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14
혜원집 음악실.밤.
-선재 혼자 소파에 앉아 있다.
-바깥쪽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지만, 누가 가고 누가 왔는지 모르겠다. 좀 전까지 양 옆에 준형과 혜원이 앉아 있었다는 것 말고는.
-문이 조금 열리고 종수가 들여다본다. 떠드는 소리 좀 더 크게 들린다.
종수 야...(대답 없자, 어라? 들어서서 문닫는다)이선재,
선재 네, (선다)
종수 너, 너무 오래 멍때린다?
선재 아아...(그랬나봐요)
종수 나가봐, 민우 환송회 2차 여기서 하구 있어.
선재 저기 형,
종수 뭐,
선재 제 옷 좀 갖다 주실래요?
종수 뭘 갈아 입어...
선재 (간곡)아니요, 형,
종수 (그럴만도 하지)알았어.
-종수, 나가고, 선재, 막막하다. 악몽 속편.
거실/주방.
-소파에 가득 둘러 앉은 준형 부부, 인서 부부와 정희, 한석이 왁자지껄 웃음. 고교 시절 어떤 선생님 얘기를 하는 듯. ‘이러구(귀 잡힌 시늉)끌려 갔잖아’ (한석) ‘교문에서부터’(혜원) ‘애들이 창문에서 다 내다 보구’(지수) ‘대박 웃겼지’(인서), ‘살려주세요! 그러면서’(정희), ‘한심한 놈’(준형)...
(앉은 위치는, 준형이 1인용 소파. 혜원은 그 곁 바닥에 앉아 준형의 소파에 살짝 기댄 자세. 3인용에 지수와 인서 정희, 나란히. 한석, 스툴에)
-탁자 위에 와인과 안주 접시. 정희 앞에만 주스(차 때문에).
-문이 열려 있는 혜원 서재에서 민우와 세진이 잡지를 보며 뭔가 얘기 중인 모습이 보이고, 주방에선 미순이 접시에 뭔가를 담고,
-종수가 계단 끝에 놓인 선재의 옷을 집어 음악실로 가는데,
-준형이 종수를 부르고, 다들 아랑곳없이 계속 떠든다(그런 것 같지만 정희와 지수가 각기 다른 뜻에서 혜원 눈치 살핀다)
준형 어, 종수야, 선재 깨워라.
종수 (멈칫)네?
혜원 뭘, 놔 둬.
준형 아냐. 나와서 인사 해야지.
종수 네,
음악실.
-선재가 등보이고 서서 급히 바지를 올려 단추를 채우고, 종수가 오디오 앞
에 엉거주춤 앉아 씨디들을 건성 살피며,
종수 너 잠깐 잠든 걸로 돼 있으니까 알아서 해.
선재 네.
종수 야, 너 근데 왤케 바짝 쫄았냐? 아까부터?
선재 쫀 게 아니라, (준형의 옷을 집어 소파 팔걸이에 걸쳐놓고 급히 나간다)
종수 (자식, 쯧쯧)
거실.
-드높던 얘깃소리 웃음 소리가 잦아들면서,
-선재가 좌중을 향해 꾸벅 절.
한석 오오, 너구나?
선재 (얼핏 보며 목례. 뉘신지는 모르지만)
혜원 (한석에게)맞어, 너만 첨 보는 거네?
준형 (혜원 어깨에 손을 얹은 채)잘 봐 둬. 뒤풀이 후원 없체 사장님이시다.
선재 (그 손 좀 내리시지)
한석 우리 가게 와서 이름 말해. 공짜로 주께.
정희 (손을 들어 보이는)안녕, 우린 구면이지?
인서 인터뷰 했다며,
한석 그런 거 재미없지?
선재 (일일이 응대 할 수 없어 시선 떨구고 서 있을 뿐인데)
준형 그것두 다 공부야. 일루와 앉어.
지수 (손을 들며)라면 먹을 사람!
인서 나,
혜원 (얼른 일어서며 서재 쪽 향해)너네두?
-혜원 서재 쪽, 고개 내민 세진과 민우, 종수.‘네’
혜원 (주방으로 가며)아주머니...
미순 (통조림 뜯다가 밀어놓고)네...
-주방. 들어서는 혜원, 등 뒤가 당긴다.
-선재가 준형 옆 스툴에 앉고 있다. 다들 뭐라뭐라 선재에게 한마디씩 하느라 시끌짝. 민우와 종수도 다가가 앉고,
-커다란 들통을 불에 얹는 미순, 라면 봉지 뜯는 혜원. 세진이 다가온다.
세진 제가 할게요.
혜원 아냐, 아냐, 종수 심심하잖어.
세진 (애 쓰시네요)
-거실. 사람들 속, 섬처럼 앉아 있는 선재.
혜원 집 외경. 밤.
-흥겨운 소음. 민우의 가벼운 연주 소리와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 흘러나온다.
혜원 집 거실/ 주방/음악실/ 밤.
-거실. 방방이 문 다 열려 있다. 음악실에서 민우, 연주 중.
-계단 옆 복도. 식당 쪽에서 나오는 준형들. 냅킨으로 입을 닦거나 물잔을 들고.
-식당. 세진, 빈 라면 그릇들 국물 비우고 포개서 쟁반위에 얹는다. 종수가 거든다. 위의 수저며 김치 그릇들 모아 주는. 선재, 엉거주춤 행주 두 개 들고 서 있다.
-주방, 미순이 과일을 씻고, 혜원, 와인 셀러를 연다.
