 너가 빵도 만들 줄 알어야?
해주 길거리서 파는 술빵 흉내 내 봤는디, 맛은 쪼까 거시기혀라.
콩이 들어가면 좋은디, 고것이 없어서...
홍철 글면 같이 먹자잉.
해주 아녀라. 지는 집에서 먹고 왔어라.
홍철 너하고 같이 먹고 싶어서 그런다이.
옆에서 오물 조물 너가 먹는 거 보면 좋은 께.
해주 (피식) 맨날 같이 먹으면서 어찌 그런다요?
홍철 (말없이 슬프게 보는 모습에서)
바닷가 일각 (낮)
나란히 앉아 밀빵 먹는 해주와 홍철. 먹다가 힐끗 홍철 눈치 보는 해주.
해주 거시기... 아부지...
홍철 어?
해주 아녀라.
홍철 할 말 있으면 해 보드라고. 너답지 않게 어째 그려?
해주 (망설이다가) 거시기... 우리 참말로 이사 갈 거다요?
홍철 (보고는) 왜? 가기 싫다냐?
해주 아부지.. 솔직허니 말씀드리면이라... 지 여기 친구들도 생겼고,
정도 들어 부렀어라. 어디로 가든 여그보다 좋을 것 같진 않은디..
홍철 ....
해주 (눈치 보며) 그래도 가야 되겄지라?
홍철 글면, 너는 여기 남으면 되겄네이. 아부지랑은 가끔 보고야.
해주 음마! 뭔 소릴 하신다요?
암만 여그가 좋아도, 워트께 아부지랑 떨어진다요!
가족은 같이 살아야 가족이지라.. 지는 아부지하고 떨어져선 못 살어라.
홍철, 한숨 쉬고 해주, 약간 의아해 보는데..
홍철 (보고 웃으며) 해주야. 우리 배 탈거나?
해주 야?
바다 + 어선 안 (낮)
운전대 잡은 홍철. 옆에 있는 해주, 완전 신났다.
해주 워메~ 신나분거. 날씨도 겁나게 좋고, 바람도 징하게 상쾌하고,
아부지도 있고. 워메~ 행복한 거.
홍철 그렇게 좋다냐?
해주 야... 지는 사고 내고 나서, 아부지가 다시는 배 못 타게 할 줄 알았는디,
역시 우리 아부지랑께.
홍철 사고도 겪어봐야, 바다도 알고 배도 알게 되는 것이다이.
그려. 말 나온 김에 너가 한번 운전해 봐라이.
해주 (놀라) 음마? 참말로 그려도 되겄소? 쪼까 겁나는디..
홍철 너 이름이 해주 아니냐? 아부지가 바다의 주인 되라고 지은 이름인디,
고깟 사고로 겁을 내야?
해주 (헤헤 웃고) 하긴... 아부지가 뒤에 계신디, 뭔 걱정이겄소?
해주, 홍철과 운전대 교대 한다. 능숙하게 운전하는 해주.
홍철 (해주 뒤에서) 해주야.
해주 야?
홍철 가족이라는 건 말이여. 꼭 같이 산다고만 혀서 가족은 아니랑께.
해주 갑자기 뭔 소리다요?
홍철 어떤 집구석은 같이 모여 살아도 허구헌 날 죽네 사네, 지랄 염병을 하 고야, 어떤 가족은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못 잊고 그리워하는 것 이여. 나가 보건디, 진짜 가족은 나중 것이랑께.
해주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구만이라...
홍철 아부지는 말이여.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항상 너 뒤에서 요로코롬 있으 면서 너 사는 거 지켜 볼 것이여. 이놈의 자식이 운전은 잘 하나... 한번 좌초했다고 겁내지는 않나... 혼자 배 몬다고 외로워하지는 않나...
항시 널 뒤에서 볼 것이여.
해주 아부진... 어찌 꼭 지 냅두고 어디 갈 것처럼 말하신다요?
홍철 언젠가 니도 아부지 품 떠나야 항께 그라는 거 아니냐? 해주야. 잊지 말 어라잉. 가족은 피를 나눠서 가족이 아니고야... 아픔도 설움도 배고픔도
나눈께 가족이여. 긍께 아부지뿐만 아니라, 엄니도 니 오빠도 동생도 가족이다이. 알겄냐?
