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13
이사장실 앞.
-세진이 급히 온다. 왕비서가 본다.
세진 (걱정스러워)미용실 아가씨 한명이 찾아왔어요.
왕 (놀랄 일 아니라는)알아.
세진 네?
혜원 사무실.
-다미는 소파에, 혜원은 스툴에.
-다미는 별로 두렵지 않다. 고딩 시절, 어른들 많이 상대해 봤다. 자기 애는 마냥 순진하고 착하다며 왜 우리 애 불러내냐고 지랄하는 엄마들부터...
다미 웬만하면 참을려구 했어요. 선재한테, 오혜원 실장님, 아니, 부대표님, 만나지 말라구 했을 때, 선재가 알아들은 거 같았구, 또 부대표님두 남편이 있는 분이라 자제 하실 거라구 생각했으니까요...
혜원 (이미 식은 땀이 줄줄줄)
다미 (본다)근데, 또 만나셨어요.
혜원 (간신히 미소)어...만났어...이것저것, 의논할 게 있어서.
다미 1박2일 동안요?
혜원 (철렁)
다미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다 가지신 분이...
혜원 (후둘후둘. 이건 아니다. 국면 전환이 필요해)
다미 저 솔직히, 좀 괜찮은 애거든요? 샵에서 같이 일하는 애들, 거의 다 손님들 꺼, 명품 옷이나 가방, 힐끗거리구 침흘려요. 저는 그런 적 없어요. 손님들 뒷담화에 끼지두 않구요. 손님들이 나 월급 주는 여왕이구 공주다 생각하면서 재수 없이 구는 거 대충 다 참아요. 근데, 실장님 목걸이 끊어 먹었을 때, 진심,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혜원 (머릿속이 텅 빈 상태로 들으면서, 안간힘으로 대책을 생각한다. 잡아 떼야만 한다)
다미 물론 선재가 제 꺼 아닌줄 알지만, 남자 여자가 꼭 죽을만큼 사랑해야만 결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정이나 고마운 마음, 그런 걸로도 평생 같이 사는 사람들 많아요. 뜨거운 건 한 때죠.
혜원 (잡아떼야만 한다.미소)다미씨.
다미 (본다)
혜원 나 다미씨 좋아하구, 늘 응원하는데, 이건 예의가 아니지? 누구한테 무슨 얘길 들었는진 모르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먼저 물었어야지.
다미 아줌마,
혜원 여긴 내 직장이니까, 이만 돌아가요. 그리구 남의 말만 듣구 함부로 판단하는 거, 정말 위험해.
다미 나 예의 지킬만큼 지키구 있거든요? 증거 다 있거든요? 토 나와서 안까는 거 뿐이거든요?
혜원 (서서 책상 앞으로)나 시간 날 때 연락할게. 선재랑 같이 밥 먹자.
다미 (지켜보다가 선다)
혜원 (마구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 정리 하는 척)
다미 내가 왜 선재더러 아줌마 만나지 말라구 하는지 아세요? 아줌마 포함, 나한테 아줌마 협박하라구 시키는 더 높은 아줌마, 또 그 심부름 하는 이상한 아줌마, 다, 너무 웃기구 드러워서예요. 내가 참구 가만 있기에는 이선재 그 새끼가 너무 아깝잖아요.(돌아선다)
혜원 (너무 떨려 쳐다 볼 수도 없다)
-다미, 나가고 문이 닫히자, 혜원, 풀썩 쓰러진다.
복도.
-다미, 거칠게 가면서 글썽.
다미 미친 년들.(침 뱉는다)
-모퉁이에서 고개 내밀고 바라보는 세진과 왕비서.
혜원 사무실.
-세진과 왕비서가 사망 직전의 혜원을 소파에 눕히고, 의무실 간호사가 뛰어들어온다. 간호사가 혜원 눈꺼풀 뒤집어 보고, 서둘러 주사 준비하는 등,
-성숙이 문간에서 지켜보다 나간다.
-책장 귀퉁이, 도청 칩.
이사장실.
성숙 (통화)걔 왔다 갔어...고거 진짜 쓸만하데?..,우리 다 너무 웃기구 드럽대...하하하...
혜원 서재. 그날 밤.
-혜원, 소파에 누워 있다.
선재 집. 밤.
-선재, 문자 본다.
혜원 소리 박다미, 애 괜찮더라. 친구로 짱박아놔.
선재 ?...
-선재, 급히 답전. ‘다미가 무슨’까지 찍었을 때,
-딩동, 문자 도착. 확인한다.
혜원 소리 여친은 안됨. 이거 즉시 삭제하고 답장 금지.
-선재, 뭐지? 뭐지? 뭐지?...
-발소리와 함께.
다미 소리 아니, 선재네...시간 되면 와...어..
-선재, 급히 문 연다.
-다미가 전화기 귀에서 떼며 들어온다.
다미 문두 열어 줘?
선재 너 뭔짓 했냐.
다미 (올라선다)했지.
선재 뭔짓.
-다미, 가방 던지고 명화 침대에 걸터 앉는다.
-선재, 다미 소매 잡아끈다.
선재 거기 앉지 마.
다미 원, 별.(하면서도 내려 앉는다)
선재 말해.
다미 니 선생님 찾아가서 너 만나지 말라구 했어.
선재 뭐?!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다가 버럭)니가 뭔데 기집애야! 왜!
다미 너 드러운 물 들까 겁나서. 초록은 동색, 그런 말 들어봤냐? 그 아줌마두 똑같애.
선재 (더 버럭)알어! 그치만 기회를 줘야 할 거 아냐!!! 내가 좋아서, 나 사랑해서, 인제 그만 드럽구 싶다는데!!!
다미 (벙...)
선재 아후, 진짜, (돌아선다.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다)
다미 (서서히 알아진다...정말 사랑하나봐...)
선재 (울고 싶다. 난간 짚고 서서)제발 신경 끄구, 냅둬 봐...
다미 ...(목이 멘다. 꿀꺽 삼킨다)
선재 (어후...)
다미 ...(간신히)그 아줌마가, 다 버리구 너한테 오믄 믿는다....그땐 암말 안하께...(글썽이는 눈. 허공에 눈흘긴다)아님 꽝인 거지.