세진 (작게)놔두구 가 봐. 교수님 또 부르기 전에.
선재 아니요,
혜원 (다 들려. 화이트 와인 두 병 들고 라벨 살피는 척)냅 둬.
세진 네.
선재 (혜원 힐끗)
-거실, 준형이 떠들고, 정희는 주방의 혜원 동정 살피는.
준형 글쎄, 오중주를 하는 건 좋은데, 레파토리가 선재랑 맞질 않아요. 브람스가 드보르작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뭔가 뽕끼가 있지 않냐?
한석 에이, 무슨,
인서 감상적이라는 거야?
준형 감상이 아니라 애상이지 마,아주 그냥 쥐어짜잖아.
지수 개인의 취향이지 뭐.
준형 내가 지금 취향을 말하는 게 아냐.
-혜원,나온다.
혜원 가벼운 걸로 마감해. (간다)
준형 앉지 또 어디 가.
혜원 (계단 쪽으로)이 딲으러.
준형 대충하구 내려와.
정희 (본다)
준형 그러니까 내 말은, 구성주의에 애상을 우겨 넣어가지구 뽕짝이 돼버렸단 거야.
인서 (마개 따고 오프너 박는다)
한석 그걸 그렇게 말하믄 안되지.
지수 한석이 너 신기하다. 난 다 까먹었어.
정희 (주방 쪽 힐끗)
-계단 올라가는 혜원.
-계단 굽이 유리벽 저쪽, 식탁 위 박박 닦다가 고개 드는 선재.
-혜원, 굽이 돌아 이층으로.
-선재, 다시 닦는다.
침실.
-혜원, 들어와 파우더 룸 향하다가 멈칫.
-침대 위, 리흐테르가 엎어져 있다.(3분의 1 지점)
-선재가 봤구나!
주방.
-선재, 종수, 세진과 함께 치워진 식탁에 앉아 있는데,
준형 선재야!
선재 (엉거주춤 일어선다)
세진 거 봐.
침실.
-혜원, 무릎에 책을 펼쳐 얹은 채 물끄럼...(P.197에 새로운 밑줄)
선재 소리 우리는 차를 타고 떠난다. 피아노를 실은 차가 뒤따른다. 전염병을 피하듯, 고속도로를 피해서 달린다. 어느 작은 도시 귀퉁이에서 연주를 한다. 극장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다. 정말 좋은 점은, 사람들이 속물 근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연주를 들으러 온다는 것이다...
-책장 넘기는 혜원. 눈이 멈춘다. 또 다른 밑줄.
선재 소리 나는 미친 놈이 아니다...정상이다...그런데 어쩌면 미친 놈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혜원, 눈 앞을 본다. 눈물 그렁.
-노크 소리.
혜원 (황황히 책을 접어 내려 놓는다)네.
-지수가 들여다 본다.
혜원 (웃음)왜, 나 또 찾어?
지수 (이것아...)이게 뭐야...감당두 못할 거면서...
혜원 그러게.(눈물 후두둑)
거실.
-준형이 선재의 어깨를 감싸안고 한 말씀 중.
-지수와 혜원이 내려온다. 준형이 옆에 앉으라 손짓하고, 혜원, 준형 곁에 앉는다.
-웃으며 잔을 드는 준형과 혜원.
-숨죽여 견디는 선재.
서회장 집 서재.
-인겸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 들여다 보고(비서의 이메일), 소파의 영우와 성숙, 차를 마시며 인겸의 눈치 살피는.
-이윽고,
인겸 우선 내일부터 기사 조금씩 나갈 거예요. 타이틀은, ‘서한 재단 연루설’, 내용은, 국내 예술 재단 운영 실태와 외국 사례 비교, 그런 게 될 겁니다.
성숙 (웃음)무슨 소리야?...
인겸 놀라실 거 없습니다. 분위기 조성이죠. 실명 거론 없이, 오혜원이가 자신을 겨냥 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되니까.
성숙 말 좀 이쁘게 해 줘. 내가 뭐 감추는 거라두 있는 거처럼 몰아가지 말구.
인겸 그럼 된 거죠.
영우 그래서, 뭘루 그 앨 찔리게 할 건데?
인겸 학력 및 경력 중에 문제 삼을 만 한 건, 대학원 시절 뉴욕 휘트니 미술관 인턴쉽 근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예요.
영우 그건 아닌데? 내가 알지. 같이 살았는데.
인겸 (본다.너 딱해)
성숙 기구 아니구가 뭐 중요하니? 사람들 뇌리에 일단 박히면 되는 거지?
영우 글쎄 그 정도로 걔가 겁을 먹겠냐고.
인겸 일단 띄워 보고 반응 보죠.
성숙 (무선 전화기 집어 내선 번호...)어, 그거, 김전무 갖다 드려...응...(끊으면)
영우 뭘?
성숙 문건이 하나 있지. 경고용으로 정리해 둔 거.
-장비서가 서류 봉투 들고 들어온다.
-인겸이 봉투 받고, 장비서 나간다.
성숙 오혜원 비리 목록이야.
인겸 (찬찬히 본다)
영우 혜원이두 알아요?
성숙 아니. 사람 통해서 이선재 여친이라는 애한테만 보여줬어. 니 애인 뺏어간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구.
영우 진짜 치사하다. 애들까지 써먹냐. (전화기 꺼내며)죄 받어요.
성숙 어차피 다 죄 덩어리야. 한 숟갈 더 먹는다구 어떻게 되겠어?
성숙 (인겸에게)
영우 (문자 본다...)난리 났네.
