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21
(민준) 내가 가진 가장 근사한 초능력은
시간을 멈추는 건데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그럼
난 네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대단한 남자야
[옅은 웃음]
수없이 시간을 멈추고
(민준) 네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이 얘길 했었어
사랑해, 천송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에 대고
이 얘길 하면
모든 게 흘러가
사라져 버릴 거 같아서
그래서
멈춰진 시간에 대고 말했었어
사랑해, 천송이
사랑한다
내가 아는 시간 속의 당신도
내가 모르는 시간 속의 당신도
사랑해
[밝은 음악] 400여 년 전
낯선 별에 오게 된 후
(민준) 처음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 온 원칙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렸을 때 견디기 힘든 것이라면
처음부터 갖지 말자는 것
난 언젠가 떠날 것이고
떠날 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물건이든 사람이든
소유하지도 사랑하지도 말자
생각했죠
그리고 그 원칙을
잘 지켜 왔고요
그런데
마지막 3개월
[옅은 한숨]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송이) 말해 봐
내가 처음으로 좋았던 게 언제야?
처음 만났던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는지
취한 그녀가 내 집에 들이닥쳤던 때였는지
언젠지 정확히 모를 그 시점부터
그녀가 좋았고
갖고 싶어졌고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졌습니다
(민준)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지
지금 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운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난
이 운명을
이길 수 있을까요?
[활기찬 음악]
(송이) 서울 하늘이 저렇게 반짝이는 거 처음 봐
정말 400년 만의 우주 쇼가 맞긴 맞나 보네
(뉴스 속 앵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미 항공 우주국 나사는
조금 전 10시에 혜성 딥사우스가 궤도를 이탈해서 [활기찬 음악]
빠른 속도로 지구에 접근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뉴스 속 기자1) 지구와 35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지나갈 것으로 예상됐던 딥사우스는
지구로 다가오던 도중
지구 근접 천체들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변경된 것으로 보이며
지구와 불과 4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스쳐 지나감에 따라
많은 수의 유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운석에 의한 피해도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여자1) 자기야, 저기 봐 [카메라 셔터음]
[저마다 감탄한다]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여자1의 탄성]
- (남자1) 와 - (남자2) 진짜였네?
- (여자2) 와, 신기하다 - (남자3) 와, 이거 뭐야?
[여자2의 웃음과 탄성]
(여자3) 예쁘다
(송이) 우리 소원 빌까?
저건 그냥 돌 같은 거야
(민준) 사실
지구에 있으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게
사람들이 별똥별에 소원 비는 거였어
그래서 안 빌 거야?
[옅은 한숨]
[함께 컵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송이의 한숨]
[신비로운 음악]
[저마다 감탄한다] (남자4) 아, 저기 봐 봐
(남자5) 어, 왔어, 왔어, 왔어
- (남자6) 우아 - (남자7) 어? 저기 봐, 저기 봐
- (여자4) 야, 유성우, 유성우 - (남자8) 와, 진짜 멋있다, 저거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남자9) 와, 멋있죠?
- (관측자1) 유성우, 유성우 - (관측자2) 어?
[관측자2의 탄성]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사람들의 탄성]
(여자5) 어? 예담아, 저기
(아이) 우아
[여자5의 웃음]
엄마, 저것 좀 봐
(여자5) 어
예담아, 소원 빌어, 소원
(아이) 네
[사람들의 비명]
[소란스럽다]
[사람들의 탄성] [카메라 셔터음]
[남자10의 탄성]
(남자10) 야, 이쁘다
와, 저거 봐, 저거 봐, 저거 봐
[사람들의 탄성]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기계 엔진음] [사람들의 탄성]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여자6의 탄성] (남자11) 뭐야?
바, 방금 봤어?
(여자6) 어, 유성우잖아
(남자11) 아, 방금 건 좀 다르지 않았어?
아, 무슨
UFO 같았는데?
[웃음]
UFO 본 적이나 있어?
