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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회 8


 

선재 집.

-선재계단에 걸터 앉아 손마디 뚝뚝 꺾으며 눈 앞을 쏘아본다.

-자판 치는 선재.

-책상 귀퉁이준형이 준 책들과 장학증서.

 

선재 소리 막귀형무지 오랜만이야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는데없어서 쪽지 남겨요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그냥 지금 내 심정만 얘기할게.

한마디로 너무 비참해.

플래시 백.

 

-영우의 비아냥당혹감 스치는 혜원 표정.

-혜원 차 안곤히 잠든 혜원의 이마에 반창고손등의 멍자국.

 

혜원 사무실.

-책상 앞 혜원기운 없이 머리 빗다가 엎드리는데쪽지 도착눈물 말라붙은 얼굴.

선재 소리 내 여자가 이상한 사람한테 모욕을 당하고알 수 없는 일로얼굴 에손에 상처가 막 생겨 있는데도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내가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혜원모로 엎드린 채 한손으로 툭툭 자판.

 

혜원 소리 여신에서 여인으로 추락했구나낮은 데로 임해 주셨네.

선재 소리 그건 모르겠고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땜에 더 화가 났나봐이런 상 황인데지금 만나자고 하면 더 화낼까?

혜원 소리 나 너 좀 귀찮다니 맘대루 해.

선재집.

-선재팔짱 끼고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 집어든다.

혜원 사무실.

 

-혜원가방에 태블릿이며 이것저것 집어넣다가 핸드폰 다시 꺼내 본다.

선재 소리 저 선생님 만나야겠어요주말에 레슨 갈 거지만건데지금 이대로는 그때까지 못참겠어요.

 

-혜원새삼 눈물이 돈다널 만나 뭐라고 하겠니내 심중을 꿰뚫고야 말겠다는 듯그 여자 뭐냐고왜 그러냐고 묻는 애한테.

-삭제 누르고 핸드폰 다시 가방에 넣으려는데 또 문자.

 

선재 소리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요그냥 옆에 있어 드릴게요모텔방도 안 잡 을게요저희 집으로 오시면 되잖아요선생님 저희 집 좋아하시지 않 나요?

-혜원픽 웃음.

선재 집 현관 앞.

 

-준형숨 죽이고 서 있다.

 

선재 집.

 

-선재핸드폰 집어 보고내려놓고엎드린다발을 달달 떨기도.

 

현관 앞.

 

-준형돌아선다조용한 걸 보니 혼자 있는 거 맞아.

 

2층 계단 굽이.

 

-준형나오고다미 올라온다.

-몸을 비껴 스친다.

 

다미 소리 나.

 

선재 집.

 

-선재문을 확 연다.

 

선재 전화 하구 오라 그랬잖아!

다미 (들어서며)교수 온대?

선재 어어? (어딜 들어와!)

다미 오믄 그 때 가지 뭐.

 

-화장실 들어가는 다미.

 

선재 (미쳐핸드폰 본다답은 오지 않고)

다미 소리 라면 있냐?

선재 어,(아니지!)없어!

다미 소리 좀 사올래너 배 안고파?

선재 우리 나가서 먹자!

선재 집 앞.

 

-혜원의 차골목 들어와주차장으로후진하여 서는데,

-선재가 급히 나오고 그 뒤 다미.

-혜원납작 구겨지며 운전대 아래로 몸을 낮추는.

다미 뭘 나가...

선재 (떨린다)너 사주구 싶어서.

 

-계단 내려오는 선재와 다미선재는 경황없어 혜원의 차를 못봤다.

 

다미 집에서 해 먹으믄 되지.

선재 아진짜!

다미 깜짝야,

 

-선재다미 어깨 감아 안고 간다.

 

다미 오아 대박,(선재 허리에 팔 두른다)

 

-혜원간신히 고개 든다.

-선재와 다미의 뒷모습붙다시피 서로 안고서 가는.

-혜원저것들이!!!

 

영우 오피스텔.

 

-준형이 술을 따라 마시고영우 서서 짜증낸다야한 외출복 차림.

 

영우 왜 이래 진짜나 약속 있다니까?

준형 (힐끗)춤추러 가냐?

영우 뭐가 됐든!

준형 나가혼자 마시구 취하게.

-영우단축 번호 누른다.

 

영우 얘너 뭐니왜 니 남편 느닷없이 나한테 찾아오게 만들어너나 나나 다 쇼윈도 부부지만아무리 그래두 이건 좀 웃기지 않어?

선재 집 앞.

 

-혜원 차 안.

 

혜원 (전화)25년 우정에 그것두 못 받아 줘?!

 

-혜원전화 끊고 목을 뺀다골목 저쪽 기웃지금 준형은 안중에 없다다미랑 사라진 선재는 나타나지 않고.

포장마차..

 

-선재와 다미국수 먹는다마냥 즐거운 다미고개 쳐박다시피 하고 정신없이 국수와 단무지 흡입하는 선재.

 

다미 단무지 하나 더 주세요...

 

-다미단무지 받아 선재 앞에 놓아주고 다시 먹는다.

 

다미 내가맘을 고쳐 먹었어...좀 제대로 해볼까 해너랑 끕을 맞춰서일단 전문대 미용학과 목표루...좀 천천히 먹어라.

선재 (먹기만땀난다)

다미 나만 고졸에맨날 너한테 키스나 구걸하구그건 영 아니지.