성숙 뭐니?
영우 (보여준다)얘들 연기가 아주 죽인다는데?
성숙 (본다)
정희 소리 오혜원 강준형, 둘이 지금 천상의 커플 연기 중.
혜원 거실/주방.
-음악실. 민우의 흥겨운 연주.
-혜원 서재에서 내다보는 정희.
-인서,한석과 지수가 얘기 중(드보르작 오중주, 난 보로딘하구 리흐테르 께젤 좋던데. 어, 특히 1악장. 피아노 파트는 3악장이 죽이지. 피날레도. 등등)이고,
-취한 준형, 과일 한쪽 찍어 혜원에게 내민다. 혜원, 손으로 받으려 하자, 준형, 굳이 입에 넣어주려,
-선재, 일어나 간다. 비켜 드리지.
-혜원, 입으로 받아 먹으며, 무참한.
서회장 서재.
성숙 그거 보여 줄려구 집으루들 불렀겠지. 너두 가지 그랬니?
영우 (핸드폰 집어 넣으며)재미없어요.
인겸 이걸 토대로 구체화 해보죠.
성숙 정기 감사 결과랑 대조해 봐. 참고가 될 거야.
인겸 (봉투에 넣으며)그러죠...두 여성 동지께서는 당분간 팀웍 지켜 주세요.
성숙 그래야지.(영우에게 손 내민다)
영우 (쳇, 마주 잡는)
성숙 화목하다, 그치?
혜원 거실/주방.
-주방, 식탁의 세진과 종수. 주스 한잔씩 들고 거실 쪽 보며 나직나직. 미순도 조리대 위 정돈하며 힐끗.
세진 불안해서 못보겠다...그거 땜에 저러는 거니?
종수 아니면 뭐겠냐. 학장한테 조종당하는 거야. 불쌍하지.
세진 오실장님이 더 안됐지 않어?
-거실. 민우의 연주.
준형 (인서 잔에 술 따른다. 흘려가며)너는 애들한테 저런 것좀 하지 말라 그래.
인서 (준형 손 받쳐 주며 웃음)왜...
준형 뭐냐? 정통 째즈두 아니구,
인서 (선다)알았어, (음악실 쪽 향하며)민우야!
음악실.
-민우, 연주 멈추고, 소파의 선재가 일어선다. 인서가 문간에서,
인서 너두 여깄었어?
선재 네.
인서 곧 갈 거야. 좀만 참어.
선재 (진심 고맙다)
민우 왜요, 교수님?
인서 강교수님이 정통 클래식 치랜다.
민우 (웃음)좋죠. (작은 별 변주곡 시작하며)정통 클래식.
-민우, 계속 연주하고,
-인서, 선재 한번 보고 간다. 선재, 앉는다.
거실.
-작은별 변주곡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인서가 온다.
인서 됐수?
준형 선재 거깄냐?
한석 제자 되게 밝히네.
인서 지들끼리 놀게 둬.
준형 그 넘은 내 얘기 좀 들어야 돼. (일어셔려다 풀썩)
지수 선배 취했다.
혜원 (뼈아프다. 내꾀에 내가 넘어간 거지)
-준형과 인서들, 민우 연주에 대해 얘기하고(인서, 너무 이쁘게 친다는 게 흠이라면 흠. 지수, 인제 달라지겠지. 혼자 객지 생활 하다보믄. 준형, 그게 달라지냐? 등등)
-혜원, 선재가 무섭게 혼난 뒤 저 곡을 쳤었지...
회상.
-작은별 변주곡 연주하며 혜원 기색 살피는 선재.
-선재 등 뒤에 앉아 혼자 웃는 혜원.
음악실.
-민우, 연주하고,
-선재 역시 그 날 밤 생각.
-어느 새, 지수, 인서, 한석, 세진, 종수, 들어와 듣고 있다.
음악실.
-민우 연주 마치면 다들 박수.
-민우, 일어서서 인사하고, 선재에게 피아노 앞에 앉으라 손짓. 너도 해.
-선재, 선다. 인서, 본다. 니가 할 말이 있지?
거실.
-준형과 혜원만 남아 있다.
준형 이선재, 너두 보여 줘!!
혜원 (외면. 처참하다)
음악실.
준형 소리 보여 주라고!!!
-피아노 앞의 선재, 건반에 손 얹는다. 불쌍한 그녀를 위해.
거실.
-준형, 옆으로 고스라지고, 혜원, 물끄러미 보는데,
-선재의 연주 들려온다.
음악실.
-선재의 연주. 거칠고 강렬한 변주.
-세심하게 지켜보는 인서.
거실.
-미순이 곯아떨어진 준형의 머리 들고 쿠션을 받쳐주며 혜원 힐끗.
-혜원, 물끄러미 턱을 괴고 선재의 연주 들으며 간신히 삼킨다.
음악실.
-선재의 연주.
거실.
-혜원, 목이 멘다.
음악실.
-마치며 일어서는 선재. 오혜원, 들었나요?
혜원 집 앞. 밤.
-세진과 민우, 선재가 먼저 나오고, 그 뒤, 혜원, 한석, 지수, 인서, 정희가 나와서 계단 내려가며,
한석 야, 뭐 또 이렇게 쫓아내냐...
혜원 너는 말을 해두,
지수 준형 선배 취했잖아...
인서 우리집으루 가.
정희 애들 다 깨워서 가족 음악회 하게?
혜원 거실.
-거실. 소파의 준형이 일어서려다 풀썩 주저 앉는다. 어후.