선재 (북받치는 걸 누르느라)
다미 (눈물 닦으며 훌쩍)
혜원 집 서재. 아침.
-혜원, 출근 준비. 가방 챙기다가 멈춘다.
다미 소리 증거 다 있거든요? 토나와서 안까는 거 뿐이거든요?
-혜원, 무슨 증거일까...하는데 문자.
성숙 소리 괜찮니?
-혜원, 픽 웃음. 답전친다. ‘오늘 회장님 면회 갑니다’
-혜원, 전송 누르며 나가는 혜원.
음대 학장실. 낮.
-준형이 들어온다.
-민학장과 월간 객석 신임 편집장. 인사차 들렀다.
민학장 어,
편집장 (선다)안녕하세요.
준형 어이구, (손내밀며)편집장 됐다며.
편집장 네...덕분에요.
준형 (어깨 쳐 주는)뭘, 자기 실력이지.
-둘, 앉는다.
민학장 강교수 와이프 잘 알지?
편집장 그럼요...저 신입 때 정말 많이 도와 주셨어요. (준형에게)조만간 두 분 같이 인터뷰 좀, 안될까요?
민학장 오, 재밌겠네.
편집장 작년에 경쟁지에 두 분 나오셨잖아요. 저 그 때, 진짜 많이 혼났거든요. 오선배님이 워낙 핫한 분이시라, 눈치만 보구 있다가 제대루 당했죠.
민학장 나두 그거 봤는데, 좋더라구. 내용두 알차구, 사진까지 그냥 예술이었지.
준형 뭐, 어쩔 수 없어서 하긴 했는데, 난 미디어 노출 별로 안좋아 해.
민학장 이 사람아, 안좋아두 해야지...다 자네 같으믄 매달 지면을 뭘로 다 채워. (편집장에게)솔직히, 그렇지 않어?
편집장 그럼요...(준형에게)제가 오선배님한테 직접 전화 해두 될까요?
준형 생각 좀 해 보고. (혜원을 먼저 통하는 거 싫어)
민학장 웬만하믄 해 줘.
편집장 스케줄은 저희가 맞출게요.
준형 허허, 참,
민학장 어,참, 이선재두 같이 소개되면 좋겠네.
편집장 어머, 대박!
민학장 아는구나?
편집장 그럼요. 장학증서 전달식 기사두 실었는데.
준형 (웃는지 우는지)
구치소 면회실.
-혜원, 서회장.
-혜원은 표정으로 가슴 아파한다는 걸 전하려 하고, 서회장은 기가 진해 말도 띄엄띄엄. 한숨도 섞고, 혜원의 눈치 표 안나게 살펴가며 엄살.
서회장 내가, 사흘만에, 거울을 봤는데, 인제 죽는구나, 싶더라...곡기두 안땡기구, 여자조차, 생각이 안 나...
혜원 희망적으로 생각하세요...
서회장 김서방 그 눔으 자식이, 아주 사람 약을 제대루 올린다...저번 날 왔을 때, 애들 앞으루 내 신탁 하나 양도 해주마고 했더니, 글쎄 가타부타 말이 없이, 영우 사진 몇 장을 들이대잖아.
혜원 민망하네요.
서회장 따로 한 번 만나 봤냐?
혜원 아뇨. 이사장님 면회 오시는 날, 스치기는 합니다만.
서회장 직접 담판을 한번 해 봐...
혜원 그럼, 영우 몫을 부부 명의로 해줘야 할까요?
서회장 명의 변경이니, 뭐니, 그 정도로는 안되지. 즈이 집안 대대손손 호강하겠다는 건데.
혜원 구속 집행 정지, 그 선인데,
서회장 나가기만 한다면 뭔 짓은 못할까,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혜원 잘 알겠습니다.
모텔 복도.
-인겸,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복도 걸어가는 인겸.
혜원 소리 최대한 존중하라십니다. 액수 알려주시죠.
모텔 객실(법무).
-장비서가 탁자 위에 종이 커피 두 잔 내려놓고 곁에 선다. 마주 앉은 혜원과 인겸.
인겸 문자를(핸드폰 들어보이는), 나오면서 바로 문자를 보내신 거죠?
혜원 네. 김전무님 체면을 감안해서.
인겸 증거를 남기자는 게 아니고?
혜원 이게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보니까요....뭐 문자 기록 삭제하는 것쯤, 김전무님께서 뭐가 어렵겠어요. 저로서는 일종의 시위 같은 거죠. 심부름을 잘 해야 하니까.
인겸 역시 치밀하시네.
혜원 (반말 하지 마라)
인겸 (안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 꺼내 혜원에게 보인다.액수와 영어로 된 회사이름)
혜원 (본다)
인겸 됐습니까.
혜원 회장님께서, 둘 중에 택일 하는 쪽으로 지시하셨습니다.
인겸 후자.
혜원 알겠습니다.
인겸 (메모지 찢어서 커피잔에 넣으며)인수 절차 밟죠.
혜원 그러세요.
구치소 앞. 며칠 후 낮.
-차량 행렬. 출소한 서회장의 차를 필두로, 마중 나온 차들 줄줄이.
-마중 나온 사람들.
서회장 집 침실.
-서회장이 침대에 길게 기대 앉아 있고, 곁에 인겸.
-좀 떨어져 선 장비서.
인겸 수사는 계속 됩니다. 재판두 받으셔야 하구요.
서회장 알아. 집에 오느라구 차비 많이 쓴 거 아는데, 그래두 내가 딱 죽겠는데 어떡하나. 사후 처리나 잘 해 줘.
인겸 그 말씀, 드릴 참입니다. 재판은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 될 거구요, 저희 목표는, 첫 공판에서 무죄를 받는 겁니다.
서회장 되겠어?...
인겸 해야죠. 지금까지 저희가 살펴본 바로는 가능합니다. 단, 아버님 동의가 필요하죠.
서회장 ...그러면, (오실장으로?)
인겸 네...
서회장 ...알았어...(마음이 안좋기는 하다)
인겸 그렇게 알고 진행 하죠.(선다)
서회장 집 주방.
