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9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해리 할로는 실험을 했습니다
(민준) 인간과 유전자가 95% 비슷한
붉은털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 놓고
두 개의 원숭이 인형이 있는 방에 가둔 겁니다
한 인형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몸에
젖병을 매달았고
다른 인형은 부드러운 천으로 감쌌습니다
젖병은 매달지 않았죠
새끼 원숭이는 두 인형 중
어느 인형을 더 선호했을까요?
[학생들이 두런거린다]
(학생) 젖병이 있는 인형이요
실험 전 예상도
(민준) 새끼 원숭이가 젖병에 매달린 인형을
더 선호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을 깨고
새끼 원숭이는 부드러운 천 원숭이 인형에
강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증명된 것이
바로 스킨십의 중요성이죠
(송이) 나한테 15초만 줘 봐
(민준) 무슨 15초?
15초 뒤에도
여전히 내가 도자기, 강아지, 나무면
내가 인정할게
나 무매력이라는 거
[어이없는 신음]
[휴대전화 조작음]
(송이) 시작 [휴대전화 조작음]
[심전도계 비프음] [심장 박동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민준) 눈 맞추기 역시
간접적인 스킨십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상대와 눈을 맞추면
뇌 속 신경 물질인 도파민이 나와서
기쁨이 고조됩니다
[반짝이는 효과음]
[빨라지는 심장 박동 효과음]
(민준) 키스를 하면
심장 박동 수가 평소의 두 배로 증가하고
평균 호흡수도 1분 평균 20회 이상으로 증가하며
혈압도 순간적으로 치솟습니다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어지럼증도 느끼게 되어
자기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기가 쉽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스킨십의 장난질이며
호르몬의 눈속임일 뿐
거기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됩니다
[사랑스러운 음악]
[송이의 뒤척이는 숨소리]
[심장 박동 효과음] [심전도계 비프음]
[민준의 한숨] [송이의 한숨]
[송이의 헛기침]
(송이) 내가 한 거 아니잖아
그게, 뭐
그럴 수도 있지
성인 남녀가
[송이의 한숨]
[민준의 앓는 숨소리]
[심장 박동 효과음]
[민준의 힘겨운 숨소리]
[송이의 졸린 숨소리]
(송이) 아, 목말라
[민준의 앓는 신음]
[민준의 앓는 숨소리]
도 매니저
하, 아니야
도민준 씨?
[앓는 숨소리]
아픈가?
[심장 박동 효과음]
하, 하…
하지 마, 만지지 마
뭐라고?
[빨라지는 심장 박동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민준의 놀란 신음] [펑 터지는 효과음]
(민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저리 가
가
[민준의 앓는 숨소리]
(민준)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심장이 뛰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
구분해야 합니다
[활기찬 음악]
[불안한 음악]
(신) 카메라에 찍힌 그 얼굴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날 절벽 위에서
제가 본 남자의 얼굴
[수하의 신음]
[신비로운 효과음]
(재경) 도민준이라고 했나?
네
(박 형사) 도민준 씨
영등포에서 나왔습니다
배우 한유라 씨 사망 사건 아시죠?
그 사건 관련해서 이것저것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신) 만약 천송이 손에 USB가 없는 게 확실하다면
도민준이라는 자에게 넘어갔을 확률이 큽니다
[앓는 숨소리]
아니, 근데 저게 나랑 하자마자 몸져눕는 건
무슨 똥 매너야?
내가 꼭 무슨 바이러스덩어리 같잖아
(송이) 이거 봐
아, 도민준 씨
도민준 씨
[무거운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죽었나?
[빠른 심장 박동 효과음]
[놀라는 신음]
엄청 빨리 뛰는데?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어도 사람이 살 수 있나?
[긴장되는 효과음]
엄마야
괜찮아?
어떻게 된 줄 알았잖아
비켜
(송이) 어
안 되겠어, 응급실 가자
이마에 프라이 해 먹게 생겼어
너무 뜨겁다고
- 빨리 가자 - (민준) 아, 안 가
[민준이 부스럭 일어난다] 왜?
(송이) 아, 왜?
왜 안 가?
[앓는 숨소리]
[민준의 힘겨운 숨소리]
(송이) 어, 열이 엄청나게 나고
몇 도냐고?
[생각하는 숨소리]
뭐, 한 50도?
[한숨]
50도에서 사람이 살 수 있냐, 이것아?
제발 좀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를 하자
(송이) 아무튼 뜨거워 완전 뜨거워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병원 가재도 안 간대
[입바람을 후 분다]
누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너 조카 셋이나 키워 봐서 이런 거 잘 안다며?
(홍 사장) 알지, 열날 땐 무조건
(송이) 어
벗겨
꼭 그래야만 해?
[민준의 앓는 숨소리]
[부드러운 음악]
(홍 사장) 벗겼어?
아직
(홍 사장) 홀딱 벗기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온몸을 마사지해
온몸
마, 마사…
아, 꼭 그래야만 해?