준형 다 어디 갔어...
미순 방금들 나갔어요.
준형 (다시 일어서려다 또 풀썩)
미순 올라가 주무세요. 인사 다 나누셨는데.
준형 그랬나?
집 앞.
-위에서부터 종수 차, 정희 차, 인서 차, 순으로 서 있다. 종수 차는 언덕 위쪽 향해서.
-세진과 종수, 한석이 종수 차에 타고, 정희도 자기 차에.
-각각 한마디씩 하느라 시끌시끌. 먼저 갈게요(세진), 지민우, 잘해라(종수), 자주 좀 보자(한석), 먼저 간다(정희), 그리고 혜원과 인서 부부, 민우의 대답.
-종수 차, 정희 차 떠나고,
-인서 부부와 민우, 선재, 혜원만 남았다. 선재는 두어 걸음 떨어져 선.
지수 아우 정신 없어. (선재에게)너 오늘 완전히 벌 섰다.
인서 어른들 노는 것두 별 거 없지?
선재 (어색)아니요,
혜원 (잠깐 눈길)
민우 만나서 좋았어. 갔다 와서 보자.
선재 어.
민우 (혜원에게)공항에서 전화 할게요.
혜원 뭘...가서 잘 해야지.
민우 네.
인서 선재 우리 차 타.
선재 아니요, 저는 걸어가면 돼요.
지수 그래두 같이 가.
혜원 (선재에게)그럴래? (하는데)
-준형이 위태롭게 계단 내려온다.
준형 이선재...
-다들 돌아 본다. 선재도.
준형 당신, 차 좀 빼지? 이 놈 델다 주게(비틀)
지수 어머, 어떡해, (넘어지겠어)
-선재가 얼른 다가가 부축한다. 싫지만.
민우 진짜 많이 취하셨나봐요.
혜원 (이마를 잠깐 짚고는 지수 어깨 돌려세우는)가라.
인서 괜찮겠어?
혜원 (인서 등까지 민다)얼른 가시라고...
지수 알았어.
-인서들, 걱정스레 차를 향하고, 혜원, 준형의 한 팔 잡는다.
혜원 들어가요.
준형 (선재에게 기댄 채 혜원 손 뿌리친다)아니지.
혜원 (그 서슬에 움찔 물러서고)
준형 우리 둘이 사이좋게, 이 놈 태워다 주자구. 그래야 완벽하지.
선재 (한 손으로 준형의 팔 올려 어깨에 건다)저 괜찮으니까요, 들어가시죠.
준형 차 꺼내라고!...
혜원 (딱해)알았어. (선재를 한번 보고 집안으로)
선재 (혜원 뒷모습 한번 보고는 준형에게)괜찮으세요?!
준형 괜찮냐고?
선재 (네)
준형 허허허, 니가 나한테, 괜찮냐고?...
선재 (할 말이 없잖아!)
차고.
-혜원, 급히 나와 리모콘 버튼 두 개 누르고 차에 탄다.
-차고 문 올라가고, 시동 걸리는 소리. 헤드라이트 켜진다.
-차고 문이 웬만큼 올라가자 선재가 준형을 걸머메고 들어온다. 운전석의 혜원, 조수석 연다.
-준형, 선재를 뿌리친다.
준형 너, 뒤에 타.
-혜원, 선재, 불안하게 지켜본다.
-차에 타려다가 풀썩 주저 앉는 준형.
준형 아후, 이거,
혜원 안되겠다.
선재 모시구 들어갈게요.
혜원 (외면)어.
-혜원, 악몽을 견디려 가만히 앉아 있다. 선재가 준형을 끌고 쪽문 들어서는 것이 백미러에 잡히자, 고개 돌린다. 악몽이 너무 길다.
현관.
-선재, 미순에게 축 쳐진 준형을 건넨다.
차고.
-차갑게 굳은 혜원, 시동 버튼 끄고, 내린다.
-쪽문 열고 들어가는 혜원.
차고 계단.
-혜원, 들어서다 멈칫. 선재가 층계참에 서서 서서 보고 있다. 눈이 말한다.슬픕니다. 아픕니다. 벽에 고개 기대며 내색치 않으려는.
혜원 ...부끄럽다...
선재 (알아요)
혜원 (올라서서 마주 본다. 글썽. 선재 얼굴 싸쥔다)너한테 못할 짓 시켰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오만했다. 이러믄 안되는 건데.
선재 (미동 없이 혜원을 볼 뿐)
혜원 (목을 끌어 안는다)뭐라구 말 좀 해.
선재 (할 말이 없어요)
혜원 제발, 선재야, (입을 맞추려)
선재 (혜원을 밀어 떼낸다. 끌어 안는다)제발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지 마세요. 불쌍한 여자랑은 키스 못해요.
혜원 (울먹)그렇게 말하지 마.
선재 (떼낸다)주무세요...
혜원 (이대로 갈 거니?)
선재 (그래야죠...)
혜원 서재.
-혜원, 무너진다.
거리.
-선재, 걷다가 결국 담벼락에 기댄다. 북받쳐 소리 없이 흐느낀다. 이게 뭐야. 미안하다며 매달리는데, 그럴 건 뭐야...
-하지만 설움이 터진다. 오래 운다.
음대 연습실. 아침.
-선재 혼자 퀸텟 피아노 파트를 치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악보를 넘겨가면서.
-한참.
-종수가 들여다 본다. 한참 보다가 다가간다.
-선재, 멈추고 엉거주춤 섰다가 앉는다.
