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11
선재 집. 아침.
-선재, 책상 앞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컴퓨터 모니터에 기사 제목들 떠 있다. ‘서한 그룹 서필원 회장 전격 연행’ 등.
선재 소리 제 방 창문이 작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너무 작아 보여요.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회상. 서회장 집 앞.
-차에 대고 인사하는 사람들.그 중에 혜원.
선재 소리 한 밤중에 선생님이 차에 대고 허리를 굽히실 때, 저는 숨어서 보기 만 했어요. 큰 집, 높은 축대, 정장 입은 사람들, 다 겁이 났던 거죠. 그런 걸 처음 봤으니까요...
혜원 사무실.
-세진, 통화 중(아마도 종수).
세진 여기 사람들은 오너가 연행 된 건 뒷전이야...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젯밤 여덟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여기서 뭔 일이 벌어졌나, 오직 그거야. 다 그 얘기만 해...
-혜원이 들어오다 잠깐 선다.
세진 어, 다시 전화하께? (끊고)정신 없으시죠...
혜원 (책상 향하는)뭘...
세진 종수랑 통화 중이었어요. 학교 쪽두 뒤숭숭하다구.
혜원 (가방 챙긴다)그렇겠지.
세진 제가 뭐 도울 일이라두.
혜원 (웃어보이는)있어. 아주아주 중요한 일.
세진 ?
혜원 명패 새로 주문해 줘. 부대표로.
세진 어머 어떡해, 언짢으셨나봐요.
혜원 실수했어. 니가 얘기할 때 바꿀 걸.
세진 즉시 주문 넣을게요.
혜원 영우 부부 만나구 바루 한남동 갈 거니까 알아서 퇴근해. (나간다)
세진 조심하세요, 이모저모 다.
혜원 (나가며 웃어준다)
까페(교수회관).
-준형이 구석에서 반쯤 일어나며 손을 들고, 인주가 다가온다. 빈손. 교수실에서 오는 길.
-마주 앉은 둘. 인주는 차를 마시고 준형은 불안해서 나직히 묻는다.
준형 어떻게 되는 거야?
인주 뭘 나한테 물어요? 와이프가 더 잘 알텐데.
준형 정신 없는데 나까지 보태기 좀 그렇잖아. 그럼 예술 재단 쪽으루두 뭐가 들어가나?
인주 이럴 때 다 한번씩 뒤집는 거지.
인주 강교수야 뭐가 걱정이야? 와이프 뒤에 가만히 서 있음 되지?
준형 말을 해두,
인주 오실장두 긴장은 좀 되겠더라. 능력이 화근이야.
준형 무슨 뜻인데?
인주 (말 돌린다)아니 뭐...아침에 오빠랑 통화 했는데, 오실장 만난단 얘긴 하더라. 확인 차원이겠지만.
준형 (불안)뭘,
음대 복도.
-준형이 오다가 홱 돌아서서 오던 길로.
-인서 방 앞. 노크 하는 선재.
-준형, 이러다 내가 죽을지도 몰라.
인서방.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선재가 들어선다.
-인서, 장갑을 끼고 상자에 책과 악보들 넣다가 반색.
인서 어?!
선재 (꾸벅)
인서 어제 뒤풀이 왜 안왔어. 기다렸는데.
선재 네, 저, 일이 좀 있어서요.(당혹감. 친해도 그런 일은 모를테니)
인서 (의자 위에 쌓인 책들 치우며)니 선생님,아주 기분 좋았겠더라. 칭찬 많이 들었지?
선재 (어렵사리)네...
인서 신관으로 이사한다고 어수선해...(비워진 의자 권하는)앉아라.
선재 감사합니다.(앉지 않고 기다리는)
인서 (장갑 벗는다)줄 게 아무것도 없네?
선재 괜찮습니다.
인서 (다른 의자 집어 마주 놓는다)근데 어떻게 나한테 올 생각을 했냐?
-잠시 후, 인서와 선재, 상자와 책들 틈에 마주 앉아.
인서 친하지. 많이 친해...근데 오혜원이 그쪽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나두 잘 몰라.
선재 (손끝)
인서 많이 속상하구나.
선재 (삼킨다)
-인서, 좀 보다가 등을 돌려 의자 뒤,상자에서 오래된 프로그램을 하나 꺼낸다.
인서 이거 한번 봐 볼래?
선재 네,(반쯤 일어나 공손히 받는다)
-앉아서 펼치는 선재.
인서 그 중에 젤 이쁜 여학생이 우리 와이프고, 두 번째가 오혜원이야.
선재 (조금 웃고 다시 본다)
-남녀 음대생들 앙상블 단체 사진과 독사진들.
-그 중에 혜원...
인서 좋아한다구 해서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린 그냥 무조건 이해해. 지금의 오혜원이, 어제 니가 친 카프리스 스물네개 중에 하나, 변주라면, 거기 그 사진은 테마라구 할 수 있겠지...
-선재, 이렇게 예쁜데, 지금도 예쁜데, 어쩌다 그런 이상한 변주곡을 치고 있는지.
김인겸 사무실.
-혜원과 영우 마주 앉아. 김인겸이 영우 옆에 앉아 서류 본다.
-탁자에 서류들 잔뜩.
혜원 정말 오랜만이네요. 부부가 같이 있는 거.
인겸 (서류 보며 힐끗 웃음)
영우 (인겸에게)잘 살펴봐. 이사장이 얘 시켜서 뭔짓 했나.
혜원 뭐가 더 필요하실까요?
김인겸 악기나 미술품 구입은 악용 사례가 많아서요. 모 재단에서 위작 소동두 있었구.
혜원 저희는 다 경매 통해서 구입 합니다. 동생 되시는 김인주 교수께서 학생한테 악기 소개하면서 중개상을 저희 쪽이라고 하신 적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저희 직원이 바로 잡았습니다만.
인겸 얘긴 잠깐 들었어요. 오해가 있는 거 같다구.
혜원 글쎄요, 뭐, 저희는 잠깐 불쾌했죠.
