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3
건물 앞.
-준형이 차에 급히 탄다. 허겁지겁 물휴지로 손을 닦는다. 아, 정신없어.
-저만치 다미와 장호가 오는 것 보인다. 막대 사탕을 하나씩 물고서.
선재 거실.
-선재가 황황히 주방에서 욕실로. 조그만 대야를 들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니다.
-욕실 안 혜원, 아픈 것 참으며 뚜껑 닫힌 변기에 한쪽 발 들고 앉아 있다. 선재가 혜원의 발 앞에 대야를 놓는다.
-욕실 앞에 놓인 매트며 그 안의 구형 세탁기. 커다란 함지엔 샤워기가 걸쳐져 있고, 빨랫감, 비누통, 샴푸병 등등.
선재 여기(혜원의 발 잡아 대야에 담근다)
혜원 뭔데?
선재 끈끈이가 콩기름에 녹거든요. (두리번, 비누통의 수세미 집어든다)녹은 담에 비누칠,
혜원 (선재 손의 수세미 나꿔채는)내가 할게.
선재 (움찔)아,네,
-다미와 장호 말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현관문 열린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선재. 혜원,?
-선재, 손가락 입에 대며 다미와 장호 마구 밀어낸다. 그 서슬에 혜원의 구두가 나동그라진다.
다미 왜애,
장호 누구,
선재 교수님, 아니, 암튼,
-기어이 내보내고 문 닫는 선재. 혜원의 구두를 반듯하게 놓는데,
혜원 친구들이야?
선재 가,갔어요.
-선재, 욕실 문 옆 벽에 붙어 선다(혜원에게 자기 모습 안보이려고). 이 상황이 너무나 무참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욕실 안의 혜원, 발바닥을 수세미로 살살 문지른다.
혜원 신기하네...깨끗이 닦아져.
선재 네, 그게 원래,
혜원 너무 떤다,너? 방금 전엔 제법 과감하더니?
선재 죄송합니다.
혜원 뭐가?
선재 과감,아니, 떨려서요.
혜원 그래가지구 시험 어떻게 볼래.
선재 ....
혜원 내가 괜히 왔나보네.
선재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니구요, 네, 분명히 아닌데, 근데 제가 너무, 아,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혜원 (웃음)뭐래는 거야?
선재 (들릴락 말락)그러게요.
-조금 후, 혜원이 욕실 앞에서 발 닦고 선재가 방에서 급히 나온다. 혜원의 외투와 가방을 들고 있다.
혜원 뭐야, 가라구?
선재 얼른 가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교수님 밖에서 기다리시니까,
혜원 너 치는 거 듣구 가야지.
선재 내일 제가 갈게요. 가서 들려드릴게요. 예비소집 끝나구,
혜원 (본다)
선재 (떨려서 못 치겠습니다)
혜원 (외투 받아 입는다)내일 오면서 전화해.
선재 네...번호 좀,
혜원 (가방 받아든다)강교수한테 하믄 돼.
선재 선생님 꺼요.
혜원 니 선생은 내가 아니라 강준형 교수지.
선재 싫은데요.
혜원 (이건 또 무슨)
선재 아닌데요...저는, 그날, 선생님께,
혜원 글쎄 내가 왜 니 선생,
선재 왜냐믄요,왜냐믄,(좀 더 쩔쩔 매다가)그건 그날, 선생님 첨 만나던 날 정해졌어요. 운명적으루.
혜원 (픽 웃음)
선재 저는 퀵 배달을 하기 땜에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단골두 있긴 하지만 거의 다 첨보는 사람들이예요. 저랑 아무 상관두 없구 제가 누군지 관심두 없죠. 저두 관심 없구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 연주를 더 듣겠다 그러셨구, 제가 어떤 놈인지 관찰하셨구, 어떻게 사냐구 물어보셨구, 저랑 같이 연주를 해주셨어요. 저는 그날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영혼이,(멈칫. 이런 말 써도 되나 싶지만) 거듭난, 거죠.
혜원 과하다...말하구 보니까 너두 오글거리지?
선재 (본다.정색)아니요, 진심인데요...
혜원 (얼핏 당혹.그래서 웃음)
명화 식당.밤.
-다미와 장호, 명화를 거들어 뒷정리. 냅킨통 채우기, 수저통 정리, 식탁 닦기 등.
장호 진짜 잘 치나봐. 교수님이 집에까지 막.
명화 글쎄 뭐, 운이 트이는 건지.
장호 오오, 엄마 어깨에 힘 들어갔다. 너,선재 뜨기 전에 도장 콱 찍어 놔라.
다미 어. 콱.
명화 콱은 무슨,
장호 (바깥을 내다본다)어? 간다.
식당 앞. 밤.
-선재가 허리 꺾어 인사하고 준형의 차 떠난다.
-식당에서 나오는 명화, 다미, 장호.
명화 그냥 가시게 하믄 어떡해. 말을 했어야지. 엄마두 인사 좀 하게.
선재 어어, 그게,
-다미, 달려들어 선재 얼굴 싸쥔다. 입맞추려는. 선재, 다미 손아귀 떼내려 하면서 고개를 이쪽 저쪽 돌려가며 피하는.
장호 오오, 박다미 홧팅. 19금 가자!
명화 무슨 짓이야!
-명화가 다미를 떼내고 선재, 도망치듯 들어간다.
다미 야!
명화 (다미 등을 한 대 때리는)겁두 없이, 길바닥에서.
장호 새끼 열나 인색하네. 입술 정도 걍 받아주지.
명화 (장호와 다미의 등 떠민다)늦었어, 가.
다미 선재 너 붙구 나서 쌩까믄 가만 안둬. 아줌마두.
명화 시끄러. (들어가려다가)총각!
-거대한 덤프트럭이 서고 기사가 내린다.
명화 차 거기다 세우믄 어떡해.
기사 (가면서 건성)봐 줘요. 아침 일찍 빼는데 뭘.
명화 안돼. 우리 아들 운빨 막혀. 저 아래 공사장 앞에 자리 있잖아. 안 그럼 민원 넣어 버린다?
-가다 말고 서서 돌아보는 장호와 다미.
선재 방. 밤.
-선재, 혜원의 명함 보면서 번호 찍는다. 저장. 오혜원.
-인물 검색 해본다. 오혜원.
-혜원의 사진 및 학력, 경력. 서한 아트센터 기획실장. 가족 배우자 강준형 서한음대 피아노과 교수.
-관련 기사들 다 뒤져보는. 혜원 인터뷰도 있다. 큼직한 사진과 함께 기사. 선재, 혜원의 사진 한참 보다가 마우스로 줄 그어가며 꼼꼼히 읽는다. 서한음대 피아노과 수석 입학. 3학년 때 건초염으로 진로 변경. 유학. 예술 경영으로 예일대 석사...
