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16
밀회 16.
호프집. 밤.
-시끌시끌, 가득한 사람들.
-구석에 선재와 시은들. 생맥주에 팝콘 먹으며 이야기. 선재, 핸드폰 확인한다. 혜원의 연락 없다. 맥주 찔끔 마시는 선재, 시은들 이야기 듣는다.
태진 결론은, 악기 탓 하지 말라는 거잖아.
시은 그렇게 간단한 얘기는 또 아닌 거 같애.
규현 (연주 시늉)여기다 마음을 얹으라는 거 아냐.
푸름 너는 얹어져?
규현 (웃음)아니.
태진 더 주눅 들더라.
시은 (선재에게)리흐테르는 피아노 기종 전혀 안가렸다며.
선재 어...
태진 그럴 수 있나? 너도 그래?
푸름 니 피아노 뭐야?
선재 (멋쩍)한일...내장은 다 바꿨지만.
규현 그런 브랜드두 있나?
선재 (웃어주고, 시은에게)너 아까 4악장 시작할 때, 쫌 다르게 들리더라?
시은 (미소)어, 뭔가 되는 거 같았어. (손가락 브이자 흔들어보이는)
태진 아, 진짜, 나두 확 한번 시원하게 긋구 싶다.
규현 나두.
선재 여기서 한번 해 봐.
태진 여기서?
규현 지금?
푸름 오오, 재밌겠다.
선재 (잔과 팝콘 그릇 한켠으로 치우며)한번 해봐. 사람들 다 뻑 가서 입 다물게.
태진, 규현 (마주 본다. 해 봐?)
시은 (탁자 위 같이 치운다)그냥 저질러. 혹시 아니? 누가 듣구 반할지?
푸름 (탁자 두드리며 멜로디 소리 낸다. 4악장 시작부분)빰빰빰빰빠, 빰빰빰빰빠,
-선재, 일어나 카운터로.
-치워진 탁자 위에 악기 케이스 올려 놓는 둘.
-카운터, 선재가 주인에게 뭔가 부탁하는 모습. 저 친구들이 연주할 건데,음악 잠시 죽여달라는.
-잠시 후, 악기 들고 서서 마주 보는 규현과 태진.
-선재, 시은, 푸름, 손끝으로 탁자 가볍게 치며 박자 두 마디.
-둘의 바이얼린 연주와 함께, 입으로 내는 첼로, 피아노, 비올라 소리.
-실내 소음 잦아들며 사람들 모두 쳐다본다...
-시은, 푸름, 선재, 박자와 멜로디 계속 내주며 웃는다. 그런 중에 선재, 혜원 생각에 얼핏 외면. 목이 좀 멘다.
혜원 소리 다 까불지 말라 그래. 음악이 갑이야.
아트센터 복도.
-혜원, 통화 하며 온다.
혜원 좋죠...그러잖아두 손이 근질근질 했는데...네에. 알겠습니다. (끊고 모퉁이 돌려다가 왕비서에게 다가간다)
-왕비서, 일어선다.
혜원 마작 공부 열심히 하더니, 좀 늘었어요?
왕 너두 참 뒤끝 작렬이다. 인간 누구나 잠깐은 미칠 수 있지! 그거 하나 좀 못봐주니?
혜원 그러게. (간다)
왕 (눈 흘긴다)
영우 오피스텔.
영우 (와인 잔 뱅글뱅글)게임 셋. 혜원이가, 경찰서에서 한판 뒤집기를 한 거다.
준형 그럼 너는.
-영우와 준형이 식탁에 마주 앉아 있고,
-식당 종업원이 왜건에 실려 있는 요리들 식탁에 차린다. 왕정희가 서서 종업원을 거들며 준형을 힐끗.
영우 얌전히 살아야지. 남편 눈치나 보면서.
준형 그런 거야? 니가 ‘얌전히’가 돼?
영우 어쩌겠어. 까불다간 국물두 없게 생겼는데.
준형 글쎄 니가 왜.
영우 왕정희, 설명 좀 해 줘.
-정희, 식탁 한 켠에 앉아 와인 잔을 든다. 종업원, 빈 왜건 밀고 나간다.
-셋, 먹고 마셔가며 이야기.
정희 얘 신랑이 다 먹을락 말락 하구 있대. 영감님이 얘네 회사 앞세워서 감춰 둔 게 젤 크다는데.
준형 (놀라)그것두 혜원이가 관리했었냐?
영우 아, 진짜...(못 알아듣네)
정희 영우 회사 만들면서 들어온 해외투자금, 그거 불려서 다시 내보내 쟁여 둔 거, 그 장부 다 혜원이가 갖구 있잖아.
준형 (벙)
영우 오혜원이 그런 애야.
정희 이왕 참은 거, 확실하게 참지, 뭐하러 경찰서까지 끌구 가냐고...그거야 말로 김인겸이 젤 바라던 일인데...더 무서운 건 오혜원이지만.
영우 거기서 반전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니. 나 걔 그냥 이선재랑 손 잡구 감방 들어갈 줄 알았다. 사랑을 위해서.
준형 그 얘긴 넣어 두지?
정희 뭘 넣어 둬. 만인이 보는 앞에서 확인 사살 당해놓구. 상처는 오픈을 해야지.
준형 나 전혀 상처 아냐...사랑한다는데 그걸 어떻게 막냐? 나는 단지, 댓가를 치러라, 그런 뜻에서,
영우 지금 정신이 없구나? 줄이 헷갈려가지구, 응?
정희 그런 거 같애.
준형 아니 아니, 다 말구, 영우야, 나 당분간 여기 좀 쓰자.
영우 뭐?
준형 너 얌전히 굴어야 한다며. 그럼 이런 데 필요 없잖아.
-현관 벨소리.
준형 누가 또 와?!
