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7
서울 외곽 국도. 밤.
-혜원의 차 달린다.
-굽이를 돌자 멀리 신호등. 파란불.
-차 안. 아직 파란 불이지만 선재의 발, 브레이크 살짝 밟는다.
-파란 불이 노란 불로 바뀌고, 차가 서서히 서면서 신호등이 빨간 불로.
-차 안, 혜원이 잠결에 가볍게 뒤채듯 선재 쪽으로 돌아누우며 머리칼 쓸어넘기고 외투를 끌어 올린다.
-선재가 운전대 잡은 채로 돌아본다. 목을 빼고 자세히 보는 선재.
-땀에 좀 젖은 머리 사이로 눈썹 꼬리 위 반창고. 언저리가 좀 부은 듯. 손목에도 가느다란 피딱지와 불그레한 멍자국. (서회장 집에서는 혜원도 미처 보지 못했던).
-파란 불로 바뀌면서,
-뒷차의 짧은 경적.
-선재, 얼른 정면 보며 출발. 이미 뭔가 부글부글 괴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내가 볼 수 없는 곳에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내가 모른다.
휴게소 앞. 밤.
-휴게소 인근에 오색등 번쩍이는 모텔들.
-혜원의 차가 들어와 서자,
-차 안,
-핸드 브레이크 올리고 잠바 벗는 선재. 혜원이 눈뜨고 고개 반쯤 든다.
혜원 벌써 두 시간 지났어?
선재 아니요. 40분 쯤 달렸어요. 여기는 송추라는 데구요.
-선재, 잠바를 말 듯이 접어 혜원 발치께에 놓고, 혜원, 두리번.
혜원 여기 좀 있다 돌아 가믄 되겠네. (다시 자려는)
선재 왜 다치셨어요?
혜원 어어,
플래시 백.
-서회장 집. 마작패 세례 받는 헤원.
차 안.
혜원 별똥별에 맞았어(무지 아팠어).
선재 (안웃겨요)
혜원 안 웃기믄 말구.
선재 왜 댁으루 안가시구 저 부르셨어요?
혜원 (새삼 외투 끌어올리며 눈 감는다)내 맘이지.
선재 (그런 줄은 아는데요)
혜원 (눈 뜬다...)집이라는 데가, 가끔은 직장 같을 때두 있단다.(다시 눈 감는)
선재 (멍해진다. 그렇구나...)
혜원 넌 뭐라두 마시구 와.
선재 네.
-선재, 내려서 도어록 누르고 휴게소로.
휴게소 안.
-선재, 스낵바에서 셀프서비스 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 꺼낸다. 만원짜리 한 장과 천원 짜리 몇 개. 휴대폰으로 잔액 확인. 17만 몇천원...
휴게소 앞.
-차 안. 혜원, 등을 세우고 불안하게 본다.
-휴게소에서 나온 선재가 모텔 쪽으로 가고 있다.
모텔 프론트.
-선재가 조심스레 들어서자 프론트맨, 한쪽 귀의 이어폰 빼면서 본다(휴대폰으로 오락프로 보는 중이었다)
프론트 주무시게요?
선재 아니요, 한 시간 반 정도,
프론트 삼만원,
선재 젤 좋은 방은 얼마예요?
프론트 풀 옵션 오만원. 현금 결제 오천원 할인.
선재 미리 좀 볼 수 있어요?
프론트 (이런 진상 귀찮지만 인터폰 집어든다)잠깐 나와서 프론트 좀 봐라. 손님 안내 좀 하게.
모텔 객실.
-프론트맨이 들어서면 불이 켜지고, 그 뒤 선재, 멈칫, 욕실문 열어보이는 프론트 맨. 선재, 들여다본다. 내심 놀란다. 아오...욕실이 이렇게 커?
프론트 (이 놈 숫보기네. 히죽 웃음)월풀에 삼면 거울, 죽이지.
선재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아, 네,
-선재, 프론트맨 따라 방 안쪽으로.
주차장. 밤.
-혜원, 등받이 세우고 앉아 있다. 어떡한다?.
모텔 객실.
-붉고 푸른 조명이 번갈아 딤인 딤 아웃. 당혹스러운 선재. 프론트맨이 조명 리모콘을 조작하며 설명하는 중이다.
프론트 밝기는 이걸로, 분위기는 이걸로...성인 채널, 인터넷 되고, 다양한 체위를 즐기고 싶으면 여기 앉아보던가,
선재 (어휴, 한 손으로 마른 세수. 이건 아냐)
프론트 왜, 맘에 안들어? 아가씨 취향이 오성급 호텔?
선재 이런 거 없는 방은 없어요? 그냥 깨끗하기만 하면 돼요. 벌레나 쥐 같 은 거 없구,
프론트 (너 뭐냐는).
휴게소 앞.
-모텔 쪽에서 급히 나오는 선재, 멈칫.
-혜원의 차, 없다.
-도로변으로 뛰어 나가 살피다가 전화기 꺼내는 선재.
-주변 둘러보며 통화하는 선재.
선재 (전화)어디세요?...(가고 있다는 혜원의 말에 급히 설명)저, 방 잡았거든 요? 이상한 거 없구, 깨끗해요. 집이 직장 같다 그러셔서 쉬게 해드릴려 구요...네?
혜원 차 안.
-운전 중 혜원, 최대한 담담하려.
혜원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널 불러내는 게 아닌데...나 지금 도망치는 거야.너랑 그런 데 들어가기 싫어서.(끊는다)
부근 버스 정류장.밤.
-선재, 우두커니 서 있다.
-전광판. 다음 버스 39분 뒤 도착.