-선재, 멍...대단하신 분...
-클래식 사이트 접속, 바삐 자판 치는 선재.
선재 소리 막귀형, 내가 제대로 귀인을 만났어.
혜원 서재. 새벽.
-까운 차림 혜원, 서서 책상 모서리에 포스트잇 두어 장 붙이고 정리하다가 컴퓨터 화면 본다.
-나천재 님의 쪽지.
선재 소리 내가 어떤 사람 앞에서 난생 처음 제대로 연주를 했는데, 그게 대박. 내가 해석을 할 줄 안대.
혜원 (응?!...)
선재 소리 서한대 피아노과 정시 치래서 원서 냈어. 남편이 거기 교수. 근데 나한테는, 교수님보다두 그 분이 진정 스승이야.
혜원 (엉?...얘 혹시...자판 친다. 확인하려는. ‘누군데’)
선재 방.
-자판 치는 선재.
선재 소리 오혜원 실장님이라구, 혹시 들어봤어?
혜원 서재.
혜원 (기가 막혀 허허허)
플래시 백.
-1부 준형 서재.
-모니터 속 선재 동영상.
준형 미친 넘 피아노루 개그 하나. 튀구 싶어 환장한 것들.
혜원 잠깐만. 미친 넘이 아니라 아픈 넘이네. (자판 치며)너 얼른 병원 가라.
-2부 혜원 사무실.
-혜원이 태블릿 들여다본다.
선재 소리 막귀형 고마워. 병원 갔댔어. 낫고 있음.
혜원 서재.
선재 소리 형은 전공자니까 업계 사람들 많이 알지?
-혜원, 자판 친다. ‘모름. 난 완전 허접 전공생이라’ 보내고,
선재 소리 검색 함 해봐봐. 스펙이 장난 아냐. 근데 더 죽이는 건 카리스마. 그런 인종 처음 봐. 무섭구 화끈하구 재밌는데 열라 우아해. 나 완전 멘붕.
혜원 (뭐?...)
선재 소리 심지어 발두 이뻐.
혜원 (부지중에 책상 아래 자기 발을 본다)
-쪽지 창에 또 글자들이 콕콕 찍힌다.
선재 소리 여자 발에 꽂혔다믄 이상한 거야? 형은 그런 적 없어?
혜원 (잠깐 머뭇, 하다가 자판. ‘요점이 뭐냐? 그 여자 발이야?’)
선재 소리 그건 아냐.
혜원 (자판. ‘그럼 뭐’)
선재 소리 여인의 향기. 나 지금 쓰러지기 직전.
혜원 (팔을 들어 코를 대본다)
선재 소리 이거 맛이 간 거지? 낼 모레 시험인데.
혜원 (팔에 코 댄 채...)
선재 소리 형...
혜원 (두 손 얼른 자판.그러나 머뭇)
선재 소리 주무셔?
혜원 (자판 친다. ‘아니, 물 좀 마시느라구’)
선재 소리 내 얘기 쫌만 더 들어 줘.
혜원 (자판. ‘그러니까 니가 지금 어떤 여자한테 뻑이 간 거지?’)
선재 소리 그렇게 말하믄 너무 싸 보이구, 뭐랄까, 사로잡힌 영혼이랄까,
혜원 (픽 웃음 ‘영혼?’)
선재 소리 아니, 몸과 마음 다, 송두리째. 아오.
혜원 (자판. ‘혼자 너무 가는 거 아님?’)
선재 소리 절대 아님. 형, 여자랑 슈베르트 판타지아 쳐봤어?
혜원 (은근히 앙큼해진다. 자판. ‘그런 것두 했다고?’ )
선재 소리 어.
혜원 (‘어땠길래’)
선재 소리 절정 그 자체. 나 아직 동정이라 그딴 거 모르지만,
혜원 (얘, 점점 쎄진다...)
플래시 백.
-혜원과 선재의 연주.
선재 소리 실제로 한다 해도 그 이상일 수는 없을 거야. 난 다 바쳤어, 여신한 테.
혜원 서재.
-혜원, 벙...자판에 손을 얹은 채 모니터 본다.
선재 소리 여신님이 그걸 아실까.
혜원 (급히 자판 친다)
선재 방.
-‘냉수 한 사발. 잠이나 자라’
-선재, 어?
선재 소리 (급히 자판)잠깐만 형,
-‘막귀님이 퇴장 하셨습니다’
-선재, 쩝.
혜원 서재.
-혜원, 쿵덕쿵덕두 손으로 얼굴 싸쥐고 있다가 태블릿을 세워 얼굴 이쪽 저쪽 비춰본다. 화들짝 일어서며 엎어 놓는다.
파우더 룸.
-혜원이 바닥에 앉아 엄지발톱에 새빨간 색 에나멜 칠한다.
-혜원, 손으로 발 끝에 바람 일으켜 말린다.
-손거울로 발끝 비춰보는 혜원.
-거울에 비친 빨간 발톱.
-한참 본다.
-발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뒤로 몇 걸음씩 걸어보는.
침실.
-자고 있는 준형(더블 베드). 혜원이 싱글베드 커버를 젖히고 올라가려다 멈칫. 빨간 발톱이 찔린다.
파우더룸.
-혜원, 화장 솜에 리무버 적신다. 의자에 발을 올리고 빨간 칠 닦아내는.
서회장 침실. 다음 날 아침.
-감미로운 노랫소리와 성숙의 콧노래.
-더블 베드 두 개가 협탁 사이에 두고 놓여있다.
-양쪽으로 각각 서회장과 성숙이 따로 쓰는 드레스룸. 욕실도 두 개 딸려 있다.
-양 쪽의 드레스룸 문이 열려 있다. 성숙이 머리 매만지고 나와서 서회장 드레스룸 쪽으로.
-집사가 셔츠를 받쳐주고 서회장이 팔을 꿴다. 성숙이 들어온다.
성숙 (상냥 명랑)내가 할게요.
집사 네. (목례하고 나간다)
서회장 릴리 여사는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
성숙 (넥타이 고르는)점심 약속 있구, 오후엔 진회장댁 컬렉션 자랑질 하는 거 봐 주러 가. 끝나믄 스파 갔다 들어와서 당신 기다릴 거야. 단둘이 놀려구.
서회장 (흐뭇)내가 오늘 일진이 좋은가.
성숙 (흐흥 웃으며 넥타이 서회장 목에 대보는)이거 어때?
서회장 당신 맘이지.
성숙 (넥타이 매주는)재단 명의 신탁, 하나 해지해두 돼?
서회장 (성숙 엉덩이 슬몃)뭐 하시게.