(홍 사장) 그게 직방이야
우리 조카들 해 줄 땐 기저귀까지 다 벗겨 놓고 했어
[앓는 숨소리]
어유, 야, 그럴 상황은 아니야
(홍 사장) 그래? 애가 커?
몇 살인데?
[민준의 앓는 신음]
[앓는 숨소리]
(홍 사장) 잠깐만
[민준의 앓는 신음]
야, 방금
그거 뭐야?
[민준의 앓는 신음]
이건 필시 성인 남성의…
(송이) 아, 일단 끊어
[휴대전화 조작음]
[민준의 앓는 숨소리]
그래,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익살스러운 음악]
뭐 하는 거야, 지금?
아, 열 내리는 데는 이게 직방이래
아니면 옷을 좀 벗어 보든가
하지 마
나가, 좀
(송이)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원래 꿈이 헬렌 켈러였어
알지?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겠지
디테일에 집착하지 마
어쨌든 간호사가 꿈이었던
내가 지금 간병을 해 주고 있다는 게
포인트잖아
(송이)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온몸을 마사지해 줘야 한다 그랬어
내가 해 주는 게 영 그러면
셀프 마사지라도 할래?
나가라고, 제발
혹시 어젯밤 일 때문에 어색해서 그래?
(송이) 그쪽 잘못 아니야
내가 경고했잖아
난 케미덩어리라고, 매력덩어리
난 이해해
우리 도민준 씨도 남자인데
그게 뭐, 자기 의지로 제어가 됐겠냐 말이지
아, 그렇다고 키…
키, 키, 키…
아, 아무튼 그거 하고 나서 이렇게 갑자기 앓아누워 버리면
내가 뭐가 되니?
혹시
처음이야?
[익살스러운 음악]
처음?
그럴 리가
아니, 나이가 몇 살인데 여태 뭐 했어?
[한숨]
뭐야?
당한 건 난데 일이 이렇게 돼 버리니까
내가 뭐, 미안한 것 같잖아
아무튼
열 내려야 되니까 추워도 좀 참아
아휴, 정말 갑자기 왜 이러니? 멀쩡하다가
[바람이 휭 분다]
아휴, 추워
[잔잔한 음악]
[한숨]
(휘경) 야, 이 답답아 왜 나한테 전화를 해?
그 자식한테 전화하라고
하, 네가 좋아한다는 그 자식한테 전화하라니까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알림음]
(휘경) 자냐?
[한숨]
[휴대전화 알림음]
(휘경) 안 자면 전화해라
[종이가 사락거린다] [노크 소리가 난다]
(석) 어, 왜?
(세미) 오빠, 나 궁금한 거 있어
(석) 뭐?
그, 지난번에
CCTV 사진에 찍힌 그 남자 [석이 서류를 사락 넘긴다]
도민준이라는 사람
몇 살이야?
지금은 대학 강사라던데
원래 뭐 하던 사람이야?
(세미) 혹시, 그…
형제 관계 같은 거 알 수 있을까?
뭐, 쌍둥이라든가
아니면 위로 형이 있다든가
씁, 그게 왜 궁금한데?
그 남자랑 천송이
어떤 관계야?
뭐, 좀 알아낸 것 좀 있어?
너 송이랑 제일 친한 친구 아니야?
(석) 그런 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네 친구한테 가서 직접 물어봐야지
나 걔 친구 아니야
친구 아니면 더더욱 이상하네
친구도 아닌데
네가 그 남자랑 천송이 관계가 왜 궁금해?
그냥 대답 좀 해 주면 안 되냐?
[작은 목소리로] 아이, 씨, 쯧
그 남자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이상한데?
[바람이 휭 분다]
[커튼이 펄럭거린다]
[신비로운 효과음] [사그라지는 효과음]
[신비로운 효과음] [사그라지는 효과음]
[커튼이 펄럭거린다]
[한숨]
[민준의 힘주는 신음]
[바람이 휭 분다]
[민준의 한숨]
[놀라는 숨소리]
[흥미로운 음악]
[한숨]
뭐 하는 거야, 그 안에서?
(송이) [졸린 목소리로] 어
어, 깼어?
좀 괜찮아?
[한숨]
(송이) 아니, 걱정돼서 옆에 있긴 있어야겠는데
창문 열어 놓으니까 너무 춥더라고
아유, 이게 [한숨]
안 열려
[송이의 힘주는 신음]
이게 왜 안 열려?
[침낭이 사각거린다]
이제 됐으니까 나가 [송이의 힘주는 신음]
[기가 찬 신음]
이, '익스큐즈 미'
(송이) 방금 뭐라고?
'됐으니까 나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도민준 씨가 아파서 정신이 나갔나?
그게 할 소리야?
밤을 꼴딱 새워서 간호해 준 사람한테
말하는 싸가지가 가관이네, 진짜
싸가지가 돌아온 것 보니까
이제 좀 살 만한가 보지, 어?