[놀라며] 저기, 저기, 저거 봐 봐
(여자6) 오, 너무 예쁘다, 어떡해
- (남자11) 어 - (여자6) 어 [여자6의 웃음]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기계 엔진음]
[몽환적인 음악] [기계 작동음]
[기계 작동음]
[기계 작동음이 울린다]
[기계 엔진음]
[날카로운 효과음]
[신비로운 효과음]
[민준의 떨리는 숨소리]
[한숨]
천송이
내가 사랑하는
천송이
[심호흡]
추운데
여기저기 파인 거 입지 마
넌 가릴수록 예뻐
[잔잔한 음악]
(민준)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키스 신
백 허그 신
이딴 거 안 돼
격정 멜로
안 돼
아프지 말고
악플 이딴 거 보지 말고
혼자 청승맞게
노래 부르다가 울지도 마
밥 혼자 먹지 말고
술 먹고
아무 데나 들어가지 말고
[떨리는 목소리로] 밤에
괜히 하늘 보면서
이 별인가
저 별인가
그딴 짓도 하지 마
[떨리는 숨소리]
여기서 보이는 곳이 아니야
(민준) 그렇지만
난 매일 볼 거야
[송이가 훌쩍인다]
거기서
네가 있는 이곳을
[송이가 흐느낀다]
매일 바라볼 거고
매일
돌아오려고 노력할 거야
어떻게든
[떨리는 숨소리]
[울먹이며] 네 옆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야
꼭 그럴 거야
그런데
[울먹이는 숨소리]
만약에
만약에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민준의 울먹이는 숨소리]
다 잊어버려
[코를 훌쩍인다]
전부 다
어떻게 그래?
어떻게 잊어?
내가 진짜 바보냐?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어? 도민준
대답해 봐, 어?
[흐느낀다]
대답해 봐, 도민준
거기 있어?
거기 있어?
[떨리는 숨소리]
[울먹이는 숨소리]
아, 아직 아니지?
아직 아니지?
[감미로운 음악] 자기 할 말만 하고
이렇게 가 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
난 인사도 안 했는데
너 할 말만 하고 가?
장난치지 마, 어?
나와!
나와, 제발!
어?
제발
[흐느낀다]
[흐느낀다]
(범) 간다고 받아 줄까요?
(안 대표) 송이 걘 몰라도
송이 엄마는 이걸로 게임 끝이야
이게 얼마짜리 백인데
오히려 송이 누나는 쿨해요
어머니가 뒤끝 있는 여자란 말이에요
[한숨]
그동안 내가 좀 심했나?
엄청요
아니야, 아니야
희망을 잃지 말자
(안 대표) 응, 좋아해 주실 거야
응, 응, 응
[도어 록 작동음]
(안 대표) 어머니!
[안 대표의 웃음] (범) 안녕하세요
(안 대표) 아이고, 왜 이러세요?
일단 이것부터 좀 받으시고
2014 SS 신상 라인입니다, 어머니
[안 대표의 웃음]
- 안 대표 - (안 대표) 예
나 이번에 힘들면서
있던 백도 다 팔아 치웠어
아이고, 그러셨어요?
그럼 더 잘됐네요
(안 대표) 어머님의 빈 드레스 룸 제가 채워 드립니다
[안 대표의 웃음] 안 대표 감 떨어졌니?
왜 말의 포인트를 몰라?
나 지난 석 달
정말이지 멘붕의 연속이었고
배반의 계절이었다 이 얘기야
그때 안 대표 어디 있었니?
저야
집, 회사, 집, 회사
(안 대표) 집, 회사
어머니!
온 국민이
송이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요
한유라 씨 사건 오해해서 정말정말 미안하다고요
오죽하면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천송이 미안해'이겠어요?
이런 기회 또 없잖습니까?
이참에 어서 빨리 재기를 해야 하고요
이왕 재기를 할 거면
이 안동민이와 함께
솔직히
저만큼 송이를 잘 아는 사람 없잖습니까?