해주 아부지... 지난번에 지가 엄니보고 친엄니 아니라고 한 말 때문에 그 라요? 고건 지가 잘못했당께요. 긍께 잊어 버리셔라. 지도 우리 가족이 젤로 소중하다는 거 알고 있응께요.
홍철 (눈물 글썽해지며) 그려... 착하구마이. 내 딸...
해주 그라고, 아부지... 너무 슬퍼하지 마셔라.
홍철 (멈칫 보면)
해주 지도 요것이 울산서 마지막으로 배 타 보는 거라는 거, 알어라.
근디 배 탈 수 있는 디가 울산 밖에 없는 건 아니잖여라.
바다는 넓은 께요.
홍철 (눈물 훔치고) 그려. 야, 운전하기 심심하면 노래나 한 곡조 불러봐라이.
해주 지는 운전에 집중해야됭께, 아부지가 불러보셔라.(마이크를 뒤에 넘긴다)
홍철 (받고) 그럴까나. (하며 노래 부른다)
♪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다에 울려 퍼지는 홍철의 노래...
바다 공업사 앞 (낮)
다가와 정박하는 어선. 내리는 홍철과 해주.
한껏 들뜬 해주와 달리 홍철의 얼굴은 어둡다.
해주 (팔짱끼며) 아부지, 참말로 고맙구만이라...
울 아부지 같은 사람이 시상에 또 있을지 모르겄소잉.
홍철 그렇게 좋다냐?
해주 야. 좋아 죽겄어라. 으메... 시방도 배 탄 거 맨치로 울렁울렁 하구마이.
요것이 꼭 꿈 꾼 거 같어라.
홍철 해주야. 너 말이다이, 이따 밤 9시에 저그 부두로 쪼까 나오겄냐?
해주 밤 9시요? 뭣 할라고요? 설마 밤배 탈라고라?
홍철 아녀...
해주 글면 밤에 뭣 땀시...?
홍철 나와 보면 알아야. 꼭 나와야 쓴다이.
해주 (의아해 보는데)
강산 (E) 야! 땜쟁이!
두 사람 멈칫 돌아보면, 강산이 공업사 안에서 나온다.
강산 (홍철 발견하고) 어! 안녕하세요?
홍철 (엉거주춤) 아, 야...
해주 여기 어쩐 일이당가?
강산 어쩐 일이긴? 우리 합의 봤잖아! 너는 배 만드는 거 보고, 나는 땜질!
고새 까먹었냐?
해주 아! 그랬구마이. 근디, 시방은 공업사 분들 작업할 시간일텐디...
강산 노 프러블럼! 내가 정리해 놨으니까, 빨리 들어가셔.
땜쟁...(하다가 홍철 의식하고 해주 보고 씩 웃으며) 싸부님!
국립묘지 일각 (낮)
묘비에, “ 검은 진주를 찾던 젊음 잠들다, 윤학수”
새겨져 있고, 그 앞 상석에 꽃다발과 소주병이 놓여 있다.
그 앞에서 절하는 정우와 봉희.
봉희, 일어나 소주병 이빨로 까고 묘비 주변에 뿌린다.
봉희 형부... 오랜만에 뵙네요. 술도 안 좋아하셨는데, 석유를 뿌리기는
뭣해서 그냥 드려요. 형부나 저는 중동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하필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이 나라에 태어나서, 이게 뭐예요?
정우 (말없이 젖은 눈으로 묘비 바라보는데)
봉희 (남은 술병 채 마시고) 형부가 왜 죽었는지, 언제고 꼭 밝혀낼 거예요.
기다려요. 내가 일본 내각조사실을 다 뒤지더라도 밝혀내고 말 거니까.
정우 (보고는) 너 아직도 단념 안 했냐?
봉희 어떻게 단념해? 밝혀진 게 하나도 없는데?
정우 10년이 넘었잖아. 밝혀지려면 예전에 밝혀졌겠지.
봉희 임마! 누가 보면 내가 형부 동생이고, 넌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인 줄 알겠다. 형부가 누구 손에, 뭣 때문에 죽었는지. 넌 궁금하지도 않아?
정우 10년 넘게 나도 그 문제를 한 순간도 놓쳐 본 적 없어.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형 생각만 하면서 폐인처럼 살았어!