이거 왜 이렇게 안 열려?
[송이의 힘주는 신음]
- 입 좀 다물면 안 돼? - (송이) 아이고
침낭 지퍼가 고장 났나 봐 안 열려
밖에서 좀 열어 봐
그냥 그러고 있어, 그럼 귀찮게 하지 말고
(송이) 뭐? 아, 장난하냐? [익살스러운 음악]
아, 빨리 좀 열어 봐
아, 열어 보라고, 도민준 씨
도민준, 야
[한숨]
[송이의 황당한 웃음]
우아, 내가 은혜를 베풀었다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나? 어?
이건 아니라고 보는데
[송이의 힘주는 신음]
사람이 그럼 못 써, 어?
아플 때 도와줬으면 고맙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나의 진심 어린 어드바이스를 새겨들으라고, 어?
[송이의 힘주는 신음]
이거 빨리 열어 줘
내가 셋 센다
나 그 이상은 못 참아 책임 못 진다고
하나
둘
둘 반
반의반
반의반의 반
반, 반, 반
♪ 반바라 반반… ♪
[송이의 비명]
조용히 해, 골 아파
음, 나 좀 꺼내 줘
[탁 소리가 난다] [송이의 비명]
(송이) 야, 이거 뭐 하는 짓이야?
나 좀 꺼내 달라니까, 야
(송이) 이거 안 놔? 아, 너 이거
나 나가면 너 진짜 뒈…
[송이의 비명]
야!
너, 당신 나 여기서 나가면 뒈졌어
이, 씨, 나 진짜 화나면 무섭다
[송이의 힘주는 신음]
[송이의 기합]
[송이의 힘주는 신음]
너, 이, 씨 [송이의 힘주는 신음]
씨, 저거 갑자기 달려들어서 사람 혼 빼 놓을 땐 언제고
아주 그냥 사람을 들었다 놨다
저런 도깨비 쓰레빠 같은 자식
저거, 씨
[송이의 힘주는 신음]
[불안한 음악]
- (강사1) 아유, 추워, 추워 - (강사2) 아유
아유, 추우니까 배가 더 고파지는 거 같아 [강사3의 추워하는 신음]
[강사2의 옅은 웃음] 어? 도 쌤 아직 안 나왔네?
오늘 계절 학기 수업하는 날이잖아
웬일? 절대 지각 안 하는 사람이?
(강사3) 오다가 조교 만났는데
오늘 휴강이라고 했대요
어디가 아프다나?
그 인간 어디 아픈 날도 있구나?
처음 보네
(강사3) 쩝, 아이고
[강사3의 힘주는 신음]
[키보드 조작음]
(영목) 누구세요?
(송이) 어? 아버님?
[흥미로운 음악]
천송이 씨?
[송이의 웃음]
아유, 또 뵙네요
아버님
[웃음]
[송이의 힘주는 신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예, 천송이 씨도
아버님
시간 되시면 저 좀 꺼내 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송이) 그럼 새벽에
아버님께 전화를 한 거예요 도민준 씨가?
(영목) 예
근데 갑자기 왜 저러죠?
저렇게 아픈데 죽어도 병원은 안 가겠다 그러고
병원 안 가도 됩니다
왜요?
[보온병 뚜껑을 드르륵 돌린다]
(영목) 이거
(영목) 힘들어도 좀 드세요
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 넘기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숟가락을 달그락 집어 든다]
아, 이런 일은 30여 년 전에
(영목) 은행에 근무하실 때
왜, 저 처음 만나셨을 때요
그, 선생님을 엄청 싫어했던 직원 하나가
커피에 침 뱉어 갖고 줘서
그거 드시고 기절하셔 가지고는
한 1주일 된통 아프셨잖아요
민경욱이
내가 아직도 그 친구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니, 혹시라도 또 그런 일 있을까 봐
누구랑 겸상도 안 하고 사시던 분이
천송이 씨랑 같이 식사하셨던 겁니까?
[흥미로운 음악]
뭐…
아니지
식사는 저번에 저랑도 같이 하셨고
그 정도는 괜찮았잖아요
[숟가락을 달그락거린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혹시
그런 겁니까?
그거
뭐가요?
[민준의 힘겨운 신음]
좀 쉬어야겠습니다
(영목) 좀 참으시지
아니, 목숨 걸고 하실 것까지야
그럼 쉬세요
왜 하필 떠나야 하는 이때인지
속상합니다
혹시 말입니다
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부드러운 음악]
마음이 깊어져 버린 뒤에 가 버리시면
가야 하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남겨진 사람 마음도 깊어진 만큼 아프지 않겠습니까?
[문이 달칵 여닫힌다]
(집주인) 아니, 이게 뭐야?
살던 사람이 죽어 나간 것도 찜찜한데
[집주인의 한숨]
(박 형사) 그러게요
도배 싹 다시 하셔야겠네
[집주인의 한숨] 평소 이 방 살던 친구랑 대화는 안 해 보셨고요?