성숙 쪼꼬렛 사 먹게.
레슨방 복도.(준형 비밀 교습소)
-양 쪽으로 연습실. 준형이 출입문에 나있는 유리창 들여다본다. 유라가 피아노 치고, 최강사가 서서 한심하다는 듯.
-최강사가 나온다. 고개 절레절레.
-레슨실 안 유라, 폰 거울 보며 귀밑머리 내리는.
준형 악보는 외냐?
최강사 지금 서너 군데 집중 연습 시키는데, 모르겠어요. 오후엔 또 예비소집이라.
준형 실격만 안당하게 해 줘. 민학장 전화 왔더라. 이사장이 신경 많이 쓴다구.
최강사 저런 애를 어떻게. 솔직히 너무하지 않나요?
준형 한 둘이야?! 어느 집단이나 깔아주는 애들은 있게 마련 아니냐. 재능 있는 애들 뽑아서 키우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최강사 아, 증말.
양식당 밀실.낮.
-성숙, 혜원, 민학장. 식사 후 다과.
민학장 신경 쓸 거 없어. 걘 정시 정원 열 다섯 명 중에 열 다섯 째루 붙을 예정이거든. 피아노과 1차 에이 그룹 시험관이 다섯 명이구, 조인서 말구는 다 우리 쪽이야. 게다가 이번엔 든든한 방패두 하나 있잖아. 이선재.
성숙 봤어?
혜원 저희 집에서 연주한 거, 동영상 보내드렸거든요.
민학장 나 아주, 깜짝 놀랐어. 큰소리 칠 수 있다고. 조인서두 반할 거야. 재단에서 그런 애 하나 확실하게 키우믄 그룹 광고 백 개 하는 거 보다 나아.
혜원 그건 좀 과장이지만, 어쨌든 실리와 명분, 둘 다 있죠.
민학장 바루 그거지.
성숙 설레발은... (혜원에게)시험 끝나믄 한 번 데리구 와. 손 볼 데 있음 고쳐주구, 한번 만들어 보자. 예술 재단과 이 한성숙이 그룹 이미지 격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두 알려줄 겸.
혜원 (웃어보이는)
서한 음대 정문. 낮.
-예비 소집 안내문.
-선재와 장호, 정문 들어서며 둘러본다.장호는 다미의 지령으로 따라붙었다.
선재 (중얼)대학교다...
장호 너 꼭 붙어라.붙어서, 도서 대출증, 뭐 그런 것두 좀 빌려주구 그래 봐...야 근데 이 학교 연영과 있냐?
선재 몰라. (두리번 찾기만)
장호 방송연예과는.
선재 몰라...저쪽이다.
-둘, 음악대학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
대형 강의실.낮.
-종수가 주의사항 전달.
-수험생 대부분 이어폰 꽂은 채 건성 듣는다. 책상 끝에 손 걸치고 음계 짚는 애들도 있고...반면 선재는 긴장하여 듣는다. 장호는 옆으로 한자리 건너 정유라 힐끗거리며 다미와 카톡. 유라는 한눈에 봐도 부잣집 딸 같다. 까칠한 표정이며 명품 옷과 가방, 장신구 등.
종수 홈피 공지에 다 떠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 하세요. 1차 전형은 네 그룹으로 나눠서 101번부터 150번 까지는 오전. 그 중에 25번까지는 대연주홀, 26번부터 50번까지는 소연주홀. 151번부터 192번까지는 오후,
장호 소리 쟤는 딱 봐두 걸친 거만 천만원두 넘겠어. 패딩 3백, 비니 30, 장갑 4십, 귀걸이 백, 가방 4백,
뷰티샵 세탁실.
-다미, 구석에 서서 문자.
다미 소리 함 꼬셔 보던가...야 너 이따 밤에, 우리 실장한테 전화해서 뻥 좀 쳐 주라. 내일 결근하게.
대형 강의실.
-수험생들 나간다. 장호는 잽싸게 유라 뒤 따르고,
-종수, 안내자료 챙기며 둘러본다. 선재가 쭈삣 거리며 서 있다가 종수와 눈 마주치자 꾸벅.
학장실.
-민학장,준형, 인서, 최강사가 소파에 둘러앉아, 시험관 명단 보면서.
민학장 올해는 정말 발표까지 쭉 순탄하게 갑시다. 시험 때마다 번호 이름 사진 다 가리구, 녹화 카메라 돌리구 별짓을 다 하는데두 매번 시끄럽다 말이지.
인서 별짓을 다해두 할 짓 다 한다는 게 문제죠.
최강사 일단 시험관 명단 확인할게요. 타대학 강사들 그룹 별로 두 명씩,
인서 저는 이것두 석연치 않습니다.
민학장 뭐가?
인서 이 친구들 솔직히 사정 능력이 검증두 안돼있구요, 지금 와서 말해봐야 소용없지만.
준형 편견을 버려. 교육자적 양심과 사명감, 그거 너만 갖구 있는 게 아니잖아?
민학장 (일어서며)자,자,
음대 로비.
-출입문 안쪽, 선재, 좀 떨어져 서서 핸드폰 만지작. 혜원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장호는 짜증스레 통화 중인 유라 주위 어정.
유라 짜증그러게 내 차루 온대니까 왜 나서가지구...빨리 와. 피곤해.(끊는다)
장호 시험, 오전이죠?
유라 (아래 위 스캔)
장호 내 친구랑 거의 앞 뒤루 치겠네. 걘 재수했죠.난 13학번 현역이구.
유라 음대예요?
장호 땡. 창조경제학과라구 알어? 요즘 방송연예과를 그렇게 부르잖아.
유라 (원, 별)
장호 선재야, 너네 교수 이름 뭐랬지?
선재 어? 어어, 강준형,
유라 (힐끗)
장호 얘가 그 분한테 길거리 캐스팅을, 아니다, 이건 연예계에서나 쓰는 말이지. 암튼, 둘 다 붙으믄 친하게 지내. 나두 여기 와서 좀 놀게. 우리 과 애들 진짜 말이 안통하거든. 도대체 뭐땜에 몇 백년동안 같은 곡을 계속 치냐, 완전 그 수준,
유라 나두 그 수준.(간다)
장호 오,반말 고마워.
-유라가 차에 타는 것 보인다.
장호 오, 차를 보니까 더 맘에 드네.
선재 (핸드폰 보며 나직히 탄성)왔다!
혜원 소리 끝났음 사무실로 가. 직원한테 말해놨어.
아트센터 지하. 복도.
-선재, 세진 반 발짝 쯤 뒤 따라가는.
세진 과제곡 연습하구 있으래요.
선재 네...
-세진, 개인 연습실 비밀번호 누른다.
세진 (문 열어주며)솔리스트 전용 연습실이예요.