-핸드폰으로 버스 노선 검색한 뒤 터덜터덜 걷는 선재. 치미는 것 삼키는. 그런 데라니. 싫다니.
혜원 차 안.밤.
-혜원, 자신에게 하듯 허공을 향해 눈 흘긴다. 눈물 끼 보인다.
혜원 거실/주방. 밤.
-혜원, 소파에 가방 놓고 주방으로.
-혜원, 냉장고에서 물병 꺼내 컵에 따르는데,
준형 늦었네.
혜원 (멈칫, 본다).
-준형이 식당 쪽에서 보고 있다. 혜원, 그런 준형의 모습이 마치 기척도 없이 스르르 나타난 홀로그램 같다.
혜원 (억지 웃음)뭐가 늦어. 마작 모임이 늘 그렇지.
준형 차 한잔 갖다 줘. 서재. (돌아선다)
혜원 (울컥. 갖다 줘?)
준형 서재.
-준형, 괜히 소리내어 책상 위 정리하고, 혜원, 한 켠에 찻잔 놓는다.
준형 (힐끗)그거 뭐냐?
혜원 부딪쳤어.
준형 조심해. 누가 보믄 부부 싸움 하다 맞은 줄 알 거 아냐.
혜원 (대꾸하기 싫어 나가려는데)
준형 행동 조심하라고.
혜원 무슨 말이 하구 싶은데?!
준형 무슨 말이냐니. 말 그대로지
혜원 영우한테 맞은 거야! (나간다)
준형 (엥?)
거실.
-혜원, 소파의 가방 집어들고 서재로. 준형, 바짝 따라가며
준형 그래서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혜원 화 안냈어.
준형 근데 말투가 뭐 그러냐?
혜원 말투가 뭐.
준형 누가 들음 내가 영우한테 당신 때리라구 시킨 줄 알겠다!
혜원 남이 보믄! 누가 들으믄! 그게 중요하지 당신은.
준형 말꼬리 잡지 마!
혜원 (홱 돌아선다)그러니까,
준형 (움찔)
혜원 이게 지금, 당신한테 위로 대신 야유나 받을 일이야? 이만큼 사는 댓가루, 던지구 때리믄 얻어맞아야 하는 게?
준형 누가 시켰냐?! 너두 명품 걸치구 부자들, 셀럽들 상대하면서 이거 저거 다 누리구 싶어 자청한 거지! 싫으믄 관두던가!
혜원 (허)그래. 관두지 뭐. 이 집! 내 일! 당신 교수 자리! 다 토해내구 아무 것두 없던 20대루 돌아가지 뭐. 그럴 수만 있다믄 나두 좋겠어.(들어간다)
준형 너나 돌아가!
서재.
-혜원이 문을 소리 나게 닫고,
거실.
준형 넌 그러구 싶겠지! (돌아선다)
준형 서재.
-준형, 들어와, 책상 위 찻잔을 쓸어 버릴 기세로 팔을 올렸다가, 이를 악물고 참는다.
혜원 서재. 밤.
-책상 모서리 짚고 서서 화를 삭이려 애쓰는 혜원.
-멍하니 앉아 있는 혜원. 이 마음은 뭘까? 이 분노와 두려움의 정체는?...혜원, 문득 등을 세운다.
-마우스 움직이며 화면 보는 혜원.
-화면 속, 여성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이름들 쭉. 건강 교육 생활 정보 등등, 화살표 움직이다가 ‘40대의 性’ 클릭.
-‘회원 전용. 로그인 하셔야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입 하기’
-혜원, ‘가입 하기’ 누를까 말까.
-핸드폰 진동음.
-선재 문자.
선재 소리 제 집 열쇠가 윗도리 주머니에 있고, 윗도리는 차 안에 있어요. 저는 지금 선생님 댁 앞에 있구요.
혜원 (이런 실수를 하다니...바깥 쪽을 보고는 핸드폰 든 채 나간다)
차고. 밤.
-혜원, 차에서 선재 잠바 꺼낸다. 앞주머니 뒤져보고, 없어서 안주머니.
-손에 들린 열쇠 물끄러미 보는 혜원. 출입문 열쇠 하나 달랑 매달린 고리. 선재의 청결한 궁핍에 얼핏 눈물이 돈다. 바깥 쪽 본다. 꿀꺽 삼키는 혜원.
혜원 집 앞.밤.
-선재, 맞은 편 담벼락 앞에 서서 발끝으로 땅을 툭툭...
-현관문 열린다.
-선재, 멈추고 본다.
-옷만 던져지고 문 닫힌다.
-선재, 황당하다.
거실 현관.
-문 손잡이 잡고 있는 혜원.
혜원 집 앞. 밤.
-문 앞. 선재, 묵묵히 잠바 집어 두어 번 털고 입는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 확인하는데,
-혜원 문자.
혜원 소리 니 껀 니가 알아서 챙겼어야지.
-선재, 더 황당하고 서운하다. 문을 보다가, 문자 찍는다.
혜원 거실.
-현관. 혜원, 문자 본다.
선재 소리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같이 자자고 한 것도 아닌데.
-혜원,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빛의 속도로 문자.
혜원 집 앞. 밤.
혜원 소리 몰라? 넌 내가 얼씨구나 따라 갈 줄 알았니?!!!
-선재, 역시 빛의 속도 문자.
선재 소리 말씀 드렸잖아요!
혜원 거실.
-문자 치는 혜원.
선재 소리 집이 직장 같다는데, 선생님은 집에서두 쉬지를 못한다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혜원 소리 허, 그게 다였어?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지금?!!!
선재 소리 저는 백퍼 다 진심이예요!!!!!