근데 나만 망가질 뿐이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
이제 우리 좀 자유로워지자. 형도 그걸 원할 거야.
봉희 (말 못하고 보는데)
금희 (E) 삼촌!
멈칫 돌아보는 두 사람. 금희가 커다란 박스 보자기를 들고 온다.
굳어지는 정우.
봉희 어! 언니?
금희 (보지도 않고 정우 보며) 이게 얼마만이에요, 삼촌!
그 동안 어디 계셨어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정우 (아무 말 않는데)
봉희 언니, 몰랐어? 봉수 이 자식! 언니 네랑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살아!
배 밭 너머 무허가촌 몰라?
금희 (놀라 정우 보며) 정말이예요?
대꾸 없이 외면하는 정우.. 글썽해 보는 금희. 사이, 눈치 보는 봉희.
(점프)
상석에 금희가 싸 온 각종 음식들 가득 놓여 있고, 절하는 금희.
두 번째 절하고 엎드린 채 그대로 있다. 그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그 모습 착잡하게 봉희. 고개 돌려 보면 정우가 멀리 혼자 떨어져 있다.
동 일각 (낮)
혼자 서 있는 정우. 금희가 다가온다.
금희 삼촌...
정우 (쳐다보지 않은 채)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제가 왜 삼촌입니까?
유진이 죽은 지가 언젠데요?
금희 미안해요... 그 마을 어디 살아요?
정우 알 필요 없습니다.
금희 (말 못하고 보는데)
정우 여긴 도대체 왜 온 겁니까?
금희 매년... 왔었어요. 그 사람한테 너무 미안해서...
정우 (쳐다보고 냉소 지으며) 미안한 게 아니라 뻔뻔한 겁니다. 오지 마세요.
형님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용납 못 해요!
금희 삼촌...
정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옛날 일 다 잊은 줄 아세요!
금희 (놀라 보는데)
정우 우린 남입니다. 대단하신 장도현씨하고 행복하게 잘 살면 다 된 거 아닙 니까? 앞으론 두 번 다시 나한테 아는 체 하지 마세요.
하고 돌아서 가 버리는 정우. 일각에서 음료수 캔들 들고 나오던 봉희가 본다.
봉희 정우야, 어디 가?
정우 (대꾸 없이 걸어가고)
봉희 야! 윤정우!
보다가 금희에게 다가오는 봉희.
봉희 왜 저래? 쟤...
금희 (말없이 있는, 그러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봉희 언니... 나 모르게 정우하고 무슨 일 있어?
금희 아니야... 아니야... 아무 것도...
하면서 입술 깨무는 금희.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의아해 보는 봉희.
요정 전경 (밤)
다가와 멎는 도현의 차. 기사가 내려 문 열면, 도현과 최비서가 내린다.
도현 (최비서 보며) 좀 있다가 들어와.
최비서 알겠습니다.
동 일실 (밤)
문 열고 들어오는 도현. 부장이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도현 아이고! 안 부장! 오랜만이에요!
부장 반갑습니다. 장회장님...
도현 앉으세요.
자리에 앉는 두 사람.
부장 말씀 낮추십시오. 회장님... 저보다 한참 선배 분이신데...
도현 하긴... 중정 때부터 따지면 우리가 몇 년 쯤 됐던가?
부장 10년이 넘었지요.
도현 그래... 그 시절 이후로 살아남은 게 우리 두 사람이구만..
부장 회장님이야,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성공하셨죠.
큰 기업까지 운영 하시고... 정말 부럽습니다.
도현 큰기업은 무슨.... 안부장도 회장님, 회장님 그러지 말고 그냥 선배라고 불러.
부장 예. 선배님... 그러겠습니다... 뭐 좀 시킬까요?
도현 아니야. 내 성질 알잖나? 용건부터 얘기하지.
부장 (긴장해 보면)
도현 내가 조선업계 진출한다는 건 알고 있지?
부장 예. 신문지상에서 봤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도현 모르는 척 하지 말게. 문제가 누구겠나?
부장 강대평 회장 말씀이시군요. 그 노인네야 이빨 빠진 무식한 늙은이 아닙 니까? 선배님 정도면 충분히 제칠 수 있으실 텐데요?