-선재국물 마시고 그릇 내려 놓는다기둥에 걸린 두루말이 화장지 두 칸 뜯어 입 닦고,

 

다미 우리 원장두 고졸 견습부터 시작했는데성공한 담에 전문대 가서 사년 제루 편입했대지금 미용과 교수야정식은 아니구 무슨겸임인가

런 거...업계에서 그 정도는 아니더라두 너랑 끝까지 갈래믄 나두 발전 을 해야지.

선재 (눈 앞을 보며)...(손으로는 주머니 속 핸드폰 만지작)

다미 (웃음)역시.

선재 박다미.

다미 (단무지 베며 본다)?

선재 너, (외면하며 후)

다미 뭐...

선재 아냐.

선재 집 앞..

 

-혜원,멍하니 앉아 있는데창문 톡톡화들짝 놀라 창문 조금 내린다. 50대 남자.

 

주민 여기 세우믄 안돼요지정 주차제라구 써 있잖아.

혜원 아아죄송합니다저 쪽으루 댈게요.

주민 댈 데 없어소방도로라.

혜원 왜 반말이세요?! (내가 이런 말을!)

주민 어이구 미안해요얼른 가세요아줌마?

혜원 네?!

주민 아가시라고.

혜원 비비켜줘야 가죠!!

 

-주민이 물러서서 저 쪽으로 나가라 손짓혜원거칠게 출발.

-혜원운전대 꽉 잡은 손파르르 떨리는 입술.

혜원집 침실주말 아침.

 

-찻잔을 들고 소파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 혜원등 뒤로 커튼 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일부러 내다보지 않는 것 같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현관 벨소리.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 구질스러운 입지를 다 내보였고바람까지 맞았는데기다림설레임다 웃기지

 

거실.

 

-선재가 들어서며 꾸벅,

 

미순 어서 와요...

 

침실파우더 룸.

 

혜원 (내려선다담담히)내려 갈게요...

 

-잠시 후드레스 룸에서 머리 틀어 올리며 나오는 혜원옷이나 머리나의도적으로 강한 느낌을 주려는 것 같다화장까지 할 건 없겠지만,

-흐릿해진 상처에 분첩을 몇 번 눌러 가리고매무새 한번 살핀 뒤 나간다.

음악실.

 

-선재피아노 앞에 서 있고문을 확 열리면서 혜원이 들어온다.

 

혜원 왔니?! (뾰족하다)불타는 금요일재밌게 보냈어?

선재 (똑바로 본다무슨 말씀이신지)

혜운 넌 꿈두 없니야망 없어남들이 갖지 못한 재능을그렇게 희희낙락 막 써버려두 되는 거야?

선재 제가 어쨌길래요?

혜원 어쨌길래?! 그걸 왜 나한테 물어니가 더 잘 알지 않어? (선재의 어깨 거칠게 민다)

-선재그 서슬에 휘청건반에 손 집는다.굉음.

 

혜원 그럴 거믄 여긴 뭐하러 와?

-선재가 바로서자 혜원계속 밀어대며 왈왈선재소파 쪽으로 멈칫멈칫 밀려서고,

 

혜원 그냥 너 살던대루 살지날씨두 좋은데기집애랑 놀러나 다니지? (또 밀려는데)

선재 (혜원의 팔 잡는다)오셨네요맞죠?!

혜원 (뿌리치려)그래갔다갈래서 간 게 아니라지나가다 봤다둘이 아주 끌어 안구 나가더라?

선재 (혜원을 소파에 앉힌다)그럼 됐어요알았어요.

혜원 뭐가 돼뭘 알어!

선재 오셨으니까 됐구질투하시는 거 알았구,

혜원 (내심 흠칫.나 뭐란 거야?!)

선재 (스툴에 앉으며웃지 않고)그래서 좋아요대박이예요.

혜원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선재 또 그래서안심하구 여쭤 볼게요.

혜원 (이미 속은 다 들켰지만)!!!

선재 그 여자 도대체 뭔데 선생님 모욕하는지.

혜원 (휙 외면)그깟게 무슨 모욕이라구.

선재 (본다)

혜원 쳐다보지 마. (챙피해)

선재 (그러께요시선 돌리는)

혜원 (외면한 채 글썽)

선재 저 자신이 완전 등신 같았어요영화 같은 데서는 남자가 그럴 때 확 뒤엎잖아요.

혜원 후진 영화만 봤나부다그러는 게 더 등신이지.

선재 (본다)왜요?

혜원 말했잖아세상 이치 배운다 생각하라구.

선재 ()무슨 이치가 그래요?

혜원 퀵 배달루 돈 벌어서 컵라면 사먹구 핸드폰 요금 내구전깃세 내구 수돗세 내구그러는 대신 피아노 잘 쳐서 장학금 받는 걸루 먹구 사는 게 훨씬 낫잖어.

선재 (얼결)그렇죠...

혜원 (화장지 뽑아 코끝을 닦고는)신경 쓰지마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까,

선재 선생님은요?

혜원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구그걸루 또 벌구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선재 (멍해진다)

혜원 먹이사슬계급그런 말 들어봤어?

선재 드들어는 봤죠...

혜원 책두 좀 읽구 그래라.

선재 그러게요(바보처럼 웃는데글썽)

혜원 나는 그 중간 어디쯤 되겠지우아한 노비.

선재 (또 꿀꺽)그 여자가젤 꼭대기예요?...

혜원 꼭대기는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선재 (그렇구나...)

혜원 (자신에게 말하듯)아니구나...진짜 꼭대기는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마귀...