(집주인) 얼굴 마주칠 일도 없었죠
새벽에만 돌아다니는데
저기, 소문 안 나게 해 줘요 집값 떨어져
(박 형사) 네
헬멧 이 자식 아주 한유라한테 미친 놈이었구먼
박 형사님
(박 형사) 예
[긴장되는 음악]
(석) 이게 뭐죠?
(박 형사) 산부인과?
한 달 전이네?
혹시 이 여자
애 가졌었나?
그런 건 부검 결과에 안 나왔잖아요
국과수 부검에는 약물 기록 정도만 나와요
(박 형사) 배가 이, 남산만 할 때 아니면
임신 초기는 부검 결과로 알기 어렵고요
또 부검 당시에는
타살인지 자살인지의 여부에 집중해 있느라
임신 여부 검사는 따로 안 했고요
요양급여 지급 내역부터 살펴봐야겠네요
(박 형사) 이거 뭐, 드라마틱하네, 사건이
그러니까 한유라한테 남자가 있긴 있었다는 거잖아요
상대는 그때 그 임종 체험관에
같이 왔었다는 그 남자겠죠 아무래도?
[박 형사의 생각하는 숨소리]
혹시…
그 사람 아닐까요?
도민준
왜요?
아, 왜 그런 루머 있잖아요
한유라랑 천송이랑 미용실에서 남자 때문에 머리 잡고 싸웠다
그날 미용실 CCTV 확인하셨잖아요
그런 건 없었고요
없었죠
근데 둘이 싸운 거는 맞고
남자가 등장했었죠
도민준
(박 형사) 그러니까
이게 시나리오를 써 보자면
도민준이랑 천송이가 옆집 살면서 좋아지낸 거지
그런데 어쩌다가
한유라랑 도민준이가 바람이 난 거야
이놈이 반반하게 생긴 데다 워낙 돈이 많으니까
그런데 천송이한테 들킨 거지
천송이가 성깔이 장난 아니니까 난리가 난 거야, 난리가
그래서 천송이를 선택했는데
이럴 수가
덜커덕 한유라가 임신을 했네?
그러니까 이 인면수심 도민준이가
한유라를 없애기로 마음먹고
배에 탄 거지
그날 도민준 씨는 알리바이가 있었어요
[멋쩍은 숨소리]
그게 이제 이상하기는 한데
증거도 없는데
섣불리 앞서가지는 마시죠
물증이 아니고 심증이야 이 양반아, 어?
초짜라 뭘 몰라, 백날 얘기해 봐야
(영목) 잘 좀 부탁합니다
거, 남은 죽 좀 데워서 먹으라고 좀 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아버님
걱정 말고 가세요
혹시
저 녀석이 못되게 굴더라도요
밉다고 죽에다 침 같은 건 뱉으시고 그러면 안 됩니다
어? 그러려 그랬는데
[웃음]
아, 농담입니다, 아버님
진짜 안 돼요
큰일 나요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닫힌다]
[긴장되는 음악]
'지구에서 마지막 3개월의 기록'?
(송이) 그거 뭐야?
무슨 마지막 3개월이 어쩌고 한 거
뭐, 어디 가?
아니면 뭐, 지병이 있으신가?
질문하지 말랬지
에이, 설마
[불안한 음악]
유라가 임신 초기였다고?
(신) 네
그게 왜 부검에서 안 나온 거야?
워낙 초기라
국과수 부검에도 안 나온 모양입니다
(신) 요양급여 진료 내역에서
병원 진료 내역이 나와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유라) 나 아는 사람들
오빠 아는 사람들 죄다 온 거 같던데
기대해
내가 그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할지
그 얘기 들으면 오빠도 아마
놀랄 거야
내 우울증이야 오빠 하기 나름이지, 뭐
얼마 전부턴 약도 끊었어
(신) 검사 쪽에서는 타살도 열어 놓고
한유라의 남자 찾기에 주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송이도 참고인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높은데
천송이가
상무님과 한유라의 관계를 검사 쪽에 얘기라도 한다면
들를 데가 있어
갚는다고, 누가 떼먹니?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 천송이 엄마야
걱정도 팔자다
어, 그래, 나중에 통화해
[휴대전화 조작음] [반가운 숨소리]
[미연의 웃음]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그러게요, 강 대표
몇 달 전까지는
우리 송이랑 계약을 하겠다고 그렇게 연락을 하더니
(미연) 요새 뚝 끊겨서
좀 섭섭하려 그랬지, 난
[강 대표와 미연의 웃음]
커피 시킬까요?
[잔잔한 음악]
[미연의 놀라는 탄성]
진짜?
(미연) 이 금액을 주겠다는 거야?
왜?
아, 물론
우리 송이는 그럴 값어치가 충분히 있긴 하지만
[웃음]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
그동안 천송이
너무 얌전한 작품들만 했잖아요?