정희 (간다)진정한 로얄 패밀리. 뤼얼.
준형 응?!
-정희가 인터폰 버튼 누르고,
준형 시, 실세라니,
영우 봐, 누군지.
준형 (엉거주춤 일어서며 현관 쪽 본다)
-인주가 들어서고 정희가 활짝 웃으며 맞이한다.
정희 안녕? 나 기억하니?
인주 (힐끗 보고 식탁으로)
정희 (머쓱)
영우 어서 와요, 아가씨.
준형 (감 잡고 활짝 웃음)어이구, 이렇게 또 약속이 돼 있었구나?
인주 해두 지기 전에 술판이야?
준형 (의자 빼준다)술판까지는 아니구,
인주 (앉으며 영우에게)저 친구(정희)는 왜? (왜 있어?)
영우 이사장 비서실 소속.
정희 사석에선 그냥 동기, 친구 사이지, 뭐.
인주 (무시하고 물병 집으려)아우 목마르다.
준형 (얼른 물병)내가 해주께. (따라준다)어쩐 일이야, 저녁 때 늘 바쁘지 않어?
인주 여기 좀 볼려구...우리 새언니께서 레슨방으루 쓰라 그래서.
준형 (엥? 영우를 본다)
영우 그랬지. 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줘야겠어서.
준형 (난감)
정희 (선 채 인주 앞에 포크와 나이프 놓아준다)
인주 땡큐.
영우 한잔 할 거지?
인주 어.
정희 (얼른 와인 잔 놓아주고)
준형 (따른다)
인주 오빠 한남동 간다구 하던데?
영우 어. 좀 이따 갈려구.
인주 (마신다)
준형 나 한, 삼 사일 정도는 여기 있어두 되겠지?
인주 그거야 뭐...
영우, 정희 (떨떠름)
서회장 서재/ 서재 앞. 밤.
-서회장, 마작 멤버 임원들 셋, 소파에 앉아 나직히.
-서재 앞, 성숙이 스치듯 지나가며 더듬이 세운다.
서회장 검찰 쪽 관심을 저 친구(성숙)한테로 좀 돌려 볼까 했더니만, 어째 여의치가 않아. 오혜원이가 나한테 장부를 줬어야 하는데, 그 애가 지금 김서방한테 아주 감질나게, 요만큼씩 내보이면서 제 쪽으루 땡기구 있다 말이지.
홍이사 제가 한번 나서 볼까요? 재작년에 무혐의 판정 났던 거, 다시 긁어 부스럼을 좀 만들구, 이번 껀과 연관 지으면 될 것도 같은데요.
서회장 (내가 바라는 바)
임원1 저희들 쓰십시오.
임원2 늘 준비 하구 있습니다.
서회장 괜찮겠어?
홍이사 재단 쪽 물구 들어가면 정상 참작이 되지 않겠어요?
-성숙이 쟁반을 든 도우미와 함께 들어온다.
성숙 차들 드세요...
서회장 어,
-임원들, 엉거주춤 일어섰다 앉고, 도우미가 차를 낸다.
성숙 귀한 차랍니다.
서회장 영우는.
성숙 곧 오겠죠. (하면서 임원들 살피고)
홍이사 (시선 피하며 찻잔 드는)
오피스텔. 밤.
-최기사가 준형의 트렁크를 들여놓고,
-영우와 인주, 현관 향한다. 정희, 깎듯이 수행하는 자세로 앞서 간다. 준형이 배웅.
준형 김교수두 그리 가는 거야?
인주 아니.
영우 우리 아가씬 그런 거 싫어해.
준형 그렇구나...(영우에게)혜원이한테 나 여깄다구 하지 마.
영우 안 물어 볼 거 같은데?
준형 암튼.
서회장 집 침실.
-혜원이 성숙에게 상자 내민다. 성숙이 선물했던 목걸이 세트.
성숙 이게 뭐야?!
혜원 외람되지만 다시 받아 주세요.
성숙 왜?
혜원 뇌물이 될 수도 있겠어서요.
성숙 (내심 당혹. 웃는다)니가 날개를 단 거니?
혜원 본의는 아니지만, 그렇게 됐어요.
-정희가 들어온다.
정희 게임 시작하신답니다.
혜원 알았어요.
성숙 내려 가자. (어깨 감아 안는다)근데 너, 배 아프지 않을까? 김전무가 내 돈 다 먹는 꼴을 어떻게 볼려구?
혜원 걱정 안하셔두 돼요. 아무두 못 먹게 할 거니까.
성숙 그럼 그게 돈이니? 휴지쪽이지?
혜원 미끼로만 쓰려구요. 제가 바라는 건 존중입니다.
성숙 (선다)혜원아, 그거 그냥 영감한테 던져 버릴게. 너한테 있는 거만 챙겨 줘.
혜원 곤란한데요.(간다)
성숙 (뒤따라)얘,
게임 룸.
-성숙과 혜원이 내려온다.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서회장과 영우, 다른 자리에 홍이사 및 임원 둘, 민학장.
-인겸은 술잔 들고 바에 걸터 앉아 굽어 본다.
성숙 벌써들 자리 잡으셨네...
혜원 죄송합니다...
영우 (홍이사에게)홍 아저씨, 다음 판엔 이쪽에 끼어 봐요.
홍이사 좋습니다.
혜원 (앉으며)기대할게요.
-성숙, 앉으며 민학장과 시선 교환.
주방 일각.
-도우미와 정희가 조심스레 뒷담화.
도우미 오실장이 완전 세를 굳힌 거야? 김전무랑 쌍두 마차?
정희 (목을 빼고 마작판 쪽 기웃)그 둘이 또 싸우겠지.
게임 룸.
