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17
[밝은 음악] 처음 이곳에 혼자 남겨졌을 땐
'언제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까'에 대한 생각을
잠시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관상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됐던 시기가 있었는데…
"칠정산내편"
[고풍스러운 음악]
[다가오는 발걸음]
(남자1) 홍 별좌
자네 아직도 그러고 계시나?
누가 보면 이곳 관상감의 일을
자네 혼자 다 하는 줄 알겠네
무슨 책인데 그리 열심히 보시나?
정평 이순지 선생의 '칠정산외편'이라네
(민준) 몇 번을 다시 봐도 놀라운 서책이지
천문 상수는 물론 태양과 달의 운행
일식과 월식의 계산
다섯 개 행성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으니 말일세
[한숨]
자네
혹시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나?
(민준) 무슨…
아니
우리가 사는 땅이 돌고 있다는 둥
(남자1) 뭐, 둥근 모양이라는 둥
사실이라네
(남자1) 허허, 이 사람
이 땅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면
모두가 어지러워
서 있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리고 둥근 모양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얘기인가?
[웃음]
아니, 왜 웃나?
아주 먼 곳에서 보면 말일세
보인다네
무엇이?
(민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원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성인지
멀리서 본 적이 있나?
[피식 웃는다]
[차분한 음악] 멀리서 보는 지구는 아름답습니다
내가 사는 곳의 많은 이들이
지구에 대해 궁금해하고 와 보고 싶어 했죠
우리가 지구에 오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소행성 하나를 테라포밍해
지구 사람들이 보기에 평범한 혜성으로 보이게 만들고
(민준) 지구에서 이 소행성을 볼 수 없게
근일점을 지날 때만 지구에 오는 거죠
그 주기가 지구의 시간으로 약 404년이더군요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냐고요?
어떻게 될진 모릅니다
중력 때문에 궤도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보단
이번에 돌아가지 못하면
머지않아
내가 사라질 확률이 더 크겠죠
죽게 되겠죠
[활기찬 음악]
(민준) 천송이 네가 하고 싶은 거
우리 미리 다 하자
미리?
응, 미리
한 달 안에
다 하자
[부드러운 음악]
왜?
왜 한 달 안에 다 해야 하는데?
어?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송이) 어?
내가
떠나야 돼
뭔 소리야?
뭘 떠나?
어딜?
어딜 가는데?
내가 원래
있던 곳
한 달 뒤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돼
[감미로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간다고?
돌아간다고?
(민준) 응
오케이
가
가면?
언제 오는데?
(송이) 응?
말해 봐
나 기다리는 거 잘해
어?
1년?
2년?
10년?
안 와?
(송이) 가서 안 와?
안 온다고?
(민준) [울먹이며] 응
그래서 그랬니?
이기적이고 어쩌고저쩌고?
(송이) 그래서 그랬니 이 나쁜 놈아?
너 진짜
내가 본 수많은 나쁜 놈 중의 갑이구나
한 달?
한 달?
[황당한 숨소리]
[울먹인다]
[코를 훌쩍인다]
[한숨]
[한숨]
[흐느낀다]
[떨리는 숨소리]
[저마다 인사한다] (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 (세미) 수고하셨습니다 - (민아) 언니, 갈게요
- (범) 누나, 수고하셨습니다 - (민아) 언니, 수고하셨어요
이거 서울 가는 차지?
나 좀 타자
(민아) 네?
(범) 어?
[세미의 옅은 웃음]
저는 그럼 그만 가 볼게요
- (민아) 수고하셨습니다 - (남자2) 수고하셨습니다
[차 문이 탁 닫힌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송이가 흐느낀다]
[송이가 계속 흐느낀다]
야, 천송이
[한숨]
(송이) 음악 좀 꺼 줄래?
나 지금 음악 들을 기분 아니다
네
[터치 패드 조작음]
범이 씨, 여기 내 차거든?
아, 죄송
음악 들으실 기분이 아니라고 하셔서
혹시
♪ 총 맞은 것처럼 ♪
있니?