종수 마, 그거 하지 말래잖아.
선재 못들었는데요?
종수 그럼 지금 다시 전한다. 하지 말래.
선재 (잠시 생각)형이 알아서 적당히 말해주면 안돼요?
종수 마,내가 뭘 알아서 말해.
선재 그냥,
-시은과 태진, 푸름, 규현이 조심스레 들어 온다. 혹시나 했는데, 미리 와 있다니. 마주 보며 반갑고 고맙지?
종수 야, 니들, 연습실 신청두 안해놓구.
선재 그거 내가 형 책상 위에 써놓구 왔어요.
종수 뭐?
선재 그랬다구요.
-시은들, 조용히 악기 꺼낸다.
종수 알았어, 마. (나간다)
선재 (일어서서 꾸벅)
-시은들, 악보 펴놓고 각자 앉으면,
-선재, ‘라’음 연타. 시작하자고.
-각자 튜닝.
규현 (소리 내다가 쩝)내가 들어두 후지다.
태진 (현 감으며)그 정도믄 좋은 거지. 가격 대비.
시은 김은수 교수님은 예고 때 전교에서 젤 싸구려 쓰셨대. 그걸로 유학 오디션두 하구, 다 했다더라.
푸름 그 분만 계셨어두 우리가 이렇게 찬밥 신세 안됐을 거래.
선재 (듣기만 하다가)시작해두 돼?
시은 어.
-다들 연주 자세, 선재를 본다.
-선재, 눈 맞추고, 연주 시작.
-첼로가 들어오고...
-바이얼린 비올라.
-어제보다 합이 좋다. 흥이 오른다.
아트 센터. 아침.
-전화벨 소리,
-직원들 답변, 정신없다.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습니다’ ‘이사장님은 관련이 없습니다’ 등등.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
-책상. 혜원, 모니터 본다. 곁에 세진. 괜히 미안하다.
세진 외부 전화 차단 부탁했어요. 이것두 안보시믄 좋겠네요.
혜원 뭘.(마우스 스크롤)
-화면속 기사 제목들. ‘서한그룹 비자금, 예술재단과 관련 있나’ ‘예술 재단은 회장님 비밀 금고?’ ‘한성숙 이사장, 오른팔은 아트센터 부대표’ ‘예술재단 막후 실세 오모씨는 누구인가’ 등등.
혜원 (픽 웃으며 그 중 하나 클릭)
-노크 소리.
세진 어머, (급히 문 쪽으로)현팀장님인가봐요.
-편집장이 들어오고 , 세진이 맞이 한다.
세진 어서 오세요...
편집장 안녕하세요.
혜원 (모니터 밖으로 고개 뺀다)어서 오세요...
편집장 나 너무 놀래가지구...
혜원 (일어서며 웃음)왜? 내가 너무 떠버려서?
편집장 많이 놀라셨죠...
혜원 (소파로)놀라긴요.
세진 앉으세요.
편집장 네, (앉는다)
혜원 (앉는다)세진씨, 우리 그 티 마시까? 토핑은 알아서.
세진 네,
까페.
-세진이 차를 주문한다. 토핑 뭐뭐뭐...
-직원이 차를 준비하고,
-세진, 앉아서 기다리다가 전화 받는다.
세진 네, 왕선배님...네?...
이사장실 앞.
왕 (책상 위 정리 하며)나 오늘 이리 바루 나왔거든?...들어오면서 너 봤어. 간 김에 내껏두 하나 부탁하자.
까페.
세진 (벙)네...그럴게요...네...네...(끊으며)OOO 하나 추가할게요.
직원 네.
이사장실 앞.
-왕비서, 통화 중이고, 세진이 급히 와서 차를 하나 놓아주고 간다.
왕 사실과 전혀 다른 건 또 아니죠. 그런 전화는 오혜원 부대표 방으로 돌리던가.
세진 (가면서 중얼)대단하다.
혜원 사무실.
-혜원과 편집장, 차 마시며 얘기하고, 세진, 종수의 문자에 답. ‘기사 봤어?’ ‘여기 완전 전화 폭주’
편집장 기사 내용이 다 저질이예요. 강경하게 대응하세요.
혜원 대응은 안할 거구요, 혹시 문제 된다면, 우리 기사 안 내두 돼요. 강교수는 좀 서운하겠지만.
편집장 실은 그래서요...저희보다두, 두 분께 죄송해서요...누가 될 수두 있구...
혜원 신경 쓰지 마세요...
편집장 그럼, 일단 보류 할게요. 상황 봐서 다음 달에 내던가.
혜원 그러세요. (웃어주는)
서회장 침실. 같은 시각.
-서회장이 환자복 갈아 입는다. 장비서가 거든다.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가는 날.
-성숙, 영우, 인겸이 서서.
서회장 이런 거 입구 사진 찍히는 거 싫은데. 아둔해 보이잖아.
성숙 그러게 말예요. (인겸에게)꼭 이래야 해?
영우 혜원이랑 후딱 담판 지어서 아빠 대신 들여 보낸다더니?!
서회장 어린 놈이랑 바람이 났다구 했던가.
성숙 그렇대요.
영우 스무살.
인겸 그 카드를 섣불리 쓸 수 없는 이유를 말씀 드리죠. 서씨 집안 일원, 모두가 거기 돌 던질 수 없고, 그걸 오혜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서회장 험,
성숙, 영우 (새침)
인겸 가시죠.
서회장 그러지.