혜원 소리 글쎄 니 진심이 뭐냔 말야!!!!!
선재 소리 다요! 전부 다!!!!! 사랑하니까, 언젠가는 같이 자기를 바라지만 오늘 은 아니었어요. 힘들다구 하셨잖아요.
-혜원, 문을 확 열고,
집 앞. 밤.
-혜원, 선재를 잡아 먹을 듯이 상체를 내미는데,
-선재는 없고,
큰 길. 밤.
-골목에서 뛰어 나오는 선재.
혜원 욕실. 밤.
-욕조 가득 거품 속에 들어 앉은 혜원. 무표정하게 턱 밑의 살을 집어 본다. 거품 속으로 손을 넣어 겨드랑이, 가슴...나 늙어 간다. 그래서 내뺐는지도 몰라. 자신이 없어서. (이마의 반창고 그대로. 물이 닿을까봐)
-북받치는 혜원. 수도꼭지 올린다. 콸콸콸.
-끅끅, 울음을 삼키며 뱉으며...
선재 방. 밤.
-선재,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손을 이마에 얹은 채 숨을 토해내고, 토해내고...
혜원 침실. 아침.
-파우더룸. 까운 차림 혜원. 표정 없이 이마의 반창고 갈아 붙이고, 드레스 룸으로.
-잠옷차림 준형이 드레스룸 쪽을 힐끗 보며 욕실로.
혜원 집 앞. 아침.
-빈 골목.
혜원 침실.
-출근 차림 혜원, 내다보다 홱 돌아서서 침대 위의 외투를 집어들고 나가려는데,
준형 미안해.
혜원 (흠칫 본다)
-파우더룸. 샤워 마친 준형이 머리를 닦으며 힐끗.
준형 화 내서 미안하다고.
혜원 (사무적)어, 뭐,
준형 당신한테가 아니라 나한테 화 낸 거야. 내가 부족해서 당신이 그런 수모를 당한다구 생각하니까.
혜원 됐어요.
준형 (본다)왜 갑자기 말을 높여. 사람 겁나게.
혜원 (아차 싶어)미안, 나두 화가 나긴 했나봐. 아침 먹어. 난 나가서 할 거야.
준형 누구랑.
혜원 영감님. 영우 문제루.
준형 선재 오디션에 올 수 있어?
혜원 아니.(나간다)
준형 화 풀어.
-혜원, 나가고, 준형, 수건 든 손 떨군 채 망연히 본다. 저 둘 사이...
혜원 동네 어귀. 혜원 차 안. 아침.
-혜원, 운전하며 성마르게 통화.
혜원 너 뭐야? 아침 운동은 왜 걸러? 뭘 하기루 했음 꾸준히 지켜야지!
선재 방. 아침.
-선재, 옥상 쪽에서 들어오며 통화. 한 손으로는 목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숨차다.
선재 화내셔서 피한 거예요.
혜원 차 안.
혜원 (부들부들)뭘 피해! 오디션 곡은 마스터 했어? 카덴짜부터 감정 넣으믄 안된다구 말 한 거 명심하구 있니? 손열음이 대단한 건, 뜨거운 걸 냉정하게 읽어내서야. 그래야 진짜 뜨거운 게 나오지! 알아 듣니?... 뭐야, 왜 대답 안 해. 삐졌어? 아님 삐진 척 하는 거야? 너, 감히 나한테 밀당 하니?!
선재 방.
-선재, 다락방 중간 쯤에서 통화 중.
선재 아니요...손열음, 그 말씀은 알아 들었구요, 밀당, 그건, (새삼 솟구치는 서운함. 누른다)전 그런 거 해 본 적 없어요. 그런 말 하기두 싫어요.
혜원 차 안.아침.
혜원 연주나 잘 해! (끊고 헤드셋 빼내 던지는)
선재 방.
-선재, 문자. ‘잘 할 거예요’ 썼다가 지우고, 전화기 침대에 던지고 내려간다.
-웃도리 벗으며 욕실로 들어가는 선재.
욕실.
-물줄기에 손대고 있는 선재. 더운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혜원 소리 넌 내가 얼씨구나 따라 갈 줄 알았니?!!! 그게 다였어? 나더러 믿으 라는 거야 지금?!!!
-선재, 정말 모르겠다. 더운 물이 나오는지, 아, 뜨거, 수도꼭지 돌려 온도 조절하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에 끼얹는다.
식당 밀실. 아침.
-혜원이 혼자 기다린다, 핸드폰 슬쩍 보고는 묵음 설정.
-서회장이 들어온다. 혜원, 일어선다.
혜원 안녕히 주무셨어요.
서회장 어, 그래...(혜원 상처 힐끗)괜찮냐?
혜원 대단치 않습니다. 제 불찰이 컸어요. 영우 성격 뻔히 알면서.
서회장 불찰은 무슨...앉자.
혜원 네,
-종업원이 각자 앞에 죽 그릇을 놓아주고 물러난다. 죽그릇 옆에는 밤, 생고구마, 당근, 샐러리 등이 담긴 야채 접시.
-둘, 죽을 떠먹으며 이야기.
서회장 영우 대표직은 그대루 둬야겠지?
혜원 (짜게 나오네. 웃음)그럼요...
서회장 대신에 너 부대표루 승진 시키라구, 성숙이한테 말해뒀다.
혜원 감사합니다.
서회장 실망했냐.
혜원 (웃음)실망은, (본다)맨 마지막에 하는 거죠.
서회장 허허허, 그렇지...역시 너다운 대답이다...(죽그릇 들고 싹싹 긁어 떠먹고는)너두 늘 말하다시피, 직위가 뭔 상관이냐. 니가 전결권을 행사한다는 게 중요하지.