아니야
♪ 꺼져 줄게, 잘 살아 ♪
(송이) 아, 아니야, 아니야
[송이의 울먹이는 숨소리]
♪ 죽어도 못 보내 ♪
있니?
[송이가 엉엉 운다]
[송이가 계속 운다]
(TV 속 앵커1) 금세기 최고의 혜성으로 불리던 아이손이
결국 소멸했습니다
태양에 근접하면서 핵분열을 일으켜
태양열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괴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400여 년 만에
(TV 속 앵커2) 지구를 찾는 혜성 딥사우스가
현재 지구 공전 궤도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사에 따르면 딥사우스는
지구 궤도와 거의 일치하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어 [따분한 숨소리]
이달 하순쯤…
(윤재) 잠깐만
(TV 속 앵커2) 수많은 유성우를 동반한 금세기 최고의 우주 쇼를 [도어 록 작동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이 달칵 닫힌다]
(미연) 야
너 이, 무슨 오밤중에 선글라스야?
쟤 왜 저래?
[문이 탁 닫힌다] 또 우리 민준이 형한테 차였나?
이놈의 도 매니저
내 손에 걸리면 죽었어
누나가 너무 기울긴 해
[윤재의 아파하는 신음]
[짜증 섞인 탄성]
[송이가 흐느낀다]
(스태프) 감독님
전화기 꺼져 있는데요
천송이 미친 거 아니야?
(감독) 갑자기 잠수를 타?
저번에 자기만 놓고 다들 철수했다고
복수 차원에서 이러는 거지?
그런 거 같습니다
야, 배역 교체해
(감독) 어디 한물간 거 써 줬더니 시건방지게, 씨
누구?
천송이 씨 매니저…
(감독) 당신 잘 만났네
지금 뭐 하는 짓…
(민준) 천송이 씨는 지금 병원에 갔습니다
지난번 이 영화 특수 효과 팀의 실수로
천송이 씨가 와이어에서 떨어졌던 사고
다들 기억하시죠?
[흥미로운 음악]
[감독의 헛기침]
그때 조직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폐부종이 함께 왔었는데
아까 감독님께서 무려 아홉 번의 NG를 냈다가
결국은 맨 처음 촬영한 컷으로 가기로 했던
바로 그 액션 신을 촬영하던 중
몸에 무리가 온 모양입니다
하여
발열 증상과 복통으로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병원에 갔습니다만
촬영에 지장을 드리게 되어
무척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으며] 아이고
(감독) 사람 몸이 중요하지
스케줄이란 게 원래
다시 잡자고 있는 거지, 뭐
다시 잡자고, 응?
- (스태프) 예, 예 - [웃으며] 다시 잡자고
[감독의 웃음]
[의미심장한 음악]
[의미심장한 효과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휘경) 형
늦었네?
(재경) 응
오늘 유기견 보호 센터 봉사하는 날이었어
(휘경) 아, 그렇구나
아참,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형
젊은 경제인 상 수상하기로 했다며?
아직 모자란데
그렇게 됐다
야, 축하해
아무튼 형은 대단해
[웃음]
아, 맞다
(휘경) 나 내일 어머니랑 큰형 산소 가기로 했는데
형 시간 되면 같이 안 갈래?
어쩌지? 난 내일 선약이 많아
나중에 따로 갈게
큰형 섭섭하겠다
큰형은 나보다 작은형 훨씬 좋아했는데
쉬어라
(휘경) 응
[신비로운 효과음]
(미연) 얘
울지만 말고 문 좀 열고 얘기 좀 하자니까?
[한숨]
[부드러운 음악]
(민준)
(민준)
(민준)
[송이가 흐느낀다]
(민준)
(민준)
(민준)
[엉엉 운다]
(민준)
[신비로운 효과음]
(미연) 얘, 너 이 새벽에 어딜 가?
(송이) 답답해서 조깅
(민준) 얘기 좀 해
(송이) 할 얘기 없는데?
(민준) 전화는 받아야 될 거 아니야?
내 전화는 왜 안 받아?
(송이) 전화는 받아서 뭐 해?