 

-혜원눈 앞을 보며 화장지를 꾹꾹 뭉쳐쥐고선재막막하고 슬프다무장 해제한 듯 한 혜원 모습내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배후아가리어둠절망감해질 녘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나지하철 역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인파를 보면서도 이 비슷한 걸 느끼곤 했는데...

 

혜원 동네아침.

 

-준형 차 온다.

 

혜원 집 음악실.

 

-선재손등으로 코끝의 눈물 닦고혜원옷자락 말았다 폈다 하다가 힐끗 본다.

 

혜원 (짐짓 웃음)너 울어?

선재 (웃음),아니요...

혜원 몰라두 그만 알아두 그만이야.

선재 그르니까요...

 

-외면한 채 있는 힘을 다 해 참는다여기서 터지면안되는데.

 

차고.

 

-준형 차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준형들어가려다 혜원 차 돌아본다.

-혜원의 차 문 열어본다열어진다.

-준형운전석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 대시보드며 콘솔박스 열어본다주유소 영수증 클립하나씩 살핀다혹시 선재를 태우고 장거리 운전 했나 싶은하지만 다 한결같이 사직동 주유소

-차 문 닫고 들어가는 준형.

 

거실.

 

-현관선재의 신발.

-준형음악실로.

-문 손잡이 잡고 잠시 생각한다문 열고 못 볼 꼴을 볼 것인가그냥 올라갈 것인가.

-문 연다.

음악실.

-준형예상 밖의 정적에 멈칫.

-혜원과 선재엉거주춤 일어선다둘 다 조금씩 울어서 먹먹한 표정.

준형 뭐해연습 안하구.

혜원 야단 좀 쳤어애가 도대체가 야망두 뭐두 없어내가 왜 이런 애 땜에 기운을 빼야 하지?

선재 (혜원을 힐끗)

준형 (이건 뭔 국면?)

혜원 교수님 앞에서 말 좀 해 보시지넌 도대체 뭐가 될려 그러니?

준형 무턱대구 잡으믄 안되지우리가 먼저 구체적인 목표와 스케줄을 제시하구,

혜원 글쎄 입이 아프도록 얘길 했는데두 못알아 듣잖아.

선재 잘못했습니다제가 너무 안이했어요열심히 할게요.

 

-준형나간다.

-혜원탈진하여 털썩 앉고선재꿀꺽 삼킨다.

혜원 협주곡 준비하자...디브이디 예심에 낼 거.

선재 저기,

혜원 (본다)

선재 모차르트가요어느날 갑자기인제부턴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내가 쓰구 싶은 곡을 쓴다그러다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혜원 (픽 웃음)

선재 그게 힘들어서 병 나구빚지구,

혜원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마그래선지원래 성격이 지랄 맞아서 제 풀에 그런 건지어떻게 아니부자들 돈으루 먹구 살면서두 얼마든지 저 하구 싶은 거 할 수 있어.

선재 (삼킨다)아니잖아요.

혜원 ()넌 그럴 수 있다니까?!

선재 (본다아니잖아요)

혜원 (부러 선재 눈을 똑바로 보면서)내년도 부조니 콩쿨 신청 마감이 5월 31일이야레퍼토리 정해야겠지협주곡 중에서 피아노 파트 악보 외워둔 거 있니?

선재 (북받쳐서 간신히)슈만 협주곡라흐마니노,파가니니 변주곡.

혜원 뭘루 외웠어.

선재 들으면서 총보 삼십번 쯤 봤구피아노 파트 따루 출력해서, (꿀꺽시선 떨군 채 눈물 그렁)

혜원 엄살 피울래?

선재 ...

혜원 (홱 돌아서서 나간다)

선재 (눈물 후두둑)

 

-선재삼키려 애쓰는데 잘 안된다닦아도 계속 눈물 난다.

 

준형 서재.

 

-혜원거칠게 서가의 악보들 손끝으로 훑다가 두 권 빼내고씨디 꺼내고,

 

거실.

 

-혜원이 준형의 서재에서 나온다악보 네 권(연주용 총보와 피아노 악보 각각 두 권씩과 씨디 여러 장 들고 혜원 서재로.

-준형이 이층에서 내려오며 힐끗준형 서재로.

음악실.

 

-혜원오디오 세트 앞에 앉아 씨디 케이스 열며.

 

혜원 다 까불지 말라 그래음악이 갑이야.

선재 (본다눈물 흔적)

 

-혜원소파에선재스툴에 앉고,

-음악 시작.

-라흐마니노프야파가니니야빨리 나를 뺏어줘다 부질없어지게...그런 심정으로 듣지만감정이 가라앉지 앉는다.

 

준형 서재.

-준형인터넷 검색 중유명 역술인들 기사운세 고민 상담 등광고 등 훑다가 전화.

 

준형 어...잘 놀았냐...니 집에서 대충 이거저거 꺼내 먹구좀 전에 왔어...,(혜원 서재 쪽 힐끗)...이런 걸루 뭐라지는 않지...너랑 뭔 짓을 하는 것두 아닌데....됐구너는 누구한테 다니냐,..역술인...나 소개 좀 해 줄래?...백선생은 안되지학부형인데...

 

-조금 후준형서성이며 전화기 귀에 대고 받기를 기다리다가.

 

준형 (선다)유심조 선생 댁인가요?...다름이 아니라 예약을 좀 하려구 하는데요...월요일 가능할까요서영우 대표 소개루 알게 됐는데...아이고그렇구나허허허뭐 할 수 없죠제가 시간 맞추겠습니다......