(미연) 응?
(강 대표) 이제 나이도 있고
무슨 소리야, 그게?
영역을 좀 넓혀 보자는 거죠
[손가락을 딱 튀기며] 이미지 변신
(강 대표) 일단 그, 모바일 화보 쪽으로도
진출을 해 보고
영화도
성인물 할 때가 됐죠, 이제
아휴, 뭐, 그렇다고
아주 이상한 걸 하자는 건 아니고요
[차분한 음악]
어머니
어머니는 누가 네 어머니니?
나 너처럼
늙고 족제비같이 생긴 아들 둔 적 없거든
어머니 찾고 싶으면 너희 집 가서 네 엄마 잡고 물어봐
나 왜 이러고 사냐고
(강 대표) 이 여자가!
딸내미 등골 빼 먹고 사는 주제에 어디서 엄마 코스프레야?
왜? 돈이 부족해서 그래?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해 더 달라고
어? 더 주면 할 거잖아 뭔들 못 시키겠어?
당신
딸 영혼도 팔아먹고 사는 천송이 엄마잖아
뭐?
근데 더 주겠다는 데 없을걸?
나나 되니까 벗겨서 몸이라도 해 볼까 했던 거지
(강 대표) 아유, 씨, 진짜, 쯧
[강 대표의 짜증 섞인 신음]
당신 딸
이 바닥에서 아웃이야
당신 밥줄도 끝났다고
정신 차려
[멀어지는 발걸음]
[떨리는 숨소리]
[분한 숨소리]
[문이 스르륵 닫힌다]
[떨리는 숨소리]
(송이) 응?
[졸린 신음]
아유, 뭐야?
왜 내가 여기서 자고 있냐?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좀 괜찮아?
손 아직도 안 나았어?
얼마나 다친 거야?
(민준) 다 나았어, 이제
(송이) 아버지가 오래 계시다 가셨어
그쪽 걱정 많이 하시더라
엄마보다 아버지랑 더 친한가 봐?
나도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 계신데?
몰라, 나도
[잔잔한 음악]
못 만난 지 벌써 12년이 넘었어
(송이) 보고 싶은데
한 번을 안 나타나
아마 내가 마지막에 너무 못되게 굴어서
나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나 봐
[조용한 음악]
(어린 윤재) 누나, 나 배고파
엄마 아빠는?
(미연) 당신은 그냥 몸만 나가
(민구) 말했잖아 애들은 내가 키우겠다고
(미연) 정 그러면 윤재만 데리고 나가
송이는 내가 키울 거니까
(민구) 왜 돈 되는 송이만 네가 데리고 있고
쓸모없는 윤재는 나한테 떠넘기겠다?
그래
돈 되는 송이는 내가 키울 거야
(미연) 당신이 데리고 있어 봤자 쟤는 아무것도 안 돼
송이 아역 배우 데뷔시킨 건 나야
밤낮으로 촬영장 쫓아다닌 것도 나고
앞으로도 내가 케어해야 돼
난 쟤 꼭 성공시킬 거니까
(민구) 나도 하지, 뭐
너 하는 것처럼 밤낮으로 촬영장 쫓아다니면서
나도 송이 성공시키지, 뭐
너는 하는데 나는 왜 못해?
내가 미쳤냐?
쟤 하나가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그런 엄청난 돈줄을 너한테 넘기게
송이야
아, 아빤 그게 아니고
그, 그런 게 아니야
(어린 송이) 만지지 마
송, 송이야
이름 부르지 마
아빠는 이제 내 아빠 아니야
(어린 송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아빠가 한 번만 더 내 이름 부르면
나 정말 확…
죽어 버릴 거야
[어린 송이의 성난 신음]
[문이 탁 열린다]
나이 들었나 봐
(송이) 우리 아빠가 그때 했던 말들이
이젠 이해가 돼
진심 아니었을 거야
그냥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우리 아빠가 나랑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그렇게 짧게 있을 거였으면
날 그렇게 사랑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그러고
나 뛰쳐나가다가 진짜 죽을 뻔했다
건널목 뛰어가다가 트럭에 치일 뻔했었거든
[의미심장한 음악] 근데 어떤 아저씨가 나 구해 줬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이상해
분명 트럭이랑 부딪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정신 들어 보니까 내가 건너편에 가 있더라고
그 아저씨 품에 안겨서
그 아저씨 뭘까?
인간일까, 귀신일까?
옷은 시커메 가지고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말이 길어지면 늘 헛소리를 하지
그래, 이해해
나 같아도 헛소리라 했을 거야
그렇지만 이건 팩트거든
나만 본 게 아니야 휘경이도 같이 봤어
잠이나 자
[휴대전화 벨 소리]
(송이) 어? 재경 오빠네?
요즘 이 오빠 나한테 왜 이렇게 자주 연락해?
[신비로운 효과음]
어머나
[긴장되는 음악] 어머, 얘 갑자기 왜 이래?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휴대전화 조작음]
송이야
(재경) 천송이
안에 없니?