- 안 대표 - (안 대표) 예
- 윤범 씨 - (범) 네
나 계약금이고 신상 백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우리 송이 좀
어떻게 해 줘 봐
[슬픈 음악]
(미연) 우리 송이
벌써 며칠째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도 매니저 집에 가서 나오지도 않아
도 매니저 걘 갑자기 어디로 튄 건지 보이지도 않고
[민준의 한숨]
(민준) 나 없다고 여기 있는 거 함부로 만지고 그러면 안 된다, 너
저번에 네가 깬 도자기
무려 허균 선생의 친필 사인이 담긴…
내가 얘기했지?
이천 휴게소 가면 있는 그런 게 아니라고, 이게 다
(송이) 알았어
[어두운 음악]
(판사) 사건 브리핑해 주세요
(석) 피의자 이재경은
2007년 3월 5일
하늘정신병원의 병원장 신현태 씨와 공모
전처인 양민주 씨를 7년 동안 정신 병원에 감금하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2014년 2월 13일
다시 한번 납치, 감금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범중의 헛기침]
또한 2013년 12월 26일에 발생한
고 한유라 씨 사망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검찰의 지목을 받았으며
스스로 범인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발언 외에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이재경 씨의 개인 비서 이신 씨가
모든 사실을 증언한 점을 미뤄
검찰은 피의자 이재경 씨를
이번 사건의 유력한 진범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이신 씨가 여죄가 있음을 시사했고
피의자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뿐만 아니라
도주의 우려 또한 있다는 점을 들어
구속 수사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긴장되는 음악]
(판사) 피의자 측 변호사
변론하세요
(변호사) 저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긴장되는 음악]
(판사) 그럼
영장 실질 심사를 마치겠습니다
(재경)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버지?
저한테 실망하셨다는 거
다 압니다
그렇지만 모든 게 곧 밝혀질 거예요
이 모든 건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걸요
일단
휘경이를 좀 멀리 보내 주세요
그리고?
모든 건
제 수행 비서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 될 겁니다
[생각하는 숨소리]
그 친구 부모님하고 접촉을 해 주세요
- 생활이 어려운 집안이라… - (범중) 재경아
네, 아버지
네 이름으로 된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잘하셨습니다
일단
여론을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범중) 그리고
나는 널 위해서
그 어떤 것도 해 줄 마음이 없다
[의미심장한 음악]
너는
이 추운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거다
가엾구나
아버지
제…
제가, 제가 실형을 받는 순간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생각 안 하십니까?
일단 주가부터…
나는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전문 CEO한테
모든 걸 맡길 거다
휘경이한테 어떤 얘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결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오신 회사입니다
(범중) 그랬지
나는 평생 동안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내 집에
어떤 괴물이 커 가고 있는지 난 몰랐다
그 괴물이
내 아들을 잡아먹을 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쓸쓸한 음악]
네가 어렸을 때
네 친구와 싸우다가
그 녀석의 한쪽 눈을 실명하게 만들었던
그 사고 때
나는 그 사건을
[울먹이며] 돈으로 무마하는 게 아니었다
다…
다 내 잘못이었어
네가
한경이를
[흐느끼며] 그렇게 만들 줄이야
휘경이가
그러던가요?
제가 형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재경의 웃음]
아, 그걸 믿으세요?
그 음성 파일
조작된 겁니다
(재경) 휘경이가 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작 부리는 거예요
[탁자를 쾅쾅 치며] 속으시면 안 됩니다!
[가다듬는 숨소리]
일단 절 여기서 꺼내 주세요
제가 나가면 다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휘경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걸요!
이제 그만해라!
다 끝났다
내가 왜 여길 얌전히 들어왔는데요?
아버지가 저한테 이러시면 곤란하죠
안 됩니다
전 할 일이 아주 많다고요
내가 나갈 겁니다
(재경) 내 힘으로
내가 못 할 거 같습니까!
[성난 숨소리]
방해만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재경이 씩씩댄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휴대전화 조작음]
(민준) 문자 안 봐?
뭐요?
문자 확인하려 그랬다며?
[휴대전화 조작음]
뭐야?
(송이) 없잖아?