영우 우리 아가씨가 악기 소개하구 커미션 먹는단 말야? 말도 안되는 소리다.
혜원 관련 서류 첨부한 거 마저 봐 주세요.
인겸 네, 뭐, 보면 알겠죠. (다시 서류 본다)
혜원 (느낌이 안좋다)
인겸 (서류 넘기고)
영우 (혜원 기색 살피다가 기습 질문)너 어제 어디 있었어, 한 시간 동안?
혜원 저는 지금 업무 중입니다, 서대표님.
영우 솔직히 울아부지 연행 된 거보다 그게 더더 사건이다.
인겸 (힐끗)조용히 좀 하지?
영우 (입 다물며 눈 흘기는)
이사장실.
-성숙과 백선생, 소파에. 왕비서가 차를 낸다.
백 감사합니다.
왕 (웃어주고)
성숙 오실장 아직 김전무 사무실에 있지?
왕 네, 서대표랑 같이.
성숙 전화해서, 들어오지 말구 한남동 바로 가라구 해. 나두 곧 간다구.
왕 네.
-왕비서가 나가면,
-백선생, 문이 닫히는 것 확인한 뒤,
백선생 내색은 안해도 오실장이 이번 일 수습하면서 자기 입지를 더 굳히고 싶을 거예요. 기회로 삼을 거라 말이죠.
성숙 그렇겠지.
백선생 그러니 이사장님두 뭐 하나 확실한 걸 가지구 계셔야 하지 않겠어요? 심증을 물증으로 만들어놔야죠.
성숙 그르니까.
백선생 오실장이 저를 경계하는 게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이사장님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예요.
성숙 (해 봐)
백선생 얼마 전에 저희 애가 미용실 바꿔 달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바꿔줬죠. 그런데 알고보니 견습 하나한테 폭행을 당했더라구요.분이 치밀어서 당장 손을 쓸까 하다가, 후환이 걱정돼서 일단 참고, 표 안나게 처리해야겠다 싶어 좀 알아보니까, 참.
성숙 (그런데?)
백선생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제가 만약 성질대로 원장 통해 해고를 시켰으면 어쩔 뻔 했나 싶더라구요. 그랬다믄 제가 지금 이런 말씀 드릴 수가 없죠.
성숙 (응?!...)
백선생 고구마 줄기처럼 뭐가 줄줄이 나오는데, 일단 넌지시 한번 만나보세요.
성숙 그애를?
백선생 (끄덕)큰 도움이 될 겁니다...
술집.
-우성과 장호 마주 앉아, 우성이 술 따라 줘가며 관심 없는 척 툭툭 던져본다. 장호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
장호 사귄 건 아니구, 그냥 친했죠. 저희 셋이서.
우성 어쨌든 최근 들어 멀어진 거네?
장호 아무래두 끕이 달라지믄 그렇게 되죠.
우성 다른 이유는 없고?
장호 다른 이유 뭐요?
우성 일테믄 이선재한테 딴 여자가 생겼다거나,
장호 그건 모르겠구, 박다미가 그런 소린 하더라구요. 오실장이란 분이 좀 질리는 타입이라구.
우성 (이거다)질리다니.
장호 보니까, 다미랑 이선재 사이 다 알구 있더래요.
우성 어유, 아줌마가 뒤통수 제대로 쳤네...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치?
장호 그런가? (본다)근데 선재 얘기 왜 물어보세요?
우성 어어, 내가 요즘 그쪽으루 관심 있거든. 클래식 음악.
장호 형, 그런 거 들어요?!
우성 어...들어봐. 좋다. 깊이가 있지.
장호 난 진짜 모르겠던데.
우성 (전화기 꺼내는)마, 공부를 좀 해. 아는만큼 들린다. 응?
장호 그러게요.
우성 (전화기 귀에 대며)가 봐. 시간 나믄 또 한잔 사께.
장호 (선다)네.
-장호, 나가고, 우성 통화. 영우와.
우성 어, 난데...
식당 밀실.
-영우가 한켠에서 서성이며 통화 중이고, 유심조 선생은 차와 함께 과자를 오물오물.
영우 어...어...확실한 건 아니네?...그렇잖아, 증거두 없구...암튼 알았어. 이따 전화 하께. 어. (끊고 다가와 마주 앉는다. 오랜 단골이라 허물 없다, 조르듯)얘기 좀 해 줘 봐요...
선생 (여유 작작)허허 참, 저한테 어째 직업 윤리에 배치되는 짓을 하라 하십니까. 상담 내용 한번 발설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자리 걷어야지.
영우 걔네 부부가 걱정 돼서 그러죠...
선생 걱정 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영우 어떻게 없는데? 쪼끔만 더 구체적으루 말해주믄 안돼요?
선생 난처하네.
영우 뭐 물어봤냐고...
선생 (차 한모금 마시고)서대표께서 친구를 그만치 생각하신다니, 그쪽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딱 한 말씀만 드리지요.
영우 (빨리 말해 봐)
선생 핵심은 부부 문제지요.
영우 (!)
선생 그래, 전혀 기우라고 했지요. 그 부인은 우선 성정이 일급수고요, 일과 명예가 우선이라 말이지.
영우 남자, 뭐 그런 건 없어요?
선생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예요.
영우 그런 게 어딨어, 저두 여잔데.
뷰티샵. 샴푸실.
-성숙,다미.
-다미가 의자를 눕힌다.
성숙 샴푸는 말구 지압만.
다미 아,네. (누르기 시작)
성숙 혹시 누구 때린 적 있니?
다미 (흠칫, 손을 멈추고)네?
성숙 그 아가씬 요즘 안 오지?
다미 네, 그, 그냥 쪼끔 겁만 줬는데,
성숙 너 아주 큰일 날 뻔 했다. 아는 사람 딸인데, 원장한테 알리겠다는걸 내가 말렸어. 니 손이 보배라.
다미 (진짜요?)
성숙 계속 해.
다미 네, (덜덜 떨며 지압)
성숙 (힐끗.요걸 최대한 써먹어야 하는데)
검찰청 조사실.밤.