-두 판 째, 서회장, 홍이사, 혜원, 민학장이 게임 중. 성숙, 영우, 인겸과 임원 둘이 지켜 본다.
-패가 들고 나는 중에 심상하게 주고 받는
민학장 어이구, 운이 안따라주네...
서회장 운이 어딨어. 수를 잘못 읽은 거지.
혜원 이건 어떨까요?
서회장 받아 주마.
홍이사 전 뭐든 환영합니다.
민학장 회장님께서 오늘 여유가 있으십니다.
영우 홍이사가 막구 있잖아.
홍이사 펑.
성숙 세상에, 벌써 산화하심 어떡해?
혜원 그러게요, 장렬하시네.
서회장 이게 아름다운 거 아니냐.
혜원 지켜야 아름답죠. (패를 내고 집어간다)저는 개죽음 싫던데요.
민학장 어이쿠,
서회장 허허, 역시.
영우 (성숙에게)철렁 하시겠어요.
성숙 왜?
영우 충견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잖아.
혜원 (패를 섞으며)안들은 걸로 할게요.
인겸 (힐끗)
일각.
인겸 인제 그만 내놓으시죠.
혜원 (웃음)제 마지막 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인겸 ?
혜원 또 뵐게요.(간다)
인겸 (저 여자, 점점 걸려)
선재 집 문 앞. 밤.
-혜원이 달걀판 한묶음 내려놓고 앉아 있다. 선재 발소리, 흥얼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통로 접어 드는 선재, 멈칫.
선재 (술이 깬다. 퉁명)어쩐 일이세요.
혜원 가는 길에 잠깐...들어가자 소리 하지 마.
선재 못하죠...바쁘신 줄 다 아는데.
혜원 까칠하네?
선재 뭐 타구 오셨어요, 차 못봤는데.
혜원 바꿨어. 기사 딸린 회사 차.
선재 (허허허)
혜원 (선다)가야겠다. 니 기집애가, 할 일이 많다.
선재 어린 놈이 그냥 같이 놀아달라, 보채는 걸로 들으신 게 아니라면, 그럼 안되는 거잖아요. 물론 누군가는 돈을 막 불리구, 힘 싸움두 하구, 그래야 저 같은 애들이 그 덕을 본다는 거 알아요. 근데 방법이 너무 후져요. 치사하구, 끝두 없구,
혜원 끝이 왜 없어? 내기 할래?
선재 안 해요. 내가 이길 게 뻔한데.
혜원 그래, 뭐, 두구 보믄 알겠지...근데, 오중주, 그건 그만해라. 일부러 가서 들어봤는데, 너랑 좀 안 맞아. 아무래두 입시 음악을 하던 애들이라.
선재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상관없잖아요. 쪼끔씩 나아지는 거 진짜 기분 좋구요, 드보르작이 그 곡 쓸 때, 유행 따라 안갈려구 몇 달을 고쳤대요. 그런 거 다, 같이 즐기면 그게 남는 거지.
혜원 알았어. 잘났어. (간다)배웅하지 마.
선재 (열쇠 꺼내 문 딴다)안해요. 기사가 알아서 모시겠죠.
혜원 (가면서)잘 자.
선재 그럴 거예요!
선재 집.
-선재, 들어와 신발도 벗기 전에 가방 던지고 한참을 참는다.
-조금 후, 나동그라진 가방 집어 계단에 얹어놓고 화장실 들어가는 선재. 화가 가라앉은 건 아니지만.
혜원 거실. 밤.
-혜원이 들어서고, 미순이 맞이한다.
미순 교수님이 짐 마저 갖구 가셨어요.
혜원 통화 했어요...(2층으로)쉬세요...
미순 네...(안으로 가다가)침대 작은 거 지하실 갖다 놨는데,
혜원 잘 하셨어요...
침실.밤.
-가운데 놓여 있는 더블 베드. 새 커버와 시트.
-혜원, 마치 늘 봤던 것처럼 지나쳐 소파에 가방 두고 파우더 룸으로.
선재 방. 며칠 후 밤.
-선재, 계단 오르고,
-술 취한 다미는 명화 침대에 오그려 자고, 장호는 치킨 뜯는다.
선재 니가 치워...
장호 어...박다미 술취해서 자는 거 이쁘지 않냐?
선재 쟤 원래 이뻐, 마.
장호 과거 다 털어놓구, 사귀자 그래보까?
선재 (책상 앞에 앉아 클인 접속)해 봐...석달 열흘 쳐맞은 담에 다리 위에서 키스해. 그럼 니 전과 다 용서 해 줄거다.
장호 (그러까? 다미를 본다)
선재 (자판친다. 막귀형)
혜원 서재. 밤.
-까운 차림 혜원, 턱 괴고 컴퓨터 화면 본다.
선재 소리 막귀형,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있어?
-혜원 자판. ‘왜?’
선재 소리 학교 친구들이랑 연주회 해. 오중주.
혜원 소리 나 오라구?
선재 소리 시간 되면...얼굴두 한번 보구 싶구...나한테는 나름 뜻깊은 거라.
혜원 소리 그렇담 젤 먼저 니 여신님을 모셔야지.
선재 방.
-선재, 잠시 보다가 자판.
혜원 서재.
선재 소리 그 얘긴 별로 하구 싶지 않네.
-혜원, 먹먹해진다.
선재 소리 이만 자야겠어. 담에 봐요.
-나천재님 퇴장.
연습실. 얼마 후. 낮.
-선재와 시은들, 한 장에 한글자 씩.
복도.
-준형이 들여다 본다. 저것들 뭐 하는 거야...
-유리창 안, 그리기에 열중해 있던 선재가 문득 고개를 든다. 준형, 눈 마주칠까봐 얼른 간다.
-준형, 가면서, 점점 굳은 표정. 내가 저 새끼한테 밀린 거 맞지?...