(민준) 없어?
[한숨]
[초인종이 울린다]
[도어 록 작동음]
치맥 배달 왔습니다
[스위치 조작음]
(휘경) 뭐 해, 캄캄한 데서?
(송이) 어떻게 알고 왔어?
(휘경) 어머니가 전화하셨어
[휘경의 한숨]
아, 여기서 계속 뭐 해?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싫어
[한숨]
[한숨]
그래서
네가 그렇게 기다리는 도민준 씨는 지금 어디 있는데?
(휘경) 언제 오는데?
아니, 왜 갔는데?
[한숨]
나는 그 자식한테 분명히 말했었어
만약에 너 혼자 두고 가 버리면
내가 그 자리 차지할 거라고
아, 그 얘길 했는데도 가냐?
휘경아
그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날 위해서
내가 지금 못 견디겠는 건
내가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거야
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고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 사람 거기서도 최선을 다할 거야
나한테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아마 거기서도 노력하고 있을 거야
그러다 끝끝내 못 돌아올 수도 있지만
나 안 잊어버릴 거야
하나도 안 잊어버리고
열심히 기다릴 거야
[한숨]
기다릴 거면 먹어 가면서 해
[부스럭거리며] 나도 부탁받은 게 있거든
부탁?
[부드러운 음악]
내가 조만간
어디 가게 될지도 몰라
천송이 혼자 있게 되면
네가 제일 걱정이야
(민준) 그런데
제일 안심이 되기도 해
그러니까
부탁할게
뭘?
옆에 꼭 있어 줘
야, 그건 네가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하거든?
누구한테 누굴 부탁해? 쯧
단
옆에 있어 달라는 거지
차고 들어가 그 자리에 앉으라는 건 아니야
아,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한다고
네가 네 식대로 하듯이
나도 내 방식대로 천송이 지켜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어?
그래
그러니까 먹어
(휘경) 어머니가 걱정 많이 하셔
아
죽도 사 왔는데 이거 먼저 먹을래?
[휘경이 부스럭거린다]
왜?
살아났어
뭐가?
잘 도착했나 봐
이제 괜찮나 봐
안 아픈가 봐
무슨 소리야, 너?
그런 게 있어
풀때기들아
이제 아프지 마
(송이) 내가 잘 보살펴 줄게
[도어 록 작동음] 예, 어머니
예, 송이 집에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이에요
예, 죽도 먹었고요
네
걱정 마세요
네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나쁜 자식
[입바람을 호 분다]
[입바람을 호 분다]
(송이) 뭐야?
이거 도민준 씨 건데 네가 왜 갖고 있어?
(윤재) 민준이 형이 준 건데?
(송이) 이걸?
널? 왜?
[감미로운 음악]
(윤재) 형
왜 부르신 거예요, 저?
(민준) 어
형이
여행을 좀 갈 건데
제가 생각하는
그 여행인 건가요?
(민준) 응?
자전거 필요하세요? 앞에 바구니 달린 거?
[민준의 난감한 숨소리]
(민준)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조금 긴 여행이 될 거 같은데
너한테 부탁을 하고 싶어서
네, 말씀하세요
어떤 부탁이든
형 없는 동안
누나 말 잘 듣고
(민준) 누나 속 썩이지 말고
누나가 하라는 대로 좀 하고
아이, 그건 좀
아무리 형 부탁이지만…
망원경
[익살스러운 효과음]
갖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너 줄게
(윤재) 두 개 다?
두 개 다
누나가 죽으라면 죽을게요
[웃음]
그래
누나 힘들게 하지 말고
네가 옆에서 든든하게 잘 지켜 줘
고마워요, 형
저 형 한 번만 안아 봐도 돼요?
아니, 절대 안… [윤재의 감격하는 숨소리]
뭐야?
이놈 저놈한테 날 다 부탁하고 갔어
(윤재) 근데
우리 민준이 형 여행은 언제 끝나?
어디 가신 건데?