혜원 잘 알구 있습니다.
서회장 (야채 한쪽 베어문다. 우걱우걱 씹으며)그리구 말이야,
혜원 네,
서회장 너 나하구, 구좌 하나 따루 트자.
혜원 무슨 말씀이신지.
서회장 몰라 묻냐?
혜원 (웃음)네...
서회장 성숙이 이번에 그림 몇 점 샀다지?
혜원 네, 쮜리히 옥션 통해서 말레비치 두 점, 윌렘 데 쿠닝 한 점,
서회장 거 참, 이름들이 왜 그러냐. 외기두 어렵게.
혜원 (웃음)잘 사신 거예요. 소장 가치, 투자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러시아 신흥 부자들이 열광하는 작가들이라.
서회장 (힐끗)진품이겠지?
혜원 (웃음)
서회장 영우 회사가, 이문 남기길 바라는 건 아니다. 뭐 너두 이미 알구 있겠지만.
혜원 네...병행 수입 업체로 등록할 거니까, 미술품에 관심 있으시다면, 다시 말해 뭔가 다른 채널이 필요하시다면,
서회장 할 수 있겠냐?
혜원 해야죠.
서회장 그럼 인제 밥 먹자.
혜원 네,(벨 누르고)
서회장 (차 한모금)아침엔 밥이 젤이야. 쌀이 보약이지.
서회장 집 침실. 아침.
-성숙의 드레스 룸. 출근 차림 성숙이 가방에 핸드폰 따위 넣고, 왕비서는 서회장 드레스 룸에서 세탁물 챙긴다. 흰 셔츠는 빨래 바구니에. 바지 주머니 뒤져 확인 뒤 화장대 걸쳐 놓고, 수트 상의 집어든다. (세탁물 확인은 장비서나 왕비서가 한다. 도우미들이 엉뚱한 거 보게 될까봐)
성숙 오실장 조찬 끝나구 뭐 있지?
왕 서영우 대표 약속 잡혀 있습니다. 서한 어패럴 매장 시찰. 세 시쯤 사무실로 간답니다.
성숙 나두 그 때 쯤 나가야겠네. 백선생한테나 들렀다가...전화 해 둬.
왕 알겠습니다.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멈칫)
-조심스레 손을 꺼내는 왕비서. 여자 반지. 비싸 보인다. 당황,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가 아니지, 빼내는데,
-성숙이 가방 들고 나온다.
성숙 뭐야, 주머니에 또 뭐 이상한 거 있어?
왕 (주먹 쥔 손을 벌여 보이는)
성숙 (응?!!!)
식당 밀실.
-식사 마친 서회장과 혜원. 종업원이 서회장 윗도리 받쳐주고 나서 먼저 나가 대기하기까지, 혜원, 단정히 기다리며 서회장과 이야기.
서회장 성숙이, 그거 모르지?
혜원 네, 아직...(웃음)그 분이 무척 맘에 드시나 봐요.
서회장 (웃음)어, 아주 보통 아냐. 얼음장 같았다가 장작불 같았다가, 어유...
혜원 (욕지기 삼키며 웃음)
서회장 어디 델구 가서 딱 한달만 지내다 오믄 좋겠어....안될까?
혜원 길믄 밟히실텐데요.
서회장 그렇겠지?
서한어패럴 매장. 낮.
-영우가 피팅 룸에서 나와 포즈 취한다. 신상 자켓 차림. 매장 매니저와 직원들, 우성이 감탄.
우성 오오 좋아, 자기가 모델 해두 되겠다.
영우 (직원들에게)그래볼까?
-혜원이 들어온다.
혜원 어우 벌써 오셨네요.
영우 아침 맛있게 먹었어?
혜원 덕분에요. (우성에게)죄송합니다.
우성 (거만)이해합니다.워낙 바쁘신 분이라.
영우 나 어때?
혜원 멋지세요. 워낙 황금비율이시라. (매니저에게)같이 잠깐 앉을까요?
매니저 네.
-한켠 소파. 혜원, 영우, 우성, 매니저.
혜원 서한 어패럴에서 브랜드 독립 방식으루 설립 공고 나갈 거구요, 회계 및 실무는 신경 안쓰셔두 됩니다. 회장님께서 이미 지시 하신 걸로 알구 있어요.
영우 (비즈 박힌 손톱 들여다보며)한마담만 얼씬대지 않음 돼.
혜원 (매니저에게)남성용 아웃도어랑 컨셉 맞춰주시구요.
매니저 알겠습니다.
우성 (영우에게)씨에프 같은 건 우리가 개입해야 되지 않어?
영우 당연히. (혜원에게)그래두 되는 거지?
혜원 (미소)뭐, 적정선이 있겠죠.
-미소 잃지 않고 설명 계속 하는 혜원,
아트센터 복도. 오후.
-혜원, 세진에게 가방과 외투 건네고 이사장실 향하며 시계 힐끗.
음대 소연주홀. 낮.
-선재, 피아노 앞에.
-준형은 민학장과 인서, 최강사, 교수 두엇과 나란히 앉아 있다.
-객석에 학생들 듬성듬성. 민우가 종수와 소곤소곤.
준형 (뻐기는)리스트를 하겠대. 스페인 광시곡.
인서 어이구, 신선하네요.
준형 재가 또 손열음 팬이라는 거 아냐.
최강사 교수님이 지도 하셨어요?
준형 내가 하지 그럼 누가 해.
인서 (본다)혜원이, 아니 오실장은요,
준형 그 친구 요즘 바쁘잖아. 그냥 관심 가져 주는 정도지 뭐. 들어보자구. 자, 이선재,
선재 네,
-선재, 숨을 가다듬고 눈 감는다.