인주 방.
-벌컥 문 열리고 준형이 들어온다.
-인주, 책상 위 정리 하다가(외출 준비)
준형 쟤들, 해산 시켜야 하지 않어?!
인주 냅 둬. 다 학교 관 두겠다잖아. 마지막 발악이지 뭐.
준형 아, 아니, 이선재 말야.
인주 못 들었어?...
준형 뭘,
인주 걔두 다 반납했다는데?
준형 (엉?!)
인주 애가 철이 없는 건지.
준형 뭐, 뭘 반납해!
인주 (옷걸이의 겉옷 벗겨들어 걸친다)오빠랑 점심할 건데, 같이 안갈래?
준형 아, 아냐, (돌아선다. 참패다)
인주 (가방 집어 들며 소리없이 웃음)
준형 방.
-준형이 핏기 없이 책상 옆에 서 있다. 참패가 확실하다.
-눈치 보며 서 있는 종수.
종수 아시는 줄 알았는데요...재단에 장학증서 반납했고, 학생 카드, 이번달 지원금 남은 것까지, 다,
준형 (나직)나가 봐.
종수 (쭈삣)오늘 작별 인사 한다고 하던데요,
준형 (책상 위 쓸어버린다)나가라고!!!
종수 네, (돌아서는데)
준형 단속해! 그 앞에 애들 꼬여들지 않게. 알았어?
종수 모이는 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준형 너두 관두구 싶어?!!!
종수 (얼른 나가며 작게)네.
연습실 앞 복도.
-선재와 규현, 문 두 쪽 활짝 열어 스토퍼로 고정 시키고 들어간다.
-학생들 몇, 안쪽 기웃.
연습실.
-선재와 규현이 들어오고,
-선재, 피아노 앞에 앉는다.
-창문에 스케치북 한 장에 한글자씩 쓰여 있는 ‘GOODBYE'
-연주가 시작되고,
-모여드는 학생들. 인서가 안으로 들어간다.
준형 방.
-준형, 뭔지 모르게 비참해서 더 화가 난다. 그런데 화를 낼 데가 없다. 왜 나를 모셔가지 않지? 왜 나를 존경하지 않나. 못된 것들, 나만 정서 박약이야?
-팔꿈치 괴고 두 손으로 얼굴 가린 채 앉아 있는 준형. 지독한 소외감. 열패감. 내가 어째 볼 수 없는 저 분위기.
연습실 앞 복도.
-학생들이 잔뜩 모여 있다.
-멀찍이서 걸어오는 혜원.
연습실.
-빼꼭이 들어찬 학생들이 앉거나 서 있고, 그 중에 인서.
-선재의 피아노로 연주가 시작된다.
연습실 앞.
-학생들 틈, 혜원.
연습실.
-계속되는 연주.
-4악장으로.
연습실 앞.
-혜원, 지켜보다가,
-4악장 마지막 선재의 피아노가 이끄는 대목에서 돌아선다.
연습실.
-연주가 끝나고, 학생들과 인서의 뜨거운 박수 속에 선재와 시은들, 서로 안아주고,
-선재, 빠져 나간다.
연습실 앞.
-선재, 학생들 틈을 비집고 두리번.
복도.
-혼자 가는 혜원.
혜원 사무실. 오후.
-혜원, 책상 앞에 미동 없이 앉아 있다.
-세진, 컴퓨터로 파일 정리하면서 눈치 살핀다.
-혜원, 일어선다. 가방과 윗도리 챙긴다.
세진 (선다)퇴근 하시게요?
혜원 어...
이사장실 앞.
-혜원 온다. 왕비서가 일어선다.
왕비서 곧 이사장 취임식 하실 거라고 들었는데,
혜원 그래, 멋있게 하지 뭐.
-혜원, 문 열고 들어간다. 왕비서, ??
이사장실.
-성숙의 의자 비어있다.
-혜원, 의자 빙글 돌려본다.
-전화한다.
혜원 저예요...
서회장 집.
성숙 (전화. 반색)어, 그래...어디, 사무실이야?
이사장실.
혜원 이사장님 의자가, 저한테는 별로 어울리질 않네요.
서회장 집 식당.
성숙 맘에 드는 걸로 바꿔...응?...응?....(끊고, 얘 뭐지?)
영우 혜원이예요? (조신하게 차려 입고 술잔을 든)
성숙 (그렇단다)
영우 슬슬 후회 되시나?
성숙 내가?
영우 심했잖아...지금이라두 빌어봐요(간다).
성숙 (그럴까?)
혜원 집 거실. 밤.
-까운 차림 혜원, 이층에서 내려온다.
-계단 아래 선재가 올려다 본다.(첫 만남)
-혜원, 지나쳐 음악실로.
음악실.
-문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혜원.
-피아노 앞. 연주하는 선재.
-돌아서는 혜원.
거실. 밤.
-혜원, 음악실에서 나온다.
-계단 몇 개 올라가다가 선다. 선재가 계단 옆 복도에 서 있다.
-혜원, 올라간다.
-주방 식탁을 닦다가 보는 선재.
-혜원, 굽이 돌아선다.
침실.
-중간크기 가방에 편안한 옷가지 두어 개 집어 넣으며 통화.
혜원 어, 엄마...이사 갈 집이 수리가 덜 됐어...여긴 곧 비워야 하는데...사당동에 짐 갖다 놔두 되겠지?...그렇게 많지는 않아. 오래 된 거 대충 친구들 나눠 줄 거라...어...새 집 들어가면서 다 바꿀려구...
선재집. 새벽.
혜원 소리 선재야...
-침대의 선재, 잠인지 꿈인지, 혜원의 음성 들으며 눈을 뜬다.
혜원 소리 선재야...
-선재, 벌떡 일어나 앉는다.