 

음악실.

 

-변주곡 9.

-물끄러미 눈 앞을 보며 듣는다.

-10번으로 넘어가자혜원발끝으로 조금씩 박자 맞추고피아노 파트 나오자선재의 손끝도 작게 움직인다.

-변주곡 18번을 거쳐,

-그 사이 앉은 자리가 바뀌었다혜원은 소파 앞 바닥에선재는 벽에 기대 앉아,

-피날레.

-정적.

-한참 말없는 둘다시금 현실의 울적함.

 

혜원 (냉정을 되찾아야지)넌 이게 왜 좋아?

선재 그냥뭔가 끝을 보여 주는 거 같아서요.

혜원 그럼 너두 그걸 보여주믄 돼부자들 돈은 그렇게 뺏는 거야.

선재 (손 끝 만지작)

혜원 (선다)학교 레슨은 언제야?

선재 (일어서며)월수금 한시요.

혜원 화 목 토 오전 열 시총보랑오케스트라 반주 피아노 편곡한 거악보 챙겨서 회사 연습실루 와.

선재 (본다)

혜원 뭐.

선재 제가 선생님 사랑한다구 하는 거다 같잖구 웃기실 거 같아요...진짜너무 무섭게 사시잖아요.

혜원 너나 잘 해아는 척 하지 말구. (돌아서며)시간 지켜라.

 

-혜원나간다소리나게 문 닫히고새삼 선재를 휘감는 혼란두려움슬픔.나는 얼마나 작고 가난한가.

거실.

 

-혜원입 꾹 다물고 계단 오른다.

선재집.

 

-헤드폰을 쓴 선재원곡 들으며 악보 출력한다.

 

음악실.

 

-혜원오케스트라 반주 악보 보면서 연습.

 

선재 집 밤.

 

-선재피아노 파트 연주.

-사이 사이혜원의 반주.

 

혜원 침실파우더 룸.

-혜원화장수 병 열다가 손목 찌르르떨어뜨린다.

 

준형 왜 그래.

혜원 갱년기가 오나봐.

준형 (힐끗 나가며)아직 이르지 않나?

혜원 그런가?

 

-약 바르는 혜원.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화요일 아침.

 

-세진책상 앞에 서서 문서 몇 개 스태플러로 찍는데노크 소리.

 

세진 네...

 

-선재가 조심스레 들어서고 세진이 손에 든 것들 내려놓으며 맞아준다.

 

세진 어왔어요?

선재 (꾸벅)안녕하세요.

세진 (소파 가리키며)잠깐 앉아서 기다릴래요실장님 회의 중이시라,

선재 네,

-조금 후세진은 통화 중이고,

-소파의 선재반쯤 남은 주스 잔을 들고 있다곁에 윗도리와 가방.

-행어에 걸린 혜원의 옷과 가방.

-선재주스잔 만지작혜원을 대할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설레기도 하고협주곡이라니혜원의 반주라니꿈만 같은 일인데.

 

세진 네십분 쯤 전에요.........알겠습니다...(끊고 선재에게)내려오라세요.

선재 아, (잔 놓고 일어서서 황황히 가방을 집어든다가방만)

세진 연습실 알죠?

선재 네지하 1.

 

-급히 나가는 선재.

 

연습실 앞 복도.

 

-선재바삐 왔으나 문 앞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어떤 표정으로 혜원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일 두루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나는 그 중간 어디 쯤이겠지’ ‘우아한 노비’...내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연습실.

-선재가 들어서면혜원직원과 전화 중선재 한번 힐끗 보고는 눈길 주지 않는다선재소파에 가방을 놓고 악보 꺼낸다복사본 각 2부씩 네 권.총보와 피아노 반주단정히 제본도 했다.

-두 대의 피아노에 악보 세워 놓는 선재.

혜원 피아노 위치가 이렇게 돼 있음 안되죠...통상적인 레슨이 아니라 협주곡 연습인데...마주 놓을 공간이 안되면 2번 방으루...?!...김인주 교수 제자들 대관 줬어요?...()알았어요암말 하지 마......수고.(끊으며 작게)그지 같애.

선재 저 그거 괜찮은데요.

혜원 (본다)?

선재 나란히 놓여두 괜찮다구요.

혜원 니 귀가 무슨 나팔 귀야?

선재 어제그거 녹음해서 옆에 놓구 들어봤는데요나쁘지 않았어요총보랑 싱크로가.

혜원 (그랬다구?)

선재 (본다....)

혜원 (칭찬 없이)준비 운동 해.

선재 (본다)

혜원 뭐.

선재 좀 괜찮아 지셨는지.

혜원 내가 그랬지너나 잘 하라구.

선재 (좀 보다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혜원지켜보고선재피아노 앞에 앉아 어깨 젖히며 숨쉬기.

-혜원악보(혜원용)를 집어 후르륵 넘겨 보고 표지를 본다큼직한 인쇄체 곡명손글씨로 작게 혜원이라 적혀 있다혜원안 본 척다시 펼쳐 세워 놓는다.

혜원 됐어.시작하자. (앉는다우선 인트로. (메트로놈 켠다)오케스트라 있다 치구해봐.

선재 (황당하다)

혜원 뭐 해?

선재 네.

 

-선재손 올리고 메트로놈 소리 듣는다작게 고갯짓두 마디 지나고타건 시작.