-성숙과 영우가 피차 새침하게 앉아 있고(며칠 전에 한바탕 싸웠다), 혜원이 서서 차를 따른다.
영우 병원으로 모셔갈 걸 그랬어.
성숙 싫다시잖니...나두 몇 번 얘기했어.
영우 (쳇)난 커피 줘.
혜원 (성숙 앞에 찻잔 놓아준다)네...
성숙 내가 아부지 틀어쥘까봐 걱정돼? 왜 자꾸 병원 타령이야?
영우 아빠 건강을 염려하는 순수한 마음에서지.
-인겸이 들여다본다.
인겸 오혜원씨,
혜원 (본다)
인겸 올라가보세요.
혜원 아, 네.
-혜원이 나가면,
영우 내 회사, 뭐 문제 있어?
성숙 그럴 수두 있겠네. 넌 늘 문제가 많으니까.
영우 (귀찮다는 듯 손짓)아우아우 됐어요, 시비 걸지 마. 귀찮아.
인겸 (흐릿한 미소)두 분 인제 그만 싸우시죠.
성숙 응?!
영우 뭔 소리야?
침실.
-혜원이 들어오면, 장비서가 까운 차림 서회장을 부축하여 소파에 앉히고 있다.
혜원 부르셨어요.
서회장 어, 너 용돈 좀 주려구 불렀다.
혜원 어우, 아닙니다.
서회장 (장비서에게)그거 내 줘.
장비서 네.
-장비서, 탁자 서랍 열고,
혜원 회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무슨 수고를 했다구,
서회장 니가 참, 그동안 애 많이 썼지.
혜원 (그동안?)
장비서 (혜원에게 봉투 내민다)
혜원 (얼른 웃음)이거 받아두 되는지,
서회장 그러엄...이게 다 마음 아니냐...
혜원 네, 그럼(받으면서, 이 서늘함은 뭐지?...)
혜원 사무실. 그날 오후.
-혜원, 생각에 잠긴. 서회장의 말 한마디. 그동안 애썼다. 그동안이라니, 그럼 이걸로 끝?...
복도.
-혜원, 나온다.
-천천히 걷는 혜원.
-서회장 음성이 끝없이 반복되어 들린다.
서회장 소리 그동안 애썼다
주차장.
-차를 향해 또각또각...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
한강 둔치. 해 질 무렵.
-연 두어 개가 꼬리를 흔들며 날고,
-기사가 매점에서 캔커피 두 개를 산다.
-택시 안, 뒷좌석의 혜원, 열린 차창으로 기사가 건네는 캔커피 받는다.
혜원 한 2,30분, 기다려 주실래요?
기사 네.
-기사가 가면서 캔커피 따고,
-혜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를 생각한다. 지금껏 쌓아온 것과 장차 누릴 것, 그리고 선재. 다 잃지 않으려면.
식당. 같은 시각.
-선재가 들어온다. 빈 찬통 몇 개 들고 있다. 표정 없다. 생각이 많아져서.
-옥진이 탁자 위 치우면서, 배식대 위 턱으로 가리킨다.
옥진 고기...배달료다.
선재 네.
-선재, 빈 통 놓고, 담긴 통 두어 개 집어든다.
옥진 아예 먹구 올라가던가.
선재 아니요. (돌아서려다 옆에 놓인 반병짜리 소주병 들어보인다)이거,
옥진 얼래?
선재 (나가며)괜찮아요.
옥진 (아닌데?)
옥상.
-선재, 박스에 걸터 앉아 소주 찔끔 찔끔. 입맛을 다셔가면서. 달다. 쓰다. 옆에 핸드폰.
(그동안 선재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구함이 사라졌다. 그간의 모든 일을 복기 하다보니 기가 막히는지도)
한강 둔치.
-연들이 천천히 내려 앉는다. 얼레 감는 아이들. 이제 곧 해가 질테니 집으로 가야지.
-택시 안, 혜원 전화기 집어든다. 망설.
선재 집 옥상. 해질 무렵.
-선재, 바닥의 한 방울 탈탈 털어 마시고 빈 소줏 병 내려놓으며 일어선다.
-널려있던 이불 걷는데,
-혜원의 문자.
혜원 소리 이 주소로 와. 비원 옆...중요한 얘기 할 거야.
선재 집.
-이불 들고 뛰어 들어오는 선재.
-이불을 침대에 던져놓고 내려가, 윗도리 집어들고, 신발 신고,
계단.
-뛰어 내려가는 선재.
‘OO공방’ 앞. 어스름.
-선재, 뛰어와 선다. 핸드폰 꺼낸다. 가게 문 옆에 붙어 있는 주소가 맞는지 확인하고는, 거친 숨을 가다듬는다. 내가 먼저 화를 낼지도 몰라. 우선 얘길 다 듣자.
-문을 미는 선재.
가게 안.
-선재가 들어서고, 지수가 일어선다. 주인 소정은 진열장 안쪽에 서서 바라본다. 팔찌에 광택을 내고 있었다.
(매장 안쪽으로 공방이 있다)
-지수, 선재를 보는 순간 직감한다. 이 사태가 더 심각해진다면, 어쩌면 그건 혜원 때문이 아니라 저 애 때문이겠다. 뭔가 기어이 꿰뚫어 보고야 말겠다는 듯 형형한 선재의 눈빛에, 굳이 더 상냥한 웃음.
지수 오, 이선재구나?...
선재 네...(오혜원은 어디 있죠?)
지수 나 조인서 교수 와이프.
선재 아, (꾸벅)처음 뵙겠습니다.
지수 얘기 많이 들었어. 협연 디브이디두 봤구,
선재 감사합니다(만, 오혜원 어딨냐고)
지수 (머쓱)여기 주인(소정) 작업실에. 다 동창이야.
소정 (웃어준다)이쪽으로 와요.
선재 (그쪽 어디?)
공방.
-소정이 문을 열어주고 선재가 기웃.
-혜원이 찻잔 들고 앉아 있다. 짐짓 웃음.
혜원 들어와. 은밀한 장소가 필요해서.
선재 (웃지 않는다)미행 당하세요?
-얼른 문 닫는 소정.
매장.
-소정이 나온다.
소정 보통 아니겠다.