-왈칵 문 여는 선재. 혜원이 서 있다.
-혜원, 간편한 차림에 빈 손. 웃는다.
-선재, 혜원의 손 잡아 끌어들인다.
혜원 야, 좀 살살,(신발 벗는다)
-마주 선 둘.
선재 어제 왔었죠.
혜원 갔지...뒤풀이 재밌었다며. 떡이 되게 마셨다며.
선재 (어떤 예감...)말 하세요. 지나가다 들렀다, 이런 거 말구.
혜원 지나가다 들른 거 맞는데?
선재 글쎄 여기 지나서 어디 가냐고,
혜원 (말가니 보는)예정엔 없지만 차 한잔 줄래?
선재 (속 터지지만)올라가 계세요.(돌아선다)
-혜원,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고, 선재, 렌지에 주전자 올리고 불 켠다.
-시간 경과. 혜원과 침대에 걸터 앉은 선재. 찻잔(개업 사은품인 듯. 모양도 색깔도 다른) 하나씩 들고서.
-선재, 붉어진 눈 가. 눈물 곧 떨어질 것 같다. 제 발로 감옥엘 간다는 게 이런 거였어.
혜원 보통 이런 경우에는 형량 협상이라는 걸 하는데, 난 모르겠어. 그런 거 안하구 싶어. 이왕이면 좀 멋있게.
선재 (간신히)그 검사, 믿을만한 사람이예요?
혜원 그냥 검사야.
선재 시간 약속, 하셨어요?..
혜원 어, 일곱시. 좀 일찍 나가서 미용실 들를려구. 옷은 편하게, 머리는 단정하게.
선재 (미치겠다)
혜원 (마저 마신다)차 맛있네. 어디서 났어?
선재 어제 끝나구, 친구들이,
혜원 지금 이 시간은, 이, 차 맛으로 기억해둘게. (찻잔 놓고 일어선다)
선재 (찻잔 놓고 선다)
혜원 (본다. 울지 마)
선재 (조금 웃음)뭘로 기억한다구요?
혜원 (왜?)
선재 (혜원을 당겨 안는다)몸으루 기억해야지 무슨,
혜원 (삐질)
-길고 슬픈 키스 끝에 혜원의 옷을 벗기는 선재.
-시간 경과. 침대 위. 말 없는 둘, 선재가 혜원 등을 안고 누운. 새우 두 마리. 좀 벗고 있어도 됨. 한참 못볼 거니까.
검사실.
-혜원, 검사와 마주 서 있다. 담담한 미소.
검사 아주 편하게 입고 오셨네요.
혜원 구속 전에 여기서 며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검사 큰 결정 하셨습니다...
혜원 아직은 그쪽에서 몰랐으면 해요.
검사 저희가 먼저 발표해야죠.
혜원 (까딱)
검사 자, 가시죠. (문을 열고)
혜원 (발걸음 뗀다)
검찰 조사실.
-검사, 혜원한테서 usb 건네 받아 노트북 컴퓨터에 꽂는다.
혜원 한성숙 이사장이 갖고 있는 원본과, 서필원 회장의 페이퍼 컴퍼니 관련 자료 이외에, 파일 하나가 더 들어 있습니다.
검사 (응?!)
혜원 서회장과, 김인겸의 거래 과정 및 내역이예요.
검사 (크다! 당혹과 기대)
혜원 (짐짓 웃음)반쯤은 사심으로 결정했어요. 다 가져야겠다고 하는 게 꼴보기 싫어서.
교정. 이른 아침.
-곳곳에 대자보가 붙어 있다. ‘김인주 교수의 악기 만행’ ‘자퇴합니다’ ‘떠납니다’ ‘교수님, 제발!’
-하나씩 뜯겨져 나간다.
모 처. 낮.
-인겸과 민학장이 함박 웃음 지으며 악수하고, 테이블 앞, 자리에서 일어선 인주가 새침하고도 흡족한 미소.
민학장 이거 또 이렇게 뵙습니다.
인겸 그동안 적조 했습니다.
민학장 워낙 바쁘시잖아요.
인주 앉아서 말씀하세요.
민학장 그래 그래 그래,
-셋, 앉는다.
민학장 한데, 저 정말 뜻밖입니다. 오혜원이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을까요? 자폭 아닙니까.
인겸 자폭일수두 있구, 자구책일수두 있죠. 최소한 카드 하나는 쓸 수가 있으니까.
민학장 그럼 회장님께선 이사장을,
인겸 어쩔 수가 없죠. 그래서 뵙자구 했습니다.
인주 (차 마시며 핼끔)
서회장 침실.
-파우더 룸. 화사하게 차려 입은 성숙이 머리를 매만지고, 정희가 곁에 서 있다.
성숙 가방 좀 챙겨 놔. 2박 3일 짜리로.
정희 알겠습니다.(돌아서며 불안)
성숙 (전화기 집어든다)
모처(식당 밀실)
인겸 이사장은 아마 한동안 더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민학장 (한성숙이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인주 서운하시겠어요.
민학장 그렇다기 보다, 이게, 학교 재단하구 예술 재단이 워낙 긴밀하잖아.
인겸 뭐, 저는 깊이 관여할 입장은 못되지만,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할 거 같아서요.
민학장 (나를 계속 쓰겠다는 거야?)한남동에선 뭐라구 하시나요?
인겸 동의하셨습니다.
민학장 (안도감 감추는)하긴 뭐, 어찌 됐건 학교 행정 전문가는 필요하죠.
인주 총장 선출까지, 지금 이 분위기루 가시면 되죠 뭐.
민학장 그럼 조만간 이사진 개편해 주시고, 음대는 김교수가 맡아 줘.
인주 그래야죠.
민학장 이사장한테는 제가 따로 알릴 필요 없겠죠?