-셔츠 차림의 서회장이 설렁탕을 먹고, 마주 앉은 검사가 깍두기 그릇을 밀어준다.
서회장 어으 좋다...거, 수송동에 종로 수육집이라구 아실래나 모르겠네. (설마 구속하겠어?)
검사 질문에만 답하십시오.
서회장 (한술 뜨다 본다.서늘하다)
검사 다시 묻겠습니다. 싱가폴 소재 에스 에이치 컴퍼니의 대주주 오창석과는 어떤 관곕니까.
서회장 (숟가락 놓는다)모릅니다.
파우더 룸.
-혜원, 세면대에 엎드려 얼굴에 물 묻힌다.
-손 짚고 한참...
-문자 진동음.
-가방 속 두 개의 핸드폰. 바탕화면 확인하고 꺼내 보면,
-스무살 혜원의 사진과 문자.
선재 소리 근처에 와 있어요.
-망연해지는 혜원.
부근 막다른 골목. 밤.
-선재, 공사 중인 저택, 자재 더미 곁에 서서 발끝을 차고 있다...
골목 안.
-신축공사장 앞, 선재, 서성이다가 , 발 끝 차다가, 계단 아래를 살피다가...
-‘한남동’이라는 곳에서 혜원이 하는 일이 뭔지는 조인서도 다는 모른다고 했다. 친구니까 무조건 이해한다고 했다. 무조건이라는 말이 막막했다. 절친들도 속수무책인 거다. 얼마나 어둡고 음험하면...그런 삶이라니. 그래서 또 왔다. 기다린다.
서회장집 주방.
-왕비서와 도우미.
왕비서 다들 귀신이네...어디서 들었어?
도우미 바람결에.
왕비서 (더 작게)아직은 말조심하라셔.
도우미 아니 그럼 (턱짓, 성숙)두 아신다는 거야?
-혜원이 들여다본다. 손에 작은 파우치만.
혜원 잠깐 바람 좀 쐬구 올게. 영우 도착하믄 전화해 줘.
왕비서 어,
도우미 어쩌나 너무 피곤해 보이시네.
혜원 네, 좀,
왕비서 그래그래 동네 한 바퀴 돌구 와.
혜원 (웃어주고 가면)
둘 (마주 본다)
서회장 집 앞.
-혜원이 나와서 급히 간다. 되도록 담장에 붙어서.
골목 안.
-혜원이 접어든다.
-계단 위 선재, 발소리 듣고 계단 아래 내려다 본다.
-혜원이 막 계단 오르고 있다.
-선재가 내려가려 하자,
혜원 거기 그냥 있어.
-선재, 멈칫. 혜원, 바삐 오른다.
선재 천천히요.
혜원 조인서 만난 거지?
선재 네.
혜원 내가 돌았다.
선재 얘긴, 앉아서 해요.
-선재, 끈기 있게 기다린다. 혜원이 다 올라서자 끌어 안고 짧게 입맞춘 뒤, 손 잡고 공사장 쪽문으로. 앉을 데 봐뒀어요.
공사장.
-짓다만 집을 향해 가는 둘. 핸드폰으로 발 아래 비추면서.
혜원 강교수가 알아.
선재 네.
혜원 내가 등신같이 굴었어.
선재 저두요.
-집 안. 콘크리트 구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지붕과 벽과 창이 있다.
-계단. 선재의 윗도리 깔고 앉은 혜원. 선재는 일테면 거푸집 더미에 걸터 앉아.
혜원 (핸드폰 사진 보면서)실은 나 스무살 때, 실물이 훨씬 나았어.
선재 (상관없어요)
혜원 안 놀려?
선재 (그럴 기분 아니예요)
-사이.
선재 제가 가서 빌까봐요. 댓가를 치르겠다구.
혜원 (웃음. 저 어린 마음)내 문제야...그냥, 가만히 있어...
선재 ...암튼, 피하지 않을게요...
혜원 ...
선재 근데, 솔직히 저는, 이게 더 열받아요.
혜원 뭐.
선재 한남동.
혜원 (그럴 수 있지...)
선재 ...조인서 교수님은, 오혜원 무조건 이해한대요.
혜원 친구니까.
선재 저는 그렇게 안돼요.
혜원 (안단다)
-사이.
-선재, 뻥 뚫린 전면창 가에 서 있다. 혜원은 그대로...
선재 (핸드폰 시계 본다)
혜원 뭐 왔어?
선재 시계 봤어요. 맨날 먼저 가시니까.
혜원 나 좀 튕겨두 돼. 지금 저 사람들, 내가 절실하게 필요하거든?
선재 그게 선생님 능력인가봐요. 뭔 일 나믄 오혜원 찾게 만드는 거. 남편 되시는 분이, (불륜)현장 잡으러 와서 기껏, 한남동 먼저 가라구 애원할 정도로.
혜원 (낮은 웃음)좀 컸네? 좀이 아니라 아주 월반을 했어.
선재 참상을 봤으니까요.
혜원 틱틱거리지 말구, 옆에 좀 앉어 주라.
선재 (글썽.싫어요)
혜원 (손끝 만지작. 속상하겠지)
-사이.
-창턱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둘. 혜원이 그리로 옮겨 갔다.
혜원 ...그 책, 다 봤어?
선재 ...네.
혜원 독후감을 말해 봐. 젤 감명 깊은 대목.
선재 그 사람, 외국서 연주회 마치면, 트럭에 피아노 싣구 돌아다니다가, 시골 교회, 창고, 그런데서두 연주하구 그랬다는 거,
혜원 로망이지.
선재 ...성공할 테니까, 저랑 같이 다녀요.
혜원 (실은 그게 꿈이야...) 성공두 성공이지만, 뭣보다, 좋은 연주자가 돼야겠지...워낭소리 할아버지가 듣구서두, 것 참 청이 좋다, 그런 연주를 해야지...
선재 (알아요)
혜원 넌 될 거야...갑자기 튀어나와 반짝 하구 사라질 게 아니거든? 사람들이 니 피아노 일기를 본다면, 그런 소리 절대 못할 거다.