지수 그러니까.
공방.
-선 채로 혜원을 보는 선재.
-각종 연장과 소형 가마, 재료 상자 등 어수선한 공간. 허름한 소파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 혜원.
선재 그래서, 여기는 안전해요?
혜원 적어도 변명해 줄 친구들이 있으니까.
선재 (허,)저 분들이요?!
혜원 (얘 지금 꼬여있다. 짐짓)술 먹었니? 맥주? 소주?
선재 안전하게 숨을 데가 없어요, 지구상에는! 저희 집두 구글 지도에 나와요. 퀵 배달 같은 거 해보면 더 실감 나죠. 강북강변 달리다가 단속 떴다 그래서 한강 공원으루 피했는데, 잔디밭에 누워있다 잠이 든 적 있었어요. 그게 사무실에 다 기록이 됐더라구요. 둔치 4호 매점 부근에서 20분 지체. 이렇게요.
혜원 오토바이에두 블랙박스가 달려 있나봐?
선재 영세업자가 그런 게 어딨어요. 근데두 다 돼요. 위치 추적 만으루두.
혜원 (작게 탄식)그렇겠지...그런 세상이지...
선재 세상 탓 할 거 없어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구 생각했던 거, 진짜 잘못이구요, 그래서 지금, 숨구 가리구 하는 건 더 큰 잘못이구요, 또 그래서,
혜원 박다미가 그러더라, 증거 다 있다구. 근데 토 나와서 못 깐대.
선재 얘기 들었어요.
혜원 사진 같은 거겠지? 아니면 좀 더 확실한 증거물이던가.
선재 보구 싶지 않으니까 말하지 말라 그랬어요. 뭐가 됐든 다 사실이잖아요. 지금 젤 안전한 데는 어디냐면요, 이렇게 골목 돌구 돌아서 오는 데가 아니라, 광화문 네거리, 시청 앞이예요. 인터넷에다, 그래 우리 그렇다, 때리구 싶으믄 때려, 그러는 게 나아요.
혜원 선재야.
선재 (뭐요)
혜원 (따뜻이 미소. 달래듯)나두 잘못인 거 알아. 때리믄 맞을 거야. 근데, 사람들이 작정하구 이 일을 이용하려 든다면, 그건 막아야겠어.
선재 (이용? 덮치는 예감.불길한)
아트 센타. 이사장실. 같은 시각.
-사진들. (민학장이 한 장 씩 넘기는)
-혜원, 오토바이 뒤에 타고 선재 등에 기댄(9회).
-한옥 펜션, 불켜진 사랑방.
-한옥 펜션, 주방 기웃거리는 선재.
-아궁이 속 혜원의 구두.
-식당 앞, 선재가 혜원 손 잡고 나오는.
-책상 앞의 성숙은 만년필을 세워 들고 톡톡톡. 어떻게 가닥을 잡아야 할까 생각 중.
-소파의 민학장이 그 중에 하나 다시 집어들고 멀찍이 본다. 오토바이 장면.
민학장 그림 죽이네...이거 뭐, 완전히 보니 앤 클라이드 아냐. 오장동 버전.
성숙 (톡톡 멈추고 만년필을 필통에 담는다)그래서 더 미치구 환장하나 봐, 연애불구 오혜원이가...우린 한창 뜨거울 때 너무 풍족하게 놀았어.
민학장 (사진들 챙겨 봉투에 넣는다)그거야 당신이 워낙 잘 벌었으니까.
성숙 애틋한 맛이 없었다. 그게 아쉽네.
민학장 왜애...그래두, 당신 아파트에서, 바하, 모짤트, 스팅, 비틀즈 그런 거 같이 들으면서 좋았잖아. (다른 봉투 집어 속을 들여다본다)이건 뭐냐.
성숙 증거물.
민학장 (봉투 내려 놓고, 계산 모드)속죄양이라...뭐 다들 그렇게 하긴 하는데, 이 경우는 좀 더 깊은 뜻이 있네. 오혜원 순교 이벤트는, 서회장과 김인겸, 장인 사위 합작품이야. 오실장 엑스 파일 받아내서 자기 혐의두 벗구, 당신까지 손 보겠다는 거지.
성숙 그쪽에 넘겨주기 전에, 내가 먼저 받아야지. 목을 졸라서라두.
민학장 (증거물 봉투 손끝으로 툭)이런 거 소용 없어. 현장 잡아서 개망신 주기 전에는...영장 없이 샘플을 어떻게 채취 하나...오실장은 금일봉 받는 순간에 이미 대응책 세웠을 거구, 사력을 다해서 조심할텐데.
성숙 그래서 짜증 나.
-핸드폰 울리자 얼른 받는 성숙.
성숙 어...
혜원 사무실.
-기술자 두 명이 사다리 위에 올라 서서 작업중.
왕비서 (전화)기종 바꿔서 설치 중이구요, 다섯 시 이후로 위치 파악은 안됐습니다만, 아마 조인서 와이프를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네, 집에 전화 했더니 그 애 시어머니가, (움찔)
이사장실.
성숙 얘, 그 복잡한 한강대로에서 미행 따돌리구 겨우 지 동창 만나러 갔겠니? 연막이지...그 팀 갈아치워라, 응?
민학장 기타 좀 갖구 와보라 그래.
성숙 (힐끗 보고는 일어서며)도시락 두 개랑 기타.
복도.
-왕비서, 급히 나와 뛰어가며,
왕비서 알겠습니다. (끊고 단축 번호...)네, 왕정희예요...주방장 특선 도시락 좀,
이사장실.
-민학장이 나직히 기타를 둥당거리고, 문간의 성숙, 왕비서한테서 도시락 가방 건네 받는다.
성숙 끝나믄 퇴근해. 여기 들르지 말구.
왕 네, (문닫는다)
-탁자 위, 뚜겅 열지 않은 도시락, 장국 그릇, 냅킨, 젓가락 등.
-소파. 기타 치는 민학장. 먹지 않고 앉아만 있는 성숙.
-한참.
성숙 ...가지 않는 자여, 추억의 고자여...나는 추억 실조에 걸려 있으므로...
민학장 (기타 줄 스르렁 울리며 히죽)기억 하네?