인겸 그럼요. 제가 지금 그리 갈 겁니다. 한 며칠 외국에라도 다녀 오세요.
민학장 (미안하네, 한성숙)
서회장 서재/거실.
-성숙과 서회장, 영우. 성숙 뒤에 정희, 작은 여행 가방 들고 서 있다. 장비서도.
서회장 (미안하다는)뭐하러 벌써 가나.
성숙 데릴러 오는 거 싫어요. 조사 마치구 구치소 들어가면 영치금이나 넉넉히 넣어 줘.
영우 (퉁명)별 걱정을 다 해.
성숙 서영우,
영우 (왜)
성숙 이런 게 바로 어부지리다. 혜원이랑 나, 둘 중에 누가 먼저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잘 하구 있어.
영우 (쳇)걱정 마세요.
서회장 (험)장비서가 동행해라.
장 네,
성숙 됐어. (정희에게)가자.
-인겸이 들어온다.
성숙 오, 김전무.
인겸 (내심 당황)바로 가시게요?
성숙 변호인단 대표가 자네라서 안심돼.
인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숙 근데 민학장이 통화가 안되네?
인겸 글쎄요, 동생한테 얼핏 듣기로는 벳푸 음악제에 같이 간다구 하는 거 같던데.
영우 무슨, 당신 동생, 홍콩에 쇼핑 간다더라.
인겸 (쯧)
성숙 됐어. (서회장에게)다녀 올게요. 당신 충견 홍이사는 법정에서 보겠네.
서회장 (험)몸 조심 해.
-성숙, 꼿꼿이 간다. 정희와 장비서가 뒤따르고,
서재.
-서회장, 영우, 인겸,들어온다.
-인겸의 전화벨.
-인겸, 받으며 뒤따른다.
인겸 네, 아버지...한남동에 있습니다....네?
영우, 서회장 (소파에 앉다가 돌아본다)
인겸 (당혹스레 웃음)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저, 잠깐만요, (서회장에게)오혜원이, 회사 인수 자금 내역을 갖구 들어 갔답니다. 저희 집에 주신 거요.
서회장 엉?!
영우 뭐?!
인겸 시간 차 두구 칠 거 같다는데, (다시 전화)여보세요?...네...
서회장 허, 이거, 발뻗구 자긴 글렀구나.
검찰 조사실. 이틀 뒤 밤.
-혜원, 앉아 있고, 검사가 들어온다.
검사 힘들지 않으세요?
혜원 할만 한데요?
검사 (앉는다)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식사두 잘 하시구, 잠두 잘 주무시구..
혜원 할 게 그거 뿐이잖아요...(정색)결정 하셨나요?
검사 아무래두 그건 시기를 잘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쪽의 네트웍 전반을 흔드는 거라...최대의 효과를 노리기 위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혜원 처분에 맡겨야죠 뭐...그 사람들, 이제나 저제나, 떨구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벌을 받는 거니까...넘겨드리기 전에는 계산을 많이 했죠...그 쪽과 협상을 할까도 싶었구요...근데 그랬다간 평생 그 집 개로 살 거 같았어요...
연습실.
-선재, 한켠 의자에 앉아 인서의 연주를 듣는다. 혜원의 결단을 지지했지만 암담하다.
-연주하는 인서. 구속된 혜원과, 선재, 인서 자신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위로의 마음.
-연주가 끝나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인서 오혜원 멋지지 않냐?
선재 (조금 웃음)너무 멋져서 탈이죠.
인서 아직은 대외비라는데, 진짜 큰 걸 갖다 줬대. 검찰이 고민할 만큼.
선재 대충 알아요. 들어가시기 전에, 저희집 들르셨어요.
인서 (그랬구나)
선재 정상 참작,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구 하셨어요.
인서 그거야 오혜원 생각이구, 구형량 자체두 생각보다 크지 않을 거래. 선고는 1년 반쯤 될 거라는데, 그렇대두 길지?
선재 (길죠...)
인서 그동안 너 숙제할 거 있다. 방금 내가 친 거, 그걸로 상금 한 번 타 봐.
선재 (네?)
인서 너 아주 잘 할 거 같은데. 혜원이두 좋아할 거구.
선재 무슨, 연락 왔어요?
인서 (끄덕)부조니 전에, 연습 삼아 나간다 생각해. 경비는 에모리 재단에서 지원한다.
선재 (이거 뭐야?...)
법정.
-선재,방청석 맨 뒷줄, 끝자리에서 혜원을 보고 있다. 당신은 이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을 거야.
-피고인석, 담담한 혜원. 옆에 국선 변호인. 혜원은, 선재가 어디 앉아 있는지 안다.
-동일 사건 피고인석. 홍이사.
-증인석의 성숙에게 인겸이 묻는다.
인겸 오혜원에게 재단 명의 신탁을 해지하라고 지시하신 게 언젭니까.
성숙 넉달 쯤 전이예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인겸 증인께서 오혜원의 해외 도피 기도를 맨 처음 감지한 건, 그 이후인가요?
성숙 (혜원을 본다)그건 분명히 기억하죠.
-혜원 옆의 국선 변호인이 일어서려(이의 제기)하려 하자, 혜원, 손을 조금 들어 말린다.
-방청석, 지수와 세진, 마주 본다. 왜 말려?
재판장 증언 계속 하세요.
성숙 (짐짓 슬픈 표정)혜원이는, 죄송합니다...제가 아는 오혜원은, 단 한번도 저와 한 시간 이상 연락을 끊은 적이 없었습니다만, 그 주 금요일 밤부터 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인겸 그래서 미행을 붙이셨나요?
성숙 아시다시피, 저는 저 친구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미안해 혜원아)
인겸 잘 알겠습니다. (재판장에게)관계 당사자인 이선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재판장 배석 판사들 앞에 증거자료 번호 붙은 사진들과 지퍼락 봉지.