-준형, 지그시 본다.
플래시 백.
-백화점 VVIP 라운지. 혜원과 마주 앉은 선재가 웃는 모습.
-백화점 퍼스널 샤퍼 룸. 선재가 집에 가겠다 하고, 혜원이 나는 찬성,
-선재 집 앞. 당혹스레 서 있는 준형.
혜원 소리 일루 와 한 번 안아줄게.
선재 소리 제가 안아드릴게요.
음대 연주홀.
-선재의 연주가 시작된다.
아트센터 일각. 후미진 곳.
-혜원, 기대 서 있다.
소연주홀.
-연주하는 선재.
회상. 선재 집.
-이삿짐 틈에서, 상자에 앉아 연주 듣는 혜원. 서성이며 함께 듣는 선재.
음대 소연주홀
-선재의 연주가 끝나면,
-종수와 학생들 박수. 인서도 박수 치며 선재에게 다가간다.
음대 복도.
-준형과 인서가 앞장 서서 가고, 민우와 선재가 뒤따라.
-준형은 인서에게 선재를 자랑하기 바쁜. 속이 쓰리지만 대외적으로는 내 제자니까.
민우 난 오혜원 선생님이 픽업해서 조인서 교수님 소개해 주셨어. 나한테는 진짜 선생님이야. 인서교수님 미국 계실 때 가가지구, 이 학교 오실 때 나두 따라 왔지. 요즘은 자주 못만나지만 오선생님한테 가끔 팁 받는 게 진짜 좋아.
선재 (새끼 말 드럽게 많어)
민우 전번 교환할래?
선재 아니.
민우 (머쓱해서 웃음)어어, 미안. (인서에게 가면서)교수님..
선재 (밥맛이야)
아트센터 일각.
-혜원, 멍하니 서 있는데, 왕비서가 온다.
왕 (나직)뭐 해...
혜원 (화들짝)어어, 지금 막 가려던 참,
왕 비상이야.
혜원 응?!
이사장실 앞.
-혜원, 왕비서, 급히 온다.
혜원 그런 걸 봤음 들키지 말구 나한테 알렸어야지.
왕 딱 걸렸다는 거 아냐...
이사장실.
-성숙은 책상 앞에 앉아 있고, 혜원, 죽을 죄(직무태만)를 지었다는 듯 서 있다.
-책상 위 작은 접시에 반지.
이사장 (미소)상자가 없는 걸 보면, 줬다 뺏은 거 같기두 하구...또 어찌 생각하 면, 어떤 년인지 나 보라구 그런 거 같기두 하구...(혜원을 본다)그림이 잘 안그려지네?
혜원 죄송합니다.
성숙 몰랐어?
혜원 네, 전혀,
성숙 직무태만이다, 그치??
혜원 인정합니다.
성숙 혹시 나한테 불만 있니? 영우, 회사 차리는 틈에 대표 자리 예상했다가 고작 부대표라서?
혜원 그럴 리가요. 그건 회장님께두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성숙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영우가 지 아부지한테 딴 여자 들이 밀구, 그걸 니가 돕는 거야. 넌 충분히 그러구두 남을 애니까.
혜원 서운합니다.
성숙 그렇담 이번 기회에 증명해 줘. (인터폰)나 좀 쉴 거야. 회장님 전화두 연결하지 마. (끊고 일어선다)깨끗이 처리해라.
혜원 알겠습니다.
-밀실 통로 지나는 성숙, 물끄러미 눈 앞을 보는 혜원.
혜원 사무실.
세진 (전화 끊으며)발신전용이래요. 대포폰.
혜원 (두 손으로 관자노리 누르며)그러시겠지.
왕 그럼 영감님이랑 연락을 어떻게 했지?
세진 혹시 살림 차려 주신 거 아닐까요? 식당두 관뒀다는데.
왕 쎄다.
세진 그러게요.
혜원 (가방 챙겨 나가는)입조심들 해.
세진 네.
왕 어디 가.
혜원 발품 팔아야지.
세진 제가 같이,
혜원 넌 내일 장학 증서 전달식 준비 해야지!
세진 아,
왕 그럼 나라두,
혜원 (팩)이사장실이나 지켜.
-찬바람 내며 나가는 혜원.
왕 어머? (세진을 보면)
세진 요즘 좀,
왕 맞어, 너두 느끼지?
세진 (끄덕)
선재 집. 밤.
-굳은 표정 선재, 빨래 털어 널고, 내일 입고 나갈 옷 챙겨 따로 걸어놓는다. -발소리. 선재, 순간 기대.
선재 누구세요...
다미 소리 나...
선재 (실망)어,
-문간에 마주 선 선재와, 막대 사탕 문 다미.
다미 (사탕 문 채)오늘 잘 했어?
선재 (웃지 않는다)어, 열라 꿀꿀하게.
다미 왜?
선재 몰라.
다미 (사탕 뺀다)나 들어오라구 하지 마. 얼굴만 보구 갈 거야. 너 대학생된다니까 나두 좀 쿨해보자. (돌아서려)
선재 (픽 웃음)또 와.
다미 뭐?
선재 또 오라고...
다미 뭐래냐?
선재 너나 장호를 안 보믄, 내가 내 주제를 까먹을지두 몰라. 원래부터 잘난 놈인줄 알구.
다미 알믄 됐네. 부광실고에, 퀵 배달 출신인 거 까먹으믄 내 손에 죽는다. (사탕 오도독)
선재 근데, 올 때 전화 하구 와.
다미 뭐?
선재 (더듬지 않는다)누가, 아니, 선생님이 와 계실 수두 있어.