성숙 그러엄...가난뱅이 시간 강사 애인이 날마다 밤마다 읊어 주던 건데...추억다오, 나는 추억 거지, 추억의 부랑자...(도시락 뚜껑 연다)멍청한 기집애. 연애질을 할 거믄 나한테 털어놓을 것이지. 둘이 맘껏 뒹굴게 망두 봐줄텐데.
민학장 (둥당이며 히죽)
성숙 (젓가락 쪼갠다)그래...어디서든 맘껏 해라. 것두 며칠 뒤면 끝이다.
민학장 (나직히 노래 시작)
성숙 (초밥을 하나 입에 넣는다)
공방 작업실.
-선재, 소파 가까이 작업용 걸상에 앉아 있다. 허탈하고 먹먹하다. 두 손으로 마른 세수 하는 척 하면서 눈물 닦는다.
혜원 대충 이해했니?...내 인생이 한 눈에 보이지?
선재 (조금 웃음)살벌하네요...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혜원 인제 더 드러날 거다...니가 몰랐으면 했는데.
선재 ...모르는 척, 눈 감구 있으면 다 알아서 하실 거다, 그런 맘이 좀 있었어요...
혜원 (짐짓 웃음)그래서, 나한테 창피해? 화가 막 나?
선재 (미치겠어요)입만 벌리면 사랑한다 그래놓구.
혜원 괜찮아. 부탁 하나 하자.
선재 (본다)
혜원 당분간 나는, 강교수랑 아주 사이 좋은 척을 할 거야. 그거 참구 봐줘.
선재 (뭘 한다고?!)
혜원 이용 당하기 싫구, 내가 이제껏 이룬 거, 앞으루 가질 거, 그리구 너까지 다, 잃구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이겨 먹을 때까지, 숨죽이구 잘 숨어 있어.
선재 (멍하다)
혜원 되도록 학교에서 놀구, 강교수한테 이쁘게 굴어. 디브이디 외국 교수들한테 보냈단 말 절대 하지 말구...레슨은 조인서가 자주 봐 줄 거야.
-사이.
혜원 그래 줄 수 있지?
선재 그러다 평생 가면 어쩔려구요. 저번 날 피아노맨 들으면서 많이 우실 때, 저 진짜 가슴 아팠어요.
회상. 한옥 펜션 사랑방.
-이어폰 한짝 씩 끼고 앉아 혜원은 철철 울고, 선재는 가만히 보고,(오디오 없음)
공방 작업실.
선재 도대체 뭘 바라구 20대를 그렇게 한스럽게 보냈는지.
혜원 생계 때문두 아니구, 무슨 지고한 가치를 위해서두 아니구, 오직 상류 사회 사람이 되구 싶다, 그거 하나로 이를 악물었지.
선재 (말이 안 돼. 이해 못해)
혜원 웃기지? 고작 그거 땜에 청춘을 다 써버렸냐, 그러구 싶지?
선재 웃겨요. 엄청 웃겨요. 그런데두 아직은 아냐, 기다려 봐, 그런다는 게.
혜원 너, 내가 아무것두 아니라면, 아트센터 부대표두 아니구, 시간 들여 돈 들여 가꾸지두 않구, 그래두 좋아할 거야?
선재 저는 잡초라 그런 거 안 따져요. 제 핑계 대지 마시구, 선생님 인생이나 생각하세요. 요즘은 평균 수명 길어져서 100살 넘게두 산다는데, 정말 재수 없으면 지금부터 60년두 더, 사랑 없이 살아야 돼요. 그럴 자신 있으면 맘대로 하시던가요.
혜원 그만 해라.
-선재, 훌쩍 일어서고, 혜원, 북받쳐 삐죽거린다. 눈물이 떨어진다.
혜원 너는 어쩜 그렇게 말을 얄밉게 하니?
선재 더 할 수두 있어요.
혜원 (눈물이 철철)
선재 (우시던가)
혜원 달래주지 마. 안아주지두 마.
선재 안해요, 그런 거.
-혜원, 울고, 선재는 벽을 보며 서있지만, 같이 운다.
공방 매장.
지수 (불안)오래 걸리네.
소정 너 그냥 가라. 쟨 내가 태워다 주께.
지수 그게 낫겠다. (가방 챙겨 들고 일어선다)정희한테는 암말 말구.
소정 알았어. 가.
지수 (가려다)웬 주책이냐고...
작업실.
-혜원, 소파에 쪼그려 누워 있다. 선재, 물끄러미 보다가 콧물 쓱 닦고,
선재 다 우셨으면, 갈게요.
혜원 (일어나 앉는다)
선재 (당신 진짜 질겨요)
혜원 그냥 가.
선재 그럴 거예요. 뭐 이쁘다구. (돌아선다)
-선재, 문 열려는데,
혜원 내 말대루 할 꺼지?
-사이. 선재, 그냥 나간다.
-혜원, 멍...내가 애한테 무슨 짓을 시킨 거니...
부근 거리. 밤.
-선재, 터덜터덜 가다가 참지 못해 선다. 이건 정말 아니다. 척을 하겠다니. 척을 하라니. 봐 달라니.
혜원 집 거실. 밤.
-준형, 귀가. 동정을 살피고 올라간다.
혜원 서재. 밤.
-서늘한 표정의 혜원, 컴퓨터에 usb 꽂는다.
-혜원, 케이스 금고에 넣는다. 잠시 보다가 문 닫는다. 책장도 밀고,
식당 밀실. 이른 아침.
-혜원이 반듯하게 앉아 있다.
-인겸이 들어오며 종업원을 눈으로 물린다.
-혜원의 대응 매뉴얼은 ‘온화한 평상심’
혜원 (앉은 채 미소)어서 오세요.
인겸 일찍 오셨네요...(매우 친근한 표정과 어투)
혜원 네...
인겸 (앉는다)이 시간에 미리 나오려면 대체 몇시에 일어나야 하죠?
혜원 계산보다 10분만 앞서면 되죠, 뭐.
인겸 아침 10분이 참 많은 걸 좌우하네요...저는 나오기 전에 회장님하구 10여분간 통화 했습니다. 오혜원씨에 대해서.
혜원 말씀하시죠.