-둘 만 있는 공간에 긴 박자 한번씩 울린다이윽고선재멈추면,

 

혜원 장음이 더 어려워지금 그대로 하면 오케스트라보다 32분의 1정도 빨리 나올 거야반주 넣을테니까 아까 그대로 해 봐.

선재 (정자세)

 

-혜원인트로 시작선재박자 맞추다가연주 시작. 8,9초 가량의 긴장이 숨막히게 느껴진다.

-이윽고 둘 다 멈춘다.

 

혜원 어때내말 틀려?

선재 (인정해요)

혜원 첫단추를 잘못 꿰면 바로 잡기 힘들어다시 한 번.

 

-인트로 다시 치고나서,

 

혜원 쫌 낫네변주 2번 혼자 해봐.

선재 네.

 

-선재자세 바로 하고혜원앉은 채 지켜본다.

-선재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파가니니의 멜로디.

음대 학장실.

민학장 (통화)아유 아니지...개정 법안 올리기만 하믄 뭐해의원들 밥 먹구 하는 일이 그건데...지난 번 회기 중에 통과 안된 게 수십 건이야사학법 관련된 것만...

 

-준형이 들어온다.

 

민학장 (손을 들어보이고 다시 통화)내 다시 전화 할게......(끊고)부탁 하나 할려구.

준형 말씀하세요.

민학장 다음 주에 기독 기업인 조찬 기도회가 있어요.쫌 커.

준형 아아얘기 들었어요...

민학장 찬양대랑 반주 팀 좀 맞춰봐학부 애들 말구 원생급으루.

준형 애들이 시간이 될래나 모르겠네요.

민학장 그래두 어떡해해야지.

 

준형 방.

 

-준형부산하게 책상 위 치우고앞에 종수.

 

준형 현악 오중주성가대다음 주 월요일이라니까이번 주 금요일까지 모아 놔라.

종수 이번 주 금요일이믄 너무 촉박한데요.

준형 뭐가 촉박이야밥 먹구 늘 하는 건데오늘 중으루 연락 돌려서 맞춰 놔.

종수 저연주료는.

준형 뭐?!

종수 저번에 조청장님 혼사 때는 밥두 안주구 차비두 안줘서요악기들구 올 때 갈 때 다 택시 타야 하는데 배려가 너무 없으시믄 곤란하죠저희 아버지두 목사님이시지만 신도들 시간 뺏는 거 자제하시거든요.

준형 이건 봉사야돈받구 하믄 그게 찬양이냐영광으루 알구 기꺼이 해야지나 지금 나가서 볼일 보구 들어갈 거니까어레인지 해놓구 연락해.

 

-준형나가고종수보다가 잇사이로 나직히,

 

종수 저 띠발 새끼를 내가,

 

-문 벌컥 열림준형이 들여다본다.

 

준형 나 택시 타구 가니까차 좀 딲아놔.

종수 아,

아트센터 연습실.

 

-함께 치는 둘변주 8번에서 9번으로 넘어간다.

-혜원갑자기 건반 쾅 치며 일어선다.

혜원 너 지금 손가락 운동하니?!

선재 ...(아직 화가 나 있구나)

혜원 사색두 감정두 없는 기교가 무슨 소용이야?

선재 (서툰 위로)선생님 지금 멋있었어요.

혜원 뭐?

선재 손열음카푸스틴 치구 그렇게 일어서는 거 좋았는데.

혜원 나가서 찬 물에 세수 하구 와!

선재 (안먹히는구나일어선다)

 

화장실.

 

-선재손 씻고세수하고...

 

동 일각.

 

-선재,구석에 기대 서서 와이파이 접속.

 

연습실.

 

-소파의 혜원태블릿으로 선재 쪽지 본다.

선재 소리 막귀형나 정말 죽을 거 같아계속 화를 내구 있어지금 협주곡 연습 하는데분명히 자기가 틀렸거든?

혜원 (픽 웃음.한 손으로 자판)

혜원 소리 복 터졌구나협주 반주두 해주구.

선재 소리 그건 나도 알아꿈만 같은 일이지근데 숨이 막혀내가 크게 잘못한 거 같애내가 너무 많은 얘길 하게 만든 거야먹이사슬우아한 노 비나두 그런 말이 콱 박혀서 아파 죽겠는데자기 입으루 직접 한 사 람은 어떻겠어.

혜원 (외면글썽입술 잘근무슨 꼴이람...다시 자판)

혜원 소리 화 낼 만 하네.

일각.

 

혜원 소리 니 앞에서 아웃팅 당한 거나 마찬가지 아냐니가 여신이라고 믿는 내가 실은 노비에 지나지 않는다그걸 다 보여 준 거잖아.

 

-선재물끄러미 보다가 한숨...그렇지...망설이다 문자 찍는다.

 

연습실.

 

-자판 치는 혜원,

 

선재 소리 어떡하지?

혜원 소리 뭘 어떡해니가 진심을 다하면 전해지겠지.

선재 소리 아진짜그런 말 누가 못해심장 꺼내서 보여 줘?

 

일각.

 

-선재핸드폰 쥔 채 벽에 이마를 찧는다.

 

혜원 소리 너 혹시그런 거 생각해봤어연상 여인의 처절한 콤플렉스라던 가.

 

-돌아서서 문자하는 선재.

 

연습실.

 

선재 소리 확 업구 어디루 튀어버릴까?

 

-혜원쓴웃음.

-세진이 들여다본다.

 

세진 대표님이 찾으세요.

혜원 (당황)어어,(일어서며 접속 끊는다)도시락 하나 시켜 줘이선재.