도현 처음엔 경쟁해서 제치려 그랬지.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
부장 (멈칫 보면)
도현 그 노인네가 날 건드렸어. 그 바람에 생각을 했지. 내가 지금 만들려는 조선소는 너무 적다는 생각 말이야.. 남자라면 꿈이 커야지. 안 그런가?
부장 (얼굴 굳어지며) 선배님... 이빨 빠져도 그 노인네 호랑입니다.
저희 일할 때하고 시절도 다르고요.
도현 그래서 자네 부른 거 아닌가? 자네가 언제까지 공직생활 할 거 같아?
기껏해야 1년 아닌가? 한 번 도와 줘. 뒤는 내가 책임져.
부장, 말 못하고 보는데 E 노크소리.
도현 들어 와.
최비서가 문 열고 들어와 007 가방을 탁자 위에 놓고 깍듯이 고개 숙이 고 나간다. 가방을 여는 도현. 부장 앞으로 돌려놓는다. 안에 100 달러 짜리 지폐가 가득하다. 눈 커지는 부장.
도현 이제 식사해도 되겠지? 배가 고프구만...
말 못하고 보는 부장. 미소 머금는 도현.
울산 시외버스 터미널 (밤)
버스에서 내리는 정우와 봉희.
봉희 너 진짜 말 안 할 거야?
정우 뭘?
봉희 도대체 언니하고 무슨 얘길 했냐고!
정우 아무 얘기 안 했다고 했잖아?
봉희 귀신을 속여라. 나 진짜 너 이해가 안 가. 언니한테 뭐가 불만인데?
정우 (대꾸 않는데)
양복 (E) 이박사님!
멈칫 보는 봉희. 기다리고 있던 양복(4부 씬48)이 다가온다.
봉희 (보고) 웬일이에요? 공장에 또 문제 생겼어요?
양복 아닙니다. 의뢰하신 배나무 뿌리 성분분석이 나와서요. (서류 주면)
봉희 (받아 읽어보고) 역시! 근사미였어.
정우 그게 뭐야?
봉희 아카시아 뿌리를 죽이는 초강력 독극물이야. 그러니 나무가 죽지.
정우 (안색 변하며 보는데서)
배 밭 일각 (밤)
잠복해 있는 정우와 봉희.
봉희 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 설마 누가 일부러 뿌렸을려고...?
미치지 않았다면... (하다가 읍! 한다)
정우 (봉희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가 눈짓해 보면)
일각에 남자들 다가와 플라스틱 통 들고 액체를 나무 밑에 살포한다.
봉희 (눈 휘둥그레져 보다가) 야! 이 새끼들아!
남자들 (놀라 보고 달아나면)
봉희 니들! 다 죽었어! 어딜 토껴! 일루 와!
쫓아가는 봉희. 덩달아 쫓아가는 정우.
동 일각 (밤)
도망치는 남자들. 가다가 흩어지는데 쫓아가는 봉희와 정우.
봉희 야! 한 놈만 잡아!
각자 흩어져 쫓아가는 정우와 봉희. 남자1을 쫓아가는 봉희.
남자1, 뒤를 흘끔거리다 나무에 부딪치며 주춤한다.
순간 그대로 몸 날려 남자의 반바지를 붙잡는데,
바지가 벗겨지며 속옷과 엉덩이가 드러난다. 봉희, 주춤하는 사이,
다시 도망치는 남자1. “이씨!” 하고 일어나 쫓아가는 봉희.
남자1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옆에서 튀어나오는 정우. 모르고 그대로
정우를 덮치는 봉희. 두 사람 뒹굴다가 정우 위에 올라타는 봉희.
주먹으로 때리려는데,
정우 야! 나야!
봉희 (멈칫 놀라 손 거두며) 니가 왜 여기 있어?
정우 쫌 보고 덮쳐라. 아우~ (하는데)
봉희 근데 너 지금 어디 만져?
정우, 멈칫 보면 손이 봉희의 가슴에 가 있다.
화들짝 놀라 손 거두는 정우. 일어나는 봉희.
봉희 (약간 민망해) 멍청아! 너 땜에 놓쳤잖아?
정우 (일어나 옷 털며) 지가 다짜고짜 덤벼 놓고는...
봉희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 배 밭 주인한테 누가 원한이 있나?
정우 그건 아냐.
봉희 그럼?