선재 됐구요, 저랑 같이, 그렇게 다니실래믄,
-혜원 전화기 문자음.
-핸드폰 꺼내 확인하는 혜원. 굳어진다.
-선재, 전화기 뺏어서 문자 보며 일어선다.
최기사 소리 오실장님. 일단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따로 연락 바랍니다. 누구 한테 먼저 보고할지는 그때 결정할게요.
-선재, 둘러본다.
-쪽 문 바깥 쪽, 사라지는 그림자.
-선재, 나가려. 혜원, 막아서며 선재 목을 끌어 안는다.
혜원 별 거 아냐.
선재 어떻게 별 게 아니예요?! 뭐 이런 게 다,
혜원 시끄러.(입으로 선재 입을 막은 채 곰곰이 돌이켜보는)
몽타주. 의혹의 시선들.
-왕비서, 친정서 잤니? 옷이 그대로라.
-성숙 차 안에서, 걔 눈 이쁜데, 라고 했을 때 성숙 표정.
-영우, 오오 힘들어? 숨막혀서?
-다미, 이선재가 제 남친. 정말 감사합니다.
공사장.
-둘, 마주 보며 서 있다. 혜원은 냉정과 여유를 되찾았다.
선재 (어이 없어요. 입막음 키스라니.)
혜원 (미소. 담담히)이걸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 뻔해. 별로 겁날 게 없어. 나는 너한테만 서툴지, 다른 건 다,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교활하구 능숙해. 그건 니가 안봤음 좋겠거든? 모른 척 하고 기다려 봐. 어떻게 되나.
선재 제가 피아노 쳐서 나라 구해요? 그거 한다고 이런 걸 모른 척 한다면 그게 사람이예요? 기생충이지?
혜원 언젠가 꼭 너같은 애가 퀵 배달 하면서 유툽으로 니 연주 따라친다면 그걸로 족해.
선재 그냥 당장 벗어나요. 나 오늘 그 말 할려구 불러냈어요. 좋은 집, 좋은 차, 그런 거 다 포기하랠라구,
혜원 연습 중이야.
선재 연습이 뭐 필요해요. 연습 전혀 없이 키스 했고, 잤고, 정신 못차리게 사랑하는데.
혜원 (재밌어. 니 말투)
선재 그럼 편지 써놓구 가출해야죠! 청운동, 한남동이 무슨, 우주예요? 벗어나면 죽을까봐? 산소 없을까봐?
혜원 (웃음)말 참, 겁나 섹시하네.
선재 (답답해요!)
혜원 가봐야겠다. 넌 오분 있다 움직여.(간다)
선재 제 말 아직,(급히 옷을 집어 들고 뒤따라)
골목. 밤.
-계단 위 쪽. 쪽문 나서는 혜원. 뒤따라나와 혜원 돌려 세우는 선재.
선재 뒷모습 좀 보이지 마세요. 그거 사람 미쳐요.
혜원 조심 차원, 당분간 만나지 말자.연락두 자제하구. 응? 참는 맛을 누려보는 거지.(파우치에서 비밀폰 꺼내 내민다)당분간 니가 보관해.
선재 (받는다. 불만)
혜원 내가 갖구 있음 니 생각 너무 많이 할 거야.(내려가려)
선재 (쯧, 손)잡으세요.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해요.
혜원 (웃음)알았어.
-둘, 내려간다.
-다 내려왔다.
혜원 먼저 갈게? (간다)
선재 (뒷모습 보면서)알았어요. 이 등신은 가서 혼자 사발면이나 쳐먹지 뭐.
혜원 (가면서)가끔 반말 해 줘. 듣기 좋다.
선재 (내가 미쳐)
-비밀폰 보는 선재.
-선재 저장명 ‘집’.
-선재, 더 돌 것 같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고. 달랑 글자 하나로 사람을 훅.
서회장 집 거실.
-영우와 성숙이 비껴 앉아 있고, 혜원이 들어온다.
혜원 죄송합니다.
영우 야밤에 산책이 좀 길었네?
혜원 그러게요.
성숙 앉어.
혜원 네, (앉는다)보고 전에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핸드폰 꺼낸다)제가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읽어드릴게요. 써 있는 그대루요.
영우 뭐야...
성숙 (혹시 역공?)
혜원 ‘오실장님, 아직은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따로 연락 바랍니다. 최대한 빨리. 두 분 중에 누구한테 먼저 보고할지는 그 때 결정하죠’
영우 (성숙에게)얘한테 미행 붙였어요?!
성숙 무슨 말두 안되는 소릴 하니? 내가 뭐땜에? (혜원에게)누군지 몰라?
영우 (벌떡 일어나 혜원 핸드폰 뺏어 본다)
혜원 당연히 모르죠. 다만 이사장님, 대표님, 두 분 중 한 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영우 (던지듯이 놓는다)난 아냐!
성숙 너 좀 너무한 거 아니니? 너랑은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닌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해?
영우 아니라니까? (외친다)왕정희, 최기사 들어오라 그래.
성숙 뻔하지 뭐, 걘 니 기산데 당연히 아니라구 하지.(혜원에게)안 그래? 이간질 하는 건 아니지만, 이치가 그렇잖아.
혜원 (당신이잖아요)
성숙 게다가, 이건 뭐니, 지 보스 따돌리구 뒷거래 하겠다는 건데, 그렇담 더더욱 실토 안하지.
영우 아 증말, (혜원에게)너 최기사 하루 이틀 봐? 걔가 성실하긴 하지만 이런 일 시킬 만큼 눈치가 있는 애는 아니잖아!
-어느 틈에 들어와 서있는 왕비서.
왕 최기사 들어오랠까요?
혜원 아니요. (성숙 겨냥) 두 분 다 난처하실 테니까 제가 그냥 정리하죠. 우선, 두 분 중에 한 분이 시킨 일인 건 뭐, 의심의 여지가 없죠.
영우 야,
성숙 계속해 봐.