-다들 나간다. 서회장, 장비서(서회장의 외투와 담요를 든), 인겸이 앞서고, 성숙과 영우가 뒤따르며 서로 나직히 할퀸다.
성숙 이번 기회에 너두 어린애들 정리 좀 해. 낯 뜨거워.
영우 다 늙은 구렁이, 칙칙하지두 않아요?
아트센터 이사장실 앞.
-성숙이 오고, 왕비서가 문을 연다.
성숙 백선생 왔니?
왕 네.
성숙 차는 됐구, 내 전화 연결 하지 마.
왕 네. 그런데 기사 관련, 문의 대응 매뉴얼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성숙 (짜증)알아서 해야지! (들어간다)
왕 (아오, 실수했네...)
-앉아서 마작 책을 펼친다. 컴퓨터 화면, 마작 인강 번갈아 보는.
이사장실.
-성숙과 백선생, 마주 앉아.
백선생 오혜원이 넘겨준 자료들 살펴 봤는데, 차명 계좌들, 확인 할 길이 없어요. 우리가 모르는 계좌가 많은 걸 보면, 분명 분산 처리 했을 거예요.
성숙 그럴 거 같더라니.
백선생 아직은 덮어 둬야 하는데.
성숙 그렇죠? (전화, 단축 번호 누른다)어, 나...강교수 옆구리 좀 찔러 봐...응...응...(끊는다)
백선생 (활짝 웃음)그렇지요...
성숙 (끄덕)
학장실.
-민학장, 준형.
민 이건 오혜원 답지 않아. 버틸수록 손해야...
준형 (곤혹)그럼 제가 어떡하면 좋을까요.
민 도와 줘야지...지금 오혜원을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 뿐인데...형법 제241조. 그건 배우자한테만 제소 권한이 있잖아.
준형 저, 그것만은 안하구 싶습니다...
민 글쎄 그러라는 게 아니라, 좋게 얘길 하라고...설마하니 자네 와이프가 그걸 모르겠어? 적시에 들어가 줘야 순교자 대접을 받는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텐데.
준형 (그렇죠)
아트센터. 오후.
-혜원, 기획실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 마친 참이다. 세진과 직원들 두엇 나가고 혜원 문까지 배웅하며 격려.
혜원 각자 자기 자리만 지키면 돼요. 다음 달엔 마스터 클래스두 있구,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직원들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혜원 기운들 내구, 응?
세진 (서류철 들어보이며)총무과에 전하구 올게요.
혜원 어.
-혜원, 직원들 등 두드려 내보내고 돌아서서 는데,
-문자 도착 신호.
-혜원, 확인. 준형의 문자.
준형 소리 당신 오늘 많이 힘들지?...
혜원 (미간 좁히며 눈 감는다. 징그럽고 축축한 게 몸에 닿는 것 같다)
-혜원,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기로 한다. 만나는 게 득이다.
준형 소리 위로해 주구 싶은데, 저녁 같이 할래?...예약은 내가 할게.
-사이. 혜원, 답전. ‘좋아. 고마워’ 찍어 보내고는, 단축 번호 목록 누른다. 뷰티샵.
혜원 네, 안녕하세요.....(웃음)그래서 오늘 갈려구요...얼굴두 보여 드릴 겸.
-노크 소리.
혜원 잠깐만요, (전화기 떼고)네...
-지수가 들여다 본다. 혜원, 잠깐 멈칫.
지수 혼자 있어?
혜원 (어색)어,
-종이가방을 든 지수가 들어오고, 혜원, 다시 통화.
-지수, 종이가방을 소파 앞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혜원 아, 죄송해요, 손님이 오셔서...네시 쯤에, 마사지부터요...네..네에.(끊고 소파로)웬일야?
지수 냉장고에 넣어 놓구 한병씩 꺼내 마셔.
혜원 앉어.
지수 아냐, 가야지. 차 앞에다 그냥 세워 놨어.
혜원 (짐짓 웃음)말 해.
지수 (정색)걱정돼. 기사두 장난 아니구. 아침부터 내 전화 완전 불났잖어.
혜원 그랬겠지.
지수 너, 강준형이랑 계속 연극 해라. 선재 그애두 살살 달래서 맘 돌려놓구, 응? 세상에서 젤 끔찍한 게 마녀사냥이야. 오천만이 다 재판관,
혜원 (자른다)마사지 갈래? 예약 했는데.
지수 됐구, 암튼 다시 생각해 봐.
혜원 (지수 돌려 세워 민다)그럼 가. 나중에 전화 하께.
-혜원, 지수 어깨 안고 문으로.
지수 나 니 편인 거 알지?
혜원 알지...
지수 내 말 들어, 응?
혜원 (웃으며 글썽)어..
학교 연습실.오후.
-선재, 구석에서 핸드폰 들여다본다.
뷰티샵 마사지실.
-마사지 끝내고 가운 입는 혜원. 맛사지사가 거든다.
혜원 샴푸실 박다미 좀 불러 주실래요?
마사지사 아, 네. (간다)
-혜원, 탁자 위 주스 마신다.
-의자에 앉아 있는 혜원. 반쯤 마신 잔을 들고.
-다미가 들어온다. (마음이 복잡해서 골이 난 것처럼 보인다)
혜원 (담담히)안녕...
다미 (깎듯이 인사)안녕하십니까...
혜원 왜 그래...다미씨랑 화해 할려구 불렀는데.
다미 (눈 맞추지 못한다. 혜원이 너무 담담해서)그동안 별별 소리 다 들었습니다.
혜원 그랬을 거야...