인겸 그 통화가 아니었다면, 오늘 오전 중으로 압수 수색 들어갔겠죠...
혜원 (그랬겠지...)
인겸 회장님께서 밤새 생각이 바뀌신 겁니다. 흉한 꼴 보이지 마라, 내가 아는 오혜원은, 자발적으로 할 거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혜원 정말 중요한 10분이네요...
인겸 자료 일체 넘겨주시고, 법 절차에 따라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혜원 그런 각오 없이, 이 일을 해왔겠어요?
인겸 혐의 일부 인정 선에서 집행 유예, 가능합니다. 모 미술관 대표는 실형을 살았지만 그 경우는,
혜원 (살짝 웃음)저 비교 당하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동종 업계 유일무이, 그게 제 자부심이랍니다.
인겸 인정합니다.
혜원 감사합니다.
인겸 검찰 쪽에는 자진 출두 형식을 취해달라고 부탁해놨어요.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죠.
혜원 (본다)한가지 여쭤 볼게요.
인겸 네.
혜원 왜 제가 당연히 응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인겸 (뭐?!.....)
혜원 지금부터 시작이예요.
인겸 (짧은 당혹)
혜원 (가방을 집는다. 단정히 쥐고)가보겠습니다.
-혜원, 부드럽게 일어서서 문으로...인겸, 슬며시 찻잔 그러쥔다. 중대 차질.
-문을 밀고 나가는 혜원.
서회장 서재. 아침.
-인겸, 영우,성숙, 서회장.
성숙 당신, 걔한테 은밀히 뭐 맡기셨어요? 그러지 않구서야,
영우 그건 내가 새어머니께 하구 싶은 말이네요. 한성숙 비자금 장부가 지 손에 있는데 뭐 땜에 오케이 하겠어?
서회장 조용히 해라. 인제 둘이 한 편 먹어야지.
인겸 맞습니다. 모녀분, 그동안 오혜원의 약점을 선점하려 채집한 모든 정보를 저한테 주세요. 이사장께서는 일단 안아주시고, 다독이세요...소문이나 언론 보도, 결코 우리 쪽 의사가 아니라는 것도 강조하시구요, 당신은 말조심만 하면 돼.
영우 (쳇)
인겸 그리구, (장비서에게)오실장 전화 회장님께 연결 하지 마세요.
장비서 알겠습니다.
동 일각.
-왕비서, 벅찬 희망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아트센터 복도.
-성숙, 출근. 왕비서 수행.
혜원 사무실.
-혜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일어서서 서류 파일 챙긴다.
아트센터 이사장실.
-혜원이 다소곳이 usb를 책상 위 접시에 담아 성숙 앞으로 민다.
혜원 인제는 제 소관이 아닌 것 같아서요.
성숙 (선다)그래...그동안 수고 많았어...(혜원을 안아주고는 다정히 눈 맞춘다)법무팀에서 집행유예 확신한대...
혜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서류철 펼친다)업무 보고 드리죠.
성숙 (그래, 버텨 봐)
혜원 기획실 전원이 조사에 대비하느라 고유 업무에 차질이 컸습니다만 곧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성숙 (너 쉽진 않겠다)
동 앞.
-혜원 나온다.
-왕, 책상 아래로 마작 교본 보고 있다가 일어선다.
왕 얘, (손 잡는)너 없이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겠니.
혜원 (웃으며 토닥)걱정 하지 마.
왕 (응?!)
-영우가 온다. 혜원, 웃어주고 지나친다.
영우 잘 생각해라...
혜원 (가면서 손을 들어 보인다)
영우 허허,
혜원 사무실.
-혜원, 들어와 전화 한다.
서회장 서재.
장비서 김전무님과 얘기 하시랍니다.
-서회장, 책장 넘기며 힐끗.
혜원 사무실.
혜원 (웃음)알겠습니다.
-혜원, 웃으며 끊는다. 이것들이...
음대 학장실.
민학장 (통화)오히려 도움이 될 수두 있어. 시간 벌잖아. 서회장 바란대루 덜컥 다 넘겨주구 들어가버린다 생각 해봐.
이사장실.
-성숙, 통화 중이고 백선생 소파에서 기다린다.
성숙 알았어...어...(끊는다)미안.
백선생 아유 천만에요.
-성숙, 서랍에서 usb 꺼내 소파로.
성숙 확인 부탁해요.
백선생 (받아서 가방에 넣고)저한테 맡기 신 건 다 오혜원이 주도한 거죠. 뒤탈 없을 겁니다.
성숙 당연히 그래야지.
뷰티샵 샴푸실.
-다미가 인사하고, 직원과 고객1 들어온다.
다미 어서 오십시오.
고객1 오실장이 대신 들어간다는데?
다미 (더듬이 선다)
직원 글쎄요, 저희는 잘 몰라서..앉으세요.
다미 (얼른 거든다)
동 마사지실.
-고객 두명이 발마사지 받고, 다미가 선반에 수건 올려놓으며 쫑긋.
고객2 갔다 나오면 또 살게 해주겠지.
고객3 아니래. 완전히 날리겠단 거래요.
동 미용실.
-퍼머롤 마는 보조 미용사와 원장. 다미가 약품 그릇 왜건에 올려놓고 돌아선다.
고객4 보통 다 선선히 들어가지 않나? 오혜원이 뭔가 큰 걸 하나 쥐구 있나봐?
원장 글쎄요.
학장실. 낮.
-민학장과 준형.
준형 솔직히 저, 와이프랑 한 팀이라구 생각 안한지 꽤 됐어요...이번 일 때문이 아니라,
민학장 진정해. 이럴 때 갈라서면 그동안 참아온 게 다 허사가 되지 않나.
준형 네?...
민학장 통상 그렇게 들어가주면, 식솔 관리 및 우대 차원. 자네 경우 후임 학장 직은 보장 되지. 부부 사이 유지해. 일각에선 조인서를 또 강력히 거론하거든.
준형 (앗!)
민학장 이선재와는 참 스승과 애제자...그걸 당신이 하라고.
준형 (그렇구나...)
민학장 인터뷰 어떻게 됐어.
준형 해야겠죠? 마침 와이프두 흔쾌히 동의하는데.