[스태프의 한숨]
천송이 씨 오늘도 전화기 꺼져 있어요
아휴
(감독) 뭐야! 씨
개인 사정 있다고 해서 2주 줬으면 됐지
이게 요새 다시 물 좋아진다 하니까
옛날 버릇 나오는구먼
이걸 그냥 확 잘라 버려, 그냥
잠깐만
아휴, 아, 머리야
(세미) 감독님
(감독) 응?
(세미) 송이 자르시게요?
(감독) 에?
생각 너무 잘하셨어요
(세미) 안 그래도 요즘
여기저기서 천송이 기다린다는 기사 뜨고
사람들 반응도 그렇고
보니까 수정고도 송이 쪽으로 은근 몰리는 거 같고
솔직히 저 좀 그랬거든요
이참에 송이 확 자르고 가시죠?
저 하나로도 흥행
어떻게든 되겠죠, 뭐
설마 망하겠어요?
[당황한 웃음]
아니, 그게, 자르겠다는 게 아니고
자르고 싶다는 거지
(감독) 세미 씨 천송이랑 연락 안 돼?
친구잖아
안 친해요
[발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헤어 디자이너) 어떻게 해 드릴까?
짧게 쳐 주세요
여기서 더 짧게?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미련도 함께 자르고 싶어 그래요
또 남자?
이번엔 또 왜 깨진 건데?
제 나름대로
밀당 중이었던 남자거든요
비록 밀은 없고
당, 당, 당, 당 당기기만 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믿고 있던 친구 년이랑…
어머나
하, 내가 그 연애 상담도 다 해 줬거든요
내 덕에 잘된 셈이죠
나쁜 년이네
아휴
또 그렇게 나쁜 년까지는 아니고요
(헤어 디자이너) 남자랑 깨질 때마다
머리를 이렇게 잘라 쌓으니
머리 기를 날이 없지
[입소리를 쯧 낸다]
[한숨]
[송이의 한숨] 어서 오세요
[흥미로운 음악]
[한숨]
너 뭐냐?
[놀라는 신음]
저도 잘라 주세요
[한숨]
아니다
밀어 주세요, 빡빡
(홍 사장) 야
넌 안 돼
너 짧은 머리는 뭐,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본바탕에 자신감이 있을 때 하는 거야, 이 스타일이
넌 머리발이 반인데
안 돼
[옅은 한숨]
[송이의 웃음]
야, 그게 그렇게 웃기냐?
아, 너무 웃기잖아, '안 사요'
[송이의 웃음]
아, 너무 도민준다워
나 진짜 미치겠다
야, 나는 그날 밤
종이학 천 마리들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데
[송이의 웃음]
(송이) 아, 도민준 표정 어땠을지 진짜…
또 해 줘
뭘?
또 해 줘, 그 사람 이야기
야, 내가 무슨 추억이랄 게 있어야 또 하지
그게 다야
[울먹이며] 그럼 다시 해 줘 '안 사요' 이야기
천송이
[송이가 흐느낀다]
송이야
너 울어?
[송이가 흐느낀다]
[안타까운 숨소리]
[초인종이 울린다]
[힘주는 숨소리]
[송이가 계속 흐느낀다]
(세미) 복자야, 오랜만이다?
(홍 사장) 나 개명한 지 10년 됐거든?
혜인이라고 불러 줘라, 제발
[홍 사장의 한숨]
(세미) 얘 왜 이래?
[작은 목소리로] 도민준 씨 때문에
야, 천송이
감독님이 너 내일도 안 나오면 자른대
내일 촬영 스케줄표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니?
세미야
넌 없어?
너도 도민준 씨 만났었잖아
(송이) 그때 뭐, 재밌는 일 없었어?
그냥 아무 얘기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좀 해 줘
어?
[송이가 흐느낀다]
[홍 사장의 한숨]
도민준
내 방으로 좀 와 봐
[놀라는 숨소리]
[허탈한 숨소리]
뭐 하냐?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그냥
천송이 맞냐?
얼마나 걸릴까?
(송이) 그 사람 얘길 해도 안 아프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생각이 날 때
안 아픈 거야
무슨 소리야?