-다미, 장호, 시선 떨군다. 미치겠네.
-정희는 선재를 돌아보고, 세진, 지수, 어떡하냐...
-성숙, 정리의 인도 받아 피고인 석으로 가며 혜원 힐끗. 숨죽인 혜원.
-선재, 혜원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괜찮아요.
-인겸,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재판장 기각합니다.
-실망하는 인겸과 성숙. 혜원, 짧게 미동. 안도감으로.
-선재, 다른 의미의 실망. 선언을 하려고 했는데.
재판장 10분간 휴정합니다.
음대. 준형 방.
준형 뭐야?!!! 증언을 왜 안해!
종수 (핸드폰 들어보이며)세진이 말로는 상대측 증인 신청이 기각됐다구,
준형 지 죄를 지 입으루 만방에 고해야 할 거 아냐! 말루 안하면 소용이 없어요!
종수 그거 너무 시끄럽지 않을까요?
준형 뭐?
-노크 소리.
종수 (얼른 문간으로 가며)네,
-인서가 들여다본다.
인서 이선재, 서류 정리 다 됐어?
종수 아, 네, (서랍 열고)
인서 (안쪽 들여다본다)형, 있었네?
준형 (비아냥)넌 왜 거기 안갔냐?
인서 (종수가 내미는 서류 봉투 받으며)어어,지수가.
준형 그 우정두 참 가상하다, 야. 뭐 자랑이라구!
서회장 서재.같은 시각.
-소파. 서회장과 영우.
영우 (종알)아무래두 혜원이가 이긴 거 같애. 아빠랑 김서방,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잖아. 언제 터질까 전전긍긍.
서회장 (끙)
영우 진정 큰 여우지.(차를 마신다)
재판장 소리 피고인, 최후 진술 하십시오.
법정.
-혜원이 일어서고,
-일제히 주목.
-선재, 힘 내요!
-혜원, 담담하고 차분하게 시작한다.
혜원 저는 지금, 오직 저 자신한테만 집중 하려고 합니다. 한성숙 이사장, 서필원 회장을 대신해서 피고인석에 앉아 계신 홍태영 이사, 그리고, 변호인단을 총지휘하시는 김인겸 전무님까지, 저 분들이 어떤 벌을 받건, 관심이 없습니다.
-인겸, 지그시 어금니 물고,
-피고인석의 성숙, 팔짱 끼고 앉아 인겸을 힐끗.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혜원 제가 주범이 아니라는 말로, 선처를 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행한 모든 범법 행위는,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오직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잘못된 거죠...
-방청석 중간, 장호, 다미 귀에 대고 소곤.
장호 저렇게 막 디스해두 되는 거냐? 보통 다, 나는 무죄다, 그러지 않어?
다미 (그러게. 선재를 돌아본다)
-선재, 오직 혜원의 뒷모습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혜원 그 덕에 저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법인 카드, 재단 명의의 집, 자동차, 고용인, ...저의 성장 배경이나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 그 모든 걸 다 진짜 제 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포기한 음악의 세계에도 맘껏, 힘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처럼, 유전자에 저금이 돼 있는 것처럼, 아무도 뺏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방청석의 지수, 화장지로 눈 가를 닦고, 세진, 무릎 위 가방 끈을 만지작. 정희, 작게 한숨. 그 심정 내가 알지...
혜원 그런데 어느날, 정말 뜻하지 않게, 제 인생의 대차대조표가 눈 앞에 펼쳐졌어요. 그렇게 사느라고 잃어버린 것들, 생각하기도 두렵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거냐구요.
-선재, 잘 하고 있어요.
혜원 저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진술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는다)제 인생의 명장면이죠...난생 처음, 누군가, 온전히 저한테 헌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들, 뭘까?
-선재, 혼자서 조금 웃는다.
혜원 저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절절한 고백의 말을 해 준 것도 아니었어요. 그 친구는, 그저 정신없이 걸레질을 했을 뿐입니다. 저라는 여자한테 깨끗한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애쓴 거 뿐이었는데...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누구한테서도 그런 정성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심지어 나란 인간은, 나 자신까지도 성공의 도구로만 여겼다는 걸...
-각각의 반응.
-인겸, 저렇게 나오면 전열이 흩어지는데.
-다미는 울지 않으려 입을 삐죽거리고, 장호, 뭔말인지 알 것 같아. 근데 나도 너 그렇게 사랑해줄게. 다미 어깨 안아준다.
-글썽이는 세진. 지수, 코를 닦는다. 정희, 손끝을 깨문다. 부럽다.
-성숙, 니가 그래서 정신줄을 놨구나. 비웃는.
-선재, 마지막 한 마디를 기다린다.
혜원 저를 학대하고, 불쌍하게 만든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제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와 절망을 줬겠죠...그래서, 저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판결을 내려주시던, 항소하지 않겠습니다...이상입니다.
-정적.
-선재, 멍하다. 잘했어요. 멋있어요.
-시간 경과.
-정리들과 함께 나가는 성숙, 홍이사, 혜원.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선재.
-나가면서 돌아보는 혜원. 웃어보인다. 나 괜찮았니?
-선재, 그럼요...그러나 혜원이 사라지자, 울컥.
선재 방. 밤.
-선재, 건반을 만지듯 연주 시작. 모차르트 론도 A 단조.
-다미와 장호가 명화 침대에 앉아 있다. 서로 어깨 기대고 선재의 연주를 듣는다.
-문이 빼꼼 열리고 옥진. 반찬통 두 개 들고 있다. 선재를 잠시 보다가 문간에 앉는다. 반찬통 내려놓고 듣는다.