다미 교수가 집에까지 와서 가르쳐 줘?
선재 교수 말구.
다미 선생이 따루 있어?
선재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암튼 달라.
다미 (쳇)알았어. 자라. (간다)
선재 (내다 본다)조심해서 가...
-한참 서 있다가 발소리 사라지자 선재, 문 닫는다.
-명화 침대에 걸터 앉아 있는 선재. 나 뭐지? 혜원에게 존재를 부인당한 것만 같고, 자의식이 꿈틀댄다.
허름한 까페. 늦은 밤.
-혜원이 앉아 있다. 앞에는 물잔. 상념. 이렇게 계속 살아서, 내게 남는 게 뭘까.
-아지매가 주방 쪽에서 손을 닦으며 나와 살핀다. 혜원, 일어서서 상냥하게 인사.
혜원 안녕하셨어요...그동안 직장을 옮기셨네요...
아지매 (좀 보다가)어쩐 일이심까...저는 볼일이 없는데.
혜원 우선 좀 앉으세요. 영업 시간인 줄 알지만 여기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지매 (앉고)
혜원 (앉으며)건강 하시죠?
아지매 용건 말씀하십시오.
혜원 네, 그래야죠. 맥주라두 한잔 하시면서,
아지매 맥주 안합니다. 독주로 시켜 주십시오.
혜원 아, 네, 그러세요. (부른다)여기,
-조금 후, 맥주 원샷 마시며 슬쩍 살피는 혜원. 아지매, 양주를 털어넣고 대구포 집으며 곁에 놓인 흰 봉투 힐끗. 피식 웃는다.
아지매 할 얘기 없으니 이거 집어넣고 그냥 가십시오. (대구포 이빨로 찢는다)
혜원 성품이 무척 곧으신 것 같네요. 멋지세요. 그래서 저희 회장님이 좋아하셨나봐요. 실례가 안된다면 선배님이라구 부르구 싶어요.
아지매 그러든지 말든지.
혜원 저는 옳다 그르다, 그런 거 판단 하러 온 게 아니랍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시다 보면, 어딘가 의지하구 싶은 건 인지상정이죠.
아지매 (대구포 씹으며 술병 집어든다)
혜원 (짐짓 황황히)제가,
아지매 (그냥 따른다)
혜원 (머쓱)
아지매 (또 원샷)
-혜원이 가방을 연다.
-반지를 냅킨에 받쳐 보여준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혜원 혹시 이거, 본 적 있으신지...
아지매 (잠깐 들여다보고는 외면)있지요.
혜원 그러시구나...드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세요...
아지매 천천히 할 거 뭐 있겠슴까. 바로 말 하지요. 회장님인지, 그 영감이 끼워 주고는 하도 사람을 귀찮게 하길래, 내빼다시피 나오면서 주머니에 집어 넣었지요.
혜원 (응?!)
아지매 그 영감이 그걸로 마누라한테 꼬투리가 잡힌 모양인데, 가서 내 말 고대로 이르십시오. 영감탱이 딱 두 번 살 섞어보고 맛대가리가 하도 없어서 내가 차버렸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혜원 무슨 말씀이신지.
아지매 무슨 말이기는! 더 만날 생각 없다니까 그걸(반지) 사들고 와가지고 오만 주책을 다 떨길래, 내가 직장도 바꾸고 번호도 바꾸고 했다는 거 아니요 지금. 하도 염증이 나서.
혜원 (이거 무슨 상황?)
아지매 댁에 같은 사람들은 나를 어찌 볼지 모르지만, 나 이래봬도 모택동 주석이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 다녔고, 만 인민이 다 평등하다, 내가 내 주인이다, 그렇게 배운 사람이요. 안할 말로 내 맘에 들믄 내 돈 주고도 함다. 사내가 돈 좀 있다고 해서 내 맘에 들지도 않는데 아양 떨고 하는 거, 그런 짓은 죽어도 못한다 말입니다.
혜원 (벙하니 듣다가 정신 차리고 미소.반지를 집어넣으며)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심부름 하는 입장이라, 뭔가 확실한 답을, 다시 말해서, 앞으루 또 연락이 온다 해도 만나시지 않겠다는,
아지매 야!
혜원 네?
아지매 내가 싫어가지고 찼다지 않나,엉?! 거기 대고 확답을 하라니, 최고 멋쟁이로 차려입고 앉아서는 남의 말은 영 귓등으로 듣나?!
혜원 (밀리면 안된다 싶어 새삼 미소)저걸 받아 주시면 확답으로 알겠습니다만,
아지매 뭐 이런 년이 다 있어.
-일어서며 혜원의 맥주잔 집어 끼얹는다.
-혜원, 흡...
아지매 왜 자꾸 같은 말 하게 만드나. 있는 놈들 심부름이나마 해서 먹고 산다믄 말귀 하나는 제대로 뚫려 있어야지! (간다)두 번 볼까 치가 다 떨리네.
-흠뻑 젖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냅킨 집어드는 혜원, 손이 덜덜.
부근 주차장. 밤.
-간신히 수습하고 전화 하는 혜원.
혜원 걱정, 안하셔두 될 것 같아요...네...(자조의 웃음)네...어, 참, 내일 오후 한 시에 장학 증서 전달식 있습니다...네, 이선재...네...안녕히 주무세요...
-끊는데 눈물이 후두둑. 한손으로 눈물 닦으며 시동 건다.
서회장 침실. 밤.
-성숙이 다관 세트 곁에 앉아 기타 치며 릴리 마를렌을 부르고, 겁먹은 듯 바라보는 서회장.
서회장 왜 그래...