세진 아,(핸드폰 꺼내는).

일각.

 

-화면막귀님이 퇴장 하셨습니다.

-선재터덜터덜 간다.

 

영우 사무실.

 

-혜원이 생수병 들고 들어온다소파의 영우서류 파일 덮어 탁자에 던지듯 놓으며 비아냥.

 

영우 이건 무슨 경우냐?

혜원 또 뭐...

영우 앉어...

혜원 (앉는다)

영우 이선재 레코딩 한다며실황 수준으로.

혜원 (물 한모금 마시고는)신경 쓰지 마회사 일두 바쁘실텐데.

영우 머?

혜원 재단에서 매년 하는 거야.

 

연습실.

 

-선재가 들어온다도시락 한 개와 생수가 놓여 있다선재혜원에게 전화.

 

선재 전데요...,여기 도시락,

 

영우 방.

 

혜원 니 점심이야먹구아까 지적한 대목 연습하구 있어.(끊으면)

영우 어이구야,..니가 가르쳐?

혜원 나두 힘들어.

영우 뭐가 힘들어풋풋한 사내애랑 밀폐된 공간에서 단 둘이...오오그게 숨막혀서?

혜원 (허허 웃지만)

영우 (미세한 당혹감을 놓치지 않는다)좋겠다 얘니 돈 한 푼 안들이구 젊은 애랑.

혜원 시끄러. (선다)갈게.

영우 (잡아 앉힌다)어쭈.

혜원 (다시 앉으며 영우 팔 떼내는)심심해서 시비 거는 걸내가 뭐하러 더 들어주니?

영우 넌 지금 날 도와줘야 하잖어기집애야그런 조건으로 부대표 자리 줬는데 왜 딴짓하냐고.

혜원 안되겠다진짜 가야지.(간다)

영우 한마담이 언제 그렇게 주식을 사 모았니?

혜원 (멈칫...웃으며 돌아본다)어머그래?

영우 허허허,

혜원 직접 물어 봐. (돌아선다)

영우 (서류철 던진다)저게 증말.

혜원 (집어서 탁자 위에 놓는다)아님 자세히 알아보던가머리는 뒀다 어디 쓸래?

영우 나 머리 쓰는 거 함 보여줘?!

혜원 기대할게.(나간다)

영우 (지그시 본다)

 

역술관.

 

-준형외경심 가득한 태도로 유심조 선생에게 쪽지 내민다.

-준형과 혜원선재의 생년월일 적혀 있다.

-선생이 찬찬히 본다.

 

준형 저희 부부랑제가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선생 학생이믄,

준형 네남학생.

선생 그러니까이렇게 셋을 같이 보겠단 말씀이죠?

준형 네실은저희 집사람이 동종업계 종사자라 그 친구랑 이래저래 만날 일이 많거든요.

선생 왜정분 날까봐서요?

준형 아니요아니요그게 아니라재주가 많은데 워낙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놈이라 어떻게든 제가 한번 잘 키워 보구 싶거든요저나집사람이랑 합이 잘 맞는지,

 

-선생이 뭔가 적어나가는 동안준형책상 아래로 문자 본다.

 

영우 소리 3번 연습실이선재랑 혜원이랑 단둘이 있는데너 열 안받어?

준형 (찌푸린다)

 

연습실.

 

-18번 함께 치는 혜원과 선재.

 

역술관.

 

-준형문자. ‘할 일 없으믄 잠이나 자’ 보낸다.

선생 허허 참대단하네.

준형 (얼른 자세를 바로한다),

선생 이 청년이이게 보통이 아니예요.

준형 어어떤 쪽으루,

선생 교수님께는 귀인두 이런 귀인이 없단 말이지.

준형 어떻게요?

선생 민둥산에 나무고빈 곳간에 쌀이고마른 입에 여의주야.

준형 (무슨 소리야)

선생 (뭔가를 또 쓴다)

준형 저희 집사람은요?

선생 당신 와이프는 관이 무려 네 개다 벼슬이네남자보다는 일과 명예를 우선시 하는 타입이지한데 부부간에 정은 그닥,

준형 네뭐 동지애로 살아갑니다유별나게 좋은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구 이혼이나 뭐 그런 거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선생 하면 안돼요.

준형 아니 그보다두이 친구랑,

선생 왜 자꾸 엮으시나.

준형 그게 아니라,

선생 부인의 성정을 믿으세요남편이 좋아서라기보다성격상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관이 네 갠데다 벼슬 관이예요... 남자보다 일이 늘 우선이죠뭣보다 이 친구절대 어디 보내지 마세요여기 이 넘치는 기운이 모든 걸 다 막아 주구교수님께 아주 큰 도약의 발판이 돼요몇 계단 껑충 뛰는 거지.

준형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뷰티샵 라운지.

 

-다미가 조그만 파우치 백을 들고 급히 온다.

-백선생과 김인주가 얘기 중.

 

다미 (백선생에게)여기,

백선생 아유 고마워요내가 너무 자주 흘리구 다닌다 그치?

다미 괜찮습니다.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김인주 솔직히 이선재는 강교수 제자라구 할 수두 없죠.

 

-다미멈칫.

 

백선생 맞아요그 와이프가 아주 끔찍이 아낀다죠?

 

-다미바닥에 티끌이라도 줍는 양 엎드려 살피며 더 듣는다.

-김인주와 백선생은 어느 새 말도 텄다학부형과 교수투자분석가와 고객가장 끈끈하고도 냉정한 유대.