간다며? 한 달 뒤면 떠난다며?
(민준) 내가 이럴까 봐 우린 안 된다고 했던 거야
(송이) 그래 그래서 내가 꺼져 줬잖아
마음 접겠다고 했잖아
근데 갑자기 나타나서 매니저 해 주겠다고 그러질 않나
공중 부양 시켜서 키스를 해 대질 않나
그게 누군데?
(민준) 신경 쓰이게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애먼 놈이랑 계약을 하질 않나
(송이) 재경 오빠가 왜 애먼 놈이야?
(민준) 약혼한다는 루머가 돌질 않나
- 해 버릴까 봐, 그냥 확 - (민준) 뭐?
(송이) 뭔 상관인데? 한 달 뒤면 떠날 양반이
가는 날 아무 놈이나 붙잡고 약혼할 거야
보란 듯이
[휴대전화 벨 소리] (민준)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 (송이) 여보세요? - (휘경) 송이야, 어디야?
(송이) 어, 나 조깅하고 있어
(휘경) 무리하지 말지
(송이) 어, 무리하는 건 아니고
- 어디야? - (민준) 아, 거기 안 서?
교수님!
[사랑스러운 음악]
어머, 맞네
이런 데서 뵙네요?
[웃음]
누구…
에이, 저 모르세요?
저 고혜미요
(혜미)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교수님 수업 연짱 받았던
제가 선생님 처음 뵙고
제 엑스 남친 삼동이랑 되게 닮았다고 막 그랬었는데?
(민준) 아
그랬나?
제가 교수님 수업 재수강받고 싶어서
일부러 시험지 백지로 내고 F 맞았었단 말이에요
저 진짜 기억 안 나세요?
글쎄요
헐, 섭섭해요
(혜미) 전 그때 F 맞은 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날 뻔도 했었는데
아, 이제 보니까
알 거 같기도 하고
아마
제가 작년보다 조금 더 예뻐져서
(혜미) 못 알아보시나 봐요
제가 그때보다 젖살도 좀 빠지고
요새 성숙해졌단 얘기도 많이 듣거든요
[웃음]
(민준) 응
[흥미로운 음악]
[혜미의 웃음]
[민준의 웃음]
(혜미) 어머
이런 걸 묻혀 가지고 다니세요?
아기같이
잠깐만
괜찮은데
[퍽 소리가 울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혜미의 놀라는 신음]
(혜미) 교수님, 괜찮으세요? 안 다치셨어요?
(민준) 어, 어
아
괜찮아
(혜미) 어머, 교수님
핸드폰 사셨어요?
예전에 삐삐만 갖고 다니시더니?
[탄성]
많이 발전하셨다
[혜미의 웃음] 뭐, 그렇게 됐어
그러면
(혜미) 저 번호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제가 다음에 문자 칠게요
그건 좀…
네?
네?
(혜미) 네?
알려 주세요, 네?
응? 알려 주세요, 네?
010에…
[휴대전화가 툭 떨어진다]
(송이) 도민준 씨
나한테 할 말 있다 그러지 않았어?
어?
어
(송이) 어떡할래? 나 지금 시간이 딱 되는데
지금 얘기할래?
아니면 영원히 나 안 볼래? 선택해
잘, 잘 가고
아…
아, 뭐야? 저 선 캡 아줌마
천송이 짝퉁처럼 생겨 가지고
(송이) 안 가면 어떻게 돼?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안 가면
안 돼?
[한숨]
그래
뭐, 어딘지 모르겠지만
자기 고향이 어디 있다 쳐
근데 사람이 꼭 자기 고향에서만 살아야 된단 법이 있나?
서울 사람들 반은 토박이 아니라잖아
다 지방에 연고가 있어도
서울을 제2의 고향이거니 생각하고 산다잖아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야
몰라, 어떤 차원의 문제인지
난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송이) 여기서 몇백 년을 살았다며?
왜 하필 지금이야?
여기서 내내 그냥 쭉 잘 살다가
나 만나자마자
나 이제 뭐 좀 해 보려고 하는데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도 못 해 봤는데
왜 지금 간다는 거야?