-성숙, 노래 계속하면서 기타를 놓고 일어선다, 벙하니 보는 서회장에게 다가가 손 잡아 올리며 노래에 맞춰 부드럽게 춤을...
성숙 여보, 당신 나한테 선물 하나 해 줘.
서회장 서, 선물, 뭘 갖구 싶은데.
성숙 정관 수술. 응?
서회장 뭐?
성숙 아니믄 이거, (샅을 올려차는)
서회장 억!
아트센터 외경. 다음 날 아침.
이사장실.
성숙 어제 니 덕에 아주 재밌었어...이렇게 해서 신뢰가 회복되는 거지?
혜원 (애써 미소)감사합니다.
-노크 소리.
성숙 어.
-왕비서가 들여다 본다.
왕 민학장님 오셨습니다.
혜원 (얼핏 당황.선재가 오는구나)
-민학장과 준형, 선재(가방 멘), 그 뒤로 세진과 카메라를 든 홍보실 직원.
-성숙이 화사하게 웃으며 마주 다가가 맞이하고,
-준형 뒤의 선재, 혜원을 보지만 혜원은 눈 맞추지 않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목례.
성숙 어서들 오세요...
준형 오랜만입니다 이사장님.
성숙 오오, 이 친구야?
민학장 어, 이선재, 인사드려. 서한 예술 재단 한성숙 이사장님.
선재 (꾸벅)
성숙 얘기 많이 들었어. 연주두 들어봤구. 기대가 크다.
선재 (또 꾸벅)
준형 이사장님 아니었으면 그냥 흙속에 파묻힐 뻔 했죠...
혜원 (미소만)
성숙 뭘,
민학장 자, 요식행위부터 해치우구 얘기 하자구. 오실장.
혜원 네, (책상 위에 놓인 장학증서를 집으며 홍보실 직원에게)준비 되셨죠?
직원 네,
세진 선재학생 이리루,
준형 어, 그래, (선재의 등을 가볍게 밀고)
-성숙 앞에 서는 선재.
-혜원이 성숙 옆에서 장학증서를 읽는다.
혜원 장학증서. 이 선재. 위 사람은...
-선재, 이 모든 게 다 어색한데, 홍보실 직원의 셔터 소리 차륵차륵...
-준형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장학증서를 펼쳐든 선재와 성숙, 준형, 민학장이 나란히 선다. 선재, 혜원을 보는데,
직원 선재 학생 여기 보시구요,
선재 (얼른 시선 돌리고)
-혜원, 애써 담담하게 바라본다. 그 곁의 세진, 웃으며 혜원을 본다.
세진 (작게)이쁘시죠.
혜원 (끄덕여보이고)
-사진 연속 더 찍는데, 영우가 들어온다.
-다들 돌아보면,
영우 뭐야?...
민학장 어, 서대표두 일루 와.
성숙 그래. 같이 찍자. 재단 소관이라 굳이 안 알렸는데.
혜원 장학증서 전달식 마치구 홍보용 사진 활영 중이예요.
영우 폼나는 건 자기네끼리 다하지.
민학장 (다가가 팔을 잡아끈다)왜 그래, 또,
준형 소개할게. 여기, 이선재.
영우 (뿌리치며 선재를 힐끗 보고는 굳이 혜원에게)그 때 걔구나?
혜원 네.
영우 지켜볼게. 이런 식으루 또 얼마나 많은 비리를 덮으시는지.
혜원 (속수무책. 미소 뿐)
성숙 (달래듯)서대표...
영우 내가 뭐 틀린 말했나요? (혜원에게)어젠 정말 뭐야? 부대표루 승진시켜줬음 이사장 개인적인 심부름은 그만 하시지?
성숙 뭐?
준형 거 참,
민학장 (실실)
-세진,얼른 선재 팔을 잡아당겨 데리고 나간다.
세진 서류 몇 가지, 서명할 게 있어요.
선재 (나가면서 영우를 뚫어지게 본다)
영우 우리 회사 일까지 맡아놓구 왜 꼭 그래야만 하니?
혜원 그만 하시죠, 서대표님.
혜원 사무실.
-선재가 소파에 앉아 있고, 세진이 서류들 들고와 선재 앞에 펼쳐 놓으며,
세진 좀 놀랐을 거예요. 여기 높으신 분들은 다 개성이 강하시죠.
선재 (꿀꺽 삼키는)
세진 (서명 자리 짚어준다)표시된 데 다 서명하면되구요, 장학금은 학교 통해서 나가니까, 이거 제출하면 신종수 조교가 카드랑 다 발급해줄 거예요.
선재 (서명한다)
동 앞.
-선재가 나와서 머뭇, 둘러보는데, 혜원이 온다.
선재 (본다)
혜원 끝났음 가 봐.
선재 (본다. 싫어요)
혜원 가 보라구.
선재 아까 그 여자, 뭐예요?
혜원 (미간 파르르 떨린다)못들었니? 아트센터 대표.
선재 선생님한테 왜 그러는데요?
-모퉁이. 준형이 혜원 방쪽으로 접어들려다 멈칫, 물러선다.
-혜원 방 앞.
혜원 알 거 없어.
선재 (알아야겠어요)
혜원 세상 이치 배운다 생각해.
선재 어제까지 선생님한테 서운 했던 거, 싹 다 뭉개졌어요. 대신에 지금, 무지 핏대 나구 열 받아요.
혜원 가, 좀!!!
-혜원, 선재를 거칠게 밀어내고 들어가 문 쾅.
혜원 사무실.
-혜원이 문 닫고 거친 호흡.
세진 왜 그러세요?!
혜원 사무실 앞.
-선재, 문을 노려보며 서 있는데, 준형 웃으며 다가온다.