정우 (대꾸 않고 생각하는데서)
대평 집무실 (밤)
놀란 얼굴로 정우 보는 대평.
대평 독극물이라꼬?
정우 예. 틀림없습니다.
대평 장도현이... 일마가 진짜 돌았구마. 범인 잡았나?
정우 아뇨. 잡진 못했습니다.
대평 문디 자석아! 그걸 잡았어야제! 그라머 딱! 외통수에 걸린 긴데...
(하다가) 그래, 몬 잡아도 된다. 이거 신문에 내야 되는 기다.
정우 증거가 없어서 잡아 뗄 겁니다.
대평 증거가 뭐 필요 있나? 내 전화 한통이면 방송국이고 신문사고 뛰 온다!
장도현이 이놈의 자석! 그래, 한 번 해 보자! (이 악무는데서)
요정 주차장 (밤)
부장의 차 트렁크에 007 가방을 넣는 최비서. 트렁크 닫으면
그 옆에서 악수 나누는 도현과 부장.
도현 잘 부탁하네.
부장 연락드리겠습니다.
부장, 고개 숙이고 차에 타면 차 출발한다. 그 모습 보다가 최비서 보는
도현.
도현 박집사한테 전화 좀 해 봐.
바다 공업사 앞 + 트럭 안 (밤)
트럭 안, 운전석에 앉아 공업사 주시하고 있는 기출.
어느 순간, 멈칫 한다. 그 시선에 나오는 홍철.
기출, 시동 걸려다가 멈춘다. 홍철의 뒤에 직원1이 따라 나온다.
직원1과 뭐라고 이야기 하고, 다시 공업사 안으로 들어가는 홍철.
눈 감고 한숨 쉬는 기출.
동 공업사 사무실 (밤)
들어오는 홍철. 소주병과 과자 봉지가 나뒹굴고 있다.
앉으며 남아 있는 소주병 드는 홍철. 병째 마신다.
해주 집 안방 (밤)
밥상이 차려져 있고, 달순, 상태는 호박잎을 싸서 먹고 있고
해주는 영주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일순 숟가락 놓아 버리는 달순.
해주 (보고) 엄니... 어째 그려라? 맛이 없당가요?
달순 니 에비 때문에 속 터져 그런다! 썩을 놈의 인간!
이사 간다고 툭 하니 폭탄 던져놓고, 여태까지 콧배기도 안 보이네!
해주 바쁘셔서 그렇겠지라...
상태 (호박잎에 밥을 싸며) 워메....호박잎에는 돼지고기 삶은 것을 묵어줘야, 지 맛인디... (하면서 우걱우걱 먹는)
해주 (호박잎에 밥을 싸서 건네주며) 엄니도 쪼까 더 드셔라.
엄니, 호박 쌈 좋아하시잖어라.
달순 (해주에게) 들었냐? 니 오빠 하는 소리?
해주 야?
달순 새우젓만 달랑 가져다 놓고 밥에 찍어먹으라는 소리랑 뭐가 다르냐고. 이놈의 풀떼기들 나도 진절머리 난다!
해주 야... 담에는... 돼지고기도 구해 보겄어라.
상태 (해주보고) 쌈 싸 묵을 때는 거시기, 돼지 머리고기 누른 게 맛있는디..
달순 (상태보고) 보쌈은 목살이 훨씬 낫고. 안 그래?
해주 (슬그머니 눈치 보더니) 엄니... 다 드시고.. 그냥 마루에 내놓으셔라.
달순 왜? 어디 가게?
해주 그게... 아부지가... 잠깐 보자고 하셔서라..
달순 (기 막혀) 아이고, 이제는 밖으로까지 불러내서 만나고 그러는가 보지? 응? 아예 둘이 따로 집을 마련해서 살지 그러냐?
하긴 먹고 죽을 래도 없는 판국에 집 얻을 돈이 어디겠어!
해주 (슬그머니 일어나는) 그럼 댕겨 오겠어라.
달순 뭘 댕겨 와, 댕겨 오긴! 아예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어!
나 절대로 길바닥에서 우리 복띵이 못 낳으니까!
그렇게 이사가고 싶으면, 너랑 니 아부지 둘이 이 집에서 나가!