혜원 (본다)그런데 저는 이해가 안되네요. 때가 때이니 만큼 제가 도울 일이 많은데.
영우 (성숙에게)그러게. 왜 이런 유치한 짓을 하실까?
성숙 내가 하구 싶은 소리다. 우리 오실장 뒤를 캘 게 뭐가 있다구.
영우 아무리 그래두 난 사생활은 안 캔다. 안할 말루, 얘는 연애좀 하믄 안돼?
성숙 오오, 니가 노리는 게 그거니? 그걸로 협박겠다는 거야?
영우 나 아니라는데!
성숙 머리 딸리는 애들이 꼭 막판에 소리 지르더라.
혜원 정희씨,
성숙, 영우 (본다)
왕비서 네,
혜원 제 가방 좀 갖다 줄래요?
왕 알겠습니다.
-왕비서 나가며, 모골이 송연. 쟤 무서워.
혜원 어쨌든, 이렇게 해서 두 분은 저의 충성을 반씩 잃으셨어요.
영우 (풀죽은)야...
성숙 (선다)나 잠깐 볼까?
혜원 네.
일각.
왕비서 오실장이 벌벌 떨면서 돈뭉치 집어줄 줄 알았어? 인제 정보 관련 임무는 이걸로 끝.짤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 줄 알아. 이뻐서가 아냐. 의심 살까봐 놔두는 거지.
최기사 네.
왕비서 근데, 뭘 보긴 봤니?
최기사 (설레설레. 혜원이 겁나서)
서회장 집. 침실. 밤.
-성숙과 혜원.
성숙 인제 삼중 첩자 그만 하지?
혜원 (웃음)왜 그러세요...은퇴하란 말씀으루 들려요.
성숙 그냥 말하께. 난, 니가 그냥 내 편만 했음 좋겠다.
혜원 영광이예요...
성숙 니가 영우를 돕는 거 자체는 크게 신경 쓸 거 없지만, 영우 돈은 영감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구, 또 걔 시댁에서 그걸 노리구, 그렇구보니 신경이 좀 쓰여...걔 남편은 김전무는 이번 기회에 널 통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돈이 얼마나 되나, 그거 알구 싶어해. 틀어 쥘려구. 지 아버지 닮아 아주 흉물이잖니. 너랑 나 사이, 이간질두 하겠지.
혜원 (아직은 넘어가면 안된다. 크게 베팅할 때까지 기다려야)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복잡하네요...
성숙 잘 생각해 봐...나는 정보전의 여왕이잖니.
혜원 (웃음)제가 뭘 막 흘리구 다니나봐요.
성숙 (웃음)뭐 그래서라기보다.
혜원 (지지 않고 웃음)
인겸 본가 서재. 밤.
-인겸, 인겸 부,
인겸부 그 양반, 무척 겁이 날텐데...
인겸 설마 구속까지 가겠나, 그러겠죠.
인겸부 생각이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구나.
인겸 가장 최근에 포착된 걸 집중적으로 공략 중인데, 그룹 차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구 또 예술 재단 쪽에 혐의를 두기도 애매하구요. 영우 동창 잠깐 만나서 떠 봤는데, 빈 틈이 없더라구요.
인겸부 시간 끌면 안되겠네.
-인주가 들여다 본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인주 다녀왔습니다...
인겸부 늦었구나.
인겸 어, 잠깐 들어와라.
인주 (들어온다)영우네 얘기야?...오혜원 만나봤어? (앉는다)
인겸 당분간 조심해라.
인주 뭐야, 이상한 소리 해? 악기 얘기?
인겸 보통 아냐.
인주 웃긴다...나는 자기 남편하구 라인이 다른데.
인겸부 한성숙이 믿구 그러는 거겠지.
인겸 딱이 그것만은 또 아닌 것 같습니다. 묘해요.
인주 몰랐어? 그 여자 양다리야... 올케 돈두 관리한다는데?
인겸부 들은 듯 하다.
인주 관리까지는 모르겠구, 금고지기? 뭐 그런 거.
인겸부 그럴 법 해.
인겸 (흐음...)
까페. 밤.
-다미와 장호.
다미 정유라한테 차인 게 내 탓이야?! 니가 가짜 짓 하다 딱 걸린 거지.
장호 (쩝)차 마셔라.
다미 (마신다)
장호 (눈치 살핀다)아는 형이 있는데, 선재 얘기 물어보더라?
다미 (응?) 어떻게 아는데.
장호 그건 알 거 없고, 암튼 헷갈려서.
다미 뭘 물어보길래.
장호 이거 선재한테 말하믄 안되겠지?
다미 (찻잔 거칠게 놓으며)아, 뭔데!
장호 너랑 선재랑, 그 아줌마 땜에 깨졌냐구.
다미 뭐?!
장호 아, 씨, 소리 좀 지르지 마라.
다미 얼른 마셔. (차에 냉수 부어 꿀꺽꿀꺽 마신다. 남기기는 싫어서)
장호 왜...(불안해)
거리. 밤. 혜원 차 안.
-혜원, 무표정하게 운전.
혜원 잘 갔니? 나도 들어가는 중. 걱정 하지 마. 정식으로 사과 받았어...왜 암말 안해?...
선재 집.
-장호와 다미가 와 있다. 장호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 게임하고(이어폰), 선재, 싱크대에 기대 서서 통화 중.
-욕실 물소리. 다미가 세수를 하는지.
선재 (뚱한 듯 침통한 듯)할 말이 없어요... 그 사람이 사과를 하건 안하건, 제가 잘못한 거니까...안 들키면 된다구 생각했던 거요...아니요, 친구들 와가지구,
혜원 차 안. 밤.
혜원 어, 그렇구나...재밌게 놀구, 잘 자라. (끊는다)
선재 집.
-선재, 전화기 만지작.
-다미가 욕실에서 내다본다. 젖은 얼굴.
다미 수건 좀!
-선재, 빨래줄의 수건 벗겨 다미에게 던지고 계단 올라간다.
-욕실의 다미, 수건 받아서 얼굴 닦는다.