다미 잡혀 가실 거라는 말두 있던데요.
혜원 (웃고는)근데, 그거 뭐였어? 토나와서 안 깠다는 거?
다미 (입술 말아문다)
혜원 말하기 싫음 관두구.
다미 사진이나 뭐 그런, 허접한 거 아니예요.
혜원 (그래?)
회상. 동 샴푸실.
-다미, 의아한 표정으로 직원한테서 서류 봉투 건네 받는다.
마사지실. 현재.
다미 거기 높은 분이 누구 시켜서 보낸 거래요. 제가 봐야 한다구.
혜원 (이사장 짓이구나...)
다미 저 그거 보구 완전 빡쳐서, 찾아갔던 거예요.
혜원 잘 했어.
다미 저, 선재한테, 그랬어요. 그 아줌마가 다 버리구 너한테 가믄 믿어주겠다구요.
혜원 (웃음)멋있네...
다미 진심이예요...
혜원 (보다가)그거 선재한테 보여 줘. 꼭.
다미 네?!
혜원 (선다)샴푸는 안해두 돼. 바로 머리 손질 할 거야.
다미 (벙하니 본다)
혜원 또 보자?
-혜원, 나가고, 다미, 혼란. 이게 뭐지?
동 미용실.
-원장, 혜원의 머리 만져주며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혜원 (웃음)정말 대단하시네. 어떻게 한 마디도 안물어 보세요?
원장 저는 들은 얘기 없답니다. 나 귀 없다, 하구 살죠. 그러지 않음 이 일 못해요...
혜원 하긴...성공하신 분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
원장 저녁 모임 있으신 거죠?
혜원 모임은 아니구, 밥 먹기루 했어요. 강교수랑.
원장 그럼 여기 쪼끔 살려볼게요.
혜원 네...
레스토랑. 저녁.
-준형이 기다린다. 식전주로 나올 샴페인이 미리 준비돼 있다. 그런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잔머리 굴린다. 오혜원을 어떻게 구워 삶을까. 따지자면 오혜원의 남편으로 살면서 얻은 게 훨씬 더 많다. 뿐인가. 나에 대해 그녀만큼 아는 사람 또 누가 있나. 치질, 무좀부터, 그보다 더 지저분한 내 뱃속까지, 그녀는 다 안다. 그거 믿고 그냥 울어볼까? 빌어볼까?
-웨이터가 혜원을 모시고 온다. 세심하게 치장한 모습. 우아하다. 준형의 저녁식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형의 말과 태도에서 민학장과 성숙의 속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므로.
-준형, 환하게 웃으며 일어선다. 혜원도 다가오며 웃어준다.
준형 차 많이 밀리지?
혜원 여유있게 왔어.
준형 잘 했네.
-둘, 앉는다.
혜원 이거 뭐야?
준형 돔 페리뇽.
혜원 좋지.
준형 (웨이터에게)조용히 따 줘.
-샴페인 두 잔 채워진다.
-준형과 혜원, 잔을 마주 든다.
학교 연습실. 밤.
-연습 중. 피아노와 태진, 규현이 맞춰 본다. 2악장 한 대목.
-구석에서 김밥과 음료수 먹는 시은과 푸름.
-다시 오중주.
레스토랑. 밤.
-식사 끝무렵이고, 반주는 와인.
-먹는 동안 준형이 주로 떠들었다. 속셈 감추고 끝없이 빙빙 돌려 말했다. 인제 준형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 게다가 약간 취하기도 했는데, 계속 떠든다.혜원, 아직은 참을만 하다는 듯 들어준다.
준형 난 그거 좀 반대야. 음악가는 음악만 해야 되나? 그게 순수한 거야? 이 나라 예술 정책 입안자들, 몰라두 너무 몰라. 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그런 무지한 행정가들 손에 끌려다녀야 하냐고...폴란드의 파데레프스키, 그 사람 봐.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총리까지 했잖아. 인제 한국 음악계에도 그런 사람 나올 때가 됐어.
혜원 (작게 웃음)원대하다.
준형 남들 눈에는 내가 정말 이상한 놈으로 보일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다 아내와 제자 사이를 의심하는데, 나만 희희낙락이잖아? 그런데, 그것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슈만이 말야, 브람스를 얼마나 아꼈나. 질투, 그런 거 전혀 없었지. 아니, 그럴 틈이 없었어요. 심각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 자기 세계를, 자기가 아는 모든 걸, 어떻게든 이 젊은 친구한테 다 가르쳐 줘야겠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구 안타까운데.
혜원 내가 졸지에 클라라가 됐네?
준형 혜원아...
혜원 (마신다. 본론이 나오겠군)
준형 인제 그만 내려놔...
혜원 민학장이 그러래?
준형 만에 하나, 실형 살게 된다 해도 나 기다릴 수 있어. 선재 잘 돌봐 줄 거구, 그 놈이 원하면 유학도 보내줄수 있어. 근데 그게 다, 내가 힘이 있어야 가능해요. 안할 말로 내가 당신, 그걸로(간통죄) 고소하면 선재는 어떻게 되겠어. 그 이쁜 놈이 순식간에 상간, (목이 멘다)그런 더러운 굴레를 쓰게 된다고...
혜원 (잔 받침 만지작)
준형 (제발, 응?)
혜원 당신두 나두 미쳤다...아직은 그래두 명색이 부분데,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두 않게 주고 받겠니...
준형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지...
혜원 이왕 미친 거, 쪼끔만 더 기다려 봐. 원하는 걸 얻을래믄 참을 줄도 알아야지.