선재 (아아)
세진 저녁은 지하1층 카페테리아에서 먹음 돼요. 실장님 번호 대면 그냥 줄 거예요.
선재 네.
화랑 건물 앞.밤.
-성숙과 혜원.
-성숙의 차와 왕비서가 대기 중이고.
혜원 저는 택시 불렀어요. 차두 회사에 있구.
성숙 맛사지 안할래?
혜원 이선재 한번 봐주기로 했거든요. 시험 경험이 전혀 없는 애라.
성숙 그럼 진작 말하지. 얼른 가라. 컨디션 잘 챙겨 주구?
혜원 네...들어가세요.
교수실 (인서 방)
-인서, 해드폰 쓰고 모니터 뚫어지게 본다.
-혜원 방에서 연주하는 선재. 곁에 서 있는 혜원 모습 보인다.
-동영상 끝나고, 헤드폰 벗는 인서.
아트센터 로비.
-혜원, 통화 하며 급히 간다.
혜원 어, 인서야...뭘 또 봐...근데 자꾸 보구 싶지?...솔직히 민우보다 낫지 않
니?...그래서, 탐나? 뺏구 싶어?
인서 방.
인서 (전화)딱 그러구 싶은데, 널 봐서 접는다...얘, 강선배가 아니라 니가 키울
거잖아.
아트센터 계단.
-혜원, 계단 내려가며.
혜원 무슨...나야 군기나 잡는 거지...기분이 좋긴 해, 무척...옛날 생각두 나구...이렇게 말하믄 좀 웃길래나? 내가 떠나온 세계, 내가 하구 싶었던 거,..뭔 말인지 알겠지.
인서 방.(교수실)
인서 (전화)너 아주 푹 빠졌구나?
아트센터 복도.
혜원 걔가 나한테 빠졌지...(아차)아니 뭐 그런 뜻은 아니구, 왜 있잖아. 생애
첫 선생님한테 어떻게든 칭찬 받구 싶은 거. (모퉁이 돌며)그런 앨 어떻
게 안 이뻐해?(하다가 흠칫)
-경비원, 선재와 부딪칠 뻔. 경비원과 선재가 꾸벅,하자,
혜원 (돌변. 사무적)미안, 나중에 통화 해. (끊고는 선재에게 딱딱)넌 또 걸렸
니?
선재 그게 아니라요,
경비원 통제실 연락 받구 와봤죠. 카메라에 배회 하는 모습이 자꾸 잡힌다구.
선재 화장실 갔다 오니까 문이 잠겨 있어서요.
혜원 안에 비번 적혀 있잖아. (경비원에게 상냥히)잠금 풀어주시구요, 이만 가
보셔두 됩니다.
경비원 알겠습니다. (목례하고 돌아서며 무전기)3번 연습실 도어록 해제요.
-혜원, 경비원 얼핏 보고 연습실 향한다. 선재, 반걸음 뒤떨어져 따라간다.
혜원, 선재의 시선 어깨에 꽂히는 것 느껴져 더욱 꼿꼿이, 발소리도 또각또
각 내면서.
선재 소리 그걸루 난 다 바친 거야. 여신님한테...
-연습실 앞.
혜원 (문을 열려다가) 밥은 먹었어?
선재 아니요 아직.
혜원 너 말 좀 안듣는구나? 지금 먹어둬야 밤에 푹 자구, 그래야 아침에 몸이
가볍지! 그 정도 계산두 안돼?
선재 ...
혜원 나 좀 쉬구 있을테니까 먹구 와.
선재 네.
혜원 배부르게는 말구, 서른 번 씹어서 천천히. 알았어?
-선재, 꾸벅 하고 간다. 혜원, 잠시 보다가 들어간다.
연습실.
-혜원, 가방을 탁자에 툭 내려놓고 털썩 앉는다. 방금 전의 긴장이 풀리는
듯.
카페테리아.밤.
-쟁반을 집어드는 선재. 앞사람이 하는 것 살핀다. 접시와 포크 스푼 따위 집
어 쟁반에 얹고, 앞사람이 덜어 담는대로 따라한다.
-빈 자리 찾아 앉는 선재.
연습실.밤.
-혜원, 소파에 다리 길게 뻗고 앉아 통화하며 외투를 배에 대충 덮는다.
혜원 (통화)아니. 내일은 늦게 나오셔. 그 전에 밀린 일 처리하자. 재단 감사
자료 정리. 악기랑 미술품 구입 내역서,영수증 사본 미리 챙겨 놔. 이전
회계연도 예산안이랑 대조하기 쉽게...어...계산두 미리 맞춰보구...어...내
일 보자.
-끊고, 시각을 본다. 핸드폰 탁자에 놓고,가방 집어 머리에 괴고 눕는다...
카페테리아.
-꾸역꾸역 먹는 선재.
연습실.
-선재가 들어오면 소파에 외투 덮고 누워 자고 있는 혜원. 한쪽 발이 외투 밖으로 삐죽, 소파 모서리에 걸쳐진. 구두가 반쯤 벗겨져 있다. 벽에는 ‘연습실 사용시 주의 사항’ 붙어 있고.
-선재, 얼핏 손을 든다. 구두를 벗겨줘야 할 것 같아서.
통제실.
-씨씨티브이 중 하나에 잡히는 선재와 혜원. 당직, 갸웃. 화면 확대.
연습실.
-선재, 혜원의 구두 벗겨주고 싶어 손을 댈락 말락하는데, 구두가 벗겨져 툭
떨어진다. 선재 얼른 손을 거두고,
-혜원의 핸드폰 울린다.
-선재, 놀라 반쯤 돌아서고 혜원 일어나 앉으며 외투 주머니 더듬는다.
-핸드폰 꺼내드는 혜원. 발신자명 ‘통제실’
혜원 (전화)네, 수고하십니다. 오혜원이예요....네?...네...(구두 신으며 일어선
다. 선재를 한번 보고는)아아, 아무 일 없어요...이 친구는 연습하러 왔구
요...제가 잠깐 잠이 들어서...한시간 쯤 뒤에 나갈 거예요....네...수고하세
요.(끊고 묵음 설정 한 뒤 선재 본다)너 뭐 이상한 짓 했어? 춤이라두 췄
니?
선재 (절래절래)
통제실.
-당직, 모니터 보며 킬킬킬. 한 손으로 조작 버튼 움직이면서.
-모니터. 선재가 혜원 구두에 손대려는 장면 빠르게 포워딩 리와인드 반복.
무성영화 코메디.
당직 새끼 이거 진짜 웃기네...
연습실.
혜원 저거 안보여?
선재 (네?)
-감시 카메라.