 

백선생 이번에 아주 큰 기회를 주나봐요재단 지원 음악회던가?

김인주 그러게요올해는 거기 우리 애들 좀 세워 볼려구 했더니벌써 다 결정했다는 거야아주 보기 좋게 대관 연주회루 밀려났지 뭐.

백선생 이선재가 그렇게 잘 해요?

김인주 제법 하긴 하는 거 같은데뭐 꼭 그거 뿐이겠어?

 

-다미간다.

 

선재 소리 아니선생님...교수랑은 달라...(7)

 

뷰티샵 일각.

 

-다미숨듯이 서서 통화장호와.

 

다미 너 정유라 언제 만나?...나 오늘 손님들이 하는 얘기 들었는데어째 촉이 좀 안좋게 서서...선재 얘기 하는데 기분이 확 쏠리잖아기분 나쁘게... 정유라한테 좀 알아볼래?...그 와이프 어떤 사람인지...내가 바보냐그걸 선재한테 물어보게?! (이미 불길한 예감)

 

연습실.

 

-선재와 혜원피날레.

-사이혜원일어서서 악보 덮고선재는 그대로.

 

혜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선재 (본다)

혜원 (악보를 선재 앞에 들어보이는)장난 하니?

 

-악보 하단 혜원

 

선재 싫으세요?

혜원 뭐?

선재 웃으시라구,

혜원 너 이러다 까딱하믄 나한테 반말 하겠다?

선재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혜원 (돌아선다)불끄구 나가.

선재 (선다)

혜원 (멈칫)

선재 제 맘두 쪼끔만 생각해 주실래요? (담담하지만 답답함일말의 분노가 담겨있는)

혜원 ...

선재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거기 어떤 형이 그랬어요스펙 따위 필요없구그냥 음악 즐기면서 살라구.

혜원 (픽 웃음그게 나란다)

선재 저는 그게 사랑이라구 생각해요끝까지 즐겨주는 거요이 곡두 그렇게 하구 싶어요비트 16, 32, 막 쪼개가면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구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들다가 어느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구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그게 장땡이잖아요먹이사슬이구 노비구 뭐구.

혜원 (먹먹하지만)목요일에 보자.(나간다)

선재 (속수무책일까물끄러미 볼 뿐)

혜원 사무실.

 

-혜원이 들어온다잠시 서 있다힘들다이런 감정으로 연습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가방 챙겨 나가려다가 문득 돌아보면소파에 선재의 옷.

 

거리.

 

-선재헤드폰으로 음악 들으며 걷는다유일한 위안.

 

선재 집 식당 앞.

-골목 들어서는 선재헤드폰 벗어 목에 걸고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멈칫아차옷을 또 깜박.

-선재전화기 꺼내들고 잠깐 망설이 상황에서 혜원에게 이런 일로 전화 하기 정말 싫은데...할 수 없지단축 번호 누른다.

 

선재 (조심스러운)전데요...제가 또 옷을 두고 왔어요열쇠랑...?!...(올려다 보고는 다시 전화믿기지 않는)지금요?!!!

 

선재 집 층계참.

 

-선재숨가쁘게 뛰어 올라오다가 선다믿을 수 없어...

 

선재집 현관 앞.

 

-선재조심스레 다가선다낮은 불빛 비치는 문벅차게 따뜻하다숨을 좀 고르고자기 모습 한번 살핀 뒤문을 연다.

 

선재 집 안.

 

-문이 열리고선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혜원의 구두이거 실제 상황이야침착해따뜻한 혜원의 음성 들려온다.

 

혜원 소리 내 구두 돌려 놓지 마.

 

-얼른 신발 벗고 올라서는 선재.

 

혜원 오늘은 좀 놀다 갈 거야.

 

-침대 끝선재의 옷 입은 혜원이 걸터 앉아 있다리스트를 함께 듣던 날 선재가 입었던 티셔츠와 빨랫줄에 널어뒀던 헐렁한 바지까지맨발에아직 덜 마른 듯 한 머리투명한 낯한 손에 읽던 곳 손가락 끼워 접어 든 책까지한없이 편해 보인다.

-행어에 선재의 윗도리(혜원 사무실에 두고 왔던)와 혜원의 외투가방.

-선재꿈만 같아서 제대로 웃어지지 않는다오혜원이 저기 저러고 있다.

혜원 들어오면서 나 너희 어머니한테감사합니다그랬어.

선재 (잘 하셨어요...)

혜원 (손끝으로 티셔츠 어깨 찝어 보이는)어떠니여친 코스프레.

선재 (비로소 조금 웃음)전에 보니까 걘 저희 엄마 꺼 입던데요.

혜원 그럼 여친 아니구 가족이야내 말이 맞어토 달지 마.

선재 걸리믄 선생님이 져요.

혜원 도망갈 데 봐 놨어.

선재 (활짝 웃음)겁나 섹시해요.

혜원 근데 그러구 서 있어?

선재 나갔다 오면 양치하구 손부터 씻어야죠.

혜원 (하하하)

선재 (함께 웃음눈이 부셔요당신최고예요)

 

혜원 집준형 서재.

 

준형 (전화.잠옷차림)오실장 이선재연습 끝났나요?

 

통제실.

 

직원 아까 나가셨는데요......

 

준형 서재.

 

준형 아알겠습니다수고하세요...(끊고 뭔가 찬찬히 짚어보는 듯)

 

-준형태블릿 집어 이어폰 연결.

-선재의 동영상(혜원 음악실).