다미 누구랑 통화 했어?
선재 선생님...
-의자 당겨 책상 앞에 앉는 선재.
다미 내려와. 할 얘기 있어.
선재 (컴퓨터 켠다)해. 다 들려.
다미 (장호 이어폰 뽑으며)내려오라고!
선재 (의자 돌리는)글쎄, 하라고...
다미 쳐다보면서?!
장호 (이어폰 줄 감아 주머니에 넣으며)말 들어라. 우리 지금 너땜에 온 거야.
선재 (쩝, 선다)
-선재, 계단 맨 아래칸에 앉아서 두 친구의 얘기 듣는다. 다미와 장호, 앞다투어 오혜원과 그 세계의 위험성에 대해...
다미 선생님인데 하필 여자다, 여잔데 하필 선생님이다, 뭐 다 좋아. 그렇다 치구, 나 너한테 여자 짓 안할 테니까 내 말 명심해. 이거 질투 아니거든?
선재 알았어...
다미 일단 니 선생 만나지 마. 미용실 손님들이 막 수군대더라. 오혜원이 이선재 너무 아낀다구.
선재 할 짓 디게두 없다.
장호 거기가 원래 그런 데야. 니 선생두 거기 단골이래.
선재 뭐?
다미 이 목걸이 줏었다구 한 날 기억하냐? 니가 갖다 버리라구 했던 거. 이게 원래 그 아줌마 꺼다.
선재 (이건 또 뭐냐...)
장호 이 얘긴 내가 진짜 안할라 그랬는데, 아는 형이 하는 술집에, 일, 아니 잠깐 놀러 갔다 본 적 있어. 형네 애인이랑 친군가봐. 말싸움 하다가 다 나가라 그러면서 맥주병 퍽 깨는데, 우와.
다미 맥주병 아니라 면도칼을 씹었대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안보이는 힘이 더 살 떨려. 널 빼준 게 교수가 아닐 수두 있어. 나, 니 선생보다 더 높은 아줌마가 니 얘기 하는 것두 다 들었거든?
장호 소름끼쳐. 나두 나름 쎈 바닥에서 논다구 생각했는데, 어후,
다미 사람 갖구 장난하는 것들이야.
장호 그게 진짜 무서운 거지.
선재 (오혜원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
혜원 침실. 밤.
-혜원, 파우더 룸에서 나오고, (잠옷)
-준형이 들어온다(방금 귀가)
-무표정한 둘, 눈 마주치지 않고 스친다.
-혜원, 나간다.
주방/거실.
-혜원, 식탁 앞에 앉아 있다. 찻잔들고 있다.
-싱크대에 빈찻잔 넣고 돌아서는 혜원,
-준형(잠옷)이 이층에서 내려온다.
-계단에서 복도 쪽 돌아 주방(다이닝 쪽)으로 들어가는 준형. 다이닝에서 나오는 혜원.
-스쳐 지나가는 둘.
-서재로 들어가는 혜원.
선재 집.
-선재, 계단 올라간다. 무심하다.
다미 만나지 마. 제발 엮이지 말라고.
장호 잘 생각해.
-선재, 마우스 움직여 저장된 곡을 찾는다.
다미 대답해...
선재 (마우스 움직이며) 너네 둘 다 어제 연주 못들었지?
장호 (얼결)어.
다미 대답 하라고!
선재 지금 들려 주께....근데, 반주가 피아노야.
둘 ??
-화면 속 리스트 중, 저장명 ‘파가니니랩소디 혜원 반주’ 클릭하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스피커에서 혜원의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고, 선재, 연주 시작. 인트로.
-다미, 장호, 뭐야...
장호 야, 됐어. 들어두 몰라.
다미 너 우리 무시해?
-개의치 않는 선재, 협연 연습 과정을 복기하듯...
회상.
-연습실. 인트로 함께 치는 선재와 혜원.
-건반 쾅 치고 일어서는 혜원.
-선재방. 이어폰 꽂고 연주하는 선재.
-연습실. 준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혜원,선재의 연주.
선재 방.
-연주하는 선재.
-다미와 장호, 각자 기대 앉아, 이게 뭐지? 왜 안 졸리지?...
회상.
-연주홀. 손수건 집어 땀 닦고, 혜원 찾는 선재.
-조정실의 혜원.
-다시 연주하는 선재.
-피날레.
선재 방.
-피날레.
-장호, 벙하니 선재를 본다.
-다미, 뭔지 모를 슬픔에 눈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드디어 끝. 선재, 일어서며 소맷부리로 이마의 땀 닦는다.
-두 친구 향해 깊숙이 인사하는 선재.
-장호와 다미, 분명 감동인데 정체를 모르겠다.
선재 (난간에 턱 괴고 담담히 묻는)괜찮았냐...
장호 야, 치구나면 진짜로 땀이 막 나?
선재 (나지, 새끼야)어땠냐고...
장호 이상해. 뭐가 이러냐? 하나두 안졸리구, 가끔 막, 울컥하구?...
선재 그렇담 내가 잘 한 거야. 박다미 넌.
다미 (외면하며 눈물 쓱 닦는다)아, 짱나게...이거 원래 슬픈 곡이야?
선재 (조금 웃음)찢어지지...
다미 (얼핏 외면. 저건 내가 모르는 이선재다...)
장호 (다미를 툭 친다. 가자고)
다미 어.(가방 집어드는)
-조금 후, 장호와 다미, 나가고, 선재 배웅. 가라...
-침대 위 선재, 베게에 턱을 괴고 엎드려 핸드폰 보다가 'WHO‘누른다.
-곁에 있는 비밀폰 진동....선재, 집어본다. ‘집’에서 전화가 오고 있다...선재의 전화기는 수신을 재촉하고, 혜원의 전화기는 눈 앞에서 울린다...
-나는 무서운 세계의 무서운 노비 오혜원을 사랑한다. 그 여자는 나를 사랑해서 명품 없이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데. 그 세계를 빠져 나오는 중이라는데. 남편을 속이면서.