나랑 같이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감미로운 음악]
안 그럴 거면 나 흔들지 마
넌 그냥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난 여기 계속 살아야 하잖아
네가 있다가 사라져 버린
여기서
그러니까
갈 거면 조용히 그냥 가
나는 내버려 둬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이한경"
(휘경) 큰형이 사고로 그렇게 된 게
꼭 제 나이 때네요
그렇네
자식 잃고 살 수가 있을까 했는데
벌써 세월이 그렇구나
근데
큰형 술 못 먹지 않았어요?
제가 알기론 그런데
그랬지
그런데 왜 그날 술을 먹고 운전을…
(휘경) 다음날이 제 졸업식이었는데
큰형이 꼭 온다고 했었다고요
네 형이 그때 우울증을 앓고 있었거든
[의미심장한 음악] (은아) 우리도 나중에 부검 결과를 듣고 알았었어
약물이 검출돼서
우울증 치료제였어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랑도 잘 안되고 그래서
아마
[울먹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흐느낀다]
(휘경) 제가 아는 큰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어요
뭔가
잘못됐어요
[계속 흐느낀다]
[긴장되는 음악]
(휘경) '아미트리프틸린'
'클로르페니라민'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화드린 이휘경입니다
(석) 반갑습니다
세미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석)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해 주는 이유가 뭡니까?
어쨌든 본인의 형이잖아요
형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휘경) 그러기 위해선
어디까지가 형의 짓인지도
확실히 알아야 하고요
(송이) 자
이 살코기는 너 다 먹어
난 요 콜라겐만 먹을 거야
가지가지 한다, 진짜
(송이) 내일은 우리 돼지껍데기 먹으러 가자
[젓가락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나 진짜 늙으면 안 되거든
어유, 그런 게 목적이면 소주는 먹지 말아야지
이건 괴로워서 먹는 거고
아니, 어쨌든 영화로 복귀도 했겠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빠도 만났겠다
뭐가 괴롭냐고?
[한숨]
[영목의 힘주는 숨소리]
술이나 한잔하시죠
[영목의 한숨] [술병이 달그락거린다]
저 술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 뭐, 어때요? 저하고 둘밖에 없는데
(영목) 쌓아 놓지 마시고
이거라도 드시면서 푸세요
[한숨]
[영목의 시원한 숨소리]
[영목의 한숨]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옅은 한숨]
이미 시작돼 버린 걸 뭐, 어쩝니까, 이제?
예전에
장 변호사님이 저에게 물어보셨죠
그 오랜 세월
어떻게 홀로 살아왔냐고
고독하지 않았냐고요
예, 그랬죠
그저 홀로 살아올 때는
전혀 고독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처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민준) 그 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젠 정말 고독합니다
우주에
저 혼자 남은 것처럼
[잔잔한 음악]
시간을 돌릴 수만 있으면 돌려서
그 사람 안 만났을 때로만 돌릴 수만 있다면
진짜 좋겠어
그럼 나 그 인간이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고
좋아하지도 않을 거야
(송이) 그 사람 없는 날 생각만 해도
나 쓸쓸해 죽을 거 같단 말이야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한숨]
[조명이 지지직거린다]
[민준이 술병을 탁 놓는다] [신비로운 효과음]
(영목) 아, 왜 이래, 조명들이?
[괴로운 신음]
[민준의 한숨]
[조명이 계속 지지직거린다]
(영목) 아이, 저, 선생님
이제 그만 드시죠
[술 취한 숨소리]
[민준의 한숨]
[민준의 술 취한 신음] 아유, 컴컴해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상한 신음]
[조명이 지지직 꺼진다]
[민준의 한숨]
[물병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조명이 지지직 꺼진다]
(송이) 어머
정전인가?
윤재야
초 좀 찾아봐
[신비로운 효과음]
이게 뭡니까?
(영목) 술을 괜히 먹였어
아니, 나는 뭐
물건이나 좀 띄우고 그럴 줄 알았더니
일이 커졌네, 커졌어
[옅은 한숨]
[술 취한 목소리로] 시간도 얼마 없는데
뭐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합니까?