-준형이 집중하여 보는 건 간간이 찍힌 혜원의 모습들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미간 좁히며 정지 누르는 준형.

-혜원이 눈물 닦는 장면.

-준형한참 보다가 중얼.

 

준형 초장에 빠졌구만..

 

침실.

 

-준형들어와 파우더 룸으로.

-알약병(수면 유도제손바닥에 던다.두 알.

-선생 말씀 귓가에 쟁쟁.

-침대준형모로 누워 껌벅인다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스르르 눈 감는.

 

선생 소리 부인의 성정을 믿으세요남편이 좋아서라기보다성격상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관이 네 갠데다 벼슬 관이예요... 남자보다 일이 늘 우 선이죠뭣보다 이 친구절대 어디 보내지 마세요여기 이 넘치는 기 운이 모든 걸 다 막아 주구교수님께 아주 큰 도약의 발판이 돼요몇 계단 껑충 뛰는 거지.

선재집.

 

-고즈넉한데뜨겁다어두워서 더더욱.

-천장책상악보옷가지 등방 안의 모든 가난들과혜원의 구두외투가방이 합심하여 이들 남녀를 슬쩍 눈 감아주고 있다.

-아마도거친 호흡을 조심하며 성실하게 서로 만지는 중이겠지.

-이하오디오만비디오는 형용 불가.

선재 저못 할 수두 있어요...

혜원 (나직히 웃음.놀려먹는)...최고루 즐겨주신다며...그게 사랑이라며...

선재 (멋쩍어)...진짜...그런 말 괜히 해가지구...

혜원 너 진짜 첨이야?

선재 생각해보니까아닌 거 같아요.

혜원 그걸 생각해봐야 알어?

선재 저번날리스트 듣구 나서안아드렸을 때...죄송해요.

혜원 너 그때 눈치 챘지나 선수 아닌거.

선재 쪼끔이요...

혜원 내가 너보다 더 못할지두 몰라...

선재 그건 내가 판단해요...

혜원 (우는 것 같다)

선재 ...괜찮아요...

 

-아마도 선재가 눈물에 입맞추는 듯.

-혜원의 낮은 흐느낌.

-그래서 더 격정.

선재 불편하면말 하세요.

혜원 아니,

 

-숨가쁜 배려 끝에...

-시간 경과낮은 불빛혜원선재캔맥주 하나씩 들고 바닥에 마주 앉아 있다. (캔맥주는 방금 선재가 뛰어나가 사왔다)혜원은 침대에 기대어 무릎을 세운선재는 피아노 앞에 책상 다리.

 

혜원 너 술 안먹는다며.

선재 누가 그래요.

혜원 언제 배웠어?

선재 고담임이 가르쳤죠저희 학교는 거친 애들이 많았어요저 같은 애 절대 안 봐줘요양쪽에서 한팔 씩 잡고 입에다 소주랑 맥주랑 막 부어요간만에 학교 갔다가 그렇게 당하구 쓰러졌더니담임이 고량주 사들구 집으로 찾아왔어요배워두라구.

혜원 화끈하네.

선재 선생님은요...

혜원 나야 뭐든 여우같이 다 적절히 했지...태어날 때부터 마흔 살이었나봐.

선재 (본다)

혜원 (맥주 한모금 마시고)너 마흔이믄 나 환갑이다.

선재 어환갑죽이죠.

 

-선재훌쩍 일어서서 악보 한권 빼낸다모차르트 소나타집혜원이 보이도록 표지 넘긴다마리아 호앙 피레스 사진이 붙어 있다.

 

선재 이렇게 되는 거예요.

혜원 (짐짓 웃음)와우 마리아 여사...모짜르트는 저 언니 께 교과서야?

선재 주로.(피아노 악보대에 얹는다)

혜원 (피아노에 얹힌 사진 본다)60에 표정이 저럴래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니?

선재 (다시 앉아 맥주 집어든다)선생님이 더 이쁠 거예요.

혜원 뭐그럴 수는 있겠지있는대루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꾸믄...근데얼굴은 표정이 반이야...생각감수성그런 거.

선재 멋있을 거 같은데선생님은 머리두 섹시하시잖아요.

혜원 넌 그런 말 할 때 아무렇지두 않어막 굼실 거리지 않니?

선재 이상한가?

혜원 그짓말 같지...

선재 그럼 뭐가 정말 같은데요?

혜원 장땡이잖아요노비구 나발이구술두 안처먹구쌩까시나요그런 거.

선재 이건 어때요?

혜원 뭐.

선재 혜원아,

혜원 어쭈...(발 뻗어 선재 무릎 툭)

선재 (피하는)저 여자 발에 약한 거 아시면서,

혜원 (또 툭)여자 발?

선재 오혜원 발, (달려든다)

 

-다시 뜨거워 지는 둘아까와는 다르다침대 위의 즐거운 유희.

-시간 경과혜원은 침대에 누워 바라보고선재는 피아노 친다.

-시간 경과선재는 자고,

-시간 경과이른 아침욕실옷을 갈아 입은 혜원거울 앞에서 옷섶을 여민다.

-잠든 선재 보다가 돌아서는 혜원.

-신발 신는 혜원.

 

선재 집 앞.

 

-혜원나오며 조심스레 통화.

 

혜원 네이사장님,

 

선재 방.

-선재벌떡 일어나 내려서는데,

 

혜원 소리 네지금 출발합니다...

 

-선재슬프고 두려운 각성내가 사랑한다고 저 여인의 인생이 바뀔까?...

 

 

8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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