준형 가자. 학교 가서 쯩두 받구...나두 너 줄 거 있다.
선재 네.(혜원 방 돌아보는)
아트센터 주차장
-준형이 차를 향해 가고, 선재 뒤따른다. 준형, 저 놈 옆에 태우고 뭔가 좀 캐봐야지...
-선재, 당신 오혜원 남편 맞아? 겨우 그렇게 밖에 못해? 같이 가기 싫다.
선재 저기,
준형 (돌아보며 활짝 웃음)어,
선재 죄송한데요, 저는 따로 가야겠습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집안 일,
준형 (얼결)어어, 그럴래?
선재 (꾸벅)좀 이따 뵙겠습니다.
-선재 가고, 준형, 기습에 당한 기분.
혜원 사무실. 오후.
-혜원, 소파에 누워 있고,
세진 (조심스레)저, 기악과 김인주 교수가 황당한 소리 하는데 어떻게 정리하죠?
혜원 (맥없이)이상한 소리 뭐...
세진 학생한테 악기 소개 하면서 중개상을 아트센터 전속이라고 했대요.
혜원 아니라구 말 해야지...
세진 전화는 했죠...
혜원 이딴 소리 좀 안듣구 살믄 좋겠다...
세진 담요 덮어 드려요?
혜원 어...
김인주 방.
인주 너 학교 관두구 싶어? 따지랜다구 진짜 가서 떠벌이니? 혼자두 아니구 남의 꽈 조교까지 끼구 말이야.
시은 그건 절대 아니구요, 소리를 아무리 만들어두 안나오길래, 답답해 가지구요, 아트센터 그 언니가 기악과 선배라 그래서,
인주 아주 끼리끼리 놀아요. 걔두 너랑 하는 짓이 똑 같았어. 그러니까 시간 강사두 못하구 결국 포기한 거야. 너두 앞날 뻔해. 당장 지도교수 바꿔. 너 같은 애 가르치구 싶지 않어.
시은 교수님,
-유라가 들여다 본다.
유라 저 왔는데요,
인주 오오, 유라야, 복수전공 결정 했지?
유라 네, 뭐, 할 수 없이,
인주 들어와. 너한테 딱 맞는 거 하나 골라 놨어. (시은에게)넌 나가구!
-유라는 들어오고, 시은, 눈물 닦으며 나간다.
-한 켠에 첼로.
유라 얼마 짜리예요?
인주 그건 너희 엄마랑 얘기하믄 되구, 일단 소리 한 번 내 봐.
유라 저는 짝퉁 싫은데,
인주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음대 준형 방. 오후.
-준형, 등 돌리고 앉아 있다. 내가 지금 기분이 매우 나쁘거든?
-노크 소리.
준형 어.
-문 열리고,
준형 이선재한테 전화 좀 해 봐라. 왜 안오나.
선재 저, 왔습니다.
-준형, 뭐야, 이거. 의자 돌리며 활짝 웃음.
준형 어, 너구나. 난 또 신종순줄 알구,
선재 만났습니다.
준형 이거 저거 다 챙겨 받았어?
선재 네.
준형 학생 카드 잃어버리지 말구 최대한 활용해. 작년부터 체크 카드 겸용이라 공연장까지 다 할인이 돼요.
선재 저, 수업 시간 여쭤 보라구 하던데요.
준형 그래 학기 중 입학이라 다음 개강 전까지는 나한테 실기 레슨만 받으면 된다.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한 시. 내가 바쁘믄 최강사가 해줄 거야.
선재 네...
준형 그리구, 그 책들 갖구 가라. 그거 줄려구 오라 그랬지
선재 (얼핏 보면)
-책상 한켠, 대여섯권의 책. 미학, 음악사, 예술사 관련.
준형 2학기부터 정식 수강을 하게 되면 예술사 음악사 등등 교양 쪽이 많이 딸릴 거야. 니가 렉쳐가 워낙 빈약해요. 알지?
선재 (그렇다 치고요)
준형 그러니까 여기 이거 다 열심히 읽어 둬. 음악두 결국 인문학이야. 그게 왜 중요한가 하면, 자신을, 혹은 세상을 객관적으루 보게 해 주거든. 너희 때는 흔히들 순간적인 혈기를 순수라구 착각하기 쉬운데, 그래가지구는 음악이든 뭐든 다 제대루 읽어낼 수가 없지.
선재 알겠습니다.(책들 가방에 넣는다)
준형 어 참, 주말엔 집에 와서 체크 받아라.
선재 (네?)
준형 내가 스케줄 정해서 오선생한테 넘겨 줄 테니까, 착실히 해서 인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선재 (본다)
준형 왜, 뭐 의문점 있냐?
선재 아니요. (마저 넣고 가방 닫는다)
준형 (보면서 소리없이 한숨)
선재 그럼 가보겠습니다.
준형 그래, 수업날 보자.
-선재, 나간다....준형, 나직히 내뱉는다.
준형 쌔끼, 태도가,(쯧)
혜원집 준형 서재. 밤.
-준형, 서성인다.
준형 방.
-책상에 두 손 짚고 후우...
선재 방. 밤.
-선재, 피아노 끝에 한 손 짚고 서서, 주먹으로 건반 지그시 누르고, 또 누른다.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노.
사무실. 밤.
-어두운데, 소파의 혜원, 하염없이 눈물...내게 이런 순간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나한테서 이렇게 부끄럽고 서러운 감정이 삐져 나올 줄은.
-헉...헉...낮은 울음 토하며 일어나 앉는 혜원. 발끝 더듬어 구두 신다가 크게 북받치며 소리내어 울음.
7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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