없네
운이 참 좋은 계집애네
[송이가 케이스를 달칵 끼운다]
재경 오빠, 요즘 낌새가 좀 이상해
[휴대전화 전원음] 뭐가?
아무래도 날 마음에 두는 게 아닌가 싶어
(송이) 지난번엔 집까지 찾아오더니
건강 관리 잘하라고 막 내 생각 해 주고
밥 먹자 그러고 자꾸 전화 오고
어휴, 어쩐담?
아, 나 이런 거 정말 싫은데
형제의 난 같은 거 일어나는 거 아니야?
아, 나 때문에 휘경이 새끼, 재경이 오빠랑
우애 갈라지고 막 그러면 어떡해?
세상 남자들이 다 당신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쪽 빼고 다
하긴
이제 그쪽도 빼면 안 되지
어젯밤엔
좀 당황스러웠거든
이상형이 어떻게 돼?
그딴 거 없어
나는 있는데
나는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
[부드러운 음악]
(송이) 우리 아빠처럼
갑자기 사라질 사람 말고
진짜 평생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줄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휘경이가 딱인데
왜?
내일 강의 준비해야 돼
[잔잔한 음악]
[송이의 편안한 숨소리]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어두운 음악]
[도어 록 작동음]
[지지직거린다]
(재경) 누구시죠?
내가 묻고 싶네요
누구신데 천송이 씨 집에서 나오는 겁니까?
그 집에 지금
사람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재경) 아
없더라고요
있는 줄 알고 들어간 건데
혹시 송이 만나면
못 만나고 가서 아쉬웠다고 전해 주세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도
전해 주시고
[의미심장한 음악]
뭡니까?
그만해
[피식한다]
뭘?
너한테 있지?
USB
그거 내놓는 게 좋을 거야
너한테도
천송이한테도
[재경의 웃음]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나는
너 같은 애송이가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재경) 네가 지금 살아 있는 건
내가
살려 뒀기 때문이야
천송이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흥미진진한 음악]
당신이 천송이를 건드리는 순간
당신의 실체는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질 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그리고
(민준) 당신이 모르는 게 있는데
당신은
나를
절대 죽일 수 없어
[부드러운 음악]
(송이) 나는 내 옆에 오래오래 있어 줄 사람
우리 아빠처럼 갑자기 사라질 사람 말고
진짜 평생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줄 사람
(영목) 마음이 깊어져 버린 뒤에 가 버리시면
가야 하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남겨진 사람 마음도 깊어진 만큼 아프지 않겠습니까?
[사진을 사락 넣는다]
(세미) 도민준 교수님?
아, 안녕하세요
누구…
아, 저는…
유세미라고 해요
배우고요
(민준) 아
[세미의 옅은 웃음]
(세미) 죄송해요
오늘 수업 있으시다 그래서 무작정 찾아와 봤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송이 친구인데요
송이 문제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아, 죄송해요, 바쁘신데
할 얘기라는 건 뭡니까?
혹시
송이한테 제 얘기 들으신 적 있으세요?
(송이) 어휴 오늘 메이크업 왜 저래?
화장 완전 떴다, 그렇지? [흥미로운 음악]
쟤는 꼭 연기를 머리로 하더라
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게 없어
아유, 내가 언제 한번 만나면 어드바이스 좀 해 줘야겠다
글쎄요
저는 예전에 송이한테
교수님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세미) 여러모로 도움 많이 받고 있다고
송이가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실은
송이랑 저는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안 좋은 사건 터지면서
오해가 생겨서
지금 좀 멀어진 상태고요
저는 어떻게든 화해를 하고 싶은데
송이 성격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알죠, 성격
쉽지 않거든요
안 쉽죠
[세미의 한숨]
(세미) 상황 안 좋은 거 빤히 아는데
어떻게든 힘이 돼 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가 이런다는 거 알면
더 싫어할 거 같고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송이 상태가 어떤지
뭐, 나쁜 일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제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궁금할 때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러십시오
그런데요
(세미) 송이랑은 최근에 처음 만나신 거예요?
아니면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세요?
천송이 씨가 이사 오면서
처음 만났죠
아, 네
[옅은 웃음]
아무튼 너무 다행이에요
지금 송이 곁에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셔서
[세미의 옅은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송이 언니, 이거
[익살스러운 음악]
[옅은 한숨]
고마워, 잘 먹을게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린다]
죄송해요, 언니
버릇이 돼서 자꾸…
괜찮아
송이랑 더 오래 지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뭐 [포장지를 부스럭댄다]
(세미) 너희가 고생이 많다
송이 그렇게 되고 마음도 안 좋을 텐데
바로 나한테 와서
- 아니에요 - (범) 아니에요
[옅은 웃음]
그래도
송이 같은 톱스타랑 일하다가
나랑 일하려면 답답하고 그럴 거야
내가 뭐 모르거나 그럼
얘기해 줘
(민아) 아, 진짜 그런 거 없어요
[민아의 어색한 웃음]
언니는 천사시잖아요
아, 전 솔직히
송이 언니랑 일할 때보다
언니랑 일하는 게 더 좋아요
진짜?