선재 (본다. 아이고)
혜원 너 여기 처음 온 날두 저거 찍혀서 걸린 거 아니니. 믿음 퀵 청년으루.
선재 저기 실은, 선생님 구두가 벗겨질려구 해서, 잠 깨실까봐, 죄송합니다.
혜원 (본다.입이 간질간질)
혜원 소리 어이, 나천재. 아니 너천재. 내가 바로 막귀형이거든?
선재 (엉거주춤 피아노 가리키는)칠게요.
뷰티 샵 리셉션 데스크.밤.
다미 (평상복 차림.짐짓 울먹)죄송합니다.
직원 할 수 없지. 얼른 가 봐. 내일 못나올 거 같으믄 전화 하구.
다미 네...(꾸벅 하고 돌아서서 혀끝 낼름)
명화 식당 주방.
명화 (설거지)니 엄만 대체 몇 번째 돌아가시냐.
다미 (어묵 따위 먹으며)이왕 가신 건데 뭐.
명화 그래서, 낼 시험장 따라갈 거야?
다미 당근. (전화 한다...)연습을 여태 하나?...
명화 일찍 들어와 자얄텐데.
아트센터 연습실.
-선재, 마구 실수하면서 치고, 혜원, 구석에 세워진 막대기 집어들어 바닥에 탕.
선재 (멈춘다)
혜원 너 긴장했지? 그게 얼마나 나쁜지 알어? 자세부터 엉망이 돼. 그러니까 뒤로 갈수록 박자가 미친 듯이 빨라지지!
선재 때리시믄 맞겠습니다.
혜원 허리 끌러.
선재 벗구 맞아요?!
혜원 (허, 부지중에 혼잣말)이거 아주 흑심 사심 잡심이 만발이네.
선재 네?
혜원 (아차, 수습)잘 치구 싶다, 꼭 붙어야 한다, 그것두 흑심이구 사심이구 잡심이야.
선재 네...
혜원 그건 팬다구 없어지는 게 아니지. 내가 배운 대로 가르쳐 줄게. (막대기 들어 보이는)이거 들어갈 만큼만 끌러 봐.
선재 (반쯤 돌아앉아 바지 단추 끄르면)
혜원 등 세워.
-혜원이 선재의 뒷목 옷깃을 손끝으로 잡아 당겨 막대기 거꾸로 쑥 집어넣는다.
선재 (이거 뭐야!)
혜원 더 세워. 엉치뼈랑 이거랑 직각으루 만나게. (선재 이마 당겨 막대기에 댄다)
선재 (더 빳빳이)
혜원 양 손 주먹.
선재 (지시대로)
혜원 겨드랑이 붙이고, 주먹 당긴다. 어깻죽지로 이걸 잡는다 생각하구...네 박자 두 번 센다...
선재 (힘껏)
혜원 셋 둘 셋 넷 넷 둘, 천천히 팔 내린다. 숨 내 쉬고,
선재 (후우...)
혜원 허파가 손바닥만해질 때까지, 다 비운다...
-준형이 들어온다.
준형 뭐 해?
혜원 어,
-선재, 막대기 꽂은 채 일어서려.
혜원 뭘 일어서.빠져 가지구...앉어.
선재 (다시 앉는다. 더 정신없다)
준형 (빙긋)너 제대루 걸렸다. 우리가 너만 할 땐 더 독하게 했어.
혜원 (막대기 뽑아 던지고 선재 양 어깨 움켜쥐더니 뒤로 젖힌다)어깨 펴라는데.
준형 말씀 잘 들어라.
선재 (간신히)네.
혜원 (무릎을 쳐들어 선재 등에 대고 더 젖힌다)
선재 (헉)
준형 그쯤은 돼야지.
혜원 (선재를 놓고 돌아서서 소파로)방금 그거 열 번 하구, 다시 쳐 봐.
선재 (얼이 다 빠져 멍한 채로)네.
-시간 경과. 선재 연주 중. 혜원은 앉아있고 준형이 곁에 서서 큰 소리로 지시.
준형 끌지 말구!...왼 손 포르테!...그렇지, 좋아...(손뼉 치며)빰바, 밤바, 빰빰!
혜원 (고개 돌리며 픽 웃음)
동 복도.
-준형, 선재의 어깨에 팔 두른 채 나온다. ‘그 부분은 더 약하게 가두 돼. 대신에 박자는 정확히 지켜야지’어쩌구 저쩌구. 그 뒤 혜원 나오면서 전화.
혜원 3번 연습실 지금 나갑니다...네,(끊는다)
준형 당신 먼저 가. 나 이 놈 데려다 주구,
선재 (황황) 아닙니다. 바루 가는 뻐스 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리 꺾어 절하고 돌아서서 마구 간다)
준형 어어?
혜원 냅 둬. 편하게 가겠다는데.
준형 (선재 향해)이선재, 낼두 지금처럼만 쳐!
혜원 가서 바루 자라.
-뛰다시피 가는 선재, 손등으로 이마의 땀 닦는다.
선재 옥상.밤.
-선재, 헉헉대며 샌드백에 발길질. 올려차기. 돌려차기.
혜원 소리 이거 아주 흑심 사심 잡심이 만발이네.
-명화가 선재방에서 내다본다.
명화 안 자?
선재 (차면서)말 시키지 마. 헉. 쪽 팔려서, 헉 죽을 거 같애.
명화 ?
동 주방.
-선재가 물을 벌컥이고, 명화, 김 오르는 국남비를 휘젓는다.
명화 간이 덜 됐는지, 고기가 적은지, 왜 이렇게 슴슴하냐.. (조금 떠서 선재에게)함 먹어 봐. 낼 아침에 줄 건데.
선재 (치우라고 손짓하고 물컵 싱크대에 넣는다)
명화 (먹어본다)
-선재, 싱크대 서랍들 열어 뒤진다.
명화 뭐 찾어.
선재 (퉁명)손난로.
명화 버렸지. 망가져서.
선재 버렸으믄 새 걸 사다 놓던가. (발로 서랍 닫고 방으로)
명화 다미더러 사오래까? 낼 같이 가준대는데.
선재 됐다 그래!
-문 쾅.
명화 음마?
선재 방.
-선재, 머리를 싸쥐고 엎드려 중얼중얼. 명화가 문간에 서서.
선재 흑심 사심 잡심,
명화 엄마 말은 말두 아니다 이거야? 내가 아무리 해준 거 없이 고생만 시켰어두 그렇지,
선재 (앉는다)아 진짜,
명화 (삐질)내가 너 키우면서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동네 애들 다 지 엄마 지갑 뒤져서 오락실 다닐 때, 넌 제발 그런 짓 하지 말라구 피아노두 안 팔구,
선재 알어...
명화 근데 왜.
선재 나 자야 되거든?