민학장 그러엄...
준형 방.
준형 (통화.짐짓 흔쾌한 듯)이번 주말로 합시다. 그 날 딱 시간 나...와이프두 아마 그날 밖에 안될 거야...어...우리집 주소 알지?...아냐, 아냐, 그냥 와....그래, 그럼 그날 봅시다.(끊고, 자, 인제 다음 수순은?...)
-노크 소리.
준형 들어와.
-선재가 들어온다.
준형 (반색)오, 선재...왜 불렀냐믄 말이야, 너 주말에 집에 좀 와야겠다.
선재 (네?)
준형 집사람이랑 인터뷰가 있거든? 그날 너두 소개할 참인데,
선재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는)저 그날 민우 환송회 있다고,
준형 무슨, 너한텐 이게 더 중요해.
선재 꼭 오라구 하던데요,
준형 아냐. (인터폰)잠깐 들어와 봐.
-조금 후, 종수가 선재 옆에 서 있다.
준형 니가 그날 선재 태우구 와.
종수 네.
선재 (암담하네)
교정.
-종수와 선재. 벤치에 앉아.
종수 너 좀 그렇겠다?
선재 (본다. 뭘 아는 거야?)
종수 그런 자리가 뭐 좋겠냐고...
선재 해야죠 뭐.
종수 그래, 그것두 비용이다.
-유라가 지나가다가,
유라 얘,
선재 (본다)
유라 니 선생 소문 장난 아니더라?
선재 (본다. 무표정)
유라 나랑 사귈래?
선재 꺼질래?
-유라, 가면서 손 살랑살랑 흔들어보인다.
종수 (힐끗)잘 했다. 소문에는 그렇게 대처하는 거야.
선재 무슨 소문인데요?
종수 (모르는군)암튼, 저런 애는 단칼에 짤라야 돼. 지가 왕족인 줄 알아요.
선재 왜요?
종수 쟤 엄마가 완전 족집게, 선물 투자 귀신이거든. 학장부터 해서, 교수들두 꽤 될 걸? 강교수가 그래서 아끼잖냐.
선재 그럼 혹시,
종수 (본다)혹시 뭐,
선재 아니요. (혜원과도 연관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종수 (힐끗)오실장두 잘 알겠지 뭐.
선재 (하긴)
종수 저어기 쟤는 또, 순식간에 천민이 돼버렸어요.
선재 (본다)
-저만치 첼로를 멘 시은이 규현과 서서 얘기. 시은, ‘그런다구 가버리면 어떡해’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종수 학과장이 지도교수였는데, 악기 문제 어필하다가 순식간에 내돌렸지...학교 관두구 싶다 그러더라.
선재 왜요?
종수 전공 실기 수업을 못하는데 어떡하겠냐. 학과장이 버린 애라 아무두 안받아줘.
-시은, 규현과 헤어져 들어간다.
선재 (물끄러미 본다)
종수 (선다)토요일에 니 집 앞으루 가면서 전화 하께.
선재 (선다)
복도.
-선재, 연습실 유리창 하나씩 확인하면서 지나간다.
-선다.
-유리창 안, 시은이 연주 하고 있다.
연습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선재가 반쯤 들어선다.
-반주용 피아노는 비어있고, 시은 혼자 연주. 생상 첼로 소나타 1번 중 어느 대목.
-선재, 벽을 똑똑.
-연주 멈추는고 돌아보는 시은.
선재 (조금 웃어보인다)미안한데, 너, 저번에 이중주 하구 싶다 그래서.
시은 (선다)어, 진짜?...
선재 초견이지만, 일단 해볼게.
시은 우와(입을 막는다)
-시은, 악보를 피아노 위에 올려주고, 선재, 앉는다.
-선재, 생상 소나타 피아노 파트 치기 시작. 시은, 가슴 졸이며 듣는다.
-선재 연주 계속되고,
-시은, 구석에서 맹렬히 카톡. 흥분을 누르며.
시은 소리 빨리 와 봐.7번 연습실.
태진 소리 왜.
시은 소리 어쩌면 우리, 할 수 있을지두 몰라.
규현 소리 뭘?
시은 소리 아, 진짜, 뭐긴 뭐야.실내악 실기!
태진 소리 어떻게?
시은 소리 빨리 와. 피아노 연습 중이야. 무려 이선재.
푸름 소리 진짜?
태진 소리 진짜?
규현 소리 진짜?
복도.
-태진, 푸름, 급히 간다.
연습실.
-태진과 푸름, 시은이 피아노 옆에 서서 선재의 연주 지켜보고, 규현이 헉헉 뛰어들어와 친구들 곁에 선다.
-연주 멈추고 둘러 보는 선재.
선재 (멋쩍어)뭐냐...
-시은과 친구들, 서로 눈치.
선재 이상해?...
시은 아, 아니,
규현 저기, 우리가 진짜 급한 건,
태진 (가방에서 악보 꺼내 내민다)이거,
선재 (받아 본다. 드보르작 오중주?)
시은 중간고사 과제곡인데,
푸름 우리 다 재시 걸렸거든?
선재 (응?)
시은 지도 교수가 없으니까 수업을 안한 게 돼버렸잖아.
규현 근데 재시 봐봤자 뻔한 게, 비뿔 안나오믄 그냥 에프야.
선재 (알 것도 같고)
시은 (친구들에게)야야, 악기 꺼내. (선재에게)그걸로(오중주) 해줄래?
선재 (얼결)알았어.
-시은과 친구들, 서둘러 악기 꺼내 자리 잡고, 악보대 위에 악보 펴서 얹고, 튜닝하고,
선재 (악보를 뚫어지게 보면서)내가 일단 끝까지 쳐볼테니까, 각자 맞춰봐. 그런 담에 제대로 해보자. 나 이거 처음이라.
시은 알았어.
-선재, 드보르작 오중주 피아노 파트 시작.
-시은과 친구들, 숨죽여 듣다가 각자 조심스레 소리 내본다.
-피아노와 어우러지지도 않고, 아직 오중주라고 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
복도.
-인서가 연습실 안을 들여다본다.
연습실.
선재 지르지 마. 여기서 피아노랑 만날 거잖아.