해주 (문 열고 나서는)
달순 저 년이 귀가 멀었나, 입에 풀칠을 했나? 왜 대답이 없어!!
동, 마당 (밤)
나와서 한쪽 편에 세워져 있는 창희의 자전거를 끄는 해주.
달순 (안방 문을 열어 재끼고) 아예 나가서 둘이 꽉 죽어버려!
이참에 각자 인생을 위해서, 니랑 니 아부지는 저 생에서 살고,
나랑 얘들은 이 생에서 살란다!
해주 다녀 오겄어라. (하고 나가는)
달순 저... 저년이 끝까지!!
해안도로 (밤)
어두운 얼굴로 자전거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는 해주.
어느 순간, 문득 미소 머금는다. 그 얼굴에 씬29에서 창희와 함께
자전거 타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껏 미소 짓는 해주.
부두 일각 + 트럭 안 (밤)
인적 없는 부두. 트럭 안의 기출이 시계를 본다. 9시다.
기출 고개 들면, 그 시선에 홍철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떨리는 손으로 시동 거는 기출.
홍철, 무심코 트럭 보고는 주변 두리번거리는데,
해주 (E) 아부지!
홍철, 멈칫 돌아보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해주, 홍철을 향해 손 흔든다.
홍철, 슬픈 미소 띠며 손들어 화답하는데,
트럭안의 기출, 트럭을 스쳐 가는 해주 자전거 보고 눈이 커진다.
잠시 갈등하다가 그대로 이 악물고 엑셀레이터 밟는 기출.
홍철 (해주 뒤로 덮여오는 트럭 보고) 해주야! 조심해야!!
(하며 해주 쪽으로 달려가고)
이 악물고 운전하는 기출. 해주 앞에서 눈 감으며 핸들을 튼다.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피하는 트럭. 그대로 홍철을 받아 버린다.
공중에 붕- 떠서 나가떨어지는 홍철.
자전거 간신히 세우고 그 모습 보는 해주.
기출의 트럭,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아버지!" 하며 사색이 된 얼굴로 쓰러진 홍철에게 달려가는 해주.
홍철을 일으키려는데, 축 늘어진다.
해주 아부지... 정신 차려 보셔라. 아부지... 정신 차리랑께요!
홍철의 머리에서 흥건히 새 나오는 피.
해주 (놀라며) 아부지! (주변 둘러보며 소리치는) 누구 없당가요!
좀 도와 주셔라!! (홍철 보며) 아부지... 아부지!!!
해안도로 (밤)
사이렌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량.
병원 복도 (밤)
홍철을 실은 이동침대... 수술실로 빠르게 옮겨진다.
혼비백산한 얼굴로 따라가는 해주. 수술실로 따라 들어가려는데,
의사가 제지한다. 말 못하고 덜덜 떠는 해주.
동, 로비 (밤)
덜덜 떨리는 피 묻은 손으로 공중전화기에 동전 넣는 해주.
그러나 잘못 넣어 바닥에 동전 떨어진다. 주우려고 애 쓰지만,
잘 집히지 않는 동전.
야외 일각 (밤)
다가와 끽! 급정거하는 기출의 트럭.
기출, 트럭 문 열고 내린다. 몇 발자국 다리를 절며 가다가,
주저앉는 기출. 머리를 감싸 안고 “으아악!” 소리 지른다.
소리 지르다가 바닥에 머리를 찍는 기출. 울부짖으며 계속 머리 찍는다.
병원 수술실 앞 복도 (밤)
멍한 얼굴의 해주, 피 묻은 손 보고 앉아있다.
달순과 영주를 업은 상태, 수술실 앞으로 정신없이 뛰어온다.
상태 (다급하게) 해주야! 워뜨케 된 거다냐!
해주 (덜덜 떨면서 말 못하고)
달순 야, 이 기집애야. 정신 차리고 얘길 해 봐!
해주 (멍한 얼굴로, 고개 저으며) 몰러요... 트럭... 피... 머리...
머리 다치신 거 같어요... 못 깨어나셔라... 피.. 피가...
달순 이게 뭔 소리야? 알아듣게 얘길 해, 이년아!
해주 (아직도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얼굴에서)
시간 경과 (밤)
덜컹! 문이 열리고 수술 마친 홍철의 침대가 나온다.
집도의 앞으로 다급하게 다가가는 달순, 상태... 해주가 영주 업고 있다.