내가 왜
장 변호사님이랑
이 귀한 시간을 축내고 있어야 하냔 말입니다
기분은 알겠는데
또 말씀을 그렇게까지 하실 거는…
나는 지금
1시간, 1분, 1초도 아까운데
이 피 같은 시간에 내가 왜!
장 변호사님이랑…
(민준)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여기가 아닌데
여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에이, 씨
(영목) 에이, 참
취중 진담이라고
이제야 선생님 본심을 알겠습니다
30년 우정이고 나발이고
여자 앞에선 아무 소용 없는… [애틋한 음악]
선생님
네가 거기 왜 있어?
(영목) 뭐 하세요?
(민준) 비켜
(영목) 예?
내가 천송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나왔는데
(민준) 왜 내숭 100단 네가 거기 있어?
비키라고
거기 우리 천송이 자리라고!
(영목) 아이참
들어가세요
(민준) 아유
[지지직거린다]
[민준의 괴로운 한숨]
아유, 힘쓸 데가 그렇게 없어요?
(민준) 에이, 씨
[민준의 괴로운 신음] [신비로운 효과음]
[민준의 괴로운 신음]
[민준의 한숨] [조명이 계속 지지직 꺼진다]
술을 괜히 먹였네
어쩌나, 이걸?
(민준) 비키라고, 이, 씨
[영목의 놀라는 신음]
아, 아, 깜짝이야
언제 들어온 거야? 누구 허락받고?
[어이없는 숨소리]
얼른 일어나지 못해요?
빨리 일어나서 가라고요
(송이) 하나, 둘, 셋 [부드러운 음악]
[어이없는 숨소리]
이렇게까지 경고했는데 못 알아들어?
할 수 없지
난 할 만큼 했어
[냄새를 킁 맡는다]
[냄새를 킁킁 맡는다]
뭐야, 이 인간?
술은 절대 안 마신다더니
(민준) 난
장 변호사님하고 있고 싶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난
난?
(민준) 난…
(송이) 누구랑 있고 싶은데?
누구랑 있고 싶은데?
(민준) 천송이
[힘겨운 숨소리]
[한숨]
[민준의 힘겨운 신음]
[흥미로운 음악]
(민준) 제가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
술 먹고 필름 끊기는 인간이에요
만취해서 자기 집 아닌 데 가서 누워 있고
어젯밤 자기가 한 일 전혀 기억 못 하고
인간이 왜 인간인데요?
자유 의지가 있어서 인간입니다
그런데
알코올 성분 따위에 져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행동을 하는 거
아휴
[혀를 쯧쯧 찬다]
[민준의 힘주는 숨소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송이)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도민준 씨?
아니, 난
어젯밤 분명히…
분명히 만취해서 내 방 침대에 뻗어 계시던데요?
기억이 잘…
제가 정말 그랬다고요?
그랬을 리가
기억이 통…
(송이) 그래서 죽어도 술을 안 먹겠다고 했던 거군요
도민준 씨
이렇게 순간 이동 해서 아무 데나 막 들어가 있고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하고 그러니까
좀
떨어져 있어 봐
- 자꾸 그러니까 - (송이) 그러니까 뭐?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그럼 이건?
[쪽 소리가 난다]
(송이) 가, 다신 보지 말자
장난해?
방금 그건 왜 했는데, 그럼?
- 열받지? - (민준) 뭐?
내 마음이 딱 그래
가만있는 사람 정신 한 개도 없게 이리저리 마구 흔들어 놓고
'나 가야 된다'
(송이) '다신 올 수도 없다'
이러는 거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돼 먹은 짓인지 알아?
당신은 그걸 알아야 돼
[노크 소리가 난다]
(미연) 송이야, 엄마 들어간다
[흥미로운 음악]
[문을 달칵 잠근다]
안 돼!
(미연) 아, 왜?
[사그라지는 효과음] (송이) 아, 나 지금 말할 기분 아니야
(미연) 누가 너랑 말하재?