-슬프게 잠드는 선재. 머리맡에 두 개의 전화기.
선재 방. 이른 아침.
-슬픈 채로 눈 뜨는 선재. 눈 뜬 채 미동 없이 한참. 아침이 슬프다니.
옥상. 이른 아침.
-선재, 샌드백 찬다.
-분노 지수 높아지면서 주먹이 나가려고 한다. 얼른 뒷짐 지고 다시 발길질....
선재 집.
-선재, 묵묵히 쌀 씻는다. 이렇게 괴로운데 왜 배가 고프지? 엄살인가? 아닌데?
-밥상에 반찬통 두어 개와 수저.
-선재, 싱크대에 기대 서 있다가,
-김오르는 냄비에서 밥을 퍼내 그릇에 담는 선재.
-밥상 앞, 선재. 숟가락 들다가, 멈춘다. 이건 너무 하잖아. 너무 김새고 외롭잖아...밥을 한술 가득 퍼서 입에 넣는 선재.
-책상 앞. 자판 치는 선재.
혜원 서재. 밤.
-혜원, 비밀금고에 USB 넣고 문 닫는다.
-책상 위 태블릿이며 계산기, 메모장, 연필 등 널려 있다.
-혜원, 책장 밀고 돌아서는데, 쪽지 도착.
선재 소리 막귀형, 혹시 여신님 얘기,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있어?
-혜원, 한손으로 자판.
혜원 소리 없어. 왜?...
선재 소리 앞으로도 하지 말아 줘. 부탁할게. 또 봐요, 형.
-나천재 퇴장.
-혜원, 불안하다.
아파트 단지 부근 거리. 낮.
-혜원의 차 서 있고,
-운전석 혜원, 벨트 풀고 좌석 조금 젖힌다. 후우...
-지수가 뛰어온다. 집에옷 차림.
-혜원, 팔 뻗어 차 문 열어 준다. 지수, 타면서,
지수 아, 진짜, 왜 굳이...저녁 때 조용히 만나자니까...
혜원 좋잖아. 차 안 데이트.
지수 집으루 올라 오던가.
혜원 애들 할머니 오셨다며.
지수 방에서 얘기하면 되지?
-혜원, 테이크아웃 티 두 잔 중 하나 집어 지수에게 준다.
혜원 손님, 주문하신 티 나왔습니다.
지수 (받으며 눈흘기는)이런...
혜원 (남은 티 집어든다)
지수 (한모금 마시고)영우네 아버지 어떻게 되는 거야? 구속 돼?
혜원 모르지.
지수 다들 정신 없겠다.
혜원 이럴 때 자기 앞을 가려야 하니까.
지수 넌.
혜원 상관 없지 뭐. 깃털인데.
지수 주로 깃털들이 잡혀가두만.
혜원 (마시고는)인서가 뭔 말 안해?
지수 왜 안하겠니.
혜원 암튼 입은 싸가지구.
지수 너 좀 만나보라구 하는데, 감이 딱 오더라. 스무살 어쩌구 했던 게 니 얘기였다는 거.
혜원 어...(창 밖)내가 진짜 미친 게, 세상이 다 눈 감구 있는 거처럼 굴었거든?근데 정신 차리구 보니까 세상이 다 감시자인 거야...다 눈이야. 여기두 저기두...
지수 남편 알어?
혜원 거의. 현장만 걸리믄 완벽하지.
지수 또 누가 알어?
혜원 나머지는 추측 수준. 근데 아마 물증을 기다리겠지.
지수 못산다 내가,
혜원 그러게.
지수 강준형은 뭐래?
혜원 말 안해. 변명두 해명두 요구하지 않구....자기두 갈팡질팡이겠지 뭐...걘 남들 눈이 목숨만큼 중요하니까.
지수 인간 다 그렇지, 야!
혜원 (한숨)
지수 생각만 해두 으스스하다. 덩실한 이층집에, 부부가 말두 안하구, 응?...그 떼쟁이가 얼마나 괴롭겠니? 그런 거대한 번민에 빠져가지구, 너한테 짜증두 못내구...
혜원 미안하지...나두 이만큼 와버릴 줄 몰랐어...
지수 다 그렇게 말해. 발만 쪼끔 담그지 뭐, 고런 앙큼한 계산으루 살짝살짝,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첨부터 작정하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
혜원 야단쳐라...
지수 거기다, 이 바닥이 어떤 바닥이니?! 안봐두 뻔한 게, 지금 다들 삥 둘러서서 기다리구 있을 거다. 오혜원이 얼마나 갈갈이 찢어지나. 쌤통쌤통 그러면서.
혜원 어.
지수 (외면)아우 증말...(다시 본다)그래서, 지금 젤 힘든 게 뭐야?
혜원 (글썽)근데두 보고 싶다는 거.
지수 뭐?!...
혜원 (삐질)걔네 집...
지수 (본다...)
혜원 (터지려는 울음 참느라 입을 씰룩이며 안간힘. 눈물 콧물)
지수 (글썽)야...
혜원 (결국 흑, 터진다)
-지수, 컵을 내려놓고 혜원 손의 컵도 빼준다.
-가로수 아래 서 있는 차. 두 여자의 진풍경. 하나는 울적하게 창밖을 보고, 하나는 티슈로 눈물 콧물 닦아가며 울고.
혜원 침실. 며칠 후 아침.
-혜원, 출근 차림. 급히 가방 챙겨 나가려다 멈칫. 준형이 서 있다. 서재에서 잤나보다. 평상복 차림.
혜원 (뭔데?)
준형 많이 생각했는데, 괜히 남들한테 들키지 말고, 이쯤에서 끝내. 그럼 다 용서할게. 그 놈이 순진해서 지금 당장은 물불 안가리겠지만, 당신이 나잇값을 해야지. (준비한 듯)
혜원 나 지금,
준형 알아, 피하구 싶겠지. 당신 기분 아는데, 한가지 더 알아 둬. 난 절대 이혼 같은 거 안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4대째 크리스챤 집안 아니니. 어머니는 지금두 전미 한인교회 연합 예배 때마다 찬양 인도하셔.