넌 지금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잖아
생각이 안 날 때가 없잖아
(세미) 생각을 안 하는 게 더 어렵잖아
[부드러운 음악]
근데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사람 생각이 문득 나
'아, 내가 지금 딴생각에 빠졌다가'
'그 사람 생각이 나는구나' 싶어
그때가 되면 안 아픈 거야
가끔씩은 딴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너 무슨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 같다
그러려면 얼마나 걸려?
15년
[송이의 헛웃음]
(송이) 장난해?
(세미) 난 15년 걸렸어
안 아파, 이제
[옅은 웃음]
너 힘들었겠다
[한숨]
정말로 그렇게 오래 걸리면
하, 나 어떻게 살지?
[한숨]
세미 말이 맞아요
전 지금 그 사람 생각하기보다
안 하기가
더 어려워요
그래서
[새가 지저귄다]
(송이) 함께 갔던 곳엘 혼자 가고
되새기고
그리워하고
그 사람 흔적을 찾고
기다려요, 그 사람을
그리고 그날이 왔어요
우리가 약속했던
100일
약속 장소는
남산 타워
[다가오는 발걸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감미로운 음악]
[옅은 웃음]
이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부드러운 음악] 그전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사람을 본 거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니, 봤어요, 그 사람, 도민준을
근데 이건 정말 말이 안 되잖아요
제가 점점 미쳐 가고 있는 걸까요?
(영목)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웃으며] 정신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아, 글쎄, 지난번에는요
[평화로운 음악]
이제 다 좋으신가 보네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민준) 장 변호사님
예?
(영목) 선생님!
[신비로운 효과음]
[옅은 웃음]
[옅은 웃음]
[영목의 웃음]
(송이) 저도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갔었는데요
무슨 급성 스트레스로 인한
해리 현상, 뭐, 이라고 하더라고요
다신 못 볼 곳으로 간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과 같은 스트레스를 주는 거라고요
[깨닫는 숨소리]
아마 장 변호사님께도
도민준 씨가 그런 사람이었나 봐요
[한숨]
[청소기 작동음]
(윤재) 엄마
내가 발견한 게 새로운 소행성이었어
뭐?
내가 우리 민준이 형 망원경으로 발견한 거
그게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소행성이었다고
뭔 소리야, 이게?
(윤재) 한 번 관측했을 때 나도 이게 뭔가 싶었지
그런데 여러 번 추가 관측했는데 계속 보이더라고
그래서 위치, 밝기, 공전 주기
이거 다 학회에 정식 보고 했는데
국제 천문 연맹에서 임시 번호를 받았어
뭐야?
난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래서, 이게 좋은 거야?
- (윤재) 좋은 거지 - (미연) 왜?
내가 발견한 소행성엔 내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이야
그래?
예를 들면
'양미연 별', 이렇게?
아니
(윤재) '도민준 별'
(미연) 뭐야?
그 외계인인지 사기꾼인지
네 누나 혼만 쏙 빼놓고 튄 놈 이름을 거기다 왜 붙여?
형은 여행 중인 거야
아무튼 꼭 됐으면 좋겠다
(윤재) 이거 확정되려면 3년 정도 걸린다는데
(미연) 3년씩이나? 아이고야
어느 세월에?
[청소기 조작음]
[청소기 작동음]
[밝은 음악]
"아름다움을 넘어"
"아름다움"
[경쾌한 음악] (기자2) 어, 천윤재 씨는
우리나라에서 스물한 번째로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한 분인데요
[타이머 작동음] 발견 3년 만에 국제 천문 연맹에서
[카메라 셔터음] 정식 인정을 받으시고
아, 본인이 직접 소행성에 이름까지 붙일 수 있게 되셨습니다
어, 현재 대학생이신가요?
노량진에서 삼수 중입니다
아, 네
아, 소행성 관측이나 자료 처리
(기자2) 보고와 같은 일련의 과정엔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들었는데요
자, 일반인들은 어려운 일이고
어떻게 가능하셨습니까?