네 로션 좀 쓰려 그래 집에서 안 가져와서
[사그라지는 효과음] (송이) 나도 로션 다 떨어졌어
아, 나 좀 쉬게 놔둬!
(미연) 아유, 깍쟁이 같은 계집애
[미연이 구시렁댄다] (송이) 뭐야? 왜 안 가?
그거 잘하잖아, 순간 이동 얼른 가
그게…
안 되는데?
뭐야? 올 때 그렇게 와 놓고
왜 못 가?
밖에 엄마랑 윤재 있는데 어쩌라고?
잠깐만
[신비로운 효과음]
[사그라지는 효과음]
왜 이러지?
[민준의 답답한 한숨]
숙취 때문인가?
[흥미로운 음악]
(송이) 뭐야?
초능력 외계인 다 뻥인 거 아니야?
말 시키지 마
(송이) 설마 그 뽀뽀 한 번 했다고
초능력 안 되는 거야?
아니거든!
아, 무슨 초능력도 됐다 안 됐다 하고
(송이) 아, 키스도 했다 하면 앓아눕고
지구인보다 나은 것도 없네, 뭐
[송이의 어이없는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저 여자가 진짜, 씨
치, 초능력이 무슨 소용이래?
아, 깜짝이야
(윤재) 누구랑 얘기하다 와?
누구랑 얘기를 해? 무슨 소리야?
그럼 혼잣말을 그렇게 했다고?
(윤재) 씁, 수상한데
(송이) 수상은 작년 연기 대상에서 했고요
- (송이) 나가 줄래, 좀? - 아이, 씨
(송이) 아참, 윤재야
너 아빠한테 전화해 봤어?
누나가 저번에 전화번호 줬잖아
말했잖아
누나한테나 아버지지 난 기억도 안 난다고
이제 와서 어색하게 무슨…
(송이) 야, 어색해도 아빠가 아빠가 아닌 게 되냐?
암만 편해도 옆집 아저씨는 옆집 아저씨고
암만 어색해도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빤 거야
자기가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아 [문이 탁 여닫힌다]
야, 네가 무슨 외계인이냐?
[잔잔한 음악]
[옅은 한숨]
(남자3) 아, 안녕하세요
(남자4) 안녕하세요
(민구) 안녕하세요 [민구의 웃음]
(박 형사) 근데 그, 나중에
위에서 된통 깨지시는 거 아닙니까?
그, 수사 권한도 없으신 분이 독단적으로 막 영장 발부해 가지고
저도 제 목을 걸고 한번 해 보는 겁니다
(석) 그리고 제가 공판부로 발령 난 거
아마 그쪽에서도 알고 있을 테니
안심하고 있지 않겠어요?
이럴 때 들이닥쳐야 증거를 잡죠
의외로 저돌적이시네
검사님
[긴장되는 음악]
(석) 압수 수색 영장입니다
입원 병동으로 안내해 주세요
얼른요
[문이 철컥 닫힌다]
분명히 말씀드렸죠?
(직원1) 그런 환자분은 없다고
저희가 입은 피해는 어떻게 보상해 주실 겁니까?
[헛기침]
(윤재) 민준이 형
(민준) 아, 윤재야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힌다]
- 어디 가니? - (윤재) 네, 엄마네 집에
아, 누나가 너무 저기압이라 같이 있기 피곤해요
그래, 나중에 또 보자
(윤재) 형
우리 누나 얼핏 세 보이고
아무 생각 없어 보여도요
안 그래요, 걔
사실은 여려 터졌어요
형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는데
며칠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옅은 한숨]
[감미로운 음악]
[시계가 째깍거린다]
[휴대전화 조작음]
(송이) 도민준 씨
지금 뭐 해?
(송이) 나
왜 이렇게 시간이 아깝지?
한 달도 좋고
열흘도 좋으니까
우리 같이…
(송이)
[헛기침]
도민준 씨
(송이) 도민준 씨, 들려?
그래
들려
(송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나 그냥 얘기할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좀 오버했던 거 같아
내가 원래 어렸을 때부터
진짜 변덕 많고 지조 없는 애로 유명했었거든?