달순 (기대와 초조)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집도의 (무거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달순 (그 소리에 까무룩 넘어가고)
상태 엄니! (달순을 부축한다)
집도의 눈짓하면, 의료진들 홍철의 침대를 중환자실로 다급하게 옮긴다.
해주 (멍한 얼굴로) 아부지... 아부지...
(영주 업은 채, 이동침대를 따라가는데서)
기출 집 거실 (밤)
창희, 주방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E 문 열고 닫히는 소리.
창희 (돌아보지 않고) 아버지세요? (대꾸 없는데) 아버지, 해주 있잖아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거 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 집보다 더 어렵게 사는데... 갤 보면 힘이 나요.
하다가 이상한 듯 돌아보는 창희.
기출이 창백한 얼굴로 땀 흘리며 멍하니 서 있다.
이마엔 흙투성이 상처가 나 있다.
창희 아버지? 왜 그러세요? (하고 다가가면)
기출 (허물어지듯 털썩 주저앉고)
창희 아버지!
부축하는 창희. 멍하니 있는 기출.
창희 아버지... 또 맞으셨어요? 어디를 얼마나 맞았길래 이래요!
하고는 기출의 옷을 걷어 보는 창희. 곳곳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다.
얼굴 일그러지는 창희.
창희 아버지... 이게 뭐예요? 어떻게 이렇게...
(눈물 터지며) 왜 이렇게 사세요? 이런 꼴 당하면서,
왜 이렇게 사냐구요!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데, 뭘 잘못했는데요!
기출 (눈에 눈물 흐르고)
창희 (그 얼굴 만져 보다가) 내가, 내가 가만 안 둘 거예요!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언젠가! 언젠가는....아버지...
하고 기출을 끌어안는 창희. 서로 다른 마음으로 소리 내 운다.
그들 부자 모습 위에 F.O.
도현 집 앞 (아침- F.I)
도현의 차, 집 앞에 와서 서면, 최비서 내려 뒷문 열고, 내리는 도현.
도현 (최비서에게) 박집사 불러 와.
동, 거실 (아침)
도현, 들어오는데...
인화 (E) 아빠!
도현 (보고) 아이고! 우리 공주님!
뛰어오는 인화를 안아드는 도현.
도현 우리 공주님 보고 싶어, 하루가 어찌나 길던지...
인화 피이~ 내가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었겠죠.
도현 녀석, 봐라. 너 아빠 두고 엄마랑 경쟁하는 거야?
인화 아빠가 그렇게 만드셨잖아요? (뾰로통해서) 다 아빠 책임이에요.
도현, 껄껄 웃고 보면 일문이 주방에서 나와 인시한다.
일문 오셨어요?
도현 그래. 니 엄마는?
일문 안방에 계신데... 저, 아버지...
도현 (보면)
일문 엄마가 어제 밤부터 기분이 안 좋으신 거 같아요. 어디 갔다 오시더니..
도현 그래? (하고 안방 쪽 보는)
동 안방 + 드레스 룸(아침)
들어오는 도현. 금희가 보이지 않자 드레스 룸으로 가면,
금희가 창백한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다.
도현 여보... 나 왔어.
금희 (거울보고 그대로 있고)
도현 당신... 어디 아파?
금희 ....
도현 (어깨에 손 올리며) 여보... 왜 그래?
금희 (손 떨쳐내며) 건드리지 말아요.
도현 (얼굴 굳어지면)
금희 혼자 있게 좀 놔둬요. 그러고 싶어요...
도현 (보다가) 미안한데... 박집사를 서재로 좀 불러야 할 거 같아서...
대꾸 않는 금희. 굳어지는 도현.
동 거실 (아침)
나오는 도현. 일문이 서 있다.
일문 어디... 편찮으신 거예요?
도현 오늘이 며칠이냐?
일문 28일인데...
도현 그게 아니라 음력으로 말야.
일문 그건... 달력을 봐야...
도현 됐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하고 안방 쪽 보며 한숨 쉬는)
동, 서재 (아침)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도현.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기출.
도현 어떻게 됐어?
기출 (말 없고)
도현 내가 말했잖아? 서울 갔다 올 때까지라고...
기출 그, 그게...
도현 그게 뭐?