명화 알았어. 잘 자. (나간다)
선재 (다시 털썩 고스라지는)어후우...
혜원 침실 다음 날 이른 아침.
-커튼이 양쪽으로 열리면서(자동) 아침 안개 휘감은 앞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준형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턴다. 까운 차림 혜원이 리모컨 눌러 티브이를 켜고, 준형이 급히 욕실로.
-아침 뉴스.
준형 날씨 어때. 춥지 않어?
혜원 쪼끔.
-화장실 안의 준형, 볼일 보며 큰 소리.
준형 종수더러 가서 태워 오랠까?
혜원 길 막힐 거 같은데? (문자 찍는)
선재 방.이른 아침.
-선재, 책상 위 핸드폰. 곁에는 수험표와 지갑 따위 반듯하게.
혜원 소리 지하철 타.
선재 욕실.
-선재, 샤워기 손에 들고 머리 헹군다.
거실. 조금 후.
-선재가 욕실에서 나온다. 벗은 웃통. 한손으로 수건으로 머리 닦으며.
-다미가 안방 들여다보고 있다. 장호는 밥을 푸고.
다미 아줌마는?
선재 (본다)왜,
-식탁 위 차리다 만 밥.
동네.
-명화, 뛰다시피 걸으며 통화.
명화 아이구 얘, 손난로 샀다. 아직 문을 안열어가지구, 다 돌아다녔어.
선재 거실.
-선재, 서서 버럭거리며 통화. 장호와 다미는 앉아서 국에 만 밥을 퍼먹으며 힐끗.
선재 나가믄 나간다구 말을 하던가! 놀랬잖아, 아침부터!
동네.
-명화, 위태롭게 길을 건너며 통화. 약국 봉다리와 손지갑 대롱대롱 매달린 손을 들어 주행 차량 막아가면서.
명화 아유 알았어 미안해.암튼 샀으니까, 밥 먹구 있어. 지금 동사무소 지난다. 금방 가. 막 뛰어 가께.
-골목안 연립주택 신축 공사장에서 나오는 덤프 트럭 보인다.
선재 거실.
선재 (식탁 앞에 앉는다)뛰지 말구 걸어 와, 넘어져!...글쎄 천천히,(하다가 흠칫)엄마?...여보세요?
다미,장호 ?
선재 여보세요?! (더럭 불길)엄마?!...
서한 음대 교정.
-곳곳에 과별 실기 시험장 안내판.
응시자 대기실.
-수험생들, 이어폰으로 과제곡 들으며 책상 끝을 건반 삼아 손가락 연습 중. 가슴에는 수험표.
-전면 칠판에 ‘공정한 전형을 위하여 응시생 전원의 실기 장면은 녹화됩니다’
-종수가 응시자들 이름 부르며 얼굴 대조한다.손을 들어보이며 대답하는 응시자들.
종수 124번 이선재.
-정유라, 껌 씹으며 둘러본다.
종수 이선재...(선재의 원서 접어놓고) 125번 정유라.
유라 (풍선 불며 손 든다)
실기시험장.
-준형,인준, 최강사, 차(여, 40대 후반), 장(30대 후반, 전임)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들어온다.
-피아노 옆에 비디오 카메라 세워져 있다.
인서 그 친구, 기대할게요.
준형 어,뭐, 그냥 하던대루 하라 그랬어.
-종수가 들어온다. 교수들에게 목례하고 준형에게 저 잠깐만,
복도.
종수 열 시에 대기실 문 닫습니다. 그때까지 안오면 자동 실격,
준형 (초조하다.핸드폰 꺼내 단축번호 누른다)
혜원 사무실.
혜원 (통화.미치겠다)이선재, 전화 받어! 너 이렇게 소심해? 겁 먹었어?!
선재 집 현관 앞. 낮.
-혜원, 문 밀어본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명화 식당 앞.
-혜원, 급히 차를 향하며 통화.
혜원 일단 위치 추적 좀 해봐...글쎄 지금은 꺼져 있지만, 연결이 될지두 모르잖어!
실기시험장.
최강사 수험번호 124번, 결시로 실격 처리합니다.
-인서와 강사들, 준형을 보고, 굳은 채 말이 없는 준형.
장 갑자기 얼었나. 경험이 전혀 없다더니.
차 하긴 그런 애들 있더라. 좀 친다 해두 사회성 빵 점.
장 그럼 의미가 없는 거지.
인서 (준형을 본다)혹시 사고라두 난 거 아냐?
준형 (이를 악무는)
학장실.
민학장 실격?!
성숙 사무실.
성숙 무슨 일을 그렇게 하니?!
혜원 사무실.
-혜원, 전화기를 든 채 책상 옆에 서서 굳은 표정. 영우가 문간에서 비아냥.
영우 그러니까 너네 지금, 그애 내세워서 끼워 팔기 할래다가 망한 꼴이다 그치? 완전 사기극.
-왈칵 문 열리며 세진. 혜원,돌아본다.
세진 찾았어요!
장례식장 복도. 밤.
-저만치 영안실. 빈소 앞에 물끄러미 앉아 있는 선재가 보인다. 아무도 없다.
-혜원,더 가지 못한다.곁에 세진과 종수.
혜원 (중얼)난 못 보겠다...
세진 (본다.글썽)
-혜원, 가방에서 봉투 꺼내 세진에게 주고 돌아선다.
동 주차장.
-혜원, 차를 향해 가고,
-일각. 장호와 다미. 장호가 담배 꽁초를 휴지통에 넣는다.
다미 (눈물 콧물)내가, 까불어서, 돌아가신 거 같애. 사고 났다구 거짓말 해서, 끅끅끅...
장호 그렇게 생각하믄 못살지...선재는 백배 천배 더 할 거 아냐...
영안실.
-선재와 세진, 종수, 마주 서서.
세진 실장님두 같이 오셨는데요, 밖에 계세요...맘 아파서 못 보시겠다구...
선재 (눈 앞만 볼 뿐.퉁퉁 부었다)
세진 (어떡해...정신이 나간 거 같애...)
종수 (선재 어깨 툭 친다)기운 내라. 다 멘붕이지만 뭐, 어쩌겠냐,니가 젤 안된 걸.
선재 (여전히)
화장장.
-명화의 관이 불길 속으로.
-명화의 사진.
-다미가 벽에 기대 눈물 철철.
-울부짖으며 따라들어가려는 선재. 장호가 붙잡는다.
명화 식당 앞. 며칠 후 낮.
-식당 문에 ‘임대’라 큼직하게 쓰인 종이가 붙어 있고, 길 가에 서 있는 1톤 트럭(동아 피아노. 중고 매매 및 수리 전문. 000-0000-0000)에 선재의 피아노 실린다. 짐칸에 비스듬히 걸쳐진 널판 위로 중고상과 선재가 피아노를 밀어 올리는.