그럼요
[민아의 웃음]
정말이야?
아, 당연하죠
훨씬 더 좋아요
[웃음]
(범) '천사'?
야,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치, 오빠는
[범을 흉내 내며] '당연하죠 훨씬 더 좋아요'
아이, 진짜
먹고 사는 게 뭔지 [한숨]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후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더라
나 어렸을 땐 아빠 앞에서는 아빠가 좋다고 하고
엄마 앞에서는 엄마가 좋다고 그랬거든
근데 마음은 늘 할머니였어
왜?
할머니가 키워 주셨잖아, 나
오늘도 마음은 송이 누나인데
나 세미 누나라고 거짓말했다
나도 [다가오는 발걸음]
- (휘경) 얘들아 - (범) 어? 형
- (민아) 안녕하세요 - 세미 어디 있냐?
(범) 저기
(남자 배우) 죄송합니다
[범의 한숨] 각도가 안 맞았네
[남자 배우의 헛기침] (최 감독) 아, 자, 자
자, 다시 갈게요, 레디
액션!
[남자 배우의 웃음]
(남자 배우) 아, 미안
감정이 안 잡혀서 [저마다 구시렁댄다]
[남자 배우의 헛기침] (최 감독) 아, 왜 그래?
저 자식 뭐냐, 저거? [남자 배우가 변명한다]
(범) 원래 진상이에요
키스 신만 찍으면 NG를 내
[남자 배우의 웃음]
(남자 배우) 야, 천송이보다 유세미가 더 나아
애가 나긋나긋하잖아
[웃음]
[익살스러운 음악]
[남자 배우의 못마땅한 신음]
당신 뭐야?
어? 세미야
(휘경) 촬영 힘들지?
안 추워?
[휘경의 추워하는 숨소리]
[헛기침]
유세미를 왜 만나?
걔가 왜 도민준 씨를 찾아가?
얘기했잖아
유세미 씨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었어
걱정?
웃기고 자빠졌다, 진짜
그 계집애 내 친구 아니야, 이젠
진짜 어이없는 계집애네
(송이) 아, 대체 무슨 꿍꿍이야?
뭘 알고 싶은 거야?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나 그런 거 캐내려는 거야, 뭐야?
오래된 친구라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좋은 사람 같았어
[송이의 어이없는 신음]
(송이) 도민준 씨 지금 누구 편이야?
내 편이야, 유세미 편이야?
[포크를 탁 놓으며]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왜 아니야?
내가 유세미 싫다고 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
(민준) 천송이 씨 당신 주변 사람들이
당신 떠나는 데도 이유가 있을 거고
뭐?
내가 이렇게 된 게
내 탓이니, 그럼?
주변 사람들이 네 편 안 들어 준다고
원망하기 전에
넌 왜 그 사람들을 네 편 못 만들었나
생각해 보란 말이야
어쩌면 네가 외로운 건 네 탓이야
나 안 외로워, 누가 외롭댔어?
아니면
왜 여기 와 있는데?
친구한테도 가족한테도 못 가고
왜 낯선 남자 집에 와 있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민준) 왜 나한테 의지해?
넌 외로운 거야
누구도 곁에 없어서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어서
[송이의 성난 신음] (송이) 나가!
여기 내 집이거든
한 마디도 하지 마, 꺼져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문이 쾅 닫힌다]
(휘경) 내 문자 못 받았어?
[잔잔한 음악]
받았어
근데 왜 전화를 안 해?
무서워서
(휘경) 그때 네 전화 받고 생각 많이 했어
그동안
내가 정말 눈치 없이 굴었더라
처음 송이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도 너고
내 편지
송이한테 전해 준 것도 너고
송이 때문에
힘들 때마다 불러내서 상담했던 것도 너인데
너
내가 그럴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냐?
미안했다
근데
앞으로도 미안할 것 같다
날 바라봐 주지 않는 사람 좋아하는 그 마음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서
네 마음 정말 아플 거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서
그거 생각하면
나도 정말 속상한데
[옅은 한숨]
사랑하는 여자 따로 마음에 담아 두고
내가 너한테 뭘 해 줄 수 있겠냐?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거절밖에 없다
[한숨]
그래서 미안하다
마음 정리 되면 연락해
난
친구로서 유세미
잃고 싶지 않으니까
휘경아
[세미의 한숨]
송이 옆집에 사는 도민준이라는 남자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쓸쓸한 음악]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한숨]
[부스럭거린다]
[사진이 사락거린다]
이게
뭐야?
[한숨]
말했잖아
12년 전 그 사고에서
송이 구해 준 그 남자
(세미) 나 안다고
그때 내가 찍은 사진이야
네가 보기엔 어때?