준형 야, 너 지금,
혜원 (손을 들어 웨이터 부른다)여기요...계산서 좀.
준형 (잔 들어 벌컥벌컥)
헤원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네)
교정. (혹은 복도)
-앞에 규현과 푸름, 태진이 연습 관련, 트레몰로 땜에 손목이 아퍼. 악력기 너무 많이 해서 그래. 그거 뻘짓이야, 등, 얘기 하며 가고,
-뒤쳐저 시은과 선재.
시은 아침에 너 보니까 진짜 반갑더라. 고맙구.
선재 어어, 그냥...좀 일찍 일어나서...(개인적인 대화는 아직 어색. 아직 대학 생활이라고 할 수도 없고)
시은 당연히 예심 통과 할 거라구 하던데?
선재 (선다)저기,
시은 ?
선재 조교 형이 그러는데, 너 학교 관둘 거라며.
시은 (씁쓸)이유두 들었어?
선재 어...
-앞에 가던 친구들이 돌아본다.
시은 (친구들 향해)가구 있어.
푸름 응.
-친구들 다시 가고, 시은, 선재를 본다.
시은 이길 수 없을 때는 피하는 게 낫지 않니?
선재 그건 잘 모르겠구, 암튼, 관두기 전에 이거 한번 잘 해볼래?
시은 우리 다 그러구 싶지...너만 계속 같이 해준다면.
선재 할 거야.
시은 그럴 수 있어?
선재 (여러 가지 생각 스치는 중에 끄덕인다)어...
시은 교수가 대회 준비 하라구 안해? 넌 재단 장학생이잖아. 예심두 신청 했다며.
선재 상관 없어. 난 그냥 이거 하면 돼.
시은 (어떻게?)
선재 (조금 웃음)한다고...
교문 앞.
-선재와 시은들 헤어진다. 안녕, 내일 봐. 가라, 등등.
-시은, 친구들과 가면서 갸웃. 쟤는 재단 장학생인데 왜?
-선재, 가면서 전화기 꺼낸다.
-아무것도 없다.
-다시 터덜터덜.
준형 서재.
-준형, 초조하게 서성인다.
혜원 서재.
-혜원, 늘어져 누워 있다. 손에 핸드폰.
-문이 벌컥 열리고 준형. 혜원, 일어나 앉는다.
준형 그냥 출두 해, 썅! 집행 유예 받아 준다잖아! 넌 나를 위해서 백번 희생해도 모자라! 당장 들어가라고!
-준형, 간다.
혜원 침실.
-준형, 알약 입에 넣고 물 마시고 나가려다, 에잇, 혜원의 화장품 쓸어버린다.
서회장 집 서재. 밤.
-인겸, 성숙.
인겸 (혜원 관련 자료들 가방에 넣는다)조사가 길어지면 불리해요. 이사장님 서한 어패럴 주식 매입 자금 출처도 드러날 겁니다. 전력이 화려하시다보니 단연 눈길이 갈 수 밖에요.
성숙 그래, 뭐, 인정해. 근데 나 전혀 부끄럽지 않아. 수많은 현업 종사자들이 날 닮고 싶어 하지만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인겸 (가방 잠그며)존경합니다.
성숙 땡큐.
인겸 그런데 인제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든 현장 나오게 유도 해주세요. 법 적용 이전에, 가장 뼈아프게 수치심을 줘야죠.
성숙 곧 둘이 따로 만나지 않을까? 수행자가 고기맛 야동맛을 봤는데, 못참지...얼마나 보구 싶겠어?..
인겸 (힐끗 보고 전화기 단축 버튼 누른다)어...기획팀 점검해 둬. 항시 대기.
식당. 밤.
-다미, 장호, 선재. 찐달걀 까면서 말이 없다가.
장호 너 진짜 안보구 싶어?
선재 어.
장호 꼭 보여 주랬다는데?
선재 어.
다미 (눈치)나 좀 쫄리더라. 그 얘길 너무 아무렇지두 않게 하잖아.
선재 (달걀 우물우물)그게 왜 쫄리는데.
다미 니가 그거 보구 실망해서 도망가길 바라나, 뭐 그런 생각두 들구.
선재 (삼키고 물마신다)거기 뭐라구 써 있는진 모르지만, 꼭 봐야 아냐?
장호 아냐. 내가 봐두 이런 진짜 나쁜 엑스,가 막 나오더라. 별 거 다 있어. 청소용역비 떼먹은 거부터, 부정입학 알선, 공금 횡령,
다미 (고만 하라고 눈짓)
장호 너 학교 짤리는 거 아니냐? 장학금두 토해내구?
선재 하게 되믄 하는 거지. (냅킨 뽑으며 일어선다)간다.
다미,장호 야아...
선재 (나가면서 주방의 옥진에게) 저 가요.
옥진 어...(보다가, 다미와 장호에게)그런 짓 하게 생기지 않았던데.
다미 (선재가 걱정돼서 뚱)생긴 건 완전 귀티 나죠.
주방.
-혜원, 양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독하다. 잔을 싱크대에 넣으려다 또 한잔 따라 마신다....후우...
-선재 문자.
선재 소리 집 앞에 있어요. 따뜻하게 입고 나오세요.
-혜원, 쿵 내려앉는다. 막상 선재가 다미한테서 뭔가를 받아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답을 하려는데 손이 떨려서 멈춘다. 어떡해야 하나.
혜원 집 앞. 밤.
-선재, 오토바이 세워 놓고 기다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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