-피아노에 모포를 씌우는 중고상. 선재가 거든다.
-다미와 장호가 불안하게 바라본다.
장호 괜찮겠냐?
선재 뭐가.
다미 니가 저거 없이 어떡할라구.
중고상 (손 멈춘다) 어떻게, 도루 내려?
선재 아니요.
-트럭에서 내린 중고상이 고무 밧줄을 고리에 걸고, 짐칸 위의 밧줄을 당겨준다.
-밧줄 다 맨 중고상이 짐칸을 닫으며,
중고상 혹시 밤새 맘 바뀌면 연락해요. 산 값에 다시 팔아 주께.
선재 가세요.
-트럭 떠난다. 선재들, 식당으로 들어가고
-멀찍이, 차안에서 바라보는 혜원. 저 애를 어떡해야 하나.
혜원 주방. 밤.
-혜원, 턱을 괴고 앉아 앞에 놓인 찻잔 만지작. 준형이 어귀에 서서.
준형 가라 그래. 되다 만 놈. 말이 쉬워 군대지, 한창 때 2년 그렇게 보내믄 재능이구 나발이구가 어딨어. 인생 그렇게 꼬이는 애들은 어차피 안돼. (돌아선다)
북한 강변 전경.낮. 봄.
-공무수행 트럭 달린다.
-짐칸의 선재와 김주사, 각종 현수막과 포스터 잔뜩 실려 있다. 공익요원 제복 차림의 선재, 붉은 바닥 면장갑 낀 손을 무릎에 걸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 본다. 햇살이 눈을 찔러 귀찮다.
남양주군 어느 면사무소 앞.낮.
-게시판에 스태플러 팡팡 두들겨 찍어가며 포스터 붙이는 선재(공익요원 제복) ‘민속놀이 경연대회’ ‘강나루 축제’ 등등. 곁에 놓인 상자에는 각종 포스터 잔뜩 담겨 있다.
-1톤 트럭과 오토바이 서 있다. 트럭 운전석 앞에 ‘공무수행’ 팻말.
-서툰 왈츠곡과 구령 소리. 엉 드 트르와, 엉, 드, 트르와...
-맞은 편 상가 2층 무용 학원.
선재 (중얼)잘 좀 하지...
-집배원 오토바이 온다.
-선재, 우편물 한아름 받는다.
면사무소 안.
-선재가 우편물 책상 마다에 올려놓는다.
김주사 이선재,
선재 네.
김주사 숙직 좀 대신해 주라. 축구회 회식이 있어가지고.
선재 네.
김주사 불만 있냐?
선재 (우편물 집어 확인하고 책상 위에)
김주사 불만 있냐고.
선재 아닙니다.
-선재, 다시 우편물 나눠주다가 멈칫.
-받는 사람 이선재 보내는 사람 오혜원. 내용물: 책. (서한 예술재단 봉투)
-멍해지는 선재.
숙직실. 밤.
-트레이닝 복 차림 선재, 책상 앞에 앉아있다. 조그만 머릿등 불빛. 앞에는 책 한권. 표지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나이와 제목. ‘리흐테르’
-선재, 감히 책장을 넘기지 못해 떨리는 손끝. 이윽고 표지 넘기는.
-조금 후, 찬찬히 읽는 선재...한 장 넘기면,
-여기저기 밑줄들..
-넘긴다. 또 밑줄..
혜원 소리 선생님의 편지에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돌아와라. 너는 내 가장 뛰어 난 제자다...’ 묵을 곳도 없었지만 어디에서든 연습을 했다. 음악원 교실이든 친구네 집이든 가리지 않았다.
-뒷짐 지고 벽에 기대 서서 물끄러미 눈 앞을 보는 선재.
혜원 소리 어디를 가든 잠자리가 불편하지도 않았다. 스승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신세를 질 때에, 나는 피아노 밑에서 잤다.
-선재, 망연자실, 몸을 돌려 모로 기댄다. 눈물 후두둑 떨어진다. 가슴팍이 쪼개지는 것 같다. 사정없이 흐르는 눈물.
술집 앞. 밤.
-혜원의 차가 다가와 선다. 도산 공원 부근 이면 도로. 복잡하다.
-주차요원과 지배인이 달려간다.
-혜원, 지배인 에스코트 받으며 들어가고,주차요원이 혜원의 차 몰고 부근 주차장으로.
-다미가 좌우 둘러보며 온다. 장호가 술집에서 급히 나온다.
술집. 룸.
-혜원과 종업원이 들어온다.
-영우와 우성(젊은남의 예명)이 키스하며 마구 만지다가 떨어진다. 우성이 엉거주춤 일어서고,
영우 뭐 이렇게 늦어?
혜원 나오는데 강교수 전화가 와서.
-우성은 나가고 혜원, 종업원 시중 받아 외투 벗는다.
영우 애들 델구 엠티 갔다며.
혜원 뭐 이것저것 시키더라...근데 넌 꼭 여기서 봐야 돼?
영우 왜, 겁나?
혜원 (스카프도 벗어서 종업원에게 주고 외투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낸다)내 취향 아닌 거 알면서.
영우 니 취향 따위 관심 없지. (종업원에게)애들 델구 오라구 해.
종업원 (혜원의 외투와 스카프 단정히 걸어놓는다)네. (나간다)
혜원 (앉아서 생수병 마개 딴다. 곁에 핸드폰)뭐하자는 거야...
영우 널 다시 내 사람 만들겠다는 거다, 나처럼 타락시켜서.
혜원 (마시려다 풉)
영우 허, 웃겨?
혜원 (냅킨 집어 닦는다)웃기지 그럼.
술집 앞.
다미 나 혼자 가란 말야?
장호 그럼 어떡해. 오디션 잡아놨다는데.
다미 오밤중에? (팔 잡아 끈다)잔소리 말구 가. 좀 있으믄 차 끊어져.
장호 아, 그게 원래,술 한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종업원 야, 져스틴!
장호 (돌아보고는 황황히 다미를 돌려세우는)진짜 미안한데,
다미 져스틴? 니가 저스틴?
장호 암튼 끝나구 전화 하께.(뛰어가며 급히 전화 받는다)어,유라야, 오빠 지금 오디션 중이거든?
다미 야, 너,
술집. 룸.
-영우의 내연남을 필두로 청년들 서너명 들어온다. 장호는 맨 끝.혜원, 팔짱 끼고 바라본다.
영우 (혜원 전화기 집어 구석으로 던진다)도망갈 생각 마. 밖에 애들 지키구 있다.
혜원 (픔, 웃음)
영우남 일동 인사.