제 멘토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아, 혹시 이번 소행성 이름이…
네, 맞습니다
제가 발견한 소행성 이름인
도민준 씨입니다
[카메라 셔터음]
- (기자2) 수고하셨습니다, 예 - (윤재)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인사한다]
(홍 사장) 예,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자2가 호응한다]
[문이 달칵 열린다] (윤재) 아, 가게나 보지 뭐 하러 따라와?
[문이 달칵 닫힌다] 그래도
옆에 케어해 주는 누가 딱 있으면
사람이 있어 보이는 거야 [윤재의 못마땅한 숨소리]
(홍 사장) 다음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자 [휴대전화 벨 소리]
[놀라는 숨소리]
아, 네, 기자님, 저 홍 매니저예요
네, 지금 저희 출발합니다, 네
[휴대전화 조작음]
가, 그럼
[흥미로운 음악]
누나 가게
요새 안정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거든?
[어이없는 웃음]
(홍 사장) 우리 윤재는
이대로 훈내 폴폴 풍기면서 잘 크다가
누나한테 와라
난 막살고 싶지 않다
아유 [문이 달칵 여닫힌다]
밀당은
[박 형사의 개운한 헛기침]
[박 형사가 코를 훌쩍인다]
(박 형사) 얘기 들으셨어요? 예?
이재경 씨가 항소 포기했다는데?
네
S&C에서 전혀 손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좀 이상하고요
그러니까
얼마 전엔
담당 교도관에게 요청해서 지금 보호실에 있답니다
왜요?
자신이 죽인 사람이 자꾸 나타난다고
호소를 한답니다
(박 형사) 으응
(석)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또 아무런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양극성 정동 장애를 겪을 수 있는데
딱 그런 케이스 같다고요
자기가 한 짓이 있는데 그놈이, 씨
[박 형사의 헛기침]
그런데요
얼마 전에 이재경이 그랬대요
뭐라고요?
[한숨]
도민준을 봤다고
진짜 미쳤네, 어
[헛기침]
[옅은 한숨]
- (여자7) 언니, 여기요 - (여자8) 여기 좀 봐 주세요
- (여자9) 송이 언니 너무 예뻐요 - (안전 요원) 사진 찍지 마세요
[카메라 셔터음] [사람들이 저마다 말한다]
- (범) 아, 형 - (휘경) 어, 범아
- (민아) 안녕하세요 - (범) 고맙습니다
(휘경) 야, 이거, 뭐
벌써부터 사람들 반응이 장난이 아닌데?
요번 드라마 예감 좋은데?
내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
어?
이번 작품 제작비 반 이상을 너희 회사가 댄다는
(휘경)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회사 요새 엔터 쪽에 투자 많이 해
이게 우연일까? 벌써 다섯 작품째
내 작품마다 너희 회사가 투자를 한다는 게
(휘경) 그래?
다섯 작품째 그래?
난 전혀 관여를 안 해서 몰랐는데?
이건
우연이 아니고 운명 아니냐?
[옅은 웃음] (관계자1) 아이고, 이 팀장님
[관계자1의 다급한 숨소리]
현장까지 오셨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아, 예, 뭐
(휘경) 지, 지나가다가
(관계자2)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뭐, 다 해 주시니까
제작사 입장에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런 협찬사만 있으면
[웃으며] 일할 맛 나죠
[어색한 웃음]
[난감한 신음]
가, 가서 일들 보시죠, 예
매번 보내 주시는 밥차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있습니다!
- (관계자2) 감사합니다 - (관계자3) 감사합니다
[멋쩍은 웃음]
관여를 안 해?
운명이야?
네가 작품 보는 안목이 뛰어나서 잘될 것만 짚잖아
그래서 겹친 거야
어유, 정말
[의미심장한 음악]
- (범) 누나 - (민아) 언니 [카메라 셔터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송이) 도민준
- (범) 죄송합니다 - (민아) 잠시만요
- (송이) 도민준 - (범) 죄송합니다
[카메라 셔터음] [송이의 떨리는 숨소리]
(민아) 언니
[송이의 다급한 신음]
- (송이) 도민준 - (남자12) 뭐야?