혜원 미안한데, 지금 시간이 없어. 뉴스 봐.(나간다)
준형 ?
-스마트폰 뉴스 보는 준형.
-서필원 회장 전격 구속.
-준형, 나름 생각을 정리한다. 혜원이 당분간 정신없는 동안, 이 둘의 일을 정리해야겠다는.
선재 집.
-선재, 셔츠 단추 채우고, 계단에 앉아 양말 신고,
-가방 들고 나간다. 계획을 세웠다.
서울 외곽 이정표. ‘서울 구치소’
모텔 복도. (구치소 인근)
-복도에 사람들 북적인다. 본사 계열사 임원들, 기자들.
-장비서가 그 중 몇 명의 사람들한테 설명하는 중이고,
-방방이 ‘법무팀’ ‘가족’ ‘지인’ ‘계열사’ ‘본사’ ‘보도’ 쓰여진 종이쪽 붙어 있다.
장비서 가족 분들이 오전 면회를 하지 않으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신청은 당일 한 시간 전에 하셔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내린다. 그 뒤, 보온병 보자기를 든 다방 아가씨가 내리지는 않고 삘쭘 내다보며, 웬일이래?
-인겸이 ‘본사’룸에서 나와 ‘가족’으로 들어간다.
객실(가족)
-인겸이 들어온다.
-성숙과 침통한 영우가 소파에 앉아 있고, 혜원이 그 곁에 서 있다.
성숙 뭐가 이렇게 정신 없어?
인겸 원래 초반에는 어수선 하죠. 곧 차분해 질 겁니다. 가족들이 사흘에 한번, 그리구 저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번갈아 뵙기로 했습니다. 처남들이 순서 양보 했으니까 모녀분이 먼저,
영우 (이 여자랑)같이?!
성숙 싫어?
영우 그럼 좋겠어요?
성숙 어른답게 굴어.
인겸 (잠깐 찌푸리고는 혜원에게)회장님 뵙구나서 연락하죠.
혜원 알겠습니다.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 다음 날.
-세진이 통화 중이고, 선재가 어색하게 서 있다.
세진 방금 왔어요...네...네...알겠습니다...(끊고 선재에게 친근한 미소)잠깐만?
선재 (반쯤 꾸벅.네)
-세진이 디브이디 몇 장 봉투에 담는다. 선재 사진과 깔끔하게 쓰인 글자들. 영문. 선재의 이름과 날짜,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이 적혀있다.책상 한 켠에 디브이디 발송용 봉투 몇 개 포개져 있고,
-혜원 책상에 ‘부대표’ 명패.
세진 대회마다 마감이 달라서요, 발송은 내가 할 거니까 신경 안써두 돼요. 아주 잘 나왔더라구요. 녹음두 깨끗하구. (봉투 건넨다)축하해요.
선재 (받으며 꾸벅하고는)선생님은,
세진 아, 부대표님은 아직 못보셨어요. 회장님께 안좋은 일이 있어서 어제부터 계속 외근 중이시라. 워낙 중책을 맡구 계시니까요.
선재 ???
세진 뉴스 못봤나부다.
선재 (뭐지?)어디 계세요?
세진 (난처한 미소)그게,
모텔 객실(가족)
-혜원과 장비서가 서서,
혜원 어쩔 수가 없죠. 두 분이 따로 면회를 하시면 가족 외 분들한테 기회가 그만큼 덜 가니까. (시계 보고는)점심 드세요.
장비서 같이 하시죠.
혜원 오시면 그때 할게요.
-장비서가 나가고, 혜원, 서성.
아트센터 일각.
-선재,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벽에 기대 서서 문자.
모텔 객실.
-혜원, 소파에 앉아 눈 앞을 물끄러미 본다.
선재 소리 디브이디 받았어요...한남동 돈으로 만든 거지만, 제가 잘 쓸게요...
면회실.
-훌쩍이는 영우, 손수건 말아 쥐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성숙, 얼이 반쯤 나가있는 서회장,
성숙 잠은 좀 주무셨어요?
서회장 잔 건지, 혼절을 한 건지 모르겠다. 여기 아주 몹쓸 데야...
성숙 왜 아니겠어...
서회장 빨리 빼내 줘...
영우 김서방이, 최선을 다하구 있대...
서회장 한 시두 더 못 견디겠다. 내 다 불겠다구 전해라.
성숙 응?!
영우 (정신 번쩍)뭘 부는데?
성숙 (눈 흘기고는)여보, 약해지지 말아요. 임원들이 지금 당신을 위해서, 여러 가질 준비하구 있어요.
서회장 필요없고, 내일 오실장 들어오라구 해.
영우 혜원이는 왜? 나한테 말하믄 안돼?
-성숙, 고즈넉이 노래를 부른다. 릴리 마를렌.
-영우, 세상에.
-서회장, 들을 수 밖에.
영우 못 봐주겠네 증말!
모텔 객실(가족)
-전화기 진동. 혜원, 확인하고 받으며 일어선다.
혜원 네,이사장님...아, 네...네...알겠습니다.
-전화 끊고 가방과 겉옷 들고 나간다.
복도.
-혜원이 급히 엘리베이터 쪽 가는데, 방에서 나오는 인겸.
-저만치 두어 명 남자들 서서 종이 커피 마시는 모습.
-중국집 배달원이 지나가고,
혜원 모녀분 면회 마치셨답니다. 댁으루 모실려구요.
인겸 아,집사람 전화 받았어요.
혜원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
인겸 맨 먼저 당첨이 되셨네요. 저 다음으로 알현을 하시다니, 신임도 최강입니다....
혜원 (본다. 견제, 그 이상이 느껴진다. 이럴 땐 웃어 줘야지)마름일 뿐이죠,뭐.
인겸 뭔가 말씀이 있으실텐데, 연락 주세요.
혜원 그러죠.
-인겸, 다른 방으로 들어가며 지그시 본다.
-엘리베이터 앞의 혜원, 어깨 따갑다.
1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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