연습실/복도.
-인서가 보다가 돌아서는데, 준형이 온다. 씩씩거리며.
준형 이선재 그 안에 있나?
인서 어...
준형 (문 열려)
인서 놔 두지 그래요. 잘 노는데.
준형 뭐?..쟤가 저럴 시간이 어딨냐?
인서 왜 그래요. (준형을 돌려세워 밀고 간다)저것두 큰 공부지...
준형 저런 애들하구 무슨 공부가 되냐?!
인서 말 참, 저런 애들이라니,
준형 너 애들 선동하는 거야?!
인서 거 참,
연습실.
-연습 계속.
-선재, 난생 처음 오중주. 귀를 한껏 열고 네 대의 현악기 소리를 들어가며...
선재 소리 오혜원 선생님. 난생 처음 오중주라는 걸 해 봅니다.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
-혜원, 책상에 기대 서 있다.
선재 소리 선생님 댁에 갈 일은 걱정이지만, 지금은 즐겁습니다. 음악이 갑이라고 하셨는데, 나누지 못해 유감입니다.
-혜원, 가슴이 저려온다. 입니다, 습니다, 유감입니다...선재가 화났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선재 집.
-계단에 걸터 앉아 있는 선재, 가기 싫다, 진짜 싫다...
-문자 도착. 선재, 확인한다.
혜원 소리 오기 싫지?...그래도 와...
-선재, 일어나 빨랫줄의 양말 거칠게 벗긴다.
혜원집, 거실
-현관. 선재와 종수가 들어선다. 신발 여러 켤레. 둘, 그 곁에 서서 신발 벗는데 준형이 반색하며 나온다.
준형 어서 와라...
종수 (엉거주춤)왔습니다.
선재 (꾸벅)
-준형, 앞장 서서 거실 향하며 종수에게.
-선재, 준형 뒷모습 보며 따라간다.
준형 민우 송별회 못간다구 얘기 했냐?
종수 아니요, 좀 늦는다구,
준형 다시 해. 못간다구. 여기서 저분들 좀 도와야지.
종수 네.
-거실.
-포토그래퍼(남,30대후반)와 보조가 촬영 준비.
-혜원이 소파에 앉아 있고 메이컵 담당(사진과 한팀)이 분첩으로 혜원 이마와 뺨을 누른다.
-주방의 미순, 커다란 핑거푸드 접시를 식탁에 놓고,
-준형, 종수, 선재가 들어선다. 혜원, 시선 주지 않고 짧은 인사.
혜원 어서들 와요...
선재 (역시 시선 안주고 꾸벅)
편집장 (반색, 감탄)세상에, 실물이 훨씬 낫네...
준형 (허허허)인사 드려라, 월간 객석 알지? 거기 신임 편집장님.
선재 (꾸벅)
-종수는 어느새 포토와 보조를 거들고 있다(할 일 없어도 하는 척)
-혜원, 표정없이 식은 땀. 메이컵이 거즈로 혜원의 목덜미 닦아준다.
준형 잠깐 올라가자.(선재 팔 잡고 간다)
선재 (가면서 혜원을 얼핏)
혜원 (눈 앞만)
침실.
-준형, 들어서고, 그 뒤 선재, 멍해진다. 부부침실.
-준형, 소파에 단정히 놓인 옷 한 벌(옷걸이에 걸린)을 가리키는.
준형 어떠냐. 집사람이 고른 거다.
선재 (본다. 무슨 말을 듣고 싶으세요?)
준형 (너도 괴롭겠지. 웃음)뭘 그렇게 굳어 있어...편하게 갈아 입구, 내려와. (어깨 툭)응?
선재 (그래야죠)
-준형, 나간다. 어금니 지그시.
-선재, 등 뒤 준형이 나가는 소리 들으며 따로 놓인 침대를 본다. 작은 게 혜원 꺼겠지.
-다린 듯 정돈된 침대 위. 협탁에 리흐테르와 안경.
-얼핏 다가서려다 돌아서는 선재. 온몸이 찢어질 것 같다.
-블라인드 커튼 반쯤 걷혀 있는 창.
-소파의 선재, 허리를 비틀어 창 밖을 본다. 혜원이 여기서 내다봤겠지.
-멍하니 앉아 있는 선재. 어떻게도 달래지지가 않으니.
-소파 위에 놓인 준형의 옷이 더더욱 치욕.
거실.
-준형과 혜원,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질문에 답하며 사진 찍힌다.
-계단 중간 굽이. 준형의 옷을 입은 선재가 내려오다 선다. 다 들린다. 한 손엔 옷뭉치.
준형 이쪽에 유난히 동창, 선후배 커플이 많아요. 우리두 그 중 하나지 뭐.
편집장 너무 조심하시는 거 아니예요?
준형 허허허 뜨거울 땐 또 뜨겁지.(혜원의 귓불 슬쩍 만지는)
혜원 (미소 띤 채로 얼어붙고)
-계단의 선재, 앉는다.
-인터뷰 계속.
편집장 어쩐지...부부라기 보단 애인 같애요.
준형 뭘...
편집장 혹시 자녀 계획은 없으신지. 전에 누군가 일부러 안 가지신단 얘길 들어서요.
준형 글쎄 그랬는데, 요즘 이 사람이 자꾸 꼬시네?
혜원 (빨리 끝내려고)노력 중이예요.
-선재, 혜원의 거짓말(이라는 것, 한 치 의심이 없다), 불쌍해서 더 못 듣겠다. 종수가 나직히 부른다.
종수 이선재,
선재 (본다)
종수 내려오래.
선재 네....(선다)
음악실.
-선재가 종수를 따라 들어온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안 듣기로 했다.준형이 반색하며 다가 오고, 혜원은 소파에 앉아 있다.
-사진 팀과 편집장, 준형이 웃으며 이야기 하는 모습. 혜원과 선재의 창백한 얼굴.
-셔터 소리와 함께,
-피아노 앞의 선재, 곁에 서서 선재 어깨 감아두르고 카메라 향해 활짝 웃는 준형.
-소파. 준형과 혜원 사이에 앉아 애써 웃어보이는 선재. 혜원의 웃음, 처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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