-선재는 이 곡이 썩 마음에 든다. 혜원에게 매일 이렇게 들려줄 참이다.
교도소 . 밤.
-이미 소등.
-온돌식 방에 4,5명 누운 중에 2명이 아직 안자고 수군수군. 아마도 귀족계 나 부동산 등 경제 사범인 듯.
언니1 쟤 말야, 별건으로 하면 다 합쳐서 10년두 넘는다매.
언니2 검사가 큰 거 잡을라구 딜 했대잖어.
언니1 지 웃선 배신 때린 거야?
언니2 (하품)아주 귀신같이 해먹다가, 어린 놈 건드린 거 들켜가지구 다 털렸대.
언니1 미친 년.(돌아누우려다 고개를 든다)누가 코 고냐?
언니2 (고개 들고 살피다가)쟤네.
-끝에서 두 번째 혜원, 모로 누워 정신없이 자고 있다. 입을 조금 벌리고, 가늘게 코를 골면서.
-언니1,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사물함 더듬어 연다.
언니2 왜.
언니1 (들여다보며 뭔가를 찾는다)나는 신입이 저렇게 태평한 거 보기 싫더라.
언니2 (일어나 앉는다)이쁘지는 않지. (언니 3,4, 툭툭 쳐서 깨운다)
-일어나 앉는 언니3,4.
-조금 후, 서걱, 머리 자르는 소리에, 눈뜨는 혜원.
-언니2, 3,4가 혜원의 어깨와 다리와 팔을 지그시 누르고,
-머리 위 쪽에 앉은 언니1, 손에 든 가위가 혜원 눈 앞에.
-확 열리는 혜원 동공.
언니1 (이를 드러내며 웃음)머리 좀 짤라 줄려구.
혜원 (눈빛 잠깐 심하게 흔들리지만, 곧 눈 감으며 웃음)고마워, 언니들. 목만 따지 마.
언니1 (머리칼 한줌 쥐고 또 썩썩)살고는 싶은가보네.
혜원 그러엄, 발 뻗구 자는 맛이 아주 꿀맛이야.
언니2 허허허, 친구 먹잰다.(혜원 머리통 옆으로 돌린다)
언니1 (가위질 계속)어린 놈 건드린 벌이다. 내 아들이 딱 스무살이야.
혜원 (눈 조금 뜬다. 겁 안 나는 척)이왕이면 삭발로 해 줘...(나는 바로 이런 걸 다 견딜 거거든?...)
교도소 면회실.
-선재.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 벽을 보다가, 기댔다가, 선 채 허리 굽혀 신발끈 여미는데,
혜원소리 얘,
선재 (멈칫 본다)
-혜원이 의자에 앉으며 웃는다. 더벅머리 오혜원.
-선재, 벙하니 보며 마주 앉는다. 머리가 왜.
혜원 (담담)언니들이, 쥐 파먹은 거처럼 짤라놨어...너 온다구 미용부에 가서 좀 다듬었지...어때?
선재 (아후, 시선 피하며 어쩔 줄 모른다. 나 아무래도 문제 있어. 저 모습에 도발되다니)
혜원 왜, 이뻐 미치겠어?
선재 (비로소 찬찬히 보며 웃음)어울려요.
혜원 결선 나간다지?
선재 상금 타올게요. 짱박아 놨다가 비행기표 사야죠. 같이 타구 발라 버리게.
혜원 좀 그렇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너한테 앵벌이 시킨다구 할 거야.
선재 부자들 돈은 그렇게 뺏는 거라면서요.
혜원 어이구, 다 아네. 인제 하산 하여라.
선재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사이.
혜원 나 잊어두 돼.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했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내 의지로는 절대 못했을 거야...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두 돼.
선재 (웃음)집 비워놓구 어딜 가요.
혜원 (그런 거니?)
선재 (가만히 정색)1년이 될지 평생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같이 살아는 봐야죠...어떤 날은 박터지게 싸우구,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같이 뒹굴구, 그런 것도 안해보구 헤어지면, 너무 아깝잖아요.
혜원 (짐짓 삐죽)그럼 그러던가.
선재 (다시 웃음)뭐 좀 이쁘기도 하니까.
선재 집.
-문간에 중간 크기 가방 하나와, 백팩이 놓여 있다. 빨래줄과 옷걸이 비어있고.
-연주하는 선재. 론도 에이 단조.
-피아노 위에 혜원이 준 손수건.
선재 소리 론도 에이 단조. 이곡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햇빛이 나건, 비가 오건, 기분이 좋건 울적하건, 매일 그날의 얘기를 들려줘요. 또 그게 다 인생이라고 말해요. 모짜르트의 비밀이죠...나직하지만 체념이 절대 아니예요...
교도소 운동장. 낮.
-선재의 피아노 소리.
-삼삼오오 서서 잡담하는 수인들.
-잔디밭에 쭈그려 앉아 풀꽃을 따거나, 풀잎으로 코끝을 간질이기도.
-담벼락에 기대 앉은 혜원, 지나가는 여자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인다.
-부드럽게 지나가는 바람. 구름.
-혜원, 눈 감는다. 편안하다.
선재 소리 가만히 봐봐, 깊이 보고, 사랑해 봐, 그러잖아요...아, 이곡은, 치는 게 아니라, 만지는 거래요...음표가 전부 2770개 쯤이구요, 그 중에 겹화음이 500개 좀 더 되나?...나는 매일 당신을 그렇게 만져요...언제나! 겁나 섹시한 당신.
-혜원, 간지러운 듯 웃는다.
선재 집.
-선재, 계단 내려와, 가방 들고 메고 나간다.
-자바라 문 닫고,
-나간다.
선재 소리 다녀 올게요.
-빈 집. 선재가 곧 돌아와 혜원을 기다릴 이 곳.
16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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