나
한 가수도 쭉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H.O.T 좋아했다가
젝키 좋아했다가
지오디 좋아했다가 신화 좋아했다가
나 말이야
팬클럽도 한 다섯 번인가?
갈아탄 애예요
뭐, 아무튼
내가 이렇게 지조가 없어요
가만 생각해 봤는데
나 그쪽
금방 잊을 수 있을 거 같아
[부드러운 음악]
단, 미련은 없게 해 줘
아무것도 못 하고 보내 버리면
미련이 남을 거 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남들 3개월, 1년
2년에 다 할 거
그쪽 말대로
우리 한 달 안에 다 하자
그래서
[떨리는 숨소리]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면
한 달도 안 돼서
나 그쪽이 질릴지도 몰라
내가 원래 그런 애라니까?
도민준
왜?
(송이) 도민준 씨
왜, 천송이?
내가 잘 잊을 수 있게
미련이 없게
잘 잊을 수 있게
도와줘
[옅은 한숨]
그래
그런데
나는 널
[울먹이는 숨소리]
어떻게 잊지?
내 말 들려?
듣고 있어?
[흐느끼는 숨소리]
우리 내일 여행 가자
하루 종일 꼭 붙어 있다 보면
[코를 훌쩍인다]
내가 그쪽 질릴 수도 있잖아
싫어질 수 있잖아
내 말 듣고 있어?
[휴대전화 알림음]
(민준) [울먹이며]
[도어 록 작동음]
아, 깜짝이야
[문이 달칵 닫힌다]
날 밝으면 보자며? [도어 록 작동음]
아직 새벽인데?
그러는 도민준 씨는?
나는 뭐…
혹시 늦을까 봐
나도
갈까?
그러지, 뭐
[산뜻한 음악]
(송이) 그냥, 놀리면 뭐 해?
잡고라도 있자
뭐…
그러지
[불안한 음악] (재경) 그래, 다른 병원 알아봐
그런데 말이야
그 병원을 검사 쪽에 알린 사람이 누굴까?
한 사람
걸리기는 하는데
[노크 소리가 난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나중에 통화해
[휴대전화 조작음]
(휘경) 형
잠깐 시간 돼?
왜?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재경) 무슨 일인데 그래?
[문이 스르륵 닫힌다]
형이 꼭
봤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형이 열어
[한숨]
[휴대전화 벨 소리]
나 지금 식사하러 들어가야 되니까 좀 있다 통화…
뭐?
(남자5) 양민주 씨가 사라졌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재경) 어떻게 된 건데?
[휴대전화 조작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무거운 효과음]
들어가
형수님 기다리고 있잖아
형한테
물어볼 게 많으시대
[차분한 음악] (휘경) 아, 송이야, 어디야?
(송이) 어, 나 조깅하고 있어
아, 무리하지 말지
(송이) 어, 무리하는 건 아니고 어디야?
(민준) 아, 거기 안 서?
도민준 씨도 같이 있어?
[의미심장한 음악]
(휘경) 지난번 병원에서
내가 머리를 다쳐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도민준 씨 당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어
맞아
12년 전 그날도
순식간에 사라져서
도로 저편에 서 있었고
그것도
맞아
(휘경) 처음엔
당신이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당신이
송이를 형으로부터 지키라고 했을 때도
분명히 이상한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이제 알았어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얼마 전
송이를 다치게 했던 그 사고
형이 한 짓 같아
알고 있어
(휘경) 형수가 병원에 감금돼 있는 거 같아
형수를 빼내 올 수 있게
도와줘
형수를 만나면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휘경) 병원을 수색해 주세요
아마 그쪽에서
형수님을 뒤로 빼돌릴 겁니다
환자 명부에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직원2) 네, 알겠습니다
[신비로운 효과음]
[신비로운 효과음]
[신비로운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양민주 씨가 사라졌습니다
나도 형한테 물어볼 게 많아
그래, 알았어
(휘경) 어쨌든
고마웠어
[휴대전화 조작음]
(송이) 뭐야?
누구야?