청년들 (허리 굽힌다)
영우남 제 후배들입니다. 다 예술 분야에 종사하구 있구요, 하나같이 감성이 뛰어나구 고급스럽죠.
영우 골라 봐.
영우남 네, 친구분(혜원)두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구, (장호 가리키는)이 친구는 처음이예요.
장호 (손을 들어 보인다)유 캔 콜 미 저스틴.
영우 귀엽네.
혜원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주시믄 안될까요?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영우 됐구, 각자 특기부터 보여 줘봐.
-하는데, 챙그랑.
-혜원이 반토막 깨진 맥주병 들어 보이고, 다들 얼음.
혜원 나 이런 누나거든? 말 듣지?
영우 죽을래?!
영우남 (어떡해요 누님)
국도. 밤.
-달리는 트럭. 공무수행 팻말 그대로. 묵묵히 운전하는 선재.
술집. 밤.
-남자들 없고, 영우와 혜원, 동시에 스트레이트 잔 비운다. 웬만큼 취했다.
-종업원이 새 양주병 따서 놓아주고 나간다.
영우 나쁜 년.
혜원 (술잔 두 개 채우는)술은 같이 마셔주잖아.
영우 얼마나 버티나 보자.(또 원샷)
혜원 (비우고는)영우야.
영우 뭐!
혜원 내가 맨날 말하지. 윤리 도덕 괜히 있는 거 아니라구. 도로교통법 어기믄 사고 난다구. 정지선은 지키라구.
영우 (혜원 흉내)내가 맨날 말하지. 그딴 건 너나 지키라구.
혜원 너 저 친구 계속 만나는 거, 이사장이 크게 한 번 써먹을 거야. 지난 달에 사고 치구 남편한테 여권 압수 당한 건 다행히 아직 모르지만.
영우 나두 써먹을 거 많어. 백선생 딸은 기어이 붙여 줬더라? 그 여자 부탁은 거절 못한대며, 개인 자금을 하두 많이 불려줘서.
혜원 니가 그거 건드리기 전에, 이사장이 니 남편 쪽이랑 손 잡을 거다.
영우 안 무섭거든? 그것들 다 나보다 백 배 천 배 더해.
혜원 정리 해라. 돈 주구 사는 애인이 뭐 그렇게 좋다구.
영우 나두 좋지는 않어. 근데 위로는 돼.
혜원 (본다)
영우 (삐질삐질)다 알면서 왜 그래. 인생 단 한 번인데, 나두 제대루 된 사랑 한번 해보구 싶지. 너 정말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어? 어쩌다 하나 얻어걸리믄 행여나 차일까 수표부터 쳐바르는 내 심정, 알기나 해?
혜원 (물끄러미 보다가 단호히 술잔 비우고는)병이야. 남자 끊구 상담 받어.
영우 그렇게 말하지 마...나 너 밖에 없는데. 엉엉.
혜원 (술 따르는)요거 마시구 일어나자.
술집 앞. 밤.
-최기사와 지배인이 영우를 부축하여 힘겹게 차에 태우고 혜원은 우성을 술집 안으로 밀며 타이른다.
영우 얘 어딨어. 우성아. 우성아,
혜원 험한 꼴 당하구 싶지 않음 우리 서대표 당분간 만나지 말아요. 이쪽 동네두 좀 멀리 하시구.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성 (기에 눌려)알겠습니다.
혜원 (최기사에게)내일 아침 성북동 조찬 날이예요. 삼성동 가자 그래두 들어주지 마세요. 꼭 댁으루 모셔야 돼.
최기사 너무 취하셨는데 괜찮을까요? 전무님두 귀국 하셨구요.
혜원 전화 해놨어요. 나랑 마셨다구.
최기사 네.
지배인 저, 대리 왔습니다.
혜원 (본다)안녕하세요.
-혜원 차 곁에서 대리기사(여)가 목례.
-영우의 차 떠나고, 혜원, 차에 탄다.
혜원 집 부근. 밤.
-혜원의 차 꺾어서 접어든다.
기사 참 꼿꼿하시네요.
혜원 (후우...)아직 업무가 덜 끝났잖아요. 집에 들어가서 확인 전화 다 돌린 담에 쓰러져야죠.
기사 암튼 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원 제가 감사하죠...(차창 밖을 보면)
-차창에 비친 혜원 얼굴. 지친 모습.
-공무수행 트럭(운전석 비어있는)이 서 있고, 그 옆을 지나치는 혜원의 차.
면사무소 앞.
-문 앞에 앉아 있는 다미.
혜원 집 마당.
-혜원 차 안. 혜원, 기사에게 팁을 준다.
기사 아니예요. 팁 받았어요.
혜원 그건 그거구.
기사 감사합니다.
혜원 살펴 가세요.
기사 네,
-기사 가고, 혜원, 현관 향해 돌아서며 중얼.
혜원 어후, 확 오르네.
-현관 계단 앞. 혜원이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밑을 조심하며 한 칸 올라서려는데,
선재 저예요.
혜원 (흠칫, 보는)
-뒤꼍 모퉁이 쪽에 누가 있다.
혜원 누구,
선재 선재요.
혜원 (쿵)너라구?...
-그 누가 터벅터벅 다가온다. 내가 지금 취중 환상을 보고 있나...앞에 마주 선다. 선재다.
혜원 그래...너구나...
선재 (네...)
혜원 (취기를 억누르며 어른 미소.정신 차리자는)근데 좀 달라 보인다? 그 새 좀 컸나?
선재 그건 잘 모르겠구, 달라지긴 한 거 같아요.
혜원 책은 받았어?
선재 네...
혜원 읽어봤니?
선재 밑줄 치신 데만,
혜원 어땠어?
선재 ...흔들렸어요, 다 끊었는데.
혜원 그러라구 보냈어. 니 재주가 아까워서.
선재 (마른 침 꿀꺽)
혜원 (새삼 웃음)아직 많이 힘들구나?
선재 아니요, 저, 아주 잘 지내니까, 그런 거 보내시지 말라구,
혜원 거짓말 하믄 못 쓰지. 선생님한테.
선재 맞아요, 거짓말이죠. 근데 상관 없어요, 다 지옥이라,
혜원 저런...(선재 뺨을 쓸어준다)
선재 (고개를 뒤로)하지 마세요.
혜원 (멈칫. 과했나?)
선재 제가, 돌아버리잖아요. (안는다)
혜원 (헉...)너,너,(밀어낼 수가 없다)
선재 (안은 채 한 손으로 혜원의 뒤통수 감싼다. 떨리는 입술 가까이)
혜원 (가방 떨구는 혜원)
-입술이 닿고 또 닿고,
-망설이는 혜원의 두 손. 마주 안고 싶다. 어쩌자고.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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