난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게 말이 돼?
12년 전이야
너도 변하고
나도 변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몰라
중요한 건
12년 전 그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남자가
지금 송이 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거야
(세미) 송이는 그 남자가 그때 그 사람인 걸
아직 모른다는 거고
[자동차 가속음]
(송이) 그 사람 얼굴, 너 기억나?
난 봤거든
분명 봤는데 기억이 안 나
[멋쩍게 웃으며] 아니, 뭐, 그냥 첫사랑은 좀 오버고
그냥 언젠가 한번 만나 보고 싶다 뭐, 그 얘기지
그때 나 살려 줘서 고마웠다고
근데 나 왜 살려 준 거냐고
한번 뭐, 물어보고 싶다
쯧, 그거지, 뭐
[자동차 가속음]
[못마땅한 신음]
꺼지란다고 진짜 꺼지냐?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휴, 씨, 배고픈데
[초인종이 울린다]
치킨하고 맥주 포장해 주세요
[도어 록 작동음]
[잔잔한 음악]
네가 왜 여기…
[성난 숨소리]
네가 왜 도민준 집에 와 있어?
도민준 어디 있어?
야, 너 왜 그래?
- (휘경) 나와 - (송이) 아!
(휘경) 나오라고
아, 이거 놔 봐, 좀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와 있었어
[문이 달칵 닫힌다]
(송이) 병원에서 나온 날
누가 우리 집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너무 무서웠는데
갈 데가 없었어
왜 없어?
어머니 집도 있고 호텔도 있고
엄마 집은 더 싫고 내가 여배우인데 어떻게 호텔에…
내가 지금 그럴 상황이니?
그래도 여긴 아니야
정 갈 데 없으면 우리 집 와 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니면 내가 집 사 줄게
(휘경) 거기 가 있어
아무튼 여긴 안 돼
다른 데는 다 돼도 여긴 안 돼
이휘경, 진정해
청평에 우리 별장 있어
(휘경) 음식 해 주시는 아주머니도 계시고
경비 서 주시는 분들도 많아
거기 가 있자, 당분간
거기 가 있자, 송이야
부탁이다
너 요즘 힘들었잖아
가서
쉬기도 하고 그렇게 하자
차에 먼저 가 있어
짐 갖고 내려갈게
(휘경) 어
고맙다
그래
너 없는 동안에
내 짐 싹 다 빠졌을 때의 헛헛함을 한번 느껴 봐
[문이 스르륵 닫힌다]
[긴장되는 효과음] [의미심장한 음악]
[트럭 경적이 빵빵 울린다]
[타이어 마찰음]
뭡니까?
(송이) 나 천송이인데 어쨌든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청평에 있는 휘경이네 별장…
아유, 뭐 내가 어디 가는 것까지 써
뭐, 꼭 찾아오라는 얘기 같잖아
에이, 없어 보여
쓰지 마, 쓰지 마
[의미심장한 음악]
왜 이러냐고?
(송이) 도민준!
[송이의 비명]
[천둥이 콰르릉 친다] [신비로운 효과음]
[쾅 소리가 난다]
[긴장되는 음악]
(휘경) 당신
누구야?
뭐?
[한숨]
[긴장되는 효과음]
당신 혹시
12년 전 송이를 구해 줬던
그 사람이야?
제가 가진 능력으로 [밝은 음악]
다른 사람을 구했던 일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능력을 드러낸다는 건
내 정체를 드러낸다는 건데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날 이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요
능력의 한계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간 이동은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반경 200~300km는 가능한 거 같고요
시간을 멈추는 건 약 1분 정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제 몸의 상태입니다
장 변호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몸의 상태가 아주 나빴기 때문에
하마터면 그분을
죽일 뻔했었죠
[경쾌한 음악] [달그락거린다]
먹고 해요
[잔을 달그락 집는다]
(젊은 영목) 제발 좀 살려 주세요
그 돈 없으면 저희 어머니 수술 못 받으세요
[울먹이며] 저 사법고시 뒷바라지하시느라
죽을 고생 하신 분입니다, 제발
[젊은 영목이 코를 훌쩍인다]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시고
어머니 돌아가시면 저도 죽습니다, 예?
(지점장) 아이참, 이 사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진짜
(젊은 영목) 지점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지점장) 아, 왜 여기서 땡깡을 놓고 그래, 이 사람이
(젊은 영목) 지점장님
지점장님
[젊은 영목이 흐느낀다]
[울먹이는 숨소리]
[흑흑거리며 운다]
[긴장되는 음악]
[코를 훌쩍인다]
(민준) 잠깐
[긴박한 음악]
[젊은 영목이 코를 훌쩍인다]
[신비로운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찰그랑 소리가 난다]
[신비로운 효과음]
[희망찬 음악]
[민준의 힘겨운 신음]
[민준의 거친 숨소리]
[놀란 신음]
누, 누구세요?
[거친 숨소리]
귀신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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