기출 (두 손 붙잡고 말 못하면)
도현 밖에 나갈까? 그러고 싶은가 보군. (몸 고쳐 일어난다)
기출, 보고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는데, 벌컥! 문 열고 들어오는 인화.
인화 (울먹이며) 아빠, 큰일 났어요. 해주... 해주 아빠가 교통사고 당하셨데요!
도현 놀라 기출 쳐다보고, 기출 여전히 떨고 서 있다.
동, 안방 (아침)
놀란 얼굴의 금희 앞에 서 있는 인화.
인화 뭐 해? 빨리 옷 주라니까! 나 병원 가 봐야 돼!
금희 니가 거길 왜 간다는 거니?
인화 엄만? 해주하고 나 몰라? 나 가야된단 말야!
금희 기다려. 그럼 엄마랑 같이 가.
동, 정원 (아침)
기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다리 절룩이며 나오는데..
창희 (E) 아버지!
기출 (돌아보면)
창희 (달려와) 아버지, 들으셨어요?
기출 (넋 나간 듯 보면)
창희 해주 아버지가 교통사고 당하셨대요.
기출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창희 어서 가보셔야죠? 저도 같이 갈게요. (하며 몸 트는데)
기출 (손목 와락 잡으며) 가지 마. 안 돼.
창희 (당황한) 왜...그러세요?
기출 니가 갈 데 아냐.
창희 저 해주 잘 알아요, 근데 왜... 안 돼요? 아버진 가실 거잖아요.
기출 (어쩔 줄 모르고 보는데서)
병원 중환자실 앞 (아침)
달순, 실신한 듯 의자에 널브러져 있고.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태와 영주.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해주. 상태를 흔들어 깨운다.
해주 오빠... 오빠!
상태 (멈칫 눈 뜨며) 뭐... 뭐다냐?
해주 엄니하고 영주 데불고 대기실 가서 쪼까 쉬어야. 여근 나가 있을 탱께.
상태 어... 배고파 죽겄네.
해주 (달순 보고 한숨 쉬는데서)
달리는 차 안 (낮)
앞좌석에 기출이 운전하고 있고, 그 옆에 창희가 타고 있다.
뒤에는 인화가 울먹이고 있고, 금희가 그런 인화를 다독이고 있다.
멍한 얼굴의 기출. 빨간색 신호도 모르고 횡단보도 앞으로 달리는데,
창희 (보고) 멈춰요! 아버지!
놀라 급브레이크 밟는 기출. 하마터면 지나는 사람을 칠 뻔 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일어나는 금희와 인화.
인화 (화나)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차창 밖에서 치일 뻔한 사람, 뭐라고 욕을 하고,
창희 미안하다는 듯 연신 고개 숙이는데, 그대로 멍하니 있는 기출.
병원 중환자실 (낮)
의식 잃고 누워 있는 홍철을 보며 지키고 있는 해주.
눈물이 그렁하다.
해주 (홍철 손을 잡으며) 아부지, 일어나셔라.
이래 누워 있으면 어쩐당가요...
아부지가 젤루 좋아하는 해주가 여기 있잖여라.
언능 일어나시라니께요.
하다가 멈칫 보는 해주. 해주의 손을 잡은 홍철의 손이 움직인다.
해주 (눈 커지며) 아부지!
홍철 (가까스로 눈을 뜬다)
해주 아부지! 지, 해주여라. 지 얼굴, 보여라?
홍철 (멍하니 보기만 하는)
해주 아부지, 의사 선생님 모셔올텡게. 쫌만 기다리쇼이.
하고 가려는데, 해주의 손을 놓지 않는 홍철.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인다.
해주, 홍철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댄다.
홍철 (힘겹게) 미안혀.
해주 뭐가 미안혀요? 나가 미안허지.
홍철 너한티... 잘 해주고 싶었는디... 너 잘 살게 해주고 싶었는디..
해주 (울컥해) 아부지.. 힘드신께 말하지 마셔라.
홍철 ... 니 엄니...
해주 엄니 모셔 올게라?
홍철 (힘겹게 고개 젓고는) 니 엄니는.... (말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해주 아부지!
하는데, 문 벌컥 열고 들어오는 금희. 놀라보는 해주.
금희 바라보는 홍철. 그들 모습에서,
(6부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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