혹시 저번에 공원에서 만났던
그 어린 여자애야?
번호 달라면서 혀 짧은 소리 내던?
아니야
그럼 다른 여자애야?
(민준) 에이, 아니라고
[포크를 탁 내려놓으며] 나 대본 연습해야 되는데
도 매니저, 나 좀 도와줄래?
[사랑스러운 음악]
[민준의 난감한 숨소리]
(민준) 나 연기 뭐, 이런 거 못해
(송이) 아, 누가 연기하래? 그냥 연습 상대만 해 달라니까
예전에도 매니저들이 다 해 주고 그랬어
뭐, 71신?
(송이) 응
(민준) [어색한 말투로] '하 다이어트? 하지 마'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난 네가 단 1그램이라도 없어지는 거 싫어'
'나에게 넌 그 자체로 완성체야'
'내가 아는 여자들 중 네가 제일 예뻐'
'나이 어린 애들'
'시끄럽고 귀찮기만 하지 다 필요…'
대사가 왜 이래?
아, 원래 그래, 다음 지문
'백 허그 한다'?
(민준) 대본이 진짜 왜 이래?
그럼 이거 촬영할 땐 다 한다는 건가?
해야지, 안 해?
(송이) 아, 그럼
살짝 뭐, 연습 좀 해 볼까?
(민준) 해 보긴 뭘 해 봐?
그다음 대사
[잔잔한 음악]
안 해?
[대본을 사락 덮는다]
그만하자
(송이) 왜?
어디 가?
같이 가
내가 하루 종일 너무 미저리처럼 붙어 다녀서
나한테 질렸어?
[웃음]
[흥미로운 음악]
(윤재) 연애 진짜 처음이에요 우리 누나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래서
(송이) 내가 이러는 건
얘기했다시피 도민준 씨한테 빨리 질리기 위해서야
서로 알 거 다 알고
그럼 환상도 깨질 거고
솔직히 연애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남녀 사이 뻔한 거 아니야?
(윤재) 아버지 떠나고도
엄마보다 누나가 더 힘들어했다고 들었어요
미련도 많고 정도 많고
그런 스타일이에요
강아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못 키우잖아요
중간에 어떻게 될까 봐
그거 무서워서
(송이) 나도 놀 만큼 놀아 봤거든
그러니까 구질구질하게
사랑이 어쩌고 미련이 어쩌고 그러지 않을 거거든
나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깔끔한 성격이야
(송이) 도민준!
도민준 씨!
도민준!
도민준 씨!
도민준!
도민준!
[불안한 숨소리]
도민준!
(민준) 뭘 그렇게 사람을 불러?
[송이의 안심하는 한숨]
(송이) 어딜 갔다 와?
아…
답답해서 산책 좀
놀랐잖아
가 버린 줄 알고
어딜 가, 내가
가 버릴 거 같단 말이야
(송이) 그러니까 내 말은
가면 가는 건데
말도 않고 인사도 않고 가 버릴까 봐
내가 암만 이성적이고 깔끔한 성격이라도
인사도 않고 가 버리면…
안 가
너 두고 안 가
여기 있을 거야
[감성적인 음악]
무슨 말이야?
안 가겠다고
한 달 뒤에도, 두 달 뒤에도
(민준)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라고
안 가도
그래도 괜찮은 거야?
(민준) 그보단
이번에 돌아가지 못하면
머지않아
내가 사라질 확률이 더 크겠죠
죽게 되겠죠
괜찮아
정말
괜찮아?
[피식 웃는다]
[부드러운 음악]
[키보드를 탁탁 치며] 다이어트하지 마
(송이)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나이 어린 애들
시끄럽고 귀찮기만 하지
다 필요 없어
[웃음]
(송이)
아유, 안 되지
그러다 또 곯아떨어지면 어떡해
[송이의 고민하는 숨소리]
(송이)
[키보드를 탁 친다]
[웃음]
[송이의 즐거운 탄성]
[키보드 조작음]
(송이) 안 해?
[대본을 사락 덮는다]
그만하자
왜?
(송이) 어디 가?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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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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