[범과 민아가 말한다]
(송이) 도민준
- (여자10) 왜 저래? - (송이) 도민준
도민준
도민준
도민준!
(송이) 도민준!
[다급한 숨소리]
[송이의 울먹이는 숨소리]
도민준!
그만해, 송이야
그만
도민준!
[흐느낀다]
괜찮아
진정해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 (범) 안녕하세요 - (미연) 어
- (민아) 안녕하세요 - (미연) 얘, 무슨 일이야?
(미연) 촬영장에서 왜 울었는데?
아니, 중요한 시상식 앞두고 왜 그랬어?
괜찮아?
- 아빠 - (민구) 어, 그래
보고 싶어
[잔잔한 음악]
(메이크업 아티스트) 언니 우시면 안 되는데
아, 눈 화장…
[흐느끼며]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서 죽을 거 같아요
[송이가 흐느낀다]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사람들의 환호] [활기찬 음악]
[사람들의 환호가 계속된다]
[경쾌한 음악] [사람들의 환호가 커진다]
(남자13) 천송이 씨!
여기 좀 보세요!
예쁘다, 천송이!
[기자들이 저마다 말한다]
[사람들의 환호가 계속된다]
[신비로운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신비로운 효과음]
(민준) 내가
이렇게 막 다 파진 거 입고
쏘다니고 그러지 말랬지?
[송이의 떨리는 숨소리]
[감성적인 음악]
도민준?
그래, 나야
[떨리는 숨소리]
나라고
[송이의 떨리는 숨소리]
미안해
너무 늦었지?
[코를 훌쩍인다]
[떨리는 숨소리]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사람들이 저마다 놀란다]
(민준) 아주 돌아온 거냐고요?
어떻게 설명을 해 드려야 할까요?
돌아오긴 왔어요
그런데 곧 사라졌죠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 울린다]
[저마다 놀란다] (기자3) 어, 뭐야?
(기자4) 어디 간 거야?
(기자5) 뭐야?
(기자6) 도민준 씨 어디 갔습니까?
(기자7) 어디 갔어? 어디 갔어?
(기자들) 천송이 씨!
[기자들이 저마다 질문한다]
(민준) 3년 전 이곳을 떠날 때
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죠
일명 웜홀
[몽환적인 음악] [신비로운 효과음]
그곳에 돌아가서
모든 걸 회복한 후
다시 돌아오기 위해 애썼습니다
어차피 나에겐
그곳에서의 길고 긴 시간은 필요 없었습니다
지구에서의 짧은 시간만 필요했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은
5초에서 10초 남짓
[신비로운 효과음]
(민준) 그때가 첫 성공이었습니다
물론
말 한마디 못 건네 보고 사라져야 했지만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물론 미친 것도 아니었고요
두 번째 성공했을 땐
말 한마디 건넬 시간은 있었습니다
(민준) 그게
천송이가 아니라는 게 아쉬웠지만
[신비로운 효과음]
(영목) 이제 다 좋으신가 봅니다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장 변호사님
예?
[신비로운 효과음]
(민준) 그 뒤로도 수많은 시도를 했고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성공했지만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한 적도 있었죠
[긴장되는 음악] [불안한 숨소리]
[신비로운 효과음]
도민준 너…
완벽하게 다 잃었나?
돈
가족
명예
너의 사람들
[겁먹은 숨소리]
확인하러 왔어
[힘없는 숨소리]
[재경의 괴로운 숨소리]
중요한 건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송이) 네, 중요한 사실이죠
이번엔 1년 2개월째 머무르고 있거든요
[송이의 웃음]
[감미로운 음악]
완벽하게 행복하다
[반짝이는 효과음]
(민준) '옛날에'
'신기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은 토끼가 있었답니다'
[감성적인 음악]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거
힘들지 않냐고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기도 해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거든요
[옅은 웃음]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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